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키 선생님 5 세미콜론 코믹스
다케토미 겐지 지음, 이연주 옮김 / 세미콜론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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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본 서평은 출판사의 서평단 이벤트에 따라 출판사로부터 『스즈키 선생님』5~8권을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교육계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도, 종사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공통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영역이 있다. 엄밀히 말한다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기보다는 인식되지 않는(또는 못하는) 영역이다. 다음과 같은 문제의식이 그 영역에 대한 빛을 조금 비출 뿐이다.

 

    “나는 교사 500명에게 질문한 적이 있다. 사범대학에 다닐 때 ‘아이들은 여러분을 자주 짜증나게 하고, 괴롭히고, 화나게 할 것입니다. 화가 났을 때 이렇게 하면 됩니다’ 하고 가르쳐준 강의를 들어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런 강의를 들어본 교사는 한 사람도 없었다.”

    -『교사와 학생 사이』(하임 G. 기너트 지음, 신홍민 옮김, 양철북)의 내용을『오늘 처음 교단을 밟은 당신에게』(안준철 지음, 문학동네)에서 재인용

 

    고등학교 졸업을 끝으로 교육계와 연을 맺지 않게 되는 대다수의 사람은 그렇다 치더라도, 교육계 종사자들도 교육 현장에서의 실제적인 물음들을 지나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지나친다고 해서 물음과 문제가 없어지지는 않는다. 작년 세밑에 터진 이슈를 예로 들자면, ‘기간제 교사’라는 특수한 처지에 있을 때 교사는 학생의 예의 없는 행동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사범대학을 졸업하거나 교직 과정을 이수한 이들 중 일부는 기간제 교사가 되기도 한다. 그들에게는 존재 자체가 걸린 일이지만, 그들이 사는 영역의 일은 애써 인식되지 않았다. 그야말로 공공연한 비밀, ‘말할 수 없는 비밀’인 셈이다. 예비교사 혹은 신규 교사는 기간제 교사로, 저경력 교사로 현장에 던져져 ‘깨지며’ 생존 전략을 습득한다. 전략과 기술을 사범대학 커리큘럼이나 교직 과정에서 배우지 않았으니,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마음의 일부를, 혹은 상당수를 다치면서.

    교사는 어떻게 하면 마음을 덜 다치면서, 존재의 기반이 흔들리지 않으면서 교육의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을까? 교육을 논하는 데 있어 ‘정답’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많은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 방법 중의 하나로서 교육 현장에 관한 책이나 글을 많이 읽고 간접 체험의 폭을 넓히는 것이 있다. 실제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지금껏 인식되지 않은 영역의 문제들을 생동감 있는 인물들을 통해 제시해 준다는 점에서 『스즈키 선생님』을 읽는 것은 좋은 간접 체험의 기회이다.

    5~8권에서 제시되는 에피소드에서 중요한 문제의식을 가려 뽑아 보면 하나하나가 교육적으로 유의미하다. ‘학생 지도가 일반적으로 문제 학생 지도에 초점을 맞추는 현실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학생 지도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청소 당번’), ‘교사의 사생활은 학생에게 어느 정도까지 공개되어야 하는가?’, ‘교사는 학생에게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보편적 인식과 개별적 경험이 학교 현장에서 양립할 때 교사는 어떤 태도를 취할 수 있는가?’(‘여름 축제’~‘스즈키 재판’), ‘동료 교사와 교육철학이나 교육관 등 교육적 관점에서 갈등하는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다루코, 발광하다’), ‘선거의 시스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학생회 선거!’) 등. 작가는 작중 인물들의 입을 빌려 각각의 문제에 대한 나름의 철학을 전개하고, 그 철학은 얄팍하지 않은 깊이의 생각을 담고 있으나 독자로서 꼭 그 견해를 따를 필요는 없다. 역시, 교육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나의 개인적인 독해 소감은 이렇다. 1. 가부장적 시선이 작품 곳곳에서 발견된 것은 아쉽다. ‘일’의 책임은 스즈키에게도 있는데 스즈키의 애인인 아사미의 집안에서는 남편의 ‘내조’를 이야기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작품이 10여 년 전에 창작된 것을 감안해야 할까? 2. 스즈키의 학급 토론은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없이 인상적이었지만, 현장에서는 한 끗 차이로 교육적 토론이 궤변의 장이 되어 버릴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에피소드에 대응하는 문제의식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간명해지지만, 책에서 논의되는 내용은 간명하지 않다. 간명하지 않은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좋은 교육을 위해서는 간단히 정리될 수 없는 다층적인 논의가 때에 따라 필요하기도 하다. ‘만약 내가 스즈키의 입장이었다면……’이라는 생각은 가정일 뿐이므로, 아직 현실이 아니므로 하기 귀찮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한 일도 겪을 수도 있는 곳이 학교 현장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스즈키의 입장을 최대한 깊이 생각해 보고 각자의 상황에 대입해 보는 것이 오히려 이 책을 ‘현실적으로’ 읽는 방법일 테다.

