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도담서림(道談書林) (kinye91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hu, 16 Jul 2026 06:52:16 +0900</lastBuildDate><image><title>kinye91</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74420113113741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kinye91</description></image><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이야기</category><title>우리 모두를 평범하게 살 수 있게 해주는 법, 차별금지법 - [평등한 평범 - 차별금지법이 꿈꾸는 세상]</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92835</link><pubDate>Wed, 15 Jul 2026 11: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9283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12139514&TPaperId=1739283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16/92/coveroff/k612139514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12139514&TPaperId=1739283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평등한 평범 - 차별금지법이 꿈꾸는 세상</a><br/>장혜영 지음 / 후마니타스 / 2026년 07월<br/></td></tr></table><br/>차별을 금지하자는데 반대를 한다. 차별을 금지하는 것이 차별이라고 하면서... 역차별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역차별... 이것은 자신은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지만 상대는 누릴 수 없는 권리라는 말과 통한다는 생각을 한다.<br>하지만 누구는 누리고, 누구는 누릴 수 없는 권리가 무엇일까? 그런 권리가 있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사람이라면 누려야 할 보편적인 권리는 어떤 사람도 누리지 못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보장하는 법이 차별금지법 아니던가.&nbsp;<br>모든 분야에서 똑같은 권리를 달라고 주장하는 법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려야 할 보편적인 권리를 보장해달라는 것, 그런 권리에서 차별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차별금지법이다.<br>그러니 차별금지법은 이미 누리고 있는 사람에게서 권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권리를 함께 누리자는 것이다. 그런 권리를 함께 누린다고 해서 권리를 양이 줄거나 힘이 약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br>오히려 그러한 권리들은 함께할수록 더 커지게 된다. 이 책의 저자의 말처럼 그것을 평범한 삶이라고 하면, 우리는 누구나 평범한 삶을 누릴 권리가 있다. 하여 제목이 '평등한 평범'이다.<br>저자의 말을 빌리면 '이상함만큼 평범한 것은 없다. 모든 평범한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고, 모든 이상한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다.'(11쪽)<br>누구나 다름을 인정하고, 다름과 함께 살아가는 것, 그것이 평범함이다. 이러한 평범한 삶을 누구나 누리도록 하자는 법이 차별금지법이기도 하고.<br>한데, 차별금지법은 지금도 제정이 되고 있지 않다. 올해 초에 발의가 되었다던데, 상임위에서 심의를 했다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지난 19년간 차별금지법은 국회에서 14차례나 발의되었지만 단 한 번도 제대로 심의되지 못하고 고사했다.'(287쪽)고 저자도 말하고 있으니...<br>저자가 21대 국회의원이 되어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하고, 그에 대한 공부를 하고 또 제정이 되도록 많은 노력을 했지만, 역시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말았다고 한다.<br>이 책은 그러한 저자가 차별금지법에 관심을 가지게 된 사연, 그리고 국회의원이 되기까지의 과정, 국회의원이 되어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어떻게 했는지를 보여주는 과정, 또 자신이 만난 사람들, 경험한 일들을 바탕으로 차별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br>차별금지법을 쉽게 설명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저자의 경험을 예로 들면서 왜 차별금지법이 필요한지, 그러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존재들은 누구인지, 또 그들은 어떤 논리를 동원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있으며,&nbsp;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nbsp;차별들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br>표지에 작은 제목으로 '차별금지법이 꿈꾸는 세계'란 문장이 있는데, 쉽게 말하면 우리 모두가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는 세계를 만들자는 것이다.<br>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시설에 갇혀 살아야 하는 현실이 아닌, 특정 성별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하거나 추행을 당하는 일, 이주민 또는 난민이라는 이유로 배척당하는 일이 없는 세상. 모두가 평범한 일상을 함께할 수 있는 세상, 그러한 세상을 꿈꾸는 것이다.<br>그런데, 이 과정이 너무도 어렵다. 국회를 통과하기도 힘들다. 설문조사를 하면 압도적인 다수가 차별금지법이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도, 민의를 대변해야 한다는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이 심사되지 않고 폐기되고 있으니... 어떻게 해야 하나?&nbsp;<br>여기서 정치가 중요하고, 정치인을 움직일 수 있는 시민의 힘이 중요하다는 점이 드러난다. 깨어 있는 시민들의 힘으로 정당을 움직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치인이 국민을 제대로 대의할 수 있도록 정치제도를 개혁해야 한다.<br>물론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식으로, 정치 개혁 역시 국회의원들에게 맡겨서는 또다른 실패를 반복할 수 있다. 하여 시민들이 힘을 합쳐 정치개혁이 될 수 있도록 압력을 넣을 수 있어야 한다. 정치인들이 움직일 수밖에 없도록.&nbsp;<br>저자가 직접 경험한 차별금지법에 관한 과정을 통해 정치 개혁의 중요성이, 정치 개혁을 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시민들의 힘이 중요함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16/92/cover150/k612139514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5169262</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이야기</category><title>노동자들이 안녕한 세상은 언제 오려나? - [안녕하세요, 한국의 노동자들 - 노동인권 변호사가 함께한 노동자들의 법정투쟁 이야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88886</link><pubDate>Mon, 13 Jul 2026 09:0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8888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62037989&TPaperId=1738888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893/19/coveroff/k36203798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62037989&TPaperId=1738888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안녕하세요, 한국의 노동자들 - 노동인권 변호사가 함께한 노동자들의 법정투쟁 이야기</a><br/>윤지영 지음 / 클 / 2025년 03월<br/></td></tr></table><br/>"안녕하세요?"<br>이 인사말은 안녕하지 않은 시대에, 상대의 안녕을 바라면서 건네는 말이다. 얼마나 살기가 힘들었으면 예전에 "밤 새 안녕하셨습니까?"라는 인사말이 있었겠는가?<br>그러니, 안녕하세요라는 말은 살기가 힘들다는 것을 반증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제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섰다는 우리나라에서, 어떤 노동자들은 성과금으로 수억 원을 받기도 한다는데, 그러한 노동자들이 언론을 장식할 때 그들에 가려진 더 많은 노동자들은 과연 안녕할까?<br>노동자들이 안녕하지 않은 세상, 그래서 중대재해처벌법이라는 법도 만들었지만 여전히 일터로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많다. 이런 세상에서 "안녕하세요, 한국의 노동자들!"이라는 인사말처럼... 정말, 모두가 안녕한 세상이었으면 좋겠다.<br>그럼에도 여전히 비정규직 문제는 심각하고, 이러한 비정규직조차 구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고, 좋지 않은 환경에서 목숨을 걸고 일을 하는 노동자들도 있으니, 이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여전히 안녕하지 못하다.<br>소년공 출신이 대통령이 되었고,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이 고용노동부 장관이 된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가려진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이 있고, 파업을 하는 순간 감옥에 갈 각오를 해야 하는 노동자들이 있다.<br>수많은 노동자들이 선진국이라는 화려한 이름 뒤에서 고통받고 있는데, 그들에게 법은 어떠한가? 약자를 위한 법이 아니라 강자를 위한 법 아닌가.<br>심지어 대형 로펌들이 변호하는 존재는 강한 자, 있는 자이고, 그들은 절대로 노동자들을 대변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법에 호소하는 순간, 노동자들은 대형 로펌, 즉 승소할 가능성이 많은 대형 로펌의 변호를 받지 못하고, 자원봉사를 하거나 공익을 추구하는 변호사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nbsp;<br>대형 로펌에 변호를 의뢰할 돈을 마련하기 힘들기 때문이기도 한데... 반면 기업은 이러한 대형 로펌에 의뢰할 자금이 있으니... 노동관련 소송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에서처럼 다윗이 이기면 좋겠지만, 많은 경우는 골리앗이 이기는 현실이다.<br>물론 능력 면에서 공익변호사들이 대형 로펌에 뒤떨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더 열심히 노동자들을 대변하고, 그들을 위해서 시간과 노력, 그리고 자신들의 능력까지도 기꺼이 내놓는다. 오히려 이들이 더 능력이 있고, 더 많은 노력을 하며, 열정을 가지고 재판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br>그럼에도 고질적인 한국 사회의 문제인 학연, 지연에 전관예우라는(법으로 전관예우를 금지한다고 하지만, 전관예우라 하지 않아도 암묵적으로 예우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대형 로펌에는 고위직 법조인들이, 또는 관련자들-대기업 임원, 장-차관, 유명 경제학자(경제관료), 경찰 간부 등등이 소속되어 있는 것이다) 것 때문에 이들의 노력이 정당한 결과를 낳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br>그럼에도 이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한국의 노동자들을 위해서. 그들의 안녕을 위해서 기꺼이 시간과 재능, 노력을 내놓는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이들이 있어 안녕하지 못한 노동자들이 안녕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것이다.<br>그런 노동자들을 위한 변호사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 이 책이다. 총 11개의 노동자가 관련된 사건이 수록되어 있는데, 읽으면서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한다. 어떤 노동자들의 사건인지 보면, 아파트 경비노동자, 핸드폰 판매노동자, 방송국 비정규직 PD, 국가정보원 전산사식 분야 여성노동자, 택시기사, 파견노동자, 현장실습생, 골프장 캐디,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형사 사건, 노동자 손해가압류 사건 등이다.&nbsp;<br>이렇게 약자를 더욱 힘들게 하는 존재들이 있음을, 때로는 법이 이러한 약자들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음이 나타나 있는데, 이 책에서 다룬 사건들 중에서 노동자들 편이 승리한 경우도 있지만 재판에서 진 경우, 또는 재판을 포기한 경우도 나오고 있다.<br>재판, 쉽게 말하면 정의를 추구하는 이 과정이 노동자들에게는 또 다른 고통이 될 수도 있다. 돈도 돈이지만 엄청나게 길어지는 재판 기간으로 인해 생업에 지장을 받기도 하기 때문이다. 먹고살 문제 앞에서 재판까지 가기는 많이 힘들다.<br>이 책의 저자처럼 무료 변론을 해주겠다고 해도, 재판은 노동자에게 가고 싶지 않은 길이다. 거기서 진이 다 빠져버리기도 하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이렇게 힘든 과정을 인지하면서도 재판까지 가는 이유는, 노동자 자신의 안녕만이 아니라 노동자들 모두의 안녕을 바라기 때문이다.<br>자신만의 싸움이 아니라 모두의 싸움이 되고, 그 과정과 결과가 다른 노동자들에게도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힘들지만 재판까지 가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다. 이 과정에 함께하는 변호사. 소중한 존재다.<br>이 책을 통해서 그러한 변호사가 비단 이 책의 저자인 윤지영 변호사만이 아니라 많이 있음을, 윤지영 변호사가 이 책을 통해서 그러한 변호사들의 이름을 계속 언급하는 이유도 노동자를 위한 변호가 자신만의 일이 아니라 법을 통해 살아가는 변호사들의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기 때문인지도 모른다.<br>또한 노동자들이 승리한 재판 역시 자신의 혼자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변호사-노무사-노동자-언론-그리고 노동자를 지지하고 도와주는 많은 사람들의 힘으로 된 것이라는 점을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br>하여 이 책을 읽으며 법조인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한다. 법(法)이라는 한자어가 물이 간다는 말이 합쳐진 말이라면, 물의 흐름처럼 자연스러운 것, 그러한 자연스러움이 곧 법의 정의라는 것을 의미할 텐데...<br>그렇다면 법조인은 이렇게 물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돕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즉 물의 흐름을 막는 것들을 치우는 존재, 그런 존재가 바로 법조인이어야 하는데, 과연 지금까지 우리나라 법조인은 그런 존재였던가?<br>어쩌면 지금까지의 법조인은 (윤지영 변호사와 같은 사람에게는 미안한 말이고 이들은 예외라 할 수 있지만, 대체로 대형 로펌을 비롯해, 정치 검사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 그리고 약자가 아니라 강자의 편에서 판결을 하는 판사들을 주로 지칭한다) 물의 흐름을 오히려 방해하거나 막는 존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br>이 책에 나오는 검사들의 모습, 또 재판장의 모습 속에서 그러한 존재들을 발견하고는, 물의 흐름을 막는 이러한 법조인들이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 법조 개혁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됐는데...<br>여전히 한국의 노동자들이 안녕하지 못한 현실, 대통령부터 장관까지 노동자였던 사람들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지금 이 시대, 이제 사람이 아니라 사회분위기로 또 제도로 노동자들이 안녕할 수 있는 우리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 점을 잘 보여주고 있는 이 책이다.<br>저자의 이 말이 실현되는 한국이라면 정말 노동자들이 안녕한 세상이지 싶다.<br>'노동하는 사람이 존중받는 세상, 비정규직이라고 차별받지 않는 세상, 일하다 죽음에 내몰리지 않는 세상, 헌법에 있는 권리를 누구나 누리는 세상, 그런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285쪽)]]></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893/19/cover150/k36203798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8931977</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과 나 그리고 책</category><title>장승리 시집 -무표정 속 감춰진 수많은 표정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84048</link><pubDate>Fri, 10 Jul 2026 11: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84048</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38287&TPaperId=1738404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6770/18/coveroff/8932038287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nbsp; '전속력으로 당신이 서 있다'('시인의 말')<br><br>&nbsp; 움직임과 멈춤이 한 문장 안에 있다. 서로 용납할 수 없는 말들이 서로에게 기대어 있는 모습. 이 말이 안 되는 문장이 말로서 우리에게 다가온다.<br>&nbsp; 도대체 무슨 뜻이지? 전속력으로라는 말은 속도를 지니고 있는데, 서 있다는 멈춤으로 다가가다니...<br>&nbsp;이 문장에서 '전속력'과 '서 있다'를 함께보면서, 어쩌면 서 있음 자체가 전속력으로 자신을 내몰고 있는 행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br>&nbsp; 내 앞에 서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려온 존재, 아니 서 있기 위해서 달려나가려는 몸을 전속력을 다해 반대편으로 끌어당기는, 그야말로 작용을 제어하는 반작용.<br>이러한 작용과 반작용. 대등한 힘으로 맞서는, 그래서 작용과 반작용의 힘이 같을 때 멈춤, 즉 정지 상태가 될 수밖에 없음을.<br>내 앞에 서 있는 당신은 그러한 존재다. 나 역시 당신에게 그러한 존재가 되려고 한다. 그것이 사랑일 것이고, 사랑하고 사랑받는 때에 사람들은 이러한 작용과 반작용의 힘이 같은, 하여 사랑에 멈춰있게 된다.<br>그렇다면 시인이 이런 말을 한 것은 무엇인가? 시인이 전속력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서 있을 때, 우리 역시 전속력으로 시에 다가와 서 있게 되면 이때서야 작용과 반작용이 대등해지고, '시' 앞에서 우리는 서 있게 된다.<br>단지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시와 함께하게 된다. 그렇게 시는 우리와 하나가 된다. 하지만 이러한 하나는 그냥 하나가 아니다. 여럿인 하나다.<br>하나로 보이겠지만, 서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서 있기 위해서 작용과 반작용이 끊임없이 균형을 이루듯이 시는 시 속에 수많은 여럿이 서 있는 상태.<br>그런 시를 읽는 일은 참, '전속력으로 당신이 서 있다'는 시인의 말에서 '당신'을 '시'로 바꾸면, 시에 담겨 있는 수많은 힘들, 움직임들을 의식하게 된다.<br>그럼에도 수많은 힘들, 움직임들이 시에 있기에 시는 멈춰 있지만 늘 움직이고 있다. 움직임을 멈추게 할 수만 있다면 시를 이해했다고 하겠는데, 시의 움직임에 휩쓸려 들어가고 만다. 이게 이 시집을 읽은 소감이다.<br>즉, 멈춰 있는 듯한 시에게 말려들어가 시 속 수많은 움직임에 휘둘리게 된 상태. 하... 참. 제목이 된 시 '무표정'에서 그랬다. 소용돌이에 말려들어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br>삶이라는 소용돌이와 시라는 소용돌이가 융합이 되어 더 큰 소용돌이를 만든 상태. 늘 다가오는 요일들, 날들... 하지만 그 날들은 결코 멈춰있지 않는다. 전속력으로 달려와 서 있지만, 그 속에는 다시 속도와 속도가 방향을 달리해 있을 뿐. 하여 멈춤으로 인식하는 날들이 결코 멈춤이 아님을.<br>무표정<br>&nbsp; 월요일이 비처럼 내리는 밤 일요일 밤 여관 같은 밤 화요일이 엿보는 밤 눈과 시선이 겉도는 밤 0과 1 사이에 세워진 정신병원을 세는 밤 그림자가 피의 성분으로 느껴지는 밤 따질 수 없는 밤 산 잠자리를 흙 속에 묻고 물을 주는 밤 눈물 대신 혓바닥을 삼키는 밤 훔친 메모지와 훔친 연필이 서로를 노려보는 밤 떠나는 기차 대신 떠나온 금요일을 응시하는 목요일 밤 버림받은 수요일 밤 수태되기 전날 밤 기억나지 않는 밤 구운 쥐가 밥상 위에 오른 밤 앙상한 토요일 밤의 이마를 관통한 총탄 자국 웃는 밤<br>장승리, 무표정, 문학과지성사. 2021년. 19쪽<br>분명 일월화수목금토라는 요일들인데... 이 요일들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아니 이 요일들은 전속력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서 있는데, 우리는 그렇게 다가온 날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었는지, 그냥 그렇게 왔군, 갔군 하면서 표정 없이, 아무런 생각 없이 받아들이고 보내지는 않았는지...<br>그래서는 안 된다는, 각 요일은 전속력으로 다가오고 또 다른 요일들에 의해 밀려나기도 하지만, 그 날들은 모두 우리의 삶 안에 있음을, 모두가 무표정이 아니라 표정을 지니고 있음을.<br>시 제목이 무표정인데, 무표정이야말로 수많은 표정들이 대등하게 모여 지닌 표정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 시인데... 수많은 날들이 무의미하게 그냥 흘러가지 않듯이, 무표정 역시 수많은 표정의 모여 있는 순간이라는... 우리는 그 무표정 속에서 표정들을 찾아야 함을, 이 시를 통해서 생각하게 됐다.<br>이러한 해석 역시 전속력으로 다가와 내 앞에 서 있는 당신인 '시'를 내가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이겠지만...<br>이 시를 통해 내가 만나는 사람들, 존재들, 아니면 내가 보내는 시간들, 날들 속에 있는 다양함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6770/18/cover150/893203828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67701828</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사람이야기</category><title>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는 농부 시인, 서정홍 - [희망은 끝내 사라지지 않고 - 땅에서 길어 올린 농부 시인의 사유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80129</link><pubDate>Wed, 08 Jul 2026 10: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8012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8802203&TPaperId=1738012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224/31/coveroff/896880220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8802203&TPaperId=1738012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희망은 끝내 사라지지 않고 - 땅에서 길어 올린 농부 시인의 사유들</a><br/>서정홍 지음 / 교육공동체벗 / 2025년 12월<br/></td></tr></table><br/>잘나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을 드러내려고도 하지 않는다. 돈을 많이 벌려고도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려 하지도 않는다. 자연을 함부로 대하지도 않는다. 겸허하게 자연에 따르며 이웃과 어울리며 살아가려 한다. 그런 사람들을 '농부'라고 한다.<br>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없는 듯 대우받는 존재도 농부다. 장래희망에 농부가 되겠다고 하는 학생도 거의 없고, 있어도 왜?라는 질문을 다시 받기 십상이다.<br>대기업에 다니거나, 법조인이 되거나, 의료인이 되거나 또는 정치인이 되면 사람들이 와, 출세했네 하지만 농부가 되어 농사를 짓는다고 하면 어쩌다? 안됐네 하는 듯한 눈길을 받게 된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농부는 중요하다고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직업 중 하나다.<br>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는 존재인데, 누군가 그랬다. 반도체 없어도 사람은 살 수 있지만, 식량이 없으면 살 수 없다고... 우리는 며칠 먹지 못하면 죽는다. 삶이 끝난다. 그렇게 삶을 유지시켜 주는 것이 바로 농사다. 그런데도 농사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있는 현실.<br>쉽게 이야기한다. 반도체를 비롯한 공산품을 팔아서 식량을 사오면 되지. 돈만 있으면 된다는 발상이다. 그렇지만 돈 주고 살 수 없을 때도 있다. 지금처럼 기후 위기를 넘어 기후 재앙으로 치달으면 전세계적으로 식량난이 올 수 있다.<br>자기 나라도 먹고 살기 힘들어지는데, 돈을 많이 준다고 식량을 수출할까? 그렇지 않다. 돈보다는 생존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갈수록 예측하기 힘들어지는, 또 심해지는 기후 재앙 앞에서 최소한의 먹을거리를 지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생존할 수 있다. 생존이 되어야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아닌가.<br>이 책에서도 기후 위기로 인해 씨앗을 뿌릴 시기를 가늠할 수 없거나, 또 심어놓은 작물들이 죽거나 병들어 안타까워 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그럼에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농사를 하는 모습을 통해 생명을 살리는 일을 포기하지 못하는 농부들을 보여주고 있다.&nbsp;<br>이렇게 우리를 생존하게 하는 존재, 농부다. 그런 농부는 그래서 어떤 직업보다도 중요하다. 이 중요한 농부, 미래세대에게는 아직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nbsp;<br>왜? 농촌이 살기 힘드니까. 대도시에서 누릴 수 있는 문화, 교육, 의료 등등이 없으니까. 서정홍 농부(시인)도 이렇게 말하고 있다.&nbsp;<br>'시골인 우리 마을은 작은 병원에 가려고 해도 버스를 타고 30-40분쯤 가야 하고, 조금 큰 병원에 가려면 1시간 넘게 가야만 한다.'(302쪽)<br>생명과 관계 있는 병원도, 병원이 아니더라도 기초적인 진단과 치료를 할 수 있는 곳이 농촌에는 없다고 봐야 한다. 치료 환경도 이런데, 교육이나 다른 문화 환경은 말할 것도 없다. 오죽하면 농촌에서 평생을 지낸 할머니들이 아이들을 보면 '귀한 거'라고 하겠는가.&nbsp;<br>이만큼 농촌은 급격하게 쇠퇴하고 있다. 아이들만이 아니라 청년들도 떠나고 있으니, 서정홍 농부(시인)가 60대인데도 청년에 들어가게 되니, 더 말할 것도 없다.&nbsp;<br>농촌이 이렇게 사라져가면 결국 우리 생존에도 위협이 된다. 아무리 '스마트 팜'이니 과학기술로 생산성을 향상시키니 뭐니 해도, (대량으로 생산하는 대농은 이야기하지 않으련다. 대농은 사람을 살리는 일보다는 이윤을 남기는 일에 더 관심이 많으니...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맞지 않는다), 농사지어서 사람을 살리는 사람들이 사라지면 우리 생존도 보장할 수 없다.<br>소품종 대량생산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가야 하는 것, 이 책에서 고추를 심더라도 한 밭에 몰아 심지 않고 여러 곳에 나눠 심는 이유도 또 한 밭에 하나의 작물만 심지 않고 다양한 작물을 심는 것도 땅도 살리고 다른 생명체들도 살리고, 결국은 사람을 살리게 되기 때문이다.<br>그러니 이 책에서 '마을 어르신이 말씀하시길, 농부 한 사람 살리려면 백 사람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고 한다'(211쪽)는 말 잊어서는 안 된다. 내 식탁에 오른 농산물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농산물이 내 식탁에 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누구의 땀과 시간이 들어가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br>도시에서 소비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식량에 관심을 가진다면, 자연스레 농부(농업, 어업, 축산업 등등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대표하는 말로 쓰자)들에게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또한 이렇게 관심을 가지면&nbsp;농부들이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지, 내 식탁에 오른 음식들에 농부들의 사랑이 담겨 있는지를 생각할 수밖에 없으니&nbsp;농산물을 함부로 대할 수 없다. 음식물 쓰레기를 아마도 최소한으로 배출하게 되고, 또 돈으로만 사는 물건이 아님도 생각하게 될 것이다.<br>그런 내용들, 농사를 지으며 자연과 더불어 살며,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는 농부, 시인 서정홍의 글이 모인 이 책.<br>이런 농부의 삶을 통해 배운 점을 다섯 가지로 정리해 놓고 있다.&nbsp;<br>'저는 농부가 되고 나서 스스로 깨달은 게 참 많습니다. 