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도담서림(道談書林) (kinye91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Wed, 07 Oct 2026 10:44:29 +0900</lastBuildDate><image><title>kinye91</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74420113113741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kinye91</description></image><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이야기</category><title>분리-배제가 아닌 통합과 공존의 역사를... - [한국 장애사 -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장애와 그 공존의 역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56884</link><pubDate>Tue, 06 Oct 2026 10: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5688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02130033&TPaperId=1755688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99/89/coveroff/k60213003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02130033&TPaperId=1755688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한국 장애사 -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장애와 그 공존의 역사</a><br/>정창권 지음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2026년 08월<br/></td></tr></table><br/>우리 역사는 분리, 배제가 아닌 통합과 공존을 이루는 사회의 역사다<br>우리나라가 장애/비장애로 나누고 차별하는 사회였던가? 서양의 관점에서 우리나라는 과거에 장애인을 위한 교육을 하지 못했다 하고, 근대화가 된 이후에야 비로소 장애/비장애 통합교육이 실시되었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br>인권 개념이 근대에 들어 확립되었고, 근대화란 곧 서양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으니, 이 틀에 의하면 장애/비장애 통합교육 역시 우리 과거 역사에서 찾기보다는 근대 교육에서 찾으려 했다고 할 수 있다.<br>그런데, 과연 그럴까? 장애인을 차별하는 문화가 역사적으로 지속되어 왔을까? 저자는 아니라고 한다.<br>역사 속 인물들과 자료들을 토대로 우리나라 역사는 장애/비장애의 통합교육, 통합 사회였지, 장애/비장애를 구분하고 분리, 배제하는 사회가 아니었다는 것이다.<br>'본래 역사적으로 한반도에는 몸의 다름을 결함으로 여기면서 사회적으로 배척하려는 의식이 별로 없었을 뿐더러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한데 어울려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통합 사회를 이루고 있었다.'(5-6쪽)<br>어라, 우리나라가? 정말? 그렇다면 장애/비장애의 통합교육, 통합 사회가 서양의 문화로 우리가 뒤늦게 받아들인 것이 아니었어? 이런 주장을 하는 근거가 무엇이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br>그동안 인권이라는 개념은 우리나라 전통에서 찾기보다는 서양에서 도입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왜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 저자는 '장애를 전생이나 조상, 하늘의 죄와 연결시켜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담론은 개화기에 본격적으로 유행한 것이며, 그것은 기독교의 장애관이 불교적 인과응보설의 외피를 입거나 서로 결합되어 출현했던 것으로 보인다'(39쪽)고 하고 있다.<br>그러면서 책의 뒷부분에 가면 이러한 장애/비장애의 구분과 부정적 장애관을 확산시킨 신문이&nbsp; [독립신문]이라고(288쪽) 하고 있는데...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운영한 사람들이 미국식 사고를 받아들였고, 조선의 것은 미개한 것이라는 인식을, 그래서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을 신문을 통해서 했다고.<br>그렇게 하지 않으면~ 000과 다름 없다는 식의 비유로 장애를 언급했으니, 이런 비유를 통해서도 장애는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고 할 수 있다.<br>결국 장애/비장애를 구분하고 분리, 배제하는 의식은 개화기를 거쳐 일제시대에 강하게 나타났다고 할 수 있으니, 장애/비장애를 구분하고 분리하는 것이 우리의 전통은 아니었다는 저자의 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br>전통적으로 우리나라는 통합교육을 했음을, 장애인이라고 해서 다른 면에서 차별을 하지 않으려 했다는 것, 그것을 정승 자리에 오른 사람 중에 장애인을 예로 들어 보여주고 있다.<br>특히 지체가 부자유한 사람에게는 왕도 그가 벼슬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도움을 주어서라도(내관을 통해서 부축하게 한다든지, 가마를 타고 오게 한다든지 등등) 계속 벼슬을 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br>장애/비장애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인품과 능력으로 사람을 판단했음을, 그래서 사람의 판단 기준에 장애/비장애가 기준이 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br>여기에 서당이나 서원, 성균관에서도 장애/비장애의 구분 없이 통합교육을 했다고 한다. 이러한 통합교육과 더불어 장애인이 곤궁한 생활을 하지 않도록 제도로 뒷받침하려고 했다고도 하니...<br>이러한 역사를 안다면, 장애/비장애를 구분하고, 분리-배제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현대 사회가 오히려 과거의 우리나라보다 더 퇴보한 것이 아닌가 한다.<br>장애인을 위한 정책이 역차별이라고? 아니다. 가장 어려운 사람이 편하게 지낼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면 그 사회는 누구나 편안한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그것이 어찌 역차별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당연한 일 아닌가. 신체의 차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게 하는 사회, 그런 사회를 지향한 것이 바로 조선을 비롯한 과거 우리나라였음을 저자는 여러 자료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br>이렇게 저자는 인권이나 장애/비장애 통합교육은 동양엔 없었는데 근대화된 서양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인식이 잘못되었음을, 오히려 반대로 우리는 장애/비장애 통합교육을 하고 함께 살아가는 통합 사회였음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br>그 점을 일깨워주는 것이 바로 이 책이고, 저자는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 장애사는 분리-배제가 아니라 통합과 공존의 역사임을 보여주고 있다.<br>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퇴계 이황 이야기가 이 책에도 나오는데, 그래, 조선 최고의 유학자 중 한 명인 퇴계의 부인이 장애인이었다는 사실. 그런 부인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배척하지 않고 함께한 사람이 퇴계임을...&nbsp;<br>그것이 훌륭한 인품을 지닌 퇴계라는 예외적인 인물의 일만이 아님을, 다른 여러 사람들을 통해서 알려주고 있으니, 우리 역사를 통해서 장애/비장애가 분리-배제의 요인이 아니라, 그냥 다름으로, 그 다름을 안고 함께 살아가야 하는 통합-공존의 사회가 되어야 함을 생각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99/89/cover150/k60213003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9998903</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이야기</category><title>다름을 괴물로 만든 역사 - [괴물의 탄생 - 우리가 찍은 낙인의 역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54990</link><pubDate>Mon, 05 Oct 2026 07: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5499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325073&TPaperId=1755499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24/68/coveroff/893232507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325073&TPaperId=1755499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괴물의 탄생 - 우리가 찍은 낙인의 역사</a><br/>수레카 데이비스 지음, 이영아 옮김 / 현암사 / 2026년 08월<br/></td></tr></table><br/>'괴물'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살피는 책이다. 즉, 괴물이라는 존재는 처음부터 괴물로 존재한 것이 아니다. 인간들이 어떻게 규정하고 분류했는지에 따라 괴물이 된 것이다.<br>그러니 이 책은 괴물의 탄생이라는 제목이 있지만, 작은 한글 제목으로 붙인 '우리가 찍은 낙인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내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br>낙인. 그것은 다른 존재에게 붙이는 이름이지만, 이 이름은 분류를 통해 다른 존재를 가두는 역할을 한다. 즉 우리와 다른 존재, 그래서 우리와 어울릴 수 없는 존재. 그냥 어울릴 수 없는 존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안녕을 위협하는 존재, 그래서 괴물.<br>이런 괴물은 함께할 수 없다. 퇴치해야 한다. 즉 괴물이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그 존재는 인류와 함께할 수 없고, 인류에게서 추방당해야 할 존재가 된다. 인류와 다른 존재를 괴물이라고 하는 것은 미지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br>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그 존재를 피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연결이 되고, 피하고자 하는 마음이 그 존재를 배척해야만 한다는 의식으로 굳어지게 되는 것. 즉 모르는 존재는 모르기 때문에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는데, 그 두려움을 안고 그 존재와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 그 존재를 배척하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괴물의 역사일 것이다.<br>이러한 괴물에는 비인간 존재들이 있다. 인간이 아닌 존재들을 인간이 잘 모르기 때문에 두려움이 있고, 그래서 우리는 인간이라는 벽을 쌓고 다른 존재들을 그 벽 너머로 보내고 가두는 역할을 한 것이 괴물이라고...<br>비인간 존재들을 괴물로 만든 역사를 추적하는 책이라고 제목을 보고는 생각했는데, 책장을 넘기면 곧 비인간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같은 인간을 비인간으로 취급하고, 그 결과 그러한 비인간 취급을 받는 인간들을 괴물로 이름짓고 배척하는 인간의 역사를 살피고 있는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br>따라서 저자는 괴물을 '괴물은 상상의 산물이다. 이 책에서 내가 사용하는 '괴물'이라는 단어는, 사람들이 '정상' 범주의 건너편이나 바깥에 있다고 여기는 인간을 정의할 대 사용하는 모든 용어 -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중립적이든 -를 포함한다.'(9쪽)고 정의하고 있다.<br>즉 이 책은 권력을 쥔 집단들이 다른 집단들을 판단할 때 사용하는 기준을 '정상'이라고 보고, 자신들의 '정상' 범주에서 벗어났다고 보이는 다른 인간 집단들에게 '괴물'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배척한 역사를 살피고 있다.<br>그렇다면 권력을 쥔 집단은 어떤 집단인가? 바로 지역으로는 유럽, 종교로는 가톨릭(기독교), 인종(인종은 없다는 말이 있지만 통상 쓰고 있으니)으로는 백인이다. 이들을 '정상'에 놓고 다른 인간들을 '비정상'으로 보는데, 이런 '비정상' 인간들 중에서도 더 멀리 간 집단을 '괴물'로 이름 붙였다는 것.<br>자신들이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인간들, 또 자신들과는 다른 신체적 조건을 가진 인간들, 여기에 능력 면에서도 자신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인간들도 '비정상'의 범주에 들어가고, '괴물'로 여겼다는 것.<br>그러니 괴물이라는 말에는 권력을 쥔 집단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서 다른 존재들을 규정짓고 배제했는지, 단순히 배제가 아니라 구경거리로 삼거나 또는 멸절시키기 위한 방법들을 사용했는지 등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br>같은 지구에 살면서 자신들이 정한 '정상'의 범주 바깥에 있는 존재들을 '괴물'로 규정짓는 이유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다. 그들을 이해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다른 존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먼저 생각했기 때문이다.<br>자신들만이 정상이고, 자신들과 다른 존재들은 비정상이라고 하는 집단에게, 지구 밖의 존재들은 말할 것도 없다. 한때 외계 존재가 등장하는 영화들을 보면 외계 존재를 상당히 위협적인 인간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로 표현하지 않았던가. 물론 인간과 교류하고 소통하는 외계 존재를 그린 영화도 있지만...<br>대체로 외계 존재는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그것이 문제라는 인식을 지닌 것은 지구에서 다양한 인간들을 규정짓고 범주화해서 벽 밖으로 밀어내는 것이 잘못이라는 인식이 자리잡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데...<br>인권이 모든 인간에게 적용이 된다면, 과연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으로까지 나아가야 하는데, 현재는 인류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집단들은 모두 인간, 즉 인권을 지닌 존재로 인정하고 있으니... 여기에서 더 나아가야 한다고...<br>이렇게 차별의 역사를 살피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괴물이라는 이름을 지닌 존재를 흥미 위주로 찾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괴물로 만들고 억압하고 배척했던 역사를 살핌으로써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게 될 존재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br>우리의 기준을 벗어난 존재, 또는 우리의 기존 관점으로는 판단하기 힘든 존재들, 경계에 속한 존재, 경계 밖의 존재들과 함께해야 하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24/68/cover150/893232507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0246807</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과 나 그리고 책</category><title>서효인 시집-내가 ‘나‘를 좋아해서 생기는 감정, 질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50504</link><pubDate>Fri, 02 Oct 2026 12: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50504</guid><description><![CDATA[&nbsp; '나'를 사랑하는 '나'<br>&nbsp; 당연하지 않은가. 자신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도대체 무엇을, 누구를 사랑한다는 말인가.<br>&nbsp;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다른 존재도 사랑하지 못하는 것 아닐까.&nbsp;<br>&nbsp; 그러나 나를 지나치게 사랑하면 다른 존재들은 나로 인해 가려진다.&nbsp;&nbsp;&nbsp; 아니, 다른 존재들은 나에게 들러붙는 방해물이 된다. 거추장스럽다고 여긴다.&nbsp;<br>&nbsp; 그런 상태. 그러니 나를 사랑하는 나는, 적당히 나를 사랑해야 한다.<br>'나'에 집착하면 안 된다. '나'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은 '나'에게 집착하지 않는다. 그래야 '나'를 사랑할 수 있다. 아니 다른 존재를 사랑할 수 있다.&nbsp;<br>그런데 이것이 지나치면 어떻게 될까? 서효인 시를 읽으면서 나를 지나치게 사랑하는 일이 '질투'일 수도 있음을 생각한다.<br>누군가를 좋아해서 질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좋아해서 생기는 감정, 즉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 되어야 한다는 마음, 그러한 욕망이 질투로 나타나는 것.<br>다른 존재가 지니고 있는 것을 인정하는 마음에 앞서, 그것을 자신이 지니지 못했다는 결핍으로 느끼는 것. 그것이 질투 아닐까.<br>그런 자신을 보면서, 결국 질투는 자신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싸움일 수밖에 없음을... 하여 나를 사랑하는 만큼 남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 그렇게 남을 사랑한다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는 것.&nbsp;<br>그 보이는 것들을 다른 사람의 눈에도 보이게 하는 것. 시인... 시... 그것이 바로 시 아닐까 하는 생각.&nbsp;&nbsp;<br><br>&nbsp; &nbsp; &nbsp; 로맨스<br>&nbsp; 질투는 드라마에서처럼&nbsp; 누군가를 좋아해서 생기는 감정은 아니다 그것은&nbsp; 제가 저를 너무나 좋아해서 생기는 습기 같은 것이라&nbsp; 해수욕장의 발바닥이다 털어도 털어도 모래가 붙는다&nbsp; 도넛 방석 위에 앉아 불 꺼진 모니터를 바라보면&nbsp; 거기에 진짜 내가 있다 늠름한 표정으로 나는&nbsp; 내가 좋아서 미치겠는 날도 많은데 남은&nbsp; 나를 좋아해 미칠 수는 없겠지 오늘은&nbsp; 동료가 어디 심사를 맡게 되었다고 하고 오늘은&nbsp; 후배가 어디 상을 받게 되었다고 하고 오늘은&nbsp;&nbsp; 친구가 어디 해외에 초청되었다고 하고 오늘은&nbsp; 그 녀석이 저놈이 그딴 새끼가 오늘은&nbsp; 습도가 높구나 불쾌지수가 깊고 푸르고 오늘도&nbsp; 멍청한 바다처럼 출렁이는 뱃살 위의 욕심에&nbsp; 멀미한다 나는&nbsp; 나를 사랑해서 나를 혐오하고 나는&nbsp; 안 그런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변명하고 토하고&nbsp; 책상 위에 앉아 내 이름을 검색하고&nbsp; 빌어먹을 동명이인들 같은 직군들 또래들 심사위원들 수상자들 주인공들 나는 내가 좋아서 미치겠는데 남들은 괴이쩍게 평온하고&nbsp; 바다처럼 넓은 마음으로 안 그런 척하는데 나는&nbsp; 나 때문에 괴롭고 나는&nbsp; 나를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고&nbsp; 늠름한 표정으로 슬리퍼를 털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nbsp; 화장실 간다&nbsp; 오줌을 누는데 보이는 건 불룩한 아랫배가 전부&nbsp; 이런 나라도 사랑할 수 있겠니,&nbsp; 대답 대신 쪼르륵&nbsp; 내려가는 소리 들린다&nbsp; 푸르고 깊은 몸 곳곳에 해변의 모래가 들러붙어서&nbsp; 사무실에까지 왔다 질투는&nbsp; 로맨스 같은 구석이 있다 오늘은&nbsp; 예고편에 불과하고 내일은 동료와 친구와 선후배와 옆자리와 뒷자리와 동명이인과 같은 직군과 비슷한 또래와 노인과 젊은이와 이토록 연안에서 깊이 추잡스럽겠지만 극적이게도&nbsp; 바깥은 평온하다. 그것이 나를 더 미치게 하는 줄도 모르고<br>서효인, 나는 나를 사랑해서 나를 혐오하고, 문학동네. 2022년. 1판 2쇄. 96-97쪽.<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9620/61/cover150/8954686982_1.