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헌책방에 간다. 알라딘에서 운영하는 헌책방을 중고서점이라고 하는데, 나에겐 중고서점이라는 말보다는 헌책방이라는 말이 더 정감있게 다가온다.


  다른 사람의 손때가 묻은, 누군가가 한번은 읽은, 그런 사람을 거쳐서 다시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는...


  결코 읽기를 마치지 않는, 계속 돌고돌아 읽어야 하는 그런 책들이 다음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곳.


  '헌'이라는 말이 낡았다는 말이 아니라, 내게는 '다른 사람들의 손을 거친'이라는 뜻을, 그러니 '다른 사람의 마음에 영향을 준'이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헌책방에 가기를 멈추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고, 너무도 빨리 절판이 되고 품절이 되는 이 시대에, 조금 오래 된 책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헌책방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헌책방에서 시집이 꽂혀있는 서가를 훑어보다가 민영이라는 이름을 발견했다.


어, 민영 시인에게 이런 시집이 있었나? 아니, 한길사에서 시집을 냈다고? 하는 의문. 반가움. 고민도 없이 손에 들었다. 


시들이 난해하지 않다. 시인이 50대 후반 들어 쓴 시들이라고 하는데, 자신의 과거 이야기도 실려 있고, 인디언들을 보고 난 마음을 담은 시들도 있고, 그리고 1980년대 후반 우리 시대를 바라보는 시각을 담은 시들도 있다.


그 중에 제목이 된 시 '바람 부는 날'을 본다.


바람 부는 날


나무에 

물 오르는 것 보며

꽃 핀다

꽃 핀다 하는 사이에

어느덧 꽃은 피고,


가지에 

바람 부는 것 보며

꽃 진다

꽃 진다 하는 사이에

어느덧 꽃은 졌네.


소용돌이치는 탁류의 세월이여!


이마 위에 흩어진

서리 묻은 머리카락 걷어올리며

걷어올리며 애태우는

이 새벽,


꽃피는 것 애달파라

꽃지는 것 애달파라!


민영, 바람 부는 날. 한길사. 1991년. 11-12쪽



우리나라 현대사 탁류에 비교할 수 있다. 정말 거칠게 빠르게 험하게 흘러온 역사. 그 탁류에서 중심을 잡으며 살아온 사람들.


탁류를 맑은 물로 바꾸어간 사람들. 그들이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세월은 흘렸고,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 와 있다. 피고 지고의 의미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이 피고지고의 반복으로 지금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살고 있으니. 


이렇게 되기까지 지내온 세월에, 피었다 진 사람들을 생각하면 애달플 수밖에 없다. 바람 부는 가을 날 민영 시집을 읽으며 지나온 세월을 생각한다. 최근까지도 우리는 이런 탁류의 세월을 견뎌왔던가. 아니, 이젠 탁류의 세월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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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트 - 세상을 경악시킨 집단 광기의 역사
맥스 커틀러.케빈 콘리 지음, 박중서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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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트'라는 말은 전통 종교와는 다른 신앙 체계를 보유한 종파를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한때는 어떤 가수나 텔레비전쇼의 열성 팬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가, 찰스 맨슨 사건을 겪은 이후 '파괴적 컬트'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는데, 이는 타인이나 자신에게 해악과 살해를 체계적으로 자행하는 집단을 지칭하는 말이라고 한다. (19쪽)


한 마디로 말하면 누군가를 맹신해서 그 사람의 말을 전적으로 따르는데, 그 사람조차도 자신의 신념에 대한 회의 없이 맹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맹신이 여러 사람을 죽음으로 이끌게 되었는데, 이를 통칭해서 '컬트'라고 한다.


다른 나라, 아주 오랜 예전 이야기 같지만, 아니다. 세계 최강대국이자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기독교의 나라인 미국에서 이러한 컬트 집단이 많이 발생했다 사라졌으며, 2000년대에 들어서도 컬트 집단이 있었다고 하니, 컬트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그것도 특정 개인이 여러 사람을 이러한 길로 이끄는데, 이 책은 그러한 컬트 집단들에 대한 이야기다. 읽으면 섬뜩하다. 이렇게 사람들을 호도하고, 심지어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데... 살해는 기본이고 집단 자살로 몰아가기도 하니...


