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에도 일한 덕분에 이번 주말은 이틀 연휴가 아닌 사흘 연휴로 보낼 수 있었다. ‘하루라고 쓰면 별것 아닌 듯 보이지만 주말이 1.5배가 되었다고 쓰니 정말 큰 시간적 여유가 생긴 것을 실감하게 된다. 실제로도 여유가 생겨, 간만에 배우자와 주중에 맛있는 음식도 먹고 교외 산책도 했다. 마음이 많이 여유로워진 덕분에 그간 사두었으나 읽지 않았던, 한편으로는 새로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익숙한, 묵은지 같은 책들을 완독하고 또 뒤적이는 시간을 보냈다.

 

 

  

가난의 문법2주에 걸쳐 읽었다. 사실 나는 누가 무슨 책 주로 읽어요?’라고 묻는다면(아직 유명인사가 아닌 탓에 이런 질문을 많이 받지 못한다) ‘가장 좋아하는 책 분야는 시사나 사회과학입니다라고 답할 만큼 사회과학 책을 많이 읽지만, 이 책은 주목을 하는 주체가 워낙 다양하다 보니(전통적인 예비 사회운동가부터 친자본주의적 인플루언서까지) ‘대세는 일단 피하고 본다반골 힙스터기질 때문에 독서 우선순위에 두지 않았었다. 그러나 평소에도 시민은 어떤 식으로 사회에 책임을 지는가를 자주 생각하면서 정작 지극히 사적인 이유로 사회의 주요 논의를 회피한다면 그것만큼 모순이 어디 있겠는가? 읽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원래 좋은 사회과학 책은 독자를 불편하게 할뿐더러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들을 공론장으로 인도하는 법. ‘폐지 수집 노인이 마주한 구체적이고 삭막한 현실을 마주하게 되니 무엇이 진짜 문제인지시야에 들어온다.

 

사회과학 책을 읽을 때 보통의 독자가 취하게 되는 태도, 저건 내 일은 아니야에서 비롯되는 모든 태도(연민, 동정, 외면 등)를 저자는 충분히 고려하고 있다. 다음의 대목과 같이 그 최소한의 태도조차 경계하는 저자의 선명한 말이 나는 충분히 미더웠다.

    

 

가난한 노년을 다가올 불행으로 여기며, 그보다 나아져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일은 처참하다. 노인들의 모습은 젊은이들의 불행쿠키가 아니며, ‘반면교사(反面敎師)’도 아니다. 지금 닥친 노인들의 생활 속에서 노인들의 어려움을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종이상자의 생산량·배출량의 늘어나는 현상은 노인을 착취하는 일을 심화시키고 있다. 배달과 온라인 쇼핑이 활성화되며 종이상자의 사용량이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다. 집과 가게마다 다 쓴 종이박스의 배추량도 늘어났다. 그렇지만 젊고 부유한 소비자들은 폐품의 배출과 처리에 대한 책임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들은 종류에 따라 분리수거를 하면 자신의 책임을 완수했다고 여긴다.

 

책의 결론은 에필로그에 아주 명확히 드러나 있다. 이 글에서 간접적으로 언급하는 것조차 스포로 여겨진다고 생각해서 적지 않았는데, 궁금하다면 직접 찾아볼 것을 추천한다.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최근 가장 많이 읽는 작가는 곽재식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전자책 구입목록을 보면 나온다. (나 혼자서 웃기다고 생각하는) 웃기는 사실은, 종이책으로 산 책이 하나도 없다는 것. 앞으로도 그의 책을 꾸준히 사려면, 책 종수가 많다보니 종이책은 곤란하지 않겠는가 하는 심정도 있었겠지만, 사실은 신간/구간 가리지 않고 전자책으로도 출간된 책이라면 종이책을 제끼고 전자책을 선택한다. (혹 작가님이 이 글을 본다면, 종이책을 둘 공간이 마땅치 않은 독자의 충정을 헤아려주시길.)

 

 아무튼. 최근 한 달 이내에 산 곽재식의 책은 삶에 지칠 때 작가가 버티는 법이라는 제목의 책이다. 구매일과 책 제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건대, ‘삶에 지친정도가 압도적으로 심해 글이고 뭐가 다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무시로 들다보니 곽재식은 정말로 삶에 지칠 때 어떻게 버텼는지가 궁금했던 것 아닐까. 나는 물론 작가도 아니지만, 어쨌든 생계와 직접 관련이 없는 글을 비정기적으로 쓰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한때는 작가를 꿈꿨던 사람이니까.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내린 결론은 곽재식이니까 버텼지라는, 매우 이상한 것이었다.

    

 

 

 

 

지금은 로봇 공화국에서 살아남는 법이라는 그의 또 다른 책을 읽는 중인데, 첫 부분에 무려 그의 어린이시절, 컴퓨터로 ‘BASIC’ 언어로 프로그래밍한 일화를 그럴 수도 있지정도의 느낌으로 이야기한다. 나는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은, 성인이 된 지도 한참 지난 아저씨니까 어린이시절은 저마다 다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머리로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나는 어린이 때 이룬 업적 중 하나가 기껏해야 읽고 싶은 책이 있어 생일 선물로 이 책을 사 주세요라고 양친에게 요구했다는 일 정도다. 고전도 아니고 대학 개론서도 아닌, 그냥 어린이용얇은 교양 서적 한 권.