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50504</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여러이야기</category><title>생각까지 외주 주면 인간은? - [사고외주 - 생각하지 않는 인간의 출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45081</link><pubDate>Wed, 30 Sep 2026 08: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4508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52130873&TPaperId=1754508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08/96/coveroff/k55213087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52130873&TPaperId=1754508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사고외주 - 생각하지 않는 인간의 출현</a><br/>홍진기 지음 / 어크로스 / 2026년 06월<br/></td></tr></table><br/>'외주(外注)란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주로 경제활동에 관련되어 많이 쓰는 용어다. 자신들이 처리하지 않고 다른 곳에 맡겨 일처리는 하는 경우를 외주 준다고 하니...<br>이때 외주는 직접 제품을 생산하는 일을 맡기는 경우도 있지만, 일을 다른 조직의 사람에게 맡기는 것도 포함이 된다.&nbsp;<br>현대에 와서 모든 일을 자신들이 다 처리할 수는 없기에 외주를 주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이런 외주로 인해 많은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br>먼저 제품을 외주로 주는 경우, 자신들이 생산할 능력이 되지 못하거나 또는 외주 주는 것이 더 비용이 싸기에 설비나 노동자들에게 투자를 하지 않는다. 이때 외주 업체가 생산하지 않겠다고 하면 큰 문제가 발생한다.<br>제품이 아니라 행위, 즉 일을 외주 줄 때도 문제가 발생한다. 자신들이 처리하지 않고 외부의 조직에게 일을 맡기기 때문에, 외부 조직이 일을 거부할 때 어려움에 처하기도 한다.&nbsp;<br>이렇게 외주는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비용 면에서나 또는 효율 면에서 외부에 맡기는 것이 더 이익이라고 여길 때 발생한다. 그만큼 위험도 감수해야 하지만, 모든 것을 외주로 해결하려 했을 때 결국에는 자신들에게 손해도 돌아오기도 한다.<br>내부에서 기본적인 것을 처리할 수 있는 상황에서 부차적인 외주로 했을 때는 외주 업체에 문제가 생겼더라도 외주를 준 업체에는 문제가 그리 심각해지지 않지만, 핵심적인 부분까지 외주 주었을 때 외주 업체에 문제가 생기면 외주를 준 업체 역시 심대한 타격을 받는다.<br>이것이 외주가 지닌 문제다. 그런데, 인간이 자신의 삶을 유지하는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사고(思考)-생각하는 분야를 인공지능에게 외주를 준다.<br>당장은 효율적일 수 있다. 그런데 외주에 의존하다 보면 본질을 잃을 수가 있다. 중심을 잃었을 때 생기는 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가 없다. 이러한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는 책. 바로 이 책이다.<br>저자는 어느 날, 학생들의 보고서가 글은 좋아졌는데, 이상하게 사람이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는 많은 학생들이, 아니 대다수의 학생들이 인공지능을 통해서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말이 된다.<br>인공지능에게 맡겨 제출한 보고서. 매끄럽고 내용도 잘 정리가 되었을 테고, 문법에 맞지 않는 문장도 거의 없을 텐데, 그런데... 정작 중요한 그 보고서를 작성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nbsp;<br>보고서가 아무리 형식이 정해져 있다고 해도 사람이 직접 작성했던 예전에는 그 나름대로의 개성이 드러났을 것이다. 자신이 고민하고 정리한 내용들이 보고서에 담겼을 것이고... 하지만 이제는 인공지능에게 질문을 하고, 그 답을 옮겨 적는 것을 넘어, 보고서까지 인공지능이 쓰게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천편일률적인 보고서가 나올 수밖에 없다.<br>그러면서 더 이상의 고민을 하지 않는다. 고민을 하지 않는 인간들, 다른 말로 하면 생각하지 않는 인간의 출현(이 책의 작은 제목이기도 하다)이 대세가 된 것이 바로 현대다.<br>생각하지 않는 인간, 사고(생각)를 인공지능에게 외주를 주는 인간. 편리하고 빠르다고 인공지능에게 의존하는 인간. 처음엔 편리하고 좋을지 모르지만, 이렇게 영원히 지낼 수는 없다. 사고하지 않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계속 존재할 수 있을까?<br>인간을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는데, 인간의 기본 특징이 바로 생각에 있는데, 이러한 생각을 외주 주고 있다면, 결국 자신들의 생각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인간이라면 그 뒤의 삶은 어떨까?<br>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기 이전에 인간 스스로 통제권을 인공지능에게 넘기는 것이 아닐까. 인간을 위해서 인공지능을 이용한다고 했던 것이 인간의 능력을 없애는 결과를 낳는다는 우려. 이것이 바로 '사고외주'라고 제목을 단 이 책의 고민 아닐까.<br>인공지능을 없앨 수는 없는 시대가 되었으니, 그렇다면 인공지능을 더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해야 하는 시대. 인공지능에게 사고를 외주 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고를 보충하는 역할로 인공지능을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br>그러기 위해서는 멈춤이 필요하다고... 빠름 속에서 쉬지 않고 달리는 것이 아니라 멈춰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 그리고 경험을 통해서 실패하고 고민하는 시간들을 지녀야 한다고. 이러한 일들이 불편할 수 있지만 불편함을 감수해야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 수 있는 '판단의 장치'를 마련할 수 있다고 한다.<br>외주로 인해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심심치 않게 언론을 통해서 만나왔다. 그렇다면 이를 우리의 사고로 확장하면, 과연 우리의 사고를 외주 주는 것이 바람직할까? 외주를 주더라도 본질을 유지한 상태에서 부차적인 것으로 한정해야 한다는 것을 그동안 역사를 통해서 보아왔지 않은가.<br>인공지능 시대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지녀야 할 기본적인 가치들, 그것들마저 외주 주고 의존하면 안 된다.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 판단하는 능력. 그리고 관계 맺기를 통한 다양한 경험, 때때로 멈출 줄 아는 태도를 지닌 인간, 그런 인간이 현대 인공지능 시대에 인공지능을 잘 활용하는 사람일 것이다.<br>짧지만 저자의 고민이 잘 드러난 책이다. 그렇다고 이 책에서 모든 해결책을 찾으려고 하면 안 된다. 그런 자세 역시 사고외주일 테니... 이 책에서 제기한 문제를 중심으로, 현대 사회를 살펴보고, 자신이 어떻게 해야할지를 고민해야 한다.<br>저자는 직접 글을 써보라고 하는데... 저자의 권유는 어렵지 않다. 어쩌면 어렵지 않아서 가장 어려울 수도 있는데... 키보드를 치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직접 글을 써보는 것.&nbsp;<br>'마지막으로 한 가지 부탁을 보태고 싶습니다. 이 책의 어느 페이지든, 여백이든, 책의 맨 뒤 빈자리든 좋습니다. 지금 이 순간 떠오르는 것 아무것이나 펜으로 직접 적어보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키보드로 옮기지 마시고, AI에게 다듬어달라 하지 마시고, 그저 펜으로요. 글씨가 삐뚤어져도 좋고, 문장이 미완성이어도 좋고, 단어 한 개여도 좋습니다.' (149-150쪽)<br>손으로 무언가를 쓰는 일,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것이 사고를 외주 주지 않는 첫걸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08/96/cover150/k55213087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089663</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여러이야기</category><title>차별하는 말, 쓰지 말자 - [차별어의 발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42847</link><pubDate>Tue, 29 Sep 2026 09:0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4284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82935095&TPaperId=1754284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428/13/coveroff/k68293509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82935095&TPaperId=1754284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차별어의 발견</a><br/>김미형 지음 / 사람in / 2023년 09월<br/></td></tr></table><br/>너무도 당연한 말. 차별하는 말 쓰지 말자.<br>그런데, 이게 쉽지 않다. 내가 무심코 한 말이 차별하는 말이었음을 알게 될 때가 있으니... 알게 되면 사과하고 고쳐야 하는데, 어떨 때는 시기를 놓치기도 하니.&nbsp;<br>그 말이 차별하는 말이었음을 깨달았다면 그나마 다행인데, 그게 왜 차별하는 말이야 하고 반문하고, 수긍하지 않을 때도 있으니, 너무도 당연한 차별하는 말을 하지 말자고 하는 말이 그리 쉬운 말은 아니다.<br>어쩌면 세상 이치가 그럴지도 모른다. 당연한 일. 그 당연한 일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때 사회가 혼란을 겪게 되지 않을까. 특히 사회에서 나름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차별하는 말을 쓴다면, 그 사회에서 차별이 없어지기는 힘들어질 테다.<br>차별하는 말 중에, 요즘 우리 사회에 만연한 말들이 있는데, 바로 '멸칭'이라고 하는 말들이 아닐까 싶다. 멸칭, 남을 멸시하는 말. 멸칭 자체가 차별하는 말인데... 그런 멸칭을 아무렇지도 않게 언론에 내보내는 일이 잦고 있으니...<br>특히 개인방송이 많아지면서 이러한 멸칭으로 부르면서 자신들의 편을 만들어가는 일이 너무도 많아지고 있음이 문제인데, 멸칭을 쓰지 말자면서 자신들이 다시 멸칭을 쓰는.<br>개인방송뿐이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이러한 멸칭이 공공연하게 쓰이고 있으니, 국민을 대표하고 대변한다는 사람들이 아무 생각없이(아니, 이들은 분명 의도적으로 이러한 멸칭을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멸칭을 함부로 쓰는 모습을 보면, 차별 없는 세상이 쉽게 만들어질 수 없겠단 생각을 한다.<br>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뜨끔하기도 했다. 나 역시 별다른 생각 없이 차별하는 말을 쓰곤 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으니...<br>말을 할 때 한 번 더 생각하는 자세를 지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았구나, 혹 내가 차별하는 말을 쓰면 그 자리에서 누군가가 지적했으면 나는 고쳤을까? 아니면 기분 나빠했을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 읽은 책인데...<br>우리 사회 곳곳에서 쓰이고 있는 차별하는 말에 대해서 살피고, 그러한 말을 쓰지 말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책이다. 내가 쓰고 있는 말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책이기도 하고.<br>저자는 차별하는 말을 '의미성, 의도성, 맥락'이라는 세 영역을 통해서 살피고 있다. 같은 말이라도 어떤 때는 차별하는 말이 되지 않지만, 어떤 경우에는 차별하는 말이 되고, 또 차별의 의미가 담겨 있지 않던 말이 맥락에 따라서 차별하는 말이 될 수도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니 말을 할 때 내 의도는... 하고 자신의 말을 변명하려고만 해서는 안 됨을 명확하게 알려주고 있다.<br>저자의 말처럼 차별하는 말은 배제하는 말이다. 상대를 용인하지 않는 말이다. 나와 같은 대등한 존재로 여기지 않는 태도다. 그러니 이러한 말이 사회에 퍼져 있다는 것은 평등한 사회가 아니라 누군가를 억압하는 사회라는 것이다.<br>그 억압이 말로 나타나고, 말로 나타나는 일이 잦으면 태도에 스며들어 고치기 힘들어진다. 지금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말들의 칼을 보라. 이들의 말은 상대를 대등하게 인정하는 말이 아니라 상대를 밀어내는, 상대를 찍어누르려 하는 말이다.<br>그런 말들이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니, 다른 분야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차별하는 말, 멸시하는 말들이 넘쳐나는 사회는 결코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없다.<br>서로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사회가 될 수 없다. 그런 사회에서는 갈등이 심해질 수밖에 없고, 오로지 나와 우리만이 중요하고, 상대는 없어져야 할 아니면 꾹꾹 눌러서 일어나지 못하게 해야 할 존재가 된다.<br>그것이 차별하는 말이 지닌 위험성이다. 말이 곧 행동을 낳고, 그러한 행동이 그 사회를 만들어가니 말이다.<br>하여 내 말이 남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해 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또한 상대를 나와 같은 존재로 인정하는, 나를 상대의 처지에 놓아보는 상상력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다름을 인정하고, 다름과 함께 살아가는 태도가 필요하다.<br>'차별어의 발견'은 바로 '상대를 발견'하는 일이다. 낯선 존재를 나와 같은 존재로 인식하는 일. 이 처음이 바로 내 말에 담겨 있는 차별의 의미를 발견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발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을 쓰지 않도록 하는 것.<br>말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소통의 역할을 제대로 하게 하는 것, 그것은 바로 차별하는 말을 하지 않는 데서 시작한다.<br>저자가 들고 있는 많은 차별어들, 우리 사회에서 많이 쓰이고 있는 말들이고, 쓰지 않아야 한다고 하는 말들이다. 이 말들을 쓰지 않는 데서부터 소통이 잘되는 사회가 시작될 것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2428/13/cover150/k68293509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4281356</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이야기</category><title>실리콘밸리의 기술주의자들의 본질을 알려주다 - [기술이 인류를 구원한다는 착각 - 실리콘밸리 억만장자들의 위험한 미래 설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40811</link><pubDate>Mon, 28 Sep 2026 09: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4081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2627108&TPaperId=1754081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43/43/coveroff/896262710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2627108&TPaperId=1754081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기술이 인류를 구원한다는 착각 - 실리콘밸리 억만장자들의 위험한 미래 설계</a><br/>애덤 베커 지음, 박주용 옮김 / 동아시아 / 2026년 06월<br/></td></tr></table><br/>새겨들어야 한다. 이 저자의 말을. 이런 주장을 단순히 러다이트 운동과 같다고 하면 안 된다. 과학기술이 발달해서 되돌릴 수 없다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그것을 거부하는 것은 시대를 거스르는 행위라고 할 수만은 없다.<br>영어의 원문은 이런 제목이 아닐텐데, 번역자가 내용을 완전하게 정리할 수 있는 제목을 붙였다. '기술이 인류를 구원한다는 착각'이라고. 정말 잘한 번역이라는 생각이 든다. 원제목은 'MORE EVERYTHING FOREVER'라고 하는데, '기술이 인류를 구원한다는 착각'이라고 하니, 이 책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한 눈에 들어온다.&nbsp;<br>그렇다. 실리콘밸리의 기술주의자들은 기술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그들이 요즘 인공지능의 위험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속도를 늦추자고,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것 역시 저자에 의하면 기술주의에 불과하다.<br>왜냐하면 안전주의자들도 역시 인공지능이 개발되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다만 인간에게 위협이 되지 않도록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인공지능 개발에 속도를 내자는 쪽이나 속도를 늦추고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쪽이나 모두 인공지능 시대를 전제한다는 점에서는 다를 것이 없다고 한다.&nbsp;<br>특히 이들이 이렇게 나아가는 것이 과연 인류를 위해서일까? 저자는 아니라고 한다. 그들은 성장을 위해서, 무한한 성장, 그리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인공지능에 투자를 하고, 또 인공지능의 위험성을 이야기하는 것도 인공지능에 더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한다.<br>이런 기술에 투자하는 것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인류에게 이익이라는, 그러한 이익을 위해서는 현재의 위험은 그다지 크지 않다고 한다. 현재의 위험? 기후위기라든지, 경제불평등, 세계적인 분쟁 등등이 중요하지 않다고?<br>장기론자들의 관점을 이야기하는데, 그 관점이 통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인류의 이익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먼 미래의 인간들까지 계산에 넣는다고 한다. 그래서 먼 미래의 인간까지 몇 조의 인간들에게 이익이 되는 일을 지금 해야 한다고.&nbsp;<br>그 미래의 인간들 이익까지 고려하다 보면 지금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들이는 노력보다는 기술에 투자하는 것이 더 인류를 위하는 일이라고... 나 참. 아직 오지 않은, 실현될지도 모르는 것을 계산에 넣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은 별것이 아니라고 하는 이 논리.<br>여기에 지구에 인간이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우주로 나아가야 한다고. 그러니 에너지 사용에 있어서 인간은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한다고... 이게 뭔가 했더니, 결국 성장주의다. 성장하지 않으면 침체고, 이것은 인류의 퇴보를 의미한다고.<br>과연 그럴까? 이 지구에서 우리가 계속 성장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는 것을 실리콘밸리의 기술주의자들도 알고 있다. 그러니 이들은 지구로 삶터를 한정하지 않고, 태양계 또 태양계 너머의 우주로까지 인간의 삶터를 확장한다.<br>아직 불가능하지만, 이들은 가까운 미래에 실현가능할 거라고 주장하면서, 그것이 인류의 살 길이라고, 지금 인류가 겪고 있는 문제들에 집중하는 것보다,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 더 인류를 위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는 것.<br>화성에 인간을 보내겠다는 주장. 저자는 하나하나 근거를 들어 그것이 불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무한한 성장이 가능하지 않음도. 그러니 실리콘밸리 기술주의자들의 주장이 실현될 수 없음에도 그들이 그런 주장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를 탐구한다.<br>저자는 그것은 바로 '기술을 통한 구원이 제시하는 초월의 약속'(346쪽)이라고, '현실 세계의 어떠한 위기도 그들 머릿속 상상의 임무보다 중요할 순 없다'(347쪽)고 하면서 '식민지주의의 약탈적 논리는 우주에서의 기술을 통한 구원의 꿈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349쪽)고 비판하고 있다.<br>'기술을 통한 구원에는 만물에 대한 영원한 지배의 꿈과 함께 그 지배 권력을 이용한 '모든 한계 초월하기'도 포함되어 있다'(353쪽)고 하면서 '실리콘밸리의 기술 엘리트들이 지구를 버리는 상상에 빠져드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우주 식민지화는 불로장생을 위한 섭생, 10대들로부터의 수혈, 클라우드에 두뇌 올리기, 영생 비타민 같은 환상들과 찰떡궁합이다'(361쪽)고 비판하고 있다.