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도담서림(道談書林) (kinye91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hu, 29 Oct 2026 02:18:28 +0900</lastBuildDate><image><title>kinye91</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74420113113741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kinye91</description></image><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여러이야기</category><title>복잡하게 불행하고 복잡하게 행복한 결혼 생활 - [평범한 결혼생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97549</link><pubDate>Wed, 28 Oct 2026 09: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9754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82738738&TPaperId=1759754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6536/33/coveroff/k18273873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82738738&TPaperId=1759754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평범한 결혼생활</a><br/>임경선 지음 / 토스트 / 2021년 03월<br/></td></tr></table><br/>복잡하게 불행하고, 복잡하게 행복한 결혼.<br>이 말처럼 결혼에 딱 들어맞는 말이 있을까? 복잡하게 행복하고, 복잡하게 불행한 결혼이라니... 그렇게 결혼은 한 마디로 정리할 수가 없다. 행복하다고도, 불행하다고도. 저마다 자신만의 결혼 생활을 하고 있으니, 다른 사람의 결혼 생활에 대해 남들이 이러쿵 저러쿵 말하기도 힘들고.<br>또 자신의 결혼 생활에 대해서도 행복하다고만 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불행하다고만 말할 수도 없는, 어떤 때는 행복에 겨워 결혼 잘했다고 하다가도, 어떤 때는 불행하다고 내가 왜 결혼했을까 라고 절규하기도 하는 그런 생활. 그것이 바로 결혼 생활 아닐까.<br>이 결혼 생활을 '쇼윈도 부부'라는 말처럼 남 앞에서는 행복한 양, 결혼을 너무도 너무도 잘한 양 포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겉으로 보이는 행복이 과연 행복일까? 사람들은 그런 모습 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부분을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br>또 어떤 부부는 우리처럼 살아라고 하는 듯하기도, 또 우리처럼 살지 마라 하는 듯도 하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임경선은 이렇게 말한다.<br>'한 부부의 결혼 생활이 다른 부부에게 본보기가 되려는 것처럼 사악하고 위선적인 것은 없다.'(127쪽)<br>그렇다. 부부 생활은 저마다의 생활이다. 다 다르다. 다 다르기 때문에 평범하다. 모두가 같은데 특이한 몇몇만 다르다면 그런 부부 생활을 비범하다고 하겠다. 하지만 부부 생활은 다 다르기에, 도무지 무어라 하나로 정리하기가 힘들기에 모두 평범하다.<br>이 평범은 다르다는 점에서, 각자의 부부 생활은 개성적이고 독특하다는 점에서 또 불행하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하다는 점에서 평범하다고 할 수 있다.<br>그렇다면 내 결혼 생활만 평범한 것이 아니다. 모두 평범하다. 이 말을 다르게 해석하면 모두의 결혼 생활은 독특하다. 그러므로 내 결혼 생활도 남들과 같을 수 없고, 내 결혼만의 독특함이 있다는, 비범한 결혼 생활이라는 점에서 평범하다고 할 수 있다.<br>이러한 각자 독특하고 비범해서 평범한 결혼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작가는 자신의 결혼 생활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여기에는 남에게 부부란 이런 것이다. 결혼은 이래야 한다라는 훈계가 들어가 있지 않다.<br>그냥 20년 간 살아온 자신의 결혼 생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것을 보면서 아, 나도 저런 결혼 생활을 해봤으면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br>다, 저렇게 사는구나. 하나로 정리될 수 없는, 각자의 문제를 안고 사는구나. 그게 결혼 생활이구나 하면 된다. 그러면서 자신의 결혼 생활을 어느 하나로 정리하려는 생각을 버리면 된다.<br>저자의 말처럼 '결혼 생활이란 무엇보다 '나와 안 맞는 사람과 사는 일'이'(8쪽)기 때문이다. '나와 안 맞는 사람' 이게 핵심이다. 나와 똑같은 사람이 아니다. 세상에 나와 똑같은 사람하고 평생을 함께 지낸다면 행복할까.<br>인간에겐 적당한 비밀이 있어야 하는데, 똑같다면 비밀이 있을 수 있을까? 당신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라는 말이 얼마나 자신을 구속하겠는가. 다 알아서 무엇을 하려고? 때로는 모르는 것이 약일 수도 있고, 알면서도 모르는 척할 수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결혼 생활 아닌가.<br>이러한 복잡함. 그것이 결혼 생활이니, 누가 그랬다지.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하는 것이 결혼이라고... 어떤 쪽이든 자신의 선택이니, 선택에는 후회가 따를 수도 있다. 다만, 그 후회 속에 잠기는 것이 아니라 후회를 뒤로 두고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br>결혼 마찬가지다. 완벽한 둘이 만나는 것이 아니다. 부족함이 있는 사람들이 만나 그 부족함을 안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 결혼 생활이다.<br>'누군가에게 의지할 줄 모르는 사람은 알고 보면 무척 쓸쓸한 인간이라는 것을 살면서 불현듯 깨달았다.'(118쪽)고 저자는 말하는데, 이것이 바로 결혼 생활이다. 누군가에게 의지할 수 있는 것. 의지하는 것.&nbsp;<br>또 누군가가 의지할 대상이 되어주는 것. 이렇게 때때로 - 늘이 아니다. 분명 의지하고 의지하게 하는 것은 때때로 여야 한다. 늘 하게 되면 그 결혼 생활도 힘들어진다 - 서로의 존재를 온몸으로, 온마음으로 느끼는 것. 그것이 결혼 생활 아닐까.<br>그러니 결혼은 복잡하게 행복하고, 복잡하게 불행한 것이다. 다만, 불행보다는 행복할 때 쪽으로 더 기우는 것이 결혼 생활을 지속하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만.<br>저자의 결혼 생활을 엿보는 재미, 그러면서 자신의 결혼 생활, 결혼에 대한 생각, 상대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읽기를 할 수 있는 책이다.&nbsp;<br>결혼 생활이라는 어쩌면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툭툭 치듯이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결혼한 사람이든, 결혼을 앞둔 사람이든, 아니면 결혼에 대해 생각이 없는 사람이든 읽어도 좋을 책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6536/33/cover150/k18273873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65363322</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과연 우리는 한 사람을 안다 할 수 있을까? - [별똥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95453</link><pubDate>Tue, 27 Oct 2026 09: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9545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12131292&TPaperId=1759545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342/33/coveroff/k71213129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12131292&TPaperId=1759545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별똥별</a><br/>카렐 차페크 지음, 정보라 옮김 / 휴머니스트 / 2026년 10월<br/></td></tr></table><br/>차페크 철학소설 3부작 중에 2부다. 1부에는 그래도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이 나오는데, 그런 그들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다양하게 이해된다. 즉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조차도 우리는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함을 생각할 수 있는 소설이 1부라면, 이번에는 모르는 사람이 나온다. 이름조차도...<br>도대체 아는 사람도 잘 모르는데, 모르는 사람에 대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어느날 하늘에서 추락한 사람이 병원에 온다. 얼굴을 붕대로 꽁꽁 감싸고 있고, 그에 대해서는 남자라는 것 말고는 이름도 국적도 하는 일도 전혀 알 수가 없다. 다만, 그가 중상이라는 것.<br>미지의 존재에 대한 호기심. 그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 모르는 것을 대할 때 우리는 무엇으로 판단을 하려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이 소설 아닐까 한다.<br>외계존재를 생각해보자. 아직 우리가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하지만 많은 소설들이나 영화에서는 이러한 외계존재들이 등장했다. 어떤 모습으로? 때로는 인류에 적대적으로, 때로는 호의적으로...<br>그 모습은? 인류와 비슷한 형태를 지닌 존재로 나오기도 하지만, 대체로 인류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왜? 인류는 지구 밖 존재를 본 적이 없으니... 그러니 자신들의 관점에서 외계존재를 상상할 수밖에 없다.<br>그간 자신이 경험한 것들과 알고 있는 것들, 또는 바라는 것들을 합쳐 미지의 존재를 상상한다. 그것뿐이다. 이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을까?<br>1부를 보면 현실 속에서 일어난 사건조차도 다양하게 해석이 되고,&nbsp;현대에 와서도 하나의 사건을 두고 다른 판결이 나오는 재판도 많으니... 진실을 알기 어렵다는 점을 깨닫게 되는데, 모르는 존재는 말할 것도 없다.&nbsp;&nbsp;<br>그러니 의사는 하늘에서 떨어진 존재를 마치 별똥별 같다고 한다. 별에서 떨어져 나왔다고 생각할 수 있는, 불타버려 본래의 존재를 알 수 없게 된... 우리와는 거리가 먼 그러한 존재.<br>이름을 알 수 없기에 '환자X'라고 부르기로 한다. 그를 치료해야 하는데, 그의 상태를 놓고도 외과 의사와 내과 의사가 다른 견해를 보인다. 하지만 이들은 치료를 하는 사람이니, 병을 놓고 다양한 의견을 낼 수 있다. 서로 협력하는 관계이기도 하고, 또 이들이 서로를 배척하지는 않으니...<br>한데 소설에서 전혀 다른 존재들이 등장한다. 수녀, 천리안을 지닌 사람(또는 천리안을 지녔다고 믿는 사람), 시인.<br>이들도&nbsp;'환자X'를 본다. 그에 대해 궁금해 한다. 그러면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외과 의사에게 들려준다. 수녀는 그에 관한 꿈을 꿨다고... 두 번이나... 꿈 속에서 만난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는데, 그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돌아가려다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이 된다.<br>반면에 천리안은 자신의 투사 능력으로&nbsp;'환자X'에 대해 알아냈다고 한다. 그는 화학자였다고... 위대한 발견을 했고, 자신이 발견한 것을 찾으러 가다가 떨어졌다고...<br>시인은? 시인은 자신의 상상력으로 창작을 한다. 한데 창작이 완전한 허구는 아니다.&nbsp;'환자X'의 상태를 보고, 그가 했음직한 일들, 그에 해당한다고 여겨지는 개연성이 있는 창작을 한다. 그는 부유한 사업가의 아들이었고, 쿠바에서 사업을 돕다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성공해서 돌아가겠다는 약속을 지키려고 가다가 떨어졌다고...<br>세 사람이 말하는&nbsp;'환자X'는 다 다르다. 다를 수밖에 없다. 그에 대해서 알려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자신들이&nbsp;'환자X'에 대해서 안다고, 그는 그런 사람이라고 말을 한다.<br>미지의 존재를 바라보는 관점들, 자신이 생각하는 또는 가치 있다고 여기는 쪽으로 미지의 존재를 규정하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간다.<br>따라서&nbsp;'환자X'는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들의 이야기 속에 존재하는 사람이 된다. 이야기 속에 존재하지만 그는 현실에도 존재한다. 왜냐하면 이야기 속에서 현실로 나오기 때문이다.<br>이야기가 이어짐에 따라 그는 수녀, 천리안, 시인에게 그리고 의사에게 현실 속 사람이 된다. 물론 현실 속 사람이라고 해서 명확히 그가 누구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nbsp;'환자X'는 점점 더 많은 이야기, 또는 삶을 지닌 존재로 이들 앞에 존재하게 된다.<br>그러다 소설의 결말... 이 이야기들의 뒤집을 수 있는... 하지만 그러한 결말에 있는 내용이 사실일지라도 그것이 진실이라고는 말하기 힘들다.<br>왜냐하면 마지막에 밝혀진 사실이 똑&nbsp;'환자X'를 정확히 말해준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차페크는 미지의 존재인&nbsp;'환자X'를 우리 앞으로 데리고 온다. 그러면서 그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면서 과연 당신은 이&nbsp;'환자X'를 어떤 사람으로 보는가? 질문하는 듯하다.<br>당신 역시 당신의 관점으로&nbsp;'환자X'를 볼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아니, 당신은 소설을 읽으면서 외과 의사, 내과 의사, 수녀, 천리안, 시인을 당신의 관점에서 판단하고 있지 않느냐고...&nbsp;'환자X'를 판단하는 그들을 당신도 판단하고 있음을, 그리고 그 판단 역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음을 생각하라고.<br>과연 철학소설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하다. 내용이 조금 장황하다고, 그렇다고 분량이 길다는 뜻은 아니다. 미지의 존재를 밝히는 내용들은 우리가 흔히 모르는 수나 모르는 것에 붙이는 X에서 시작해서 X로 끝나기 때문이다.&nbsp;<br>무언가가 명확하게 이것이다라고 밝혀졌다면 장황하다는 인식을 하지 않을 텐데, 결말로 가도 역시 모른다고 할 수밖에 없으니, 계속 우리는 알지 못함 속에 있게 되니, 그런 생각이 든다.<br>그럼에도 좋다. 차페크의 SF소설도 좋지만, 이런 소설도 좋다. 3부인 [평범한 인생]은 열린책들에서 출판한 것으로 예전에 읽어서 이번에 정보라 번역본은 구입하지 않았는데... 나중에 구입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다시 새롭게 읽어도 좋을 것이라는... 그런 기대가 드니.]]></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342/33/cover150/k71213129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3423350</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알 수 없는 삶의 복잡성 - [호르두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93467</link><pubDate>Mon, 26 Oct 2026 09: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9346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42131293&TPaperId=1759346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342/68/coveroff/k34213129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42131293&TPaperId=1759346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호르두발</a><br/>카렐 차페크 지음, 정보라 옮김 / 휴머니스트 / 2026년 10월<br/></td></tr></table><br/>새로운 번역판이 나왔다. 읽지는 않았지만 2013년에 '지식을만드는지식' 출판사에서 발간했다. 그러다 시일이 지난 다음 소설가 정보라의 번역으로 새로운 판이 나왔다. 예전 판을 읽지 않았으니 이번 판은 읽어야지. 누구 작품인가? 카렐 차페크 작품 아닌가. 누구 번역인가? 정보라 번역 아닌가. 소설가니까 소설의 묘미를 살리는 번역을 했겠지 하는 믿음.<br>그렇게 차페크의 철학소설 3부작이라고 하는 소설, 이 소설에 첫소설이니 읽기 시작. 처음부터 사건의 결말이 보였다고 생각했다. 이거 뭐야? 불륜 소설이야? 아니 불륜으로 인한 치정 살인?<br>설마? 이렇게 결말이 뻔히 보이는 소설이라고? 그런데 왜 소설이 1ㅡ2ㅡ3권으로 나누어 있지? 뭔가 반전이 있나? 지금까지 읽었던 차페크 소설들엔 멋진 반전이 있었는데... 게다가 이 소설엔 철학소설 3부작이라는 이름도 있지 않은가.<br>1권에서 호르두발의 행동에 답답함을 느끼면서 읽어가는데, 아, 이렇게 노동자들의 삶이, 과거 자신의 삶을 지키려는 그의 노력이 헛되게 되는 장면, 세상이 변해가는데, 과거를 고수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가 지키려는 삶의 방식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br>변해가는 세상, 하지만 지켜야 할 자신의 삶.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 그리고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문맹이라 편지를 보내지 못하고 떨어져 있던 삶. 외국에서 돈을 부치다 부치지 못하고, 그렇다고 소식도 전하지 못하고 8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호르두발.<br>우리나라에서도 한때 중동으로 일하러 간 사람들이 있었다. 호르두발과 같이 돈을 벌기 위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자신들의 고향을 등지고, 자신들이 그동안 살아왔던 삶과는 다른 삶으로 나아간 사람들.<br>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 사람들. 하지만 우리는 남겨진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저 보내주는 돈으로 편하게 살았겠거니 한다. 그들이 겪어야 하는 일들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nbsp;<br>소설에서도 마찬가지다. 1권은 호르두발의 시점에서 전개가 된다. 그럴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 8년을 일하다 집으로 돌아온 호르두발에게는 거리를 두는 딸과 자신을 존중하는 것 같지만, 자신에게 전혀 살갑게 대하지 않는 아내가 있을 뿐이다.<br>여기에 하인이라고 하는 사람, 그가 하는 일은 자신이 과거에 하던 일과는 전혀 다르다. 자신이 아끼던 밭마저도 팔아버렸다. 삶의 방식이 달라진 집이다.<br>삶의 방식이 달라졌음에도 호르두발은 과거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내를 믿고 딸도 언젠가는 자신에게 살가워질 것이라고 기대를 한다.<br>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싸늘한 반응. 친구들의 말은 호르두발의 기대와는 다르다. 모든 것이 변했다. 삶의 방식도 아내도.<br>어떻게 할 것인가? 보통은 아내를 꼼짝하지 못하게 하거나 그 시대 남자들이 쉽게 생각했던 것처럼 아내를 폭행할 수도 있다. 가부장적인 시대고, 아내가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마을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고, 그 정부가 바로 집에 있는 하인이라는 사실이니...<br>호르두발은 자신이 잘하면 아내가 돌아올 것이라고, 자신이 해왔던 삶의 방식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자신이 죽을 것을 대비해 유언장을 쓰는데, 거기에 모든 재산을 아내에게 준다는, 이유를 바로 '부부간의 정절과 사랑에 대한 보답'이라고 적는다.<br>마을 사람들과 달리 그는 아내를 믿고, 자신의 삶이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에게 온 것은 죽음.<br>2권은 이 죽음을 둘러싼 수사로 진행된다. 용의자가 특정되고 증거들이 하나하나 모이게 된다. 여기서 호르두발은 없다. 그가 지닌 마음, 그가 한 행동은 사라지고, 범죄 현장과 범인이 어떻게 살인을 했는지, 이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만 남는다.<br>가정 일이라고 이것은 참 복잡한 문제라고 하는 헌병도 있지만 모든 것을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고 하는 헌병도 있다.<br>세상 일이 간단명료하게 정리되면 좋겠지만 과연 그런가? 호르두발이 어떤 마음을 지녔는지, 그가 아내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중요하지 않다. 명확하게 결론을 내고 싶어하는 헌병에게는 사건만이 있을 뿐이다. 사람은 없다.&nbsp;<br>아내가 어떻게 8년을 지냈는지, 호르두발이 돌아왔을 때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 8년 동안의 삶과 앞으로 펼쳐질 삶에 대해서, 그리고 하인인 슈테판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등등에 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하인인 슈테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nbsp;<br>사건은 있지만 사람은 없다. 이것이 헌병, 특히 신참 헌병이 지닌 태도다. 이와 좀 다른 관점을 지닌 것이 시골에서 자란 고참 헌병이다. 그는 사건의 복잡성을 안다. 삶의 복잡성도 안다. 하지만 그는 사건을 조사해야 할 헌병이다. 신참과 함께할 수밖에 없다.<br>3권으로 가면 재판이다. 재판 역시 마찬가지다. 여러 증인들이 나온다. 이 증인들, 자신들이 보고자 하는 것만 본 사람들. 자신들의 잣대로 상대를 평가한다. 시골 마을에서 불륜은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 특히 여성에게는 더더욱. 마을 여성들이 특히 호르두발의 아내 폴라나를 적대한다.<br>용서할 수 없는 여자. 그들의 증언은 그렇게 흘러가고, 호르두발의 유언장이 증거로 채택이 되지만 변호인이 판단하는 내용과 검사가 판단하는 내용이 전혀 다르다. 같은 유언장임에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고 마니.<br>재판에서도 호르두발은 없다. 호르두발 사건을 둘러싼 사람들의 반응만이 있을 뿐이다. 하여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 증거는 명확하기에.<br>다만 이 과정에서 사람들의 반응을 통해 호르두발이 지녔던 마음, 그가 했던 행동은 묻혀버리고 만다.&nbsp;<br>바로 이것이다. 삶의 복잡성. 사람의 복잡함. 사람을 어느 하나로 규정지을 수 없음을, 도대체 그 사건이 일어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중첩이 되는지,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오가는지, 그것을 알 수 없다는.<br>하여 작가는 1권에서 호르두발의 심리를 펼쳐보이지만, 아내 폴라나나 하인인 슈테판의 마음은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호르두발이 아무리 애를 써도 이들의 마음은 알 수가 없다. 이들이 이야기한다고 해서 과연 진실을 이야기했다고 할 수도 없고.<br>이렇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 수가 없다는 것, 그 마음을 결과만 보고 판단할 수는 있겠지만 과연 그것이 바람직한 것일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는 것. 오히려 사건을 자신들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평가하고 단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사람을 그렇게 판단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하는 것.<br>철학소설이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소설의 결말이 긴 여운을 남긴다. 그렇게 죽은 호르두발.&nbsp;<br>'유라이 호르두발의 심장은 어딘가에서 사라져버렸고, 끝내 매장되지 못했다.'(228쪽)<br>이 말은 호르두발의 진실은 결코 다른 사람들에게 가 닿지 않았다는 말. 한 사람의 진실을 과연 우리가 알 수 있을까 라는 의문. 그것이 아닐까. 2부 소설이 기대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342/68/cover150/k34213129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3426860</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여러이야기</category><title>선한 미국, 아니 선한 사람들이 희망이다 - [나의 미국 인문 기행]</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89954</link><pubDate>Sat, 24 Oct 2026 11:1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8995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32937604&TPaperId=1758995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085/79/coveroff/k232937604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32937604&TPaperId=1758995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나의 미국 인문 기행</a><br/>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 반비 / 2024년 01월<br/></td></tr></table><br/>츠바이크가 쓴 여행기를 읽고, 이번엔 서경식이 쓴 여행기다. 이제는 세상을 뜬 그. 그의 형제들이(서승, 서준식) 한국에서 독재정권에 의해 불의하게 탄압을 받을 때, 많은 고통을 겪었던 사람.<br>불의를 이기기 위해 여러 노력을 했지만, 단순히 정치적인 활동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에게는 예술이 바로 자신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기도 했다.<br>형제들의 구명을 위해 외국에 가서 미술관에 간다? 누군가는 이를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아니다. 왜 그가 미술관에 가면 안 되는가? 이는 어쩌면 '피해자스러움 또는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마음, 행위일지도 모른다.<br>피해자라면, 또는 불의를 호소하는 사람이라면,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 세상에 사람을 하나의 범주에 가두는 행위 아닐까. 그런 사고방식 자체가 인문 정신에 어긋나는 것 아닐까.<br>하여 이 책의 제목이 된 '미국 인문 여행'은 하나의 틀에 갇히지 않는다. 시간 역시 마찬가지다. 서경식이 미국에 처음 간 1980년대와 트럼프가 정치 권력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2016년, 그리고 다시 2020년이다.