첫 번째 깨달음은, 내 몸에서 '사람 냄새'가 난다는 것입니다. 땀 냄새가 바로 사람 냄새라는 걸 ~ 두 번째 깨달음은, 들녘에서 농사일을 할 때는 쓸데없는 욕심과 잡념이 모두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깨달음은, 직업 가운데 농부들이 죽음을 가장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 깨달음은, 사람은 돈과 권력과 명예 따위에 기대어 사는 게 아니라 밥 한 숟가락에 기대어 산다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깨달음은, 따라 살고 싶은 스승은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아주 가까이 있다는 것입니다.' (57-58쪽)<br>읽으면서 따스함이 온몸으로, 온마음으로 스며든다. 그러면서 주변을 다시 한번 살펴보게 된다. 단지 식량만이 아니라 내 주변의 모든 존재에 이렇게 다른 존재들의 땀과 시간, 사랑이 들어 있음을...<br>그러다, 그냥 웃을 수만은 없는 농촌 아이의 이 말... 부끄럽다.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삶을 돌아봐야 한다.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듣지 않도록.<br>"선생님, 똑똑한 어른들한테 배울 게 딱 한 가지 있어요.""한 가지라? 모시 궁금하네요.""저리 살아서는 안 된다는 거요. 따라 살고 싶은 삶은 눈곱만치도 없는데, 입으로만 우릴 가르치잖아요. 초등학교에 다니는 우리 동생도 다 알아요. 우리 미래를 어른들한테 맡겨서는 안 된다고요." (251쪽)<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224/31/cover150/896880220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2243138</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여러이야기</category><title>다른 방향을 향한 삶을 사는 사람 - [이향인 - 세상 밖에서 세상의 중심이 되는 사람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78272</link><pubDate>Tue, 07 Jul 2026 10: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7827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92137262&TPaperId=1737827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93/3/coveroff/k29213726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92137262&TPaperId=1737827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이향인 - 세상 밖에서 세상의 중심이 되는 사람들</a><br/>라미 카민스키 지음, 최지숙 옮김 / 21세기북스 / 2026년 03월<br/></td></tr></table><br/>내향인, 외향인이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이향인'이라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런 용어가 있다니... 그것도 심리학에서 쓰고 있었으니, 사람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누고, 그렇게 알고 있었던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알려주는 책이다.<br>이향인, 영어로 'OTROVERT'라고 하는데, 이 말의 기원은 스페인어란다. 이 책의 저자가 만든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br>'우리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근본 요소는 '남들과 다른 방향'이다. 그렇게 해서 나는 '이향인otrovert'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스페인어에서 'otro'는 '다른'을, 'vert'는 방향을 뜻한다. 말 그대로 'otrovert'는 '다른 방향을 향하는 사람'을 의미한다'(18쪽)<br>'다른 방향'이라고? 어떤 방향의 차이지? 책에 쉽게 설명이 되어 있다. 보통 우리는 사람들을 내향인, 외향인으로 분류를 하지만, 이들이 지닌 공통점은 공동체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즉 이들의 방향은 공동체(집단)에 들어가 있든, 들어가 있지 않든 모두 공동체를 향한다는 것. 즉 소속을 지니려는 성향. 집단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br>그러나 '이향인'은 다르다. 이들은 얼핏 공동체에 속하고, 또 공동체 내에서도 중요한 위치에 있기도 하지만, 이들이 향하는 방향은 공동체 내부가 아니라 공동체 밖이라고 한다. 이들은 집단에 속해 있어도, 집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도 늘 개인적인 삶을 추구한다고, 그래서 집단 속에서 외로움과 고통을 느끼는 존재라고 한다.<br>이런 이향인의 핵심 특성은 무엇일까? 저자는 '공동체 지향성이 결여되어 있'(37쪽)고, '언제나 관찰자일 뿐, 진정한 참여자가 되지 못한'(38쪽)다고 하고 있으며, '관행을 따르지 않고'(39쪽), '독립적이고 창의적으로 생각한다'(41쪽)고 한다.<br>자, 이들의 특성을 보라. 현대인에게 요구되는 덕목 아닌가. 독립적이고 창의적인 생각, 그리고 관행을 따르지 않는 자세, 여기에 공동체 지향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직장을 잘 살펴보라.<br>이들은 같은 직장에서 일하지만 우리가 공동체라고 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즉 일로 맺어진 관계이고, 효율적으로 작업을 하기 위해 같은 장소에 모여 일을 하는 관계라 할 수 있다. 그나마도 요즘은 재택 근무라고 해서 개인적으로 일을 하는 경우가 많으니, 공동체 지향성이 떨어진다고 해서 직장 생활을 못한다는 말은 아니다.<br>이런 이향인들, 이들을 잘못 이해하게 되면 그들을 질병을 앓는 사람, 또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고 오해하게 된다. 저자가 의사로서 만나본 많은 이향인들이 이렇게 잘못된 진단과 처방으로 더 오랫동안 고통을 받아왔다고도 하니...<br>'이향인'이라는 특성을 알게 되면 사람을 어느 한 부류에 집어넣고 판단하는 일을 삼가게 된다. 자신과 전혀 다른 성향을 지닌 사람도 있고, 그들의 성향에 좋고 나쁨, 또는 옳고 그름을 대입하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그래서 다른 존재들과 관계맺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의 일임을 생각하게 된다.<br>이향인이라고 해서 공동체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들은 공동체보다는 자신을 더욱 중시할 뿐이다. 이들도 역시 보편적인 규칙들은 존중하고 지키려 한다. 저자는 '이향인은 대체로 보편적 원칙은 이해하는 편이다. 하지만 지역적 원칙을 파악하는 데는 자주 어려움을 겪으며 그런 이유로 종종 여러 난관에 부딪히곤 한다'(119쪽)고 한다.<br>이들은 자신이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특수한 상황에서 어떤 원칙이 적용되는가를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종종 그들을 예측 불가능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바로 '예측 가능성은 사회적 통합을 돕고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생길 수 있는 긴장을 완화시키는 장치'(120쪽)라고 하니 이런 점에서 이향인들이 오해를 사곤 하는 것이다.<br>하지만 이향인이라는 존재를 알게 되면 이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들은 성향이 다를 뿐이다. 그리고 이향인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읽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잘 공감한다고 한다. 이러한 공감 능력은 공동체 지향성을 떠나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진솔하고 깊은 관계를 맺게 한다. 이향인이라는 다른 성향의 인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만 한다면...<br>왜 공동체 지향성이 없음에도 공감 능력이 뛰어날까? 그것은 '정서적 자급자족은 행복과 성공을 위한 필수 조건'(243쪽)인데, '이향인은... 본능적으로 배려를 택한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있어도, 이향인은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개별적 존재로 보기 때문'(245쪽)에 이향인은 자신의 정서가 충만하고 사람을 집단의 일부가 아닌 개인 전체로 보기에 다른 이들에 대한 공감 능력이 뛰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br>이런 이향인들...아마 우리가 의식하지 못해서 그렇지 우리 주변에 많을 것이다. 그들을 "이상하네."라고 여기지 않고, 아, 이런 성향을 지닌 사람이었구나 하게 하는 것, 그것은 바로 '이향인'이라는 존재를 인정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nbsp;<br>그렇게 된다면 이런 사람에게는 어떤 환경이 좋을지, 또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지 고민하고, 다름을 인정한 상태에서 함께 지낼 수 있게 될 것이다.<br>이 책의 끝부분에 '이향인 테스트'가 실려 있는데, 한번 해보는 것도 좋겠다. 물론 사람을 내향인, 외향인 또는 이향인으로 딱부러지게 구분할 수는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br>우리 모두는 이러한 특성들을 조금씩은 다 지니고 있을 테니. 다만 그 중 어떤 특성이 더 강하게 나타나기는 하겠지만.<br>결국 이 책은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우리 사회를 그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마, 부모나 교사들이 읽으면 아이들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93/3/cover150/k29213726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7930371</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사람이야기</category><title>살려고 하는 일이 살리는 일이 되는 사람들 - [생업(生業) - 그 징하고도 찡한 노동의 표정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76320</link><pubDate>Mon, 06 Jul 2026 09: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7632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52138163&TPaperId=1737632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70/11/coveroff/k55213816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52138163&TPaperId=1737632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생업(生業) - 그 징하고도 찡한 노동의 표정들</a><br/>은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05월<br/></td></tr></table><br/>책을 내면 꼭 읽어야지 하는 작가가 있다. 그간 읽어온 책들에서 작가에 대한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믿고 좋아하는 작가가 생기면, 내 저금통에 돈이 쌓인 것 만큼 기쁘다. 내가 넉넉해진 것 같은 느낌.<br>언제든지 꺼내 쓸 수 있는 저금통에는 비록 큰 돈은 아니지만 돈이 필요할 때 쓸 수 있는 돈을 모아놓는다. 그리고 그 돈은 쓰지 않아도 나를 든든하게 해준다. 언제든 내가 필요할 때 쓸 수 있으니까.&nbsp;<br>좋아하는 작가도 마찬가지다. 그 작가의 책을 읽지 않아도 언젠가는 읽겠지 하는 생각에, 언제든 읽을 수 있는 책이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하다. 즐거운 기다림 또는 기대를 늘 지니고 있게 되니까.<br>이 작가의 책이 나왔네. 읽어봐야지. 하는 마음. 이번엔 어떤 내용일까 하는 기대. 은유 작가의 이번 인터뷰집도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읽으면서 역시 할 수밖에 없었다.<br>'생업'<br>살기 위해서 하는 일. 그런데 '생업(生業)'이라는 말은 풍요로움과는 거리가 멀다는 느낌을 준다. 먹고살기 위해서 하는 일. 그래서 '생업'이라고 하면 힘듦과 어쩔 수 없음이라는 말이 함께 따라온다는 생각을 한다.<br>생업에 종사하다라는 말은 먹고살기 위해서 일을 하다라고 이해하고, 이때 방점을 일을 하다에 찍지 않고 먹고살기 위해에 찍는다. 그래서 생업이라는 말은 즐거움보다는 해야만 한다는 당위에, 힘듦과 함께한다고 여기게 된다.<br>어차피 삶은 즐거움만으로 차 있지 않으니, 즐거움이 즐거움으로 느껴지기 위해서는 힘듦, 싫음도 있어야 하니까,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하기에 다른 것에서 즐거움을 찾기도 한다.<br>하지만 이 책에 나온 사람들, 생업은 단순히 먹고살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들에게 생업은 먹고살기 위한 일을 넘어서고 있다. 자신의 삶을 살리는 일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도 살리는 일, 그것이 바로 그들의 생업이다.<br>그리고 그러한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찾아 우리에게 알려주는 일을 한 사람이 바로 은유 작가다.<br>은유 작가가 다른 사람들의 말을 우리에게 전달해주고 있다면, 이 책의 끝부분에는 그러한 은유 작가에 대해서 알려주는 글이 실려 있다. 그 중에 '책이 쌓일수록 은유는 그간 만난 사람과 써논 들을 배신하지 않는 게 너무 중요해졌다'(301쪽)는 말과 '삶이 먼저고 쓰기는 그다음이다. 세상과 부딪쳐야 느끼고 배우는 게 있고, 쓸 것도 있다. '산다'가 앞에 있어야 해요.'(302쪽)는 말, 그리고 '사람들의 품이 넓어지는 글, 세상이 나아지는 데 기여하는 글인가가 기준이에요'(303쪽)라는 은유 작가의 말이 마음에 다가온다.<br>맨 앞의 문장은 언행일치나 지행일치라고 해야 할까, 자신이 만난 사람들의 삶을 배신하지 않는, 그들과 함께한 글을 배신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결심, 또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두 번째 문장처럼 본인 역시 세상과 부딪치지만, 세상과 부딪치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 하는 일, 그것이 바로 쓰기라는 것, '쓰기'가 '삶'이 되게 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nbsp;<br>이런 자세를 지닌 작가, 당연히 그의 글은 사람들의 품이 넓어지게 하고, 세상이 나아지는 데 기여하는 글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런 글을 읽으면 우리들의 마음의 문도 어느 정도 열리고, 통도 조금씩 조금씩 커지게 된다. 또 그건 내 일이 아니야 라는 생각이 옅어지게 된다.<br>이런 은유 작가의 마음이 이 책에도 오롯이 드러나 있다고 할 수 있다. 쉽게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이 책에서 들을 수 있기 때문인데, 그들이 자신들의 생업을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세상을 위해서 하는 일로 여기고 또 그렇게 하는 모습이 너무도 잘 나타나 있는 책이다.<br>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나오는데, '6411의 목소리'라고 해도 좋다. 자기 소리를 내는 사람이 사회의 주체로 설 수 있는데,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그렇게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 사회가 좋아지는데 한몫을 하는 당당한 주체라는 생각이 든다.<br>다른 많은 사람들, 소위 '그림자 노동'이라고 드러나지 않지만 사회를 이루는데 필수적인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들의 소중함, 그리고 그들이 일을 통해서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 모습들, 또 일만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통해서 다른 사람을 살리는 모습을 이 책에 나온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다.<br>하여 이들의 '생업'은 힘든 일이지만, 이들의 힘듦은 곧 다른 사람들의 행복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들의 일을 받아들이고 또 당당하게 하려 한다. 그 일에 진심으로 다가가고, 그 일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한다.<br>그러니 그들에게 '생업'은 먹고살기 위해서 하는 일을 넘어선 일이고, 힘듦보다는 보람을 느끼는 일이 된다.<br>이 책에서 다룬 인물들을 모두 언급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조금만 신경을 쓰면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일을 하는 분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가 좋아지고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br>몇몇 분들을 언급하면 (이름은 생략하고, 그들이 하는 일, 소위 생업을 이야기하면) 급식노동자, 청년 농부, 우리밥연대 요리사, 배달노동자, 독립 연구 활동가, 산업재해 노동자 부인, 싱어송 라이터, 타투이스트, 요양보호사, 청소노동자 등등이다.&nbsp;<br>모두들, 자신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 그런 모습이 '징하고도 찡한 노동의 표정들'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책을 읽고 주변을 살펴보자. 이렇게 '생업'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 그들은 자신만의 삶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을 위해서 살고 있음을 생각하면서.&nbsp;그런 우리도 바로 우리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 잊지 말고.]]></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70/11/cover150/k55213816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701106</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과 나 그리고 책</category><title>양선희 시집-내 생을 살고 난 다음 다른 생을 위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71310</link><pubDate>Fri, 03 Jul 2026 10:1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71310</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90165&TPaperId=1737131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034/0/coveroff/8954690165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nbsp;&nbsp; 한 사람의 삶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살아 있을 때 좋은 평가를 받는 사람도 있지만, 그가 떠났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그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리워하는 사람도 있다.<br>&nbsp; 삶을 어떻게 살았는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br>&nbsp;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다른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하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물론 떠난 사람이야 알 수 없겠지만...<br>&nbsp; 그렇게 자신의 삶을 잘 산 사람은 떠나도 다른 존재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친다.&nbsp;<br>&nbsp; 살아 있을 때 인정을 받는다는 것, 칭송을 받는다는 것과 다른 개념. 물론 살아 있을 때 인정받고 칭송받으면 좋다. 자신의 행동을 인정받는다는 것, 그것이 어찌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br>그런데 그렇게 인정을 위한 삶만을 산다면, 과연 그것이 잘산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br>참숯. 하나의 삶을 살고 이제 다른 삶을 사는 존재다. 자신을 불태웠는데, 그냥 사라지지 않고 다른 존재들에게 좋은 것을 남겨준다. 그렇게 참숯은 삶과 삶 이후의 삶도 의미가 있다.<br>떠난 자리가 아름다운 사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남을 위해 사는 사람. 그런 사람이 참숯과 같은 사람이겠지.<br>타지 않으려 버티지 않고, 또 이왕 타버렸으니 그냥 재가 되어 사라져야지 하지 않고, 드러나지 않게 남 뒤에서 그를 위해서 무언가를 하는 존재. 그런 삶.&nbsp;<br>어떻게 살아야 이런 참숯과 같은 존재가 될까? 좋은 사회는 이런 참숯과 같은 존재들이 많은 사회일텐데...&nbsp;<br>내 삶을 돌아보게 하는 시다. 양선희의 '참숯'<br>참숯<br><br>&nbsp; 누가 참숯을 한 가마 보내왔네. 쌀통에 두면 벌레를 막고, 옷장에 두면 습기를 먹고, 냉장고나 화장실에 두면 악취를 제거하고, 거실에 두면 공기를 정화하고, 장독에 넣으면 장맛이 좋아지고, 배개에 넣으면 머리가 맑아지고, 곱게 갈아 물에 타 먹으면 속병이 씻길 거라며, 참이지 못한 것을 속속 흡수하는 놀라운 색을 얻은 참숯을 보내왔네.<br>&nbsp; 나도 생을 잘 불태우면&nbsp; 한번 더 타오를 수 있는&nbsp; 불씨를 얻을 수 있을까.<br>양선희, 그 인연에 울다. 문학동네. 2023년 2판 1쇄. 15쪽.<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034/0/cover150/895469016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0340093</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소설, 2026년 한국을 말하다 - [재미까지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만 - 월급사실주의 2026]</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69503</link><pubDate>Thu, 02 Jul 2026 10: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6950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32138787&TPaperId=1736950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97/69/coveroff/k23213878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32138787&TPaperId=1736950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재미까지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만 - 월급사실주의 2026</a><br/>강보라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05월<br/></td></tr></table><br/>'월급사실주의' 네 번째 소설집.&nbsp;<br>2023년부터 시작해서 해마다 나오고 있다.&nbsp;작가들의 이런 작업을 통해 우리 사회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nbsp;내가 직접 겪는 일이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에 이런 일들이 있구나,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못한 일들을 소설 속 인물들을 통해서 경험하게 된다.&nbsp;그러면서 우리 사회에서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를 생각하게 된다.<br>총 8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그 중에 이태승이 쓴 '빈칸 채우기'는 공모에 당선된 작품이라고 한다. 빈칸 채우기. 소설의 처음에 이 빈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온다. 공공기관에서 연구(정책)보고서를 내는데, 그 연구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서명이 있어야 하는데, 3년이 지나서 감사가 나온다고 하니, 그 빈칸이 문제가 된다.<br>생각해보자. 공공기관, 정부부처라고 할 수 있다. 이 부처에서 공무원이 학자 및 전문가, 관련자들을 모아 정책 연구를 한다. 그리고 결과물을 보고서로 낸다. 당연히 보고서에는 참여자들의 서명이 있어야 한다. 적어도 자신들이 그 연구에 책임을 져야 하니까. 그 표시가 바로 내가 했다는 서명이니까.<br>그런데 3년이 지나도록, 감사가 없다면 서명이 없었는지도 모르고 지나갔을 것이다. 감사를 코 앞에 둔 시점, 징계를 받아도 큰 징계는 받지 않을 거라지만, 하필이면 승진 심사를 앞두고 있다. 책 잡힐 일이 생기면 승진에 문제가 된다.<br>어떻게 하겠는가? 빈칸을 채워야 한다. 이제 참여자들을 찾아가 3년 전 보고서에 서명을 받아야 한다. 그 3년, 연구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소설은 그 점을 살펴보게 한다. 그들은 연구보고서에 과연 진심이었을까?&nbsp;<br>읽어보면 안다. 진심? 글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참여했을 가능성이 많다. 그러니 서명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연구를 추진했던 공무원은? 마찬가지다. 그 역시 보여주기식 업무를 했을 뿐이다. 서명을 받지 않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한데,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소설 속 상황을 마냥 소설이겠지 하고 넘기기엔 무언가 씁쓸하다.<br>이런 표현 '서명 누락이 감사에서 단골로 지적받는 사안이라는 건, 그만큼 흔한 행정 실수라는 뜻이었다.'(이태승, '빈칸 채우기'에서. 264쪽)<br>흔한 행정 실수. 아니 행정 실수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보여주어야 하는 요식 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여 보고서는 의미가 없다. 정책연구 용역보고서. 좋은 말만 짜깁기 되어 있는, 그럴싸한 방안들이 제시되어 있지만, 이는 계속 반복되어 말만 바꾸어 제안된 내용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굳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책임감도 없고, 서명이 중요할 리 없다.<br>용역비만 받으면 그만이고, 보고서만 내면 그만인 상황. 그런 상황이 공무원 사회에 만연한다면 사회는 그럭저럭 유지는 되겠지만, 이것을 우리는 관료화라고 한다, 변화는 힘들다.<br>변화가 얼마나 힘든지, 연구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3년 뒤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에게서 정말로 그들이 연구하고 제안한 정책들이 실현되었는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래, 이런 모습을 그냥 소설 속 상황이라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br>그런데, 이 책의 기획 의도가 한국사회의 모습을 담는 것이다. 사실적으로! 그렇다면 이는 전부 다는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관료 사회가 보이고 있는 모습 중의 일부일 수 있다는 말이다. 일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 일부가 별것이 된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보고서만 화려하고 실질적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렇게 시간과 돈을 쓰고, 참여자에게는 스펙만 쌓게 하는 현실.<br>이젠 이런 모습을 관료 사회가 떨쳐내야겠지. 떨쳐내기 위해서 또 연구 용역을 주고, 보고서를 내는 일을 반복하지 않겠지. 그렇다면 보고서 천국으로, 서류 상으로는 너무도 훌륭한 사회가 되어 있을 테니.<br>이 소설에 나오는 구절이 소설집의 제목이 되었다. 밀린 서명을 받으러 가는데 운전을 해주는 소위 금수저라 할 수 있는 후배 사무관이 하는 말.<br>'월급을 받으면서 재미까지 바라는 건 욕심이라고 생각해요.'(이태승, '빈칸 채우기'에서. 279쪽)<br>무슨 소리? '워라벨'을 주장하는 이 시대에 이런 생각을 지니고 있다니...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사무관이다.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면, 다른 사람들은 '많이 일하고 적게 버는 노동을 당연한 듯 평생 해온 사람들'(성혜령, '퇴직금 돌려받기'에서. 154쪽)이 될 수밖에 없다.<br>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일해야 하는 사람들, 노동환경의 개선을 요구하기보다는 아무 소리 없이 시키는 대로 일을 해야만 생계가 유지되는 사람들. 이런 노동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워라벨'은 바로 사무관이 하는 말처럼 그들의 삶에 다가올 수가 없게 된다.<br>그래서는 안 되는데...그들에게는 자신들이 재미있게,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노동환경을 만들어야 하는데... 적어도 그들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는 지불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도 하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을 위해 '노무사'라는 직업도 있는데... 그를 다루고 있는 소설이 강보라가 쓴 '우리의 투어'라는 소설이다.