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도담서림(道談書林) (kinye91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Wed, 05 Aug 2026 13:16:24 +0900</lastBuildDate><image><title>kinye91</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74420113113741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kinye91</description></image><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여러이야기</category><title>진정한 사랑을 하기 위해 - [이성애의 비극]</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431304</link><pubDate>Tue, 04 Aug 2026 07: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43130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12139490&TPaperId=1743130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44/12/coveroff/k31213949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12139490&TPaperId=1743130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이성애의 비극</a><br/>제인 워드 지음, 노지양 옮김 / 라우더북스 / 2026년 06월<br/></td></tr></table><br/>'동성애의 비극'이 아니고? 책 제목을 처음 봤을 때 든 생각이다. 이런 생각이 이 책에서 비판하고 있는 이성애 중심의 사고방식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만큼 이 책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이성애에 대한 생각을 뒤집고 있다.<br>'앨라이(얼라이ally)'라는 말에서 이 뒤집힌 관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보통 앨라이는 이성애자들이 동성애자들에 동조한다는 의미로 쓴다. 다수가 소수와 함께 한다는 의미로...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로.<br>그런데 이 책에서는 '앨라이 관계'를 반대로 뒤집어 보는 일 안에는 어마어마한 가능성과 잠재력이 내포되어 있다. 퀴어들은 여성혐오의 역설 아래에서 고통받는 이성애자들에게 페미니스트로서 개입하고 퀴어 관점에서의 가이드를 제공해줄 수 있다.' (70쪽)고 하고 있다.<br>그간 이성애자들의 사랑은 여성 혐오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를 여성 혐오라고 하기가 그렇다면 여성 억압이라고 해도 좋겠다. 남성의 기준에 맞는 여성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 지금까지의 이성애적 사랑 아니었던가?<br>여성으로서 지녀야 할 자세, 행동, 외모, 말투 등등, 그리고 집 안에서 여성으로서 해야 할 일 등등... 그러한 것들이 이성애적 사랑으로 감춰진 여성 억압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인데... 이러한 억압에 바탕한 사랑이 과연 진정한 사랑이냐고...<br>오히려 남성의 욕망을 해소하는 대상으로서 여성을 필요로 한 것이지 동등한 인간으로서 사랑을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 이 책 '이성애의 비극'에 담겨 있는 뜻이다.<br>책의 앞부분을 보면 '이성애의 비극'은 여성들에게만 해당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가부장적 폭력의 세계에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삶을 잃어가는 여성들의 모습이 바로 '이성애의 비극'이란 이름으로 나타나니까.<br>그래서 '앨라이 관계'를 뒤집는다는 것은 퀴어들이 이성애적 사랑을 하는 여성들에게 동조하면서, 그들이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도록 사랑에 대해 알려주고 함께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는데...<br>남성 욕망의 객체가 아니라 자기 사랑의 주체로 거듭나야 한다고, 그러한 사랑을 가르쳐줄 수 있는 존재가 퀴어들이라고... 특히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모델을 참고해야 한다고...<br>그럼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모델은 뭐지? 간단하다. '각자의 성적 욕망은 본인의 책임이라는 것'(295쪽). 이는 누구를 의식한 사랑이 아니라 자신에게 충실한 사랑이라는 것. 자신만큼 상대에게도 충실한 사랑이어야 한다는 것이다.<br>이런 사랑에서 에로틱은 '동일시이고 상호 인정이며 기쁨이 피어난 자리'(294쪽)라고 한다. 주체/객체의 분리가 아니라 서로가 주체가 되는, 존재 자체로 사랑하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 가부장적 권위가 끼어들 틈이 없다. 상대를 내 욕망의 객체로 삼는 것도 있을 수가 없다.<br>이런 점에서 퀴어들이 이성애자들의 '앨라이'가 될 수 있다고, 그간 사회의 통념을 뒤집는 주장을 한다.&nbsp;<br>보통 퀴어들이 힘들게 사랑을 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사회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이고, 그들은 자신들의 사랑에 충만함과 기쁨을 느낀다고... 서로를 온전히 사랑하는 관계로 만들어간다고... 그럼에도 동성애 혐오가 사회에 있는 이유는 '이성애적 불행과 비참함이 외적으로 표현되는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217쪽)고 하는데,&nbsp;<br>이것은 '반복되는 퀴어의 시련 서사는 그 고통에 동반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것을 상쇄해주는 퀴어로 사는 것의 심오한 기쁨을 무화하고 이성애적 삶은 젠더화된 폭력과 고통에서 자유롭다고 암시하면서 이성애 규범성을 더욱 공고하게 이 사회에 심어놓는다'(23쪽)는 말로 구체화하고 있다. 결국 동성애 억압은 이성애자들 또는 가부장적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불행이나 억압을 덮으려고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는 현상이라고 보면 된다.<br>차별은 결국 내 안의 결핍을 외부에게 전가하는 것인데, 내 안의 결핍이 결핍이 아니라 바로 자신일 수 있다는 것, 그러한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인다면 다른 존재들을 차별하려는 마음이 생길 수가 없다는 것을 이 책에서 발견하게 된다.<br>이렇게 저자는 그간의 통념을 뒤집는다. 동성애자들이 힘들다는 생각을, 이성애자들이 얼마나, 특히 여성 이성애자들의 비극에 대해서 여러 사례를 통해, 그것도 동성애자들의 삶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br>그러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br>'극이성애적인 남성 hyperstraight man'은 여성의 몸에 끌릴 뿐 아니라 여성이라는 종의 집단적 자유에 대해서도 끌린다. 여성을 좋아한다는 것은 여성을 위한다는 뜻이다. 진정으로 이성애적인 남성, 다시 말해 깊은 이성애자가 되고 싶다면 ... 그 사람은 반드시 페미니스트여야 한다.'(315-316쪽)<br>이보다 명확하게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사랑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사랑에 굳이 성별 구분을 할 필요가 있을까? 지금까지 성별 구분을 해왔다면 앞으로는 그러한 구분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냥 사람을 사람으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그런 사랑을 해야 할 뿐이라는 것을 저자는 말하고 있다.<br>이를 이 책의 해제를 쓴 한채윤의 말로 끝을 맺는다. 이보다 더 명확하게 사랑을 하려면 이렇게 해야한다고 정리할 수 있을까 싶다.<br>"같다고 하기엔 우리 모두는 너무나도 다른 '사람'이다. 그러니 평등한 관계를 상상하는 힘이 없다면, 그것이 이성 간이든 동성 간이든 사람 사이의 관계는 결국 '꽝'이 될 뿐"(329쪽)<br>저자의 생각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이 책은 퀴어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하고, 사랑에 대해 더 깊은 생각을 하게 한다.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읽어보아야 할 책이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44/12/cover150/k31213949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4441248</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이야기</category><title>친밀한 관계에서 벌어지는 살인을 방지하기 위해 - [이처럼 친밀한 살인자 - 강압적 통제는 어떻게 관계를 지배하는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429742</link><pubDate>Mon, 03 Aug 2026 11:1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42974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82034142&TPaperId=1742974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283/85/coveroff/k682034142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82034142&TPaperId=1742974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이처럼 친밀한 살인자 - 강압적 통제는 어떻게 관계를 지배하는가</a><br/>허민숙 지음 / 김영사 / 2026년 01월<br/></td></tr></table><br/>마음이 불편하다. 목숨을 걸고 사귀어야 하다니... 세상에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만났는데, 그 만남이 죽음에 이르게 한다면? 도대체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하나?<br>특히 친밀한 관계, 부부나 연인 관계에서 벌어지는 폭력, 살인은 정말, 행복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불행, 죽음으로 가는 길이 되는 경우가 있으니, 그야말로 사랑을 목숨 걸고 해야 하는 판이다.<br>비유가 아니다. 목숨 걸고란 말을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는 사랑이라는 낭만적인 말로 미화하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사랑을 한다는 말이다.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nbsp;<br>그런데 그 상대를 어떻게 알아보나. 처음부터 난 당신을 죽일 거야 하면서 접근하는 연인이 있을까? 당신을 사랑해, 당신에게 내 모든 것을 줄 수 있어.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게, 아니면 우리 행복하자 하면서 만남을 시작하지 않나.<br>그러던 관계가 어느 새 집착으로 변해 사사건건 간섭하게 되고, 그 간섭이 통하지 않으면 폭력을 휘두르고, 더 나아가 죽음에 이르게까지 하는 사태에 이르게 된다.<br>가정폭력, 교제폭력(살인)이라고 하는 범죄들 이야기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데 사람을 만나는데 목숨에 위협을 느끼게 되면 그런 만남은 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것도 상대가 따라줘야 가능하다.<br>가정폭력이나 교제폭력은 상대의 집착과 폭력으로 인해 벗어나기 힘들다. 그것도 친밀한 관계, 사적인 관계라고 해서 경찰이나 공권력이 잘 개입하려 하지 않는다.&nbsp;<br>이 책에 나와 있는 통계를 보라. 무시무시하다. 무섭단 생각이 들 정도다. 우선 2024년 교제폭력 신고 건수는 8만 8,394건(17쪽)이라고 한다. 한 해 교제폭력으로 경찰에 신고된 건수만 8만 건이 넘는다. 이를 하루로 환산하면 하루에 242건의 신고가 있었다는 말이다. 약 6분마다 한 건의 신고가 들어온다는 얘기니...<br>신고하지 않은 교제폭력까지 합친다면 거의 매 순간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는 교제폭력이 일어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이러한 신고가 사건으로 접수되는 건수는 대폭 준다는 사실.<br>신고하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자체 종결되는 건수가 반이 넘는다고 한다. 앞에서 든 2024년 통계를 보면 신고 건수 88.394건 중에서 4만 8,065건이 현장에서 종결되어 현장종결률 54.4 퍼센트를 기록(19쪽)했다고 한다.<br>이 통계를 봐도 신고도 많이 되지만 현장종결로 더이상 수사가 되지 않는 경우도 절반이 넘는다는 것인데, 이런 와중에 교제살인을 당하는 사람이 나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br>너무도 많은 교제폭력이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통계인데, 이런 교제폭력을 막을 제도나 법은 아직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태라고. 이제 교제폭력을 규제하는 법이 발의되었다고 하는데...<br>친밀한 관계이기 때문에 당신들의 문제니 당신들이 해결해 하는 것이 아니라, 친밀한 관계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위협을 받고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사회가,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점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br>그러기 위해서는 교제폭력이 일어나는 전조를 파악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 첫번째는 바로 과장된 자상함과 친절함이다. 물론 자상함과 친절함은 좋은데, 다만 남을 자신이 통제하기 위해 접근하는 위장된 자상함과 친절함이 문제라는 것이다. 물론 이 자상함과 친절함을 처음부터 위장인지 진실인지 알 방법이 없다.<br>그렇지만 다음 단계, 의심과 질투로 상대의 행동을 통제하려는 것은 파악할 수 있다. 이런 모습이 보이면 이는 교제폭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한다. 조심해야 하고, 관계를 고민해야 한다고...<br>의심과 질투에서 교제폭력으로 넘어가는데 폭력을 넘어서 살인으로까지 나아가는 전조는 바로 '스토킹과 목조름'이라고 한다.<br>우리나라도 이제는 스토킹에 관해서는 범죄로 다루고 있는데, 아직 교제폭력까지는 나아가지 않고 있다고 한다. 특히 목조름은 다른 나라에서는 그 행위 자체만으로도 엄한 처벌을 한다고... 그러한 엄한 처벌을 통해서 살인으로까지 나아가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그에 관한 법이 없다고 한다.<br>하여 저자는 우리나라도 교제폭력을 규제할 수 있는 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하면서 세 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br>첫째, 연인, 배우자, 파트너 등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통제 행위'를 범죄화하는 법적조항을 마련해야 한다.(175쪽)<br>둘째,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통제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처벌하기 위해서는 '친밀한 관계'에 대한 법적 정의가 필요하다. (176쪽) - 저자는 외국 사례를 검토하면서 친밀한 관계에는 현재의 관계만이 아니라 과거에 맺었던 관계도 포함된다고 하고 있다.&nbsp;<br>셋째, '친밀성'이라는 관계의 특수성을 반영해 가해자 처벌을 규율하기 위해서는 '반의사불벌죄' 배제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177쪽)고 한다.<br>왜냐하면 친밀한 관계에서는 상대의 가족관계나 직장 또는 어디를 언제 가는지 등을 가해자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피해자는 자신만이 아니라 가족이나 자신과 관계맺고 있는 다른 존재들이 위험에 처할까 봐 가해자를 신고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nbsp;<br>또 자신에게 가까이 있는 가해자는 위협적인 존재이기에 그 앞에서 직접 처벌 의사를 밝히기도 힘들다고 한다. 그러니 반의사불벌죄를 폐지해 교제폭력은 현행범으로 그 자리에서 피해자와 격리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br>이렇게 하기 위해서 기술적 도입으로는 '스마트 워치'의 보급이 아니라 'GPS위치추적장치'를 도입해야 한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스토킹 처벌법에 따라 이 위치추적장치가 반영되어 시행되고 있다(183쪽)고 하는데,&nbsp;'GPS위치추적장치'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일정 거리 이내로 가까워지면 경보가 울리는 시스템(183쪽)이라고 하니, 피해자가 가해자를 피하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라고 한다.<br>무엇보다 지금 교제폭력을 당하는 존재가 여성들이 많으니 성적 차별, 무시를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이 (이는 여성만이 아니라 소수자 누구에게나 해당될 테고,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이러한 교제폭력이 다른 소수자들에게 가해지지 않고 있다는 말을 할 수 없다. 그들이 신고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테니, 어떤 성별이든 또 종교를 가졌든 아니면 여타 어떠한 이유에서든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법이 차별금지법이니) 시행되어야 하고, 이런 법이 적용되지 않는, 실질적으로 차별이 없는 사회가 되는 노력을 해야 한다.<br>단지 교제폭력을 방지하는 법률을 제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차별도 일어나지 않는 사회로 나아가도록 해야 한다. 저자 역시 그 점을 강조하고 있는데...<br>읽으면서 서글펐다. 만남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면, 만나면서 목숨이 위협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그것도 아주 많이. 하루빨리 이러한 일이 없어지도록 제도로 또 문화가 있는 나라가 되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283/85/cover150/k682034142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2838599</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이야기</category><title>로봇(인공지능) 뒤에 감춰진 노동을 볼 수 있어야 - [로봇은 오지 않는다 - 자동화 신화와 은폐된 인간 노동의 진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426711</link><pubDate>Sat, 01 Aug 2026 12: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42671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92139666&TPaperId=1742671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75/33/coveroff/k59213966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92139666&TPaperId=1742671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로봇은 오지 않는다 - 자동화 신화와 은폐된 인간 노동의 진실</a><br/>안토니오 카실리 지음, 변정수 옮김 / 이상북스 / 2026년 06월<br/></td></tr></table><br/>'로봇은 오지 않는다'가 아니다. 로봇은 온다. 오는데, 로봇이 온다고 해서 인간 노동이 줄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흔히 우리가 지금 하는 일들을 로봇이 하게 되면 우리는 그 시간에 다른 활동을 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우리 인간에게도 좋은 일이라고들 한다. (여기서는 로봇과 인공지능을 묶어서 하나의 개념으로 쓴다)<br>그런데 이 책의 저자인 카실리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한다. 로봇이 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로봇이 온다고 해도 인간 노동은 줄지 않는다고, 오히려 인간 노동은 작게 작게 쪼개져 노동이라고 판단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게 되어, 보상받지 않는 노동을 하게 된다고 한다.<br>지금 인공지능이 개발되고,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인공지능들이 속속 나오고 있는데, 그들이 그 정도 수준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우리는 살피지 않는 경우가 많다.<br>그냥 눈 앞에 보이는 현실에 열광하거나 두려움에 빠지거나 하는데, 카실리는 보이는 현실 너머, 그러한 현실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살핀다. 지금 인공지능이 이 정도 능력을 발휘하게 되기까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동이 있었다는 점. 또 지금도 그렇게 사람들의 노동이 뒤에 있다는 점을 수년 간의 조사를 통해서 밝히고 있다.<br>그럼에도 그들의 노동은 노동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는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말이고,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말은 노동자들이 누려야 할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는 말이 된다.<br>플랫폼들이 기를 쓰고 자신들에게 이윤을 창출해주는 사람들을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고 개인사업자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즉 이윤은 챙기지만 그들을 보호하지는 않겠다는 방침인 것이다.<br>또 개인이 즐거워서 하는 일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면서 재미로 하는 활동이기에 노동이 아니라고, 자신들이 그에 대해 어떤 보상을 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재미로 하든 돈을 받고 하든 클릭을 하는 순간순간이 플랫폼들에게는 도움이 된다.<br>더욱더 빠르고 정확한 인공지능을 운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인데, 우리가 좋아요를 누르든 링크를 타고 들어가든 우리의 행위 하나하나가 모두 플랫폼들에게는 유용한 자료가 된다. 저자는 디지털이라는 말을 '손가락'이라는 뜻도 있다면서, 이 디지털 세상은 결국 우리들의 손가락에서 비롯된다고도 하고 있다.<br>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주 적은 수입으로 라벨링을 하는 사람들, 그냥 플랫폼에 접속해 재미로 클릭하는 사람들 모두의 행위가 플랫폼의 이윤을 창출하는 일이 된다는 것. 그러므로 로봇이라는 현상 앞에서 사람들이 잊고 있는 노동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br>인공지능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 노동은 사라지지 않고 또 줄지 않을 것이라고... 물론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일들은 로봇(인공지능)으로 대체될 수 있다. 그것을 보고 인간 노동이 준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눈에 보이는 일자리, 지금까지 인간이 하는 노동으로, 인간의 일자리였던 것이 로봇으로 대체된 것일 뿐.<br>로봇이 그 일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학습이 있어야 하는데, 학습하기 위해 필요한 데이터를 누가 만들어내는가 하면 그 데이터를 만들어내는 인간이 바로 인간이다. 즉 로봇이 일을 하면 할수록 인간이 해야 하는 일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br>로봇은 수많은 데이터, 새로운 데이터를 필요로 하고, 그러한 데이터를 창출해내는 존재는 인간이기 때문이라는 것. 그럼에도 그러한 인간들의 노동을 보지 못하고, 또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그러한 사회는 인간의 행복을 구현하는 사회가 아니라 소수 인간은 행복할지 몰라도 다수의 인간들은 불행한 사회가 된다고...<br>그런 사회가 되지 않도록 보이지 않는 노동을 볼 수 있어야 하고, 노동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카실리는 주장한다.&nbsp;<br>이런 점에서 이 책 표지에 있는 작은 제목 '자동화 신화와 은폐된 인간 노동의 진실'이라는 말이 다가온다. 자동화로 인간의 노동이 사라질 거라는 것은 허상이라고... 자동화 뒤에 오히려 잘게잘게 쪼개진 일들을 하는 인간이 있음을 파악해야 한다고...<br>이 책의 장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인공지능, 로봇, 자동화에 열광하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숨겨진 인간 노동을 보게 하는 것. 그러한 인간 노동이 있기에 인공지능, 로봇, 자동화가 가능한 것이라고. 그러니 우리가 편리하게 살 수 있게 하는 이러한 구조를 지탱해주는 것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 또 그것이 노동인지 생각하지 않고 하는 우리 모두의 활동들이니 '보편 디지털 소득'을 도입해야 한다고 한다.&nbsp;<br>카실리는 '나는 로봇이 노동자를 대체하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는, 로봇이 아니라 더 낮은 임금을 받는 다른 노동자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그러므로 보편적 기본소득은 실업을 보상하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 착취에 맞서기 위한 필수적인 수단'(439쪽)이라고 주장한다.<br>그러면서 '사유재산은 사회적 재산으로, 종속된 노동은 자기결정적 노동으로, 데이터와 노동을 둘러싼 울타리는 진정한 공유 인프라로 대체되어야 한다'(443쪽)고 한다.&nbsp;<br>이렇게 카실리는 인공지능으로 인해 인간의 일자리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노동과는 다른 노동으로 인간들이 계속 일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런 인간들의 노동이 인공지능(로봇, 자동화)을 이끌고 유지하게 하니, 그들이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도록 해야 한다는 것.&nbsp;<br>인공지능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아니라 카실리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인간과 인공지능이 공존하는 사회는 충분히 가능하고, 또 사회의 불평등을 줄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br>소수에게만 집중되는 부와 시간의 여유가 아니라 모두에게 분배되는 부와 시간의 여유, 그것이 바로 이 책의 저자인 카실리가 꿈꾸는 세상이고, 우리 역시 그러한 꿈을 꿔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br>덧글<br>참고로 나는 여기서 로봇, 인공지능, 자동화를 같은 의미로 썼고, 카실리가 이 책을 쓴 때가 2019년이라고 해서 인공지능이 한창 떠오르는 지금과는 좀 거리가 있지 않나 했는데, 영문판을 2025년에 냈다고 하고, 이 책의 번역은 주로 2025년을 기준으로 했다고 하니,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인공지능 논의와 동떨어져 있다고 할 수 없다. 그의 주장을 참조하는 것도, 특히 결론 부분에서 제시하고 있는 대안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75/33/cover150/k59213966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3753347</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과 나 그리고 책</category><title>삶이보이는창 144호-다양한 삶을 만나는 창</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423327</link><pubDate>Fri, 31 Jul 2026 10: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423327</guid><description><![CDATA[&nbsp; 예전에 받아보았던 잡지들이 하나둘 폐간이 되거나 휴간이 되더니... 그러더니 격주간에서 월간으로, 월간에서 격월간으로, 격월간에서 계간으로, 다시 계간에서 반연간으로 바뀌는 잡지들을 보게 된다.<br><br>&nbsp; 책이라는 물성을 지닌 존재가 우리 곁에 오기가 많이 힘들어졌구나 하는 생각.<br>&nbsp; 특히 돈이 되지 않는 잡지들은 발간을 지속하기가 힘든 상태가 되었음을 느끼게 하는데.