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은 불러보았다 - 짱깨부터 똥남아까지, 근현대 한국인의 인종차별과 멸칭의 역사
정회옥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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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웠다. 읽으면서. 의식하지 않고 쓰는 말 중에 혐오 표현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연하게 여기던 일이 당연하지 않음도, 또 아무런 비판 의식 없이 읽었던 작품들에서도 인종차별이 나타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알려고 하지 않음, 의식하지 않음. 우리나라 인종차별에 대해서는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겠다. 인종차별을 우리가 한다고? 이런 반문을 하는 경우가 많으니.


백인이 흑인을 차별하는 일을 인종차별로만 인식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는데... 알게 모르게 우리는 인종차별을 하고 있음을, 그리고 그 인종차별의 역사는 1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함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인종차별... 피부색만이 아니다. 우선은 피부색에 따라서 차별을 하지만, 경제적 차이가 나는 나라에 따라서 차별을 하고, 또한 종교로 차별을 하는 것도 인종차별이라 할 수 있다.


개화기 때 신문이 처음 우리나라에서 발간될 때, 그 신문 내용에는 인종차별적인 내용이 많았다고 한다. 백인을 우위에 두고, 흑인을 미개한 종족으로, 인디언 역시 미개한 종족으로 이야기한 내용들.


근대화라고 해서 그런 신문을 통해 얻은 지식으로 무장한 개화기 지식인들의 머리에는 은연중에 인종차별이 박혔으리라.


김옥균도 흑인들을 보고 멸시하는 발언을 했다고 하니, 근대화가 곧 백인화를 뜻하는 것이었는지, 식민지 시대에 들어서서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일본이 그렇게 따라가고자 했던 서구화는 곧 백인화였을 테고, 자신들은 백인에 버금가는 종족이라고 주장하고, 이에 따라 사람들을 서열화했던 시기.


유사과학이라고 해야 하나? 혈액형을 가지고 인종계수라는 용어를 사용해 인종차별을 합리화했다고 하니, 참... 


'1919년 독일인 학자 루드비크 히르슈펠트와 한카 히르슈펠트는 혈액형 B형보다 A형이 진화한 형태이므로, 백인일수록 A형의 출현 빈도가 높아지고, 유색인일수록 B형의 출현 빈도가 높아질 것으로 예측했다. 그들은 A형인 사람의 수를 B형인 사람의 수로 나눈 '인종계수'라는 수치를 개발했는데, 분석 결과 그들이 세운 가설대로 백인이 비백인보다 인종계수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 경성의과전문학교 외과교실 교수 기리하라 신이치와 그의 연구팀은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의 인종계수는 1.78인 반면, 한국인은 1.07로 나타났다. ...열등한 한국인은 우월한 일본인에게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는 식민사관으로 이어졌다.' (56쪽)


어처구니 없는 연구지만, 인종차별을 합리화 하는 데는 이런 과학 아닌 과학이 유용하게 쓰였으리라. 게다가 이런 연구들이 우생학을 뒷받침하고 있었을 테니...


해방이 되고 나서 미국의 문화가 들어오면서 인종차별은 더 강화된다. 경제개발이 되면서도 마찬가지고. 이렇게 우리나라의 인종차별 역사는 오래 되었음을 보여준다.


여기에 구체적인 인종차별의 사례로 흑인, 화교, 혼혈인, 동남아시아 사람들, 무슬림에 대한 이야기를 2부에서 하고 있다.


이래도 인종차별이 없다고 할테냐라는 듯이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서 보여준다.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인종차별을 자행하고 있었는지를...


나는 그런 적 없다고? 과연 그럴까? 이 책 제목을 생각해 보자. '한 번은 불러보았다'는 말. 우리는 인종차별적인 언어를 한번쯤은 해봤을 테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자신이 인종차별을 한다는 의식도 없이.


그 점을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감추는 게 많은 나라, 우리가 타자화한 집단들의 역사를 진심으로 반성하지 않는 나라, 이것이 한국을 인종차별 국가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다.'(216쪽)


여전히 반성하지 않는다. 이 책에도 언급되고 있지만 대구에서 무슬림 사원을 건축을 반대하는 시위가 지금도 진행 중이다. 2년이 넘게... 반대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그들이 내세우는 주장은 증명되지 않았다. 전형적인 혐오, 인종차별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요즘은 아예 돼지고기 파티를 하고 있다고 하니... 차별금지법이 없는 나라에서. 그들은 내가 내 집 앞에서 돼지고기를 먹는데 뭐가 문제냐고 하고 있으니...


