유튜브는 일주일에 한 편 정도 업로드해야 구독자가 끊기지 않는다라는 취지의 이야기는 어디에서 들었을까. 정확한 출처가 기억나지 않는데 어디서 들어본것만은 확실하다. 이런 식으로 하나둘씩 출처 불명의 정보가 쌓이고 쌓여 카더라로 숙성되고, 곧 가짜뉴스로 다른 사람에게 옮겨지지는 않을지 신경이 쓰인다. 그래봤자 블로그 글이지만, 어쨌든 글을 읽을 최소한의 한 사람인 나를 속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시간을 들여 글을 읽어주는 고마운 몇 사람을 위해서라도, 정확하게 꾸준히 써 보려 한다. 그러려면 시간과 체력이 많아야 하겠지만 지금은 일요일 저녁이고, 어린이는 오늘 점심을 늦게 먹었으니 저녁도 늦게 먹겠지.

 

 

연말연시인 관계로 회사는 어느 파트나 할 것 없이 바쁘게 움직이지만, 어쨌든 나는 내적으로 한 고비를 넘었다. 덕분에 연휴에는 그간 지지부진 읽던 책들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러고는 이내 또 버릇처럼 올해 다 가기 전에 읽을 수는 있을까생각하며 새 책을 두세 권 집어 들었으니, 스스로 책의 굴레에 매이기로 작정한 것도 아니고.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은 말 그대로, 자신의 하는 일, 이름을 모두 드러내지 않을 수 있는 한 독서 클럽 구성원들의 이야기다. 책 읽는 사람들 사이에서 공감할 수 있는 유머 코드가 곳곳에 있어 읽는 내내 나도 모르는 친구들을 만난 듯한 반가움이 들었다. 발췌독을 대하는 등장인물들의 태도가 전에 읽었던 , 이게 뭐라고와 상반되는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읽으면서 책을 읽는 사람들 사이에 있고 싶다는 생각을 참 많이도 했다. 책을 읽는 것 자체로 신기하고 대단한취급을 하는 사람들 말고, 무슨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진지하게 듣고 말하고 반색하고 같이 즐거워하고 서로 힘이 되어 주는 사람들 사이에 있고 싶다는 생각.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취업 준비하면서, 어린이를 돌보면서 참가하던 독서 모임조차 멀리하게 된 건 나다.

+그리고 지금 수도권의 현실은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다.

 

(만약 책을 읽고 자유롭게 토론하는 일이 회사의 회의나 미팅에 버금가는 공적인 일이 된다면? 하고 잠깐 생각해 보았으나, 그렇게 되면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조차도 독서 모임 비슷한 것에 끼어 책을 자유롭게토론하는 일 없이 어떻게든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바라겠지.)

 

(따지고 보면 책을 매개로 한 SNS-바로 이 알라딘 서재 같은- 활동도 느슨한 독서 모임으로 볼 수 있을 텐데, 내 글을 쓰는 것 외에 다른 사람의 글과 활동에 충분히 감응하고 있는지를 반문한다면, 독서 모임 운운도 사실은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가고 싶다는 회피 욕구의 반영 아닐는지?)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는 것이 조명밖에 없지만, 우리 집 어린이는 선물을 제때 받았다. 카드도 받았다. 산타…… 아저씨로부터.

 

선물 받을 나이가 한참 지난 나는 언젠가 어차피 크면 산타 같은 건 없다는 걸 알게 될 텐데 굳이 헛된 수고를 할 필요가 있을까라고, 지극히 내 편의를 기준으로 생각한 적이 있다. ‘동심파괴되어야 할 어떤 것이 아니라 어린이의 세계 그 자체라는 것을 안 뒤에는 그 언젠가의 생각을 크게 부끄러워했다. 비슷하나 결이 한층 깊어진 논의가 (내 기준으로 2020년 올해의 책이라 여기는) 어린이라는 세계에 나온다.

 

어떤 어른들은 어린이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울리고 싶어한다. 어린이가 우는 모습조차 귀여워서 그럴 것이다. 그저 장난으로, 어린이의 오해를 유도해서 울게 마든다. 그 우는 모습을 반응이라고 여기며 즐거워한다. 잠깐이니까, 울고 나서 달래면 되니까, 정말로 큰일은 아니니까, 귀여워서 그러는 거니까 괜찮다고 생각할 것이다. 어쩌면 이만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애들은 다 그러면서 크는 거라고 가볍게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분명하다. 어린이를 울릴 수도, 울음을 그치게 할 수도 있다고.

이런 상황에서 어린이는 대상화된다. 어른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 어린이를 감상하지 말라. 어린이는 어른을 즐겁게 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어른의 큰 오해다.

 

-김소영, 어린이라는 세계, 226-227

 

 

    

어린이가 하기 싫어하는 일을 시킬 때마다 산타를 열심히 팔았으니, 아직은 글자를 읽지 못 해도 이왕이면 카드도 쓰는 게 좋겠지, 라는 생각은 곧 딜레마에 부딪혔다.

 

산타는 어느 나라 말을 쓰지?’

 

어린이의 내면에 있는 세계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아주 큰 문제였다. 산타 아저씨(=)가 익숙한 언어(한국어)카드를 쓰는 것이 가장 최선이겠으나, ‘일관성이라는 측면에서 문제가 있었다. 왜냐하면 얼마 전 어린이에게 보여주었던 산타 영상통화 어플에서는 줄곧 영어만 나왔기 때문에……. 그렇다고 영어사용하기에는 산타 아저씨의 영어가 짧다. 산타 아저씨(할아버지)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니까 모든 나라의 언어에 능통해야 할 텐데…….

