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라는 세계 - 우리가 모르는 우리말 이야기
석주연 지음 / 곰출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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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고 생각하고 넘어간다. 당연히 알고 있다고 여긴다. 우리말이다. 내가 말하고 쓰는데 지장이 없으니 다 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국어시험을 보면 수두룩하게 틀린다. 또 한국어능력시험을 보면 웬만한 사람들, 심지어 국어교사들조차도 틀리는 문제가 많다.


그럼 우리는 우리말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또 한국어능력시험이나 수능과 같은 또다른 시험들이 우리말에 대한 앎을 제대로 측정하고 있을까?


우리말에 대한 앎을 측정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단편적인 지식을 넘어서 우리말 전반에 대한 앎을 어떻게 측정할 수가 있을까?


애초 태어나면서부터 습득한 언어를 측정할 필요가 있을까? 의식하기보다는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우리말을 왜 측정해야 하지?


측정한다는 말은 비교를 한다는 말이다. 우리말이 우리말로만 존재하지 않고, 수많은 다른 언어들과 함께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말에 대한 앎은 곧 다른 말에 대한 앎과 통하는 일이 된다. 그러니 우리말에 대한 앎은 다른 언어와 비교해서 이루어지게 된다.


이 책은 우리말에 대해서 시간, 공간, 침묵, 비밀, 이주민, 세계의 언어라는 항목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언어는 존재를 나타내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을 나타내는 말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사람이 시간과 공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과 공간을 나타내는 말들이 모든 언어에서 같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


시간과 공간을 나타내는 말들이 그 나라의 문화, 역사 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몸짓 언어나 침묵과 같은 모든 나라가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표현조차도 다르게 쓰인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자신들만의 소통을 이끌어가는 은어에 대한 설명이 비밀의 언어라는 항목으로 이야기되고 있는데, 이 비밀의 언어에서는 외국어를 배워야 하는 이유가 나오기도 한다. 조선시대 때 한어(한족 언어)를 배우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기지만, 왜 청어(청나라 언어)를 배워야 하느냐는 질문에, 그들이 조선인들에게 비밀로 할 때는 청어를 쓰기 때문이라는 말.


즉, 언어는 소통을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특정 집단을 배제하려는 목적으로도 사용되고 있다는 점,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집단이 자신들만의 은어를 사용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언어는 단일성을 고수할 수 없다. 다양한 언어가 섞이게 된다. 이주민들이 생길 수밖에 없는 현대에는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세계 속에서 우리말이 지니는 의미를 이야기하고 있다. 


왜 중국과 일본이라는 강대국(옛날에는 두 나라는 강대국이었고, 우리나라는 잘 모르는 작은 나라였으니)이 언어를 쓰지 않고 굳이 한국어를 쓰느냐는 질문이 있었다고 한다.


왜냐고? 우리들의 생활이나 생각을 표현할 문자가 필요했으니까. 그 점에 대해서도 이 책에서 잘 설명해주고 있다. 


이렇게 우리말에 대해서 다양한 각도에서 설명해주고 있어서 우리말의 이모저모를 살필 수 있는 책이다. 


우리말에 대해서 조금 거리를 두고 살필 기회를 주는 책. 그래서 우리말에 대해서 더 애착을 갖게 하는 책이 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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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이 오지 않을 듯하다가, 며칠 동안 혹독한 겨울살이를 했다. 갑자기 추워져서 그런가, 몸이 견디기 힘들었다. 독감에, 코로나에, 세상에 유행하는 질병들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데, 이럴 때 따스한 방안에서 몸을 녹일 수 있는 사람들은 작은 행복이나마 느낄 수 있다.


  그런데 그런 방을 얻을 수 없는 사람은? 그들에게 겨울은 생존이 걸린 문제다. 주거의 문제. 이것은 생활이전의 생계다. 생존이다.


  적어도 국민들 생존은 해결해줘야 하는 기구가 국가 아닌가 하는데, 여전히 노숙인들이 많고, 자기만의 방을 얻지 못한 사람들도 많으니...


