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건강한 위험을 배울 수 있을까'라는 글이 실렸다. 학교라는 공간과 위험이라는 말, 여기에 건강한이라는 말이 함께 자리잡고 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학교는 우선 위험을 제거해야 하는 공간이고, 위험이라는 말에는 건강하지 않다는 말이 이미 들어 있으니, 학교와 건강한과 위험이 한 자리에 있는 것 자체가 너무도 이상하다.

 

  그런데 이것이 이상하면 안된다. 학교는 미래를 살아갈 세대를 가르치는 곳, 아니 그들이 생활하는 곳이다. 미래가 어디 탄탄대로로만 연결되어 있던가.

 

세상이 온실 속이던가. 누군가가 끝까지 다 보호해주는 공간이던가. 그렇지 않은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왜 학교는 안전해야 하는가? 학교에서 위험은 꼭 사라져야 하는가? 아니다. 위험이 사라진 학교는 더 위험하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사고를 막기 위해 온갖 일을 한다. 모든 교육활동에 안전교육이 실시된다. 실제로 안전을 위한 교육을 해야 함은 당연하지만, 학교에서 하는 안전교육은 혹 일어날지 모르는 사고에 대비해서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일환으로만 실시된다.

 

학교는 책임이 없다. 교사는 책임이 없다는 절차만은 꼭 거친다. 왜냐? 아이들이 다치면 모든 책임을 학교, 교사에게 묻는 풍토가 만연돼 있기 때문이다.

 

여럿이 함께 활동을 하다보면 다치는 경우도 나올 수 있는데, 그것에 대해서 그럴 수 있다고 넘어가지 않는다. 안전교육을 했느냐, 임장지도를 했느냐, 사후 처리는 어떻게 하느냐 등등으로, 사고가 나면 다른 교육활동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뒷처리에 매달려야 한다.

 

그러니 건강한 위험을 감수하려고 하지 않는다. 학교에 건강한 위험은 없다. 오로지 사고만 있을 뿐이다. 이 대담에는 놀이전문가와 서울시교육감도 참여하고 있는데, 공허한 울림으로만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교육청은 절대로 학교에서 일어난 사고에 대해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든 것을 학교에서 처리하길 바라고, 또 사고가 일어난 학교에 주의 조치를 할 뿐, 사고가 교육활동에 따를 수도 있는 일이라는 것을 민원을 제기한 학부모나 또는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려 하지 않는다.

 

결국 학교든 교사든, 교육청이든 책임을 회피하려고만 하고, 형식적인 절차만 갖추려고 한다. 그런 상태에서 '학교에서 건강한 위험을 배울 수 있을까'란 말은 너무도 공허할 뿐이다. 그럼에도 민들레에서 이런 좌담을 연 이유는 이것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앤절라 핸스컴이 쓴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무너지고 있다'란 글을 보면 아이들이 몸을 움직이는 놀이를 많이 하지 않은 까닭에 신체능력이 많이 떨어졌다고 한다. 당연하다.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학교에서는 쉬는 시간에도 학생들이 밖에 나가서 놀지 못하도록 한다고 하는데... 사고가 날까봐 두려워서. 어떻게 아이들이 놀이를 통해 신체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겠는가.

 

이런 상태에서 아이들은 몸만이 아니라 마음도 아프다. 마음이 아픈 아이들, 그들은 성장통을 겪고 있고, 그것은 성장에 꼭 필요한 일일텐데, 그 성장통을 '병'이라는 이름으로 낙인 찍고 있는 것이 현실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모두 중2병 환자일까, 마음이 아픈 아이들을 만나는 길, 학교 상담실에서 만난 아이들의 우울'이란 글이 이 점을 잘 보여준다.

 

우리나라 대다수의 아이들이 지내는 곳, 학교, 그곳이 절대로 건강한 공간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는데, 지금 이런 학교의 모습은 너무도 위험하다.