<br>&nbsp; [삶이보이는창]을 처음 만난 것은 격월간지였을 때였던가, 두 달에 한 번 만나다가, 계간지로 변경이 되어 세 달에 한 번 만나다가, 이번에 보니 일년에 두 번, 1월과 7월에 발간을 한다고 한다.<br>&nbsp; 그만큼 운영이 힘들어진 거겠지. 참 많은 잡지들이 계속 나오고 있는데, 이렇게 우리 일상의 삶을 다루는 잡지는 점점 더 어려운 지경에 이르게 되니, 그 점이 안타깝다.<br>&nbsp; 그럼에도 아직 폐간은 아니다. 한 해에 두 번은 만날 수 있다. 우리 주변에 있지만, 주의해서 눈길을 주지 않던 삶들. 그런 삶들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세상을 보여주는 글들이 실려 있는 이 잡지를.<br>'살아가는 이야기'에서 화가나 그림에 대한 이야기, 새에 관한 이야기, 자신이 살고 있는 이야기, 부모님 이야기 등등이 실려 있어, 특별한 삶이 아니라 이런 보통의 삶들이 바로 우리의 삶임을 생각하게 해주고 있는데...<br>여기에 '문학' 부분이 있어서 시도, 시인에 대한 이야기도 가끔 소설도 읽을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이 잡지에는 온갖 삶들이 들어가 있다고 할 수 있다.<br>이번 호에 실린 단편소설 '오븐이 켜지는 시간(이상무)'은 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는 조리종사원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br>아이들 밥을 해주기 위해서, 즉 아이들을 살게 하기 위해서 일을 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죽어가고 있는 노동자들의 모습.<br>그런데도 학습권 운운하면서 그들의 파업을 막으려 하는 학생의 모습에서, 몇 해 전에 모 대학에서 일어났던 학생들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지만...<br>이 잡지가 어떤 잡지던가? '삶이 보이는 창' 아닌가. 학생들은 자신들의 점심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자신들에게 밥을 해주는 노동자들이 남이 아님도 안다. 그들의 노동으로 자신들이 맛있는 한 끼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을.<br>그런 맛 있는 한 끼에 노동자들의 목숨이 담보로 걸리면 안 된다는 사실도 안다. 함께 살기 위해서 밥을 하고 먹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니 조금 맛이 없더라도 남의 건강을 해치는 요리를 주장해서는 안 된다. 그 점을 이 소설 속 학생들은 알고 있다.<br>왜냐하면 이들은 조리종사원을 '이모'라고 부르는데, 이 '이모'는 시중의 음식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부르는 호칭의 의미가 아니라 자신들의 가족과 같이 중요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친밀한 관계를 뜻하는 말로 쓰고 있는 것이다.<br>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 병에 걸릴 위험이 있는 요리를 해달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고 봐야 할 테니... 그렇게, 학교라는 장소에서 함께 지내는 이들의 모습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해가는 과정이, 그것이 파업이라는 노동자들의 권리 행사를 통해서라도 이루어졌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나 할까.<br>그래서 이 소설을 통해서 다시 우리나라 학교 현장을 생각하게 된다. 학교 급식이 공공화 되었지만 과연 조리종사원들이 일하는 환경은 나아졌는지... 여전히 암에 걸리는 사람,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고, 하는 일에 비해 사람 수는 적은데, 학생수가 준다고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깎겠다고 할 것이 아니라, 그만큼 예산에 여유가 있다면 이러한 환경 개선에 우선 투자를 하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됐다.<br>우리나라 학교 환경은 여전히 좋지 않은데, 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환경은 더더욱 좋지 않으니... 학생수에 맞춰 주던 교부금을 학교 전체적인 교육 환경 개선에 쓰도록 한다면... 결코 많다는 소리를 하지 못할 텐데.<br>이런 삶. 또 다른 많은 삶들. 내가 살아보지 않지만 [삶창]을 통해서 다른 삶들을 만나고, 그 삶들이 함께 행복해지는 사회를 꿈꿀 수 있으니, 이것이 책을 읽는 보람 아닌가 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726/pimg_639206934644222092.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423327</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사람이야기</category><title>이 그늘진 땅, 따뜻한 햇볕 한 줌으로 살아온 사람들 이야기 - [우리의 노래가 - 흐르고 굽이치다 어우러진 아홉 곡의 인생 이야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421372</link><pubDate>Thu, 30 Jul 2026 12: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42137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4375130&TPaperId=1742137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05/38/coveroff/896437513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4375130&TPaperId=1742137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우리의 노래가 - 흐르고 굽이치다 어우러진 아홉 곡의 인생 이야기</a><br/>노회찬재단 구술생애사팀 지음, 노회찬재단 기획 / 후마니타스 / 2026년 07월<br/></td></tr></table><br/>노회찬재단 구술생애사 팀이 낸 두 번째 책. 권력을 행사하지도, 남들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하지 않지만 자신들의 삶을 묵묵히 살아온 사람들. 그런 삶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도 행복을 전하게 된 사람들 이야기.<br>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 그리고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을 넘어 다른 이들에게 무언가를 주고자 하는 삶을 살고자 했다는 것.<br>그것이 노래든, 밥이든, 또는 점술이든 이들은 모두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의 삶과 관계를 맺고, 그들이 조금이라도 행복한,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면서 살아왔다.<br>나만이 아니라 우리가 잘사는 사회. 성소수자나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또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바라며 살아온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 사회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br>구술생애사라는 것이 사람의 인생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다. 위대한 인물들의 이야기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남기는 일. 이것은 무척이나 소중한 일이다. 이들 역시 오롯이 자신의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br>이렇게 다른 사람의 삶을 듣고 기록하는 일은 곧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일이기도 하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 것. 방향을 찾는 것. 그것이 구술생애사를 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br>이러한 작업을 읽는 우리들은 또다른 삶을 만나게 된다. 내가 살아보지는 않았지만 구술되어 기록된 삶을 통해 다른 삶을 살아보게 된다. 그들이 살아온 험난한 세상. 또 그들이 보여준 희망들.<br>소위 민중가수라 불리는 최도은('불나비'로 잘 알려져 있다), 김원중('바위섬'으로 유명한 가수, 그가 '직녀에게'도 불렀다니)의 이야기, 민중가요를 부르는 단체인 '꽃다지' 기획자 민정연, 퀴어 무속인 박인, 퀴어 직장인 한열음, 그리고 하숙생들의 밥을 해주었던 하숙집 운영자 정경애, 여기에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해서 노력하는 웨노웨 흐닌 쏘(강선우), 방글라데시에서 와 한국인으로 정년을 맞이하는 박지환(하비불), 서남아시아의 문화 행사를 기획하면서 지내는 자한길 알럼이 이 책의 주인들이다.<br>아니 이들과 함께 살아온 사람들이 주인이라고 해야겠다. 이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자신의 삶 속에 녹여내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고. 하여 이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듣고 기록한 사람들에게도 고마움을 느낀다.<br>이런 작업이 없었다면 우리에게 다가오지 못했을 삶들을 만나게 해주었으니... 이런 삶을 만나 다양한 삶이 있고, 그러한 다양한 삶들이 우리 사회를 더 건강하게 만들고 있음을.<br>아마도 이 작업은 두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 우리가 주변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계속 나올 것이라 기대한다.&nbsp;<br>제목이 된 '우리의 노래가'는 백창우의 노래 '우리의 노래가 이 그늘진 땅에 햇볕 한줌 될 수 있다면'에서 따왔다고 한다. 각 인물을 소개하는 장들도 이 노래에서 가사를 따와 '1부는 '이 그늘진 땅에', 2부는 '이름 없는 꽃들 다 이름을 얻고', 3부는 '움츠린 어깨들 다 펴겠네'이다.<br>이 책에 소개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이 노래를 찾아 들으면 더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이 노래의 끝부분처럼 '이름 없는 꽃들 다 이름을 얻고 / 움츠린 어깨들 다 펴겠네 / 닫힌 가슴들 다 열리고 / 쓰러진 이들 다 일어나 아침을 맞겠네 /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 모두 하나될 그날이 오면 / 얼싸안고 춤을 추겠네 / 한판 대동의 춤을 추'는 우리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br>읽으면서 예전에 들었던 백창우의 노래가 머리 속에서 울리고 있었고, 최도은의 불나비, 김원중의 바위섬과 직녀에게가 떠다녔으니... 앞부분에서 만난 이들은 그래도 이름이라도 알고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반가웠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05/38/cover150/896437513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053816</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이야기</category><title>제 이익을 위해 파국을 외면하는 사람(집단)들 - [왜 극우는 기후위기를 부정하는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418858</link><pubDate>Wed, 29 Jul 2026 11: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41885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72136945&TPaperId=1741885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33/82/coveroff/k37213694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72136945&TPaperId=1741885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왜 극우는 기후위기를 부정하는가</a><br/>박지형 지음 / 이음 / 2026년 02월<br/></td></tr></table><br/>지금 세계에서 극우를 대표하는 사람이 누구일까? 유럽에서도 극우를 표방하는 정당이 많은 표를 얻고 있는 현실이지만, 전세계에서 극우를 대표하는 인물로 단 한 명을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트럼프를 뽑겠다.<br>그야말로 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세계 평화고 뭐고 없는 사람. 사람에 대한 사랑이 없고, 오로지 이익에만 눈이 먼 사람. 그래서 그는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또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면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한다. 여기에 제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다른 나라 사람들을 미국 밖으로 내쫓고, 미국의 이익, 아니 자기 이익에 반하는 나라들을 침공한다. 그러면서 전쟁은 아니라고, 군사행동이라고 하고, 거기에 따른 민간인들의 피해는 부수적인 피해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항변한다.<br>여기에 부화뇌동, 아니 어쩌면 트럼프를 추동하는 인물이 하나 있으니 이스라엘의 네타냐후다. 이 둘이 이 책에 빈번하게 등장한다. 기후위기를 이야기하는 책에 트럼프와 네타냐후라니?<br>제목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왜 극우는 기후위기를 부정하는가'라는 이 제목 속에는 트럼프나 네타냐후가 등장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여기에 이 책에서는 기후위기는 현대에 들어서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그 배후에는 제국주의, 그것도 로마와 결합한 기독교의 제국주의가 있음을 주장하고 있는데.<br>로마-기독교의 결합으로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트럼프와 네타냐후가 언급이 안 되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br>이들은 왜 기후위기를 부정할까? 그것은 그들이 추구하는 제국주의 때문인데...자본과 화석연료에 기반한 성장주의를 추구하는 사람들. 이들에게는 이윤이 우선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이익 기반인 화석연료 산업을 포기할 의향이 전혀 없다.&nbsp;<br>(화석연료와는 다르지만 이들은 원자력발전도 계속 추진한다. 화석연료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와 원자력발전(핵발전이라고 하자)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비슷하다. 중앙집권적인 에너지 정책, 권력의 집중. 이런 것들...)<br>또한 자본의 기본 속성은 성장과 팽창인데, 그것을 멈추는 순간 자본은 제 존재 의미를 잃게 되기 때문에, 이 자본을 대리하는 자본가들은 국가권력과 결탁하여 자신들의 산업이 계속 팽창하도록 압력을 넣는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존재가 트럼프이기도 하고.<br>이런 그들이 기후위기를 인정할 수 없다. 인정하는 순간 자신들의 산업기반을 부정해야 하니까. 자신들의 이윤을 포기해야 하니까. 그리고 권력도 내려놓아야 하니까.<br>이들에게는 인류의 미래 이런 것은 관심이 없다. 오로지 이윤을 향해 나아가는 성장뿐이다. 그러한 성장을 방해하는 존재들은 사라져야 한다. 성장이 문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거짓말쟁이로 몰아가야 한다.<br>이렇게 그들은 기후위기를 부정할 수밖에 없다. 자신들의 존립 기반이 바로 기후위기를 불러오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모든 권력과 거기에 복무하는 지식인들을 동원해서 자신들은 문제가 없다고, 기후위기 역시 과장된 주장에 불과하다고 한다.<br>이들이 표방하고 있는 성장은 곧 자연의 정복이다. 그것을 기독교 성경, 창세기에 나와 있는 구절로 합리화한다. 자연은 공생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정복해야 할 대상이다. 이런 그들에겐 산이 방해가 되면 터널을 뚫든지, 깎아버리든지 해야 하고, 강은 이윤을 위해 댐을 만들거나 운하로 만들어야 한다. 자연 존재 자체로 두어서는 안 된다. 이윤을 위해 가공되어야 할 상품이다.<br>상품으로, 물건으로 자연을 대하니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자연은 이윤을 위해 변형, 가공되어야 할 존재일 뿐이다. 여기서 발생하는 자연재해는 내(자본) 일이 아니다.<br>자유,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약탈에 불과한데, 이러한 자연의 약탈에 대한 피해가 그들보다는 사회적 약자에게 직접적으로 가게 된다. 기후위기로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대개 사회적 약자들이다.<br>기후불평등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대로 가다간 많은 사람들이 기후위기로 인해 생존에 위협을 받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될 것이다. 생존에 위협을 받지 않더라도 지금 우리는 기후위기로 인해 생활에 많은 지장을 받고 있다.<br>예측할 수 없는 폭우, 폭설, 참을 수 없는 더위, 집을 날려버리는 바람. 지진 등등... 기후위기로 인해 예측을 훨씬 넘어서는 재난들이 발생하고 있다. 그런데도 기후위기를 부정한다? 우리가 추측할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이지 않을까? 굳이 이 책을 읽지 않더라도. 그것은 바로 권력을 쥐고 있는, 막대한 이윤을 얻고 있는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다.<br>그들이 어떻게 기후위기를 부정하면서 이윤을 추구하는지 그것이 어떤 역사를 지니고 있는지, 기후위기와 정치가 결코 분리되지 않고 있음을 이 책은 여러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nbsp;<br>그러면서 결국은 피해자들이 나서야 한다고... 거대자본을 움직이는 기업가들이나 막대한 이윤을 거두어들이는 사업가들, 그들과 더불어 권력을 누리는 자들, 특히 트럼프와 같이 극우로 통칭할 수 있는 자들에게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이 현상을 유지하려고 한다.<br>그래서 저자는 기후민주주의가 시급하다고 하는데, 이러한 기후민주주의는 세 가지 전환을 전제한다고 한다.<br>'무엇보다 인간과 비인간 존재자의 공존을 추구하는 '포스트-휴먼' 자연관으로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라는 인간중심주의를 대체해야 한다. 기후제국주의의 물적 기반을 대체할 '포스트-화석연료' 에너지 시스템과 인간과 자연을 착취하며 성장하는 자본주의 경제를 대체할 '포스트-자본주의'가 기후 민주주의 의 물적 토대를 이룬다.'(149쪽)&nbsp;&nbsp;<br>이렇게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방향은 정해졌다. 이 방향으로 기득권을 지닌 사람은 나아가지 않을 것이다. 현재에 만족하는 사람은 미래를 걱정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지금 힘들게 살고 있는 사람들은 현재에서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피해자가 움직여야 하는 이유이다.<br>하여 저자는 이렇게 제안한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지금까지 잘 이루어지지 않았던 그런 일. 쉬운 일이라 생각하지만 지금까지 정치 현실을 보면 무어라 말하기 힘든 실천. 한번 생각해보자. 그리고 미래를 위해, 아니 지금 우리를 위해 생각하고 행동하자.<br>'기존의 대의제 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로 우리 생명과 그 터전인 지구 커먼즈(공동자산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의 지속가능성을 보장받을 수 없다면, 각자의 방식으로 최선의 정치적 실천 방안을 찾아야 한다. 개인의 실천은 생명을 최우선적 가치로 존중하는 정당화 제도를 선택하는 것에서 시작될 수 있다.(173쪽)]]></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33/82/cover150/k37213694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7338247</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이야기</category><title>우리가 살아갈 세상을 예보하다 - [시대예보: 경량문명의 탄생 (시리즈 30만부 기념 리커버 한정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416321</link><pubDate>Tue, 28 Jul 2026 08: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41632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92135931&TPaperId=1741632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06/85/coveroff/k69213593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92135931&TPaperId=1741632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시대예보: 경량문명의 탄생 (시리즈 30만부 기념 리커버 한정판)</a><br/>송길영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5년 09월<br/></td></tr></table><br/>일기예보, 중요하다. 지금은 아니지만 곧 내게 닥칠 기후를 알려주고 준비하게 하기 때문이다. 하루, 또는 이틀, 사흘의 날씨 예보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살아갈 세상의 미래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할까?<br>지금의 삶이 영원히 지속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지금의 삶은 곧 바뀐다. 하지만 어떻게 바뀔지 예측하기 힘든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예전의 자기만을 지킨다는 것은 곧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뒤떨어짐을 의미한다.<br>그렇기에 우리는 일기예보를 살피듯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미래를 예측하려고 한다. 그러한 예측에 따라 준비하기도 한다.<br>이 책은 그렇게 미래 시대를 예보해주는 책이다. 지금을 기준으로 미래를 예측한다. 일기예보가 정확성을 더해갔듯이, 저자는 '시대예보'라는 주제로 세 번째 책을 냈다. '핵개인의 시대, 호명사회'에 이은 세 번째 책.<br>집단의 일원으로 살아가던 시대에서 이제는 개인이 중심이 된 사회, 그래서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사회로 접어들었고, 그러한 사회는 전체적으로 고정되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유동하는, 가벼운 사회로 가고 있다고.<br>경량문명의 시대라고 하는데, 이러한 경량문명의 시대는 예전처럼 한 직장 생활을 한다든지, 거대 기업의 일원으로 직장 생활을 한다든지,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의 정체성만 유지한다든지 하는 것이 아니다 순간순간 변화하는 흐름에 자신을 맡기거나 또는 그러한 흐름을 자신이 만든다는 것이다.<br>집단 속에 녹아들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못했던 시대는 이미 저물었다. 지금은 개인이 중요한 시대인데, 이런 시대를 이끈 것은 '지능의 범용화'와 '협력의 경량화'(21쪽)라고 한다.<br>이제는 거스를 수 없는 인공지능. 이 인공지능으로 인해서 지능은, 지식은 쉽게 만나고 이용할 수 있게 되었고, 한 번의 만남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하는 일들이 반복되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br>왜 협력이 가벼워질까 했더니, ''관계의 경량화'와 '협업의 거리 단축'이, 바로 협력이 가벼워지는 세계의 핵심'(85쪽)이라고 한다. 이는 '필요에 따라 빠르게 뭉치고 흩어질 수 있는, 변화에 즉각 반응할 수 있는 힘'(93쪽)이 작동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br>이러한 경량문명의 시대, 어떻게 살아야 할까?&nbsp; 저자는 '빠르게 잊고 늘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호기심을 잃지 않는 어린아이와 같은 태도가 새로운 문명의 참여자들이 가져야 할 역량이 된다'(180쪽)고 한다.<br>과거에 매이지 말고 미래를 보면서 나아가야 하고, 새로움을 두려워하지 말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고, 그러면서도 자기 것을 잃지 않고 만들어가야 한다고 하는데...<br>이러한 자기 것을 지닌 인간들이 대등하게 협력하는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 이것이 바로 경량문명 시대라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여기서 '교육'이 문제가 된다.<br>과거의 공부가 아니라, 경량문명의 시대에 맞는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 새로운 공부는 '첫째 학령기의 공부가 아닌 평생의 공부가 일반화되며 공부의 기간이 인생만큼 길어질 것입니다.&nbsp; 둘째, 모든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것을 탐구하는 방식으로 공부하는 대상이 좁아지게 될 것입니다. 셋째, 이미 누군가가 발견한 것을 알려주는 게 아닌, 아무도 모르는 것을 스스로 찾는 방향으로 깊어질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경쟁자와 비교해 등수를 내는 것이 아닌, 나만의 것을 오롯이 해내는 것으로 바뀌며 공부를 하는 이들의 마음은 평온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210-212쪽) 고 하고 있다.<br>이러한 시대에서는 배움의 주체가 달라질 수 있다고. 즉 지금까지는 나이든 사람이 어린 사람을 가르쳤다면, 이 경량문명의 시대로 접어드는 때에는 어린 사람이 나이든 사람을 가르쳐야 한다고. 나이든 사람이 어린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배우려 해야 한다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이 살아왔던 중량문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말 것이라고 한다.<br>이렇게 저자는 미래를 예보해주고 있다. 다가올 경량문명의 시대는 이러한 특징을 지니고 있으니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일기예보가 특정 나이 대의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듯이, 저자의 시대예보 역시 특정 세대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br>경량문명이 특정 세대에게만 해당하지 않고 모두에게 해당하듯이 우리는 다가올 시대를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 그러한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br>일기예보가 늘 맞을 수는 없다. 하지만 준비해서 나쁠 것은 없다. 오히려 예보를 듣고서 준비하지 않았을 때 더 큰 낭패를 볼 수가 있다. 시대예보 역시 마찬가지다. 저자의 시대예보가 정확히 맞는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준비를 하지 않을 수도 없다.<br>분명 저자의 말대로 경량문명으로, 유동적인 문명으로 가고 있는 흐름은 모두가 인정하고 있으므로... 그래서 저자가 말한 '경량문명의 개인은 날아오르고 혼자 헤쳐나가는 스스로 비행하는 자유인'(353쪽)이라는 말이 마음에 다가온다.<br>새들이 먼 길을 날아갈 때 갈 수 있는 능력과 힘을 기르듯이, 그럼에도 홀로가 아니라 함께 날아가듯이 앞으로 다가올 시대를 살아갈 우리들도 그렇게 홀로 또 함께 해야 함을 저자의 이 세 문장이 압축적으로 말해주고 있다.<br>&nbsp; &nbsp; &nbsp; &nbsp; &nbsp; &nbsp;경량문명의 그라운드 룰<br>&nbsp; &nbsp;1. 우리는 지금 만납니다, 준비가 되신 분만.&nbsp; &nbsp;2. 우리는 잠시 만납니다, 전력을 다할 분만.&nbsp; &nbsp;3. 우리는 다시 만납니다, 마음이 맞는 분만.&nbsp;&nbsp;(338쪽)<br>그래, 결국 준비가 되고 최선을 다하고 상대를 배려할 수 있는 그런 개인들이 미래 시대를 살아갈, 경량문명의 시대를 살아갈 존재들이라는 것.<br>구체적인 실천 방법이야 개인이 마련해야 하겠지. 그것까지 예보에서 알려줄 수는 없으니. 