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화 선생이 별세했다는 소식을 어제 들었다.


  아직 더 살아계셔도 될 나이인데... 누군가가 '나이 70이 넘으면 자연사라고 할 수 있다'고.


  그러나 요즘 나이 70은 자연사할 나이가 아니다. 기대수명이 80을 훌쩍 넘은 이 시대에 70대에 세상을 뜨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로 다가오지 않는다.


  홍세화 선생도 그렇다. 1947년 생이라고 하니, 아직 더 이 세상에 있어도 좋을 나이다. 그런데도 무엇이 급하다고 세상을 떴는지.


'세화'라는 이름이 세계 평화의 줄임말이라고 하던데, 그러한 세계 평화가 오지 않고,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 선생을 더욱 힘들게 했는지...


그동안 해온 마음고생들이 수명을 단축시키지는 않았는지, 저 세상에 가서는 마음 편히 지내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적어본다.


그의 책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읽었을 때 많은 충격을 받았다. 홍세화 선생이 살아온 이력도 그렇지만 우리가 놓치고 있던 부분을 프랑스를 통해서 생각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번째로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도 좋게 읽었다.


좌파와 우파라는 말이 프랑스혁명에서 나왔다고 하던데, 이런 좌파와 우파를 우리는 남북으로 갈라져 서로 갈등하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은 좌파와 우파를 꼭 남북으로 가르지 않아도 되지만, 여전히 종북좌파라는 말이 살아 있으니, 좌우가 남북을 가르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그의 책에서 기억나는 말은 바로 '똘레랑스(관용)'이다. 이 똘레랑스를 지니는 것은 무조건 용서하라는 말이 아니다. 상대를 나와 같은 존재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런 자세를 지녀야 너와 나가 적이 아니라 함께 할 수 있음을 생각하게 했던 말.


좌우나 남북이나 서로가 서로를 밀어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접점을 찾아 공통분모를 점점 넓혀가는 것. 그것이 바로 '관용' 아닐까 하는데...


이러한 관용을 이야기한 지가 20년이 넘었는데, 여전히 우리는 상대는 함께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밀어내야 할 존재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선생의 부음을 듣고 다시 '똘레랑스'를 생각한다. '똘레랑스'라는 말은 있는데, 이 말이 있음도 알고 있는데, 그런데도 상대를 배척하기만 하고 있는 현실이 사라지지 않고 있으니... 이 말이 우리 사회에 정착할 날이 언제일까 하는 생각도 한다.


그간 선생이 우리 사회에 던져준 많은 화두를 이어받아 그것을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이 선생이 원하는 후배들의 모습이겠지 하면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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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
장강명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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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SF소설이라고 하지 않는다. 자신이 쓴 소설을 STS(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 SF라고 하고 싶다고 한다. 자신의 소설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 이는 독자들에게 이런 식으로 읽어달라는 주문과도 같다.


즉, 자신이 쓴 소설을 과학과 기술이 사회와 맺는 관계 또는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읽고, 그 소설을 통해 당신이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서, 당신이 살고 싶은 세상에 대해서 생각하라는 얘기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만큼 지금 과학기술이 곧 이룰 미래의 모습이 소설에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소설에서는 외계 생명체가 등장할 필요가 없다. 물론 이 소설집에서도 원소기호의 이름을 딴 외계에 사는 생명체 이야기가 나오기는 한다. 그것도 불멸(부활)과 독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만, 이는 독재정권에 대한 우화로 읽힐 수가 있다. 


이 소설집에서 가장 긴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소설 '아스타틴'(229쪽-360쪽)이다. 란타넘족 원소기호에서 이름을 따오고, 이들이 절대권력을 잡기 위해서 싸우는 장면을 무협이나 폭력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소설을 연상시키면서 전개하지만, 독재자가 영구 집권을 할 수 없음을, 다른 세계를 추구하는 존재가 나타남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한 편의 활극을 통해 독재정권의 말로를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소설을 예외로 하면 나머지 소설들은 모두 배경이 지구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다.