    얼마 전 대학교 학과 동기 모임을 가졌다. 이미 교사가 되어 있는 몇몇 동기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이 정말로 많이 ‘깨지는’ 중임을 알았다. 실력이나 열정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교육에 대해 미처 많이 생각하고 고민할 기회를 제공받지 못하고 현장에 들어간 것일 뿐이었다. 그들은 1정 연수(1급 정교사가 되기 위해 받는 연수)에서 교육에 관한 다양한 추천 도서들을 접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늦었지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교사 대상 연수 과정의 추천 도서 목록에 『스즈키 선생님』이 추가되면 어떨지 문득 생각해 본다.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답이 아닌 질문이다. 교사가 교육과 학생에 대한 질문을 멈추는 순간, 교사의 성장도, 학생을 위한 더 나은 교육도 불가능해진다. 질문이 중지된 교육의 영토에는 보신을 생각하는 교사와 갇혀 있는 학생만이 존재할 뿐이다. 내가 『스즈키 선생님』의 모든 내용에 동의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인들에게, 나아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자 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스즈키 선생님』은 교육에 대한 질문을 깊고 다채롭게 하게 도와주는 촉매제이다. 질문들과 그에 대한 저마다의 생각이 많이 공유될수록 교육은 나아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인다. 이 책을 읽고 생각하고 고민하는 만큼, 우리 교육도 그만큼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의 영역이 품고 있는 고통과 번뇌를 함께 공유할 때, 꼭 그만큼 우리 교육이 깊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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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 선생님 1 세미콜론 코믹스
다케토미 겐지 지음, 홍성필 옮김 / 세미콜론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본 서평은 출판사의 서평단 이벤트에 따라 출판사로부터 『스즈키 선생님』1~4권을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인터넷 커뮤니티나 SNS를 살피다 보면 재미있는 게시물들을 접하게 된다. 그 중에는, 게시물의 이미지 또는 사진과 정반대되는(또는 배치되는) 내용의 제목을 붙임으로써 역설의 재미를 주는 것들도 있다. ‘반도의_흔한_○○○.jpg’ 식의 제목이 붙은 게시물들이 대표적인데, 이를테면 ‘반도의_흔한_26세_백수.jpg’라고 제목을 붙이고, 김연아 사진을 올리는 식이다. 이런 유의 게시물에서 ‘흔한’은 본래의 의미를 벗어나 ‘비범성’을 함축하는 단어로 읽힌다.

  작품의 주인공인 스즈키 선생님은 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미혼 남자 교사이다. ‘중학교 국어 교사’, ‘미혼 남자 교사’, ‘남자 국어 교사’ 등으로 단어의 조합 순서를 바꾸거나 일부를 생략해 보아도 여기에서 어떤 특별함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우리의 학창 시절에도 한두 번 쯤은 보았을 법한, 평범한 인물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는 그렇게 ‘흔한’ 교사이기에 교육 현장에서 학생, 동료 교사, 학부모와 부딪치기도 하고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며 그만의 교육 ‘실험’을 진행할 수 있는 것이다.