<br>여기서 함께 두면 물어뜯고 싸우는 물고기가 나오는데, 반대로 함께 한 방향을 보며 나아가는 물고기도 있음을. 노동자들을 서로 싸우게 하는 사람들에 맞서 노동자들이 함께 나아가야 함을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노무사'여야 함에도 정작 '노무사' 사회에서도 그렇지 못함을 이 소설에서 신참이라고 할 수 있는 송엄지라는 노무사의 발을 통해 보여주고 있으니, 정말, '워라벨' 힘들다.<br>그럼에도 '노란빛의 작은 물고기 이모티콘 네 개가 연달아 찍혀 있었다. 나는 한 방향으로 나란히 놓인 그 독립된 개체들을...'(강보라, '우리의 투어' 중에서. 54쪽)이라는 표현처럼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 그렇기에 이렇게 작가들이 '월급사실주의'라는 이름으로 각자 작품을 발표하는 것이리라.<br>이밖에 실린 다른 소설들에서도 우리 사회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고, 이런 저런 우리 사회가 지닌문제들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이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들이 이렇게 정리되어 있으니 표를 참조하면 된다.&nbsp;<br>무엇보다 직접 이 소설을 읽으면서 2026년 한국 사회의 현실을 생각해보는 것이 더 좋겠고.<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97/69/cover150/k23213878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976963</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이야기</category><title>‘존엄사‘와 함께 말해져야 할 것들 - [깨끗한 죽음이라는 환상 - 고통 없이, 내 뜻대로, 존엄하게 죽는 일은 가능한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67673</link><pubDate>Wed, 01 Jul 2026 10: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6767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72139669&TPaperId=1736767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70/42/coveroff/k07213966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72139669&TPaperId=1736767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깨끗한 죽음이라는 환상 - 고통 없이, 내 뜻대로, 존엄하게 죽는 일은 가능한가</a><br/>박혜윤.신성준.최은경 지음 / 아몬드 / 2026년 05월<br/></td></tr></table><br/>우리나라도 '존엄사'에 관한 법이 국회에 상정되었다가 폐기되었다고 한다. 존엄사를 법으로 규정한 나라들도 있는데, 우리는 이제 '연명치료중단'에 관한 법만 있을 뿐이다.<br>이 '연명치료중단'도 임종기에 들어선 사람에게만 해당한다는 것, 즉 임종이 임박하지 않다면 어떠한 연명치료도 불법이라는 것이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이다.&nbsp;<br>하여 '연명치료 거부 사전의향서'를 작성했더라도 많은 경우에는 이러한 환자의 뜻이 받아들여질 수 없는 구조다. 이 점을 최근에 알고, 설마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아, 이것이 확실하구나 하게 되었으니...<br>이런 상태에서 '존엄사'에 대한 법이 통과되기는 힘들 것이란 생각이 들지만, 이제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우리나라도 죽음에 대해서, 아니 죽음 앞에 겪게 되는 고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br>이 책에 이런 표현이 나온다.&nbsp;<br>'많은 사람들은 ~ 자신의 말기가 '쓸데없이 병원에서 고생하며 비용을 소모하고, 가족에게 부담을 지우고, 고통 속에 낯선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는 과정'이 되지 않을까를 두려워한다.'(48쪽)고.<br>왜 그러냐 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을 보면 '2024년 기대수명은 83.7세, 건강은 65.5세로, 평균적으로 약 18년을 아픈 상태로 살다가 사망하게 된다'(99쪽)고 하니.<br>나도 그렇다. 나이 들어가면서 이렇게 내 삶을 마감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두려운 일이다. 돈은 돈대로 쓰고 가족에게 부담은 부담대로 지우면서도 고통은 고통대로 받으며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 상태로 지내는 것.<br>과연 이렇게 자신의 삶을 끝내야 하는가? 삶과 죽음을 떼어놓을 수 없다고 하는데, 아직까지는 죽음을 누구도 피할 수 없다고 하는데, 끝은 분명히 있는데, 그 끝이 명확히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끝이 올 때까지 어떤 방법을 이용해서라도 버티게 하는 것이 (아니, 연명치료를 거부하면 끝이 명확히 보이면 자신이 결정할 수도 있지만, 이런 임종 시기가 아니더라도 끝을 인식할 때가 있으니) 과연 그 사람을 위한 일일까?<br>'존엄사' (그냥 이 용어를 쓰기로 한다. 안락사라는 말보다는, 또 이 책의 저자들이 쓰고 있는 '의사조력임종'이라는 말보다는 쉽게 다가오니까)를 법으로 인정하고 있는 나라들은 그래서 인간의 자기결정권과 고통에 대한 연민, 그리고 존엄을 '조력임종의 조건'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br>그냥 삶이 힘들기 때문에 죽어야겠다가 아니라, 삶과 죽음에 대한 명확한 자기 인식에 바탕한 결정과 그 고통을 더 이상 완화하기 힘들고 다른 치료방법이 없을 때, 삶의 존엄이 훼손되기 쉽다고 판단되어 그 사람의 존엄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선택하는 것이 '존엄사'라는 것.<br>그래서 엄격한 과정이 요구되고 있는데, 주로 명확한 자기 의사 표명과 결정을 숙고할 수 있는 기간,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동의와 다른 의사 두 명 이상의 소견 등을 필수적으로 하고 있다.<br>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안 된다. 이 책의 저자들은 '존엄사'가 법으로 인정이 되었을 때 사회적 약자들이 죽음으로 내몰릴 수 있는 위험을 우려하고 있다. 사회적 압력으로 본의 아니게 죽음을 선택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사회적 약자에게 발생할 수 있다는 것.<br>비용이나 가족에게 지워진 부담 등으로 '존엄사'가 법으로 존재할 때 사회적 약자와 같은 누군가에게는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존엄사'만 남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br>이렇게 되면 '존엄사 법'은 사회적 약자에게 죽음을 강요하는 암묵적 압력으로 작동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그러니 '존엄사'를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완화치료'와 같은 다른 치료 방법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br>고통을 줄이면서 죽음을 맞이하는 완화치료(우리는 흔히 호스피스라는 이름으로 이야기를 한다)는 '존엄사'와는 달리 생명을 유지하면서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환자의 고통을 최소화하는 방법인데, '존엄사 법'이 통과한 나라들에서는 이와 같은 '완화치료'가 병행하고 있다고 한다.<br>'완화치료' 제도가 정착되지 않고 '존엄사'로 넘어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하고, 그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하는 문제제기를 저자들이 하고 있는데...<br>'존엄사' 논의와 함께 '완화치료'와 '재택 임종'이 가능하도록 사회적 환경을 만드는 데 힘써야 한다는 저자들의 말에 동의한다.<br>이것이 선행되어야 또는 함께해야만 '고통 없이, 내 뜻대로, 존엄하게 죽는 일'이 어느 정도 가능해지지 않을까 한다.&nbsp;<br>'존엄사'가 법으로 인정되고 있는 네덜란드, 캐나다, 미국의 몇몇 주, 스위스와 존엄사는 인정하지 않지만 세계에서 처음으로 법원이 안락사가 허용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했다고 하는 일본, 또 죽음의 질이 좋은 대만에 대한 설명이 있어서 그 법이 도입되기까지의 과정과 취지, 그리고 실행과정에서 일어나는 문제점을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해주고 있다.<br>이런 논의를 통해서 저자들은 '존엄사 법'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삶과 죽음을 둘러싼 논의에서는 개인의 자율성뿐 아니라 가족 관계와 사회적 맥락, 그리고 돌봄 체계가 충분히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208쪽)고 하고 있다. 즉 사회적 약자들이 죽음으로 내몰리지 않게 하는 사회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다.<br>그럼 우리나라 의료 현실을 보자. 과연 돌봄 체계가 충분히 작동하고 있는지... 아니 우리는 치료 체계도 서울 중심으로 되어 있지 않나? 지방에서는 필요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 아닌가. 또한 돌봄을 가족이 부담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완화치료를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있는 곳이 없어서 받지 못하고, 또 대상자가 되지 못한다고 해서 받지 못하지 않나? 이런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아니 무엇이 먼저라고 할 수 없다. 함께 해결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것이 지금 우리 의료체계가 해결해야 할 문제다. (그런데 과연 의사단체나 복지부에서 이런 점에 대해서 어떤 의견을 내고 있는지 알 수가 없으니...)<br>참고로 우리나라 완화의료 대상은 암, 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 만성간부전, 만성호흡기부전 등 다섯 가지 질환으로 제한돼 있으며, 이들 역시 말기 진단 이후에야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79쪽)고 하니 갈 길이 멀다.<br>그러니 먼저 완화의료의 대상을 생명을 위협받는 질환을 앓는 환자라면 누구나, 병의 종류나 질환의 그시기와 관계없이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국제적 표준에 맞게 법을 개정해야 할 것이다. 다음 돌봄에 대해서 더 구체적인 정책을 만들어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의료복지제도를 정비해야 할 것이다.<br>다른 무엇보다도 우리가 '존엄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잘 살기 위해서다. 저자의 말처럼 '좋은 죽음은 좋은 삶 위에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좋은 삶은 혼자 만들 수 없다.'(250쪽) 이 말을 명심해야 한다.<br>용어 정리부터 하고 넘어가야 한다. 이 책의 저자들은 서두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br>'같은 행위를 무엇이라 부르는지는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다. 때로 명칭은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그 행위의 성격과 도덕적 의미를 규정하기 때문이다. '안락사'와 '연명의료 중단', '조력자살'과 '조력임종'은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서로 다른 윤리적 무게를 지닌다.'(25쪽)<br>그래서 이 책에선 '의사조력임종'을 주요 용어로 사용하기로 했다(6쪽)고 한다. 이 용어는 '환자가 스스로 요청하여 그에 동의한 경우, 환자를 죽게 하려는 의도로 의사가 치사량의 약물을 직접 투약하거나, 의사가 처방한 약물을 환자가 직접 복용하는 행위를 가리킨다.'(6쪽)고 하고 있다. 이 풀이에 따라 표에 나온 용어를 이해하면 될 것이다.<br>
 
  구분
  유형
  용어
  설명
 
 
  소극적 안락사
  연명의료 중단
  소극적
  안락사<br>
    연명의료 중단
  죽음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연명의료를 처음부터 시행하지 않거나(유보), 이미 시작한 치료를 멈추는(중단) 것. <br>
    죽음의 직접적 원인은 의료인의 행위가 아니라 기존 <br>
    질병에 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허용한다.&nbsp;
 
 
  적극적
  안락사
  자발적<br>
    (환자가 직접 <br>
    동의)
  자발적
  능동적<br>
    &nbsp;안락사
  환자의
  명확한 요청에 따라 의료인이 직접 치명적 <br>
    약물을 주입하는 등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br>
    '의료인 등 환자가 아닌 타인'이 죽음을 실행한다.
 
 
  의사조력 자살
  환자의
  요청에 따라 의료인이 치명적 약물이나 도구를 <br>
    처방하거나, 처방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 <br>
    죽음을 실행하는 주체는 '환자' 본인이다.
 
 
  비자발적<br>
    (의사결정 능력 없는 경우)
  비자발적
  <br>
    능동적 안락사
  아동이나
  알츠하이머 환자처럼 의사결정능력이 없어 <br>
    본인의 뜻을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에 이루어지는 안락사.
 
 
  반자발적<br>
    (의사 확인 없이 진행)
  반자발적
  <br>
    능동적 안락사
  의사결정능력이
  있는 환자임에도 그 요청을 명확히 <br>
    확인하지 않은 채 진행하는 안락사.
 
 
  기타
  　
  조력임종
  자발적
  능동적 안락사와 의사조력자살을 모두 아우르는 개념. 의사뿐 아니라 간호사 등 다른 의료인이 관여하는 경우까지 포함한다.
 
 
  　
  자비로운 죽음
  안락사와
  동일한 의미로 쓰이나, 죽임에 관여하는이의 <br>
    동기(연민과 자비심)를 강조하는 표현. 전쟁, 재난 같은 <br>
    극단적 상황에서의 행위를 가리키기도 해, 의료 환경의 <br>
    안락사와 구분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조력임종을 둘러싼 주요 용어
  (32쪽)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70/42/cover150/k07213966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3704259</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이야기</category><title>서울시장은 더 큰 권력으로 가는 경유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 - [노들섬과 세운상가 - 왜 시장이 바뀌면 서울이 바뀔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61500</link><pubDate>Mon, 29 Jun 2026 07: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6150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72138532&TPaperId=1736150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50/98/coveroff/k37213853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72138532&TPaperId=1736150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노들섬과 세운상가 - 왜 시장이 바뀌면 서울이 바뀔까</a><br/>박경선 지음 / 돌고래 / 2026년 06월<br/></td></tr></table><br/>우문(愚問)이라고 해야 할까? 당연히 서울시장에 출마했다는 것은 자신이 서울을 어떻게 이끌겠다는 정책을 지니고, 그 정책을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니까. 여기에 서울이라는 곳이 정치, 문화, 경제의 중심이고, 서울시장은 곧 더 큰 권력으로 가는 경유지가 될 수 있으니까, 사람들의 마음에 각인되는 정책을 추진하고자 하니까.<br>자신의 정책과 비슷한 정책을 지닌 시장이 전임이었다면 별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자신과 다른 정책을 펼친 시장이 전임이었다면, 서울 정책이 바뀔 수밖에 없다.<br>즉 왜 시장이 바뀌면 서울이 바뀔까? 라는 질문은 어째서 우리는 서울시장을 정책의 연속성 상에 있는 사람을 선출하지 않았을까? 라는 질문으로 바꾸어야 한다.<br>이 책은 역대 서울시장 중에서 오세훈과 박원순이 번갈아 시장을 한 20년 정도를 살피고 있다. 둘의 정책이 극명하게 대비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최근에 서울시장을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며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br>20년, 강산이 두 번 변할 시기에 이들은 오세훈-박원순-오세훈 순으로 서울시장으로 재직했다. 현재 오세훈이 당선된 시점에서 이 구도는 여전히 유효하기도 하고.<br>서울시장이 바뀌면 서울이 바뀔까는 질문이 오세훈 바로 전에 서울시장이었던 이명박과 오세훈을 놓고는 할 수 없는 질문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같은 정책을 펼쳤기 때문이다.<br>그렇다면 이명박에 이어 오세훈을 선출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명박이 추진한 청계천 복원 사업(사실상 복원이 아니라 청계천이라는 인공 하천을 다시 만든, 청계천 개발 사업이라고 해야 하지만, 여하튼), 뉴타운 사업, 버스 전용차로 도입 등등에 대해서 서울 시민들이 그리 반발하지 않았다는 말이다.<br>즉 당시까지는 개발이 통했다는 것인데, 오세훈이 급식 문제로 중도 사퇴한 이후에 당선된 박원순은 이러한 눈에 확 띠는 사업들과는 달리 과정을 중시하는, 시민들이 참여하는 사업을 중심으로 정책을 운영한다. 그리고 다시 박원순 이후 당선된 오세훈은 박원순이 했던 사업들을 지워나가고 있는 중이고...<br>이러한 서울시장이 바뀌면서 정책이 바뀐 사례를 '노들섬'과 '세운상가'를 통해서 살펴보고 있는 것이 이 책이다.<br>노들섬은 서울시 소유라, 서울시장이 자신의 정책을 쉽게 펼칠 수 있는 반면에, 세운상가는 민간인들의 소유가 많아 서울시장이 자신의 정책을 펼치려 해도 여러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br>하여 이 책은 우선 노들섬에 대한 두 시장의 정책이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고 있는데, 간단히 정리하면 오세훈은 노들섬을 서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하려 했고, 박원순은 시민들이 참여하는 장소로 하려 했다고 할 수 있다.<br>누구나 첫눈에 알아볼 수 있는 외양을 지닌 건축을 노들섬에 건설하려고 하는 정책이 오세훈의 정책이라면, 시민들이 가꾸고 변화시켜 가는 노들섬을 만들려고 했던 것이 박원순의 정책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지금 시장이 오세훈이니... 노들섬을 더 지켜볼 필요가 있고.<br>이와 같은 경우가 세운상가다. 세운상가 건물을 철거하고 재개발하려 하는 것이 오세훈이라면, 그 건물을 유지하면서 새로움을 더해가려 했던 것이 박원순이라고... 하지만 다시 오세훈이 당선된 이후 100미터가 넘는 고층건물을 짓겠다고 해서 문제가 되고 있는데... 그 과정이 이 책에 잘 나와 있다.<br>이 두 시장의 정책을 저자는 책의 뒷부분에서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하고 있다.<br>'두 명의 서울시장은 동일한 공간을 전혀 다르게 구상해 왔다. 오세훈 시장에게 노들섬은 글로벌 경쟁력을 상징하는 한강 위 랜드마크였고, 박원순 시장에게는 사용자가 중심이 되는 복합문화공간이었다. 세운상가 역시 오세훈 시장에게는 철거와 재개발을 통한 '도심 재창조'의 대상이었고, 박원순 시장에게는 역사적, 산업적 장소성이 축적된 '창의제조산업의 혁신기지'였다. 동일한 장소가 전혀 다른 미래상으로 기획된 것이다.' (251쪽)<br>그렇다면 이 두 곳을 통해서 서울의 미래를 그리는 정책이 대비된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누구의 정책이 더 좋다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두 정책이 지닌 장점과 단점을 살피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읽어가면서 어떤 식으로 이 두 장소를 변화시켜야 하는지 생각해보게 된다.<br>과연 외부자의 시선으로 볼 것인가, 내부자의 시선으로 볼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지금까지 이 책을 보면 오세훈의 정책은 외부자의 시선이 강하다 할 수 있고, 박원순의 정책은 내부자의 시선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br>즉 박원순은 '어떤 공간을 만들겠다는 하드웨어의 제시보다, 그 공간에 어떤 사람들이 모이고 어떤 활동이 이루어질지에 대한 소프트웨어적 비전을 강조'(195쪽)했다고 한다면, 오세훈은 이와는 대척점에 있는 비전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br>이 점을 광화문 광장을 보면 알 수 있다. 시민들이 자유롭게 만나고 무엇을 할 수 있는 장소로 광화문 광장을 생각하는 것이 내부자의 시선이라면 광장은 열린 공간으로 만들고 많은 전시물들을 설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광장을 외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눈길을 끌 무언가를 설치해야 한다. 이 점을 생각해도 두 시장의 정책이 상반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nbsp;<br>노들섬과 세운상가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아마 오세훈 임기 4년 안에 끝나지 않을 것이다. 다음 시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이 곳들의 사업은 또다시 변화를 겪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변화를 겪지 않으려면, 적어도 서울시장의 정책을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br>서울에서 대표적인 두 곳의 개발을 놓고 서울시민들이 냉철하게 평가하고, 그 평가를 받아들이고 서울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을 선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개발 추진 -&gt; 중지 -&gt; 변경 추진 -&gt; 중지 -&gt;변경 추진의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br>즉 누가 시장이 되느냐에 따라 바뀌는 서울 정책이 아니라 서울 정책의 일관성을 시민들의 의사에 맞게 추진할 수 있는 사람을 선출해야 한다. 그래야만 이렇게 우왕좌왕하면서 예산과 시간, 그리고 사람들의 노동까지 낭비하는 일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br>저자는 '단기적 성과를 넘어서는 장기적 계획 체계, 다양한 행위자가 참여하는 거버넌스, 그리고 정책 전환에 대한 제도적 견제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도시공간은 단기간의, 오락가락하는 정치적 투기 행위에 휘말려 낭비될 것이다.'(257쪽)고 하고 있다.<br>이렇게 되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이 깨어있는 시민들이 해야 할 일 아니겠는가. 서울시장이라는 자리를 자신의 정치적 출세의 발판으로 삼으려 하는 사람이 아니라, 서울시장으로서 서울시민들과 함께 서울의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 그러한 장소를 만들려고 하는 사람을 알아보고 선출하는 안목.<br>그래서 아쉽다. 이 책이 조금 더 빨리 나왔어야 하는데... 이번 지자체 선거가 끝나고나서야 읽게 되었으니...&nbsp; &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50/98/cover150/k37213853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3509843</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이야기</category><title>힘 없는 노년, 정치적 주체가 될 수 있을까? - [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54428</link><pubDate>Thu, 25 Jun 2026 12: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5442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4961&TPaperId=1735442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160/44/coveroff/893204496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4961&TPaperId=1735442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a><br/>디디에 에리봉 지음, 이상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12월<br/></td></tr></table><br/>어느 서민 여성, 바로 저자의 어머니다. 아버지의 죽음을 토대로&nbsp;[랭스로 되돌아가다]를 썼다면, 이번엔 어머니의 죽음으로 이 책을 썼다고도 할 수 있다.<br>단지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 자신이 노동자 계급의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그 계급을 벗어났다. 그는 진보적인 정치 사상을 지닌 사람으로 노동자 계급임에도 자신들의 정체성에 반하는 투표를 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다가, 그들이 왜 그렇게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게 되었다.<br>저자의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다. 젊은 시절, 노동자였을 때 어머니는 조합원으로서 노동조합의 주장에 동조하고, 그들과 함께 행동을 했다. 그러다가 나이 들어서는 극우 쪽에 투표를 하기도 했으며, 인종 차별적인 발언을 하기도 한다.<br>즉 노동조합원이었다고 해서 모두가 진보 정치에 참여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노동조합원이었던 어머니가 극우 쪽에 투표를 당당히 하는 모습, 이 책에 나와 있는데, 왜 그럴까?&nbsp;<br>그것은 나이 들어가면서 자신이 동일시할 집단이 없어졌다는 것도 한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을 읽은 소감이다.<br>자신이 속한 집단이 건재할 때는 집단과 자신을 동일시 할 수 있다. 노동조합의 정책에 찬성하면서, 노동조합과 같은 정치적 성향을 지닐 수도 있다. 그때 자신은 노동조합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원으로서 판단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br>집단에 속할 수 있다는 것, 자신의 주장을 집단이 대변하고 있다는 인식, 하여 집단과 함께 행동할 수 있는 상태. 그것이 노동조합원이었을 때 어머니의 처지였다고 한다면, 나이 들어 이제 노동조합원도 아니고, 사회적으로도 밀려날 수밖에 없는 노년에 이른 어머니는?<br>어머니는 어느 집단과 자신의 정체성을 동일시 할 수 있을까? 이제는 가족과도 떨어져 홀로 지내면서 많은 시간을 텔레비전과 함께, 요즘은 여기에 더해서 핸드폰으로 만나게 되는 온갖 모임들에서 보내는 영상들과 함께 보내게 된다.<br>자연스레 자신의 의식이 그쪽으로 편향되게 되는데... 그러므로 저자의 어머니 역시 극우 성향의 정치인에게 투표를 하기도 하는 것이다.<br>아마 우리나라는 이보다 더 심하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인터넷이 워낙 잘되어 있는 나라라서, 온갖 정보가 넘쳐나고 있고, 한번 만나게 된 영상은 알고리즘으로 그것을 계속 강화하는 영상들, 방송들을 만나게 하고, 다른 성향의 방송은 만날 기회를 박탈하고 있으니...<br>이들은 자신을 동일시할 집단을 이러한 방송에서 찾는 경향이 있게 된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그러한 노인들의 모습을 비판하기 위해서 이 책을 쓴 것은 아니다.<br>저자는 노년에 접어든 사람들이 겪는 일들을 자신의 어머니가 겪은 일을 바탕으로 서술하고 있다. 물론 이 책에서 말하는 부르조아는 상관없는 일이다. 그들은 노년에서 충분한 돈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누릴 수 있으니까.<br>하지만 노동자계급의 노인들은 그렇지 않다. 이들은 사회제도에 노년을 의탁할 수밖에 없다. 저자의 어머니 역시 나중에는 요양원에서 삶을 마감한다. 이 책에서 자세히 다루지는 않지만 프랑스의 사회복지 제도가 많이 퇴보하고 있다는 점을 저자의 어머니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게 된다. 이것이 프랑스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br>자식들도 독립해 살고 있고, 자신을 보살펴 줄 사람을 고용할 돈이 없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가는 곳, 물론 요양원도 천차만별이라 돈에 따라 환경이 다르기는 하겠지만, 자신이 살던 곳에서 삶을 마감하기는 힘들다.<br>저자의 어머니가 겪은 일이 일반 서민들이 나이 들면 겪는 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저자는 이런 경험을 통해서 노년이 어떻게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br>다른 말로 하면 노년이 정치적 주체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노년에 이르러 정당한 대우를 받기 위한 말과 행동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 사람들이 어떻게 정치적 주체가 될 수 있는지...<br>그들에게 필요한 사회 제도들을 어떻게 요구하고, 요구 사항이 관철될 수 있도록 행동할 수 있는지를 이 책의 후반부에서 살피고 있다.<br>결론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들은 움직일 힘이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미래라는 바꿀 수 있는 시간이 없는 사람들, 지금 자신의 몸을 움직일 힘도 없는 사람들이 서로 서로 연대해서 행동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br>저자의 말을 보자.