<br>세 시기에 걸친 미국 여행에서 그는 여러 일들을 겹쳐서 회상한다. 하나의 사건이 다양한 시기 속에서 새롭게 자리 매김하기도 하고, 또 처음의 의미를 더욱 풍부하게 하기도 한다. 그렇게 서경식의 미국 인문 여행이 펼쳐진다.<br>이런 그에게 '피해자다움' 또는 '호소인다움'이라는 말은 적용이 되지 않는다. 그는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자신을 보고, 또 세계를 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는 것이다.<br>미국이라는 나라가 지닌 다양성, 그러한 다양성이 사라지고 있는 현재의 모습에 안타까워하면서도, 과연 미국이 과거에도 마냥 정의로운 나라였을까, '선한 아메리카'였을까 의문을 제기한다.<br>미국이 주장하는 '인권'도 미국의 국익을 위한 '자원'이라는 점(261쪽)을 그는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선한 사람들이 있어, 미국의 희망이 된다고, 그때나 지금이나 이러한 선한 사람들이 미국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게 한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br>그러니 그는 '선한 아메리카'가 아니라 이러한 선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동조자를 얻고 그 선한 힘이 영향을 미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br>이 인문 기행을 통해서 바로 그러한 선한 사람들 이야기를 하는 것도 그 이유일 터이고. 그것이 미국의 희망이기도 하겠지만, 세계의 희망이기도 할 것이다.<br>인문 기행이라고 제목을 붙인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고... 하지만 현재의 미국은 서경식이 이 책을 쓸 때보다 더 안 좋아졌다. 미국만이 아니라 세계도. 이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미국은 이제 이란도 폭격하고 있으니... 그럼에도 미국에 선한 사람들의 영향은 미미하다.<br>언론이 다뤄주고 있지 않아서라고 할 수도 있지만, 선한 영향력보다는 국익이라는 또는 자신들의 이익이 더 중시되고 우선시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선한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br>이 책의 말미에 서경식은 ''이상'을 잃어버리고 무력만이 살아남았다'(258쪽)고 하고 있다. 그만큼 세계는 과거로부터 배운 것이 없이, 오히려 더 강대국의 이익에, 자신들의 욕망 추구에 몰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세상에, 트럼프가 두 번이나 미국 대통령이 되는 그러한 현실 아닌가.<br>그는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병들고, 괴로워하는 상황. 진실은 거기에 있다'(257쪽)고 하고 있다. '평화롭게 살아온 나는 '허구'의 산물에 지나지 않'(257쪽)을지도 모른다고.<br>이런 상황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바로 '선한 사람들'이다. 그러한 선한 사람들이 많아지고 함께하면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세상에 희망이 될 수 있다.<br>인문 기행을 읽는 이유도 어쩌면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절망의 늪에서 한 줄기 희망의 밧줄을 발견하는 것. 그 줄을 잡고 절망의 늪에서 나오려고 하는 것.<br>인문 기행을 통해 그가 예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예술은 언제나 어떤 악몽의 시대에도 관용, 연대, 공감을 추구하려는 인문 정신이 살아 있음을 가르쳐준다'(157쪽)고 그가 말하고 있으니.<br>하여 우리 역시 이 절망의 시대에, 선한 아메리카가 아니라 악한 아메리카라고 할 수 있는 지금 미국을 보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러한 미국에서도 미국의 패권주의를 비판하는 예술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br>새롭게 알게 된 작가 특히 '벤 샨', 그리고 이름을 많이 들었던 '에드워드 사이드'에 대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서 더 좋았던 이번 책. 그가 이 책을 낸 이유를 마음에 담는다.<br>'나는 지금도 전혀 나아지지 않는 세계 여기저기에서 하루하루 현실에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내 경험의 작은 조각이라도 제시하여 참고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인간 그 자체에 절망하지 않기 위해. 그것이 나의 끝나지 않는 '인문 기행'의 한 페이지다.'(261-262쪽)]]></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3085/79/cover150/k232937604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0857996</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삶을 생각하게 하는 김학철문학상 수상작품집 - [2026년 제1회 김학철문학상 수상 작품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84097</link><pubDate>Wed, 21 Oct 2026 10: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8409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32130293&TPaperId=1758409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68/68/coveroff/k332130293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32130293&TPaperId=1758409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2026년 제1회 김학철문학상 수상 작품집</a><br/>황정은.최진영.전춘화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26년 07월<br/></td></tr></table><br/>우리나라에 많은 문학상이 있다. 이름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문학상이 있는데, 그 중에 또 하나의 문학상을 보태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br>하지만 문학상도 문학상 나름이다. 상 이름에 자부심이 묻어 있다면, 그 상을 받는 사람들도 기꺼워하면서 상을 수상하리라.<br>어떤 상처럼 받는 것 자체를 거부한다거나 또는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을 테니. 그런 상, 반드시 필요한 상이 바로 '김학철 문학상' 아닌가 한다.<br>일제시대 항일투쟁을 했던 분. 평생을 자신의 신념을 버리지 않았던 분. 식민 세력과 맞서, 또 독재와 맞서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갔던, 그야말로 자신의 삶이 문학 자체였던 분.<br>그렇다고 마냥 무거운 작품만을 쓰지는 않았다. 그의 작품에는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희망이 있다. 즐거움이 있다. 사실 항일무장투쟁을 할 때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그럼에도 이 수상작품집에 실린 김학철 실록소설인 '맹진나루'를 보면 웃음이 있고, 낙관이 있다.<br>포기하지 않는, 그러한 신념이 어려움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게 해주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낙관성, 그것이 바로 김학철 문학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br>그렇다면 김학철 문학상은 어떤 작품이어야 하는가? 선정에 참여했던 홍기돈이 밝힌 바에 의하면 '첫 번째 원칙은 불완전한 현실에 맞서서 그 너머로 이월하려는 치열한 작가정신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원칙은 친일 문학인을 기리는 문학상 수상자를 배제한다는 것입니다.'이다.<br>이만큼 수상작들은 지금-여기에서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세 명의 작가가 수상자가 되었는데, 황정은, 최진영, 전춘화이다. 이 세 작가의 작품들이 따로 발표가 되었지만 수상 기준이 있으니 어떤 공통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br>세 작가의 작품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폭력을 대하는 자세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br>황정은의 작품은 세계 곳곳에서, 특히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학살을 다루고 있는데, 우리는 그 학살을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또는 군사작전이라는 이름으로 가리고 있는지도 모른다.&nbsp;<br>내게 직접적인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눈 감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에 눈 감지 못하는 누군가에겐 그것이 너무도 큰 고통일 수 있음을 외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br>황정은은 바로 이러한 문제를 가만두지 못하는 사람의 고통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누군가의 고통을 외면하는 일, 그러한 일을 사소한 일로 치부하는 일, 당장 내가 겪는 일이 아니니 너무 신경 쓰는 것이 오히려 과한 일이라고 하는 사람들.<br>그러한 사람들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 세상의 불의가 이러한 무관심 속에서 지속되고 있음을, 그 무관심 속에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내 무관심이 누군가의 고통일 수 있음을, 따라서 작가는 그러한 고통받음에 무관심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필요함을 작품을 통해서 말하고 있다.<br>소설 제목은 '문제 없는, 하루'지만, 세상에 문제 없는 하루는 없다. 그 문제를 생각하지 않으려 할 뿐이다. 그러니 작가는 문제 없는 하루가 아니라 문제 없어 보이는, 아니 문제 없다고 여기면서 살아가는 하루에서 문제를 보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br>최진영의 소설 역시 마찬가지다. 의로운 일을 하다 죽은 아빠. 그러나 아들이 기억하는 아빠의 모습은 늘 훈계하는 아빠일 뿐이다. 자신의 사소한 것까지도 지적하는 아빠. 그러한 아빠가 일찍 죽어 화해할 수 없게 된 상황.<br>하지만 단절로 끝나지 않는다. 비록 아빠와 직접적으로 화해할 수는 없지만 아빠와의 연결을 끊을 수는 없다. 시간을 몇 년으로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더 길게 길게 연장한다면, 결국 어느 순간 아빠와의 끊어진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br>작가는 '우리에겐 그를 되살릴 기회가 있다. 다만, 시간이 필요하다'(89쪽)고 하고 있다. 가족이라는 한 번의 만남으로 모든 것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영겁의 시간 속에서 가족의 자리를 보는 것. 그러면서 자신의 마음 속에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br>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을 좀더 길게 본다면, 어쩌면 다른 관계를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아주 짧은 시간 안에서 모든 것을 확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작품에서 아빠가 자식에게 훈계를 일삼던 이유도 바로 짧은 시간 속에서 자식의 삶을 보려는 것에서 나온 것 아니었을까? 마찬가지로 자식 역시 아빠를 짧은 시간에 잃었으니, 다른 아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이 시간을 만났던 시간에 한정짓지 않고 더욱 확장한다.&nbsp;<br>확장된 길고 긴 시간 속에서 다시 관계를 생각한다. 단기적인 눈에 보이는 성과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길게 길게 보면서 관계를 맺어가는 것, 그러면 다른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음을 작가가 말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br>황정은의 소설에서는 무관심이, 최진영의 소설에서는 짧은 시간이 삶에 문제를 일으켰다면 전춘화의 소설에서는 자본주의적 욕망이 문제가 된다.<br>이것을 거르는 체를 가동시키는 주인공이지만, 그 체는 가끔 뚫리기도 한다. 왜냐하면 누구나 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고 또 미래의 삶에 어떤 일이 닥칠지 불안하기 때문이다.<br>'웰컴 투 빌라'라는 제목... 왜 '웰컴 투 아파트'가 아니지? 하는 생각을 먼저 하게 한다. 우리나라에서 '집은 아파트'이기 때문이다. 단지 살기 위한 집이 아니라 팔기 위한, 투자를 위한 집이기도 한 아파트.<br>하여 주인공은 빌라에 살지만 바로 뒤에 아파트 단지가 있다. 이렇게 비교되는 삶 속에서 최소한의 물질로 살아가려는 주인공들에게 최소한 이것은 해야지 하는 욕망들이 제시된다.<br>이 속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는 인물들. 그가 지녔던 체망에 구멍이 뚫리기 시작한다. 구멍이 뚫리면 그 동안의 삶을 다시 보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이 살아왔던 과정에서 문제를 느끼게 된다. 자신이 옳다고 믿었던 신념도 흔들리게 되고.<br>하지만 그렇게 체망이 뚫린 상태로 끝나지 않는다. 제목이 '웰컴 투 빌라'인 이유가 있다. 그렇다. 소설은 '빌라에서도 허리를 펴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중'(154쪽)이라고, 자신의 체망이 조금 넓어졌다 해도 그 체망을 버리지 않는다.<br>이것이다. 수상작품집에 실려 있는 세 작품이 모두 포기하지 않고 있는 것. 그것은 바로 자신들의 삶의 자세다. 균열이 생기고 흔들리고는 있지만, 마지막까지 버리지 않고 있다. 이것이 바로 '김학철 수상작품집'에 실린 소설들의 힘이다.<br>자, 당신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어떤 삶을 살고자 하는지 생각해보라고 하는 듯한.]]></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68/68/cover150/k332130293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686864</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과 나 그리고 책</category><title>헤어짐에는 예의가 필요하다 - 권진희 시집을 읽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82135</link><pubDate>Tue, 20 Oct 2026 10: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82135</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6409102&TPaperId=1758213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629/64/coveroff/8956409102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 &nbsp; 요즘은 뉴스 보기가 겁난다. 누가 그랬었지. 뉴스를 보거나 듣지 않는다고.<br><br>&nbsp; 왜? 안 좋은 일이 너무도 많아, 사실 신문이나 방송에서 내보내는 뉴스는 좋은 소식보다는 안 좋은 소식이 더 많으니, 마음이 깨진다고...<br>&nbsp; [물은 답을 알고 있다]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좋지 않은 소식이 우리에게 좋을 리가 없다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지 않은가.&nbsp;<br>&nbsp; 그럼에도 세상사에 눈 감고, 귀 닫고 살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가끔 듣거나 보는 뉴스에는, 생각하기 싫은 소식들이 실린다.<br>&nbsp; 헤어졌다고 무참하게 살인을 하는, 또는 보복을 하는 이야기. 한때 좋은 관계였을 텐데, 아니면 좋은 관계를 만들려고 노력했을 텐데, 헤어지는 순간, 또는 헤어지자고 하는 순간 상대를 증오하고, 무슨 불구대천의 원수를 보는 듯이, 한 하늘에서 살 수 없다고 너가 없어져야 한다는 식의 폭력을 휘두르고 있으니...<br>최근에 읽은 클레르 마렝이 쓴 [단절(들)]이 생각났다. 헤어짐 역시 단절일 텐데, 우리 삶에 일어나는 수많은 단절(들)에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대응을 한다면 어떻게 인간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겠는가.<br>헤어짐을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계기로, 또 헤어짐을 자신이 맺은 관계를 다시 되돌아보는 기회로 삼을 줄 알아야 하는데, 아니다.&nbsp;<br>헤어짐은 죽음이다. 죽음을 각오해야 헤어질 수 있는 관계(들)이 너무 많은 사회, 그런 사회는 행복할 수 없는 사회다.<br>세상에 목숨을 걸고 상대와 관계를 맺어야 한다. 사랑한다고 했던 사람들도, 그렇지 않고 같은 공간에서 일하던 사람들도 관계 맺기의 어려움을 겪는 요즘이지만, 관계 맺기의 어려움만큼이나 헤어짐의 어려움도 겪고 있지 않나 싶다.<br>잘 헤어짐, 그러니 헤어짐에도 예의가 있어야 한다. 헤어짐에도 존중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존중을 보여줘야 할 존재들이 앞장서서 헤어짐을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몰아가고 있지는 않은지...<br>권진희 시집을 읽다가, 헤어짐의 존중이라고 할 수 없지만, 관계 맺기의 진실성을 만날 수 있는 시, 이 시를 읽으면서 이것이 헤어짐의 예의 아닐까, 헤어지는 대상에 대한 예의, 존중, 그리고 그 대상을 만나는 새로운 존재에 대한 예의와 존중.<br>우리 사회는 보내는 예의, 존중도 잃고, 나를 떠난 존재와 관계 맺는 새로운 존재에 대해서도 예의와 존중을 잃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하게 됐다.<br>이 시를 헤어짐에 대한 예의와 존중, 또 새로운 관계를 맺을 존재에 대한 존중과 예의로 읽었으니... 오독(誤讀)이라면 오독일 수 있는 이런 시 읽기가 그래도 내 마음을 따스하게 하고 있다.<br>하, 어렵더라도 뉴스보다 시다. 시!<br>계단길 되짚어 오르는 사이<br>폐지 줍는 할머니가 있길래묵은 책들을 끈에 묶어서 내놓았다.<br>종이가 많은 것은 반가우나저걸 들고 어떻게 계단을 내려갈꼬-서너 차례 계단길을 내가 오르내렸다.<br>내게 없어도 그만인 책과종이 몇 묶음 나르는 것이야 대수롭잖은 것이누구에게는 대수로운 것임을 모르지 않지만<br>고맙고 또 고맙다며당신보다 새파랗게 어린 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휜 허리 깊이 숙이고 있는 모습을 보며<br>여태 내가 내놓지 못한 것들이,아래까지 함께 들어주지 못한 것들이얼마나 깊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지계단길 되짚어 오르는 사이 세고 또 세었다.<br>권진희, 죽은 물푸레나무에 대한 기억, 푸른사상. 2012년. 22쪽.]]></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629/64/cover150/8956409102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6296472</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여러이야기</category><title>여행을 통해 세계와 자신을 만나다 - [수많은 운명의 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80283</link><pubDate>Mon, 19 Oct 2026 11: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8028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29918&TPaperId=1758028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423/85/coveroff/893742991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29918&TPaperId=1758028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수많은 운명의 집</a><br/>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이미선 옮김 / 민음사 / 2023년 03월<br/></td></tr></table><br/>슈테판 츠바이크. 많은 글을 쓴 사람. 그의 소설 몇 편을 읽어보긴 했다. 그가 쓴 평전을 읽은 적도 있고. 여행기는 이번이 처음이다.<br>여행기. 그가 많은 나라를 여행했음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그 많은 여행 기록 중에서 몇몇을 발췌한 것이 이 책이다.<br>1902년 벨기에 브루게가 제일 먼저 나온다. 근대 도시지만 중세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도시. 그는 브루게를 통해서 도시가 간직하고 역사, 그 역사가 쉽게 지워져서는 안 됨을 이야기하고 있다.<br>근대적인 건물들 역시 중세 건물들을 가리거나 없애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공존하는 모습을 지닌 도시가 바로 브루게라고.&nbsp;<br>'오래된 집들이 전혀 변형되지 않은 채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고, 드문드문 새로 지은 건물들 (그중 하나는 역이다)마저 끝부분이 세 갈래로 갈라진 벽돌 박공을 높이 올린 옛 건축 양식과 아주 정확하게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그저 주민들만 바뀌었다.'(8쪽)라는 표현에서 츠바이크가 브루게에 갔던 당시 건물들의 모습을 알 수 있다.<br>이렇게 브루게 여행을 통해 젊은 시절의 츠바이크는 과거는 현재에 묻혀 잊혀져서는 안 됨을, 과거는 현재 속에 살아 있음을 이미 발견하고 있다.<br>이 브루게란 도시에 관한 글이 그가 죽은 이후에 나온 글인 이 책의 마지막에 실린 '1946 과거의 빈'이라는 글과 통한다. 빈이 대단한 이유는 바로 예술에 있다는 것. 그러나 예술은 '자유 없이 번창할 수 없다'(191쪽)는 그의 말.<br>두 번에 걸친 세계적인 전쟁이 그를 더욱 견디지 못하게 했으리라. 브라질에서 결국 세상을 버리고 말았으니...&nbsp;<br>빈에 대해 그가 한 말.&nbsp;<br>'모순의 혼합 그리고 이렇게 끊임없이 조화하려는 시도에서 유럽 문화의 새로운 요소를 만들어 내는 것, 이것이 바로 이 도시가 지닌 본래적 천재성이다'(171쪽)<br>이 모순의 혼합에는 상대를 배제하거나 억압한다는 생각 자체가 들어있지 않다. 유럽 곳곳에서 온 사람들이 그 자체로 인정받으며 살 수 있었던 도시가 바로 빈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예술이 꽃필 수가 있었다고. 누가 누구를 지배하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예술은 자리를 잡을 수가 없다.&nbsp;<br>그가 꿈꾸던 세상.&nbsp;<br>'내 생각에 인간은 -마찬가지로 한 민족은 - 지배해서도 헌신해서도 안 된다. 무엇보다 인간은 자유로워야만 하며, 각각의 타인에게 자유를 주어야만 한다.'(184-185쪽)<br>이런 그에게 전쟁은 견딜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자유로운 인간, 자연과 함께하는 인간. 그가 영국에 머물 때 전쟁 소식을 듣고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 영국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왜 그럴까라고 의문을 가지면서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데...<br>영국인들이 전쟁 소식에도 담담하게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을 자연과 함께하는 생활에서 찾고 있다. 바로 영국인들이 정원을 가꾼다는 것. 이 정원이 특별히 아름답다거가 크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자신의 집에 자신들이 가꿀 수 있는 만큼의 정원이 있다는 것.<br>하루 일과를 마치고 정원에 들러 식물들을 가꾸며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사는 모습들이 전쟁을 견디도록 했다는 것.<br>츠바이크가 쓴 이 글을 읽으면서 리베카 솔닛이 쓴 [오웰의 장미]가 생각났다. 아, 오웰도 영국 사람이었지. 그가 정원에 장미를 가꾸는데 그렇게 열심이었던 것도 이러한 영국인들의 성품이었나 싶은 생각을 했고.<br>이렇게 츠바이크가 쓴 여행기를 읽으면서 단지 그 도시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러한 도시 속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볼 수 있었다.<br>이렇게 다른 삶을 본다는 것. 여행기를 읽는다는 것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다. 츠바이크 역시 그런 말을 하는데... 아마도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가 바로 이 구절에 다 들어가 있다고 보면 된다.<br>'집에서 안내서와 함께하는 여행의 매력은 정말 환상적이다. 자신의 공간을 낯선 세계로 바꿀 뿐 아니라 현재의 시간을 과거와 바꿀 수도 있다. 집에서 여행기를 읽는 우리는 갑자기 먼 과거의 낯선 집에서 살 수도 , 빛바랜 옛날 옷을 입을 수도, 우편 마차와 작은 돛배를 타고 여행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난 세기의 사라진 공기를 들이마시며, 활발한 유희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할 수도 있다.' (91-92쪽)<br>이런 여행. 바로 이것이 여행기를 읽는 재미다. 단순한 재미만이 아니라 자신을 집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고,<br>그렇다고 이 방법에만 안주하면 안 된다. 츠바이크 역시 집 안에서 여행기만을 읽지는 않았다. 여행기를 읽는 것도 좋지만, 직접 여행하는 일 역시 필요하다. 다만, 직접 여행할 때는 편한 여행을 추구하지 말고 예측하지 못한 일이 발생하는 여행을 하기를 그는 권장하고 있다.<br>'아주 오랜 옛날부터 여행이라는 단어에는 모험과 위험, 변덕스러운 우연과 유혹적인 불확실성의 은은한 향기가 맴돌았다.'(131쪽)<br>'진정한 여행을 하려면 차라리 불편함, 성가심, 불쾌함이 낫다. 이것이 제대로 된 여행이다.' (132쪽)<br>이러한 여행을 한 사람이 집에 있을 때 여행기를 펼친다면, 츠바이크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자신의 여행과 다른 사람의 여행이 합쳐지는 또 다른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br>그런 여행을 하는 사람은 자유로운 사람,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자유롭게 하는 사람이지 않을까. 이를 확장하면 그런 민족은 닫힌 민족관을 지닌 민족이 아니라 열린 민족관, 즉 세계시민을 지향하는 민족이 된다.<br>이런 민족들이 있다면 지구에 전쟁은 없을 텐데. 한 민족이 다른 민족 위에 군림하려 하지 않을 텐데 하는 생각.&nbsp;<br>그렇게 처음 글에 나오는 조화, 그리고 마지막 글인 자신의 고향 '빈'을 이야기하면서 '삶이란 ... 근심 없이, 또 자유롭고 시기심 없이 친절하게 사는 것'(184쪽)이라는 츠바이크의 말을 마음에 심는다.