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진, 교육을 말하다
하워드 진.도날도 마세도 지음, 김종승 옮김 / 궁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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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야기라고 해서 교육에 관한 글들만 실리지는 않았다. 교육 분야로 분류를 할까 사회 분야로 분류를 할까 망설이게 하는 책이다. 그러나 넓은 의미로 보면 교육은 사회의 한 분야이고, 하워드 진이 역사학자라는 생각을 하면 이 책은 단지 미국의 교육문제를 다룬 책이라기 보다는 미국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얘기하고 있는 것이 단지 미국만의 문제일까. 책을 읽는 이유가 무엇일까. 단지 지식의 충족을 위해서는 아닐텐데, 우리가 미국의 교육이 이런 비판을 받기도 하고, 미국 사회는 이런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기 위해서 이 책을 읽지는 않을 테니까. 

대담 글도 있고, 어떤 매체에 기고한 글도 있고, 다른 책에 실렸던 글을 약간의 수정을 거쳐 실은 글도 있지만, 이 글들을 읽으며 계속 우리나라와 비교를 하게 됐다. 비교만이 아니라 그렇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 

그는 학교에서는 정작 중요한 문제는 가르치지 않는다고 한다. 학교에서는 지배층의 이데올로기, 자본의 이데올로기를 가르쳐 뛰어난 학생들로 하여금 사회에 순종하는 사람으로 자라나게 한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학생이 자본이 바라는 학생으로 자라지 않는다는 점을 이야기 하고, 거기서 희망을 찾는다. 즉 학교는 지배층의 이데올로기를 전달하고 강요하는 구실을 하기도 하지만, 지배층에 대항하는 이데올로기를 생산하고 진보적인 사람들을 길러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마치 그람시가 말한 지식인들 중에서도 보수적인 전통적인 지식인도 있고, 진보적인 유기적인 지식인도 존재한다는 설명과 유사하다. 그렇담 학교에서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바로 역사를 가르치되, 지배층의 역사가 아닌 민중들의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학생들 스스로 비판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을 말이다. 그 예로 콜럼버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가 서구의 관점에서 보면 영웅이지만, 원주민의 입장에서 보면 침략자에 불과하는 사실을, 즉 역사란 사실들의 집함이 아니라, 해석의 결과라고, 어떻게 바라보느냐 하는 관점을 수립해야 한다고, 그런 태도를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에 미국 언론들의 문제점, 연방수사국의 문제점 등을 말하면서 사회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매체들이나 기관들이 얼마나 진실을 감추고,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지를 얘기하고 있다. 우리나라라고 예외는 아니지. 신문들을 보라. 일방적으로 어떤 한 집단의 이익만을 대변하고 있는 신문이 얼마나 많은가. 오죽했으면 불매운동까지 벌이겠는가. 그런데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오로지 그 집단의 이념만을 주장하고 있어, 사실마저도 왜곡하고 있는 현실이다. 또한 미국의 연방수사국(FBI)처럼 객관성의 외양을 띠고 있지만 사실은 철저히 지배층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는, 그들이 지배층이 아닌 민중들의 이익을 보살피게 하려면 그들의 정체를 꾸준히 드러나게 해야 한다고 그가 말하듯이 우리나라도 최근에 정치인 사찰부터 민간인 사찰까지 지배층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기관이 있지 않았던가. 그 기관들은 결코 가치중립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알기 위해서도 우리가 비판적인 사고능력을 갖춰야만 할 이유가 또 한가기 생기는 것이다. 

또 텔레비전을 보라. 세상에 가장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 매체에 가난하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힘을 합치는 이야기가 나오는가. 오로지 나오는 내용은 잘사는 사람들의 애정행각이나, 소비행태, 그냥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시간때우기식의 내용만 나오지 않는가. 기껏 가난한 사람들 얘기가 나오면 이는 구조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로 돌리고, 그 구조적 문제를 집단의 힘으로, 단결해서 해결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베풀어주는 시혜의 개념으로 바꾸어 놓지 않았던가. 주변의 모든 것이 스스로 단결해서 문제를 해결하게 하지 않고 있는데, 학교 마저도 아무런 생각을 하지 못하게 오직 대학이라는 공간을 향하여 달려가게 하고 있지 않은가. 이 때 어떻게 해야 학교 교육을 통해 비판적인 사고를 형성하게 할 수 있는가. 이 지점에서 고민이 시작되어야 한다. 