미래 세계의 윤곽을 보여주었으니, 그에 맞는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은 이제 그 시대를 살아갈 우리들의 몫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06/85/cover150/k69213593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5068538</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과 나 그리고 책</category><title>강재남 시집-자기의 삶, 자기 정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414253</link><pubDate>Mon, 27 Jul 2026 08: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414253</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42530842&TPaperId=1741425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0613/79/coveroff/k742530842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nbsp; 요즘 몇몇 단어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저 말이 저렇게 부정적인 말로 쓰일 수가 있었나 싶은 말들.<br><br>&nbsp; 그 중 한 말이 '자기 정치'라는 말이다. 세상에, 정치인은 모두 '자기 정치'를 하는 것 아니었나? 자기 정치를 하면서 자신과 비슷한 정치적 신념을 지닌 사람들을 모으고, 그들이 모여 정당을 이루면서, '자기 정치'를 '우리의 정치'로 또 '국민의 정치'로 확장해 나가는 것 아니었나.<br>&nbsp; '자기 정치'도 할 줄 모르면서 남의 정치에 따라가기만 하는 사람들을 정치인, 아니 좋은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나?<br>&nbsp; '자기 정치', 그것을 명확히 밝히고, 동료를 모으고, 또 시민들, 국민들의 지지를 얻는 정치인이 바로 좋은 정치인 아닌가.&nbsp;<br>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힘센 자에게 굴복하지 않고, 자기 말을 이리저리 바꾸지 않고, 행동을 그때그때 유리한 쪽으로 하지 않고, 뚝심있게 자기 정치를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필요한 것이 지금의 정치판 아닌가.<br>한때 우리나라도 이러한 '자기 정치'를 하는 사람을 좋은 정치인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 사람을 지지하기도 했었고. 지금도 그런 정치를 한 사람이 인정을 받고 있다고 여기고 있었는데...<br>그런데, '자기 정치'를 이렇게 상대방을 비난하는 말로 쓰다니... 이거야 원. 이건 정치의 실종 아닌가. 그냥 강한 자의 정치를 따라하거나 침묵하거나 해야 하는 걸까?<br>그러면 도대체 왜 정치를 하는가? 자기가 실현하고 싶은 정책을 이루기 위해 정치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자신의 정치적 신념이 실현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면 정치를 하지 말아야 하지 않나?<br>하려고 했으면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자기 정치'를 해야 하고, 그러한 '자기 정치'가 도저히 불가능하다면 그때는 정치에서 손을 떼고 물러나야 하지 않겠는가.<br>조선시대 선비들... 그 선비들 중에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을 테고, 그 말을 떠들지 않은 사람이 없었을 텐데, 그들 중에서도 '자기 정치'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을 때 미련없이 낙향을 했던 사람들이 있지 않았던가. 후일을 도모하면서...<br>'자기 정치'를 버린 것이 아니라 '자기 정치'가 실현될 때를 기다리는 자세. 내 때 되지 않으면 내 후배들, 또 제자들, 그 제자들 때에라도 실현될 수 있게 교육에 힘썼던 것 아니었나. 그런 생각을 하는데...<br>뜬금없이 '자기 정치'를 한다고 상대를 비난하다니... 정치인은 모두 '자기 정치'를 해야 하고, 이 '자기 정치들'이 모여 '정당 정치'가 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담, 정당에 들어가서는 '자기 정치'를 포기해야 하나? 그 선이 어디인가?<br>포기가 아니라 '자기 정치'의 확대 아니겠는가? 나만이 옳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 안에서 토론과 학습을 통해 '자기 정치'의 영역을 넓혀나가는 것. 그것이 바람직한 '자기 정치'의 모습이라는 생각을 하는데...<br>문제는 '자기 정치'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으니, 서로의 '자기 정치'들의 접점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고민하지 않는 것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드는 요즘인데...<br>그렇다고 아집과 독선, 독단에 빠져서 하는 행동을 '자기 정치'라고 할 수는 없는데, 그런 착각을 '자기 정치'라고 여기고 밀고 나가는, 제가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보고, 듣고 싶어하는 것만 듣는 정치인도 있는데... 이들에게는 '자기 정치'란 말을 써서는 안 된다. 그건 정치에 대한 모독이다. 그것은 정치가 아니라 자신의 이득을 지키기 위한 술수에 불과하다.<br>이런 생각... 강재남 시집을 읽다가 든 생각인데... 세상에 시와 정치가 이런 식으로 연결이 될 수도 있구나, 그렇지만 시나 정치나 모두 언어를 통해서 상대에게 전달이 되는 것이니, 접점이 있을 수밖에 없겠지 하는 생각도 하고.<br>'자기 정치'가 외연을 확장해 다른 사람들의 지지를 얻고 힘을 받아 현실에서 실현되기 위해서는 '독창성과 고답성이 충돌하는 지점'('고답적인 너의 나라'에서. 16쪽)을 파악하고,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것.<br>즉 정치는 완전한 새로움도, 또 완전히 옛것을 고수하는 것도 아닌, 옛것과 새로움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고 나아가는 것. 그러할 때 '이상하고 아름다운'('고답적인 너의 나라'에서. 16쪽) 정치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br>이렇게 '자기 정치'를 하는 정치인들이 있다면, 그들이 스스로 목청을 높이지 않아도 남들이 알아주게 된다는 사실을... 이 시집에 실린 시 '소리 내며 지는 꽃은 없다'를 읽으며 생각했다.<br>소리 내며 지는 꽃은 없다<br><br>&nbsp; 빈손인 내게도 가을이 찾아왔다<br>&nbsp; 무엇을 남기며 살고자함이 아니었지만 풍요로 남실거리는 들판이나 날개를 접은 저녁, 놀이 물드는 하늘을 보노라면 자꾸만 내 빈손이 들여다뵌다<br>&nbsp; 발걸음 따라 걷다 온 수월리, 하양지를 돌아 나오는 길섶으로 청노루 따먹던 연한 칡순이 계절을 잊은 듯 땅으로 뻗쳐 보랏빛 웃음 흘리고 있다<br>&nbsp; 철지난 그 꽃 어제를 모르고 스산한 바람 앞에 한줌 흙이 되어 땅으로 질 터인데 거짓 없이 싹틔우고 꽃 일궈냈음을 스스로 자랑 숨기고 소리 없이 질 터인데,<br>&nbsp; 지상의 꽃들 일제히 우우 소리로 존재를 드러내 어찌 바람에 몸 맡기어 흔들리고 싶지 않으리 생각의 마디 툭툭 꺾어 마음불 지피고 싶지 않으리<br>&nbsp; 비우고 걸어가는 꽃길을 따라 이 가을 나도 해탈을 향하여 서늘하게 지고 싶다<br>강재남, 이상하고 아름다운. 서정시학. 2017년 초판 2쇄. 74-75쪽.<br>그렇게 읽은 것이 이 시를 잘못 읽은 것이라 해도, 하, 역시 '고답성과 독창성 사이'에서 이 시를 그렇게 읽었다고 하면 지나친 곡해일지라도...&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0613/79/cover150/k74253084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06137942</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인간중심의 쓸모있음을 버리면 다른 세상이 보인다 - [해파리 만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408716</link><pubDate>Fri, 24 Jul 2026 08: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40871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0909874&TPaperId=1740871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19/88/coveroff/8960909874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0909874&TPaperId=1740871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해파리 만개</a><br/>김초엽 지음, 박지숙 그림 / 마음산책 / 2026년 04월<br/></td></tr></table><br/>'쓸모없는 것은 정말로 쓸모없는 것일까'('해파리 만개에 관한 기록' 중에서. 46쪽)<br>쓸모없다는 판단을 누가 하는가? 거기에는 나와 남을 가르는 기준이 존재한다. 그러면서 내가 아닌 다른 존재들을 쓸모로 판단한다. 즉, 내게 유용하면 쓸모있음, 유용하지 않거나 내가 어떤 쓰임을 알지 못하면 쓸모없음.<br>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존재들, 또 만나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존재들은 어떤가? 이들은 쓸모없음의 범주로 들어가게 되는가?<br>이들이 쓸모있음의 범주로 들어오려면 내가 이들에게서 어떤 유용성을 찾아내야 하는 것일까? 그런데 내게 쓸모있음이 그들에게는 고통일 수 있다면? 그들의 존재를 부정하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조정하는 것이라면?<br>즉, 그들의 존재를 그 자체로 인정하지 않고, 나라는 존재를 기준으로 해서 판단한다면 그것이 과연 바람직할까?<br>우리는 인간이 없는 행성을, 또는 인간이 다른 존재에게 어떤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오히려 다른 존재들에게 영향을 받으면서 사는 행성을 상상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그런 행성이 있다면 당연히(?) 인간을 구출해와야 한다고 생각한다.&nbsp;<br>인간중심주의. 즉 존재의 쓸모있고 없음을 인간을 중심에 놓고 판단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많다. 그러니 화성이나 달을 개척하겠다고 하는지도 모른다. 인간이 지구말고도 다른 행성에서도 지배적인 위치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br>하지만 이 소설집, 김초엽의 짧은 소설들이 모여 있는 이 소설을 읽다보면 인간을 중심에 놓는 것에 의문을 지니게 된다. 생태주의자들이 했듯이, 또는 고대 중국의 노자가 '쓸모없음의 쓸모'를 이야기했듯이, 그렇게 인간 이외의 존재들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br>인간중심주의에 빠져 있을 때 보지 못했던 것들, 그냥 우리 눈에 비친 것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이야기하는 소설이 '모래 이야기'라면, 인간의 쓸모에 부합하지 않아 버려진 존재도 스스로의 의미를 지닌 존재임을 보여주는 '사각의 탈출', 그리고 마을에서 좀 모자라는 사람으로 취급당하는 미라 아주머니가 등장하는 '끈적이'라는 소설. 여기서는 통념에서 벗어나는, 또는 사회에서 쓸모있음으로 규정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존재가 등장한다.<br>'그들이 책으로 규정하지 않는 것을 만들 거야. 정의에서 달아나고, 사전에서 달아나는 것을 만들 거야.'('끈적이' 중에서. 91쪽)&nbsp;<br>이것이다. 바로 '쓸모있음'에 갇혀있지 않겠다는 것. 즉 여기서의 쓸모없음이 꼭 쓸모없음이 아닌 쓸모있음일 수도 있다는 것.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 고정된 것만이 아니라 변화하는 것, 정지는 그냥 정지가 아니라 수많은 움직임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들인데...<br>'멈춘 줄 알았던 것들은 사실 멈춰 있지 않았어. 고정된 줄 알았던 것들은 단지 다른 시간의 규모를 지닌 것뿐이었어.'('모래 이야기' 중에서. 25쪽)라는 말에서 이 점을 느낄 수 있다.<br>'사모나'라는 소설에서는 인간이 아닌 '파티클'이라고 하는 존재가 중심이 된 행성이 나온다. 그러면서도 이 행성에 있는 인간을 구출하려는 사람들에게 '사모나가 정말로 파티클의 행성이라면, 정말로 그런 존재가 있다면 ... 우리가 감히 개입할 자격 같은 건 없지 않겠습니까'('사모나' 중에서. 201-202쪽)라고 말하는 인물. 왜 모든 행성에 인간이 중심이 되어야 할까? 거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 질문.&nbsp;<br>이 인물을 통해 '쓸모있음'이 얼마나 인간 중심으로 해석되어 왔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한 '쓸모있음'과 '쓸모없음'의 구분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소설이 '해파리 만개에 관한 기록'이고... 이 소설에서 바로 맨 앞의 구절을 인용했는데...&nbsp;<br>이 소설의 뒤로 가면 해파리들이 만개한 세상에, 해파리와 공존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온다. 어떻게? '해파리를 멈츄는 방법을 알아냈다. 바로 해파리를 그냥 놔두는 것이다.'('해파리 만개에 관한 기록'에서. 73쪽) 이것이 바로 해파리를 쓸모있음과 없음의 기준으로 구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중심의 판단을 하지 않는다는 것.<br>이것과 연결되어 각 행성마다 다른 인간중심의 판단이 같은 존재에게 가하는 폭력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 '젤리의 우울'이라는 소설이다. 눈물의 필요성에 따라 대우받거나 무시당하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지니, 역시 '쓸모있음'의 기준이 무엇인지, 그것이 과연 나와 다른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태도인지 생각하게 한다.<br>이 소설들을 읽으며 '인공지능'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인간이 만들었다고 해서, 우리의 쓸모를 위해 만들었다고 해서 과연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끝까지 종속될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소설에 실린 내용들이 지금은 상상이라고 하겠지만, 상상이 현실이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br>그렇다면 인공지능을 쓸모로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의 존재 자체에 대한 생각, 인간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냈다고는 하지만 이 지구에서 함께 존재하는 또다른 존재가 될 인공지능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에 대한 시사점을 이 소설들을 통해서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br>진지하게 생각하게 하지만 소설은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읽으면서 글자가 아니라 소설 속 세계를 상상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온갖 존재들이 모두 각자의 쓸모를 지니고 있음을, 그 쓸모를 어떤 특정한 한 존재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범주에 가두면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 소설집이다.<br>역시 김초엽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19/88/cover150/8960909874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198878</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이야기</category><title>일제 때 사진엽서를 통해 식민통치 정책을 보다 - [일제 사진엽서, 식민지 조선을 노래하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403431</link><pubDate>Tue, 21 Jul 2026 10: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40343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72937825&TPaperId=1740343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109/81/coveroff/k57293782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72937825&TPaperId=1740343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일제 사진엽서, 식민지 조선을 노래하다</a><br/>최현식 지음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2023년 12월<br/></td></tr></table><br/>제국주의. 다른 나라를 침략하여 식민지로 삼는 국가를 주로 일컫는 말. 1900년대 초반 일본은 이러한 제국주의 국가였다. 옆 나라인 조선을 침략하여 식민지로 삼았다. 중국을 침략하여 만주국을 세우고 식민권력을 세웠다. 그리고 대만 및 동남아시아를 침략하여 또한 식민지로 삼았다.<br>식민지로 삼아 착취를 했다. 이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일본이 아무리 사실을 가리려 해도 가릴 수 없는 사실.<br>그렇다면 일본이라는 나라는 무엇보다도 먼저 식민지배를 했던 과거에 대해 사죄를 해야 한다. 식민지였던 나라에 대해서, 또 그 나라의 국민들에 대해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를 한 다음, 용서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새출발을 해야 한다.<br>여기서 책임질 자들이 책임을 지는 일이 가장 먼저 이루어졌어야 한다. 하지만 일본은 책임자가 책임을 면했다. 그리고 이들이 계속 권력을 잡았다. 이런 모습의 일본이 세계 평화를 위해서 일하겠다고 하면 식민지 경험이 있던 나라들은 긴장을 할 수밖에 없다.<br>일본이 다른 나라를 침략한 이유로 든 것이 바로 평화공존 아니었던가. 허울 좋은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이름. 일본이 재무장을 하려고 하는 것을 심각하게 바라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기도 한데... 책임도 지지 않고, 사죄도 하지 않고, 과거는 없던 일인 양 미래로 나아가자고만 외치고 있는 일본 권력자들의 모습에서 식민권력을 보게 된다.<br>그런데 총칼만으로 식민지를 지배할 수는 없다. 무력으로 한 나라의 주권을 빼앗더라도 계속 지배하기 위해서는 문화적으로도 지배해야 한다.&nbsp;<br>이는 자신들을 우위에 두고, 식민지 사람들, 식민지 문화들을 열등한 것으로 만들어서 자신들에 의해 계몽되거나 발전되었다는 생각을 알게모르게 식민지 사람들이 지니도록 하는 정책을 펼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br>그런 정책 중에 문화, 교육을 통한 정책이 있는데, 이들은 교묘하게 의도를 감추고 있어서 쉽게 반발하지 못한다. 이 책은 그러한 일제의 식민정책 중에서 사진엽서를 통해서 조선인들의 무의식에 일본의 우월함을 각인시키고, 조선의 낙후성을 받아들이게 하는 모습을 살펴보고 있다.<br>사진엽서는 글과 그림으로 되어 있지만, 엽서에 있는 글들이 노래로 불렸다는 것, 이는 자신들의 선전을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었으니 총칼만이 아니라 노래를 통해서도 식민지 이념을 전파했던 것이다.<br>이러한 사진엽서를 통한 식민지 권력의 선전을 하나하나 살피고 있는데, 처음은 아리랑으로 시작한다. 아리랑만큼 많이, 대중적으로 불린 노래가 있을까 싶은데, 이 아리랑조차 일본은 자신들의 선전도구로 삼으려 했다는 사실.<br>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인들은 아리랑을 통해 저항의식을 드러내기도 했다는 점, 즉 노래를 통해 식민권력에 대한 저항을 도모하기도 했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nbsp;<br>그렇다면 일제는 어떻게 대응해야 했을까? 아리랑에 비교될 수 있을 만한 노래들을 만들어 유포하는 것이다. 그 노래에는 일제를 찬양하고 조선을 비하하는 내용이 들어가도록 하는 것. 일본에서 뿐만 아니라 조선에서도 사람들이 듣고 부르게 하는 것.<br>이를 문화통치라고 할 수 있는데, 압록강, 백두산에 관한 노래를 통해 교묘하게 조선의 산하를 칭송하는 듯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일제의 대륙 침략을 옹호하고, 또 자신들의 발전 상을 드러내며, 조선의 낙후성을 보여주어 사람들의 의식 속에 그러한 이념이 스며들게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br>처음에는 드러내놓고 선전을 하지 않았지만 1930년대 후반으로 가면 '압록강, 백두산'을 소재로 한 사진엽서에서도 노골적으로 대륙 침략, 일황을 위해 전쟁터로 나가라는 내용을 드러내고 있으니, 노래를 통해 제국주의 전쟁을 미화하고, 독려하고 있음을 저자는 여러 자료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br>교묘한 식민권력, 제국주의가 무력으로만 지배한다면 식민지 사람들이 저항하기도 쉬운데,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방법으로 교묘하게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려 한다면, 그 본질을 깨닫고 저항하기는 쉽지 않다. 바로 그러한 방법을 일제가 사진엽서를 통해서, 또 노래를 통해서 쓰고 있음을 여러 자료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br>일제가 이러한 사진엽서 또는 노래를 통해서 - 이것은 나중에 국민학교(일제시대 용어다. 지금 초등학교에 해당한다) 음악 책에 실은 노래들을 통해 더 노골적이 되는데 - 자신들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려 했음을, 그래서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파악해서는 안 됨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br>참 많은 사진엽서들이 만들어졌고, 사람들에게 전해졌구나, 이것들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사람들이 쉽게 세뇌당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 이것을 역으로 이용한 것이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방법이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br>지금은 이러한 사진엽서, 노래를 통하지 않고 쉽게 보고 들을 수 있는 '유튜브'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접근하고 있으니... 이 책을 읽으면 많은 '유튜브'들도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그래서 비판적 읽기/듣기/보기가 중요함을 잊지 않을 것이다.<br>이 책에 실린 사진엽서 한 장을 보라. 이런 노골적인 내용이 일제말기에 사람들에게 다가갔으니, 처음에 의도를 숨긴 엽서들이 나중에는 의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음을, 이런 적나라한 홍보를 통해 처음의 의도들을 유추할 수 있다.<br><br>&lt;출전:최현식, 일제 사진엽서, 식민지 조선을 노래하다, 성균관대출판부. 2023년. 352쪽&gt;<br>참고로 절(節)은 일본어로 '부시'라 하고, 이 '부시'는 일본 전통 민요를 칭하는 말이라고 한다. (307쪽)<br>가사는 다음과 같다.&nbsp;'나랏님 위해 피어난 꽃이여 / 나라에 폭풍우가 몰아치는 가을에는 / 아- 산화하시라 그대여 용감하게'<br>그리고 왼쪽에 있는 작은 글자들은'몹시도 어여쁜 야마토의 아기도 총후 보국의 마음은 단단하니, 나의 쓸쓸한 마음은 아기의 건강함에 기대어 그대가 보다 순결하고 보다 강해지기를 기도한다'라고 한다.' (352-253쪽)<br>참 노골적이다. 이렇게 노골적이라니, 참.]]></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3109/81/cover150/k57293782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1098129</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관계-‘나쁜 무리‘도 ‘아무 사이‘가 아닌 - [너의 나쁜 무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401450</link><pubDate>Mon, 20 Jul 2026 08: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40145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52137509&TPaperId=1740145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83/21/coveroff/k852137509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52137509&TPaperId=1740145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너의 나쁜 무리</a><br/>예소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04월<br/></td></tr></table><br/>7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굳이 공통점을 찾으려고 하면 찾을 수 있겠지만, 한 편 한 편이 모두 독립적인 소설이라고 봐야 한다. 그렇지만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겠지 하면서 일곱 편의 소설에서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고민을 한다.<br>우선 이 소설들, 잘 읽힌다. 등장인물들에게 감정의 거리를 유지하게 하면서도 그 인물들에게 끌려들어가게 된다. 그러면서 안타까워 하기도 하고, 아, 이것이 바로 사람 살아가는 일이겠지 하기도 한다.<br>삶에서 만나는 사람들, 어떤 사람들에게는 깊은 동감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피하고 싶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경멸의 마음을, 또 어떤 사람에게는 선망의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면서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고, 자신의 행동이나 말을 유지하기도 바꾸기도 한다.<br>소설에 나타나는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상대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함께한다. 함께하면서 그 사람을 받아들인다. 다름에도,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음에도 함께하면서 서서히 관계를 만들어가고, 그 관계는 어느덧 자신의 삶에 들어와 바꿀 수 없는 무엇이 된다.<br>그것이 '나쁜 무리'이건, '아무 사이'가 아니던 상관이 없다. 세상에 만나는 사람에게서 '아무 사이'도 아닌 관계로 지내기는 힘들다. 어떻게든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으니까.<br>그런 관계를 잘 드러내고 있는 소설이 '소란한 속삭임'이다. '소란'이란 말과 '속삭임'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 붙어 소설을 이루고 있다. 속삭이는 사람에게 듣는 사람은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기 때문이다.<br>이때 귀를 기울이는 행위는 자신을 열고 상대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것이다. 시끄러움과는 다른 관계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우리들 관계가 이렇게 속삭임만으로 유지가 될까. 아니다. 시끄러움도 공존해야 한다.<br>소설에서 속삭임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시내와 광장에서 자신의 종교를 믿으라고 큰소리로 외치는 수자가 함께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큰소리를 내는 사람도 늘 큰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에게도 속삭이고 싶은 내용이 있고, 그렇게 남이 속삭이는 소리를 듣고자 하는 마음도 있다. 마찬가지로 속삭이는 사람도 늘 속삭일 수만은 없다. 어떤 때는 큰소리를 내기도 해야 한다.<br>이렇게 이들은 만나서 속삭이기도 하고, 남들에게 지적받을 정도로 시끄러운 소리를 내기도 한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데, 이때 시내의 윗층에 사는 두리가 등장한다. 삶에서 가장 조용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극도로 소리를 내지 않는, 남들과 어울리지 않는 두리. 하지만 아래층에 사는 시내는 윗층의 소음때문에 견딜 수가 없다고 한다.<br>이 소리의 원인은 시내가 두리의 집에 들어서면서 밝혀진다. 그렇다. 우리는 어쩌면 그러한 소음이라는 쓰레기 더미 속에서 지내는지도 모른다. 불필요한 소음, 이것은 보통의 시끄러움과 다르다. 우리 삶에서 공존해서는 안 될 요소다. 하여 이들은 힘을 합쳐 쓰레기들을 치운다. 소음을 내는 쓰레기를 치우고 나서 맥주를 마시면서 하는 대화.&nbsp;<br>이 대화를 통해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들을 각자 깨닫게 된다. 속삭임과 시끄러움 사이. 아니 시끄러움과 속삭임에서 결국 자신을 발견하는 인물들. 그런 과정을 보여주는 소설.&nbsp;<br>읽으면서 마음이 따스해진다. 관계란 일방적일 수 없음을. 상대에게 또 자신에게 마음을 열고 진심을 다해 다가가야 함을. 그렇게 하기 위해선 자신이 쌓고 있는 벽을 허물어야 함을.&nbsp;<br>어쩌면 이러한 관계는 보이지 않는 것을 함께 보려고 하는 데서 나오는지도 모른다. 소설집에 실린 첫소설인 '추운 뺨에 더운 손'을 보면 '마임'이 나온다.<br>눈에 보이지 않는데 보이는 것처럼 연기하는 마임. 이 마임을 통해 서로를 읽어가는 인물들. 