<br>'남들에게 들리도록 소리를 낼 수 있는 고령자들의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의 가능한 '우리'가 없기 때문이고, 따라서 현실에서나 심지어 상상의 영역에서도 가능한 공적 발언이 없기 때문이다.'(289-290쪽)<br>이 불가능성이 노년들이 정치적 주체가 될 수 없게 하는데, 그렇다면 노년은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존재로, 가려진 존재로 있다가 사라져야 하는가?<br>그들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끝까지 누릴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질문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모두가 한번은 반드시 겪어야 할 일이다. 물론 자신의 노년을 풍요롭게 지낼 수 있는 돈이 있는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않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노년에 겪을 일들이다.<br>이렇게 누구나 겪어야 할 일임에도 우리는 남의 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아직 자신에게 오지 않은 일이고, 자신에게 닥쳤을 때는 이미 말도 행동도, 집단을 이룰 힘도 없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자신이 주체적으로 나서서 문제제기를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기 때문이다.<br>자, 닥쳤을 때는 할 수 없고, 할 수 있을 때는 남의 일처럼 여기는 이 상태, 이것이 바로 '노년'의 문제 아니겠는가. 저자는 이 점을 잘 지적하고 있다. 그럼에도 사회에서 하나의 집단을 형성하고 있는 노년을 그냥 없는 셈 칠 수는 없다.<br>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 대변하고 그것을 정치적인 힘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내부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더라도 외부에서 대신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br>이것은 우리 모두가 겪어야 할 일이라고, 그러므로 미리미리 바꾸어야 한다고... 이런 상황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문학의 힘이라고... 간접경험을 통해 미래를 미리 경험하는 것이 노년을 대변할 수 있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데...<br>노동자들이 극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 그들 역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 저자는 아르바이트를 할 때 불합리한 지시를 하는 관리자에게 저항할 수 있었지만 그 직장에 생계를 걸고 있는 어머니는 저항할 수 없었음이 이 책에도 나와 있는데, 이때는 이러한 처지에 있는 노동자들의 소리를 대변하는 노동조합과 진보 정치 집단이 이들을 대변한다.&nbsp;<br>마찬가지로 노년을 대변할 수 있는 집단이 존재하게 된다면, 그때 '노년'도 정치적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자신의 어머니와의 경험을 통해서 이 책을 쓴 것이다. 적어도 이들의 목소리가 들릴 수 있도록.<br>하여 저자는 소리를 낼 수도, 행동할 수도 없는 노년을 위해, 아니'노년만이 아니라 이러한 사람들'을 위해 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이 소리를 내야 한다고 한다. 그래야 세상이 바뀌고, 누군가가 가려진 채로 사라지지 않을 수 있다.<br>'결국 근본에 있는 정치적 문제는 이것이다. 누가 말하는가? 누가 발언할 수 있는가? 이 기본이 되는 정치적 행위가 가장 극심하게 지배받고 박탈당하고 취약한 사람 가운데 그렇게 많은 이에게 여전히 접근 불가능하다면 그들에 관해서, 그들을 위해서 말하고 그들을 보이게 하는 것이 작가에게, 예술가에게, 지식인에게 돌아오는 과제가 아닐까?'(299쪽)&nbsp;<br>이 책을 읽으면서 이것은 다른 나라 이야기,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구나. 바로 우리 이야기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 저자의 마지막 문제제기가 계속 마음에 남는다. 우리에게 돌아오는 과제, 이 과제를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br>우리 사회에서 큰소리치고 있는 '노인'들이 아니라, 정말 힘 없는 노인들, 그리고 그만큼이나 더 힘 없는 사람들, 그들과 함께해야 하는 과제를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160/44/cover150/893204496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1604461</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여러이야기</category><title>아름다움과 함께하는 삶을 추구한 사람 - [아름다움을 만드는 일 - 윌리엄 모리스 산문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50468</link><pubDate>Tue, 23 Jun 2026 10: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5046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42737365&TPaperId=1735046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4790/62/coveroff/k64273736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42737365&TPaperId=1735046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아름다움을 만드는 일 - 윌리엄 모리스 산문선</a><br/>윌리엄 모리스 지음, 정소영 옮김 / 온다프레스 / 2021년 01월<br/></td></tr></table><br/>윌리엄 모리스.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사람. 삶에서 아름다움이 없다면 그 삶은 너무나 공허하다고 한 사람.<br>남들은 중세를 암흑기라고 하지만 모리스는 중세야말로 아름다움을 살았던 시대라고... 그때 사람들은 삶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br>왜냐? 이유는 간단하다. 삶과 예술이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장식예술을 중요하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쓰는 많은 도구들을 그냥 실용적인 목적으로, 그 쓰임새만을 위해 만들지 않고, 쓰임새와 더불어 아름다움을 생각해서 만들고 썼다는 것.<br>건축도 마찬가지다. 겉모습의 웅장함만이 아니라 그곳에서 살면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건축이 좋은 건축이라고.<br>깊게 생각할 것도 없이 우리가 집에서 사용하는 물건들을 보면 모리스의 주장을 이해할 수 있다. 단지 쓰임새만 생각하고 사지 않는다. 디자인을 본다. 아름다움을 본다. 그래서 우리가 쓰는 물건들에는 쓰임새와 더불어 아름다움도 함께하고 있다. 이런 것들을 우리 삶 전반에 걸쳐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모리스의 주장이다.<br>이렇게 인간은 생활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그의 주장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정치적으로는 민주화가 이루어져야 하며, 경제적으로도 평등해져야 한다. 먹고살기 위해서 억지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해서 일을 하는 사회. 그러한 사회를 만들어야 아름다움이 삶 속에서 실현된다고 모리스는 주장한다.<br>그래서 그는 자신이 사회주의자라고 주장한다. 사회가 변해야 한다고... 가난한 사람, 자신의 노동을 남을 위해서만 하는 사람들이 없는 사회. 그러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바로 아름다움을 생활에서 추구하는 것과 방향이 같다고 한다.<br>그는 '제가 뜻하는 사회주의는 ~ 모두가 동등한 조건에서 살고, 낭비 없이 만사를 꾸려가고, 어느 누구에게 해가 되면 곧 모두에게 해가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의식하는 그런 사회적 조건이지요. 마침내 공화(共和)라는 단어의 본래 의미가 구현되는 사회라 할 수 있어요'(165-166쪽)라고 한다.<br>이런 사회는 삶 속에서 아름다움이 자연스레 구현되는 사회이고, 이런 사회에서는 쓰임새만이 아니라 아름다움도 함께 물건에 요구하고 실현하는 사회가 된다.<br>그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물건에 즐거움을 입히는 일, 그것이 바로 장식이 수행하는 하나의 위대한 역할입니다. 사람들이 만드는 물건에 즐거움을 부여하는 일, 그것이 또 다른 역할입니다.'(104쪽)고 장식예술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즐거움은 곧 아름다움과 통한다는 것.<br>이러한 아름다움이 즐거움이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면 곧 '자연에 조응하며 도움이 되면 아름다운 것이고, 반대로 자연에 어긋나며 방해가 되면 추한 것입니다.'(103쪽)고 하고 있으니, 이런 상태에서의 아름다움은 즐거움이 될 수밖에 없다.<br>그리고 이런 아름다움이 넘치는 사회는 사람들이 살 만한 사회라 할 수 있는데, '현대의 삶이 살 만한 것이 되려면 두 가지 미덕이 꼭 필요합니다. 만드는 사람과 사용하는 사람 모두에게 행복이 되는, 민중에 의해 민중을 위해 만들어지는 예술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정직함과 소박한 삶'(54쪽)이라고 주장하고 있다.<br>지나침, 낭비가 없는 사회. 어느 곳에서는 넘쳐나서 버리고 있지만 어느 곳에서는 없어서 고통을 받는 그런 사회가 아닌, 정직함과 소박한 삶이 넘치는 사회일 수밖에 없다.<br>모리스는 필요를 창출하지만 그 필요에 아름다움을 덧붙일 수 있는 사회, 그리고 모두가 그러한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누리는 사회를 그는 바라고 있는데, 이런 사회에서 '살 만한 삶을 위해 필요한 것들은 ... 첫째는 건강한 신체, 둘째는 과거,현재,미래와 교감하는 활달한 정신, 셋째는 건강한 신체와 활달한 정신에 적합한 직업,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주거환경'(255쪽)이라고 한다.<br>지금 우리 시대에도 유용한 주장 아닌가. 살 만한 삶. 아름다운 삶. 그러기 위해서는 건강, 정신, 일,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가? 이 중 하나만 없어도 우리는 살 만한 삶이라고, 아름다운 삶이라고 하지 않는다.&nbsp;<br>그래서 모리스가 주장한 이런 살 만한 삶은 아름다운 삶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동료 인간을 두려워하는 일을 그만두고 그들을 믿고 의존하는 일, 경쟁을 없애고 협력을 쌓아가는 일, 그것이 우리가 꼭 해야 할 일'(240쪽)이라는 모리스의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br>아름다움에 관한 모리스의 글들을 담고 있는 이 책은 단순히 미학에 관한 책이 아니다. 우리 삶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있기에 사회학, 정치학과도 연결이 된다. 그가 삶의 환경을 바꿔야 한다고, 사회를 변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름다움은 우리 삶 전반에 걸쳐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br>이런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있는 이 책에서 한 가지 더 좋은 점이 있다면 모리스가 만든 아름다운 문양들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얼마나 삶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했는지, 그 문양들을 보면서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br>이 책을 추천한 박노자의 말을 보자. 이 책을 가장 잘 정리한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br>'모리스가 세운 뜻은, 쉽게 이야기하면 근대가 망까뜨리고 획일화시킨 인간에게 미(美)를 통해 다시 한번 자유와 개성을 돌려준다는 것이었다.'(4-5쪽)<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4790/62/cover150/k64273736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47906202</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삶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받아쓰기 - [딕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48440</link><pubDate>Mon, 22 Jun 2026 09:3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4844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0123105&TPaperId=1734844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974/93/coveroff/8970123105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0123105&TPaperId=1734844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딕테</a><br/>차학경 지음, 김경년 옮김 / 문학사상 / 2024년 11월<br/></td></tr></table><br/>'DICTEE'<br>낯선 말이다. 프랑스어라고 한다. '받아쓰기'라고. 받아쓰기. 지금 아이들도 학교에서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예전에 국민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저학년 때 받아쓰기 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단지 국민학교에서만이 아니라 중, 고등학교에서도 외국어를(중학교에서는 영어를, 고등학교에서는 제2외국어라 해서, 독일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중국어, 일본어 등등을 배웠다.) 배우면서 받아쓰기를 한 적이 있을 것이다.<br>교사가 불러주는 단어나 문장을 제대로 썼는지 확인하는 과정. 그런데 소설이라고 하는데 제목을 프랑스어로 달고 받아쓰기라고 했으니 제목부터 생각을 하게 한다.<br>받아쓰기라?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라는 말인가? 정답은 있다. 그 정답을 제대로 옮기느냐 못 하느냐에 따라 점수가 달라지는 시험, 그것이 받아쓰기라 생각했는데...<br>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러한 받아쓰기라 아니라 삶을 인식하는, 삶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받아쓰기라고 이 말을 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br>시작 부분에 나오는 받아쓰기는 아마도 작가의 개인 체험이 들어간 것이겠지만, 개인 체험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태어나면서 받아쓰기를 한다. 그것을 글자로 적지 않더라도...<br>엄마의 말을 받아쓰기 하면서 언어를 익히게 된다. 단지 언어를 익히게 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배우고, 자신을 알아가게 된다.<br>그런데 그러한 언어를 빼앗겼다면? 엄마로부터 자연스레 배우는 언어를 억압받는다면 어떻게 될까? 자연스런 받아쓰기 과정이 인위적인 받아쓰기 과정으로 바뀌지 않을까? 그러면서 자신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과 자신을 알아가는 방법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데...<br>이 소설을 쓴 차학경의 삶을 보면 이 소설이 왜 받아쓰기이고, 다양한 형식이 시험되고 있는지 대략 이해할 수 있게 된다.<br>차학경 자신도 어린 시절에 미국으로 이민을 간 사람이다. 미국의 언어를 처음부터 배워야 하는 사람. 그러니 그에게는 이제 생활해야 하는 언어를 받아쓰기 해야 한다. 엄마로부터가 아니라 그 사회로부터.&nbsp;<br>그러면서도 엄마로부터 익혀온 언어가 사라지지 않는다. 엄마가 들려주는 언어를 끊임없이 받아쓰기 하면서, 다른 언어도 받아쓰기를 해야 한다. 여기에 차학경은 프랑스어에도 관심이 있고, 배웠다고 하니, 이 소설에서 '프랑스어로 번역하시오'라는 부분이 있는 것도 이해가 된다.<br>하지만 단지 언어의 번역, 받아쓰기 문제가 아니다. 바로 세계를 인식하고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해가는 과정이다.<br>이 받아쓰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넷이다. 유관순, 잔 다르크, 성녀 테레즈, 그리고 엄마. 유관순과 잔 다르크는 나라와 관련이 있다면, 성녀 테레즈는 종교와, 그리고 엄마는 이 모두와 연관이 된다고 할 수 있다.<br>즉 이 소설은 엄마를 중심으로, 엄마의 이야기를 받아쓰기 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는데, 이는 엄마를 통해서 우리나라의 역사, 그리고 그와 비슷한 세계 속 역사를 살피고 있으며, 자신의 신념인, (차학경은 테레사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으며, 그의 형제자매들도 모두 이러한 세례명을 지니고 있다), 종교에 대한 믿음에 대한 표현을 통해 자신이 바라는 세상을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br>단순히 엄마의 말을 받아쓰기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형식을 통해서, 또 다양한 자료들을 통해서 역사와, 종교와 사랑을 이 소설 속에 녹여내고 있다.<br>하여 소설 속 문장을 인용하면 '원 속의 원, 동심원의 연속'(187쪽)이라는 표현처럼, 이 소설은 자신의 삶이라는 원에서 엄마의 삶이라는 원, 유관순 - 잔 다르크의 삶의 원, 성녀 테레즈의 삶의 원과 역사의 원이 동심원처럼 중첩되어 있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br>이 다양한 삶들을&nbsp;'DICTEE'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는데, 그러므로 어떤 하나의 형식으로 소설을 전개할 수 없었을 것이다.&nbsp;<br>받아쓰게 하는 존재에 따라 받아쓰기 방식이 달라질 수 있기에, 또한 받아쓰기를 하는 주체가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받아들였느냐에 따라 받아쓰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으니, 하나의 형식이 아니라 다양한 형식들이 이 소설 속에 혼재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br>그것들을 하나로 꿰기는 힘들다. 읽는 사람 역시 차학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받아쓰기'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받아쓰기'에는 백 점이란 없다. 자신의 관점에 맞게 변용해서 받아들이고, 다시-쓰기를 할 뿐,<br>소설에 여러 언어가 혼재되어 나타나, (책의 말미에 있는 오빠의 글에 의하면 '테레사는 한국어, 영어, 불어,그리스어를 인용해서 [딕테]를 구성했다'(211쪽)고 나와 있다) 번역자도 이 점 때문에 많은 고심을 했을 것인데, 읽기도 쉽지 않은데, 그럼에도 읽으면서 무언가 어렴풋하게 어떤 형상이 다가오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br>이런 느낌을 좀더 구체화하고 싶으면 소설 뒤에 실린 차학경 오빠의 글과 번역자의 말, 작품 해설 두 편을 읽으면 좋을 것이다.<br>한 번에 읽고 끝낼 소설이 아니라는 것, 두고두고 읽으면 그때마다 받아쓰기가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주는 소설. 읽고 나서도 무언가가 계속 남아 있는 소설이 바로 이 소설이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4974/93/cover150/8970123105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49749319</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이야기</category><title>사랑과 신뢰-극우(극단)에서 벗어나게 하는 힘 - [극우 유튜브에서 아들을 구출해 왔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43412</link><pubDate>Fri, 19 Jun 2026 12: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4341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80847&TPaperId=1734341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765/52/coveroff/893648084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80847&TPaperId=1734341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극우 유튜브에서 아들을 구출해 왔다</a><br/>권정민 지음 / 창비 / 2025년 07월<br/></td></tr></table><br/>'극우 유튜브'에서 아들을 구출했다는 말. 쉽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너무도 쉽게 유튜브 영상을 통해서 다른 이들을 혐오하고 배제하는 쪽으로 기울게 되는 현실.<br>그럼에도 유튜브를 어떻게 할 수 없는, 너나 할 것 없이 유튜브를 하겠다고, 어떤 곳은 이들이 광장을 점령해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자신들의 재미, 흥미, 관심사를 유튜브로 만들어 보여주는 이들을 모두 비판할 수는 없다.<br>다만, 유튜브를 통해 혐오와 배제의 논리를 전파하고, 행동을 촉구하는 이들마저도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허용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br>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표현의 자유는 소중하니까. 이렇게 소중한 표현의 자유가 다른 사람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면? 그것도 표현의 자유일까?<br>표현의 자유를 빙자해서 혐오하고, 배제하고, 폭력을 선동하는 것이 과연 용납되어야 할까? 이들에 대한 규제가 이루어지지 않고 잇는 상황에서, 그러한 발언-선동들이 '사이다'라고 인정받는 사회에서 입시에 찌든 학생들이 쉽게 빠져들 수밖에 없다.<br>자신들의 감정을 분출할 수 있는 통로가 유튜브에 있으며, 이들은 표면상으로는 자신들을 지지해주고 응원해준다는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또한 에둘러 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감정을 표현하니, 시원하단 느낌이 들게 해주기도 하고...<br>감정이 요동치는 나이, 질풍노도의 시기에 반항하는 시기라고 하는 사춘기에 단정적인 말은 그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도 있다. 무엇보다 앞에서 하는 말과 뒤에서 하는 행동이 다르지 않다고 여길 테니까. 사실 그들의 행동을 알 수 있는 것도 아닌데...<br>이런 극우 유튜브를 보면서 재미를 느끼고, 그것을 놀이라고 생각하는 청소년이 늘고 있다고 하는데, 단순히 놀이를 넘어서 혐오와 배제로 나아가면 극우로 빠져들게 되기 쉽다.<br>저자의 아들 역시 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 보는 유튜브에서, 또 친구들의 말에서 극우적 표현들을 익혔다고 한다. 이런 점을 알게 된 저자가 아들과 대화를 통해 극우 논리에서 벗어나 진실을 찾는 비판적 사고를 하는 아들로 자라게 하고 있다고 하는데...<br>학교에서 늘 '민주시민교육'을 강조한다. 비판적 사고력을 함양하고... 하는 말들이 교육 목표로 실려 있기도 하다.<br>이렇게 민주시민과 비판적 사고력을 함양한다는 학교에서 극우 논리가 판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할까?<br>교육만으로 이러한 현실을 바꿀 수 있을까? 학교 현장이 오히려 극우 논리가 스며들고 확산되게 하는 공간으로 작동한다면, 지금 학교 교육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br>왜 학교에서 가르치는 그 좋은 내용들이 학생들에게 다가가지 않고, 유튜브나 다른 매체들을 통해서 만나게 되는 극우 논리, 또는 극단적인 논리가 학생들에게 다가갈까?<br>답은 뻔하지 않은가? 바로 우리 사회에서 '사랑과 신뢰의 관계'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사랑과 신뢰가 있다면 극단적인 사고로 가지 않는다. 적어도 상대가 한 말이나 행동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된다.<br>무조건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 말할까? 왜 저렇게 행동했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사랑과 신뢰가 없으면 '그럼, 그렇지.'라는 생각부터 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더 강화하게 된다.<br>이 책에서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도 이것이다. 가족 간에도 '사랑과 신뢰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부모가 좋은 말을 그렇듯하게 하면서도 자식들에게는 학원을 강요하고, 입시에서 성공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둔다면, 과연 그 가정에서 부모와 자식 간에 사랑과 신뢰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br>말과 행동이 다른 존재로 부모를 인식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부모 자식 간에 대화는 힘들어진다. 부모는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고, 아이는 부모의 생각을 거부하는 모습으로 굳어지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극우 유튜브를 비롯한 극단적인 성향을 띠는 매체들이 자리를 잡게 된다. 마음에 파고들게 된다.<br>혹해서, 와, 통쾌하네 하는 생각으로 한두 번 보다 보면 알고리즘에 의해 이와 비슷한 영상들이, 매체들을 계속 보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의 생각을 굳히게 되고, 부모와는 더더욱 멀어지게 된다. 부모를 꼰대라고 여기게 되고,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 또는 앞과 뒤가 다른 이중인격자로 여기게 된다.<br>또한 학교의 그 좋은 목표들보다 자기 자식의 성적이 더 중요한 부모가 학교에 와서 교사들을 대하는 태도들을 보면, 어떤 학생이 교사의 말을 따르겠는가? 자신의 부모조차 무시하는 교사들의 말을.<br>이렇게 '사랑과 신뢰의 관계'가 깨진 가정과 학교에서 아이들은 어른들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을 이끌어줄 어른은 집에, 학교에 있지 않고 사이버 상에 존재한다. 그것이 유튜브든 게임에서 자신들을 이끄는 사람이든, 단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들을 어른으로 착각한다.<br>부모, 교사가 아니라 이것이다, 이래야 한다, 저들이 나쁘다. 저들을 몰아내야 한다고 혐오와 배제의 말하기를 하는 그들을 어른으로 착각하는 순간, 극우 쪽으로 빠져들게 된다.<br>이렇게 극우 논리에 함몰된 자식을 구출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저자는 부단히 대화를 한다. 그것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가 이해하기 쉽게. 이런 일은 대부분의 부모가 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그만큼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일이다.<br>하지만 저자와 같지 않더라도 가족 간에 '사랑과 신뢰'가 있다면 짧은 시간에도 대화를 할 수 있다. 진심을 다하는 대화. 그래서 상대를 배제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나만이 아니라 상대의 말에도 경청을 하는 그런 대화를 할 수 있다.<br>이것이 바로 '극우 유튜브에서 아들을 구출'한 방법이다.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가장 가까워야 할 부모-자식 간에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 부모도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 실수할 때도 있음을, 다만 그 실수를 인정하고 고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을 자식이 느끼게 하고, 자식에게도 완벽함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실수를 통해서 배워나가는 모습을 기대한다는 것을.<br>남을 배제하고 혐오해서는 절대로 자신도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다른 존재들과 함께 어울려 즐겁고 행복하는 사는 삶을 부모가 원한다는 것을, 그래서 극단적인 논리를 주장하는 존재들을 멀리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하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부모-자식 간에 '사랑과 신뢰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br>이 관계가 있어야 대화도 가능하다. 어디 이것이 부모-자식 간에만 해당하겠는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무너진 '사랑과 신뢰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그래야지만 우리 사회가 극단주의에 빠지지 않게 된다. 특히 미래세대들에게는 더더욱 그런 관계 회복이 절실하다.&nbsp;<br>그 점을 이 책에서 저자는 잘 보여주고 있다. 자신과 아들의 관계를 중심으로.]]