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없는 전쟁 - 두려움도 분노도 없는 AI 전쟁 기계의 등장
최재운 지음 / 북트리거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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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환호에서 공포로 바뀌기도 한다. 여전히 환호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공포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왜냐하면 인공지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인간이 따라갈 수 없는 능력을 발휘하니...


최근에 벌어진 전쟁에서 인공지능이 활용되고 있다. 인공지능끼리 전쟁을 하는 시뮬레이션을 작동시켜보기도 했다고 한다. 어떤 인공지능은 방어적으로, 어떤 인공지능은 공격적으로 전쟁을 수행했다고 하는데, 인간의 개입 없이 인공지능끼리 전쟁을 벌이는 일이 일어날까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지기도 한다.


이 책의 표지에 있는 말처럼 인공지능은 두려움도 분노도 없는 전쟁기계이기 때문이다. 두려움과 분노가 없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전쟁을 수행한다. 반면에 연민도 없기 때문에 살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를 수도 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인간의 목숨은 변수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게 우리는 되돌릴 수 없는 기술의 발전으로 이제 대부분의 무기들에 인공지능을 장착하고 있다. 무기들이 스스로 판단해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단계까지 나아갔다고 하니, 핵무기의 위협만큼이나 이제 인공지능 무기들도 인류에게 위협이 되고 있다.


핵확산금지조약이 발효되어 더이상의 핵무기를 제조하지 않는다는 큰틀에 세계가 어느 정도 (여기에 가입하지 않은 나라도 있지만 대체로 핵무기의 위험을 인식하고, 그 무기를 개발하지 않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데는 동의를 한다) 합의를 한 인류니, 이제는 인공지능 무기를 어느 정도까지 허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합의를 해야 한다. 


단지 합의가 아니라 조약으로 강제해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강대국들이, 그것도 인공지능 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나라들이 그러한 조약에 반대하고 있으니, 아직 갈 길이 멀다.


이 책을 읽어보면 무섭다. 벌써 인공지능들이 전쟁에 사용되었음을, 이런 무기의 효용성을 목격한 각 나라들이 인공지능 무기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에 더더욱 무섭다.


인공지능 무기들로 인해 사상자가 줄 수 있다고 하지만, 군인 사상자는 줄 수 있어도 과연 죽어가는 인간들의 수가 줄어들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무기가 무기를 파괴한다고 해서 전쟁이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이스라엘이 하는 일을 보면 무기만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표적으로 삼아 살상하고 있지 않은가. 결국 인공지능 무기들로 전쟁을 하더라도 뒤에 있는 사람을 제거하는 것이 목표가 된다.


인간 '없는' 전쟁은 없다. 인간을 제거하기 위한 인공지능 무기로 작동할 가능성이 있다. 소위 표적을 제거한다는 목적으로, 그러한 표적만을 제거하기 때문에 인명 피해는 덜하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표적이라 불리는 사람들도 인간이기는 마찬가지다.


또 인공지능이 잘못 판단할 수도 있으니, 더더욱 무서워진다.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힌 다음에 그것이 잘못된 정보에 의해서 행해졌다고 한다면 도대체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인공지능 무기 개발을 막을 방도는 없다. 이미 사용되었고, 효용성이 증명되었기에 자신들만 뒤처지면 안 된다고, 자기 나라가 개발 안 하고, 다른 나라가 개발했을 때 그 힘의 불균형을 감당할 수 없게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돌이킬 수 없는 단계까지 왔다고 보면 이제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인공지능 무기들이 인류를 파괴하지 않도록 통제하는 일이다. 지배, 통제라는 말에 어떤 집단의 권력이 느껴진다면, 공존이라는 말로 바꾸자.


인공지능과 공존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질문을 이렇게 바꾸고 있다. 인공지능은 이미 돌이킬 수 없기에.


저자는 그래서 질문을 바꿔야 한다고 한다.


'우리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누구의 가치를 반영한 AI인가? 누구를 위한 안전인가? 누구의 이익을 우선하는가?(328쪽)'로.