그렇게 서로가 만들어가는 관계는 눈에 확 띠지 않지만 '마임'을 하는 사람과 '마임'을 보는 사람이 어떤 공통적인 것을 찾아내듯이&nbsp;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게 될 때 만들어진다.<br>그러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쁜 무리'는 없다. '아무 사이'도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댈 뿐이다. 이러한 기댐을 깨달아가는 인물들. 소설에서 만날 수 있다. 일곱 편의 소설 모두 이러한 관계들을 중심으로 읽어도 좋겠단 생각을 한다.<br>끝으로 작가의 말을 인용한다.<br>'어느 순간부터 나라는 사람에게서 멀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면 살수록 더 희미해지고 미약해지는데 사라지는 나를 붙들어주는 건 늘 내 곁에 있는 함께 희미한 존재들이었습니다. 어느덧 나를 정체화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들 또한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삶에 대한 의지가 생겼습니다.'(292쪽)<br>이렇게 이 소설집 인물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다. 그것이 마임처럼 확실한 실체로 존재하지 않더라도 이 관계 속에서 서로 만들어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소설이 보여주고 있으니...<br>최근에 읽은 책에 실린 그림이 생각났다. 각자 존재하지만 또 함께해서 또다른 모습을 만들어내는... 우진영이 쓴 [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한겨레출판 2025년]에 실려 있는 그림인데(196쪽에 실려 잇다)... '이내'라는 화가의 &lt;기억-마음에 담은 별&gt;이라는 그림이다.&nbsp;<br>이 소설집을 읽으면서 이 그림이 떠올랐으니... 미술과 소설이 통하는 지점이기도 하겠다. 이 그림 속 원들은 모두 소설 속 인물들이라고 보면 이들이 이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다른 모습,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음을 생각한다. 우리 삶도 그러하기를 바라면서.<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83/21/cover150/k852137509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832113</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과 나 그리고 책</category><title>녹색평론 194호 - 사람 살리는 경제에 핵발전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98096</link><pubDate>Sat, 18 Jul 2026 10: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98096</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02139942&TPaperId=1739809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47/42/coveroff/k002139942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nbsp; 책을 받아놓고 천천히 읽는다. 마치 빨리 읽으면 책하고 맞지 않는다는 듯이.<br>&nbsp; 근본으로 돌아가자. 이 빨리빨리의 세상에서 조금은 느리게 살아도 되고, 눈 앞에서 성과를 내야 하는 세상에서 내가 보지 못하더라도 좋아지는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세상을 추구하는 책인데, 후다닥 읽어버리면, 정말, 이 책을 잘 읽는 걸까 하는 생각.<br>&nbsp; 꼼꼼하게 읽어야 하지만, 천성이 그렇지 못해 그냥 천천히 그러나 꼼꼼하지는 않게 읽는다. 어떤 글에서는 아, 이건 생각 못했네... 하는 내용을 발견하고,(이헌석, '핵산업은 과연 황글알을 낳는 거위일까 - 산업으로서의 원자력을 묻는다'에 이런 내용이 있다. '한수원의 2025년 말 기준 연결감사보고서에 따르면, 해외사업 부문공사손실충당부채는 1조 4,346억 원에 달한다') 이런, 이런 사실이 왜 제대로 알려지지 않을까 ?<br>원자력 발전소 수출에 성공했다고, 막대한 수익을 창출한다고 자랑스레 떠벌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해외사업에서 오히려 막대한 손실을 보고 있다고?<br>여기에 '국내 재생에너지산업은 핵산업에 비해 수출액이 10배 정도 큰 산업이다.'(이헌석, '핵산업은 과연 황글알을 낳는 거위일까 - 산업으로서의 원자력을 묻는다'에서. 26쪽)고 하는데, 정부가 바뀐 지금도 여전히 핵발전소를 추가 건설하겠다고 하고 있으니...&nbsp;<br>여기에 노후 원자력발전소를 가동 중지시키지 않고 수명 연장을 허가함으로써 계속 가동하도록 한다고 하는데, 그럼 그 비용은 어떻게 되지? 이런 것 저런 것 다 따지면 원자력 발전 수출과 국내 건설이 다르다고 해도, 그다지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안전성 면에서는, 또 폐기물 처리에 관해 들어가는 비용에 관해서는...<br>이런 내용에다 '용인에 들어설 반도체 산업단지로 인해 원전 15개 남짓의 추가 전력이 필요하게 된 상황'(하승수, '66개의 '밀양'을 만들 것인가'에서. 69쪽)이라는 내용을 보고는, 아이고, 또 송전탑! 밀양 송전탑 건설로 인해 어떤 문제가 생겼는지를 그렇게 경험하고도 또! 하는 생각.<br>도대체 이런 산업이 계속 언급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문제점을 지적하는데,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오히려 그러한 산업을 계속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br>왜?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야하기 때문이고, 장기적인 산업 정책이나 에너지 정책은 성과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자신들의 성과를 드러낼 수 없기 때문이다.<br>즉, 삶보다는 성과를 먼저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데, 그럼에도 희망은 있다고... 지역에서 공동체를 꾸려 살아가는 사람들, 다른 존재들과 어울려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실려 있으니까.<br>그렇게 생명 평화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생명 평화를 위협하는 경제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데, 이러한 목소리가 허공에 흩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각각의 소리가 따로따로 겉돌지 않고 융합이 되어 합창이 되었듯이, 사람을 살리는 경제도 역시 이렇게 사람들이 함께 소리를 내야 함을 이번 호를 통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br>이번 호 표지에 '사람을 살리는 경제는 가능하다'고 쓰여 있다. 경제가 무엇인가? 영어로 된 말을 들여올 때 한자어로 '경세제민(經世濟民)'에서 두 글자를 따와 경제라고 했다고 하지 않는가. 이미 경제란 말에는 사람을 살린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그러니 우리 지금 경제는 그 말에 충실하기만 해도 된다. 그 점을 명심하기만 해도 사람을 죽이는, 다른 생명체, 또 다른 존재들을 죽이는 경제란 말은 있지도 않음을 생각해야 한다.<br>그럼에도 이런 경제를 계속 추구한다면? 최근에 읽은 서정홍 시인(농부)이 언급한 권정생 선생의 유언장에 있는 말을 곱씹어 본다. 정말, 우리 그런 세상을 만들 것인가?<br>'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 때도&nbsp; 세상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 봐서 그만둘 수도 있다.'<br>([서정홍, 희망은 끝내 사라지지 않고-교육공동체벗, 2025년.] 중 '권정생 선생님께'에서. 314쪽.)<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47/42/cover150/k00213994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5474234</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그림이야기</category><title>이렇게 연결되는 근대와 현대 미술 - [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 - 경성에서 서울까지, 시간을 건너는 미술 여행]</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94970</link><pubDate>Thu, 16 Jul 2026 12:1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9497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22033596&TPaperId=1739497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825/76/coveroff/k52203359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22033596&TPaperId=1739497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 - 경성에서 서울까지, 시간을 건너는 미술 여행</a><br/>우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br/></td></tr></table><br/>재미 있는 기획이다. 근대와 현대 미술을 이어서 감상하게 하다니... 이 책에 실린 기획 의도를 미술관에서 전시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겠지만.<br>예술은 독창적이기도 하지만 전통적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실학자인 박지원이 이야기했듯이 법고창신(法古創新)이거나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말이 통하는 분야가 바로 예술이다.<br>그러니 근대 미술과 현대 미술이 완전히 동떨어져 있을 수는 없다. 예술 사조 역시 하나의 흐름 속에서 변화를 추구한 것이니. 이런 예술의 흐름과 별도로 개별적인 작가들에게서 연결점을 찾는 것은 다른 문제다.<br>예술가들끼리는 비슷해지기를 꺼려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표절 시비에 휘말릴 수도 있고. 물론 오마주라고 그 작가를 기리는 작품을 만들 수는 있지만, 대부분은 영향을 받더라도 자신의 작품에 그런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도록 한다. 드러나더라도 노골적으로 표현하지는 않는다.<br>화풍이나 색감, 주제 등에서 영향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이는 작가 자신이 직접 밝힌 경우다. 전혀 교류가 없던 작가들에게서 연결성을 찾아내어 비교하면서 작품을 설명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이렇게 근대 작가와 현대 작가를 일 대 일로 대응시킨 경우는 더더욱.<br>그래서 이 책에는 근대 작가 한 명과 현대 작가 한 명을 비교하면서 설명하고, 현대 작가에게 질문하고 받은 내용이 실려 있다. 그 질문 중에 제일 먼저 나오는 질문이 '이 기획을 통해 근대 작가와 연결되었는데, 이 연결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함께 소개된 작가 000을 알고 있는지, 글에서처럼 본인의 작업과 통하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되는지 궁금하다'이다.<br>이렇게 24개의 주제로 근대 작가와 현대 작가를 엮어서 설명하고 있는데, 그 중에 현대 작가의 인터뷰가 없는 부분이 몇 부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현대 작가에게 질문을 하고 그 답을 받은 내용도 실려 있어 이 책에서 저자가 설명한 부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br>특이한 점은 근대 작가와 현대 작가를 한 자리에서 이야기하는 것인데, '박서보' 작가는 이 책에서 유일하게 근대와 현대를 아우르고 있어서 근대 작가 박서보와 현대 작가 박서보로 설명하고 있다.<br>많은 현대 작가들이 자신과 비교되는 근대 작가를 알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이 기획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는 경우도 있으니, 서로 연결되기 힘든 작가들을 연결하는 저자의 미술을 보는 눈에 대해서 감탄하게 된다.<br>전혀 다른 시대, 다른 경향을 지닌 작품 속에서도 연결성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삶 아니겠는가. 늘 같은 듯이 살아가지만 꼭같지 않고 다른 삶을 살아가듯이, 또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 같지만 이상하게 비슷한 삶을 살아가고 있듯이, 그렇게 근대 작가와 현대 작가 사이에서 찾아낼 수 있는 연결점을 찾아내어 보여주는 것. 미술을 감상하는 또다른 방법이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br>무엇보다 이렇게 시대를 관통하는 공통점을 이야기하면서, 저자는 자신의 삶도 그림 설명 속에 녹여내고 있다. 즉 그림이 우리의 삶과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님을 직접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점이 이 책을 읽는데 더 몰입할 수 있게 한다.<br>많은 작가들, 사실 근대 작가 중에는 처음 이름을 듣는 작가도 있으니, 그러한 작가들의 작품을 이 책을 통해서나마 볼 수 있었다는 점, 비교하는 작품 두 점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작가의 다른 작품도 보여주고 있어서, 작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한 점 등이 좋은 책이다.<br>결국 미술은 작가 개인의 독창성이 발현되는 것이지만 작가가 살아온 사회를 벗어날 수 없고, 작가가 존재하기까지의 역사가 작품 속에서 들어가게 된다는 것, 이렇게 근대 미술과 현대 미술은 연결이 된다는 것. 우리의 삶이 계속 연결되어 유지되듯이, 미술도 이렇게 연결되어 우리와 함께 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 책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825/76/cover150/k52203359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8257631</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이야기</category><title>우리 모두를 평범하게 살 수 있게 해주는 법, 차별금지법 - [평등한 평범 - 차별금지법이 꿈꾸는 세상]</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92835</link><pubDate>Wed, 15 Jul 2026 11: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9283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12139514&TPaperId=1739283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16/92/coveroff/k612139514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12139514&TPaperId=1739283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평등한 평범 - 차별금지법이 꿈꾸는 세상</a><br/>장혜영 지음 / 후마니타스 / 2026년 07월<br/></td></tr></table><br/>차별을 금지하자는데 반대를 한다. 차별을 금지하는 것이 차별이라고 하면서... 역차별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역차별... 이것은 자신은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지만 상대는 누릴 수 없는 권리라는 말과 통한다는 생각을 한다.<br>하지만 누구는 누리고, 누구는 누릴 수 없는 권리가 무엇일까? 그런 권리가 있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사람이라면 누려야 할 보편적인 권리는 어떤 사람도 누리지 못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보장하는 법이 차별금지법 아니던가.&nbsp;<br>모든 분야에서 똑같은 권리를 달라고 주장하는 법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려야 할 보편적인 권리를 보장해달라는 것, 그런 권리에서 차별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차별금지법이다.<br>그러니 차별금지법은 이미 누리고 있는 사람에게서 권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권리를 함께 누리자는 것이다. 그런 권리를 함께 누린다고 해서 권리를 양이 줄거나 힘이 약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br>오히려 그러한 권리들은 함께할수록 더 커지게 된다. 이 책의 저자의 말처럼 그것을 평범한 삶이라고 하면, 우리는 누구나 평범한 삶을 누릴 권리가 있다. 하여 제목이 '평등한 평범'이다.<br>저자의 말을 빌리면 '이상함만큼 평범한 것은 없다. 모든 평범한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고, 모든 이상한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다.'(11쪽)<br>누구나 다름을 인정하고, 다름과 함께 살아가는 것, 그것이 평범함이다. 이러한 평범한 삶을 누구나 누리도록 하자는 법이 차별금지법이기도 하고.<br>한데, 차별금지법은 지금도 제정이 되고 있지 않다. 올해 초에 발의가 되었다던데, 상임위에서 심의를 했다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지난 19년간 차별금지법은 국회에서 14차례나 발의되었지만 단 한 번도 제대로 심의되지 못하고 고사했다.'(287쪽)고 저자도 말하고 있으니...<br>저자가 21대 국회의원이 되어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하고, 그에 대한 공부를 하고 또 제정이 되도록 많은 노력을 했지만, 역시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말았다고 한다.<br>이 책은 그러한 저자가 차별금지법에 관심을 가지게 된 사연, 그리고 국회의원이 되기까지의 과정, 국회의원이 되어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어떻게 했는지를 보여주는 과정, 또 자신이 만난 사람들, 경험한 일들을 바탕으로 차별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br>차별금지법을 쉽게 설명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저자의 경험을 예로 들면서 왜 차별금지법이 필요한지, 그러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존재들은 누구인지, 또 그들은 어떤 논리를 동원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있으며,&nbsp;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nbsp;차별들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br>표지에 작은 제목으로 '차별금지법이 꿈꾸는 세계'란 문장이 있는데, 쉽게 말하면 우리 모두가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는 세계를 만들자는 것이다.<br>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시설에 갇혀 살아야 하는 현실이 아닌, 특정 성별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하거나 추행을 당하는 일, 이주민 또는 난민이라는 이유로 배척당하는 일이 없는 세상. 모두가 평범한 일상을 함께할 수 있는 세상, 그러한 세상을 꿈꾸는 것이다.<br>그런데, 이 과정이 너무도 어렵다. 국회를 통과하기도 힘들다. 설문조사를 하면 압도적인 다수가 차별금지법이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도, 민의를 대변해야 한다는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이 심사되지 않고 폐기되고 있으니... 어떻게 해야 하나?&nbsp;<br>여기서 정치가 중요하고, 정치인을 움직일 수 있는 시민의 힘이 중요하다는 점이 드러난다. 깨어 있는 시민들의 힘으로 정당을 움직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치인이 국민을 제대로 대의할 수 있도록 정치제도를 개혁해야 한다.<br>물론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식으로, 정치 개혁 역시 국회의원들에게 맡겨서는 또다른 실패를 반복할 수 있다. 하여 시민들이 힘을 합쳐 정치개혁이 될 수 있도록 압력을 넣을 수 있어야 한다. 정치인들이 움직일 수밖에 없도록.&nbsp;<br>저자가 직접 경험한 차별금지법에 관한 과정을 통해 정치 개혁의 중요성이, 정치 개혁을 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시민들의 힘이 중요함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16/92/cover150/k612139514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5169262</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이야기</category><title>노동자들이 안녕한 세상은 언제 오려나? - [안녕하세요, 한국의 노동자들 - 노동인권 변호사가 함께한 노동자들의 법정투쟁 이야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88886</link><pubDate>Mon, 13 Jul 2026 09:0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8888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62037989&TPaperId=1738888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893/19/coveroff/k36203798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62037989&TPaperId=1738888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안녕하세요, 한국의 노동자들 - 노동인권 변호사가 함께한 노동자들의 법정투쟁 이야기</a><br/>윤지영 지음 / 클 / 2025년 03월<br/></td></tr></table><br/>"안녕하세요?"<br>이 인사말은 안녕하지 않은 시대에, 상대의 안녕을 바라면서 건네는 말이다. 얼마나 살기가 힘들었으면 예전에 "밤 새 안녕하셨습니까?"라는 인사말이 있었겠는가?<br>그러니, 안녕하세요라는 말은 살기가 힘들다는 것을 반증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제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섰다는 우리나라에서, 어떤 노동자들은 성과금으로 수억 원을 받기도 한다는데, 그러한 노동자들이 언론을 장식할 때 그들에 가려진 더 많은 노동자들은 과연 안녕할까?<br>노동자들이 안녕하지 않은 세상, 그래서 중대재해처벌법이라는 법도 만들었지만 여전히 일터로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많다. 이런 세상에서 "안녕하세요, 한국의 노동자들!"이라는 인사말처럼... 정말, 모두가 안녕한 세상이었으면 좋겠다.<br>그럼에도 여전히 비정규직 문제는 심각하고, 이러한 비정규직조차 구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고, 좋지 않은 환경에서 목숨을 걸고 일을 하는 노동자들도 있으니, 이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여전히 안녕하지 못하다.<br>소년공 출신이 대통령이 되었고,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이 고용노동부 장관이 된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가려진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이 있고, 파업을 하는 순간 감옥에 갈 각오를 해야 하는 노동자들이 있다.<br>수많은 노동자들이 선진국이라는 화려한 이름 뒤에서 고통받고 있는데, 그들에게 법은 어떠한가? 약자를 위한 법이 아니라 강자를 위한 법 아닌가.<br>심지어 대형 로펌들이 변호하는 존재는 강한 자, 있는 자이고, 그들은 절대로 노동자들을 대변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법에 호소하는 순간, 노동자들은 대형 로펌, 즉 승소할 가능성이 많은 대형 로펌의 변호를 받지 못하고, 자원봉사를 하거나 공익을 추구하는 변호사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nbsp;<br>대형 로펌에 변호를 의뢰할 돈을 마련하기 힘들기 때문이기도 한데... 반면 기업은 이러한 대형 로펌에 의뢰할 자금이 있으니... 노동관련 소송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에서처럼 다윗이 이기면 좋겠지만, 많은 경우는 골리앗이 이기는 현실이다.<br>물론 능력 면에서 공익변호사들이 대형 로펌에 뒤떨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더 열심히 노동자들을 대변하고, 그들을 위해서 시간과 노력, 그리고 자신들의 능력까지도 기꺼이 내놓는다. 오히려 이들이 더 능력이 있고, 더 많은 노력을 하며, 열정을 가지고 재판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br>그럼에도 고질적인 한국 사회의 문제인 학연, 지연에 전관예우라는(법으로 전관예우를 금지한다고 하지만, 전관예우라 하지 않아도 암묵적으로 예우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대형 로펌에는 고위직 법조인들이, 또는 관련자들-대기업 임원, 장-차관, 유명 경제학자(경제관료), 경찰 간부 등등이 소속되어 있는 것이다) 것 때문에 이들의 노력이 정당한 결과를 낳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br>그럼에도 이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한국의 노동자들을 위해서. 그들의 안녕을 위해서 기꺼이 시간과 재능, 노력을 내놓는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이들이 있어 안녕하지 못한 노동자들이 안녕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것이다.<br>그런 노동자들을 위한 변호사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 이 책이다. 총 11개의 노동자가 관련된 사건이 수록되어 있는데, 읽으면서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한다. 어떤 노동자들의 사건인지 보면, 아파트 경비노동자, 핸드폰 판매노동자, 방송국 비정규직 PD, 국가정보원 전산사식 분야 여성노동자, 택시기사, 파견노동자, 현장실습생, 골프장 캐디,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형사 사건, 노동자 손해가압류 사건 등이다.&nbsp;<br>이렇게 약자를 더욱 힘들게 하는 존재들이 있음을, 때로는 법이 이러한 약자들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음이 나타나 있는데, 이 책에서 다룬 사건들 중에서 노동자들 편이 승리한 경우도 있지만 재판에서 진 경우, 또는 재판을 포기한 경우도 나오고 있다.<br>재판, 쉽게 말하면 정의를 추구하는 이 과정이 노동자들에게는 또 다른 고통이 될 수도 있다. 돈도 돈이지만 엄청나게 길어지는 재판 기간으로 인해 생업에 지장을 받기도 하기 때문이다. 먹고살 문제 앞에서 재판까지 가기는 많이 힘들다.<br>이 책의 저자처럼 무료 변론을 해주겠다고 해도, 재판은 노동자에게 가고 싶지 않은 길이다. 거기서 진이 다 빠져버리기도 하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이렇게 힘든 과정을 인지하면서도 재판까지 가는 이유는, 노동자 자신의 안녕만이 아니라 노동자들 모두의 안녕을 바라기 때문이다.<br>자신만의 싸움이 아니라 모두의 싸움이 되고, 그 과정과 결과가 다른 노동자들에게도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힘들지만 재판까지 가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다. 이 과정에 함께하는 변호사. 소중한 존재다.<br>이 책을 통해서 그러한 변호사가 비단 이 책의 저자인 윤지영 변호사만이 아니라 많이 있음을, 윤지영 변호사가 이 책을 통해서 그러한 변호사들의 이름을 계속 언급하는 이유도 노동자를 위한 변호가 자신만의 일이 아니라 법을 통해 살아가는 변호사들의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기 때문인지도 모른다.<br>또한 노동자들이 승리한 재판 역시 자신의 혼자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변호사-노무사-노동자-언론-그리고 노동자를 지지하고 도와주는 많은 사람들의 힘으로 된 것이라는 점을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br>하여 이 책을 읽으며 법조인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한다. 법(法)이라는 한자어가 물이 간다는 말이 합쳐진 말이라면, 물의 흐름처럼 자연스러운 것, 그러한 자연스러움이 곧 법의 정의라는 것을 의미할 텐데...<br>그렇다면 법조인은 이렇게 물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돕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즉 물의 흐름을 막는 것들을 치우는 존재, 그런 존재가 바로 법조인이어야 하는데, 과연 지금까지 우리나라 법조인은 그런 존재였던가?