></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765/52/cover150/893648084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7655224</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이야기</category><title>팔레스타인에 대한 말하기는 곧 저항이다 - [팔레스타인 번역가의 이중생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41513</link><pubDate>Thu, 18 Jun 2026 10: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4151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32138063&TPaperId=1734151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66/46/coveroff/s10213931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32138063&TPaperId=1734151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팔레스타인 번역가의 이중생활</a><br/>알라 알카이시 지음, 서제인 옮김 / 글항아리 / 2026년 06월<br/></td></tr></table><br/>무어라 말을 하기 힘들다. 내가 겪는 일은 아니지만, 우리나라도 이런 일을 겪어왔기에... 최근에 여행 간 곳에서 보게 된 소나무들의 상처.<br>소나무 줄기에 브이(V) 모양의 상처들이 있었다. 깊고 굵게, 그 상처를 얼핏 보면 나무가 웃는 것처럼 보이는데, 아니다. 웃고 있는 것이 아니다.<br>일제강점기, 연료가 부족한 일제가 소나무에서 송진을 채취해 연료로 쓰기 위해서 커다란 소나무들에 그런 상처를 남긴 것이라고... 일제강점기가 끝난 지 80년이 넘었지만 나무는 그 상처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상처를 통해 우리에게 역사를 잊지 말라고, 기억하라고 하고 있다.<br>그 소나무 상처. 이 책을 읽는 내내 떠올랐다. 팔레스타인을 기억해야 한다고. 특히 가자지구에서 벌어진 일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그것은 집단 학살이라고. 부정하는 자들에 맞서 그러한 학살을 기억하고 알려야 한다고.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기록해야 한다고. 이것이 바로 팔레스타인 번역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br>팔레스타인, 가자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또 팔레스타인 문학들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 현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슬픔, 분노, 고통을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 번역하는 언어가 강한 나라일 때는 더더욱.<br>영어, 영국의 언어이자 미국의 언어. 지금 이스라엘은 미국과 딱 붙어 있고, 팔레스타인 비극을 초래한 나라는 영국이니, 영국이나 미국의 언어인 영어로 팔레스타인, 가자의 상황을 번역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br>이 글의 저자는 이렇게 그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br>'영어는 - 특히 주로 언론과 외교 성명, 그리고 '양측'을 내세우는 서사에 쓰이는 영어는 - 팔레스타인의 고통으로부터 가해의 주체를 지워버리고 대량 학살을 '충돌의 격화'로, 봉쇄를 '안보 조치'로 축소하도록 신중하게 구성되어 있다. 가자를 이 언어로 번역한다는 것은 가자의 현실을 가리도록 고안된 바로 그 구조들에 맞서 싸우는 일이다. 이것이 팔레스타인 번역가가 처해 있는 망명 상태다. 두 세계 사이에 존재하지만 그 어느 쪽도 온전히 자기 것이라고 할 수 없는 상태'(71쪽)<br>이런 어려움에도 저자는 번역을 한다. 왜냐하면 '가자에서 번역을 한다는 것은 집단학살뿐만 아니라 전쟁이 지워버리고 싶어하는 삶의 평범한 순간들 역시 기록하는 작업(68쪽)'이기 때문이다.<br>잊지 않기 위해서 번역을 하고, 기록을 한다. 이러한 번역이나 기록은 곧 기억의 행위이고, 기억은 저항이 된다. 즉 '가자에 관해 문장 하나를 쓴다는 것은 전 세계의 무관심이라는 구조물에 맞서는 일(85쪽)'이기 때문이라고 한다.<br>하지만 저자는 가자가 오로지 상처로만 기억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를 보듬는 따뜻함이 있던 곳.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그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 하는 가자 사람들의 모습도 기억하기를 바란다.<br>그렇게 하기 위해서 저자는 글을 쓴다고.&nbsp;<br>결국 저자는 가자에서 살지 못하고 지금은 더블린에서 산다고 한다. 이 책에는 가자에서 나와 베를린과 더불린에서 겪는 일들도 나와 있는데, 이 곳에서도 저자는 가자를 잊지 못한다. 가자는 저자의 몸과 마음에 배어 있기에 저자는 가자에 대해 끊임없이 글을 쓴다.<br>이 책은 그 결과물이다. 읽으면서 가자의 눈물, 슬픔이 떠나지 않고,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음, 잊지 않고 항복하지 않으려는 의지를 느끼게 되었는데, 이는 이 책에 나온 저자의 시에 '다른 이들이 피 흘린 길을 밟는 일'('가자, 인내의 끝에서' 중. 197쪽)이라는 구절이 있듯이, 우리 역시 이 책을 읽으면서 그들이 피 흘린 길을 함께 걷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br>읽으면서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는데, 아직도 가자는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의 이 당부 잊어서는 안 되겠지. 그래서라도 이런 책을 읽어야겠지.<br>'이 책의 페이지를 넘길 때, 여기 쓰여 있는 일들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가자 사람들이 여전히 똑같은 조건 아래 살아가고 있음을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6쪽)<br>이 책을 읽는 순간, 한겨레신문 (2026년 6월 11일 자)에 이런 글이 실렸다.&nbsp;<br>이스라엘로 떨어지는 이란 미사일을 가자에서 보며…<br>저자의 목소리와 비슷한 소리, 잊어서는 안 된다는 소리. 기사를 읽고, 또 이 책을 읽으며 전세계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무관심을 거부하는 독서, 스스로에게 변화를 허락하는 독서의 경험'(8쪽)을 하라는 저자의 말을 다시 한번 떠올린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66/46/cover150/s10213931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664647</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사람이야기</category><title>다중(평행)우주를 현세에서 산 사람- 페소아 - [페소아와 페소아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35888</link><pubDate>Mon, 15 Jun 2026 11:1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3588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4207422&TPaperId=1733588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441/31/coveroff/899420742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4207422&TPaperId=1733588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페소아와 페소아들</a><br/>페르난두 페소아 지음, 김한민 옮김 / 워크룸프레스 / 2014년 07월<br/></td></tr></table><br/>평행우주, 다중우주. 지구에서 살고 있는 나와 또다른 우주에서 살고 있는 나. 이것은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지구에서 살고 있는 '나'는 지구에서는 유일한 존재이고, '또 다른 나'는 지구가 아닌 다른 우주에 살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 나를 나는 만나지 못한다. 알지 못한다. 다만, 다른 내가 다른 우주에 살고 있다고 짐작하기만 할 뿐. 즉 현실이 아닌 가상이라고 생각할 뿐.<br>그런데, 이 지구에도 수많은 나'들'이 있다면... 평행우주가 아니라 평행지구라고 해야 할까? 지구 곳에서, 아니 지구의 어느 한 나라에도 수많은 나'들'이 있다면... 그들이 각자 다른 삶을 살아간다면?<br>'도플갱어'와는 다르게, 속설로는 '도플갱어'를 만나면 죽음에 이른다고, 즉 두 존재가 함께 존재하지는 못한다고 하기도 하니, 다중(평행)우주 속의 '나들'은 그런 도플갱어와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br>그럼 '해리성 정체성 장애'와는 어떻게 연결이 될까? 자신에게서 나타나는 여러 인격들, 한 인격이 한 행동을 다른 인격이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 이것은 도플갱어라는 말과도 다중(평행)우주라는 말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br>어렵다. 이렇게 어려운 상태. 어쩌면 인간이란 바로 이렇게 무어라 정의하기 힘든, 또는 하나 속에 여럿이 함께 있는, 그 여럿이 하나 속에 통합되어 하나로만 나타나기도 하지만, 여럿이 각자가 하나가 되어 나타나기도 하는 존재, 그것이 바로 인간이 아닌가.<br>하나의 인격만이 발현되든, 여러 인격이 발현되든 그것이 인간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고... 이것이 바로 인간의 다양한 면이 아닐까.&nbsp;<br>그러니 인간을 어느 한쪽으로만 규정하는 일은 없어야겠는데... 이런 많은 용어들이 생각난 것은 바로 페르난두 페소아의 이 책 [페소아와 페소아들]을 읽었기 때문이다.<br>책 제목을 [페소아와 페소아들]이라고 붙인 것은 페소아라는 포르투칼 작가가 페소아라는 이름의 단일한 인격만으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페소아들이라는 다중 인격으로 존재했다는 것.<br>어떤 때는 페소아라는 인격이 또 다른 때는 페소아들에 해당하는, 이 책의 번역 용어로는 '이명(異名)'의 인격들이 나타나 작품 활동을 했다고 한다. 시, 희곡, 소설, 인터뷰 등등 다양한 페소아들이 각자 특성있는 글로 나타난다.<br>페소아 자신이 스스로 그러한 이명들에 대해 밝히고 있기도 한데, 어떤 인격들은 이명(異名)이 아니라 이명에 준한다는 의미로 준(準)이명이라고도 했으니...<br>해리성 정체성 장애와는 달리 페소아는 자신이 지닌 다른 인격들에 대해서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고, 그러한 인격들이 다양한 작품활동을 하도록 했다는 것이다.<br>이 책은 그러한 페소아들을 만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그들 이름으로 발표한 글들을 실음으로써, 그들 나름대로 개성을 지니고, 다른 문학을 지향하고 있음을 파악하게 한다.<br>여기에 이명이 아니라 본명 편에서 페소아가 직접 밝힌 일들도 수록함으로써, 페소아란 작가에 대해서 더 구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하고 있다.<br>때로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설명하지 못할 때가 있는데, 페소아는 그런 다양한 자신을 인식하고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창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br>하여 그는 이 지구에서, 그 중에서도 포르투칼이라는 나라에서 여러 페소아들로 살아가면서 작품활동을 한 사람. 그 많은 페소아들 중에서 어느 누구로 페소아를 규정지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한 책이다.<br>그의 이명에 관한 말... 이 말을 통해 페소아는 다양한 페소아들로 작품활동을 했음을, 그것이 바로 그임을 알게 해준다.<br>'내 이명들의 정신적인 기원은, 나의 근본적이고 한결같은 탈개성화와 가장(假裝)의 성향이지. ... 어릴 적부터 난 내 주변에 가상의 세계를 창조하면서 존재하지 않았던 친구들과 지인들로 나를 둘러싸는 성향이 있었지.'(325-326쪽)]]></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441/31/cover150/899420742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4413135</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과 나 그리고 책</category><title>김정원 시집-이런 마음으로 살아야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32117</link><pubDate>Sat, 13 Jun 2026 11:1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3211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42731784&TPaperId=1733211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7041/23/coveroff/k542731784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nbsp; 첫시. 충격을 준다. 수직이 수평을 이룬다니... 하, 비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다니.<br><br>&nbsp;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 수직으로 떨어지는데, 허만하 시인은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는 시집을 냈는데, 김정원 시인은 비는 수평을 이룬다고 한다.<br>&nbsp; 달랑 세 행짜리. 하지만 시에서 행은 중요하지 않다. 행들의 길고 짧음이 시의 좋고 나쁨을 결정하지 않는다. 시는 시로서 수평이다.<br>&nbsp; 그러다 수평이라니.. 평평하다는 뜻인가? 평평은 그럼 다 똑같다는 뜻? 아니다. 이때 수평은 다름을 포용한다는 뜻으로 봐야하지 않을까?<br>&nbsp; 하늘 아래 제가 크면 얼마나 크다고 하늘에서 보면 다 고만고만한 수평 아닐까. 그러니 비는 하늘에서 내려와 너희들은 수평이라고, 평등하다고, 그러니 모두 친하게 지내라고 하는 것 아닐까.<br>이 시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는데... 하늘 아래 고만고만한 존재들이 자기들만이 특출난 듯 남들을 무시하는 행태들을 보면 참... 무어라 말해야 할지.<br>그땐 이 시를 읽으면서 우리 모두는 하늘 아래서 수평이라고, 그러니 모두 잘 지내야 한다고 비가 말한다는 느낌을 받았으니...<br>137억 년이 넘는 우주의 역사에서 인간이 존재한 것은 아주 미미한 시간. 그런 우주의 시간에 인간의 역사란 아무리 돌출했다고 해도 평평한 역사. 이렇게 시야를 확대하면 고만고만한 우리들이 서로 잘났다고 다투고 있는 모습은 좀 그렇다.<br>더 큰 관점에서 인류를 보면 우리 모두는 평등하다. 평평하다. 우리는 수평이다. 이렇게 외치고 싶다. 그래서 시인의 말처럼 '수평은 동무가 참 많다'고 하고 싶다. 그런 마음이 필요한 요즘이 아닌가 싶고.<br>&nbsp; 비<br>수직은<br>곧장 수평이 된다<br>수평은 동무가 참 많다<br>김정원. 아득한 집. 푸른사상. 2021년. 13쪽.<br>그러다 다음 쪽으로 넘기니 또 다른 시. 와, 역시... '비'라는 시에서처럼 우리 모두가 수평이라면, 이제 남탓이 아니라 나를 돌아봐야 한다고... 내 마음을 먼저 살펴야 한다고 하는 듯한 이 시.<br>이런 마음을 우리가 지니고 있다면 너니 나니 하면서 구별하는 분별심이 조금은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데... 내 탓이요 운동이 한물 가더니, 이젠 모두 네 탓이요, 네 탓이요 하는 세상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는데... 이것도 역시 내 마음을 돌아보지 못하고 네 마음 탓을 한 것은 아닐지 우선 내 반성부터 하게 되었는데...<br>&nbsp; &nbsp;겨울 호수<br>네가 던지는 돌에 / 내가 부딪히고 / 아픈 까닭은 //물 샐 틈 없이 / 단단하고 차가운 / 나의 빙벽 때문이다 //내가 물이라면 / 네가 던지는 돌이 / 상처를 내지 못하고 //그 돌이 칼이라도 안으면 / 나비처럼 춤추며 가라앉아 / 그만 녹슬고 말 텐데 //얼어붙은 나의 가슴을 먼저 녹여야 / 복수초도 꽃을 피우는 / 세상에 봄이 온다<br>김정원. 아득한 집. 푸른사상. 2021년. 14쪽.<br>그래, 이런 마음의 자세라면 어찌 죽일 놈, 살릴 놈 하는 비난들이 난무하겠는가. 그런 비난이 들어설 틈이 없을 것이다. 칼도 받아들여 녹슬게 하는 마음일진대, 어찌 남을 향해 날을 세우겠는가.<br>내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내 마음을 열지 못하고 꼭꼭 닫아걸고, 얼어붙게 할 때, 그때 너만 다치는 것이 아니라 나도 다침을 이 시를 통해 생각하게 되는데...<br>이렇게 시집을 읽어가면서 마음을 녹여가고, 열어가고, 그러다가 '어머니 1~14' 연작에서는 눈물이 핑 돌기도 하고... 하다가, '도긴개긴'이라는 시를 읽고, 햐! 이런 일, 비판도 이렇게 부드럽게 할 수 있구나, 이런 비판 누가 트집잡을 수 있겠는가 하고 감탄을 하기도 하고.<br>&nbsp; 도긴개긴<br>토니 모리슨이 쓴 소설&nbsp; &nbsp; &nbsp; &nbsp; &nbsp; &nbsp;[The Bluest Eye]를 읽다가먼 산 쳐다보며 뜬금없이&nbsp;지앙스런 상상을 한다<br>숯검정 같은 흑인을"깜둥이"라고 경멸하는&nbsp;좀 덜 검은 혼혈아를"참 어처구니없는 놈이네"하고, 한국인이 비웃듯이<br>전라도 사람을"홍어좆"이라고 멸시하는일베 철부지를"헐 느자구없는 새끼네"하고, 콧방귀 뀌는 콩고인을<br>김정원. 아득한 집. 푸른사상. 2021년. 81쪽.<br>지금 우리 사회에 있는 누군가가 이런&nbsp;시를 읽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으니... 시집에 실린 시들, 마음을 푸근하게 감싼다. 시를 읽으면서 마음이 따스해진다. 각박해진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힘을 지닌 시들이다.<br>토니 모리슨의 [가장 파란 눈]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좋은 문학은 다른 문학과 연결되어 있으니, 한 작품이 다른 작품으로 사람을 인도하는 일을 하는 문학이 좋은 문학이기도 하니까.<br>(참고로 지앙스럽다에서 지앙은 전라도 사투리로 '말썽'이라는 뜻으로 많이 쓰인다고 하고, '느자구없는 놈'에서 느자구는 '싹수'의 사투리라고 한다. 그런데 지앙스런 상상이 말썽이 되는 상상이라고 하기엔 좀... 그냥 남들이 하지 못하는 나만의 상상으로 받아들이면 될 듯)]]></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7041/23/cover150/k54273178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0412391</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이야기, 사랑을 영원하게 하는. - [사랑을 멈추지 말아요]</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30348</link><pubDate>Fri, 12 Jun 2026 10: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3034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52533643&TPaperId=1733034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6440/67/coveroff/k45253364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52533643&TPaperId=1733034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사랑을 멈추지 말아요</a><br/>이종산 외 지음 / 큐큐 / 2018년 08월<br/></td></tr></table><br/>'우리는 이해받기 위해 이해하기 위해 / 사랑하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 이야기가 되었다. / 이야기의 힘은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고 / 살아 있게 하고 사랑하게 한다. / 그러니 사랑을 멈추지 말아요. / 이야기가 끝나더라도.' ('기획의 말'에서. 8-9쪽)<br>'퀴어'란다. 정상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난다고 여기는, 그러나 정상이라는 범주는 정해져 있지 않다. 이러한 정상이라는 범주를 확장하면 '퀴어' 역시 정상이라는 범주에 들어오게 된다.&nbsp;<br>사랑이라는 범주에 '정상'과 '비정상'을 나눈다는 것 자체가 '비정상'일 수가 있는데도 굳이 사랑을 종류로 나누고, 그 종류에 따라 '정상/비정상'의 범주에 넣으려고 하기도 한다.<br>어느 한 쪽 범주에 넣은 것이 '비정상'일 수 있다는 것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러니 기획의 말에서 말한 '이해받기 위해/이해하기 위해'라는 말, 무언가를 의식하는 말이다.&nbsp;<br>이해받기 위해서, 또는 이해하기 위해서 이야기를 만든다. 이야기는 다른 세계를 우리 세계로 들여오기 때문인데... 다른 세계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게 만드는 힘, 그것이 바로 이야기의 힘이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이해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며, 살아가게 된다.<br>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이야기가 끝나더라도 끝이 아니다. 이야기로 시작된 사랑은, 이야기가 끝나더라도 사람들 마음에 남아 있는다. 이야기로 남아 있기도 하고, 또 사랑으로 남아 있기도 한다.&nbsp;<br>다가온 사랑. 그러한 사랑은 멈추지 않는다. 이야기와 더불어, 또 이야기 없이도 사랑은 삶 속에 남아 있다. 이러한 사랑을 어떤 특정한 범주에 넣으려고 하는 것, 이것 자체가 이야기의 힘을 망각하는 행위다.<br>이야기는 어느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모든 것에 속하고,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는 것. 그냥 이야기로 존재하면서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것. 그것이 바로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가 바로 사랑이다. 따라서 사랑은 어떤 범주 속에 갇히기도 하지만, 어떤 범주에도 갇히지 않는, 모든 것이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그것이 사랑이다.<br>이 소설집에는 그러한 '사랑'이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서 펼쳐진다. 6명의 작가가 펼치는 이야기. 6명의 작가가 보여주는 사랑. 이 사랑 이야기를 읽고, 이 사랑 이야기가 끝나도 사랑은 멈추지 않는다. 사랑은 우리 마음 속에서 계속 이어진다.&nbsp;<br>짧은 소설들이다. 또 이 소설집은 특징이 있는데, 각자의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의 변주라는 것이다.&nbsp;<br>이종산 '별과 그림자'&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lt;-&nbsp; &nbsp;캐서린 맨스필드 '가든파티'김금희 '레이디'&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lt;-&nbsp; &nbsp;제임스 조이스 &lt;더불린 사람들&gt; 중에서 '에러비'박상영 '강원도 형'&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lt;-&nbsp; &nbsp;오스카 와일드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임솔아 '뻔한 세상의 아주 평범한 말투'&nbsp; &nbsp;&lt;-&nbsp; &nbsp;허먼 멜빌 '선원, 빌리 버드'강화길 '카밀라'&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lt;-&nbsp; &nbsp;조지프 토머스 세리든 르 파누의 '카밀라'김봉곤 '유월 열차'&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lt;-&nbsp; &nbsp;미야자와 겐지 '은하철도의 밤'<br>작가가 이 작품들을 의식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작가들이 참조한 작품을 꼭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먼저 읽었다면 두 작품을 비교하면서 어떻게 변주되고 있는지를 살피면서 읽는 재미가 있을 테지만.<br>각 작품의 줄거리를 이야기하지 않아도, 이 소설집에서는 '퀴어'라 할 수 있는 사랑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러한 사랑을 '비정상'이라는 틀에 가둬,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당장 멈추라고 할 수 없다는 점을 이야기를 통해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br>그렇다. 사랑은 모두 정상이고, 비정상이다. 우리 마음 속에 들어찬 사랑은 때로는 사람을 너무도 평범하게 만들지만, 어떤 때는 너무도 비범하게 만들기도 하니까.<br>이렇게 사랑은 모두 '퀴어'함을, 이 소설집에 실린 이야기들을 통해서 느끼게 된다. 여기에 작가들이 참조한 작품들을 읽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하니, 이야기가 이야기를 끌어들이고 있는 셈이다.<br>이 소설집에 실린 그야말로 '퀴어'한 이야기들을 통해 사랑의 여러 모습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 소설집의 이야기들은 끝났지만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사랑은 멈추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이야기의 힘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6440/67/cover150/k45253364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64406792</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소설로 보는 2026년 한국의 모습 - [2026 소설, 한국을 말하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28430</link><pubDate>Thu, 11 Jun 2026 10: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2843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52137122&TPaperId=1732843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90/70/coveroff/k05213712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52137122&TPaperId=1732843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2026 소설, 한국을 말하다</a><br/>성해나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6년 04월<br/></td></tr></table><br/>[소설, 한국을 말하다] 두 번째 책이다. 2024년에 나온 소설집을 읽고, 이렇게 한국의 상황을 작가들이 작품으로 표현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단 생각을 했다.<br>신문에 연재하고, 그 결과물을 단행본으로 냈다고 하는데, 신문에 연재한다는 조건인지 분량이 매우 짧다. 아주 짧은 소설들. 어떤 이는 엽편(葉片) 소설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손바닥 소설이라고도 하는데, 예전에는 그냥 외래어를 써서 '콩트conte'라고 하기도 했었다.<br>생각해 보라. 이번 소설집은 214쪽인데, 참여한 작가가 19명이다. 즉 19명의 작가가 214쪽에 걸쳐, 그것도 기획의 말이 9쪽까지 있고, 각 소설이 시작하기 전에 한 장에 걸쳐서 작가 소개와 제목이 있으니 한 소설 당 10쪽 정도의 분량이라고 보면 된다.&nbsp;<br>10쪽 정도의 분량에 한국 현실을 담고 있다? 신문에 한번에 연재가 끝나야 한다면 이 정도 분량일 수밖에 없고, 이 정도 분량이면 묘사보다는 설명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 이런 설명, 요약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김기태가 '효율'이라는 주제로 쓴 '진취적 시민을 위한 15분 읽기'라는 작품이다.<br>아예 이 작품에서는 묘사를 포기한다. 요약 설명을 하겠다고 대놓고 선전한다. 바쁜 시대, 빠름을 추구하는, 느림이란 비효율적이라는 이 시대를 반영한다고 작가는 이렇게 썼다.&nbsp;<br>'나는 이 '소설, 한국을 말하다' 지면의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실제로는 약 250장인 소설 전문을 압축하여 그 줄거리와 주제만 설명하기로 했다. 독자들은 단지 소설처럼 보이려고 늘어놓은 묘사들을 애써 읽을 필요없이 핵심만 취하면 되겠다. 즉 이것은 소설 읽어주는 소설이다.'(김기태, '진취적 시민을 위한 15분 읽기'에서. 이 책 29쪽.)<br>이런 소설들이 모여 있다. 하여 소설집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책의 편집이나 기획 자체가 요즘 추세에 맞게 쇼츠(반바지라는 뜻이 아니라 짧은 영상이라는 뜻으로)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br>내용이 조금만 길어져도 다른 영상으로 넘어가는 모습들. 하여 짧은 영상들, 누구 말대로 3초 안에 시선을 잡지 못하면 실패한 영상이라고 하는 쇼츠들의 홍수 속에서 소설 역시 긴 흐름의 장편소설보다는 짧은 소설이 더 잘 읽히는지도 모른다.<br>그런 점들을 떠나서 이렇게 쇼츠와 비슷한 이 소설집은 우리에게 2026년 한국에서 무엇이 문제가 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 점에서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문제점을 우선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니까.<br>문제를 인식한 다음에는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마음이 생길 수도 있겠지. 아무리 쇼츠가 유행하는 이 시대라 해도, 쇼츠로 인해 흥미를 느낀 점을 좀더 자세히 알아보려는 사람이 있을 테니까.<br>그렇다면 이 소설집에서 다루는 2026년 한국의 문제는 무엇일까. 무엇이 지금 우리 사회를 장악하고 있는가. 주제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주제 역시 작가 수에 맞게 19개다.<br>'인공지능, 효율, 갓생, 탈덕, 도파민 중독, 배달 음식, 챗GPT, 나이 듦, 7세고시, 입시, 퇴사, 불임, 금쪽이, 정치 갈등, 계엄, 그루밍, 노벨문학상, 목소리, 전세 사기'<br>하나같이 지금 한국에서 다루지 않으면 안 될 문제들이다. 