 

위험을 피한다고 하는데, 오히려 더 위험한 공간이 바로 학교다. 위험을 회피해서 더 위험해진 학교... 아이들이 무언가를 시도할 수 없는 공간이 바로 학교다. 그러니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실패하고 성공하는 시행착오를 겪을 수 없는 공간이 학교가 되니, 점점 더 위험해지는 것이 학교일 수밖에 없다.

 

학교에는 건강한 위험이 있어야 한다. 무언가를 시도하고 실패해 볼 수 있는 위험을 제공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학교다. 그게 교육이다. 그런데... 우리는? 오로지 대학입시라는 결승점을 향해 아이들을 몰아가고 있지 않은가. 부모도, 교사도, 그리고 사회의 모든 기성세대들도.

 

반성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기성세대들은 '꼰대'가 될 수밖에 없다. 이번 호에 권재원이 쓴 '당신은 꼰대입니까?'를 읽어 보라.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 꼰대들이 있는지.

 

위험을 제거해준다는 명목으로 오히려 위험에 빠뜨리는 그런 '꼰대들 천국'이 우리 사회 아닌지... 나 역시 그런 꼰대들 중 한 사람 아닌지.. 반성하게 되는 민들레 124호 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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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뇌는 특별하다 - 템플 그랜딘의 자폐성 뇌 이야기
템플 그랜딘 & 리처드 파넥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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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템플 그랜딘의 책읽기. 자폐인의 삶을 따라가면서 함께 살아갈 수 있음을 점점 더 확신하게 된다. 물론 고기능 자폐인들에게 더 해당이 되고, 정도가 심한 자폐인들에게는 템플 그랜딘과 같은 행동을 하기를 기대해서는 안 되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겠지만.

 

책은 자폐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자폐증이 병명으로 자리잡게 되는 과정을 잘 정리해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진단조차 받지 못하던 시대에서 심리적인 질병으로, 그래서 냉장고 엄마와 같은 말이 나왔던 시대로 있었다고 하는데...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자폐증도 뇌와 유전자의 문제로 점점 확대되고 구체화되었다는 것, 다만 여전히 생물학적인 문제가 완전히 밝혀지지 않아 정확히 진단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것. 점점 더 발달해 가는 과학으로 인해 자폐증의 생물학적 원인도 명확히 밝혀질 날이 올 거라고 믿고.

 

완전히 밝히지는 못했지만 어느 정도는 밝혀졌으니, 인과관계와 상관관계는 구분해야 한다고 하지만, 자폐증도 이제는 상관관계를 넘어 뇌와 유전자의 인과관계 쪽으로 가고 있으니 자폐증 치료에 더 기대를 걸어도 좋다고 한다.

 

템플 그랜딘은 사람들이 사고하는 방식을 둘로, 언어적 사고와 그림 사고로 나누었었는데, 최근에 여기에 한 가지 사고를 더해 패턴으로 사고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과학적으로 증명이 된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사고하는 방식이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은 우리도 하고 있지 않은가.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사람이 있는 것은 확실하니, 자신의 사고에 따라서 보는 방식도 달라질 수 있으니, 사람들이 사고하는 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을 체계화한다면 사람들에 따라 교육방식도 달라질 수 있을 텐데.

 

여전히 그것은 힘들다. 왜냐하면 이 책에도 나오듯이 학교 교육은 이름표 붙이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름표 붙이기, 다른 말로 하면 낙인찍기, 또는 낙인효과라고 할 수 있는 것인데, 자폐인이야 아스퍼거야 하고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 이름에 갇혀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름에 맞게 대우해 줘야 하고, 그 이름에 따라서 기대를 접는 행위를 얼마나 많이 하던가. 그래서 그들이 지닌 강점보다는 약점을 보완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던가. 여기서 템플 그랜딘은 이름표 붙이기에서 벗어나 약점을 보완하는 교육보다는 강점을 살리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 너무도 쉽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왜 굳이 못하는 것을 잘하게 하려고 할까? 잘하는 것을 더 잘하게 하면 되지 않는가. 전국민이 수학자가 될 필요가 없는 것은 모든 사람이 예술가가 될 필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우리는 모든 사람이 똑같은 교육을 받고 똑같은, 적어도 비슷한, 아니면 정부가 정해 놓은 이해되지 않는 어떤 수준까지 꼭 도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자폐 스펙트럼(요즘은 용어가 이렇게 바뀌었단다) 진단을 받은 사람에게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것 아닌가. 그들은 어떤 면에서는 표준적인 수준에 도달하거나 넘어설 수는 있어도 모든 면에서 표준적인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떤 특정 분야에 뛰어난 능력은 발휘할 수 있어도, 그 표준에 미달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살아가기 더 힘든 것이다. 