 

그래서 절충안은? 첫 인사와 마지막 이름은 영어로, 본문은 한국어로 썼다. 써 놓고 보니 내용도 어린이에게 쓸 내용인가 싶어 더 후회가 된다. (요약하자면 착한 행동에 대한 보상으로 선물을 준비했다는 것인데,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었으면서도 정작 우리 집 어린이에게는 착함평가의 언어로 쓰다니, 나는 아직 멀었다.)

 

 

새 책을 읽어야 하는데 일상에서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쓴 것 같은 한 해였는지라 평소에 즐겨보던 사회과학 쪽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예전에 사 놓고 읽지 않은 소설이나 에세이가 있나 전자책 구매 리스트를 죽 내려보다가, 읽지 않은 아무튼 시리즈한 권이 있어 연휴 기간에 냅다 읽었다.

  

아무튼, 외국어는 대학에서 불어불문학을 전공했지만 전공과 크게 관련 없는 일을 하는 저자가, 외국어의 기초를 배우는 취미, 외국어가 구성하는 세계 등에 대해 쓴 에세이다. 왠지 고르고 보니 크리스마스 전후로 내가 겪었던 딜레마가 반영된 선택인 것처럼 보이지만, ‘의식적인 선택은 아니었다.

 

책 말미에 그는 대학생 시절 과외 제자였던, 외국어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자신에게 던졌던 S의 일화와 후일담을 소개하며, “외국어 배우기 책을 써야 할 사람은 실은 내가 아니라, S였던 것이다라고 겸양의 태도를 보이지만, 나는 오히려 반대로 생각한다. 어쩌면 실용과는 거리가 먼 외국어 배우기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실용주의에 경도된한국 땅에서는 생각보다 흔치 않기에 저자야말로 아무튼, 외국어를 쓰기에 맞춤한 필자가 아니었을까? 실용적이지 않은 일이 곧바로 의미가 없거나 하찮아지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그런 일과 세계가 더욱 많아져야 하지 않을까? 나는 아직도 철없이그렇게 생각한다.

    

 

이번 크리스마스에 내가 한 일을 되짚어 보면 자연스레 고개가 숙여진다. 반성의 의미로. 멋지고 화려한 것이 아니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을 다해 어린이의 선물에 대해 신경을 썼는가? 마음을 전달하는 일에 있어서는 선물 못지않게 마음을 기울였는가? 어쩌면 나는 세계의 안위와 평등을 탐구하고 신경 쓴다는 핑계로 우리 집 어린이의 마음과 행동을 살펴야 할 의무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닌가?

  

  

글은 이 정도로 쓰고 오늘 어린이 저녁 메뉴로 무엇을 먹일지 고민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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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12-27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의 과도기님 주말 마무리 잘 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인간의 과도기 님의 글 읽기를 즐겨하는 알라디너 입니다 :)

인간의과도기 2020-12-28 08:57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도 주말 마무리 잘 하셨는지요? 다락방님께는 항상 감사한 마음 가지고 있습니다!
2020년 마지막 한 주도 잘 보내시길 바라며, 아울러 2021년에도 복 많은 하루하루 보내시길 바라요!!!!!!^------^

다락방 2020-12-27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로 2020-12-28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마운 건 모르겠지만, 저역시 인도 님의 글을 감사히 읽은 몇 사람에 들어간다 생각하는 일인인데 꾸준히 써보려고 하신다니 넘 반가운 얘기에요!!👍 저는 아이들이 다 커서 어린이는 없고, 어른이 된 두 아이들과 사춘기 소년이 있는데, <어린이라는 세계>읽고 양심 많이 찔렸고요,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했어요. ㅠㅠ 좀 더 일찍 읽었더라도 저는 지금처럼 미안한 엄마가 되어 계속 미안해 할 것 같아요. ㅠㅠ 자책은 그만하고.😅
제 남편은요 이번 크리스마스에도 성인인 큰아들에게도 산타가 주는 선물이라며 줬답니다. 🤣🤣🤣 아들 표정이 넘 재밌었어요.
그건 그렇고 어린이 저녁 메뉴로 뭘 주셨나요??? 궁금.
새해 인사는 새해가 되면 할게요~~~!!😉

인간의과도기 2020-12-28 08:56   좋아요 0 | URL
라로 님 덕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제 글에 긍정적 피드백을 많이 주셔서, 계속 쓸 수 있는 동력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감사해요!

라로 님 가족 이야기 보면 서로를 위하고 아끼고 하는 마음이 절로 묻어나는 것 같아 알게모르게 영향을 많이 받는답니다. 물론 그 깊이는 제가 섣불리 따라할 수 없는 것이겠지만, 라로님은 가족 안에서 앞으로도 좋은 배우자/양육자이실 테니 덜 미안해하셔도 될 듯해요! ㅎㅎ 저희 집 어린이가 성인이 된 다음에도 성탄절이나 다른 날을 챙길 수 있도록 어린이와 좀더 친해져야겠어요. 그러나 현실은 어제 저녁에 새로 한 메뉴 없이 집반찬과 밥을 주었답니다...ㅜㅜ
 

  특별한 기대를 하지 않고 우리 지역 전자도서관에 들어가 보았다가 반색했다. 신착 자료가 상당한 양으로 들어왔다. 그간 장바구니나 보관함에만 담아 두었다가 사지 못하고(또는 않고) 리스트로 남아 있던 ‘비교적 신간’들도 신착 자료에 포함되어 있어 더 기뻤다. 비록 연말연시라 바쁘고 올해 추가적인 휴가란 사실상 물 건너간 상황이지만, 읽을 책이 하나라도 더 있는 것에 작은 위안을 얻는다. (이 글을 구상하던 중에 우리 지역 도서관에서는 별도 안내 시까지 무기한으로 휴관한다는 안내 문자를 보냈다.)