예전 우리나라 오대양 사건도 '컬트'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컬트에 관련되는 사람이 다양해서, 특정한 성향의 사람들만 컬트에 빠져든다고 할 수 없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사회에서 엘리트 집단에 속하는 사람도 있고, 부유한 경제력을 자랑하는 사람도 있으니, 이들조차도 컬트에 빠지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를 밝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없게 만드는 것, 현란한 말솜씨, 그리고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어서 자신에게 벗어날 수 없게 만드는 것, 계속 되는 사상의 주입으로 그것만이 옳다고 여기게 만드는 사고 개조, 그리고 성적인 억압 등등.


참 다양한 컬트 사례가 나와 있는데, 컬트를 주도한 사람들의 성향은 대략 이해가 되지만, 이들에게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 그렇게 되었을까? 그 점을 알고 싶었는데, 그 점에 대해서는 이 책도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하고 있다.


다만, 컬트가 어떻게 해서 세력을 얻었고, 어떤 과정을 거쳐서 결말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사건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어서 과거 컬트 사건을 아는 데는 도움이 된다.


이러한 컬트를 주도한 사람들은 대략 세 가지 요소를 공유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를 심리학자들이 성격 특성의 '어두운 3요소'라고 한다고 한다. 그것은 사이코패스성, 즉 후회의 결여와 악성 자기도취증, 즉 가학적 과대망상, 그리고 마키아벨리즘, 즉 자기 이익을 위한 타인 착취(78쪽)라고 하는데...


문제는 이들이 이런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 남들을 끌어들이고 착취한다고 하지만, 이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어떤가다. 이들 홀로 컬트를 만들고 운영할 수는 없는데, 이 책을 보아도 2인자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컬트 지도자의 권위를 이용해 자신들의 입지를 다지는데, 역시 자기 이익을 위해서 그렇게 한다고 봐야 할까? 아니면 마음으로부터 컬트 지도자의 사상을 따랐기 때문일까? 그들 중에는 여전히 컬트 지도자를 추종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니, 이쯤되면 맹신이라고 할 수 있다.


합리적 사고를 할 수 없는 수준으로 사고 개조를 당했다고 봐야 하나, 컬트 추종자들도 마찬가지다. 무언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그 틈을 파고들어온 컬트 지도자에게 자신을 의탁하게 된다. 그리고 무언가 이상하다고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은 경우도 있고, 한번 빠져든 컬트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큰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


또한 여전히 컬트 집단에 속한 사람들로부터 회유 및 협박을 지속적으로 받는다는 것, 어쩌면 그런 점이 두려워서 그냥 컬트 집단에 속한 사람들, 자의가 아니라 어쩔 수 없다고 그냥 있었던 사람들이 많았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행동할 수 있는 힘을 빼앗긴 사람들.


그런 사람들... 그렇지만 문제는 이들의 행적이 범죄라는 것이다. 사람을 죽이거나 해치고, 성 착취를 하고, 그리고 경제적 착취까지... 


결국 컬트에서 사람들을 구해낼 수 있는 것은 사회다. 사회에서 컬트와 컬트 아닌 집단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기준으로 다양한 집단을 판단해야 한다. 아니,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해 주어야 한다.


자신이 속한 집단 속에서는 더 볼 수 있는 것이 없고, 비교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 컬트는 그래서 외부와 접촉을 차단하는 경우가 많다. 폐쇄적인 집단에 대해서는 좀더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컬트와 컬트가 아닌 집단을 구분할 수 있는 나름대로의 기준을 공유해야 한다.


그래야 컬트에 빠지는 일을 줄일 수 있다. 또한 컬트로부터의 해악을 방지할 수 있다. 남의 일, 옛날 일이 아니다.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 세심하게, 비판적인 눈을 지니고 살펴야 한다. 그것이 이 책을 읽은 소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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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슐러 K.르 귄


한때 이 작가에게 빠져 있었다. 몇 권을 제외하고는 우리나라에 번역된 책들을 거의 찾아 읽었는데...


르 귄이 만들어낸 세계는 이 세상에 없다. 환상이다. 그러나 그런 환상을 우리가 추구하게 만든다. 결코 아름답게만 그리지 않는다. 그 세계에도 갈등이 있고, 또한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문제는 어느 사회에나 있다. 다만, 어떻게 풀어가느냐가 문제다.