<br>그가 살았던 시대처럼 전쟁이 끊이지 않는 지금 이 시대, 츠바이크의 이 책은 과거에 머무는 책이 아니라, 또 개인의 경험으로 끝나는 책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을 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423/85/cover150/893742991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4238593</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그림이야기</category><title>김기홍 유고시집 - 살아야 한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78313</link><pubDate>Sun, 18 Oct 2026 11:2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78313</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32630671&TPaperId=1757831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4267/71/coveroff/k532630671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nbsp; 책을 구입할 때 엄정한 기준이 있지는 않다. 그런데도 '유고'라는 말이 붙은 책을 보면 구입해야겠다는 마음이 인다.<br>&nbsp; 왜일까? 작가들이 살아서 독자들의 반응으로 자신이 쓴 작품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를 살피고, 그것을 다음 창작활동의 밑거름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하는데...<br>&nbsp; 세상을 떠난 작가들은 작품을 내놓아도 독자들의 반응을 알 수 없다. 그는 그냥 작품을 던져 놓은 것이다. 아니, 그가 내놓으려 하지 않은 작품을 누군가가 찾아서 독자들에게 읽어보라고 추천하는 것이다.<br>&nbsp; 카프카. 생전에 발표한 작품이 적은 작가. 유언으로 자신의 작품을 모두 불태워달라고 했다던,<br>하지만 유언 집행자였던 막스 브로트는 카프카의 유언을 지키지 않는다. 그는 카프카의 작품을 편집해서 세상에 내놓는다. 지금, 우리가 카프카의 작품을 읽는 것은 이렇게 해서 가능해졌다.<br>즉, 카프카는 죽었지만 작품은 살아남았다. 그의 작품에게도 '유고'라는 말이 붙을 수 있는데... 이런 이유 때문은 아니겠지만, '유고'라는 말이 있는 작품엔 유독 마음이 간다.<br>이 시집도 그랬다. 김기홍 시인, 분명 [일과 시] 동인시집을 읽은 적이 있으니, 머리 속에 시인의 이름이 남아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생소한 시인... 참. 기억력이 이렇게 안 좋아서야.<br>집에 있는 시집을 찾아보니 [일과 시] 동인 제7집이 있다. 2002년 발간 시집이다. 김기홍 시인이 2019년에 세상을 떴고, 이 유고시집이 2020년에 나왔으니, 한참 전에 발간된 시집이다. 물론 나는 나중에 읽었지만... 여기에도 김기홍 시인의 시가 실려 있다. 아마 다른 동인지에도 실려 있겠지.<br>카프카보다는 나은 편이라고 해야 하나. 생전에 시집도 두 권을 냈다. 그런 그가 세상을 뜨고 유고시집이 나왔다.&nbsp;<br>'여는 시'라고 시집의 앞에 있는 시가 마음을 울린다. 이 시가 이 시집의 `제3부'를 시작하는 시다.<br>&nbsp; 고개에 앉아서<br>찬바람이 살갗을 파고든다지난 시절은 주저 없이 가버렸다그러나 살아야 하리라저주하듯 온갖 고통들이 나를 에워싸고외로움에 지쳐갈 때그 외로움은 거울이 되어 나를 깨우리라속속들이 어제와 오늘의 나를 비추어 깨우리라늘 내 안과 밖에 내가 있으리라<br>김기홍, 뼈의 노래. 푸른사상. 2020년. 91쪽.<br><br>그가 살아온 시절. 한국 현대사의 비극들이 일어난 때. 노동자들이 힘겹게 힘겹게 자신들의 권리를 얻어가던 때. 민주주의를 외치며 많은 사람들이 고난을 받던 때.<br>그 역시 노동자로서, 시인으로서 그러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자유롭지 않았을 것이다. 그 역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고자 노력했으리라.<br>그러나 세월이 흐른 뒤 그에게는 따스한 바람이 부는 세상이 아니라 여전히 '찬바람이 살갗을 파고드'는 세상이었을 것이니,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고 함께하던 시절은 가고, 이제는 고통들이, 그가 겪은 고통들이 '기나긴 잠 - 오랜 잠에서 깨어나다'는 시에 '백일해 뇌막염 뼈 으스러짐 교통사고 결핵....../ 불행의 난전이여 병마의 백화점이여'(130쪽)라는 표현으로 나타나 있으니...<br>하지만 고통들로 인한 외로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다른 외로움들을 살피는 시인의 모습. 그러한 모습이 '숲에서 보낸 편지' 연작에 잘 나타나 있다. 마찬가지로 '마늘 상처'란 시에 보면 '하루 한 번이라도 내 외로움이 / 그대 외로움을 만났더라면 싹이라도 틔웠을까'(102쪽)라고 외로움이 홀로가 아니라 다른 외로움들과 함께한다면 다른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br>그렇게 자신을 비추면서 내 안과 밖에서 내가 있으리라고 외치는 시인. 그러한 시인의 표현 속에서 지금 세상을 살아가는 자세를 생각한다.<br>세상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또 세상에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 내 외로움 속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외로움을 보고 밖으로 나올 수 있어야 하는 것.<br>이 시집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한다. 우리는 홀로가 아니라는 것을, 결코 홀로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외로움은 지금 나를 비춰주는 거울이라고, 그러니 그 거울을 통해서 나를 보았다면, 이제 나를 거울 속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거울 밖으로 나오게 해야 한다고...<br>그런 점에서 이 시는 이 시집을 '여는 시'가 맞다. 이 시 구절들을 연상시키는 시들을 쉽게 다른 시들에서 찾을 수 있었으니...<br>안 좋은 소식이 많은 요즈음, 김기홍 시인의 유고시집에서 위안을 받는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4267/71/cover150/k53263067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42677164</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그림이야기</category><title>신들의 나라, 인도 미술을 만나다 - [인도 미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76567</link><pubDate>Sat, 17 Oct 2026 08:3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7656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8360346&TPaperId=1757656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48/coveroff/898836034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8360346&TPaperId=1757656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인도 미술</a><br/>비드야 데헤자 지음, 이숙희 옮김 / 한길아트 / 2001년 10월<br/></td></tr></table><br/>단일함과는 거리가 먼 나라가 인도 아닐까 하는데... 어떤 이들은 이를 혼란이라고 하겠지만, 또 다른 이들은 이를 역동성이라고 한다.&nbsp;<br>단일함보다는 다양함을 추구하는 나라가 인도 아닐까 하는데, 인도 미술은 어떨까? 도대체 인도에서는 어떤 미술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가 했을까? 또 인도 미술에 영향을 준 것은 무엇일까?<br>이런 궁금증에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인도 미술 전반을 다루는 책이 아니구나 했다. 오히려 인도 역사와 관련지어서 미술, 특히 건축과 건축과 관련된 미술을 다루고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br>특히 종교와 관련된 건축, 그런 건축의 양식들과 건축 내부를 장식하는 미술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는 내용이 많은데...<br>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미술은 삶과 떨어질 수 없었을 테고, 삶에는 또한 종교가 빠지지 않았을 테니, 종교와 관련된 미술을 살피는 것도 의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인도는 신들의 나라 아닌가?<br>우리가 아는 종교만으로도 힌두교, 불교, 이슬람교가 인도(파키스탄, 방글라데시)와 관련이 있지 않은가. 여기에 기독교까지 가세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신들의 나라가 인도다.<br>저자는 이런 종교와 관련지어 미술을 살피면서 인도의 특징으로 어느 특정 종교가 우세하더라도 다른 종교를 대놓고 배척하지는 않았다는 점을 든다.<br>하여 힌두교 왕국이어도 불교 사원을 인정했으며, 이슬람 왕국에서도 힌두교를 받아들이곤 했다는 점. 불교 역시 다른 종교를 받아들였다는 점은 우리나라 역사를 봐도 알 수 있는 문제니...<br>세계적인 종교라고 할 수 있는 종교들이 모두 인도에서 자리잡고 있으니, 그야말로 다양성으로 살아가는 나라라고 할 수 있다.<br>이러한 역사와 종교 속에서 인도 미술은 다양하게 변화해 왔는데... 주로 건축물을 중심으로 살피고 있어서 인도에 이 많은 건축물들이 아직도, 비록 온전한 형태라고 할 수 없는 건축도 있지만, 많이 남아 있다는 것에 놀라기도 했다.<br>영국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근대화와 전통 속에서 인도 미술이 어떠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장면까지가 이 책에 나와 있는데, 근대화라고 전통을 완전히 무시하지도 않고 또 전통을 살려야 한다면서 근대의 성과를 무시하지도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br>우리나라도 겪었고 또 겪고 있는 일이었으니...&nbsp;<br>이 책을 읽으면서 인도 미술을, 인도 건축을 잘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인도 미술에 대해서 개략적으로 훑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br>책에 실린 많은 사진들로 인도 미술(건축)을 보는 눈호강도 할 수 있으니, 그것으로도 즐거운 읽기가 되는 책이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0/48/cover150/898836034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4829</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과 나 그리고 책</category><title>녹색평론 195호-사회를 보는 다른 시각</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72971</link><pubDate>Thu, 15 Oct 2026 08:5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72971</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92131975&TPaperId=1757297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183/79/coveroff/k592131975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nbsp; 이번 호에는 '바벨탑' 이야기가 나온다. 현 교황의 회칙에 언급된 내용이라고 하는데...<br><br>&nbsp; 가톨릭을 대표하는 교황(이 용어가 황제를 의미한다고 해서 교종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여전히 교황이라는 용어가 대중적으로 쓰이니)이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하여 인간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고 한다.<br>&nbsp; 이 이야기 중에서 바벨탑 이야기가 나오는데,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를 빗대서 이야기했다고 할 수 있다.<br>&nbsp; 오직 하나를 향해 모두가 나아가는 사회가 과연 바람직한 사회인가? 그 사회가 번영할 것인가에 대한 답은 성경에 나와 있다고...<br>바벨탑은 결국 건설되지 못했다. 사람들은 각자 말이 통하지 않아 뿔뿔이 흩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을 달리 해석하면 오로지 하나가 되는 세상이 행복한 세상은 아님을, 그런 세상은 지속될 수 없음을, 성경이 바벨탑 이후에도 인류가 계속 존속해 왔음을 부정하지는 않으니...<br>언어의 다양성은 삶의 다양성이고, 이는 획일화된 삶이 아니라 각자에 맞는 삶을 살아가는 사회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성경에서 바벨탑은 신의 분노로 무너지지만, 종교를 떠나서 획일성은 결국 유지될 수 없다는 비유로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br>인공지능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인공지능, 인공지능 하면서 하나의 목표로 나아갈 때 과연 그 사회가 지속될 수 있을까? 인공지능에 모든 것을 거는 것이 아니라 우리지상어떻게 자신을 지키면서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br>그것을 박혜영의 글'우리 삶은 왜 외롭고 불안하게 되었을까(下)'에서 말하고 있는 미로 속에 들어간 인간들 모습과 연결지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br>크레타 왕 미노스의 명령으로 미노타우로스를 가둘 목적으로 만든 미로. 그 속에 들어가면 누구나 다 미노타우로스를 향해 갈 수밖에 없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 나올 수 있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아리아드네가 실을 주는 테세우스 전까지는.<br>미로를 만든 다이달로스조차도 그 속에 들어가면 나오는 길을 못 찾을 정도였다니... 그는 결국 날개를 만들어 날아올라 탈출하지만, 그 과정에서 아들인 이카루스를 잃게 된다. 이는 미로를 탈출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또는 그런 미로를 만든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신화라고 할 수 있는데...<br>인공지능을 향해 달려가는 현재 우리의 모습은 박혜영의 글에서 언급하고 있는 미로 속에서 미노타우로스를 향해 가는 사람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br>그렇다면 바벨탑이 아니라 다양성을 지닌 삶을, 미로 속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미로를 빠져나오는 아리아드네의 실을 찾는 것이 바로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가 아닐까 하는데...<br>이런 과제에 대한 해답을 주지는 않는다. [녹색평론]은. 다만 이런 문제가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지금 우리의 삶은 바벨탑을 만드는 인간들과 같은 상태 또는 미노타우로스가 있는 미궁 속에 들어간 사람들과 같은 상태라고.<br>문제를 알려줬다. 해결책은 하나가 아니다. 하나만의 해결책을 제시한다면, 그것이 바벨탑과 무엇이 다르겠는가.<br>해결책은 상황에 따라, 지역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다 다를 수 있다. 다를 수 있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공유하며 함께할 때 아리아드네의 실이 작동할 수 있다.<br>아리아드네의 실은 밖에서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 우리의 문제를 인공지능에 맡기는 것도, 지구 생태의 파괴를 해결할 방법을 우주에서 찾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들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br>바로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일,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를 고민해야 하는 때.&nbsp;<br>하여 성장지상주의라는 미노타우로스에게서 벗어나야 할 때, 바로 아리아드네의 실은 성장만이 살 길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날 때 보이기 시작할지도 모른다.<br>그런 관점의 전환을 촉구하는 것이 바로 [녹색평론]이기도 하고.<br>하여 지금 우리 사회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3대 매가프로젝트'나 '증권시장', 그리고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통한 교육 개혁' 등등에 대해서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nbsp;<br>이러한 비판적 관점을 살필 때,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공개적으로 토론이 될 때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한 단계 올라섰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br>바벨탑의 교훈을 생각하자. 신의 분노가 아니더라도 오직 하나로만 된 사회는 존속할 수가 없음을... 다양함이, 그러한 다양함 속에서 자신과 다른 존재들이 관계 맺으며 지내는 사회만이 오래오래 지속할 수 있음을, 해답이라 할 수 있는 아리아드네의 실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부에서 찾아야 함을 생각하게 한 이번 호였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183/79/cover150/k59213197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1837925</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이야기</category><title>다섯 번의 대멸종, 인류는 여섯 번째 대멸종으로 가는가? - [대멸종 연대기 - 멸종의 비밀을 파헤친 지구 부검 프로젝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71068</link><pubDate>Wed, 14 Oct 2026 08: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7106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5963249&TPaperId=1757106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9619/97/coveroff/896596324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5963249&TPaperId=1757106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대멸종 연대기 - 멸종의 비밀을 파헤친 지구 부검 프로젝트</a><br/>피터 브래넌 지음, 김미선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06월<br/></td></tr></table><br/>대멸종 연대기. 그간 지구 역사에서 다섯 번의 대멸종이 있었다고 한다. 책 표지를 넘기면 이러한 대멸종의 타임라인이 표로 정리되어 있다.<br><br>이 표 하나면 그 동안 일어났던 다섯 번의 대멸종 시기와 얼마나 많은 생물종들이 사라졌는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원인도 정리해 놓았으니... 간단한 이 표를 머리 속에 담아두면 좋겠다.<br>다만 마지막에 '인류세'라는 용어가 있는데, 이 인류세라는 용어에 대해서는 학자들끼리 논란이 되고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지금 시대를 인류세로 이름 짓는 것에 찬성하는 지질학자들과 아직은 아니라고 하는 지질학자들이 있으니...<br>그런데 이것이 '인류세'라는 용어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대멸종의 원인에 대해서 학자들마다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nbsp;<br>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남아 있는 화석을 통해서 분석을 하고, 원인 규명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료가 남아 있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을 테니, 그것도 몇 만 년 전의 일이 아니고, 몇 억 년 전의 일이기에 더욱 더 알기 힘들다.<br>다윈이 [종의 기원]을 쓰면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들을 찾지 못한 경우가 많았는데, 이때 다윈은 합리적인 추론을 통해 자기 주장을 하면서 아직은 그러한 근거들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후대에는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nbsp;<br>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더욱 많은 증거물들이 발견되기는 해도 아직도 발견되지 못한 것들이 많으니... 학자들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다.<br>그럼에도 대략 화석이나 다른 자료들을 통해서 합의점에 이른 경우가 많고, 이 책에서 저자는 그러한 주장들을 소개하고 있다. 하나의 이론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이론을 소개하면서도 어느 정도는 합의된 대멸종의 원인을 제시하고 있으니...<br>여기다 과거의 일로 그치지 않고 우리의 미래를 생각한다. 그래서 마지막에 '인류세'를 들고 이대로 나가다간 인류에 의해서 대멸종이 일어날 수도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br>물론 이 책을 통해 본 지구의 역사를 보면 인류가 대멸종에 원인을 제공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니고, 우연에 의해서 일어난 일도 아니기에 여기에 대한 대책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br>다섯 번의 대멸종은 대비할 틈도 없었다. 아니, 대비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급격하게 지구에서 일어난 재난, 변동이었으니... 세상을 뒤덮을 화산 용암들, 엄청난 열기와 냉기, 그리고 소행성의 충돌 등등.<br>대멸종하면 소행성 충돌을 우선 생각했었는데, 운석 충돌이라는 하나의 원인만으로는 대멸종이 일어나기 힘들다고 한다. 가령 백악기 말에 일어난 운석 충돌로 인한 공룡의 멸종을 보면, 이 운석 충돌이 엄청난 열기를 동반해 많은 생물들을 멸종시켰지만, 충돌로 인한 충격으로 지구의 화산들을 거의 다 폭발시켰을 것이라는 예측을 한다.<br>즉, 대멸종은 하나의 원인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원인이 한꺼번에 닥칠 때 벌어지는데, 지금 우리 인간이 벌이고 있는 기후 재앙으로 많은 동식물이 위험에 처해 있지만 대멸종까지는 아니라고 한다.&nbsp;<br>하지만 여기에 우리가 예측하지 못했던 다른 일들이 겹쳐진다면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대멸종이 벌어질 수 있다고... 대멸종까지는 아니어도 소멸종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니, 그러한 멸종을 막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한다.<br>하긴, 인간이 가만 있어도, 지금의 기후 위기를 해결한다고 해도, 우주의 역사를 보면 대멸종은 올 수밖에 없다고... 뭐, 대멸종이라고 하기보다는 어차피 태양이 폭발하면 지구가 살아남을 수 없을 테니... 그것이 별의 역사이고 운명이라고 한다면...&nbsp;<br>그렇지만 인간의 시간 개념 속에서 몇 십 억 년 뒤의 일은 우리에게 현실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러니 그 먼 미래,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일로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인류가 지금의 생활방식을 고수한다면 기후 재앙을 초래하고, 몇 십 억 년 뒤의 일이 아니라 몇 백 년 뒤 지구를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 수도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br>이렇게 저자는 지구에서 일어났던 다섯 번의 대멸종을 살피면서 우리의 미래를 생각하도록 한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9619/97/cover150/896596324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6199757</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과 나 그리고 책</category><title>‘나‘를 닦을 수 있어야 -[시와 반시]에 실린 시들을 엮은 시집을 읽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67621</link><pubDate>Mon, 12 Oct 2026 13: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67621</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5000026381&TPaperId=1756762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63/coveroff/2003959000082.gif" width="75" border="0"></a>&nbsp;<br/><br/> &nbsp; &nbsp;[시와 반시]에 수록되었던 시들을 골라 엮은 시집이다.<br>&nbsp; 1994년 봄호부터 1997년 여름호까지 [시와 반시]의 &lt;지난 계절의 좋은 시&gt;에서 가려 봅은 것(5쪽)이라고 한다.<br>&nbsp; 지금 보면 오래 된 시집이다. 무려 30년 전 시들이니...<br>&nbsp; 시에 유통기한이 없다고 하지만, 어떤 시들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잊혀지기도 한다.<br>&nbsp; 세월을 이겨내는 시, 그것이 좋은 시라고 할 수 있겠다.<br>&nbsp; 하지만 그러한 시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요즘처럼 급변하는 세상에.<br>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세상. 까딱할 동안 너무도 변해, 그러한 변화를 따라가기 힘든 세상.<br>빠름, 그냥 빠름이 아니라 거의 빛의 속도와 맞먹을 정도의 빠름이다. 너무도 빠른 변화다.<br>그러니 과거의 시가 과연 지금도 통할지...<br>통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시들은 시대와 맞물려 있어 이해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 30년, 강산이 세 번 변한다는, 예전 시간 개념으로도 그랬는데, 지금 시간 개념으로 하면 천지개벽이 일어난 정도의 변화 아니겠는가.<br>그럼에도, 시는 계속 창작되고, 또 예전 시를 읽어도 요즘에도 그렇지 할 수 있는 시들이 있다.<br>어쩌면 시이기 때문에 꼭 그 시대에 붙어 있을 필요가 없는지도 모른다. 시는 시대를 넘어서 우리들 마음을 울릴 수 있으니까.<br>시들을 뽑아 한 권의 시집으로 만들어 놓은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br>이 시집에서 단순 명쾌한 시 하나. 90년대 들어 시들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는데... 