무슬림들만이 아니라 이주노동자들, 또 결혼한 동남아시아 사람들, 여기에 여전히 흑인에 대한 차별이 있으니.


그래 '한 번은 불러보았'을 그런 차별을 하는 말들을 두 번, 세 번 부르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인식하고 반성하고, 고치려고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오랜 세월 몸 속에 박힌 인식하지 못하는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는 나를 객관적으로 살필 필요가 있다.


남을 살피듯이 나를 살펴야 한다. 외국인들이 우리를 차별하면 분노하듯이, 우리가 외국인을 차별하지 않나 성찰해야 한다. 더불어 한국 국적을 갖고 있음에도 한국인으로 대우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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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호는 신기하게 편집장의 글이 없다. 잘못됐나 하고 찾아보아도 목차에 없으니, 편집장의 글은 생략했나 보다. 작은 변화라고 해야 하나?


  어지러운 세상에 밝은 내용이 실려 있어서 그나마 위안이 된다. 물론 재개발로 인해 쫓겨가는 사람들 이야기도 있지만, 그럼에도 세상은 희망이 있음을...


  김연수 소설 제목처럼 '이토록 평범한 미래'가 있으므로, 우리는 살아갈 수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시골살이에 대한 글도 있는데, 이상한 기후로 인해서 몸이 적응하지 못하는 상태.


인간이 자연을 얼마나 망쳐놓았는지, 기후의 변화로 체감하게 된다. 3월에는 초여름과 같은 날씨가 되어 꽃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빨리 피고 지더니, 4월이 되니, 쌀쌀해진다. 본래 날씨가 어떤 날씨였는지 잊어버릴 지경.


이럴 때 시골살이를 하는 사람들은 자연을 거스리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욕심부리지 않고 흐름대로 살아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남의 것을 더 독차지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겠지. 빈부격차가 벌어지는 대신, 서로가 서로에게 베푸는 삶을 살아가겠지.


이번 호에 실린 빅판의 이야기를 보면 돈이 잘 벌릴 때 주변에 와서 결국 그 돈을 다 날리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남과 더불어 사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남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일이 없어야겠지. 그래서 시골살이에 대한 글들을 읽으며 마음이 편안해진다. 욕심을 내려놓게 된다.


여기에 여성 홈리스들이 자신만의 공간을 마련하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글을 보면서, 재개발로 쫓겨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재개발로 그들이 살 집을 마련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첫번째 글에 빅판들이 전철역에서 활발하게 판매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글을 읽으면서, 그렇게 되는 날들이 왔으면 좋겠다. 음식점 앞에서 권력자에게 아부하려 주욱 도열해 있는 모습이 아니라, 빅이슈를 사기 위해 빅판 곁에 사람들이 있는 모습. 그런 모습을 보고 싶다.


배민영의 글로 마무리한다.


'나는 [빅이슈]만이 만들 수 있는 지하철역 앞 풍경이 다시 펼쳐지기를 소망한다.'(12쪽) 그래, 권력자의 곁에 어떻게든 서 있으려고 하는 모습 말고, [빅이슈]를 사기 위해, 또는 빅이슈 판매원과 함께 하기 위해 곁에 서 있는 모습.


온라인도 좋지만 오프라인에서 직접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빅이슈]를 주고 받는 모습. 그런 모습이 올해는 펼쳐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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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에길을묻다 2023-04-11 1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빅이슈를 읽는 것 만으로도 누군가에게 베푸는 일입니다

kinye91 2023-04-11 10:52   좋아요 0 | URL
빅이슈를 읽는 일이 누군가에게 베푼다고 해주시니 마음에 위안이 됩니다. 받는 삶과 베푸는 삶이 조화를 이루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요즘입니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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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김연수 소설에는 어떤 특징이 있다. 사회 문제를 다루면서도 개인을 놓치지 않고, 또한 사랑이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사랑이 서로를 파멸로 이끌기도 하고, 구원으로 이끌기도 한다. 어쨌든 사람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그의 소설을 통해서 생각하게 되는데...