 

 

 

 

이런 간극의 차이에서 누가 누굴 본받나. 실제로도 삶에 지칠 때 작가가 버티는 법에 실린 여러 글들이 총체적으로 의도하는 바, 그러니까 책의 기획 의도가 과연 제목에 부합하는지가 읽으면서도 여러 번 의심이 되었다. 결론은 이렇다. 곽재식의 팬이어서 별점 기본 4(5점 만점). 그러나 글쓰기에 대한 실용적인 지침은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어떻게든 글쓰기를 참고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되니 참고할 것.

그러나 이 책이어서 건진 아주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곽재식 속도의 실체. 그는 그 실체를 친히 알리는 것을 넘어, (예비) 작가들에게 권면하기까지 한다.

  

 SF를 쓰는 사람들이 하는 농담 중에 곽재식 속도라는 게 있다. (...) 6개월 동안 단편 소설 네 편을 쓰는 속도를 말한다. (...) 그렇지만 여러 상황을 막론하고 1곽재식 속도 정도는 글 쓰는 사람으로서 도전해 볼 만한 속도라고 생각한다. 반년 동안 원고지 4백 장을 목표로 글 쓸 건수를 만들며 그때그때 결말을 짓고 완성해 나가는 것은 작가가 되려고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해 볼 만하다.

 

 

정말 해 볼 만한가요? 어린이가 BASIC 프로그래밍을 하는 것만큼이나? ‘곽재식 속도는 도식화하면 아래와 같이 정리된다.

 

 

원고지 400/6개월 = A4 40/24주 = A4 1.67/1

(여기서 A4는 한글 프로그램에서 용지/글꼴 설정을 바꾸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설정을 안 바꾸고 한 장을 꽉꽉 들이 채우면 원고지 10매 언저리가 나온다.)

   

 

그러고 보면 나도 한 번 쓸 때는 이 정도를 쓴다. 반은 인용, 나머지 반의반은 정보값 없는 헛소리라서 그렇지. 문제는 삶에서 지치는 정도가 너무 잦아 매주 글쓰기를 꿈만 꾸고 실천은 못 한다는 것. 하긴 모든 진리(예수님 부처님 공자 말씀 포함)는 옛날부터 지극히 당연한 말들로 이루어져 있지 않았던가? 실천을 하지 못하는 것이 항상 문제였을 뿐.

어찌 됐든, 쓸 게 있을 때는 쓰는 게 좋다. 쓸 게 없는데 억지로 쓰지 않는다면야.

(사족: 기록에 관한 신간-그 책을 차마 사지는 못했지만- 출간 소식에 영감을 받아 요새는 며칠에 한 번 꼴로 일기를 쓴다. 지극히 평범한 말로 이루어져 있는, 늘어지는 일기.)

    

 

아무튼, 은 이전의 나였다면 크게 관심 가지지 않았을 책이다. 나의 산행은 한 번도 자의에 의한 적이 없었다. 수학여행, 야간행군 등... 그 누가 미운 정을 이야기했나? 미운 것은 곁에 오래 두면 더 미워질 수도 있다. 지금의 나는 회사에서 부서도 바뀌었고, 사무실에만 앉아 있다 보면 360도로 돌아버리는 시점이 언젠가는 올 것 같아서 점심을 먹고 나면 꼭 산책을 한다. 산책의 은 당연히 그 이 아니지만, 산책과 산 타기는 야외에서 몸을 움직이는 활동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젊은 사람이’, 산이 힘들어서 좋았다라고 이야기하는 데에는 대체 무슨 내막이 있나? 궁금증이 들어 선택한 책이다. (끼워맞추기)

 

삶의 안정적이고 고요한 동태에서 안주하기보다는 산을 정말로 좋아해서, 정말로 좋아하는 것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삶을 선택했다는 이야기. ‘정말로 좋아하는 것이 점점 흐려지기도 하고, 주위 핑계를 대지만 삶에 급격한 변화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태도의 변화도 있어서인지, 저자의 이야기가 온전히 내 것 같아 가깝게 여겨지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산을 몇 번 자발적으로 타고 나면 이 책도 달리 읽힐까? 그러나 아이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 혼자 산을 타러 갈 시간은 충분치 않을 듯하다. (새벽에 타러 가도 되지만, 나는 좋아하는 일이 있어도 새벽에 일어나서 하느니 잠을 선택하는 편이다)

  

 

  

업무 특성상 내일은 90% 이상의 확률로 야근하는 날이다. 어차피 일은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게 거의 없으니까, 지금부터 내일을 굳이 생각하지는 말아야겠다. 다음 주에는 공휴일이 일요일 다음에 있어 이번 주말과 같은 사흘 연휴이니, 내일부터 한 주 동안은 사흘 연휴나 틈날 때마다 생각하고 기대해야겠다. 닷새 중 하루나 이틀, 혹은 그 이상을 번아웃 상태로 날리느니 주4일제가 시행되면 좋으련만 현실은 있는 주5일제도 여기저기서 각종 편법으로 어기고 한편으로는 제도적으로, 합법적으로 안 지켜도 문제 없도록 해 주니, 그저 한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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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1-02-22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의과도기님! 기다렸어요!!^^;;
그럼 다음 주에도 글이 올라오는 거지요?? 응???

인간의과도기 2021-02-22 23:15   좋아요 0 | URL
매번 반가이 맞아주셔서 감사해요 라로님! 어제까지만 해도 다음 주말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출근 하루 만에 다시 의지를 잃어서 ^^;; 그래도 너무 오래 기다리시지 않게 해보겠습니다!
 

새해 계획 같은 건 원래 믿지 않았었지만 그래도 새해가 되었으니 새로 무언가를 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은 있었다. 여성주의 책 읽기를 시도해 보고자 1월 선정 도서인 육식의 성정치도 샀고, 1월은 아무쪼록 일이 바쁘겠지만 365일이 이런 식이지는 않을 테니까 주말에라도 짬을 내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정확히 일주일 만에 깨졌다. 부서 이동과 함께.