제목이 된 소설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은 증강현실을 다룬다. 증강현실로 자신이 보고자 하는 면만 볼 수 있는 세상이 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소통할까? 내가 심한 욕을 해도 상대는 자신이 듣고 싶어하는 말로 번역해서 듣게 된다.


마찬가지로 비루한 현실을 보지 않고, 증강현실로 왜곡된 현실을 보게 된다.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들이 실제와 일치할 필요가 없는 세상. 


모든 사람이 이러한 증강현실로 세상을 보게 되면 과연 그 세상은 어떻게 될까? 소통이 가능할까? 소통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불편한 진실을 보거나 듣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즉 자신에게 유리한 것들만 보고 들을 수 있는 세상에서 굳이 진실을 대면하려 하지 않는다.


이 소설을 다른 쪽으로 넘겨보면 '데이터 시대의 사랑'이 된다. 옛날에는 점쟁이를 찾아가 만남의 의미를 들으려 했다면 이제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통계 또는 알고리즘으로 무장한 통계로 만남을 예측하는 세상이 된다면.


이런 세상에서는 자신이 데이터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는 데이터에 종속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데이터로 분석한 내 행동이 이러했기에, 이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 데이터의 예측대로 행동하려는 경향이 강해지지 때문이다. 이는 증강현실로 현실을 왜곡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삶에는 불확실성이 존재하고, 이 불확실성으로 인해서 인간의 자유의지가 작동한다고 볼 수 있는데, 데이터에 기반한다면 자유의지를 부정하게 된다. 이미 그렇게 하도록 되어 있다는, 예정설로 회귀하게 된다. 이것이 증강현실 속 인간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그럼에도 장강명은 '데아터 시대의 사랑'에서 결말을 데이터 시대에서 인간의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시대로 끌어온다. 이게 인간이라는 듯이.


이 불확실성을 다른 면으로 살펴보면 '알래스카의 아이히만'이 된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차용한 이 소설은 인간의 뇌에 다른 사람이 겪은 경험을 이식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된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악의 평범성'이란 말을 탄생시킨 아이히만에게 유대인이 수용소에서 겪었던 일을 경험하게 하는 기술이 있다면, 과연 그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상대의 경험을 자신의 뇌에 이식한다고 해서 그 경험이 온전히 자신의 경험이 될 수 있을까? 인간이 인간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이렇게 이식될 수 있을까?


그런 감정의 전이가 된다면 사람들이 서로 맺는 관계에서 불확실성이 없어질 것이다. 그런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일까? 저 사람이 무엇을 느끼는지 내가 똑같이 알 수 있다면? 또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 상대가 정확하게 느낄 수 있다면? 


그럼 인간 관계가 좋아질까? 오히려 더 좋아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관계에서는 틈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과 상대가 함께 채워야 할 틈. 거리라고 해도 좋다. 이런 틈과 거리가 바로 불확실성에서 비롯하고, 불확실성은 함께 노력하면서 틈과 거리를 채우는 역할을 하기에 인간 관계를 더욱 풍요롭게 한다.


우리는 불확실성 때문에 불안해 하지만, 바로 그 불확실성 때문에 오히려 더 생동감 있는 관계를 맺게 된다. 이를 글쓰기에 적용해 보자. 작가들은, 굳이 작가가 아니라도 사람들은 글을 쓰다가 막히는 때가 있다. (사이보그의 글쓰기)


글이 도통 써지지 않을 때, 글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다. 이 역시 자신이 하는 일이 불확실성에 빠지는 경우다. 그런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뇌를 자극하는 기계가 발명된다고 하자. 그 기계를 사용하면 이런 단절을 겪지 않아도 된다.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기계에 의해서 글을 자동적으로 쓰게 된다면? 


이런 글에서 생동감을 느낄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자. 인간에게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무엇인가 하면 논쟁이 있겠지만 '뇌'가 빠지지는 않는다. 뇌의 죽음은 인간의 죽음이니까.


따라서 뇌를 중요하게 여겨서 뇌만 남겨도 인간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많은 작가들이 이러한 뇌에 대해서 소설을 쓰기도 했는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뇌'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작품과 비슷하게 뇌만 지니고 우주로 나아간 사람들 이야기가 있다. '당신은 뜨거운 별에'다.