  지금보다 더 혹독한 겨울이 오면 그들이 어떻게 지내라고. 빅이슈 288호를 읽으면서 여성 홈리스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자신의 몸을 누일 공간, 자기만의 방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생각해 봤다.


이번 호에는 인터뷰 기사가 많다. 사회 각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일들을 다른 사람의 말을 통해서 경험하게 해주는 일.


그리고 그들이 빅이슈의 취지에 공감하고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에도 위안을 느낀다. 여러가지로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 그들이 마냥 받는다고만 생각해서는 안 될텐데.


이번 호에서 특히 생각해보고 싶은 글은 '돈이 필요 없는 마켓, 가능해'(64-67쪽)이다. 보틀팩토리에서 운영한 '바꾸장'이라는 활동을 한 사람에 대한 인터뷰인데...


돈이 만능인 시대.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는 시대에 돈이 없어서 재미있게 행복하게, 그리고 부족함 없이 충분히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 글이다.


세계 도처에서 굶주리는 사람, 물자 부족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만큼 또는 그보다 더 버려지는 음식, 넘치는 물자들이 있지 않은가. 분배의 문제, 균형의 문제인데... 이를 다시 돈으로 환산하면 분배나 균형에 문제가 생긴다.


돈이 개입되지 않고 필요를 바꿀 수 있을까? 예전에 유행했던(?) 지역화폐를 이 '바꾸징'이 이어받았다고 보면 된다.


딱 그때만 쓸모있는 '바꾸'라는 화폐. 이는 교환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철저하게 그 장소, 그 시간에만 통용이 된다. 그 장소와 그 때를 벗어나면 '바꾸'라는 화폐는 그냥 종이에 불과해진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을 구입할 수밖에 없고, 이 '바꾸'를 얻기 위해서는 쓸모있지만, 내게는 쓸모없는 물건을 '바꾸'와 교환해야 한다.


이는 교환가치를 활용하지만 사용가치를 우선에 두고 있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활동이 많아지면 쓰지 않는 물건이 많이 줄테고, 기존의 돈을 떠나서 정말로 필요한 사람에게 물건이 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빅이슈가 추구하는 일도 바로 이런 일이겠지. 사람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무엇을 채우게 해주는 역할. 


추운 겨울에 다리를 뻗고 누울 수 있는 방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 그런 역할. 빅이슈가 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차가운 겨울, 따뜻한 온기를 전해주는 빅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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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를 읽기 힘든 시절이다. 마음이 답답하고 무언가에 꽉 막혀 있는 듯한 느낌.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들이 계속 일어나지? 왜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지.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더 많은 권력을 쥐고 있지만, 그 권력에 걸맞는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사람들.


  '농단'이라는 말. 국정농단이라는 말이 있었고, 탄핵이 있었는데, 농단이 '이익이나 권리를 독차지함을 이르는 말'이라고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오던데.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농단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지 않나 한다. 그들에게는 이익, 권리는 명백한데, 책임과 의무는 없다. 책임과 의무는 밑에 있는 사람들이나 지는 것.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그러한 의무나 책임에서 멀어지는 것. 아니 관계 없어지는 것. 그러니 나 몰라라, 나는 책임이 없다. 다, 밑에서 움직인 사람들 잘못이다라고 할 수 있는 것.


이런 시대에 시는, 감정이입을 필요로 하는 시는 마음이 열려 있어야 받아들일 수 있는데, 차갑게 식어버린 마음, 닫혀버린 마음을 지니고 살아가는 요즘에 시가 멀어지고 있음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시는 닫혀버린 사람의 마음을 열려고 한다. 시가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김수영은 '시여, 침을 뱉어라'라고 외치면서 '시는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김수영 전집2.-민음사) 


닫힌 시대, 답답한 시대에 시는 권력자들에 맞서 침을 뱉고,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닫힘을 열림으로 만들어가려 한다. 그렇게 시는 어두운 시대를 밝히는 횃불 역할을 한다.