많은 것을 느꼈다. 배신감은 말할 것도 없고. 회사에 느낀 배신감은 아니다. 원래 회사는 이런 곳이라고, 기대를 하지 않았으니. 상황이 그렇게 만든 것일 뿐인데 나를 탓할 수 있나? 하지만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이렇게까지 쓰다가, 생각이 더 길어지면 혹 이 모든 것은 나의 피해망상일 뿐일지도 모른다는, 평소에 지독히도 싫어하는 가는 데마다 헬 파티면 네가 구멍이다식의 책임론이 어쩌면 내 경우일 수도 있겠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동종업계에 있는 사람이 쓴 신간이 전자책으로 나왔기에 사서 읽어보았다. 사실 굳이 살 정도일까 반신반의했었지만 도서관이 언제 다시 열지 몰랐고 희망도서는 신청해도 언제 들어올지 몰랐으니까. 그리고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책을 읽고 나니(사실은 한 번 훑어본 것뿐이지만) 누군가가 기분 나쁘게 귓가에 대고 내 미래를 속삭이는 것 같아 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너는 대단한 글을 쓰지 못할 거야, 네가 잘 쓴다고 생각하는 글도 편집을 거치고 책으로 나오면 다 이런 식일 거야, 너는 특별하지 않아, 남은 생도 그럴 거야.

 

새로운 부서에서는 사람들의 깨진글을 보거나 말을 듣는다. 표현은 사안에 따라 다르지만 그 글/말의 아래에는 엄청난 분노가 있다. 그러나 나는 분노할 수 없다. 어떻게든 회사 차원에서 예의 있게 대답이 나가도록 해야 한다. 그가 얼마나 악의를 가졌는지와 관계없이. 그냥 회사가 인정한 폭탄처리반이다. 빈말로라도 좋은 자리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을 여태껏 한 명도 보지 못했다.

 

그렇지. 회사는 개개인의 사정을 모두 헤아릴 수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 그러면 내 인생은? 내가 입사하겠다고 선택한 회사니 어떻게든 견디는 것도 내 책임인가?

 

마침 세 달 대여로 구입한 전자책의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 훑어 봤더니, ‘감정의 전염에 관한 부분이 눈에 띈다.

 


남의 기분에 영향 받지 않기 위해서는 기분의 출처를 정확히 해야 한다타인에게 전염된 기분이라고 판단되면과감하게 쳐내는 연습을 해 보자남의 감정까지 내가 감당해야 할 의무는 없다지금 나의 기분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만 깨달아도 그 무게가 훨씬 가벼워져서내 안에서 흘려보내는 일이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네 감정은 내 것이 아니다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그러니까 위의 모든 내용을 머리로는 안다. 내가 상대하는 사람들이 원래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 그냥 하나하나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된다고, 머리로는 이해한다. 그러나 속된 말로 시달리고나면, 겉으로는 하하, 오늘도 조금 힘든 하루였네요하고 태연한 척 할 수 있겠지만, 마음에는 얼룩이 남는다.

 

모두가 꿈을 꾸지만 대다수는 그 꿈을 이룰 능력이 없다. 아이들은 결코 자신의 패배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고는 투정을 부리기 시작한다. 남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고 불만만 가득하다. 왜 자신이 실패했는지에는 관심이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은 그 절정이다. 한 번도 거절당해본 적이 없는 아이 중의 아이는 네가 잘못된 건 다 세상 탓이고, 소수자 탓이고, 다른 나라들이 미국을 등쳐먹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물론 세상은 잘못되어 있고, 당신의 불행한 삶이 당신 잘못만은 아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당신 탓이고, 투정 부린다고 해결될 것도 없다. 세상은 그렇게 굴러간다.


-꿈만 꾸는 아이의 세계, 꿈을 팔거나 불만을 팔거나, 믿습니까? 믿습니다!


전후 맥락을 보면 필자가 비판하는 대상은 명백하다.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어서 자신의 모든 꿈이 마땅히실현되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반사회적으로 구는 이들이다. 그러나 나는 어느 정도는 당신 탓이라는 말이 나에게도 해당되는 것처럼 읽혀 자꾸 신경 쓰인다.


어쩌면 나는 내가 남자라는 이유로, 좋은 대학을 나왔다는 이유로 가족과 사회로부터 과보호를 받은 것은 아닐까? 상황이 어떻든 이제는 내 구체적인 잘못과 관계없이 내 책임을 인정해야 하는 것일까? 그러면 나는 내가 지금 느끼는 이 수많은 부정적인 감정-패배감, 좌절감, 분노, 우울-셀프로통제해야 하는 걸까? 결과적으로 나의선택이니까?


구조가 개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지만 요즘에는 그 생각이 더 확고해졌다. 각자도생이 시대정신으로 통용되는 요즘의 세태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인지, 회사에서 겪은 일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특정한 방향으로 등을 떠밀고는 책임지지 않는 구조와, 그 구조를 만드는 데 기여했으나 별 생각이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화가 점층적으로, 그라데이션으로 올라온다.



그래서 요새 이런 책들을 읽는다. 두 책(하나는 무크지)의 공통점은 1. 구조 속의 개체를 환기시키며, 2. 글의 길이와 밀도가 적당하여 요즘 같은 위기상황(?) 속에서도 읽을 수 있다.