<br>이들이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인문학, 철학 등에 대한 무관심을 넘어 무시하는 태도 등을 지적하고 있는데... 이것을 '인문부정'이라고 하는데, 이 '인문부정은 기술업계의 또 다른 하나의 고질병의 원인이기도, 결과이기도 하다'(379쪽)고 주장한다.<br>이런 인문부정이 낳은 그들의 사고방식은 무엇일까? 바로 공학자병이라고 하는데, 이는 한 분야(주로 STEM-과학,기술, 공학, 수학)에서 전문가가 되면 다른 모든 분야에서도 전문가가 된다고 믿는 병이라고 한다.&nbsp;<br>이들은 자신이 성공했기에 전문가고,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지, 믿지 않으며 오로지 자신들만이 옳다고, 따라서 인공지능 시대는 다가오고, 인류는 우주로 나아가야 하며, 영생을 곧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기술이 이룰 것이라고...&nbsp;<br>이것을 누가 주도하나? 실리콘밸리에서 기술로 성공한 억만장자들이 투자를 통해서 이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따라서 이들은 자신들의 성장을 위해서 이런 투자를 하는 것이니, 억만장자들을 용인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그것을 가장 간단하게 하는 것이 바로 세금인데...<br>이는 억만장자들의 성공은 개인만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적인 것이 바탕이 되어 이루어진 것이니, 그에 대한 비용을 세금의 형식으로 지불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이는 능력주의에 대한 자연스러운 비판이고, 그렇게 거두어들인 세금으로 인류에게 필요한 다른 연구들, 정책들을 추진할 수 있을 거라고.<br>읽으면서 명쾌하다는 생각. 아, 그렇지 하는 감탄. 인공지능, 인공지능, 우주, 우주, 영생, 영생 하는 시대에 그런 주장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그리고 그것들이 얼마나 허상에 매달리고 있는 것인지를 구체적인 근거들을 통해 반박하고 있는 이 책.<br>이 책은 우리 역시 인공지능이라는 '집단 순응 사고'에 빠져 있지 않나 하고 되돌아보게 하고, 인공지능이 만능이 아님을, 우리 인류가 살아가야 할 곳은 이 지구이고, 이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문제들에 관심을 가지고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함을 깨닫게 해주고 있다.<br>현대에 꼭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인공지능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또한 인공지능에 비판적인 사람들도...&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43/43/cover150/896262710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4434391</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여러이야기</category><title>알제시대 신문에 연재된 네 컷 만화 - [멍텅구리 - 한국 최초 신문 연재 네컷만화로 100년 전 날것의 식민지 조선을 보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37607</link><pubDate>Sat, 26 Sep 2026 13: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3760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42035912&TPaperId=1753760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394/66/coveroff/k14203591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42035912&TPaperId=1753760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멍텅구리 - 한국 최초 신문 연재 네컷만화로 100년 전 날것의 식민지 조선을 보다</a><br/>전봉관.장우리 편저, 이서준.김병준 딥러닝 기술 개발 / 더숲 / 2024년 12월<br/></td></tr></table><br/>종이 신문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예전엔 종이 신문에 네 컷 만화와 한 컷짜리 만평이 실리곤 했는데...<br>네 컷 만화는 이야기가 있어서 보기가 좋았다. 한 컷짜리가 한 컷에 많은 것을 담고 있다면, 네 컷은 흐름이 있어서 이해하기가 쉬웠는데...<br>우리나라에서 신문이 발행된 초기부터 네 컷 만화가 실렸었나 보다. 이 책을 보니 1924년에 '멍텅구리'라는 네 컷 만화가 실리기 시작했으니.<br>이 만화를 통해서 당시 사회-문화를 알 수 있기도 하지만, 한계도 있다. 왜냐하면 신문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은 경제적 상황이 좋고, 지식 수준도 있는 사람일 수밖에 없기 때문.<br>그러기에 이 만화에 나오는 내용이 일반 서민들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여유가 있는 사람의 이야기라고 해야 한다. 기생인 옥매에게 반해 쫓아다니는 내용이 처음 시작이니... 이런 사치를 부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br>게다가 멍텅이는 돈을 물 쓰듯 쓰고 있으니, 당시 일제시대에 그런 경제적 호사를 누리를 수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고 해도 된다. 따라서 이 만화를 보는 사람은 낄낄거리면서 볼 수 있었겠지만, 대다수의 민중들은 이런 신문 만화를 볼 염두도 내지 못했을 것을 감안해야 한다.<br>그러면 소위 지식인들에게 무언가를 전달하는 내용이 만화에 실렸을 텐데, 해설에 의하면 당시 게장 금지라든지, 수입 담배 금지 등의 정책을 비꼬는 내용이 있고, 또 독립만세운동을 의식하는 일본 경찰에 대한 풍자 등이 있으니, 이나마 이 만화들이 당시 지식인들의 비판의식을 자극했다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br>대놓고 일본을 비판할 수는 없지만, 간혹 일제의 정책을 비꼬는 내용이 실리는데, 만화 중에 1926년 1월 2일자는 설날을 양력으로 하라는 일본을 비판하는 내용이 나온다.<br>'우리 설을 치른 줄 아나? 우리 설은 따로 있네!'라는 대사... 우리가 지녀왔던 문화를 강압적으로 바꿀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까. 여기에 '왜갈보는 도처에 있네(1926.3.20)'라는 대사 역시 일본을 비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밖에 치고받고 싸우는 의원들을 보면서 '일본의회 모양이로군(1926.4.22)하는 장면도 있으니...<br>단순히 재미만이 아니라 만화를 통해서 당시 일본을 비판하는 장면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멍텅이와 옥매의 사랑이야기에, 윤바람이라는 친구가 등장하여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만화.<br>그러다 휴간이 되었다 다시 복간이 되었을 때, 1930년대는 편집이 완전히 달라진다. 각 컷에 붙던 설명이 없어지고, 인물들의 모습도 바뀌었는데... 화가가 바뀌었다고 보면 되는데...<br>처음에 그린 화가들은 노수현과 이상범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근대미술을 이끈 사람들... 하지만 1933년으로 가면 다른 이름이 나온다. 인쇄 상태가 좋지 않아 누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김 씨인 것은 확실하다) 많이 다르다. 게다가 이때는 옥매가 나오지도 않는다.&nbsp;<br>물론 1930년대도 당시 사회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만화 내용으로 삼기는 했지만. 그렇게 흥미롭지는 않다.<br>이렇게 일제시대에 연재되었던 네 컷 만화를 영인하고 현대어로 풀이해서 책으로 엮었다. 방대한 작업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런 작업을 한 연구자들이 있기에 당시 작품을 지금 볼 수 있게 된 것.<br>이 만화들을 주욱 보면서 당시 맞춤법이 통일이 되지 않았고, 지금 우리가 쓰지 않는 글자들이 쓰인 것을 보게 되니, 우리글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살펴보는 것으로도 이 책은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394/66/cover150/k14203591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3946674</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과 나 그리고 책</category><title>서정학 시집- 우리 삶도 ‘제법‘이 될 수 있도록</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34517</link><pubDate>Thu, 24 Sep 2026 09: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3451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30081&TPaperId=1753451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1068/69/coveroff/8932030081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nbsp; 주절주절. 시인의 독백을 듣는 듯한 느낌. 시인이 자신의 의도를 독자에게 명확하게 하기보다는, 나는 내 말을 한다, 당신은 당신의 말로 알아들어라 하는 듯한.<br><br>&nbsp;5부로 나뉘었는데, 각 부에 제목을 붙이고, 그 제목 앞에 숫자가 있다. 무슨 숫자지? 잠깐 고민했는데, 답은(답이라고 할지 잘 모르겠지만) 해설에 나와 있었다. (해설이 이 시집을 읽는데 도움을 많이 주었다.)<br>&nbsp;연도란다. 17흔적, 06상자, 04연맹, 00프랑스, 99반복. 해설에 따르면 이 시집은 2017년부터 시작해 1999년으로 끝난다고 할 수 있다. 시간의 흐름을 뒤집어 놓은 것.<br>&nbsp; 그렇다면 시집을 거꾸로 읽으면 어떨까? 우리는 과거에서 현재로 오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니... 학교에서 역사(국사)를 공부할 때도 아주 먼 과거부터 배워 현대로 왔으니...<br>별의 역사도 마찬가지 아닌가. 별의 탄생, 빅뱅부터 시작해 지금의 우주로 오지 않나? 그런데 시인은 거꾸로 배치를 했다. 시간의 흐름과 반대로. 이는 현재에서 과거를 바라봐야 한다는 얘기인가?<br>시집의 처음에 실린 시, 그러니까 현재를 대변하고 있는 시가 '제일 앞자리엔 채리가 앉는다'(9-11쪽)이다. 채리? 모르는 사람. 굳이 알려고 할 필요가 없는 사람. 누구나 채리가 되어야 하니까. 적어도 이 시집을 읽는 사람이라면 그가 바로 채리가 되어야 한다.&nbsp;<br>왜? 시인이 이렇게 말하고 있으니까.<br>'앞자리엔 채리다 ...(중략)... 누군가의 채리가 자리에, 그것도 익숙한 앞에 앉아야 다음 장을 넘길 수 있다. ...('제일 앞자리엔 채리가 앉는다'에서)<br>앞자리, 이것을 현재라고 하면, 현재를 인식한 사람만이 과거를 반추할 수 있다고, 즉 의식적으로 과거를 돌아봐야 하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과거에 잠식당해 절대로 앞자리에 앉을 수 없다고 하는 듯하다.<br>이 시의 맨 마지막 문장이 '씨니까'인데, 씨가 바로 시다. 그러니 씨가 발아해서 자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바로 앞자리에 앉은 사람의 몫. 아니 씨를 자라게 하려면 반드시 앞자리에 앉아야 한다는 것.<br>그렇지 않으면 씨는 발아하지 않고 썩어버리고 말 테니까. 시 역시 마찬가지다. 이렇게 발아되지 않는 시들이 얼마나 많은가. 발아하지 못하고 묻혀 버리는 삶이 얼마나 많은가.&nbsp;<br>시를 독자들이 발견하듯이 삶도 자신이 발견해 키워야 하지 않을까? 시라는 씨, 삶이라는 씨. 결국 시를 읽는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발견한다는 것. 발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심고 물주고 보듬어 잘 자라게 하는 것.<br>그럼에도 우리네 삶은 '제법 잘살았네'라고만 할 수 있어도 괜찮은 삶이었다는 것. 시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제법 괜찮은 시네라고만 해도 제 역할을 한 시라고...<br>그렇지 않으면 '스무 개가 겨우 천 원'('동네에서 가장 싼 프랑스'에서. 61쪽)에 팔리는 상품과 같이, 한꺼번에 묶여서 넘어가지 않을까. 자신 스스로 가치를 지니지 못하고 다른 존재들과 묶여서 처분하듯이 팔려나가는 상품처럼, 그렇게 홀로 서지 못하고 이리저리 시류에 휩쓸리는 삶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br>'제법'이라는 말. 부정적으로 쓰기도 하지만, 아니다. 이때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해도, 그 부정 속엔 긍정이 내포되어 있다. '그 녀석 제법 하네.'라는 말 속엔 기대하지 않았는데, 그 기대를 넘어섰다는 뜻이 담겨 있으니...<br>인생을 제법 잘살았다는 것은 기대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았다는 얘기니, 시도 마찬가지다. 그 시 제법이네라는 말. 이 말은 시라는 씨를 심을 가치를 발견했다는 말이다. 심어서 키울 마음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고.<br>하여 시인은 이 시집의 마지막 시인 '제법,'에서 '대단한 일은 아니다. 대단한 일은 아니라고 쓸 뿐이다'('제법,' 중에서. 84쪽)라고 했지만, 시집의 시들이 우리를 '앞자리에 앉게 하고 다음 장을 넘길 수 있게' 한다고 할 수 있다.<br>주저리 주저리... 하지만 이 주절거림 속에서 삶을 발견하고 시의 씨앗을 심을 마음을 먹었다면, 심은 씨앗과 자란 결과가 결코 같지 않음을, 씨의 상태를 잊고 자란 결과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 시집을 '제법,' 읽었다고 할 수 있을까?<br>제법,<br>&nbsp; 한때는 그 문장, 그 단어들은 시였다. 글자와 글자는 접착제로 제법 튼튼하게 붙어 있었고, 뼈대는 비록 얼기설기 엉켜 있었지만 나름 튼튼했고, 알록달록한 단어들은 제법 아름다웠다. 한때는 그 종이에 시가 쓰여 있었다. 비록 별것 아니었지만 분명, 그건 시였다. 잠깐 시였지만, 지금은 아니다. '제법'이라는 접착제가 제법 많이 쓰였고 현대시라는 관점에서는 좀 모자랄 수도 있었겠지만 제법 많은 사람들이 그 시를 한때, 좋아하기도 했었다. 그 시는 분명 시였다. 지금은 제법 시였던 어떤 것이다. 제법 시다웠지만 다, 한때의 일일 뿐이다. 그냥 그 종이 위에는 이제, 검은색 글자들과 약간 색이 바랜 여백들과 나름의 침묵이 남아 있다. 쓴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나 지금 와서는 제법 아쉽지만 수긍하는 수밖에 없다. 뭐, 대단한 일은 아니다. 대단한 일은 아니라고 쓸 뿐이다.<br>서정학, 동네에서 가장 싼 프랑스. 문학과지성사. 2017년 초판 2쇄. 84쪽.<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1068/69/cover150/893203008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10686938</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이야기</category><title>흔들리는 미국의 현실, 제대로 봐야 한다 - [미국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 흔들리는 제국의 초상]</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32430</link><pubDate>Wed, 23 Sep 2026 10: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3243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02139511&TPaperId=1753243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98/8/coveroff/k50213951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02139511&TPaperId=1753243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미국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 흔들리는 제국의 초상</a><br/>이정민 지음 / 사이드웨이 / 2026년 06월<br/></td></tr></table><br/>미국이 어떻게 무너지는가에 대한 분석이라기보다는, 이미 세계 패권국으로서의 면모를 잃어가는 미국의 모습을 살피고 있는 책이라고 봐야 한다.<br>미국이 움직이면 세계가 따르던 시대가 지나고, 이제는 미국 역시 강대국 중 하나로 떨어지고 있는 시점이 아닌가 하는데, 트럼프라는 사람이 무지막지하게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데, 이 책을 읽다보면 이것이 꼭 트럼프가 아니더라도 지금 이 시대에 미국 대통령이 된다면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br>트럼프와 똑같이 그렇게 막무가내로 하지는 않겠지만, 이미 힘을 잃은 미국으로서는 더 이상 힘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정치, 경제, 외교, 군사 분야에서 변해야 하기 때문이다.<br>경제적으로도 흔들리고 있지만 군사적으로도 흔들리고 있다. 그것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수라고 한다. 계획을 짜고 미래를 도모하는 철수도 아닌 허겁지겁 그야말로 쫓기듯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물러난 미국.<br>이때 미국과 함께했던 동맹국들에게도 제대로 통보하지도 않았고, 미국에 협력했던 많은 사람들, 하다못해 미국의 지지로 성립되었던 아프가니스탄 정부에도 알리지 않았다고 하니... 참. 세계의 경찰이라는 미국의 현재 모습을 볼 수 있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br>미국이 이렇게 힘을 잃어간 것을 간파한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그것을 제대로 제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미국의 현실.&nbsp;<br>이런 상황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지금까지의 미국과는 다른 정책을 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 주장에 동의한다. 다만, 미국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이 그럼에도 약 50%정도라고 한다면, 미국이 쇠퇴하는 세계적인 흐름 속에서 트럼프와는 다른 방향으로 미국을 이끌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br>왜냐하면 지금 미국이 중국을 경쟁상대로 여기고 중국을 견제하는 정책을 펴는데, 이는 여전히 패권을 잃지 않으려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미국의 이익을 최대로 챙기려는 모습. 그것을 자신들이 세계 최강국이었을 때는 민주주의와 세계평화라는 탈로 가릴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이 불가능해진 상황.<br>그러니 노골적으로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정책을 펼 수밖에 없는데, 미국의 이익만이 아니라 세계와 이익을 함께하는 정책으로 나아가려고 하지 않으니, 그것은 이익을 앞세우는 세력들이 있기 때문이다.<br>기존에 자신들이 지녔던 이익을 잃지 않으려 하는 집단들은 그 이익을 위해서 적을 만들어낸다. 내부의 분열은 외부 적을 만들어냄으로써 봉합할 수 있으니까. 이런 미국에서 외부의 적으로 삼은 나라가 중국이다.&nbsp;<br>중국을 적대시하고, 중국의 위협을 과장하여 자신들의 정책을 합리화하려 한다. 그렇게 나아가고 있다. 또 중국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다른 나라들에 압력을 가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관세와 방위비 분담. 심지어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다른 나라 영토까지도 내놓으라고 한다. 미국이 이란을 공격한 이유도 이것과 상당한 관련이 있음을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으니...<br>지금 미국이 세계 패권국의 자리를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그런 정책들이라면, 앞으로는 어떨까?<br>미국이 달러의 영향력을 잃지 않기 위해 또 자신들의 패권을 잃지 않기 위해 집중하고 있는 것이 블록체인(스테이블코인)과 AI라고 하는데... 이것이 세계평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미국의 패권을 잃지 않기 위한 것이라면, 미국의 동맹국이라고 하는 우리나라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br>저자가 마지막 부분에서 짧게 언급하고 있지만, 미국과 중국 사이에 있는 우리나라. 지금 현명하게 외교를 할 때다. 그렇지 않으면 과거에 겪었던 비극을 또 겪게 될지도 모르니...<br>다행히 우리는 저력이 있는 나라다. 이미 그러한 강대국 사이에 낀 경험을 한 역사도 있고. 기술 발전이나 군사력이 세계 최고는 아니어도 세계에서 손꼽히는 나라이고, 경제력으로 말해도 선진국에 올라섰으니... 당당한 자립국가로서 균형을 잡을 수 있어야 한다.<br>지금 트럼프로 인해 시험대에 올라섰는데... 어떻게 될지.<br>이 책은 그간 미국의 정책이 왜 이렇게 흘러왔는가를 살피는 데 도움이 된다. 패권국에서 그 힘을 잃어가면서 미국이 정책을 바꿀 수밖에 없는 이유, 과정이 잘 나와 있으니 말이다. 