이 소설에서도 어김없이 사랑이 나온다. 그런데 이 사랑이 남녀간의 사랑이 아니다. 서로 소통이 안 되는 사랑이다. 사랑이 개인을 넘어서야 하는데, 개인에 갇힌 사랑이 이 소설에서 사람들을 파국으로 이끌게 된다.


하지만, 그런 개인에 갇힌 사랑도 개인의 소멸로 끝나지 않음을, 결코 감출 수 없음을, 어떻게든 살아남아 개인에 갇힌 사랑이 어떤 일을 불러일으켰는지를 보여주게 된다.


소설은 현재로부터 시작한다. 입양된 아이. 엄마를 모르는 아이. 여기까지는 상투적이다. 친부모를 찾아 한국에 온다는 설정. 우리가 많이 본 상황 아닌가.


그런데 한국에 와서 상황이 복잡해진다. 진실이 안개 속에 갇힌다. 김승옥 소설 '무진기행'처럼 짙은 안개가 친엄마를 찾는 여정을 가린다.


그 안개는 세월이 만든 안개가 아니다. 사람들이 만든 안개다. 사람들이 굳이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과거다. 그러니 그들은 가린다. 소설 속에서는 이를 매생이국에 빗대어서 이야기하고 있다. 겉으로는 별로 뜨거워 보이지 않으나 속은 엄청 뜨거운 매생이국.


엄마를 찾아 온 이야기가 지나면 엄마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첫번째 장의 주인공은 이제 '너'로 나온다. 그리고 엄마의 과거이야기. 다음은 엄마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 마지막 부부분에서는 양관의 주인이 된 또 다른 남자의 이야기.


이런 이야기를 통해 소설은 진실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간다. 그러나 안개는 완전히 걷히지 않는다. 그 안개 속에서 또다른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은 바로 독자의 몫이라는 듯이.


소설 속에 나온 조선소 노동자들의 파업. 이것은 우리 사회에서 겪었던 문제다. 이 파업을 둘러싸고 깊은 심연이 생긴다. 서로 건너갈 수 없는 심연.


파업 중에 노동자들이 사망하고, 그 사망원인을 한 사람에게 전가한다. 그 역시 견디지 못하고 투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둔 아이들의 개인에 갇힌 사랑이 서로를 더 견디지 못하게 한다.


여기에 또다른 소통 불능의 집. 양관이 등장하고. 하지만 양관은 소통불능의 집에서 소통의 집으로, 서로 건널 수 없게 된 심연을 건널 수 있게 하는 날개 역할을 하게 된다. 심연 속에 갇힌 외로움을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이 양관이다. 


말들을 모아 들려주는 역할을 하는 것. 즉 말을 가두지 않고 날아다니게 하는 것. 양관은 바람의 말 아카이브가 된다. 이렇게 엄마를 찾아온 카밀라는 결국 엄마를 만난다. 거기까지다. 그 이후는 읽는 사람들이 상상해야 한다.


입양과 파업과 죽음. 그리고 아버지를 찾는 과정이 교차하면서 소설은 점점 흥미를 더해간다. 각자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장면. 


제목과 연결지어 생각해 본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다음에는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고 소설이 시작되기 전에 나온다.


소설을 읽다 보면 죽은 엄마의 말로도 이 구절이 나오는데 (228쪽) 세월이 흘러도 사라질 수 없는 사랑이다. 그리고 이 사랑이 결국은 심연을 건너게 한다. 사랑은 사람으로 하여금 심연을 건널 수 있게 날개를 만들어준다.


양관이 바람의 말 아카이브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흥미진진하게, 부모찾기라는 서사로 읽을 수 있지만(엄마는 찾았지만, 아빠가 누구인지는 읽는 사람이 추측해야 한다), 그보다는 무언가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어떤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사랑으로 심연에 빠질 수도 있지만, 다시 사랑으로 심연에서 빠져나올 수 있음을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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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추념식. 


  대통령이 참석을 하지 않았다. 여당 대표도 참석을 하지 않았다. 그냥 자기들이 하고 싶은 일만 하고 말았다.