 

생각이 길어지면 다다르는 결론은 언제나 같다.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누군가에게 읽히는 글을 쓰지 말자. 지금이 그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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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집에서 쉰다. 같은 방에 있는 두 사람은 아직 잔다. 배우자는 커피를 늦게 마셔서, 어린이는 어린이집을 안 가니 평소대로 늦게(자정을 넘겨) 잠들어서. 곧 깰지도 모르니 글은 짧게 쓰고, 다가오는 새해를 비대면으로 맞이하자. (그전에도 딱히 해돋이 보러 가지는 않았었지만)

    

 

오늘은 집에서 쉰다. 출근을 안 했다는 이야기다. 취준생일 때는 나름 자리를 잡은직장인들이 틈만 나면 출근하기 싫다느니 퇴사하겠다느니 (요새 버전으로는 퇴사하고 유튜브를 하겠다느니’) 하는 말들이 우는 소리로 들렸었다. 어리석은 생각이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직장인인 지금의 나가 하는 반성의 도가 지나쳐 지나가는 취준생을(혹은 과거의 나를) 붙잡고 느그들 다 틀렸어. 늬들이 직장생활의 고단함을 알아? ‘사회생활을 알아?”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 말을 하는 순간, 축하합니다, 당신은 꼰대행 특급열차에 올라타셨습니다.

    

 

자신의 입장과 처지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은 인간의 한계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은 자기중심적 습성의 한계를 인식할 줄 아는 동물이므로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자 노력할 수도 있다. 코로나19는 내 짧은 식견으로 이해하지 못했던 한국 사회의 수많은 사각지대를 비추었다. 단적으로, ‘범죄자에게도 왜 인권이 필요하냐평범한사람들의 질문은 적어도 서울동부구치소 코로나19 집단확진이라는 사태를 맞이한 이후에는 줄어들지도 모른다. (앞의 질문이 인권의 개념조차 제대로 세우지 않은 질문이라는 것은 차치해 두자) 그러나 비관적인 전망으로는, 그 사각지대는 단지 비추어지기만 했을 뿐일지도 모른다. 도처에 가려져 있던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앞으로도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고,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많은 이들의 고통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나의 일도 분명 코로나19를 맞아 힘들어진 측면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힘듦에만 매몰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마 위 문단의 마지막 문장도, 오늘 집에서 쉬고 있기 때문에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일지도.

    

 

오늘은 집에서 쉰다. 글을 쓸 수 있는, 흔치 않은 틈새 시간이다. 부업으로라도 글을 써서 소득을 마련하는 일을 하고 있지 않기에, 형식상으로는 나에게 마감을 독촉하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은 있어서, 알라딘 서재를 (가끔이나마) 기웃거리고, 투고를 받는 독립문예지의 투고 마감 일정을 체크해 둔다.

 

그러나 생활인으로서의 내가 가진 가장 큰 문제는 모든 일을 일단 미룬다는 것이다. 미루다 보면, 회사에서의 일은 (사장님이 보고 계시니) 어떻게든 끝내 놓지만, 안 한다고 해서 심각한 불이익으로 이어지지 않는 일은 자연스레 우선순위에서 제쳐 두다가, 결국 하지 않는다. (대학교에서 선배들이 구전해준 노래도 막 생각이 나고 그런다. ‘오늘의 할 일은 내일로 미루고, 내일의 할 일은 하지 않는다 / 노나 공부하나 마찬가지다라고 했지... 느껴지는가? 호시절을 보내는 대학생의 패기가?)

 

사실 이 글을 쓰는 이유도, 오늘 마감인 투고 일정을 머릿속으로는 몇 주 전부터 계속 생각해 왔으나 결국 한 자도 못 썼기 때문이다.

    

 

 

언젠가 시은 이은규 씨를 인터뷰한 적 있습니다. 그가 그러더군요.

내가 시를 써도 되는가, 쓸 수 있는가 고민했다. 그러다 질문을 바꾸어보았다. 내가 시를 쓰지 않고 살 수 있는가. 답은 살 수 없다였다. 그래서 쓴다.”

 

숨바에서 온 편지, 마감 일기

 

 

 

   

이 부분을 읽고 나서야 나는 스스로에게 솔직해질 수 있었다. 지금 당장 쓰지 않아도 살 수는 있다. 그렇다면 적어도 시에 있어서는 쓰지 않는 사람아닌가? 대가 없이, 시로써만 나타날 수 있는 말을 고민하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쓰는 사람의 동료인 체하기에는, 염치가 없지 않나?

    

 

2020년에는 58권을 읽었다. 에세이와 만화가 올 한 해 읽은 책의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전자책으로 읽은 것은 절반 이상이다. 시집은 읽은 것이 없다. 적어도 를 쓰기 위해서라면, 2021년에는 올해보다 더 부지런히 동시대 시를 찾아 읽고 감응해야겠다.

    

 

여기까지 쓰는 중에 거짓말같이 같은 방에 있던 두 사람이 일어났다. 미룬다고 좋은 글이 되는 것도 아니고, 이 글은 오늘써야 의미가 있는 것이니, 여기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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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1-01-01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까지라도 넘 좋습니다!! 내년엔 인도 님께 많은 틈새 시간이 생기길 혼자 희망해봅니다!!저는 사실 내년에 틈새 시간이 별로 없을 것 같긴해요. ^^;; 그래도 인도 님의 글을 읽는 틈새 시간은 꼭 마련해 두겠어요!! 해피 뉴 이어~~~~!!^^

인간의과도기 2021-01-03 16:31   좋아요 0 | URL
라로 님, 제 답이 늦었네요 ㅠㅠ
부족한 제 표현력 때문에 말씀은 따로 드리지 못했지만, 라로 님 글을 읽으면서 제 내면의 여러 부분이 고양되었었고, 그래서 참 감사했어요.