여기에 중국과의 관계, 지금 양대 강국이라고 하는 미국과 중국이 대립하는 과정, 그리고 세계에 진출하는 상반된 모습 등이 잘 나와 있어서 현실을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br>그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지금 우리나라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어떤 말을 미리 하는 것은 성급하겠다. 하지만 이러한 세계적인 흐름을 읽고 그 흐름 속에서 우리나라의 국익을 해치지 않는 정책을 펼치도록 해야할 때라는 점만은 확실하다.<br>적어도 이 책을 읽으면 트럼프만을 욕하지는 않게 된다. 트럼프 역시 쇠락하는 미국을 이끄는 사람일 수밖에 없으니까. 다만, 그 방식이 참, 마음에 안 들어서 그렇지. 그러니 트럼프 개인을 욕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세계적인 추세를 읽고 거기에 대비하는 준비를 해야겠다.<br>진단은 훌륭한 책이다. 이제 진단이 나왔으니 처방을 할 차례. 그 처방이 어떨 것인가? 우리를 위한 처방일지, 미국에 끌려다니는 처방일지... 지켜봐야 한다. 아니 우리를 위한 처방이 되도록 우리 역시 눈 똑바로 뜨고 지켜봐야 한다. 우리가 역사 속에서 겪었던 비극을 또다시 겪으면 안 되지 않겠는가.<br>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 있는 미국의 군사정책을 간단히 소개한다. 이렇게 미국이 변했다고...<br>'국방부는 미국 국방의 우선 순위는 중국 견제와 본토 방어에만 한정된다고 선언했다. ... 중국은 유일한 주요 위협이며, 중국의 대만 점령을 저지하는 동시에 미국 본토를 방어하는 것이 미국 국방부의 '유일한' 주요 시나리오다.' (49쪽)<br>이런 점에서 '한반도는 더 이상 동맹 방어의 종착점이 아니라, 미중 전략 경쟁의 핵심 거점이 된다'(36쪽)라고 한다.&nbsp;<br>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98/8/cover150/k50213951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4980894</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의미 찾기에 앞서 재미있는 소설 - [타이탄의 세이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30506</link><pubDate>Tue, 22 Sep 2026 10:4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3050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88969&TPaperId=1753050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367/25/coveroff/895468896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88969&TPaperId=1753050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타이탄의 세이렌</a><br/>커트 보니것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0월<br/></td></tr></table><br/>그냥 재미 있다. 내용이 현실적이지 않아도, 허황되다는 생각이 들어도 재미 있게 읽을 수 있다. 도대체 뭔 얘기야? 의미를 찾을 수가 없네 하지만, 굳이 의미를 찾지 않아도 된다. 재미 있게 읽고 나면 그뿐.<br>그것이 삶일 수도 있다. 삶의 의미! 참 중요하다고 한다. 의미를 찾지 못하는 삶은 건강도 해친다고, 빅터 프랭클을 인용하지 않아도, 우리는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 붙이기를 좋아한다.<br>그렇지 않으면 도대체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하게 되니까. 하지만 모든 행동에 의미를 찾기 시작하면 삶이 피곤해진다. 의미 없는 일이 무엇인지 규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일을 하지 않아야 하는데, 도대체 삶에서 의미 없는 일이 무엇인지 찾는다는 것 자체가 너무도 힘든 일이다.<br>모든 것에는 의미가 있고, 또 모든 것에는 의미가 없을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의미 찾기를 하는 사람들은 종교에 빠져들기도 한다. 자신이 찾지 못하고 있으니 전능한 존재에게 의미를 맡기는 것이라고나 할까.<br>그 존재가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했고, 우리는 그 뜻에 맞게 살면 된다고 하면 자신의 책임을 벗어날 수 있으니까. 무엇보다 의미를 찾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되니까.<br>하지만 종교를 믿더라도 가끔은 이것이 신의 뜻인가 하고 의심하기도 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다른 삶을 살게 될 때는 특히 더.<br>소설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작가가 무엇을 의도하고 있는지, 작품의 의미를 찾으려고 한다. 집중해서 읽고, 어떤 단서 속에서 아, 이것이 이 소설의 의미구나 했을 때 잘 읽었다는 생각도 든다.<br>그러나 많은 작품들에서는 그러한 의미를 찾지 못한다. 그냥 미로 속에서 헤맬 뿐이다. 그러다 에라 모르겠다. 의미는 무슨? 그냥 읽으면 되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br>이 작품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종교 이름을 보라. '철저히 무관심한 하느님의 교회'라고 나온다. 인간에게 관심이 없단다. 그러니 나는 신의 선택을 받아서 하는 일들이 잘돼라는 말은 헛소리가 된다.<br>그냥 살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소설에 이런 표현이 나온다. 주인공이 사람들의 질문에 답한 말이 이미 이렇게 적혀 있었다는 것.&nbsp;<br>'나는 일련의 우연에 희생당한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듯이.'(299쪽)<br>삶은 우연이다. 아니, 이 소설은 필연이다. 트랄파마도어라는 행성에서 메시지를 나르던 존재의 우주선이 고장나서 부품이 필요한데, 이 부품을 그 우주인에게 가져다주기 위해 지구인들의 행동을 조절했다고 하는.<br>그것을 알고 분노하는 사람도 나오는데, 그럼에도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런 짜여진 구조 속에서 인간이 살아가더라도, 인간은 그때그때 자신의 행동에 최선을 다한다. 자신이 선택을 한다. 그 선택조차도 조정된 것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br>이렇게 우주인에 의해 조정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도 주인공은 살아간다. 그 나름대로의 삶을. 시간이 지나면 그 우주인에게 부품을 전달한 다음에 지구인들의 생활은 어떻게 되는가? 그때도 트랄파마도어에 조정당하게 되는가?<br>아니다. 그들이 지구인을 조정할 이유가 없다. 지구인은 그냥 지구인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래서 소설을 읽어보면 트랄파마도어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마치 예정조화설을 만나는 듯한 느낌을 받는데 이러면 커트 보니것이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한다.<br>커트 보니것이 어떤 작가인가? 냉소적인 풍자를 하는 작가 아닌가. 종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 그렇다면 트랄파마도어를 도입해서 그들이 지구인을 조정했다는 장면, 부품을 나르게 하는 과정이 지구의 역사였다는 서술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br>트랄파마도어인(소설에서는 기계로 나오지만 여기서 그냥 등장인물이라고 '인'이라 하자)이 나르는 메시지가 무엇인가? 안녕이다. 안녕은 처음 만나는 사람끼리 서로의 경계를 낮추고 함께 만나는 장을 만드는 말이 아닌가.<br>그렇다면 이 '안녕'이란 말은 서로 대등한 관계로 인정하는 말 아닌가. 하여 소설 속에서 정해져 있다는 것은 우리가 삶을 되돌아보면서 우연 또는 자신의 행동으로 이루어진 일들을 하나의 체계 속에 넣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일을 보여준 것이 아닐까?<br>소설 속에서도 끝부분에서야 이런 일이 밝혀지니, 그 전까지는 조종당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자기 의지를 가지고 기억을 하면서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었으니, 결국 큰 틀에서 보면 우리가 벗어날 수 없는 삶의 궤적을 따라갈 수밖에 없지만, 그 궤적 속에서 각자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 아닐까.<br>각자의 삶이 소중한데, 그것을 망각하고 큰 틀에 자신을 맞추려고 하는 것, 그런 것이 문제라고 작가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br>뭐,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것도 이 작품의 매력이겠지만, 정말 작가가 어떤 의미를 주려고 했는지 찾기는 힘들다. 그냥 재미 있게 읽고, 어, 이런 삶도 있었네. 와, 이 중에 지금 우리가 받아들여도 되는 삶도 있네 하면 되지 않을까.<br>소설에서 철저히 무관심한 하느님의 교회를 믿는 사람들은 남들보다 잘난 점을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이들은 스스로 핸디캡을 적용해 살아가는데, 가령 체력이 남보다 좋은 사람은 무거운 주머니를 달고 다녀, 남들과 비슷한 체력이 되게 한다거나 하는 등, 결국 그들은 '누구도 다른 사람을 이용하지 않는다는 사실'(293쪽)이 그 종교를 믿는 사회라는 서술이 나온다.<br>이 핸디캡을 이용하면 '아무도 당신이 운이라는 무작위적인 방식을 이용했다고 당신을 책망하지 못할 겁니다.'(296쪽)라는 표현으로, 지금의 능력주의를 이미 오래 전에 비판하고 있다고 할 수 있으니...<br>뭐, 이런저런 현대 사회에서 참조할 만한 사항들을 찾을 수 있다는 것에서 만족을 하면서... 나중에 다른 해설들도 참조해서 한번 더 읽어봐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0367/25/cover150/895468896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3672536</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과 나 그리고 책</category><title>김선우 시집-‘사이‘, 대등하게 채워야</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27215</link><pubDate>Sun, 20 Sep 2026 15: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27215</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24610&TPaperId=1752721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7668/43/coveroff/8936424610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 해설에 이런 말이 있다. 김선우라는 시인에 대해, 그의 시에 대해 종합적으로 이야기했다고 볼 수 있다.&nbsp;<br>'그의 시에는 늘 다채로운 감각과 사유가 저마다의 자리에서 빛을 낸다. 생명에 대한 예민한 관찰, 시민성에 대한 적극적 발언, 기후위기와 생태적 환경의 파괴에 대한 직설적 반성, 자본을 향한 씩씩한 비판, 차별 없는 사랑과 연대에 관한 섬세한 이미지 등등.' (122쪽)<br>딱 맞는 말이다. 지금까지 내가 읽은 김선우의 작품은 그랬다. 시만이 아니라 소설도. 그렇지만 이렇게 총평으로 이 시집을 평가할 수는 없다. 이것은 김선우 시 전반에 관한 이야기지, 이 시집에 관한 정리는 아니라고 본다.<br>물론 이 총평이 이 시집에도 적용이 되지만, 그럼에도 이번 시집에는 그 전의 시집에서 주던 느낌과 다른 무엇이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어쩌면 이 시집의 시들은 의미가 더 쉽게 전달되도록 쓰여졌는지도 모른다.&nbsp;<br>시인이 자신의 세계에 갇히지 않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모습. 시로 서로 얽히는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고나 할까. 어쩌면 시인이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시인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이 시집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br>'시인과의 대화'란 시가 있다. 이 시에 나오는 몇 구절.<br>'본래 쓸쓸한 세상인걸요. 사람에게는 사이가 있으니. ... 시가 없으면 반드시 시가 태어나죠. 인간(人間) - 사람 사이는 채워야 하기에. ... 시인이 없는 세상은 없어요.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가는 한. ... 사람에게서 사이를 보았다면 당신은 시인이에요. ... - 사이가 더 커지지 않는 세상. / 우리 모두 시인인 세상을 엿보며 / 시인은 이렇게 무사태평이다.'('시인과의 대화' 중에서. 30-31쪽)<br>그렇다. 시인이라는 특별한 존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시인이 되어야 하는 세상. 그런 세상을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이 시집이다. 하여 시인은 자신의 조카가 짖는 모습을 보고도 '네가 짖는 대신 개에게 사람의 말을 가르치면 되잖아, 이런 따위 말만큼은 하지 않는 걸로 시인 이모의 소임을 다하는 시간.'('쉬잇! 조심조심 동심 앞에서는' 중에서. 36쪽)이라고 표현한다.<br>인간 중심에서 벗어난 것이다. 다른 모든 존재를 인간과 동등한 존재로 대하는 모습. 그런 모습은 '야생 사과나무 앞에서 열매 하나를 얻기 위해 / 나무에게 말을 걸던 만년 전 사람을 떠올린다/.../사슴 한마리 앞에 인간 한마리로 온전히 대결하던 조상을 떠올린다'('마스크에 쓴 시 2'에서. 62쪽)는 표현으로 나타난다.<br>'사이'는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다른 존재들 사이에도 있다. 그리고 그 사이를 채울 때는 자신의 관점에서 채우는 것이 아니다. 상대와 나를 둘 다 존중하고 인정하는 상태에서 그 사이에 자신을 놓아두는 것. 그것이 바로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 아닐까.<br>어느 한쪽으로 끌어당기는 일이 있으면 안 된다는 것. 그러니 동물들에게 사람의 말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도 동물의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이는 상대가 되어보는 일, 그것이 바로 사이를 채우는 일이라고 하는 듯하다.<br>이렇게 사이를 채우지 않고 자신 쪽으로만 끌어당기려고 하는 존재가 있으니, 시인은 그에 대해서 상당히 비판적이다. 그 존재는 바로 자본이다. 자본은 성장, 성장 하면서 상대를 자신에게 속하게 만들려고 한다. 어느 것이든 있는 그대로 놓아두지 않는다.&nbsp;<br>계속되는 잠식. 이런 잠식으로 인해 인간은 자신들이 살아갈 공간을 스스로 파괴하고 있다고 시인은 보고 있다. 그래서 시인은 멈추어야 한다고 외친다. 이 시집 곳곳에서 이렇게 멈추라는 말이 많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br>멈추지 않으면 온갖 감염병으로 시달리게 되는데, 이 시집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삶의 모습이 제3부에 '마스크에 쓴 시 1~14' 연작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 연작시에는 '멈춰야 해'라는 말이 강하게 나오고 있다.<br>이런 감염병은 결국 인간이 다른 존재에게서 빌린 것이 아니라 '함부로 빼앗은 것들'이라고, 그래서'존재의 벼랑 앞에/한줄의 시로 부끄럽게 엎드린 마음'을 지녀야 한다고... 이렇게 부끄러운 마음을 우리 모두가 지닌다면 '내일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마스크에 쓴 시 13'에서 인용. 80-81쪽)<br>이렇게 시인은 인간들만의 관계에만 사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에는 사이가 있고, 이런 사이들을 채우되 한쪽으로 끌어들이는 채움이 아니라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그 사이에서 함께하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한다.&nbsp;<br>이런 삶을 살기 위해서 반성하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고... 그런 마음이 이 시집 전체에 나타나 있으니, 해설에서 말하고 있는 정리가 이 시집에도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br>좋은 시가 많은데, 이 시, 기억해두고 싶다. 어쩌면 사이를 채우는 일을 이렇게 잘 표현한 시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br>&nbsp; &nbsp; &nbsp;그러니까 사랑은, 꽃피는 얼룩이라고<br>&nbsp; &nbsp; 네가 있던 자리에는 너의 얼룩이 남는다&nbsp; &nbsp; 강아지 고양이 무당벌레 햇빛 몇점&nbsp; &nbsp; 모든 존재는 있던 자리에 얼룩을 남긴다<br>&nbsp; &nbsp; 환하게 어둡게 희게 검게 비릿하게 달콤하게&nbsp; &nbsp; 몇번의 얼룩이 겹쳐지며 너와 나는&nbsp; &nbsp; 우리가 되었다<br>&nbsp; &nbsp; 내가 너와 만난 것으로 우리가 되지 않는다&nbsp; &nbsp; 내가 남긴 얼룩이 너와&nbsp; &nbsp; 네가 남긴 얼룩이 나와&nbsp; &nbsp; 다시 만나 서로의 얼룩을 애틋해할 때&nbsp; &nbsp; 너와 나는 비로소 우리가 되기 시작한다<br>&nbsp; &nbsp; 얼룩이 얼룩을 아껴주면서&nbsp; &nbsp; 얼룩들은 조금씩 몸을 일으킨다&nbsp; &nbsp; 서로를 안기 위해&nbsp; &nbsp; 안고 멀리 가면서 생을 완주할 힘이 되기 위해<br>김선우. 내 따스한 유령들. 창비. 2021년. 107쪽.<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7668/43/cover150/8936424610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6684318</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과 나 그리고 책</category><title>함께하는 팔레스타인-팔레스타인을 향한/위한 응답의 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25140</link><pubDate>Sat, 19 Sep 2026 08: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25140</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971588&TPaperId=1752514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539/14/coveroff/897297158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92130702&TPaperId=1752514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25/32/coveroff/k492130702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32138063&TPaperId=1752514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66/46/coveroff/s102139312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62130735&TPaperId=1752514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84/82/coveroff/k962130735_3.jpg" width="75" border="0"></a>&nbsp;<br/><br/> &nbsp; 세 색깔의 표지가 있는 시집이다. 북펀드에 응모했더니, 내게는 초록색 바탕의 시집이 왔다.<br><br>&nbsp; 표지에 있는 네 가지 색깔, 팔레스타인 국기에 있는 색깔이다. 내가 알고 있는 국가의 깃발이 몇 개 되지 않지만, 왜 세 표지 중에서 랜덤으로 보내줄까 했더니, 이것이었다.<br>팔레스타인 국기에서 따온 것. 그렇게 시집은 표지에서부터 팔레스타인에 응답하고 있다. 시집 제목을 보라. '(팔레스타인을 향한/위한) 응답의 시' 아니던가.<br>괄호가 마음을 울렸다. 괄호, 직접적인 행동을 하지 않더라도 이렇게 멀리서나마 마음으로나마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nbsp;<br>혼자가 아니라고, 함께하는 사람이 있다고, 당신들에게 응답하는 존재들이 세계 곳곳에 있고, 멀디 먼 한국에도 있다고 하는 듯한, 괄호. 그리고 응답.<br>이 시집을 읽기 전에 먼저 '이스라엘'에 대해서 생각했다. 이스라엘? 지금은 나라 이름이지만 사람 이름이기도 했는데, 누구였더라? 오래 전에 본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검색했더니, 야곱이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었다더라.<br>성경 (대한성서공회가 번역한 개역한글판 성경전서-1995년-) '창세기 32장 28절에 보면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라고 나온다.<br>이 야곱이 누구냐? 아버지 이삭의 축복을 받기 위해 형과 아버지를 속인 사람 아니던가. 여기에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다니,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는 민족이라고 하겠다.