그래서 교육에서는 정확한 용어의 정리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예스맨 프로젝트에서 나온 명의보정이(Identity Correction)이란 말을 실천해야 한다. 보수가 무엇인지, 수구가 무엇인지, 진보가 무엇인지, 우파와 좌파가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시민단체와 노동조합은 어떻게 다른지 등을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언어가 별 것 아닌것 같지만, 이 언어를 어떻게 사용하냐에 따라 상당히 다른 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어떤 이는 경쟁을 통해서 더 나은 삶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고 얘기하지만, 이를 경쟁이라는 말보다는 승자독식이라고 바꿔본다면 경쟁은 더 나은 삶이 아니라, 대대수 사람들의 삶이 파멸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만는다. 얼마나 다른가? 또 사회적 사실을 예로 들면 광주민주화 운동을 광주 사태라고 부르는 사람과 광주 혁명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이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고, 행동도 다를 것이다. 내가 어떤 사실을 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그 사실에 어떤 이름을 붙이느냐가 교육이 해야 할 일이 된다. 

이 책을 읽으면 참 명쾌하고, 통쾌하고, 상쾌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고인이 된 저자이지만, 그의 글은 우리의 사고를 자극하며, 무엇이 올바른 삶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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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자유교육 - 위대한 평민을 기르는
송순재.고병헌.카를 K. 에기디우스 엮음 / 민들레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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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개혁 하면 두 가지 방향에서 논의가 된다. 미국식이냐 유럽식이냐. 여기에 몇 가지 요소가 더 섞일 수가 있지만 큰 틀에서 보면 이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나는 미국식보다는 유럽식, 특히 북유럽식을 좋아하는데,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등의 나라 교육제도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이들 교육에 대해 소개한 글을 읽어보면 부러움과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도 이런 교육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엔 우리나라에서도 대안학교가 많이 생겼고,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는데,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따라서 대안학교들도, 또 현재 논의되고, 많이 만들어지고 있는 혁신학교들도 이런 책을 참조해서 우리나라 또 각 지역의 특성에 맞게 자신만의 학교들을 만들어가면 좋겠단 생각을 하게 된다. 

이책에 나온 관심있는 내용과 내 생각이다. 

자유학교의 공통원리 ... 폴켈리(folkelig)적 요소, 즉 평면적 요소 ... 자기 자신과 타자를 위해 기꺼이 책임지는 자세 ... 평등을 지향하는 책임 (61쪽)   

-> 모든 교육의 기본이 이렇게 되어야 하지 않을까. 남을 밟고 내가 올라서면 된다는 승자독식주의 교육이 아니라, 함께 모두 잘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게 하는 교육. 그게 필요하다.  

부모의 권리 ... 법적으로 확정된 교육의 의무가 있지만, 학교교육을 의무사항으로 확정하지는 않았다. (63쪽)   

-> 우리나라 대안교육계에서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의무교육을 의무 취학으로 판단을 한다. 따라서 학교에 보내지 않으면 부모는 징계를 받을 수밖에 없다. 많은 부모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징계를 면하긴 하지만, 이 과정이 힘들고 복잡하다. 의무교육은 의무 취학이 아니라는 사실, 교육법에 이 조항만 추가한다면 문제는 쉽게 해결될텐데, 아직도 학교만이 교육을 담당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으니 원.

학교는 교사가 특정한 종교적, 정치적 신념을 갖도록 요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교사가 학교 근무시간 안팎으로 이러한 신념에 따라 행동하고 살도록 요구할 수 있다(69쪽)  

자유증등학교의 해설서 .. 교육과정이나 이데올로기의 자유: 학교가 스스로 교육과정을 정치적 또는 종교적, 교육학적인 이념에 따라 정했다고 해도 국가는 간섭하지 않는다. 원칙적으로 정부는 어떤 교육과정이나 학교라도 인가한다. 곧 국가전복을 위해 학생들이 저항해야 한다는 교육목표에 따른 커리큘럼, 글자 그대로 성서를 강독하는 듯한 교육과정, 교실에서 배우지 않고 가게나 작업현장에서 일하는 것으로 대신하는 학교, 과목이 하나밖에 없어서 교사나 학생이 그때그때 적당하게 학습주제를 정하는 학교도 있을 수 있다. (169쪽) 