2021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라며, 소망하시는 바를 이루시는 하루하루 보내시기를 기원할게요!!
 

  

유튜브는 일주일에 한 편 정도 업로드해야 구독자가 끊기지 않는다라는 취지의 이야기는 어디에서 들었을까. 정확한 출처가 기억나지 않는데 어디서 들어본것만은 확실하다. 이런 식으로 하나둘씩 출처 불명의 정보가 쌓이고 쌓여 카더라로 숙성되고, 곧 가짜뉴스로 다른 사람에게 옮겨지지는 않을지 신경이 쓰인다. 그래봤자 블로그 글이지만, 어쨌든 글을 읽을 최소한의 한 사람인 나를 속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시간을 들여 글을 읽어주는 고마운 몇 사람을 위해서라도, 정확하게 꾸준히 써 보려 한다. 그러려면 시간과 체력이 많아야 하겠지만 지금은 일요일 저녁이고, 어린이는 오늘 점심을 늦게 먹었으니 저녁도 늦게 먹겠지.

 

 

연말연시인 관계로 회사는 어느 파트나 할 것 없이 바쁘게 움직이지만, 어쨌든 나는 내적으로 한 고비를 넘었다. 덕분에 연휴에는 그간 지지부진 읽던 책들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러고는 이내 또 버릇처럼 올해 다 가기 전에 읽을 수는 있을까생각하며 새 책을 두세 권 집어 들었으니, 스스로 책의 굴레에 매이기로 작정한 것도 아니고.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은 말 그대로, 자신의 하는 일, 이름을 모두 드러내지 않을 수 있는 한 독서 클럽 구성원들의 이야기다. 책 읽는 사람들 사이에서 공감할 수 있는 유머 코드가 곳곳에 있어 읽는 내내 나도 모르는 친구들을 만난 듯한 반가움이 들었다. 발췌독을 대하는 등장인물들의 태도가 전에 읽었던 , 이게 뭐라고와 상반되는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읽으면서 책을 읽는 사람들 사이에 있고 싶다는 생각을 참 많이도 했다. 책을 읽는 것 자체로 신기하고 대단한취급을 하는 사람들 말고, 무슨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진지하게 듣고 말하고 반색하고 같이 즐거워하고 서로 힘이 되어 주는 사람들 사이에 있고 싶다는 생각.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취업 준비하면서, 어린이를 돌보면서 참가하던 독서 모임조차 멀리하게 된 건 나다.

+그리고 지금 수도권의 현실은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다.

 

(만약 책을 읽고 자유롭게 토론하는 일이 회사의 회의나 미팅에 버금가는 공적인 일이 된다면? 하고 잠깐 생각해 보았으나, 그렇게 되면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조차도 독서 모임 비슷한 것에 끼어 책을 자유롭게토론하는 일 없이 어떻게든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바라겠지.)

 

(따지고 보면 책을 매개로 한 SNS-바로 이 알라딘 서재 같은- 활동도 느슨한 독서 모임으로 볼 수 있을 텐데, 내 글을 쓰는 것 외에 다른 사람의 글과 활동에 충분히 감응하고 있는지를 반문한다면, 독서 모임 운운도 사실은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가고 싶다는 회피 욕구의 반영 아닐는지?)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는 것이 조명밖에 없지만, 우리 집 어린이는 선물을 제때 받았다. 카드도 받았다. 산타…… 아저씨로부터.

 

선물 받을 나이가 한참 지난 나는 언젠가 어차피 크면 산타 같은 건 없다는 걸 알게 될 텐데 굳이 헛된 수고를 할 필요가 있을까라고, 지극히 내 편의를 기준으로 생각한 적이 있다. ‘동심파괴되어야 할 어떤 것이 아니라 어린이의 세계 그 자체라는 것을 안 뒤에는 그 언젠가의 생각을 크게 부끄러워했다. 비슷하나 결이 한층 깊어진 논의가 (내 기준으로 2020년 올해의 책이라 여기는) 어린이라는 세계에 나온다.

 

어떤 어른들은 어린이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울리고 싶어한다. 어린이가 우는 모습조차 귀여워서 그럴 것이다. 그저 장난으로, 어린이의 오해를 유도해서 울게 마든다. 그 우는 모습을 반응이라고 여기며 즐거워한다. 잠깐이니까, 울고 나서 달래면 되니까, 정말로 큰일은 아니니까, 귀여워서 그러는 거니까 괜찮다고 생각할 것이다. 어쩌면 이만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애들은 다 그러면서 크는 거라고 가볍게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분명하다. 어린이를 울릴 수도, 울음을 그치게 할 수도 있다고.

이런 상황에서 어린이는 대상화된다. 어른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 어린이를 감상하지 말라. 어린이는 어른을 즐겁게 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어른의 큰 오해다.

 

-김소영, 어린이라는 세계, 226-227

 

 

    

어린이가 하기 싫어하는 일을 시킬 때마다 산타를 열심히 팔았으니, 아직은 글자를 읽지 못 해도 이왕이면 카드도 쓰는 게 좋겠지, 라는 생각은 곧 딜레마에 부딪혔다.

 

산타는 어느 나라 말을 쓰지?’

 

어린이의 내면에 있는 세계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아주 큰 문제였다. 산타 아저씨(=)가 익숙한 언어(한국어)카드를 쓰는 것이 가장 최선이겠으나, ‘일관성이라는 측면에서 문제가 있었다. 왜냐하면 얼마 전 어린이에게 보여주었던 산타 영상통화 어플에서는 줄곧 영어만 나왔기 때문에……. 그렇다고 영어사용하기에는 산타 아저씨의 영어가 짧다. 산타 아저씨(할아버지)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니까 모든 나라의 언어에 능통해야 할 텐데…….