뇌를 로봇에 장착해서 금성을 탐사한다.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그런데 그 뇌를 또 이익집단이 통제할 수 있다면? 자신의 뇌지만 자신을 고용한 사람들이 자극을 통해 뇌를 통제한다면 과연 그때의 나는 나인가? 오히려 남이 하라는 대로 하는 기계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지니게 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런 점을 생각해야 한다. 뇌만 남은 인간, 아니 뇌를 다른 기계에 이식한 인간. 그리고 그 뇌를 다른 집단이 통제하도록 하는 인간. 이는 자유의지가 없는 인간이다. 자유의지가 없다는 말은 자신의 행동이 초래할 불활실성을 제거했다는 말이다. 그런 사회에서 사는 인간이 과연 행복할까? 작가는 인물이 탈출하는 것으로 그런 세상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보고 있음을 우리에게 알리고 있는데...


여기까지 언급한 소설들은 지금 우리 시대에 개발을 하려 하고 있는 기술들이다. 이런 기술들이 실용화된다면 그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우리가 행복한 사회일까를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작가의 말에 공감하게 된다. 그의 삼단논법을 보자.


1. 오늘날 과학기술은 나의 삶과 내가 사는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다.

2. 나는 좋은 삶을 살고 싶고, 좋은 사회를 만들고 싶다.

3. 그러므로 나는 과학기술을 통제해야 한다. (401쪽) 


이 삼단논법을 통해서 그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기술이 우리 삶과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까? 그 변화는 바람직한가?'하고 폭넓게, 적극적으로 따져 묻고 싶다. 우리가 어떤 기술에 대해서는 개발하거나 사용하지 말자고 혹은 사용을 제한하자고 합의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해야 한다고 본다. 사실 우리는 이미 그런 일을 하고 있다.' (401-402쪽)고 말하고 있다.


작가가 이 소설을 쓴 이유다. 그리고 자신이 쓴 소설에 그냥 SF소설이 아니라 STS(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 SF라고 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 작품집에 있는 소설들 읽으면서 현대 과학기술이 가고 있는 길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한다. 논의해야 한다. 우리는 계속 이 지구에서 살아가야 함으로.


읽으면서 역시 장강명이다 하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에게 잘 읽히는 소설을 쓰는 작가, 사람들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가 장강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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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시스 - 우주, 지구, 생명의 기원에 관한 경이로운 이야기
귀도 토넬리 지음, 김정훈 옮김, 남순건 감수 / 쌤앤파커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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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이런 의문을 가진다. 무궁무진하다고 하는 우주도 처음 시작이 있었을 것인데, 그 시작을 알아내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 대해서도 더 잘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고.


빅뱅으로 우주가 탄생했다고 하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고, 그에 관한 증거도 많이 발견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도 우주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로 가득 차 있는 곳이라고 하는데...


빅뱅 이전에 무엇이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한다. 처음 시작을 하기 전에 존재하는 그 무엇에 대해 생각하면 더 이상 생각이 나아가지 않는다.


처음 이전에 무엇이 있다고 하면 처음은 처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인데, 빅뱅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공간이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렇다면 그 공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책은 이러한 우주 탄생의 순간을 다루고 있다. 전문적인 학술 책이 아니라 과학에 관심있는 사람이 읽을 수 있게 한 책이라고 하는데, 그럼에도 여전히 어렵다. 왜냐하면 현대에 확립된 물리학 이론들이나 천문학적 지식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아무래도 이해하기 쉽지 않다.


읽으면서 무슨 소린가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럼에도 한 편의 서사시처럼 주욱 읽어가자 하면서 읽었다.


빅뱅.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지 않았다. 진공에서 시작한다고 한다. 이 진공을 저자는 0에 비유한다. 0은 있으면서도 없는 숫자. 진공 역시 없음이 아니라고 한다. 이는 있는데 없고, 없는데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 진공에서 빅뱅이 일어나고 순식간에 우주가 팽창하기 시작한다. 이때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들이 있을텐데. 이 물질들이 질량을 지니게 되는 것은 뒤의 일이라고 한다.