진은영 시집을 읽었다.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사랑이다. 사랑! 삶을, 세상을 지탱하는 요소. 그런데 사랑에는 밝음만이 있지 않다. 사랑에는 짙은 슬픔이 있다. 사랑하기에 버려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사랑 때문에 버려야 할 것들은 우리가 지니고자 욕심부리는 것들이다. 그런 욕심들을 버리는 일이 힘들지만, 버려야만 사랑을 이룰 수 있다. 짙은 슬픔을 받아들이는 사랑. 그런 사랑을 진은영의 시 '청혼'에서 본다.


'청혼'하면 밝고 긍정적인 미래가 펼쳐지리라 예상하는데, 이 시는 그렇지 않다. 이 시는 슬픔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 슬픔마저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즉, 청혼은 함께 하자는 말이고, 무엇을 함께 하냐면 기쁨만이 아니라 상대가 지니고 있는 슬픔까지도 함께 하자는 말이다. 온전히 당신의 슬픔을 내것으로 받아들여 당신과 함께 하겠다는 표명, 그것이 바로 '청혼'이다.


이 '청혼'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루어지는 일로만 보지 말고 다른 모든 일로 보면, 시인이 말하는 청혼은 바로 시에, 우리에게, 우리 사회에 하는 '청혼'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은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함께 하겠다는 그런 마음의 표현. 이 시를 그렇게 읽었다.


       청혼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별들은 벌들처럼 웅성거리고


여름에는 작은 은색 드럼을 치는 것처럼

네 손바닥을 두드리는 비를 줄게

과거에게 그랬듯 미래에게도 아첨하지 않을게


어린 시절 순결한 비누 거품 속에서 우리가 했던 맹세들을 찾아

너의 팔에 모두 적어줄게

내가 나를 찾는 술래였던 시간을 모두 돌려줄게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벌들은 귓속의 별들처럼 웅성거리고


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해

쓴잔을 죄다 마시겠지

슬픔이 나의 물컵에 담겨 있다 투명 유리 조각처럼


진은영,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문학과지성사. 2022년 초판 8쇄. 9쪽.


그냥 읽는다. 더 말이 필요없다. 읽으면 시에서 느껴지는 운율이 마음을 두드린다. 반복되는 어구, 비슷한 말들의 반복. 별과 벌. 그리고 '-처럼, -게'의 반복. 마음을 은은하게 두드린다. 


의미를 생각하지 않아도 입 속에서 나온 말들이 마음을 울린다. 이것만으로도 시는 우리에게 의미가 있다. 적어도 마음을 두드리니까.


시를 읽기 힘든 시대, 그럼에도 시를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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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토끼 (리커버)
정보라 지음 / 아작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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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결말이 없는 시대의 소설


고전소설은 권선징악이다. 행복한 결말이다. 그래서 잘 먹고 잘살았다더라로 끝난다. 그러니 너희도 잘살아야 한다. 교훈을 주려고 한다. 도덕을 이야기를 통해서 주입시키는 경우가 많다.


악은 반드시 처벌된다. 선은 복을 받는다. 현실이 힘들더라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언젠간 복이 찾아올테니. 


고전소설들은 이런 틀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현대소설에 들어와서는 이런 틀이 많이 깨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행복한 결말이 아니더라도, 권선징악 정도는 지키려고 한다.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 아니 법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시대에도 법은 힘센 자에겐 한없이 관대하고 힘없는 사람에겐 거대한 힘으로 다가온다. 이게 현실이다. 이런 현실을 소설이 감추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서도 안 된다. 그러면 소설이 무슨 필요가 있나? 그냥 사건 기사를 쓰면 되지. 아니면 르포르타쥬라고 하는 형식으로 글을 쓰면 된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리얼리즘이라는 이름으로 말하기도 하지만, 리얼리즘 소설에서도 있는 그대로의 현실만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소설은 소설이라는 장치를 통해서 현실을 보여준다.