 

그래서 절충안은? 첫 인사와 마지막 이름은 영어로, 본문은 한국어로 썼다. 써 놓고 보니 내용도 어린이에게 쓸 내용인가 싶어 더 후회가 된다. (요약하자면 착한 행동에 대한 보상으로 선물을 준비했다는 것인데,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었으면서도 정작 우리 집 어린이에게는 착함평가의 언어로 쓰다니, 나는 아직 멀었다.)

 

 

새 책을 읽어야 하는데 일상에서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쓴 것 같은 한 해였는지라 평소에 즐겨보던 사회과학 쪽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예전에 사 놓고 읽지 않은 소설이나 에세이가 있나 전자책 구매 리스트를 죽 내려보다가, 읽지 않은 아무튼 시리즈한 권이 있어 연휴 기간에 냅다 읽었다.

  

아무튼, 외국어는 대학에서 불어불문학을 전공했지만 전공과 크게 관련 없는 일을 하는 저자가, 외국어의 기초를 배우는 취미, 외국어가 구성하는 세계 등에 대해 쓴 에세이다. 왠지 고르고 보니 크리스마스 전후로 내가 겪었던 딜레마가 반영된 선택인 것처럼 보이지만, ‘의식적인 선택은 아니었다.

 

책 말미에 그는 대학생 시절 과외 제자였던, 외국어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자신에게 던졌던 S의 일화와 후일담을 소개하며, “외국어 배우기 책을 써야 할 사람은 실은 내가 아니라, S였던 것이다라고 겸양의 태도를 보이지만, 나는 오히려 반대로 생각한다. 어쩌면 실용과는 거리가 먼 외국어 배우기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실용주의에 경도된한국 땅에서는 생각보다 흔치 않기에 저자야말로 아무튼, 외국어를 쓰기에 맞춤한 필자가 아니었을까? 실용적이지 않은 일이 곧바로 의미가 없거나 하찮아지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그런 일과 세계가 더욱 많아져야 하지 않을까? 나는 아직도 철없이그렇게 생각한다.

    

 

이번 크리스마스에 내가 한 일을 되짚어 보면 자연스레 고개가 숙여진다. 반성의 의미로. 멋지고 화려한 것이 아니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을 다해 어린이의 선물에 대해 신경을 썼는가? 마음을 전달하는 일에 있어서는 선물 못지않게 마음을 기울였는가? 어쩌면 나는 세계의 안위와 평등을 탐구하고 신경 쓴다는 핑계로 우리 집 어린이의 마음과 행동을 살펴야 할 의무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닌가?

  

  

글은 이 정도로 쓰고 오늘 어린이 저녁 메뉴로 무엇을 먹일지 고민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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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12-27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의 과도기님 주말 마무리 잘 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인간의 과도기 님의 글 읽기를 즐겨하는 알라디너 입니다 :)

인간의과도기 2020-12-28 08:57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도 주말 마무리 잘 하셨는지요? 다락방님께는 항상 감사한 마음 가지고 있습니다!
2020년 마지막 한 주도 잘 보내시길 바라며, 아울러 2021년에도 복 많은 하루하루 보내시길 바라요!!!!!!^------^

다락방 2020-12-27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로 2020-12-28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마운 건 모르겠지만, 저역시 인도 님의 글을 감사히 읽은 몇 사람에 들어간다 생각하는 일인인데 꾸준히 써보려고 하신다니 넘 반가운 얘기에요!!👍 저는 아이들이 다 커서 어린이는 없고, 어른이 된 두 아이들과 사춘기 소년이 있는데, <어린이라는 세계>읽고 양심 많이 찔렸고요,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했어요. ㅠㅠ 좀 더 일찍 읽었더라도 저는 지금처럼 미안한 엄마가 되어 계속 미안해 할 것 같아요. ㅠㅠ 자책은 그만하고.😅
제 남편은요 이번 크리스마스에도 성인인 큰아들에게도 산타가 주는 선물이라며 줬답니다. 🤣🤣🤣 아들 표정이 넘 재밌었어요.
그건 그렇고 어린이 저녁 메뉴로 뭘 주셨나요??? 궁금.
새해 인사는 새해가 되면 할게요~~~!!😉

인간의과도기 2020-12-28 08:56   좋아요 0 | URL
라로 님 덕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제 글에 긍정적 피드백을 많이 주셔서, 계속 쓸 수 있는 동력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감사해요!

라로 님 가족 이야기 보면 서로를 위하고 아끼고 하는 마음이 절로 묻어나는 것 같아 알게모르게 영향을 많이 받는답니다. 물론 그 깊이는 제가 섣불리 따라할 수 없는 것이겠지만, 라로님은 가족 안에서 앞으로도 좋은 배우자/양육자이실 테니 덜 미안해하셔도 될 듯해요! ㅎㅎ 저희 집 어린이가 성인이 된 다음에도 성탄절이나 다른 날을 챙길 수 있도록 어린이와 좀더 친해져야겠어요. 그러나 현실은 어제 저녁에 새로 한 메뉴 없이 집반찬과 밥을 주었답니다...ㅜㅜ
 

  특별한 기대를 하지 않고 우리 지역 전자도서관에 들어가 보았다가 반색했다. 신착 자료가 상당한 양으로 들어왔다. 그간 장바구니나 보관함에만 담아 두었다가 사지 못하고(또는 않고) 리스트로 남아 있던 ‘비교적 신간’들도 신착 자료에 포함되어 있어 더 기뻤다. 비록 연말연시라 바쁘고 올해 추가적인 휴가란 사실상 물 건너간 상황이지만, 읽을 책이 하나라도 더 있는 것에 작은 위안을 얻는다. (이 글을 구상하던 중에 우리 지역 도서관에서는 별도 안내 시까지 무기한으로 휴관한다는 안내 문자를 보냈다.)

