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키 하우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에프 모던 클래식
커트 보니것 지음, 황윤영 옮김 / F(에프)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25편의 단편소설들. 커트 보니것이 유명해지기 전에 쓴 소설들. 이미 그가 어떤 소설을 쓰게 되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소설들.


다양한 형식과 내용이 이 작품집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어느 한 쪽으로만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글쓰기를 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그러면서도 보니것 특유의 유머와 풍자가 담겨 있고, 또 평화 사상이 담겨 있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 시기를 다룬 소설 '유인 미사일'을 보면 냉전시기에 희생당한 사람들의 모습,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기지 않고 인간으로 대하는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소련과 미국의 조종사(우주비행사)들이 우주에서 충돌해 죽은 다음, 그 아버지들이 편지로 자신들의 마음을 표현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는 소설. 전쟁광인 군인들이 아니라 냉전으로 피해를 보는 사람들을 다룸으로써 보니것은 전쟁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됨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반전-평화를 다루는 소설로는 '반하우스 효과에 관한 보고서'가 있는데, 초능력이라고 할 수 있는 염력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인간이 다른 존재를 다룰 수 있는 초능력이 있다면 어떻게 할까?


다른 나라의 무기를 파괴하는 쪽으로 사용할까? 그런데 왜 다른 나라의 무기를 파괴하려 하지? 그것은 다른 나라를 적국으로 간주하고, 자신들의 평화를 위협한다는 인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의 무기를 파괴하면 그 나라는 가만히 있는가? 그 나라는 침략받았다고 생각해 다른 보복 수단을 강구하지 않겠는가. 이러면 서로가 무기를 증대할 수밖에 없고, 서로서로 적대행위를 멈출 수 없게 된다.


끝없는 적대행위, 무기 개발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 맞닥뜨리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냉전시대 핵무기 개발의 역사 아니던가. 평화는 무기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힘의 균형이라고 하지만, 그 균형을 이루기 위해 더 많은 무기들을 개발하고, 거기에 많은 희생이 따른다. 보니것은 반하우스라는 초능력(염력)을 지닌 사람을 등장시킴으로써 인간이 전쟁을 위해 일하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자, 보니것 특유의 풍자를 보자. 특출한 능력을 지닌 반하우스 교수는 세계 평화를 위해 무기를 파괴하기로 한다. 특정한 나라가 아니라 모든 나라의 무기를...


'그날 이후, 당연히 반하우스 교수는 전 세계의 무기를 체계적으로 파괴해 오고 있고 급기야 지금은 돌멩이나 뾰족한 막대기 외에는 군대를 무장할 만한 것이 거의 없다. 그의 활약이 정확히 평화로 귀결되지는 않았고 오히려 '폭로 전쟁'이라 불릴 수 있는 무혈의 재미있는 전쟁을 촉발시켰다. 모든 나라는 적국의 간첩들로 넘쳐 나고 있으며 이 간첩들의 유일한 임무는 군사 장비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런 뒤 그 군사 장비를 언론에 보도해 반하우스 교수의 주의를 끌기만 하면 그 군사 장비는 즉각 파괴되었다.'('반하우스 효과에 관한 보고서' 272쪽.)


참 통쾌한 풍자다. '무혈의 재미 있는 전쟁'이라니... '폭로 전쟁'이라니... 마치 "쟤가 그랬어요."라고 일러바치는 아이들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표현. 일반 시민들에게는 피해를 입히지 않는, 반하우스 교수의 행동.


그럼 세계 권력자들은 어떻게 행동할까? 오히려 반하우스 교수의 행동에 찬사를 보내고, 자신들이 무기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해야 하지 않을까? 아니,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떻게든 반하우스 교수의 거처를 찾아내 그를 제거하려 한다. 이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보니것은 전쟁이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평화를 위한 노력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을 '반하우스 교수는 죽을 것이다. 하지만 반하우스 효과는 아니다'('반하우스 효과에 관한 보고서'. 275쪽)라고 표현하고 있다. 