그런 흐름과 다르게 쉽게 다가오는 시.&nbsp;<br>그러면서 요즘 세태를 돌아보게 하는 시.<br>송유미의 '냄비의 얼굴은 반짝인다 - 설거지'라는 시다.<br>&nbsp; &nbsp;냄비의 얼굴은 반짝인다&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설거지&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송유미<br>산더미 같이 쌓여진 그릇을 씻기 위해 개수대 앞에 선다밥공기들을 하나 하나 &lt;퐁퐁&gt;을 묻혀 닦아내다가문득 씻지도 않고 쓰는 마음이 손바닥에 만져졌다먹기 위해 쓰이는 그릇이나 살기 위해 먹는 마음이나한번 쓰고 나면 씻어두어야다음을 위해 쓸 수 있는 것이라 싶었다그러나 물만 마시고도 씻어두는 유리컵만도 못한 내 마음은더럽혀지고 때묻어 무엇 하나 담을 수가 없다금이 가고 얼룩진 영혼의 슬픈 그릇이여,깨어지고 이가 빠져 쓸 데가 없는 듯한 그릇을 골라내면서마음도 이와 같이 가려낼 것은 가려내서담아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br>누룽지가 붙어서 씻어지지 않는 솥을 씻는다미움이 마음에 눌어 붙으면이처럼 닦아내기 어려울까닦으면 닦을수록 윤이 나는 주전자를 보면서씻으면 씻을수록 반짝이는 찻잔을 보면서영혼도 이와 같이 닦으면 닦을수록윤이 나게 할 수는 없는 일일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br>그릇은 한번만 써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뼈 속까지 씻으려 들면서&nbsp;세상을 수십 년을 살면서도&nbsp;마음 한번 비우지 못해청청히 흐르는 물을 보아도때묻은 정(情)을 씻을 수가 없구나남의 티는 그리도 잘 보면서도게 가슴 하나 헹구지 못하면서오늘도 아침 저녁을 종종걸음치며죄 없는 냄비의 얼굴만&nbsp;닦고 닦는 것이다.<br>강경주 외, 꽃이 열매의 상부에 피었을 때. 시와반시. 1997년. 99-100쪽.<br>이 시를 읽으면서 최근에 읽은 [사고외주]라는 책이 생각났다. 자신의 생각조차도 이제는 인공지능에 맡기는 세상.<br>설거지, 손으로 하기보다는 식기세척기에 맡겨버리는 세상. 그렇게 자신이 하지 않고 맡겨버림으로써 생각하는 일, 닦는 일을 하지 않게 된 세상.<br>편리함에 몸을 맡기고 조금 불편한 것도 참지 못하게 된 세상이 아닌가 싶은데... 이런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이 바로 자신의 마음을 닦는 일.<br>마음 닦는 일은 쉽게 되지도 않는다. 참 어려운 일이다. 힘들다. 불편하다. 그리고 마음을 닦는다고 해서 무언가가 자신에게 돌아오지도 않는다.<br>어쩌면 마음을 닦는 일은 현재의 이익을 포기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세상에,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고 현재를 즐기라는 현대인의 삶에서, 현재의 삶이 아니라 미래의 삶을 위해 불편을 감수하라고 하면... 누가?<br>마음 닦기도 인공지능이나 식기세척기 또는 로봇청소기처럼 다른 존재가 해주면 좋겠지만, 누가 뭐래도 마음 닦기는 자신이 할 수밖에 없다.<br>마음 닦아야 한다는 동기는 외부에서 올 수도 있다. 하지만 마음 닦기는 스스로, 자신이 직접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피곤하다. 힘들다. 힘드니 포기한다.<br>마음 닦기보다 원인을 외부에 돌리는 것이 얼마나 편한가. 나는 잘하고 있는데, 남들이 못해서 이런 지경에 이른 것이라고...<br>내 눈의 들보는 보이지 않고 남 눈에 있는 티끌만 보이는 상태. 한자성어로 '수기치인(修己治人)'이라는 말이 있다.<br>나를 닦고 남을 다스린다. 이 말 붙어 있지만 순서가 있단 생각이 든다. 나를 닦는 것이 먼저여야 한다. 그 다음에 남을 다스릴 수 있다고.<br>즉 내 마음 닦기가 된 이후에야 남에게 무어라 할 수 있다는 것인데... 현재,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과연 그런가?<br>내 마음 닦기는 하지 않고, 내 마음에 때가 묻은 것은 내 탓이 아니고 남 탓이니, 그런 남을 다스리기만 하면 내 마음도 닦아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그렇게 느껴지는 행태들이 너무도 많은 요즘인데...<br>남을 다스린다는 말에는 자기 마음을 닦았다는 행위가 포함되어 있다. 그것을 명심해야 한다. 남탓을 하기 전에, 남을 비난하기 전에 자신부터 돌아보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br>모든 것을 외부에 돌리고 맡기는 세상에서도 맡겨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을 돌아보는 일. 마음을 닦는 일이다.&nbsp;<br>그렇게 마음을 닦는 일이 무척 힘들어진 것이 요즘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 시인데... 90년대에도 이런 경향이 있었다면 지금은 더더 심해지지 않았나 싶으니...<br>이 시, 자신의 마음 닦기에는 소홀하면서 남에게 때를 씻으라고 큰소리치는 사람, 그런 사람들, 읽었으면 좋겠다. 나 역시 이 시를 읽으면서 과연 나는 마음 닦기를 하고 있었나 반성을 하게 됐으니...]]></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63/cover150/2003959000082.gif</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6381</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이야기</category><title>이것은 집단학살을 알리는 목소리다 - [가자의 목소리 -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꺾이지 않는 마음, 현장의 이야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65438</link><pubDate>Sun, 11 Oct 2026 09: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6543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92131467&TPaperId=1756543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145/89/coveroff/k192131467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92131467&TPaperId=1756543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가자의 목소리 -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꺾이지 않는 마음, 현장의 이야기</a><br/>모사브 아부 토하 외 지음, 파티마 부토 외 엮음, 이나현 옮김 / 돌베개 / 2026년 09월<br/></td></tr></table><br/>올해 노벨 평화상은 '나바네템 나비 필라이'가 수상했다. 공교롭게도 [가자의 목소리]를 읽고 있는 중에 들은 소식. 필라이가 누구인가? 누구보다 국제법을 중시한 사람이라고 한다. 일부 힘 있는 국가에 세계가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국제법을 준수하는 세계가 되기를 바란 사람이라고.<br>하여&nbsp;필라이는 유엔 팔레스타인 점령지 독립 국제 조사위원회의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가자지구와 관련한 인권 침해 및 국제법 위반 의혹을 조사했고, 이 조사위원회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군사작전과 관련해 집단학살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발표했다고 한다.<br>그럼에도 이스라엘은 끄덕도 하지 않고 있고, 가자에서는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특히 어린아이들이 많은 피해를 받고 있는데, 학교는 물론이고 병원 또 가정집까지 폭격을 당하고 있는 현실이라고 한다. 여기에 음식물이나 물에 대한 통제가 심해서 가자지구 사람들이 지속적인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br>그러한 고통 속에서도 희망과 사랑을 잃지 않는 사람들. 진실을 알리려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소리가 이 책에 담겨 있다.<br>한 사람 한 사람의 글이 가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알리려 하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을 비롯한 힘 있는 나라들은 가자지구 사람들의 고통을 모르쇠하고 있다. 아니, 그들은 알고 있지만 무시하고 있다.<br>이들이 이렇게 무시할 때 가자지구의 비극에 눈 감지 않고 국제법에 의해 해결하려고 했던 사람, 바로 그가 필라이라고 할 수 있다.<br>필라이에게 노벨 평화상을 준 것은 세계가 몇몇 강대국에게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세계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제법을 더욱 강화하고, 준수하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특히 가자지구에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세계가 당신들을 잊지 않았다는 신호라고 할 수도 있고.<br>이 책에서 들려주고 있는, 외치고 있는 가자의 목소리가 적어도 세계의 지각 있는 사람들에게 가 닿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겠고.<br>[가자의 목소리]에서 오마르 바르구티의 말인 '왜 BDS가 중요한가'라는 글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팔레스타인 하면 하마스를 떠올리고, 무장투쟁, 테러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오히려 전세계인을 대상으로 비폭력 투쟁인 'BDS'를 벌이고 있다는 사실.<br>잘 모르고 있었는데,&nbsp;BDS는 보이콧, 투자철회 및 경제제재(Boycott,Devestment and Sactions) 운동의 약자라고 한다. 이스라엘을 돕는 기업, 단체들에 대해서 이러한 활동을 한다고 하는데, 이것을 미국에 적용하면, 반인권적인 또는 폭력적인 국가를 미국이 제재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br>이렇게 다른 나라, 기업들을 경제, 정치적으로 제재하는 미국이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눈감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nbsp;BDS운동은 팔레스타인을 중심으로 세계 사람들에게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을 알리고, 그것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 이러한 제재를 함께 하자는 운동이다.<br>이런 운동도 테러라고 하는 억압을 하는 나라가 있다고 하니, 참... 그런데 이스라엘과 무기 거래를 하는 나라, 대표적인 나라가 미국이니, 그렇다면 미국부터 제재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 부끄럽게도 우리나라도 이스라엘과 무기 거래는 하고 있다는데...<br>무기 거래량이 얼마나 되는지는 국방 기밀이라고 공개가 안 되고 있다 하는데, 분명한 것은 이스라엘과 무기 거래를 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우리나라 시민단체들이 이스라엘과 무기 거래를 하지 말라고 시위를 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이 글을 읽으면서 떠올랐다. 부끄러운 일. 지금도 무기 거래를 계속 하고 있는지...<br>이런 식으로 묻혀 있던 가자의 진실을 알리려는 글들이 이 책에 실려 있다. 이러한 집단학살을 국제사회가 막지 못하고 있다니, 아니 막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눈 감고 있는지도 모른다.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br>그러면 안 된다. 국제법이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강대국이 세계를 좌지우지 못하게 하기 위한, 세계 평화를 각 나라들의 협력으로 이루기 위해서가 아닌가. 그런데 이러한 국제법을 무시하는 강대국을 어찌할 수 없는 현 상황을 생각하면, 그동안 많은 전쟁과 학살을 거쳐오면서 인류가 다시는 그러한 일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목적으로 만든 국제법이 무용지물이 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br>올해 필라이에게 노벨 평화상을 수여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국제법의 중요성을 부각하고, 세계가 국제법을 준수하도록, 특히 몇몇 강대국의 힘의 논리에 세계가 끌려다니지 않아야 한다는 것 아니었을까.<br>이 책을 읽으면서 용어를 명확히 해야 현실을 바로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가자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테러 진압이 아니다. 집단 학살이다. 그리고 집단학살을 자행한 인물들은 범죄자이다. 그들을 세계 법정에 세워야 한다.&nbsp;<br>가자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집단학살임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는 이 책. 이러한 가자의 목소리, 들어야 한다. 우선은 들어야 그 다음을 할 수 있다.<br>그 다음... 다음... '가자의 목소리'를 들은 다음... 바로 그 다음이 중요하다. 지금 세계는 가자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더 큰 재앙 속으로 들어갈 수가 있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을 보라... 이것은 국제법을 준수하지 않고 힘의 논리가 통하는 세계의 모습이다.<br>우리는 그런 세계를 바꿔야 한다. 그 출발점에 [가자의 목소리]가 있다.<br>이 목소리들 중 슬픈, 너무도 슬픈 이 말들과 표... 무슨 말이 필요하랴.<br>그들은(이스라엘 사람들) 총구를 통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보는 법을 배운다.(96쪽)가자에서 아이들은 그 나이의 아이답게 살 수 없다. (142쪽)가자에서 사상자들의 나이와 성별은 말 그대로 "요람에서 무덤까지"였다. (240-241쪽)<br>&lt;모나 찰라비, '집단학살을 판단하는 방법', 137쪽&gt;.&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145/89/cover150/k192131467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1458968</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이야기</category><title>분리-배제가 아닌 통합과 공존의 역사를... - [한국 장애사 -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장애와 그 공존의 역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56884</link><pubDate>Tue, 06 Oct 2026 10: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5688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02130033&TPaperId=1755688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99/89/coveroff/k60213003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02130033&TPaperId=1755688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한국 장애사 -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장애와 그 공존의 역사</a><br/>정창권 지음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2026년 08월<br/></td></tr></table><br/>우리 역사는 분리, 배제가 아닌 통합과 공존을 이루는 사회의 역사다<br>우리나라가 장애/비장애로 나누고 차별하는 사회였던가? 서양의 관점에서 우리나라는 과거에 장애인을 위한 교육을 하지 못했다 하고, 근대화가 된 이후에야 비로소 장애/비장애 통합교육이 실시되었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br>인권 개념이 근대에 들어 확립되었고, 근대화란 곧 서양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으니, 이 틀에 의하면 장애/비장애 통합교육 역시 우리 과거 역사에서 찾기보다는 근대 교육에서 찾으려 했다고 할 수 있다.<br>그런데, 과연 그럴까? 장애인을 차별하는 문화가 역사적으로 지속되어 왔을까? 저자는 아니라고 한다.<br>역사 속 인물들과 자료들을 토대로 우리나라 역사는 장애/비장애의 통합교육, 통합 사회였지, 장애/비장애를 구분하고 분리, 배제하는 사회가 아니었다는 것이다.<br>'본래 역사적으로 한반도에는 몸의 다름을 결함으로 여기면서 사회적으로 배척하려는 의식이 별로 없었을 뿐더러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한데 어울려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통합 사회를 이루고 있었다.'(5-6쪽)<br>어라, 우리나라가? 정말? 그렇다면 장애/비장애의 통합교육, 통합 사회가 서양의 문화로 우리가 뒤늦게 받아들인 것이 아니었어? 이런 주장을 하는 근거가 무엇이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br>그동안 인권이라는 개념은 우리나라 전통에서 찾기보다는 서양에서 도입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왜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 저자는 '장애를 전생이나 조상, 하늘의 죄와 연결시켜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담론은 개화기에 본격적으로 유행한 것이며, 그것은 기독교의 장애관이 불교적 인과응보설의 외피를 입거나 서로 결합되어 출현했던 것으로 보인다'(39쪽)고 하고 있다.<br>그러면서 책의 뒷부분에 가면 이러한 장애/비장애의 구분과 부정적 장애관을 확산시킨 신문이&nbsp; [독립신문]이라고(288쪽) 하고 있는데...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운영한 사람들이 미국식 사고를 받아들였고, 조선의 것은 미개한 것이라는 인식을, 그래서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을 신문을 통해서 했다고.<br>그렇게 하지 않으면~ 000과 다름 없다는 식의 비유로 장애를 언급했으니, 이런 비유를 통해서도 장애는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고 할 수 있다.<br>결국 장애/비장애를 구분하고 분리, 배제하는 의식은 개화기를 거쳐 일제시대에 강하게 나타났다고 할 수 있으니, 장애/비장애를 구분하고 분리하는 것이 우리의 전통은 아니었다는 저자의 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br>전통적으로 우리나라는 통합교육을 했음을, 장애인이라고 해서 다른 면에서 차별을 하지 않으려 했다는 것, 그것을 정승 자리에 오른 사람 중에 장애인을 예로 들어 보여주고 있다.<br>특히 지체가 부자유한 사람에게는 왕도 그가 벼슬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도움을 주어서라도(내관을 통해서 부축하게 한다든지, 가마를 타고 오게 한다든지 등등) 계속 벼슬을 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br>장애/비장애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인품과 능력으로 사람을 판단했음을, 그래서 사람의 판단 기준에 장애/비장애가 기준이 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br>여기에 서당이나 서원, 성균관에서도 장애/비장애의 구분 없이 통합교육을 했다고 한다. 이러한 통합교육과 더불어 장애인이 곤궁한 생활을 하지 않도록 제도로 뒷받침하려고 했다고도 하니...<br>이러한 역사를 안다면, 장애/비장애를 구분하고, 분리-배제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현대 사회가 오히려 과거의 우리나라보다 더 퇴보한 것이 아닌가 한다.<br>장애인을 위한 정책이 역차별이라고? 아니다. 가장 어려운 사람이 편하게 지낼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면 그 사회는 누구나 편안한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그것이 어찌 역차별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당연한 일 아닌가. 신체의 차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게 하는 사회, 그런 사회를 지향한 것이 바로 조선을 비롯한 과거 우리나라였음을 저자는 여러 자료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br>이렇게 저자는 인권이나 장애/비장애 통합교육은 동양엔 없었는데 근대화된 서양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인식이 잘못되었음을, 오히려 반대로 우리는 장애/비장애 통합교육을 하고 함께 살아가는 통합 사회였음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br>그 점을 일깨워주는 것이 바로 이 책이고, 저자는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 장애사는 분리-배제가 아니라 통합과 공존의 역사임을 보여주고 있다.<br>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퇴계 이황 이야기가 이 책에도 나오는데, 그래, 조선 최고의 유학자 중 한 명인 퇴계의 부인이 장애인이었다는 사실. 그런 부인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배척하지 않고 함께한 사람이 퇴계임을...&nbsp;<br>그것이 훌륭한 인품을 지닌 퇴계라는 예외적인 인물의 일만이 아님을, 다른 여러 사람들을 통해서 알려주고 있으니, 우리 역사를 통해서 장애/비장애가 분리-배제의 요인이 아니라, 그냥 다름으로, 그 다름을 안고 함께 살아가야 하는 통합-공존의 사회가 되어야 함을 생각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99/89/cover150/k60213003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9998903</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이야기</category><title>다름을 괴물로 만든 역사 - [괴물의 탄생 - 우리가 찍은 낙인의 역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54990</link><pubDate>Mon, 05 Oct 2026 07: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5499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325073&TPaperId=1755499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24/68/coveroff/893232507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325073&TPaperId=1755499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괴물의 탄생 - 우리가 찍은 낙인의 역사</a><br/>수레카 데이비스 지음, 이영아 옮김 / 현암사 / 2026년 08월<br/></td></tr></table><br/>'괴물'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살피는 책이다. 즉, 괴물이라는 존재는 처음부터 괴물로 존재한 것이 아니다. 인간들이 어떻게 규정하고 분류했는지에 따라 괴물이 된 것이다.<br>그러니 이 책은 괴물의 탄생이라는 제목이 있지만, 작은 한글 제목으로 붙인 '우리가 찍은 낙인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내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br>낙인. 그것은 다른 존재에게 붙이는 이름이지만, 이 이름은 분류를 통해 다른 존재를 가두는 역할을 한다. 즉 우리와 다른 존재, 그래서 우리와 어울릴 수 없는 존재. 그냥 어울릴 수 없는 존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안녕을 위협하는 존재, 그래서 괴물.<br>이런 괴물은 함께할 수 없다. 퇴치해야 한다. 즉 괴물이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그 존재는 인류와 함께할 수 없고, 인류에게서 추방당해야 할 존재가 된다. 인류와 다른 존재를 괴물이라고 하는 것은 미지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br>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그 존재를 피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연결이 되고, 피하고자 하는 마음이 그 존재를 배척해야만 한다는 의식으로 굳어지게 되는 것. 즉 모르는 존재는 모르기 때문에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는데, 그 두려움을 안고 그 존재와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 그 존재를 배척하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괴물의 역사일 것이다.<br>이러한 괴물에는 비인간 존재들이 있다. 인간이 아닌 존재들을 인간이 잘 모르기 때문에 두려움이 있고, 그래서 우리는 인간이라는 벽을 쌓고 다른 존재들을 그 벽 너머로 보내고 가두는 역할을 한 것이 괴물이라고...<br>비인간 존재들을 괴물로 만든 역사를 추적하는 책이라고 제목을 보고는 생각했는데, 책장을 넘기면 곧 비인간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같은 인간을 비인간으로 취급하고, 그 결과 그러한 비인간 취급을 받는 인간들을 괴물로 이름짓고 배척하는 인간의 역사를 살피고 있는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br>따라서 저자는 괴물을 '괴물은 상상의 산물이다. 이 책에서 내가 사용하는 '괴물'이라는 단어는, 사람들이 '정상' 범주의 건너편이나 바깥에 있다고 여기는 인간을 정의할 대 사용하는 모든 용어 -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중립적이든 -를 포함한다.'(9쪽)고 정의하고 있다.<br>즉 이 책은 권력을 쥔 집단들이 다른 집단들을 판단할 때 사용하는 기준을 '정상'이라고 보고, 자신들의 '정상' 범주에서 벗어났다고 보이는 다른 인간 집단들에게 '괴물'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배척한 역사를 살피고 있다.<br>그렇다면 권력을 쥔 집단은 어떤 집단인가? 바로 지역으로는 유럽, 종교로는 가톨릭(기독교), 인종(인종은 없다는 말이 있지만 통상 쓰고 있으니)으로는 백인이다. 이들을 '정상'에 놓고 다른 인간들을 '비정상'으로 보는데, 이런 '비정상' 인간들 중에서도 더 멀리 간 집단을 '괴물'로 이름 붙였다는 것.<br>자신들이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인간들, 또 자신들과는 다른 신체적 조건을 가진 인간들, 여기에 능력 면에서도 자신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인간들도 '비정상'의 범주에 들어가고, '괴물'로 여겼다는 것.<br>그러니 괴물이라는 말에는 권력을 쥔 집단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서 다른 존재들을 규정짓고 배제했는지, 단순히 배제가 아니라 구경거리로 삼거나 또는 멸절시키기 위한 방법들을 사용했는지 등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br>같은 지구에 살면서 자신들이 정한 '정상'의 범주 바깥에 있는 존재들을 '괴물'로 규정짓는 이유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다. 