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영어 인문학 이야기 4 - '이타주의'와 '간통'은 무슨 관계인가? 재미있는 영어 인문학 이야기 4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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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이다. 같은 구조다. 10개 항목에 10갸 단어씩. 단어를 알아간다는 의미도 있지만, 단어와 더불어 서양의 사회, 문화를 알아간다는 재미도 쏠쏠하다.

 

한 단어에서 파생된 여러 단어들을 볼 수도 있어서 어휘 향상을 노리는 사람들이 읽어도 좋을 듯하다.

 

이번 권에서는 두 항목의 단어를 통해 좀더 깊이 들어가 보면 좋을 듯하다.

 

thinking과 multi-tasker와 sleep이다. 서로 떨어진 단어들 같지만 이들을 하나로 꿸 수 있다. 생각하는 능력은 곧 우리 사람들이 살아가게 하는 능력이다. 생각 능력이 점점 떨어지면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가 없다.

 

이 책에서 생각에 관한 좋은 말들 중에서 이 말을 명심해야 한다.

 

One must live the way one thinks or end up thinking the way one has lived. (사람은 생각하며 살앙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 209쪽)

 

그렇다. 생각을 내가 다스리지 못하고, 생각에 좌우되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해야 한다. 생각을 잘 하지 못하면 자신이 multi-tasker라고 생각하기 쉽다.

 

다중 능력을 지닌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 책에 나와 있는 것을 보자.

 

멀티태스커들은 시도하는 과제들 중 어떤 것도 잘 수행하지 못한다. 그러나 신체가 멀티태스킹을 '도취' 상태로 유도하는 신경화학물질을 분비하여 보상을 하기 때문에 기분은 좋다. 이 도취 상태는 멀티태스커들에게 특별히 생산적으로 일하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도취감에 젖고 싶어 그들은 훨씬 더 많은 일을 하려 든다. (317쪽)

 

깊이 생각하지 않음, 그것은 자신이 여러 일을 잘한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러므로 생각이 중요하다. 먼저 읽었던 [다시, 책으로]와 통한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잠이 필요하다. 잠은 낭비가 아니다. 오히려 잠부족이 낭비다. 우리 삶을 고통으로 빠뜨린다.

 

한 주 동안 하루 4~5시간의 수면만을 취하면 혈중 알코올 농도 0.1퍼센트에 해당하는 정도의 무기력함을 나타내 보인다는 것이다. (340쪽)

 

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말이다. 잠이 부족한 사람은 주의력이 분산된다. 집중을 하지 못한다. 여러 일을 하려 하지만 어느 하나에 몰입하지 못한다. 멀티태스킹이라고 착각을 하지만 그것은 생각없음에 불과하다.

 

그러니 앞에서 언급한 생각하기, 멀티태스커, 잠은 모두 통한다. 이렇게 다른 단어들을 통해 하나의 현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 인문학이다.

 

단지 단어가 아니라 우리 삶과 관련이 있다. 이 책에서 강준만은 이렇게 말한다. 그가 말하는 그냥 '잡학'이 아니라, 그런 '잡학'을 통하여 우리는 인문학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이 일은 이른바 '잡학(雜學) 상식'에 대한 열정으로 내가 재미있고 좋아서 하는 일이다. 독자들이 내가 누린 재미의 일부라도 공유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7쪽)

 

이 책을 읽으면 그런 재미를 공유할 수 있다. 재미만이 아니라 지식이 깊어짐도 느낄 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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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책으로 - 순간접속의 시대에 책을 읽는다는 것
매리언 울프 지음, 전병근 옮김 / 어크로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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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접속의 시대에 책을 읽는다는 것'이라고 표지에 적혀 있다. 책을 읽은 다음에 든 생각은 이 책은 순간 접속 시대이기 때문에 책을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는구나였다.

 

순간 접속의 시대, 디지털 시대라고 할 수 있는데, 모든 것을 순간적으로 만나게 되는 시대다. 그러니 진득하게 무언가를 하기보다는, 순간순간 만나고 잊고 또 다른 것을 만나고 하는 접속의 연쇄 속에서 살아가는 시대가 되었다.

 

접속의 연쇄, 얼핏 책을 통해서 얻게 되는 연결과 통할 것 같지만, 이런 연쇄들은 연결이 아니라 스쳐지나가는 만남에 불과하다. 즉, 상대나 다른 존재, 다른 세상과 연결해 주지 않고 그냥 순간의 만남에 그치게 한다.