  정치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원하는 일을 하는 것 아니겠는가.


  민주주의란 자기 권력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서 권력을 위임받아 행사하는 것인데... 어떤 국민이 그들에게 4.3추념식에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지...


아마도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국민도 있겠지... 태영호와 같은 국민의 힘 국회의원은 4.3을 왜곡하는 발언을 해놓고도 무엇을 사과해야 하는지 모른다고 했으니... 이와 같은 사람들을 대변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데...


하지만 적어도 4.3 추념식을 망치는 짓은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뉴스를 보다가 충격을 받았다. 모든 국민이 한 사상으로 똘똘 뭉친 사회도 끔찍하지만, 과거를 이렇게 왜곡하는 사람들이 버젓이 행동하는 사회도 끔찍하다.


그런 행동은 하지 못하게 막아야 하는데... '서북청년단'이라니, 제주도민들 중에 '서북청년단'이라면 이가 갈리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닐텐데...


21세기에 어떻게 서북청년단이라는 이름을 단 옷을 입고 4.3 추념식을 방해할 수 있단 말인지... 그것이 용납이 되고 있다는 말인지... 답답했다.


대통령, 여당 대표가 참석 안 했다는 것도 잘 이해가 가지 않지만, 최소한 '서북청년단'이라는 이름을 건 단체가 4.3추념식에 나타나는 일은 막았어야 하지 않나. 그것이 4.3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아닌가. 사람에 대한 예의 아닌가.


예의와 염치가 없는 사람들이 활개를 치고 있음을 이번 4.3추념식에서 보고 이건 아니라고, 정말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영화 '지슬'이 있다. 이들이 영화 '지슬'을 볼 리가 없겠지만, 적어도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은 봤으면 좋겠다.  


영화 볼 시간이 없겠지... 정치를 하시느라 워낙 바쁘신 분들이니까. 하지만 적어도 왜곡된 시각을 지니지 않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하지 않나.


북한에서 외교관 활동을 하시다가 우리나라 국회의원이 되신 태영호 의원은 특히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떤 점에서 사과해야 하는지 이 영화를 보면 알 수 있을테니.


영화 볼 시간이 없으면 20-30분만 투자하면 되는, 영화를 바탕으로 만든 책 '지슬'을 읽기 바란다.


거의 끝장면에서 '그만 죽이세요'라는 말... 이 말을 전해주고 싶다. 말로 4.3을 그만 죽이고, 극우단체가 시위를 통해서 또 한번 죽이는 그런 행동은 그만하라고.


영화 포스터에 있는 문장처럼 아직도 '끝나지 않은 세월'인가 보다. 나라에서 추념식을 하는 4.3인데도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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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23-04-08 15: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치를 외면하는 가장 큰 댓가는 저열한 인간들에게 당신이 지배를 당하게되는 것이다 ㅡ국가론, 플라톤
같은 내용의 댓글을 2번째 씁니다. 메르켈이라는 정녕 위대한 인물을 가졌던 독일인들이 하염없이 부러울 뿐입니다.

kinye91 2023-04-08 15:40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 헌법 제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 조항을 정치인이 명심하게 해야 하는데, 몇몇 정치인이 생각하는 국민의 개념이 좀 다른 것 같아요. 국민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인지시킬 필요가 있단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Vanessa 2023-04-08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원더보이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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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보이', 경이로운 소년이다. 초능력이다. 남의 생각을 읽을 줄 아는. 남의 생각을 읽을 줄 안다는 말을 다른 말로 바꾸면 다른 사람에게 공감할 수 있다는 뜻이다. 공감하면서 공명할 수 있는 능력. 이 공명의 능력은 혼자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공명은 퍼져나가야 한다. 물결이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가듯이, 공감은 공명을 통해 사람들에게 퍼져나간다. 이런 공감의 능력, 공명이 바로 우리들을 좀더 나은 삶으로 이끄는 동력이 된다.


이 소설은 사고로 아빠를 잃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아빠를 잃는 순간, 특별한 능력을 얻게 된다.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된다. 그냥 그렇게 초능력자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면 이 소설의 배경인 1980년대를 빼놓은 것이 된다.