  몇 년 전 쓴 글에서 밝힌 바와 같이, 지금도 장강명은 나에게 애증을 불러일으키는 작가다. ‘애’는 ‘신간 알리미’의 형태로 남아 있다. 그렇다면 ‘증’은? ‘신간 알리미’를 통해 소식을 접수한 책을 일단 장바구니나 보관함에만 담아 두고, 살지 말지를 수십 번을 넘게 고민하는 것으로 발현된다. 그게 겨우 ‘증’이냐고 물으면 할 말은 없지만, 여튼 장강명의 ‘비교적 신간’인 『책, 이게 뭐라고』는 미리보기로 본 책 앞부분 중 일부 서술이 너무 재수 없었기에 ‘구입 보류’ 상태로 두고 있었다. 책의 출간으로부터 3개월이 지난 것을 보면 가늘고 별 볼일 없이 오래 가는 ‘증’인 셈이다. (참고로 글을 쓰는 2020년 12월 현재 그의 최신작은 『책 한번 써봅시다』이다.) 보통 장바구니에 담은 책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없어진다는데, 다행히(?) 그 기한이 오기 전에 전자도서관에 신착 자료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빌릴 수 있는 전자책까지 안 볼 정도의 ‘증’은 아니었다.

 

 

 

  책 제목은 장강명이 요조와 같이 진행했던 팟캐스트 ‘책, 이게 뭐라고?’와 같다던데, 내가 팟캐스트에 문외한이니 딱히 팟캐스트 이야기가 주(主)된 내용이리라는 생각은 애초부터 하지 않고 읽었다. ‘읽고 쓰는 사람’이라고 하니, 읽고 쓰는 것에 대한 이야기겠거니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에세이스트로서의 장강명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기대치가 낮았던 만큼, 책의 초반부에서 내 생각과 부딪히는 부분은 ‘음...그래...’ 하는 심정으로 휘리릭 넘겼다. 끝까지 읽으니 그에 대해 얼마간은 짠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후반부가 짠함의 포인트다) ‘잘 모르는’ 것에 대해 기정사실처럼 단정 짓는 대목은 두 번 세 번을 고쳐 읽어도 별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생략) ‘동물이 대접받는 나라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습니다’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구호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의 순서를 고의로 흐리며, 사실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세계 최초로 동물보호법을 만든 나라는 나치 독일이었고, 히틀러는 평생 개를 아낀 채식주의자였다. 이는 단순히 불쾌한 우연이 아니다. 공감이 윤리의 지침이 되기에 얼마나 부적절한가를 웅변하는 강력한 증거다.

 

-「동물이 대접받는 나라와 구식 저널리즘의 열렬한 지지자」, 『책, 이게 뭐라고』 중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히틀러는 채식주의자’였다라는 이야기는 잘 안다. 육식을 하는 사람들이 마음 편히 육식을 하기 위해 반증으로 써 먹기 좋은, 강력한 ‘팩트’여서 그런 것일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다른 책에서도 ‘채식주의자 히틀러’ 이야기는 확인 가능하다.

 

 

  육식을 하는 사람들이 채식주의자를 만날 때마다 하는 이야기지만, 히틀러는 채식주의자였고 동물의 고기를 먹는 것에 절대 반대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히틀러가 항상 음식에 관해 강한 주장을 피력했다는 것이다. 특히 고기에 대해 무시무시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던 그는 고기를 먹는 것을 보면 인간의 시체를 먹는 광경이 떠오른다고 말하곤 했다. 그래서 그는 고기 대신 수분 함량이 높은 채소를 으깨 죽처럼 만든 음식을 양껏 먹었다.

 

-「15장 지저분하게 먹기」, 『음식에 관한 거의 모든 생각』 중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에 관한 ‘거의 모든 생각’(통념)에 대한 반론과 섭식 상 중요한 원칙을 제시하는 이 책의 지은이는 철학자다. 문헌 고증(팩트 체크)에 이골이 난 사람이리라 쉬이 짐작할 수 있으며, 실제로도 각 장별로 어떤 자료를 ‘어떻게’ 참고하면 좋을지에 대한 설명까지 친절하게 책 말미에 달아 두었다. 그러나 나는 위 인용 대목을 본 시점에서 책의 전반적인 신뢰도를 내적으로 상당히 잃었다.

  미주에서 언급한 자료 출처(http://www.historyextra.com/feature/second-world-war/when-hitler-took-cocaine)에 들어가 보니, ‘히틀러 육식’에 관한 언급은 다음과 같았다.

 

  He had forsaken meat in 1931 after comparing eating ham to eating a human corpse. Henceforth, he ate large quantities of watery vegetables, pureed or mashed to a pulp.

 

  해당 기사는 2014년에 나온 전자책 ‘신간’의 내용을 다루었는데, 그 신간의 원제는 'When Hitler Took Cocaine and Lenin Lost His Brain'이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니 팩트 체크라는 것을 포기하고 싶을 지경이다.

 

  BBC는 그래도 영국의 공영방송국이니까, 신뢰할 만한 기사를 쓰지 않을까? 막연히 (희망 섞인) 자문을 해 보지만 우리는 답을 안다. 답은 ‘때때로 아니오’다. 헛소리는 돌고 돈다.

