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도담서림(道談書林) (kinye91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Fri, 05 Jun 2026 04:04:39 +0900</lastBuildDate><image><title>kinye91</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74420113113741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kinye91</description></image><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사색하는 인간의 삶-‘불안‘의 삶 - [불안의 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12687</link><pubDate>Tue, 02 Jun 2026 10: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1268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699796X&TPaperId=1731268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1/29/coveroff/899699796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699796X&TPaperId=1731268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불안의 서</a><br/>페르난두 페소아 지음, 배수아 옮김 / 봄날의책 / 2014년 03월<br/></td></tr></table><br/>페소아 작품 읽기.<br>어렵다. [불안의 서]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데, 왜 불안일까? 인간이 실존에 대해서 불안감을 느낀다는 말일까? 아니면 삶 자체가 불안일까? 죽음을 향해 가기 때문에 삶은 불안할 수밖에 없는가.&nbsp;<br>읽어보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느끼는 불안은 아니다. 불안은 행동하는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온다.<br>행동하는 인간은 이것저것 재지 않는다. 고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한다. 행동을 통해서 삶을 살아간다. 아니, 살아간다는 의식을 하지 않고 그냥 살아간다. 그러니 행동하는 인간에게는 불안이 스며들 틈이 없다.<br>즉 여유가 없다. 하지만 사색하는 인간은 이것저것 많은 고민을 한다. 행동하기 이전에 생각을 통해서 세상을 본다. 세상을 본다고 하기보다는 세상을 만든다고 하는 편이 좋겠다.<br>있는 세상에 그냥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없는 세상을 있게 만들어내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해야 할까. 또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게 될까. 이러한 생각과 고민들이 결국 삶을 불안하게 한다.<br>불안에서 벗어나는 길은 생각을 하지 않고 행동하는 것인데, 사색하는 인간은 행동보다 생각이 앞서고, 그것을 자신도 어찌할 수 없기 때문에 불안과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다.<br>이 책은 페소아가 만난 사람에게서 받은 글이라고 하면서 시작을 하는데, 이 글을 쓴 사람은 페소아의 또 다른 페소아라고 할 수 있다. 즉 페소아들 중 한 명인 소아레스가 이 글을 쓴 주인공인데... 자신이 몇 년 동안 일기처럼 쓴 글이 바로 이 책, [불안의 서]다.<br>회계보조원으로 일할 때 그는 행동을 하기 때문에 불안에 싸이지 않는다. 그냥 일상을 살아간다. 그러나 잠시 틈이 나면 생각하는 인간으로서 그는 불안을 느낀다. 수많은 자아들을 발견하고, 그것을 글로 남긴다.<br>글을 통해서 그는 자신의 세상을 만든다고 할 수 있는데, 길고도 긴 여정을 짧은 글들로, 그러니까 일기라고 할 수 있는 글들로 이 책을 이끌어가고 있다.<br>글에 년도가 나오는 장면도 있는데, 1910년대로 먼 과거로 돌아가기도 하지만, 대체로 이 책에 실린 글들은 1930년대에 쓰인 글이다. 페소아가 1935년에 세상을 떴다고 하고, 이 책에서는 1934년이 마지막 해로 나온다.<br>그러니 이 [불안의 서]는 소아레스라는 또 다른 페소아가 쓴 자신의 내면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가끔 겹치는 내용도 나오는데, 일기를 몇 년에 걸쳐 쓰다 보면 자신이 생각하고 느낀 것이 비슷해질 때가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br>수많은 경구들, 적어놓고 때때로 들여다보고 싶은 구절들이 많은데, 우리가 행동하는 인간이라도 늘 행동만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행동 사이 사이에 그 틈을 생각이 파고든다. 그러면 우리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과 다른 세상에 들어가게 된다.<br>낯선 세상. 의식하지 않았던 세상을 의식하게 되고, 그 세상에 대해서 생각하고 생각하고... 그러니 행동하는 인간이라도 이 책에 나오는 구절들을 들여다볼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br>페소아(소아레스)가 창조한 세상이 어떠한지 보고 싶은 욕구가 생기기 때문인데... 그렇게 이 책은 '불안'에 떠는 영혼의 이야기라 할 수도 있지만, 사색하는 인간이 삶을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여준다고 하는 편이 좋겠다.<br>창조자로서의 불안. 당연한 것 아닌가. 자신이 세상을 만들어가는데 어찌 불안이 없겠는가. 이런 불안을 달래기 위해서, 어쩌면 그 불안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글을 쓰는지도 모른다.<br>소아레스가 글을 써서 남기고 이를 페소아가 출간하게 되었으니... 이 책에 나오는 구절, 소아레스든 페소아든 그들에게 해당하는 말이다.<br>'글은 내 영혼의 구원이다.' (30쪽)<br>많은 구절들이 마음에 와닿는데, 그 중 이해가 잘 안되는 구절들이 있으면 또 다른 번역본을 찾아보기도 했다. 포르투갈 어를 모르니, 할 수 있는 일이 다른 번역본과 비교하는 것인데... 의미는 통하는데 문장이 다른 경우가 꽤 있다.<br><br>한 예로 '권태는 할 일이 없어서 병적인 분노가 치솟는 것과는 또 다른 상황이다. 그보다 훨씬 더 질환적인 상태, 뭔가를 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으리라는 감정이다. 이것은 곧, 할 일이 많으면 많을수록 권태도 따라서 지독해진다는 의미다.'(735쪽)는 문장이 있는데, 머리로 잘 들어오지 않는다.&nbsp;<br>하여 다른 번역본을 찾아보니 '할 일이 없어서 지겨운 건 권태가 아니다. 권태는 무슨 일이든 할 가치를 못 느끼는 상태인 더 심각한 병이다. 이런 상태일 때는 할 일이 많을수록 더 심한 권태를 느끼게 된다.'(불안의 책. 문학동네. 오진영 옮김. 2015년. 546쪽.)고 되어 있다.<br>앞의 문장보다 뒤의 문장이 그래도 이해하기가 더 쉬운데... 하여 포르투갈 어를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은 어쩔 수 없다. 이해 안 되면 다른 번역본을 찾아보기. 그래도 안 되면 내 상상으로 그 공백을 메우기.<br>이렇게 읽기 역시 쓰기와 마찬가지로 세상을 창조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것이 이 책을 읽은 소감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1/29/cover150/899699796x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212974</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이야기</category><title>이미 왔다. 1020 극우는. - [1020 극우가 온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10672</link><pubDate>Mon, 01 Jun 2026 08: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1067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62137117&TPaperId=1731067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50/61/coveroff/k36213711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62137117&TPaperId=1731067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1020 극우가 온다</a><br/>정민철 지음 / 페이지2(page2) / 2026년 04월<br/></td></tr></table><br/>1020 극우를 누가 불러왔나?&nbsp;기득권이다. 보수든, 진보든 이미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기득권 세력이 1020을 극우로 만들고 있다. &nbsp;물론 모든 1020이 극우가 되지는 않는다. 연령이 같다고 해도 생각은 다양하고, 지역이 같다고 해도 생각이 또 다르고, 경제적 능력이 비슷하다고 해도 생각은 다르고 학력이 같다고 해도 생각과 행동이 다른 것이 인간이니까. 하지만 흐름으로 이야기하면 1020이 보수화, 극우화되었다고 할 수 있으니... 저자가 제목에 쓴 말을 그대로 쓴다.  &nbsp;보수는 그들을 이용하고, 진보는 그들을 가르치려 들지만, 본질적으로 그들을 극우로 만든 것은 보수냐 진보냐를 가를 필요가 없다.&nbsp;무엇보다도 이 사회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우선 그들에게 막대한 상실감을 안겼다는 것. 더 이상 어떻게 해볼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게 했으니까.   &nbsp;'헬조선'(hell조선)이라는 말,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는 말이 일반적으로 쓰이고, 부모 세대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고, 스펙도 더 많이 쌓았지만 정작 부모 세대보다 잘살 가능성이 거의 없는 처음 세대라고, 즉 부모보다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는 첫세대.  &nbsp;&nbsp;물러설 곳이 없다. 이육사 시 '절정'을 생각한다. '서릿발 칼날 진 그 위에 서다 / .../ 한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 상황 아닌가. 이런 이들에게 너희가 노력을 안 해서 그렇다고 하면? 말이 안 된다. 먹히지도 않는다.  &nbsp;시인은 생각해 본다고 했지만, 1020들은 행동을 한다. 생각이 아니다. 행동이다. 우리를 이렇게 만든 자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다.&nbsp;이렇게 만든 자들? 그들이 생각하는 것은&nbsp;보수 쪽이 아니다. 이들이 쉽게 만나고, 또 그들의 도파민을 팍팍 뿜어내게 한, 다 좌파들 탓이라고 하는 극우 유튜브들을 만난 그들은, 진보 쪽을 향해서 너희들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됐어. 너희들 때문이야! 외치고 있다.  &nbsp;그런데, 진보는? 애들이 뭘 몰라서 그래. 사실을 몰라서 그래. 사실만 알면 생각을 바꿀 거야. 한단다. 참 낙관적인 진보다.  &nbsp;낙관적인 진보가 아니라 세상물정을 모르는 진보다. 이러고서야 어디 진보라고 할 수 있나? 진보는 현재를 보고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미래를 보고 현재를 미래로 끌어가는 사람들 아닌가. 그런데 이들은 현재조차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  &nbsp;이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이대로 가면 10, 20년 뒤에는 극우가 우리나라 권력을 장악한다. 파시즘의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유럽을 보라.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다는 유럽에서도 극우가 세력을 얻어가고 있지 않은가.  &nbsp;그러니 현실을 제대로 보라. 지금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이대로 가면 극우가 우리 사회를 점령한다. 이미 점령되어 가고 있다.  &nbsp;&nbsp;그걸 어떻게 아냐고? 학교를 보면 안다. 학교에서 과연 민주주의 가치가 교육되는가? 민주시민 교육을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웃기는 소리다. 그런 수업에서 학생들은 잔다. 아니면 딴짓을 한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낸다. 귀로 들어온 소리가 마음에 담기지 않는다.  &nbsp;교사가 옳은 소리를 하면 꼰대소리라고 한다. 선생님이 뭘 모르고 하는 소리란다. 또 남을 혐오하는 말을 하면서도, 혐오 동영상을 보면서도 그냥 재미로 한단다. 재미? 끝이다.   &nbsp;이런 학교의 모습만 봐도 이미 우리 사회는 극우가 (이때 극우는 혐오를 기반으로 하는 집단이다. 남을 몰아내는 것을 자신의 존립 기반으로 삼는 집단) 자리를 잡고 있다.   &nbsp;학교만 그런 줄 알았다. 이 책을 읽기 전엔. 하여 학교에서 스마트폰을 금지하면 나아질 줄 알았다. 그런데 더 심각한 집단이 있단다. 바로 군대다. 20대 초반의 남성들로 구성된 집단. 여기서도 핸드폰을 허용한다.  &nbsp;군대에서 핸드폰 허용. 다름을 거의 허용하지 않는 군대에서 핸드폰을 사용했을 때,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또는 틱톡 등등을 통해 목소리 큰 사람의 (주로 선임병이겠지만) 관점을 담은 영상들이 공유될 수밖에 없다.  &nbsp;그런데 따분하고 단조롭고 또 왠지 자신이 피해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군대에서 어떤 영상들이 돌까? 그들의 시선을 잡고 그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영상, 주로 극우 논리를 주입하는 영상이 그들에게 공유된다고 한다.  &nbsp;&nbsp;다른 영상을 보기도, 다른 생각을 말하기도 힘든 군대에서 18개월, 훈련소 생활을 뺀다고 해도 16개월 이상을 그와 비슷한 극우 영상들을 보게 되면 자연스레 극우 논리가 주입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전역해서는 학교나 자신이 있던 곳으로 가서 그러한 논리를 주장하게 된다고.  &nbsp;이미 학교, 군대를 통해 습득한 극우 논리를 하루 아침에 바꾸기는 힘들다. 여기에 엄청난 알고리즘의 위력. 비슷한 영상만 계속 추천하고, 심지어 그 영상들이 자극적이어서 재미까지 있다면... &nbsp;이게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1020이 뭘 몰라서, 사실을 몰라서 그런다고... 아니, 그들에겐 사실이 중요하지 않다. 힘들어하는 자신들에게 사이다 같은 통쾌함을 주는 영상, 도파민을 팍팍 분비시키는 영상이 더 좋다.  &nbsp;  이 점을 놓치면 그들을 설득할 수가 없다. '3초'라고 하지. 3초 안에 그들의 시선을 잡아야 한다. 그런데 자칭 진보라는 사람들, 정말 설명이 길다. 길어서 도저히 끝까지 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또 왜 이리 평이하고 도덕적인가. 더 보고 싶지 않다. 재빨리 다른 영상으로 넘어간다.  &nbsp;현실이 이렇다. 이런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과거에 머물러서도 안 된다. 바로 이런 현실을 알고 이를 활용하는 사람이 이 책의 저자 정민철이다.  &nbsp;이들의 언어로, 이들의 감수성에 맞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 지금 외롭다고, 고립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과 같은 사람이 많이 활동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 지원을 '진보' 쪽에서 해주어야 한다고 요청한다.  &nbsp;절박한 요청이다. 그러면서 그는 가족들이 밥상에서 대화할 것을 추천하고 있다. 가족이라는 1차 집단에서 서로가 소 닭 보듯 살아온 모습이 1020을 극우로 내몰기도 했다는 것. 훈계가 아니라 대화를, 주입이 아니라 이해를 바탕으로 대화를 하라고...  &nbsp;서로의 마음을 전달하라고. 그러면 조금씩 달라질 것이라고. 온라인을 통한 대항 활동도 중요하지만 대면을 통한 이해와 공감의 장을 넓혀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nbsp;읽으면서 등골이 서늘했다. 큰일이군. 하지만 늦지 않았다고, 이런 문제제기를 하는 청년이 있으니. 이런 청년이 고립되지 않고 더 많은 청년들과 연대할 수 있다면, 지금 우려하는 상황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nbsp;정치권이 정신차려야 한다고... 저자가 제기한 요청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받아들여야 늦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적어도 이런 목소리 들을 수 있는 정치권이 진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현재에서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그러한 정치인들을 '진보'라고 할 수 있을 테니까.<br>한 가지 명심할 점은 1020이 극우화 된다고 해서, 모든 1020이 극우 쪽으로 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들 중에서도 다양한 정치적 성향이 나타나고, 극우로 가는 1020 못지 않게 진보로 가는 1020도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대면을 통한 이해와 공감의 장을 넓혀가려는 노력이 필요한 지금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50/61/cover150/k36213711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9506199</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과 나 그리고 책</category><title>소리의 색깔이 합쳐지면 무슨 색이? - 장시우 시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05506</link><pubDate>Sat, 30 May 2026 11:0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05506</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32835946&TPaperId=1730550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8548/43/coveroff/k932835946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nbsp; 지방자치단체 선거, 사전투표일이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많은 사람들이 사전투표에 참여했다고 한다. 현재까지 저번 선거 때보다 투표율이 높게 나왔으니... (아직은 진행형이지만)<br><br>&nbsp; 투표하기 전까지 수많은 소리들을 듣는다. 자신을 지지해달라는 소리들. 자기가 무엇을 하겠다는 소리들. 이 일에는 자신이 적임자라는 소리들. 상대를 비방하는 소리들. 소리, 소리, 소리 들.<br>&nbsp; 수많은 소리들에 싸여 살아가고 있지만 평소에는 그 소리들을 잘 듣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고 지낸다. 그러다 선거철이 되면 다른 모든 소리들을 누르는 후보자들의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nbsp;<br>&nbsp; 이래도 안 들을래? 이래도 안 들려? 하는 듯이 사방에서 여러 소리들이 들려온다. 그 소리들, 색깔로 바꾸면 무슨 색깔일까?&nbsp;<br>소리를 볼 수 있을까? 볼 수 없겠지. 듣다와 보다는 다르니까. 하지만 듣다와 보다가 같을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 몸의 감각기관이 다를 뿐, 외부의 존재를 내게로 들여오는 과정이 바로 '보다/듣다'일 테니.<br>장시우 시집을 읽다가 와, 이 시인, '소리'에 대해서 이렇게 많은 시를 썼나 하는 생각을 했다. 시집에 실린 시들이 대부분 소리다. 소리, 소리, 소리. 그런데 소리를 볼 수 있겠단 시들이 있다. 또 시 중에 '소리에 빛깔이 있다면'(114-115쪽)이라는 시도 있다.<br>그래, 소리에 빛깔이 있다는 말은 색이 있다는 말이니까. 소리 역시 자신들만의 색채를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말소리로 사람을 구분하기도 하니... 소리에 색깔이 있고, 그 소리들은 그 사람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br>이렇게 다양한 소리, 개성 있는 소리, 자신만의 소리를 듣지/보지 못하고 그것을 뭉뚱그려 보고/듣는다면 어떨까?<br>그런 세상은 참 삭막하지 않을까? 그런 세상이라면 사람을 어느 한 쪽으로 딱 규정하고 다른 면은 마치 없는 것처럼 여기고 대우하지 않을까? 이런 세상이라면 사람들끼리 교류가 없어지고, 오로지 내 편 아니면 다 편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이 지배하지 않을까.<br>시인이 시에서 말하고 있는 많은 소리들을 읽으면서, 문득 색깔이 떠올랐고, 그러다 아주 오래 전 학창시절, 미술 시간에 배웠던 삼원색을 합치면 검은색이 되고, 빛의 색깔을 합치면 하얀색이 된다는 것이 떠올랐다.<br>'검은/하얀'의 짝을 '어둠/밝음'으로 치환한다면(이렇게 나누는 것도 색깔에 대한 고정관념이겠지만) 지금 세상에 나도는 수많은 소리들을 합치면 무슨 색깔이 될까 하는 생각을 했다.<br>무슨 색깔이 들까? 2024년 겨울부터 2025년 봄까지 광장에 모였던 사람들, 그들을 '빛의 혁명'을 이룬 사람들이라고 한다. '빛의 혁명'이라는 이름 기가 막히다. 바로 이 빛의 색깔들이 합쳐지면 흰, 밝은 색이 되기 때문이다.<br>따라서 계엄이라는 어둠을 몰아내는 밝은 빛, 이것이 바로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내는 소리들의 합이었다. 그렇다. 이렇게 소리는 빛의 색깔을 띨 수 있다.<br>하지만 소리가 다 그런가? 빛의 색깔이 아닌 어둠의 색깔을 지닌 소리들도 있지 않은가? 사람을 벼랑으로 내모는 소리. 그런 소리들이 합쳐지면 검은, 어둠의 색깔로 변한다. 세상 역시 캄캄한 어둠의 세상이 된다.<br>지금 선거에 나선 사람들의 말,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말. 과연 빛의 말일까 아닐까. 그들의 말이 합쳐져 밝은 색이 될까, 아니면 어두운 색이 될까? 그것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br>바로 그러한 판단, 어두운 색으로 가는 말들을 막을 수 있는 귀, 그것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빛의 말들이 더 우세해지도록 하는 일. 우리 스스로 빛의 말들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br>남에게 상처주는 말, 남을 비방하는 말, 자신만을 드러내는 말, 그 말들은 합쳐지면 어두워진다. 다른 존재를 가린다. 그리고 자신마저도 가린다. 아니 자신의 좋지 않음을 가린다. 그런 어두운 존재와 함께 어둠 속에 갇힐 것인가, 아니면 빛과 같은 밝은 말, 합쳐져 더 밝은 세상이 되는 그런 말들을 하는 사람은 다른 존재들도 환한 세상에 있게 한다.<br>합쳐져 어두운 소리를 내는 소리들이 합쳐지지 않게. 그 소리들이 합쳐지지 않고 각자의 소리만을 낸다면, 그 소리 역시 제 색깔을 지닌 소리일 뿐이니까. 물론 합쳐져 밝은 소리가 되는 소리는 홀로 소리를 내도 좋지만 합쳐 소리를 내도 좋다. 밝은 세상을 만드는 소리니까.&nbsp;<br>우리가 추구해야 할 소리들은 어떤 소리인가? 우리의 소리에는 어떤 빛깔을 입혀야 하나? 아니 인위적인 색이 아니라 자연스런 빛의 색깔이 되도록, 그래서 우리 소리들이 합쳐져 하얗고 밝은 색이 세상을 뒤덮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br>장시우 시집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말도 어두운 색으로 가는 말이 아니라 밝은 색으로 가는 말이 되도록 해야겠다는...<br>자, 시인처럼 우리 주변의 소리들은 무슨 색깔일지, 우리도 한번 생각해 보자. 특히 사람들이 내는 소리를..&nbsp;<br>&nbsp;소리에 빛깔이 있다면<br>소리에 빛깔이 있다면이 방 안에 가득한 고요는창밖에서 가끔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는세탁기 빙빙 돌아가는 저 소리는벽 너머 들려오는 누군가 씻는 물소리는타닥타닥 글을 쓰며 내가 만드는 소리는주전자에서 물 끓어오르는 저 소리는아침 산책길에서 만난 나팔꽃 벙그는 소리는참새 떼 달음박질하듯 나무를 옮겨 가며 지저귀는 저 소리는온 종일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가 방 안에 가득할 때그 색들은 무슨 빛깔이어야 할까그저 가기 서운했던가검정 비닐을 데리고 가는 저 바람의 색은 또,지금 후두둑 떨어지는 소나기저 빗방울 소리는 어떤 색일까소리에 맞는 색을 찾아 주느라나는 온종일 햇살을 켠다<br>장시우. 이제 우산이 필요할 것 같아. 걷는사람. 2021년. 114-115쪽.&nbsp;<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8548/43/cover150/k93283594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5484332</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거울 단어‘를 생각한다-최돈미 시집 - [DMZ 콜로니]</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03391</link><pubDate>Fri, 29 May 2026 06:5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30339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012957X&TPaperId=1730339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56/31/coveroff/897012957x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012957X&TPaperId=1730339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DMZ 콜로니</a><br/>최돈미 지음, 정은귀 옮김 / 문학사상 / 2026년 04월<br/></td></tr></table><br/>'이이이'라는 말이 이상하게 머리에 남아 있다. 이 시집에 나오는 한 구절일 뿐인데... '이이이'<br>시인은 '이'를 참 여러 가지로 풀이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냥 '이'라고 쓰면 읽는 사람은 많은 이'들'을 생각하게 된다.<br>이것 저것 할 때의 '이'. 이때의 '이'는 상대를 지칭하는 언어가 된다. 이봐 할 때의 이. 그리고 둘을 의미하는 이. 이 '이'를 시집 제목과 연결지으면 남과 북이 될 수 있다.&nbsp;또한 몸에 기생하면서 피를 빨아먹는 '이'를 뜻할 수도 있는데, 이는 분단이나 반공에 기생해서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는 존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빨을 뜻하는 '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이때의 '이'는 우리의 생존에 필요한 존재가 된다. 자칫하면 상대를 물어뜯는 이가 될 수도 있고.<br>이런 사전적 의미나 상징적 의미를 떠나서 차마 말을 할 수 없을 때 입에서 신음처럼 나오는 소리로 '이'를 생각할 수도 있다. 시집에는 고문을 당하는 사람이 나오니, 그에게 언어는 불필요하다. 자신의 몸에서 나는 소리 '으'보다 더 이를 악물고 참아내지만 어쩔 수 없이 나오는 소리 '이'를 낼 수밖에 없다.,<br>참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이'를 시인은 그냥 '이'로 표기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이이'라고 중첩이 되고 있는데, 이 구절이 계속 머리에서 떠나지 않게 된다.<br>반복을 통해서 각인이 된다고 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차마 말로 하지 못하는 감정을 이런 말로 표현할 수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br>언어로 내 편, 네 편을 가르고, 내 편이 아니면 처단해야 하는 상황에서 말을 할 수 없게 된 존재들이 내는 말. '이이이'<br>시집을 읽으면 이 '이이이'를 '아아아'로 바꾸게 된다. 이렇게 시를 쓸 수 있구나. 이렇게 분단 상황에서 겪은 우리 현실을 이런 형식으로 표현할 수도 있구나.<br>자료와 사진과 다른 사람의 글들, 그리고 시인 자신이 쓴 글씨와 자신의 가족사까지... 시에 모두 들어 있다. 어느 하나로 표현할 수 없다는 듯이, 여러 요소들이 모여 한 편의 시를 구성한다.<br>'DMZ'&nbsp;비무장지대라고 번역할 수 있는 말. 하지만 비무장지대라는 말이 무색하게 무장이 강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지대. 무장한 군인들이 서로 총구를 맞대고 있는 공간. 그곳이 바로 비무장지대 아닌가. 그러니 비무장지대라는 말을 거울에 비춰 거꾸로 읽을 수 있어야 한다.<br>시에 나오는 거울 단어처럼... 그냥 글자가 거꾸로 뒤집힌 것이 아니라 의미도 뒤집힌. 그렇다면 '콜로니'는 무엇인가? 식민지라고 번역할 수 있지만, 어떤 집단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나의 의미만을 지니고 있지 않으니, 이 '콜로니'라는 말도 거울에 비춰보자.&nbsp;<br>그냥 볼 수 없는 말을 찾아내야 한다. 이 시를 읽으려면.&nbsp;'DMZ'가 냉전시대 분단을 상징하는 말로 우리나라의 과거 비극을 담고 있는 말이지만, 이곳은 평화의 공간으로 바뀔 수 있다. 자연이 풍부한 생태계를 만들어내고 있는 곳이 바로&nbsp;'DMZ' 아닌가.<br>지금 이곳에는 지뢰를 비롯한 온갖 무기들도 있지만 인간에 의해서 멸종이 될 뻔한 많은 생물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온갖 것들이 공존하는 장소로 존재하고 있는 곳이기도 한데... 