그런 장치들이 없을 때 소설은 소설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권선징악을 쉽게 말할 수 없는 시대에 소설은 어떻게 쓰여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한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표현한다면 누구도 읽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현실도 팍팍한데, 소설까지 그렇게 팍팍하다면 누가 읽겠는가? 그러니 소설은 여러 장치들이 필요하다. 이 소설집, [저주토끼]는 바로 이렇게 팍팍한 현실을 소설 장치들을 통해서 잘 보여주고 있다.


복수가 성공해도 시원하지가 않다. 다른 불행이 따른다. 친구를 위해서 저주를 걸어둔 저주토끼를 만든 할아버지. 저주토끼는 성공하지만, 할아버지 역시 저주의 업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저주는 받는 사람에게만 걸리지 않는다. 거는 사람도 걸린다.


물고 물리는 사회에서 어떻게 한쪽이 일방적으로 성공할 수가 있겠는가? 그것은 기계와의 관계에도 적용이 된다. 소설에'안녕, 내 사랑'이라는 소설을 보면 자신이 만든 첫로봇과의 기억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어하는 사람, 그리고 로봇에 저장되어 있는 기억들을 계속해서 저장하는 새로운 로봇들.


쓸모없어진 로봇을 폐기하려고 할 때, 로봇들이 인간을 해치고 사라지는 모습. 결국 일방은 없다. '머리'라는 소설은 그래서 더욱 섬뜩하다. 자신의 배설물이 만든 존재가 결국 자신을 배설물의 자리로 돌려보낸다는 설정.


여기서 환경오염을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내가 알게모르게 누군가에게 해를 끼쳤을 수도 있고, 그 업보를 받을 수도 있다는 쪽으로 생각해도 된다. 잘못을 바로잡지 않았을 때 그 잘못이 점점 더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는 모습을 '덫'에서 만날 수 있다.


환상적이고, 기괴한 설정으로 소설을 이끌어가지만, 그런 소설적 장치들을 통해서 무어라 설명하기 힘든 삶의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삶을 힘들게 하는 존재가 괴물이라는 단 하나의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 '그가 원했던 것은 복수가 아니었다. 최소한 이런 복수는 원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마을 전체가 '그것'의 존재에 기대어 생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뿐이다.' (229쪽. '흉터'에서)는 서술처럼 그런 괴물을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하는 '흉터'란 소설. 그리고 인간이 자신의 욕심으로 파탄에 이르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즐거운 나의 집'이나 '바람과 모래의 지배자'라는 소설.


읽으면서 기괴하다는 생각. 이렇게 행복한 결말하고 먼 소설이 있을까 하는 생각. 그렇지만 흥미진진하게 읽히는 소설. 읽고나서 자꾸만 전혀 현실성이 없는 소설들임에도 (변기에서 머리가 나온다든지, 귀신이나 유령이 나타나고 보인다든지, 여우의 몸에서 금이 나온다든지 등등) 현실을 생각하게 하고 있는 소설집이다.


이런 느낌, 작가의 말에서 그래서 그랬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작가의 말이 아마도 이 소설집을 읽고 난 느낌을 가장 잘 대변하고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작가와 독자는 엄연히 다르게 소설을 읽을 수 있음을 알고는 있지만.


'원래 세상은 쓸쓸한 곳이고 모든 존재는 혼자이며 사필귀정이나 권선징악 혹은 복수는 경우에 따라 반드시 필요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필요한 일을 완수한 뒤에도 세상은 여전히 쓸쓸하고 인간은 여전히 외로우며 이 사실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그렇게 쓸쓸하고 외로운 방식을 통해서, 낯설고 사나운 세상에서 혼자 제각각 고군분투하는 쓸쓸하고 외로운 독자에게 위안이 되고 싶었다.