 

그러니 이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들이 잘하는 일을 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이들이 잘하는 일을 하고, 이들이 못하는 일은 잘하는 사람들이 하는, 서로 함께 일하는 사회가 된다면 그 다양성으로 인해 더욱 풍요로운 사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템플 그랜딘은 하고 있다.

 

이 책의 뒷부분에 가면 우리나라 교육에도 해당되는, 읽으면 슬픈 그런 구절이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강연을 할 때에는 확실하게 자폐 스텍트럼에 속하는 듯 보이는 사람이 많다. 전국을 돌면서 학교에서 강연을 하다보면 또 이런 비슷한 아이들이 많이 보이는데, 이 아이들은 실리콘밸리에서 일할 기회를 얻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왜일까? 학교에서 이 아이들을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대하기 때문이다. (251쪽)

 

똑같아야 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학교 교과과정에 있는 것을 꼭 다 배워야 할 필요는 없다. 세상에 그 많은 교과목에서 모두 일정 정도 수준에 도달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낙오자가 되게 해서는 안 된다. 다른 일을 충분히 잘 할 수 있고, 사고 패턴에 따라서 학교 교과과정은 익숙한 과정이 될 수도 너무도 힘든 과정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템플 그랜딘은 말한다. 왜 똑같아야 하지? 왜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에 같은 내용을 배워야 하지? 그래서는 안 되는데... 자신에 맞는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도와줘야 하는데...

 

이 부분을 읽으며 자폐 스펙트럼 진단을 받지 않아도 수포자(수학포기자)가 되어 일찍부터 절망에 빠지는, 강점이 많음에도 수학때문에 도태되는 학생들을 생각하며 마음이 아파왔다. 꼭 수학때문은 아니라도, 성적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에고, 이게 무슨 저주받을 짓인지...

 

자폐인의 성공담으로 읽을 수도 있지만, 템플 그랜딘의 책을 읽으면 함께 살아가야 함을, 다양한 사람들의 그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그래, 그렇게 우리는 살아야 한다. 각자 다양하게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며, 함께 조금씩 양보하고 서로 도우며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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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림으로 생각한다 - 자폐인의 내면 세계에 관한 모든 것
템플 그랜딘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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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자폐인 이야기"를 읽고 흥미를 느끼게 된 사람. 아니 그들의 사고체계에 대해서 알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녀가 쓴 다른 책을 계속 읽고 싶어졌따.

 

자폐인 하면 그냥 의사소통이 안 되는 사람이라고 재단하고 있었는데, 템플 그랜딘의 책을 읽다보면 그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들은 우리와 사고체계가 다를 뿐이다. 다를 뿐인데, 표현하는 방법이 다르고 또 일반 보통사람들에 비해서는 서툴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냥 다른 존재로 치부하고 마는 것. 하지만 자폐인들도 스펙트럼이 엄청나게 다양하니 - 보통사람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얼마나 다른지 생각하면 그것도 당연한 일인데,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하나의 언어 범주에 모두 넣어버리고 다른 점을 보지 않으려 하고 있던 것은 아닌지 반성도 된다 - 그들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는 책을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게 된다.

 

함께 살아감, 더불어 살아감을 이야기하면서도 과연 다른 사람들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함께 생활하려 했는지, 내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

 

템플 그랜딘의 이 책은 자폐인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남에게 알려줌으로써 그런 역할을 하는데...