<br>선민의식, 그것을 지니게 된 것이 이 야곱, 이스라엘로부터 시작되지 않았나 싶은데, 그간 서양의 역사에서는 '예수'를 팔아넘긴 민족이라고 해서 온갖 억압과 탄압을 받았다지만 그들이 지닌 이 선민의식을 버리지 않았으니...<br>현대에 들어 남들이 살고 있던 땅을 점령하고, 공존하기보다는 또다시 이기려고 점점 팔레스타인을 침략해 땅을 점령하고, 유대인들을 정착시키는 정책을 펴고 있으니... 단순한 정착이 아니라 배제와 추방을 동반한 정착이니...<br>또 이기려는 것인가? 누구를? 강한 자가 아니라 약자를, 더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사람들을 물과 식량부족으로 스스로 나가게 하려는지, 저항하려는 사람을 군인, 민간인, 어른, 아이 가리지 않고 폭격으로 죽게 만들고 있으니...<br>그럼에도 세계는 침묵하고 있다. 유대인에 대한 원죄의식이 있어서인지, 나서지 않으려 한다. 그들이 자신들이 당한 것처럼 팔레스타인을 학살하고 있는데도 세계는 침묵하고 있다. 아니, 침묵하지 않는데, 많은 언론들이, 더욱 강한 자들이 다뤄주지 않고 있다.<br>그들의 입을 막고 있다. 다른 사람들의 귀를 막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 참상이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아니다.<br>우리나라에서도 그렇지 못한 시인들이 있다.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직접 행동을 할 수 없더라도 조그마한 목소리라도 보태려 한다. 아니, 보태야 한다. 그래야 이 참상이 멈출 수 있으니까.<br>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응답, 그것이 직접적인 효과를 발휘하지는 못할지라도 팔레스타인이 홀로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겐 할 수 있다. 또 더 큰 비극을, 참상을 막으려는 움직임을 일으킬 수 있다.&nbsp;<br>그래서 필요하다. 응답이... 시인들이 침묵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그 이유일 것이다. 미약한 목소리나마 내려고 하는 것. 이런 시인들의 응답이 저 멀리 가 닿기를... 직접적이 아니더라도 그 마음이 그들에게 전해지기를...<br>시인들이 이런 응답을 할 때 나같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응답은 무엇일까? 지금 할 수 있는 일, 이런 시인들의 응답에 나 역시 응답하는 것. 시집이 널리널리 읽히도록 하는 것. 팔레스타인의 진실이 가려지지 않도록 하는 것.<br>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몰아내는 것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것이 진정으로 이기는 것이라는 것을, 그들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배제가 아니라 포용으로 사용하기를 바라는 것.<br>현대에 과학기술은 인류를 불멸로까지 이끌려고 하는데, 그러한 불멸로 가기 전에 전쟁으로 인해 사람이 죽어나가면 안 되지 않겠는가? 최첨단 무기들이 사람을 죽이는 데 쓰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데 쓰이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nbsp;<br>평화를 향한 외침. 그것이 우리의 응답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시집을 읽으며 팔레스타인에 응답한 시인들에게 고맙단 마음이 들었다. 이젠 시인들만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응답할 차례라는 생각이 들고.<br>이 시집에서 '못 묻는다'는 송정원의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다녀올게만 있고 다녀왔어는 없는 무수한 하루가'(145쪽)... 이런 현실이 지금 팔레스타인, 특히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세상에, 이 땅에는 '안녕'이 없다. 우리가 흔히 하는 인사 '안녕하세요'를 하기 힘든 상황. 그러니 시인들이 나설 수밖에. 팔레스타인에 응답할 수밖에.<br>이 시집이 응답하는 시라면, 직접 그들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책들이 있다. 그 책들도 함께 읽으면 좋을 듯하다. 많겠지만, 내가 읽은 책으로는 이 정도.<br><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84/82/cover150/k962130735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9848251</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여러이야기</category><title>죽음, 그 과정을 보여주다 - [죽음의 에티켓 - 누구도 말해주지 않은 당신의 마지막에 관하여, 개정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23300</link><pubDate>Fri, 18 Sep 2026 08: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2330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02130275&TPaperId=1752330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46/82/coveroff/k70213027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02130275&TPaperId=1752330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죽음의 에티켓 - 누구도 말해주지 않은 당신의 마지막에 관하여, 개정판</a><br/>롤란트 슐츠 지음, 노선정 옮김 / 스노우폭스북스 / 2026년 06월<br/></td></tr></table><br/>죽음, 누구나 피하고 싶은 것.&nbsp;<br>알지 못하기에, 더더욱 두려운 것.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결코 평화롭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더 맞이하고 싶지 않은 것.<br>그렇지만 피할 수 없는 것. 아직까지는. 언젠가는 피할 수 있을까? 그렇게 되면 지구가, 우주가 견디지 못하겠지. 포화상태가 될 테니까.<br>이렇게 죽음은 생각하기조차 싫은 것. 남에게 일어날 수는 있지만 내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 또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 그러나 살면서 점점 죽음을 만나게 되는 횟수가 늘고, 언젠가는 그것이 자신에게도 올 것임을 생각하게 된다.<br>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이 있지만, 누가 죽음을 즐길 수 있을 것인가. 죽음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다만, 죽음 앞에 담담할 수는 있겠다. 담담함. 그것이 겉으로 꾸미는 일일지라도 그렇게 보이도록 한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덜 충격을, 슬픔을 줄 수 있지 않을까.<br>한때 '유언장 쓰기'가 유행했었다.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고 어떤 말을 남길까 생각해 쓰는 활동. 이는 죽음을 생각한다기보다 죽음으로 인해 삶을 더 잘살기 위한 방편으로 하는 활동이기도 했다. 죽음이라는 끝을 향해 가면서 삶을 의미 있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으로.<br>이와 비슷한 활동이 '관 속에 누워보기'란 활동이 있었다. 죽은 다음 들어가는 관. 그 속에 들어가 있으면서 죽음과 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상황을 경험해보라는 것. 다 삶을 잘살기 위한 방편의 활동이었다.<br>이렇게 우리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비슷한 활동을 하면서도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더 의미 있게 보내는 방편으로 활용을 한다. 역시 죽음은 내 일이 아닌 것이다. 내 일이 아니기에 이런 활동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역시, 내 삶은 소중해! 하면서.<br>하지만 이 책은 그것과는 다르다. 우리가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죽은 다음의 과정은 어떻게 되는가를 알려주고 있다.<br>아파서, 나이들어서 또는 사고로 죽은 세 명의 사람을 예로 든다. 그들 죽음의 원인은 다를지라도, 또 죽음의 원인에 따라서 다음 과정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br>죽음 직전에 신호가 오고(사고는 물론 다르다), 고통이 함께하며, 그 다음에 숨이 멎는다. 숨이 멎으면 신체에 변화가 오고, 의사가 와 죽음을 확인하고 증명서를 내준다. 다음 장례 절차가 진행이 되고, 매장 혹은 화장이 된다. 그 다음에 기일을 맞이하여 주변 사람들이 추모를 하고, 점점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진다.<br>이런 과정을 자세하게 구체적인 사례들을 들어서 알려주고 있는 것이 이 책이다. 우리는 대체로 죽음 하면 죽어가는 과정에 중심을 두고 있지만, 이 책은 전체적인 과정을 살펴보고 있다고 할 수 있다.<br>이 표를 보라.<br>삶과 죽음의 곡선이 위아래가 반대인데, 이상하게 두 곡선이 만나서 연결되지 않는다. 이 말은 삶과 죽음이 동시에 존재하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다. 마치 영화기법 중에 OL(오버랩) 기능처럼 겹치는 시간.<br>이렇게 삶 속에서 죽음이 시작하기 때문에 가장 좋은 방법은 죽음을 자신이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것. 죽음은 다른 사람의 것이 아닌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기도 한데... 이 구절을 읽으면서 예전 우리나라 어른들이 죽음을 준비하던 것이 생각났다.<br>자신의 무덤을 미리 마련하고 (선산이 있는 경우 말고도, 근대에 들어서도 자신의 무덤을 미리 마련해두는 어른들이 많았다), 죽어서 입을 수의를 맞추어 놓았으며, 또한 죽은 후에는 어떻게 하라는 말까지 (유언이라고 할 수 있다) 하고, 어떤 이들은 죽음을 맞이하여 스스로 곡기를 끊고 죽음에 이르기도 했다고 하니.<br>그런 전통들이 사라져가고, 이젠 죽음마저도 의사의 손에 맡겨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그럼에도 죽음은 자신의 것이라고... 준비하는 것이 죽음의 에티켓이라고 하는 듯하고... 죽은 다음에야 이제는 장례 절차에 따라 살아있는 사람들의 몫이지만, 그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장례를 끝내는지를 다큐멘터리 식으로 보여주고 있다.<br>이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면 예전의 '유언장 쓰기, 관 속에 누워보기'와 비슷한 역할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br>그래, 적어도 갈 때 올 때보다 좋은 모습으로 가야 하지 않겠는가 하니, 그만큼 준비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고.<br>여전히 죽음은 두렵지만 그렇다고 피할 수는 없으니, 저자의 말대로 '그렇기에 우리는, 당신은, 나는 준비해야 합니다. / 내 삶이 오직 나 자신의 방식이었던 것처럼 죽음 또한 온전히 내 방식대로 이뤄져야' 하기 위해서라도 기본적인 준비는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br>이 책은 그만큼 죽음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해준 책이라고 할 수 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46/82/cover150/k70213027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468236</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여러이야기</category><title>시와 사상의 만남-하이네와 마르크스 - [독일. 어느 겨울동화 / 공산당 선언 - 시와 사상의 만남]</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21417</link><pubDate>Thu, 17 Sep 2026 09: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2141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4054626&TPaperId=1752141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957/59/coveroff/899405462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4054626&TPaperId=1752141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독일. 어느 겨울동화 / 공산당 선언 - 시와 사상의 만남</a><br/>하인리히 하이네 & 카를 마르크스 & 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홍성광 옮김 / 연암서가 / 2014년 12월<br/></td></tr></table><br/>하이네의 시와 한때 우리나라에서 읽으면 안 되었던 '공산당 선언'이 묶여 있다. 서정시인으로 알려져 있는 하이네지만 참여시라고 할 수 있는 시들을 썼다는 점. 그리고 그와 마르크스가 교류를 한 적이 있다는 점에서 시와 사상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br>하이네가 쓴 '독일, 어느 겨울 동화' 제1장에 이런 표현이 있다.<br>'우리는 여기 지상에서 벌써 / 하늘나라를 세우려고 한다.<br>우린 지상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려 하며 / 더 이상 궁핍을 원하지 않는다 / 부지런한 손이 번 것을 / 게으른 위가 탕진해서는 안 된다.<br>이 지상에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 충분한 빵이 자라고 있어 / 장미와 도금양도, 미와 즐거움도 / 또 완두콩도 적지 않아.' (47-48쪽)<br>이것이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바라던 혁명 아니던가. 하늘나라가 아닌 지상에 사람들이 평등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br>그런 그들의 주장을 선언으로 만든 것이 바로 '공산당 선언'<br>너무도 유명한 구절들이 들어 있는, '유령 하나가 유럽에 돌아다니고 있다 - 공산주의라는 유령이'(240쪽)로 시작해서 '프롤레타리아가 잃을 것은 쇠사슬밖에 없다. 그들이 얻는 것은 하나의 세계이다. 전 세계 노동자여, 단결하라!'(295쪽)로 끝나는 공산당 선언.<br>우리나라야 지금도 좌파라고 하면 못 잡아 먹어서 난리인 나라지만, 좌파를 공산주의자라고 하면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할 수도 있는 나라지만, 이제 이런 '공산당 선언'은 읽어도 되는 나라가 되었다.<br>이렇게 되었다는 건 그만큼 사회가 성숙해졌다는 것, 다른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사상의 자유를 누리는 사회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겠지.<br>이런 것도 있지만 공산주의가 역사에서 사라졌다고 할 수 있기에 그런 여유가 생긴 것 아닐지... 그러면 이 공산당 선언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할 문헌이 되어야 하는데...<br>물론 많은 부분에서는 실현이 될 수 없는 선언이다. 그럼에도 아직 사라지지 않은 것은 무언가 아직도 받아들일 것이 있어서일 텐데...<br>가령 이 선언에 이런 대책들이 있는데, 지금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방향과 일치하는 것들이 많다. '소득에 대해 높은 누진세를 적용, 도시와 농촌간의 차별을 점차 제거, 공립학교엣 모든 어린이를 위한 무상교육을 실시 등등'<br>이것이 바로 역사다. 무조건 배척하는 것이 아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받아들이는, 그래서 사회가 조금이라도 좋은 쪽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br>하이네와 공산당 선언을 묶고, 비슷한 점을 해설에서 잘 설명해주고 있지만, 하이네의 시는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하고 있다. 서양의 문화, 역사를 알아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는 시라서 그런지, 그의 풍자가 확 와닿지 않았는데, 공산당 선언도 역사 속에서 다시 평가해야 할 선언이니...&nbsp;<br>지금 우리 현실에서 무엇을 받아들여야 할지, 그들이 이 선언을 작성할 당시의 의도에 맞게 우리 현실을 파악하고 개선할 방법을 찾는 것이 이 선언에 충실한 태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957/59/cover150/899405462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9575992</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각자가 던질 수 있을 만큼 던지는 돌이 바로 삶 - [피프티 피플 - 2017년 제50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19454</link><pubDate>Wed, 16 Sep 2026 10:0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1945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4241&TPaperId=1751945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9666/4/coveroff/893643424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4241&TPaperId=1751945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피프티 피플 - 2017년 제50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a><br/>정세랑 지음 / 창비 / 2016년 11월<br/></td></tr></table><br/>제목만 보면 50명의 사람이 나와야 한다. 제목이 이러면 꼭 나오는 사람을 세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차례를 보면서 한 명, 두 명 세어본다. 어? 51명인데... 뭐야? 잘못 세었나? 다시 세어본다. 외국인이 두 명, 한 번에 세 명이 동시에 나오는 장이 있고, 마지막 장은 '그리고 사람들'이라고 되어 있지만 아무리 세어도 51명이다. 이런... 제목에 맞춰 합리화해본다.<br>그래 세 명이 나온 장을 한 사람으로 치고, 마지막 장을 또 한 사람으로 보면 50명이네, 딱 맞네 하면서. 그러다 소설을 다 읽고 작가의 말을 읽으니 이런 작가가 이런 말을 한다.<br>'어쩌다보니 51명입니다. 혹 세어보시다가 한명이 더 있어 놀라실까 말씀드립니다. 제가 넘치게 썼는데 제목을 '피프티 원 피플'이라 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보다 자기 장(章)을 가지지 않으면서 드나드는 인물도 있어서 사실은 52명, 53명 ..... 세는 방식에 따라 달라질 것 같습니다.'(393)<br>역시, 나와 같은 사람이 많구나. 사람을 세는 것이 별 의미가 없겠구나. 하지만 사람의 호기심이란 꼭 제목에 맞게 사람 수를 세어보게 하니... 참.<br>각자의 인물이 짧게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그런 삶들 중에 저런, 저런 나쁜 놈이 하는 삶은 여기서 거의 나오지 않는다. 사람에 대한 사랑을 기본으로 깔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br>왜?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누구나의 삶은 누구나 존중받아야 하니까. 그럼에도 나쁜 놈들은 나온다. 자기만 아는 놈, 다른 사람을 해치는 놈. 세상은 좋은 사람만 살지 않으니까. 별별 사람이 다 있으니까.<br>그럼에도 우리는 좋은 것만 보고 살면 좋지 않을까 하지만, 어려움을 아예 겪지 않았을 때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때 대처를 잘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 중에 '김시철'이란 인물의 아내인 혜린에게서 그 점을 발견한다.<br>자신들이 내지도 않는 층간 소음이라고 아랫집이 따질 때 아내인 혜린이 많이 힘들어하는데, 이때 시철은 이렇게 생각한다.<br>'혜린의 낙천성과 둥근 성격은 타인의 공격성을 적게 겪으며 자라는 동안 형성된 것이어서, 막상 공격적인 상대를 마주하니 면역성이 쉽게 무너졌다.'(304쪽)<br>하, 타인의 공격성에 면역이 생기기 힘들지만, 자신이 먼저 무너지지 않아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 이 장면에서 '학교'를 생각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정말로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어가는 장소.<br>이 장소에서 온갖 갈등을 겪으며 그것을 해결하면서 때로는 묻어두면서 지내온 기간들이 결국은 사람들로 하여금 낯선 타인을, 타인의 낯선 방식을 견디게 하는 힘을 길러주지 않을까? 따라서 학교란 단순히 지식을 전수하는 곳이 아니라 관계를 맺어가는 방식을, 다름 속에서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익히게 하는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br>꼭 학교가 아니어도 된다. 사람들은 성장하면서 다양한 관계를 맺는데, 이 관계들이 자신의 삶에 긍정적인 쪽으로 오게 하면 되니까. 