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정말 김지하 오적에 나오는 국회의원들 같다. 이들이 누구를 대변하는지 알 수가 없다. 정당이 정치를 위해 모인 사람들의 조직인지, 자신들의 출세를 위해서 모인 사람들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조직인지 헷갈린다.

 

국민을 위한다는 말은 뻔뻔하게 잘 하면서도, 정작 국민에게 필요한 법안은 마련하지 않고, 국민들을 위한 정치는 하지 않는다.

 

아니, 국회에서 정치는 실종되었다. 실종된 정치를 찾기 위해서 정치개혁을 해야 한다고, 선거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데... 이 목소리가 정작 당사자인 국회의원들에게는 전달이 안 되나 보다.

 

듣고 싶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귀를 막고, 오로지 자신들에게 필요한 말만 듣는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책만 입안하려 한다. 그러니 지금 국회, 이대로는 안 된다. 어떻게든 바꾸어야 한다. 바꾸어야 하는데, 그 방법이 뭘까?

 

선거법을 바꾸는데도 국회에서 논의가 되고 있다. 국민은 주체가 되지 못하고 그냥 지켜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이 지속되면 정치개혁은 없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아니면 추첨 민주주의.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현행 제도인 승자독식 제도는 바꾸어야 한다.

 

국민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들이 국회에 들어가 정당 정치를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것이 정치 개혁, 선거법 개혁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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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에게 권력을- 시민의 정치를 위한 안내서
하승우 지음 / 한티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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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합의제 민주주의를 말하다- 시장의 우위에 서는 정치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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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첨 민주주의- 선거를 넘어 추첨으로 일구는 직접 정치
어니스트 칼렌바크 & 마이클 필립스 지음, 손우정.이지문 옮김 / 이매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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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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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시대, 인간의 일 -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야 할 이들을 위한 안내서
구본권 지음 / 어크로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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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와 기술이 인간의 삶을 대체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넘어선 지가 오래다. 몇 년 전에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긴 이후로 사람들은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인공지능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이 책은 2015년에 나와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은 나와 있지 않다. 초판 23쇄인데, 개정판이라면 아마도 이 사실이 들어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럼에도 인공지능을 만들어내는 것은 인간이다. 인간의 능력으로 인공지능, 로봇을 만들어내고, 그것들에 의해 인간의 삶이 위협을 받는다고 걱정을 한다.

 

그동안 인간이 하던 일을 로봇이 하고 있는 현실. 그래서 많은 직업이 사라질 것이라는 두려움에 떨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기술 발전으로 인간이 모든 일을 잃지는 않았다는 것을 예로 들어, 로봇, 인공지능 시대에도 인간의 일은 여전히 지속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 책은 로봇 시대를 맞이하여 인간의 일이 어떻게 될 것인지, 인간의 삶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살펴보고 있다. 특히 외국어 분야에서, 자동번역기로 외국어 공부의 필요성이 없어질 것인가라는 항목에서 우리는 로봇 시대에 인간의 일을 생각해 보게 된다.

 

로봇으로 인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다. 알고리즘을 통해 의사소통이 가능한 번역까지는 가능해졌다. 그렇다면 별로 사용하지 않는 어휘를 외우느라 시간을 소비하는 것보다는, 그런 어휘에 대한 것은 컴퓨터에 맡기고, 외국의 문화를 익히는데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로봇 시대를 잘 활용하는 길이다.

 

마찬가지로 여가 시간도 그렇다. 인간의 일을 로봇이 많이 하기 때문에 여가 시간이 넘쳐날 것으로 기대했으나, 오히려 더 바빠진 것이 현대인이라면, 그 원인이 무엇일까?

 

로봇이나 다른 스마트 기기들의 도움으로 단순 노동은 하지 않게 되었으나, 그에 따르는 다른 일들을 더 하게 된 것 아닌가. 그것이 바로 '그림자 노동의 역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역설을 없애기 위해서는 여가 시간을 활요하는 삶이 필요하다는 것, 또한 기계가 할 수 없는 것, 바로 망각이다.