  몇 년 전 쓴 글에서 밝힌 바와 같이, 지금도 장강명은 나에게 애증을 불러일으키는 작가다. ‘애’는 ‘신간 알리미’의 형태로 남아 있다. 그렇다면 ‘증’은? ‘신간 알리미’를 통해 소식을 접수한 책을 일단 장바구니나 보관함에만 담아 두고, 살지 말지를 수십 번을 넘게 고민하는 것으로 발현된다. 그게 겨우 ‘증’이냐고 물으면 할 말은 없지만, 여튼 장강명의 ‘비교적 신간’인 『책, 이게 뭐라고』는 미리보기로 본 책 앞부분 중 일부 서술이 너무 재수 없었기에 ‘구입 보류’ 상태로 두고 있었다. 책의 출간으로부터 3개월이 지난 것을 보면 가늘고 별 볼일 없이 오래 가는 ‘증’인 셈이다. (참고로 글을 쓰는 2020년 12월 현재 그의 최신작은 『책 한번 써봅시다』이다.) 보통 장바구니에 담은 책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없어진다는데, 다행히(?) 그 기한이 오기 전에 전자도서관에 신착 자료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빌릴 수 있는 전자책까지 안 볼 정도의 ‘증’은 아니었다.

 

 

 

  책 제목은 장강명이 요조와 같이 진행했던 팟캐스트 ‘책, 이게 뭐라고?’와 같다던데, 내가 팟캐스트에 문외한이니 딱히 팟캐스트 이야기가 주(主)된 내용이리라는 생각은 애초부터 하지 않고 읽었다. ‘읽고 쓰는 사람’이라고 하니, 읽고 쓰는 것에 대한 이야기겠거니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에세이스트로서의 장강명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기대치가 낮았던 만큼, 책의 초반부에서 내 생각과 부딪히는 부분은 ‘음...그래...’ 하는 심정으로 휘리릭 넘겼다. 끝까지 읽으니 그에 대해 얼마간은 짠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후반부가 짠함의 포인트다) ‘잘 모르는’ 것에 대해 기정사실처럼 단정 짓는 대목은 두 번 세 번을 고쳐 읽어도 별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생략) ‘동물이 대접받는 나라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습니다’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구호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의 순서를 고의로 흐리며, 사실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세계 최초로 동물보호법을 만든 나라는 나치 독일이었고, 히틀러는 평생 개를 아낀 채식주의자였다. 이는 단순히 불쾌한 우연이 아니다. 공감이 윤리의 지침이 되기에 얼마나 부적절한가를 웅변하는 강력한 증거다.

 

-「동물이 대접받는 나라와 구식 저널리즘의 열렬한 지지자」, 『책, 이게 뭐라고』 중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히틀러는 채식주의자’였다라는 이야기는 잘 안다. 육식을 하는 사람들이 마음 편히 육식을 하기 위해 반증으로 써 먹기 좋은, 강력한 ‘팩트’여서 그런 것일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다른 책에서도 ‘채식주의자 히틀러’ 이야기는 확인 가능하다.

 

 

  육식을 하는 사람들이 채식주의자를 만날 때마다 하는 이야기지만, 히틀러는 채식주의자였고 동물의 고기를 먹는 것에 절대 반대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히틀러가 항상 음식에 관해 강한 주장을 피력했다는 것이다. 특히 고기에 대해 무시무시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던 그는 고기를 먹는 것을 보면 인간의 시체를 먹는 광경이 떠오른다고 말하곤 했다. 그래서 그는 고기 대신 수분 함량이 높은 채소를 으깨 죽처럼 만든 음식을 양껏 먹었다.

 

-「15장 지저분하게 먹기」, 『음식에 관한 거의 모든 생각』 중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에 관한 ‘거의 모든 생각’(통념)에 대한 반론과 섭식 상 중요한 원칙을 제시하는 이 책의 지은이는 철학자다. 문헌 고증(팩트 체크)에 이골이 난 사람이리라 쉬이 짐작할 수 있으며, 실제로도 각 장별로 어떤 자료를 ‘어떻게’ 참고하면 좋을지에 대한 설명까지 친절하게 책 말미에 달아 두었다. 그러나 나는 위 인용 대목을 본 시점에서 책의 전반적인 신뢰도를 내적으로 상당히 잃었다.

  미주에서 언급한 자료 출처(http://www.historyextra.com/feature/second-world-war/when-hitler-took-cocaine)에 들어가 보니, ‘히틀러 육식’에 관한 언급은 다음과 같았다.

 

  He had forsaken meat in 1931 after comparing eating ham to eating a human corpse. Henceforth, he ate large quantities of watery vegetables, pureed or mashed to a pulp.

 

  해당 기사는 2014년에 나온 전자책 ‘신간’의 내용을 다루었는데, 그 신간의 원제는 'When Hitler Took Cocaine and Lenin Lost His Brain'이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니 팩트 체크라는 것을 포기하고 싶을 지경이다.

 

  BBC는 그래도 영국의 공영방송국이니까, 신뢰할 만한 기사를 쓰지 않을까? 막연히 (희망 섞인) 자문을 해 보지만 우리는 답을 안다. 답은 ‘때때로 아니오’다. 헛소리는 돌고 돈다.

 

 

 

  세상 모든 일을 혼자 깨우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남들이 주는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남들과 힘을 합치면 세상에 대해 훨씬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으니 이는 물론 좋은 일이다. 하지만 여기엔 필연적으로 부작용도 따른다. 그중에서도 큰 부작용 하나가 '개소리 순환고리bullshit feedback loop'라는 것이다. 뭔가 수상쩍은 정보가 반복하여 출현할 때, 누군가의 주장이 검증 없이 앵무새처럼 반복되는 현상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그 정보가 옳다는 확증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거짓의_기원」, 『진실의 흑역사』 중

 

 

  ‘히틀러는 채식인이었다’는 이야기는 왜 이렇게 흔히 퍼져 있을까? 왜 그 이야기는 유독 비건, 채식주의자 또는 채식 지향인 앞에서 ‘굳이’ 꺼내지는 일이 많을까?