콜로니 역시 (식)식민지 역사를 지닌 우리나라가 지금은 다양한 존재들이 공존하는 나라가 되었으니, 생명들이 살아가는 집단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br>이렇게 강자의 이데올로기가 점령하고 있는 말의 뜻을 재해석해내는 것, 그것이 바로 시에서 말하는 '거울 단어'인데...&nbsp;<br>그렇다면 '좌빨'이라는 말을 무슨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그들을 배척만 하는 사람들에게 또는 '계몽령'이라는 말을 쓰면서 '어게인'이라고 다시 돌아오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이 말들을 거꾸로 보여주자.&nbsp;<br>그들의 말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그 말이 과연 우리 사회에서 쓰여야 하는지를 살피게... 시집에 이런 시가 있다. 보자.<br><br>문장을 거꾸로 읽으면 된다. 아마 이 시집을 읽는다면 '좌빨'이란 말도 '계몽령'이란 말도 쏙 들어갈 것이다. '이이이' 정말, 그런 말을 쓸 수 있단 말이야? 하면서.<br>말이 필요없다. 이 시집, 읽으면 형식에서도 내용에서도 감탄하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 현대사를 생각하고, 그러한 과거에서 현재를, 그리고 미래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특히 우리 사회에 넘쳐나는 언어에 대해서...&nbsp;<br>그런 언어를 한번 거울에 비춰보자고... 그 언어가 보여주지 않고 있는 면을 찾아보자고. 그것을 볼 수 있는 사회가 성숙한 사회라고.<br>시집에 대한 자세한 해설은 '번역 후기'와 '추천사'에 잘 나와 있으니 그 부분을 참조하면 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56/31/cover150/897012957x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9563173</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이야기</category><title>시장자본주의가 살아남기 위한 방안-이건 풍자다 - [루가노 리포트 - 21세기 자본주의의 유지 방안]</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97417</link><pubDate>Tue, 26 May 2026 06: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9741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1631336&TPaperId=1729741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67/98/coveroff/898163133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1631336&TPaperId=1729741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루가노 리포트 - 21세기 자본주의의 유지 방안</a><br/>수전 조지 지음, 이대훈 옮김 / 당대 / 2006년 08월<br/></td></tr></table><br/>신자유주의, 그냥 쉽게 시장자본주의, 최대의 이윤을 창출하는 경제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방안 연구를 의뢰한다. 의뢰받은 학자들은 모두 익명으로 연구를 하고, 발표를 하며, 종합 보고서에도 익명으로 서명한다.<br>그들끼리도 서로가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대면을 하지 않고 서면이나 메일을 통해서 연구 결과를 공유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연구결과를 종합해서 시장자본주의가 살아남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일은 인구를 줄이는 일이라고 한다.<br>왜냐하면 '(지구에 대한) 충격 = 소비* 테크놀로지*인구'이기 때문인데... 소비와 인구가 꼭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구가 늘면 늘수록 소비가 늘 수밖에 없으니, 지구에 가하는 충격, 즉 지속가능한 시장자본주의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인구를 줄여야 한다.<br>얼마나? 이 보고서는 21세기 직전에 쓰여졌으므로, 정확하지는 않지만 2020년 세계 인구를 60억에서 80억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적절한 인구는 40억이므로, 60억이 될 것이라고 가정하면 20억을 줄이는 정책을 펼쳐야 하고, 80억이라고 가정한다면 절반을, 즉 40억을 줄일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한다.<br>그래야만 시장자본주의가 제대로 유지될 수 있다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이데올로기, 윤리, 경제, 정치, 심리 분야에서 적절한 방안을 제시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한다.<br>이렇게 이 보고서는 분석과 진단, 그리고 해결방안 제시로 구성되어 있다. 진단과 분석에서 20억을 줄여야 한다면,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줄일 수 있는가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아주 단순하게 계산을 하면 출산율은 줄이고, 사망률은 높이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레 인구는 줄게 되어 있다.<br>우리나라는 지금 인구 소멸을 걱정하고 있어서 이 보고서와는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지만, 지구 전체로 보면 과잉인구는 지구에서 우리 인류의 존속을 위협하는 요소 중 하나가 될 수는 있다. 지금처럼 승자독식으로 간다면....<br>현재 지구에서 생산되는 재화들을 공정(? 무엇이 공정인지, 산술적인 나눗셈으로만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하게 나누고, 지속가능한 생활방식으로 바꾼다면 지금의 인구로도 지구에서 살아가기에 충분하겠지만, 이윤 창출을 최우선으로 하는 자본주의에서는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br>또한 이 보고서는 시장자본주의를 기본으로 하고, 그것이 유지되는 방안을 마련하는 목적이었으므로, 인구를 반드시 줄여야 한다고, 인구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다.<br>즉, 소비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또 테크놀로지(기술)를 이용해 환경을 보호하면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전혀 없다. 오직 가장 단순한 인구를 줄이자로 가고, 그것에 대한 방안, 아마 읽으면서 기겁을 할 만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br>정복, 전쟁, 기근, 전염병 등을 요한묵시록의 네 기사에 빗대어 이야기를 하면서 이들을 통해서 인구를 줄이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고, 또 예방이라고 해서 출산율을 낮출 수 있는 방안이라는 것이 피임 및 불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nbsp;<br>이렇게 2부로 가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방법이라고 제안된 것들이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나 기타 다른 홀로코스트, 또는 제노사이드를 떠올리면서 그것보다 더하네 하는 생각이 들 만한 방법이기 때문이다.<br>그것도 드러내지 않으면서 그러한 일들을 해야 한다고 하니, 이거 보고서가 아니네... 사실이 아니네, 상상이네. 상상인데, 이런 세상으로 가면 안 된다고 경고하는 것이네... 우리가 아무 행동도 하지 않으면 소수가 정말로 이런 세상으로 우리를 끌고 갈지도 모르겠네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br>즉, 저자가 '루가노 리포트'를 통해 시장자본주의의 본질을 드러내고,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갔을 때 어떤 존재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br>그리고 '부록'을 통해 이 보고서에 있는 방법들과 반대되는 방법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우리는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하고 있으니...<br>읽다가 이런 기괴한, 정말 비인간적인 방법을 제시한 이 책은 못 읽겠다 하는 사람들은 '부록'을 읽고 '후기'를 읽는 것이 좋겠다. 그러면 왜 저자가 이렇게 극단적인 방법을 '루가노 리포트'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br>또한 이 책에 제시된 방법 중에 이미 실행된 것들, 그 중에 하나가 민영화, 집중화 등인데 그것들이 일으키는 피해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으니, 이 책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우리가 겪게 될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br>현실은 이 보고서에서 예견한 대로 가지는 않고 있지만, 확신할 수는 없다. 여전히 자본이 세계를 움직이고, 몇몇 소수에 의해서 세계가 요동치고 있으니. 또한 전쟁은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환경파괴로 인한 신종 감염병이 유행하기도 하니, 이 보고서에서 제안하고 있는 방법들을 살피고, 그것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다른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br>그것이 우리가 공멸하지 않고 공존할 수 있는 길이다. 이 보고서는 공멸하지 않기 위해 특정 존재들을 없애야 한다고 하지만, 아니다. 다른 존재들과 함께할 때 공존할 수 있다. 그 방법을 찾는 것이 바로 진화 아닐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67/98/cover150/898163133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679891</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과 나 그리고 책</category><title>김승희 시집- ‘다친 무릎들‘을 생각한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94012</link><pubDate>Sun, 24 May 2026 06: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9401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06896&TPaperId=1729401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5/61/coveroff/8937406896_1.gif" width="75" border="0"></a>&nbsp;<br/><br/> &nbsp; 시인은 이 시집의 '후기'에서 김기창 화백의 미수전(米壽展)에서 본 그림을 보고, 환한 웃음을, 폭소를 터뜨렸다고 한다. 그러한 웃음이 초월로서의 웃음이 아니라, '헤게모니 -권력(들)에 대한 검색과&nbsp; 전복으로서의 웃음'(95쪽)이었다고 하는데...<br>&nbsp; 그렇게 웃음은 불의가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읏음으로서 권력을 넘어서는 경우. 하지만 대부분은 그러한 웃음을 웃지 못한다.<br>&nbsp; 권력은 웃음조차도 탄압하기 때문이고, 이러한 탄압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이 시집에서 말하는 '다친 무릎'이 되기 때문이다.&nbsp;<br>&nbsp; 권력에 의해 '다친 무릎'들도 있지만 스스로 자신을 그렇게 몰아가는 '다친 무릎'들도 있다.&nbsp;<br>이 시집에는 외부의 힘으로부터 다친 존재들과 스스로 외부의 힘에 동화되어 다친 무릎들이 나오는데...<br>우선 외부의 힘에 스스로 동화되는 다친 무릎들은 시집의 앞부분에 실려 있다.&nbsp; 그 중에서 '식탁이 밥을 차린다'와 '제국주의가 간다'는 자본주의 논리에 편승해 자신을 거기에 맞추는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br>자신이 그것들을 소비한다고 생각하지만, 아니다. 반대로 그것들이 사람을 소비한다. 사람은 그것들이 '나를 소비해'라는 말을 요청으로, 부탁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니다. 그것들을 거부했을 때 자신이 사회에서 낙오된다는 느낌, 뒤떨어진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더 적극적으로 그것들의 요청을 명령으로 받아들인다.<br>당연히 따라야 할 것으로, 따르지 않으면 자신에게 좋지 않다고 여기면서... 그러니 내가 신용카드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신용 카드가 나를 소비하고 / 신용 카드가 나를 분실 신고한다'('식탁이 밥을 차린다' 중에서. 9쪽)고 할 수 있는 것이다.<br>마찬가지로 '니나리치가 너를 부른다 / 향기로운 너를 만들어 주겠다고 / 크리스찬 디오르가 너를 부른다 / 불란서 멋쟁이로 꾸며주겠다고'('제국주의가 간다' 중에서. 12쪽)고 할 수 있는 것이다.<br>주객전도(主客顚倒)의 상황. 이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사회. 여기에 자신의 몸을 어떻게 하는가. 성형천국이라는 말을 듣는 나라 아니던가. 몸 어디 한 군데쯤은 손을 대야 사회에서 부끄럽지 않다고 여기는 풍조.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성형의 세계로 들어가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 사람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이, 남의 이목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nbsp;<br>이 시집이 2000년에 나왔는데, 이러한 소비풍조, 또는 사람이 상품에 끌려다니고, 또 스스로 상품이 되어 자신을 포장하는 모습은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줄지는 않았다. 그러니 앞에서 인용한 시들이 말하는 것을 그냥 웃으면서 넘길 수는 없다.&nbsp;<br>오히려 광고를 통해 사람을 이렇게 상품에게 종속되게 하거나 스스로 상품이 되고자 하는 모습을 웃어넘길 수 있어야 하는데, 시인이 바라는 것은 바로 그러한 웃음일 텐데...&nbsp;상품으로, 또는 상품이 되어 만족스러워 하며 내는 웃음이 아니라.<br>다음에 시집에 실린 외부의 힘에 의해 '다친 무릎'들이 나온다. 이는 어쩔 수 없는 힘에 의해 다칠 수밖에 없던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시인은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들과의 연대를 꿈꾸면서.<br>외부의 힘에 의해 '다친 무릎'들은 누구인가? 아예 '다친 무릎'이라는 구절이 제목에 들어간 시도 있는데,('&lt;다친 무릎&gt;에서 시작된 인생'. 60-61쪽) 이 시를 읽고 다른 시들을 찾아보면 쉽게 '다친 무릎'이 어떤 존재들인지 알게 된다.<br>시집에 나오는 존재들을 살펴보면 '일본 대사관 앞 수요 집회에 할머니들'('여왕의 날씨'에서. 44쪽)과 '스페인 기병대에 학살당하고 능욕된 ... 홍인의 어머니와 딸들'('신촌 맥도날드 점'에서. 47쪽)이고, '1980년 5월 19일 광주 / 좌유방부 자창 우측흉부 관통상 / 열아홉 살 처녀 손옥례'('신촌 맥도날드 점'에서. 48쪽) '들'이다.&nbsp;<br>이런 존재들이 권력에 주눅들지 않고 권력에 대해 정면으로 웃을 때 그때 웃음은 전복적인 힘을 발휘한다. 너희들이 아무리 우리를 밟아도 우리는 일어선다. 결코 밟힌 채로만 있지 않겠다는 의지의 발현. 이것은 사회의 소수자들이 자신들을 지칭하는 말로 '이반, 퀴어'라는 말을 써서 그 의미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 것과 통한다.<br>이 시집에서 '일반'이라는 말을 비틀어 '이반'이라고, 'ㄹ'을 탈락시킨 말로 자신들을 지칭하는 그러한 모습과 비슷한 시가 나오는데, 그 시 제목이 '&lt;일상&gt;에서 ㄹ을 뺄 수만 있다면'(68-70쪽)이다.<br>'일상'에서 'ㄹ'을 빼면 '이상'이 된다. 보통, 보편이라는 일상에서 'ㄹ'을 빼면 '이상'이 된다. 보통과 다른이라는 의미의 이상하다의 이상일 수도 있겠고, 우리가 바라는 희망의 '이상'일 수도 있다. 즉 일상에 매몰되어 이상을 보지 못하면, 다른 말로 '다친 무릎'들을 보지 못하면 결코 '이상'에 도달할 수가 없다.&nbsp;<br>시인은 이 시에서 'ㄹ'을 무릎으로 보고 있는데, 무릎을 꿇고 있는 형상을 'ㄹ'에 빗대고 있어서 우리가 일상에서 반드시 'ㄹ'을 빼야 함을, 누군가의 다친 무릎을 괴고 생활해서는 안 됨을 이야기하고 있다.<br>이러한 의지가 실현되는 때로 시인은 상상의 시간을 만들어낸다. 비록 현실에는 없는 시간이지만, 그 시간은 올 수 있고, 또 와야만 한다. 우리가 만들어내야만 하는 시간. 바로 13월의 13일. 13이라는 서양에서 불길하다고 여기는 숫자를 시인은 이 시집에서 권력관계를 뒤집는 시간으로 설정한다.<br>이것 역시 웃음의 힘이다. 불길한 시간, 금기의 시간은 권력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 그런 시간을 '다친 무릎'들이 자신의 것으로 만듦으로써 권력의 시간을 뒤집어버리는 것. 너희가 그렇게 떨고 있는 시간을 우리는 웃으며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자신감. 긍정성, 낙관.<br>시인은 '13월 13일의 사랑'(77-78쪽)과 '13월 13일, 마지막 축제'(79-80쪽)에서 그러한 뒤집음, 환한 웃음을 보여주고 있다.<br>'다친 무릎'들이 서로를 부등켜안으며 함께 웃으며 살아가는 세상. 그러한 세상을 꿈꾸며, 더이상 '다친 무릎'들을 만들어내지 않는 사회를 꿈꾸는 시인. 그러한 시들.<br>시집을 읽다가 몇몇 기사가 떠올랐다. 우리 사회는 '다친 무릎'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나? 우선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에 말도 안 되는 광고를 한 (차마 그들의 광고 문구를 쓸 수가 없다. 쓴다는 것 자체가 이미 모독이다.) 모 기업(굳이 안 밝혀도 다 아니까),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말도 안 되는 막말을 하며서 시위를 하는 몇몇 단체 사람들... 그리고 장애인 시위에 대한 이번 판결.&nbsp;<br>지하철역 시위를 하면서 스티커를 붙이고 글을 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사람들에게 대법원에서 벌금형을 확정했다는 기사. (‘지하철역 시위’ 전장연 대표, 공동재물손괴 벌금형 확정)<br>이 기사를 보면서 이 시집에 나온 '다친 무릎'이라는 말이 떠올랐고, 우리가 그들의 다친 무릎을 보듬고 고쳐주려고 하지는 못할망정, 다친 무릎을 더 세게 내려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이는 시인이 시에서 말했던 'ㄹ'을 빼는 행위와는 정반대의 판결이라는 생각을 한다.<br>그들 시위 방법의 정당성을 묻기 전에 먼저 국가와 사회가 책임을 다했는지를 물어야 하지 않을까. 요즘 헌법, 헌법하는데, 헌법 10조에 보면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되어 있고, 34조에는 1항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와 2항 '국가는 사회보장, 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고 되어 있다. 분명 '모든' 국민이라고 되어 있다.<br>그렇다면 장애인들이 이동할 권리는 행복추구권에도,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에도 포함이 된다. 그러니 장애인들이 이동할 수 있도록 제반 시설을 마련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국가의 의무가 실행되지 않아서 의무를 시행하라고 시위를 하는데, 시위의 방법을 가지고 유, 무죄를 따지는 것은 '다친 무릎'들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여주는 척도가 된다.<br>법원은 국가에게 시위의 책임을 먼저 물어야 하지 않나? 국가가 너무 포괄적이라면 지방자치단체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조항을 실천할 의무가 있기 때문인데...<br>그러니 시위의 적절성으로 판결하기 전에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부작위로 인한 장애인들의 불편'을 먼저 따졌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이러한 생각은 더 짙어졌는데, 왜냐하면 장애인들은 우리 사회의 '다친 무릎'들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br>참으로 여러 생각을 하게 한 시집이다. 시인이 후기에서 한 말처럼 '나의 시가 그런 유쾌한 검은 폭소의 실존적 울림을 가졌으면 좋겠다'(95쪽)고 했는데, 정말 그러한 웃음을 웃고 싶다. 그러한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사회였으면 좋겠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5/61/cover150/8937406896_1.gif</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6194</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비인간‘과 공존하는 사회 - [비인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90890</link><pubDate>Fri, 22 May 2026 09: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9089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72833630&TPaperId=1729089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886/72/coveroff/k67283363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72833630&TPaperId=1729089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비인간</a><br/>최의택 지음 / 읻다 / 2023년 06월<br/></td></tr></table><br/>'비인간'&nbsp;<br>인간이 아니다. '저 사람은 인간도 아니야.' '인간이 어떻게 저럴 수 있지?' 하는 말들에서 인간답지 않은 행동을 하는 사람을 인간이 아닌, 즉 비인간이라고 부른다.<br>그런데, 이런 말들에는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는 무언가 옳지 않음, 또는 인간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라는 의미를 깔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아닌 존재는 열등한 존재나 배제되어야 할, 아니면 고쳐야 할 존재라는 의식을 바탕으로 한 말이란 생각.<br>하지만 세상은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 더 많다. 그러한 존재들과 함께 살아온 것이 바로 인류의 역사다. 인간만이 살 수 있는 세상은 없다. 인간이 아닌 존재가 모두 없어진다면 인간 또한 살아갈 수가 없다.<br>최의택이 쓴 이 소설집 제목이 '비인간'이다. 그런데 제목이 된 소설은 없다. 이 소설집에 실린 소설들에 나오는 인물(인간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소설에 등장하는 존재들이다. 물론 인간을 포함해서)들 중 대부분이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다.<br>SF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인간이 아닌 존재들, 특히 지금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하여 인간과 유사한 로봇을 개발하고 있는데, 이러한 휴머노이드가 상용화된 세상이 소설에 나온다.<br>그런 세상에서 홀로그램 보육교사가 등장하고('보육교사 죽이기'), 로봇이 등장하여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보여주고 있는데...&nbsp;<br>'노인과 노봇'이라는 소설에서 보면 인간과 로봇이 어떻게 공존하고 있는지,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왔는지를 너무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 세상은 디스토피아가 아닐 터. 기술발전으로 인해 우리가 당면해야 하는 세상이 로봇과 인간의 갈등이 아니라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살아가는 세상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br>이렇게 마음을 따스하게 해주는 소설들이 많은데... 그러다가 '경계선, 인격, 장애'란 소설을 읽으면서 마음이 섬뜩해졌는데...<br>인간을 배려하는 로봇과 마음이라는 것이 없는 인간이 등장하여 도대체 어떤 존재를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하고 있다.<br>인간이 아닌 존재를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막 대하는 인물에 비해 인간의 마음을 고려하는 로봇이라니...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비인간'이라는 말에 대해서 다르게 생각하게 된다.<br>생물학적인 인간이 아니라 사회적인 인간에 대하여, 사회학적으로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는 생물학적으로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와는 범위가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br>생물학적인 인간은 아니지만 인간을 돌보고, 인간과 함께하는 존재를 '인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인공지능이나 로봇을 비인간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여러 존재 중 하나로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br>하여 '비인간'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결국 이 소설들은 생물학적인 인간은 아니지만 사회적으로 인간이라 할 수 있는 존재들의 이야기, 그런 존재들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br>'저의 아내는 좀비입니다'는 소설이 좀비로 변한 아내, 남편과&nbsp;함께사는 사람들을 보여주는데, 증상 완화제로 어느 정도 함께 살아갈 수 있다. 이는 좀비를 '비인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보고 있다는 말이 되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영화 [좀비 딸]을 떠올렸으니...<br>이 영화에서 좀비가 된 딸이 등장하지만, 그 딸을 좀비가 아닌 인간으로 대하는 인물들의 모습이 나오는데, 최의택의 이 소설집에서는 좀비만이 아니라 다른 존재들을 인간으로 대하는 모습이 펼쳐지고 있다.<br>그렇게 이 소설 속 '비인간'들은 '사회적 인간'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으니,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세상, 혹 외계존재가 있다면 그들도 '인간'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 소설이기도 하다.<br>그러니 생물학적 인간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인권 선언에 있는 성별, 피부색, 종교, 성적 지향, 나라, 신체적 특성 등등에 의해 차별받지 않는다는 것이니, 그들을 '비인간'처럼 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음을 이 소설집에 실린 소설들이 바탕으로 깔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886/72/cover150/k67283363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8867247</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이야기</category><title>고통을 직시하고 풀어나가려는 정치 - [고통을 다스리는 민주주의 - 정치 없는 치유, 치유 없는 정치를 넘어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88857</link><pubDate>Thu, 21 May 2026 08:0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8885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22033009&TPaperId=1728885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881/98/coveroff/k12203300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22033009&TPaperId=1728885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고통을 다스리는 민주주의 - 정치 없는 치유, 치유 없는 정치를 넘어서</a><br/>김찬호 지음 / 김영사 / 2025년 12월<br/></td></tr></table><br/>'정치'&nbsp;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했다. 사회 생활을 하는 인간에게 정치란 자신이 관여하지 않는다고 해서 없어지는 존재가 아니다. 내가 관여하지 않는 것도 정치다. 그러니 정치는 바로 삶이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br>정치가 잘 이루어질 때 우리는 정치를 의식하지 않는다. 