 

인간은 망각으로 인해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 로봇 시대 또는 인터넷 시대에는 망각의 자유조차도 잃어가고 있다. 모든 것이 기록으로 남아 있는 시대, 이때 '잊혀질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인간의 삶에서 망각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시대를 살아가야 할까? 무턱대고 로봇이나 컴퓨터, 인터넷을 거부할 수는 없다. 거부하기에는 이미 너무 앞서 나가 있기 때문이다. 하여 지금은 공존이 필요한 시기다. 공존. 기계와 인간의 공존.

 

인간이 지닌 유연성과 창조성으로 그것은 가능할 것이다. 모든 것을 기계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몫을 남겨 놓는 것.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 바로 실수와 질문.

 

기계는 한 번 인간에게 이기면 절대로 다시 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기계에 의해 패배한 인간의 영역에서 다시 기계와 대결하려는 노력은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인간을 이기는 기계를 만든 것도 바로 인간이 한 실수라면, 그 실수를 통해서 인간은 이제 인간보다 우월한 기계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을 한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영역이다.

 

기계는 설계하는 대로 작동하고 우리는 사람의 결점과 단점을 벗어나기 위한 의도로 기계를 설계한다. 부정확한 인식과 판단, 감정에 의한 변덕스럽고 비합리적인 행동, 망각과 고통 같은 사람의 속성을 기계에 부여하지 않는다. 인간은 우리가 기계에 부여하지 않을, 이러한 부족함과 결핍의 존재다. 하지만 거기에 로봇 시대 우리가 가야 할 사람의 길이 있다. (327쪽)

 

이 책에서 인간에게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힘이 있다고 하니, 그런 것들을 살려나가는 일이 무엇일지, 그런 삶이 무엇일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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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다가 코 끝이 찡해지는 작품을 몇 만났다. 아니, 몇이 아니라 많은 시들이 코 끝을 찡하게 한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에 관한 시를 읽으면 그럴 수밖에 없다. 공부기계라는 말을 쓰기도 무색하게 점수기계, 입시기계가 되어버린 우리나라 청소년들.

 

  그들에게 개성이란 말은 사전에나 있는 말이다. 어떻게 개성을 찾을 수가 있을까? 시간이나 있나? 시간이 있더라도 누가 허용해 주는가?

 

  개성적이라는 말은 튄다는 말과 같고, 튄다는 말은 공부 안 한다는 말과 통하고, 교칙을 어긴다는 말과도 통하니, 개성은 우리나라 청소년들에게 '다름'이 아니라 '틀림'이다.

 

그래서 이 시집에 있는 '틀린 그림 찾기'란 시를 보면 마음이 짠하다. 시인은 분명 '다른'이 아니라 '틀린'이라는 말을 썼다. 학교에서 다름은 틀림과 다르다고 가르치지만, 실제로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에게, 또 사회에서 청소년들에게 쓰는 말은 다름은 곧 틀림이다. 정답에서 벗어남이다. 그러니 이런 현실을 알고 있는 시인이 '다른 그림 찾기'란 말 대신 '틀린 그림 찾기'란 말을 썼을 것이다.

 

  틀린 그림 찾기

 

아침마다 교실에선 틀린 그림 찾기가 벌어진다.

교복에 넥타이를 매고

운동화 대신 실내화를 신고

머리를 물들이지 않고

얼굴에는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채

다 같은 그림을 하고 있어야 하는데

담임 선생님은 귀신같이

틀린 그림을 하고 있는 친구를 찾아낸다.

한눈에 척 틀린 그림을 찾아내는

고수의 눈길을 피할 도리가 없다.

그래도 다음 날 틀린 그림을 하고 있는 친구들은

담임 선생님을 도와주고 있는 게 분명하다.

틀림 그림 찾기가 취미인

담임 선생님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보란 듯 립 틴트를 바르거나

실내화를 집에 감춰 두고 온다.

틀린 그림이 아니라 다른 그림일 뿐이라고

괜히 잘난 척했다가 벌점 먹은

세나가 오늘은 얌전한 그림을 하고 있더니

담임 선생님이 나가자 잽싸게

사물함에서 짧은 치마를 꺼내 온다.

 

박일환, 만렙을 찍을 때까지. 창비교육. 2019년. 72-73쪽.