 

언어와 사고가 위축되고 복합성이 줄어들며 모든 것이 점점 같아질 때, 우리 사회 정치는 종교 조직이나 정치 조직 내의 극단주의자들로부터든, 그보다는 덜 명확하게 광고주들로부터든 큰 위협을 받게 됩니다. (137쪽)

 

문제는 디지털 문화에서 우리가 소비하는 단어의 양이나 읽는 방법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읽는 양이 읽는 방식에 미치는 영향과, 읽는 양과 방식이 우리가 읽고 기억하는 것에 미치는 영향도 문제가 됩니다. ... 우리가 읽는 것은 디지털 연쇄의 다음 연결고리인 쓰는 방식마저 바꿔놓습니다. (141쪽)

 

다른 말로 하면 집중이 아니라 분산이다. 정신을 이것저것에 분산시키는 시대인 것이다. 그러니 집중력이 자연스레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이 책에서도 디지털 매체를 모두 부정하지는 않는다. 디지털 매체의 장점도 이야기한다.

 

읽기가 꼭 책으로만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지 않는다. 디지털 시대를 부정할 수 없기에, 디지털 매체를 통해서도 일어야 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디지털 매체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고 한다. 적절히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읽기가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 읽기를 양손잡이 읽기라고 이름한다.

 

하지만 양손잡이 읽기에서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책을 통한 읽기다. 책을 통해서는 이런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저는 이 세상을 사랑할 새로운 이유를 발견하기 위해 읽습니다. 또한 이 세상을 뒤로 한 채 저의 상상 너머, 저의 지식과 인생 경험 밖에 있는 것을 엿볼 수 있는 공간으로 들어가기 위해 읽습니다. (160쪽)

 

읽기 회로의 발달 정도는 천차만별일 수 있지요. 그것은 개별 아동의 특성, 읽기 지도의 유형, 지원 매체 (우리의 논의에서 결정적인, 읽기 매체의 유형)에 좌우됩니다. 여기에 매체의 특성이나 행동유도성까지 읽기 회로의  발달에 영향을 끼칩니다. (167쪽)

 

읽기의 첫 경험에 따라다니는 첫 번째 특징은 물질성입니다. 두 번째 특징은 반복이지요. (203쪽)

 

아이들이 책을 보고 듣고 맛보고 만지는 것은 뇌신경에 최선의 다중감각적, 언어적 연결이 구축되도록 도움을 줍니다. (204쪽)

 

두 살 이전에 아이가 경험하는 인간적인 상호접촉, 그리고 책과 인쇄물과의 물리적인 접촉은 구어와 문어, 내면화된 지식의 세계로 들어가는 최선의 진입로이자 미래의 읽기 회로를 구축할 벽돌입니다. (207쪽)

 

조금 늦게 읽기를 가르치는 나라에서 읽기로 문제를 겪는 아이가 오히려 적었습니다. (238쪽)

 

깊이 읽기는 언제나 연결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즉 우리가 아는 것을 읽는 것에, 읽는 것을 느끼는 것에, 생각하는 것은 삶의 방식에 연결짓는 것 말입니다. (245쪽)

 

입학 후 첫 몇 년 동안은 종이책과 인쇄물을 주로 사용해 읽기를 가르치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좋습니다. (258쪽)

 

"책은 나를 느려지게 하고 생각하게 만들지만 인터넷은 나의 속도를 높입니다." (259쪽)

 

아이에게 손으로 글씨 쓰는 법을 가르쳐주면 토끼보다는 달팽이에 가까운 속도로 자신의 생각을 탐구하도록 이끌 수 있다. (260쪽)

 

기억해야만 할 말들이다. 그러니 우리가 어찌 책을 통한 읽기를 포기할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스마트폰에 매달려 있는 현실에서 책을 통한 읽기는 많이 줄어들고 있는데, 그럼에도 책을 통한 읽기를 해야하는 이유를 이 책은 과학적인 증거들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결국 책을 통한 읽기는 이 책에서 말한 대로 페스티나 렌테(festina lente : 천천히 서두르기, 천천히 재촉하기 - 288쪽 )라고 할 수 있는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한다.

 

그래, 책읽기는 디지털 매체로 읽기를 하는 것과는 다른 장점이 있다. 그리고 우리 뇌를 읽기 뇌로 만들어 가는데 필수 요소이기도 하다.

 

이것이 책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다시, 책으로, 그것을 저자는 집으로 돌아온다고 표현했다.