-> 우리나라를 보라. 교사가 정당에 가입했다는 확정되지도 않은 혐의로 징계를 받도록 강제당하고 있으며, 시국선언을 했다는 이유로 그것이 정치적인 중립성을 훼손했다고 징계를 하라고 강요하고 있다. 우리나라 교사는 사랍학교든, 공립학교든 공무원인 교사로서만 지내야 하지, 시민으로서 자신의 의견을 말할 권리가 없다. 이러한 차이를 우리나라의 특수성이라고 생각하고 교사들이 사회적, 정치적인 문제에 발언할 수 없도록 하는 관습에 대해서는 철저한 반성과 교사이기 이전에 시민으로서 당연히 정치적 권리를 가질 수 있게 제도적인 면을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전인(全人)을 길러 내는 것을 교육의 과제이자 목표로 삼는다 (79쪽) 

-> 우리나라도 교육 목표는 전인이다. 그러나 사실 학교에서는 전인보다는 단편적인 인간을 양성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너무도 많이 분절된 과목들, 그리고 그 과목들을 통해 인간이 되는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남보다 앞서 갈 수 있나를 공부하기에 목표와 실천이 따로노는 교육을 지금의 공교육은 하고 있다. 대안교육에서는 공교육보다는 훨씬 낫지만, 대학이라는 장애에 걸려 비틀거리고 있는 대안학교도 있으니 목표와 실천이 어울리게 노력해야 한다. 

함께 협동으로 작업하기를 그리 내켜 하지 않는 학생들, 불안감과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학교 안의 분위기는 신임 교사들을 힘들게 하기에 충분하다(95쪽)  

-> 신자유주의를 덴마크라고 해서 피해가지는 못한다. 이 나라도 지금까지 해왔던 교육에 손질을 하려고 하고, 자유학교들에 대해서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비판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나 보다. 이 구절을 보면서 덴마크 교사들도 우리나라 교사들과 비슷하게 어려움을 겪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고, 그럼에도 이들은 자유학교라는 틈새를 이용해서 아이들을 이러한 상황으로부터 피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도 아이들이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하는데...

민주주의의 질은 소수가 어떻게 취급되는지에 따라 평가할 수 있다(99쪽)  

사회시스템 가운데 10% 정도의 '틈새'를 열어 놓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이야말로 교육개혁에서 중요한 포인트... '비주로' 또는 '비주류의 권리'를 표방하는 일이 많은 것(173쪽)  

 이런 교육이 가능한 진짜 배경은 대화를 중시하고 자유로우며 비경쟁적인 사회 분위기인지도 모른다 (151쪽) 

-> 가장 좋은 말이고, 소수가 존중되면 다수는 행복해 진다. 소수를 존중했을 때 왕따라는 말은 존재할 수가 없다. 소수를 존중할 수 있는 방법, 가장 좋은 방법이 대화이다. 대화는 상대를 나와 동등한 존재로 인정할 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담 우리 교육에서 필요한 것은 바로 대화이다. 열린 마음으로 하는 대화, 그것이 교육인데, 지금 우리나라는 닫혀 있다. 이 닫힘을 풀 수 있는 길,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의도적으로라도 확보해내야 한다.

지역 행정당국은 기본교육을 무상으로 제공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부부모들은 자기 아이들이 일반 사립학교나 자유학교에서 공부하게 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부모들은 학비의 20% 정도를 부담해야 하고, 동시에 학교위원회의 구성원이 될 권리를 갖는다(103쪽) 

-> 이런 점은 우리나라 대안학교에 대한 지원에서 생각해 봐야 한다. 이렇게 되면 대안학교가 귀족학교라는 소리는 나오지 않을테니까. 

우리는 7학년까지 숙제를 내주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과제를 해내야 할 빚진 자가 아닙니다.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당연히 집에서 쉴 권리가 있습니다.(210쪽)  

-> 얼마나 부러운가. 이 아이들이 아니라, 이렇게 생각하는 어른들이 있다는 사실이. 우리나라 아이들을 보라.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 숙제에, 학교가 끝나면 학원에, 학원 숙제에 시달려 도대체 어른들도 주장하는 8시간 노동제를 훌쩍 넘어서 과중한 부담에 시달리고 있지 않은가. 부모 한 명 한 명의 의지에 맡겨두기엔 이미 너무 힘들어진 이 사회에서, 이것을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방법이 지금 추진하고 있는 학원 교습시간 제한이 아니던가. 여기에 한 발 더 나간다면 의무교육에서는 과제를 내주지 않는 방향으로 나가고, 학교 시험에서는 수업 시간에 다룬 내용으로만, 결코 수업에서 다루지 않은 경시대회 문제라든지, 난이도가 높은 문제를 내지 않도록 강제하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하지 않을까. 제도로 강제해야지만 조금이라도 아이들이 편해지고, 또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고 고치려는 실천을 하지 않을까 한다. 