그들을 이해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다른 존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먼저 생각했기 때문이다.<br>자신들만이 정상이고, 자신들과 다른 존재들은 비정상이라고 하는 집단에게, 지구 밖의 존재들은 말할 것도 없다. 한때 외계 존재가 등장하는 영화들을 보면 외계 존재를 상당히 위협적인 인간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로 표현하지 않았던가. 물론 인간과 교류하고 소통하는 외계 존재를 그린 영화도 있지만...<br>대체로 외계 존재는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그것이 문제라는 인식을 지닌 것은 지구에서 다양한 인간들을 규정짓고 범주화해서 벽 밖으로 밀어내는 것이 잘못이라는 인식이 자리잡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데...<br>인권이 모든 인간에게 적용이 된다면, 과연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으로까지 나아가야 하는데, 현재는 인류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집단들은 모두 인간, 즉 인권을 지닌 존재로 인정하고 있으니... 여기에서 더 나아가야 한다고...<br>이렇게 차별의 역사를 살피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괴물이라는 이름을 지닌 존재를 흥미 위주로 찾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괴물로 만들고 억압하고 배척했던 역사를 살핌으로써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게 될 존재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br>우리의 기준을 벗어난 존재, 또는 우리의 기존 관점으로는 판단하기 힘든 존재들, 경계에 속한 존재, 경계 밖의 존재들과 함께해야 하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24/68/cover150/893232507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0246807</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과 나 그리고 책</category><title>서효인 시집-내가 ‘나‘를 좋아해서 생기는 감정, 질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50504</link><pubDate>Fri, 02 Oct 2026 12: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50504</guid><description><![CDATA[&nbsp; '나'를 사랑하는 '나'<br>&nbsp; 당연하지 않은가. 자신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도대체 무엇을, 누구를 사랑한다는 말인가.<br>&nbsp;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다른 존재도 사랑하지 못하는 것 아닐까.&nbsp;<br>&nbsp; 그러나 나를 지나치게 사랑하면 다른 존재들은 나로 인해 가려진다.&nbsp;&nbsp;&nbsp; 아니, 다른 존재들은 나에게 들러붙는 방해물이 된다. 거추장스럽다고 여긴다.&nbsp;<br>&nbsp; 그런 상태. 그러니 나를 사랑하는 나는, 적당히 나를 사랑해야 한다.<br>'나'에 집착하면 안 된다. '나'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은 '나'에게 집착하지 않는다. 그래야 '나'를 사랑할 수 있다. 아니 다른 존재를 사랑할 수 있다.&nbsp;<br>그런데 이것이 지나치면 어떻게 될까? 서효인 시를 읽으면서 나를 지나치게 사랑하는 일이 '질투'일 수도 있음을 생각한다.<br>누군가를 좋아해서 질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좋아해서 생기는 감정, 즉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 되어야 한다는 마음, 그러한 욕망이 질투로 나타나는 것.<br>다른 존재가 지니고 있는 것을 인정하는 마음에 앞서, 그것을 자신이 지니지 못했다는 결핍으로 느끼는 것. 그것이 질투 아닐까.<br>그런 자신을 보면서, 결국 질투는 자신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싸움일 수밖에 없음을... 하여 나를 사랑하는 만큼 남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 그렇게 남을 사랑한다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는 것.&nbsp;<br>그 보이는 것들을 다른 사람의 눈에도 보이게 하는 것. 시인... 시... 그것이 바로 시 아닐까 하는 생각.&nbsp;&nbsp;<br><br>&nbsp; &nbsp; &nbsp; 로맨스<br>&nbsp; 질투는 드라마에서처럼&nbsp; 누군가를 좋아해서 생기는 감정은 아니다 그것은&nbsp; 제가 저를 너무나 좋아해서 생기는 습기 같은 것이라&nbsp; 해수욕장의 발바닥이다 털어도 털어도 모래가 붙는다&nbsp; 도넛 방석 위에 앉아 불 꺼진 모니터를 바라보면&nbsp; 거기에 진짜 내가 있다 늠름한 표정으로 나는&nbsp; 내가 좋아서 미치겠는 날도 많은데 남은&nbsp; 나를 좋아해 미칠 수는 없겠지 오늘은&nbsp; 동료가 어디 심사를 맡게 되었다고 하고 오늘은&nbsp; 후배가 어디 상을 받게 되었다고 하고 오늘은&nbsp;&nbsp; 친구가 어디 해외에 초청되었다고 하고 오늘은&nbsp; 그 녀석이 저놈이 그딴 새끼가 오늘은&nbsp; 습도가 높구나 불쾌지수가 깊고 푸르고 오늘도&nbsp; 멍청한 바다처럼 출렁이는 뱃살 위의 욕심에&nbsp; 멀미한다 나는&nbsp; 나를 사랑해서 나를 혐오하고 나는&nbsp; 안 그런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변명하고 토하고&nbsp; 책상 위에 앉아 내 이름을 검색하고&nbsp; 빌어먹을 동명이인들 같은 직군들 또래들 심사위원들 수상자들 주인공들 나는 내가 좋아서 미치겠는데 남들은 괴이쩍게 평온하고&nbsp; 바다처럼 넓은 마음으로 안 그런 척하는데 나는&nbsp; 나 때문에 괴롭고 나는&nbsp; 나를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고&nbsp; 늠름한 표정으로 슬리퍼를 털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nbsp; 화장실 간다&nbsp; 오줌을 누는데 보이는 건 불룩한 아랫배가 전부&nbsp; 이런 나라도 사랑할 수 있겠니,&nbsp; 대답 대신 쪼르륵&nbsp; 내려가는 소리 들린다&nbsp; 푸르고 깊은 몸 곳곳에 해변의 모래가 들러붙어서&nbsp; 사무실에까지 왔다 질투는&nbsp; 로맨스 같은 구석이 있다 오늘은&nbsp; 예고편에 불과하고 내일은 동료와 친구와 선후배와 옆자리와 뒷자리와 동명이인과 같은 직군과 비슷한 또래와 노인과 젊은이와 이토록 연안에서 깊이 추잡스럽겠지만 극적이게도&nbsp; 바깥은 평온하다. 그것이 나를 더 미치게 하는 줄도 모르고<br>서효인, 나는 나를 사랑해서 나를 혐오하고, 문학동네. 2022년. 1판 2쇄. 96-97쪽.<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9620/61/cover150/8954686982_1.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50504</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여러이야기</category><title>생각까지 외주 주면 인간은? - [사고외주 - 생각하지 않는 인간의 출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45081</link><pubDate>Wed, 30 Sep 2026 08: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4508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52130873&TPaperId=1754508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08/96/coveroff/k55213087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52130873&TPaperId=1754508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사고외주 - 생각하지 않는 인간의 출현</a><br/>홍진기 지음 / 어크로스 / 2026년 06월<br/></td></tr></table><br/>'외주(外注)란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주로 경제활동에 관련되어 많이 쓰는 용어다. 자신들이 처리하지 않고 다른 곳에 맡겨 일처리는 하는 경우를 외주 준다고 하니...<br>이때 외주는 직접 제품을 생산하는 일을 맡기는 경우도 있지만, 일을 다른 조직의 사람에게 맡기는 것도 포함이 된다.&nbsp;<br>현대에 와서 모든 일을 자신들이 다 처리할 수는 없기에 외주를 주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이런 외주로 인해 많은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br>먼저 제품을 외주로 주는 경우, 자신들이 생산할 능력이 되지 못하거나 또는 외주 주는 것이 더 비용이 싸기에 설비나 노동자들에게 투자를 하지 않는다. 이때 외주 업체가 생산하지 않겠다고 하면 큰 문제가 발생한다.<br>제품이 아니라 행위, 즉 일을 외주 줄 때도 문제가 발생한다. 자신들이 처리하지 않고 외부의 조직에게 일을 맡기기 때문에, 외부 조직이 일을 거부할 때 어려움에 처하기도 한다.&nbsp;<br>이렇게 외주는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비용 면에서나 또는 효율 면에서 외부에 맡기는 것이 더 이익이라고 여길 때 발생한다. 그만큼 위험도 감수해야 하지만, 모든 것을 외주로 해결하려 했을 때 결국에는 자신들에게 손해도 돌아오기도 한다.<br>내부에서 기본적인 것을 처리할 수 있는 상황에서 부차적인 외주로 했을 때는 외주 업체에 문제가 생겼더라도 외주를 준 업체에는 문제가 그리 심각해지지 않지만, 핵심적인 부분까지 외주 주었을 때 외주 업체에 문제가 생기면 외주를 준 업체 역시 심대한 타격을 받는다.<br>이것이 외주가 지닌 문제다. 그런데, 인간이 자신의 삶을 유지하는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사고(思考)-생각하는 분야를 인공지능에게 외주를 준다.<br>당장은 효율적일 수 있다. 그런데 외주에 의존하다 보면 본질을 잃을 수가 있다. 중심을 잃었을 때 생기는 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가 없다. 이러한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는 책. 바로 이 책이다.<br>저자는 어느 날, 학생들의 보고서가 글은 좋아졌는데, 이상하게 사람이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는 많은 학생들이, 아니 대다수의 학생들이 인공지능을 통해서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말이 된다.<br>인공지능에게 맡겨 제출한 보고서. 매끄럽고 내용도 잘 정리가 되었을 테고, 문법에 맞지 않는 문장도 거의 없을 텐데, 그런데... 정작 중요한 그 보고서를 작성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nbsp;<br>보고서가 아무리 형식이 정해져 있다고 해도 사람이 직접 작성했던 예전에는 그 나름대로의 개성이 드러났을 것이다. 자신이 고민하고 정리한 내용들이 보고서에 담겼을 것이고... 하지만 이제는 인공지능에게 질문을 하고, 그 답을 옮겨 적는 것을 넘어, 보고서까지 인공지능이 쓰게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천편일률적인 보고서가 나올 수밖에 없다.<br>그러면서 더 이상의 고민을 하지 않는다. 고민을 하지 않는 인간들, 다른 말로 하면 생각하지 않는 인간의 출현(이 책의 작은 제목이기도 하다)이 대세가 된 것이 바로 현대다.<br>생각하지 않는 인간, 사고(생각)를 인공지능에게 외주를 주는 인간. 편리하고 빠르다고 인공지능에게 의존하는 인간. 처음엔 편리하고 좋을지 모르지만, 이렇게 영원히 지낼 수는 없다. 사고하지 않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계속 존재할 수 있을까?<br>인간을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는데, 인간의 기본 특징이 바로 생각에 있는데, 이러한 생각을 외주 주고 있다면, 결국 자신들의 생각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인간이라면 그 뒤의 삶은 어떨까?<br>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기 이전에 인간 스스로 통제권을 인공지능에게 넘기는 것이 아닐까. 인간을 위해서 인공지능을 이용한다고 했던 것이 인간의 능력을 없애는 결과를 낳는다는 우려. 이것이 바로 '사고외주'라고 제목을 단 이 책의 고민 아닐까.<br>인공지능을 없앨 수는 없는 시대가 되었으니, 그렇다면 인공지능을 더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해야 하는 시대. 인공지능에게 사고를 외주 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고를 보충하는 역할로 인공지능을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br>그러기 위해서는 멈춤이 필요하다고... 빠름 속에서 쉬지 않고 달리는 것이 아니라 멈춰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 그리고 경험을 통해서 실패하고 고민하는 시간들을 지녀야 한다고. 이러한 일들이 불편할 수 있지만 불편함을 감수해야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 수 있는 '판단의 장치'를 마련할 수 있다고 한다.<br>외주로 인해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심심치 않게 언론을 통해서 만나왔다. 그렇다면 이를 우리의 사고로 확장하면, 과연 우리의 사고를 외주 주는 것이 바람직할까? 외주를 주더라도 본질을 유지한 상태에서 부차적인 것으로 한정해야 한다는 것을 그동안 역사를 통해서 보아왔지 않은가.<br>인공지능 시대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지녀야 할 기본적인 가치들, 그것들마저 외주 주고 의존하면 안 된다.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 판단하는 능력. 그리고 관계 맺기를 통한 다양한 경험, 때때로 멈출 줄 아는 태도를 지닌 인간, 그런 인간이 현대 인공지능 시대에 인공지능을 잘 활용하는 사람일 것이다.<br>짧지만 저자의 고민이 잘 드러난 책이다. 그렇다고 이 책에서 모든 해결책을 찾으려고 하면 안 된다. 그런 자세 역시 사고외주일 테니... 이 책에서 제기한 문제를 중심으로, 현대 사회를 살펴보고, 자신이 어떻게 해야할지를 고민해야 한다.<br>저자는 직접 글을 써보라고 하는데... 저자의 권유는 어렵지 않다. 어쩌면 어렵지 않아서 가장 어려울 수도 있는데... 키보드를 치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직접 글을 써보는 것.&nbsp;<br>'마지막으로 한 가지 부탁을 보태고 싶습니다. 이 책의 어느 페이지든, 여백이든, 책의 맨 뒤 빈자리든 좋습니다. 지금 이 순간 떠오르는 것 아무것이나 펜으로 직접 적어보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키보드로 옮기지 마시고, AI에게 다듬어달라 하지 마시고, 그저 펜으로요. 글씨가 삐뚤어져도 좋고, 문장이 미완성이어도 좋고, 단어 한 개여도 좋습니다.' (149-150쪽)<br>손으로 무언가를 쓰는 일,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것이 사고를 외주 주지 않는 첫걸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08/96/cover150/k55213087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089663</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여러이야기</category><title>차별하는 말, 쓰지 말자 - [차별어의 발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42847</link><pubDate>Tue, 29 Sep 2026 09:0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4284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82935095&TPaperId=1754284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428/13/coveroff/k68293509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82935095&TPaperId=1754284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차별어의 발견</a><br/>김미형 지음 / 사람in / 2023년 09월<br/></td></tr></table><br/>너무도 당연한 말. 차별하는 말 쓰지 말자.<br>그런데, 이게 쉽지 않다. 내가 무심코 한 말이 차별하는 말이었음을 알게 될 때가 있으니... 알게 되면 사과하고 고쳐야 하는데, 어떨 때는 시기를 놓치기도 하니.&nbsp;<br>그 말이 차별하는 말이었음을 깨달았다면 그나마 다행인데, 그게 왜 차별하는 말이야 하고 반문하고, 수긍하지 않을 때도 있으니, 너무도 당연한 차별하는 말을 하지 말자고 하는 말이 그리 쉬운 말은 아니다.<br>어쩌면 세상 이치가 그럴지도 모른다. 당연한 일. 그 당연한 일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때 사회가 혼란을 겪게 되지 않을까. 특히 사회에서 나름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차별하는 말을 쓴다면, 그 사회에서 차별이 없어지기는 힘들어질 테다.<br>차별하는 말 중에, 요즘 우리 사회에 만연한 말들이 있는데, 바로 '멸칭'이라고 하는 말들이 아닐까 싶다. 멸칭, 남을 멸시하는 말. 멸칭 자체가 차별하는 말인데... 그런 멸칭을 아무렇지도 않게 언론에 내보내는 일이 잦고 있으니...<br>특히 개인방송이 많아지면서 이러한 멸칭으로 부르면서 자신들의 편을 만들어가는 일이 너무도 많아지고 있음이 문제인데, 멸칭을 쓰지 말자면서 자신들이 다시 멸칭을 쓰는.<br>개인방송뿐이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이러한 멸칭이 공공연하게 쓰이고 있으니, 국민을 대표하고 대변한다는 사람들이 아무 생각없이(아니, 이들은 분명 의도적으로 이러한 멸칭을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멸칭을 함부로 쓰는 모습을 보면, 차별 없는 세상이 쉽게 만들어질 수 없겠단 생각을 한다.<br>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뜨끔하기도 했다. 나 역시 별다른 생각 없이 차별하는 말을 쓰곤 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으니...<br>말을 할 때 한 번 더 생각하는 자세를 지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았구나, 혹 내가 차별하는 말을 쓰면 그 자리에서 누군가가 지적했으면 나는 고쳤을까? 아니면 기분 나빠했을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 읽은 책인데...<br>우리 사회 곳곳에서 쓰이고 있는 차별하는 말에 대해서 살피고, 그러한 말을 쓰지 말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책이다. 내가 쓰고 있는 말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책이기도 하고.<br>저자는 차별하는 말을 '의미성, 의도성, 맥락'이라는 세 영역을 통해서 살피고 있다. 같은 말이라도 어떤 때는 차별하는 말이 되지 않지만, 어떤 경우에는 차별하는 말이 되고, 또 차별의 의미가 담겨 있지 않던 말이 맥락에 따라서 차별하는 말이 될 수도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니 말을 할 때 내 의도는... 하고 자신의 말을 변명하려고만 해서는 안 됨을 명확하게 알려주고 있다.<br>저자의 말처럼 차별하는 말은 배제하는 말이다. 상대를 용인하지 않는 말이다. 나와 같은 대등한 존재로 여기지 않는 태도다. 그러니 이러한 말이 사회에 퍼져 있다는 것은 평등한 사회가 아니라 누군가를 억압하는 사회라는 것이다.<br>그 억압이 말로 나타나고, 말로 나타나는 일이 잦으면 태도에 스며들어 고치기 힘들어진다. 지금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말들의 칼을 보라. 이들의 말은 상대를 대등하게 인정하는 말이 아니라 상대를 밀어내는, 상대를 찍어누르려 하는 말이다.<br>그런 말들이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니, 다른 분야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차별하는 말, 멸시하는 말들이 넘쳐나는 사회는 결코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없다.<br>서로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사회가 될 수 없다. 그런 사회에서는 갈등이 심해질 수밖에 없고, 오로지 나와 우리만이 중요하고, 상대는 없어져야 할 아니면 꾹꾹 눌러서 일어나지 못하게 해야 할 존재가 된다.<br>그것이 차별하는 말이 지닌 위험성이다. 말이 곧 행동을 낳고, 그러한 행동이 그 사회를 만들어가니 말이다.<br>하여 내 말이 남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해 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또한 상대를 나와 같은 존재로 인정하는, 나를 상대의 처지에 놓아보는 상상력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다름을 인정하고, 다름과 함께 살아가는 태도가 필요하다.<br>'차별어의 발견'은 바로 '상대를 발견'하는 일이다. 낯선 존재를 나와 같은 존재로 인식하는 일. 이 처음이 바로 내 말에 담겨 있는 차별의 의미를 발견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발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을 쓰지 않도록 하는 것.<br>말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소통의 역할을 제대로 하게 하는 것, 그것은 바로 차별하는 말을 하지 않는 데서 시작한다.<br>저자가 들고 있는 많은 차별어들, 우리 사회에서 많이 쓰이고 있는 말들이고, 쓰지 않아야 한다고 하는 말들이다. 이 말들을 쓰지 않는 데서부터 소통이 잘되는 사회가 시작될 것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2428/13/cover150/k68293509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4281356</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이야기</category><title>실리콘밸리의 기술주의자들의 본질을 알려주다 - [기술이 인류를 구원한다는 착각 - 실리콘밸리 억만장자들의 위험한 미래 설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40811</link><pubDate>Mon, 28 Sep 2026 09: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4081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2627108&TPaperId=1754081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43/43/coveroff/896262710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2627108&TPaperId=1754081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기술이 인류를 구원한다는 착각 - 실리콘밸리 억만장자들의 위험한 미래 설계</a><br/>애덤 베커 지음, 박주용 옮김 / 동아시아 / 2026년 06월<br/></td></tr></table><br/>새겨들어야 한다. 이 저자의 말을. 이런 주장을 단순히 러다이트 운동과 같다고 하면 안 된다. 과학기술이 발달해서 되돌릴 수 없다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그것을 거부하는 것은 시대를 거스르는 행위라고 할 수만은 없다.<br>영어의 원문은 이런 제목이 아닐텐데, 번역자가 내용을 완전하게 정리할 수 있는 제목을 붙였다. '기술이 인류를 구원한다는 착각'이라고. 정말 잘한 번역이라는 생각이 든다. 원제목은 'MORE EVERYTHING FOREVER'라고 하는데, '기술이 인류를 구원한다는 착각'이라고 하니, 이 책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한 눈에 들어온다.&nbsp;<br>그렇다. 실리콘밸리의 기술주의자들은 기술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그들이 요즘 인공지능의 위험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속도를 늦추자고,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것 역시 저자에 의하면 기술주의에 불과하다.<br>왜냐하면 안전주의자들도 역시 인공지능이 개발되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다만 인간에게 위협이 되지 않도록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인공지능 개발에 속도를 내자는 쪽이나 속도를 늦추고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쪽이나 모두 인공지능 시대를 전제한다는 점에서는 다를 것이 없다고 한다.&nbsp;<br>특히 이들이 이렇게 나아가는 것이 과연 인류를 위해서일까? 저자는 아니라고 한다. 그들은 성장을 위해서, 무한한 성장, 그리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인공지능에 투자를 하고, 또 인공지능의 위험성을 이야기하는 것도 인공지능에 더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한다.<br>이런 기술에 투자하는 것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인류에게 이익이라는, 그러한 이익을 위해서는 현재의 위험은 그다지 크지 않다고 한다. 현재의 위험? 기후위기라든지, 경제불평등, 세계적인 분쟁 등등이 중요하지 않다고?<br>장기론자들의 관점을 이야기하는데, 그 관점이 통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인류의 이익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먼 미래의 인간들까지 계산에 넣는다고 한다. 그래서 먼 미래의 인간까지 몇 조의 인간들에게 이익이 되는 일을 지금 해야 한다고.&nbsp;<br>그 미래의 인간들 이익까지 고려하다 보면 지금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들이는 노력보다는 기술에 투자하는 것이 더 인류를 위하는 일이라고... 나 참. 아직 오지 않은, 실현될지도 모르는 것을 계산에 넣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은 별것이 아니라고 하는 이 논리.<br>여기에 지구에 인간이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우주로 나아가야 한다고. 그러니 에너지 사용에 있어서 인간은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한다고... 이게 뭔가 했더니, 결국 성장주의다. 성장하지 않으면 침체고, 이것은 인류의 퇴보를 의미한다고.<br>과연 그럴까? 이 지구에서 우리가 계속 성장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는 것을 실리콘밸리의 기술주의자들도 알고 있다. 그러니 이들은 지구로 삶터를 한정하지 않고, 태양계 또 태양계 너머의 우주로까지 인간의 삶터를 확장한다.<br>아직 불가능하지만, 이들은 가까운 미래에 실현가능할 거라고 주장하면서, 그것이 인류의 살 길이라고, 지금 인류가 겪고 있는 문제들에 집중하는 것보다,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 더 인류를 위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는 것.