질량을 지닌 물질이 등장하고, 그 물질들이 융합해 다른 물질을 형성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원소들이 등장하기까지는 며칠이 걸린다. 이런 원소들이 등장한 다음에는 행성들이 등장하게 된다. 지금의 우주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런 우주의 형성을 성경 창세기에 빗대어 7일로 장을 나눠 설명하고 있다. 우주 탄생의 역사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는데, 여전히 어렵지만 막연하게나마 어떤 상이 잡히기도 한다. 뚜렷한 상이 아니라 막연한, 흐려서 실체를 알 수 없는 상이기는 하지만.


결국 우리가 밝혀내지 못한 암흑물질, 암흑에너지에 대한 연구가 더 깊어져야 우주에 대해서 더 잘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한다.


빅뱅 당시에는 대칭이었다가 이 대칭이 깨지면서 빛이 웆에 퍼질 수 있고, 질량을 지니지 않았던 물질들이 질량을 지니게 되고, 우주가 계속 팽창하면서 다른 물질, 행성들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주장.


그런 주장의 끝에 지구와 인류가 나오게 된다. 이제 지구에 살고 있는 생명체, 의심을 하는 생명체인 인간이 등장하는 것이다.


광활한 우주를 탐색하는데, 눈에 띄지 않던 물질을 벌견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그 물질들이 우주 탄생의 시점에 대한 비밀을 우리에게 풀어놓을 수 있다는 점을 알려주고 있다.


아직 우주의 비밀을 다 풀지는 못했지만 인류는 계속해서 우주의 비밀을 풀어나갈 것이며, 우리와 같은 생명체가 있는 우주를 발견하리라는 희망 역시 버릴 수 없음을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한 번 읽고 끝내는 책이 아니라 몇 번을 곱씹으면서 읽어야 할 책이다. 광활한 우주에 대한 탐구는 우리들 삶과도 관련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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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식의 세상 속으로 - 나의 이동권 이야기 나의 OOO 1
이규식 지음 / 후마니타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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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병변 장애가 있는 이규식의 이야기다. 그가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실었다. 담담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결코 유쾌한 삶이 아니었을텐데 이 책을 읽으면 비장해지기보다는 경쾌한 느낌을 받는다. 어려운 시절을 겪었던 사람이 과거의 일을 추억처럼 풀어내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순탄치 않았던 삶을 살았던 그의 삶이 기록을 통해 우리에게 말을 건다. 이런 삶도 있다고. 과연 이런 삶이 당신들과 다른 삶이냐고. 우리는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그러니 장애인이라고 특별대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들과 같이 살 수 있게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라고.


그렇다. 가장 힘든 사람이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했다. 장애인이 불편을 겪지 않고 이동할 수 있는 사회, 장애인이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사회, 장애인도 자신들의 편리를 추구할 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가 좋은 사회다. 그리고 이규식은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 왔다.


공동체라고 불리는 시설에서도 살아보고, 이동권 투쟁도 해보고, 탈시설 운동도 한 이규식. 지금은 당연하게 여기는 일들이 과거에는 특별한 일이었을 테니, 그가 겪은 고통은 이 책에 나와 있는 구절들로 우리가 체험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그와 같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아직은 미약하지만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나 시설들이 개선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들은 투쟁 중이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지하철이 있고, 저상버스 도입률이 50%도 안되고 있으며, 장애인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기는 하지만, 곳곳에 있는 식당가에서는 장애인이 화장실을 가기가 힘들다는 사실.


무엇보다도 그들이 여행을 할 때 많은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 그렇다. 비장애인도 여행을 할 때는 많은 불편을 겪는데, 장애인들이 겪는 불편은 더욱 심하다는 사실.