 그것이 조그만 희망이다.' (326쪽. 작가의 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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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 - 단 한 명의 백성도 굶어 죽지 않게 하라
박영서 지음 / 들녘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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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곡'이라고 들어본 적이 있다. 국사 시간에 배운, 삼정의 문란으로 조선이 혼란해질 때, 그 삼정의 문란 가운데 환곡이 잘못 운영되었다는 이야기. 


그래서 환곡이 어려운 사람을 구제해주는 역할을 하려는 취지에서 어긋나 백성들을 착취하는 수단으로 쓰였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은 이러한 환곡을 조선의 복지제도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제도라고 하고 있다.


즉 농업국가인 조선에서 백성들의 삶을 생각함은 굶주리는 백성이 없게 해야 한다는 정책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러한 정책이 바로 환곡이라는 점이다.


먹을거리가 없을 때 빌려가서 추수가 끝난 다음에 갚는, 그것도 아주 싼 이자를 지불하고 갚은, 지금 말로 하면 저이자 대출을 받아 생활할 수 있는 제도라고 할 수 있는데...


그냥 생각해도 좋은 제도다. 그런데 쌀을 어떻게 빌려주지? 빌려줄 쌀이 있어야지. 그러한 쌀을 확보하는 방법은 환곡과 세금의 연결이다.


환곡이 세금이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다보면 환곡과 세금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다. 즉, 국가의 곳간이 차 있어야 베풀 수도 있는데, 그러한 곳간을 채우는 수단이 환곡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환곡은 늘 일정한 수준이 비축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인데... 풍년이 들어 빌릴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도 환곡은 창고에서 썩고 있어서는 안 된다. 유통이 되어야 한다. 이런 상태라면 환곡은 흉년이든, 풍년이든 백성들에게 빌려주고 이자를 보태서 받아야 한다.


그런 제도, 즉 늘 빌려주고 이자를 붙여 받아야 하는 제도라면 누군가에게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누군가가 모두가 될 수도 있다는 데 문제가 있지만.


조선초기에는 그럭저럭 싼 이자로 운영이 되던 환곡이 조선 중기부터 이자가 많아지더니, 후기에 가면 아예 환곡으로 인해서 사회가 휘청거릴 정도가 됨을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이는 바로 세금과 환곡을 연결시킨 데서 나온 문제점이기도 하지만, 환곡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비리, 부패 등이 만연하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증세를 했느냐 하면 하지 않았으니, 세금은 오르지 않았는데, 세금으로 충당해야 할 지출은 늘었으니, 그 사이에 온갖 비리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으리라고 한다.


왕-지방관-백성의 처지에서 환곡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겠지만, 지방관들 역시 환곡으로 인해 고통을 받았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환곡이 바로 지방재정이니, 그것을 유지 관리하는데 꽤나 어려움을 겪었을 것은 명약관화하다.


백성들은 말할 것도 없고. 정작 필요할 때 빌리지도 못하고, 또 쭉정이를 받아와 알곡으로 갚아야 하는 현실이 되기도 했다고 하니.


복지제도가 사람들을 더 힘들게 하는 작용을 하기도 함을, 조선시대 환곡을 통해서 볼 수 있기도 하다.


저자는 조선시대 복지제도를 이야기하면서 지금 우리 시대에 어떤 복지제도가 필요할지 생각해 보자고 한다. 과거 복지제도를 이야기하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고 한다.


선별복지냐, 보편복지냐 지금도 논쟁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저자는 환곡은 증세 없는 선별복지의 대표적인 예라고 한다. 의도는 좋았으나 결과는 좋지 않았던 제도라고 하면서, 지금 우리는 조선시대 환곡 제도를 통해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복지제도를 생각하자고 한다.


자신은 보편복지가 옳다고 생각한다지만, 독자가 다른 방향에서 생각하더라도 그것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을 거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조선시대 복지제도를 이야기하는 것, 지금 우리 시대 복지제도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는 말이다. 과연 우리는 어떤 복지제도를 만들어가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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