<br>어쩌면 지금까지의 법조인은 (윤지영 변호사와 같은 사람에게는 미안한 말이고 이들은 예외라 할 수 있지만, 대체로 대형 로펌을 비롯해, 정치 검사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 그리고 약자가 아니라 강자의 편에서 판결을 하는 판사들을 주로 지칭한다) 물의 흐름을 오히려 방해하거나 막는 존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br>이 책에 나오는 검사들의 모습, 또 재판장의 모습 속에서 그러한 존재들을 발견하고는, 물의 흐름을 막는 이러한 법조인들이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 법조 개혁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됐는데...<br>여전히 한국의 노동자들이 안녕하지 못한 현실, 대통령부터 장관까지 노동자였던 사람들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지금 이 시대, 이제 사람이 아니라 사회분위기로 또 제도로 노동자들이 안녕할 수 있는 우리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 점을 잘 보여주고 있는 이 책이다.<br>저자의 이 말이 실현되는 한국이라면 정말 노동자들이 안녕한 세상이지 싶다.<br>'노동하는 사람이 존중받는 세상, 비정규직이라고 차별받지 않는 세상, 일하다 죽음에 내몰리지 않는 세상, 헌법에 있는 권리를 누구나 누리는 세상, 그런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285쪽)]]></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893/19/cover150/k36203798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8931977</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과 나 그리고 책</category><title>장승리 시집 -무표정 속 감춰진 수많은 표정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84048</link><pubDate>Fri, 10 Jul 2026 11: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84048</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38287&TPaperId=1738404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6770/18/coveroff/8932038287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nbsp; '전속력으로 당신이 서 있다'('시인의 말')<br><br>&nbsp; 움직임과 멈춤이 한 문장 안에 있다. 서로 용납할 수 없는 말들이 서로에게 기대어 있는 모습. 이 말이 안 되는 문장이 말로서 우리에게 다가온다.<br>&nbsp; 도대체 무슨 뜻이지? 전속력으로라는 말은 속도를 지니고 있는데, 서 있다는 멈춤으로 다가가다니...<br>&nbsp;이 문장에서 '전속력'과 '서 있다'를 함께보면서, 어쩌면 서 있음 자체가 전속력으로 자신을 내몰고 있는 행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br>&nbsp; 내 앞에 서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려온 존재, 아니 서 있기 위해서 달려나가려는 몸을 전속력을 다해 반대편으로 끌어당기는, 그야말로 작용을 제어하는 반작용.<br>이러한 작용과 반작용. 대등한 힘으로 맞서는, 그래서 작용과 반작용의 힘이 같을 때 멈춤, 즉 정지 상태가 될 수밖에 없음을.<br>내 앞에 서 있는 당신은 그러한 존재다. 나 역시 당신에게 그러한 존재가 되려고 한다. 그것이 사랑일 것이고, 사랑하고 사랑받는 때에 사람들은 이러한 작용과 반작용의 힘이 같은, 하여 사랑에 멈춰있게 된다.<br>그렇다면 시인이 이런 말을 한 것은 무엇인가? 시인이 전속력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서 있을 때, 우리 역시 전속력으로 시에 다가와 서 있게 되면 이때서야 작용과 반작용이 대등해지고, '시' 앞에서 우리는 서 있게 된다.<br>단지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시와 함께하게 된다. 그렇게 시는 우리와 하나가 된다. 하지만 이러한 하나는 그냥 하나가 아니다. 여럿인 하나다.<br>하나로 보이겠지만, 서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서 있기 위해서 작용과 반작용이 끊임없이 균형을 이루듯이 시는 시 속에 수많은 여럿이 서 있는 상태.<br>그런 시를 읽는 일은 참, '전속력으로 당신이 서 있다'는 시인의 말에서 '당신'을 '시'로 바꾸면, 시에 담겨 있는 수많은 힘들, 움직임들을 의식하게 된다.<br>그럼에도 수많은 힘들, 움직임들이 시에 있기에 시는 멈춰 있지만 늘 움직이고 있다. 움직임을 멈추게 할 수만 있다면 시를 이해했다고 하겠는데, 시의 움직임에 휩쓸려 들어가고 만다. 이게 이 시집을 읽은 소감이다.<br>즉, 멈춰 있는 듯한 시에게 말려들어가 시 속 수많은 움직임에 휘둘리게 된 상태. 하... 참. 제목이 된 시 '무표정'에서 그랬다. 소용돌이에 말려들어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br>삶이라는 소용돌이와 시라는 소용돌이가 융합이 되어 더 큰 소용돌이를 만든 상태. 늘 다가오는 요일들, 날들... 하지만 그 날들은 결코 멈춰있지 않는다. 전속력으로 달려와 서 있지만, 그 속에는 다시 속도와 속도가 방향을 달리해 있을 뿐. 하여 멈춤으로 인식하는 날들이 결코 멈춤이 아님을.<br>무표정<br>&nbsp; 월요일이 비처럼 내리는 밤 일요일 밤 여관 같은 밤 화요일이 엿보는 밤 눈과 시선이 겉도는 밤 0과 1 사이에 세워진 정신병원을 세는 밤 그림자가 피의 성분으로 느껴지는 밤 따질 수 없는 밤 산 잠자리를 흙 속에 묻고 물을 주는 밤 눈물 대신 혓바닥을 삼키는 밤 훔친 메모지와 훔친 연필이 서로를 노려보는 밤 떠나는 기차 대신 떠나온 금요일을 응시하는 목요일 밤 버림받은 수요일 밤 수태되기 전날 밤 기억나지 않는 밤 구운 쥐가 밥상 위에 오른 밤 앙상한 토요일 밤의 이마를 관통한 총탄 자국 웃는 밤<br>장승리, 무표정, 문학과지성사. 2021년. 19쪽<br>분명 일월화수목금토라는 요일들인데... 이 요일들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아니 이 요일들은 전속력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서 있는데, 우리는 그렇게 다가온 날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었는지, 그냥 그렇게 왔군, 갔군 하면서 표정 없이, 아무런 생각 없이 받아들이고 보내지는 않았는지...<br>그래서는 안 된다는, 각 요일은 전속력으로 다가오고 또 다른 요일들에 의해 밀려나기도 하지만, 그 날들은 모두 우리의 삶 안에 있음을, 모두가 무표정이 아니라 표정을 지니고 있음을.<br>시 제목이 무표정인데, 무표정이야말로 수많은 표정들이 대등하게 모여 지닌 표정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 시인데... 수많은 날들이 무의미하게 그냥 흘러가지 않듯이, 무표정 역시 수많은 표정의 모여 있는 순간이라는... 우리는 그 무표정 속에서 표정들을 찾아야 함을, 이 시를 통해서 생각하게 됐다.<br>이러한 해석 역시 전속력으로 다가와 내 앞에 서 있는 당신인 '시'를 내가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이겠지만...<br>이 시를 통해 내가 만나는 사람들, 존재들, 아니면 내가 보내는 시간들, 날들 속에 있는 다양함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6770/18/cover150/893203828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67701828</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사람이야기</category><title>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는 농부 시인, 서정홍 - [희망은 끝내 사라지지 않고 - 땅에서 길어 올린 농부 시인의 사유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80129</link><pubDate>Wed, 08 Jul 2026 10: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8012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8802203&TPaperId=1738012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224/31/coveroff/896880220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8802203&TPaperId=1738012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희망은 끝내 사라지지 않고 - 땅에서 길어 올린 농부 시인의 사유들</a><br/>서정홍 지음 / 교육공동체벗 / 2025년 12월<br/></td></tr></table><br/>잘나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을 드러내려고도 하지 않는다. 돈을 많이 벌려고도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려 하지도 않는다. 자연을 함부로 대하지도 않는다. 겸허하게 자연에 따르며 이웃과 어울리며 살아가려 한다. 그런 사람들을 '농부'라고 한다.<br>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없는 듯 대우받는 존재도 농부다. 장래희망에 농부가 되겠다고 하는 학생도 거의 없고, 있어도 왜?라는 질문을 다시 받기 십상이다.<br>대기업에 다니거나, 법조인이 되거나, 의료인이 되거나 또는 정치인이 되면 사람들이 와, 출세했네 하지만 농부가 되어 농사를 짓는다고 하면 어쩌다? 안됐네 하는 듯한 눈길을 받게 된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농부는 중요하다고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직업 중 하나다.<br>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는 존재인데, 누군가 그랬다. 반도체 없어도 사람은 살 수 있지만, 식량이 없으면 살 수 없다고... 우리는 며칠 먹지 못하면 죽는다. 삶이 끝난다. 그렇게 삶을 유지시켜 주는 것이 바로 농사다. 그런데도 농사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있는 현실.<br>쉽게 이야기한다. 반도체를 비롯한 공산품을 팔아서 식량을 사오면 되지. 돈만 있으면 된다는 발상이다. 그렇지만 돈 주고 살 수 없을 때도 있다. 지금처럼 기후 위기를 넘어 기후 재앙으로 치달으면 전세계적으로 식량난이 올 수 있다.<br>자기 나라도 먹고 살기 힘들어지는데, 돈을 많이 준다고 식량을 수출할까? 그렇지 않다. 돈보다는 생존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갈수록 예측하기 힘들어지는, 또 심해지는 기후 재앙 앞에서 최소한의 먹을거리를 지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생존할 수 있다. 생존이 되어야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아닌가.<br>이 책에서도 기후 위기로 인해 씨앗을 뿌릴 시기를 가늠할 수 없거나, 또 심어놓은 작물들이 죽거나 병들어 안타까워 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그럼에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농사를 하는 모습을 통해 생명을 살리는 일을 포기하지 못하는 농부들을 보여주고 있다.&nbsp;<br>이렇게 우리를 생존하게 하는 존재, 농부다. 그런 농부는 그래서 어떤 직업보다도 중요하다. 이 중요한 농부, 미래세대에게는 아직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nbsp;<br>왜? 농촌이 살기 힘드니까. 대도시에서 누릴 수 있는 문화, 교육, 의료 등등이 없으니까. 서정홍 농부(시인)도 이렇게 말하고 있다.&nbsp;<br>'시골인 우리 마을은 작은 병원에 가려고 해도 버스를 타고 30-40분쯤 가야 하고, 조금 큰 병원에 가려면 1시간 넘게 가야만 한다.'(302쪽)<br>생명과 관계 있는 병원도, 병원이 아니더라도 기초적인 진단과 치료를 할 수 있는 곳이 농촌에는 없다고 봐야 한다. 치료 환경도 이런데, 교육이나 다른 문화 환경은 말할 것도 없다. 오죽하면 농촌에서 평생을 지낸 할머니들이 아이들을 보면 '귀한 거'라고 하겠는가.&nbsp;<br>이만큼 농촌은 급격하게 쇠퇴하고 있다. 아이들만이 아니라 청년들도 떠나고 있으니, 서정홍 농부(시인)가 60대인데도 청년에 들어가게 되니, 더 말할 것도 없다.&nbsp;<br>농촌이 이렇게 사라져가면 결국 우리 생존에도 위협이 된다. 아무리 '스마트 팜'이니 과학기술로 생산성을 향상시키니 뭐니 해도, (대량으로 생산하는 대농은 이야기하지 않으련다. 대농은 사람을 살리는 일보다는 이윤을 남기는 일에 더 관심이 많으니...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맞지 않는다), 농사지어서 사람을 살리는 사람들이 사라지면 우리 생존도 보장할 수 없다.<br>소품종 대량생산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가야 하는 것, 이 책에서 고추를 심더라도 한 밭에 몰아 심지 않고 여러 곳에 나눠 심는 이유도 또 한 밭에 하나의 작물만 심지 않고 다양한 작물을 심는 것도 땅도 살리고 다른 생명체들도 살리고, 결국은 사람을 살리게 되기 때문이다.<br>그러니 이 책에서 '마을 어르신이 말씀하시길, 농부 한 사람 살리려면 백 사람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고 한다'(211쪽)는 말 잊어서는 안 된다. 내 식탁에 오른 농산물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농산물이 내 식탁에 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누구의 땀과 시간이 들어가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br>도시에서 소비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식량에 관심을 가진다면, 자연스레 농부(농업, 어업, 축산업 등등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대표하는 말로 쓰자)들에게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또한 이렇게 관심을 가지면&nbsp;농부들이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지, 내 식탁에 오른 음식들에 농부들의 사랑이 담겨 있는지를 생각할 수밖에 없으니&nbsp;농산물을 함부로 대할 수 없다. 음식물 쓰레기를 아마도 최소한으로 배출하게 되고, 또 돈으로만 사는 물건이 아님도 생각하게 될 것이다.<br>그런 내용들, 농사를 지으며 자연과 더불어 살며,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는 농부, 시인 서정홍의 글이 모인 이 책.<br>이런 농부의 삶을 통해 배운 점을 다섯 가지로 정리해 놓고 있다.&nbsp;<br>'저는 농부가 되고 나서 스스로 깨달은 게 참 많습니다. 첫 번째 깨달음은, 내 몸에서 '사람 냄새'가 난다는 것입니다. 땀 냄새가 바로 사람 냄새라는 걸 ~ 두 번째 깨달음은, 들녘에서 농사일을 할 때는 쓸데없는 욕심과 잡념이 모두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깨달음은, 직업 가운데 농부들이 죽음을 가장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 깨달음은, 사람은 돈과 권력과 명예 따위에 기대어 사는 게 아니라 밥 한 숟가락에 기대어 산다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깨달음은, 따라 살고 싶은 스승은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아주 가까이 있다는 것입니다.' (57-58쪽)<br>읽으면서 따스함이 온몸으로, 온마음으로 스며든다. 그러면서 주변을 다시 한번 살펴보게 된다. 단지 식량만이 아니라 내 주변의 모든 존재에 이렇게 다른 존재들의 땀과 시간, 사랑이 들어 있음을...<br>그러다, 그냥 웃을 수만은 없는 농촌 아이의 이 말... 부끄럽다.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삶을 돌아봐야 한다.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듣지 않도록.<br>"선생님, 똑똑한 어른들한테 배울 게 딱 한 가지 있어요.""한 가지라? 모시 궁금하네요.""저리 살아서는 안 된다는 거요. 따라 살고 싶은 삶은 눈곱만치도 없는데, 입으로만 우릴 가르치잖아요. 초등학교에 다니는 우리 동생도 다 알아요. 우리 미래를 어른들한테 맡겨서는 안 된다고요." (251쪽)<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224/31/cover150/896880220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2243138</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여러이야기</category><title>다른 방향을 향한 삶을 사는 사람 - [이향인 - 세상 밖에서 세상의 중심이 되는 사람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78272</link><pubDate>Tue, 07 Jul 2026 10: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7827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92137262&TPaperId=1737827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93/3/coveroff/k29213726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92137262&TPaperId=1737827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이향인 - 세상 밖에서 세상의 중심이 되는 사람들</a><br/>라미 카민스키 지음, 최지숙 옮김 / 21세기북스 / 2026년 03월<br/></td></tr></table><br/>내향인, 외향인이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이향인'이라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런 용어가 있다니... 그것도 심리학에서 쓰고 있었으니, 사람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누고, 그렇게 알고 있었던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알려주는 책이다.<br>이향인, 영어로 'OTROVERT'라고 하는데, 이 말의 기원은 스페인어란다. 이 책의 저자가 만든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br>'우리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근본 요소는 '남들과 다른 방향'이다. 그렇게 해서 나는 '이향인otrovert'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스페인어에서 'otro'는 '다른'을, 'vert'는 방향을 뜻한다. 말 그대로 'otrovert'는 '다른 방향을 향하는 사람'을 의미한다'(18쪽)<br>'다른 방향'이라고? 어떤 방향의 차이지? 책에 쉽게 설명이 되어 있다. 보통 우리는 사람들을 내향인, 외향인으로 분류를 하지만, 이들이 지닌 공통점은 공동체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즉 이들의 방향은 공동체(집단)에 들어가 있든, 들어가 있지 않든 모두 공동체를 향한다는 것. 즉 소속을 지니려는 성향. 집단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br>그러나 '이향인'은 다르다. 이들은 얼핏 공동체에 속하고, 또 공동체 내에서도 중요한 위치에 있기도 하지만, 이들이 향하는 방향은 공동체 내부가 아니라 공동체 밖이라고 한다. 이들은 집단에 속해 있어도, 집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도 늘 개인적인 삶을 추구한다고, 그래서 집단 속에서 외로움과 고통을 느끼는 존재라고 한다.<br>이런 이향인의 핵심 특성은 무엇일까? 저자는 '공동체 지향성이 결여되어 있'(37쪽)고, '언제나 관찰자일 뿐, 진정한 참여자가 되지 못한'(38쪽)다고 하고 있으며, '관행을 따르지 않고'(39쪽), '독립적이고 창의적으로 생각한다'(41쪽)고 한다.<br>자, 이들의 특성을 보라. 현대인에게 요구되는 덕목 아닌가. 독립적이고 창의적인 생각, 그리고 관행을 따르지 않는 자세, 여기에 공동체 지향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직장을 잘 살펴보라.<br>이들은 같은 직장에서 일하지만 우리가 공동체라고 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즉 일로 맺어진 관계이고, 효율적으로 작업을 하기 위해 같은 장소에 모여 일을 하는 관계라 할 수 있다. 그나마도 요즘은 재택 근무라고 해서 개인적으로 일을 하는 경우가 많으니, 공동체 지향성이 떨어진다고 해서 직장 생활을 못한다는 말은 아니다.<br>이런 이향인들, 이들을 잘못 이해하게 되면 그들을 질병을 앓는 사람, 또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고 오해하게 된다. 저자가 의사로서 만나본 많은 이향인들이 이렇게 잘못된 진단과 처방으로 더 오랫동안 고통을 받아왔다고도 하니...<br>'이향인'이라는 특성을 알게 되면 사람을 어느 한 부류에 집어넣고 판단하는 일을 삼가게 된다. 자신과 전혀 다른 성향을 지닌 사람도 있고, 그들의 성향에 좋고 나쁨, 또는 옳고 그름을 대입하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그래서 다른 존재들과 관계맺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의 일임을 생각하게 된다.<br>이향인이라고 해서 공동체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들은 공동체보다는 자신을 더욱 중시할 뿐이다. 이들도 역시 보편적인 규칙들은 존중하고 지키려 한다. 저자는 '이향인은 대체로 보편적 원칙은 이해하는 편이다. 하지만 지역적 원칙을 파악하는 데는 자주 어려움을 겪으며 그런 이유로 종종 여러 난관에 부딪히곤 한다'(119쪽)고 한다.<br>이들은 자신이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특수한 상황에서 어떤 원칙이 적용되는가를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종종 그들을 예측 불가능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바로 '예측 가능성은 사회적 통합을 돕고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생길 수 있는 긴장을 완화시키는 장치'(120쪽)라고 하니 이런 점에서 이향인들이 오해를 사곤 하는 것이다.<br>하지만 이향인이라는 존재를 알게 되면 이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들은 성향이 다를 뿐이다. 그리고 이향인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읽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잘 공감한다고 한다. 이러한 공감 능력은 공동체 지향성을 떠나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진솔하고 깊은 관계를 맺게 한다. 이향인이라는 다른 성향의 인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만 한다면...<br>왜 공동체 지향성이 없음에도 공감 능력이 뛰어날까? 그것은 '정서적 자급자족은 행복과 성공을 위한 필수 조건'(243쪽)인데, '이향인은... 본능적으로 배려를 택한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있어도, 이향인은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개별적 존재로 보기 때문'(245쪽)에 이향인은 자신의 정서가 충만하고 사람을 집단의 일부가 아닌 개인 전체로 보기에 다른 이들에 대한 공감 능력이 뛰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br>이런 이향인들...아마 우리가 의식하지 못해서 그렇지 우리 주변에 많을 것이다. 그들을 "이상하네."라고 여기지 않고, 아, 이런 성향을 지닌 사람이었구나 하게 하는 것, 그것은 바로 '이향인'이라는 존재를 인정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nbsp;<br>그렇게 된다면 이런 사람에게는 어떤 환경이 좋을지, 또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지 고민하고, 다름을 인정한 상태에서 함께 지낼 수 있게 될 것이다.<br>이 책의 끝부분에 '이향인 테스트'가 실려 있는데, 한번 해보는 것도 좋겠다. 물론 사람을 내향인, 외향인 또는 이향인으로 딱부러지게 구분할 수는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br>우리 모두는 이러한 특성들을 조금씩은 다 지니고 있을 테니. 다만 그 중 어떤 특성이 더 강하게 나타나기는 하겠지만.<br>결국 이 책은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우리 사회를 그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마, 부모나 교사들이 읽으면 아이들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93/3/cover150/k29213726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7930371</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사람이야기</category><title>살려고 하는 일이 살리는 일이 되는 사람들 - [생업(生業) - 그 징하고도 찡한 노동의 표정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76320</link><pubDate>Mon, 06 Jul 2026 09: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7632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52138163&TPaperId=1737632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70/11/coveroff/k55213816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52138163&TPaperId=1737632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생업(生業) - 그 징하고도 찡한 노동의 표정들</a><br/>은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05월<br/></td></tr></table><br/>책을 내면 꼭 읽어야지 하는 작가가 있다. 그간 읽어온 책들에서 작가에 대한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믿고 좋아하는 작가가 생기면, 내 저금통에 돈이 쌓인 것 만큼 기쁘다. 내가 넉넉해진 것 같은 느낌.<br>언제든지 꺼내 쓸 수 있는 저금통에는 비록 큰 돈은 아니지만 돈이 필요할 때 쓸 수 있는 돈을 모아놓는다. 그리고 그 돈은 쓰지 않아도 나를 든든하게 해준다. 언제든 내가 필요할 때 쓸 수 있으니까.&nbsp;<br>좋아하는 작가도 마찬가지다. 그 작가의 책을 읽지 않아도 언젠가는 읽겠지 하는 생각에, 언제든 읽을 수 있는 책이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하다. 즐거운 기다림 또는 기대를 늘 지니고 있게 되니까.<br>이 작가의 책이 나왔네. 읽어봐야지. 하는 마음. 이번엔 어떤 내용일까 하는 기대. 은유 작가의 이번 인터뷰집도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읽으면서 역시 할 수밖에 없었다.<br>'생업'<br>살기 위해서 하는 일. 그런데 '생업(生業)'이라는 말은 풍요로움과는 거리가 멀다는 느낌을 준다. 먹고살기 위해서 하는 일. 그래서 '생업'이라고 하면 힘듦과 어쩔 수 없음이라는 말이 함께 따라온다는 생각을 한다.<br>생업에 종사하다라는 말은 먹고살기 위해서 일을 하다라고 이해하고, 이때 방점을 일을 하다에 찍지 않고 먹고살기 위해에 찍는다. 그래서 생업이라는 말은 즐거움보다는 해야만 한다는 당위에, 힘듦과 함께한다고 여기게 된다.<br>어차피 삶은 즐거움만으로 차 있지 않으니, 즐거움이 즐거움으로 느껴지기 위해서는 힘듦, 싫음도 있어야 하니까,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하기에 다른 것에서 즐거움을 찾기도 한다.<br>하지만 이 책에 나온 사람들, 생업은 단순히 먹고살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들에게 생업은 먹고살기 위한 일을 넘어서고 있다. 자신의 삶을 살리는 일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도 살리는 일, 그것이 바로 그들의 생업이다.<br>그리고 그러한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찾아 우리에게 알려주는 일을 한 사람이 바로 은유 작가다.<br>은유 작가가 다른 사람들의 말을 우리에게 전달해주고 있다면, 이 책의 끝부분에는 그러한 은유 작가에 대해서 알려주는 글이 실려 있다. 그 중에 '책이 쌓일수록 은유는 그간 만난 사람과 써논 들을 배신하지 않는 게 너무 중요해졌다'(301쪽)는 말과 '삶이 먼저고 쓰기는 그다음이다. 세상과 부딪쳐야 느끼고 배우는 게 있고, 쓸 것도 있다. '산다'가 앞에 있어야 해요.'(302쪽)는 말, 그리고 '사람들의 품이 넓어지는 글, 세상이 나아지는 데 기여하는 글인가가 기준이에요'(303쪽)라는 은유 작가의 말이 마음에 다가온다.<br>맨 앞의 문장은 언행일치나 지행일치라고 해야 할까, 자신이 만난 사람들의 삶을 배신하지 않는, 그들과 함께한 글을 배신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결심, 또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두 번째 문장처럼 본인 역시 세상과 부딪치지만, 세상과 부딪치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 하는 일, 그것이 바로 쓰기라는 것, '쓰기'가 '삶'이 되게 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nbsp;<br>이런 자세를 지닌 작가, 당연히 그의 글은 사람들의 품이 넓어지게 하고, 세상이 나아지는 데 기여하는 글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런 글을 읽으면 우리들의 마음의 문도 어느 정도 열리고, 통도 조금씩 조금씩 커지게 된다. 