전쟁으로 인한 비극을 겪은 작가인 보니것. 그는 평화를 염원한다. 전쟁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받는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어린아이들에게는. 전쟁으로 인해 겪게 되는 어린아이들의 고통을 '난민'이라는 소설을 통해 보여주고 있으니...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아이들. 자신의 아빠를 찾으려는 모습을 통해서 아이들이 겪는 고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집에는 아이에게 관심을 보이는 소설이 몇 편 있다. 미래를 살아갈 세대가 현재에 고통을 받는 것을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거짓말'이란 소설을 보면 명문고 입학과 관련된 일들이 나타나는데, 우리나라 역시 '특목고'라고 해서 그러한 일을 겪고 있다. 여기에 소위 명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의 행태. 하지만 보니것은 명문가 사람들도 염치가 있음을 소설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데...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아이가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고, 그것으로 인해 고통받는 모습과, 어른들의 위선을 잘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염치 있는 명문가 사람의 모습인데... 우리는 과연 그런가? 


우리나라에서 잘나간다고 하는 집안 사람들, 과연 염치가 있는가? 그들이 자식들을 위한답시고 한 행태들을 보라. 예의, 염치는 사전에만 존재한다. 적어도 보니것은 명문가라면 그래도 염치는 있어야 한다는 점을 등장인물인 리멘젤 박사의 모습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자식의 문제에 이성을 잃고 특별 입학을 부탁하는 그의 모습. 그러나 거절당하고서야 자신이 잘못했음을 깨닫는 그의 모습을 통해서 그나마 염치가 있는 명문가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는 그래서 '이제 우린 더 이상 여기에 오지 못할 것 같아요.'('거짓말'. 361쪽)라고 하고 있으니... 우리나라 있는 집안 사람들에게서도 이런 태도를 기대한다면 무리일까?


또한 아이를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 세상에 문제아는 없다. 문제 어른, 문제 사회가 있을 뿐이다라는 말을 연상시키는, 또 최근에 나온 클레어 키건의 [맡겨진 소녀]를 연상시키는 '아무도 다를 수 없던 아이'라는 소설도 많은 여운을 준다. 그 아이의 마음을 여는 것은 어른과 사회의 몫이라는 것을...


이밖에 다른 소설들도 좋다. 환상적인 내용의 소설도 있고, 일본 소설가인 가카야 미우가 쓴 [70세 사망법안, 가결]이란 소설을 연상시키는, 생명 연장으로 사회가 겪게 되는 모습을 그린 '내일, 내일, 그리고 또 내일'이란 소설도 지금 현대 의료과학이 추구하는 현실에 비추어 읽어볼 만하다.


돈만으로 자신의 행복을 사지는 못한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포스터의 포트폴리오'라는 소설도 돈이 인생의 궁극적 목표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게 하고... 


다양한 소설들을 통해 다양한 주제들을 우리에게 선보이고 있으니... 보니것의 초기 단편들이지만 그의 소설 세계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소설집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성격을 팝니다 - MBTI의 탄생과 이상한 역사
메르베 엠레 지음, 이주만 옮김 / 비잉(Being)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MBTI


익숙한 언어다. 자신을 소개할 때 이 검사 결과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0000라고, 네 알파벳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그러면 상대방도 '아, 그러시군요. 저는 0000이에요.'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통하는 이유가 네 개 중에 몇 개가 일치하기 때문이라고, 또는 맞지 않는 이유가 네 개 중에 몇 개가 맞지 않아서라고, 그리고 자신이 이렇게 저렇게 행동한 이유가 이런 성격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떤 학교에서는 이 검사를 통해 학급을 나누어야 한다는 말도 한다. 적절한 검사를 통해 비슷한 성향의 학생들로 학급을 구성하면 학급 운영이 수월해질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그런데 교육은 바로 다양성 아닌가?


교육을 받는 이유는 비슷한 것 속에서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름 속에서 함께 어울리는 법을 찾기 위해서 아닌가. 그러면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 검사를 통해서 16가지 성격 유형을 비슷하게 섞어 놓은 학급을 만들면 되지 않겠냐고...


이런 주장이 가능하려면 MBTI가 객관적이고 신뢰성이 있는 검사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과학적으로 입증이 된 검사라는 확인을 하지 않으면, 이것을 통해 무엇을 하는 것은 믿음의 차원이지 과학의 차원은 아니다.