유토피아라고 하는 곳, 마냥 행복한 사회는 아니다. 절제라는 말이 필요한 사회가 바로 유토피아다. 내가 원한다고 다 하는 것이 아니라 절제할 수 있는 사회, 남과의 관계를 살필 줄 아는 사회. 이때 남은 인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모든 존재를 의미한다.


그런 사회를 많은 작품을 통해서 보여줬는데... 우리나라 작가 중에 김초엽의 작품을 읽으면서 이 작가를 떠올리기도 했으니...


소설만이 아니라 글쓰기에 관한 책도 좋았고...


어린이, 청소년, 어른 구분없이 누구나 읽고 생각할 수 있는 작품들을 썼던 작가, 그의 작품을 생각한다.



13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빼앗긴 자들
어슐러 K. 르 귄 지음, 이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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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가리키는 말은 숲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준영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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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의 도시
어슐러 K. 르귄 지음, 이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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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 행성
어슐러 K. 르귄 지음, 이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6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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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25-09-25 1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르 귄을 <하늘의 물레> 한 권만 읽었습니다. ^^;; 찾아보니 지금은 절판인 모양이네요. 올려주신 리스트를 참고하여 좀 더 찾아 읽어보겠습니다~

kinye91 2025-09-26 08:46   좋아요 0 | URL
저한테는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을 쓴 작가예요. 소설뿐만 아니라 다른 글들도 좋았어요.
 
의대 9수를 시킨 엄마를 죽였습니다
사이토 아야 지음, 남소현 옮김 / 북플라자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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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제목을 보고 '4세 고시, 7세 고시'라는 말이 떠올랐다. 무슨 고시? 의대에 보내기 위한 준비를 만 4세부터는 해야 한다는 말. 예전이라면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7세부터 할 텐데, 이제는 그마저도 당겨졌다는 말이다.


그러면 4세부터 의사가 되기 위해 준비한 아이들이 행복할까? 설령 그렇게 자란 아이가 의사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런 의사가 아픈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안정을 위해서 의사라는 직업을 지니고 살아간다면, 그것은 의사인 본인에게도 그 의사에게 진료와 치료를 받는 환자에게도 그다지 좋을 것 같지는 않다.


우리나라가 중학교 입시와 고등학교 입시를 폐지한 이유는, 아이들이 아주 어린 시절부터 입시에 쪼들리는 일을 막기 위해서 아니었던가. 오로지 입시에 매달려 다른 것을 해보지도 못하고, 다른 경험도 못하고, 주변의 친구들을 경쟁 상대로 여기는 풍토를 없애기 위해서 (다른 의도가 있었을지 몰라도 표면적으로는) 중고등학교 입시를 폐지하고 평준화 정책을 썼는데...


다시 의대로 인해서 4세, 7세 고시라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되었으니... 해마다 의대에 가기 위해서 다른 대학에 합격해도 등록을 포기하는 학생들이 많고, 성적 우수자들은 먼저 의대를 지망하는 이 현실에서... 이 책은 우리의 경각심을 일깨운다.


이대로 나가다가는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되겠지만, 그래도... 라는 생각이 드는 것. 의대에 너무 목숨을 거는 것. 아니 정말 의사가 되고 싶어 의대에 가기 위해 몇 수를 하는 것은 상관이 없다. 본인이 그렇게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자신이 스스로 선택했다면... (이 말은 좀 생각해볼 문제가 있는데, 어린 시절부터 부모로부터 의사, 의사 소리를 듣고 자란 아이는 부모의 희망이 자신의 희망인 줄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자신의 의지라고 하지만 그것이 가정 환경에서 만들어진 경우도 있음을 고려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의사가 되고 싶다는 의지를 지니고, 어렵더라도 도전을 하겠다고 하면)


하지만 자신은 별 생각이 없었는데 부모의 희망에 의해 의대에 가야만 한다면, 그것이 한번에 가지 못하고 몇 번을 거쳐서 가야 한다면... 자신은 포기하고 싶은데 부모가 안 된다고 계속 하라고 한다면...