이런 질문 앞에 당연히 'AI의 목표와 행동을 인간의 가치와 일치시키는 '정렬'이 선행되어야 하고, AI가 무엇을 학습했는지 알고, 왜 그런 판단을 내리는지 이해하고, 문제가 생기면 원인을 찾아 고칠 수 있게 '추적 관리'를 할 수 있어야 하며, AI 서비스 기획 단계에서 잠재적 사용자, 분야별 전문가, 시민단체가 참여'(310-325쪽)하는 것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한다.


이것을 기본으로 하면서 질문을 바꾸면 특정 집단에게 AI를 독점하지 않게 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야 AI와 공존하는 세상이 될 수 있다고.


이제 인간은 AI라는 시험대 앞에 섰다. 문제를 발견했다. 문제를 발견했다면 해답 역시 찾을 수 있다. 그렇게 우리 인간은 해답을 찾아 AI와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인공지능 무기들이 현대 전쟁에서 어떻게 사용되었고, 성능이 어떠하며 어떠한 위험성이 있는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AI의 효용성만큼이나 위험성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으니, AI에 대한 찬양도, 그렇다고 무조건 부정하는 것도 아닌 공존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하고 있다.


저자의 말,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AI가 인간보다 똑똑해지는 순간이 아니다. 소수가 AI를 독점하고, 다수가 AI에 의해 통제되는 순간이다.' (331쪽)


'AI시대에 인간다움을 지킨다는 것은 AI와 맞서 싸우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이는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이고, AI로 대체해서는 안 되는 영역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질문하며 대화하고 선택하는 과정이다. 기업이나 국가, 사회 차원의 문제만이 아니다. 개인 역시 일상 속에서 실천할 수 있고, 실천해야 하는 일이다.' (334쪽)


끝으로 이러한 AI 무기들에 대한 글을 읽고 그럼 우리나라는?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책의 뒷부분에서 그 점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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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26-04-27 1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인용하신 저자의 말에 깊이 공감합니다. ‘인간다움은 무엇인지‘ 더욱 고민이 필요한 시대이네요.

kinye91 2026-04-27 14:3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다가올 인공지능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인간다움‘에 대해서 많은 고민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레이스 2026-04-27 2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 치르고 있는 전쟁들이 그 실험장이 되고 있다고 해서 두려운마음이 앞섭니다.

kinye91 2026-04-28 08:28   좋아요 1 | URL
인공지능이 무기가 될 때 얼마나 위험한지를 지금 전쟁이 보여주고 있으니, 세계가 이에 대한 규제를 하기 위한 제도를 만들어야 해요. 핵을 규제하고 통제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 현실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시인이 쓴 이 시들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들의 고공농성, 경찰들의 강제 진압, 희망버스 등등...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시로 표현하고 있다.


  어려운 말이 하나도 없이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말들이 시에 담겨 있어 읽으면서 우리가 겪어왔던 일들을 떠올릴 수가 있다.


  다른 말이 필요 없다. 첫 번째로 실린 시를 보면 이 시집에서 시인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 수 있다.


  제목이 '청소용역노동자들의 선언'이다.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시인이 시로 표현하고자 하는 존재는 사회적 약자들, 또는 민주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 약자의 편에 선 사람들이다. 그들이 원하는 세상이 그들만이 잘사는 세상이 아님을...


 청소용역노동자들의 선언


우리는 당신들의 집과 건물이 

깨끗하기를 바랍니다


그만큼 우리를 대하는 당신들의 인성도

깨끗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당신들의 삶과 생활이

더 윤택하고 빛나길 바랍니다


그만큼 

우리가 받아야 할 대우도

환하고 기름지길 바랍니다


우리는 노예나 종이 아닙니다

당신과 나의 권리는 서로 존중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불의를 바르게 정돈하고

잘못된 구조와 모순을 뜯어고치는 일은

우리 모두의 일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쓸겠습니다

당신은 닦으십시오


부디

우리가 치워야 할 쓰레기가

당신들이 아니길 바랍니다


송경동,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창비. 2022년. 10-11쪽.


시에서는 너와 나를 가르지 않는다. 우리다.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위해야 한다. 나를 위해서 너가 희생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사회 곳곳에서 '나'는 존중받고 싶지만, '너'는 굳이 존중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무어라 불러야 할까? 이 시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치워야 할 쓰레기'라고 표현하고 있다. 공동체를 유지하는데 방해가 되는 사람들.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사는 사람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누르려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공동체의 생활에 필요없는 치워야 할 존재다.