그렇다면 MBTI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재미로 MBTI 검사를 하고 진지함에 빠지지 않고 재미 삼아 MBTI 성격 유형을 이야기 할 수는 있지만, 공적인 자리에서 MBTI 검사를 활용하려면 MBTI가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 큰 혼란만 초래할 뿐이다. 


이때 혼란은 MBTI로 모든 것을 수렴하는 것을 뜻한다. 바꾸려는 노력도 없이 '내 성격이 그러니까 어쩔 수 없어'라고 하거나, 린 상극인 성격 유형이니 맞지 않는 게 당연해, 거리를 두자.'고 하는 태도들, 이것은 혼란이다.


이런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객관적으로 검증된 방법을 공적인 영역에 도입해야 한다. 그러니 교육의 현장에 MBTI를 도입하는 것은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이 책을 읽으면 MBTI는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방법이라고 하니까.


또한 상업적으로 너무 남용이 되고 있고, 검사 결과가 수시로 바뀌기도 한다고 하니, 사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몰라도 공적인 자리에서는 조심할 필요가 있다.


이 MBTI의 역사에 대해서 추적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사실 MBTI를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하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서 MBTI에 관한 언급을 너무 많이 함에도 불구하고, 그냥 재미로 하는 일이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


입시에, 취업에, 그리고 자신의 진로에 MBTI를 적용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고, 또 그것을 굳게 신뢰하는 사람도 많다고 하니, MBTI의 역사에 대해서 아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MBTI.  영어가 아니라 우리말로 적어보면 마이어스-브릭스 성격 유형 탐구 정도가 될 것이다. 여기서 마이어스와 브릭스는 사람 이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모녀지간이란다.


캐서린 브릭스와 이사벨 마이어스가 평생에 걸쳐서 연구하고 만들어낸 성격 검사. 그들은 사람들이 행복을 목적으로 이런 성격 유형 검사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엄마인 캐서린 브릭스의 B가 앞에 오지 않은 이유가 재미 있는데... BM이라고 하면 배변(bowl movement로 책에 인쇄돼 있는데, 아마도 bowel movement의 오타일 것이다)을 연상시키기 쉬워서 딸의 이니셜인 M을 앞에 놓았다고 한다.(359쪽) 


자기에 맞지 않는 일을 하면서 고통받지 않도록,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과 만나 힘들어 하지 않도록, 또한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도구로 MBTI를 만들었다고.


의도가 얼마나 좋은가? 사람들이 자괴감에 빠지지 않도록 더 많은 고통에 내몰리지 않도록,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성격 유형 검사. 이것이 긍정적인 작용을 한 경우가 많음은 우리 사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렇다.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도구가 있다면 사람들은 마냥 부정의 늪에서 헤매지 않을 수 있다. 자신이 왜 그런지 설명할 도구가 있으니까. 그것을 합리화해 줄 성격 검사지가 있으니까. '나는 0000라서 그래'라고 하면 되니까.


이러한 긍정적인 면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것에만 치우치면 그 속에서 자신을 잃게 된다. 자신의 다양함을 단순함으로 축소시킬 위험이 있기 때문인데... 캐서린과 이사벨의 의도가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많은 과학기술이 그러하듯이 의도를 배반하는 경우도 많으니...


하지만 이 검사 유형을 만들기 위해 모녀가 한 노력은 인정해야 한다. 그 과정에 대해서 저자도 인정하고 있다. 그들의 선한 의도에 대해서도 의심하지 않고. 돈을 목적으로 만든 사람들이 아니니까. 


그럼에도 이것에 전적으로 매몰되면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지금까지도 이 MBTI 검사는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이 정설이니까. 


다만, 자신을 긍정하고 더 나은 자신을 향해 나아가는 초석으로 삼을 수는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MBTI가 만들어진 과정을 쓴 이 책을 읽으니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드는데... 저자 역시 이렇게 MBTI의 긍정적인 면을 이야기하고 있다.