 

템플 그랜딘은 시각으로 사고한다고 한다. 그는 우리처럼 언어로 체계적이고 순차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아니고, 시각으로, 마치 사진이나 영상을 주욱 나열해 놓듯이 세상을 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이해하는 것은 선형적으로 순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런 자신의 경험으로 동물들을 이해하고, 자폐인이라는 것을 지니고 전문적인 일에 종사하는 자신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자폐인도 세상을 함께 살아갈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물론 자폐인이라고 해서 모두가 다 템플 그랜딘처럼 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이 책에서는 자폐인들도 엄청나게 다양한 사람들이 있음을, 그리고 그들에게 맞는 치료법, 또 생활하는 방법이 다양함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기적적인 치료법은 없음을, 또 한 자폐인에게 맞는 치료법이 다른 자폐인에게 맞는다는 보장이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

 

그것은 우리 모두가 다르듯이 자폐인들도 다르다는 기본적인 인식을 해야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가끔 우리는 이 점을 놓친다. 그냥 자폐인이라고 퉁쳐서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랜딘도 남들과 어울려 사는데 지금도 많은 노력을 한다. 약물치료까지도 하고 있으니, 보통 사람들보다는 더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자폐인으로서 가진 능력을 발휘하고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어느 자폐인 이야기"가 그랜딘 자서전 1부라면 이 책은 2부에 해당한다. 대학을 마치고 자신의 직업을 가지고 생활하면서 그간 느꼈던 점, 알게 된 점을 알려주고 있다.

 

특히 자폐인들에 대해서 많이 공부를 했고, 자신이 알게 된 점을 조목조목 알려주고 있어서 자폐인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그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를, 무조건 비난하기 보다는 우선 생각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여전히 자폐를 완전히 없앨 수 있는 방법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제는 폐인들을 그냥 가두어놓아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하는 사회가 되었다. 그녀가 노력한 만큼 인도적인 동물 도살도 법으로 실행하도록 하는 사회가 되었고. 

 

이 책은 그들의 사고체계, 행동의 원인에 대해서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다. 자폐인들만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생물들에 대해서도 다른 방향에서 생각하게 해주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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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자폐인 이야기 - 개정판
템플 그랜딘 지음, 박경희 옮김 / 김영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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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라고 하면 "레인 맨"이라는 영화를 떠올리고, 거기서 자폐인의 역할을 했던 더스틴 호프만을 떠올리게 된다. 사회성은 영에 가깝지만 숫자에는 천재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는 사람.

 

남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살지만, 어느 분야에서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존재가 자폐인이라고 생각하는데... 자폐인들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각자 다른 모습을 보인다고 하니.

 

꼭 어느 분야에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어야 자폐인인 것은 아니다. 사실 주변에서 만나는 자폐인들은 어느 분야에서 뛰어나다기보다는 다른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존재다. 의사소통도 안 되고, 그렇다고 무언가를 잘하지도 못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까 걱정도 되는. 게다가 가끔 보이는 폭력적인 모습까지.

 

다를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자폐인들이 사회 생활을 잘하지 못하리라는 생각을 지니고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버려야겠다는 마음을 지니게 됐다.

 

자폐인들도 다른 사람들과 같은 것이다. 소위 보통사람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사회 생활을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어떤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과 고만고만한 자질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꼭 자폐인이라고 해서 다르게 볼 필요가 없다는 것.

 

자폐를 딛고(이 말도 좀 이상하지만, 자폐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문을 열고 열린 공간으로 나온) 가축 도구 디자이너로 성공한 템플 그랜딘의 이야기...

 

한 사람의 성공담으로 읽을 수도 있지만 그가 겪어야 했던 어두운 현실을 생각하면서 읽으면 더 좋을 것이다.

 

어린 시절,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주변 사람들 때문에 폭력적인 모습도, 또 남들이 전혀 하지 않고 생각하지도 못한 방식으로 행동했기 때문에 학교에서 퇴학 당하기도 했던 템플이 대학원에 진학하고 동물들이 안락함을 느끼는 공간을 디자인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서술한 책.