그러므로 시인은 당신들은 제발 그런 존재가 되지 말라고 한다. 당신들은 쓰레기니까 치워져야 한다가 아니라, 당신들도 우리와 같이 '잘못된 구조와 모순을 뜯어고치는' 일을 하는 존재라고 한다.


세상을 좋게 만드는 데 나와 나의 구분은 없다. 우리가 함께해야 한다. 함께하지 않고 방해하는 존재는 치워야 한다. 


이런 의미를 지닌 시들이 이 시집에 실려 있다. 세상의 불의를 참지 않고 고치려 하는 사람들의 모습. 


이런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사회의 불의를 예방하고 치료하는 '백신'에 비유하기도 한다. '가장 오래된 백신'(104-105쪽)에서 시인은 '사랑과 연대라는 가장 오래된 백신'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사람을 살게 해주는 '사랑과 연대'. 이것들이 충만한 세상이라면 시인이 원하는 대로 '큰 의미 없이도 우리 모두를 살리는 / '물결'이나 '바람결'이나 / 조용한 '숨결' 같은 것도 느껴보며 / 조금은 다른 삶의 결로도 살아보고 싶은 / 해 질 녘 우연한 그리움'(''결'자 해지'에서. 93쪽)을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그리움이 실현되는 사회를 꿈꾸는 시인에게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런 시인의 꿈은 우리 모두의 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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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efox 2026-04-26 06: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좋은 시 잘봤습니다. 오늘도 행복하고 건강하세요.

kinye91 2026-04-26 06:20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남극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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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보고 싶어하지 않는,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 장면이 있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장면도 있고. 또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장면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삶들을 보지 않는다고 해서 삶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은 너무도 다양하기에, 좋다고 여기는 삶도, 좋지 않다고 여기는 삶도 우리 주변에 있다. 우리가 좋지 않은 삶이라고 하는 것들을 보지 않으려 애쓰고는 있지만, 보지 않으려 한다고 해서 그런 삶들이 우리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삶들 속에서 자기 삶의 방향을 찾아가야 한다. 길을 잃지 않도록... 어쩌면 우리가 소설을 읽는 것은 삶의 방향을 잃지 않도록 하는 면역 주사를 맞는 것과 같을지도 모른다. 


책이라는 공간에서 실제로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경험하면서 자기 삶의 방향을 찾아나가는, 좋지 않다고 여기는 삶에 대한 면역을 형성하는... 그러한 백신.


문학의 효용성을 따지기 전에 문학 작품은 그렇게 재미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알게 모르게 우리에게 어떠한 면역을 형성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작가들이 삶의 다양한 면을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기도 할 것이고.


클레어 키건의 초기 단편집이다. 작품 활동을 시작했을 때 출간한 작품들이라고 하는데... 첫 작품인 '남극'을 읽으면서 어, 이 작품 어디서 읽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읽었더라? 분명 클레어 키건의 작품인데... 찾아보니 [너무 늦은 시간]이라는 책에 수록되어 있다. 그래, 읽었네... 읽었어. 그런데 왜 이 작품이 같은 출판사에서 또 같은 번역자에 의해서 같은 년도에 다른 책에 각자 실려 출간되었지? 하는 의문.


단편집들이 가끔은 같은 작품을 수록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같은 해에 나오다니.. 참. 그것을 밝혀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지만...


이 첫 작품인 [남극]이 클레어 키건의 초기 작품들의 성향을 너무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평범하다고 여기는 삶 너머에 있는 삶들을 보여주는 작품들.


'남극'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 시작부터가 일상, 평범, 보통을 넘어서는 삶의 다른 단면을 추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던 여자는 집을 떠날 때마다 다른 남자와 자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했다. 그래서 다음 주말에 그 답을 알아내기로 결심했다.'(10쪽)


분명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던'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결혼 생활에 그다지 불만이 없었다는 얘기다. 남편과의 관계도, 아이들과의 관계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삶만을 지속한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일상에서 벗어난 삶이 여기서 시작된다. 다른 삶에의 궁금증.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세계에 대한 호기심. 그것으로 인해 비극이든 희극이든 또 일상으로 돌아오든 돌아오지 않든, 우리 삶에서는 여러 변수가 발생한다. 그리고 그 변수에 따라서 삶의 방향이 달라지기도 한다.