그것도 못 하느냐고, 왜 노력을 안 하느냐고, 의대에 못 가면 집을 나가라고... 넌 자식도 아니라고 한다면? 이런 일을 9년이나 겪는다면?


하다하다 안돼 간호대에 갔는데, 다시 조산사가 되라고 한다면? 자신이 간호대에 적응해 수술실 간호사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꿈을 이루기 직전까지 갔는데, 부모가 절대로 안 된다고 반대한다면...


아예 자식 취급을 하지 않는다면... 그때는 어떻게 하겠는가?


패륜이다. 존속 살해는 가장 해서는 안 될 패륜임이 확실하다. 여기엔 이론을 제기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 바로 '그러나'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다. 


정말, 이렇게 자식에게 강요하는 부모가 있을까? 우리 말에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했는데, 아닐 수도 있는가? 일본은 좀 다른가? 아닐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아카리의 아빠는 살인을 저지른 딸에게 이렇게 말한다. "가족이니까."(221쪽)


이 의미를 아카리가 알고 있었다면, 엄마와의 갈등이 극에 달했을 때 아빠에게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했을 것이다. 자신을 믿어주는, 자신이 기댈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때, 그런 때 극단적인 행동을 자제할 수 있다. 적어도 자신을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존재가 있음을 아니까.


자신이 쉴 곳이 있음을 아니까. 그런데, 아카리는 살인을 하기 전까지 몰랐다. 그냥 자기 고민 속에 빠져 지냈다. 주변을 살피지 않았다. 자신을 받아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그런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음을.


그래서 엄마에게 극단적인 행동을 했다. 처음엔 해방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 '몬스터를 무찔렀다. 이제 안심이다.'(33쪽)라는 말을 통해서 이 점을 알 수 있는데, 엄마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났다는, 자신이 죄인처럼 지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이때는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오래 가지 못한다. 아빠를 만나고, 재판장의 판결을 들으면서...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고, 새로운 사실을 깨닫는다.


깨달음이 너무 늦게 왔지만, 늦게라도 왔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세상을 뜨는 사람도 많으니.  


논픽션이다. 사실에 기반했다. 일본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고, 엄마의 강요로 자신의 삶을 잃었던 딸이 엄마를 살해하고 감옥에 간 일이다. 징역 10년 형을 선고받고 지금 복역 중이라고 한다. 물론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반성하고 있지만, 죽은 사람은 살아오지 않는다. 그렇게까지 되기 전에 무언가를 했었으면 하는 생각도 있지만.


그것도 힘든 일이다. 엄마와의 생활에 갇혀 있었을 테니까. '엄마는 악마 같은 간수였고 나는 비굴한 죄수였다.'(167쪽)고 하고 있었으니, 이 말 곱씹을 필요가 있다. 정말 4세, 7세 고시를 강요하는 우리 사회의 부모들은 그러한 '간수' 역할을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일본도 우리와 같이 의대에 가기가 몹시 힘들다고 한다. 그 이유는 의사가 안정적인 직업이기 때문이다. 의대 합격선이 높아진 것은 일본도 거품 경제가 붕괴한 1990년대 이후라고 하니, 우리나라도 'IMF'이후에 의대 합격선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으니... 자식이 잘살기를 바라는 부모 마음이야 이해하겠지만, 이 잘산다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살인을 저지른 딸에게 '가족이니까'라고 말을 하는 아빠, 그렇게 가족이기 때문에 이해하고 받아줄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야 하는데, 가족이기 때문에 오히려 족쇄가 되는 그런 일은 없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모든 가족이니까 무조건 받아주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적어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말. 잘못 이 말이 악용이 되면 가족이니까라는 말로 강요하게 된다. 엄마는 가족이니까라는 말로 자식을 속박했다면, 아빠는 다른 의미로 즉 있는 그대로의 너를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가족이니까라고 했다고 봐야 한다.)


참 처참한 이야기다. 그렇지만 읽어볼 필요는 있다. 적어도 부모가 '몬스터나 간수'가 되어서는 안 돼야 하니까.


아카리가 자신의 행동을 제어하지 못한 이유를 생각해 본다. 성인이 된 자식을 성인으로 인정하지 않고 자신이 계속 간섭해야만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부모를 둔 자식의 심정이 어떻겠는지... 