그것을 작가들이 자신의 관점에서 아주 무겁지 않게 툭 툭 작품을 통해 건드려주고 있다.<br>자, 이게 한국에서 사람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이야. 이것이 우리 현실이야. 이런 현실을 무시할 수 있어? 하는 듯하다.<br>짧은 분량으로 결말을 내지 않는다. 아니, 결말을 낼 수 없다. 모두 진행 중인 문제이기에. 다른 사람들만이 겪는 일이 아니라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고, 또 겪어야 할 일이니까. 겪어야 할 일에서 이 중 몇몇이라도 빠졌으면 좋으련만, 빠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그것 또한 문제다.<br>이 작품 중에 좀 섬뜩한 느낌이 드는 결말을 지닌 작품이 성혜령이 '도파민 중독'을 주제로 쓴 '방콕'이란 소설이다. '방콕'이 사람들이 여행을 자주 가는 태국의 방콕이 아니라 '방에 콕 박혀 있다'는 뜻의 방콕이다.&nbsp;<br>그러니 '방콕'이라는 말에는 외부에 관심을 끊고 자신의 세계에서만 지낸다는 의미도 들어 있다. 자신의 세계에서 지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도파민'이다. 즉 자신의 기분을 좋은 상태로 유지해주는 요소가 있어야 하고, 그러한 상태에서는 외부의 일에 대해서는 무관심할 수밖에 없다.<br>외부에서 끊임없이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를 보내도 나는 도파민에 중독되어 외부로 시선을 돌리지 않는다. 왜 그럴까 생각을 하기는 해도 행동으로 나서지는 않는다. 그냥 방 안에서 스마트폰을 통해 남들에게 물을 뿐이다. 이 역시 방콕을 벗어나지 않는 행위다.<br>직접 부딪히는 이웃의 일에 관심이 없고, 오로지 이웃이 자신을 방해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니 이웃의 신호를 알 수가 없고, 또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br>이렇게 작가는 '방콕'이란 소설을 통해서 도파민에 중독된 우리들이 어떻게 외부와의 관계를 끊고 단절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 '도파민'에 해당하는 것들이 지금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짧은 소설이지만 긴 울림을 주는 소설이다.<br>이 작품집에 실린 소설들이 이 소설과 마찬가지로 짧지만 그 속에 담겨 있는 내용들을 상상으로 채워가기 시작하면 무지무지하게 긴 소설이 될 수 있다.<br>그리고 그런 긴 소설은 바로 우리가 삶에서 살아가면서 쓰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 소설을 읽고 우리 사회를, 자신의 삶을 다시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을 것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90/70/cover150/k05213712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9907022</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이야기</category><title>인공지능 시대, 언어력을 키워야  - [디스킬 제너레이션 - AI 시대, 생존을 위한 언어력 수업]</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22973</link><pubDate>Mon, 08 Jun 2026 09: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2297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02137636&TPaperId=1732297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023/4/coveroff/k00213763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02137636&TPaperId=1732297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디스킬 제너레이션 - AI 시대, 생존을 위한 언어력 수업</a><br/>김재인 지음 / 오리지널스 / 2026년 04월<br/></td></tr></table><br/>이 글을 보라. 믿을 수 있겠는가? 혹시 가짜 뉴스 아니냐고? 아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우리나라는 문맹률이 거의 0에 가까운 나라니까. 하지만 문맹률과 문해율을 구분해야 한다. 단지 글자를 읽을 줄 안다는 것과 글자를 읽고 그 의미를 이해한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니까.<br>'2024년 12월 10일자 &lt;&lt;이코노미스트&gt;&gt;는 '성인이 읽는 법을 잊어가고 있나?'라는 기사에서 OECD의 2023년 조사 결과를 소개합니다. 조사는 언어력, 수리력, 응용문제 해결력 등 세 가지 능력에 대해 이루어졌습니다. 그중 언어력에 관련해서 충격적인 내용은, 28%의 한국 성인의 언어력이 10세 아이 수준에 못 미친다는 것입니다. (OECD 평균은 25%), 반면 고급 수준의 성인은 7%에 불과했습니다.(OECD 평균은 14%)' (23쪽)<br>이런 상태라면 저자의 말처럼 탈숙련 세대의 등장이라고 할 수 있다. 책 제목인 '디스킬 제너레이션 The Deskill Generation'은 이렇게 인간이 지닌 기본적인 능력이라 할 수 있는 읽기 능력이 퇴화된 세대를 의미한다.<br>왜 읽기 능력이 퇴화되었을까? 아니 퇴화가 아니라 10세 수준에서 더 이상의 발달을 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는데, 인공지능과 같은, 또는 스마트폰을 공기처럼 여기는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10세 수준이 아니라 더 낮은 연령 대로 낮추어야 할지도 모른다.<br>왜냐? 생각을 하지 않으니까. 그냥 입력만 하면 출력이 되니까. 너무도 편하게 결과물을 얻을 수 있으니 굳이 힘들게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과제도 마찬가지다. 인공지능에게 맡기면 된다. 그러면 빠른 시간 안에 과제를 해결하고 나머지는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br>이때 자신이 원하는 일이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일들이었으면 좋겠지만, 원하는 일 또한 생각을 하지 않는, 힘들지 않고 쉽고 빠르게 할 수 있는 일들이 태반이니 더욱 생각할 틈이 없다.<br>이러니 점점 생각을 하지 않게 되고, 어려운 글을 읽으려 하지 않으니 언어력이 떨어질 수밖에. 저자는 언어력을 단순한 어휘 구사와 이해 능력으로 국한시키지 않는다. 언어력에는 수학, 과학, 철학 등이 포함된다.<br>즉 언어력은 글자를 이해하는 차원을 넘어서 세상을 이해하는 능력인 것이다. 이 언어력은 그래서 소통력, 협업력으로 나아가게 된다. 우리가 흔히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는 말 그대로 언어력과 소통력, 협업력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br>그러한 요소를 인공지능에게만 맡길 수 있는가? 자신의 모든 것을 인공지능에게 맡기면 언어력이나 소통력, 협업력이 길러질까? 아니다. 절대로 그럴 수 없다.<br>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인간의 언어력, 소통력, 협업력은 점점 줄어들고, 인공지능의 능력은 나날이 발전해 갈 테니, 그 결과는 우리가 우려하는 쪽으로 나아갈 수 있다.<br>인공지능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필요에 의해 우리의 능력을 보강해주는 존재로 인공지능을 활용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의 능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br>이 능력 키움이 그냥 되는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어렵고 지겹고 괴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지식을 암기하기도 해야 한다. 무언가 자신이 알고 있어야 검증할 수 있지 않겠는가.<br>자신이 모르면서 인공지능에게 의존하다 보면 어느새 인공지능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지금, 성인들의 읽기 능력이 떨어진 것도 딱히 인공지능 탓이라고 할 수 없지만, 인공지능 전에 나온 온갖 스마트 기기들이 원인을 제공했을 수는 있다.<br>그래서 스마트 기기를 어린 시절에는 규제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 아니겠는가. 단지 어린 시절만이 아니라 어른이 되어서도 전적으로 스마트 기기 또는 인공지능에 의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nbsp;<br>결국 우리 인간이 생각의 근육을 키워야 하는데, 그런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것이 인공지능과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함께 읽기, 쓰기, 말하기, 듣기 활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br>하여 저자는 언어력을 기르는 법으로 세 단계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독해력, 소통력, 협업력'을 키우는 단계다. 읽고 이해하고 상대와 소통을 하면서 함께 무언가를 이루어나가는 것, 이것이 바로 인간의 사회 생활이고, 이것을 이루는 기본적인 요소가 바로 언어이니, 언어력을 키우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사회에 잘 적응해서 살아가는 중요한 방법이라는 것이다.<br>인공지능에만 의존하지 말고... 인공지능이 지니고 있지 못한(적어도 현재까지는) 것이 바로 '취향'이라고 한다. 즉 취향은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중요한 것을 고르는 내적 일관성 coherence'(212쪽)이라고 한다. 이러한 취향은 '노이즈 속에서 특별한 신호를 식별해내는 능력'(212쪽)이니, 인간이 이러한 '취향 지능'을 지니게 된다면 인공지능 시대에 길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br>자, 이 책을 읽어보자. 앞으로 인공지능 시대가 될 것이니 힘들게 공부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사람, 생각을 바꾸게 될 것이다. 인공지능 시대가 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더 공부를 해야 한다.<br>내가 더 많이 알면 알수록 인공지능은 내 능력을 더 강화시켜 줄 것이지만 내가 알지 못하고 있으면 나는 인공지능에게 의존하는 종속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이 점을 저자는 책을 통해 강조하고 있으니...<br>인공지능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서도 우리 생각의 근육을 키우자. 기본적인 지식은 외부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 있도록 머리 속에 집어넣자. 적어도 기본적인 지식은 내면화해야 하지 않겠는가.<br>나를 인공지능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을 내 필요에 따라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저자의 주장이다.<br>또한 그렇게 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언어력(소통력, 협업력)을 키워야 한다. 이런 언어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이 이 책에 구체적으로 나와 있으니, 읽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언어력이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필수적이라는 사실, 이 점을 잊지 말자.]]></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023/4/cover150/k00213763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0230454</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사람이야기</category><title>반항의 혹, 장애물을 넘어 살아가는 힘 - [패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19726</link><pubDate>Sat, 06 Jun 2026 09:0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1972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1964674&TPaperId=1731972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02/64/coveroff/8961964674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1964674&TPaperId=1731972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패티</a><br/>패티 스미스 지음, 정혜윤 옮김 / 아트북스 / 2026년 02월<br/></td></tr></table><br/>외국 가수에 대해서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관심이 없으니 기껏 아는 가수라고 해야 '마이클 잭슨, 밥 딜런' 정도였다고 할까. 이들보다는 조금 더 많은 사람을 알고 있지만 거기서 거기다. 그들 음악 중에 밥 딜런의 음악 말고는 제대로 들었다고 할 수 있는 노래가 없으니...<br>그런데 어떤 책이 좋을까 검색을 하다가 순간 이 책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낡은 드레스를 입고 있는 사람의 모습. 책 제목이 '패티'다. 그렇담 이 사람이 패티겠군. 패티하면 우리나라 가수 '패티 김'이 떠오르는데,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표지 사진이 독특해서, 이 사람의 세계 역시 단순하지 않겠구나, 한번 읽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br>첫장을 넘기니 노래 부르는 사진과 그 옆 장에 '장애물이 우리의 날개다'라는 니콜라이 고골의 문장이 나온다.&nbsp;<br>장애물, 그렇다.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도 있지만 장애물을 넘어 나아가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대부분 장애물을 넘어서 나아간 사람들이 우리에게 이름을 남긴다. 그냥 평탄한 삶을 산 사람이 아니라.<br>책의 시작이 이러니, 패티란 가수, 분명히 많은 고난을 겪었으리라. 어떤 고난을 겪었는지,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음악활동을 했는지 이 책을 읽으면 알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br>시작하자마자 순식간에 읽게 된다. 중간에 끊기 싫어진다. 와, 이 사람, 이런 과정을 거쳐서 자신의 자리를 잡았구나, 단순히 노래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세상을 조금이라도 좋은 쪽으로 바꾸려고 노력했구나.<br>그런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 또 자신의 음악을 지키기 위해서 포기해야 했던 것들. 또한 삶을 위해 노래를 포기해야 했던 순간, 다시 노래로 돌아오는 과정이 이 책에서 펼쳐진다.<br>패티 스미스라는 가수의 일생이 책에 담겨 있다고 보면 된다. 출생에서 최근의 모습까지. 한 사건 사건이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진술되기보다는, 전 생애를 담고 있기에 스치듯 지나가는, 회고조의 내용인데도 읽기에 몰입이 된다.<br>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통해서 가족 간의 끈끈한 유대, 그리고 자신을 끝까지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동생들과의 관계. 남편과의 만남과 사별. 다른 음악가들과의 만남과 활동들... 이들 중에 내가 아는 이름도 꽤 나온다. 특히 밥 딜런과의 인연... 패티 스미스는 밥 딜런과의 만남을 이렇게 쓰고 있다.<br>'밥 딜런은 여전히 내 마음속 롤모델이었고, 내가 그보다 더 동질감을 느낀 사람은 없었다'(127쪽)고. 나중에 밥 딜런과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고 하니... 내가 모르고 있었지 음악을 좀 안다고 하는 사람에게 패티 스미스는 유명한 사람이었다.&nbsp;<br>그냥 넘길 수 있는 사람이 아니구나. 이런 가수가 있었구나. 자신의 음악 세계를, 세계 평화를 위해서도 꾸준히 일해왔던 사람이 바로 패티 스미스구나 하는 생각. 이런 활동들로 인해 패티 스미스는 2007년 로큰롤 명예의전당에 헌액되었다고 하니 음악으로 인정을 받은 사람이다.<br>게다가 글과 한시도 멀어지지 않았던 사람, 자신의 고민이 있었을 때 또 삶 내내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남긴 사람. 그러니 이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정리해서 책으로도 펴낼 수 있었으리라.<br>젊은시절, 한참 반항의 혹이 왕성할 때 패티는 자신의 방에 이런 글귀를 적어놓았다고 한다.&nbsp;<br>'우리는 예술/쥐들이다. 불결한 개새끼들이고, 우리가 탕진하는 말들이다'(124쪽)<br>이런 자세로 누구에게 끌려가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간 사람. 이런 패티에게 장애물은 자신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존재였을지도 모른다.<br>하지만 40이 넘어서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이 하나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뜨는 비극, 자신들이 아무리 외쳐도 전쟁이 끝나지 않는 상황에서 좌절도 한다. 그럼에도 해야할 일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nbsp;그렇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의 처음에 나온 '장애물이 우리의 날개다'라는 말을 평생 실천하면서 살아왔던 패티 스미스를 대변하는 말이다.<br>자신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패티는 '반항의 혹 반항의 혹 반항의 혹'이란 말을 쓴다. 이 반항이라는 말, 결국 장애물에 굴하지 않고 나아간다는 말이다. 그렇게 자신의 삶은 반항의 혹을 잃지 않고 나아가는 삶. 그런 삶을 살았던 사람의 이야기. 그것이 바로 이 책이다.<br>나처럼 패티 스미스를 잘 몰라도 이 책을 읽으면서 그를 알아가는 것도 좋겠다. 그리고 검색하면 패티 스미스의 노래도 들을 수 있으니, 한두 번 들어도 좋겠다. 들으면서 그의 삶을, 또 그가 바라던 세상을... 이제 누가? 바로 우리가 이어서 만들어가려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br>우리에게도 많은 장애물들이 있겠지. 그 장애물은 우리에게 현실에 안존하라고, 그냥 그 자리에 머물라고 한다. 그때 패티 스미스가 쓴 이 문장 '반항의 혹'을 생각하면 된다.<br>반항, 저항, 그것이 장애물을 극복하는 길이고, 또 세상을 바꾸는 힘이지 않겠는가. 패티 스미스가 세계 전역을 돌며 평화를 노래했다고 하는데,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세계를 순회하면 평화의 메시지를 보내는 음악인들이 있으니...<br>패티 스미스의 삶은 본인에게만 또 그가 살았던 나라에만 국한되지 않고 이렇게 세계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기회가 되면 패티 스미스가 쓴 또 다른 책도 읽어봐야겠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02/64/cover150/8961964674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4026488</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그림이야기</category><title>미술 전시를 통해 본 페미니즘  - [전시로 보는 페미니즘 미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17860</link><pubDate>Fri, 05 Jun 2026 08: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1786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5643171&TPaperId=1731786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85/66/coveroff/896564317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5643171&TPaperId=1731786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전시로 보는 페미니즘 미술</a><br/>고경옥 지음 / 현실문화 / 2026년 03월<br/></td></tr></table><br/>198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페미니즘을 미술 전시를 통해 실현했던 과정을 살펴본 책이다. 페미니즘이라는 말에서 연상할 수 있듯이 주로 여성 작가들의 전시를 다루고 있다. 그렇지만 페미니즘 전시가 여성 작가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남성 작가들도 참여하고 있음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다.<br>즉 페미니즘이란 특정 성만이 주장하는 이론이나 실천이 아니라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성의 구분을 떠나서 사람들이 사람으로서의 권리를 보장하고 누려야 한다는 주장이자 실천이다. 그러니 페미니즘을 특정 성으로 가두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br>지금이야 페미니즘에도 다양한 이론이 있고, 다양한 실천이 있으며, 이들이 같지 않음을 인정하고 있지만 한때 페미니즘을 단일한 운동으로 생각한 적도 있었다.<br>이렇게 단일한 운동으로 생각하면 페미니즘이 지닌 다양성을 보지 못하게 된다. 페미니즘 자체가 다양성을 포함하고 있는 운동이고, 나만큼이나 다른 존재들도 중요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운동이니, 어느 범주로 국한시켜 다른 범주들을 배제하는 것은 페미니즘과 맞지 않다.<br>이 책에 실린 여러 전시들을 보면 그 점을 뚜렷하게 알 수 있다. 여러 전시를 통해서 페미니즘 미술을 보여줬다고 하지만, 그들이 전시한 작품들을 보면 표현기법에서부터 주제까지 너무도 다양함을 알 수 있다.<br>이러한 다양함,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하는 모습. 이것이 바로 페미니즘 미술이고, 또 페미니스트들이 지녀야 할 자세 아니던가.<br>하여 이들 전시에는 페미니즘을 강조했다고 비판을 받는다든지, 페미니즘적 요소가 부족하다고 비판을 받기도 하고, 또 서로 다른 작품들이 한 공간에서 전시되는 바람에 전시의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한다.<br>하지만 그런 전시가 바로 페미니즘의 실천 아니겠는가. 어느 하나로 가두는 것이 아니라 다양하게 열려 있는, 다름을 받아들이는 전시들.<br>많은 전시들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고, 그런 전시들이 어떻게 페미니즘과 연결되는지, 주요 작가들은 누구인지 잘 설명해주고 있는 책이다.<br>여기에 서울에서의 전시만이 아니라 부산에서 활동한 작가들에게도 한 장을 할애해서 설명하고 있으니, 이런 책의 구성 역시 페미니즘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br>페미니즘을 표방한 미술 활동이 서울에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닐 테니 말이다. 오히려 다른 지역에서도 활발한 활동들이 이루어졌을 텐데, 그에 대한 연구들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그런 현실에서 부산 지역의 전시를 살펴봄으로써 지역을 확대한 점이 이 책의 장점이라 할 수 있다.<br>이런 연구를 확장해서 부산만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이루어진 전시들에 대한 연구, 그것들이 지닌 의미를 찾는 연구들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br>이 책을 읽으면서 좋은 점은 지금은 만날 수 없는 작품들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인데, 바로 이 점이 아쉬운 점이 되기도 한다. 많은 경우 작품이 사라져 지금은 볼 수 없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br>그래서 책자로만 남은 그림이나 또는 설명을 통해서 이런 그림이겠지 하고 짐작할 수밖에 없는 그림들이 있는데, 그나마 이렇게라도 이름이라도 남은 작품은 다행이라고 해야할까.<br>당대에 전시되었음에도 역사에서 사라져버린 작품들이 얼마나 많을까. 지금은 전시회에 도록들이 잘 되어 있어 작품들이 사진으로도 남겨지지만 당시에는 사진으로도 남지 않은 작품들이 꽤 있었음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nbsp;<br>그럼에도 이들은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왔고, 자신들의 주장을 살린 전시회를 오랫동안 개최해왔다는 사실. 그러한 활동들이 쌓이고 쌓여 지금 우리 미술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br>이 책에 나온 80-90년대 페미니즘 전시를 했던 모임들... &lt;시월 모임&gt;, &lt;터&gt;, &lt;30캐럿&gt; &lt;그리뮤패 둥지&gt;, &lt;만화패 미얄&gt; 그리고 '여성미술연구회' 여기에 부산에서 활동했던 미술가들과 그들이 협업해서 했다는 전시 &lt;99여성미술제:팥쥐들의 행진&gt;<br>이런 여러 전시에 대한 설명을 만나볼 수 있는 책. 더불어 각 전시회에 참여했던 작가들과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 우리가 지나온 과거에 페미니즘이 미술작품의 전시를 통해 어떻게 실천되고 있었던가를 보여주는 책이다.<br>그림 하나를 보자. &lt;시월 모임&gt;의 두 번째 전시, [반에서 하나로]에 나온 작품이라고 한다. 제목이 현모양처인데... 과연 여성을 동등한 대상으로 대하고 있었는지, 과거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고 , 지금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br>(고경옥, 전시로 보는 페미니즘 미술. 현실문화연구(....A). 2026년. 51쪽)]]></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85/66/cover150/896564317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856699</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사색하는 인간의 삶-‘불안‘의 삶 - [불안의 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12687</link><pubDate>Tue, 02 Jun 2026 10: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1268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699796X&TPaperId=1731268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1/29/coveroff/899699796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699796X&TPaperId=1731268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불안의 서</a><br/>페르난두 페소아 지음, 배수아 옮김 / 봄날의책 / 2014년 03월<br/></td></tr></table><br/>페소아 작품 읽기.<br>어렵다. [불안의 서]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데, 왜 불안일까? 인간이 실존에 대해서 불안감을 느낀다는 말일까? 아니면 삶 자체가 불안일까? 죽음을 향해 가기 때문에 삶은 불안할 수밖에 없는가.&nbsp;<br>읽어보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느끼는 불안은 아니다. 불안은 행동하는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온다.<br>행동하는 인간은 이것저것 재지 않는다. 고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한다. 행동을 통해서 삶을 살아간다. 아니, 살아간다는 의식을 하지 않고 그냥 살아간다. 그러니 행동하는 인간에게는 불안이 스며들 틈이 없다.<br>즉 여유가 없다. 하지만 사색하는 인간은 이것저것 많은 고민을 한다. 행동하기 이전에 생각을 통해서 세상을 본다. 세상을 본다고 하기보다는 세상을 만든다고 하는 편이 좋겠다.<br>있는 세상에 그냥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없는 세상을 있게 만들어내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해야 할까. 또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게 될까. 이러한 생각과 고민들이 결국 삶을 불안하게 한다.<br>불안에서 벗어나는 길은 생각을 하지 않고 행동하는 것인데, 사색하는 인간은 행동보다 생각이 앞서고, 그것을 자신도 어찌할 수 없기 때문에 불안과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다.<br>이 책은 페소아가 만난 사람에게서 받은 글이라고 하면서 시작을 하는데, 이 글을 쓴 사람은 페소아의 또 다른 페소아라고 할 수 있다. 즉 페소아들 중 한 명인 소아레스가 이 글을 쓴 주인공인데... 자신이 몇 년 동안 일기처럼 쓴 글이 바로 이 책, [불안의 서]다.<br>회계보조원으로 일할 때 그는 행동을 하기 때문에 불안에 싸이지 않는다. 그냥 일상을 살아간다. 그러나 잠시 틈이 나면 생각하는 인간으로서 그는 불안을 느낀다. 수많은 자아들을 발견하고, 그것을 글로 남긴다.<br>글을 통해서 그는 자신의 세상을 만든다고 할 수 있는데, 길고도 긴 여정을 짧은 글들로, 그러니까 일기라고 할 수 있는 글들로 이 책을 이끌어가고 있다.<br>글에 년도가 나오는 장면도 있는데, 1910년대로 먼 과거로 돌아가기도 하지만, 대체로 이 책에 실린 글들은 1930년대에 쓰인 글이다. 페소아가 1935년에 세상을 떴다고 하고, 이 책에서는 1934년이 마지막 해로 나온다.<br>그러니 이 [불안의 서]는 소아레스라는 또 다른 페소아가 쓴 자신의 내면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가끔 겹치는 내용도 나오는데, 일기를 몇 년에 걸쳐 쓰다 보면 자신이 생각하고 느낀 것이 비슷해질 때가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br>수많은 경구들, 적어놓고 때때로 들여다보고 싶은 구절들이 많은데, 우리가 행동하는 인간이라도 늘 행동만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행동 사이 사이에 그 틈을 생각이 파고든다. 