'MBTI는 응시자들에게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자신을 비정상이라 생각하고 부끄러워하던 이들이 그 마음을 떨쳐 버리고 자기 자신을 구원할 기회를 얻었다. 다른 사람들과의 유사점들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차이점들은 격려할 수 있게 해주었다.' (403쪽)


이것이면 된다. 자신을 좀더 나은 쪽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디딤돌로 MBTI를 이용하는 것. MBTI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나와 상대를 이해하는 하나의 도구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MBTI가 탄생하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을 흥미롭게 풀어간 책이다. MBTI를 마냥 비판하지 않고, 긍정과 부정 사이의 균형을 잘 잡고 있다. MBTI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그 역사를 알려주고 있는 이 책을 읽으면 좋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릴 때 읽었던 전래 동화 중 하나. 토끼의 재판.


  나그네가 호랑이를 구해줬는데, 호랑이가 잡아먹으려 하자 다른 존재들에게 판결을 부탁한다는... 그러나 인간에게 감정이 좋지 않았던 존재들은 호랑이가 나그네를 잡아먹어야 한다고 하는데, 그때 토끼가 내가 상황을 잘 모르니 처음 상황을 보여달라고 하고, 그 상황에서 나그네에게 갈 길을 가라고 했다는...


  현명한 판결. 이러한 판결하면 솔로몬이 생각나고, 또 중국의 포청천도 생각이 나는데...


  이들의 판결이 가진 공통점은 무엇일까? 강자라고 해서 잘못을 덮어주지 않는다는, 정의를 세운다는 점. 남들이 수긍할 수밖에 없는 판결이라는 점. 


그런데, 이런 판결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하나? 편견이 없어야 한다. 권력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또한 옳고 그름을 판단할 눈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약자의 처지를 살필 수 있는 마음을 지니고 있어야 하고, 현재보다도 미래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전향적인 판결. 이는 글자에 매인 판결이 아니다. 법전을 아무리 읽어도 법전에 나와 있는 문구대로 세상은 돌아가지 않는다. 사람도 그런 글자대로 행동하지 않는다. 글자에 나와 있지 않은 것들, 그것을 읽을 수 있을 때 좋은 판결을 할 수 있다.


시대를 읽고, 사람들 마음을 읽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책만 봐서는 안 된다. 사람을 만나야 한다. 그들이 읽을 책은 법전이 아니라 -법전은 이미 읽었을 테고, 그것은 필요조건이 되지만 - 사람이어야 한다. 사람책을 읽어야 한다. 


권력을 지니고 있는 사람책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책들... 그 사람책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판결이 사람들의 판단, 감정과 시대의 흐름에 어긋날 수도 있다.


제가 알고 있는 법전 속에만 갇혀 있으면... 노력을 하지 않으면... 엘리트들이란 그래서 더욱 힘든 길을 가는 사람들이다. 자기가 살아온 환경과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을 읽어야 하니까. 읽고 그들을 이해하고 앞으로 다가올 시대에 맞는 판결을 해야 하니까.


토끼의 판결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자신의 힘으로만 해결하려고 하는 그러한 존재를 응징한 것이었다고 본다. 토끼를 잡아먹기도 하는 사람이기에 사람에게 좋은 감정만 있는 것은 아니었을 터인데, 그 상황에서는 호랑이가 분명 잘못했기 때문이다. 즉 토끼는 편견에 갇혀 있지 않았다.


자신이 살아온 환경만 보지 않았다. 그런 토끼의 이야기가 계속 되어온 것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그런 상황에 자주 빠지기 때문이다. 호랑이를 구해준 나그네와 같은 상황.


이런 현명한 판결을 하는 존재를 법관이라고 생각했다. 법관은 정말 중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판결을 통해 한 사람의 운명을, 어떤 때는 한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러니 이들은 정말 신중해야 한다. 권력자들이 아니라 시민들을 살펴야 한다. 시대의 흐름을 읽어야 한다. 그리고 시대의 흐름에 맞춰 시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판결을 해야 한다.


시민들의 눈높이에도, 시대의 흐름에도 맞지 않는 판결을 하면서도 자신들이 엘리트라고, 자신들은 오류가 없는 판결을 한다고 자부한다면, 그들이야말로 판결을 할 자격이 없는 존재다. 그런 존재들이 득시글하는 곳은 바로 똥통에 불과하다.