 

무엇을 더 말하겠는가. 지행불일치 교육. 너무도 철저하다. 교과서 내용과 전혀 다르게 학생들을 옥죄고 있는 현실. 다름은 없는 것이 바로 학교다. 오로지 정답과 오답만 있다. 다름은 오답이다. 틀림이다. 그러니 학교에서는 수많은 '틀린 그림 찾기'가 벌어진다.

 

이 상태로 나아가면 정답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굳어진다. 그렇게 나이를 먹고, 다름이 없는, 다름은 틀림이 되는 사회를 살아가게 된다. 그것이 무섭다. 그리고 서럽다. 이보다 더한 다름은 없다고 선언하는 모습이 담긴 시가 있다.

 

선생님께 드리는 서술형 문제

 

  똑같은 교복을 입고

  똑같은 시간에 와서

  똑같은 교과서로 공부하고

  똑같은 문제로 시험을 보는데

  네 성적은 왜 이 모양이냐?

 

  위 선생님의 말을 토대로 하여 모든 학생들이 똑같은 점수를 받는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져서 누가 가장 곤란을 겪게 될지 50자 이내로 서술하시오.

 

박일환, 만렙을 찍을 때까지. 창비교육. 2019년. 12쪽,

 

마냥 웃으며 읽을 수만은 없는 시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 그런 모습이 일으키는 재앙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이 시에서 말하고 있지 않은가.

 

어찌 학생만이겠는가? 학교를 뛰쳐나온 청소년들도 이런 똑같음의 강요 속에서 살아가지 않는가. 그러니 다르다고 자시가 사는 세상에서 몰아내야 한다는 주장이 버젓이 나오고 있지 않은가. 그런 세상에서 이 청소년시집은 다름이 사회를 더 풍요롭게 한다고. 다름은 오답이 아니라고, 제발 다름을 틀림으로 만들지 말라고 외치고 있다.

 

3부에 실린 시들. '다름'이 인정되는,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 사회들에 대한 시다. 읽으면 마음이 참 따뜻해진다.

 

다 좋다. 미처 알지 못했던 존재들도 만날 수 있고, 읽으면서 그렇구나 하는 마음, 마음 속에서 어떤 감동이 차오르는 경험을 할 수도 있는 시들이다. 청소년들이 읽으면 시를 통해서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참고로 3부에 나온 시들을 열거해 본다. 한번 찾아 읽어 보시라. 이렇게 다르게 살아가는 존재들에 의해 세상은 조금 더 밝아지고 따스해지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살구색의 탄생, 헛된 꿈은 없다, 어떤 열네 살, 마누엘라의 친구, 아름다운 시를 쓰는 나라, 첫눈을 사랑하는 나라, 처칠 클럽, 위대한 바보, 현대판 우공, 포탄 칼,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는 나라, 권정생 할아버지, 안아주고 싶다는 말 

 

이런 존재들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시인 역시 마찬가지 역할을 한다. 이런 시인들이 있기에 다름이 다름으로 존재할 수 있다. 정답과 오답만 있는 세상이 아니라, 다름이 다양하게 공존하는 사회. 그런 사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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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가가 많이 살았던 고장, 통영.

 

  어쩌면 통영이라는 이름은 통제영이었으니, 예술보다는 군사 쪽으로 더 가까워야 할 것 같은데, 그 아름다운 바다에, 아름다운 사람들도 많이 나왔는지.

 

  군사 요충지가 아니라 자연을 닮은 사람들을 많이 배출한 곳, 통영. 그런 통영을 노래한 시집이 바로 강희근의 "새벽 통영"이다.

 

  통영 사람들, 통영의 아름다움을 시로 표현했는데... 이 시집에는 꼭 통영이 아니어도 아름다운 우리나라가 잘 표현되어 있다.

 

  그 중에 통영 사람에 관한 시. 시에 나오는 한 사람(? 사람이라고 추측을 하는데, 도무지 누군지 알 수가 없다. 아, 지식의 짧음이여) 빼고는 너무도 유명한 사람들이다.