  기존의 학원물에서 보아 왔던 전지전능한 만능형 교사, 혹은 의기충천한 ‘열혈교사’는 작품 안에서의 갈등을 명쾌하고 손쉽게 해결하지만, 그 안에는 교육 구조 혹은 교사의 본질에 대한 고민이 빠져 있거나 부족한 경우가 많다. 왜? 무슨 문제가 일어나든 능력 있는 교사의 손 안에서 모두 해결될 것이므로! 그러나 현실을 생각해 보면, 그런 교사는 없다. 교사들이 학교의 문제를 방기한다는 뜻이 아니다. 학생들과 소통하고 수업에 능숙한 선생님들도 교육 현장에서의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내 주위에 교사를 하고 있는 선후배 및 동기들의 삶을 보면, 학교 구성원들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가 활짝 웃기도 하다 그런다. 그들은 전지전능하거나 항상 열의가 넘치지 않지만, 교육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들도 인간이기 때문이다. 교직에 대한 섣부른 신성화를 시도하지 않고, 욕망과 감정을 가진 인간으로서의 교사를 보여준 점이 『스즈키 선생님』의 가장 큰 미덕이다.

  작품에는 절대적으로 착한 사람이나 절대적으로 나쁜 사람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스즈키 선생님도 ‘고작’ 담임 반의 오가와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기도 한다. 반대로, 교직원회의 때 자신의 주장을 고리타분하게 늘어놓는 에모토 선생님도 인기 투표에서 ‘워스트 2’에 꼽힌 이후로는 자신의 말과 행동이 평소 학생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를 성찰한다. 학생들 역시 마찬가지여서, 그토록 ‘애답지 않은’ 오가와도 자신을 둘러싼 스캔들(?)이 확산되자 끝내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자기주장에 심취해 교실에서 일대 소란을 일으켰던 다케치도 집에서의 숙려 기간을 보낸 후에 학교로 돌아와 학급 친구들과 어울리려 노력한다. 학교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 ‘관계’에서 교육을 이루어나가는 곳이니만큼, 작가가 학교 구성원 개개인에 대해, 그들 간의 역학 관계에 대해 소소한 에피소드를 엮어 세밀하게 보여준 점은 이 작품의 또 다른 미덕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다. 이야기의 전개를 극적으로 하기 위해 인물 간 갈등의 주원인이 후반부로 갈수록 연애, 또는 성적 욕망에 치우친 느낌이 있다. 스즈키의 애인인 아사미가 스즈키의 생각을 조건 없이 받아준다는 점도 아쉽다(물론 중간에 아사미 역시 한 번 ‘잠수’를 탄 적이 있지만, 그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사미는 거의 인간 이상의 이해심을 가진 듯해 보인다).

  한 차례의 태풍이 지나면 또 한 차례의, 때로는 이전 것보다도 더 큰 규모의 태풍이 다가온다. 교사는 매번 그 태풍 앞에 서고, 해결을 위해 노력하며, 그러한 과정은 매일매일 발생한다. 그것이 학교라는 현장에 선 교사의 숙명이다. 정작 학교 밖에서는, 학교 안에 어떤 태풍들이 오가는지도 모른다. 아니, 모르려 한다. 이 작품은 비록 일본의 교육 현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교육 주체(학생/학부모/교사) 또는 교육 주체가 될, 한국의 많은 사람들이 읽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진다. 작품의 에피소드를 ‘한국화’하여 쟁점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다 보면, 자연히 한국의 교육과 교육 주체들에 대해 새롭게 고민하게 될 것이다. 특히, 교사의 꿈을 향해 매진하는 임용시험 수험생들이 한 번씩 읽어 보면 좋을 것이다.