 

 

  존경하는 한 선생님은 ‘하나의 주제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최소한 그 주제를 다룬 다섯 권의 책을 읽어 보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또는 쓰셨다. 서술어조차 분명하지 않은 이유는, 연수에서 들었는지, 블로그 글에서 보았는지, 책에서 발견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혹 선생님의 주장에 왜곡의 소지가 있다면 온전히 나의 책임이다.). 육식이 ‘기본값’인 사회에서 채식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관련된 책이라도 몇 권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유독 채식 문제 앞에서 ‘중립’과 ‘식물의 고통’ 운운하면서 채식인 또는 채식 지향인을 ‘유별난’ 사람으로 몰아가는 사람들은, 『광장』에서 ‘중립’ 운운한 이명준이 마지막에 어떻게 되었는지나 잠깐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히틀러는 ‘알려진 것처럼’ 채식주의자인가? 아래의 인용을 읽어 보자. (써 놓고 나니 소제목의 부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문제...)

 

 

 

 

 

 

 

 

 

 

 

 

 

 

 

  히틀러 스스로도 채식의 장점을 떠들고 다녔지만 일반인들에게 히틀러가 채식인이라고 알려진 것은 의도적인 조작에 의해서였다고 한다. 히틀러의 전기 중 하나인 『아돌프 히틀러의 삶과 죽음』에 따르면 ‘히틀러의 채식주의’는 히틀러를 혁명적인 금욕주의자, 파시스트 간디와 같은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려고 했던 히틀러의 선전장관이었던 주셉 괴벨에 의해서였다. 약간 길긴 하지만 이 책에 묘사된 진실을 인용해 보자.

 

(...) 사실 그는 아주 자기 멋대로 하고 금욕주의의 본성은 전혀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요리는 상당히 뚱뚱한 윌리 칸넨베르크라 불리는 남성에 의해 호화스럽게 준비되었는데 궁중의 어릿광대처럼 행동하였습니다. 히틀러가 소시지 이외에 고기에 대해 좋아하지 않았고 생선을 먹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는 캐비어를 즐겼습니다. (...)

 

(...) 남들 몰래 조용히 채식의 유익을 즐기는 이라 할지라도 최소한 채식이 다른 이들에게 전해지는 것을 방해하거나 막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히틀러가 채식인이었을 가능성은 더욱 낮아지게 된다. 히틀러는 채식인협회를 박해하였다고 알려진다. (...) ‘채식운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채식인의 모임 장소를 알리는 것도 금지되었다. 심지어 게슈타포(Gestapo)는 채식 레시피가 포함된 책조차 몰수하였다.

 

- 「히틀러 - 순결한 땅의 이방인」, 『역사 속의 채식인』 중

 

  만약 (일단 사실도 아니지만) 히틀러가 채식주의자였다는 이유로 채식 지향인에게도 불순함이 깃들어있다는 말을 하고 싶거든, 히틀러가 과거에 미대생이었다는 이야기를 현 시국 때문에 가뜩이나 힘들어진 예술가 앞에서 꼭 해 보라. 가능하면 상대방의 반응까지 적어 두어 보라. 따지고 보면 같은 이야기 아닌가?

 

  고작해야 ‘플렉시테리언’으로도 부를 수 없는, 일주일에 한두 끼 완전채식으로 먹으면 채식 비중이 높은 축에 속하는 나날을 보내는 내가 이렇게 ‘히틀러 채식주의자’ 이야기에 열 받아 하는 것조차 어느 정도는 기만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진짜, 책이 뭐라고.

 

  ps. 생각해 보니 위에서 언급한 책들은 다 전자책으로 읽었다. 글감으로 쓸 인용구를 찾는 데에는 전자책이 종이책보다 아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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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1 0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21 08: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20-12-21 0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강명 작가의 글은 안 읽어봤지만 인도님 글 넘 좋아요!!!!좀 더 자주 써주세요. 이렇게 소주제 있는 글, 힘들어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펙트 체크도 읽는 저는 고맙네요!!!😍👍❤️ 바쁘셔도 자주 글 올려주세요!!!

인간의과도기 2020-12-21 08:35   좋아요 0 | URL
라로님 감사합니다! 여러 권을 읽어야 비로소 연결지어 생각할 거리와 글감이 마련되는 것 같아요. 틈틈이 읽고 더 쓰도록 분발하겠습니다!!!

다락방 2020-12-21 0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라로님 댓글에 동의합니다. 글 좀 자주 써주세요, 특히 ‘증’에 관련된 작가에 대해서 더요!

인간의과도기 2020-12-21 11:10   좋아요 0 | URL
ㅎㅎ 장강명만큼 (애)증의 대상으로 삼는 작가가 아직까지는 없어 앞으로 더욱 분발하도록 해야 할 것 같습니다 ^^;; 감사합니다!
 

회사에서 연례행사처럼 하는 직원 독서 경진대회를 생각하며 글을 쓴다.

    

 

작년, 뜻하지도 않게 상을 받았을 때, ‘, 그래도 내 감은 죽지 않았구나혼자 생각했었고, 그 생각은 어느 정도 사실을 반영한 것이었다. 아무렴, 대학에서 관련 전공으로 학위까지 받았는데(국어국문학 아님), 아무리 못 해도 한국인 1년 평균 독서량(7.5, 2019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보다는 많이 읽는데, 당연한 거 아닌가?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반성한다. 당연한 거 아니다. 심지어 나는 충분히 많이 읽지도 않았다!