 

여기서 한 가지 명심할 것은 템플의 어머니가 보여준 행동이다. 자식에 대한 믿음. 자식을 포기하지 않고 교육시킨 것. 이해해 주려고 노력한 것. 자식을 위해 해야 할 일을 끝까지 한 것. 이것이 템플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어머니의 사랑만이 템플에게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다. 템플은 살아가면서 자신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들을 통해서 자신의 앞에 있던 문들을 하나하나 열어젖히게 된다.

 

문... 템플은 문에 대해서 고착적 증세를 보인다. 그렇다. 문이다. 자폐인들은 자신의 앞에 문이 있음에도 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템플은 문을 열고 나아가려 했다. 그 문이 성장기에 따라서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이 과정을 통해서 자폐인들에게 문을 열고 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템플은 책 뒤에 부록으로 실려 있는 대담에서 이렇게 말한다.

 

부모는 자폐증 아이가 바깥세상과 연결돼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즉 바깥세상에 관심을 끊은 채 자기안의 세계에 빠지게 내버려줘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223쪽)

 

그가 문에 집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은 외부세계로부터 나를 차단시키는 장치이기도 하지만 나를 외부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장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문을 의식하고 그 문 밖으로 나아가려는 행동, 그것이 자폐인에게 필요한 것이고, 이러한 행동을 하도록 충분한 동기부여를 해야 하는 것이다.

 

누구나 성공할 수는 없지만 누구도 해보지 않으면 결과는 알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통합교육을 강조하고 있는데, 말로만 통합교육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학교라는 공간. 보통 학생들도 견디기 힘든데, 자폐나 또는 다른 증세가 있는 학생들에게는 지옥과 다름없을 수가 있다. 또 입시에 찌들리고 있는 교육현실과 아직도 30명에 육박하는 학생들로 인해 개별 학생들 한명 한명을 신경쓸 수 없는 교사들까지 생각하면 학교에 있는 모든 학생들에게 가장 힘든 공간은 학교일 것이다.

 

이러한 학교 환경을 개선하지 않으면 통합교육은 고사하고 다른 교육조차 힘들 것이다. 그 점을 생각하게 하는 템플 그랜딘의 자서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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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 세대유감 - 386세대에게 헬조선의 미필적고의를 묻다
김정훈.심나리.김항기 지음, 우석훈 해제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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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맨 앞에 니체의 말이 실려 있다. 아마도 이 책에서 비판하고자 하는 386세대를 겨냥한 말이리라.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과정에서 자신마저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그대가 오랫동안 심연을 들여다볼 때 심연 역시 그대를 들여다본다. - 프리드리히 니체

 

이 유명한 말을 내가 갖고 있는 책 [선악을 넘어서](청하. 1994년 8쇄)에서 찾아보았더니, 100쪽에 이 번역과 다르지 않게 번역되어 있다. (제4장 잠언과 간주곡 146)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싸우는 과정에서 자신마저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그대가 오랜 동안 심연을 들여다 볼 때 심연 역시 그대를 들여다 본다.  

 

너무도 자명한 이 말을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네 칼로 너를 치리라'는 말이 결국 그 칼을 휘두르는 사람만이 바뀌었을 뿐 행위는 같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민주화 운동을 했던 386이 독재정권이 한 일과 같은 방식으로 운동을 했다는 것, 어쩌면 그 과정이 지금의 결과를 이끌어 냈을지 모른다. 그들에게는 대의는 있었지만 대의를 위해 희생한다는 명목으로 너무도 많은 것들을 무시하지 않았던가.