똥통에서 그 냄새에 익숙한, 그래서 다른 좋은 냄새를 오히려 악취라고 여기는 똥파리와 같은 존재들이 된다. 자신들은 그 냄새를 맡지 못할 뿐... 남들은 다 맡고 코를 가리고 있는데...


이동재 시집 [민통선 망둥어 낚시]를 읽다가 몇 구절에서 요즘 판결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 특히 '남원에서 역사책을 보다가 현실을 돌아봄'(101쪽)이란 시에서는, 햐, 이런 것들이 엘리트라고, 이런 것들을 관료라고... 하는 탄식이 절로 나왔는데...


작년 12월 어느 날 국무회의 장면이 겹쳐지기도 한다.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자기 주장을 강하게 하지도 않고 그냥 몸보신하는 그런 회의. 마찬가지로 힘있는 자리에 있는 자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책임을 모면하려는 노력만 하는...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행동은 하지도 않으면서 자기들을 비판하면 '감히~' 하는 듯한 태도. 


이 시를 읽어보면 임진왜란 때 관료들의 모습... 저만 살려고 하는, 백성들은 안중에도 없는 그런 관료들의 모습이 그때의 관료들과 겹쳐진다. 그러면서 그들을 합리화하려는 듯한 비슷한 족속들... 똥통 속의 그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좀 다른 상황인데, 이 시집에 엘리트라고 하는 교수 사회의 모습을 그린 '똥통에서 보낸 한 철'(105쪽)시가 있다. 어디 이것이 그곳만의 문제이겠는가마는... 지금 이런 똥통이 곳곳에 있으니... 저들만 자기들이 똥통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큰소리치고 있을 뿐.


   똥통에서 보낸 한 철

- 이 시대의 정의로운 한 인물을 기리며


그 동안 똥통에 빠져 있었던 기분이라고 했던가

이태리 유학까지 갔다왔다는 그의 목소리가

명색이 성악이 전공인 그의 목구멍에서

오 년 내내 치밀어 올랐을 욕지기

학교 문닫고 교수직에서 해임된 그가 한 말,

그가 말한 똥통이 비단 광주예술대뿐이겠는가

사방에 냄새나는 입을 쩍쩍 벌리고 있는

저들의 입이 모두 똥통이 아닌가

코 싸쥐고 싶은 똥통 천국,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으으, 너도 구더기

아악, 나도 구더기.


이동재, 민통선 망둥어 낚시. 하늘연못. 1999년. 105쪽.


* 이보령 교수는 광주예술대학 교수협의회 회장이었음.


하여 앞의 시 '남원에서 역사책을 보다가 현실을 돌아봄'에 보면 '이 벼락맞을 놈들 백성들 버리고 저만 살겠다고 삼십육계 줄행랑을 놓는구나, 그 놈들 후손들 또 지금도 곳곳에서 뒤꽁무니 길게 빼고 좇빠지게(아마도 좆의 오타이지 않을까 싶다. 좇이 아니라 좆. 참 적절한 비속어 사용이다.) 뛰고 있는 건 아닌지 그들의 수많은 성씨가 지금 네 연구실 앞에 걸려 있는 건 아닌지 족보 좀 뒤져봐라 이 잡것들아, 책 옆에 끼고 사는 것이 정녕 부끄럽지 않은가.' (101-102쪽)라는 표현으로 나오고 있다.


소위 지식인아고 하는 것들이, 사회 엘리트라고 하는 것들이 하는 짓이 없는 사람들 등쳐먹기, 위기에 저만 살려고 도망치기, 다들 살기 힘들 때 재산 축적하기, 권력자에게 잘보이기 등이라면... 정말, 이런 자들을 어떻게 엘리트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동재 시집을 읽으며 작년 겨울과 지금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마음이 겨울로 가고 있다. 찬바람이 쌩쌩 불어온다. 방한복을 입어야 하는데, 누가 따뜻한 모닥불을 지펴줄 것인가. 엘리트들? 아니, 그건 바로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몫일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사람책은 엘리트들 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이 더 잘 읽을 테니.