그런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에 소설만큼 좋은 것이 있을까 싶다.<br>소설에는 온갖 인간들이 다 나오니까. 그들의 삶이 나오고, 정말 나하고는 하나도 같지 않은 삶들도 소설 속에서는 만날 수 있으니까. 그러면서 그들 삶에도 나름대로 애환이 있음을 볼 수 있으니까.<br>이 소설에 나오는 무려 51명, 아니 그보다 많은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 세상은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구나, 그들이 서로 단 한번도 마주친 적이 없더라도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있겠구나, 그리고 그들은 각자 나름대로 일을 겪고 기억하겠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br>특히 작가가 마지막 장에서 많은 이들을 영화관에 모아놓는데, 이 건물에 불이 나고 대피하는 경험을 모두 하겠지만, 그 경험은 각자에게 다른 기억으로 남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니. 바로 이 마지막 장이 소설이 하는 역할을 압축적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해도 좋겠다.<br>마지막 장 말고도 꼭 기억하고 싶은 장면은 '소현재'라는 인물이 '직업환경의학과(예전에는 산업의학과라고 했다고)'를 선택하고 여전히 많은 산업재해에 마음 아파하면서 도대체 해결되지 않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같은 병원의 원로 교수인 '이호(이 인물 역시 한 장을 차지하고 있다)'가 해주는 말.<br>"우리가 하는 일이 돌을 멀리 던지는 거라고 생각합시다. 어떻게든 한껏 멀리. 개개인은 착각을 하지요. 같은 위치에서 던지고 사람의 능력이란 고만고만하기 때문에 돌이 멀리 나가지 않는다고요. 그런데 사실은 같은 위치에서 던지고 있는 게 아닙니다. 시대란 게, 세대란 게 있기 때문입니다. 소 선생은 시작선에서 던지고 있는 게 아니에요. 내 세대와 우리의 중간 세대가 던지고 던져서 그 돌이 떨어진 지점에서 다시 주워 던지고 있는 겁니다. 내 말 이해합니까?"<br>"릴레이 같은 거란 말씀이죠?"<br>"그겁니다. (...중략...)&nbsp;가끔 미친 자가 나타나 그 돌을 반대 방향으로 던지기도 하겠죠. 그럼 화가 날 거야. 하지만 조금만 멀리 떨어져서 조금만 긴 시간을 가지고 볼 기회가 운 좋게 소 선생에게 주어진다면, 이를테면 40년쯤 후에 내 나이가 되어 돌아본다면 돌은 멀리 갔을 겁니다. 그리고 그 돌이 떨어진 풀숲은 소 선생 다음 사람이 뒤져&nbsp;다시 던질 겁니다. 소 선생이 던질 수 없던 거리까지."&nbsp; (380-381쪽)<br>이것이 바로 삶 아닐까. 우리 삶이 제자리를 뱅뱅 돌고 있는 것이 아니라, 또 뒤로 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뒤로 가는 것처럼 보여도 길게 보면 조금 더 나은 쪽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그렇다고 내가 모든 것을 완벽하게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br>나는 기껏 내가 던질 수 있는 거리 만큼만 돌을 던지면 된다는 것을. 그 다음 돌을 다른 사람이 던질 수 있게끔 조금이라도 앞으로 돌을 보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삶의 의미는 충족된 것이라고.<br>그럼 나는 돌을 어디서 주울까? 내가 돌을 던질 자리는 어디일까? 소설에 나오는 각 인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돌을 던진다. 어떤 이는 이호의 말처럼 뒤로 던지기도 하지만, 이 소설에 나오는 대부분의 인물들은 앞으로 돌을 던진다. 그 돌이 얼마나 멀리 나갔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이 돌을 던진다는 행위 자체가 중요하다.<br>이렇게 소설을 통해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나 역시 돌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고... 지레 돌이 원하는 곳까지 가지 않는다고 포기할 것이 아니라. 그냥 내가 던질 수 있는 만큼 힘껏 던지면 된다고... 그렇게만 하면 된다고...<br>정세랑의 '피프티 피플'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거리에 돌을 던지는 사람들 이야기. 좋았다. 그런 인물들을 만날 수 있어서.]]></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9666/4/cover150/893643424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96660475</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소설로 보는 우리나라 교육 현실 - [킬러 문항 킬러 킬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15234</link><pubDate>Mon, 14 Sep 2026 10:0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1523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52934328&TPaperId=1751523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183/30/coveroff/k95293432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52934328&TPaperId=1751523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킬러 문항 킬러 킬러</a><br/>이기호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1월<br/></td></tr></table><br/>'교육' 답이 없다.&nbsp;답이 있어서 그것을 찾는 것이 교육이라고 알고 지내왔던 시절이 있었다. 정답은 있다. 그것을 찾기만 하면 된다. 그것도 실수 없이. 시간 안에. 이것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교육 방식이었다.<br>하지만 '교육'에 답이 있을까? 있는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답을 스스로 만들어가게 하는 것, 따라서 답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일 수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교육 아니었을까?<br>답이 여럿이 있다. 복수 정답? 아니다. 복수 정답이라고 해도 그것은 이미 정해진 답을 찾는 과정일 뿐이다. 복수 정답이라는 말이 아니라 정해져 있지 않은 답을 만들도록 해야 하는데, 지금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br>수능을 없애고 자율적으로 학생을 뽑는 대학? 상상하기 힘들다. 공정이라는 벽이 가로막고 있다. 그렇다면 서술형 출제를 하자? 이것 역시 공정이라는 벽에 막힌다. 그 채점이 공정하냐고 하면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br>이렇게 학교에서, 초중고에서부터 대학교까지 교육은 늘 정답을 찾는 과정이었다. 답이 있다는 가정에서 비롯한 교육. 그 답을 잘 찾는 사람이 우수한 학생이 되는 현실.<br>이런 현실에서 교육에 관한 다른 많은 것들이 감춰지거나 억압된다. 오로지 답 찾기. 답을 잘 찾아 높은 점수 기록하기. 이것이 교육의 목표가 된 듯하다. 그러니 사교육이 기승을 부리지. 왜냐? 모두가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br>나만 학원에 다니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다는 느낌. 그래서 모두들 사교육으로 내몰린다. 단지 사교육만일까? 아니, 공교육을 한다는 학교도 마찬가지다. 성적, 성적, 대학 진학... 이것이 학교를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br>공통의 기준이 있고, 여기에 도달하느냐 마느냐로 학교를 평가하면, 학교의 다양성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nbsp;<br>학업이라는 면에서 이렇게 획일화를 추구하고 있는데, 교육이 성적만을 획일화할까? 아니, 학생이라는 특정 시기에 거의 모든 사람이 거쳐야 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포기하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br>학생이라는 시기에 반드시 도달해야 하는 기준이 있다는 듯이, 그 기준에 맞지 않는 것은 미뤄두거나 없는 것으로 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지 않은가.<br>그것이 무엇일까? 다양하다. 너무도 많다. 그 많은 것들 중에 각 소설가가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소재로, 주제로 삼아서 소설을 썼다. 그리고 한 권의 소설집으로 엮어냈다.<br>성적도 있고, 교우관계도 있고, 사교육도 있고, 가족 간의 관계도 있고, 무어라 하나로 정리할 수 없는 수많은 교육에 관련된 일들. 그러한 일들이 이 소설집에 잘 나타나 있다.<br>이 소설집에서 제기하고 있는 문제들이 지금도 진행 중이라는 것이 더욱 안타까운데, 얽히고 설켜 도무지 해결의 실마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우리나라 교육 문제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br>여전히 대학입시라는 것에 목 매다는 학생들, 여기에 특정 대학에 모든 것을 거는 입시 과정, 그러한 과정 속에서 포기해야 하는 다른 많은 것들.<br>관계도 관계지만 공부를 잘한다는 말을 성적이 좋다는 말과 같은 뜻으로만 여기게 되는 풍조가 사라지지 않는 것도 문제다.<br>짧은 소설들이 모여 있는데, 그래서 읽기에 편한데, 읽은 다음에 뒷맛이 개운하지는 않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음에... 소설 속 인물들의 고민이 지속되고 있음에...<br>인공지능 시대를 앞두고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교육 문제들, 이 소설집을 통해 만나보자. 그리고 그것들이 지속되지 않는 사회를 꿈꾸도록 하자.<br>다른 소설들도 생각을 많이 하게 하지만 서윤빈이 쓴 '소나기'가 섬뜩하게 다가왔다. 성적을 내기 위해 늘 고1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아이. 우리가 그렇게 만들고 있지 않은지... 오로지 성적이 제일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그런 세상을 만들어온 것은 아닌지...<br>어쩌면 아이들이 다른 학년으로 진학을 해도 그들이 발전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아니라, 성적이라는 쳇바퀴 속에서 계속 같은 곳을 달리게 한 것은 아닌지. 하, 이 소설 속 윤이와 같은 아이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183/30/cover150/k95293432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1833090</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이야기</category><title>김상미 시집- 밥은 삶의 성기라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11539</link><pubDate>Sat, 12 Sep 2026 15: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11539</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45232&TPaperId=1751153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0846/53/coveroff/8954645232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nbsp; 오랜만에 시집을 읽는다. 소설보다 짧은 시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더 긴 시간이 있을 때에야 시집에 손이 간다.<br>&nbsp; 짧음을 짧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길게 느끼기 위해서, 드러나지 않은 것들을 찾는 시간이 있어야 하기에. 그럼에도 늘 찾기에 실패하고, 도대체 시인은 무엇을 숨겨놓았을까 생각해야 하기에.<br>&nbsp; 이번에 고른 시집은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다. 하긴 시인을 모르는데, 선택을 하려면 여러 조건을 따져야 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제목이다.<br>&nbsp;'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비열한 거리' 중에서. 59쪽) 라니. 이만큼 현대인의 생활을 생각하게 하는 표현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br>함께 산다고 하지만 현대인들은 각자 살고 있다. 그 각자가 자신만의 세계에 빠진 듯하지만, 이상하게도 남을 더 의식한다. 주체로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의 거울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면서 살아간다고 해야 할까.<br>그래서 시인이 제목이 된 구절이 있는 시에서 '비열하게 이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 '예스'라고 말해줘야 한다-고'('비열한 거리'에서. 59쪽)고 표현한 것이 바로 이것 아닐까 했다.<br>자신이 아니라 남이 바라보는 자신으로 살아가려 하는 것. 현대인의 삶 아닐까. 그만큼 남을 의식하면서 산다는 것인데... 그런 삶을 '기하학적 실수'란 시에서 발견했다.<br>&nbsp; &nbsp; &nbsp; &nbsp;기하학적 실수<br>모든 사랑의 체위는 인간이 지닌 가장 고귀한 감각이다.그걸 알면서도사랑을 나눌 때나는 한 번도 내가 좋아하는 체위를 요구하지 않았다.말없이 상대가 원하는 대로 따라가기만 했다.<br>그게 내 사랑의 비극이고내 사랑이 실패한 이유였다.<br>아무것도 원하지 않고어떤 체위도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늘 꿈꾸어왔던 나만의 체위는내 마음속 깊이깊이에만 간직해두고척추를 타고 흐르는 파르르한 사랑의 경련에만전율했다는 것.<br>모든 물이 다 증발하고 난 뒤에 남는 소금처럼사랑의 체위야말로 그 사람의 유일한 진실임을모른 체하고 모른 체했다는 것.<br>김상미,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문학동네. 2017년. 33쪽.<br>이 시를 보면 사랑을 나눌 때조차도 자신이 아니라 상대를 의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주체로 서지 못하는 사람에게 사랑은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것. 결국 '비열한 거리'에서 말하고 있듯이 이러한 관계는 '아무 관계도 아니'게 된다. 마찬가지로 '예스'만 하는 삶은 상대와 하나가 될 수 없음을 뜻하기도 하고.<br>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보헤미안 광장에서'란 시에서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br>&nbsp;보헤미안 광장에서<br><br>갑자기 내리는 비그 비를 피하기 위해여기저기서 펼쳐지는 우산들<br>그러나 우산은 지붕이 아니다아내 있는 남자가 남편 있는 여자가몰래 잠깐 피우는 바람 같은 것이다<br>갑자기 내린 비가 멎으면아무런 소용이 없는<br>그러니 사랑을 하려거든&nbsp;진짜 돌이킬 수 없는 사랑을 하려거든한 지붕 아래에서 하라<br>갑자기 내린 비는 금방 지나가고젖은 우산에 묻은 빗방울들은우산을 접는 순간 다 말라버린다<br>김상미,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문학동네. 2017년.40쪽.<br>이 시에서 우산이 상대에게 맞춰주는 사랑이라면, '한 지붕 아래에서 하는 사랑'은 나를 잃지 않으면서 상대 또한 인정하는, 다르면서도 함께하는 그런 삶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는가.<br>이런 한 지붕 아래서 우리는 함께 밥을 먹으며 살아가게 된다. 희노애락을 함께 겪으면서... 오로지 상대에게만 맞추는 것이 아니라, 또 상대를 나에게만 맞추려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따로 또 같이 사는 장소로서의 한 지붕 아래, 그러한 곳에서 하는 사랑은 자신을 주체로 서게 하고, 상대 역시 주체로 서게 하는 사랑이지 않을까 한다.<br>이런 곳에서 먹는 밥, 그것은 우리의 사랑을 확인하게 해주는, 또는 사랑을 지속시키는 '성기'와 같지 않을까. 하여 시인이&nbsp;'밥은 삶의 성기다'(밥의 힘'에서. 96쪽)라고 표현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br>하여 이 시들을 읽으면서 상대의 눈에 비친 나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당당하게 살 때에야 비로소 상대와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음을, 이 때 먹는 밥이, 시인이 이 시에서 말한 것과는 다르지만, 두 시와 연결지으면, 삶의 성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nbsp;<br>식구(食口)라는 말. 사랑의 지속. 그것 또한 밥심아니겠는가. 밥심은 곧 사랑이다. 주체로서의 당당한 사랑. 이런 생각을 하게 한 시들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0846/53/cover150/895464523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08465360</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이야기</category><title>부끄러운 사법살인, 그 생생한 증언 - [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 - 강순희 말하고 유시민 듣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09248</link><pubDate>Fri, 11 Sep 2026 12: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0924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92137800&TPaperId=1750924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0/97/coveroff/k992137800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92137800&TPaperId=1750924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 - 강순희 말하고 유시민 듣다</a><br/>유시민.김세라 지음 / 은빛 / 2026년 03월<br/></td></tr></table><br/>정의. 최후의 보루.<br>독재정권에 맞선 사람들이 그나마 기대었던 곳, 법원. 하지만 그런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렸던 한국 현대 법원.<br>지금 법원은 삼권분립이라는 이름 아래 제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고 있을까? 행정부에 휘둘리지 않고 정의에 따라, 법에 따라 재판을 하고 있을까?<br>그것을 하라고 삼권분립 운운하는 것 아닌가. 당당하게 정권에 맞서 진실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고. 그런데 정의가 눈 멀면 어떻게 되는지, 사법부가 독립되지 않고 저들 권리는 주장하되, 법과 정의를 지켜야 할 의무는 소홀히 할 때 그때 일어날 수 있는 비극이 무엇인지 너무도 잘 보여주는 사건.<br>인혁당재건위 사건. 있지도 않은 당을 만들어 사건을 조작하려 했을 때 그나마 몇몇 검사들은 기소할 수 없다고 사표를 냈다고 하는 것이 1차 인혁당 사건. 그래, 1차 인혁당 사건이 조작이었고, 그 정당은 있지도 않았는데, 세상에 있지도 않는 정당을 재건한다고 하는 2차 인혁당재건위 사건이라니...<br>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을 온갖 조작 증거에는 눈을 감고, 피해자들의 호소에는 귀를 막고, 정권의 입맛에 맞게 재판을 진행한 사법부.&nbsp;<br>그래서 세계는 인혁당재건위 사건으로 인해 그들이 희생당한 날(1975년 4월 9일)을 사법살인의 날이라 한다고, 세계에 부끄러운 이름을 새긴 한국의 사법부. 그들은 반성했을까? 과연 그럴까?<br>이 인혁당재건위 사건의 희생자들이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기금을 출연해서 만든 단체가 4.9통일평화재단이라고 한다. 4월 9일... 참 우리나라 4월엔 일도 많다. 3일, 16일, 19일. 어느 날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그 날들. 여기에 9일을 추가한다. 알고는 있었지만 잊고 있던 날을.<br>그 계기가 바로 이 책이다. 인혁당재건위 사건의 유가족인 강순희 여사의 기록. 93세가 되어 본인이 세상을 뜨기 전에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는. 자신이 살아온 역사가 바로 한국의 현대사라고... 그래서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더 늦기 전에 남기고 싶었다고.&nbsp;<br>이런 마음으로, 유시민 작가에게 부탁해서 그 전에 했던 인터뷰 자료와 또 새로 인터뷰한 내용, 그리고 역사적 사실들을 자료로 해서 유시민 작가가 재구성한 기록이 바로 이 책이다.&nbsp;그 사법살인을 생생하게 폭로하고 있는 책이라고 해도 좋다.<br>인혁당재건위 사건으로 희생된 우홍선의 부인. 그래 이 사건으로 희생된 8명의 이름을 적어본다. 편의상 가나다 순으로 적으면&nbsp;김용원, 도예종, 서도원, 송상진, 여정남, 우홍선 이수병, 하재완 이렇게 여덟 분이다.