 

어느날 눈 앞의 거대한 적이 없어졌을 때 그리고 자신들이 그 적의 자리를 차지했을 때 그들이 한 행위는 무엇이었을까? 그들이 말하는 대의를 실현시키려 했을까? 그랬다면 지금 헬조선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고, N포세대라는 말 역시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민주주의를 외쳤지만, 실상은 독재 타도였고, 즉 독재 타도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전망을 지니고 있지 않았던, 그러나 운은 지독하게도 좋아 취업 걱정 없었고, 또 민주화를 이뤘다는 성취감이 있었고, 사회에서 인정도 받았던 세대.

 

과거를 먹고 사는 세대가 되면 이미 그 세대는 물러나야 할 세대인데, 지금의 386은 자신들이 이룩한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생각하기는 할까 하는 질문을 이 책을 통해서 한다.

 

유신세대도 아닌 386 밑세대에서 386세대를 비판하는 것은 - 물론 386이라고 모든 사람들을 세대에 묶어 싸잡아 비난하는 것이 좀 문제이긴 하지만, 대세를 이루고 그들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집단으로 기능하기에 개개인은 특성은, 자질은 여기서 언급하지 않도록 한다 - 좀더 나은 사회를 위해서는 반드시 딛고 넘어서야 하는 존재가 386세대이기 때문이다.

 

1987년부터 2019년까지 이들은 초장기집권을 하고 있다고 한다.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집단으로 군림한 지가 벌써 30년이 넘는다는 것.

 

이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주도적인 위치에 선 것이 꽤 오래되었음에도 어째서 세상은 좋아지지 않고 더 나빠졌을까? 다음 세대들이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 되었을까?

 

정치권에서 주력이 되고, 경제권에서도, 언론에서도, 교육계에서도, 하다못해 부동산에서도 주도권을 쥔 세대가 386세대라면 이들이 지금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된 데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책임을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 행동할 수 있다. 우리 잘못이 아니야, 우리 책임이 아니야 하고 팔짱만 끼고 있는 세대가 386세대이면 안 된다. 싫든 좋든 그들은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주된 세력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있다.

 

50대 주축을 이루는 386세대들이 뒷짐만 지고 있어서는 다음 세대들이 헬조선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살아온 시대의 관점을 벗어던져야 한다. 새로운 세대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그런 눈이 없다면 적어도 새로운 세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그리고 그들을 지원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제 그들은 충분히 앞서 왔다. 지킬 것만이 남은 세대로 남아서는 안 된다. 지킬 것은 지키되 - 민주주의 신념, 공동체 의식 등 - 버릴 것 - 괴물과 싸우는 동안 괴물이 되어버린, 기득권을 지키려는 모습, 협잡에 능한 정치, 사교육 몰입, 부동산 투자(?투기) 등등 - 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

 

무엇보다 책임을 느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지금 이렇게 된 것에 대해. 유신 세대를 비롯한 윗세대에 책임을 전가하지 말고, 또 다음 세대에게 노력 안 한다고 비난하지 말고, 자신들이 지금 사회의 주역이고 중심이기에 이 사회의 잘못은 바로 자신들의 잘못임을 인정해야 한다.

 

이 인정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된다. 그러니 이 책은 소위 386세대 중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꼭 읽어야 한다. 이미 괴물이 되어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비춰줄 거울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괴물인지도 모르면서 괴물을 비난하는 386세대의 주류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그들이 이 책을 읽어야만 사회의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이미 반성하고 괴물이 아니도록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만이 이 책을 읽고 그래 우리 잘못이야, 우리가 고쳐야지 한다면, 386세대라는 거대한 권력층이 움켜쥐고 있는 이 사회의 모습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학습에 능한 것이 386세대라는 것에 기대를 걸고, 이들이 이 책을 읽고 무언가를 생각하길 바라며... 

 

니체의 [선악을 넘어서]에 있는 또다른 경구를 인용한다. 386세대들이 다음 세대들에게 경멸을 받지 않도록...

 

173 인간은 경멸을 하는 한 증오하지는 않는다. 증오는 오직 자신과 대등하거나 우월하다고 인정되는 상대에 한한다. (니체, 선악을 넘어서. 청하. 1994년 8쇄. 1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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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3 11: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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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3 14: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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