    

 

이 떨어졌다는 사실은 직감으로 안다. 쓰고 싶었던 글의 아이디어는 다양하지만 한 주의 일상을 보내고 노트북 앞에 다시 앉으면 그 아이디어는 날아간 지 오래다. 기화성이다. 글의 얼개를 짜고 상황에 적합한 어휘를 고르는 일도 예전 같지 않다. 잘 골라 놓은 것 같이 써 놓아도 나중에 다시 보면, 과거에 가장 싫어했던 유형의 글이 내 앞길을 막고 서 있다. ‘천편일률’. , 이게 지금의 너야.

 

동종/유사 업계 사람들이 외부 지면에 쓰는 글을 보며 항상 생각했다. 이 사람들은 왜 글을 이 정도로밖에 못 쓸까? 이게 잘 썼다고 내놓은 건가?

 

지금은 그들(과 그들이 쓴 글)에 대해 이전처럼 시니컬할 수 없다. 이제 나도 이 사람들에 낀다. 업계에 있다는 사실로도, 글을 못 쓴다는 사실로도. 다만 나를, 그리고 그들을 위한 변명을 하나 궁리할 따름이다. 그들도 인간이기에,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상황 변수의 영향을 아주 많이 받을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하루에 최소 8시간 이상, 자신의 목소리를 온전히내는 연습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자신을 기준으로 글을 쓰려니, 얼마나 힘이 들겠는가, 이 말이다.

    

 

이렇게 쓰다 보니 또 습관처럼 자기비하와 자기연민의 굴레에 빠진다. 스스로를 끄집어내는 일이 중요함을 알면서도 끄집어 낼 기력조차 없는, 더군다나 있던 기력마저 빠르게 퇴장하는 일요일 저녁에는 그저 양지바른 곳에 내 마음의 음습한 구석들을 꺼내 놓고 말릴 수 있는 시간과 조건이 주어졌으면 하고 그저 생각할 따름이다.

 

회사에서의 상에 매달리는 이유도, 글도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으면서 외부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투고처의 마감 일정을 헤아리는 성마름도 사실은 지금의 나를 인정하지 못하는 자신 때문이 아닌지?

    

 

-

    

 

위에 읽은 책 이야기가 없는 것은, 그간 읽은 책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기록은 엄정하게 쓰려고 하면 그만큼 객관적일 수 있지만, 나중에 기록을 남긴 사람에게도 딱 그만큼 인정사정없다. 몇 년 전부터 쓰고 있는 독서기록 엑셀을 보면, 10월에는 책을 거의 못 읽었다. 지난 글에 쓴 이희호 평전 이후로 사실상 없는 셈이다. 11월에는 뭐라도 읽자 싶어서 교양 역사 만화 시리즈와 에세이 두어 권을 읽었다.

    

 

 

 

 

 

 

 

 

동아시아 3국의 근대사를 나란히 이어 서술하겠다는 기획은 좋았고, 전반적으로 인터넷 밈에 의존한 서술이야 이 작가가 원래 그렇게 유명해졌으니 이해하고 넘어가려 했는데, 1권의 질 낮은 드립들에 이르러서는 시리즈 읽기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다행히(?) 2권 머리말에 독자들의 항의로 중쇄본부터는 해당 드립들을 수정했다고 하여 계속 읽고 있다.

 

(이렇게 마음속 불편함을 적당히넘길 수 있는 것은 내가 기득권에 가까운 독자이기 때문은 아닌지?)

    

 

에세이 하나는 정말... 정말 좋았는데, 이 글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아 다음 글에 정성껏 자리를 할애해야겠다. (‘나중에 써야지하는 사람 특: 결국엔 안 쓴다)

    

 

그리고 12월은 현재 진행 중. 9월에 빌린 책이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른 휴관 몇 번을 겪더니 반납기한도 12월 중순 즈음으로 같이 점프했다. 석 달 전 빌린 책이 아직까지 있다는 건 못 읽은 주제에 미련만 남아 반납도 못 했다는 얘기겠지. 마감 일정이 있는 글들 쓰고, 틈틈이 읽는 것을 목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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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0-12-06 22: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슨 말씀이신지 저는 한 줄을 읽었는데 열 줄치를 알아버린 느낌입니다!!

인간의과도기 2020-12-06 22:40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역시 하나를 가지고 열을 꿰뚫어보시는 syo님!
회사 이야기는 쓰게 되는 순간 너무나도 할말하않 상태가 되어버리니 다음부터는 주제를 바꿔야겠습니다 ㅎㅎㅎ

2020-12-07 0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07 1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닷새는 모처럼 연휴의 이름값에 걸맞은 기간이라고 생각한 내가 어리석었다. 닷새를 쉬어도 또 닷새를 더 쉬고 싶다.

    

 

이번 추석 연휴는 유독 제발 어디 내려가지 말고 집에만 있으라고 정부 차원에서 권하니, 원래도 어디 내려가고 하지 않았던 나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라는 명분까지 얻어 정말로 아무 데도 가지 않았다. 연휴 전야부터 오늘 이 시간까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최소한의 생활(, 식사, 화장실) 이외에는 이것저것 잡히는 대로 종이책이며 전자책이며 읽었다. 그야말로 꿈의 연휴였다. 잠깐, 꿈이라고?

    

 

응 꿈이야.

    

 

그렇지, 배우자와 아이가 있으면 아무도 신경 안 쓸 수가 없다. 나의 휴식을 위해 다른 사람의 수고가 더해질 수는 없다. ‘제사를 위해 내려간 일이 없는 것도 맞고 연휴 기간 동안 책을 평소보다 더 읽은 것도 맞지만 연휴에 주로 한 것은 바깥바람 쐬기(동네 산책)와 집안일이었다. 다른 때의 주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 고로 제목에서 아무 걱정 없이낚시. 죄송.