'남극'... 보통 사람들은 가지 못하는 곳이다. 일상에서 벗어난 장소가 바로 남극이다.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떠나야 하는 곳. 일상에서 겪는 보통의 삶에서 벗어나려 하는 것은 바로 이렇게 남극을 탐험하는 것과 같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남극을 가볼 수 있는 경우가 희박하듯이 이 소설 속 주인공처럼 행동하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그렇다고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는 그러한 행위이기도 하고.


이런 일상에서 보기 드문 행위들이 이 소설집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그럼에도 많은 소설들에서는 가부장적인 사회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어서, 클레어 키건은 소설을 통해서 여전히 이 세상은 한쪽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작품을 통해서 드러내고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알려졌을 때 우리를 경악에 빠뜨리는 가부장적 폭력이 사실은 삶에서 빈번히 일어나고 있음을 이 소설집의 많은 작품들에서 보여주고 있는데, 그럼에도 그것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가령 '노래하는 계산원'이라는 소설에서는 둘만 남겨진 자매의 이야기인데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 둘 다 굳이 못을 다시 박지 않았다. 우리 삶에 저 나쁜 놈을 다시 걸어두려 하지 않았다.'(135쪽)


벽에서 떨어진 액자. 그 속에 들어 있던 사진. 그 사진의 주인공은 바로 그들의 아빠다. 그런데 아빠를 '저 나쁜 놈'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가부장의 폭력이 있었다는 얘기가 되고, 이것을 이겨내는 자매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남자에게 종속되는 여자의 삶을 거부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이는 클레어 키건의 다른 소설들에서도 보여진다. 그렇게 우리가 감추려고 하는 삶들을 클레어 키건은 앞으로 끌어온다. 부정하지 말라고. 안 보려 한다고 그런 삶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삶은 눈속임이 아니라고. 무슨 마술처럼 있던 것을 없던 것으로,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고.


마냥 부정적이지만은 않은, 자신을 옥죄는 삶에 굴복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려는 모습. 주체성을 지닌 인간으로 다시 서는 모습을 이 소설집에 실린 다른 소설들을 통해서도 볼 수 있는데... 


'남자애한테는 이상한 이름'이라는 소설에서 '나는 너에게 위안을 주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남자를 아이처럼 보살피는 여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여자는 내 세대에서 끝이다.' (168쪽)는 표현이나 '어디 한번 타봐'라는 소설에서 '세상에. 드디어, 10년 만에, 그녀는 원하는 것을 가질 참이다. 살아 있는 기분을 다시 느끼게 해줄 사람, 이 옷 속에 누군가가 존재한다고 느끼게 해줄 사람을 말이다. 로슬린은 이제 아닌 척하면서 집에서 얌전히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194쪽)는 표현처럼, 가부장의 세계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살아가려는 사람의 모습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이렇듯 삶에서 겪고 싶지 않은 일들도 역시 우리들 삶에 함께 존재한다고. 이것을 제대로 보아야 한다고 클레어 키건은 작품을 통해서 말하는 듯하다. 그래서 클레어 키건의 이 소설을 읽으면 백신 주사를 맞은 듯한 느낌이 든다. 삶의 부정적인 모습을 어느 정도는 경험한 듯한 그런 느낌....


다른 소설들처럼 술술 읽히게 간결한 문장으로 담담하게 사건을 전개하고 있지만, 그 짧은 소설 속에서도 여러 생각을 하게 하는 그런 소설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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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 리포트 - 필립 K. 딕 단편집
필립 K. 딕 지음, 조호근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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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에 '헐리우드가 가장 사랑하는 SF작가'(786쪽)로 소개하고 있다. 그의 작품을 영화로 많이 만들었다는 말인데... 사실 본 영화가 거의 없어서 그런 줄 모르고 있었다. 이름은 워낙 SF계에서는 유명해서 알고 있었지만.


이 소설집 제목이 된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비록 보지는 않았지만... 소설도 단편소설이 아니라 장편소설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보면서 어라? 짧은 소설이네 하고 놀라기도 했고. 미래 범죄를 예방하는 경찰이 자신이 그 명단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다음은? 그런 소설과 영화?


