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배처럼 텅 비어 문학과지성 시인선 485
최승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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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한, 혹은 빈약하다고도 말할 수 있을 만한 시어들에서 이미 죽은 자의, 폐허 직후의 허공에 뜬 슬픔이 보인다. 80년대의 독기가 사라진 것은 시인이 노쇠해서가 아니다. 시집은 이미 죽은 세계가 지겹도록 반복되는 존재 양식 그 자체이다. 시인은 아무 것도 초탈하거나 방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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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번 시 쓰기가 재미있다 - 젊은 시인 12인이 털어놓는 창작의 비밀
김승일 외 지음 / 서랍의날씨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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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생각과 일상, 세계가 궁금한 이들과 (습작생이라 일컬어지는) 시 쓰는 이들에게 제시할 수 있는 답변의 한 가지 양식. 글은 짧지만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반향을 일으킨다. 시를 어떻게든 쓰겠다는 자기 신뢰감과 시 앞에서 흔들리고 의심하는 마음이 동시에 왔다면, 제대로 읽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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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새로운 명령
한윤형.최태섭.김정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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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익숙한 개념인 `열정페이`에 대한 실증적 접근. 열정노동자에게 `너는 좋아하는 일을 하잖아`라고 푸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미 모든 노동자는 일을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열정을 `강요`받는 구조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착취당하지 않고 대상화되지 않는 열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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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읽는 한국 근대문학사
한국근대문학관 엮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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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한국근대문학사 교양서가 이 책 이전에 거의 없었다는 데 새삼 놀랐다. 한국근대문학관의 도록으로 생각지 않고 읽어도 교양서로서 충실한 책이다. 부록으로 실린 작가 소개와 작품 해제가 의외로 꼼꼼해 국문학 전공자들도 일별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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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 선생님 9
다케토미 겐지 지음, 안은별 옮김 / 세미콜론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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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출판사의 서평단 이벤트에 따라 출판사로부터 『스즈키 선생님』 9~11권을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학교와 사회는 공통점이 많다. 그렇기에 학교는 종종 사회라는 추상명사를 대신해서 호명되는 하나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가령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다’라는 명제에서처럼.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학교 구성원을 온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기성 세계의 시각에서 출발한 수사일 뿐, 학교는 이미 그 자체로 하나의 사회다. 다시 말하자면, 학교 문제는 곧 하나의 사회 문제이며, 학교로부터 출발한 문제의식은 현재 학교에 속하지 않은 사회 구성원들도 깊게 숙려해야 할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스즈키 선생님』 9~11권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사건은 세 가지이다. 학생회 선거 출마자들의 연설회, 문화제를 앞두고 이루어지는 스즈키 선생님과 2-A반의 연극 지도 및 연습, 문화제 직전에 발생한 ‘공개 강간 예고’ 사건. 여느 학교에서 경험할 수 있을 법한 일과 일상에서 차마 상상으로라도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이 혼재되어 있지만 이 사건들의 기저에는 독자들이 쉽게 간과해서는 안 될 문제의식들이 물음표를 드리우고 있다. 작가는 학생회장 후보로 출마한 니시의 입을 빌려서 ‘현대 대의민주주의 제도(시스템) 자체의 정당성/제도 하에서의 한 표가 지니는 가치’를 따져 묻고, 스즈키 선생님과 오타의 갈등을 통해서는 ‘격려와 위로의 딜레마’를 제기하며, ‘공개 강간 예고’ 사건 이후의 일들을 묘사하며 ‘사회의 변화 가능성’을 재고한다. 이 문제와 고민들이, 과연 학교에서만 발생하는가? 학교를 졸업하고 ‘성인들의 사회’로 나아가면 모든 문제는 개인의 고민과 노력 없이도 저절로 해결이 되는가? 안타깝게도 세상은 그 세상을 살아가는 성원 모두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이 호의적이지 않은 세상에서 제대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우리에게는 더 많은, 유효한 질문들이 필요하다. 『스즈키 선생님』을 읽으면서, 우리는 더 많은 질문에 답할 힘을 얻게 된다.

  『스즈키 선생님』 완독자로서의 나는 아직 이 작품을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스즈키 선생님』을 읽는 경험은 분명 가볍지 않을 것이다. 만화이지만 결코 오락을 기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어느 지점부터는 만화를 읽는다는 느낌도 받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스즈키 선생님』은 성가시고 복잡하게 여겨지는 질문을 자주 건넬 것이다. 그러나 그 질문들을 귀찮아하지 않고 내면화하여 스스로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독자는 성장해 있을 것이다. 그리고『스즈키 선생님』의 마지막 권을 덮으며 독자는 이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이것은 결국, 다는 아니더라도, 나의 이야기였어, 라고.

  개인의 내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성장이 왜 필요하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성장은 개인의 안위를 위해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성장한 사람들이 많아질 때, 그 사람들이 손을 잡을 때, 비로소 사회는, 세상은 바뀔 수 있다. 더 나은 세상에서 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성장해야 하는 것이다.

  학교 사회를 한정지어 이야기해 본다면, 지금도 분명 문제는 보이는 영역과 보이지 않는 영역 모두에 산적해 있지만, 과거보다는 나아졌다. 적어도 현재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촌지와 체벌, 차별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과거보다 나아졌으니 현재에 만족하라’는 것이 아니다. 당연한 것처럼 여겼지만 실은 그것이 당연하지 않은 것임을 인식하고 바꾸고자 하는 열망이 의식적/무의식적으로 확산될 때, 그리고 그 열망이 변화를 꿈꾸는 행동에 힘을 더할 때에만 사회는 과거의 문제를 해결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스즈키 선생님』을 읽는 나의 경험은 복잡다단했다. 때로는 스즈키 선생님의 견해에 동조하고 때로는 길항하며 많은 것을 고민했지만 답이 명쾌하게 나오지 않은 영역이 많다. 그러나 흔들리고 고민하는 상태 그 자체가 성장의 가도 위에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지금 겪지 않는, 감히 상상되지도 않는 시련 앞에 서게 될 때, 『스즈키 선생님』을 처음부터 다시 읽게 될지도 모르겠다. 나의 역할을 충실히 ‘연기’하기 위해, 그리하여 더 나은 학교와 세상에서 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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