바로 우리 곁에 있는 '사람책'을 읽을 줄 알아야 똥통에 빠지지는 않을 텐데... 적어도 자신이 똥통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 텐데... 그런 생각을 하게 한 시. 랭보가 쓴 '지옥에서 보낸 한철'을 연상시키는 제목... '똥통에서 보낸 한 철' 


우린 그렇게 다시 똥통에서 한 철을 보내면 안 된다. 정녕 그런 세월을 다시 겪어서는 안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창문 위픽
정보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폐교된 대학교 기숙사를 개조해서 만든 이 기계학습센터는 산골짜기 한가운데 있었다. 냉난방 비용 절감을 위해서인지 창문을 거의 판자로 막아놨지만 에어컨 호스가 연결된 곳만 한 뼘 정도 창문 유리가 노출되어 있었다.'(12쪽)


주인공이 살게 된 곳을 묘사한 부분이다. 돈이 없어서 자신의 두뇌를 업로드 하는 조건으로 입주하게 된 곳. 이곳은 '안에 들어가서 복도와 방 구조를 실제로 보고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교도소였다. 감방에는 창문이라도 있으니까 사실 교도소가 여기보다 나은지도 모른다'(14쪽)는 표현으로 갈 데가 없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해서 들어온 곳이다.


자신의 뇌를 업로드하는 조건으로 주거를 해결하고 돈도 어느 정도 받는.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결국 자신을 팔아서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 그들이 사는 곳은 폐쇄된 곳이다. 스스로 폐쇄했다고 하기보다는 폐쇄된 공간으로 내몰린 사람들.


이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좋겠지만, 신영복 선생이 어떤 글에서 한 말처럼 한 여름의 감방 안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라고, 약자들에겐 약자들을 괴롭히는 또 다른 약자가 있다.


강한 자에게는 아무 소리도 못하면서 자기보다 약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에게는 강하게 구는, 그야말로 강약약강인 존재. 소설에서는 그런 이를 '또라이'라고 하는데, 이런 또라이는 특이한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생활에서 만날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어디에나 통계적으로 열 명 중에 한 명 정도는 또라이가 있는 법이고 주변에 아무도 또라이가 없으면 내가 그 또라이라고 하지 않던가'(17쪽)라는 표현으로, 소설은 또라이를 등장시킨다. 어떤 또라이?


바로 자신도 같은 처지이면서 약자를 더 괴롭히는, 약자를 괴롭히면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그런 또라이. 915호 사람이다.


그가 괴롭히는 사람은 이주노동자인 요가 강사다. 자신의 나라에서 엔지니어였다는 요가 강사. 하지만 이 나라에 온 그는 여기저기 돈을 벌기 위해 다니는 사람일 뿐이다. 약자들에게도 무시당하는 그런 사람.


여기에 주인공을 또 만만하게 보는 915호. 그에게는 자신의 먹잇감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또라이 짓을 한다. 하지만 약자가 언제까지 약자일 수는 없는 법.


폐쇄된 공간에서 쫓겨난 915호는 이제 그곳에 있는 약자들에게 군림할 수가 없다. 그는 그런 세계에서도 쫓겨난 사람. 그걸 인지하지 못하고 강하게 굴려 했을 때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응징. 그는 약자로 전락하고 피해자가 된다.


이렇게 소설은 약자들을 보여준다. 이들은 강자에게는 어떤 저항도 하지 않는다. 않는다가 아니라 못한다고 해야 하나. 그러나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 중에 자신보다 약한 사람에게는 한없이 강하게 나간다. 그렇게 그는 가해자가 된다. 하지만 이 가해는 언제까지 지속될 수 없다. 그 역시 약자니까. 가해와 피해가 뒤집히는 것은 순간.


이런 사회의 모습이 바람직할까?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 사회는 '폐교된 대학교'라는 표현처럼 사회의 구실을 못하는 사회일 뿐이다. 그런 사회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교류하는 창문이 없다. 그 창문은 아주 조그마해서 많은 것을 보지 못하게 한다.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보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사회의 모습을 정보라는 소설에서 보여주고 있다. 폐쇄된 사회에서 서로가 서로를 돕는 것이 아니라 남을 누름으로써 자기 존재를 과시하는 사람이 있음을. 그러나 그런 사람은 그 사회에서 오래 존속하지 못함을. 오히려 서로를 도와주는 관계가 오래 감을. 그것이 바람직한 방향임을.