또 그건 내 일이 아니야 라는 생각이 옅어지게 된다.<br>이런 은유 작가의 마음이 이 책에도 오롯이 드러나 있다고 할 수 있다. 쉽게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이 책에서 들을 수 있기 때문인데, 그들이 자신들의 생업을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세상을 위해서 하는 일로 여기고 또 그렇게 하는 모습이 너무도 잘 나타나 있는 책이다.<br>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나오는데, '6411의 목소리'라고 해도 좋다. 자기 소리를 내는 사람이 사회의 주체로 설 수 있는데,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그렇게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 사회가 좋아지는데 한몫을 하는 당당한 주체라는 생각이 든다.<br>다른 많은 사람들, 소위 '그림자 노동'이라고 드러나지 않지만 사회를 이루는데 필수적인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들의 소중함, 그리고 그들이 일을 통해서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 모습들, 또 일만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통해서 다른 사람을 살리는 모습을 이 책에 나온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다.<br>하여 이들의 '생업'은 힘든 일이지만, 이들의 힘듦은 곧 다른 사람들의 행복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들의 일을 받아들이고 또 당당하게 하려 한다. 그 일에 진심으로 다가가고, 그 일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한다.<br>그러니 그들에게 '생업'은 먹고살기 위해서 하는 일을 넘어선 일이고, 힘듦보다는 보람을 느끼는 일이 된다.<br>이 책에서 다룬 인물들을 모두 언급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조금만 신경을 쓰면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일을 하는 분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가 좋아지고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br>몇몇 분들을 언급하면 (이름은 생략하고, 그들이 하는 일, 소위 생업을 이야기하면) 급식노동자, 청년 농부, 우리밥연대 요리사, 배달노동자, 독립 연구 활동가, 산업재해 노동자 부인, 싱어송 라이터, 타투이스트, 요양보호사, 청소노동자 등등이다.&nbsp;<br>모두들, 자신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 그런 모습이 '징하고도 찡한 노동의 표정들'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책을 읽고 주변을 살펴보자. 이렇게 '생업'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 그들은 자신만의 삶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을 위해서 살고 있음을 생각하면서.&nbsp;그런 우리도 바로 우리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 잊지 말고.]]></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70/11/cover150/k55213816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701106</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과 나 그리고 책</category><title>양선희 시집-내 생을 살고 난 다음 다른 생을 위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71310</link><pubDate>Fri, 03 Jul 2026 10:1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71310</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90165&TPaperId=1737131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034/0/coveroff/8954690165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nbsp;&nbsp; 한 사람의 삶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살아 있을 때 좋은 평가를 받는 사람도 있지만, 그가 떠났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그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리워하는 사람도 있다.<br>&nbsp; 삶을 어떻게 살았는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br>&nbsp;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다른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하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물론 떠난 사람이야 알 수 없겠지만...<br>&nbsp; 그렇게 자신의 삶을 잘 산 사람은 떠나도 다른 존재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친다.&nbsp;<br>&nbsp; 살아 있을 때 인정을 받는다는 것, 칭송을 받는다는 것과 다른 개념. 물론 살아 있을 때 인정받고 칭송받으면 좋다. 자신의 행동을 인정받는다는 것, 그것이 어찌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br>그런데 그렇게 인정을 위한 삶만을 산다면, 과연 그것이 잘산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br>참숯. 하나의 삶을 살고 이제 다른 삶을 사는 존재다. 자신을 불태웠는데, 그냥 사라지지 않고 다른 존재들에게 좋은 것을 남겨준다. 그렇게 참숯은 삶과 삶 이후의 삶도 의미가 있다.<br>떠난 자리가 아름다운 사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남을 위해 사는 사람. 그런 사람이 참숯과 같은 사람이겠지.<br>타지 않으려 버티지 않고, 또 이왕 타버렸으니 그냥 재가 되어 사라져야지 하지 않고, 드러나지 않게 남 뒤에서 그를 위해서 무언가를 하는 존재. 그런 삶.&nbsp;<br>어떻게 살아야 이런 참숯과 같은 존재가 될까? 좋은 사회는 이런 참숯과 같은 존재들이 많은 사회일텐데...&nbsp;<br>내 삶을 돌아보게 하는 시다. 양선희의 '참숯'<br>참숯<br><br>&nbsp; 누가 참숯을 한 가마 보내왔네. 쌀통에 두면 벌레를 막고, 옷장에 두면 습기를 먹고, 냉장고나 화장실에 두면 악취를 제거하고, 거실에 두면 공기를 정화하고, 장독에 넣으면 장맛이 좋아지고, 배개에 넣으면 머리가 맑아지고, 곱게 갈아 물에 타 먹으면 속병이 씻길 거라며, 참이지 못한 것을 속속 흡수하는 놀라운 색을 얻은 참숯을 보내왔네.<br>&nbsp; 나도 생을 잘 불태우면&nbsp; 한번 더 타오를 수 있는&nbsp; 불씨를 얻을 수 있을까.<br>양선희, 그 인연에 울다. 문학동네. 2023년 2판 1쇄. 15쪽.<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034/0/cover150/895469016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0340093</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소설, 2026년 한국을 말하다 - [재미까지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만 - 월급사실주의 2026]</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69503</link><pubDate>Thu, 02 Jul 2026 10: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6950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32138787&TPaperId=1736950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97/69/coveroff/k23213878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32138787&TPaperId=1736950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재미까지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만 - 월급사실주의 2026</a><br/>강보라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05월<br/></td></tr></table><br/>'월급사실주의' 네 번째 소설집.&nbsp;<br>2023년부터 시작해서 해마다 나오고 있다.&nbsp;작가들의 이런 작업을 통해 우리 사회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nbsp;내가 직접 겪는 일이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에 이런 일들이 있구나,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못한 일들을 소설 속 인물들을 통해서 경험하게 된다.&nbsp;그러면서 우리 사회에서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를 생각하게 된다.<br>총 8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그 중에 이태승이 쓴 '빈칸 채우기'는 공모에 당선된 작품이라고 한다. 빈칸 채우기. 소설의 처음에 이 빈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온다. 공공기관에서 연구(정책)보고서를 내는데, 그 연구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서명이 있어야 하는데, 3년이 지나서 감사가 나온다고 하니, 그 빈칸이 문제가 된다.<br>생각해보자. 공공기관, 정부부처라고 할 수 있다. 이 부처에서 공무원이 학자 및 전문가, 관련자들을 모아 정책 연구를 한다. 그리고 결과물을 보고서로 낸다. 당연히 보고서에는 참여자들의 서명이 있어야 한다. 적어도 자신들이 그 연구에 책임을 져야 하니까. 그 표시가 바로 내가 했다는 서명이니까.<br>그런데 3년이 지나도록, 감사가 없다면 서명이 없었는지도 모르고 지나갔을 것이다. 감사를 코 앞에 둔 시점, 징계를 받아도 큰 징계는 받지 않을 거라지만, 하필이면 승진 심사를 앞두고 있다. 책 잡힐 일이 생기면 승진에 문제가 된다.<br>어떻게 하겠는가? 빈칸을 채워야 한다. 이제 참여자들을 찾아가 3년 전 보고서에 서명을 받아야 한다. 그 3년, 연구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소설은 그 점을 살펴보게 한다. 그들은 연구보고서에 과연 진심이었을까?&nbsp;<br>읽어보면 안다. 진심? 글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참여했을 가능성이 많다. 그러니 서명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연구를 추진했던 공무원은? 마찬가지다. 그 역시 보여주기식 업무를 했을 뿐이다. 서명을 받지 않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한데,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소설 속 상황을 마냥 소설이겠지 하고 넘기기엔 무언가 씁쓸하다.<br>이런 표현 '서명 누락이 감사에서 단골로 지적받는 사안이라는 건, 그만큼 흔한 행정 실수라는 뜻이었다.'(이태승, '빈칸 채우기'에서. 264쪽)<br>흔한 행정 실수. 아니 행정 실수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보여주어야 하는 요식 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여 보고서는 의미가 없다. 정책연구 용역보고서. 좋은 말만 짜깁기 되어 있는, 그럴싸한 방안들이 제시되어 있지만, 이는 계속 반복되어 말만 바꾸어 제안된 내용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굳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책임감도 없고, 서명이 중요할 리 없다.<br>용역비만 받으면 그만이고, 보고서만 내면 그만인 상황. 그런 상황이 공무원 사회에 만연한다면 사회는 그럭저럭 유지는 되겠지만, 이것을 우리는 관료화라고 한다, 변화는 힘들다.<br>변화가 얼마나 힘든지, 연구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3년 뒤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에게서 정말로 그들이 연구하고 제안한 정책들이 실현되었는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래, 이런 모습을 그냥 소설 속 상황이라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br>그런데, 이 책의 기획 의도가 한국사회의 모습을 담는 것이다. 사실적으로! 그렇다면 이는 전부 다는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관료 사회가 보이고 있는 모습 중의 일부일 수 있다는 말이다. 일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 일부가 별것이 된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보고서만 화려하고 실질적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렇게 시간과 돈을 쓰고, 참여자에게는 스펙만 쌓게 하는 현실.<br>이젠 이런 모습을 관료 사회가 떨쳐내야겠지. 떨쳐내기 위해서 또 연구 용역을 주고, 보고서를 내는 일을 반복하지 않겠지. 그렇다면 보고서 천국으로, 서류 상으로는 너무도 훌륭한 사회가 되어 있을 테니.<br>이 소설에 나오는 구절이 소설집의 제목이 되었다. 밀린 서명을 받으러 가는데 운전을 해주는 소위 금수저라 할 수 있는 후배 사무관이 하는 말.<br>'월급을 받으면서 재미까지 바라는 건 욕심이라고 생각해요.'(이태승, '빈칸 채우기'에서. 279쪽)<br>무슨 소리? '워라벨'을 주장하는 이 시대에 이런 생각을 지니고 있다니...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사무관이다.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면, 다른 사람들은 '많이 일하고 적게 버는 노동을 당연한 듯 평생 해온 사람들'(성혜령, '퇴직금 돌려받기'에서. 154쪽)이 될 수밖에 없다.<br>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일해야 하는 사람들, 노동환경의 개선을 요구하기보다는 아무 소리 없이 시키는 대로 일을 해야만 생계가 유지되는 사람들. 이런 노동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워라벨'은 바로 사무관이 하는 말처럼 그들의 삶에 다가올 수가 없게 된다.<br>그래서는 안 되는데...그들에게는 자신들이 재미있게,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노동환경을 만들어야 하는데... 적어도 그들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는 지불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도 하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을 위해 '노무사'라는 직업도 있는데... 그를 다루고 있는 소설이 강보라가 쓴 '우리의 투어'라는 소설이다.<br>여기서 함께 두면 물어뜯고 싸우는 물고기가 나오는데, 반대로 함께 한 방향을 보며 나아가는 물고기도 있음을. 노동자들을 서로 싸우게 하는 사람들에 맞서 노동자들이 함께 나아가야 함을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노무사'여야 함에도 정작 '노무사' 사회에서도 그렇지 못함을 이 소설에서 신참이라고 할 수 있는 송엄지라는 노무사의 발을 통해 보여주고 있으니, 정말, '워라벨' 힘들다.<br>그럼에도 '노란빛의 작은 물고기 이모티콘 네 개가 연달아 찍혀 있었다. 나는 한 방향으로 나란히 놓인 그 독립된 개체들을...'(강보라, '우리의 투어' 중에서. 54쪽)이라는 표현처럼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 그렇기에 이렇게 작가들이 '월급사실주의'라는 이름으로 각자 작품을 발표하는 것이리라.<br>이밖에 실린 다른 소설들에서도 우리 사회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고, 이런 저런 우리 사회가 지닌문제들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이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들이 이렇게 정리되어 있으니 표를 참조하면 된다.&nbsp;<br>무엇보다 직접 이 소설을 읽으면서 2026년 한국 사회의 현실을 생각해보는 것이 더 좋겠고.<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97/69/cover150/k23213878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976963</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이야기</category><title>‘존엄사‘와 함께 말해져야 할 것들 - [깨끗한 죽음이라는 환상 - 고통 없이, 내 뜻대로, 존엄하게 죽는 일은 가능한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67673</link><pubDate>Wed, 01 Jul 2026 10: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6767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72139669&TPaperId=1736767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70/42/coveroff/k07213966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72139669&TPaperId=1736767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깨끗한 죽음이라는 환상 - 고통 없이, 내 뜻대로, 존엄하게 죽는 일은 가능한가</a><br/>박혜윤.신성준.최은경 지음 / 아몬드 / 2026년 05월<br/></td></tr></table><br/>우리나라도 '존엄사'에 관한 법이 국회에 상정되었다가 폐기되었다고 한다. 존엄사를 법으로 규정한 나라들도 있는데, 우리는 이제 '연명치료중단'에 관한 법만 있을 뿐이다.<br>이 '연명치료중단'도 임종기에 들어선 사람에게만 해당한다는 것, 즉 임종이 임박하지 않다면 어떠한 연명치료도 불법이라는 것이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이다.&nbsp;<br>하여 '연명치료 거부 사전의향서'를 작성했더라도 많은 경우에는 이러한 환자의 뜻이 받아들여질 수 없는 구조다. 이 점을 최근에 알고, 설마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아, 이것이 확실하구나 하게 되었으니...<br>이런 상태에서 '존엄사'에 대한 법이 통과되기는 힘들 것이란 생각이 들지만, 이제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우리나라도 죽음에 대해서, 아니 죽음 앞에 겪게 되는 고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br>이 책에 이런 표현이 나온다.&nbsp;<br>'많은 사람들은 ~ 자신의 말기가 '쓸데없이 병원에서 고생하며 비용을 소모하고, 가족에게 부담을 지우고, 고통 속에 낯선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는 과정'이 되지 않을까를 두려워한다.'(48쪽)고.<br>왜 그러냐 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을 보면 '2024년 기대수명은 83.7세, 건강은 65.5세로, 평균적으로 약 18년을 아픈 상태로 살다가 사망하게 된다'(99쪽)고 하니.<br>나도 그렇다. 나이 들어가면서 이렇게 내 삶을 마감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두려운 일이다. 돈은 돈대로 쓰고 가족에게 부담은 부담대로 지우면서도 고통은 고통대로 받으며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 상태로 지내는 것.<br>과연 이렇게 자신의 삶을 끝내야 하는가? 삶과 죽음을 떼어놓을 수 없다고 하는데, 아직까지는 죽음을 누구도 피할 수 없다고 하는데, 끝은 분명히 있는데, 그 끝이 명확히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끝이 올 때까지 어떤 방법을 이용해서라도 버티게 하는 것이 (아니, 연명치료를 거부하면 끝이 명확히 보이면 자신이 결정할 수도 있지만, 이런 임종 시기가 아니더라도 끝을 인식할 때가 있으니) 과연 그 사람을 위한 일일까?<br>'존엄사' (그냥 이 용어를 쓰기로 한다. 안락사라는 말보다는, 또 이 책의 저자들이 쓰고 있는 '의사조력임종'이라는 말보다는 쉽게 다가오니까)를 법으로 인정하고 있는 나라들은 그래서 인간의 자기결정권과 고통에 대한 연민, 그리고 존엄을 '조력임종의 조건'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br>그냥 삶이 힘들기 때문에 죽어야겠다가 아니라, 삶과 죽음에 대한 명확한 자기 인식에 바탕한 결정과 그 고통을 더 이상 완화하기 힘들고 다른 치료방법이 없을 때, 삶의 존엄이 훼손되기 쉽다고 판단되어 그 사람의 존엄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선택하는 것이 '존엄사'라는 것.<br>그래서 엄격한 과정이 요구되고 있는데, 주로 명확한 자기 의사 표명과 결정을 숙고할 수 있는 기간,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동의와 다른 의사 두 명 이상의 소견 등을 필수적으로 하고 있다.<br>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안 된다. 이 책의 저자들은 '존엄사'가 법으로 인정이 되었을 때 사회적 약자들이 죽음으로 내몰릴 수 있는 위험을 우려하고 있다. 사회적 압력으로 본의 아니게 죽음을 선택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사회적 약자에게 발생할 수 있다는 것.<br>비용이나 가족에게 지워진 부담 등으로 '존엄사'가 법으로 존재할 때 사회적 약자와 같은 누군가에게는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존엄사'만 남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br>이렇게 되면 '존엄사 법'은 사회적 약자에게 죽음을 강요하는 암묵적 압력으로 작동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그러니 '존엄사'를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완화치료'와 같은 다른 치료 방법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br>고통을 줄이면서 죽음을 맞이하는 완화치료(우리는 흔히 호스피스라는 이름으로 이야기를 한다)는 '존엄사'와는 달리 생명을 유지하면서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환자의 고통을 최소화하는 방법인데, '존엄사 법'이 통과한 나라들에서는 이와 같은 '완화치료'가 병행하고 있다고 한다.<br>'완화치료' 제도가 정착되지 않고 '존엄사'로 넘어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하고, 그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하는 문제제기를 저자들이 하고 있는데...<br>'존엄사' 논의와 함께 '완화치료'와 '재택 임종'이 가능하도록 사회적 환경을 만드는 데 힘써야 한다는 저자들의 말에 동의한다.<br>이것이 선행되어야 또는 함께해야만 '고통 없이, 내 뜻대로, 존엄하게 죽는 일'이 어느 정도 가능해지지 않을까 한다.&nbsp;<br>'존엄사'가 법으로 인정되고 있는 네덜란드, 캐나다, 미국의 몇몇 주, 스위스와 존엄사는 인정하지 않지만 세계에서 처음으로 법원이 안락사가 허용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했다고 하는 일본, 또 죽음의 질이 좋은 대만에 대한 설명이 있어서 그 법이 도입되기까지의 과정과 취지, 그리고 실행과정에서 일어나는 문제점을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해주고 있다.<br>이런 논의를 통해서 저자들은 '존엄사 법'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삶과 죽음을 둘러싼 논의에서는 개인의 자율성뿐 아니라 가족 관계와 사회적 맥락, 그리고 돌봄 체계가 충분히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208쪽)고 하고 있다. 즉 사회적 약자들이 죽음으로 내몰리지 않게 하는 사회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다.<br>그럼 우리나라 의료 현실을 보자. 과연 돌봄 체계가 충분히 작동하고 있는지... 아니 우리는 치료 체계도 서울 중심으로 되어 있지 않나? 지방에서는 필요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 아닌가. 또한 돌봄을 가족이 부담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완화치료를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있는 곳이 없어서 받지 못하고, 또 대상자가 되지 못한다고 해서 받지 못하지 않나? 이런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아니 무엇이 먼저라고 할 수 없다. 함께 해결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것이 지금 우리 의료체계가 해결해야 할 문제다. (그런데 과연 의사단체나 복지부에서 이런 점에 대해서 어떤 의견을 내고 있는지 알 수가 없으니...)<br>참고로 우리나라 완화의료 대상은 암, 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 만성간부전, 만성호흡기부전 등 다섯 가지 질환으로 제한돼 있으며, 이들 역시 말기 진단 이후에야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79쪽)고 하니 갈 길이 멀다.<br>그러니 먼저 완화의료의 대상을 생명을 위협받는 질환을 앓는 환자라면 누구나, 병의 종류나 질환의 그시기와 관계없이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국제적 표준에 맞게 법을 개정해야 할 것이다. 다음 돌봄에 대해서 더 구체적인 정책을 만들어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의료복지제도를 정비해야 할 것이다.<br>다른 무엇보다도 우리가 '존엄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잘 살기 위해서다. 저자의 말처럼 '좋은 죽음은 좋은 삶 위에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좋은 삶은 혼자 만들 수 없다.'(250쪽) 이 말을 명심해야 한다.<br>용어 정리부터 하고 넘어가야 한다. 이 책의 저자들은 서두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br>'같은 행위를 무엇이라 부르는지는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다. 때로 명칭은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그 행위의 성격과 도덕적 의미를 규정하기 때문이다. '안락사'와 '연명의료 중단', '조력자살'과 '조력임종'은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서로 다른 윤리적 무게를 지닌다.'(25쪽)<br>그래서 이 책에선 '의사조력임종'을 주요 용어로 사용하기로 했다(6쪽)고 한다. 이 용어는 '환자가 스스로 요청하여 그에 동의한 경우, 환자를 죽게 하려는 의도로 의사가 치사량의 약물을 직접 투약하거나, 의사가 처방한 약물을 환자가 직접 복용하는 행위를 가리킨다.'(6쪽)고 하고 있다. 이 풀이에 따라 표에 나온 용어를 이해하면 될 것이다.<br>
 
  구분
  유형
  용어
  설명
 
 
  소극적 안락사
  연명의료 중단
  소극적
  안락사<br>
    연명의료 중단
  죽음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연명의료를 처음부터 시행하지 않거나(유보), 이미 시작한 치료를 멈추는(중단) 것. <br>
    죽음의 직접적 원인은 의료인의 행위가 아니라 기존 <br>
    질병에 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허용한다.&nbsp;
 
 
  적극적
  안락사
  자발적<br>
    (환자가 직접 <br>
    동의)
  자발적
  능동적<br>
    &nbsp;안락사
  환자의
  명확한 요청에 따라 의료인이 직접 치명적 <br>
    약물을 주입하는 등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br>
    '의료인 등 환자가 아닌 타인'이 죽음을 실행한다.
 
 
  의사조력 자살
  환자의
  요청에 따라 의료인이 치명적 약물이나 도구를 <br>
    처방하거나, 처방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 <br>
    죽음을 실행하는 주체는 '환자' 본인이다.
 
 
  비자발적<br>
    (의사결정 능력 없는 경우)
  비자발적
  <br>
    능동적 안락사
  아동이나
  알츠하이머 환자처럼 의사결정능력이 없어 <br>
    본인의 뜻을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에 이루어지는 안락사.
 
 
  반자발적<br>
    (의사 확인 없이 진행)
  반자발적
  <br>
    능동적 안락사
  의사결정능력이
  있는 환자임에도 그 요청을 명확히 <br>
    확인하지 않은 채 진행하는 안락사.
 
 
  기타
  　
  조력임종
  자발적
  능동적 안락사와 의사조력자살을 모두 아우르는 개념. 의사뿐 아니라 간호사 등 다른 의료인이 관여하는 경우까지 포함한다.