그러면 우리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과 다른 세상에 들어가게 된다.<br>낯선 세상. 의식하지 않았던 세상을 의식하게 되고, 그 세상에 대해서 생각하고 생각하고... 그러니 행동하는 인간이라도 이 책에 나오는 구절들을 들여다볼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br>페소아(소아레스)가 창조한 세상이 어떠한지 보고 싶은 욕구가 생기기 때문인데... 그렇게 이 책은 '불안'에 떠는 영혼의 이야기라 할 수도 있지만, 사색하는 인간이 삶을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여준다고 하는 편이 좋겠다.<br>창조자로서의 불안. 당연한 것 아닌가. 자신이 세상을 만들어가는데 어찌 불안이 없겠는가. 이런 불안을 달래기 위해서, 어쩌면 그 불안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글을 쓰는지도 모른다.<br>소아레스가 글을 써서 남기고 이를 페소아가 출간하게 되었으니... 이 책에 나오는 구절, 소아레스든 페소아든 그들에게 해당하는 말이다.<br>'글은 내 영혼의 구원이다.' (30쪽)<br>많은 구절들이 마음에 와닿는데, 그 중 이해가 잘 안되는 구절들이 있으면 또 다른 번역본을 찾아보기도 했다. 포르투갈 어를 모르니, 할 수 있는 일이 다른 번역본과 비교하는 것인데... 의미는 통하는데 문장이 다른 경우가 꽤 있다.<br><br>한 예로 '권태는 할 일이 없어서 병적인 분노가 치솟는 것과는 또 다른 상황이다. 그보다 훨씬 더 질환적인 상태, 뭔가를 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으리라는 감정이다. 이것은 곧, 할 일이 많으면 많을수록 권태도 따라서 지독해진다는 의미다.'(735쪽)는 문장이 있는데, 머리로 잘 들어오지 않는다.&nbsp;<br>하여 다른 번역본을 찾아보니 '할 일이 없어서 지겨운 건 권태가 아니다. 권태는 무슨 일이든 할 가치를 못 느끼는 상태인 더 심각한 병이다. 이런 상태일 때는 할 일이 많을수록 더 심한 권태를 느끼게 된다.'(불안의 책. 문학동네. 오진영 옮김. 2015년. 546쪽.)고 되어 있다.<br>앞의 문장보다 뒤의 문장이 그래도 이해하기가 더 쉬운데... 하여 포르투갈 어를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은 어쩔 수 없다. 이해 안 되면 다른 번역본을 찾아보기. 그래도 안 되면 내 상상으로 그 공백을 메우기.<br>이렇게 읽기 역시 쓰기와 마찬가지로 세상을 창조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것이 이 책을 읽은 소감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1/29/cover150/899699796x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212974</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이야기</category><title>이미 왔다. 1020 극우는. - [1020 극우가 온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10672</link><pubDate>Mon, 01 Jun 2026 08: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1067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62137117&TPaperId=1731067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50/61/coveroff/k36213711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62137117&TPaperId=1731067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1020 극우가 온다</a><br/>정민철 지음 / 페이지2(page2) / 2026년 04월<br/></td></tr></table><br/>1020 극우를 누가 불러왔나?&nbsp;기득권이다. 보수든, 진보든 이미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기득권 세력이 1020을 극우로 만들고 있다. &nbsp;물론 모든 1020이 극우가 되지는 않는다. 연령이 같다고 해도 생각은 다양하고, 지역이 같다고 해도 생각이 또 다르고, 경제적 능력이 비슷하다고 해도 생각은 다르고 학력이 같다고 해도 생각과 행동이 다른 것이 인간이니까. 하지만 흐름으로 이야기하면 1020이 보수화, 극우화되었다고 할 수 있으니... 저자가 제목에 쓴 말을 그대로 쓴다.  &nbsp;보수는 그들을 이용하고, 진보는 그들을 가르치려 들지만, 본질적으로 그들을 극우로 만든 것은 보수냐 진보냐를 가를 필요가 없다.&nbsp;무엇보다도 이 사회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우선 그들에게 막대한 상실감을 안겼다는 것. 더 이상 어떻게 해볼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게 했으니까.   &nbsp;'헬조선'(hell조선)이라는 말,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는 말이 일반적으로 쓰이고, 부모 세대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고, 스펙도 더 많이 쌓았지만 정작 부모 세대보다 잘살 가능성이 거의 없는 처음 세대라고, 즉 부모보다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는 첫세대.  &nbsp;&nbsp;물러설 곳이 없다. 이육사 시 '절정'을 생각한다. '서릿발 칼날 진 그 위에 서다 / .../ 한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 상황 아닌가. 이런 이들에게 너희가 노력을 안 해서 그렇다고 하면? 말이 안 된다. 먹히지도 않는다.  &nbsp;시인은 생각해 본다고 했지만, 1020들은 행동을 한다. 생각이 아니다. 행동이다. 우리를 이렇게 만든 자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다.&nbsp;이렇게 만든 자들? 그들이 생각하는 것은&nbsp;보수 쪽이 아니다. 이들이 쉽게 만나고, 또 그들의 도파민을 팍팍 뿜어내게 한, 다 좌파들 탓이라고 하는 극우 유튜브들을 만난 그들은, 진보 쪽을 향해서 너희들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됐어. 너희들 때문이야! 외치고 있다.  &nbsp;그런데, 진보는? 애들이 뭘 몰라서 그래. 사실을 몰라서 그래. 사실만 알면 생각을 바꿀 거야. 한단다. 참 낙관적인 진보다.  &nbsp;낙관적인 진보가 아니라 세상물정을 모르는 진보다. 이러고서야 어디 진보라고 할 수 있나? 진보는 현재를 보고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미래를 보고 현재를 미래로 끌어가는 사람들 아닌가. 그런데 이들은 현재조차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  &nbsp;이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이대로 가면 10, 20년 뒤에는 극우가 우리나라 권력을 장악한다. 파시즘의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유럽을 보라.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다는 유럽에서도 극우가 세력을 얻어가고 있지 않은가.  &nbsp;그러니 현실을 제대로 보라. 지금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이대로 가면 극우가 우리 사회를 점령한다. 이미 점령되어 가고 있다.  &nbsp;&nbsp;그걸 어떻게 아냐고? 학교를 보면 안다. 학교에서 과연 민주주의 가치가 교육되는가? 민주시민 교육을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웃기는 소리다. 그런 수업에서 학생들은 잔다. 아니면 딴짓을 한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낸다. 귀로 들어온 소리가 마음에 담기지 않는다.  &nbsp;교사가 옳은 소리를 하면 꼰대소리라고 한다. 선생님이 뭘 모르고 하는 소리란다. 또 남을 혐오하는 말을 하면서도, 혐오 동영상을 보면서도 그냥 재미로 한단다. 재미? 끝이다.   &nbsp;이런 학교의 모습만 봐도 이미 우리 사회는 극우가 (이때 극우는 혐오를 기반으로 하는 집단이다. 남을 몰아내는 것을 자신의 존립 기반으로 삼는 집단) 자리를 잡고 있다.   &nbsp;학교만 그런 줄 알았다. 이 책을 읽기 전엔. 하여 학교에서 스마트폰을 금지하면 나아질 줄 알았다. 그런데 더 심각한 집단이 있단다. 바로 군대다. 20대 초반의 남성들로 구성된 집단. 여기서도 핸드폰을 허용한다.  &nbsp;군대에서 핸드폰 허용. 다름을 거의 허용하지 않는 군대에서 핸드폰을 사용했을 때,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또는 틱톡 등등을 통해 목소리 큰 사람의 (주로 선임병이겠지만) 관점을 담은 영상들이 공유될 수밖에 없다.  &nbsp;그런데 따분하고 단조롭고 또 왠지 자신이 피해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군대에서 어떤 영상들이 돌까? 그들의 시선을 잡고 그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영상, 주로 극우 논리를 주입하는 영상이 그들에게 공유된다고 한다.  &nbsp;&nbsp;다른 영상을 보기도, 다른 생각을 말하기도 힘든 군대에서 18개월, 훈련소 생활을 뺀다고 해도 16개월 이상을 그와 비슷한 극우 영상들을 보게 되면 자연스레 극우 논리가 주입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전역해서는 학교나 자신이 있던 곳으로 가서 그러한 논리를 주장하게 된다고.  &nbsp;이미 학교, 군대를 통해 습득한 극우 논리를 하루 아침에 바꾸기는 힘들다. 여기에 엄청난 알고리즘의 위력. 비슷한 영상만 계속 추천하고, 심지어 그 영상들이 자극적이어서 재미까지 있다면... &nbsp;이게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1020이 뭘 몰라서, 사실을 몰라서 그런다고... 아니, 그들에겐 사실이 중요하지 않다. 힘들어하는 자신들에게 사이다 같은 통쾌함을 주는 영상, 도파민을 팍팍 분비시키는 영상이 더 좋다.  &nbsp;  이 점을 놓치면 그들을 설득할 수가 없다. '3초'라고 하지. 3초 안에 그들의 시선을 잡아야 한다. 그런데 자칭 진보라는 사람들, 정말 설명이 길다. 길어서 도저히 끝까지 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또 왜 이리 평이하고 도덕적인가. 더 보고 싶지 않다. 재빨리 다른 영상으로 넘어간다.  &nbsp;현실이 이렇다. 이런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과거에 머물러서도 안 된다. 바로 이런 현실을 알고 이를 활용하는 사람이 이 책의 저자 정민철이다.  &nbsp;이들의 언어로, 이들의 감수성에 맞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 지금 외롭다고, 고립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과 같은 사람이 많이 활동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 지원을 '진보' 쪽에서 해주어야 한다고 요청한다.  &nbsp;절박한 요청이다. 그러면서 그는 가족들이 밥상에서 대화할 것을 추천하고 있다. 가족이라는 1차 집단에서 서로가 소 닭 보듯 살아온 모습이 1020을 극우로 내몰기도 했다는 것. 훈계가 아니라 대화를, 주입이 아니라 이해를 바탕으로 대화를 하라고...  &nbsp;서로의 마음을 전달하라고. 그러면 조금씩 달라질 것이라고. 온라인을 통한 대항 활동도 중요하지만 대면을 통한 이해와 공감의 장을 넓혀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nbsp;읽으면서 등골이 서늘했다. 큰일이군. 하지만 늦지 않았다고, 이런 문제제기를 하는 청년이 있으니. 이런 청년이 고립되지 않고 더 많은 청년들과 연대할 수 있다면, 지금 우려하는 상황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nbsp;정치권이 정신차려야 한다고... 저자가 제기한 요청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받아들여야 늦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적어도 이런 목소리 들을 수 있는 정치권이 진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현재에서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그러한 정치인들을 '진보'라고 할 수 있을 테니까.<br>한 가지 명심할 점은 1020이 극우화 된다고 해서, 모든 1020이 극우 쪽으로 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들 중에서도 다양한 정치적 성향이 나타나고, 극우로 가는 1020 못지 않게 진보로 가는 1020도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대면을 통한 이해와 공감의 장을 넓혀가려는 노력이 필요한 지금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50/61/cover150/k36213711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9506199</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과 나 그리고 책</category><title>소리의 색깔이 합쳐지면 무슨 색이? - 장시우 시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05506</link><pubDate>Sat, 30 May 2026 11:0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05506</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32835946&TPaperId=1730550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8548/43/coveroff/k932835946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nbsp; 지방자치단체 선거, 사전투표일이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많은 사람들이 사전투표에 참여했다고 한다. 현재까지 저번 선거 때보다 투표율이 높게 나왔으니... (아직은 진행형이지만)<br><br>&nbsp; 투표하기 전까지 수많은 소리들을 듣는다. 자신을 지지해달라는 소리들. 자기가 무엇을 하겠다는 소리들. 이 일에는 자신이 적임자라는 소리들. 상대를 비방하는 소리들. 소리, 소리, 소리 들.<br>&nbsp; 수많은 소리들에 싸여 살아가고 있지만 평소에는 그 소리들을 잘 듣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고 지낸다. 그러다 선거철이 되면 다른 모든 소리들을 누르는 후보자들의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nbsp;<br>&nbsp; 이래도 안 들을래? 이래도 안 들려? 하는 듯이 사방에서 여러 소리들이 들려온다. 그 소리들, 색깔로 바꾸면 무슨 색깔일까?&nbsp;<br>소리를 볼 수 있을까? 볼 수 없겠지. 듣다와 보다는 다르니까. 하지만 듣다와 보다가 같을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 몸의 감각기관이 다를 뿐, 외부의 존재를 내게로 들여오는 과정이 바로 '보다/듣다'일 테니.<br>장시우 시집을 읽다가 와, 이 시인, '소리'에 대해서 이렇게 많은 시를 썼나 하는 생각을 했다. 시집에 실린 시들이 대부분 소리다. 소리, 소리, 소리. 그런데 소리를 볼 수 있겠단 시들이 있다. 또 시 중에 '소리에 빛깔이 있다면'(114-115쪽)이라는 시도 있다.<br>그래, 소리에 빛깔이 있다는 말은 색이 있다는 말이니까. 소리 역시 자신들만의 색채를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말소리로 사람을 구분하기도 하니... 소리에 색깔이 있고, 그 소리들은 그 사람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br>이렇게 다양한 소리, 개성 있는 소리, 자신만의 소리를 듣지/보지 못하고 그것을 뭉뚱그려 보고/듣는다면 어떨까?<br>그런 세상은 참 삭막하지 않을까? 그런 세상이라면 사람을 어느 한 쪽으로 딱 규정하고 다른 면은 마치 없는 것처럼 여기고 대우하지 않을까? 이런 세상이라면 사람들끼리 교류가 없어지고, 오로지 내 편 아니면 다 편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이 지배하지 않을까.<br>시인이 시에서 말하고 있는 많은 소리들을 읽으면서, 문득 색깔이 떠올랐고, 그러다 아주 오래 전 학창시절, 미술 시간에 배웠던 삼원색을 합치면 검은색이 되고, 빛의 색깔을 합치면 하얀색이 된다는 것이 떠올랐다.<br>'검은/하얀'의 짝을 '어둠/밝음'으로 치환한다면(이렇게 나누는 것도 색깔에 대한 고정관념이겠지만) 지금 세상에 나도는 수많은 소리들을 합치면 무슨 색깔이 될까 하는 생각을 했다.<br>무슨 색깔이 들까? 2024년 겨울부터 2025년 봄까지 광장에 모였던 사람들, 그들을 '빛의 혁명'을 이룬 사람들이라고 한다. '빛의 혁명'이라는 이름 기가 막히다. 바로 이 빛의 색깔들이 합쳐지면 흰, 밝은 색이 되기 때문이다.<br>따라서 계엄이라는 어둠을 몰아내는 밝은 빛, 이것이 바로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내는 소리들의 합이었다. 그렇다. 이렇게 소리는 빛의 색깔을 띨 수 있다.<br>하지만 소리가 다 그런가? 빛의 색깔이 아닌 어둠의 색깔을 지닌 소리들도 있지 않은가? 사람을 벼랑으로 내모는 소리. 그런 소리들이 합쳐지면 검은, 어둠의 색깔로 변한다. 세상 역시 캄캄한 어둠의 세상이 된다.<br>지금 선거에 나선 사람들의 말,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말. 과연 빛의 말일까 아닐까. 그들의 말이 합쳐져 밝은 색이 될까, 아니면 어두운 색이 될까? 그것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br>바로 그러한 판단, 어두운 색으로 가는 말들을 막을 수 있는 귀, 그것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빛의 말들이 더 우세해지도록 하는 일. 우리 스스로 빛의 말들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br>남에게 상처주는 말, 남을 비방하는 말, 자신만을 드러내는 말, 그 말들은 합쳐지면 어두워진다. 다른 존재를 가린다. 그리고 자신마저도 가린다. 아니 자신의 좋지 않음을 가린다. 그런 어두운 존재와 함께 어둠 속에 갇힐 것인가, 아니면 빛과 같은 밝은 말, 합쳐져 더 밝은 세상이 되는 그런 말들을 하는 사람은 다른 존재들도 환한 세상에 있게 한다.<br>합쳐져 어두운 소리를 내는 소리들이 합쳐지지 않게. 그 소리들이 합쳐지지 않고 각자의 소리만을 낸다면, 그 소리 역시 제 색깔을 지닌 소리일 뿐이니까. 물론 합쳐져 밝은 소리가 되는 소리는 홀로 소리를 내도 좋지만 합쳐 소리를 내도 좋다. 밝은 세상을 만드는 소리니까.&nbsp;<br>우리가 추구해야 할 소리들은 어떤 소리인가? 우리의 소리에는 어떤 빛깔을 입혀야 하나? 아니 인위적인 색이 아니라 자연스런 빛의 색깔이 되도록, 그래서 우리 소리들이 합쳐져 하얗고 밝은 색이 세상을 뒤덮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br>장시우 시집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말도 어두운 색으로 가는 말이 아니라 밝은 색으로 가는 말이 되도록 해야겠다는...<br>자, 시인처럼 우리 주변의 소리들은 무슨 색깔일지, 우리도 한번 생각해 보자. 특히 사람들이 내는 소리를..&nbsp;<br>&nbsp;소리에 빛깔이 있다면<br>소리에 빛깔이 있다면이 방 안에 가득한 고요는창밖에서 가끔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는세탁기 빙빙 돌아가는 저 소리는벽 너머 들려오는 누군가 씻는 물소리는타닥타닥 글을 쓰며 내가 만드는 소리는주전자에서 물 끓어오르는 저 소리는아침 산책길에서 만난 나팔꽃 벙그는 소리는참새 떼 달음박질하듯 나무를 옮겨 가며 지저귀는 저 소리는온 종일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가 방 안에 가득할 때그 색들은 무슨 빛깔이어야 할까그저 가기 서운했던가검정 비닐을 데리고 가는 저 바람의 색은 또,지금 후두둑 떨어지는 소나기저 빗방울 소리는 어떤 색일까소리에 맞는 색을 찾아 주느라나는 온종일 햇살을 켠다<br>장시우. 이제 우산이 필요할 것 같아. 걷는사람. 2021년. 114-115쪽.&nbsp;<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8548/43/cover150/k93283594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5484332</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거울 단어‘를 생각한다-최돈미 시집 - [DMZ 콜로니]</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03391</link><pubDate>Fri, 29 May 2026 06:5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0339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012957X&TPaperId=1730339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56/31/coveroff/897012957x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012957X&TPaperId=1730339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DMZ 콜로니</a><br/>최돈미 지음, 정은귀 옮김 / 문학사상 / 2026년 04월<br/></td></tr></table><br/>'이이이'라는 말이 이상하게 머리에 남아 있다. 이 시집에 나오는 한 구절일 뿐인데... '이이이'<br>시인은 '이'를 참 여러 가지로 풀이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냥 '이'라고 쓰면 읽는 사람은 많은 이'들'을 생각하게 된다.<br>이것 저것 할 때의 '이'. 이때의 '이'는 상대를 지칭하는 언어가 된다. 이봐 할 때의 이. 그리고 둘을 의미하는 이. 이 '이'를 시집 제목과 연결지으면 남과 북이 될 수 있다.&nbsp;또한 몸에 기생하면서 피를 빨아먹는 '이'를 뜻할 수도 있는데, 이는 분단이나 반공에 기생해서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는 존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빨을 뜻하는 '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이때의 '이'는 우리의 생존에 필요한 존재가 된다. 자칫하면 상대를 물어뜯는 이가 될 수도 있고.<br>이런 사전적 의미나 상징적 의미를 떠나서 차마 말을 할 수 없을 때 입에서 신음처럼 나오는 소리로 '이'를 생각할 수도 있다. 시집에는 고문을 당하는 사람이 나오니, 그에게 언어는 불필요하다. 자신의 몸에서 나는 소리 '으'보다 더 이를 악물고 참아내지만 어쩔 수 없이 나오는 소리 '이'를 낼 수밖에 없다.,<br>참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이'를 시인은 그냥 '이'로 표기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이이'라고 중첩이 되고 있는데, 이 구절이 계속 머리에서 떠나지 않게 된다.<br>반복을 통해서 각인이 된다고 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차마 말로 하지 못하는 감정을 이런 말로 표현할 수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br>언어로 내 편, 네 편을 가르고, 내 편이 아니면 처단해야 하는 상황에서 말을 할 수 없게 된 존재들이 내는 말. '이이이'<br>시집을 읽으면 이 '이이이'를 '아아아'로 바꾸게 된다. 이렇게 시를 쓸 수 있구나. 이렇게 분단 상황에서 겪은 우리 현실을 이런 형식으로 표현할 수도 있구나.<br>자료와 사진과 다른 사람의 글들, 그리고 시인 자신이 쓴 글씨와 자신의 가족사까지... 시에 모두 들어 있다. 어느 하나로 표현할 수 없다는 듯이, 여러 요소들이 모여 한 편의 시를 구성한다.<br>'DMZ'&nbsp;비무장지대라고 번역할 수 있는 말. 하지만 비무장지대라는 말이 무색하게 무장이 강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지대. 무장한 군인들이 서로 총구를 맞대고 있는 공간. 그곳이 바로 비무장지대 아닌가. 그러니 비무장지대라는 말을 거울에 비춰 거꾸로 읽을 수 있어야 한다.<br>시에 나오는 거울 단어처럼... 그냥 글자가 거꾸로 뒤집힌 것이 아니라 의미도 뒤집힌. 그렇다면 '콜로니'는 무엇인가? 식민지라고 번역할 수 있지만, 어떤 집단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나의 의미만을 지니고 있지 않으니, 이 '콜로니'라는 말도 거울에 비춰보자.&nbsp;<br>그냥 볼 수 없는 말을 찾아내야 한다. 이 시를 읽으려면.&nbsp;'DMZ'가 냉전시대 분단을 상징하는 말로 우리나라의 과거 비극을 담고 있는 말이지만, 이곳은 평화의 공간으로 바뀔 수 있다. 자연이 풍부한 생태계를 만들어내고 있는 곳이 바로&nbsp;'DMZ' 아닌가.<br>지금 이곳에는 지뢰를 비롯한 온갖 무기들도 있지만 인간에 의해서 멸종이 될 뻔한 많은 생물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온갖 것들이 공존하는 장소로 존재하고 있는 곳이기도 한데... 콜로니 역시 (식)식민지 역사를 지닌 우리나라가 지금은 다양한 존재들이 공존하는 나라가 되었으니, 생명들이 살아가는 집단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br>이렇게 강자의 이데올로기가 점령하고 있는 말의 뜻을 재해석해내는 것, 그것이 바로 시에서 말하는 '거울 단어'인데...&nbsp;<br>그렇다면 '좌빨'이라는 말을 무슨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그들을 배척만 하는 사람들에게 또는 '계몽령'이라는 말을 쓰면서 '어게인'이라고 다시 돌아오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이 말들을 거꾸로 보여주자.&nbsp;<br>그들의 말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그 말이 과연 우리 사회에서 쓰여야 하는지를 살피게... 시집에 이런 시가 있다. 보자.<br><br>문장을 거꾸로 읽으면 된다. 아마 이 시집을 읽는다면 '좌빨'이란 말도 '계몽령'이란 말도 쏙 들어갈 것이다. '이이이' 정말, 그런 말을 쓸 수 있단 말이야? 하면서.<br>말이 필요없다. 이 시집, 읽으면 형식에서도 내용에서도 감탄하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 현대사를 생각하고, 그러한 과거에서 현재를, 그리고 미래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특히 우리 사회에 넘쳐나는 언어에 대해서...&nbsp;<br>그런 언어를 한번 거울에 비춰보자고... 그 언어가 보여주지 않고 있는 면을 찾아보자고. 그것을 볼 수 있는 사회가 성숙한 사회라고.<br>시집에 대한 자세한 해설은 '번역 후기'와 '추천사'에 잘 나와 있으니 그 부분을 참조하면 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56/31/cover150/897012957x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9563173</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이야기</category><title>시장자본주의가 살아남기 위한 방안-이건 풍자다 - [루가노 리포트 - 21세기 자본주의의 유지 방안]</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97417</link><pubDate>Tue, 26 May 2026 06: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9741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1631336&TPaperId=1729741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67/98/coveroff/898163133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1631336&TPaperId=1729741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루가노 리포트 - 21세기 자본주의의 유지 방안</a><br/>수전 조지 지음, 이대훈 옮김 / 당대 / 2006년 08월<br/></td></tr></table><br/>신자유주의, 그냥 쉽게 시장자본주의, 최대의 이윤을 창출하는 경제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방안 연구를 의뢰한다. 의뢰받은 학자들은 모두 익명으로 연구를 하고, 발표를 하며, 종합 보고서에도 익명으로 서명한다.<br>그들끼리도 서로가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대면을 하지 않고 서면이나 메일을 통해서 연구 결과를 공유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연구결과를 종합해서 시장자본주의가 살아남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일은 인구를 줄이는 일이라고 한다.<br>왜냐하면 '(지구에 대한) 충격 = 소비* 테크놀로지*인구'이기 때문인데... 소비와 인구가 꼭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구가 늘면 늘수록 소비가 늘 수밖에 없으니, 지구에 가하는 충격, 즉 지속가능한 시장자본주의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인구를 줄여야 한다.<br>얼마나? 이 보고서는 21세기 직전에 쓰여졌으므로, 정확하지는 않지만 2020년 세계 인구를 60억에서 80억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적절한 인구는 40억이므로, 60억이 될 것이라고 가정하면 20억을 줄이는 정책을 펼쳐야 하고, 80억이라고 가정한다면 절반을, 즉 40억을 줄일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한다.<br>그래야만 시장자본주의가 제대로 유지될 수 있다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이데올로기, 윤리, 경제, 정치, 심리 분야에서 적절한 방안을 제시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한다.<br>이렇게 이 보고서는 분석과 진단, 그리고 해결방안 제시로 구성되어 있다. 진단과 분석에서 20억을 줄여야 한다면,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줄일 수 있는가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아주 단순하게 계산을 하면 출산율은 줄이고, 사망률은 높이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레 인구는 줄게 되어 있다.<br>우리나라는 지금 인구 소멸을 걱정하고 있어서 이 보고서와는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지만, 지구 전체로 보면 과잉인구는 지구에서 우리 인류의 존속을 위협하는 요소 중 하나가 될 수는 있다. 