&nbsp;<br>이 책은 이 분들 중 우홍선의 부인 강순희 여사의 말을 중심으로, 유시민 작가가 인터뷰한 형식으로 이루어졌지만, 이 사이사이에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들이 나온다. 그들에 대한 간략한 설명도 이어지고 있으니...<br>읽으면서 독재정권, 그 숨막히는 시대에도 정의를 위해서 나섰던 사람들이 있었음을, 결코 조작사건에 모두가 넘어간 것은 아니었음을 강순희 여사의 증언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래서 광주민주화운동을 거쳐 87년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지지 않았나 싶다.<br>이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 독재가 성립하기 힘든 대한민국이 만들어지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고.<br>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강순희 여사가 펑펑 울었다는데, 기자가 왜 무죄가 되었는데 우느냐고 한 어리석은 질문. 와, 이게 기자들의 수준이었다니... 아니, 자신이 겪지 않았어도 그 사건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이라도 있었으면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을 텐데...<br>무죄로 밝혀졌는데 이미 사형당해 돌아가신 분들. 그 분들을 생각하면 더 억울하고 분통한 일 아니겠는가. 그러니 그것은 기쁨의 눈물이 아니라 억울함의 눈물이었을 텐데... 독재정권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 그 무죄 판결을 통해 함께 분노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고 언론이 (적어도 자신들이 제4부 권력이라고 여긴다면)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어야 하는데...<br>왜 우느냐는 질문을 하다니, 참... 이 책에 나와 있는 내용을 보자.&nbsp;<br>유시민 : 2007년 1월 23일 재심 무죄 판결이 났어요. 어떠셨어요?강순희 : 법정 나오면서 막 울었어. 그런데 기자들이 이겼는데 왜 우냐고, 그 따위로 묻는 거야. '이겼으니까 더 억울하지! 이렇게 죄 없는 사람을 죽였으니까!' 그랬는데, 아니 어떻게 기자들이 그렇게 뭘 몰라? (237쪽)<br>기가막혔을 것이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그간 꿋꿋하게 남편의 무죄를 주장해왔고, 또 조작임을 밝혔던 강순희 여사.<br>그들과 함께했던 많은 성직자들, 변호사들, 그리고 다른 사람들. 적극적으로 나서진 못해도 마음으로 응원했던 사람들도 있었으리라. 강순희 여사의 말에 의하면 어려운 상황에서도 도와준 사람들이 꽤 있었다고 하니까.<br>또한 가족들 역시 꿋꿋하게 살려고 노력을 했다고 하니까. 그럼에도 국가의 사법살인. 사법부의 정의를 저버린 행동 등을 잊어서는 안 된다. 독재자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국가권력을 동원해 사건을 조작하고, 거기에 동조해 사법부가 판결을 내리는 기가 막히는 과거의 현실.<br>정말 부끄러워해야 한다. 당시 재판관들, 검사들, 그리고 중앙정보부원들(지금 국가정보원). 그래야 하는데, 이들이 끝까지 뉘우쳤다는 얘기를 들어보지는 못했으니, 참.<br>지금에 와서 늦었지만 그래도 재심을 열어 무죄로 판결한 것이, 국가가 배상을 한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할까?<br>하지만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강순희 여사가 자신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려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 국민들이 눈 감고, 귀 막고 있으면 독재가 고개를 내밀 수 있다는 것.<br>사법부, 제대로 독립하지 못하면 독재정권의 꼭두각시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 강순희 여사의 말에도 나오지만 언론 역시 제대로 정부를 감시하지 못하면 받아쓰기만을 하는 또 하나의 권력으로 떨어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br>강순희 여사가 기자들에게 호통을 친 내용, 당신들은 왜 이 사건에 대해서 보도를 하지 않는가. 이렇게 조작되었다는 내용이 밝혀졌는데도... 그래, 언론이 눈을 감고, 사법부가 정의의 편에 서지 않으면 독재가 눈을 떠서 활동을 시작한다. 그 점을 강순희 여사의 증언이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br>이 책은 강순희 여사 한 사람의 일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현대사를 보여주는 책이다. 한국 현대사를 살아온 사람, 특히 독재시대를 거쳐온 사람이 후대에게 그러한 역사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주는 책.<br>귀한 책이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그리고 그 잘났다고 하는, 영감님이라는 소리를 듣는 판사님들부터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기자님들도 마찬가지고... 자신들이 제대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정권이 어떻게 제 멋대로 하는지 강순희 여사의 책을 통해서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테니.<br>무어라 말해도 역시 시민들이 깨어 있어야 한다. 시민들이 깨어 있으면 법원이 눈을 감지 못하고, 언론이 침묵할 수가 없다. 그들을 눈 뜨고, 귀 열고, 입을 열게 하는 존재들, 우리 시민들이다. 그러니 시민들인 우리들이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일어났던 사법살인을 고발하는 이 책, 읽어야 한다. 알아야 막을 수 있다.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br>참고로... 인혁당재건위 사건 8인의 약전이라고 [다시, 봄은 왔으나]라는 책이 있다고 한다. 아직 읽어보지 못했는데, 읽어봐야겠단 생각. 그리고 소설가 김원일이 쓴 [푸른 혼]이라는 소설이 이 사건의 인물들을 다루고 있다. 물론 실명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이름 석 자 가운데 한 글자만 바꿔서 썼으니... 이 소설을 읽어봐도 좋을 듯하다.&nbsp;<br>강순희 여사의 이 책과 더불어 함께 읽으면 좋겠단 생각이 든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0/97/cover150/k992137800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509769</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여러이야기</category><title>삶은 단절(들)의 연속이다 - [단절(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06666</link><pubDate>Thu, 10 Sep 2026 09:1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0666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92139972&TPaperId=1750666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01/87/coveroff/k892139972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92139972&TPaperId=1750666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단절(들)</a><br/>클레르 마랭 지음, 류재화 옮김 / 사람in / 2026년 05월<br/></td></tr></table><br/>무척 어려운 이야기를 할 것 같은 제목이지만 아니다. 단절이 우리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할 수 있음을 알려주는 책이다.<br>사실 우리 삶은 하나로 주욱 이어지지 않았다. 여러 단절들이 모여 삶을 이룬다. 생애 주기라는 말을 쓰는 것 자체가 바로 단절들의 이어짐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br>저자도 말하고 있지만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단절을 경험한다. 아니 단절이 없으면 태어나지 못한다. 사실 태어나기 전에 잉태하는 과정을 봐도 그렇다. 단절 아니겠는가. 남자의 몸에서 단절되어 나온 정자가 난자와 만나 새로운 출발을 하는 것.<br>자궁 속에서 단절을 넘어 새로운 출발을 하지만 여기에 계속 머물러서는 안 된다. 또다시 단절해야 한다. 이번엔 자궁 밖으로 나와야 한다. 탯줄로 이어진 것을 끊어야 한다. 단절이다. 이 단절이 삶으로 이어진다. 새로운 삶.<br>그러므로 단절은 삶이다. 단절들이 모여 우리 삶을 이룬다. 그리고 마지막 단절은 죽음이다. 죽음은 한 개체로서의 완전한 단절이지만 이 개체의 삶은 다른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새로운 모습으로.<br>죽음이라는 단절이 인간이라는 종 전체를 보면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한다.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준다. 단절이 없다면 생각하지 못했을 것을.<br>그래서 인간의 삶 자체는 단절들의 연속이다. 우리가 늘 보는 시계를 보라. 시간은 단절이다. 연속이 아니다. 단절들이 순서대로 이어질 뿐이다. 이 시간을 좀더 길게 끌며 단절이 되면 계절이 된다. 계절 역시 단절이다. 그렇지만 이 단절이 끝이 아니다. 다른 단절을 이끈다. 계절을 더 길게 끌자. 바로 생애 주기가 된다. 유아기, 청소년기, 청년기, 중장년기, 노년기 등등.<br>더 길게 늘려볼까? 바로 인간의 역사가 된다.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단지 시간만? 아니다. 공간 역시 단절들이다. 이 단절들이 모여 지구를 이루고, 우주를 이룬다. 우주 역시 처음에 단절로부터 시작했다. 나중에 팽창하다 다시 수축해서 원점으로 돌아간다면(과연 그런지는 과학자가 아니라 확신할 수는 없다) 역시 단절들의 연속이다.<br>저자는 바로 이러한 단절을 단지 상실이라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잃어야 얻는 것이 있다. 비워야 채울 수 있듯이.<br>당장은 단절이 괴롭고 힘들다. 고통스럽다. 맞이하고 싶지 않다.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것이 단절이다. 하지만 단절을 피하기만 하면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없다. 바로 자신을 알 수 없기 때문. 즉 단절이 없다면 자신도 없다. 자신이 없는데 어떻게 자신과 다른 존재를 단절시킬 수 있겠는가.<br>그렇기 때문에 우리 삶에 단절은 필수적이다. 피할 수 없는 단절. 이 단절을 통해서 성장해갈 수 있음을 저자는 여러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단절을 하지 못했을 때 더욱 괴로워질 수 있음을 '불면증'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는데...<br>'불면증은 내려놓지 못함이다. ... 잠들지 않는 의식은 과거를 무한정 늘린다. 과거가 사라지는 것을 거부한다. 불면증은 현재를 확장하고, 과거와의 단절을 거부하는 통에, 헛된 노력을 하는 줄도 모르고 지쳐간다.'(183쪽)고...<br>이것은 과거와 단절하지 못한 모습이다. 단절을 해야 하는데, 단절을 하지 못해 괴로움에 처한 상태를 보여준다. 그렇기에 '과거가 현재를 장악하더라도 한계를 정하고, 살아있는 순간을 과거가 침범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182쪽)고 한다. 이것이 바로 '단절'이다.<br>따라서 우리는 단절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저자는 아니라고 한다. 우리 삶에서 이러한 단절들이 없다면 주체적인 삶이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단절은 결국 주체를 찾아가는 방법이다.<br>이런 극단적인 예가 폭력을 휘두르는 부모를 둔 아이다. 그 아이는 부모와 단절하지 못하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죽음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한다. 그래서 이 아이에게는 단절이 반드시 필요하다. 부모로부터의 단절.&nbsp;<br>남과는 다른 나를 찾아가는 과정, 내 삶을 살아가는 과정, 그 과정 속에서 겪게 되는 수많은 단절들. 이 단절들을 다름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그것으로 삶을 지속해가는 과정. 사람들이 다 똑같아서는 안 되니까. 똑같다면 이런 단절이 생길 일도 없겠지만, 자아라는 것도 없게 될 테니까.<br>읽다가 뜬금없이 [장자]에서 '혼돈'에 관한 글이 떠올랐다. 이 책과 연결될 것 같지 않은데, 그것은 단절이 아니라 같음을 이야기하는데, 결국은 같은 이야기 아닌가 하는.<br>혼돈에게 대접을 잘 받은 두 바다의 왕이 자신들에게는 있지만 혼돈에게는 없는 구멍을 만들어주려 한다. 하루 하루 구멍을 만들자 결국 혼돈이 죽어버렸다는.<br>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혼돈은 이미 다른 바다의 왕들과 다르다. 그들과 단절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이들이 이런 단절을 부정하고 같아져야 한다고 한다. 즉 단절을 거부한다. 그 결과가 바로 혼돈의 죽음이다. (단절을 다름이라고 한다면)<br>단절은 그런 것이다. 죽음이 최후의 단절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생물이 피해갈 수 없는(불멸을 추구하는 실리콘밸리의 노력이 진행 중이지만...) 숙명이라면 죽음의 당사자는 빼고, 이 죽음으로 인한 단절을 겪는 사람들을 비롯해 살면서 겪게 되는 수많은 단절들, 태어남에서부터 사춘기 때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것, 연인과 사귀다 헤어지거나 부부가 이혼하는 경우, 질병 특히 치매와 같은 질병으로 자신을 잃어가는 것 등등이 바로 단절이다.<br>이 중에 인생에서 겪지 않을 수도 있는 일도 있지만 겪는다고 해서 삶을 포기하거나 무너져 내려서는 안 될 단절들이다.&nbsp;이 단절들 속에 나란 존재는 단일한 하나만의 존재가 아니라 여러 존재가 있음을, 하여 나 자신조차도 단절되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br>저자는 바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단절들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nbsp;그러면서 결론은 참 단순하다. 각 단절의 순간들은 고통스러울지 몰라도 그 속에서조차 우리는 '기쁨'을 찾을 수 있다는 것. 아니, 기쁨을 찾아야 한다는 것. 저자는 이렇게 말하면서 책을 끝내고 있다.<br>'삶의 위험을 감수하는 것, 그것은 가능한 모든 기쁨을 느끼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비극적인 밤을 보낼 때조차, 자신 안에 깃든 기쁨의 작은 불꽃을 기억하는 힘을 갖기.'(195쪽)&nbsp;<br>그렇다. 우리가 삶에서 겪는 단절들은 그것이 끝이 아니라 또다른 출발을 의미한다. 그러니 단절들 속에서도 기쁨을 찾을 수 있다.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기쁨을.<br>너무도 당연하게 들리는 말이지만 단절들을 통해 얻은 상처들이 삶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할 수 있음을.&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01/87/cover150/k892139972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4018761</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여러이야기</category><title>해양포유류에서 삶을 배우다 - [떠오르는 숨 - 해양 포유류의 흑인 페미니즘 수업]</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02251</link><pubDate>Tue, 08 Sep 2026 09:5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50225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42932167&TPaperId=1750225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278/18/coveroff/k24293216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42932167&TPaperId=1750225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떠오르는 숨 - 해양 포유류의 흑인 페미니즘 수업</a><br/>알렉시스 폴린 검스 지음, 김보영 옮김 / 접촉면 / 2024년 07월<br/></td></tr></table><br/>이야기가 마치 시와 같이 들려온다. 속삭이듯이. (번역을 잘했다고 해야 할 듯)<br>해양포유류 이야기지만, 결국은 인간의 이야기다. 세상 만물은 모두 연결되어 있고, 저자도 말하듯이 지구는 둥글고,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어 살아가고 있으니.<br>돌고 도는 삶들. 관계들. 이 돌고 도는 원의 관계를 끊으면 생태계가 위험해진다. 그러한 위험을 초래한 존재가 누구인가? 바로 인간이다.&nbsp;<br>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또는 단순한 즐거움을 위해 해양포유류를 대량학살했던 과거의 인간. 대놓고 학살하지는 못하지만 그들이 살아갈 서식지를 파괴함으로써 또다른 대량학살을 유발하고 있는 지금의 인간. 해양포유류의 대표격인 고래를 생각해 보자. 인간으로 인해 멸종위기에 처한, 또 이미 멸종한 고래들을...<br>이러한 학살적 인간과 더불어 그들과 공생하려는 인간도 있다. 이렇게 해양포유류를 보면서 저자는 바로 인간의 이야기를 한다. 인간이 그들과 맺는 관계가 인간이 인간과 맺는 관계와 다르지 않음을.<br>해양포유류를 인간의 관점에서 재단하고, 그들의 삶을 인간이 주도하려고 하고, 그들에게 쓸모 있음과 없음의 딱지를 붙이는 인간들은, 다른 인간들에게도 그렇게 해왔다는 것.<br>결국 우리가 다른 종을 대하는 태도는 다른 인간을 대하는 태도와 다르지 않음을, 그래서 해양포유류의 삶을 살피면 인간이 살아가야 하는 방향을 알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br>때로는 객관적으로, 때로는 서정적으로, 해양포유류에게 말을 거는 듯한 표현을 하기도 하면서 이렇게 모든 존재가 연결되어 있음을, 그 연결고리를 끊으면 안 됨을 보여주고 있다.<br>이런 관점을 지니고 있기에 저자는 용어 하나하나에도 신경쓰고 있다. 차별적인 언어를 쓰지 않으려 하는 것. 그래서 저자에게는 기존에 나와 있던 해양포유류에 관한 책들의 문제가 눈에 들어온다.<br>'해양포유류에 관한 안내서 연구에서 발견한 주요 사항 중 하나는 인종차별, 성별이분법 등의 억압을 부추기는 언어가 해양포유류에 관한 '과학적' 설명에서도 사용된다는 사실입니다.'(132쪽)<br>이렇게 과학의 껍질을 쓰고 차별을 조장하는 사례를 우리는 역사에서 많이 보아왔지 않은가. 인간에 대해서도 그랬는데,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에 관해서는 더더욱 심했으리라.<br>그러니 인간중심의 관점을 버리고 그들 존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눈을 지녀야 한다. 그런 눈을 지니기 위해서는 먼저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단지 귀로만이 아니라 온몸으로, 온 마음으로 들을 수 있어야 한다.&nbsp;<br>저자가 처음을 '듣기'로 시작하는데 (저자는 이를 장이라고 하지 않고 주제별 운동이라고 한다) 각 부분의 제목이 그러한 주제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br>그 주제는 '듣기 - 숨쉬기 - 기억하기 - 연습하기 - 협력하기 - 취약해지기 - 존재하기 - 맹렬해지기 - 갈등의 교훈 - 경계 존중하기 - 털 존중하기 - 자본주의 끝내기 - 거부하기 - 항복하기 - 깊이 들어가기 - 감정으로 있기 - 속도 늦추기 - 휴식 - 축복 보살피기 - 활동'이다.<br>'듣기'로 시작해 '활동'으로 끝난다. 그렇게 듣기의 중요성, 단지 듣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활동으로 나아가야 함을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주장하고 있는데...<br>해양포유류의 다양한 삶들에서 인간의 삶을 이끌어낸 저자의 통찰력을, 저자의 말 그대로 창발적 전략(21쪽)을 만날 수 있는 책이다.<br>해양포유류의 삶에서 어찌 평화만 있겠는가? 그들의 삶에서도 갈등이 있고, 죽음이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것이 대량학살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러한 갈등, 죽음 속에서 자신들의 종만이 아니라 다른 종들과도 맺는 관계들 속에서 인간의 삶을 살필 수 있는 여러 모습이 있다.<br>어느 한 종이 다른 한 종을 멸절시켰을 때 자신들의 생존에도 문제가 생김을 생각해야 하는데, 하물려 인간들이 인간을 분류하고 배제하고 제거하려 한다면 과연 인간이라는 종이 지속적으로 생존할 수 있을까?