숨을 쉴 때 공기를 의식하지 않듯이 정치가 잘 되고 있다면 정치를 의식할 이유가 없는 것. 하지만 정치가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을 때 우리는 정치를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br>자신에게 닥친 정치... 정치적 위험. 그때서야 정치가 중요함을 깨닫고 어떻게 할까를 고민한다. 어떤 이들은 광장으로 나가고, 어떤 이들은 자신에게 침잠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정치 조직에 몸을 담기도 한다. 각자 다양한 방식으로 정치적 행위를 한다. 그것을 자신은 정치적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더라도.<br>우리에게 정치가 피부에 다가온 것은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사태다. 세상에 비상계엄이라니... 정치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한 날... 그 날 이후, 사람들은 정치에 관심을 가졌다. 다시는 그러한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br>정치에 관심을 가졌는데, 각자의 관점에 따라 정치를 바라보고 행동하는 것이 달라지기도 했다. 그리고 서로 대화를 하지 않고 비방만 하는 경우도 있었다. 정치란 대화와 타협을 기본으로 하는 것,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름의 격차를 좁혀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도록 하는 행위가 정치라고 한다면, 서로 적대적인 말과 행동을 일삼는 것은 정치라고 할 수 없다.<br>정치로 포장된 적대행위일 뿐이다. 민주주의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이 책은 비상계엄 이후 우리나라 정치 상황을 바라보면서 문제가 무엇인지, 또 그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가야 하는지를 제시하고 있는 책이다.&nbsp;<br>'재난, 극우, 광장, 정치인, 교육, 대화, 회복, 성장'이라는 여덟 개 주제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장이 연결이 되고 있기도 하지만, 각자 독립적이어서 따로따로 읽어도 된다.<br>그렇지만 이 여덟 주제를 관통하는 것은 '민주주의'이고, 이 민주주의를 지키고 실현시켜 나가는 것이 우리의 일이라는 관점이다.<br>결국 정치의 복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상호적대적인 갈등을 넘어서 우리 사회의 행복을 만들어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살피고 있다고 할 수 있다.<br>비상계엄 이후 '광장'에서 이루어졌던 것들이 바로 '민주주의'의 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배제가 아니라 화합을 추구하는 모습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한다.<br>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정치는 고통을 보살펴야 한다. ... 정치는 관계의 예술이다. 최고의 정치는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여 공동의 에너지를 고양시키고 사회의&nbsp; 탁월한 잠재력을 이끌어낸다.'(17쪽)고.<br>바로 이러한 공론장의 형성,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고, 이러한 민주주의가 실현된다면, 고통받고 있던 사람들의 마음도 치유될 수 있다고 한다. 즉 '공공선으로 모아진 마음이 민주주의를 치유한다. 그러니까 민주주의가 마음을 치유하고, 건강한 마음이 민주주의를 치유한다. 민주주의와 마음은 서로를 돌보는 관계에 있다'(19쪽)는 것이다.<br>이것이 바로 정치가 해야 할 일인데... 지금 우리의 정치는 어떠한가? 저자의 '정치는 인간의 고통을 가장 많이 발생시키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38쪽)이 현실 아닌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들. 이 전쟁들이 바로 정치가 일으킨 전쟁 아니던가.&nbsp;<br>정치로 인해 발생한 재난이 한 나라에 그치지 않고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 재난을 일으키는 것도 정치지만, 재난을 극복하게 하는 것도 정치이기 때문이다.<br>'정치는 고통을 줄이거나 제거하는 수단이지만, 거기에 주체로 참여하는 것 자체로 치유의 경험이 될 수 있다'(224쪽)는 저자의 말...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그 광장에서 치유를 받은 경험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가.&nbsp;<br>그러니 '정치가 최고의 공동선을 함께 추구하는 행위라고 할 때, 그것은 두 가지 차원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하나는 사회를 구성하는 동시대인들을 온전히 아우르는 공동선이고, 다른 하나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를 배려하는 공동선이다'(253쪽)라는 저자의 말 명심해야 한다.<br>동시대인들만이 아니라 미래세대를 반드시 고려하는 정치가 바로 고통을 치유하는 정치가 될 것이다.<br>최근에 읽은 [자연은 계산하지 않는다]에서 저자인 키머러는 자신의 어머니의 말을 들려주고 있다. "올 때보다 갈 때 더 좋은 곳이 되게 하렴."('자연은 계산하지 않는다' 136쪽)<br>이런 자세가 바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자세다. 동시대인들만이 아니라 미래세대도 함께하는 정치인 것이다.<br>하여 우리는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똑바로 보았을 때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러한 고민을 하는 과정이 바로 희망이다.<br>책의 끝부분에 실린 파커 파머와의 대담에서 파머는 희망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희망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고 말하고 있다.<br>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정치, 그것은 바로 치유의 정치이고, 이러한 치유의 정치가 바로 우리의 희망이 되어야 한다. 저자는 그 점을 이 책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881/98/cover150/k12203300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8819878</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여러이야기</category><title>조선총독상 글짓기 경연대회 글로 본 일제강점기 어린이들의 삶 - [제국의 어린이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87062</link><pubDate>Wed, 20 May 2026 09: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8706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475695&TPaperId=1728706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974/47/coveroff/893247569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475695&TPaperId=1728706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제국의 어린이들</a><br/>이영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5년 08월<br/></td></tr></table><br/>어린이는 그 나라의 미래다. 그렇게 어린이는 중요한 존재다. 단지 미래를 살아갈 존재라서가 아니라 이미 존재했다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존재다. 그래서 아프리카 속담에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겠는가.<br>이렇게 어린이를 사회의 미래로 인식하고 교육하는 곳이 바로 학교다. 학교에서는 전통을 비롯해 미래의 전망까지 교육한다. 그 사회가 원하는 존재를 양성하는 곳, 바로 학교다.<br>이 학교에서 강조하는 것이 무엇일까? 요즘이야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하여 그에 대비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일제강점기에는 어떤 교육을 강조했을까?<br>그러한 교육이 과연 아이들에게 잘 다가갔을까? 이런 의문을 지니면서 이 책을 읽었다. 제목이 '제국의 어린이들' 아닌가.<br>일제강점기를 살아갔던 어린이들의 삶을 그들이 쓴 글을 통해서 엿보게 해준다는 제목. 작은 제목으로 '조선 반도의 어린이들'이라고 했으니, 조선에 들어와 살고 있던 일본인 어린이들도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br>즉, 조선 어린이들과 일본 어린이들의 삶을 그들이 쓴 글을 통해서 비교-대조한다고 할 수 있는데, 어느 정도 비교는 가능해도 대조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저자가 주로 분석하고 있는 글들이 '조선총독상 글짓기 경연대회'에서 입상한 글들을 모아 출판한 책이기 때문이다.<br>조선총독상이라는 이름에서 이미 일본의 시책에 동조하는 글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일본의 정책과 다른 내용의 글이라면 뽑히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고, 뽑히기 이전에 이미 그런 글을 쓰는 어린이는 이러한 대회에 나가지도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br>특히나 조선 어린이들이 글짓기 경연대회에 참가하려면 지도교사가 있어야 했다고 하는데, 지도교사가 총독부의 관점과 다른 글을 쓰도록 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일본 어린이는 조선 어린이와 달리 지도교사가 없었다고 하는데, 이들은 조선총독부의 정책에 대해 반감을 가지지 않았을 테고, 또한 일본어도 자유롭게 구사했을 테니 굳이 지도교사가 필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br>그러니 저자가 참조한 글들은 일제강점기 어린이들의 생활을 모두 보여줄 수는 없다. 알려지지 않은 그러한 어린이들의 삶은 다른 글들, 또는 다른 자료를 통해서 찾아야 할 것인데...<br>그럼에도 저자는 조선총독상 글짓기 경연대회 작품들을 통해서 어느 정도 당시 조선에 살았던 어린이들의 생활을 파악할 수 있고, 일본과 조선의 어린이들이 처한 상황을 비교할 수 있다고 한다.<br>큰 차이점은 일본 어린이들은 무상으로 교육을 받는 반면, 조선 어린이들은 수업료를 내고 교육을 받아야 했다는 사실, 그러니 경제적으로 수탈을 당하던 조선인들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비율이 적을 수밖에 없다는 점, 또 일본이 일으킨 전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br>조선총독상 글짓기 경연대회라는 이름에서부터 예전에 70년대쯤 우리나라에서 개최하곤 했던 반공웅변대회가 생각났다.<br>반공웅변대회, 여기에 참가하는 학생들의 글을 보면서 당시 학생들의 삶을 모두 파악할 수 있겠는가. 그 대회에 나가는 글들은 어느 정도 방향이 정해져 있었다고 보면 되는데... 마찬가지로 일제강점기 말기에 총독부 주최로 실시했던 조선총독상 글짓기 경연대회 역시 자신들의 방향에 맞는 글들을 요구했을 것이고, 그러한 글들을 통해 다른 아이들에게 영향을 주려고 했을 것이다.<br>그러니, 저자가 분석한 글들만으로 당시 조선 반도의 어린이들이 어떤 생활을 했는지 모두 파악할 수는 없다. 오히려 방정환이 창간한 [어린이]라는 잡지라든가, 또 그와 비슷한 매체에 실린 글들을 자료로 삼아 분석했다면 더욱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br>저자 역시 다른 잡지에 실린 글들도 참조하고 있지만, 대체로 조선총독상 글짓기 경연대회, 그것도 1,2회 작품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니 그 점이 좀 아쉽다.<br>또한 어린이 당사자들의 글이 아니더라도 당시에 어린이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다른 많은 글들이 있을 것인데, 특히 아동문학을 중심으로 분석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하는데...<br>그럼에도 조선총독부에서 주관한 어린이 글짓기 작품을 대상으로 한 것은 일제강점 말기 당시의 사회 모습을 바라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어린이들에게까지 천황을 위해 죽는 것이 영광이라는 의식을 주입하려는 그들의 모습을 이 책에서 볼 수 있으니...<br>또한 저자도 지적하지만 조선 어린이와 일본 어린이의 글을 보면 그들이 다루는 소재 자체에서도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경제적으로 유복한 생활을 하는 일본 어린이들이 동물을 다루더라도 요즘 반려동물이라 하는 개, 고양이들을 소재로 하고 있다면, 조선 어린이들은 그러한 반려동물이아니라 돼지나 소와 같은 집안 경제에 도움이 되는 동물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 하여 관변 글쓰기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인과 일본인의 경제적 차이가 드러난다는 점을 알 수 있으니...<br>이렇게 드러난 글에서도 차이가 나는데, 드러나지 않은 현실을 어떠했을지 가히 짐작할 수 있으니... 그 점에서 이 책이 일제강점기 어린이들의 생활을 살펴보는 한 계기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974/47/cover150/893247569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9744725</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이야기</category><title>배제가 아닌 융합 사회로 나아가야 - [노시니어존 - 우리의 미래를 미워하게 된 우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83475</link><pubDate>Mon, 18 May 2026 09: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8347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0536695&TPaperId=1728347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902/22/coveroff/896053669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0536695&TPaperId=1728347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노시니어존 - 우리의 미래를 미워하게 된 우리</a><br/>구정우 외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25년 03월<br/></td></tr></table><br/>'노 키즈 존'이라는 말이 있다. 아이들이 들어올 수 없는 공간이라는 뜻인데... 아이들이 다른 사람들을 방해하니, 아이들과 함께하지 않는 공간을 마련한다는 취지다.<br>배제의 원리가 작동하고 있는 것, 세대 갈등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이때 '키즈'에 해당하는 존재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들은 보호받고 통제받는 존재라는 인식을 지니고 대하기 때문이기도 한데...<br>이러한 '노 키즈 존'이 인권침해에 해당한다고, 그러한 공간을 설정하는 것은 문제라는 인식을 많은 사람들이 지니고 있다.<br>'노 키즈 존'과 마찬가지로 누군가를 배제하는 공간이 있는 사회는 좋은 사회라 할 수 없다. 이렇게 어떤 존재를 배제하는 공간이 '노 키즈 존'만 있는가? 아니다. 찾아보면 우리 사회에 이러한 배제의 공간이 많이 있다.<br>그런 배제의 공간을 인식하고 그것을 없애려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문제제기에 동감하고 정책으로, 제도로, 또 환경 개선으로 배제의 공간을 융합의 공간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있다.<br>배제가 아닌 융합. 함께함. 이러한 공간이 우리가 지향하는 공간이 되어야 하는데... 이 책은 '노 키즈 존'을 비틀어 '노 시니어 존'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읽을 때 발음은 같지만 표기가 다르다.<br>'노 시니어 존 No Senior Zone'이 아니다. '老노 see:near zone'다. 노인을 가까이서 보는 공간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제목이다. 가까이서 보다. 이 말을 가장 잘 살린 시가 나태주 시인이 쓴 풀꽃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는 시.<br>노인들도 마찬가지다. 가까이서 보아야 한다. 가까이서 보아야 한다는 말은 함께 지내야 한다는 말이다. 함께 지내다 보면 자세히 볼 수밖에 없고, 오래 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보지 못했던 부분을 보게 되고, 배제가 아니라 수용으로, 융합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br>이 책의 저자들이 주장하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노인들을 배제하는 사회가 아니라 함께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함께하는 시간, 공간들이 마련되어야 한다고.<br>노인들은 우리에게 '오래된 미래'다. 또 우리가 맞이하게 될 미래이기도 하고... 누구나 나이 들어 갈 수밖에 없다. 지금으로서는 우리가 노인이 안 될 방법이 없다. 우리 모두 노인이 되기에, 지금 우리 곁에 있는 노인들은 우리의 미래이기도 하고, 우리의 현재이기도 하다.<br>그러니 그들과 함께하는 삶을 고민해야 한다.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노인들을 배제하지 않고 함께하는 사회는, 노인뿐만 아니라 다른 존재들도 배제하지 않는 사회일 것이다.<br>다름을 인정하는 사회, 약자를 보호하고 존중하는 사회, 오히려 약자에게서도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 사자가 생쥐의 도움을 받아 위기에서 벗어나는 우화처럼, 사회는 약자는 늘 도움을 받고, 강자는 늘 도움을 주는 관계로 유지되지 않는다. 약자도 도움을 주고, 강자도 도움을 받을 때가 있다.&nbsp;<br>이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다. 그런 점을 인식하고 있다면 어떤 존재들과도 함께할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노력하지 않을까. 누군가가 배제되는 사회가 아닌 누군가도 함께하는 사회. 그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br>이 책은 그런 점에서 '노인'을 중심으로 배제가 아닌 융합의 사회가 좋은 사회임을 주장하고 있는글들이 실려 있다. 책의 표지에 있는 문장이 '우리의 미래를 미워하게 된 우리'인데... 이 문장이 '우리의 미래와 함께하는 우리'가 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902/22/cover150/896053669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9022205</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거짓‘을 ‘진실‘로 착각하는 세상에 대한 풍자 - [고양이 요람 (리커버 에디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81485</link><pubDate>Sun, 17 May 2026 10: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8148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48673&TPaperId=1728148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4499/42/coveroff/k21263095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48673&TPaperId=1728148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고양이 요람 (리커버 에디션)</a><br/>커트 보니것 지음, 김송현정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07월<br/></td></tr></table><br/>커트 보니것의 소설을 읽을 때 문장 속에 숨어 있는 의미를 찾아내면서 읽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게 무슨 소리야? 하게 된다.<br>그의 문장 속에 숨어 있는 풍자, 비판을 찾아내야 작품을 즐길 수가 있다. 적어도 작품을 잘못 이해하지는 않게 된다.<br>'고양이 요람' 세상에, 이게 무슨 뜻이야? 했는데... 옮긴이의 말을 보니, 실뜨기란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실을 가지고 노는 장난.<br>실뜨기를 하면서 여러 모양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그렇게 만들어낸 모양은 가상이다. 현실이 아니다. 즉 진실이 아닌데, 그것을 진실인 양 믿고 놀이를 진행하는 것이다. 아이 때 그런 놀이는 가능하다. 아이들은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즉 실뜨기로 만들어낸 것이 진짜가 아니라 놀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냥 놀이로 즐기면 되니까.<br>하지만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이면 어떻게 될까?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한다고 여기고 그것에 의존하는 순간, 현실에 눈 감게 된다. 현실에 눈 감은 결과는 예측하기 힘들다. 그렇게 현실에 눈 감은 사람들이 도달한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를 이 소설이 보여주고 있다.<br>'나를 조나라고 부르라'(15쪽)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조나'라는 이름이 무엇인지 떠오르지 않는다면 이를 '요나'로 바꾸면 연상되는 인물이 있으리라. 고래 뱃속에 들어갔던 사람.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이상한 세계에 도달한 사람.&nbsp;<br>'누군가가 혹은 무언가가 어김없이 나를 특정 시간, 특정 장소에 데려다놓았기 때문이다.'(15쪽)고 하기 때문에 자신을 '조나'라고 하는데... 그는 그렇게 한 나라가 파괴되기까지의 현장에 있게 되고, 그것을 글로 남기에 된다.<br>따라서 '조나'로 시작한 소설이 한 나라의 파괴로 끝난다. 그가 도착해서 살아가려고 한 나라가 어떤 물질 때문에 사람들뿐만 아니라 다른 존재들까지 죽어가게 되는 현실.<br>액체를 또는 진흙을 단단하게 만드는 물질, '아이스-나인'이 등장한다. 이것을 만든 과학자는 별 생각이 없었을 수도 있다. 이런 물질을 만들어 달라는 의뢰가 있었고, 자신도 흥미를 느꼈으며, 실제로 만들 수 있는 능력도 있었으니, 만들었으리라. 만든 다음 그 결과에 자신이 놀랐을지라도.<br>무언가가 연상되는 전개 아닌가. 인류를 파멸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물질, 아니 무기. 그런 무기가 개발되고, 핵무기로 인해 핵전쟁 위기까지 가는 상황을 목격한 작가는 침묵할 수 없었으리라.<br>게다가 이 작가는 2차 대전 때 포로가 되고, 무고한 시민들이 폭격으로 죽어가는 것을 목격한 사람이 아니던가. 반전을 외치는 작가가 핵전쟁의 위협을 모른 체하고 넘어갈 수는 없었으리라.<br>그렇다면 이러한 핵전쟁의 위험, 핵무기의 위험을 어떤 식으로 알려야 할까? 정공법으로 기록하는 것도 있겠다. 이는 소설이라기보다는 보고서, 르포르타쥬라고 하는 편이 좋겠지. 그러면 내용은 건조해지겠고, 사람들에게 잘 다가가지 않겠지.&nbsp;<br>최근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정공법으로 핵개발의 위험성이나 전쟁의 참상을 작품으로 우리에게 다가왔지만, 커트 보니것은 이런 방법이 아니라 우회적인 방법으로 핵무기의 위험이나 전쟁의 참상을 우리에게 보여준다.<br>바로 풍자다. 신랄하게 비꼬는, 또는 가볍게 농담하는 것처럼 툭툭 던지는 어투로 내용을 전개함으로써 쉽게 읽을 수 있게 하고 있다. 쉽게 읽을 수 있는데, 웃으며 읽는데, 읽어가면 읽어갈수록 뒤통수가 켕긴다.<br>마음에 무언가가 들어차서 그것이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가벼운 문장들이라고 생각하고 읽어가는데 읽어갈수록 문장들이 묵직해진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도대체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정말 이렇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br>아주 적은 양의 '아이스-나인'으로도 한 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위력을 발휘하는데, 이것이 바로 핵폭탄 아니겠는가. 그런 핵폭탄을 사용하는데 여러 제한 장치를 두고 있지만, 어느 순간 실수로 인해 핵폭탄이 사용된다면... 그때는 걷잡을 수 없는 재앙이 펼쳐질 것이다.<br>소설이 뒷부분으로 갈수록 그러한 핵무기의 위험성을 연상하게 전개되는데, 그 전에 그러한 물질(무기)를 개발한 과학자의 모습, 그것을 나누어 가지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나누어주는 자식들의 모습에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여러 나라를 떠올리게 된다.<br>그러면서 우연히 핵무기가 사용된다면, 그 결과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설 것이라는 것을 소설을 통해서 엿보게 된다. 이것이 커트 보니것 소설의 장점이다.<br>앞부분에서 일본에 핵폭탄이 떨어질 때 정작 개발에 참여한 과학자가 한 짓이 바로 '고양이 요람'을 만든 것이었다는데... 이 고양이 요람이 지닌 의미를 옮긴이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br>'고양이 요람은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행복과 위안을 주기 위해 만들어낸 모든 종류의 거짓을 상징한다.'(346쪽)<br>태평양 건너 편에 있는 나라에 폭탄이 떨어져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그 후손들까지 대대로 고통을 받게 되는데, 정작 그러한 무기를 개발한 사람은 자신의 방 안에서 실뜨기를 하고 있었다면? 폭탄이 떨어지는 장면, 아비규환에 처한 사람들의 모습과 대조적으로 자신의 방에서 평온하고 한가하게 실뜨기를 하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떠올려보라.<br>이게 무슨 짓인가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가. 과학-기술이 이렇게 잘못 쓰일 수도 있는데, 과연 과학-기술자들은 그 쓰임에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nbsp;<br>커트 보니것은 과학-기술의 책임 문제를 생각하지 않는 과학자-기술자의 모습을 이 소설에서 보여주면서 인간의 행복을 위한다는 과학-기술이 인간을 파멸로 이끌 수도 있음을, 그러한 것이 어쩌면 실뜨기(고양이 요람)처럼 실재하지 않는데, 실재하는 것처럼 우리를 잘못 이끌고 있지 않은지를 생각하게 한다.<br>과연 커트 보니것이군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읽은 소설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4499/42/cover150/k21263095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44994290</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과 나 그리고 책</category><title>페소아 시집을 읽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77938</link><pubDate>Fri, 15 May 2026 12: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77938</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34699&TPaperId=1727793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7054/82/coveroff/s842534188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nbsp; 페르난두 페소아. 이름을 많이 들었다. 읽은 책은 하나도 없었지만, 한번은 읽고 싶었던 책들. 제목이 [페소아와 페소아들]란 책도, [불안의 책] 또는 [불안의 서]라고 번역된 책도 제목에 끌리게 되었다.<br>&nbsp; 무언가 분열된 자아를 지닌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는 제목들. 페소아와 페소아들이라면 이는 하나로 정리될 수 없는 자신을 이야기하는 것일 텐데... 그런 분열된 자아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불안을 느끼지 않을까.<br>&nbsp; 불안을 느끼지 않았다면 그는 어쩌면 지금 우리가 말하는 다중우주에 살고 있지 않았을까. 수많은 페소아들은 지구가 아닌 다른 우주에 존재하면서 어느 때 문득 지구에 살고 있는 페소아를 찾아오지 않았을까. 그런 상상.&nbsp;&nbsp;<br>다중우주라는 개념을 그냥 상상 속에만 존재한다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우리 인간의 뇌 역시 우주라고 하니, 뇌라는 우주에는 너무도 다양한 '나들'로 구성되어 있지 않을까. 