전두환 독재시대... 많은 사람들이 제 할 말을 못하고 살던 시대. 자기 마음을 감추고 살아야만 했던, 그런 시대에 공감하는 능력, 사람들과 공명하는 능력은 초능력이다. 그리고 이렇게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아이를 통해서 사회의 문제를 드러낸다.


아빠, 결코 애국자와는 거리가 먼 아빠가 간첩을 잡기 위해 희생한 사람으로 둔갑한다. 정보부에 의해서. 이는 자신이 권력을 쥐기 위해서 사건을 조작하던 당시 권력을 추구하던 인간들의 모습을 권대령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나타낸다. 여기에 부화뇌동하는 인간들까지.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도 등장해야 한다. 고문당하는 사람들, 그 마음을 읽었기에 견딜 수 없었던 주인공. 그가 탈출해 만나는 사람들. 그들이 겪어야 했던 시대의 아픔. 그 아픔을 알아가면서 그도 조금씩 성장해 간다.


물론 그 아픔을 알게 되면서, 사람에게 마음을 주면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은 점점 사라진다. 당연한 일이다. 이미 자신의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주었기 때문에, 그 사람 이외의 사람들 마음을 자연스레 읽을 수는 없게 된다.


그렇다고 그 마음 읽는 능력을 온전히 잃게 되지는 않는다. 다른 방식으로, 직접적으로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아닌, 그들과 함께 지내면서 있는 정답을 찾는 행위가 아닌, 질문을 만들어가는 방식으로 사람들 마음을 읽게 된다.


이런 전개 방식으로 인해서, 소설은 주인공의 엄마를 통해서 분단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강토로 살아가려고 하는 희선을 통해서 1970년대 박정희 시대를 소환하기도 한다.


1987년이 되기 전까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독재시기를 거쳤던 우리나라. 그 시기를 살아가던 사람들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를, 다른 사람 마음을 읽는, 고아가 된 주인공 김정훈을 통해서 소설은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1986년을 거치면서, 1987년... 소설은 그 87년에서 끝난다. 우리 시대의 겨울도 그렇게 끝났으면 좋으련만, 지금 우리는 그 이후의 시대를 살고 있으니, 소설 이후의 세계를 우리는 살고 있다.


여전히 우주는 젊고, 우리는 할 일이 있다. 소설의 끝에서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 만약 누군가 그런 짓을 하려고 든다면, / 우리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 뭐라도 할 것이라고 /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 / 우린 혼자가 아니라고' (319쪽)


아직도 갈 길은 멀지만, 그만큼 우리에게 당도하지 못한 밝고 따스한 별빛들이 많지만, 그럼에도 그 빛들은 언젠가 도달할 것이라는 믿음은 잃지 않는다.


답이 고정되어 있지 않음을, 답은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임을, 그 답을 제대로 찾기 위해서는 질문을 잘해야 함을 이제는 알기 때문에...


마음을 읽는 능력을 잃어가지만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질문을 하게 되는, 이제는 주변을 볼 수 있게 되는 주인공처럼, 그렇게 우리는 지내왔기에.


그럼에도 역사는 직선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세상은 단선적이지 않다. 복잡하게 나아간다. 앞으로도 옆으로도 때로는 뒤로도. 하지만 소설에서 말하듯이 이미 겪은 일들은 우리에게 답을 찾는 능력을 주었다. 소설에 바보와 모범생과 천재의 읽기가 나오는데, 적어도 우리는 바보의 읽기는 끝냈으므로.


처음에는 상황이 비극적이지만 밝고 경쾌하게 진행되던 소설이 조금씩 무거워지더니, 우리나라가 거쳐온 독재 정치를 정면으로 다루고, 1987년으로 나아간다. 


고립된 개인, 다른 사람의 고통에 무감각한 개인들의 사회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고 공명하는 사회로 나아간 우리 사회의 모습을 사고로 초능력을 얻은 주인공을 통해서 잘 보여주고 있는 소설이다.


가볍지만 무겁다고 할 수 있고, 무겁지만 경쾌한 전개를 보여주고 있는 소설이다. 소설 마지막 부분, 행갈이를 한 그 문장들... 왜 2023년인 지금 머리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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