<br>화성에 인간을 보내겠다는 주장. 저자는 하나하나 근거를 들어 그것이 불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무한한 성장이 가능하지 않음도. 그러니 실리콘밸리 기술주의자들의 주장이 실현될 수 없음에도 그들이 그런 주장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를 탐구한다.<br>저자는 그것은 바로 '기술을 통한 구원이 제시하는 초월의 약속'(346쪽)이라고, '현실 세계의 어떠한 위기도 그들 머릿속 상상의 임무보다 중요할 순 없다'(347쪽)고 하면서 '식민지주의의 약탈적 논리는 우주에서의 기술을 통한 구원의 꿈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349쪽)고 비판하고 있다.<br>'기술을 통한 구원에는 만물에 대한 영원한 지배의 꿈과 함께 그 지배 권력을 이용한 '모든 한계 초월하기'도 포함되어 있다'(353쪽)고 하면서 '실리콘밸리의 기술 엘리트들이 지구를 버리는 상상에 빠져드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우주 식민지화는 불로장생을 위한 섭생, 10대들로부터의 수혈, 클라우드에 두뇌 올리기, 영생 비타민 같은 환상들과 찰떡궁합이다'(361쪽)고 비판하고 있다.<br>이들이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인문학, 철학 등에 대한 무관심을 넘어 무시하는 태도 등을 지적하고 있는데... 이것을 '인문부정'이라고 하는데, 이 '인문부정은 기술업계의 또 다른 하나의 고질병의 원인이기도, 결과이기도 하다'(379쪽)고 주장한다.<br>이런 인문부정이 낳은 그들의 사고방식은 무엇일까? 바로 공학자병이라고 하는데, 이는 한 분야(주로 STEM-과학,기술, 공학, 수학)에서 전문가가 되면 다른 모든 분야에서도 전문가가 된다고 믿는 병이라고 한다.&nbsp;<br>이들은 자신이 성공했기에 전문가고,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지, 믿지 않으며 오로지 자신들만이 옳다고, 따라서 인공지능 시대는 다가오고, 인류는 우주로 나아가야 하며, 영생을 곧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기술이 이룰 것이라고...&nbsp;<br>이것을 누가 주도하나? 실리콘밸리에서 기술로 성공한 억만장자들이 투자를 통해서 이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따라서 이들은 자신들의 성장을 위해서 이런 투자를 하는 것이니, 억만장자들을 용인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그것을 가장 간단하게 하는 것이 바로 세금인데...<br>이는 억만장자들의 성공은 개인만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적인 것이 바탕이 되어 이루어진 것이니, 그에 대한 비용을 세금의 형식으로 지불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이는 능력주의에 대한 자연스러운 비판이고, 그렇게 거두어들인 세금으로 인류에게 필요한 다른 연구들, 정책들을 추진할 수 있을 거라고.<br>읽으면서 명쾌하다는 생각. 아, 그렇지 하는 감탄. 인공지능, 인공지능, 우주, 우주, 영생, 영생 하는 시대에 그런 주장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그리고 그것들이 얼마나 허상에 매달리고 있는 것인지를 구체적인 근거들을 통해 반박하고 있는 이 책.<br>이 책은 우리 역시 인공지능이라는 '집단 순응 사고'에 빠져 있지 않나 하고 되돌아보게 하고, 인공지능이 만능이 아님을, 우리 인류가 살아가야 할 곳은 이 지구이고, 이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문제들에 관심을 가지고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함을 깨닫게 해주고 있다.<br>현대에 꼭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인공지능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또한 인공지능에 비판적인 사람들도...&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43/43/cover150/896262710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4434391</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여러이야기</category><title>알제시대 신문에 연재된 네 컷 만화 - [멍텅구리 - 한국 최초 신문 연재 네컷만화로 100년 전 날것의 식민지 조선을 보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37607</link><pubDate>Sat, 26 Sep 2026 13: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3760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42035912&TPaperId=1753760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394/66/coveroff/k14203591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42035912&TPaperId=1753760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멍텅구리 - 한국 최초 신문 연재 네컷만화로 100년 전 날것의 식민지 조선을 보다</a><br/>전봉관.장우리 편저, 이서준.김병준 딥러닝 기술 개발 / 더숲 / 2024년 12월<br/></td></tr></table><br/>종이 신문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예전엔 종이 신문에 네 컷 만화와 한 컷짜리 만평이 실리곤 했는데...<br>네 컷 만화는 이야기가 있어서 보기가 좋았다. 한 컷짜리가 한 컷에 많은 것을 담고 있다면, 네 컷은 흐름이 있어서 이해하기가 쉬웠는데...<br>우리나라에서 신문이 발행된 초기부터 네 컷 만화가 실렸었나 보다. 이 책을 보니 1924년에 '멍텅구리'라는 네 컷 만화가 실리기 시작했으니.<br>이 만화를 통해서 당시 사회-문화를 알 수 있기도 하지만, 한계도 있다. 왜냐하면 신문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은 경제적 상황이 좋고, 지식 수준도 있는 사람일 수밖에 없기 때문.<br>그러기에 이 만화에 나오는 내용이 일반 서민들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여유가 있는 사람의 이야기라고 해야 한다. 기생인 옥매에게 반해 쫓아다니는 내용이 처음 시작이니... 이런 사치를 부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br>게다가 멍텅이는 돈을 물 쓰듯 쓰고 있으니, 당시 일제시대에 그런 경제적 호사를 누리를 수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고 해도 된다. 따라서 이 만화를 보는 사람은 낄낄거리면서 볼 수 있었겠지만, 대다수의 민중들은 이런 신문 만화를 볼 염두도 내지 못했을 것을 감안해야 한다.<br>그러면 소위 지식인들에게 무언가를 전달하는 내용이 만화에 실렸을 텐데, 해설에 의하면 당시 게장 금지라든지, 수입 담배 금지 등의 정책을 비꼬는 내용이 있고, 또 독립만세운동을 의식하는 일본 경찰에 대한 풍자 등이 있으니, 이나마 이 만화들이 당시 지식인들의 비판의식을 자극했다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br>대놓고 일본을 비판할 수는 없지만, 간혹 일제의 정책을 비꼬는 내용이 실리는데, 만화 중에 1926년 1월 2일자는 설날을 양력으로 하라는 일본을 비판하는 내용이 나온다.<br>'우리 설을 치른 줄 아나? 우리 설은 따로 있네!'라는 대사... 우리가 지녀왔던 문화를 강압적으로 바꿀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까. 여기에 '왜갈보는 도처에 있네(1926.3.20)'라는 대사 역시 일본을 비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밖에 치고받고 싸우는 의원들을 보면서 '일본의회 모양이로군(1926.4.22)하는 장면도 있으니...<br>단순히 재미만이 아니라 만화를 통해서 당시 일본을 비판하는 장면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멍텅이와 옥매의 사랑이야기에, 윤바람이라는 친구가 등장하여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만화.<br>그러다 휴간이 되었다 다시 복간이 되었을 때, 1930년대는 편집이 완전히 달라진다. 각 컷에 붙던 설명이 없어지고, 인물들의 모습도 바뀌었는데... 화가가 바뀌었다고 보면 되는데...<br>처음에 그린 화가들은 노수현과 이상범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근대미술을 이끈 사람들... 하지만 1933년으로 가면 다른 이름이 나온다. 인쇄 상태가 좋지 않아 누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김 씨인 것은 확실하다) 많이 다르다. 게다가 이때는 옥매가 나오지도 않는다.&nbsp;<br>물론 1930년대도 당시 사회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만화 내용으로 삼기는 했지만. 그렇게 흥미롭지는 않다.<br>이렇게 일제시대에 연재되었던 네 컷 만화를 영인하고 현대어로 풀이해서 책으로 엮었다. 방대한 작업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런 작업을 한 연구자들이 있기에 당시 작품을 지금 볼 수 있게 된 것.<br>이 만화들을 주욱 보면서 당시 맞춤법이 통일이 되지 않았고, 지금 우리가 쓰지 않는 글자들이 쓰인 것을 보게 되니, 우리글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살펴보는 것으로도 이 책은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394/66/cover150/k14203591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3946674</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과 나 그리고 책</category><title>서정학 시집- 우리 삶도 ‘제법‘이 될 수 있도록</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34517</link><pubDate>Thu, 24 Sep 2026 09: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3451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30081&TPaperId=1753451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1068/69/coveroff/8932030081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nbsp; 주절주절. 시인의 독백을 듣는 듯한 느낌. 시인이 자신의 의도를 독자에게 명확하게 하기보다는, 나는 내 말을 한다, 당신은 당신의 말로 알아들어라 하는 듯한.<br><br>&nbsp;5부로 나뉘었는데, 각 부에 제목을 붙이고, 그 제목 앞에 숫자가 있다. 무슨 숫자지? 잠깐 고민했는데, 답은(답이라고 할지 잘 모르겠지만) 해설에 나와 있었다. (해설이 이 시집을 읽는데 도움을 많이 주었다.)<br>&nbsp;연도란다. 17흔적, 06상자, 04연맹, 00프랑스, 99반복. 해설에 따르면 이 시집은 2017년부터 시작해 1999년으로 끝난다고 할 수 있다. 시간의 흐름을 뒤집어 놓은 것.<br>&nbsp; 그렇다면 시집을 거꾸로 읽으면 어떨까? 우리는 과거에서 현재로 오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니... 학교에서 역사(국사)를 공부할 때도 아주 먼 과거부터 배워 현대로 왔으니...<br>별의 역사도 마찬가지 아닌가. 별의 탄생, 빅뱅부터 시작해 지금의 우주로 오지 않나? 그런데 시인은 거꾸로 배치를 했다. 시간의 흐름과 반대로. 이는 현재에서 과거를 바라봐야 한다는 얘기인가?<br>시집의 처음에 실린 시, 그러니까 현재를 대변하고 있는 시가 '제일 앞자리엔 채리가 앉는다'(9-11쪽)이다. 채리? 모르는 사람. 굳이 알려고 할 필요가 없는 사람. 누구나 채리가 되어야 하니까. 적어도 이 시집을 읽는 사람이라면 그가 바로 채리가 되어야 한다.&nbsp;<br>왜? 시인이 이렇게 말하고 있으니까.<br>'앞자리엔 채리다 ...(중략)... 누군가의 채리가 자리에, 그것도 익숙한 앞에 앉아야 다음 장을 넘길 수 있다. ...('제일 앞자리엔 채리가 앉는다'에서)<br>앞자리, 이것을 현재라고 하면, 현재를 인식한 사람만이 과거를 반추할 수 있다고, 즉 의식적으로 과거를 돌아봐야 하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과거에 잠식당해 절대로 앞자리에 앉을 수 없다고 하는 듯하다.<br>이 시의 맨 마지막 문장이 '씨니까'인데, 씨가 바로 시다. 그러니 씨가 발아해서 자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바로 앞자리에 앉은 사람의 몫. 아니 씨를 자라게 하려면 반드시 앞자리에 앉아야 한다는 것.<br>그렇지 않으면 씨는 발아하지 않고 썩어버리고 말 테니까. 시 역시 마찬가지다. 이렇게 발아되지 않는 시들이 얼마나 많은가. 발아하지 못하고 묻혀 버리는 삶이 얼마나 많은가.&nbsp;<br>시를 독자들이 발견하듯이 삶도 자신이 발견해 키워야 하지 않을까? 시라는 씨, 삶이라는 씨. 결국 시를 읽는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발견한다는 것. 발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심고 물주고 보듬어 잘 자라게 하는 것.<br>그럼에도 우리네 삶은 '제법 잘살았네'라고만 할 수 있어도 괜찮은 삶이었다는 것. 시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제법 괜찮은 시네라고만 해도 제 역할을 한 시라고...<br>그렇지 않으면 '스무 개가 겨우 천 원'('동네에서 가장 싼 프랑스'에서. 61쪽)에 팔리는 상품과 같이, 한꺼번에 묶여서 넘어가지 않을까. 자신 스스로 가치를 지니지 못하고 다른 존재들과 묶여서 처분하듯이 팔려나가는 상품처럼, 그렇게 홀로 서지 못하고 이리저리 시류에 휩쓸리는 삶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br>'제법'이라는 말. 부정적으로 쓰기도 하지만, 아니다. 이때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해도, 그 부정 속엔 긍정이 내포되어 있다. '그 녀석 제법 하네.'라는 말 속엔 기대하지 않았는데, 그 기대를 넘어섰다는 뜻이 담겨 있으니...<br>인생을 제법 잘살았다는 것은 기대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았다는 얘기니, 시도 마찬가지다. 그 시 제법이네라는 말. 이 말은 시라는 씨를 심을 가치를 발견했다는 말이다. 심어서 키울 마음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고.<br>하여 시인은 이 시집의 마지막 시인 '제법,'에서 '대단한 일은 아니다. 대단한 일은 아니라고 쓸 뿐이다'('제법,' 중에서. 84쪽)라고 했지만, 시집의 시들이 우리를 '앞자리에 앉게 하고 다음 장을 넘길 수 있게' 한다고 할 수 있다.<br>주저리 주저리... 하지만 이 주절거림 속에서 삶을 발견하고 시의 씨앗을 심을 마음을 먹었다면, 심은 씨앗과 자란 결과가 결코 같지 않음을, 씨의 상태를 잊고 자란 결과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 시집을 '제법,' 읽었다고 할 수 있을까?<br>제법,<br>&nbsp; 한때는 그 문장, 그 단어들은 시였다. 글자와 글자는 접착제로 제법 튼튼하게 붙어 있었고, 뼈대는 비록 얼기설기 엉켜 있었지만 나름 튼튼했고, 알록달록한 단어들은 제법 아름다웠다. 한때는 그 종이에 시가 쓰여 있었다. 비록 별것 아니었지만 분명, 그건 시였다. 잠깐 시였지만, 지금은 아니다. '제법'이라는 접착제가 제법 많이 쓰였고 현대시라는 관점에서는 좀 모자랄 수도 있었겠지만 제법 많은 사람들이 그 시를 한때, 좋아하기도 했었다. 그 시는 분명 시였다. 지금은 제법 시였던 어떤 것이다. 제법 시다웠지만 다, 한때의 일일 뿐이다. 그냥 그 종이 위에는 이제, 검은색 글자들과 약간 색이 바랜 여백들과 나름의 침묵이 남아 있다. 쓴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나 지금 와서는 제법 아쉽지만 수긍하는 수밖에 없다. 뭐, 대단한 일은 아니다. 대단한 일은 아니라고 쓸 뿐이다.<br>서정학, 동네에서 가장 싼 프랑스. 문학과지성사. 2017년 초판 2쇄. 84쪽.<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1068/69/cover150/893203008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10686938</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이야기</category><title>흔들리는 미국의 현실, 제대로 봐야 한다 - [미국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 흔들리는 제국의 초상]</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32430</link><pubDate>Wed, 23 Sep 2026 10: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3243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02139511&TPaperId=1753243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98/8/coveroff/k50213951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02139511&TPaperId=1753243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미국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 흔들리는 제국의 초상</a><br/>이정민 지음 / 사이드웨이 / 2026년 06월<br/></td></tr></table><br/>미국이 어떻게 무너지는가에 대한 분석이라기보다는, 이미 세계 패권국으로서의 면모를 잃어가는 미국의 모습을 살피고 있는 책이라고 봐야 한다.<br>미국이 움직이면 세계가 따르던 시대가 지나고, 이제는 미국 역시 강대국 중 하나로 떨어지고 있는 시점이 아닌가 하는데, 트럼프라는 사람이 무지막지하게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데, 이 책을 읽다보면 이것이 꼭 트럼프가 아니더라도 지금 이 시대에 미국 대통령이 된다면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br>트럼프와 똑같이 그렇게 막무가내로 하지는 않겠지만, 이미 힘을 잃은 미국으로서는 더 이상 힘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정치, 경제, 외교, 군사 분야에서 변해야 하기 때문이다.<br>경제적으로도 흔들리고 있지만 군사적으로도 흔들리고 있다. 그것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수라고 한다. 계획을 짜고 미래를 도모하는 철수도 아닌 허겁지겁 그야말로 쫓기듯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물러난 미국.<br>이때 미국과 함께했던 동맹국들에게도 제대로 통보하지도 않았고, 미국에 협력했던 많은 사람들, 하다못해 미국의 지지로 성립되었던 아프가니스탄 정부에도 알리지 않았다고 하니... 참. 세계의 경찰이라는 미국의 현재 모습을 볼 수 있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br>미국이 이렇게 힘을 잃어간 것을 간파한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그것을 제대로 제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미국의 현실.&nbsp;<br>이런 상황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지금까지의 미국과는 다른 정책을 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 주장에 동의한다. 다만, 미국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이 그럼에도 약 50%정도라고 한다면, 미국이 쇠퇴하는 세계적인 흐름 속에서 트럼프와는 다른 방향으로 미국을 이끌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br>왜냐하면 지금 미국이 중국을 경쟁상대로 여기고 중국을 견제하는 정책을 펴는데, 이는 여전히 패권을 잃지 않으려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미국의 이익을 최대로 챙기려는 모습. 그것을 자신들이 세계 최강국이었을 때는 민주주의와 세계평화라는 탈로 가릴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이 불가능해진 상황.<br>그러니 노골적으로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정책을 펼 수밖에 없는데, 미국의 이익만이 아니라 세계와 이익을 함께하는 정책으로 나아가려고 하지 않으니, 그것은 이익을 앞세우는 세력들이 있기 때문이다.<br>기존에 자신들이 지녔던 이익을 잃지 않으려 하는 집단들은 그 이익을 위해서 적을 만들어낸다. 내부의 분열은 외부 적을 만들어냄으로써 봉합할 수 있으니까. 이런 미국에서 외부의 적으로 삼은 나라가 중국이다.&nbsp;<br>중국을 적대시하고, 중국의 위협을 과장하여 자신들의 정책을 합리화하려 한다. 그렇게 나아가고 있다. 또 중국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다른 나라들에 압력을 가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관세와 방위비 분담. 심지어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다른 나라 영토까지도 내놓으라고 한다. 미국이 이란을 공격한 이유도 이것과 상당한 관련이 있음을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으니...<br>지금 미국이 세계 패권국의 자리를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그런 정책들이라면, 앞으로는 어떨까?<br>미국이 달러의 영향력을 잃지 않기 위해 또 자신들의 패권을 잃지 않기 위해 집중하고 있는 것이 블록체인(스테이블코인)과 AI라고 하는데... 이것이 세계평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미국의 패권을 잃지 않기 위한 것이라면, 미국의 동맹국이라고 하는 우리나라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br>저자가 마지막 부분에서 짧게 언급하고 있지만, 미국과 중국 사이에 있는 우리나라. 지금 현명하게 외교를 할 때다. 그렇지 않으면 과거에 겪었던 비극을 또 겪게 될지도 모르니...<br>다행히 우리는 저력이 있는 나라다. 이미 그러한 강대국 사이에 낀 경험을 한 역사도 있고. 기술 발전이나 군사력이 세계 최고는 아니어도 세계에서 손꼽히는 나라이고, 경제력으로 말해도 선진국에 올라섰으니... 당당한 자립국가로서 균형을 잡을 수 있어야 한다.<br>지금 트럼프로 인해 시험대에 올라섰는데... 어떻게 될지.<br>이 책은 그간 미국의 정책이 왜 이렇게 흘러왔는가를 살피는 데 도움이 된다. 패권국에서 그 힘을 잃어가면서 미국이 정책을 바꿀 수밖에 없는 이유, 과정이 잘 나와 있으니 말이다. 여기에 중국과의 관계, 지금 양대 강국이라고 하는 미국과 중국이 대립하는 과정, 그리고 세계에 진출하는 상반된 모습 등이 잘 나와 있어서 현실을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br>그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지금 우리나라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어떤 말을 미리 하는 것은 성급하겠다. 하지만 이러한 세계적인 흐름을 읽고 그 흐름 속에서 우리나라의 국익을 해치지 않는 정책을 펼치도록 해야할 때라는 점만은 확실하다.<br>적어도 이 책을 읽으면 트럼프만을 욕하지는 않게 된다. 트럼프 역시 쇠락하는 미국을 이끄는 사람일 수밖에 없으니까. 다만, 그 방식이 참, 마음에 안 들어서 그렇지. 그러니 트럼프 개인을 욕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세계적인 추세를 읽고 거기에 대비하는 준비를 해야겠다.<br>진단은 훌륭한 책이다. 이제 진단이 나왔으니 처방을 할 차례. 그 처방이 어떨 것인가? 우리를 위한 처방일지, 미국에 끌려다니는 처방일지... 지켜봐야 한다. 아니 우리를 위한 처방이 되도록 우리 역시 눈 똑바로 뜨고 지켜봐야 한다. 우리가 역사 속에서 겪었던 비극을 또다시 겪으면 안 되지 않겠는가.<br>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 있는 미국의 군사정책을 간단히 소개한다. 이렇게 미국이 변했다고...<br>'국방부는 미국 국방의 우선 순위는 중국 견제와 본토 방어에만 한정된다고 선언했다. ... 중국은 유일한 주요 위협이며, 중국의 대만 점령을 저지하는 동시에 미국 본토를 방어하는 것이 미국 국방부의 '유일한' 주요 시나리오다.' (49쪽)<br>이런 점에서 '한반도는 더 이상 동맹 방어의 종착점이 아니라, 미중 전략 경쟁의 핵심 거점이 된다'(36쪽)라고 한다.&nbsp;<br>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98/8/cover150/k50213951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4980894</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의미 찾기에 앞서 재미있는 소설 - [타이탄의 세이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30506</link><pubDate>Tue, 22 Sep 2026 10:4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3050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88969&TPaperId=1753050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367/25/coveroff/895468896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88969&TPaperId=1753050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타이탄의 세이렌</a><br/>커트 보니것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0월<br/></td></tr></table><br/>그냥 재미 있다. 내용이 현실적이지 않아도, 허황되다는 생각이 들어도 재미 있게 읽을 수 있다. 도대체 뭔 얘기야? 의미를 찾을 수가 없네 하지만, 굳이 의미를 찾지 않아도 된다. 재미 있게 읽고 나면 그뿐.<br>그것이 삶일 수도 있다. 삶의 의미! 참 중요하다고 한다. 의미를 찾지 못하는 삶은 건강도 해친다고, 빅터 프랭클을 인용하지 않아도, 우리는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 붙이기를 좋아한다.<br>그렇지 않으면 도대체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하게 되니까. 하지만 모든 행동에 의미를 찾기 시작하면 삶이 피곤해진다. 의미 없는 일이 무엇인지 규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일을 하지 않아야 하는데, 도대체 삶에서 의미 없는 일이 무엇인지 찾는다는 것 자체가 너무도 힘든 일이다.<br>모든 것에는 의미가 있고, 또 모든 것에는 의미가 없을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의미 찾기를 하는 사람들은 종교에 빠져들기도 한다. 자신이 찾지 못하고 있으니 전능한 존재에게 의미를 맡기는 것이라고나 할까.<br>그 존재가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했고, 우리는 그 뜻에 맞게 살면 된다고 하면 자신의 책임을 벗어날 수 있으니까. 무엇보다 의미를 찾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되니까.<br>하지만 종교를 믿더라도 가끔은 이것이 신의 뜻인가 하고 의심하기도 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다른 삶을 살게 될 때는 특히 더.<br>소설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작가가 무엇을 의도하고 있는지, 작품의 의미를 찾으려고 한다. 