비록 가해에 공모하지만 주인공과 요가 강사의 경우가 그렇다. 이들은 서로를 이해한다. 자신이 완전히 해결할 수는 없지만 할 수 있는 정도까지는 최선을 다해주는 요가 강사와 그런 요가 강사에게 고마워하고 그를 존중하는 주인공. 이런 관계들이 지속되어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데...


그런 관계는 조그만 창문으로 빛이 들어오는 것과 같은 관계다. 915호같은 사람과의 관계는 판자로 막아놓은 창문이고.


자 우리는 어떠해야 하는가. 그 조그만 창문을 마저 가려야 하는가? 아니면 판자로 막아놓은 창문에서 판자를 떼어내야 하는가? 판자를 떼어내고 더 많은 부분을 봐야 한다. 함께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우리 사회를, 보여주는 것만 보는 것이 아니라 보여지지 않는 부분까지 보아야 한다. 그것이 '창문'의 역할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한다. 닫힌 세계를 열린 세계로 여는 것은 결국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915호 같이 더 닫는 그런 존재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그런 소설. 짧지만 재미있게 읽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알폰스 무하, 새로운 스타일의 탄생 - 현대 일러스트 미술의 선구자 무하의 삶과 예술
장우진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2월
평점 :
품절


잘 알고 있지 못한 화가. 어디선가 이름은 한번 들어본 것 같은데, 그가 무슨 그림을 그렸지 했는데, 이 책에는 그의 그림이 많이 실려 있다.


화려한 그림들... 장식미술가로 알려져 있다고 하던데, 당시에 광고 그림을 그렸던 화가. 아니 광고 그림만을 그렸던 화가가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광고 그림으로 알린 화가라고 해야겠다.


그가 말년에는 슬라브 민족주의 그림을 그렸고, 또한 단지 광고만이 아니라 연극 무대의 배경이나 특이하게도 보석 디자인까지 했다고 하니...


무엇보다 이 책은 무하의 작품을 많이 실어서 좋다. 그림을 보는 재미가 너무 좋다. 이런 그림들, 어디에서도 호감을 받을 그림들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림을 보는 순간 환상의 세계로 들어선 듯한 느낌을 주고 있으니, 그림을 통해서 다른 세계를 만나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준다.


책에 실린 그림만 봐도 디자인이 거부감을 주지 않는다. 눈길을 끈다. 그리고 글자와 그림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이러니 당시에 무하의 그림을 많은 광고주들이 원했겠지. 무하가 너무 많은 작품 활동에 시달렸다고 하니...


그럼에도 무하는 정말 성실한 작가였다고 한다. 자신이 부족한 점을 그 성실성으로 메울 수 있었던... 처음으로 프레스코화를 의뢰받았을 때도 처음부터 공부를 다시 해서 좋은 작품을 남겼다고 하고, 조각을 할 때도 또 유화를 그릴 때도 그의 성실성으로 인정받는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를 장식미술가로만 취급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어쩌면 앞서 활동한 앤디 워홀이라고 해야 하나? 예술가들 중에 예술가들을 구분하는 사람들이 있다. 순수예술과 상업예술로 크게 나누고, 상업예술을 하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경향도 있었고...


예술을 그렇게 나눌 수가 있나? 하긴 문학에서도 장르문학이라고 해서 수준이 떨어지는 문학으로 취급한 적도 있었으니... 과거의 일이다. 지금은 그러한 구분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예술은 예술일 뿐이니... 길거리 미술, 길거리 음악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무하의 그림은 우리에게서 떨어져 있는 그림이 아니라 우리 생활에 밀착해 있는 그림이다. 그래서 더 친숙하고 반감이 가지 않는지도 모른다. 처음 보아도 와, 멋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니...


그러한 무하의 생애와 그림을 이 책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참 많은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는 책.


그의 초기 작품 한 편을 여기 소개한다. '지스몽다'라는 작품이다. 1895년 작품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풍의 그림들이 많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