 

우리도 이렇게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책을 통한 읽기를 해야만 한다. 특히 어린아이들, 청소년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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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동하던 모습을 잃고 굳어지면, 그 다음에 어떻게 될까? 한 생에서 다른 생으로 넘어가면, 다른 쓸모가 있어야 하는데.

 

  자연은 한 생에서 다른 생으로 넘어가도 자신의 역할을 한다. 쓸모없음이 쓸모있음으로 변하는 것, 그것이 바로 자연이다.

 

  어떤 존재도 스스로 존재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것도 다른 존재들에게 어떤 이익을 주기도 한다. '밤나무 위에서 잠을 자다'란 시를 보면 그것을 극명하게 느낄 수 있다. 나무는 죽어서도 인간에게 따스함을 준다.

 

  그러면 인간은 어떤가? 인간이 남긴 것들이 어떤 쓸모가 있을까? 오히려 굳어져 화석이 되어 버리는 것 아닌지. 화석. 과거를 알려주는 존재. 그것 뿐이다. 특히, 인간의 말들이.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는 말들은 그대로 굳어질 뿐이다. 시인의 말은 더욱 그렇다. 세상을 따스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시인의 말일텐데, 시인의 말을 무슨 쓰레기처럼 그냥 버리고 만다. 시인의 말은 사람들 귀를 통해 마음에 도달하지 못하고, 화석이 되고 만다.

 

인간과 자연의 차이다. 어떻게 존재해야 할까? 신용목의 시집에 나온 밤나무와 시인의 말을 통해 생각해 보게 된다.

 

   밤나무 위에서 잠을 자다

 

오래된 밤나무를 패서 때던 저녁이 있었다

 

태풍이 핥고 간 밭가에서 바람의 혀를 물고 마르는 데 꼬박 일년이 걸렸다

 

두발 지게에 실려 밤나무가 나뭇간을 덮던 날

 

그 저녁 네칸집은 삼백일장 나무의 상여였다

취한 별들이 지붕에 문상객처럼 둘러앉았다

 

캄캄한 방고래를 지나며 나무는 제 둥치의 모양을 마지막 연기로 그려보고 있었다

 

밥물이 밤꽃처럼 흘러넘치는 저녁이 있었다

 

신용목,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 창비. 2007년 초판 2쇄. 98쪽.

 

 

 

 

말의 퇴적층

 

내가 뱉은 말이

바닥에 흥건했다 누구의 귓속으로도

빨려들지 못했다 무언가 지나가면

반죽처럼 갈라져 사방벽에 파문을 새겼다

누구도 내 말을 몸속에 담아가려 하지 않았다

모두가 문을 닫고 사라졌으며

아무도 다시 들지 않았다 결국 나는

빈 방에서 혼잣말을 시작했다

뱉은 말은 바닥에서부터 차올랐고

이내 키를 넘었다 그때부터

나는 걷기를 포기했다 길고 부드러운 혀로

말의 반죽 속을 헤엄쳤다 와중에도

쉴새없이 말을 뱉었고 뱉을수록 한가득

된반죽처럼 뻑뻑해졌다

더러 문틈으로 바람이 불고 해가 비쳐

반죽은 딱딱하게 굳어갔다 나는 점점

움직이기 힘들었고 마침내

꼼짝할 수 없었다 말들이 마저

다 마르자 나는

풍문같이 화석이 되었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던

마지막 순간 그 우연한 자세가

영원한 나의 육체였다

몇만년 후 지질학자는

말의 퇴적층에서 혀의 종족을 발견할 것이다

나는 멸망한 시인을 증명할 것이다

 

신용목,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 창비. 2007년 초판 2쇄. 106-107쪽.

 

결국 순환이다. 순환은 닫힌 체계가 아니라 열린 체계다. 돌고 도는,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 자연이 순환을 멈추면 위험한 지경에 처하게 된다. 자연이 스스로 순환을 멈추는 경우는 없다.

 

인간이, 인간의 힘으로, 자연의 순환을 멈추고, 열린 체계를 닫힌 체계로 만들어 갈 뿐이다. 그리고 인간들 관계도 스스로 닫아버린다. 말이 돌고 돌아 살아 있지 못하고, 죽어 있게 된다. 한 곳에 머물고, 그곳에 쌓이고 굳어가게 된다. 시인의 말은 더더욱 그렇다. 마치 카산드라의 예언과 같은 대우를 받는다. 이 시대 시인의 말은.