집중해서 읽고, 어떤 단서 속에서 아, 이것이 이 소설의 의미구나 했을 때 잘 읽었다는 생각도 든다.<br>그러나 많은 작품들에서는 그러한 의미를 찾지 못한다. 그냥 미로 속에서 헤맬 뿐이다. 그러다 에라 모르겠다. 의미는 무슨? 그냥 읽으면 되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br>이 작품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종교 이름을 보라. '철저히 무관심한 하느님의 교회'라고 나온다. 인간에게 관심이 없단다. 그러니 나는 신의 선택을 받아서 하는 일들이 잘돼라는 말은 헛소리가 된다.<br>그냥 살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소설에 이런 표현이 나온다. 주인공이 사람들의 질문에 답한 말이 이미 이렇게 적혀 있었다는 것.&nbsp;<br>'나는 일련의 우연에 희생당한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듯이.'(299쪽)<br>삶은 우연이다. 아니, 이 소설은 필연이다. 트랄파마도어라는 행성에서 메시지를 나르던 존재의 우주선이 고장나서 부품이 필요한데, 이 부품을 그 우주인에게 가져다주기 위해 지구인들의 행동을 조절했다고 하는.<br>그것을 알고 분노하는 사람도 나오는데, 그럼에도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런 짜여진 구조 속에서 인간이 살아가더라도, 인간은 그때그때 자신의 행동에 최선을 다한다. 자신이 선택을 한다. 그 선택조차도 조정된 것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br>이렇게 우주인에 의해 조정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도 주인공은 살아간다. 그 나름대로의 삶을. 시간이 지나면 그 우주인에게 부품을 전달한 다음에 지구인들의 생활은 어떻게 되는가? 그때도 트랄파마도어에 조정당하게 되는가?<br>아니다. 그들이 지구인을 조정할 이유가 없다. 지구인은 그냥 지구인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래서 소설을 읽어보면 트랄파마도어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마치 예정조화설을 만나는 듯한 느낌을 받는데 이러면 커트 보니것이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한다.<br>커트 보니것이 어떤 작가인가? 냉소적인 풍자를 하는 작가 아닌가. 종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 그렇다면 트랄파마도어를 도입해서 그들이 지구인을 조정했다는 장면, 부품을 나르게 하는 과정이 지구의 역사였다는 서술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br>트랄파마도어인(소설에서는 기계로 나오지만 여기서 그냥 등장인물이라고 '인'이라 하자)이 나르는 메시지가 무엇인가? 안녕이다. 안녕은 처음 만나는 사람끼리 서로의 경계를 낮추고 함께 만나는 장을 만드는 말이 아닌가.<br>그렇다면 이 '안녕'이란 말은 서로 대등한 관계로 인정하는 말 아닌가. 하여 소설 속에서 정해져 있다는 것은 우리가 삶을 되돌아보면서 우연 또는 자신의 행동으로 이루어진 일들을 하나의 체계 속에 넣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일을 보여준 것이 아닐까?<br>소설 속에서도 끝부분에서야 이런 일이 밝혀지니, 그 전까지는 조종당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자기 의지를 가지고 기억을 하면서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었으니, 결국 큰 틀에서 보면 우리가 벗어날 수 없는 삶의 궤적을 따라갈 수밖에 없지만, 그 궤적 속에서 각자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 아닐까.<br>각자의 삶이 소중한데, 그것을 망각하고 큰 틀에 자신을 맞추려고 하는 것, 그런 것이 문제라고 작가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br>뭐,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것도 이 작품의 매력이겠지만, 정말 작가가 어떤 의미를 주려고 했는지 찾기는 힘들다. 그냥 재미 있게 읽고, 어, 이런 삶도 있었네. 와, 이 중에 지금 우리가 받아들여도 되는 삶도 있네 하면 되지 않을까.<br>소설에서 철저히 무관심한 하느님의 교회를 믿는 사람들은 남들보다 잘난 점을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이들은 스스로 핸디캡을 적용해 살아가는데, 가령 체력이 남보다 좋은 사람은 무거운 주머니를 달고 다녀, 남들과 비슷한 체력이 되게 한다거나 하는 등, 결국 그들은 '누구도 다른 사람을 이용하지 않는다는 사실'(293쪽)이 그 종교를 믿는 사회라는 서술이 나온다.<br>이 핸디캡을 이용하면 '아무도 당신이 운이라는 무작위적인 방식을 이용했다고 당신을 책망하지 못할 겁니다.'(296쪽)라는 표현으로, 지금의 능력주의를 이미 오래 전에 비판하고 있다고 할 수 있으니...<br>뭐, 이런저런 현대 사회에서 참조할 만한 사항들을 찾을 수 있다는 것에서 만족을 하면서... 나중에 다른 해설들도 참조해서 한번 더 읽어봐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0367/25/cover150/895468896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3672536</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과 나 그리고 책</category><title>김선우 시집-‘사이‘, 대등하게 채워야</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27215</link><pubDate>Sun, 20 Sep 2026 15: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27215</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24610&TPaperId=1752721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7668/43/coveroff/8936424610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 해설에 이런 말이 있다. 김선우라는 시인에 대해, 그의 시에 대해 종합적으로 이야기했다고 볼 수 있다.&nbsp;<br>'그의 시에는 늘 다채로운 감각과 사유가 저마다의 자리에서 빛을 낸다. 생명에 대한 예민한 관찰, 시민성에 대한 적극적 발언, 기후위기와 생태적 환경의 파괴에 대한 직설적 반성, 자본을 향한 씩씩한 비판, 차별 없는 사랑과 연대에 관한 섬세한 이미지 등등.' (122쪽)<br>딱 맞는 말이다. 지금까지 내가 읽은 김선우의 작품은 그랬다. 시만이 아니라 소설도. 그렇지만 이렇게 총평으로 이 시집을 평가할 수는 없다. 이것은 김선우 시 전반에 관한 이야기지, 이 시집에 관한 정리는 아니라고 본다.<br>물론 이 총평이 이 시집에도 적용이 되지만, 그럼에도 이번 시집에는 그 전의 시집에서 주던 느낌과 다른 무엇이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어쩌면 이 시집의 시들은 의미가 더 쉽게 전달되도록 쓰여졌는지도 모른다.&nbsp;<br>시인이 자신의 세계에 갇히지 않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모습. 시로 서로 얽히는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고나 할까. 어쩌면 시인이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시인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이 시집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br>'시인과의 대화'란 시가 있다. 이 시에 나오는 몇 구절.<br>'본래 쓸쓸한 세상인걸요. 사람에게는 사이가 있으니. ... 시가 없으면 반드시 시가 태어나죠. 인간(人間) - 사람 사이는 채워야 하기에. ... 시인이 없는 세상은 없어요.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가는 한. ... 사람에게서 사이를 보았다면 당신은 시인이에요. ... - 사이가 더 커지지 않는 세상. / 우리 모두 시인인 세상을 엿보며 / 시인은 이렇게 무사태평이다.'('시인과의 대화' 중에서. 30-31쪽)<br>그렇다. 시인이라는 특별한 존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시인이 되어야 하는 세상. 그런 세상을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이 시집이다. 하여 시인은 자신의 조카가 짖는 모습을 보고도 '네가 짖는 대신 개에게 사람의 말을 가르치면 되잖아, 이런 따위 말만큼은 하지 않는 걸로 시인 이모의 소임을 다하는 시간.'('쉬잇! 조심조심 동심 앞에서는' 중에서. 36쪽)이라고 표현한다.<br>인간 중심에서 벗어난 것이다. 다른 모든 존재를 인간과 동등한 존재로 대하는 모습. 그런 모습은 '야생 사과나무 앞에서 열매 하나를 얻기 위해 / 나무에게 말을 걸던 만년 전 사람을 떠올린다/.../사슴 한마리 앞에 인간 한마리로 온전히 대결하던 조상을 떠올린다'('마스크에 쓴 시 2'에서. 62쪽)는 표현으로 나타난다.<br>'사이'는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다른 존재들 사이에도 있다. 그리고 그 사이를 채울 때는 자신의 관점에서 채우는 것이 아니다. 상대와 나를 둘 다 존중하고 인정하는 상태에서 그 사이에 자신을 놓아두는 것. 그것이 바로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 아닐까.<br>어느 한쪽으로 끌어당기는 일이 있으면 안 된다는 것. 그러니 동물들에게 사람의 말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도 동물의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이는 상대가 되어보는 일, 그것이 바로 사이를 채우는 일이라고 하는 듯하다.<br>이렇게 사이를 채우지 않고 자신 쪽으로만 끌어당기려고 하는 존재가 있으니, 시인은 그에 대해서 상당히 비판적이다. 그 존재는 바로 자본이다. 자본은 성장, 성장 하면서 상대를 자신에게 속하게 만들려고 한다. 어느 것이든 있는 그대로 놓아두지 않는다.&nbsp;<br>계속되는 잠식. 이런 잠식으로 인해 인간은 자신들이 살아갈 공간을 스스로 파괴하고 있다고 시인은 보고 있다. 그래서 시인은 멈추어야 한다고 외친다. 이 시집 곳곳에서 이렇게 멈추라는 말이 많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br>멈추지 않으면 온갖 감염병으로 시달리게 되는데, 이 시집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삶의 모습이 제3부에 '마스크에 쓴 시 1~14' 연작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 연작시에는 '멈춰야 해'라는 말이 강하게 나오고 있다.<br>이런 감염병은 결국 인간이 다른 존재에게서 빌린 것이 아니라 '함부로 빼앗은 것들'이라고, 그래서'존재의 벼랑 앞에/한줄의 시로 부끄럽게 엎드린 마음'을 지녀야 한다고... 이렇게 부끄러운 마음을 우리 모두가 지닌다면 '내일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마스크에 쓴 시 13'에서 인용. 80-81쪽)<br>이렇게 시인은 인간들만의 관계에만 사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에는 사이가 있고, 이런 사이들을 채우되 한쪽으로 끌어들이는 채움이 아니라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그 사이에서 함께하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한다.&nbsp;<br>이런 삶을 살기 위해서 반성하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고... 그런 마음이 이 시집 전체에 나타나 있으니, 해설에서 말하고 있는 정리가 이 시집에도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br>좋은 시가 많은데, 이 시, 기억해두고 싶다. 어쩌면 사이를 채우는 일을 이렇게 잘 표현한 시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br>&nbsp; &nbsp; &nbsp;그러니까 사랑은, 꽃피는 얼룩이라고<br>&nbsp; &nbsp; 네가 있던 자리에는 너의 얼룩이 남는다&nbsp; &nbsp; 강아지 고양이 무당벌레 햇빛 몇점&nbsp; &nbsp; 모든 존재는 있던 자리에 얼룩을 남긴다<br>&nbsp; &nbsp; 환하게 어둡게 희게 검게 비릿하게 달콤하게&nbsp; &nbsp; 몇번의 얼룩이 겹쳐지며 너와 나는&nbsp; &nbsp; 우리가 되었다<br>&nbsp; &nbsp; 내가 너와 만난 것으로 우리가 되지 않는다&nbsp; &nbsp; 내가 남긴 얼룩이 너와&nbsp; &nbsp; 네가 남긴 얼룩이 나와&nbsp; &nbsp; 다시 만나 서로의 얼룩을 애틋해할 때&nbsp; &nbsp; 너와 나는 비로소 우리가 되기 시작한다<br>&nbsp; &nbsp; 얼룩이 얼룩을 아껴주면서&nbsp; &nbsp; 얼룩들은 조금씩 몸을 일으킨다&nbsp; &nbsp; 서로를 안기 위해&nbsp; &nbsp; 안고 멀리 가면서 생을 완주할 힘이 되기 위해<br>김선우. 내 따스한 유령들. 창비. 2021년. 107쪽.<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7668/43/cover150/8936424610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6684318</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과 나 그리고 책</category><title>함께하는 팔레스타인-팔레스타인을 향한/위한 응답의 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25140</link><pubDate>Sat, 19 Sep 2026 08: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25140</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971588&TPaperId=1752514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539/14/coveroff/897297158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92130702&TPaperId=1752514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25/32/coveroff/k492130702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32138063&TPaperId=1752514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66/46/coveroff/s102139312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62130735&TPaperId=1752514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84/82/coveroff/k962130735_3.jpg" width="75" border="0"></a>&nbsp;<br/><br/> &nbsp; 세 색깔의 표지가 있는 시집이다. 북펀드에 응모했더니, 내게는 초록색 바탕의 시집이 왔다.<br><br>&nbsp; 표지에 있는 네 가지 색깔, 팔레스타인 국기에 있는 색깔이다. 내가 알고 있는 국가의 깃발이 몇 개 되지 않지만, 왜 세 표지 중에서 랜덤으로 보내줄까 했더니, 이것이었다.<br>팔레스타인 국기에서 따온 것. 그렇게 시집은 표지에서부터 팔레스타인에 응답하고 있다. 시집 제목을 보라. '(팔레스타인을 향한/위한) 응답의 시' 아니던가.<br>괄호가 마음을 울렸다. 괄호, 직접적인 행동을 하지 않더라도 이렇게 멀리서나마 마음으로나마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nbsp;<br>혼자가 아니라고, 함께하는 사람이 있다고, 당신들에게 응답하는 존재들이 세계 곳곳에 있고, 멀디 먼 한국에도 있다고 하는 듯한, 괄호. 그리고 응답.<br>이 시집을 읽기 전에 먼저 '이스라엘'에 대해서 생각했다. 이스라엘? 지금은 나라 이름이지만 사람 이름이기도 했는데, 누구였더라? 오래 전에 본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검색했더니, 야곱이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었다더라.<br>성경 (대한성서공회가 번역한 개역한글판 성경전서-1995년-) '창세기 32장 28절에 보면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라고 나온다.<br>이 야곱이 누구냐? 아버지 이삭의 축복을 받기 위해 형과 아버지를 속인 사람 아니던가. 여기에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다니,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는 민족이라고 하겠다.<br>선민의식, 그것을 지니게 된 것이 이 야곱, 이스라엘로부터 시작되지 않았나 싶은데, 그간 서양의 역사에서는 '예수'를 팔아넘긴 민족이라고 해서 온갖 억압과 탄압을 받았다지만 그들이 지닌 이 선민의식을 버리지 않았으니...<br>현대에 들어 남들이 살고 있던 땅을 점령하고, 공존하기보다는 또다시 이기려고 점점 팔레스타인을 침략해 땅을 점령하고, 유대인들을 정착시키는 정책을 펴고 있으니... 단순한 정착이 아니라 배제와 추방을 동반한 정착이니...<br>또 이기려는 것인가? 누구를? 강한 자가 아니라 약자를, 더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사람들을 물과 식량부족으로 스스로 나가게 하려는지, 저항하려는 사람을 군인, 민간인, 어른, 아이 가리지 않고 폭격으로 죽게 만들고 있으니...<br>그럼에도 세계는 침묵하고 있다. 유대인에 대한 원죄의식이 있어서인지, 나서지 않으려 한다. 그들이 자신들이 당한 것처럼 팔레스타인을 학살하고 있는데도 세계는 침묵하고 있다. 아니, 침묵하지 않는데, 많은 언론들이, 더욱 강한 자들이 다뤄주지 않고 있다.<br>그들의 입을 막고 있다. 다른 사람들의 귀를 막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 참상이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아니다.<br>우리나라에서도 그렇지 못한 시인들이 있다.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직접 행동을 할 수 없더라도 조그마한 목소리라도 보태려 한다. 아니, 보태야 한다. 그래야 이 참상이 멈출 수 있으니까.<br>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응답, 그것이 직접적인 효과를 발휘하지는 못할지라도 팔레스타인이 홀로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겐 할 수 있다. 또 더 큰 비극을, 참상을 막으려는 움직임을 일으킬 수 있다.&nbsp;<br>그래서 필요하다. 응답이... 시인들이 침묵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그 이유일 것이다. 미약한 목소리나마 내려고 하는 것. 이런 시인들의 응답이 저 멀리 가 닿기를... 직접적이 아니더라도 그 마음이 그들에게 전해지기를...<br>시인들이 이런 응답을 할 때 나같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응답은 무엇일까? 지금 할 수 있는 일, 이런 시인들의 응답에 나 역시 응답하는 것. 시집이 널리널리 읽히도록 하는 것. 팔레스타인의 진실이 가려지지 않도록 하는 것.<br>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몰아내는 것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것이 진정으로 이기는 것이라는 것을, 그들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배제가 아니라 포용으로 사용하기를 바라는 것.<br>현대에 과학기술은 인류를 불멸로까지 이끌려고 하는데, 그러한 불멸로 가기 전에 전쟁으로 인해 사람이 죽어나가면 안 되지 않겠는가? 최첨단 무기들이 사람을 죽이는 데 쓰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데 쓰이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nbsp;<br>평화를 향한 외침. 그것이 우리의 응답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시집을 읽으며 팔레스타인에 응답한 시인들에게 고맙단 마음이 들었다. 이젠 시인들만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응답할 차례라는 생각이 들고.<br>이 시집에서 '못 묻는다'는 송정원의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다녀올게만 있고 다녀왔어는 없는 무수한 하루가'(145쪽)... 이런 현실이 지금 팔레스타인, 특히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세상에, 이 땅에는 '안녕'이 없다. 우리가 흔히 하는 인사 '안녕하세요'를 하기 힘든 상황. 그러니 시인들이 나설 수밖에. 팔레스타인에 응답할 수밖에.<br>이 시집이 응답하는 시라면, 직접 그들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책들이 있다. 그 책들도 함께 읽으면 좋을 듯하다. 많겠지만, 내가 읽은 책으로는 이 정도.<br><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84/82/cover150/k962130735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9848251</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여러이야기</category><title>죽음, 그 과정을 보여주다 - [죽음의 에티켓 - 누구도 말해주지 않은 당신의 마지막에 관하여, 개정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23300</link><pubDate>Fri, 18 Sep 2026 08: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2330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02130275&TPaperId=1752330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46/82/coveroff/k70213027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02130275&TPaperId=1752330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죽음의 에티켓 - 누구도 말해주지 않은 당신의 마지막에 관하여, 개정판</a><br/>롤란트 슐츠 지음, 노선정 옮김 / 스노우폭스북스 / 2026년 06월<br/></td></tr></table><br/>죽음, 누구나 피하고 싶은 것.&nbsp;<br>알지 못하기에, 더더욱 두려운 것.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결코 평화롭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더 맞이하고 싶지 않은 것.<br>그렇지만 피할 수 없는 것. 아직까지는. 언젠가는 피할 수 있을까? 그렇게 되면 지구가, 우주가 견디지 못하겠지. 포화상태가 될 테니까.<br>이렇게 죽음은 생각하기조차 싫은 것. 남에게 일어날 수는 있지만 내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 또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 그러나 살면서 점점 죽음을 만나게 되는 횟수가 늘고, 언젠가는 그것이 자신에게도 올 것임을 생각하게 된다.<br>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이 있지만, 누가 죽음을 즐길 수 있을 것인가. 죽음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다만, 죽음 앞에 담담할 수는 있겠다. 담담함. 그것이 겉으로 꾸미는 일일지라도 그렇게 보이도록 한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덜 충격을, 슬픔을 줄 수 있지 않을까.<br>한때 '유언장 쓰기'가 유행했었다.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고 어떤 말을 남길까 생각해 쓰는 활동. 이는 죽음을 생각한다기보다 죽음으로 인해 삶을 더 잘살기 위한 방편으로 하는 활동이기도 했다. 죽음이라는 끝을 향해 가면서 삶을 의미 있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으로.<br>이와 비슷한 활동이 '관 속에 누워보기'란 활동이 있었다. 죽은 다음 들어가는 관. 그 속에 들어가 있으면서 죽음과 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상황을 경험해보라는 것. 다 삶을 잘살기 위한 방편의 활동이었다.<br>이렇게 우리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비슷한 활동을 하면서도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더 의미 있게 보내는 방편으로 활용을 한다. 역시 죽음은 내 일이 아닌 것이다. 내 일이 아니기에 이런 활동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역시, 내 삶은 소중해! 하면서.<br>하지만 이 책은 그것과는 다르다. 우리가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죽은 다음의 과정은 어떻게 되는가를 알려주고 있다.<br>아파서, 나이들어서 또는 사고로 죽은 세 명의 사람을 예로 든다. 그들 죽음의 원인은 다를지라도, 또 죽음의 원인에 따라서 다음 과정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br>죽음 직전에 신호가 오고(사고는 물론 다르다), 고통이 함께하며, 그 다음에 숨이 멎는다. 숨이 멎으면 신체에 변화가 오고, 의사가 와 죽음을 확인하고 증명서를 내준다. 다음 장례 절차가 진행이 되고, 매장 혹은 화장이 된다. 그 다음에 기일을 맞이하여 주변 사람들이 추모를 하고, 점점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진다.<br>이런 과정을 자세하게 구체적인 사례들을 들어서 알려주고 있는 것이 이 책이다. 우리는 대체로 죽음 하면 죽어가는 과정에 중심을 두고 있지만, 이 책은 전체적인 과정을 살펴보고 있다고 할 수 있다.<br>이 표를 보라.<br>삶과 죽음의 곡선이 위아래가 반대인데, 이상하게 두 곡선이 만나서 연결되지 않는다. 이 말은 삶과 죽음이 동시에 존재하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다. 마치 영화기법 중에 OL(오버랩) 기능처럼 겹치는 시간.<br>이렇게 삶 속에서 죽음이 시작하기 때문에 가장 좋은 방법은 죽음을 자신이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것. 죽음은 다른 사람의 것이 아닌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기도 한데... 이 구절을 읽으면서 예전 우리나라 어른들이 죽음을 준비하던 것이 생각났다.<br>자신의 무덤을 미리 마련하고 (선산이 있는 경우 말고도, 근대에 들어서도 자신의 무덤을 미리 마련해두는 어른들이 많았다), 죽어서 입을 수의를 맞추어 놓았으며, 또한 죽은 후에는 어떻게 하라는 말까지 (유언이라고 할 수 있다) 하고, 어떤 이들은 죽음을 맞이하여 스스로 곡기를 끊고 죽음에 이르기도 했다고 하니.<br>그런 전통들이 사라져가고, 이젠 죽음마저도 의사의 손에 맡겨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그럼에도 죽음은 자신의 것이라고... 준비하는 것이 죽음의 에티켓이라고 하는 듯하고... 죽은 다음에야 이제는 장례 절차에 따라 살아있는 사람들의 몫이지만, 그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장례를 끝내는지를 다큐멘터리 식으로 보여주고 있다.<br>이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면 예전의 '유언장 쓰기, 관 속에 누워보기'와 비슷한 역할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br>그래, 적어도 갈 때 올 때보다 좋은 모습으로 가야 하지 않겠는가 하니, 그만큼 준비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고.