 
 
  　
  자비로운 죽음
  안락사와
  동일한 의미로 쓰이나, 죽임에 관여하는이의 <br>
    동기(연민과 자비심)를 강조하는 표현. 전쟁, 재난 같은 <br>
    극단적 상황에서의 행위를 가리키기도 해, 의료 환경의 <br>
    안락사와 구분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조력임종을 둘러싼 주요 용어
  (32쪽)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70/42/cover150/k07213966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3704259</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이야기</category><title>서울시장은 더 큰 권력으로 가는 경유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 - [노들섬과 세운상가 - 왜 시장이 바뀌면 서울이 바뀔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61500</link><pubDate>Mon, 29 Jun 2026 07: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6150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72138532&TPaperId=1736150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50/98/coveroff/k37213853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72138532&TPaperId=1736150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노들섬과 세운상가 - 왜 시장이 바뀌면 서울이 바뀔까</a><br/>박경선 지음 / 돌고래 / 2026년 06월<br/></td></tr></table><br/>우문(愚問)이라고 해야 할까? 당연히 서울시장에 출마했다는 것은 자신이 서울을 어떻게 이끌겠다는 정책을 지니고, 그 정책을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니까. 여기에 서울이라는 곳이 정치, 문화, 경제의 중심이고, 서울시장은 곧 더 큰 권력으로 가는 경유지가 될 수 있으니까, 사람들의 마음에 각인되는 정책을 추진하고자 하니까.<br>자신의 정책과 비슷한 정책을 지닌 시장이 전임이었다면 별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자신과 다른 정책을 펼친 시장이 전임이었다면, 서울 정책이 바뀔 수밖에 없다.<br>즉 왜 시장이 바뀌면 서울이 바뀔까? 라는 질문은 어째서 우리는 서울시장을 정책의 연속성 상에 있는 사람을 선출하지 않았을까? 라는 질문으로 바꾸어야 한다.<br>이 책은 역대 서울시장 중에서 오세훈과 박원순이 번갈아 시장을 한 20년 정도를 살피고 있다. 둘의 정책이 극명하게 대비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최근에 서울시장을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며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br>20년, 강산이 두 번 변할 시기에 이들은 오세훈-박원순-오세훈 순으로 서울시장으로 재직했다. 현재 오세훈이 당선된 시점에서 이 구도는 여전히 유효하기도 하고.<br>서울시장이 바뀌면 서울이 바뀔까는 질문이 오세훈 바로 전에 서울시장이었던 이명박과 오세훈을 놓고는 할 수 없는 질문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같은 정책을 펼쳤기 때문이다.<br>그렇다면 이명박에 이어 오세훈을 선출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명박이 추진한 청계천 복원 사업(사실상 복원이 아니라 청계천이라는 인공 하천을 다시 만든, 청계천 개발 사업이라고 해야 하지만, 여하튼), 뉴타운 사업, 버스 전용차로 도입 등등에 대해서 서울 시민들이 그리 반발하지 않았다는 말이다.<br>즉 당시까지는 개발이 통했다는 것인데, 오세훈이 급식 문제로 중도 사퇴한 이후에 당선된 박원순은 이러한 눈에 확 띠는 사업들과는 달리 과정을 중시하는, 시민들이 참여하는 사업을 중심으로 정책을 운영한다. 그리고 다시 박원순 이후 당선된 오세훈은 박원순이 했던 사업들을 지워나가고 있는 중이고...<br>이러한 서울시장이 바뀌면서 정책이 바뀐 사례를 '노들섬'과 '세운상가'를 통해서 살펴보고 있는 것이 이 책이다.<br>노들섬은 서울시 소유라, 서울시장이 자신의 정책을 쉽게 펼칠 수 있는 반면에, 세운상가는 민간인들의 소유가 많아 서울시장이 자신의 정책을 펼치려 해도 여러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br>하여 이 책은 우선 노들섬에 대한 두 시장의 정책이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고 있는데, 간단히 정리하면 오세훈은 노들섬을 서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하려 했고, 박원순은 시민들이 참여하는 장소로 하려 했다고 할 수 있다.<br>누구나 첫눈에 알아볼 수 있는 외양을 지닌 건축을 노들섬에 건설하려고 하는 정책이 오세훈의 정책이라면, 시민들이 가꾸고 변화시켜 가는 노들섬을 만들려고 했던 것이 박원순의 정책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지금 시장이 오세훈이니... 노들섬을 더 지켜볼 필요가 있고.<br>이와 같은 경우가 세운상가다. 세운상가 건물을 철거하고 재개발하려 하는 것이 오세훈이라면, 그 건물을 유지하면서 새로움을 더해가려 했던 것이 박원순이라고... 하지만 다시 오세훈이 당선된 이후 100미터가 넘는 고층건물을 짓겠다고 해서 문제가 되고 있는데... 그 과정이 이 책에 잘 나와 있다.<br>이 두 시장의 정책을 저자는 책의 뒷부분에서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하고 있다.<br>'두 명의 서울시장은 동일한 공간을 전혀 다르게 구상해 왔다. 오세훈 시장에게 노들섬은 글로벌 경쟁력을 상징하는 한강 위 랜드마크였고, 박원순 시장에게는 사용자가 중심이 되는 복합문화공간이었다. 세운상가 역시 오세훈 시장에게는 철거와 재개발을 통한 '도심 재창조'의 대상이었고, 박원순 시장에게는 역사적, 산업적 장소성이 축적된 '창의제조산업의 혁신기지'였다. 동일한 장소가 전혀 다른 미래상으로 기획된 것이다.' (251쪽)<br>그렇다면 이 두 곳을 통해서 서울의 미래를 그리는 정책이 대비된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누구의 정책이 더 좋다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두 정책이 지닌 장점과 단점을 살피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읽어가면서 어떤 식으로 이 두 장소를 변화시켜야 하는지 생각해보게 된다.<br>과연 외부자의 시선으로 볼 것인가, 내부자의 시선으로 볼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지금까지 이 책을 보면 오세훈의 정책은 외부자의 시선이 강하다 할 수 있고, 박원순의 정책은 내부자의 시선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br>즉 박원순은 '어떤 공간을 만들겠다는 하드웨어의 제시보다, 그 공간에 어떤 사람들이 모이고 어떤 활동이 이루어질지에 대한 소프트웨어적 비전을 강조'(195쪽)했다고 한다면, 오세훈은 이와는 대척점에 있는 비전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br>이 점을 광화문 광장을 보면 알 수 있다. 시민들이 자유롭게 만나고 무엇을 할 수 있는 장소로 광화문 광장을 생각하는 것이 내부자의 시선이라면 광장은 열린 공간으로 만들고 많은 전시물들을 설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광장을 외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눈길을 끌 무언가를 설치해야 한다. 이 점을 생각해도 두 시장의 정책이 상반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nbsp;<br>노들섬과 세운상가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아마 오세훈 임기 4년 안에 끝나지 않을 것이다. 다음 시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이 곳들의 사업은 또다시 변화를 겪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변화를 겪지 않으려면, 적어도 서울시장의 정책을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br>서울에서 대표적인 두 곳의 개발을 놓고 서울시민들이 냉철하게 평가하고, 그 평가를 받아들이고 서울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을 선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개발 추진 -&gt; 중지 -&gt; 변경 추진 -&gt; 중지 -&gt;변경 추진의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br>즉 누가 시장이 되느냐에 따라 바뀌는 서울 정책이 아니라 서울 정책의 일관성을 시민들의 의사에 맞게 추진할 수 있는 사람을 선출해야 한다. 그래야만 이렇게 우왕좌왕하면서 예산과 시간, 그리고 사람들의 노동까지 낭비하는 일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br>저자는 '단기적 성과를 넘어서는 장기적 계획 체계, 다양한 행위자가 참여하는 거버넌스, 그리고 정책 전환에 대한 제도적 견제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도시공간은 단기간의, 오락가락하는 정치적 투기 행위에 휘말려 낭비될 것이다.'(257쪽)고 하고 있다.<br>이렇게 되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이 깨어있는 시민들이 해야 할 일 아니겠는가. 서울시장이라는 자리를 자신의 정치적 출세의 발판으로 삼으려 하는 사람이 아니라, 서울시장으로서 서울시민들과 함께 서울의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 그러한 장소를 만들려고 하는 사람을 알아보고 선출하는 안목.<br>그래서 아쉽다. 이 책이 조금 더 빨리 나왔어야 하는데... 이번 지자체 선거가 끝나고나서야 읽게 되었으니...&nbsp; &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50/98/cover150/k37213853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3509843</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이야기</category><title>힘 없는 노년, 정치적 주체가 될 수 있을까? - [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54428</link><pubDate>Thu, 25 Jun 2026 12: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5442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4961&TPaperId=1735442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160/44/coveroff/893204496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4961&TPaperId=1735442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a><br/>디디에 에리봉 지음, 이상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12월<br/></td></tr></table><br/>어느 서민 여성, 바로 저자의 어머니다. 아버지의 죽음을 토대로&nbsp;[랭스로 되돌아가다]를 썼다면, 이번엔 어머니의 죽음으로 이 책을 썼다고도 할 수 있다.<br>단지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 자신이 노동자 계급의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그 계급을 벗어났다. 그는 진보적인 정치 사상을 지닌 사람으로 노동자 계급임에도 자신들의 정체성에 반하는 투표를 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다가, 그들이 왜 그렇게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게 되었다.<br>저자의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다. 젊은 시절, 노동자였을 때 어머니는 조합원으로서 노동조합의 주장에 동조하고, 그들과 함께 행동을 했다. 그러다가 나이 들어서는 극우 쪽에 투표를 하기도 했으며, 인종 차별적인 발언을 하기도 한다.<br>즉 노동조합원이었다고 해서 모두가 진보 정치에 참여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노동조합원이었던 어머니가 극우 쪽에 투표를 당당히 하는 모습, 이 책에 나와 있는데, 왜 그럴까?&nbsp;<br>그것은 나이 들어가면서 자신이 동일시할 집단이 없어졌다는 것도 한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을 읽은 소감이다.<br>자신이 속한 집단이 건재할 때는 집단과 자신을 동일시 할 수 있다. 노동조합의 정책에 찬성하면서, 노동조합과 같은 정치적 성향을 지닐 수도 있다. 그때 자신은 노동조합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원으로서 판단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br>집단에 속할 수 있다는 것, 자신의 주장을 집단이 대변하고 있다는 인식, 하여 집단과 함께 행동할 수 있는 상태. 그것이 노동조합원이었을 때 어머니의 처지였다고 한다면, 나이 들어 이제 노동조합원도 아니고, 사회적으로도 밀려날 수밖에 없는 노년에 이른 어머니는?<br>어머니는 어느 집단과 자신의 정체성을 동일시 할 수 있을까? 이제는 가족과도 떨어져 홀로 지내면서 많은 시간을 텔레비전과 함께, 요즘은 여기에 더해서 핸드폰으로 만나게 되는 온갖 모임들에서 보내는 영상들과 함께 보내게 된다.<br>자연스레 자신의 의식이 그쪽으로 편향되게 되는데... 그러므로 저자의 어머니 역시 극우 성향의 정치인에게 투표를 하기도 하는 것이다.<br>아마 우리나라는 이보다 더 심하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인터넷이 워낙 잘되어 있는 나라라서, 온갖 정보가 넘쳐나고 있고, 한번 만나게 된 영상은 알고리즘으로 그것을 계속 강화하는 영상들, 방송들을 만나게 하고, 다른 성향의 방송은 만날 기회를 박탈하고 있으니...<br>이들은 자신을 동일시할 집단을 이러한 방송에서 찾는 경향이 있게 된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그러한 노인들의 모습을 비판하기 위해서 이 책을 쓴 것은 아니다.<br>저자는 노년에 접어든 사람들이 겪는 일들을 자신의 어머니가 겪은 일을 바탕으로 서술하고 있다. 물론 이 책에서 말하는 부르조아는 상관없는 일이다. 그들은 노년에서 충분한 돈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누릴 수 있으니까.<br>하지만 노동자계급의 노인들은 그렇지 않다. 이들은 사회제도에 노년을 의탁할 수밖에 없다. 저자의 어머니 역시 나중에는 요양원에서 삶을 마감한다. 이 책에서 자세히 다루지는 않지만 프랑스의 사회복지 제도가 많이 퇴보하고 있다는 점을 저자의 어머니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게 된다. 이것이 프랑스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br>자식들도 독립해 살고 있고, 자신을 보살펴 줄 사람을 고용할 돈이 없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가는 곳, 물론 요양원도 천차만별이라 돈에 따라 환경이 다르기는 하겠지만, 자신이 살던 곳에서 삶을 마감하기는 힘들다.<br>저자의 어머니가 겪은 일이 일반 서민들이 나이 들면 겪는 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저자는 이런 경험을 통해서 노년이 어떻게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br>다른 말로 하면 노년이 정치적 주체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노년에 이르러 정당한 대우를 받기 위한 말과 행동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 사람들이 어떻게 정치적 주체가 될 수 있는지...<br>그들에게 필요한 사회 제도들을 어떻게 요구하고, 요구 사항이 관철될 수 있도록 행동할 수 있는지를 이 책의 후반부에서 살피고 있다.<br>결론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들은 움직일 힘이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미래라는 바꿀 수 있는 시간이 없는 사람들, 지금 자신의 몸을 움직일 힘도 없는 사람들이 서로 서로 연대해서 행동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br>저자의 말을 보자.<br>'남들에게 들리도록 소리를 낼 수 있는 고령자들의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의 가능한 '우리'가 없기 때문이고, 따라서 현실에서나 심지어 상상의 영역에서도 가능한 공적 발언이 없기 때문이다.'(289-290쪽)<br>이 불가능성이 노년들이 정치적 주체가 될 수 없게 하는데, 그렇다면 노년은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존재로, 가려진 존재로 있다가 사라져야 하는가?<br>그들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끝까지 누릴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질문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모두가 한번은 반드시 겪어야 할 일이다. 물론 자신의 노년을 풍요롭게 지낼 수 있는 돈이 있는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않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노년에 겪을 일들이다.<br>이렇게 누구나 겪어야 할 일임에도 우리는 남의 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아직 자신에게 오지 않은 일이고, 자신에게 닥쳤을 때는 이미 말도 행동도, 집단을 이룰 힘도 없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자신이 주체적으로 나서서 문제제기를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기 때문이다.<br>자, 닥쳤을 때는 할 수 없고, 할 수 있을 때는 남의 일처럼 여기는 이 상태, 이것이 바로 '노년'의 문제 아니겠는가. 저자는 이 점을 잘 지적하고 있다. 그럼에도 사회에서 하나의 집단을 형성하고 있는 노년을 그냥 없는 셈 칠 수는 없다.<br>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 대변하고 그것을 정치적인 힘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내부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더라도 외부에서 대신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br>이것은 우리 모두가 겪어야 할 일이라고, 그러므로 미리미리 바꾸어야 한다고... 이런 상황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문학의 힘이라고... 간접경험을 통해 미래를 미리 경험하는 것이 노년을 대변할 수 있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데...<br>노동자들이 극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 그들 역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 저자는 아르바이트를 할 때 불합리한 지시를 하는 관리자에게 저항할 수 있었지만 그 직장에 생계를 걸고 있는 어머니는 저항할 수 없었음이 이 책에도 나와 있는데, 이때는 이러한 처지에 있는 노동자들의 소리를 대변하는 노동조합과 진보 정치 집단이 이들을 대변한다.&nbsp;<br>마찬가지로 노년을 대변할 수 있는 집단이 존재하게 된다면, 그때 '노년'도 정치적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자신의 어머니와의 경험을 통해서 이 책을 쓴 것이다. 적어도 이들의 목소리가 들릴 수 있도록.<br>하여 저자는 소리를 낼 수도, 행동할 수도 없는 노년을 위해, 아니'노년만이 아니라 이러한 사람들'을 위해 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이 소리를 내야 한다고 한다. 그래야 세상이 바뀌고, 누군가가 가려진 채로 사라지지 않을 수 있다.<br>'결국 근본에 있는 정치적 문제는 이것이다. 누가 말하는가? 누가 발언할 수 있는가? 이 기본이 되는 정치적 행위가 가장 극심하게 지배받고 박탈당하고 취약한 사람 가운데 그렇게 많은 이에게 여전히 접근 불가능하다면 그들에 관해서, 그들을 위해서 말하고 그들을 보이게 하는 것이 작가에게, 예술가에게, 지식인에게 돌아오는 과제가 아닐까?'(299쪽)&nbsp;<br>이 책을 읽으면서 이것은 다른 나라 이야기,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구나. 바로 우리 이야기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 저자의 마지막 문제제기가 계속 마음에 남는다. 우리에게 돌아오는 과제, 이 과제를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br>우리 사회에서 큰소리치고 있는 '노인'들이 아니라, 정말 힘 없는 노인들, 그리고 그만큼이나 더 힘 없는 사람들, 그들과 함께해야 하는 과제를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160/44/cover150/893204496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1604461</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여러이야기</category><title>아름다움과 함께하는 삶을 추구한 사람 - [아름다움을 만드는 일 - 윌리엄 모리스 산문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50468</link><pubDate>Tue, 23 Jun 2026 10: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5046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42737365&TPaperId=1735046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4790/62/coveroff/k64273736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42737365&TPaperId=1735046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아름다움을 만드는 일 - 윌리엄 모리스 산문선</a><br/>윌리엄 모리스 지음, 정소영 옮김 / 온다프레스 / 2021년 01월<br/></td></tr></table><br/>윌리엄 모리스.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사람. 삶에서 아름다움이 없다면 그 삶은 너무나 공허하다고 한 사람.<br>남들은 중세를 암흑기라고 하지만 모리스는 중세야말로 아름다움을 살았던 시대라고... 그때 사람들은 삶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br>왜냐? 이유는 간단하다. 삶과 예술이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장식예술을 중요하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쓰는 많은 도구들을 그냥 실용적인 목적으로, 그 쓰임새만을 위해 만들지 않고, 쓰임새와 더불어 아름다움을 생각해서 만들고 썼다는 것.<br>건축도 마찬가지다. 겉모습의 웅장함만이 아니라 그곳에서 살면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건축이 좋은 건축이라고.<br>깊게 생각할 것도 없이 우리가 집에서 사용하는 물건들을 보면 모리스의 주장을 이해할 수 있다. 단지 쓰임새만 생각하고 사지 않는다. 디자인을 본다. 아름다움을 본다. 그래서 우리가 쓰는 물건들에는 쓰임새와 더불어 아름다움도 함께하고 있다. 이런 것들을 우리 삶 전반에 걸쳐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모리스의 주장이다.<br>이렇게 인간은 생활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그의 주장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정치적으로는 민주화가 이루어져야 하며, 경제적으로도 평등해져야 한다. 먹고살기 위해서 억지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해서 일을 하는 사회. 그러한 사회를 만들어야 아름다움이 삶 속에서 실현된다고 모리스는 주장한다.<br>그래서 그는 자신이 사회주의자라고 주장한다. 사회가 변해야 한다고... 가난한 사람, 자신의 노동을 남을 위해서만 하는 사람들이 없는 사회. 그러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바로 아름다움을 생활에서 추구하는 것과 방향이 같다고 한다.<br>그는 '제가 뜻하는 사회주의는 ~ 모두가 동등한 조건에서 살고, 낭비 없이 만사를 꾸려가고, 어느 누구에게 해가 되면 곧 모두에게 해가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의식하는 그런 사회적 조건이지요. 마침내 공화(共和)라는 단어의 본래 의미가 구현되는 사회라 할 수 있어요'(165-166쪽)라고 한다.<br>이런 사회는 삶 속에서 아름다움이 자연스레 구현되는 사회이고, 이런 사회에서는 쓰임새만이 아니라 아름다움도 함께 물건에 요구하고 실현하는 사회가 된다.<br>그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물건에 즐거움을 입히는 일, 그것이 바로 장식이 수행하는 하나의 위대한 역할입니다. 사람들이 만드는 물건에 즐거움을 부여하는 일, 그것이 또 다른 역할입니다.'(104쪽)고 장식예술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즐거움은 곧 아름다움과 통한다는 것.<br>이러한 아름다움이 즐거움이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면 곧 '자연에 조응하며 도움이 되면 아름다운 것이고, 반대로 자연에 어긋나며 방해가 되면 추한 것입니다.'(103쪽)고 하고 있으니, 이런 상태에서의 아름다움은 즐거움이 될 수밖에 없다.<br>그리고 이런 아름다움이 넘치는 사회는 사람들이 살 만한 사회라 할 수 있는데, '현대의 삶이 살 만한 것이 되려면 두 가지 미덕이 꼭 필요합니다. 만드는 사람과 사용하는 사람 모두에게 행복이 되는, 민중에 의해 민중을 위해 만들어지는 예술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정직함과 소박한 삶'(54쪽)이라고 주장하고 있다.<br>지나침, 낭비가 없는 사회. 어느 곳에서는 넘쳐나서 버리고 있지만 어느 곳에서는 없어서 고통을 받는 그런 사회가 아닌, 정직함과 소박한 삶이 넘치는 사회일 수밖에 없다.<br>모리스는 필요를 창출하지만 그 필요에 아름다움을 덧붙일 수 있는 사회, 그리고 모두가 그러한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누리는 사회를 그는 바라고 있는데, 이런 사회에서 '살 만한 삶을 위해 필요한 것들은 ... 첫째는 건강한 신체, 둘째는 과거,현재,미래와 교감하는 활달한 정신, 셋째는 건강한 신체와 활달한 정신에 적합한 직업,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주거환경'(255쪽)이라고 한다.<br>지금 우리 시대에도 유용한 주장 아닌가. 살 만한 삶. 아름다운 삶. 그러기 위해서는 건강, 정신, 일,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가? 이 중 하나만 없어도 우리는 살 만한 삶이라고, 아름다운 삶이라고 하지 않는다.&nbsp;<br>그래서 모리스가 주장한 이런 살 만한 삶은 아름다운 삶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동료 인간을 두려워하는 일을 그만두고 그들을 믿고 의존하는 일, 경쟁을 없애고 협력을 쌓아가는 일, 그것이 우리가 꼭 해야 할 일'(240쪽)이라는 모리스의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br>아름다움에 관한 모리스의 글들을 담고 있는 이 책은 단순히 미학에 관한 책이 아니다. 우리 삶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있기에 사회학, 정치학과도 연결이 된다. 그가 삶의 환경을 바꿔야 한다고, 사회를 변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름다움은 우리 삶 전반에 걸쳐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br>이런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있는 이 책에서 한 가지 더 좋은 점이 있다면 모리스가 만든 아름다운 문양들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얼마나 삶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했는지, 그 문양들을 보면서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br>이 책을 추천한 박노자의 말을 보자. 이 책을 가장 잘 정리한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br>'모리스가 세운 뜻은, 쉽게 이야기하면 근대가 망까뜨리고 획일화시킨 인간에게 미(美)를 통해 다시 한번 자유와 개성을 돌려준다는 것이었다.'(4-5쪽)<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4790/62/cover150/k64273736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47906202</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삶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받아쓰기 - [딕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48440</link><pubDate>Mon, 22 Jun 2026 09:3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4844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0123105&TPaperId=1734844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974/93/coveroff/8970123105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0123105&TPaperId=1734844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딕테</a><br/>차학경 지음, 김경년 옮김 / 문학사상 / 2024년 11월<br/></td></tr></table><br/>'DICTEE'<br>낯선 말이다. 프랑스어라고 한다. '받아쓰기'라고. 받아쓰기. 지금 아이들도 학교에서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예전에 국민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저학년 때 받아쓰기 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단지 국민학교에서만이 아니라 중, 고등학교에서도 외국어를(중학교에서는 영어를, 고등학교에서는 제2외국어라 해서, 독일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중국어, 일본어 등등을 배웠다.) 배우면서 받아쓰기를 한 적이 있을 것이다.<br>교사가 불러주는 단어나 문장을 제대로 썼는지 확인하는 과정. 그런데 소설이라고 하는데 제목을 프랑스어로 달고 받아쓰기라고 했으니 제목부터 생각을 하게 한다.<br>받아쓰기라?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라는 말인가? 정답은 있다. 그 정답을 제대로 옮기느냐 못 하느냐에 따라 점수가 달라지는 시험, 그것이 받아쓰기라 생각했는데...<br>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러한 받아쓰기라 아니라 삶을 인식하는, 삶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받아쓰기라고 이 말을 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br>시작 부분에 나오는 받아쓰기는 아마도 작가의 개인 체험이 들어간 것이겠지만, 개인 체험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태어나면서 받아쓰기를 한다. 그것을 글자로 적지 않더라도...<br>엄마의 말을 받아쓰기 하면서 언어를 익히게 된다. 단지 언어를 익히게 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배우고, 자신을 알아가게 된다.<br>그런데 그러한 언어를 빼앗겼다면? 엄마로부터 자연스레 배우는 언어를 억압받는다면 어떻게 될까? 자연스런 받아쓰기 과정이 인위적인 받아쓰기 과정으로 바뀌지 않을까? 그러면서 자신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과 자신을 알아가는 방법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데...<br>이 소설을 쓴 차학경의 삶을 보면 이 소설이 왜 받아쓰기이고, 다양한 형식이 시험되고 있는지 대략 이해할 수 있게 된다.