이 책 앞부분에 나와 있는 이 말, 부모 역시 자식에게서 독립할 필요가 있음을,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부모나 자식이나) 서로의 삶이 다름을, 각자의 삶이 있음을 인정해야 함을 이 책을 읽으면서 더 생각한다.


'아카리가 엄마를 죽이기로 결심한 것은 9년이나 의대 재수를 강요당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엄마의 폭언과 집착으로 얼룩진 지옥 같은 시간을 벗어나 이제 겨우 자기 발로 서게 되었는데 또다시 그 지옥이 반복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절망했기 때문이었다. 

20대에는 어떻게든 버티고 흘려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9수 끝에 대학이라는 바깥세상을 경험한 지금은 그렇게 버틸 자신이 없었다. 나이도 이미 서른이었다. 아카리에게 입시 지옥은 두 번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끔찍한 곳이었다.'(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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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 씨
커트 보네거트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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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부를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려는 부자가 나온다. 그의 행동은 이해받지 못하고, 오히려 정신병자로 오인받을 수도 있다. 여기에 변호사가 나온다. 악덕 변호사라고 할 수 있지만, 글쎄? 변호사라고 다 선량한 사람은 아닐 터. 오히려 돈을 위해 복무하는 인간이 변호사일 수도 있으니... 돈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돈을 목적으로 변호하려는 인물을 악덕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싶다. 당연한 미덕?


신에게 축복을 받았는지 현세에서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은 현세에서 잘사는 것이 바로 신이 내린 축복의 증거라고 하는 종파도 있다고 하니까... 그렇다면 가난하게 사는 사람은? 죄인인가? 참.


하여간 자신의 노력도 없이 물려받은 부가 축복일까? 그것을 자신의 능력인 양 또는 축복인 양 아무런 거리낌 없이 누리는 것이 좋은 모습일까?


노블레스 오블리쥬라는 말을 귀족들에게만 써서는 안 된다. 현대판 귀족은 바로 자본가들 아닌가. 굳이 자본가가 아니어도 수십 억 연봉을 받는 사람들(수십 억? 그들에게는 부자 축에도 못 드는 돈이겠지만, 대부분 보통사람들에게는 엉청난 돈이다. 해마다 수십 억을 벌 수 있다는 것은)은 자신에게 그러한 돈이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는지, 그 돈을 어떻게 쓰는 것이 바람직한지 고민해야 한다.


그러한 고민에서 나온 것이 현대판 '노블레스 오블리쥬' 즉 '기부 문화'다. 내가 가진 것을 남과 함께하겠다는 실천, 그것이 기부다. 기부를 통해 부를 어느 정도 나누는 것, 돈이 없어서 생활을 하는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것, 그것이 가진 사람들이 지녀야 할 덕목 아니겠는가.


그렇지만 99개 가진 사람이 1개 가진 사람의 것마저 갖고 싶은 욕망을 지니고, 또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으니, 돈이 돈을 먹는 사회에서 그러한 기부를 실천하고 사는 사람은 보편적이지 않다.


기부하는 사람을 칭찬하는 것은 기부가 늘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특별한 경우로 취급되기 때문인데... 가진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이 일상의 모습이라면, 기부하는 사람을 칭찬하는 문화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부하지 않는 사람이 신문에 실리는 사회가 되겠지.


그런 사회가 유토피아일까? 내가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남과 함께하는 사회. 유토피아일 수 있다. 꿈에 있는 사회, 현실에서는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 능력주의라는 말이 유행하는 지금, 돈은 내 능력을 보여주는 지표가 되기에, 현실에서는 더더욱 나누는 사회가 이루어지기 힘들다. 


만약 그런 사회가 이루어지려면 논쟁이 되고 있는 '기본소득'이 게으름뱅이를 양산한다는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들이 없어야 할 것이다.


이 소설, 바로 이러한 점을 다루고 있다. 엄청난 부자. 그러나 자신의 부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사람. 상류층의 문화 속에 살기 보다, 힘들게 사는 사람들 곁에서 그들과 함께하면서 그들의 고민을 듣고 적당한 돈도 주면서 사는 사람, 엘리엇 로즈워터. 그에게 신의 축복이 있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는데, 엘리엇의 대척점에 있는 또다른 프레드 로즈워터는, 보험판매원으로 상대방이 죽어야 보험금을 타는 생명보험을 들라고 하는 사람이다. 그에게도 신의 축복이 있기를 이라면서 죽은 사람의 가족이 말할 것이라는 장면이 있는데... 두 장면에 나오는 말은 같지만 지니고 있는 마음은 다르다.