<br>여전히 죽음은 두렵지만 그렇다고 피할 수는 없으니, 저자의 말대로 '그렇기에 우리는, 당신은, 나는 준비해야 합니다. / 내 삶이 오직 나 자신의 방식이었던 것처럼 죽음 또한 온전히 내 방식대로 이뤄져야' 하기 위해서라도 기본적인 준비는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br>이 책은 그만큼 죽음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해준 책이라고 할 수 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46/82/cover150/k70213027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468236</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여러이야기</category><title>시와 사상의 만남-하이네와 마르크스 - [독일. 어느 겨울동화 / 공산당 선언 - 시와 사상의 만남]</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21417</link><pubDate>Thu, 17 Sep 2026 09: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2141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4054626&TPaperId=1752141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957/59/coveroff/899405462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4054626&TPaperId=1752141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독일. 어느 겨울동화 / 공산당 선언 - 시와 사상의 만남</a><br/>하인리히 하이네 & 카를 마르크스 & 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홍성광 옮김 / 연암서가 / 2014년 12월<br/></td></tr></table><br/>하이네의 시와 한때 우리나라에서 읽으면 안 되었던 '공산당 선언'이 묶여 있다. 서정시인으로 알려져 있는 하이네지만 참여시라고 할 수 있는 시들을 썼다는 점. 그리고 그와 마르크스가 교류를 한 적이 있다는 점에서 시와 사상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br>하이네가 쓴 '독일, 어느 겨울 동화' 제1장에 이런 표현이 있다.<br>'우리는 여기 지상에서 벌써 / 하늘나라를 세우려고 한다.<br>우린 지상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려 하며 / 더 이상 궁핍을 원하지 않는다 / 부지런한 손이 번 것을 / 게으른 위가 탕진해서는 안 된다.<br>이 지상에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 충분한 빵이 자라고 있어 / 장미와 도금양도, 미와 즐거움도 / 또 완두콩도 적지 않아.' (47-48쪽)<br>이것이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바라던 혁명 아니던가. 하늘나라가 아닌 지상에 사람들이 평등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br>그런 그들의 주장을 선언으로 만든 것이 바로 '공산당 선언'<br>너무도 유명한 구절들이 들어 있는, '유령 하나가 유럽에 돌아다니고 있다 - 공산주의라는 유령이'(240쪽)로 시작해서 '프롤레타리아가 잃을 것은 쇠사슬밖에 없다. 그들이 얻는 것은 하나의 세계이다. 전 세계 노동자여, 단결하라!'(295쪽)로 끝나는 공산당 선언.<br>우리나라야 지금도 좌파라고 하면 못 잡아 먹어서 난리인 나라지만, 좌파를 공산주의자라고 하면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할 수도 있는 나라지만, 이제 이런 '공산당 선언'은 읽어도 되는 나라가 되었다.<br>이렇게 되었다는 건 그만큼 사회가 성숙해졌다는 것, 다른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사상의 자유를 누리는 사회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겠지.<br>이런 것도 있지만 공산주의가 역사에서 사라졌다고 할 수 있기에 그런 여유가 생긴 것 아닐지... 그러면 이 공산당 선언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할 문헌이 되어야 하는데...<br>물론 많은 부분에서는 실현이 될 수 없는 선언이다. 그럼에도 아직 사라지지 않은 것은 무언가 아직도 받아들일 것이 있어서일 텐데...<br>가령 이 선언에 이런 대책들이 있는데, 지금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방향과 일치하는 것들이 많다. '소득에 대해 높은 누진세를 적용, 도시와 농촌간의 차별을 점차 제거, 공립학교엣 모든 어린이를 위한 무상교육을 실시 등등'<br>이것이 바로 역사다. 무조건 배척하는 것이 아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받아들이는, 그래서 사회가 조금이라도 좋은 쪽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br>하이네와 공산당 선언을 묶고, 비슷한 점을 해설에서 잘 설명해주고 있지만, 하이네의 시는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하고 있다. 서양의 문화, 역사를 알아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는 시라서 그런지, 그의 풍자가 확 와닿지 않았는데, 공산당 선언도 역사 속에서 다시 평가해야 할 선언이니...&nbsp;<br>지금 우리 현실에서 무엇을 받아들여야 할지, 그들이 이 선언을 작성할 당시의 의도에 맞게 우리 현실을 파악하고 개선할 방법을 찾는 것이 이 선언에 충실한 태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957/59/cover150/899405462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9575992</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각자가 던질 수 있을 만큼 던지는 돌이 바로 삶 - [피프티 피플 - 2017년 제50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19454</link><pubDate>Wed, 16 Sep 2026 10:0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1945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4241&TPaperId=1751945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9666/4/coveroff/893643424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4241&TPaperId=1751945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피프티 피플 - 2017년 제50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a><br/>정세랑 지음 / 창비 / 2016년 11월<br/></td></tr></table><br/>제목만 보면 50명의 사람이 나와야 한다. 제목이 이러면 꼭 나오는 사람을 세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차례를 보면서 한 명, 두 명 세어본다. 어? 51명인데... 뭐야? 잘못 세었나? 다시 세어본다. 외국인이 두 명, 한 번에 세 명이 동시에 나오는 장이 있고, 마지막 장은 '그리고 사람들'이라고 되어 있지만 아무리 세어도 51명이다. 이런... 제목에 맞춰 합리화해본다.<br>그래 세 명이 나온 장을 한 사람으로 치고, 마지막 장을 또 한 사람으로 보면 50명이네, 딱 맞네 하면서. 그러다 소설을 다 읽고 작가의 말을 읽으니 이런 작가가 이런 말을 한다.<br>'어쩌다보니 51명입니다. 혹 세어보시다가 한명이 더 있어 놀라실까 말씀드립니다. 제가 넘치게 썼는데 제목을 '피프티 원 피플'이라 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보다 자기 장(章)을 가지지 않으면서 드나드는 인물도 있어서 사실은 52명, 53명 ..... 세는 방식에 따라 달라질 것 같습니다.'(393)<br>역시, 나와 같은 사람이 많구나. 사람을 세는 것이 별 의미가 없겠구나. 하지만 사람의 호기심이란 꼭 제목에 맞게 사람 수를 세어보게 하니... 참.<br>각자의 인물이 짧게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그런 삶들 중에 저런, 저런 나쁜 놈이 하는 삶은 여기서 거의 나오지 않는다. 사람에 대한 사랑을 기본으로 깔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br>왜?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누구나의 삶은 누구나 존중받아야 하니까. 그럼에도 나쁜 놈들은 나온다. 자기만 아는 놈, 다른 사람을 해치는 놈. 세상은 좋은 사람만 살지 않으니까. 별별 사람이 다 있으니까.<br>그럼에도 우리는 좋은 것만 보고 살면 좋지 않을까 하지만, 어려움을 아예 겪지 않았을 때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때 대처를 잘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 중에 '김시철'이란 인물의 아내인 혜린에게서 그 점을 발견한다.<br>자신들이 내지도 않는 층간 소음이라고 아랫집이 따질 때 아내인 혜린이 많이 힘들어하는데, 이때 시철은 이렇게 생각한다.<br>'혜린의 낙천성과 둥근 성격은 타인의 공격성을 적게 겪으며 자라는 동안 형성된 것이어서, 막상 공격적인 상대를 마주하니 면역성이 쉽게 무너졌다.'(304쪽)<br>하, 타인의 공격성에 면역이 생기기 힘들지만, 자신이 먼저 무너지지 않아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 이 장면에서 '학교'를 생각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정말로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어가는 장소.<br>이 장소에서 온갖 갈등을 겪으며 그것을 해결하면서 때로는 묻어두면서 지내온 기간들이 결국은 사람들로 하여금 낯선 타인을, 타인의 낯선 방식을 견디게 하는 힘을 길러주지 않을까? 따라서 학교란 단순히 지식을 전수하는 곳이 아니라 관계를 맺어가는 방식을, 다름 속에서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익히게 하는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br>꼭 학교가 아니어도 된다. 사람들은 성장하면서 다양한 관계를 맺는데, 이 관계들이 자신의 삶에 긍정적인 쪽으로 오게 하면 되니까. 그런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에 소설만큼 좋은 것이 있을까 싶다.<br>소설에는 온갖 인간들이 다 나오니까. 그들의 삶이 나오고, 정말 나하고는 하나도 같지 않은 삶들도 소설 속에서는 만날 수 있으니까. 그러면서 그들 삶에도 나름대로 애환이 있음을 볼 수 있으니까.<br>이 소설에 나오는 무려 51명, 아니 그보다 많은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 세상은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구나, 그들이 서로 단 한번도 마주친 적이 없더라도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있겠구나, 그리고 그들은 각자 나름대로 일을 겪고 기억하겠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br>특히 작가가 마지막 장에서 많은 이들을 영화관에 모아놓는데, 이 건물에 불이 나고 대피하는 경험을 모두 하겠지만, 그 경험은 각자에게 다른 기억으로 남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니. 바로 이 마지막 장이 소설이 하는 역할을 압축적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해도 좋겠다.<br>마지막 장 말고도 꼭 기억하고 싶은 장면은 '소현재'라는 인물이 '직업환경의학과(예전에는 산업의학과라고 했다고)'를 선택하고 여전히 많은 산업재해에 마음 아파하면서 도대체 해결되지 않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같은 병원의 원로 교수인 '이호(이 인물 역시 한 장을 차지하고 있다)'가 해주는 말.<br>"우리가 하는 일이 돌을 멀리 던지는 거라고 생각합시다. 어떻게든 한껏 멀리. 개개인은 착각을 하지요. 같은 위치에서 던지고 사람의 능력이란 고만고만하기 때문에 돌이 멀리 나가지 않는다고요. 그런데 사실은 같은 위치에서 던지고 있는 게 아닙니다. 시대란 게, 세대란 게 있기 때문입니다. 소 선생은 시작선에서 던지고 있는 게 아니에요. 내 세대와 우리의 중간 세대가 던지고 던져서 그 돌이 떨어진 지점에서 다시 주워 던지고 있는 겁니다. 내 말 이해합니까?"<br>"릴레이 같은 거란 말씀이죠?"<br>"그겁니다. (...중략...)&nbsp;가끔 미친 자가 나타나 그 돌을 반대 방향으로 던지기도 하겠죠. 그럼 화가 날 거야. 하지만 조금만 멀리 떨어져서 조금만 긴 시간을 가지고 볼 기회가 운 좋게 소 선생에게 주어진다면, 이를테면 40년쯤 후에 내 나이가 되어 돌아본다면 돌은 멀리 갔을 겁니다. 그리고 그 돌이 떨어진 풀숲은 소 선생 다음 사람이 뒤져&nbsp;다시 던질 겁니다. 소 선생이 던질 수 없던 거리까지."&nbsp; (380-381쪽)<br>이것이 바로 삶 아닐까. 우리 삶이 제자리를 뱅뱅 돌고 있는 것이 아니라, 또 뒤로 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뒤로 가는 것처럼 보여도 길게 보면 조금 더 나은 쪽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그렇다고 내가 모든 것을 완벽하게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br>나는 기껏 내가 던질 수 있는 거리 만큼만 돌을 던지면 된다는 것을. 그 다음 돌을 다른 사람이 던질 수 있게끔 조금이라도 앞으로 돌을 보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삶의 의미는 충족된 것이라고.<br>그럼 나는 돌을 어디서 주울까? 내가 돌을 던질 자리는 어디일까? 소설에 나오는 각 인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돌을 던진다. 어떤 이는 이호의 말처럼 뒤로 던지기도 하지만, 이 소설에 나오는 대부분의 인물들은 앞으로 돌을 던진다. 그 돌이 얼마나 멀리 나갔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이 돌을 던진다는 행위 자체가 중요하다.<br>이렇게 소설을 통해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나 역시 돌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고... 지레 돌이 원하는 곳까지 가지 않는다고 포기할 것이 아니라. 그냥 내가 던질 수 있는 만큼 힘껏 던지면 된다고... 그렇게만 하면 된다고...<br>정세랑의 '피프티 피플'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거리에 돌을 던지는 사람들 이야기. 좋았다. 그런 인물들을 만날 수 있어서.]]></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9666/4/cover150/893643424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96660475</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소설로 보는 우리나라 교육 현실 - [킬러 문항 킬러 킬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15234</link><pubDate>Mon, 14 Sep 2026 10:0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1523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52934328&TPaperId=1751523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183/30/coveroff/k95293432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52934328&TPaperId=1751523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킬러 문항 킬러 킬러</a><br/>이기호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1월<br/></td></tr></table><br/>'교육' 답이 없다.&nbsp;답이 있어서 그것을 찾는 것이 교육이라고 알고 지내왔던 시절이 있었다. 정답은 있다. 그것을 찾기만 하면 된다. 그것도 실수 없이. 시간 안에. 이것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교육 방식이었다.<br>하지만 '교육'에 답이 있을까? 있는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답을 스스로 만들어가게 하는 것, 따라서 답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일 수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교육 아니었을까?<br>답이 여럿이 있다. 복수 정답? 아니다. 복수 정답이라고 해도 그것은 이미 정해진 답을 찾는 과정일 뿐이다. 복수 정답이라는 말이 아니라 정해져 있지 않은 답을 만들도록 해야 하는데, 지금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br>수능을 없애고 자율적으로 학생을 뽑는 대학? 상상하기 힘들다. 공정이라는 벽이 가로막고 있다. 그렇다면 서술형 출제를 하자? 이것 역시 공정이라는 벽에 막힌다. 그 채점이 공정하냐고 하면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br>이렇게 학교에서, 초중고에서부터 대학교까지 교육은 늘 정답을 찾는 과정이었다. 답이 있다는 가정에서 비롯한 교육. 그 답을 잘 찾는 사람이 우수한 학생이 되는 현실.<br>이런 현실에서 교육에 관한 다른 많은 것들이 감춰지거나 억압된다. 오로지 답 찾기. 답을 잘 찾아 높은 점수 기록하기. 이것이 교육의 목표가 된 듯하다. 그러니 사교육이 기승을 부리지. 왜냐? 모두가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br>나만 학원에 다니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다는 느낌. 그래서 모두들 사교육으로 내몰린다. 단지 사교육만일까? 아니, 공교육을 한다는 학교도 마찬가지다. 성적, 성적, 대학 진학... 이것이 학교를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br>공통의 기준이 있고, 여기에 도달하느냐 마느냐로 학교를 평가하면, 학교의 다양성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nbsp;<br>학업이라는 면에서 이렇게 획일화를 추구하고 있는데, 교육이 성적만을 획일화할까? 아니, 학생이라는 특정 시기에 거의 모든 사람이 거쳐야 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포기하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br>학생이라는 시기에 반드시 도달해야 하는 기준이 있다는 듯이, 그 기준에 맞지 않는 것은 미뤄두거나 없는 것으로 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지 않은가.<br>그것이 무엇일까? 다양하다. 너무도 많다. 그 많은 것들 중에 각 소설가가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소재로, 주제로 삼아서 소설을 썼다. 그리고 한 권의 소설집으로 엮어냈다.<br>성적도 있고, 교우관계도 있고, 사교육도 있고, 가족 간의 관계도 있고, 무어라 하나로 정리할 수 없는 수많은 교육에 관련된 일들. 그러한 일들이 이 소설집에 잘 나타나 있다.<br>이 소설집에서 제기하고 있는 문제들이 지금도 진행 중이라는 것이 더욱 안타까운데, 얽히고 설켜 도무지 해결의 실마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우리나라 교육 문제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br>여전히 대학입시라는 것에 목 매다는 학생들, 여기에 특정 대학에 모든 것을 거는 입시 과정, 그러한 과정 속에서 포기해야 하는 다른 많은 것들.<br>관계도 관계지만 공부를 잘한다는 말을 성적이 좋다는 말과 같은 뜻으로만 여기게 되는 풍조가 사라지지 않는 것도 문제다.<br>짧은 소설들이 모여 있는데, 그래서 읽기에 편한데, 읽은 다음에 뒷맛이 개운하지는 않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음에... 소설 속 인물들의 고민이 지속되고 있음에...<br>인공지능 시대를 앞두고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교육 문제들, 이 소설집을 통해 만나보자. 그리고 그것들이 지속되지 않는 사회를 꿈꾸도록 하자.<br>다른 소설들도 생각을 많이 하게 하지만 서윤빈이 쓴 '소나기'가 섬뜩하게 다가왔다. 성적을 내기 위해 늘 고1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아이. 우리가 그렇게 만들고 있지 않은지... 오로지 성적이 제일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그런 세상을 만들어온 것은 아닌지...<br>어쩌면 아이들이 다른 학년으로 진학을 해도 그들이 발전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아니라, 성적이라는 쳇바퀴 속에서 계속 같은 곳을 달리게 한 것은 아닌지. 하, 이 소설 속 윤이와 같은 아이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183/30/cover150/k95293432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1833090</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이야기</category><title>김상미 시집- 밥은 삶의 성기라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11539</link><pubDate>Sat, 12 Sep 2026 15: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11539</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45232&TPaperId=1751153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0846/53/coveroff/8954645232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nbsp; 오랜만에 시집을 읽는다. 소설보다 짧은 시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더 긴 시간이 있을 때에야 시집에 손이 간다.<br>&nbsp; 짧음을 짧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길게 느끼기 위해서, 드러나지 않은 것들을 찾는 시간이 있어야 하기에. 그럼에도 늘 찾기에 실패하고, 도대체 시인은 무엇을 숨겨놓았을까 생각해야 하기에.<br>&nbsp; 이번에 고른 시집은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다. 하긴 시인을 모르는데, 선택을 하려면 여러 조건을 따져야 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제목이다.<br>&nbsp;'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비열한 거리' 중에서. 59쪽) 라니. 이만큼 현대인의 생활을 생각하게 하는 표현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br>함께 산다고 하지만 현대인들은 각자 살고 있다. 그 각자가 자신만의 세계에 빠진 듯하지만, 이상하게도 남을 더 의식한다. 주체로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의 거울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면서 살아간다고 해야 할까.<br>그래서 시인이 제목이 된 구절이 있는 시에서 '비열하게 이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 '예스'라고 말해줘야 한다-고'('비열한 거리'에서. 59쪽)고 표현한 것이 바로 이것 아닐까 했다.<br>자신이 아니라 남이 바라보는 자신으로 살아가려 하는 것. 현대인의 삶 아닐까. 그만큼 남을 의식하면서 산다는 것인데... 그런 삶을 '기하학적 실수'란 시에서 발견했다.<br>&nbsp; &nbsp; &nbsp; &nbsp;기하학적 실수<br>모든 사랑의 체위는 인간이 지닌 가장 고귀한 감각이다.그걸 알면서도사랑을 나눌 때나는 한 번도 내가 좋아하는 체위를 요구하지 않았다.말없이 상대가 원하는 대로 따라가기만 했다.<br>그게 내 사랑의 비극이고내 사랑이 실패한 이유였다.<br>아무것도 원하지 않고어떤 체위도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늘 꿈꾸어왔던 나만의 체위는내 마음속 깊이깊이에만 간직해두고척추를 타고 흐르는 파르르한 사랑의 경련에만전율했다는 것.<br>모든 물이 다 증발하고 난 뒤에 남는 소금처럼사랑의 체위야말로 그 사람의 유일한 진실임을모른 체하고 모른 체했다는 것.<br>김상미,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문학동네. 2017년. 33쪽.<br>이 시를 보면 사랑을 나눌 때조차도 자신이 아니라 상대를 의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주체로 서지 못하는 사람에게 사랑은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것. 결국 '비열한 거리'에서 말하고 있듯이 이러한 관계는 '아무 관계도 아니'게 된다. 마찬가지로 '예스'만 하는 삶은 상대와 하나가 될 수 없음을 뜻하기도 하고.<br>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보헤미안 광장에서'란 시에서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br>&nbsp;보헤미안 광장에서<br><br>갑자기 내리는 비그 비를 피하기 위해여기저기서 펼쳐지는 우산들<br>그러나 우산은 지붕이 아니다아내 있는 남자가 남편 있는 여자가몰래 잠깐 피우는 바람 같은 것이다<br>갑자기 내린 비가 멎으면아무런 소용이 없는<br>그러니 사랑을 하려거든&nbsp;진짜 돌이킬 수 없는 사랑을 하려거든한 지붕 아래에서 하라<br>갑자기 내린 비는 금방 지나가고젖은 우산에 묻은 빗방울들은우산을 접는 순간 다 말라버린다<br>김상미,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문학동네. 2017년.40쪽.<br>이 시에서 우산이 상대에게 맞춰주는 사랑이라면, '한 지붕 아래에서 하는 사랑'은 나를 잃지 않으면서 상대 또한 인정하는, 다르면서도 함께하는 그런 삶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는가.<br>이런 한 지붕 아래서 우리는 함께 밥을 먹으며 살아가게 된다. 희노애락을 함께 겪으면서... 오로지 상대에게만 맞추는 것이 아니라, 또 상대를 나에게만 맞추려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따로 또 같이 사는 장소로서의 한 지붕 아래, 그러한 곳에서 하는 사랑은 자신을 주체로 서게 하고, 상대 역시 주체로 서게 하는 사랑이지 않을까 한다.<br>이런 곳에서 먹는 밥, 그것은 우리의 사랑을 확인하게 해주는, 또는 사랑을 지속시키는 '성기'와 같지 않을까. 하여 시인이&nbsp;'밥은 삶의 성기다'(밥의 힘'에서. 96쪽)라고 표현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br>하여 이 시들을 읽으면서 상대의 눈에 비친 나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당당하게 살 때에야 비로소 상대와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음을, 이 때 먹는 밥이, 시인이 이 시에서 말한 것과는 다르지만, 두 시와 연결지으면, 삶의 성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nbsp;<br>식구(食口)라는 말. 사랑의 지속. 그것 또한 밥심아니겠는가. 밥심은 곧 사랑이다. 주체로서의 당당한 사랑. 이런 생각을 하게 한 시들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0846/53/cover150/895464523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08465360</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