    

 

이웃 분들의 연휴 독서 기록을 보고 닷새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는 것을 실감한다. ‘애매한 재야 고수’(김영민)라는 표현도 있지만, 내 독서의 양질을 견주어 보면 나는 애매한 고수도 아니고 그저 명확한 먼지 1일 따름이다. 다음은 먼지의 기록.

    

 

연휴 전 주(9.21.~9.27.)에는 지역 도서관에 대출예약을 한 세 권을 무사히 빌리는 데 성공했다. 그 중 한 권은 이중톈의 삼국지 강의2! (원제 品三國 下) 전자책으로도 나와 있다면 조금 더 좋을 텐데 생각했다가, 대출한 종이책 실물을 보고 생각을 바로 거두었다. 이 정도 두께의 종이책을 전자책으로 옮기면 몇 날 며칠을 스마트폰 화면 들여다보느라 눈 나빠지겠구나... 차라리 다행이다. 뭐 이런 심정.

 

여튼 대출한 그 날부터인지 그 다음날부터인지 읽기 시작해서 3분의 1 지점 즈음까지 읽었다. 여전히 설득력 있는 논증으로 가득한 글이라 읽는 데 행복했으나 중간에, 그러니까 연휴의 시작과 함께 샛길로 빠지는 통에 진도가 예상보다 더디었다. 다음은 샛길의 목록.

    

 

신라 공주 해적전은 곽재식의 근작인 경장편인데, 삼국지 강의의 영향으로 고문체(古文體)에 중독된 나의 갈망을 맞춤형으로 해소해 주었다.

 

결말에서 주인공의 심리가 자세히 나타나 있지 않아 나는 나대로 그의 심리를 추측해 보았다가, 그런 일련의 추측들이 실은 기존의 영웅 서사들이 지닌 문제(도구화의 문제 등)를 반영하기 때문에 작가가 일부러나타내지 않은 것은 아닌지, 하고 고쳐 생각하게 되었다.

 

문장이 가-끔 어색한 것을 제외한다면, 곽재식은 진정 21세기형 하이브리드 스토리텔러가 아닐까. (그러나 그가 글쓰기 책에서도 이야기했듯 완전무결한 글을 쓰느라 마감이 늦는 작가보다 마감에 맞추어 평균적인 글을 써 내는 작가가 독자에게 더욱 사랑받는다. 그는 의심할 바 없는, 21세기 한국에 맞춤한 작가다.)

 

 

이희호 선생의 자서전은 그의 서거 이후 전자책이 출간되었기에 서둘러 구입했으나 그때는 하루 이틀 안에 읽기는 어려워 보여 제쳐 두었었다. 무려 나흘이라는(이미 하루 줄었다) 시간이 주어졌으니 한 번 읽는 데까지 읽어 보자는 심산으로 첫 페이지를 열었고, 연휴가 끝나기 한 시간 전에 다 읽었다.

 

책에는 간략하게 표현된 한 구절 한 구절에 얼마나 많은 인고의 시간과 번민, 고통이 담겼을지.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상상조차 어렵다. 그렇기에 절반의 반가움 한편으로 절반의 아쉬움도 느끼는 사치를 독자로서 누리는 것이겠지. (절반의 아쉬움에는 이희호 선생에 대한 것도, 김대중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기까지 선택했던 정치적 타협의 과정에 대한 것도 있다.)

 

다음과 같은 대목에서 인구의 절반인 여성이 차별받지 않고 동등한 인격체로 인정받으면서 그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세상의 실현을 평생 염원했던 이희호 선생의 지향을 고스란히 볼 수 있었던 것이 이번 독서의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전문직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영부인이 된 힐러리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 힘이 느껴졌다. 그는 클린턴에 결코 뒤지지 않는 실력과 젊음을 겸비한 여성이다. (...) 이 같은 친분 관계를 떠나서 유능한 여성이 지구상에서 가장 힘센 나라의 대통령이 되는 날을 나는 손꼽아 기다린다. 여성이라는 상징성만으로도 세계의 여성들, 특히 제3세계에서 자라나는 여자 아이들에게 여성의 가치와 힘을 자각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힐러리 대통령이 외국 원수들과 정상회담을 하는 동안 그 배우자인 클린턴이 국빈의 배우자와 차를 마시면서 가벼운 담소를 하는 광경을 상상하면 무척 통쾌하고 한없이 즐겁다. 그는 평소의 풍부한 유머 감각으로 내조 외교도 천연덕스럽게 잘할 것이다. 지금까지 수동적이었던 배우자의 역할과 외교를 새로운 차원으로 높일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유쾌한 상상인가. 이 상상이 언젠가는 현실이 되면 좋겠다.

-동교동으로 돌아와서

 

 

 연휴를 하루 이틀 까먹다 정신 차려 보니 전자책 캐시 두 배 마일리지를 받을 수 있는 기간(매월 1~3)이 지났다. 어제는 기간이 지난 것을 알고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 들었으나(‘한 달을 어떻게 기다려!’), 오늘은 평소 완전 도서정가제의 취지에 동감한다면서 두 배 마일리지 적립에 불을 켜고 있는 것이 왠지 이율배반적으로 보인다고 메타적 성찰을 했다. 관심 분야의 신간은 나오는 대로 사서 읽지 않으면-최소한 사지 않으면- 논의에 뒤처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는데, 한 달쯤 늦는다고 아주 많이 뒤처지거나 하지는 않겠지. 이번 달 독서목록은 도서관에서 빌린 책과 사 놨지만 안 읽었던 책으로 채워야겠다. (과연 계획대로 될지는...?)