오죽했으면 그가 "나도 무계획 여행이라는 걸 해보고 싶다."(274쪽)고 했을까. 비행기도 배도 불편함이 있고, 여행지에 도착해서도 숙소부터 시작해 이동 수단을 마련하는 데도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한다는 사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많은 부분들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여기에 더 놀랄 만한 일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교도소의 시설이다. 장애인이 생활하기에는 그야말로 감옥인 곳.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해야 하는 곳인데도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있기에는 너무도 불편한 곳이라는 사실을 이규식의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되었으니...


공공기관부터 장애인이 불편하지 않고 이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그리고 그들을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시설로 생활공간을 국한시키지 말고 함께 살 수 있도록 탈시설활동을 지원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만은 않음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게 된다.


그렇지만 이규식 같은 사람이 있어, 누군가 앞서서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어 세상은 좋은 쪽으로 조금씩 발전해가고 있다. 


그가 지금껏 해온 일들이 무용하지 않았듯이, 그의 삶을 기록한 이 책을 통해서 더 나은 사회가 어떤 사회일지 생각해 본다.


장애인이 편하게 이동하고 생활할 수 있는 사회라면 비장애인 또한 편하게 생활할 수 있는 사회일테니. 이규식과 같은 사람들이 계획을 짜지 않고 충동적으로 여행을 편하게 떠날 수 있는 그런 사회라면 다른 환경들은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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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무죄다 - 검사 이성윤의 검(檢) 날수록 화(花)내는 이야기
이성윤 지음 / 아마존의나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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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과 꽃.


검을 칼이라고 한다면 꽃과 대척되는 지점에 있다. 물론 검사할 때 검은 칼이 아니다. 칼이 아닌데, 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칼 앞에서 식물은 약하디 약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칼로 아무리 식물을 베어내도 식물은 완전히 죽지 않는다. 죽은 듯이 보였다가도 어느 때에도 다시 살아난다. 그것이 바로 김수영이 노래한 '풀'이다. 식물이다. 꽃이다.


꽃의 화려함이 10일을 가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 화려함을 드러내기 위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참고 지낸 세월을 생각한다면, 화려함을 봐줄 수도 있다. 또한 그 화려함이 자신을 위한 것도 있지만, 다른 존재들에게 기쁨과 위안을 주는데, 어찌 화려하다고 비난할 수가 있단 말인가.


저자는 검찰로 오랫동안 근무했다. 검찰이 지닌 칼의 속성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꽃에 대한 책을 썼다. 그것도 눈에 잘 띄지 않는 야생화에 대한 글들도 있으니...


그를 아내는 '꽃개'라고 한단다. 꽃 냄새를 잘 맡는 개와 같다는 뜻이다. 비하하는 말이 아니라 그만큼 꽃을 찾아내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뜻이리라.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꽃을 찾아낸다는 것은 집중력과 주의력이 있다는 뜻이다. 또 남들이 잘 보지 않는 면을 볼 수 있는 눈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꽃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고통도 볼 수 있는 사람이리라.


그런 사람에게 닥친 일들, 이 책에서는 스치듯이 언급하고 있지만, 검찰의 핵심에 있던 사람도 이렇게 검찰에 불려다니면 힘들어하는데, 법과는 무관하게 살아온 사람들에게 검찰은 그야말로 칼을 휘두르는 권력자일 수밖에 없다.


하여 이 책을 읽으면서 꽃과 식물들에게서 위안을 얻는 그를 보면서, 우리도 역시 자연에서 위안을 받을 수 있음을 생각한다.


가끔은 하늘을 보라는 말, 이 말은 하루하루 쫓기듯 살아가는 생활에서 잠시 눈을 돌릴 여유를 가지라는 말이다.


그런 여유가 우리 삶을 지탱해주는지도 모른다. 힘들 때, 생활에 지쳤을 때 자신을 잠시 놓아두고 시선을 밖으로 돌리는 여유. 


그런 여유가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저자처럼 이렇게 나 아닌 다른 대상을 보면서 마음을 내려놓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꽃을 찾아다니면서 꽃에게서 느낀 감정들, 그 꽃들이 지닌 속성, 그리고 그것들이 우리 인간의 삶과 얼마나 관련이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무엇보다도 많은 꽃과 나무 사진들, 그림들이 눈을,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이성윤의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김수영의 '풀'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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