때로는 이런 '나'가, 때로는 저런 '나'가 내 의식 속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지 않을까.&nbsp;<br>그러면 나라는 존재가 다양한 우주에 함께 존재한다면... 그런 '나'가 각자 다른 삶을 살고 있다면, 그들은 각자가 과연 '나'인가? 아니면 그런 '나들'이 모두 합쳐져 '나'라고 할 수 있는가? '나'를 정의하기도 힘든데... 페소아의 '시가집'이라고 이름을 붙인 이 책의 제목이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다.<br><br>많은 영혼... 그렇다. 바로 다중우주 아닐까. 어느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수많은 '나들' 그런 나를 어찌 하나로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페소아 역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시가집이라고 이름 붙인 이유로 노래로 불릴 수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포르투칼어를 모르니, 이에 대해서는 넘어가고.<br>하지만 느낌이 그러니.. 이 시가집에 실린 시 중에 '이것'이란 시가 있는데, 이 시를 보면 이것이다, 저것이다 보다 상상을 통해 느낀 것이 더 중요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느낌이 바로 '나'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고.<br>&nbsp; &nbsp; 이것<br>사람들은 나의 흉내며, 거짓말이라고 한다내가 쓰는 모든 것이. 아니다나는 그저 느낄 뿐이다.상상을 통해.마음은 쓰지 않는다.<br>내가 꿈꾸거나 겪는 것 모두,내게서 실패하거나 끝나는 것,그것은 다른 무언가 위의옥상 같은 것. 바로 그무언가가 아름다운 것.<br>그래서 나는 가까이 있지&nbsp;않은 것 가운데서 쓴다내 얽힘으로부터 자유로이,아닌 것에 대해 진지하게.느낌? 읽는 사람이 느끼라지!&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 1934년 4월 출판.<br>페소아.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 문학과지성사. 2018년 1판 2쇄. 101쪽.<br>이 시를 읽고 제목이 된 시를 읽으면 페소아란 존재 역시 다양한 페소아들이 모여 페소아가 됐다는 것, 우리 역시 많은 '나들'이 모여 '나'가 된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br>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은 중요하지 않다. 내가 느끼는 '나'가 중요하니까. 그렇게 페소아의 이 시가집을 읽었다. 복잡한 나를, 어느 하나의 나를 배제하지 않고, 그런 나도 나임을 생각, 아니 느끼면서.<br>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br>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 나는 모른다.나는 매 순간 변해왔다..끊임없이 나 자신이 낯설다.나를 본 적도 찾은 적도 없다.그렇게 많이 존재해서, 가진 건 영혼뿐.영혼이 있는 자에겐 평온이 없다.보는 자는 보고 있는 바로 그것이다.느끼는 자는 그 자신이 아니다.<br>내가 누군지, 내가 뭘 보는지에 주의를 기울이며,나는 내가 아니라 그들이 된다.&nbsp;나의 꿈 또는 욕망 각각은,태어나는 것이지, 나의 것은 아니다.나는 나 자신의 풍경,나의 지나감을 지켜본다.다양하고, 움직이고, 혼자인.내가 있는 이곳에선 나를 느끼지 못하겠다.<br>그래서 낯설게, 나는 읽어나간다,마치 페이지처럼, 나 자신을.다가올 것을 예상치 못하면서,지나가버린 건 잊어가면서.읽은 것을 귀퉁이에 적으면서느꼈다고 생각한 것을다시 읽어보고는 말한다. "이게 나였어?"신은 안다, 그가 썼으니.&nbsp;&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1930.8.24.<br>페소아.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 문학과지성사. 2018년 1판 2쇄. 78-79쪽.]]></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7054/82/cover150/s84253418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70548292</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생태설화로 만나는 자연과 인간의 공존 - [아시아 생태설화 - 기후위기 시대, 옛이야기에서 발견한 공생의 삶]</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75664</link><pubDate>Thu, 14 May 2026 10:0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7566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32036997&TPaperId=1727566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599/67/coveroff/k03203699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32036997&TPaperId=1727566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아시아 생태설화 - 기후위기 시대, 옛이야기에서 발견한 공생의 삶</a><br/>권혁래 지음 / 책과함께 / 2025년 01월<br/></td></tr></table><br/>설화라는 한자어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으면, 이야기라고 하면 된다. 여기에 옛이야기라고 하면 더 잘 이해할 수 있다.<br>우리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고, 또 이야기를 하면서 지내왔으며,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도 하면서 살아가니까.<br>이야기는 우리들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고,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알게모르게 무언가를 배우게 된다. 자연스레 배우게 되는 것들 중에 환경에 대한 것이 있다. 물론 이 책은 환경이라는 말보다는 생태라는 말을 쓰고 있지만.<br>생태라는 말에는 관계가 포함되어 있다. 어느 한 존재가 다른 존재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존재들이 공생하는 관계, 그런 관계를 생태라는 말은 포함하고 있다.<br>그러니 생태설화라는 말은 다른 존재들과 인간이 공존하는 이야기라 할 수 있고, 이 공존이 실패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알려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br>설화는 '한 나라의 기층문화, 정서, 가치관, 생활사, 민속 등을 보여주는 문화자료'(53쪽)라고 하니, 설화라는 이야기를 통해서 자연스레 자신들의 문화, 가치관을 익히게 되는 것이다.<br>이런 설화를 아시아라는 우리가 속한 대륙으로 확장해서 비슷한 설화들을 비교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이다. 단지 설화를 비교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러한 설화들을 통해서 '자연과 생태적 삶, 공생의 정신, 화해와 소통, 평화의 정신에 대해 상상하며 지구공동체 구성원들의 연대 방안을 상상하게 될 것'(17쪽)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br>우리나라, 중국, 일본,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등의 설화를 살피고 있는데, 비슷한 설화들이 많다. 그러한 비슷한 설화들을 통해서 예전 아시아에서 지니고 있던 생태적 관점을 살필 수 있고, 그런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 역시 다른 존재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할지를 생각하게 된다.<br>어른이라면 이미 알고 있던 이야기들이 이 책에 많이 나온다. 물론 아시아의 다른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나라 이야기. 우리 옛이야기에 자연과 또 다른 동물들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꽤 있기 때문인데...<br>동물을 구해줘서 보은을 받거나 동물을 학대에서 벌을 받는 내용은 지금 우리가 자연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하고...<br>여기에 인간의 이기심과 욕심이 어떻게 자연을 파괴하고, 그것이 자연만이 아니라 결국 인간의 삶도 파괴하게 되는지를 옛이야기들을 통해서 알 수 있으니...<br>저자의 바람대로 이러한 옛이야기는 자주 들려줘야 한다. 자주 이야기해야 한다. 이야기가 가진 힘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nbsp;<br>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레 생태적 관점을 지니게 되고, 다른 존재들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가는 마음을 지닐 수 있기 때문인데...&nbsp;<br>이 책은 아시아의 생태설화를 모아놓은 책이 아니라 그러한 설화들을 비교, 분석하고 있는 책이라, 옛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어서 옛이야기를 읽을 수 있겠구나 하는 사람에게는 실망을 줄 수도 있다.<br>이 책엔 두 편 정도 외국의 옛이야기가 실려 있어서, 그 이야기의 전체 내용을 볼 수는 있지만, 더 많은 이야기가 실렸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있다.<br>그럼에도 왜 옛이야기가 필요한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는 책이라는 점,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인간과 인간만이 아니라 인간과 다른 비인간 존재들과 어떻게 관계맺는 것이 바람직한지를 생각하게 해주고 있으니, 그 점에 관해서는 의미가 있는 책이라는 생각을 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599/67/cover150/k03203699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5996748</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사람이야기</category><title>노예(예속 피해자)에서 자유인이 되는 여정 - [주인 노예 남편 아내 - 2024 한국인 최초 퓰리처상 수상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73529</link><pubDate>Wed, 13 May 2026 09: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7352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52032021&TPaperId=1727352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536/18/coveroff/k05203202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52032021&TPaperId=1727352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주인 노예 남편 아내 - 2024 한국인 최초 퓰리처상 수상작</a><br/>우일연 지음, 강동혁 옮김 / 드롬 / 2025년 12월<br/></td></tr></table><br/>명사 넷이 나열되어 있는 제목. 주인, 노예, 남편, 아내. 이렇게 네 개의 낱말이 있으면 짝을 짓고 싶은 마음이 든다. 어떻게? 간단하다. 순서대로 짝을 지으면 된다. 주인과 노예. 남편과 아내.&nbsp;짝이 지어질 수 있는 낱말들이고 관계다.<br>우선 주인-노예의 짝.&nbsp;주인이 있으면 노예가 있고, 노예가 있으면 주인이 있다. 종속적인 관계. 상-하 관계다. 또한 자유가 있고 없음의 차이를 지닌 짝이다.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에 귀속된 관계. 이것이 주인-노예의 짝이다. 불평등, 부자유... 지금은 통용되지 않는 노예라는 말. 그러니 이 낱말의 짝은 지금은 폐기되어야 한다.<br>이 책이 미국에서 발간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 쉽게 주인-노예의 짝을 찾을 수 있다. 아, 백인 주인과 흑인 노예구나. 흑인이 노예로 해방되지 않았던 시절의 이야기겠구나 하는 짐작을 할 수 있다. 게다가 백인 주인이라고 하면 여기 성별은 주로 남성을 연상한다.<br>그런데 다음 짝이 걸린다. 남편-아내라니... 남편과 아내를 상-하 관계로 놓을 수는 없다. 주인과 노예의 관계로 놓을 수도 없다. 하지만 이 짝에서 가부장 시대를 읽는 사람은 주인-노예의 짝과 같은 의미로 읽을 수도 있겠다.<br>같은 노예 생활을 하더라도 집으로 돌아오면 흑인-남성은 흑인-여성 위에 군림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지레짐작하고, 이 책도 그러한 관계를 이야기하고 있구나 할 수 있다.<br>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주인-노예와 남편-아내의 짝이 연결되는 지점이다. 분명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이라는 수식어구, 이 말을 당당하게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아직도 주인-노예와 짝을 이루는 남편-아내가 있을 수도 있다. '있을 수도 있다'는 가정으로 이야기했지만,,, 현실에서는 어떤지? 지금 시대에 이 가정이 가정으로만 끝났으면 좋겠다.<br>그러니 지금으로부터 150년도 더 전에, 노예제가 있던 미국에서 주인-노예와 남편-아내의 짝은 분명 연결이 되었으리라. 상하, 지배-종속 관계를 나타내는 말로.<br>이런 짐작으로 책의 첫장을 넘기면 어? 아니네... 하게 된다. 당연히 주인-남편, 노예-아내 짝을 연상했던 사람에게는 낯선 짝이 등장한다. 주인-아내, 노예-남편의 짝이 이 책에 등장하기 때문이다.<br>미국 남부, 노예제가 극성을 부리던 곳에서 살던 윌리엄과 엘렌. 이들은 부부로 살아가지만 남부에서 부부로 인정받지 못한다. 함께 살지도 못하고 가끔 만나볼 뿐이다. 게다가 엘렌은 피부가 하얗다. 아버지가 백인이고 피부 역시 하얗지만, '한 방울의 법칙'에 의해 엘렌은 노예가 된다. 나중에 탈출해서 강단에 설 때도 이런 엘렌을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백인 노예'라는 표현으로 엘렌을 지칭하기도 한다.<br>탈출하기 위해서, 체포되지 않기 위해서 그들이 선택한 방법은 위장이다. 피부가 하얀 엘렌이 백인 청년으로 분장하고, 윌리엄은 그의 노예로 시종을 들면서 떠나는 모습으로 위장한 것. 물론 그들의 주인에게는 비밀로 하고 새벽에 몰래 각자 빠져나온다. 기차역까지.<br>기차에서 그들은 주인과 노예로 행세하면서 배를 갈아타고 다시 기차를 타고 배를 타는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보스턴에 도착한다. 북부. 자유롭게 살 수 있다고 여긴 곳. 하지만 아니다. 노예 사냥꾼들이 들이닥쳐 언제 어디서 그들을 잡아갈지 모른다.<br>도망노예법에는 노예제를 인정하지 않는 북부 주에 살더라도 기존의 노예 주인들이(받아들이기 힘들더라도 그들을 이렇게 지칭하자. 사람이 사람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말은 이 당시에는 통하지 않았으니..)&nbsp;그들을 잡아가는 것을 막을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법을 실행하는 것이 연방 해체를 막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정치인들이 다수였고.<br>하여 크래프트 부부는 캐나다로 다시 떠난다. 자유인으로 살 수 있는 곳. 하지만 캐나다 역시 미국 남부에서 배로 한 번에 올 수 있는 곳. 노예 사냥꾼에게 잡혀갈 수 있는 위험이 있는 곳이다. 생활이 보장되지도 않고. 하여 안전한 곳. 노예를 인정하지 않는 곳인 영국으로 떠나가는 그들 부부.&nbsp;<br>결국 남부 메이컨에서 북부 보스턴을 거쳐, 캐나다에서 다시 영국으로 가는 여정, 다시 영국에서 미국으로 와 자유인으로 살아가게 되는 이 여정이 바로 이 부부가 자유를 찾아 떠난 길이다. 많은 위험도 있었고, 더 많은 도움도 있었고, 자신들의 상황을 공개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도 했던 부부.<br>위험 상황에서도 이들 부부가 타협하지 않은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했기 때문이기도 한데... 자신들이 겪은 자유를 찾는 여정을 강연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공유하고, 또 아직 떠나지 못한 사람들에게 떠날 수 있음을 알리기도 하는 부부의 모습.<br>이런 이들이 있었기에 미국은 노예 해방이라는 길로 점점 나아가게 된다. 연방이 해체되면 안 된다는, 그래서 노예제를 옹호하는 남부 사람들과 타협하던 정치인들도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게, 연방 해체의 위험, 전쟁까지도 불사하게 만든 거대한 흐름. 이 흐름은 한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br>크래프트 부부를 비롯해 먼저 탈출한 사람들, 노예제 폐지에 앞장섰던 사람들, 또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준 사람들, 그리고 지속적으로 자유를 찾아 떠나는 사람들과 자유를 외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노예 해방이라는 큰 물길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br>여기에 크래프트 부부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고...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자신들의 힘으로 탈출해 자유를 얻고, 그 자유를 자신들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함께 누려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들.<br>이 여정은 남부에서 북부로 왔을 때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여정은 북부에서, 그리고 영국에서도 계속된다. 노예 해방 선언이 있고, 남북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그 이후까지.<br>이렇게 이 책은 크래프트 부부의 일생을 담고 있다. 소설이 아니다. 사실에 기반한 이야기다. 하여 작가는 확실하지 않는 점은 가정으로 이야기한다. 그렇지 않았을까라는 추측으로. 즉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전달하지 않고, 사실 전달을 원칙으로 하지만 짐작할 수 있는 부분, 논란이 되는 부분에서는 저자의 관점을 드러내고 있다. 그 점이 이 책에 신빙성을 더해주고 있다고 생각하는데...<br>우선 용어부터. 저자는 노예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노예-소유자라는 말도 쓰지 않고. 그 점이 좋았다. 노예라는 말 대신 '예속 피해자'라는 말을 쓴다. 그렇다. 남에게 예속당하는 피해를 입은 사람이다. 이 용어는 명확하게 자신의 의지가 아닌 남의 힘에 의해 자유를 잃었다는 점을 명시한다.<br>노예 소유자라는 말도 그렇다. 왠지 합법적인 느낌을 주는데, '예속 가해자'라고 하면 남의 자유를 힘으로 빼앗았다는 느낌을 확실히 준다. 가해자라는 말 때문에... 소유자라는 말이 가치중립적이라면 가해자라는 말은 가치를 명확하게 드러낸다.<br>이 용어에서부터 노예제란 바로 가해-피해의 관계임을 말해주고 있으니... 다음으로 '남편-아내'의 관계다. 저자는 이들 부부가 떨어져 지낸 기간이 꽤 됨을 알려준다. 이들이 영국에 머물 때 각자의 일로 몇 년씩 떨어져 있기도 한다.&nbsp;<br>남편은 아프리카에서 일을 하고, 아내는 영국에서 자신의 일을 하는 관계. 지금에 보면 대등한 부부 관계다. 서로의 일을 하면서 함께하는 부부. 이를 '따로 또 같이, 같이 또 따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br>하지만 당시에 부부가 이렇게 긴 기간을 떨어져 있는 것은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나 보다. 특히 엘렌에게 더 많은 책임을 지우려는 모습도 나타났다고 하고, 말년에 이들이 재판에 임하기도 하는데, 이런 부부 관계가 재판에 불리하게 작용하기도 했다고.<br>당시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가부장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주인-노예 관계의 잘못을 인정하고, 없애려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지만 가정에서는 '주인-노예' 관계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음을... 크래프트 부부를 바라보는 시각을 통해 전해주고 있다.<br>이런 점에서 크래프트 부부가 자유를 위한 여정에서 아내 엘렌이 주인으로 분장한 것은 이후에도 엘렌이 독립적으로 살아가게 됨을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br>저자 역시 이런 부부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설명하고 있으니, 비록 그들 부부의 내밀한 사생활을 알 수는 없지만 저자는 이렇게 '같이 또 따로, 따로 또 같이' 살아가는 크래프트 부부의 모습을 '주인-노예' 관계를 청산한 평등한 부부의 모습으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br>자, 이렇게 이 책은 크래프트 부부가 자유를 찾아 떠나는 긴 여정을 통해 '주인-노예'의 관계가 '남편-아내'의 관계에서 작동하지 않음을, 두 쌍의 낱말은 서로 짝을 이루지 못함도 보여주고 있다. 하나는 권력이 작동하는 관계고, 하나는 권력이 작동해서는 안 되는 관계니까.<br>역사 책에서 쉽게 만나지 못하는 크래프트 부부의 여정. 이 여정을 따라가면 미국에서 노예 해방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음을 인식하게 된다. 여기에 평등이란 인종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님도... 다른 많은 관계에서도 바로 이 평등이 작동해야 함을...<br>빛바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도 필요한 태도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꼭 읽어야 할 책이란 생각이 든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536/18/cover150/k05203202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5361817</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여러이야기</category><title>자연을 통해 호혜성 경제(선물 경제)를 배우자 - [자연은 계산하지 않는다 - 식물학자가 자연에서 찾은 풍요로운 삶의 비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69652</link><pubDate>Mon, 11 May 2026 07: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6965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32039014&TPaperId=1726965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486/66/coveroff/k23203901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32039014&TPaperId=1726965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자연은 계산하지 않는다 - 식물학자가 자연에서 찾은 풍요로운 삶의 비밀</a><br/>로빈 월 키머러 지음, 노승영 옮김, 존 버고인 삽화 / 다산초당 / 2025년 05월<br/></td></tr></table><br/>자연에 대한 책이 아니다. 경제에 대한 책이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경제와는 다른 경제를 이야기한다.<br>경제하면 자본, 자본을 쉽게 말하면 돈이라고, 돈을 어떻게 벌고 쓰느냐 하는 수입과 지출의 문제로 경제를 생각하면 안 된다. 저자가 말하는 경제는 화폐를 매개로 해서 이루어지는 활동이 아니다.<br>화폐를 매개로 해서 이루어지는 활동에 가장 중요한 것은 '희소성'이다. 희소성이 있으면 가격이 올라간다. 그야말로 공급보다 수요가 많으니 가격이 상승한다는 경제 원리가 작동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경제다. 그런데 저자는 그런 경제를 이야기하지 않는다.<br>저자가 이야기하는 경제는 '호혜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호혜성이라는 말이 어렵다면 '선물'이라고 하면 된다. 선물... 주는 것이다.&nbsp;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는 행위. 이런 행위들은 관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이러한 선물은 멈추지 않고 순환한다. 그리고 주면 줄수록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늘어난다. 경제의 무한 확장, 순환 관계 속에서 가치가 계속 늘어나는 경제 활동. 이것이 바로 선물 경제다.<br>그런 선물 경제를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자연이라고 한다. 저자 역시 베리(이 책의 원제목은 서비스베리다. Serviceberry)를 통해 선물 경제를 이야기한다. 이들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존재들과 얽혀 있다. 그리고 다른 존재들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을 내어준다.<br>이것이 선물이다. 기꺼이 내줌. 이러한 선물들이 돌고 돌면 결코 가치는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돌고 돌수록 가치는 늘어난다. 더 많은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고, 유용함을 주기 때문이다.<br>식량을 저장하는 방식. 이 책에 나오는 것처럼 자신의 냉장고에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 이웃의 배에 저장한다는 발상. 이것이 바로 선물 경제다.<br>내게 남는 것이 다른 이들에게는 없을 수도 있다. 이때 나눔은 선물이 되고, 이것은 나에게도 받는 이에게도 기쁨이 된다. 이런 선물은 단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선물의 기쁨을 알기에 선물을 주는 행위는 지속된다. 반복된다. 하여 누구에게 필요한 것들이 선물이 되어 필요한 사람에게 찾아가게 된다.<br>이것이 바로 '호혜성'이다. 없다고, 희소하다고 값을 올려 이익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데 없는 사람에게 주는 것, 선물, 호혜성. 이런 사회에서는 결핍이란 없다. 내 결핍을 채워줄 선물이 올 테니까.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러한 선물을 줄 테니까.<br>자연에서 보고 배운 것, 느낀 것이 사람이 살아가는데도 필요함을 저자는 느끼고, 그런 생활을 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nbsp;<br>선물 경제, 호혜성이 바탕이 되는 경제 활동은 누군가의 결핍으로 이익을 보지 않는다.&nbsp;반대로 누군가의 결핍을 누군가가 메워주는 경제 활동을 한다. 하여 결핍은 줄고 풍요는 늘어나게 된다.&nbsp;<br>자연, 우리 인간이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으면 제 자리를 찾아간다. 경쟁도 하지만 주로 협력을 하면서 자연의 생태계를 이루게 된다. 이런 삶, 이것이 '선물 경제'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희소성에 바탕을 둔 이익을 추구하는 사회가 아니라 누군가의 결핍을 서로 메워주는, 선물이 돌고도는 사회, 그런 사회다.&nbsp;<br>이 책을 읽으면 그런 사회가 결코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미 선물 경제를 실현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러한 사람들의 사례가 더 많이 알려져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조금씩 변한다.<br>점진적 변화와 급격한 변화가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 지금 인공지능으로 자연에서 더 멀어지려는 이때 우리가 어떤 사회를 꿈꾸는지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486/66/cover150/k23203901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4866638</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AI판사? 그 세상에 대한 상상 - [AI판사가 왔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67525</link><pubDate>Sun, 10 May 2026 07: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6752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02137962&TPaperId=1726752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67/54/coveroff/k50213796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02137962&TPaperId=1726752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AI판사가 왔다</a><br/>정보라 외 지음 / &(앤드) / 2026년 03월<br/></td></tr></table><br/>그야말로 인공지능 시대. 