<br>차학경 자신도 어린 시절에 미국으로 이민을 간 사람이다. 미국의 언어를 처음부터 배워야 하는 사람. 그러니 그에게는 이제 생활해야 하는 언어를 받아쓰기 해야 한다. 엄마로부터가 아니라 그 사회로부터.&nbsp;<br>그러면서도 엄마로부터 익혀온 언어가 사라지지 않는다. 엄마가 들려주는 언어를 끊임없이 받아쓰기 하면서, 다른 언어도 받아쓰기를 해야 한다. 여기에 차학경은 프랑스어에도 관심이 있고, 배웠다고 하니, 이 소설에서 '프랑스어로 번역하시오'라는 부분이 있는 것도 이해가 된다.<br>하지만 단지 언어의 번역, 받아쓰기 문제가 아니다. 바로 세계를 인식하고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해가는 과정이다.<br>이 받아쓰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넷이다. 유관순, 잔 다르크, 성녀 테레즈, 그리고 엄마. 유관순과 잔 다르크는 나라와 관련이 있다면, 성녀 테레즈는 종교와, 그리고 엄마는 이 모두와 연관이 된다고 할 수 있다.<br>즉 이 소설은 엄마를 중심으로, 엄마의 이야기를 받아쓰기 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는데, 이는 엄마를 통해서 우리나라의 역사, 그리고 그와 비슷한 세계 속 역사를 살피고 있으며, 자신의 신념인, (차학경은 테레사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으며, 그의 형제자매들도 모두 이러한 세례명을 지니고 있다), 종교에 대한 믿음에 대한 표현을 통해 자신이 바라는 세상을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br>단순히 엄마의 말을 받아쓰기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형식을 통해서, 또 다양한 자료들을 통해서 역사와, 종교와 사랑을 이 소설 속에 녹여내고 있다.<br>하여 소설 속 문장을 인용하면 '원 속의 원, 동심원의 연속'(187쪽)이라는 표현처럼, 이 소설은 자신의 삶이라는 원에서 엄마의 삶이라는 원, 유관순 - 잔 다르크의 삶의 원, 성녀 테레즈의 삶의 원과 역사의 원이 동심원처럼 중첩되어 있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br>이 다양한 삶들을&nbsp;'DICTEE'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는데, 그러므로 어떤 하나의 형식으로 소설을 전개할 수 없었을 것이다.&nbsp;<br>받아쓰게 하는 존재에 따라 받아쓰기 방식이 달라질 수 있기에, 또한 받아쓰기를 하는 주체가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받아들였느냐에 따라 받아쓰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으니, 하나의 형식이 아니라 다양한 형식들이 이 소설 속에 혼재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br>그것들을 하나로 꿰기는 힘들다. 읽는 사람 역시 차학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받아쓰기'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받아쓰기'에는 백 점이란 없다. 자신의 관점에 맞게 변용해서 받아들이고, 다시-쓰기를 할 뿐,<br>소설에 여러 언어가 혼재되어 나타나, (책의 말미에 있는 오빠의 글에 의하면 '테레사는 한국어, 영어, 불어,그리스어를 인용해서 [딕테]를 구성했다'(211쪽)고 나와 있다) 번역자도 이 점 때문에 많은 고심을 했을 것인데, 읽기도 쉽지 않은데, 그럼에도 읽으면서 무언가 어렴풋하게 어떤 형상이 다가오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br>이런 느낌을 좀더 구체화하고 싶으면 소설 뒤에 실린 차학경 오빠의 글과 번역자의 말, 작품 해설 두 편을 읽으면 좋을 것이다.<br>한 번에 읽고 끝낼 소설이 아니라는 것, 두고두고 읽으면 그때마다 받아쓰기가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주는 소설. 읽고 나서도 무언가가 계속 남아 있는 소설이 바로 이 소설이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4974/93/cover150/8970123105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49749319</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이야기</category><title>사랑과 신뢰-극우(극단)에서 벗어나게 하는 힘 - [극우 유튜브에서 아들을 구출해 왔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43412</link><pubDate>Fri, 19 Jun 2026 12: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4341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80847&TPaperId=1734341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765/52/coveroff/893648084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80847&TPaperId=1734341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극우 유튜브에서 아들을 구출해 왔다</a><br/>권정민 지음 / 창비 / 2025년 07월<br/></td></tr></table><br/>'극우 유튜브'에서 아들을 구출했다는 말. 쉽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너무도 쉽게 유튜브 영상을 통해서 다른 이들을 혐오하고 배제하는 쪽으로 기울게 되는 현실.<br>그럼에도 유튜브를 어떻게 할 수 없는, 너나 할 것 없이 유튜브를 하겠다고, 어떤 곳은 이들이 광장을 점령해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자신들의 재미, 흥미, 관심사를 유튜브로 만들어 보여주는 이들을 모두 비판할 수는 없다.<br>다만, 유튜브를 통해 혐오와 배제의 논리를 전파하고, 행동을 촉구하는 이들마저도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허용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br>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표현의 자유는 소중하니까. 이렇게 소중한 표현의 자유가 다른 사람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면? 그것도 표현의 자유일까?<br>표현의 자유를 빙자해서 혐오하고, 배제하고, 폭력을 선동하는 것이 과연 용납되어야 할까? 이들에 대한 규제가 이루어지지 않고 잇는 상황에서, 그러한 발언-선동들이 '사이다'라고 인정받는 사회에서 입시에 찌든 학생들이 쉽게 빠져들 수밖에 없다.<br>자신들의 감정을 분출할 수 있는 통로가 유튜브에 있으며, 이들은 표면상으로는 자신들을 지지해주고 응원해준다는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또한 에둘러 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감정을 표현하니, 시원하단 느낌이 들게 해주기도 하고...<br>감정이 요동치는 나이, 질풍노도의 시기에 반항하는 시기라고 하는 사춘기에 단정적인 말은 그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도 있다. 무엇보다 앞에서 하는 말과 뒤에서 하는 행동이 다르지 않다고 여길 테니까. 사실 그들의 행동을 알 수 있는 것도 아닌데...<br>이런 극우 유튜브를 보면서 재미를 느끼고, 그것을 놀이라고 생각하는 청소년이 늘고 있다고 하는데, 단순히 놀이를 넘어서 혐오와 배제로 나아가면 극우로 빠져들게 되기 쉽다.<br>저자의 아들 역시 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 보는 유튜브에서, 또 친구들의 말에서 극우적 표현들을 익혔다고 한다. 이런 점을 알게 된 저자가 아들과 대화를 통해 극우 논리에서 벗어나 진실을 찾는 비판적 사고를 하는 아들로 자라게 하고 있다고 하는데...<br>학교에서 늘 '민주시민교육'을 강조한다. 비판적 사고력을 함양하고... 하는 말들이 교육 목표로 실려 있기도 하다.<br>이렇게 민주시민과 비판적 사고력을 함양한다는 학교에서 극우 논리가 판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할까?<br>교육만으로 이러한 현실을 바꿀 수 있을까? 학교 현장이 오히려 극우 논리가 스며들고 확산되게 하는 공간으로 작동한다면, 지금 학교 교육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br>왜 학교에서 가르치는 그 좋은 내용들이 학생들에게 다가가지 않고, 유튜브나 다른 매체들을 통해서 만나게 되는 극우 논리, 또는 극단적인 논리가 학생들에게 다가갈까?<br>답은 뻔하지 않은가? 바로 우리 사회에서 '사랑과 신뢰의 관계'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사랑과 신뢰가 있다면 극단적인 사고로 가지 않는다. 적어도 상대가 한 말이나 행동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된다.<br>무조건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 말할까? 왜 저렇게 행동했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사랑과 신뢰가 없으면 '그럼, 그렇지.'라는 생각부터 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더 강화하게 된다.<br>이 책에서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도 이것이다. 가족 간에도 '사랑과 신뢰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부모가 좋은 말을 그렇듯하게 하면서도 자식들에게는 학원을 강요하고, 입시에서 성공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둔다면, 과연 그 가정에서 부모와 자식 간에 사랑과 신뢰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br>말과 행동이 다른 존재로 부모를 인식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부모 자식 간에 대화는 힘들어진다. 부모는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고, 아이는 부모의 생각을 거부하는 모습으로 굳어지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극우 유튜브를 비롯한 극단적인 성향을 띠는 매체들이 자리를 잡게 된다. 마음에 파고들게 된다.<br>혹해서, 와, 통쾌하네 하는 생각으로 한두 번 보다 보면 알고리즘에 의해 이와 비슷한 영상들이, 매체들을 계속 보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의 생각을 굳히게 되고, 부모와는 더더욱 멀어지게 된다. 부모를 꼰대라고 여기게 되고,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 또는 앞과 뒤가 다른 이중인격자로 여기게 된다.<br>또한 학교의 그 좋은 목표들보다 자기 자식의 성적이 더 중요한 부모가 학교에 와서 교사들을 대하는 태도들을 보면, 어떤 학생이 교사의 말을 따르겠는가? 자신의 부모조차 무시하는 교사들의 말을.<br>이렇게 '사랑과 신뢰의 관계'가 깨진 가정과 학교에서 아이들은 어른들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을 이끌어줄 어른은 집에, 학교에 있지 않고 사이버 상에 존재한다. 그것이 유튜브든 게임에서 자신들을 이끄는 사람이든, 단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들을 어른으로 착각한다.<br>부모, 교사가 아니라 이것이다, 이래야 한다, 저들이 나쁘다. 저들을 몰아내야 한다고 혐오와 배제의 말하기를 하는 그들을 어른으로 착각하는 순간, 극우 쪽으로 빠져들게 된다.<br>이렇게 극우 논리에 함몰된 자식을 구출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저자는 부단히 대화를 한다. 그것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가 이해하기 쉽게. 이런 일은 대부분의 부모가 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그만큼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일이다.<br>하지만 저자와 같지 않더라도 가족 간에 '사랑과 신뢰'가 있다면 짧은 시간에도 대화를 할 수 있다. 진심을 다하는 대화. 그래서 상대를 배제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나만이 아니라 상대의 말에도 경청을 하는 그런 대화를 할 수 있다.<br>이것이 바로 '극우 유튜브에서 아들을 구출'한 방법이다.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가장 가까워야 할 부모-자식 간에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 부모도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 실수할 때도 있음을, 다만 그 실수를 인정하고 고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을 자식이 느끼게 하고, 자식에게도 완벽함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실수를 통해서 배워나가는 모습을 기대한다는 것을.<br>남을 배제하고 혐오해서는 절대로 자신도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다른 존재들과 함께 어울려 즐겁고 행복하는 사는 삶을 부모가 원한다는 것을, 그래서 극단적인 논리를 주장하는 존재들을 멀리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하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부모-자식 간에 '사랑과 신뢰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br>이 관계가 있어야 대화도 가능하다. 어디 이것이 부모-자식 간에만 해당하겠는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무너진 '사랑과 신뢰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그래야지만 우리 사회가 극단주의에 빠지지 않게 된다. 특히 미래세대들에게는 더더욱 그런 관계 회복이 절실하다.&nbsp;<br>그 점을 이 책에서 저자는 잘 보여주고 있다. 자신과 아들의 관계를 중심으로.]]></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765/52/cover150/893648084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7655224</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이야기</category><title>팔레스타인에 대한 말하기는 곧 저항이다 - [팔레스타인 번역가의 이중생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41513</link><pubDate>Thu, 18 Jun 2026 10: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4151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32138063&TPaperId=1734151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66/46/coveroff/s10213931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32138063&TPaperId=1734151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팔레스타인 번역가의 이중생활</a><br/>알라 알카이시 지음, 서제인 옮김 / 글항아리 / 2026년 06월<br/></td></tr></table><br/>무어라 말을 하기 힘들다. 내가 겪는 일은 아니지만, 우리나라도 이런 일을 겪어왔기에... 최근에 여행 간 곳에서 보게 된 소나무들의 상처.<br>소나무 줄기에 브이(V) 모양의 상처들이 있었다. 깊고 굵게, 그 상처를 얼핏 보면 나무가 웃는 것처럼 보이는데, 아니다. 웃고 있는 것이 아니다.<br>일제강점기, 연료가 부족한 일제가 소나무에서 송진을 채취해 연료로 쓰기 위해서 커다란 소나무들에 그런 상처를 남긴 것이라고... 일제강점기가 끝난 지 80년이 넘었지만 나무는 그 상처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상처를 통해 우리에게 역사를 잊지 말라고, 기억하라고 하고 있다.<br>그 소나무 상처. 이 책을 읽는 내내 떠올랐다. 팔레스타인을 기억해야 한다고. 특히 가자지구에서 벌어진 일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그것은 집단 학살이라고. 부정하는 자들에 맞서 그러한 학살을 기억하고 알려야 한다고.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기록해야 한다고. 이것이 바로 팔레스타인 번역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br>팔레스타인, 가자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또 팔레스타인 문학들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 현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슬픔, 분노, 고통을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 번역하는 언어가 강한 나라일 때는 더더욱.<br>영어, 영국의 언어이자 미국의 언어. 지금 이스라엘은 미국과 딱 붙어 있고, 팔레스타인 비극을 초래한 나라는 영국이니, 영국이나 미국의 언어인 영어로 팔레스타인, 가자의 상황을 번역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br>이 글의 저자는 이렇게 그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br>'영어는 - 특히 주로 언론과 외교 성명, 그리고 '양측'을 내세우는 서사에 쓰이는 영어는 - 팔레스타인의 고통으로부터 가해의 주체를 지워버리고 대량 학살을 '충돌의 격화'로, 봉쇄를 '안보 조치'로 축소하도록 신중하게 구성되어 있다. 가자를 이 언어로 번역한다는 것은 가자의 현실을 가리도록 고안된 바로 그 구조들에 맞서 싸우는 일이다. 이것이 팔레스타인 번역가가 처해 있는 망명 상태다. 두 세계 사이에 존재하지만 그 어느 쪽도 온전히 자기 것이라고 할 수 없는 상태'(71쪽)<br>이런 어려움에도 저자는 번역을 한다. 왜냐하면 '가자에서 번역을 한다는 것은 집단학살뿐만 아니라 전쟁이 지워버리고 싶어하는 삶의 평범한 순간들 역시 기록하는 작업(68쪽)'이기 때문이다.<br>잊지 않기 위해서 번역을 하고, 기록을 한다. 이러한 번역이나 기록은 곧 기억의 행위이고, 기억은 저항이 된다. 즉 '가자에 관해 문장 하나를 쓴다는 것은 전 세계의 무관심이라는 구조물에 맞서는 일(85쪽)'이기 때문이라고 한다.<br>하지만 저자는 가자가 오로지 상처로만 기억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를 보듬는 따뜻함이 있던 곳.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그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 하는 가자 사람들의 모습도 기억하기를 바란다.<br>그렇게 하기 위해서 저자는 글을 쓴다고.&nbsp;<br>결국 저자는 가자에서 살지 못하고 지금은 더블린에서 산다고 한다. 이 책에는 가자에서 나와 베를린과 더불린에서 겪는 일들도 나와 있는데, 이 곳에서도 저자는 가자를 잊지 못한다. 가자는 저자의 몸과 마음에 배어 있기에 저자는 가자에 대해 끊임없이 글을 쓴다.<br>이 책은 그 결과물이다. 읽으면서 가자의 눈물, 슬픔이 떠나지 않고,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음, 잊지 않고 항복하지 않으려는 의지를 느끼게 되었는데, 이는 이 책에 나온 저자의 시에 '다른 이들이 피 흘린 길을 밟는 일'('가자, 인내의 끝에서' 중. 197쪽)이라는 구절이 있듯이, 우리 역시 이 책을 읽으면서 그들이 피 흘린 길을 함께 걷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br>읽으면서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는데, 아직도 가자는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의 이 당부 잊어서는 안 되겠지. 그래서라도 이런 책을 읽어야겠지.<br>'이 책의 페이지를 넘길 때, 여기 쓰여 있는 일들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가자 사람들이 여전히 똑같은 조건 아래 살아가고 있음을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6쪽)<br>이 책을 읽는 순간, 한겨레신문 (2026년 6월 11일 자)에 이런 글이 실렸다.&nbsp;<br>이스라엘로 떨어지는 이란 미사일을 가자에서 보며…<br>저자의 목소리와 비슷한 소리, 잊어서는 안 된다는 소리. 기사를 읽고, 또 이 책을 읽으며 전세계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무관심을 거부하는 독서, 스스로에게 변화를 허락하는 독서의 경험'(8쪽)을 하라는 저자의 말을 다시 한번 떠올린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66/46/cover150/s10213931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664647</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사람이야기</category><title>다중(평행)우주를 현세에서 산 사람- 페소아 - [페소아와 페소아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35888</link><pubDate>Mon, 15 Jun 2026 11:1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3588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4207422&TPaperId=1733588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441/31/coveroff/899420742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4207422&TPaperId=1733588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페소아와 페소아들</a><br/>페르난두 페소아 지음, 김한민 옮김 / 워크룸프레스 / 2014년 07월<br/></td></tr></table><br/>평행우주, 다중우주. 지구에서 살고 있는 나와 또다른 우주에서 살고 있는 나. 이것은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지구에서 살고 있는 '나'는 지구에서는 유일한 존재이고, '또 다른 나'는 지구가 아닌 다른 우주에 살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 나를 나는 만나지 못한다. 알지 못한다. 다만, 다른 내가 다른 우주에 살고 있다고 짐작하기만 할 뿐. 즉 현실이 아닌 가상이라고 생각할 뿐.<br>그런데, 이 지구에도 수많은 나'들'이 있다면... 평행우주가 아니라 평행지구라고 해야 할까? 지구 곳에서, 아니 지구의 어느 한 나라에도 수많은 나'들'이 있다면... 그들이 각자 다른 삶을 살아간다면?<br>'도플갱어'와는 다르게, 속설로는 '도플갱어'를 만나면 죽음에 이른다고, 즉 두 존재가 함께 존재하지는 못한다고 하기도 하니, 다중(평행)우주 속의 '나들'은 그런 도플갱어와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br>그럼 '해리성 정체성 장애'와는 어떻게 연결이 될까? 자신에게서 나타나는 여러 인격들, 한 인격이 한 행동을 다른 인격이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 이것은 도플갱어라는 말과도 다중(평행)우주라는 말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br>어렵다. 이렇게 어려운 상태. 어쩌면 인간이란 바로 이렇게 무어라 정의하기 힘든, 또는 하나 속에 여럿이 함께 있는, 그 여럿이 하나 속에 통합되어 하나로만 나타나기도 하지만, 여럿이 각자가 하나가 되어 나타나기도 하는 존재, 그것이 바로 인간이 아닌가.<br>하나의 인격만이 발현되든, 여러 인격이 발현되든 그것이 인간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고... 이것이 바로 인간의 다양한 면이 아닐까.&nbsp;<br>그러니 인간을 어느 한쪽으로만 규정하는 일은 없어야겠는데... 이런 많은 용어들이 생각난 것은 바로 페르난두 페소아의 이 책 [페소아와 페소아들]을 읽었기 때문이다.<br>책 제목을 [페소아와 페소아들]이라고 붙인 것은 페소아라는 포르투칼 작가가 페소아라는 이름의 단일한 인격만으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페소아들이라는 다중 인격으로 존재했다는 것.<br>어떤 때는 페소아라는 인격이 또 다른 때는 페소아들에 해당하는, 이 책의 번역 용어로는 '이명(異名)'의 인격들이 나타나 작품 활동을 했다고 한다. 시, 희곡, 소설, 인터뷰 등등 다양한 페소아들이 각자 특성있는 글로 나타난다.<br>페소아 자신이 스스로 그러한 이명들에 대해 밝히고 있기도 한데, 어떤 인격들은 이명(異名)이 아니라 이명에 준한다는 의미로 준(準)이명이라고도 했으니...<br>해리성 정체성 장애와는 달리 페소아는 자신이 지닌 다른 인격들에 대해서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고, 그러한 인격들이 다양한 작품활동을 하도록 했다는 것이다.<br>이 책은 그러한 페소아들을 만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그들 이름으로 발표한 글들을 실음으로써, 그들 나름대로 개성을 지니고, 다른 문학을 지향하고 있음을 파악하게 한다.<br>여기에 이명이 아니라 본명 편에서 페소아가 직접 밝힌 일들도 수록함으로써, 페소아란 작가에 대해서 더 구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하고 있다.<br>때로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설명하지 못할 때가 있는데, 페소아는 그런 다양한 자신을 인식하고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창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br>하여 그는 이 지구에서, 그 중에서도 포르투칼이라는 나라에서 여러 페소아들로 살아가면서 작품활동을 한 사람. 그 많은 페소아들 중에서 어느 누구로 페소아를 규정지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한 책이다.<br>그의 이명에 관한 말... 이 말을 통해 페소아는 다양한 페소아들로 작품활동을 했음을, 그것이 바로 그임을 알게 해준다.<br>'내 이명들의 정신적인 기원은, 나의 근본적이고 한결같은 탈개성화와 가장(假裝)의 성향이지. ... 어릴 적부터 난 내 주변에 가상의 세계를 창조하면서 존재하지 않았던 친구들과 지인들로 나를 둘러싸는 성향이 있었지.'(325-326쪽)]]></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441/31/cover150/899420742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4413135</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과 나 그리고 책</category><title>김정원 시집-이런 마음으로 살아야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32117</link><pubDate>Sat, 13 Jun 2026 11:1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3211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42731784&TPaperId=1733211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7041/23/coveroff/k542731784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nbsp; 첫시. 충격을 준다. 수직이 수평을 이룬다니... 하, 비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다니.<br><br>&nbsp;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 수직으로 떨어지는데, 허만하 시인은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는 시집을 냈는데, 김정원 시인은 비는 수평을 이룬다고 한다.<br>&nbsp; 달랑 세 행짜리. 하지만 시에서 행은 중요하지 않다. 행들의 길고 짧음이 시의 좋고 나쁨을 결정하지 않는다. 시는 시로서 수평이다.<br>&nbsp; 그러다 수평이라니.. 평평하다는 뜻인가? 평평은 그럼 다 똑같다는 뜻? 아니다. 이때 수평은 다름을 포용한다는 뜻으로 봐야하지 않을까?<br>&nbsp; 하늘 아래 제가 크면 얼마나 크다고 하늘에서 보면 다 고만고만한 수평 아닐까. 그러니 비는 하늘에서 내려와 너희들은 수평이라고, 평등하다고, 그러니 모두 친하게 지내라고 하는 것 아닐까.<br>이 시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는데... 하늘 아래 고만고만한 존재들이 자기들만이 특출난 듯 남들을 무시하는 행태들을 보면 참... 무어라 말해야 할지.<br>그땐 이 시를 읽으면서 우리 모두는 하늘 아래서 수평이라고, 그러니 모두 잘 지내야 한다고 비가 말한다는 느낌을 받았으니...<br>137억 년이 넘는 우주의 역사에서 인간이 존재한 것은 아주 미미한 시간. 그런 우주의 시간에 인간의 역사란 아무리 돌출했다고 해도 평평한 역사. 이렇게 시야를 확대하면 고만고만한 우리들이 서로 잘났다고 다투고 있는 모습은 좀 그렇다.<br>더 큰 관점에서 인류를 보면 우리 모두는 평등하다. 평평하다. 우리는 수평이다. 이렇게 외치고 싶다. 그래서 시인의 말처럼 '수평은 동무가 참 많다'고 하고 싶다. 그런 마음이 필요한 요즘이 아닌가 싶고.<br>&nbsp; 비<br>수직은<br>곧장 수평이 된다<br>수평은 동무가 참 많다<br>김정원. 아득한 집. 푸른사상. 2021년. 13쪽.<br>그러다 다음 쪽으로 넘기니 또 다른 시. 와, 역시... '비'라는 시에서처럼 우리 모두가 수평이라면, 이제 남탓이 아니라 나를 돌아봐야 한다고... 내 마음을 먼저 살펴야 한다고 하는 듯한 이 시.<br>이런 마음을 우리가 지니고 있다면 너니 나니 하면서 구별하는 분별심이 조금은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데... 내 탓이요 운동이 한물 가더니, 이젠 모두 네 탓이요, 네 탓이요 하는 세상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는데... 이것도 역시 내 마음을 돌아보지 못하고 네 마음 탓을 한 것은 아닐지 우선 내 반성부터 하게 되었는데...<br>&nbsp; &nbsp;겨울 호수<br>네가 던지는 돌에 / 내가 부딪히고 / 아픈 까닭은 //물 샐 틈 없이 / 단단하고 차가운 / 나의 빙벽 때문이다 //내가 물이라면 / 네가 던지는 돌이 / 상처를 내지 못하고 //그 돌이 칼이라도 안으면 / 나비처럼 춤추며 가라앉아 / 그만 녹슬고 말 텐데 //얼어붙은 나의 가슴을 먼저 녹여야 / 복수초도 꽃을 피우는 / 세상에 봄이 온다<br>김정원. 아득한 집. 푸른사상. 2021년. 14쪽.<br>그래, 이런 마음의 자세라면 어찌 죽일 놈, 살릴 놈 하는 비난들이 난무하겠는가. 그런 비난이 들어설 틈이 없을 것이다. 칼도 받아들여 녹슬게 하는 마음일진대, 어찌 남을 향해 날을 세우겠는가.<br>내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내 마음을 열지 못하고 꼭꼭 닫아걸고, 얼어붙게 할 때, 그때 너만 다치는 것이 아니라 나도 다침을 이 시를 통해 생각하게 되는데...<br>이렇게 시집을 읽어가면서 마음을 녹여가고, 열어가고, 그러다가 '어머니 1~14' 연작에서는 눈물이 핑 돌기도 하고... 하다가, '도긴개긴'이라는 시를 읽고, 햐! 이런 일, 비판도 이렇게 부드럽게 할 수 있구나, 이런 비판 누가 트집잡을 수 있겠는가 하고 감탄을 하기도 하고.<br>&nbsp; 도긴개긴<br>토니 모리슨이 쓴 소설&nbsp; &nbsp; &nbsp; &nbsp; &nbsp; &nbsp;[The Bluest Eye]를 읽다가먼 산 쳐다보며 뜬금없이&nbsp;지앙스런 상상을 한다<br>숯검정 같은 흑인을"깜둥이"라고 경멸하는&nbsp;좀 덜 검은 혼혈아를"참 어처구니없는 놈이네"하고, 한국인이 비웃듯이<br>전라도 사람을"홍어좆"이라고 멸시하는일베 철부지를"헐 느자구없는 새끼네"하고, 콧방귀 뀌는 콩고인을<br>김정원. 아득한 집. 푸른사상. 2021년. 81쪽.<br>지금 우리 사회에 있는 누군가가 이런&nbsp;시를 읽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으니... 시집에 실린 시들, 마음을 푸근하게 감싼다. 시를 읽으면서 마음이 따스해진다. 각박해진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힘을 지닌 시들이다.<br>토니 모리슨의 [가장 파란 눈]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좋은 문학은 다른 문학과 연결되어 있으니, 한 작품이 다른 작품으로 사람을 인도하는 일을 하는 문학이 좋은 문학이기도 하니까.<br>(참고로 지앙스럽다에서 지앙은 전라도 사투리로 '말썽'이라는 뜻으로 많이 쓰인다고 하고, '느자구없는 놈'에서 느자구는 '싹수'의 사투리라고 한다. 그런데 지앙스런 상상이 말썽이 되는 상상이라고 하기엔 좀... 그냥 남들이 하지 못하는 나만의 상상으로 받아들이면 될 듯)]]></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7041/23/cover150/k54273178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0412391</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