엘리엇은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해서 감사의 말을 듣는 반면, 프레드는 사람이 죽어야 남들이 살게 도는 일을 해서 감사의 말을 듣는다. 그것이 진정 감사의 말인지는 의문이지만.


그러나 세상은 이러한 부자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막대한 재산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돈을 보고 꼬여드는 파리들이 있기 마련. 소설에서는 무샤리라는 젊은 변호사가 그 역할을 한다. 그리고 돈에 눈이 멀어, 사실 친족이라는 이유말고는 재산을 물려받아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프레드가 돈 욕심을 내어 변호사와 함께 소송에 참여하고 있으니... 


작가가 보여주는 세계는 '돈이란 건조시킨 유토피아라네'(187쪽)라는 또다른 변호사의 말이 통하는 사회인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런 세상을 뒤집는다. 엘리엇이라는 인물을 통해 돈은 특정 개인이 움켜쥐고 자신만을 위해 써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소송에 걸린 엘리엇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면서 소설이 끝나는데, 그 결말에 웃음지을 수밖에 없다. 하, 이런 대안을 내놓다니... 참...


돈이 있으면 행복하게 살 수 있지만, 돈만으로는 행복하게 살 수 없다는 것을, 오히려 돈은 서로 나누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데... 이 소설에서도 지금까지 읽은 보니것(이 번역에서는 보네거트란 이름으로 나온다)의 소설 속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제5도살장]에 나오는 외계인 '트랄파마도어인'들도 나오고, 환상 소설을 쓰는 작가 트라우트도 나오고, 그리고 2차세계대전 때 겪는 일들도 나오는데... 


세 권째인데... 참 많이 연결되는구나, 이 작가의 소설을 읽어가면서 또 이렇게 연결된 인물을 만나게 되려나 하는 기대도 하게 된다.


무엇보다 작가의 풍자에 감탄을 하게 되는데... 경쾌하게 진행되는 사건을 통해 소설을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러면서 무엇을 풍자하는지, 지금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논쟁 중인 사안들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은 것들이 무엇인지도 생각하게 되고.


여기 대조적인 두 주장이 있다. 비교해보자.


'태어날 때부터 이 나라의 큰 덩어리를 소유하게 하고 다른 아기한테는 땡전 한 푼 쥐여주지 않는다면, 그건 매정한 정부라고 생각해요. 한 나라의 정부라면 최소한 모든 아이에게 재물을 공평하게 나눠줄 수 있어야 해요. 안 그래도 힘든 인생인데, 돈 문제까지 고민하다 병이 나서야 되겠어요? 우리가 조금 더 나눈다면 이 나라의 모든 사람이 풍족할 거예요.'(137쪽. 엘리엇의 말)


'재산 기부는 무익하고 파괴적인 행위라는 것, 그건 가난한 사람들을 풍족하거나 편안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응석받이로 만든다는 것! 그리고 기부자와 그의 후손들은 징징 짜는 가난뱅이와 똑같이 된다네.' (186쪽. 재산을 관리하는 법률대인인 매캘리스터의 말)


여기서 부유세 또는 누진제 세금과 기본소득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는 정부에게 무엇을 정책으로 만들어 실행하게 해야 하는가. 오로지 당신의 능력에 따른 결과이므로, 거기에 정부가 개입할 필요는 없다는 최소 정부를 주장하겠는가, 아니면 적극적으로 부의 분배를 추진하는 최대 정부를 주장하겠는가. 꼭 양극의 정부를 주장하지는 않더라도 그 스펙트럼 상에서 어느 쪽으로 가는지 자신의 입장을 정리할 수는 있지 않을까.


적어도 작가는, 커트 보니것은 부를 나누어야 한다는 쪽으로, 사람들은 평등하게 살아야 한다는 쪽으로 가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래서 이러한 소설을 썼겠지. 늦게 만난 작가지만 그의 작품에 감탄을 하게 된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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