 

 

 

  세상 모든 일을 혼자 깨우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남들이 주는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남들과 힘을 합치면 세상에 대해 훨씬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으니 이는 물론 좋은 일이다. 하지만 여기엔 필연적으로 부작용도 따른다. 그중에서도 큰 부작용 하나가 '개소리 순환고리bullshit feedback loop'라는 것이다. 뭔가 수상쩍은 정보가 반복하여 출현할 때, 누군가의 주장이 검증 없이 앵무새처럼 반복되는 현상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그 정보가 옳다는 확증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거짓의_기원」, 『진실의 흑역사』 중

 

 

  ‘히틀러는 채식인이었다’는 이야기는 왜 이렇게 흔히 퍼져 있을까? 왜 그 이야기는 유독 비건, 채식주의자 또는 채식 지향인 앞에서 ‘굳이’ 꺼내지는 일이 많을까?

 

 

  존경하는 한 선생님은 ‘하나의 주제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최소한 그 주제를 다룬 다섯 권의 책을 읽어 보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또는 쓰셨다. 서술어조차 분명하지 않은 이유는, 연수에서 들었는지, 블로그 글에서 보았는지, 책에서 발견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혹 선생님의 주장에 왜곡의 소지가 있다면 온전히 나의 책임이다.). 육식이 ‘기본값’인 사회에서 채식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관련된 책이라도 몇 권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유독 채식 문제 앞에서 ‘중립’과 ‘식물의 고통’ 운운하면서 채식인 또는 채식 지향인을 ‘유별난’ 사람으로 몰아가는 사람들은, 『광장』에서 ‘중립’ 운운한 이명준이 마지막에 어떻게 되었는지나 잠깐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히틀러는 ‘알려진 것처럼’ 채식주의자인가? 아래의 인용을 읽어 보자. (써 놓고 나니 소제목의 부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문제...)

 

 

 

 

 

 

 

 

 

 

 

 

 

 

 

  히틀러 스스로도 채식의 장점을 떠들고 다녔지만 일반인들에게 히틀러가 채식인이라고 알려진 것은 의도적인 조작에 의해서였다고 한다. 히틀러의 전기 중 하나인 『아돌프 히틀러의 삶과 죽음』에 따르면 ‘히틀러의 채식주의’는 히틀러를 혁명적인 금욕주의자, 파시스트 간디와 같은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려고 했던 히틀러의 선전장관이었던 주셉 괴벨에 의해서였다. 약간 길긴 하지만 이 책에 묘사된 진실을 인용해 보자.

 

(...) 사실 그는 아주 자기 멋대로 하고 금욕주의의 본성은 전혀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요리는 상당히 뚱뚱한 윌리 칸넨베르크라 불리는 남성에 의해 호화스럽게 준비되었는데 궁중의 어릿광대처럼 행동하였습니다. 히틀러가 소시지 이외에 고기에 대해 좋아하지 않았고 생선을 먹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는 캐비어를 즐겼습니다. (...)

 

(...) 남들 몰래 조용히 채식의 유익을 즐기는 이라 할지라도 최소한 채식이 다른 이들에게 전해지는 것을 방해하거나 막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히틀러가 채식인이었을 가능성은 더욱 낮아지게 된다. 히틀러는 채식인협회를 박해하였다고 알려진다. (...) ‘채식운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채식인의 모임 장소를 알리는 것도 금지되었다. 심지어 게슈타포(Gestapo)는 채식 레시피가 포함된 책조차 몰수하였다.

 

- 「히틀러 - 순결한 땅의 이방인」, 『역사 속의 채식인』 중

 

  만약 (일단 사실도 아니지만) 히틀러가 채식주의자였다는 이유로 채식 지향인에게도 불순함이 깃들어있다는 말을 하고 싶거든, 히틀러가 과거에 미대생이었다는 이야기를 현 시국 때문에 가뜩이나 힘들어진 예술가 앞에서 꼭 해 보라. 가능하면 상대방의 반응까지 적어 두어 보라. 따지고 보면 같은 이야기 아닌가?

 

  고작해야 ‘플렉시테리언’으로도 부를 수 없는, 일주일에 한두 끼 완전채식으로 먹으면 채식 비중이 높은 축에 속하는 나날을 보내는 내가 이렇게 ‘히틀러 채식주의자’ 이야기에 열 받아 하는 것조차 어느 정도는 기만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진짜, 책이 뭐라고.

 

  ps. 생각해 보니 위에서 언급한 책들은 다 전자책으로 읽었다. 글감으로 쓸 인용구를 찾는 데에는 전자책이 종이책보다 아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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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1 0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21 08: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20-12-21 0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강명 작가의 글은 안 읽어봤지만 인도님 글 넘 좋아요!!!!좀 더 자주 써주세요. 이렇게 소주제 있는 글, 힘들어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펙트 체크도 읽는 저는 고맙네요!!!😍👍❤️ 바쁘셔도 자주 글 올려주세요!!!

인간의과도기 2020-12-21 08:35   좋아요 0 | URL
라로님 감사합니다! 여러 권을 읽어야 비로소 연결지어 생각할 거리와 글감이 마련되는 것 같아요. 틈틈이 읽고 더 쓰도록 분발하겠습니다!!!

다락방 2020-12-21 0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라로님 댓글에 동의합니다. 글 좀 자주 써주세요, 특히 ‘증’에 관련된 작가에 대해서 더요!

인간의과도기 2020-12-21 11:10   좋아요 0 | URL
ㅎㅎ 장강명만큼 (애)증의 대상으로 삼는 작가가 아직까지는 없어 앞으로 더욱 분발하도록 해야 할 것 같습니다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