  흔한, 그러나 흔해서 오히려 비범한 스즈키 선생님이 앞으로 어떤 태풍 앞에 서게 될지, 기대가 된다, 라고 말하는 것은 인간적인 예의가 아니고, 가능하면 그의 입장을 오래 헤아리며, 기다리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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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부대 - 2015년 제3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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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포라는 감정을 ‘일부러’ 마주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까. 예나 지금이나 장르명 앞에 ‘공포’가 붙어 있는 작품은 꺼려한다. 공포영화, 공포소설, 공포드라마 등등…. 그래서 중고등학생 시절, 학년말 남는 수업시간에 공포영화를 틀어주는 것이 나에게는 그렇게 고역일 수가 없었다. 귀를 막고 엎드려도 비명소리는 어렴풋하게 들렸고, 그 소리로부터 어떤 끔찍한 장면이 어쩔 수 없이 상상되었기 때문이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 나의 취향에 따라 어떤 작품을 감상할지를 선택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비로소 중고등학교 때 내가 외면했던 ‘공포’에 대해 한 발짝 떨어져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공포에도 질이 존재한다면, 그것을 판별하는 기준은 문학용어로 ‘핍진성’일 것이다. 가령, 한 작품에서 공포를 일으키는 원인이 밑도 끝도 없이 등장하는 초자연적 존재의 기괴함이라면, 나는 예전만큼은 그것에 대해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그러나, 작품의 공포를 지배하는 근원이 내가 사는 현실 세계에도 존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때부터는 작품 밖을 벗어나서도 한동안 공포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밑도 끝도 없이 왜 공포소설 이야기인가? 아직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이 오해할까 사실을 밝히자면, 장강명의 『댓글부대』는 전통적인 장르 구분법상 절대로 ‘공포(호러)물’에 속하지 않는다. 책이 다루는 세계는 2012년 국정원의 여론조작 의혹 이후, 말하자면 ‘1세대 댓글부대’가 실패한 이후 ‘팀-알렙’으로 대변되는 ‘2세대 댓글부대’가 암약하는 한국 사회다. 물론 ‘2세대 댓글부대’ 따위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실제 한국 사회에서는 그 실체가 확인된 바가 없다. ‘아직까지’는. 그러나 ‘팀-알렙’과 ‘합포회’의 행적을 따라 읽어나가다 보면, 그리고 마지막의 결말을 확인하고 나면, 저절로 얼굴을 쓸어내리게 된다. “이거,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을 뿐이지, 진짜 있을 수도 있는 거 아냐?”

  ‘팀-알렙’의 일원인 ‘찻탓캇’은 ‘합포회’의 두 번째 제안, 즉 ‘은종게시판’ 초토화 작전을 임상진 기자에게 진술하면서, 자신들의 이간질이 가능했던 이유로 인터넷 커뮤니티 기저에 존재하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인정 투쟁’(77)을 언급한다. 이 책이 제시하는, 지극히 불편하지만 실현 가능성이 있는 세계 앞에서, 책을 덮은 독자는 현실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허구적으로 구성한 디스토피아가 현실에서 있음직한 모습으로 보일 때, 현실을 허구의 시각으로 다시 보기 시작할 때, 문학은 그 허구에 ‘핍진성’을 갖추었다고 이야기한다. 가짜 세계이지만, ‘충분히 있음직한’ 가짜 세계라는 것이다. 우리가 포털 사이트에서, 각종 커뮤니티에서 확인하는 각종 뉴스들과 댓글, 주장, 그에 따른 여론 등이 사실은 모두 특정 의도를 가진, 그리고 그 의도를 충분히 실현할 수 있는 세력에 의해 ‘조직적으로’ 짜 맞추어진 것이라면, 우리는 이 기울어진 판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책은 가독성 있는 서사를 보장하지만, 독서를 마친 독자는 책을 덮은 그 순간부터 의심, 더 나아가서는 ‘있음직한’ 공포를 마주한다. 장강명의 신작을 ‘공포소설’이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장강명이 전작들에서 보여주었던 장기는 이번 작품에서도 작품 곳곳의 디테일에서 여지없이 빛난다. 그의 장기는 각종 인터넷 용어와 분위기, 문체에 대한 위화감 없는 묘사로도, ‘인터넷 싸움은 정력과 멘탈로 하는 겁니다. 그런데 저희는 정력 많아요. 그게 직업이니까. 그리고 멘탈도 정말 강해요. 왜냐하면 멘탈이 없거든요.’(82)와 같은 작가 고유의 통찰로도 드러난다. 작품을 읽으며 독자가 가질 법한 공포감을 달래 주는 건 서비스다.