시민대학에 관한 그룬트비 교육의 의도... 첫째는 참된 자아를 찾는 일로 학교에서는 인간이란 무엇인지, 나는 무엇인지에 대해 묻고 가르쳐야 한다는 의도. 둘째는 학교는 공동의 선에 답할 수 있어야 하며, 사회에서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찾아가는 곳 (217쪽)  

-> 이거 참. 지금 우리나라 대학의 현실과 비교를 해보면 우리가 추구하는 교육은 교육이라는 이름을 가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대학은 취업기관이지 교육기관이 아니지 않은가? 인간이란 무엇인지, 공동선이란 무엇인지 고민하는 학과는 존폐의 위기에 처해 있으며 그런 교육을 하려고도 하지 않아 인문학의 위기란 말이 나온 지가 꽤 되는데, 아직도 우리는 기업이 원하는 학생을 배출하려고 하지 전인적인 인간을 양성하려고 하지 않는다. 교수라는 직업이 파편화된 지식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 되고,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지식인 집단이 안 된 지가 오래되어서인가? 사회에서 인정받는 만큼 책임을 지려는 자세들을 교수들도 가질 필요가 있단 생각이 든다. 

교사회의조차 아이들에게 닫혀 있지 않다. 끼어들기를 조장하지는 않지만 나가달라고 말하지도 않는다(251쪽)  

-> 꿈같은 얘기다. 내가 학교 다닐 때 교무실은 신성한 공간이어서 차마 들어갈 수가 없었고, 한 번 들어가기 위해서는 문을 열고 경례를 하고 용무를 말한 뒤 허락이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 학생들과 단절된 공간 그곳이 교무실이었다. 그리고 교사들의 회의시간에는 어디 감히 학생이 들어갈 수 있단 말인가? 어쩌다 우연히 교사들이 회의를 하는데 학생이 교무실에 있으면 대뜸 "야, 너 나가"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전달되는 내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즉 본다는 행위가 교육에 매우 필요한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교사들의 회의 모습을 볼 기회가 전혀 없었다. 여기에 학교 운영의 전반적인 일을 결정한다는 학교운영위원회에도 학생들의 참여는 봉쇄되어 있다. 어쩌다 참여해도 참관인 자격으로 참여할 뿐이다. 최근에 교사회의, 학생회의를 법제화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이는 꼭 필요한 일이다. 학생들이 학교운영에 참여할 수 있게 제도화하면 교장 선의 여부에 의해 학생들의 참여가 결정되는 일은 없어지겠지. 조금 더  학교가 민주화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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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천재 이제석 - 세계를 놀래킨 간판쟁이의 필살 아이디어
이제석 지음 / 학고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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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그의 광고를 보게 되었다. 총을 겨누고 있는 군인, 그러나 그 총구는 그 군인의 머리를 다시 겨누고 있었다. 제목도 뿌린대로 거두리라. 전쟁의 위험, 무기의 위험을 단 한 장의 광고로 그토록 잘 나타낼 수 있다는 것에 놀라고 말았다.  

텔레비전에도 나오고 상당히 유명한 인물이 되어 그가 처음부터 광고계에서 알아주는 사람인 줄 알고만 있었다. 서점에서 이 책을 본 순간, 한 번 읽어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고 주저없이 책을 집어들게 되었다. 그리고 읽어가는데, 중간 중간 그의 광고가 화보로 나와 있어, 그 광고를 보는 재미도 있고, 그가 이렇게 광고천재로 불리게 되기까지 겪은 일들이 잘 나와 있어 그의 삶을 엿볼 수도 있다는 재미도 있는 책이었다. 

또한 한 분야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하는지도 생각하게 만들어서, 단지 이제석 대단하다로 끝나지 않고, 그도 해냈는데, 나도 해낼 수 있다는 의지를 다지게도 된다. 