 

신용목의 '말의 퇴적층'은 그런 모습을 너무도 잘 보여준다. 밤나무와 대비되게 시인의 말은 그렇게 화석이 되어버렸다. 시인은 '멸망한 시인을 증명할 것'이라고 했는데, 우리는 그렇게 되지 않게 해야 한다. 그것이 시집을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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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집의 핵심은 '자서(自序)'다.

 

  '시처럼 살고 싶은데 잘 안 된다. / 세상이 너무 걸리는 게 많기 때문이다. // 운명적인 것은 어느 날 문득 찾아오고……/ 가버린 날들은 그냥 바라만 봐야 한다. / 오랜만의 시집도 위안이 되지 못한다. // 먼 바다로 가 수평선이나 봤으면 좋겠다.'

 

  시처럼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존재들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질 테고, 무심하게 지냈던 마음에 무언가를 채울 수도 있을 것이다.

 

  시처럼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 꼭 시처럼 살 수는 없다. 그럼에도 그런 마음들이 삶을 시에 더 가까이 가게 한다. 삶들이 시가 될 수 있다.

 

시가 이슬처럼 찰나에 존재할지라도, 그 찰나에 사람에게 다가온다. 그런 존재, 그것이 바로 시여야 한다.

 

박찬 시집을 읽었다. 앞부분에 짧은 시들, 해탈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들이 시집 앞부분에 있고, 뒷부분에 가면 사랑을 노래하는 시들이 있다.

 

시는 곧 사랑이고, 해탈이다. 지금-여기에서 다른 곳을 바라보고, 꿈꾸는 것, 그것이 바로 시다. 그래서 시는 이슬처럼 우리에게 다가오기도 한다.

 

박찬의 시 '먼지 속 이슬'을 읽다.

 

  먼지 속 이슬

            - 화염길 그후

 

큰스님 오르시는 길, 비가 내린다

빗속에도 꺼지지 않는 파아란 불길.

하늘로 올라 이슬이 되어 먼지 위에 내려앉으시다.

 

박찬, 먼지 속 이슬, 문학동네. 2000년. 12쪽.

 

세상에 왔다가 떠나시는 큰스님. 오르는 길에 비가 내리지만 비는 불길을 꺼뜨리지 못한다. 그러나 큰스님은 그냥 오르기만 하지 않는다. 다시 내려오신다.

 

먼지 위에 살포시 이슬로 내려오신다. 그렇게 큰스님은 우리 곁을 떠나도 늘 우리 곁에 있다. 이것이 바로 시다.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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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0 09: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kinye91 2019-11-20 10:37   좋아요 0 | URL
유레카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학교 졸업, 시험 끝이 곧 시를 읽지 않는 시작과 일치하는 경우가 많으니, 그런 풍토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시험용 시가 아닌, 내 삶을 풍요롭게 하는 시라는 인식을 하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요.
 
예의 바른 나쁜 인간 - 도덕은 21세기에도 쓸모 있는가
이든 콜린즈워스 지음, 한진영 옮김 / 한빛비즈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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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예의 바른 나쁜 인간'이라는 제목. 서로 어울리지 않는 말이 한 자리에 있어, 그럴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게 한다.

 

나쁜 인간이라는 말에는 도덕적이지 않다는 말이 포함되어 있다. 도덕적이지 않다는 말과 윤리적이지 않다는 말이 같은 의미로 쓰이지 않음을 이 책에서 거듭 말하고 있는데... 도덕은 한 사람이 느끼는 감정이고, 윤리는 사회가 지니고 있는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윤리적으로 옳지 않은 일을 한 사람도 도덕적으로 수치심으로 느끼지 않을 수 있고, 윤리적으로 옳은 일을 한 사람도 도덕적으로 수치심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서로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윤리와 법은 어떤가?

 

윤리가 관습으로 지켜야 할 규범이고,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을 수는 있지만, 꼭 법적으로 처벌을 받는 것은 아닌 반면에, 법은 지키지 않으면 처벌을 받는다. 윤리보다는 법이 더 강제성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강제성 면으로 보면 법이 우선이고, 다음이 윤리이며, 마지막으로 오는 것이 도덕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과연 도덕은 무엇일까? 도덕적 행동은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그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노력의 결과가 바로 이 책이다.

 

그렇다고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이 도덕이고, 또 어떤 것이 도덕이 아닌지는 지극히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나쁜 인간을 숱하게 만나는 것이다.