소설을 읽어보면 영어로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번역에서 소수보고라고 되어 있다. 소수자의 보고는 다수의 의견과 다르다는 말인데... 이는 재판과정에서도 소수의견을 반드시 명기하는 것을 보면 다수의견만큼이나 소수의견도 중요하다고 여겨야 한다. 


그렇지만 소수의견이 밝혀지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대부분은 다수의견만을 알고 지내지 않는가. 소수의견이 차지하는 중요도를 생각하지도 않고. 소수의견을 알게 되는 사람은 다수의견만 알고 있는 사람과 같은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소설은 그 지점을 파고든다. 소수의견을 볼 수 있는 경찰의 책임자. 그는 자신에게 씌워진 범죄 행위를 미리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자신의 행위를 미리 안다는 것은 그대로 행동한다는 말일까?


아니다. 자신의 행동을 미리 안다면 그 결과를 안다는 말이니까, 예측된 대로 행동하지 않는다.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으니까. 


이 소설 '마이너리티 리포트'도 그렇다. 보고서를 본 사람의 행동을 어느 시점에서 예측하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진다. 보고서를 보지 못했을 경우, 그는 예측대로 행동할 수 있다. 그러나 보고서를 본 이후의 시점에서 예측을 한다면, 그는 자신을 위해서 행동을 바꿀 수 있다. 그런데 이 보고서를 또 본 이후에는 어떨까?


자신과 조직이 걸린 문제라면, 어느 쪽에 더 중점을 두어야 할까? 소설은 그 점을 파고든다. 즉 인간은 예측대로 행동하는 기계가 아니다. 인간에게는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운명을 알게 되면 그대로 순응하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순응 대신 바꾸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그렇다고 정해진 운명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느냐는 다른 문제이다.


즉, 결과는 같더라도 예측된 대로 행동했느냐 아니면 자신의 의지로 행동했느냐는 다른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이 바로 그런 점을 생각하게 한다. 그는 예측 결과를 안다. 그럼에도 예측 대로 행동하기로 한다. 왜? '정의'라고 하면 자신의 행동이 개인의 이익보다는 '정의'를 구현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한 조직의 책임 있는 자리에 있기도 하고.


이런 인간의 모습. 이것이 바로 인간 아닐까? 결과는 변하지 않더라도 그 결과가 일어나는 과정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데, 그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인간의 의지라는 것. 이것이 인간이 지닌 특성이라는 것을 이 소설을 통해서 생각하게 되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렇다면 우리나라 점(무속)은 어떨까? 많은 사람들이 점을 치기도 하는데, 그 점괘에 따라서 똑같이 행동할까? 오히려 점은 자신이 결과를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하는 디딤돌 역할을 하지 않을까?


미래가 완전히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점(무속)에서도 인정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마이너리티 리포트' 역시 안다는 것이 행동을 바꿀 수 있음을, 어쩌면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자들이 그 정보를 이용해 남을 재단하고 억압할 수도 있음을 이 소설이 보여주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주인공은 경찰 책임자로서 정보를 미리 볼 수 있었으므로, 그가 지금까지 해온 대로 정보를 알지 못하는 사람을 잡아 가둔 것이 과연 옳은지에 대해서 작가는 잠시 언급하고 있지만, 이에 대해서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소설은 이렇게 인간의 행동이 예측대로만 되지 않음을, 또한 정보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정보를 아는 존재에 의해 휘둘릴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집에는 많은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1950년대에 발표된 소설들인데... 짤막한 소설들이라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매우 많다.


사건과 인물들에 여백이 많기 때문에 영화로 만들 때 만드는 사람의 처지에서는 좀더 자유로울 수 있다. 비어 있는 여백을 자신의 상상력으로 채우면 되기 때문인데...


소설의 주제를 살리면서도 많은 부분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기에 이 작가의 단편 소설들이 영화로 많이 만들어졌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거기다 이 주제들이 SF의 형식으로 당시 냉전 상황이나 독재, 전체주의를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소설들에서 배경이 핵전쟁 이후로 설정되어 있고, 적대국들이 등장하는데 이는 소련과 미국의 냉전 시기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냉전이 사람들의 삶만이 아니라 지구도 파괴할 수 있다고, 이렇게 지구를 파괴한 인간들은 지구에 살 자격이 없다고... 그러니 인간은 지구를 떠나는 것이 옳다고 이야기하는 듯한 소설도 있다.