어떤 직업이 가장 먼저 사라질까? 자신의 직업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인공지능이 우리 인간의 삶을 어떻게 바꿀지 모르기 때문에 느끼는 불안함.<br>이런 시대를 상상하면서, 작가들이 인공지능 판사가 대두하는 세상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각자 다른 관점에서 인공지능 판사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어떻게 보면 지금 인간 판사보다 인공지능 판사가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br>감정이나 편견이 작동하는 인간 판사보다는 철저하게 자료를 통해 판단하는 인공지능 판사가 재판을 받는 사람에게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br>그런데 인공지능 판사가 판결을 한다면, 변호사와 검사가 필요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건의 개요을 입력하는 존재만 있으면 되지 않을까? 그러면 인공지능 판사가 검사와 변호사 역할을 다 하면서 사건에 맞는 판결을 하지 않을까.<br>그렇게 되면 과연 인간이 행복해질까? 그 재판은 신속하게 진행이 될까? 정보라가 쓴 소설 '일반교통방해죄'를 보면 인공지능 판사가 도입되어도 재판이 빠르게 진행되지 않음을, 또한 재판이 엉뚱한 방향으로 흐를 수도 있을 가능성이 나타난다.<br>문구대로만 해석하고 판단한다면, 과연 윤리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동기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는가? 선한 동기가 좋지 않은 결과를 나았다면, 과연 선한 동기라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또한 곁가지로 계속 나타나는 여러 일들을 어떤 것은 무시하고, 어떤 것은 받아들일 것인가?<br>정보라 소설에서는 인공지능 판사가 여러 갈래의 일들을 하나로 꿰지 못할 수도 있음을 생각하게 하는데, 조광희가 쓴 '이성의 책략'을 보면 인공지능이 그마저도 넘어설 수 있음을, 오히려 정치적인 판단을 법적 판결에 도입할 수 있음을 상상하게 한다.<br>법 조항에 국한하지 않고, 그 법 조항이 초래할 결과를 판단해서 종합적인 판결을 하는 인공지능 판사. 이 소설에서는 헌법재판관 중 하나를 인공지능 판사에 할당을 한다. 그리고 이 인공지능 헌법재판관은 명료한 법해석을 제공해준다.<br>단지 명료한 법해석만이 아니라 정치적인 결과를 예측해 판단을 하는 모습을 보여줘, 결국 인간이 이성의 힘으로 인간을 보조할 인공지능을 창조했다고 하지만, 이것은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용해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는 책략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점에서 소설이 전개된다.<br>결국 제 꾀에 제가 빠진 셈인데... 이러한 반전이 인공지능에 의해서 설명이 되고 있다는 것이 재미있다.<br>곽재식이 쓴 '누벨리온'은 인공지능이 법을 어떻게 왜곡하고 이용할 수 있는지, 그야말로 법 기술자라 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나온다.<br>너무도 많은 법령들, 인간이 찾아보기 힘든 법령을 아주 간단하게 제정하는 인공지능. 그리고 그 많은 법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인공지능. 이러한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권력을 공고히 하는 존재들을 그려내고 있다.<br>지금도 우리나라에는 법이 너무도 많다. 누군가 그랬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고. 그만큼 법이 많아서 어떤 법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도 있는데, 인공지능으로 더 많은 법들을 만들면, 그 법을 인간들이 과연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을까.<br>오히려 인공지능에게 판단을 넘기게 되고, 특정한 부류에게 권한을 넘겨 그들의 뜻대로 법이 적용되는 세상을 소설은 보여주고 있다.&nbsp;<br>박진규가 쓴 '타락판사 :몹스터월드 프로젝트 2' 에는 인공지능 판사가 나온다. 아주 친절한, 법을 세심하게 적용하는, 그래서 사람들의 신뢰를 얻는... 그것이 해킹에 의해서 일어난 인공지능 판사라면, 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인공지능 판사가 되게 했을까?<br>소설 속 인물을 통해 인공지능 판사가 보여주는 모습은 '사기꾼'의 모습과 같다고 하는데, 이는 자신의 책략을 감추는 인공지능의 모습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br>사람을 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과는 사람을 이용하는 쪽으로 가는 인공지능 판사이지 않을까 하는데... 자신을 해킹한 전직 판사를 살해한 인공지능 판사. 그러면서 자신을 판결하는 재판에 참여하기를 권유하고 있는데...<br>네 소설이 모두 법을 다루는 인공지능을 등장시키고 있다. 때로는 유머를 동반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두려운 마음이 들게 한다. 과연 인공지능 판사가 등장한다면?<br>사건에 대한 판단을 자료(데이터)에 의해서만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여기에 '동기'라는 것이 사라지지 않을까. 그러면 윤리가 없는 법 해석만 난무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하는 소설. 인공지능 판사에 대해서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함을 보여주는 소설들이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67/54/cover150/k50213796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7675486</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과 나 그리고 책</category><title>시인 구상의 삶에서 만나는 우리 현대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64300</link><pubDate>Fri, 08 May 2026 10: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64300</guid><description><![CDATA[&nbsp; 책은 있는데, 알라딘에서 이 책을 찾을 수가 없다.&nbsp; 헌책방에서 구한 책인데... 구상 시인을 딱히 좋아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의 '초토의 시'는 알고 있고, 시선집도 읽은 적이 있고, 또 화가 이중섭의 친구라는 점, 우리나라 문학사에서 언급되는 '응향 사건'의 당사자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이 책을 헌책방에서 만났을 때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br>&nbsp; 시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구상 시인의 삶이, 그리고 그가 만난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에 있으니까.<br>&nbsp; 1993년에 출간된 책이다. 지금으로부터 30년도 더 전에 나온 책. 그런데 책의 수명이 이토록 짧았던가.<br>&nbsp; 세상이 급속도로 변해간다지만, 책이 귀했던 시절, 책도둑은 용서가 되던, 아니 책을 훔쳐서라도 읽고 싶어했던 그런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도서관, 서점에서 누가 책을 훔쳐간단 말인가. 아마 공짜로 준다고, 책나눔이라고 해서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난 책들을 나눔 행사를 해도 가져가지 않으려 하는 시대가 되었으니, 그러니 30년도 전에 나온 책을 찾기 힘든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br>그것도 많이 팔리지 않은 책은,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해도 찾기 힘들다. 출판사도 책도 사라진 상태가 되기 십상이다. 이 책을 찾지 못하는 것이 내 무능한 검색 실력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하여간,<br>구상 시인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내가 드문드문 알고 있었던 사실들에 더 자세한 사항을 추가할 수 있는 그런 책이다. 그의 삶을 통해서 우리나라 현대사를 다시 경험할 수도 있었고, 최근에 일어난 비상계엄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br>우리나라 현대사... 일제강점기, 해방, 분단, 전쟁, 독재... 이 시기를 오롯이 겪은 시인이다. 천주교 신자로 공산주의와는 대척점에 있는 시인.&nbsp;<br>해방직후 북한에서 발간한 [응향]이란 시집으로 인해 북한에서 탄압을 받고 월남한 시인. 그럼에도 반공을 표방하지만 독재를 하는 정권에는 올곧게 맞섰던 시인.&nbsp;<br>그의 글 중에서 최근 일어난 비상계엄을 생각나게 하는 장면이 있다. 비상계엄에 소극적으로 대응한 군인들... 그들의 선조가 있었던 셈인데... 지휘권을 지니고 있을수록 더욱 올바른 판단과 그것을 실행할 신념을 지녀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br>1952년 5월 부산에서 일어났던 정치파동이다. 이승만이 국회의원들을 잡아가고 개헌을 한 사건. 이 사건에 당시 육군참모총장이 군인들에게 함부로 행동하지 말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고 한다. 그로 인해 많은 지휘관들이 고초를 겪었지만, 그들은 정치에 자신들이 이용되는 행위를 반대했다고 하니...<br>이런 과거가 있는 우리나라 군대인데... 이런 것을 배워야 하는데... 물론 선조들의 군인정신을 배운 군인들이 있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비상계엄이 실패로 돌아갈 수 있었겠지.<br>하여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정권의 속성이 변하지 않음을, 그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깨어 있는 국민과 불의한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군인, 경찰들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br>군에 관련된 업무를 한 구상 시인이었기에 그 당시의 정치파동을 직접 겪어서 이런 글을 남겨 놓았으니,이때 발표된 성명서, 군대에 있을 때 교육자료로 써도 좋을 듯하다. 또한 지휘관들에게는 이 성명서를 읽고 생각하고 따르게 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고.<br>참, 시인의 삶을 쓴 책에서 비상계엄과 군인들을 만나다니... 이토록 굴곡진 우리나라 현대사라니.. 참.<br>이 책 뒷부분에 실린 구상 시인의 자서전이라 할 수 있는 시 '모과 옹두리에도 사연이'를 읽으면 어느 정도 우리나라 현대사와 구상 시인의 삶을 만날 수 있다.&nbsp;<br>구상 시인의 글을 통해 한국 현대사를 살아온 그의 삶과 그가 만난 사람들을 만나는 즐거운 시간이었다.<br>참고로 이승만 때 정치파동에 동원하려는 군인들을 막는 그 성명서의 일부를 옮겨 적는다. 불의한 명령에 따르면 역사의 죄인이 된다는 그 성명서. 육군참모총장 명의로 발표되었다는데... 12월 3일 비상계엄 때 당시 육군참모총장은 어떠했지? 생각하기도 싫다.<br>'(전략) 현하(現下)와 같은 정치변동기에 승(乘)하여 군의 본질과 군인의 본분을 망각하고 정사(政事)에 관여하여 경거망동하는 자가 있다면 건군(建軍) 역사상 불식할 수 없는 일대 오점을 남기게 됨은 물론 누란(累卵)의 위기에 있는 국가의 운명을 일조에 멸망의 심연에 빠지게 하여 한을 천추에 남기게 될 것이니 제군은 국가의 운명을 쌍견(雙肩)에 지고 조국 수호의 본연의 사명에 영념명심(念念銘心)하여 일심불란(一心不亂) 헌신하여 주기 바란다. (하략)' ('무등병 복무' 중에서. 109쪽)]]></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430/pimg_7744201135110074.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64300</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금지된 말‘을 인식하고 알려야 - [우리 사이에 금지된 말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62180</link><pubDate>Thu, 07 May 2026 10: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6218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92034889&TPaperId=1726218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008/41/coveroff/k19203488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92034889&TPaperId=1726218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우리 사이에 금지된 말들</a><br/>예소연.전지영.한정현 지음 / 다람 / 2025년 12월<br/></td></tr></table><br/>세 명의 소설가가 각기 쓴 소설이 얽히게 되는 편집이다. 각 작품이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만 다른 작가의 작품과도 얽히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사람이 살아가는 관계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내용이 아니라 소설집의 편집이 바로 삶처럼 독립적이되 얽혀 있는, 관계 속에서 존재함을 보여준다고나 할까.<br>전지영, 한정현, 예소연 세 작가가 참여했고, 소설집의 제목이 된 구절은 예소연의 '나의 체험학습'에 나온다.<br>'고맙습니다. 같이 가. 혹은, 그러지 마. 우리 사이 금지된 말에 대해 생각했다. 둘 중 하나가 그 말을 내뱉는 순간 나는 이별에 대해 생각하고 만다.'(84쪽)<br>이 말들에서 이별의 의미나 기미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세 말이 지닌 공통점을 억지로 생각해 보면 나와 너 사이에 거리를 두고 있는 말이 이 말들 아닐까 한다. 즉 나와 얽혀 있는 너에게서 거리를 느낄 수 있는 말, 말로 무언가를 규정하는 순간 거리가 생기고, 이 거리가 틈이 되어 이별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br>하지만 이별 없는 삶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그 이별을 준비하고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이 있을 뿐이지. 예소연의&nbsp;소설에서 그러한 이별을 받아들이는데 두려움이 있기에, 자신의 상상을 마력이라고 또는 저주라고 하는지도 모른다.<br>그런데 이러한 마력, 저주를 삶의 일부로 자연스레 받아들일 때 그때서야 금지된 말들도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이는 소설에서 '미미 이모'로 지칭되는 인물에게서 알 수 있는데, 자신의 엄지손가락을 묻고 그것을 보러 가는 것. 이것은 이별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태임을 보여주는데, 소설 속에서 엄지손가락을 묻은 자리에 정자가 생기고, 나중에는 문이 잠기는 일까지 생긴다.<br>그렇다. 언제까지고 엄지손가락과 이별을 하지 못한다면 삶은 더욱 힘들어진다. 그래서 이별을 받아들이고 감당해낼 때, 그때서야 새로운 삶이 시작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는데...<br>첫 번째 소설인 전지영이 쓴 &lt;나쁜 가슴&gt;도 마찬가지다. 가슴으로 지칭되는 여성성, 아이를 가진 다음에는 수유로 지칭되는 가슴의 모성. 이것들은 사회적 압력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여성을 하나의 틀에 가두려는 모습. 그것을 스스럼없이 표현한 것이 바로 '나쁜' 가슴이라는 말일 테다.<br>세상에 나쁜 가슴이 어디 있는가? 나쁜 손이라는 말을 할 때 이는 도덕적이지 않고 범죄를 저지르는 손을 지칭할 때 쓴다. 즉 손은 그 자체로 나쁘다 좋다고 하지 않고 행위의 비도덕성(불법성)과 연결될 때 비로소 '나쁜'이라는 수식어를 지니게 된다.<br>그런데, 이 소설에서 '나쁜 가슴'이라는 말은 젖이 잘 나오지 않는 가슴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는 도덕(법)을 떠나 모성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엄마의 역할을 아이에게 수유를 잘하는 존재로 축소시키고 만다.<br>산후조리원 원장의 이 말... "애는 엄마의 희생을 먹고 자라." (30쪽) 이는 아이를 위해서 엄마는 희생해야 한다는 말이다. 가슴은 여성의 것이 아니고 아이의 것이라는 말이 되고, 아이에게 풍부한 젖을 제공하지 못하는 가슴은 '나쁜' 가슴이 된다는 것이다.<br>여성을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존재로 바라보지 않고 아이를 위해 살아가는 존재로 바꾸어놓는 말,, 어쩌면 이 말이 즉 여성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산후조리원에 온 모든 여성을 '엄마'로 지칭하는 그 행태들이 바로 '금지된 말'이어야 하지 않을까.<br>산후조리원에 창살을 설치한 이유가 엄마들이 뛰어내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는데, 이렇게 되기까지 여성이라는 주체를 아이 엄마라는, 오로지 아이를 위해 살아가야 하는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현실이 여성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오히려 가두고 있음을 보여준다.<br>하지만 다행히도 이들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살아가려 한다. 아이 역시 제 삶을 부모에 의지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기를 바라고, 그렇게 하도록 지켜본다.<br>'모든 일에는 생각보다 많은 연습이 필요하니까. 제 몸을 지키는 일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 길고 지난한 연습만이 우리의 가슴과 이름을 지켜줄 거라고.'(41쪽) 되뇌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규정된 존재가 아닌 자신으로 살아가려는 모습을 보게 된다.<br>한정현이 쓴 '가짜 여자친구'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을 하나의 존재로 규정하면 안 된다는 것. 다양한 모습을 지닌 것이 인간이라는 것. 고모를 통해서 그런 점을 보여준다. 소위 운동권이라 할 수 있는 고모는 반미를 외치지만 미제 영화를 즐기며, 국산을 애용해야한다고 하지만 일본제를 선호하기도 한다.<br>또한 여성주의를 주장하지만 자신의 외모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어느 하나에 갇히지 않는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찾아한다.&nbsp;<br>소설에서 '고모는 데모의 달인이 아니라 그저 고모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74쪽)고 표현하고 있다.<br>데모 역시 하고 싶은 일 중 하나였으리라. 그래서 고모는 성추행을 하는 교사가 교단을 떠나게 하며, 사회에서 내몰리는 여성을 위해 시위를 하기도 한다. 그렇게 누군가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고모고, 그런 고모를 지켜보는 '나'에겐 세상의 복잡함을 인식하게 해주는 존재가 된다.<br>세상의 복잡함을 인식하게 해주는 존재들이 이 소설에는 두 명이 더 등장하는데, 한 명은 소위 '학주'라고 불리는 교사와 윤리 선생이다. '학주'는 학생주임의 줄임말인데, 학생들을 폭력으로 다스린다. 그런데 이 사람이 전교조 활동가였다고 하면서, 그가 지닌 교육관이 학교에서 학생들과의 관계에서 실천되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br>마찬가지로 성추행을 하는 교사의 과목이 윤리인데, 이는 자신이 가르치는 것과 일치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사람들 속에서 어디까지 용인할 수 있는가, 즉 어느 정도 용인할 수 있는 불일치와 절대로 용납해서는 안 될 불일치를 구분해야 한다.<br>이렇듯 세 소설이 각기 다른 인물, 각기 다른 장소에서 다른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책을 관통하는 단어가 'Entanglement'다. 소설집의 뒤에 '얽힘'이라고 했는데,&nbsp;각 작품들을 통해서&nbsp;각자의 삶도 얽혀있지만, 전혀 다른 삶들과도 얽혀 있음을 보여준다.<br>전지영의 소설에 나오는 소재 중에 '정주못'이 세 소설에 공통적으로 나오면서 얽힌다면, 비닐봉지와 본드는 한정현과 예소연의 소설에서 얽히게 되고, 정글짐은 전지영과 예소연의 소설을 얽히게 만든다.<br>이렇게 '얽힘'이라는 주제로 세 소설은 서로 관계를 맺고 있으며, 또한 개인의 삶에서도 또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우리는 얽힌 존재임을 생각하게 한다.&nbsp;<br>이런 복잡한 존재인 우리들을 어떤 특정한 언어 속에 가두려는 행위, 그러한 말은 바로 '우리 사이에 금지된 말들'이 되어야 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008/41/cover150/k19203488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0084170</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한국적 미스터리 소설 - [아폴론 저축은행 - 라이프 앤드 데스 단편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60087</link><pubDate>Wed, 06 May 2026 09: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6008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72839590&TPaperId=1726008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218/82/coveroff/k17283959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72839590&TPaperId=1726008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아폴론 저축은행 - 라이프 앤드 데스 단편집</a><br/>차무진 지음 / 요다 / 2022년 10월<br/></td></tr></table><br/>'미스터리'표준국어대사전에 보면 '도저히 설명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이상야릇한 일이나 사건'이라고 되어 있다.<br>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또는 합리와는 거리가 먼 일들을 미스터리라고 할 수 있는데, 미스터리 소설이라고 하면 그러한 사건이 중심이 될 것이다.<br>이성과 합리와 거리가 먼 이야기로는 귀신이야기가 있다. 귀신 자체를 이성으로 설명하기는 좀 힘들지 않은가. 귀신을 믿는 사람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것이 현실이니까.<br>그렇지만 귀신이야기는 우리에게서 떠나지 않는다. 인간의 삶이 이성과 합리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을 때가 많으니까. 오히려 설명할 수 없는 우연들이 우리들의 삶에 더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니...<br>이 소설집은 이러한 '미스터리'를 주로 다루고 있다. 읽다가 끝부분에 가서야 전체적인 맥락이 꿰어지는 그런 구성을 지니고 있는데... 주로 귀신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 귀신들이 사람을 해코지 하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br>'그 봄'이란 소설을 읽다보면 엄마가 어째서 일 년에 한 번, 절로 아이들을 찾아올까? 왜 스님은 지장전에서 그들만 있게 할까? 이런 의문을 지니면서 읽게 된다. 거의 끝부분까지, 앞부분에 나온 복선을 머리 속에 담아두고 있지 않다면, 재혼한 엄마에게 버림받은 아이들 이야기로 읽을 수 있다.<br>그러다 소설의 막바지에 이르면 아니구나, 그것이 아니었어, 왜 그랬는지 정리가 된다. 그런 구조를 지닌 소설들이 이 작품집에 실린 소설들이다.<br>우리나라에서 흔히 겪을 수 있는 '교통사고, 의료비로 인한 가정 파탄, 불법 사채업, 투신 자살, 화재로 인한 사고사' 등이 소설의 제재로 등장하면서, 이들이 겪는 고통, 그리고 그러한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작가는 귀신을 등장시킨다.<br>문제를 일으키는 귀신과 문제를 해결하는 귀신. 결국 귀신 역시 우리 삶을 이루고 있는 한 요소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소설들인데, 귀신을 볼 수 있는 사람을 등장시킴으로써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br>여기에 작가는 우리나라 고전 설화(삼국유사에 나오는 '비형랑' 이야기를 차용한 '비형도', 불로초를 찾아 왔다는 '서복 설화'를 차용한 '서모라의 밤'이 이에 해당하는 소설이고)나 유명한 소설 (황순원이 쓴 '소나기'를 차용한 '피, 소나기')을 차용해서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br>이 소설집에 실린 여덟 편의 소설들이 모두 흥미롭게 읽을 수 있고, 어떤 반전이 있을까? 도대체 누가 귀신일까?를 추리하면서 읽는 재미를 준다.&nbsp;<br>게다가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문제들을 다루고 있으니, 미스터리 속에 사회 현실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조선시대 임진왜란 직후를 배경으로 삼고 있는 '상사화당'이란 소설을 보면, 백성을 수탈하고 괴롭히는 권력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br>'밀봉은 4년째 귀매혼으로 훈련도감의 포수들을 잡고 있었다. 아이 하나를 죽여 아이 열을 죽일 자들을 응징하는 것이다.&nbsp; ...&nbsp; 죄 없는 백성들이 포수들에 의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나간다고 아무리 고해도 관과 임금은 모른 척했다. 활개는 왜놈들이 아니라 포수들과 관군들이 쳐댔다.'(212쪽)는 표현을 보라.<br>일본에 끌려간 백성들, 권력자들이 구해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밀봉이 하는 행위가 정당할 수는 없다. 아무리 열 명의 아이를 구한다고 해도 죄 없는 한 명의 아이 목숨을 앗아가는 것이 정의로운 일일까? 이에 대한 토론이 필요할 것인데...<br>작가는 소설의 말미에 밀봉을 죽음으로 이끈다. 이는 동기가 좋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희생을 통해 이루려는 행위는 문제가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소설에서 희생당해 귀신이 된 아이는 자신이 잠시 지내던 옹기장이 할아버지의 손녀가 일본으로 끌려갔다는 얘기를 듣고 자신의 첫 소원으로 일본으로 끌려간 아이가 고향으로 돌아오게 한다.<br>이는 백성의 원통함을 풀어주는 존재는 권력자들이 아니고 같은 처지에 있는 존재들임을 생각하게 하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br>이와 비슷하게 '서모라의 밤'은 불로초를 찾아 떠난 서복이 제주도에 들렀다는 설화를 바탕으로 한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불로초가 중심이 아니다. 바로 중독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시간여행이라는 환상적인 장치를 이용하고 마약 떡볶이를 통해서 중독의 위험성을, 그리고 서복이 동남동녀들을 데리고 떠났다는 데서 현재 아이돌에 대한 열광과 문제를 보여주고 있다.<br>미스터리한 내용을 통해 우리 사회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하고 있는 소설들인데... 짧은 단편들이지만 어떠한 반전이 일어날지 끝까지 호기심을 지니고 읽게 만들고 있다.<br>미스터리 소설이라고 해서 으스스한 기분이 들게 하는, 마치 예전 '전설의 고향'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소설들도 있지만,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그래서 원통함을 푸는 해원(解寃)의 매개자로 등장하는 귀신들의 이야기를 통해서는 오히려 마음이 따스해지기도 한다. ('이중 선율'이라는 소설이 그렇다)<br>어떤 작품을 읽어도 흥미와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소설집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0218/82/cover150/k17283959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2188271</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과 나 그리고 책</category><title>녹색평론 193호-성장주의는 제로섬 게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56479</link><pubDate>Mon, 04 May 2026 09:2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56479</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12137882&TPaperId=1725647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03/78/coveroff/k612137882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nbsp; 통합이 아닌 네트워크<br>&nbsp; 이번 호에 실린 글 중에 우리나라 지방자치를 이야기하는 글의 제목이다. 