    

 

일단은 잠을 자자. 그래도 이번 주는 나흘 출근하면 쉬는 날이라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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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10-05 0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혀 먼지 1 아닌데요, 인간의과도기 님!
저는 연휴 마지막이라는 것 때문인지 어제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이번주는 나흘 출근이라는 것으로 다시 힘을 내야겠네요.

인간의과도기 2020-10-05 08:39   좋아요 0 | URL
새벽감성 덕(?)에 무의식적으로 자기연민에 빠졌었나 봅니다. 다락방 님 응원 감사합니다!
연휴 뒤의 출근 첫 날은 유독 적응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나흘만 같이 버텨 보아요! 이번주도 힘!

라로 2020-10-10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혀 먼지 1 아닌데요, 인간의과도기 님! 2
연휴 덕분에 님의 글을 읽게 된 것 같아 반가와요!!^^;;
암튼 덕분에 새로운 정보도 알게 되었는데 그게 알라딘 애기 인가요? ˝전자책 캐시 두 배 마일리지를 받을 수 있는 기간(매월 1일~3일)˝? 저는 늘 1000월의 적립금이 들어오던데 그걸 몇 일 안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금방 없어지더라구요. 그건 뭔가요? (뭔지 아무것도 모르는 일인,,,제가 먼지인듯)

인간의과도기 2020-10-10 20:3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라로 님. 시간 내어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제가 얘기한 건 알라딘에서 전자책을 살 때 쓰는 전자책 캐시였어요. 전자책 캐시를 충전해 놓으면 충전금액의 5%만큼을 마일리지로 적립할 수 있는데, 매월 1~3일에는 마일리지 적립율이 두 배(10%)가 됩니다. 예를 들어, 해당 기간에 10만원을 전자책 캐시로 충전하면 10000원의 마일리지가 적립이 됩니다.
라로 님께서 말씀하신 적립금은 일종의 기한부 적립금으로 이벤트나 알림 등으로 잠깐 생겼다 쓰지 않으면 없어지지요. 전자책 캐시로 발생하는 마일리지와는 다른 것으로 이해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라로 2020-10-11 07:24   좋아요 0 | URL
설명 감사합니당! 그런데 설명을 듣고 보니 저와는 상관이 없는 얘기네요. 흑 해외 카드로는 전자 캐시가 안 된다고 하네요. 그것이 되면 좀 더 할인을 많이 받을테니 책을 더 많이 사겠죠? 어쩌면 잘 된 일일까요??ㅎㅎㅎㅎ

인간의과도기 2020-10-13 19:20   좋아요 0 | URL
아, 전자책 캐시가 해외에서 적용이 안 된다는 것은 저도 댓글을 보고 처음 알았습니다 ㅜㅜ 저는 손에 책 살 돈이 있으면 그만큼 더 사게 되지만, 더 사지 않으면 주위에 있는 책을 더 유심히 보게 되는 계기를 갖게 되어 어느 쪽이든 괜찮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
 

 

 

 

 

 

 

 

 

 

지지난주 중에는 장강명의 소설을 마저 읽었다. 배경이 북한이라는 것을 빼면 무엇이 이 소설의 특기할 만한 장점인지, 이런 킬링 타임용 소설에 특기할 만한 장점을 바라는 것이 과한 기대인 건지 등 내면에서 여러 질문이 일어났으나 책을 덮고 나니 곧 잠잠해졌다.

 

 

장강명의 신작 알림이 떠서 이번엔 어떤 소설을 썼나 했더니 독서 에세이다. 그래도 미운 정이라고 장강명의 신작 알림을 차마 해제하지는 않아서 알림이 오면 한 번 쳐다는 보는데, 이번에는 내가 수많은 분야들 중 그나마 자주 쳐다보는 독서 에세이라니. 어쩌면 단 한 번뿐일 교집합일지도 모르겠구나 싶어 하마터면 바로구매를 누를 뻔했다. ‘바로구매를 실행하지 않은 것은 간만에 자제력이 발휘되어서라기보다는 책 소개 페이지에 있는 인용구 하나(‘정치적 올바름어쩌구 운운하는)를 보고 약간 울화가 치밀었기 때문이다. 소설이 아닌 글을 쓰는 장강명은 교묘하게 삼천포로 빠지는 일을 잘 하는구나. 물론 인용구만으로 판단하기는 어려우니 전후 맥락을 읽으려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기는 해야 할 텐데, 싫어하는 주장의 확인을 위해 내 돈을 쓰는 것은 어쩐지 저어되었다. 내 돈 주고 사기는 싫은데 무슨 책인지 한 번 보기는 해야 할 때, 책을 어떤 방식으로는 제공받을 수 있는 쉽고 현실적인 방법은 없을까? 몇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보았지만 이내 그런 방법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였기에, 사인본도 놓쳤겠다, 지금은 그저 전자책 출간일이나 기다리고 있다.

드라마를 볼 때마다 건강이 나빠질 정도로 스트레스(또는 열)를 받지만 이내 다음 편을 기다리는 한국인의 얼(K-Soul)이 나에게도 있는 것일까?

 

    

 

지난 주말 중 하루를 잠까지 쫓아가며 플레저에 과몰입한 탓일까? 덕분에 이번 주는 내내 피곤을 달고 지냈고 심지어는 입술 위에 수포도 생겼다. 누가 보면 일이 많아 그런지 알겠다만. 플레저는 넷플릭스에 있는 중국판 삼국지드라마였다. 한 편당 평균 재생시간 40. 95.

 

왜 하필 삼국지를 봐야겠다고 의식의 흐름이 점프했을까? 다는 알지 못해도 어느 정도는 아는 이야기니까, 라는 막연한 생각도 점프의 시도에 한 몫 했으리라 본다. 그리고 드라마를 보면서, 나는(정확히는 나의 상위인지meta-cognition) 나 자신에 대해서조차 막연하게 파악했다고밖에 여길 수 없었다.