 

  통영에 오면


통영에 오면
유난히 유년이 많이 돌아다닌다
남망산 밑 햇볕 곁으로 초정의 유년이
이름표 달고 지나간다

부둣가로 지나가면 싼판으로 드는 청마의
유년, 코흘리개 까까머리가 독 한 점 없이 말갛다

대교쯤 오면
민머리 자주 쓰다듬으며 비너스호 지나가는 것
바라보는
춘수의 유년이 눈썹에 걸린다

그는 어릴 때부터
머리 빡빡 민 샤갈의 유년 같은 것에,
샤갈의 머리에 묻어내리는 눈발 같은 것에
발등이 잡혀

환상으로 걸어다녔다

바람부는 오늘은 환상이 꽃잎처럼 쓸려다닌다
대교를 지나고
유년도 더 이상 돌아볼 유년이 없다
여겨질 때
경리의 유년이 폴짝 폴짝 여치처럼 나타난다

경리뿐인가
동랑의 유년이 소 한 마리 몰고 느긋 느긋 따르고
두동의 유년이 소 한 마리 뒤에 다소곳이 따른다

통영에 오면
유난히 유년이 많이 돌아다닌다
유년이 아니라면 통제영 안골목이나 좁은 길
우체통 앞이 영 늙어 보일 것이다

중앙통으로 흐르는 간선도로
신호등까지 깜박거리고 막히면 오장이
육부가 다 쇠한,
지팡이 짚는 늙은이로 보일 것이다

 영판 늙은이로 보일 것이다

 

강희근, 새벽 통영, 경남. 2010년. 20-21쪽.

 

순서대로 하면 초정은 김상옥, 시조 시인으로 유명한 그 사람. 학창시절에 김상옥이 쓴 시조 "사향(思鄕)"을 배웠는데, 그가 통영 출신임을 이 시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하긴 학창시절에 작가들의 고향에 대해서 배우지도 않고, 생각하지도 않으니까.

 

자연과 사람이 동화될 수 있음을, 그 당시에는 '물아일체(物我一體)'라는 어려운 말로만 기억할 수밖에 없었으니.

 

다음은 청마다. 유치환. 깃발이라는 시. 학생 때 꼭 배운 시다. 물론 그의 시 중에서 바위, 행복, 그리움, 생명의 서 등등 생명파라고 해 많이도 배웠지. 그 역시 통영 출신이라고 하니..

 

다음 시인은 김춘수다. "꽃"이라는 시로 너무도 잘 알려진, 그가 쓴 시 중에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이라는 시도 있는데, 이 시에서는 그것을 짚어주고 있다.

 

이 시집에 실려 있는 '청마와 춘수'라는 시를 보면 청마의 결혼식에 김춘수가 화동(花童) 노릇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아, 청마가 결혼식을 올릴 때 / 올리며 인생을 시작할 때 / 유치원생 춘수가 화동이 되어 꽃을 바친 것 / 통영에 가면 / 아는 사람은 다 안다 - 강희근, '청마와 춘수' 5연)

 

춘수에 이어 나오는 작가는 박경리다. [토지]의 작가. [김약국의 딸들]을 비롯하여 좋은 작품을 많이 낸 작가. 후배들이 마음 편히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던 작가.

 

이 박경리에 이어 동랑이 나오는데, 동랑은 청마의 형이다. 유치진. 우리나라 근대 연극을 주동한 사람. 그러니 그가 나오지 않으면 섭하겠지. 동랑에 이어 두동이라고 나오는데, 누군지 모르겠다.

 

이들과 더불어 통영하면 기억할 사람이 음악 쪽에서는 윤이상, 그리고 미술 쪽에서는 전혁림('통영대교'란 시에 전화백이라고 등장한다)이다. 또 통영 출신은 아니지만 통영에서 지냈던 사람, 이중섭도 있고. (시 - 이중섭, 또는 26-27쪽)

 

이렇게 시집을 통해서 통영을 다시 생각하고, 통영과 관련된 예술인들을 기억 속에서 불러내게 된다. 그 자체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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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태엽 오렌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2
앤소니 버제스 지음, 박시영 옮김 / 민음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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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통'이란 말이 있다. 국립국어원에 있는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면, 성장통이란 낱말 풀이가 이렇게 되어 있다.

 

1) 어린이나 청소년이 갑자기 성장하면서 생기는 통증. 주로 양쪽 무릎이나 발목, 허벅지나 정강이, 팔 따위에 생긴다. 4~10세 사이에 많이 나타나고, 1~2년이 지나면 대부분 통증이 사라진다.