 

 

  “진짜로 이게 노하우 공개잖아요? 이 기사 보고 따라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생기는 거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잖아요? 솔직히 뭐 돈 드는 일도 아니고.”

  (중략)

  “글쎄요. 거기까지는 제가 신경 쓸 영역이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그런 식으로 따지면 범죄 보도는 아무것도 못하게요?”(210~211)

 

 

  이 작품을 다룬 한겨레신문의 리뷰 기사 제목은 다음과 같다. 「“책 읽은 독자들, 나를 ‘좌빨’로 볼지 아니면 ‘일베’로 볼지 궁금하네요”」. 장강명은 기사에서 “누가 읽어도 기분 나쁘고 불쾌한 소설일 것”이라고 말한다. 충분히 그렇다. 자신을 진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작품 곳곳에서 드러나는 진보 사이트들의 몰락, 그리고 ‘일베’와 그들을 뒤에서 조종하는 ‘흑막’의 승승장구가, 자신을 보수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작가가 ‘흑막’을 향해 보내는 이면의 시선이 불편할 것이다. 진보에서는 다가올지도 모르는 미래를 그린 ‘공포소설’로, 보수에서는 진보의 이중성을 까발린 ‘리얼리즘 소설’로 이 소설의 구분법 자체를 달리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구분은 의미가 없다. 독자는, 그가 보수이든 진보이든 상관없이, ‘합포회’의 실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모를 수밖에 없다. 현실에서는 ‘합포회’ 비슷한 것에 대한 감조차도 잡히지 않는다. 이것이 보통 사람들이 자리한 세계이다. 너나할 것 없이 남루하고 추해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지속되는, 그것을 바라보는 누군가가 조용히 웃고 있는, ‘헬(지옥)’이라고도 불리는 세계.

  질문은 책을 덮은 시점부터 시작될 것이다. 이 세계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대답은 간단하게 나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좋은 소설은 대답을 서두르는 대신 좋은 질문을 공동체에 제시한다. 좋은 소설이 제시한 질문을 놓고 답을 찾기 위해 같이 고민하는 것, 이것이 좋은 소설을 누리게 된 공동체가 행해야 할 최초의 윤리다.

  그러니 지금부터, 이 입체적인 공포소설을, 일단은 마주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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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서다 - 불행한 시대 이상한 나라에 사는 우리의 자세 우리 시대의 질문 3
김중미 외 지음 / 현실문화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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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분야의 현장에서 연대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담은 책. 자신의 삶이 담긴 활동기는 웅장하지 않으나 외려 깊다. 책을 덮은 후, `이런 훌륭한 분들이 아직도 많이 있구나`라고 감탄만 하는 것은 이 책의 올바른 독법이 아니다. 내 삶에서 곁에 설 거리를 찾아나설 때에야 이 책은 비로소 완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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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사생활
이응준 지음 / 민음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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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작가는 그가 참고한 자료들의 한계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캐릭터들이 전형성 안에 갇혀 있는 느낌을 받았다. 서사 전개의 완급이 적절히 조절되지 못한 것도 작품의 흠. 좋아하는 작가인데, 아쉽다. 그도 궁극적으로는 큰 그림 그리기에 실패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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