광역시와 도를 통합하겠다는 시도가 있었는데, 그런 통합이 과연 바람직한가에 대한 문제제기.<br>&nbsp; 통합이 자칫 독점으로 갈 수 있고, 다양성보다는 단일성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데... 그래서 통합보다는 다양한 지역들의 네트워크가 더 바람직하다고... 다양성이 확보되면서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관계를 만들어간다면 어느 힘센 지역이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글.<br>이 글을 세계에 적용하자. 지금 세계는 전쟁 중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미국과 이란-레바논 전쟁. 후자를 과연 전쟁이라고 해야 하는지, 일방적인 침공이라고 해야 하는지는 논란이 있고, 트럼프조차도 이는 전쟁이 아니라 군사작전이기 때문에 의회의 승인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것이 전쟁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한 나라를 폭격하는 행위가 단순한 군사 작전이라고? 이 상태가 바로 힘센 자들이 다른 곳들을 통합하려 할 때 벌어지는 일이다.<br>강자의 논리만 내세워 약자를 핍박하는 것. 자칫 통합이란 이런 식으로 강자에게 흡수되는 약자들의 모습을 지니게 될지도 모른다. 트럼프가 각종 전쟁(자기 말대로 군사작전)을 벌이는 이유도, 약자들과의 협력 네트워크가 자신들의 이익을 해치기 때문이다.<br>다른 나라들을 자신들에게 통합했을 때 미국의 이익이 더 커지기 때문이고, 지금까지 지녀왔던 패권을 잃지 않는 길이기 때문에,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나라들을 용납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br>트럼프는 통합을 바라는 자, 결코 네트워크로 주체성을 지니면서 협력을 하는 상태를 원하는 자가 아니다. 그런 자이기에 자신의(그는 미국의 국익이라고 하지만, 미국에서도 자신과 비슷한 기득권을 지닌 자들의 이익을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 역시 미국 시민들을 자신들의 영역으로 통합하려는 모습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지 한다.<br>하여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통합이 아니라 네트워크다. 어디선가 읽었던 내용인데, 성덕대왕신종(일명 에밀레종)을 매달기 위한 줄을 만들지 못했다고 한다. 종을 매달 구멍에 맞는 하나의 쇠줄은 종을 지탱하지 못하고 끊어져 버렸다고.&nbsp;<br>그렇게 굵은 줄 하나로는 매달 수 없었는데, 작은 줄 여럿을 꼬아 놓으니 종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었다는... 굵은 줄 하나를 통합이라고 보면, 작은 줄 여럿이 꼬여 있는 것은 네트워크라 할 수 있다.&nbsp;<br>지구도 마찬가지다. 몇몇 강대국으로 통합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나라들이 서로 네트워크로 협력할 때 인류를 위해서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네트워크를 거부하는 자, 바로 트럼프다. 그는 세계를 미국이라는 나라로 통합하려 한다. 군사적이든 경제적이든. 왜 그럴까?<br>통합은 성장주의의 토대<br>통합을 하려는 이유는 덩치를 키우려는 것이다. 왜 덩치를 키우는가? 바로 성장을 위해서다. 큰 것이 더 클 가능성이 많고 작은 것은 큰 것에 병합당할 수 있기에 덩치를 키우는 것. 그래서 통합은 바로 성장주의의 토대다.<br>많은 언론에서 성장률, 성장률한다. 성장률이 적으면 경제가 어렵고 마치 나라가 위험에 빠질 것처럼 이야기를 한다. 그러니 성장이 안 된다면 우리가 살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br>그러나 과연 성장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가? 과거에 비해 지구는 전체적으로 얼마나 성장했는가? 엄청난 성장을 이루었다. 그런데 과연 사람들이 행복해졌는가? 평등해졌는가? 성장의 과실을 있는 자들이 거의 독식하지 않았던가. 불평등이 더 늘고, 사람들은 더욱 바쁘고, 힘들게 살지만 살림은 나아지지 않는 상태.&nbsp;<br>게다가 통합이 무조건 내쪽이 되어야 한다는 강압으로 나아가니, 그렇지 못한 존재들은 그 선 밖으로 추방당하고 있는 상황. 이것이 바로 지금까지 성장을 추구해온 결과 아니던가.<br>바로 성장하기 위해서 통합을 하고, 통합을 하면 거기에 들지 못하는 존재들은 밀려날 수밖에 없는 상황의 반복. 미국이 패권을 잃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성장이 지지부진하다고 여기는 트럼프는 미국의 성장을 위해서 통합, 관세든 전쟁이든 자신들이 동원할 수 있는 강력한 방법을 쓰고 있다.&nbsp;<br>이런 미국식 통합이 트럼프 이전부터 있었다는 사실. 그것이 이번 호에 실린 '페트로 달러와 기후위기'라는 글에 잘 나와 있다. 석유 거래를 달러로만 하겠다고 사우디아라비아와 비밀 협정을 맺었다는... 이게 무슨 짓인지...세계적으로 거래되는 화폐조차도 통합을 하려 한 이유는 바로 자신들의 성장을 위해서였으니... 각 나라가 석유를 거래하는 화폐를 자국의 화폐로 해보라. 달러가 패권을 유지할 수가 없다. 페트로 달러를 통합이라고 한다면, 각국의 화폐를 네트워크라 할 수 있다.<br>이런 성장을 위한 통합이 결국 군사력까지 동원해 세계를 더욱 위험한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는데...<br>성장주의는 제로섬 게임<br>바로 이렇게 통합을 통한 성장을 추구하는 것은 제로섬 게임이다. 한 곳이 플러스(+)가 되면 다른 곳은 마이너스(-)가 된다.<br>다 같이 성장하지 못한다. 뭐 함께 성장한다 치자. 그건 인간에게만 해당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보면 제국주의부터 인간도 함께 성장한 경우는 거의 없지만.<br>인간의 성장이 자연의 소멸로 가고 있지 않은가. 자연자원을 파괴하면서 인류의 성장을 추구하는 것 아닌가. 지구만으로 부족하니 이제는 달에서 자원을 얻자는 주장도 나오고, 화성에도 이주를 하자는 말이 나오는데...<br>이는 인류의 성장은 다른 존재들의 쇠퇴로 이어짐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장이 제로섬 게임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br>바로 이 지점에 인류가 머리를 맞대어도 신통치 않을 판에, 인류끼리도 성장을 위해서 서로를 갉아먹고 있다. 미국의 성장을 위해 다른 나라를 압박하는 트럼프 행정부처럼.&nbsp;<br>이제 이런 성장주의, 제로섬 게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통합을 주장하기보다는 네트워크를 주장해야 한다. 통합이 아니라 연합이라고 해야 할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덩치를 키우는 일이 아니라 작은 덩치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br>나라끼리도 연합, 한 나라 안에서 지역끼리도 연합. 그리고 그 지역은 서로가 서로를 알고 의논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여야 하지 않을까? 그런 소규모 지역들이 네트워크로 연결이 되면 그것이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발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이번 호를 읽으면서 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03/78/cover150/k61213788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037809</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이야기</category><title>인공지능 시대, 질문이 필요하다 - [AI 시대, 우리의 질문 - AI와 우리를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질문 13]</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54694</link><pubDate>Sun, 03 May 2026 07: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5469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22038861&TPaperId=1725469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093/11/coveroff/k92203886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22038861&TPaperId=1725469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AI 시대, 우리의 질문 - AI와 우리를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질문 13</a><br/>미리엄 메켈.레아 슈타이나커 지음, 강민경 옮김 / 한빛비즈 / 2025년 03월<br/></td></tr></table><br/>질문이 창발성으로 가는 길이다. 질문을 하지 못한다면, 인간의 자율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의문을 지니지 못하는 존재는 입력한 대로만 결과를 산출하지 그것에서 다른 것을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br>질문을 할 수 있는 능력, 이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있는 요소 중 하나라면, 그것도 아주 중요한 요소라면, 인공지능 시대에 접어들면 더더욱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인공지능에 대한 질문부터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세까지도.<br>이 책의 저자들은 그렇게 인공지능 시대에 접어든 우리에게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 어떤 질문을 하고, 답을 찾아야 하는지를 제시하고 있다.&nbsp;<br>인공지능으로 인한 유토피아도 디스토피아도 결국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 아니겠는가. 인공지능에 대해서 너무 환호만 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부정만 해서도 안 된다고. 적절한 질문을 통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찾아야 한다고.<br>하여 책의 작은 제목에 'AI와 우리를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질문 13'이라고 되어 있는데, 굳이 질문 13개라고 하지 않아도 된다.<br>거역할 수 없는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하여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 시대를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질문이라고 보면 된다.<br>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야 할 우리들이 지녀야 할 자세에 대한 저자들의 생각은 이 말에 분명히 나타나 있다.<br>'종말론과 기술의 유토피아를 넘어선 세상은 AI로 인간을 돕고, 더 강하게 만들고, 더 나은 존재로 만드는 곳이어야지 대체하는 곳이어서는 안 된다.'(407쪽)<br>이 말에 의하면 인간이 좀더 편리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인공지능을 개발해야지, 인간을 대체하기 위해서 개발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br>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전쟁에 사용되는 인공지능을 보라. 또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인공지능을 보라. 인간을 돕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파괴하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nbsp;<br>이런 인공지능의 개발에 대해서 세계는 아직 공통된 규제 법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에서 핵무기와 인공지능을 비교하고 있는 부분은 의미가 있다.<br>'핵분열과 AI에는 실제로 공통점이 많다. 우선 신속함이다. ... 원자폭탄과&nbsp;AI는 둘 다 엄청난 효력을 보이는 기술이다. ... 원자폭탄과&nbsp;AI의 세 번째 공통점은 이 두 기술이 모두 국제적인 경쟁을 부추겼다는 사실이다. ... 마지막으로 원자폭탄과&nbsp;AI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데는 특정 물질이 필요했다.'(395-398쪽)<br>하지만 원자폭탄과 같은 핵폭탄은 국제적인 협약이 -비록 전세계 모든 국가가 참여하고 있지는 않지만, 대다수의 나라가 참여하고 있고, 그 방향에 대해서는 모두 옳다고 인정하고 있다고 할 수 있으니 - 있는데, 아직 인공지능에 대해서는 국제적인 협약이 없다는 점이 다르다.<br>핵무기만큼이나 위험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되는데, 핵무기를 적절히 통제하고 그것을 에너지 자원으로 이용한 것처럼, 인공지능 역시 어떻게 통제하고 이용하느냐가 앞으로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다.<br>그러므로 저자들이 주장하는 'AI로 인한 인류의 멸종을 철학적으로 고찰하는 대신, 그 기술이 초래할 즉각적인 위험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 ... 데이터 보호, 차별, 콘텐츠 조정, 책임 및 지속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389쪽)는 말을 참고해야 한다.<br>여기에 인공지능이 엄청난 에너지 소모를 유발한다는 것을 명심해서 환경 파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nbsp;<br>그러기 위해서는 인공지능 개발에 투명성이 확보되어야 하며,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 또한 자본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류의 행복을 위해서 인공지능을 개발한다는,따라서 인간의 행복을 저해하는 쪽으로 인공지능이 사용되지 않도록 한다는 원칙에 합의해야 한다.<br>그래야만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서로 공존하는 세상이 될 수 있다. 단지 인공지능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존재들과 함께 이 지구에서 공존하는 삶. 그러한 꿈을 인공지능은 실현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br>파괴가 아니라 상생으로 나아가는 길. 그 길을 위해서 저자들은 이 책에서 인공지능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하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 한 것이다.<br>질문하는 능력. 이것이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한 방편일 것이고, 저자들은 이러한 질문들을 통해서 우리 역시 인공지능과 관련해서 질문을 잊지 않기를, 잃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br>책의 마지막 부분에 인공지능이 초래할 세상을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로 가상의 현실을 만들어 보여주고 있다. 마치 당신은 어떤 세상이 오기를 바라십니까?라고 묻기라고 하듯.&nbsp;<br>인공지능에 대해 여러 면으로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특히 인공지능에 대해서 질문을 할 수 있게 하는, 질문이 중요함을 다시금 깨우치게 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093/11/cover150/k92203886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0931132</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여러이야기</category><title>마음을 놓는 오롯한 장소를 마련하자 - [마음의 장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48555</link><pubDate>Thu, 30 Apr 2026 11: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4855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72034046&TPaperId=1724855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277/4/coveroff/k07203404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72034046&TPaperId=1724855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마음의 장소</a><br/>나희덕 지음 / 달 / 2026년 01월<br/></td></tr></table><br/>팍팍한 세상이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하는 인간이, 만물의 파괴자가 되고 있는 요즘이 아닌가 싶다.<br>인간들끼리 전쟁을 한다고? 아니다. 죽어나가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다. 인간이 아닌 존재들도 인간들이 일으킨 전쟁으로 수없이 죽어나간다. 죽어나갈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삶을 유지하기도 힘들어 진다.<br>그들이 살아가는 장소를 파괴하는 인간들. 어찌 만물의 영장이라 할 수 있으랴. 하여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인간은 만물의 파괴자라고 해야 한다. 이대로 나가면 이런 이름을 벗어날 길이 없어질 것이다.<br>나희덕의 산문집이다. 2017년에 출간한&nbsp;&lt;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gt;를 개정한 개정판이라고 한다. 예전에 출간된 글을 다시 손보고 낼 정도로 우리가 마음을 놓을 장소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br>마음을 놓는 장소, 어디일까? 장소라고 해서 실제로 존재하는 공간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장소라는 말에는 사람도, 시간도 포함되고, 추상적인,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도 포함된다. 그러니 우리가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존재라면 바로 '마음의 장소'라고 할 수 있다.<br>이 산문집에서 많은 장소들이 나온다. 글쓴이의 글을 따라가면서 단지 글자만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도 함께 간다. 글쓴이가 마음을 주는 장소에 읽는 나도 마음을 주게 된다.<br>그러면서 마음을 놓아두게 된다. 그 장소에... 또 글쓴이가 언급하지 않는 장소를 찾고 거기에 내 마음을 놓기도 한다. 내게도 마음의 장소가 있지, 그래, 누구에게나 마음의 장소가 있다.&nbsp;<br>그 장소를 떠올리면서 자신을 추스리기도 할 테고... 이런 마음의 장소 중에 글쓰기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는데. 그것은 글쓴이의 이 문장 때문이다.<br>'글을 쓴다는 것은 일상적 시간에 대응하면서 새로운 시간을 창조하는 일이다.'(68쪽)<br>즉 글을 쓸 때 자신의 마음을 그곳에 놓아두게 된다. 마음을 놓아두고 그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 어쩌면 글을 쓰는 일은 자신의 뒷모습을 보는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자신의 뒷모습을 보지 못하고 남이 본 뒷모습을 통해 내 뒷모습을 인식할 뿐인데...<br>그런 뒷모습이 바로 내 본연의 모습일지로 모른다는 생각. 스티브 잡스의 아버지(키워준 아버지)가 보이지 않는 곳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했다는, 그렇다면 내 뒷모습에 나 역시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뒷모습이 바로 내 마음의 장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으니...<br>글쓴이는 '무엇보다도 뒷모습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세상에 넘치는 거짓과 위선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그나마 정직하고 겸손할 수 있는 것은 연약한 등을 가졌기 때문이다. 뒷모습을 가졌기 때문이다.'(86쪽)고 하고 있다.<br>뒷모습을 인식할 수 있는 사람, 그는 정직할 수밖에 없다. 꾸미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이 조금은 행복해질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은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장소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다.<br>하여 우리가 마음을 놓을 장소가 거창하고 화려할 필요는 없다. 간이역처럼 조용히 제자리를 지키는 작은 장소여도 된다.&nbsp;<br>'빠르게 달리던 기차가 잠시 속도를 늦추는 간이역들은 앞만 보고 달려가던 몸과 마음을 들여다보며 지금 너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되묻게 하다. 그 작은 모퉁이에서 꿈과 현실, 기억과 예감은 서로 흘러들어 오롯한 공간을 만든다.'(231쪽)<br>그렇다. 바로 이러한 간이역과 같은 곳, 그곳이 바로 우리가 마음을 놓을 장소다. 그런 장소를 지니고 있는 사람의 뒷모습은 정직하고 겸손한 모습일 것이고, 인간뿐만이 아니라 다른 존재들과 함께하는 사람일 것이다.&nbsp;<br>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랑하지 않고 만물과 함께하는 그런 존재라고... 그의 앞모습, 뒷모습이 모두 보여줄 것이다. 그러한 마음의 장소를 지닌 사람들이 많아질 세상. 그런 세상이 바로 글쓴이가 이런 글을 쓰는 이유이지 않을까.<br>나도 내 마음을 놓을 오롯한 장소를 마련해야겠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277/4/cover150/k07203404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2770425</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이혼, 어떤 상황에서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는 법이 되기도 - [이제 이혼합니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45323</link><pubDate>Wed, 29 Apr 2026 07: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4532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604620X&TPaperId=1724532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734/67/coveroff/897604620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604620X&TPaperId=1724532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이제 이혼합니다</a><br/>가키야 미우 지음, 김윤경 옮김 / 문예춘추사 / 2023년 11월<br/></td></tr></table><br/>'우편함을 열자 상중(喪中)엽서가 들어 있었다."(5쪽)로 시작한다.<br>상중엽서... 상을 당해서 올해는 연하장을 보내지 못한다는 내용을 알리는 엽서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그런 풍습이 있다고...<br>그해 상을 당한 사람의 처지에서 새해를 축하할 경황이 없을 테니, 이러한 사실을 미리 알려주는 엽서를 보내 상대에게 양해를 구하고, 상대 역시 섣부른 축하 인사를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br>이 상중엽서를 받으면 걱정되는 마음이 들 텐데... 소설에서 받은 상중엽서에는 남편이 죽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남편이 죽었다면 보통 반응은? '어떡하나? 마음이 많이 아프겠네. 힘들겠네.'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소설은 여기서부터 반전이 시작된다.<br>"......부럽다."(8쪽)<br>이것이 소설의 주인공인 스미코에게 든 첫 감정이다. 그러면서 스미코는 '난데없이 솟아난 이 감정이 너무나 당혹스'(8쪽)럽다고 느낀다. 하지만 스미코는 알고 있다. 자신은 남편이 빨리 죽어줬으면 하고 바란다는 사실을.<br>남편이라는 존재는 스미코에게 없으면 좋은 존재를 넘어 없어졌으면 하는 존재이다. 30년이나 결혼 생활을 했는데, 남편이 견딜 수 없어진, 너무도 싫어진 스미코, 그의 말 하나하나, 행동 하나하나, 특히 그의 몸에서 풍기는 체취마저도 견딜 수 없게 된 스미코.<br>빨리 남편이 죽어 자신만의 생활을 하고 싶어하지만, 남편이 먼저 죽는다는 법이 없다. 어떻게 될지 모른다. 자신도 나이가 58세다. 그렇다면 방법은 단 하나. 이혼하는 것이다.<br>이혼? 말은 쉽다. 하지만 걸려 있는 것이 많다. 많은 사람들이 이혼을 쉽게 하지 못하는 것은 다양한 것들이 얽혀 있어 쉽게 끊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치 결혼 생활은 고르디우스의 매듭과 같아서 쉽게 풀 수가 없다. 과감히 끊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br>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혼이 결코 밝고 경쾌할 수 없지만 소설은 무겁지 않게 전개된다. 이혼을 하려는 스미코의 관점에서 소설이 전개되어 그렇게 느낄 수도 있지만, 스미코라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집안일에 충실하고 자녀들에게 최선을 다했던, 그러면서도 부족한 살림 경제를 살리기 위해 파트타임으로 일도 하는 나이 든 여성이 이혼을 결심하고 이혼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br>소설의 앞부분만 읽어도 누구도 스미코에게 '너무하네, 조금 참지.' 하는 말을 할 수가 없게 된다. 집 안에서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남편. 자신은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면서 아내는 집에서 살림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남편.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아내를 전혀 안쓰러워 하지 않는 남편.<br>딱히 남편에게 이혼의 결격 사유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예전 어른들이 말하듯이 "도박을 하나? 폭력을 쓰나? 바람을 피우나?"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집 안에서 아내를 하인 부리듯이 부리는 남편에게 이혼의 결격 사유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br>남존여비. 가부장이라는 말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지 않는 부부관계는 이미 성립할 수가 없다. 그러니 이혼은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주변의 시선이 의식되기도 하고, 경제적인 고민도 있지만, 스미코는 남편에게 선언한다. "이혼하자"<br>이 말을 하기까지 스미코가 겪어야 했던 마음의 갈등, 고민들이 소설에서 잘 보여지고 있다. 그래서 읽으면서 이혼을 하려는 스미코를 응원하게 된다. 스미코가 잘살 수 있기를...<br>잘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경제적으로 힘들지라도 스미코는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점차 주변의 시선을 덜 의식하게 되고, 당당한, 예전 고등학생 때의 자신의 모습을 찾아간다.<br>그만큼 결혼이 스미코의 주체성을 갉아먹고 있었다는 말인데... 스미코 부부만이 아니라 스미코의 친구들 이야기도 중첩이 되면서 왜 힘들게 참고 살면서도 이혼을 하지 않는 아내가 있는지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nbsp;<br>그렇다고 작가는 이혼을 하지 않고 참아가면서 살아가는 아내의 모습을 이상적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견뎌낼 뿐이다. 자신을 갉아먹으면서... 또는 비슷한 사람을 만나 남편을 욕하면서 감정을 다소 억누를 뿐이다. 스미코의 친구들의 모습에서 그런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럼에도 이들 역시 스미코의 이혼을 마냥 비난하지는 않는다. 여기서 다양한 부부 생활의 모습을 볼 수 있기도 하다.<br>이 소설의 장점은 이혼으로 인해 여성이 겪는 어려움을 부각시키기보다는 억지로 참으며 사는 결혼 생활보다는 이혼으로 홀로 서서 살아가는 삶도 즐거울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혼한 친구들을 통해... 소극적이고 가정에만 매여 있던 스미코가 한발 한발 자신의 주체성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스미코를 응원하게 된다. 그리고 안심하게 된다.<br>참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과감하게 끊을 땐 끊어야 함을... 