2) 사물의 규모나 세력 따위가 커지면서 생기는 고통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사람, 특히 청소년들에게 쓰는 말인데, 첫번째 풀이는 육체적인 변화에 따르는 고통을 말하는 듯하고, 두번째 풀이는 사람에게라기보다는 집단이나 사물에 해당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우리가 흔히 쓰는 '성장통'에 해당하는 뜻풀이가 없다는 말이다.

 

청소년들이 겪는 성장통은 육체적인 것보다는 정신적인 것을 말한다고 보는 것이 좋다. 그것은 청소년기에 겪는 성장통이었다 하면 방황을 통해서 정신적으로 성숙해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런 '성장통'은 필요하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으며 과연 어떤 성장통이 필요한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청소년기의 방황이 모두 성장통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청소년기의 일탈은 모두 성장통인가?

 

'시계태엽 오렌지'라는 제목의 뜻도 명확하지 않다. 어쩌면 청소년기에 일어나는 방황, 일탈 등이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음을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제목 자체에서도 그냥 그대로 받아들여라, 여기에 어떤 이유를 붙이지 말아라는 의도가 보인다고나 할까.

 

알렉스라는 청소년이 소설의 화자이자 주인공이다. 그가 겪은 일을 독자들에게 알려주는 식으로 소설이 서술되고 있다.

 

총3부인데 1부는 알렉스 패거리가 벌이는 패악이 서술되고 있다. 그야말로 일탈이나 방황이 아닌 범죄다. 이것이 성장통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성장통과 범죄는 구분해야 한다. 성장통은 법 테두리 내에 있는 것이고, 범죄는 법 테두를 벗어난 것이다. 그럼에도 이 소설에서 알렉스의 방황, 일탈을 성장통으로 보자. 일종의 성장소설이라고 볼 수 있으니까.

 

마약에 준하는 약물에 취하는 청소년들, 거리낌없이 폭행하고, 강간하고, 약탈하는 모습이 1부에 나타난다. 도덕심이라고는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그런 모습들. 결국 살인까지 저지르는 알렉스. 패거리들에게도 배신당하고 감옥에 가야만 하는 지경에 이른다.

 

2부는 감옥에서의 생활이다. 국교(국립교도소를 줄여서 화자인 알렉스는 이렇게 말한다)에서 또다시 폭력을 행사하고, 새로 생긴 치료법의 대상자가 된다. 14년형을 받았지만, 이 치료를 받으면 2주만에 나갈 수 있다는. 루도비코 치료법을 받게 되는 알렉스. 이는 약물치료라고 할 수 있다.

 

폭력적인 장면이나 생각을 하면 몸에 고통을 유발하는 그런 치료법. 결국 고통을 겪지 않기 위해서 착한 행동이나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는. 이 치료를 하는 영화에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이 삽입되고, 알렉스는 이 음악을 들어도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우수한 치료 수료자로 두 주가 지나 사회로 나온 알렉스. 여기에 알렉스의 의지는 없었다. 그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진 것이다. 선을 행하든, 악을 행하든 어떤 선택도 할 수 없고, 그저 약물로 인한 변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 알렉스.

 

비행청소년이었던 알렉스는 과연 선택을 했던 걸까? 그에게 선택의 여지가 그때도 없었던 것은 아닐까? 마찬가지로 교도소에서 알렉스 역시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

 

선택의 권리가 없는 인간, 자유의지를 상실한 인간이다. 자, 이런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바람직한가? 이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도 흉악범들에게 약물치료를 하고(또는 하려고) 있지 않은가.

 

3부가 되면 사회에 나온 알렉스. 치료 효과가 신문을 통해 홍보가 되고, 알렉스는 과거 자신이 행패 부렸던 사람들에게 당한다. 당하면서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이런 약물치료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러나 그들 역시 알렉스를 이용하려고 하지, 그에게 어떤 선택권을 주지 않는다.

 

교도소에 갖다온 알렉스는 선택의 권리가 없는, 자유의지를 상실한 인간이 되어 버렸다. 인간? 그는 태엽을 감아줘야 움직이는 기계에 불과한 존재가 된 것이다. 그러니 태엽이라는 말 다음에 오렌지든, 사람이든, 원숭이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어차피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존재에 불과한 것이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온 알렉스. 자, 세월이 조금 흘렀고, 많은 경험을 했다. 그리고 다시 예전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하는데, 불현듯 미래 자신의 모습이 떠오른다.