지금처럼 승자독식으로 간다면....<br>현재 지구에서 생산되는 재화들을 공정(? 무엇이 공정인지, 산술적인 나눗셈으로만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하게 나누고, 지속가능한 생활방식으로 바꾼다면 지금의 인구로도 지구에서 살아가기에 충분하겠지만, 이윤 창출을 최우선으로 하는 자본주의에서는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br>또한 이 보고서는 시장자본주의를 기본으로 하고, 그것이 유지되는 방안을 마련하는 목적이었으므로, 인구를 반드시 줄여야 한다고, 인구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다.<br>즉, 소비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또 테크놀로지(기술)를 이용해 환경을 보호하면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전혀 없다. 오직 가장 단순한 인구를 줄이자로 가고, 그것에 대한 방안, 아마 읽으면서 기겁을 할 만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br>정복, 전쟁, 기근, 전염병 등을 요한묵시록의 네 기사에 빗대어 이야기를 하면서 이들을 통해서 인구를 줄이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고, 또 예방이라고 해서 출산율을 낮출 수 있는 방안이라는 것이 피임 및 불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nbsp;<br>이렇게 2부로 가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방법이라고 제안된 것들이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나 기타 다른 홀로코스트, 또는 제노사이드를 떠올리면서 그것보다 더하네 하는 생각이 들 만한 방법이기 때문이다.<br>그것도 드러내지 않으면서 그러한 일들을 해야 한다고 하니, 이거 보고서가 아니네... 사실이 아니네, 상상이네. 상상인데, 이런 세상으로 가면 안 된다고 경고하는 것이네... 우리가 아무 행동도 하지 않으면 소수가 정말로 이런 세상으로 우리를 끌고 갈지도 모르겠네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br>즉, 저자가 '루가노 리포트'를 통해 시장자본주의의 본질을 드러내고,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갔을 때 어떤 존재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br>그리고 '부록'을 통해 이 보고서에 있는 방법들과 반대되는 방법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우리는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하고 있으니...<br>읽다가 이런 기괴한, 정말 비인간적인 방법을 제시한 이 책은 못 읽겠다 하는 사람들은 '부록'을 읽고 '후기'를 읽는 것이 좋겠다. 그러면 왜 저자가 이렇게 극단적인 방법을 '루가노 리포트'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br>또한 이 책에 제시된 방법 중에 이미 실행된 것들, 그 중에 하나가 민영화, 집중화 등인데 그것들이 일으키는 피해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으니, 이 책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우리가 겪게 될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br>현실은 이 보고서에서 예견한 대로 가지는 않고 있지만, 확신할 수는 없다. 여전히 자본이 세계를 움직이고, 몇몇 소수에 의해서 세계가 요동치고 있으니. 또한 전쟁은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환경파괴로 인한 신종 감염병이 유행하기도 하니, 이 보고서에서 제안하고 있는 방법들을 살피고, 그것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다른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br>그것이 우리가 공멸하지 않고 공존할 수 있는 길이다. 이 보고서는 공멸하지 않기 위해 특정 존재들을 없애야 한다고 하지만, 아니다. 다른 존재들과 함께할 때 공존할 수 있다. 그 방법을 찾는 것이 바로 진화 아닐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67/98/cover150/898163133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679891</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과 나 그리고 책</category><title>김승희 시집- ‘다친 무릎들‘을 생각한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94012</link><pubDate>Sun, 24 May 2026 06: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9401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06896&TPaperId=1729401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5/61/coveroff/8937406896_1.gif" width="75" border="0"></a>&nbsp;<br/><br/> &nbsp; 시인은 이 시집의 '후기'에서 김기창 화백의 미수전(米壽展)에서 본 그림을 보고, 환한 웃음을, 폭소를 터뜨렸다고 한다. 그러한 웃음이 초월로서의 웃음이 아니라, '헤게모니 -권력(들)에 대한 검색과&nbsp; 전복으로서의 웃음'(95쪽)이었다고 하는데...<br>&nbsp; 그렇게 웃음은 불의가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읏음으로서 권력을 넘어서는 경우. 하지만 대부분은 그러한 웃음을 웃지 못한다.<br>&nbsp; 권력은 웃음조차도 탄압하기 때문이고, 이러한 탄압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이 시집에서 말하는 '다친 무릎'이 되기 때문이다.&nbsp;<br>&nbsp; 권력에 의해 '다친 무릎'들도 있지만 스스로 자신을 그렇게 몰아가는 '다친 무릎'들도 있다.&nbsp;<br>이 시집에는 외부의 힘으로부터 다친 존재들과 스스로 외부의 힘에 동화되어 다친 무릎들이 나오는데...<br>우선 외부의 힘에 스스로 동화되는 다친 무릎들은 시집의 앞부분에 실려 있다.&nbsp; 그 중에서 '식탁이 밥을 차린다'와 '제국주의가 간다'는 자본주의 논리에 편승해 자신을 거기에 맞추는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br>자신이 그것들을 소비한다고 생각하지만, 아니다. 반대로 그것들이 사람을 소비한다. 사람은 그것들이 '나를 소비해'라는 말을 요청으로, 부탁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니다. 그것들을 거부했을 때 자신이 사회에서 낙오된다는 느낌, 뒤떨어진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더 적극적으로 그것들의 요청을 명령으로 받아들인다.<br>당연히 따라야 할 것으로, 따르지 않으면 자신에게 좋지 않다고 여기면서... 그러니 내가 신용카드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신용 카드가 나를 소비하고 / 신용 카드가 나를 분실 신고한다'('식탁이 밥을 차린다' 중에서. 9쪽)고 할 수 있는 것이다.<br>마찬가지로 '니나리치가 너를 부른다 / 향기로운 너를 만들어 주겠다고 / 크리스찬 디오르가 너를 부른다 / 불란서 멋쟁이로 꾸며주겠다고'('제국주의가 간다' 중에서. 12쪽)고 할 수 있는 것이다.<br>주객전도(主客顚倒)의 상황. 이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사회. 여기에 자신의 몸을 어떻게 하는가. 성형천국이라는 말을 듣는 나라 아니던가. 몸 어디 한 군데쯤은 손을 대야 사회에서 부끄럽지 않다고 여기는 풍조.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성형의 세계로 들어가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 사람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이, 남의 이목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nbsp;<br>이 시집이 2000년에 나왔는데, 이러한 소비풍조, 또는 사람이 상품에 끌려다니고, 또 스스로 상품이 되어 자신을 포장하는 모습은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줄지는 않았다. 그러니 앞에서 인용한 시들이 말하는 것을 그냥 웃으면서 넘길 수는 없다.&nbsp;<br>오히려 광고를 통해 사람을 이렇게 상품에게 종속되게 하거나 스스로 상품이 되고자 하는 모습을 웃어넘길 수 있어야 하는데, 시인이 바라는 것은 바로 그러한 웃음일 텐데...&nbsp;상품으로, 또는 상품이 되어 만족스러워 하며 내는 웃음이 아니라.<br>다음에 시집에 실린 외부의 힘에 의해 '다친 무릎'들이 나온다. 이는 어쩔 수 없는 힘에 의해 다칠 수밖에 없던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시인은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들과의 연대를 꿈꾸면서.<br>외부의 힘에 의해 '다친 무릎'들은 누구인가? 아예 '다친 무릎'이라는 구절이 제목에 들어간 시도 있는데,('&lt;다친 무릎&gt;에서 시작된 인생'. 60-61쪽) 이 시를 읽고 다른 시들을 찾아보면 쉽게 '다친 무릎'이 어떤 존재들인지 알게 된다.<br>시집에 나오는 존재들을 살펴보면 '일본 대사관 앞 수요 집회에 할머니들'('여왕의 날씨'에서. 44쪽)과 '스페인 기병대에 학살당하고 능욕된 ... 홍인의 어머니와 딸들'('신촌 맥도날드 점'에서. 47쪽)이고, '1980년 5월 19일 광주 / 좌유방부 자창 우측흉부 관통상 / 열아홉 살 처녀 손옥례'('신촌 맥도날드 점'에서. 48쪽) '들'이다.&nbsp;<br>이런 존재들이 권력에 주눅들지 않고 권력에 대해 정면으로 웃을 때 그때 웃음은 전복적인 힘을 발휘한다. 너희들이 아무리 우리를 밟아도 우리는 일어선다. 결코 밟힌 채로만 있지 않겠다는 의지의 발현. 이것은 사회의 소수자들이 자신들을 지칭하는 말로 '이반, 퀴어'라는 말을 써서 그 의미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 것과 통한다.<br>이 시집에서 '일반'이라는 말을 비틀어 '이반'이라고, 'ㄹ'을 탈락시킨 말로 자신들을 지칭하는 그러한 모습과 비슷한 시가 나오는데, 그 시 제목이 '&lt;일상&gt;에서 ㄹ을 뺄 수만 있다면'(68-70쪽)이다.<br>'일상'에서 'ㄹ'을 빼면 '이상'이 된다. 보통, 보편이라는 일상에서 'ㄹ'을 빼면 '이상'이 된다. 보통과 다른이라는 의미의 이상하다의 이상일 수도 있겠고, 우리가 바라는 희망의 '이상'일 수도 있다. 즉 일상에 매몰되어 이상을 보지 못하면, 다른 말로 '다친 무릎'들을 보지 못하면 결코 '이상'에 도달할 수가 없다.&nbsp;<br>시인은 이 시에서 'ㄹ'을 무릎으로 보고 있는데, 무릎을 꿇고 있는 형상을 'ㄹ'에 빗대고 있어서 우리가 일상에서 반드시 'ㄹ'을 빼야 함을, 누군가의 다친 무릎을 괴고 생활해서는 안 됨을 이야기하고 있다.<br>이러한 의지가 실현되는 때로 시인은 상상의 시간을 만들어낸다. 비록 현실에는 없는 시간이지만, 그 시간은 올 수 있고, 또 와야만 한다. 우리가 만들어내야만 하는 시간. 바로 13월의 13일. 13이라는 서양에서 불길하다고 여기는 숫자를 시인은 이 시집에서 권력관계를 뒤집는 시간으로 설정한다.<br>이것 역시 웃음의 힘이다. 불길한 시간, 금기의 시간은 권력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 그런 시간을 '다친 무릎'들이 자신의 것으로 만듦으로써 권력의 시간을 뒤집어버리는 것. 너희가 그렇게 떨고 있는 시간을 우리는 웃으며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자신감. 긍정성, 낙관.<br>시인은 '13월 13일의 사랑'(77-78쪽)과 '13월 13일, 마지막 축제'(79-80쪽)에서 그러한 뒤집음, 환한 웃음을 보여주고 있다.<br>'다친 무릎'들이 서로를 부등켜안으며 함께 웃으며 살아가는 세상. 그러한 세상을 꿈꾸며, 더이상 '다친 무릎'들을 만들어내지 않는 사회를 꿈꾸는 시인. 그러한 시들.<br>시집을 읽다가 몇몇 기사가 떠올랐다. 우리 사회는 '다친 무릎'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나? 우선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에 말도 안 되는 광고를 한 (차마 그들의 광고 문구를 쓸 수가 없다. 쓴다는 것 자체가 이미 모독이다.) 모 기업(굳이 안 밝혀도 다 아니까),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말도 안 되는 막말을 하며서 시위를 하는 몇몇 단체 사람들... 그리고 장애인 시위에 대한 이번 판결.&nbsp;<br>지하철역 시위를 하면서 스티커를 붙이고 글을 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사람들에게 대법원에서 벌금형을 확정했다는 기사. (‘지하철역 시위’ 전장연 대표, 공동재물손괴 벌금형 확정)<br>이 기사를 보면서 이 시집에 나온 '다친 무릎'이라는 말이 떠올랐고, 우리가 그들의 다친 무릎을 보듬고 고쳐주려고 하지는 못할망정, 다친 무릎을 더 세게 내려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이는 시인이 시에서 말했던 'ㄹ'을 빼는 행위와는 정반대의 판결이라는 생각을 한다.<br>그들 시위 방법의 정당성을 묻기 전에 먼저 국가와 사회가 책임을 다했는지를 물어야 하지 않을까. 요즘 헌법, 헌법하는데, 헌법 10조에 보면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되어 있고, 34조에는 1항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와 2항 '국가는 사회보장, 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고 되어 있다. 분명 '모든' 국민이라고 되어 있다.<br>그렇다면 장애인들이 이동할 권리는 행복추구권에도,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에도 포함이 된다. 그러니 장애인들이 이동할 수 있도록 제반 시설을 마련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국가의 의무가 실행되지 않아서 의무를 시행하라고 시위를 하는데, 시위의 방법을 가지고 유, 무죄를 따지는 것은 '다친 무릎'들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여주는 척도가 된다.<br>법원은 국가에게 시위의 책임을 먼저 물어야 하지 않나? 국가가 너무 포괄적이라면 지방자치단체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조항을 실천할 의무가 있기 때문인데...<br>그러니 시위의 적절성으로 판결하기 전에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부작위로 인한 장애인들의 불편'을 먼저 따졌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이러한 생각은 더 짙어졌는데, 왜냐하면 장애인들은 우리 사회의 '다친 무릎'들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br>참으로 여러 생각을 하게 한 시집이다. 시인이 후기에서 한 말처럼 '나의 시가 그런 유쾌한 검은 폭소의 실존적 울림을 가졌으면 좋겠다'(95쪽)고 했는데, 정말 그러한 웃음을 웃고 싶다. 그러한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사회였으면 좋겠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5/61/cover150/8937406896_1.gif</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6194</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비인간‘과 공존하는 사회 - [비인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90890</link><pubDate>Fri, 22 May 2026 09: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9089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72833630&TPaperId=1729089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886/72/coveroff/k67283363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72833630&TPaperId=1729089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비인간</a><br/>최의택 지음 / 읻다 / 2023년 06월<br/></td></tr></table><br/>'비인간'&nbsp;<br>인간이 아니다. '저 사람은 인간도 아니야.' '인간이 어떻게 저럴 수 있지?' 하는 말들에서 인간답지 않은 행동을 하는 사람을 인간이 아닌, 즉 비인간이라고 부른다.<br>그런데, 이런 말들에는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는 무언가 옳지 않음, 또는 인간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라는 의미를 깔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아닌 존재는 열등한 존재나 배제되어야 할, 아니면 고쳐야 할 존재라는 의식을 바탕으로 한 말이란 생각.<br>하지만 세상은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 더 많다. 그러한 존재들과 함께 살아온 것이 바로 인류의 역사다. 인간만이 살 수 있는 세상은 없다. 인간이 아닌 존재가 모두 없어진다면 인간 또한 살아갈 수가 없다.<br>최의택이 쓴 이 소설집 제목이 '비인간'이다. 그런데 제목이 된 소설은 없다. 이 소설집에 실린 소설들에 나오는 인물(인간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소설에 등장하는 존재들이다. 물론 인간을 포함해서)들 중 대부분이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다.<br>SF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인간이 아닌 존재들, 특히 지금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하여 인간과 유사한 로봇을 개발하고 있는데, 이러한 휴머노이드가 상용화된 세상이 소설에 나온다.<br>그런 세상에서 홀로그램 보육교사가 등장하고('보육교사 죽이기'), 로봇이 등장하여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보여주고 있는데...&nbsp;<br>'노인과 노봇'이라는 소설에서 보면 인간과 로봇이 어떻게 공존하고 있는지,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왔는지를 너무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 세상은 디스토피아가 아닐 터. 기술발전으로 인해 우리가 당면해야 하는 세상이 로봇과 인간의 갈등이 아니라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살아가는 세상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br>이렇게 마음을 따스하게 해주는 소설들이 많은데... 그러다가 '경계선, 인격, 장애'란 소설을 읽으면서 마음이 섬뜩해졌는데...<br>인간을 배려하는 로봇과 마음이라는 것이 없는 인간이 등장하여 도대체 어떤 존재를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하고 있다.<br>인간이 아닌 존재를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막 대하는 인물에 비해 인간의 마음을 고려하는 로봇이라니...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비인간'이라는 말에 대해서 다르게 생각하게 된다.<br>생물학적인 인간이 아니라 사회적인 인간에 대하여, 사회학적으로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는 생물학적으로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와는 범위가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br>생물학적인 인간은 아니지만 인간을 돌보고, 인간과 함께하는 존재를 '인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인공지능이나 로봇을 비인간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여러 존재 중 하나로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br>하여 '비인간'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결국 이 소설들은 생물학적인 인간은 아니지만 사회적으로 인간이라 할 수 있는 존재들의 이야기, 그런 존재들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br>'저의 아내는 좀비입니다'는 소설이 좀비로 변한 아내, 남편과&nbsp;함께사는 사람들을 보여주는데, 증상 완화제로 어느 정도 함께 살아갈 수 있다. 이는 좀비를 '비인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보고 있다는 말이 되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영화 [좀비 딸]을 떠올렸으니...<br>이 영화에서 좀비가 된 딸이 등장하지만, 그 딸을 좀비가 아닌 인간으로 대하는 인물들의 모습이 나오는데, 최의택의 이 소설집에서는 좀비만이 아니라 다른 존재들을 인간으로 대하는 모습이 펼쳐지고 있다.<br>그렇게 이 소설 속 '비인간'들은 '사회적 인간'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으니,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세상, 혹 외계존재가 있다면 그들도 '인간'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 소설이기도 하다.<br>그러니 생물학적 인간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인권 선언에 있는 성별, 피부색, 종교, 성적 지향, 나라, 신체적 특성 등등에 의해 차별받지 않는다는 것이니, 그들을 '비인간'처럼 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음을 이 소설집에 실린 소설들이 바탕으로 깔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886/72/cover150/k67283363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8867247</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이야기</category><title>고통을 직시하고 풀어나가려는 정치 - [고통을 다스리는 민주주의 - 정치 없는 치유, 치유 없는 정치를 넘어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88857</link><pubDate>Thu, 21 May 2026 08:0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8885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22033009&TPaperId=1728885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881/98/coveroff/k12203300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22033009&TPaperId=1728885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고통을 다스리는 민주주의 - 정치 없는 치유, 치유 없는 정치를 넘어서</a><br/>김찬호 지음 / 김영사 / 2025년 12월<br/></td></tr></table><br/>'정치'&nbsp;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했다. 사회 생활을 하는 인간에게 정치란 자신이 관여하지 않는다고 해서 없어지는 존재가 아니다. 내가 관여하지 않는 것도 정치다. 그러니 정치는 바로 삶이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br>정치가 잘 이루어질 때 우리는 정치를 의식하지 않는다. 숨을 쉴 때 공기를 의식하지 않듯이 정치가 잘 되고 있다면 정치를 의식할 이유가 없는 것. 하지만 정치가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을 때 우리는 정치를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br>자신에게 닥친 정치... 정치적 위험. 그때서야 정치가 중요함을 깨닫고 어떻게 할까를 고민한다. 어떤 이들은 광장으로 나가고, 어떤 이들은 자신에게 침잠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정치 조직에 몸을 담기도 한다. 각자 다양한 방식으로 정치적 행위를 한다. 그것을 자신은 정치적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더라도.<br>우리에게 정치가 피부에 다가온 것은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사태다. 세상에 비상계엄이라니... 정치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한 날... 그 날 이후, 사람들은 정치에 관심을 가졌다. 다시는 그러한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br>정치에 관심을 가졌는데, 각자의 관점에 따라 정치를 바라보고 행동하는 것이 달라지기도 했다. 그리고 서로 대화를 하지 않고 비방만 하는 경우도 있었다. 정치란 대화와 타협을 기본으로 하는 것,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름의 격차를 좁혀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도록 하는 행위가 정치라고 한다면, 서로 적대적인 말과 행동을 일삼는 것은 정치라고 할 수 없다.<br>정치로 포장된 적대행위일 뿐이다. 민주주의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이 책은 비상계엄 이후 우리나라 정치 상황을 바라보면서 문제가 무엇인지, 또 그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가야 하는지를 제시하고 있는 책이다.&nbsp;<br>'재난, 극우, 광장, 정치인, 교육, 대화, 회복, 성장'이라는 여덟 개 주제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장이 연결이 되고 있기도 하지만, 각자 독립적이어서 따로따로 읽어도 된다.<br>그렇지만 이 여덟 주제를 관통하는 것은 '민주주의'이고, 이 민주주의를 지키고 실현시켜 나가는 것이 우리의 일이라는 관점이다.<br>결국 정치의 복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상호적대적인 갈등을 넘어서 우리 사회의 행복을 만들어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살피고 있다고 할 수 있다.<br>비상계엄 이후 '광장'에서 이루어졌던 것들이 바로 '민주주의'의 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배제가 아니라 화합을 추구하는 모습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한다.<br>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정치는 고통을 보살펴야 한다. ... 정치는 관계의 예술이다. 최고의 정치는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여 공동의 에너지를 고양시키고 사회의&nbsp; 탁월한 잠재력을 이끌어낸다.'(17쪽)고.<br>바로 이러한 공론장의 형성,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고, 이러한 민주주의가 실현된다면, 고통받고 있던 사람들의 마음도 치유될 수 있다고 한다. 즉 '공공선으로 모아진 마음이 민주주의를 치유한다. 그러니까 민주주의가 마음을 치유하고, 건강한 마음이 민주주의를 치유한다. 민주주의와 마음은 서로를 돌보는 관계에 있다'(19쪽)는 것이다.<br>이것이 바로 정치가 해야 할 일인데... 지금 우리의 정치는 어떠한가? 저자의 '정치는 인간의 고통을 가장 많이 발생시키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38쪽)이 현실 아닌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들. 이 전쟁들이 바로 정치가 일으킨 전쟁 아니던가.&nbsp;<br>정치로 인해 발생한 재난이 한 나라에 그치지 않고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 재난을 일으키는 것도 정치지만, 재난을 극복하게 하는 것도 정치이기 때문이다.<br>'정치는 고통을 줄이거나 제거하는 수단이지만, 거기에 주체로 참여하는 것 자체로 치유의 경험이 될 수 있다'(224쪽)는 저자의 말...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그 광장에서 치유를 받은 경험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가.&nbsp;<br>그러니 '정치가 최고의 공동선을 함께 추구하는 행위라고 할 때, 그것은 두 가지 차원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하나는 사회를 구성하는 동시대인들을 온전히 아우르는 공동선이고, 다른 하나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를 배려하는 공동선이다'(253쪽)라는 저자의 말 명심해야 한다.<br>동시대인들만이 아니라 미래세대를 반드시 고려하는 정치가 바로 고통을 치유하는 정치가 될 것이다.<br>최근에 읽은 [자연은 계산하지 않는다]에서 저자인 키머러는 자신의 어머니의 말을 들려주고 있다. "올 때보다 갈 때 더 좋은 곳이 되게 하렴."('자연은 계산하지 않는다' 136쪽)<br>이런 자세가 바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자세다. 동시대인들만이 아니라 미래세대도 함께하는 정치인 것이다.<br>하여 우리는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똑바로 보았을 때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러한 고민을 하는 과정이 바로 희망이다.<br>책의 끝부분에 실린 파커 파머와의 대담에서 파머는 희망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희망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고 말하고 있다.<br>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정치, 그것은 바로 치유의 정치이고, 이러한 치유의 정치가 바로 우리의 희망이 되어야 한다. 저자는 그 점을 이 책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881/98/cover150/k12203300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8819878</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