처음 부분 읽으면서는 우리나라의 학벌 차별에 대해서 씁쓸한 마음을 어쩔 수가 없었는데, 계명대 시각디자인과에 입학해서 졸업 때 학점이 4.5점 만점에 4.47점을 받았는데 어느 회사에서도 오라는 데가 없고, 광고 공모에 응모해서도 당선된 적이 없었다는, 그래서 졸업한 뒤에 한 일이 동네 간판을 그려주는 일이었다는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안타깝기도 하고 모든 것을 학벌로만 판단하는 우리 사회에 분노도 하고, 어떻게 하면 이러한 학벌사회에서 벗어날 수 있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그가 뉴욕으로 가 온갖 시련을 겪으면서도 자신만의 광고를 만들어내게 되기까지, 그리고 세계 광고 공모전에서 많은 상을 받기까지, 그 다음 자신의 광고를 돈이 되는 쪽보다는 공공의 이익 쪽으로 옮기기까지의 과정이 그의 글을 통해 잘 나와 있다.  

우리가 너무도 자주 접하는 광고, 어떨 때는 아무 생각도 없이 접하는, 어떨 때는 기발함에 감탄하기도 하는 광고. 그런 광고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이 결코 순탄치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한 편의 광고를 위해서도 온갖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도록 해주는 책이었다.

그가 이 자리에 서기까지는 많은 시련이 있었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꾸준한 노력을 했다는 사실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또한 그의 책을 읽으면서 창의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리는 창의성, 창의성 하지만 그 창의성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진정 창의적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이제석의 경우를 통해서 알아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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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이토록 젊은 작가가 이렇게 옛날 이야기를 잘 보여줄 수 있다니. 

마치 6.25세대가 옛이야기를 손자세대에게 들려주듯, 최규석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을 모습을 만화로 고스란히 재현해 내고 있다. 

지금은 잊고 있지만 우리를 만들어준 과거에 대해 작가가 이렇게 기억해내도록 하는 것은, 지금이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닐까. 

자신의 가족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한 가족의 모습을 통해 우리나라 현대사를 오롯이 살려내고 있는 작가,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결코 무겁지 않게 읽을 수 있지만, 읽고 나서는 가볍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우리네 삶이 잘 드러나 있기에.

 온가족이 함께 읽으면 세대차이란 말도 많이 사라지지 않을까 한다. 이야기가 사라지고 있는 지금, 최규석의 이 만화는 우리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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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만사 새옹지마 범우문고 101
리영희 지음 / 범우사 / 199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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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돌아가신 리영희 선생님. 그의 죽음은 우리나라 지식인의 죽음이었다. 

진실을 파악하고 전달하기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을 지식인이라 이름 짓는데, 요즘은 자신의 지식을 사실을 왜곡하거나, 아니면 왜곡은 하지 않더라도 진실을 감추려는데 쓰는 사람이 많아서 진정한 지식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미국의 하워드 진, 촘스키, 우리나라의 장일순, 리영희 등을 그런 의미에서 지식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이 분들이 한 분 한 분 세상을 뜨면서 진실을 이야기해줄 사람이 점점 줄어들지 않나 하는 조바심을 가지게도 된다. 

이 분들이 다 떠났다고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이 사라지지는 않을테니 우리도 역시 어떤 사건을 바라볼 때 일면만을 보지 않고 종합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지도록 노력한다면 이 분들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리영희 선생이 돌아가시고 리영희 선생의 저작집과 평전, 그리고 수필집 등이 발간되었는데, 그렇게 최근에 발간된 책들과는 다르게 이 책은 문고판으로 아주 작은 책이고 1991년에 발간된 책이다. 손에 지니고 다니면서 버스나 지하철에서 읽기에 딱 좋은, 크기도 그렇고 내용도 그렇다. 리영희 선생의 사회를 바라보는 글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담담하고 솔직하게 풀어낸 책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리영희 선생의 수필집이 새로 나왔는데, 이 책에 실린 글들이 대부분 실렸으리라고 추측한다. 집에서 소장하고 읽으려면 큰 책도 좋겠지만, 언제 어디서든 리영희 선생의 글을 읽고 싶다면 이 책이 더 도움이 되리라. 

수필이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글이니, 인간 리영희의 모습 즉, 본인이 감옥생활을 한 얘기, 자신의 아내 이야기, 교복 문제로 자식들과 한 이야기, 전쟁 때 겪은 이야기, 검사와 논쟁한 이야기 등등 리영희 선생의 삶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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