 

이첵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에게서 도덕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도 하지만, 그들 행동에 대해서 생각하고, 그 행동이 도덕적인지를 생각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도덕이 상대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어느 곳에서 도덕인 것이 다른 곳에서는 도덕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고, 그에 대한 판단 기준도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관적이라는 말은 상대적이라는 말이다. 상대적인 것이 도덕이지만, 절대적인 도덕이 있지 않을까? 우리 인간들에게 모두 도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그것을 추구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읽다 보면 도덕이 지니는 함의가 시대에 따라, 사회에 따라 변해왔음을, 그리고 계속 변해감을 알 수는 있지만, 자칫하면 그들의 행동을 합리화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시대가 변했으니, 사회가 변했으니,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도덕은 상대적일 수밖에 없지만, 도덕을 느끼게 하는 것은 윤리다. 사회가 지니고 있는 규범이고, 이 규범이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변하면 도덕도 변하게 된다. 그렇다면 절대 도덕은 없는가? 아니다. 있다. 변할 수 없는 무엇. 그것은 바로 인간관계에서 온다. 상대방에게 해를 끼치는 것, 그것은 비도덕이다.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빌려 오면  '정리 31 어떤 사물은 우리의 본성과 일치하는 한에서 필연적으로 선이다.' (스피노자. 에티카, 서광사. 2006년. 233쪽.) 라는 말이 있다. 선을 도덕과 같은 의미로 쓴다면, 우리의 본성과 일치하는 것, 그것은 바로 남을 해치지 않는 것이다. 이런 것이 바로 도덕이다.

 

이런 도덕에서 벗어났을 때 수치심을 느낀다. 잘못된 행위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 이런 구절이 있다.

 

'젊은 사람들이란 정념으로 살고 따라서 과오를 많이 저지르지만 수치로 말미암아 이를 억제하는 까닭에 모름지기 염치심을 잘 길러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염치심이 있는 젊은 이들을 칭찬하지만, 나이를 먹은 사람이 부끄러워할 줄 안다고 해서 그를 칭찬하는 이는 한 사람도 없다. 나이를 먹은 사람은 부끄러운 느낌을 가지게 할 일을 전혀 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부끄러운 느낌은 좋지 못한 행위의 결과이기 때문에 좋은 사람에게는 속할 수 없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최명관 옮김. 니코마코스 윤리학, 1984년. 서광사. 141쪽.)

 

'알기 위해서는 그것이 몸에 배지 않으면 안 되는데, 이렇게 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아리스토텔레스, 최명관 옮김. 니코마코스 윤리학, 1984년. 서광사. 202쪽.)

 

이 구절을 우리나라 국회에 적용한다. 젊은이들보다는 늙은이들이 훨씬 많은 우리나라 국회. 다른 곳은 정년이 있는데, 정년이 없는 국회. 그리고 무엇보다도 수치심을 모르는 국회.

 

이들은 모두 자신들이 제대로 말하고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수치심을 가지면 그것은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다는, 도덕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 때문에 수치심을 못 느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그들에게 공감하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아예 무얼 잘못했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수치심을 느끼지 못한다.

 

수치심도 몸에 배어야 하는데, 이들은 그런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러니 이들은 '예의 바른 나쁜 인간'에 해당할 수밖에 없다. 자신들은 늘 옳다는 그런 신념을 지니고 있는... 그들이 처한 환경에서는 오로지 자신을 정당화하는 것밖에는 없는 그런 인간들.

 

언론에선 이런 수치심을 모르는 군상들이 주로 나온다. 자연스레 우리 사회는 개인의 도덕은 권력(경제, 정치, 법조 등등)의 힘에 의해 가려진다. 윤리가 실종된다. 오로지 법이 전면에 나서는데, 법은 권력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도덕은 삶에서 점점 밀려날 뿐이다.

 

'예의 바른 나쁜 인간'들이 넘쳐나는 사회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지금보다는 나아질 세상을 꿈꾼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그러므로 선은, 도덕은 지금보다는 나은 나, 나은 사회를 추구한다.

 

어떻게?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해야 한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과 실제 적용해야 할 것을 위도와 경도로 표현하고, 이것이 만나는 지점에서 도덕이 발견될 것이라는 저자의 말(310쪽)을 명심해야 한다.

 

'예의 바른 나쁜 인간'을 거울로 삼아 자신의 행동을, 사회가 어떻게 변해가야 하는지를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여전히 도덕은 우리에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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