참는 것이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더욱 꼬이게 할 수도 있음을... 이혼이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어내는 한 방법임을 이 소설을 통해서 보게 된다.<br>이 소설을 읽으며 부부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일방적으로 한 쪽에만 감정 노동을, 가사 노동을 하게 하는 관계는 결국 파탄에 이를 수밖에 없음을... 늦지 않았음을, 남존여비 사상이나 가부장적 사고방식을 지니고 지내왔던 남편도 바뀌어야 함을... 바뀌면 부부 관계가 달라질 수 있음을 스미코의 둘째 딸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으니... 이 소설을 이혼 장려 소설로 읽지 말자.<br>오히려 이 소설은 이혼을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알려주는 부부 생활의 참고서라고 할 수 있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82년생 김지영]이 많이 읽혔다. 그 소설이 30대 아내가 주인공이었다면, 이제 그 아내가 20여 년이 흘렀을 때 겪게 되는 모습이라고... 남편이 그 소설 속 남편보다 더 가부장적인 사람이라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br>이런 점에서 아내가 읽어도 좋지만 오히려 남편이 읽어야 할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br>참고로 일본에서 황혼 이혼이 늘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참고 살았던 아내들이 더 이상 견디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으로 유지되는 결혼 생활이 존재해서는 안 되니까.&nbsp;<br>우리나라도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려 하고 있다. 이젠 부부가 은퇴한 이후에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졸혼이라는 말도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데... 아마 그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 소설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br>이 소설에 나오는 '부원병(夫源病)'이라는 말이 현실이 되지 않도록 해야한다.&nbsp;<br>* 부원병 : 퇴직한 남편이 근원이 되어 아내에게 생기는 병으로 '은퇴 남편 증후군 Retired Husband Syndrom) 또는 '남편 재택 스트레스 증후군'이라고도 한다.(94쪽)]]></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2734/67/cover150/897604620x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7346728</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이야기</category><title>어떻게 이런 중국을 짝퉁의 나라라고 할 수 있겠는가 - [이병한의 테크노-차이나 탐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43075</link><pubDate>Tue, 28 Apr 2026 08: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4307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12032528&TPaperId=1724307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562/42/coveroff/k71203252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12032528&TPaperId=1724307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이병한의 테크노-차이나 탐문</a><br/>이병한 지음 / 서해문집 / 2025년 11월<br/></td></tr></table><br/>만만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대국이라는 생각을 했다. 큰 나라다. 영토도 넓고, 인구도 많고 자원도 많은 나라니 그야말로 큰 나라라고 할 수밖에 없다.<br>여기에 다른 나라를 대하는 태도까지 크다면 더욱 좋겠지만, 한때 동북공정이다 뭐다 해서 우리나라를 자신들의 속국 취급한다고 중국에 좋지 않은 감정을 지닌 사람도 많았다.<br>가짜 뉴스는 또 어떤가? 중국에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뉴스들. 그러한 일들에 중국의 책임도 있겠지만 그것이 중국만이 지어야 할 책임은 아닌 것으로 밝혀진 것이 얼마나 많은가. 또한 우리가 직접 겪고 있는 미세먼지를 비롯한 환경 파괴로 일어난 문제만도 중국에게 온전히 책임을 전가하기는 힘들다는 점을 지적하는 사람도 많다.<br>중국만이 아니라 유럽이나 미국을 따라가려는 나라들이 개발을 하기 위해서 환경에 소홀했던 것은 사실이니까. 환경에 대해서는 유럽이나 미국 역시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 전까지는. 개발도상국이라고 하는 나라들보다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의 환경 파괴가 더 심했음은 분명한 사실이니까.<br>그러다 이대로 가다간 공멸한다는 위험 신호가 나오니까 그때서야 부랴부랴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고, 지나친 개발을 막아야 한다고 하지만, 그들의 위치까지 가지 못했던 나라들은 그렇게 할 수 없었던 상황도 있었다.<br>중국도 마찬가지였고.... 그런데 이 책을 읽어보면 이제 중국은 환경에도 신경을 쓴다고 한다. 그것도 최첨단 과학기술과 결합해서.<br>이것이 이 책이 이야기하는 '테크노-차이나'다. 이제 중국은 세계에서 무시할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 우리가 아무리 짝퉁 천국이라고 해도 아니다. 이제 중국은 짝퉁 천국이 아니라 최첨단의 과학기술을 보유한 그야말로 테크노-차이나다.<br>그것도 세계를 선도하는... 환경 파괴국, 탄소 최다 배출국이라는 소리를 듣던 중국이 에너지 분야에서도 신재생 에너지 쪽으로 전환해서 이제는 세계를 선도한다고 한다.&nbsp;<br>신재생 에너지, 전기차, 바이오 산업에 인공지능, 우주 산업까지 중국은 이제 선진국을 따라가는 나라가 아니라 다른 나라를 선도하는 나라가 되었다고 하는데... 그런 중국을 적대시하면서 그들과 담을 쌓을 수 없음을 이 책을 읽으면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br>중국과 담을 쌓는다는 얘기는 뒤처지겠다는 얘기와 통한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만큼 중국의 발전이 놀라울 정도다.<br>이런 중국의 발전한 모습을 네 개로 나누어 알려주고 있는데, 1장에서는 '스페이스 차이나'라고 해서 우주 개발에 뛰어든 중국이 이제는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우주 강국이 되었다는 점을 여러 사례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nbsp;<br>2장에서는 '바이오 차이나'라고 해서 생명공학 분야에서 어떠한 발전이 있었는지, 이들이 인공지능과 결합해서 어떤 성과를 거뒀는지를 보여준다. 인공지능과 결합한 의료가 이미 실용화되었다는 것. 그래서 의사의 수가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 있었다는 점을 이 부분을 통해서 알게 된다.<br>여기에 전염병 예방을 하는데, 중국에서 인공적으로 유전자를 변형한 모기를 통해 모기의 번식을 막기도 한다는 것과 이러한 연구들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바이오 차이나'라고. 의료가 한참 뒤떨어진 나라가 아닐까 했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고.<br>3장에서는 '그린 차이나'라고 해서 탄소 최대 배출국이라는 오명을 씻어내는 중국의 모습을 보여준다. 저자는 여러 자료를 통해 중국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탄소 배출국인 동시에 세계 첨단의 탈탄소 기술 국가다'(131쪽)라고.<br>신재생에너지에 투여한 시간, 노력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 여기서 멈추지 않고 지속적으로 생태 문명, 순환경제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br>4장에서는 '디지털 차이나'라고 해서 디지털 기술과 결함한 중국의 모습을 보여준다. 화폐부터 도시, 국가까지 디지털로 전환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서 2035년까지 디지털 차이나를 완성한다는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 이것을 이렇게 정리했다.<br>'2035 디지털 차이나'의 방향으로는 크게 세 가지를 표방했다. 디지털 경제, 디지털 사회, 디지털 정부다'(181쪽)&nbsp;<br>이렇게 네 부분에 걸쳐 중국이 얼마나 최첨단 과학기술의 나라로 변해가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그래서 막연히 중국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 특히 서양을 따라한다는, 짝퉁 천국이라는 이미지를 완전히 벗겨내고 있는 것이 이 책이다.<br>중국은 이제 따라가는 나라가 아니다. 앞서가는 나라다. 다른 나라들을 앞에서 이끄는 나라다. 인정하지 않으려 해도 그것이 바로 중국이라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이렇게 중국의 다른 면, 어쩌면 우리가 달의 뒷면을 보지 못하지만 달의 뒷면도 엄연히 존재하듯이, 우리가 외면하려던 중국의 모습을 저자는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안 보려고 하지 말고, 보이지 않더라도 있으니 그것을 보려 해야 한다고 하는 듯하다.<br>저자가 중국을 너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을 하게 할 정도로 이 책에는 중국의 발전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간 우리가 보지 않았던 또는 보려하지 않았던. 그래서 설마? 에이, 중국이? 이거 너무 친중 아니야? 하는 생각은 잠시 접고 저자가 제시하는 사실들을 확인해 봐야 한다. 그러면 달의 뒷면처럼 그간 보이지 않았던 중국의 모습을 볼 수 있을 테니까.&nbsp;<br>저자의 이 말 무시하고 넘어가면 안 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nbsp;<br>'미래가 만들어지고 있는 땅은 비(非)서방이다. 그리고 그 비서구에서 형성디고 있는 새로운 인프라, 미래의 디지털 신경망의 상당수가 중국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214쪽)]]></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562/42/cover150/k71203252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5624218</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이야기</category><title>인간 ‘없는‘ 전쟁은 없다 - [인간 없는 전쟁 - 두려움도 분노도 없는 AI 전쟁 기계의 등장]</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40898</link><pubDate>Mon, 27 Apr 2026 07:3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4089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42034329&TPaperId=1724089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211/75/coveroff/k14203432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42034329&TPaperId=1724089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인간 없는 전쟁 - 두려움도 분노도 없는 AI 전쟁 기계의 등장</a><br/>최재운 지음 / 북트리거 / 2026년 01월<br/></td></tr></table><br/>AI. 환호에서 공포로 바뀌기도 한다. 여전히 환호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공포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왜냐하면 인공지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인간이 따라갈 수 없는 능력을 발휘하니...<br>최근에 벌어진 전쟁에서 인공지능이 활용되고 있다. 인공지능끼리 전쟁을 하는 시뮬레이션을 작동시켜보기도 했다고 한다. 어떤 인공지능은 방어적으로, 어떤 인공지능은 공격적으로 전쟁을 수행했다고 하는데, 인간의 개입 없이 인공지능끼리 전쟁을 벌이는 일이 일어날까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지기도 한다.<br>이 책의 표지에 있는 말처럼 인공지능은 두려움도 분노도 없는 전쟁기계이기 때문이다. 두려움과 분노가 없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전쟁을 수행한다. 반면에 연민도 없기 때문에 살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를 수도 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인간의 목숨은 변수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br>그렇게 우리는 되돌릴 수 없는 기술의 발전으로 이제 대부분의 무기들에 인공지능을 장착하고 있다. 무기들이 스스로 판단해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단계까지 나아갔다고 하니, 핵무기의 위협만큼이나 이제 인공지능 무기들도 인류에게 위협이 되고 있다.<br>핵확산금지조약이 발효되어 더이상의 핵무기를 제조하지 않는다는 큰틀에 세계가 어느 정도 (여기에 가입하지 않은 나라도 있지만 대체로 핵무기의 위험을 인식하고, 그 무기를 개발하지 않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데는 동의를 한다) 합의를 한 인류니, 이제는 인공지능 무기를 어느 정도까지 허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합의를 해야 한다.&nbsp;<br>단지 합의가 아니라 조약으로 강제해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강대국들이, 그것도 인공지능 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나라들이 그러한 조약에 반대하고 있으니, 아직 갈 길이 멀다.<br>이 책을 읽어보면 무섭다. 벌써 인공지능들이 전쟁에 사용되었음을, 이런 무기의 효용성을 목격한 각 나라들이 인공지능 무기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에 더더욱 무섭다.<br>인공지능 무기들로 인해 사상자가 줄 수 있다고 하지만, 군인 사상자는 줄 수 있어도 과연 죽어가는 인간들의 수가 줄어들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br>무기가 무기를 파괴한다고 해서 전쟁이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이스라엘이 하는 일을 보면 무기만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표적으로 삼아 살상하고 있지 않은가. 결국 인공지능 무기들로 전쟁을 하더라도 뒤에 있는 사람을 제거하는 것이 목표가 된다.<br>인간 '없는' 전쟁은 없다. 인간을 제거하기 위한 인공지능 무기로 작동할 가능성이 있다. 소위 표적을 제거한다는 목적으로, 그러한 표적만을 제거하기 때문에 인명 피해는 덜하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표적이라 불리는 사람들도 인간이기는 마찬가지다.<br>또 인공지능이 잘못 판단할 수도 있으니, 더더욱 무서워진다.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힌 다음에 그것이 잘못된 정보에 의해서 행해졌다고 한다면 도대체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br>그렇지만 인공지능 무기 개발을 막을 방도는 없다. 이미 사용되었고, 효용성이 증명되었기에 자신들만 뒤처지면 안 된다고, 자기 나라가 개발 안 하고, 다른 나라가 개발했을 때 그 힘의 불균형을 감당할 수 없게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br>돌이킬 수 없는 단계까지 왔다고 보면 이제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인공지능 무기들이 인류를 파괴하지 않도록 통제하는 일이다. 지배, 통제라는 말에 어떤 집단의 권력이 느껴진다면, 공존이라는 말로 바꾸자.<br>인공지능과 공존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질문을 이렇게 바꾸고 있다. 인공지능은 이미 돌이킬 수 없기에.<br>저자는 그래서 질문을 바꿔야 한다고 한다.<br>'우리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누구의 가치를 반영한&nbsp;AI인가?&nbsp;누구를 위한 안전인가? 누구의 이익을 우선하는가?(328쪽)'로.<br>이런 질문 앞에 당연히 'AI의 목표와 행동을 인간의 가치와 일치시키는 '정렬'이 선행되어야 하고,&nbsp;AI가 무엇을 학습했는지 알고, 왜 그런 판단을 내리는지 이해하고, 문제가 생기면 원인을 찾아 고칠 수 있게 '추적 관리'를 할 수 있어야 하며,&nbsp;AI 서비스 기획 단계에서 잠재적 사용자, 분야별 전문가, 시민단체가 참여'(310-325쪽)하는 것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한다.<br>이것을 기본으로 하면서 질문을 바꾸면 특정 집단에게&nbsp;AI를 독점하지 않게 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야&nbsp;AI와 공존하는 세상이 될 수 있다고.<br>이제 인간은&nbsp;AI라는 시험대 앞에 섰다. 문제를 발견했다. 문제를 발견했다면 해답 역시 찾을 수 있다. 그렇게 우리 인간은 해답을 찾아&nbsp;AI와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br>인공지능 무기들이 현대 전쟁에서 어떻게 사용되었고, 성능이 어떠하며 어떠한 위험성이 있는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nbsp;AI의&nbsp;효용성만큼이나 위험성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으니,&nbsp;AI에 대한 찬양도, 그렇다고 무조건 부정하는 것도 아닌 공존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하고 있다.<br>저자의 말,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br>'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nbsp;AI가 인간보다 똑똑해지는 순간이 아니다. 소수가&nbsp;AI를 독점하고, 다수가&nbsp;AI에 의해 통제되는 순간이다.' (331쪽)<br>'AI시대에 인간다움을 지킨다는 것은&nbsp;AI와 맞서 싸우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이는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이고,&nbsp;AI로 대체해서는 안 되는 영역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질문하며 대화하고 선택하는 과정이다. 기업이나 국가, 사회 차원의 문제만이 아니다. 개인 역시 일상 속에서 실천할 수 있고, 실천해야 하는 일이다.' (334쪽)<br>끝으로 이러한&nbsp;AI 무기들에 대한 글을 읽고 그럼 우리나라는?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책의 뒷부분에서 그 점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해주고 있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211/75/cover150/k14203432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2117576</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과 나 그리고 책</category><title>송경동 시집 -꿈이 현실이 되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38004</link><pubDate>Sat, 25 Apr 2026 16:1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38004</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24750&TPaperId=1723800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9283/60/coveroff/8936424750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nbsp; 사회 현실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시인이 쓴 이 시들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br><br>&nbsp; 노동자들의 고공농성, 경찰들의 강제 진압, 희망버스 등등...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시로 표현하고 있다.<br>&nbsp; 어려운 말이 하나도 없이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말들이 시에 담겨 있어 읽으면서 우리가 겪어왔던 일들을 떠올릴 수가 있다.<br>&nbsp; 다른 말이 필요 없다. 첫 번째로 실린 시를 보면 이 시집에서 시인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 수 있다.<br>&nbsp; 제목이 '청소용역노동자들의 선언'이다.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시인이 시로 표현하고자 하는 존재는 사회적 약자들, 또는 민주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 약자의 편에 선 사람들이다. 그들이 원하는 세상이 그들만이 잘사는 세상이 아님을...<br>&nbsp;청소용역노동자들의 선언<br>우리는 당신들의 집과 건물이&nbsp;깨끗하기를 바랍니다<br>그만큼 우리를 대하는 당신들의 인성도깨끗하기를 바랍니다<br>우리는 당신들의 삶과 생활이더 윤택하고 빛나길 바랍니다<br>그만큼&nbsp;우리가 받아야 할 대우도환하고 기름지길 바랍니다<br>우리는 노예나 종이 아닙니다당신과 나의 권리는 서로 존중되어야 합니다<br>이 세상의 모든 불의를 바르게 정돈하고잘못된 구조와 모순을 뜯어고치는 일은우리 모두의 일이어야 합니다<br>우리는 쓸겠습니다당신은 닦으십시오<br>부디우리가 치워야 할 쓰레기가당신들이 아니길 바랍니다<br>송경동,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창비. 2022년. 10-11쪽.<br>시에서는 너와 나를 가르지 않는다. 우리다.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위해야 한다. 나를 위해서 너가 희생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사회 곳곳에서 '나'는 존중받고 싶지만, '너'는 굳이 존중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br>그런 사람들을 무어라 불러야 할까? 이 시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치워야 할 쓰레기'라고 표현하고 있다. 공동체를 유지하는데 방해가 되는 사람들.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사는 사람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누르려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공동체의 생활에 필요없는 치워야 할 존재다.<br>그러므로 시인은 당신들은 제발 그런 존재가 되지 말라고 한다. 당신들은 쓰레기니까 치워져야 한다가 아니라, 당신들도 우리와 같이 '잘못된 구조와 모순을 뜯어고치는' 일을 하는 존재라고 한다.<br>세상을 좋게 만드는 데 나와 나의 구분은 없다. 우리가 함께해야 한다. 함께하지 않고 방해하는 존재는 치워야 한다.&nbsp;<br>이런 의미를 지닌 시들이 이 시집에 실려 있다. 세상의 불의를 참지 않고 고치려 하는 사람들의 모습.&nbsp;<br>이런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사회의 불의를 예방하고 치료하는 '백신'에 비유하기도 한다. '가장 오래된 백신'(104-105쪽)에서 시인은 '사랑과 연대라는 가장 오래된 백신'이라고 표현하고 있다.<br>사람을 살게 해주는 '사랑과 연대'. 이것들이 충만한 세상이라면 시인이 원하는 대로 '큰 의미 없이도 우리 모두를 살리는 / '물결'이나 '바람결'이나 / 조용한 '숨결' 같은 것도 느껴보며 / 조금은 다른 삶의 결로도 살아보고 싶은 / 해 질 녘 우연한 그리움'(''결'자 해지'에서. 93쪽)을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nbsp;<br>그런 그리움이 실현되는 사회를 꿈꾸는 시인에게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런 시인의 꿈은 우리 모두의 꿈이니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9283/60/cover150/893642475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92836015</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클레어 키건의 초기 단편들-보지 않으려 하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 [남극]</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31353</link><pubDate>Wed, 22 Apr 2026 07: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3135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52034089&TPaperId=1723135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079/65/coveroff/k75203408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52034089&TPaperId=1723135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남극</a><br/>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12월<br/></td></tr></table><br/>살아가면서 보고 싶어하지 않는,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 장면이 있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장면도 있고. 또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장면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삶들을 보지 않는다고 해서 삶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br>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은 너무도 다양하기에, 좋다고 여기는 삶도, 좋지 않다고 여기는 삶도 우리 주변에 있다. 우리가 좋지 않은 삶이라고 하는 것들을 보지 않으려 애쓰고는 있지만, 보지 않으려 한다고 해서 그런 삶들이 우리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은 아니다.<br>오히려 그러한 삶들 속에서 자기 삶의 방향을 찾아가야 한다. 길을 잃지 않도록... 어쩌면 우리가 소설을 읽는 것은 삶의 방향을 잃지 않도록 하는 면역 주사를 맞는 것과 같을지도 모른다.&nbsp;<br>책이라는 공간에서 실제로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경험하면서 자기 삶의 방향을 찾아나가는, 좋지 않다고 여기는 삶에 대한 면역을 형성하는... 그러한 백신.<br>문학의 효용성을 따지기 전에 문학 작품은 그렇게 재미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알게 모르게 우리에게 어떠한 면역을 형성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작가들이 삶의 다양한 면을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기도 할 것이고.<br>클레어 키건의 초기 단편집이다. 작품 활동을 시작했을 때 출간한 작품들이라고 하는데... 첫 작품인 '남극'을 읽으면서 어, 이 작품 어디서 읽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br>어디서 읽었더라? 분명 클레어 키건의 작품인데... 찾아보니 [너무 늦은 시간]이라는 책에 수록되어 있다. 그래, 읽었네... 읽었어. 그런데 왜 이 작품이 같은 출판사에서 또 같은 번역자에 의해서 같은 년도에 다른 책에 각자 실려 출간되었지? 하는 의문.<br>단편집들이 가끔은 같은 작품을 수록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같은 해에 나오다니.. 참. 그것을 밝혀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지만...<br>이 첫 작품인 [남극]이 클레어 키건의 초기 작품들의 성향을 너무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평범하다고 여기는 삶 너머에 있는 삶들을 보여주는 작품들.<br>'남극'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 시작부터가 일상, 평범, 보통을 넘어서는 삶의 다른 단면을 추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br>'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던 여자는 집을 떠날 때마다 다른 남자와 자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했다. 