'단기 체류자의 행성'이라는 소설인데, 이 소설에서는 방사능 속에서도 살 수 있는 생물들이 살아남은 지구에 인간들은 단기 체류자로 이곳에 잠시 온 방문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나온다. 인간들이 파괴한 행성. 그렇게 만든 인간들은 지구에 존재할 가치가 없다는 생각을 펼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는데... 이는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작가의 생각을 풍자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 단편집을 읽으면서 이 작가 대단하구나, 지금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 것들을 미리 보여주고 있기도 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


버릴 단편이 없다. 다들 읽으면서 감탄하게 된다. 재미도 있고. 필립 K. 딕의 작품을 더 찾아 읽고 싶게 만든 소설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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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술들 : 개항에서 해방까지
김영나 지음 / 워크룸프레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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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근대 미술에 대해 개괄적으로 알려주고 있는 책이다. 근대의 기점을 어디서부터 잡을 것인가는 논란이 많지만, 이 책에서 저자는 1880년대를 기점으로 잡고 있다. 이유를 '동아시아의 문화권에서 벗어나 국제사회에 발을 내디디는' 때가 그때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국 근대를 서양문명과의 접촉으로 보는 셈인데, 이 책에서 다루는 미술들 역시 서양 미술과의 접점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그래서 미술들이라고 했지만 전통 서화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


물론 근대라는 개념을 서양문물과의 접촉으로 보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서양문물과 동양문물이 융합되거나 또는 각자 그 시대에 창조되면서 계승, 유지, 발전된다고 한다면, 전통 서화에 대한 부분이 더 많았으면 아쉬움이 있다.


그렇다고 아주 등한시 하고 있지는 않다. 오세창을 예로 들어 그가 쓴 '근역서화징'을 언급하고 있으며, 서화라는 말 대신에 미술이라는 말이 등장하는 배경을 설명하고 있으니, 그런 아쉬움은 접고 이 책을 따라가면 1880년대부터 해방 직후까지 우리나라 미술들을 대략적이나마 알게 된다.


주로 일본을 통해서 만날 수밖에 없었던 서양 미술, 유럽이나 미국에 유학해서 직접 서양 미술을 배운 사람들도 있지만 이들이 우리나라 미술계에서 그리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또 전쟁이라는 비극을 겪었기에 그들의 활동이 알려지지 않는 경우도 있었으니...


이 책에 일본 미술가들의 이름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였기 때문이고, 유럽이나 미국으로 유학을 가기 위해서는 일본 국적으로 가야만 했기에 포기한 경우가 많았으니, 일본 미술가들에게 배운 사람들이 우리나라 근대 미술의 주류가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일본 미술가들의 경향을 그대로 따라갔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우리나라 역시 근대 미술 사조들에 대해서 공부하고, 자신들의 성향에 맞는 작품 활동, 또 조선적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도 하면서 작품 활동을 했음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림만이 아니라 조각에서도 또 사진이나 건축에서도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지고, 상당한 성과도 거두게 된다. 이런 바탕이 있었기에 지금 한류라고 하는 문화 강국이 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한다.


많은 작가와 작품들이 나오고, 그들의 작품이 사진으로 실려 있어서 근대 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 적절한 책이기도 하고, 역사적으로 우리나라 미술을 1880년부터 해방 직후가지 훑어주고 있어서 한국 미술사의 흐름을 정리하는 데도 유용한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안타까운 점은 식민지를 겪어야 했던 우리 민족이 미술 작품들도 보존하기 힘들었다는 사실. 그래서 사라져 사진으로만 볼 수밖에 없는 작품들도 많았으며 청동과 같은 재질로 만들어진 조각들은 전시에 공출되어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들이다.


나라를 잃은 민족은 예술까지도 잃게 되니, 그 점을 근대 미술이 시작되는 우리나라 미술계에 일어난 일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미술을 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음도 이 책에 잘 나와 있으니... 이런 노력들, 결과들이 모여 지금의 우리 문화가 만들어졌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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