 

미래를 생각한다는 것, 이제 청소년기의 성장통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성장통에 시달리는 청소년은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현재만을 알고, 감정에 따라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소설은 알렉스가 자기 아이를 두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으로, 그런 삶을 살아가야겠다는 결심으로 끝난다.

 

지독한 성장통이구나! 우리나라 청소년들 가운데도 알렉스의 어린 시절과 같은 무시무시한 짓을 저지르기도 하는데, 이들도 이렇게 몇 년이 지나면 미래를 생각하면서 자신의 길을 바꾸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가 미래를 설계하고 나아가는데, 알렉스 자신이 짓밟았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알렉스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면 이렇게 갖은 비행을 저지르더라도 결국에는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다는 쪽으로 읽기 쉽다.

 

너무 위험한 읽기다. 그들의 비행을 언젠가는 괜찮아질 거야 하면서 보아 넘겨만 줄 수는 없는 것이다. 청소년기는 '시계태엽 오렌지'와 같다면, 어떻게 태엽을 작동할지가 중요하다. 즉, 자기 의지로 행동을 조절하지 못한다면 외부의 힘으로 행동을 조절하게 해야 한다. 어쩔 수 없는 과정이라면 그때 제어할 수 있는 외부 환경이 중요한 것이다.

 

이런 쪽으로 초점을 맞추어 읽다보면 그렇다면 청소년들에게는 자유의지가 없는가라는 의문이 떠오른다. 아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자유의지가 있다. 이 자유의지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해 주되, 다른 사람들의 자유의지를 침해하지 않는 범주에 대해 인식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범죄는 자유가 아니다. 그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그러나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들을 언제까지나 범죄인 취급해서도 안 된다. 그들에게 반성과 변화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비록, 그것이 희생자를 둔 사람에게는 너무도 힘든 일이지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알렉스가 1부에서 저지른 범죄의 희생자가 된 소설가에게서 볼 수 있다. 아내를 잃은 그가 얼마나 알렉스를 증오하고 있는지를. 아마도 이 소설이 성장소설이 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돌고 돌아 알렉스가 괴롭혔던 사람들에게 거꾸로 괴롭힘 당하는 장면이야 인과응보라 할 수 있어도 이 작가가 알렉스에게 한 행동, 그리고 그가 영원토록 겪어야 하는 고통을 생각하면, 청소년기에 했던 짓이 해서는 안 되는, 자유라는 말로 정당화될 수 없는 행동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소설의 말미에 알렉스의 말을 빌려 청소년기에 대해 말하고 있다.

 

'청춘은 가버려야만 해. 암 그렇지. 그러나 청춘이란 어떤 의미로는 짐승 같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아니, 그건 딱히 짐승이라기보다는 길거리에서 파는 쬐끄만 인형과도 같은 거야. 양철과 스프링 장치로 만들어지고 바깥에 태엽 감는 손잡이가 있어 태엽을 끼리릭 끼리릭 감았다 놓으면 걸어가는 그런 인형. 일직선으로 걸어가다가 주변의 것들에 꽝꽝 부딪히지만, 그건 어쩔 수가 없는 일이지. 청춘이라는 건 그런 쬐끄만 기계 중의 하나와 같은 거야.' (222쪽)  

 

자, 이게 청춘이라면 우리는 일직선 상을 정리해서 청춘이 부딪히지 않도록, 아니면 부딪히더라도 제자리로 올 수 있도록 정리를 할 수가 있다.

 

성장통을 피할 수 없다면, 그 성장통으로 인해 다른 사람의 자유가 없어지는, 생명이 없어지는 그런 일을 만들지 않도록 환경을 정비해야 한다. 성장하고 있는 개인에게 약물치료가 아니라, 그가 충분히 성장통을 겪을 수 있는 그런 환경을.

 

소설은 그래서 알렉스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어도 좋지만, 이런 청춘들의 성장통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좋다.

 

알렉스와 같은 청소년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면 기성세대들이 청소년들의 성장통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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