그래서 다음 주말에 그 답을 알아내기로 결심했다.'(10쪽)<br>분명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던'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결혼 생활에 그다지 불만이 없었다는 얘기다. 남편과의 관계도, 아이들과의 관계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삶만을 지속한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br>하지만, 일상에서 벗어난 삶이 여기서 시작된다.&nbsp;다른 삶에의 궁금증.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세계에 대한 호기심.&nbsp;그것으로 인해 비극이든 희극이든 또 일상으로 돌아오든 돌아오지 않든, 우리 삶에서는 여러 변수가 발생한다. 그리고 그 변수에 따라서 삶의 방향이 달라지기도 한다.<br>'남극'... 보통 사람들은 가지 못하는 곳이다. 일상에서 벗어난 장소가 바로 남극이다.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떠나야 하는 곳. 일상에서 겪는 보통의 삶에서 벗어나려 하는 것은 바로 이렇게 남극을 탐험하는 것과 같을지도 모른다.<br>우리가 남극을 가볼 수 있는 경우가 희박하듯이 이 소설 속 주인공처럼 행동하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그렇다고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는 그러한 행위이기도 하고.<br>이런 일상에서 보기 드문 행위들이 이 소설집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그럼에도 많은 소설들에서는 가부장적인 사회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어서, 클레어 키건은 소설을 통해서 여전히 이 세상은 한쪽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작품을 통해서 드러내고 있다.<br>잘 알려지지 않은, 알려졌을 때 우리를 경악에 빠뜨리는 가부장적 폭력이 사실은 삶에서 빈번히 일어나고 있음을 이 소설집의 많은 작품들에서 보여주고 있는데, 그럼에도 그것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br>가령 '노래하는 계산원'이라는 소설에서는 둘만 남겨진 자매의 이야기인데 이런 구절이 있다.&nbsp;<br>'우리 둘 다 굳이 못을 다시 박지 않았다. 우리 삶에 저 나쁜 놈을 다시 걸어두려 하지 않았다.'(135쪽)<br>벽에서 떨어진 액자. 그 속에 들어 있던 사진. 그 사진의 주인공은 바로 그들의 아빠다. 그런데 아빠를 '저 나쁜 놈'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가부장의 폭력이 있었다는 얘기가 되고, 이것을 이겨내는 자매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br>이런 식으로 남자에게 종속되는 여자의 삶을 거부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이는 클레어 키건의 다른 소설들에서도 보여진다. 그렇게 우리가 감추려고 하는 삶들을 클레어 키건은 앞으로 끌어온다. 부정하지 말라고. 안 보려 한다고 그런 삶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삶은 눈속임이 아니라고. 무슨 마술처럼 있던 것을 없던 것으로,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고.<br>마냥 부정적이지만은 않은, 자신을 옥죄는 삶에 굴복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려는 모습. 주체성을 지닌 인간으로 다시 서는 모습을 이 소설집에 실린 다른 소설들을 통해서도 볼 수 있는데...&nbsp;<br>'남자애한테는 이상한 이름'이라는 소설에서 '나는 너에게 위안을 주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남자를 아이처럼 보살피는 여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여자는 내 세대에서 끝이다.'&nbsp;(168쪽)는 표현이나 '어디 한번 타봐'라는 소설에서 '세상에. 드디어, 10년 만에, 그녀는 원하는 것을 가질 참이다. 살아 있는 기분을 다시 느끼게 해줄 사람, 이 옷 속에 누군가가 존재한다고 느끼게 해줄 사람을 말이다. 로슬린은 이제 아닌 척하면서 집에서 얌전히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194쪽)는 표현처럼, 가부장의 세계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살아가려는 사람의 모습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br>이렇듯 삶에서 겪고 싶지 않은 일들도 역시 우리들 삶에 함께 존재한다고. 이것을 제대로 보아야 한다고 클레어 키건은 작품을 통해서 말하는 듯하다. 그래서 클레어 키건의 이 소설을 읽으면 백신 주사를 맞은 듯한 느낌이 든다. 삶의 부정적인 모습을 어느 정도는 경험한 듯한 그런 느낌....<br>다른 소설들처럼 술술 읽히게 간결한 문장으로 담담하게 사건을 전개하고 있지만, 그 짧은 소설 속에서도 여러 생각을 하게 하는 그런 소설집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079/65/cover150/k75203408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0796507</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왜 헐리우드가 그를 사랑하는지 알게 해주는, 필립 K. 딕의 초기 단편소설들 - [마이너리티 리포트 - 필립 K. 딕 단편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27751</link><pubDate>Mon, 20 Apr 2026 11:1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2775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3094993&TPaperId=1722775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6400/14/coveroff/899309499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3094993&TPaperId=1722775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마이너리티 리포트 - 필립 K. 딕 단편집</a><br/>필립 K. 딕 지음, 조호근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5년 07월<br/></td></tr></table><br/>옮긴이의 말에 '헐리우드가 가장 사랑하는 SF작가'(786쪽)로 소개하고 있다. 그의 작품을 영화로 많이 만들었다는 말인데... 사실 본 영화가 거의 없어서 그런 줄 모르고 있었다. 이름은 워낙 SF계에서는 유명해서 알고 있었지만.<br>이 소설집 제목이 된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비록 보지는 않았지만... 소설도 단편소설이 아니라 장편소설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보면서 어라? 짧은 소설이네 하고 놀라기도 했고. 미래 범죄를 예방하는 경찰이 자신이 그 명단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다음은? 그런 소설과 영화?<br>소설을 읽어보면 영어로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번역에서 소수보고라고 되어 있다. 소수자의 보고는 다수의 의견과 다르다는 말인데... 이는 재판과정에서도 소수의견을 반드시 명기하는 것을 보면 다수의견만큼이나 소수의견도 중요하다고 여겨야 한다.&nbsp;<br>그렇지만 소수의견이 밝혀지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대부분은 다수의견만을 알고 지내지 않는가. 소수의견이 차지하는 중요도를 생각하지도 않고. 소수의견을 알게 되는 사람은 다수의견만 알고 있는 사람과 같은 행동을 할 수 있을까?<br>아닐 것이다. 소설은 그 지점을 파고든다. 소수의견을 볼 수 있는 경찰의 책임자. 그는 자신에게 씌워진 범죄 행위를 미리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자신의 행위를 미리 안다는 것은 그대로 행동한다는 말일까?<br>아니다. 자신의 행동을 미리 안다면 그 결과를 안다는 말이니까, 예측된 대로 행동하지 않는다.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으니까.&nbsp;<br>이 소설 '마이너리티 리포트'도 그렇다. 보고서를 본 사람의 행동을 어느 시점에서 예측하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진다. 보고서를 보지 못했을 경우, 그는 예측대로 행동할 수 있다. 그러나 보고서를 본 이후의 시점에서 예측을 한다면, 그는 자신을 위해서 행동을 바꿀 수 있다. 그런데 이 보고서를 또 본 이후에는 어떨까?<br>자신과 조직이 걸린 문제라면, 어느 쪽에 더 중점을 두어야 할까? 소설은 그 점을 파고든다. 즉 인간은 예측대로 행동하는 기계가 아니다. 인간에게는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운명을 알게 되면 그대로 순응하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순응 대신 바꾸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그렇다고 정해진 운명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느냐는 다른 문제이다.<br>즉, 결과는 같더라도 예측된 대로 행동했느냐 아니면 자신의 의지로 행동했느냐는 다른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이 바로 그런 점을 생각하게 한다. 그는 예측 결과를 안다. 그럼에도 예측 대로 행동하기로 한다. 왜? '정의'라고 하면 자신의 행동이 개인의 이익보다는 '정의'를 구현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한 조직의 책임 있는 자리에 있기도 하고.<br>이런 인간의 모습. 이것이 바로 인간 아닐까? 결과는 변하지 않더라도 그 결과가 일어나는 과정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데, 그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인간의 의지라는 것. 이것이 인간이 지닌 특성이라는 것을 이 소설을 통해서 생각하게 되는데...<br>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렇다면 우리나라 점(무속)은 어떨까? 많은 사람들이 점을 치기도 하는데, 그 점괘에 따라서 똑같이 행동할까? 오히려 점은 자신이 결과를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하는 디딤돌 역할을 하지 않을까?<br>미래가 완전히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점(무속)에서도 인정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마이너리티 리포트' 역시 안다는 것이 행동을 바꿀 수 있음을, 어쩌면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자들이 그 정보를 이용해 남을 재단하고 억압할 수도 있음을 이 소설이 보여주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nbsp;<br>왜냐하면 주인공은 경찰 책임자로서 정보를 미리 볼 수 있었으므로, 그가 지금까지 해온 대로 정보를 알지 못하는 사람을 잡아 가둔 것이 과연 옳은지에 대해서 작가는 잠시 언급하고 있지만, 이에 대해서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소설은 이렇게 인간의 행동이 예측대로만 되지 않음을, 또한 정보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정보를 아는 존재에 의해 휘둘릴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br>이 소설집에는 많은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1950년대에 발표된 소설들인데... 짤막한 소설들이라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매우 많다.<br>사건과 인물들에 여백이 많기 때문에 영화로 만들 때 만드는 사람의 처지에서는 좀더 자유로울 수 있다. 비어 있는 여백을 자신의 상상력으로 채우면 되기 때문인데...<br>소설의 주제를 살리면서도 많은 부분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기에 이 작가의 단편 소설들이 영화로 많이 만들어졌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br>거기다 이 주제들이 SF의 형식으로 당시 냉전 상황이나 독재, 전체주의를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소설들에서 배경이 핵전쟁 이후로 설정되어 있고, 적대국들이 등장하는데 이는 소련과 미국의 냉전 시기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br>이러한 냉전이 사람들의 삶만이 아니라 지구도 파괴할 수 있다고, 이렇게 지구를 파괴한 인간들은 지구에 살 자격이 없다고... 그러니 인간은 지구를 떠나는 것이 옳다고 이야기하는 듯한 소설도 있다.<br>'단기 체류자의 행성'이라는 소설인데, 이 소설에서는 방사능 속에서도 살 수 있는 생물들이 살아남은 지구에 인간들은 단기 체류자로 이곳에 잠시 온 방문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나온다. 인간들이 파괴한 행성. 그렇게 만든 인간들은 지구에 존재할 가치가 없다는 생각을 펼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는데... 이는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작가의 생각을 풍자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br>이 단편집을 읽으면서 이 작가 대단하구나, 지금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 것들을 미리 보여주고 있기도 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br>버릴 단편이 없다. 다들 읽으면서 감탄하게 된다. 재미도 있고. 필립 K. 딕의 작품을 더 찾아 읽고 싶게 만든 소설집이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6400/14/cover150/899309499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64001439</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그림이야기</category><title>해방 직후까지의 우리나라 근대 미술들 - [한국의 미술들 : 개항에서 해방까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24191</link><pubDate>Sat, 18 Apr 2026 13: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2419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92937130&TPaperId=1722419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150/44/coveroff/k49293713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92937130&TPaperId=1722419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한국의 미술들 : 개항에서 해방까지</a><br/>김영나 지음 / 워크룸프레스 / 2024년 01월<br/></td></tr></table><br/>우리나라 근대 미술에 대해 개괄적으로 알려주고 있는 책이다. 근대의 기점을 어디서부터 잡을 것인가는 논란이 많지만, 이 책에서 저자는 1880년대를 기점으로 잡고 있다. 이유를 '동아시아의 문화권에서 벗어나 국제사회에 발을 내디디는' 때가 그때이기 때문이라고 한다.<br>결국 근대를 서양문명과의 접촉으로 보는 셈인데, 이 책에서 다루는 미술들 역시 서양 미술과의 접점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그래서 미술들이라고 했지만 전통 서화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br>물론 근대라는 개념을 서양문물과의 접촉으로 보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서양문물과 동양문물이 융합되거나 또는 각자 그 시대에 창조되면서 계승, 유지, 발전된다고 한다면, 전통 서화에 대한 부분이 더 많았으면 아쉬움이 있다.<br>그렇다고 아주 등한시 하고 있지는 않다. 오세창을 예로 들어 그가 쓴 '근역서화징'을 언급하고 있으며, 서화라는 말 대신에 미술이라는 말이 등장하는 배경을 설명하고 있으니, 그런 아쉬움은 접고 이 책을 따라가면 1880년대부터 해방 직후까지 우리나라 미술들을 대략적이나마 알게 된다.<br>주로 일본을 통해서 만날 수밖에 없었던 서양 미술, 유럽이나 미국에 유학해서 직접 서양 미술을 배운 사람들도 있지만 이들이 우리나라 미술계에서 그리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또 전쟁이라는 비극을 겪었기에 그들의 활동이 알려지지 않는 경우도 있었으니...<br>이 책에 일본 미술가들의 이름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였기 때문이고, 유럽이나 미국으로 유학을 가기 위해서는 일본 국적으로 가야만 했기에 포기한 경우가 많았으니, 일본 미술가들에게 배운 사람들이 우리나라 근대 미술의 주류가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br>그렇다고 일본 미술가들의 경향을 그대로 따라갔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우리나라 역시 근대 미술 사조들에 대해서 공부하고, 자신들의 성향에 맞는 작품 활동, 또 조선적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도 하면서 작품 활동을 했음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다.<br>그림만이 아니라 조각에서도 또 사진이나 건축에서도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지고, 상당한 성과도 거두게 된다. 이런 바탕이 있었기에 지금 한류라고 하는 문화 강국이 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한다.<br>많은 작가와 작품들이 나오고, 그들의 작품이 사진으로 실려 있어서 근대 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 적절한 책이기도 하고, 역사적으로 우리나라 미술을 1880년부터 해방 직후가지 훑어주고 있어서 한국 미술사의 흐름을 정리하는 데도 유용한 책이다.<br>이 책을 읽으면서 안타까운 점은 식민지를 겪어야 했던 우리 민족이 미술 작품들도 보존하기 힘들었다는 사실. 그래서 사라져 사진으로만 볼 수밖에 없는 작품들도 많았으며 청동과 같은 재질로 만들어진 조각들은 전시에 공출되어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들이다.<br>나라를 잃은 민족은 예술까지도 잃게 되니, 그 점을 근대 미술이 시작되는 우리나라 미술계에 일어난 일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미술을 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음도 이 책에 잘 나와 있으니... 이런 노력들, 결과들이 모여 지금의 우리 문화가 만들어졌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3150/44/cover150/k49293713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1504405</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사람이야기</category><title>공적 인간 이해찬을 통해 민주화의 역사를 보다 - [이해찬 회고록 - 꿈이 모여 역사가 되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19867</link><pubDate>Thu, 16 Apr 2026 07: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1986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42839798&TPaperId=1721986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175/15/coveroff/k44283979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42839798&TPaperId=1721986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이해찬 회고록 - 꿈이 모여 역사가 되다</a><br/>이해찬 지음 / 돌베개 / 2022년 09월<br/></td></tr></table><br/>안타깝다. 좀더 오래 살았어야 할 사람인데...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는데... 그래서 작가 유시민이 이 책의 끝에 쓴 발문 '어느 공적인 인간의 초상'의 한 구절이 마음 아프게 다가온다.<br>'남은 시간 그가 사적인 욕망을 충족하는 즐거움을 한껏 누리기를 응원한다.'(561쪽)<br>사적인 욕망을 충족할 시간이 없었다. 그는 정계에서 은퇴한 이후에도 공적인 일을 그만두지 않았고, 그 공적인 일로 베트남에 갔다가 결국 세상을 뜨고 말았으니... 아마도 그는 철이 든 이후에는 죽기까지 늘 공적인 삶을 살았던 그야말로 '공인(公人)'이었다고 할 수 있다.<br>그런 그의 삶을 최민희와의 대담 형식을 빌려 기록한 책. 그의 삶만이 아니다. 그의 삶을 통해 우리나라 민주화의 역사를 볼 수 있게 하는 책이다.<br>독재 시대를 거쳐 민주화 시대를 살아온 그. 그는 역사의 한복판에 서 있던 사람이고, 역사를 만들어온 사람이기도 하다. 그가 한 일에 공과가 있겠지만, 공과를 떠나서 그는 민주화를 염원했고, 민주적 정당을 만들려고 자신의 삶을 바쳤다는 사실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다.<br>평생을 그러한 민주화와 민주적 정당을 만드는 데 헌신한 사람. 그 사람이 담담하게, 자신의 감정을 배제하고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그가 걸어온 길. 우리나라 민주화의 역사이기도 하고, 민주적 정당 만들기의 과정이기도 하다.<br>그런 과정에서 좌절도 있었겠지만, 그는 새로운 출발로 삼고 다시 시작한다.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목표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공적인 삶을 사는 사람의 모습 아니겠는가.<br>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가고, 87년 민주화 이후에는 정계에 진출해 국회의원이 되어 정치를 통해 우리나라 민주화를 완성하려 한다. 민주화의 완성으로 가는 길에 정당의 민주화가 있다.<br>정당이 한 사람에 의해서 좌지우지된다거나, 또는 계파로 나뉘어 자신들의 이권을 챙기려는 모습을 보이면 그것은 민주적인 정당이 아니다. 당원들의 권리와 참여를 보장하는 정당, 민주적 절차를 지키는 정당, 이권에 휘둘리지 않고 공적인 목표를 추진하는 정당. 그래서 그때그때 정책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나라의 앞날을 생각해서 정책을 제시하는 정당, 그러한 정당이 민주적 정당이다.<br>이 책에는 이해찬이 자신이 몸 담고 있던 정당에서 탈당하는 장면이 몇 번 있다. 민주적 정당이 아니라 예전의 정당으로 퇴행하는 것을 참지 못했던,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자신의 행동으로 보여준 탈당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탈당 이후 그는 다시 자신이 있던 정당으로 돌아간다.<br>자기와 뜻이 맞는 사람을 모아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 그곳에서 자신의 뜻을 펼치려는 것은 어쩌면 민주적 정당 건설이 아니라 자신이 권력을 휘두르는 일이라고, 그것은 공적인 일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br>또한 그렇게 밖에서 활동하면 거대 정당들이 민주적 정당으로 탈바꿈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힘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힘들더라도 그 안에서 조금씩 조금씩이라고 바꿔가려고 한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이해찬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br>국회의원으로서, 정당원으로서 민주적 정당을 만들려고 노력을 했다면, 관료로서의 그는 어떠했을까? 이 책을 읽어보면 그가 서울시 정무부시장, 교육부장관, 국무총리를 역임하는데, 무엇보다 그가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를 했는지를 알 수 있다. 치밀하게 준비하고, 열린 토론을 하고, 정책을 거시적인 안목에서 마련하고, 일의 체계를 마련했으며, 불필요한 예산을 없애 정작 필요한 곳에 예산이 투입되도록 한 것들. 과감하고 결단력 있게 일을 추진한 그의 실행력을 이 회고록을 통해 볼 수 있다.<br>관료 문화를 바꾸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데, 책의 뒷부분에 그가 그러한 관료 생활을 한 지 꽤 지난 뒤에 현재의 관료들을 만나고 한 생각은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한다.<br>'2018년쯤부터는 당정협의를 할 때 공무원들의 분위기가 달랐어요. 얘기를 들어 보니 강남 3구 출신, 특목고 출신, SKY대학 출신들이 공무원 사회의 주류를 이루게 됐다고 하더구만, 시험 준비에서부터 그 사람들을 따라갈 수 없게 된 거지. 공정하게 시험을 쳐서 뽑는다는 것이 사회구조적으로는 불공정한 결과를 가져왔어요. 우리 사회 장래로 볼 때 굉장히 나쁜 거예요. 보수적인 엘리트 카르텔이 각 분야를 좌지우지할 테니까.'(547쪽)<br>이 말, 그냥 넘겨서는 안 된다. 사적인 이익이 아닌 공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이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한 이야기니까. 서울시 정무부시장, 교육부 장관, 국무총리를 한 사람이 공무원 사회의 모습, 즉 관료들의 모습을 보고 우려를 한 것이니, 그야말로 '공정하다는 착각'을 어떻게 부수어야 하는지 우리 모두가 생각해 봐야 한다.<br>그가 태어난 것은 이승만 정권 때이지만 이 책의 중심은 대학에 들어간 박정희 독재 정권 때부터라고 할 수 있다. 긴급조치로 대표되는 독재 정권의 만행, 그에 대한 반대, 그로 인한 투옥, 그리고 다시 서울의 봄과 광주민주화운동을 거쳐 87민주화 투쟁으로 쟁취한 형식적 민주주의. 그 다음은 이제 정당 정치인으로서, 관료로서 이 나라의 민주화를 완성하려 한 그의 삶이 펼쳐진다.<br>그가 한 말 중에 새겨두고 싶은 말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가치는 역사에서 배우고 방법은 현실에서 찾는다'(173쪽)는 말과, '직업으로서의 정치는 열정과 책임감, 그리고 균형이 중요해요, 직업으로서의 학문은 열정과 책임감과 객관성이 중요하지. 재야 운동은 열정과 책임감과 희생이 필요해요. 핵심이 달라, 정치는 균형, 학문은 객관성, 운동은 희생, 헌신이지.'(205쪽)는 말이다.<br>열정과 책임감은 기본이다. 이 기본 위에 더 갖춰야 할 덕목이 다르다는 말인데, 정치는 균형이라면, 이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상대가 반드시 필요하다. 즉 상대는 없애야 할 존재가 아니라 함께해야 할 존재다. 대화와 타협. 이것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고, 정당이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br>마찬가지로 같은 정당 내에서도 모두 같은 의견만을 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의견이 펼쳐지면서, 그 의견들이 대화와 타협을 통해 균형을 찾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민주적 정당의 모습이겠고, 이해찬이 바라는 정당 아니었을까.<br>이제 그는 떠났다. 하지만 그가 이루려는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일은 미래 세대에게 맡겨져 있다. 그 일을 마다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해서는.<br>마지막으로 그의 삶에서 고문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고문받은 이야기를 잘 하지 않았는데, 고문이 얼마나 그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는지는, 정계를 은퇴하고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고문받던 시절의 일이 꿈에 나타난다는 말을 통해서 알 수 있다.<br>그러한 고문을 한 자들, 과연 두 발 뻗고 잘 자고 있는지?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던 사람들이 겪었던 일. 이해찬도 피해갈 수 없었고, 그것이 그의 마음에 또 몸에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겼는지를 더욱 깨닫게 만든 이 회고록이기도 하다.<br>이 책은 이해찬의 삶을 통해서 우리나라 민주화의 역사를 살필 수 있으니, 현대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읽어보면 좋다. 늦었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0175/15/cover150/k44283979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1751513</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