 

15세 관람가인데, 모자이크 처리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왜 잔인한 장면은 끊이지 않는가. 나는 잔인한 장면이 나오는 영상을 못 본다. 그걸 회피형 방어기제라 부르든 뭐라 부르든, 못 보는 건 못 보는 거다. 문학 작품에도 잔인한 장면이 나오면 못 보기는 매한가지이지만 똑같은 내용이 영상으로 실감 나게’ ‘시청각적 감각으로다가오는 것보다는 낫다. 예를 들어 화웅의 기세에 부장들의 목이 일합에 달아났다를 문장으로 보는 것과, 목이 달아나기까지의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눈으로 지켜보는 것과의 차이란…….

(우리의 소원은 전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격투 신이 만약 영상화되었다면? 나는 적어도 99%의 확률로 그 영상의 관객이 아닐 것이다.)

 

어쨌든 삼국지니까 드라마는 재미있었으나 영상으로는 못 보겠다. 나중에야 다시 보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플레저에 대한 갈망은 곧 다른 방향의 해결책을 제시했다. ‘삼국지 책을 보자!’ 그러나 이문열이나 황석영이 번역한 열 권짜리 소설 삼국지를 읽기 시작했다가는 한 4~5권쯤에서 중도 하산할 것이 빤히 보였다. 내 시간은 소중하고 주말은 더더욱 소중한데 그럴 수는 없다. ‘어쨌든 삼국지를 다룬 한 권짜리 책을 찾다 보니 이 책이 나왔다.

    

 

 

 

 

 

 

 

 

 이중톈의 저작은 처음이다. 삼국지 강의는 말 그대로 삼국시대에 대한 대중 강의를 책으로 묶은 것인데, ‘소설 삼국지(삼국연의)’가 아닌 삼국시대(의 주요 인물)’가 강의의 주제다. 1차 사료를 주 근거로 하되 삼국연의와 근대 역사가들의 견해 또한 다양하게 참고하는 방식이 꼼꼼해서 좋았는데, 사실 이 책을 진지하게 읽기로 결정을 내리게 한 부분은 서두에 있었다

    

 

 우리들이 저 난세의 영웅들을 찬미하거나 좋아할 때, 그 당시 백성들이 받았던 고통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서문-"장강은 동으로 흐른다" 中)

 

 

이중톈의 실제 생각을 반영한 말인지, 아니면 그의 실제 생각과 상관없이 대중 강의의 특성상 체면치레를 위해한 말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전쟁 이야기를 대중적으로 다루는 이들에 대한 의심을 항상 가지고 있다. 전쟁의 승리를 가져다 줄 영웅전략’, 화려한 전술병기에 대한 무분별한 찬양이 전쟁이라는 비극의 원천을 한낱 이야깃거리로 만드는 땔감은 아닌지 하는 의심. 그러나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적어도 그런 의심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어려운 시대일수록 영웅이나 초인과 같은 비범한 존재를 고대하는 집단 무의식은 힘을 키우지만, 그럴수록 영웅주의에 쉬이 빠지지 않는 태도(또는 결기)가 필요하지는 않을까.

    

 

여튼 일주일이 넘도록 꾸준히 읽어서 드디어 어제에야 다 읽었는데, 문제가 생겼다. 아주 조금의 여지도 남기지 않고 바로 다음 강으로 이어지는 질문을, 1권 마지막에서 던진 것이다. 다른 강의 말미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래서야 2권을 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한자와 나오키는 각 권의 서사가 기승전결 구조를 독립적으로 갖추었다 보니, 3권까지 보았어도 4권은 나중에 보면 된다. 그러나 이렇게 한 강 한 강이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구조의 대계에서 나머지 절반의 흐름이 끊긴 시간이 오래 된다면 이 책은 안 본 것이나 마찬가지일 텐데. 책을 며칠 전에 사서 또 책을 살 수는 없고, 배우자에게 대출 신청을 부탁했다. (우리 지역 도서관은 무기한 휴관중이지만 내일부터 회원에 한해 최대 세 권까지 대출 신청을 하면 개별적으로 대출해갈 수 있게 해 준다고 한다.)

 

코로나 빨리 끝나라도서관 가고 싶다…….

    

 

 

 

 

 

 

 

이번 주말에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공개를 앞두고 복습 차원에서 보건교사 안은영특별판을 사서 만 하루 사이에 독파했다. 독서 기록을 찾아보니 5년 전에도 사흘 만에 후루룩 읽었다. 취준 시절에도 하지 않았던 ‘2회독을 하게 만들 정도로 나에게는 특별한 작품이지만 정작 나는 이 작품의 리뷰를 재미도 감동도 없게 쓴 전과가 있으니. 작품의 디테일에 대한 감상을 이 글에 옮기지 않고 넷플릭스 시리즈나 조용히 기다리는 게 충성 독자로서 다할 의무라 생각할 따름이다.

 

특별판에서 달라진 것은 표지 일러스트, 작가의 사인이 인쇄된 페이지, 20209월 시점에 쓰인 작가의 편지, 다섯 편의 추천사, 정도이다. 초판에는 안은영홍인표의 이름을 어디서 빌려 왔는지에 대해 작가의 말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반해, 특별판에서는 초판 작가의 말을 앞서 언급한 작가의 편지로 갈음했다. 특별판으로 보건교사 안은영을 처음 접하는 분들은 참고하기를.

    

 

이 글에 담긴 기간은 약 2주다. 이 기간 동안에는 본문에 언급하지 않은, 그러나 중요한 통찰을 일깨워준 책을 한 권 더 읽었는데 글의 주제가 판이하게 달라질까 봐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니 그 책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쪼록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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