<br>해양포유류가 익사하지 않기 위해서 숨을 쉬는 방법을 찾아냈듯이, 인간 역시 자신들의 숨을 위해 어떻게 다른 존재들과 관계맺으며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4278/18/cover150/k24293216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42781806</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정권 유지를 위해 이렇게 조작 사건을 만들다니... - [툴라예프 사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499679</link><pubDate>Mon, 07 Sep 2026 08: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49967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62130926&TPaperId=1749967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04/94/coveroff/k862130926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62130926&TPaperId=1749967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툴라예프 사건</a><br/>빅토르 세르주 지음, 조재룡 옮김 / 빛소굴 / 2026년 08월<br/></td></tr></table><br/>혁명은 성공시키기 보다 유지하기가 더 힘들다. 그만큼 기대가 높기 때문에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저항하는 존재들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nbsp;<br>혁명이 성공하면 외부의 위협도 있지만, 내부의 위협도 있다. 이렇게 혁명은 성공 직후 내외적으로 어려움이 발생한다. 외부의 위협이야 명확하니까, 대처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사람들을 설득하기도 마찬가지고.<br>그런데 내부의 위협은 (여기서 내부라 함은 혁명을 이룬 나라의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혁명을 이룬 사람들, 또는 지지자들을 의미한다) 적이 명확하지 않다. 사람들에게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혁명의 지지자와 반대자를 구분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들 모두 한때 혁명에 가담했던 사람들이기에.<br>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혁명이 성공하고 지속하기 위해서는 내부 단속이 필요하다는, 하나가 되어 나아가야 한다는 쪽이 권력을 잡으면, 그것을 비판하는 세력들은 모두 반혁명 세력이 될 수 있다.<br>아니 반혁명 세력이라고 불린다. 그들을 용인하면 혁명의 속도가 정체된다. 어떤 때는 후퇴하기도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른 생각들을 억압하기 시작한다.&nbsp;<br>하지만 이 억압은 혁명의 대의에 어긋난다. 혁명이란 무엇인가?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하며 행복하게 사는 세상 아닌가? 다름을 인정하고 다름과 공존하는 사회 아니던가. 이런 사회를 꿈꾸었는데, 내부에서 반발이 나온다고 억압을 한다면 그것은 혁명 정신을 배반하는 것이 아닌가?<br>이때 택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혁명이 지지부진해지는 책임을 묻는 것이다.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그러면 이중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혁명이 제대로 완수되지 못하는 것이 권력자의 책임이 아니라 반대 세력 때문이며, 동시에 자신의 권력을 위협하는 존재들을 제거할 수 있는 것이다.<br>이 방법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은 사건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사건이 일어나야 한다. 그것도 혁명에 반대한다는 의미를 지니는 사건이...<br>툴라예프라는 고위 관료가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진다. 범인이 현장에서 잡히지 않았다. 기회다. 만약 범인이 잡혔어도 그 과정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지만, 잡히지 않아야 일이 더 쉽게 된다.&nbsp;<br>많은 사람들이 관련자로 잡혀들어간다. 그 많은 사람 중에는 권력자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도 있다. 그를 지지했던 사람도 있고, 혁명의 이념에 맹목적인 충성을 바친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을 엮어서 하나의 사건을 만들어낸다.<br>반혁명 사건... 그 다음은 일사천리다. 만들어낸 사건에 사람들을 집어넣으면 된다. 자백을 받아야 한다. 어떻게? 고문이라는 방법도 또 혁명의 이념에 호소하는 방법도 있다.<br>여러 방법으로 결국 세 명이 처형된다. 이들이 살인에 가담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권력자에게 위협이 되느냐 아니냐, 권력자의 뜻을 효율적으로 집행했느냐 하지 못했느냐가 중요하다. 또한 이들에게 혐의를 덮어씌움으로써 권력자가 말하는 혁명을 지속시키는 힘을 얻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br>그러니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권력자의 의지다. 다음은 권력자의 의지를 실현하는 관료들이다. 그 다음은 이런 사건 결과를 받아쓰기 하는 언론들이다. 이렇게 사건은 만들어지고 결론지어진다. 진실은 없다.<br>아니, 진실은 있다. 다만 밝히지 않을 뿐이다. 진실이 밝혀져서는 안 된다. 진실은 어둠 속에 묻혀야 한다. 그것이 이 소설이 보여주는 점이다.<br>이런 사건 과정에 해당하는 인물들을 통해 작가는 그들이 왜 하지도 않은 일을 인정하는지, 그들이 생각하는 혁명이 무엇인지도 생각하게 한다. 권력자에게는 반대하지만 자신이 몸담았던 혁명의 대의는 배반할 수 없다는 신념으로 혐의를 인정하는 사람도 있으니...<br>개인보다는 당을 생각하는 사람의 모습,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수없이 고민하는 사람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는데, 이 점이 이 소설을 진실을 왜곡하는 사건을 건조하게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 속에서 사람들이 대처하는 여러 모습을 생각하게 한다.<br>러시아 역사 중에서 스탈린 치하의 역사를 알면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기도 한데...&nbsp; 소설 시작 전에 작가의 말인 듯한 '이 소설은 문학적 허구일 뿐이다. 소설가가 창조해낸 진실은 역사학자나 연대기 작가의 진실과 어떤 정도라도 혼동되어서는 곤란하다'는 말이 있다.<br>그러니 이 소설을 읽으면서 스탈린 숙청 당시의 사람들과 소설 속 인물을 일 대 일로 대응시키려고 할 필요는 없다. 굳이 대응시키려 하지 않아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대략 짐작할 수 있고, 또 이것이 단지 스탈린 치하에서만이 아니라 독재자들이 군림하는 사회에서 독재권력을 정당화하고, 공고하게 하기 위해서 벌어졌던 일들과 유사하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br>이렇듯 좋은 작품은 현실을 반영하고, 그 반영을 통해서 현실을 겉모습만이 아니라 감춰진 속도 볼 수 있는 관점을 지니게 하는 것이다.<br>빅토르 세르주의 이 소설 [툴라예프 사건] 하나의 조작 사건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진실이 어떻게 가려지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04/94/cover150/k862130926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9049409</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여러이야기</category><title>우리에게 따뜻함을 선물했던 사람들 - [광부일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497402</link><pubDate>Sun, 06 Sep 2026 10: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49740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4096927&TPaperId=1749740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334/40/coveroff/897409692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4096927&TPaperId=1749740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광부일기</a><br/>전제훈 지음 / 눈빛 / 2024년 07월<br/></td></tr></table><br/>이제는 거의 사라져가고 있는 탄광촌.<br>이곳에서 나온 석탄은 여러 연료로 우리에게 다가왔지만 특히 연탄으로 요리를 하거나 추위를 물리칠 수 있도록 해주었다.<br>하지만 지금은 과거의 일이 되어가고 있다. 연탄이 아직도 곡 필요한 사람들이 있지만,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연탄은 과거의 물건이다. 드라마나 영화, 소설 속에서나 보는.<br>이런 연탄으로 대표될 수 있는 탄광에서 일하던 사람들을 광부라고 한다. 이들에 대한 기사가 심심치 않게 나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기사들이 즐거운 기사가 아니라 대부분 사고 기사였으니...<br>이들의 일터는 너무도 힘든 곳이었다. 막장이라고 했다. 지하로 땅을 파고 들어가 석탄을 캐야 하는 직업. 방진 마스크를 쓰고, 온몸을 잘 가리려고 해도 온몸에 들러붙는 석탄가루들, 몸 속으로 들어오는 미세가루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br>갱도로 들어갈 때 그들의 모습과 갱도에서 나올 때의 모습은 다르다. 색깔이. 완전히 검은 색으로 뒤덮인 그들의 모습. 그들이 사진기 앞에 서기 좋아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br>이런 그들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 이 책에 실려 있다. 사진작가 역시 갱도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이다. 그는 화약기사로 광산에서 일을 한다고 한다. 함께 일하면서 그들의 모습이 사라지기 전에 기록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br>소중한 기록들. 결코 부끄러워해서는 안 될 노동들. 당당한 그들의 모습이 이 사진집에 있다.&nbsp;<br>그렇다. 그들의 노동이 있었기에 우리는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누군가의 힘듦을 바탕으로 편안함을 추구하던 생활. 그러니 더더욱 그들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들의 노동을.<br>지금은 사라져가고 있지만 우리들의 생활에서 필수적이었던 그들의 노동 생산물을... 그런 기록들. 사진으로 남은 기록.<br>이렇게 사진이라는 기록으로 남아 있도록 한 작가의 노력이 고맙기도 하다. 이런 작가들이 있기에 우리의 과거가 사라지지 않고 기억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4334/40/cover150/897409692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43344078</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여러이야기</category><title>노동신문을 통한 북한말 살펴보기 -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우수한 말 - 평양문화어에서 험한 재미를 파헤치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490977</link><pubDate>Thu, 03 Sep 2026 09: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49097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02139619&TPaperId=1749097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17/78/coveroff/k60213961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02139619&TPaperId=1749097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우수한 말 - 평양문화어에서 험한 재미를 파헤치다</a><br/>정소운 지음 / 황소자리(Taurus) / 2026년 06월<br/></td></tr></table><br/>'주둥이박치기, 얼음보숭이, 꼬부랑국수, 가락지빵'<br>무엇을 가리키는지 알겠는가? 한때 북한말을 알자는 프로그램이나 교육이 있었다. 그리고 북한에서는 순우리말로 외국어를 많이 바꾸었다고, 대표적으로 거론된 말들이 바로 앞에 인용한 말들이다.<br>주둥이박치기는 '키스'를, 얼음보숭이는 '아이스크림'을, 꼬부랑국수는 '라면'을, 가락지빵은 '도넛'을 말한다고 했다. 그런가보다 했다. 북한에 가본 적도 없고, 북한 사전을 찾아본 적도 없으니.<br>아니, 우리나라에서 북한 사전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자칫하면 국가보안법에 걸려 잡혀갈 수도 있는데... 예전에 '이적표현물 소지 금지법' 비슷한 것이 있었으니...<br>하지만 많은 책에서 순화한 북한말이라고 이 말들을 소개하곤 했다. 그래서 북한에서 이 말들이 쓰이는구나, 조금 어색한 말도 있지만, 괜찮은 말도 있네 했었는데...<br>이 책을 읽어보니, '잘못 알려진 북한말'이라는 부분에서 이 단어들 실제로 북한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다고 한다. (403-412쪽). 그만큼 북한과 우리가 교류를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한때 공통 사전을 편찬하자는 움직임까지 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도.<br>여기에 영화나 드라마에서 북한 사람들이 자주 쓰는 말로 '날래'가 나오는데, 이 말은 평안도 사투리라고 한다. 북한에서 우리 표준어라고 할 수 있는 '평양문화어'는 사투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노동신문에서는 이 말이 전혀 쓰이지 않는다고 한다.<br>이렇게 이 책의 저자는 노동신문을 중심으로 북한에서 쓰이는 말들을 살피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말도 있지만 처음 보는 말도 있다.<br>또 그 말을 어떤 의미로 쓰는지, 어떤 말들이 사라졌는지를 살피고 있다. 노동신문이면 북한의 공식 신문 아닌가. 그러니 이 신문에 쓰이는 말들은 북한의 공식언어라고 보면 된다.<br>저자가 방대한 양의 노동신문과 다른 매체들을 살펴서 북한에서 쓰고 있는 말들을 알려주고 있기에, 북한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어떤 말들을 쓰고, 어떤 말들은 쓸 수 없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br>거기다 공식 매체인 노동신문에 실리는 글 중에 정말로 찰진 욕들이 왜이리 많은지, 북한은 그러한 찰진 욕들을 북한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 퍼붓는다고, 웬만한 경우가 아니면 북한 사람들을 대상으로는 그러한 욕설을 싣지 않는다고 한다.<br>참. 가끔 북한에서 나온 성명서를 보면 와, 저런 심한 욕을 하기도 하는구나, 어떻게 정부의 대표라는 사람이 공식적인 문서에서 저런 표현을 하지 했었는데, 자신들의 감정을 직설적으로 강하게 외부를 향해 표현하는 방식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음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br>이렇게 이 책은 북한의 공식 매체를 통해서 사용되는 말들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낯설지만 친숙한 말들이기도 하다. 북한과 우리는 한글을 쓰고 있지 않은가. 또한 많은 어휘들이 여전히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고.<br>그럼에도 분단으로 인해 달라진 말들, 이 책에서 저자는 이제 북한이라는 말도 쓰면 안 된다고 하는데, 남한이라는 말이 북한에서 사라지는 과정도 살펴주고 있으니, 어떤 말들이 북한에서 쓰면 안 되는 말인지를 어느 정도는 알 수 있게 된다.<br>다만, 공식적인 매체에 쓰인 언어를 살피고 있기에, 아마 북한 당국이 특정한 말들을 금지했다고 해서 그 말들이 쓰이지 않을 거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br>말은 탄압한다고 해서 없어지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것이 언어이기 때문에... 오히려 억압이 심해지면 그 언어를 몰래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그 말이 더 오래 살아남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는데...<br>그런 일상에서의 말까지 살필 수 없는 것이 한계이긴 하지만, 그 한계는 어쩔 수 없다. 우리는 북한과 관계가 단절되어 있으니까. 아마도 관계가 회복되어 서로 교류가 된다면, 이 책의 2부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br>노동신문에서 다루는 말들과 실제 생활에서 쓰는 말들의 같고 다름을 살피는 책. 공식적인 매체를 통해서 살핀 북한말이기 때문에 좀 답답한 느낌도 있다. 재미가 아니라 답답함. 언어를 꼭 이렇게 통제해야 하나 하는 생각.<br>하지만 교류가 끊긴 이때 북한에서 쓰는 말들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으니, 이 책을 읽으면서 남과 북은 아직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면 그나마 위안이 될까.<br>하루빨리 남북이 자유롭게 교류해서 실생활에서 쓰는 북한말에 대한 책이 나왔으면 하는 기대를 해본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17/78/cover150/k60213961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5177845</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이름을 갖고 환한 낮에 함께 살 수 있는 세상 - [이름 없는 것들의 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489442</link><pubDate>Wed, 02 Sep 2026 16: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48944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82130711&TPaperId=1748944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27/79/coveroff/k38213071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82130711&TPaperId=1748944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이름 없는 것들의 밤</a><br/>정보라 지음 / 현대문학 / 2026년 07월<br/></td></tr></table><br/>백창우 노래 '우리의 노래가 이 그늘진 땅에 햇볕 한 줌 될 수 있다면'에서 이런 가사가 있다. '이름 없는 꽃들 다 이름을 얻고'라는...<br>이 소설 제목을 보자 이 노래 가사가 떠올랐는데, 이름 없는 것들의 밤에서 '이름 없는'이라는 말과 '밤'이라는 말이 힘든, 어려운,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등등을 의미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소설에서 '이름 없는 것들의 밤'은 말 그대로 힘든 사람들이 힘들게 사는 삶 정도가 아니라, 그들이 그런 삶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는 말이지 않을까 했다.<br>연작소설이라고 한다. 첫소설 제목을 보고서는 어, 어디서 본 소설인데, 아니 내가 읽은 소설인데 했다. 읽으면서 역시 읽은 소설이야 했는데, 이 소설은 짧은 소설로 먼저 출간이 되었다. 그러니 이 소설을 시작으로 연관된 내용의 소설 두 편이 묶여 이 소설집을 이루고 있다고 보면 된다.<br>&nbsp; 흡혈인, 인조인간, 인간, 기계 등이 등장하는데, 이름 없는 것에 이들이 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 첫번째 소설에서는 흡혈인과 인간 마리카, 그리고 인조인간 빌리가 등장하는데, 인조인간이 빌리라는 이름을 얻고 기계로서의 삶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삶을 선택하는 모습이 펼쳐지고 있다. 물론 흡혈인으로 등장하는 주인공은 인간의 피로 살아가는 존재이지만 기계에 종속된 인간보다도 더 인간적인 모습으로 나온다.<br>&nbsp; 두번째 소설에서는 인간 마리카의 이야기다. 아니 인조인간 마리카의 이야기라고 해야 하나? 처음 읽으면서는 앞 부분에서 잠깐 언급된 마리카의 삶을 두 번째 소설에서 펼치고 있구나 했는데, 읽으면서 반전이 일어난다.<br>&nbsp; 마리카가 생각하는 자신이 자신이 아닐 수도 있음을...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기계에서 이용당하게 되는데... 그럼에도 마리카는 자신이 기계 또는 기계의 일부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과거의 의식이 너무도 선명하게 남아 있기 때문에...<br>이런 의식이 과연 인간일까? 그런 의식으로 인해 다른 존재에게 자신도 모르게 피해를 줄 수도 있지 않을까? 마리카는 그렇게 기계를 위한 첩자 역할을 하게 되고, 여기에 기계로 인해 아이를 낳는 기계로 변해버리기도 한다.<br>세 번째 소설에서는 이런 마리카의 아이라고 하는 존재가 흡혈인 앞에 나타난다. 그런 그에게 흡혈인은 '모르다'는 뜻을 지닌 '네빔'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네빔과 흡혈인 또다른 인간들, 그리고 인조인간들이 모두 나와 기계에 저항하는 장면.<br>그렇다고 기계에 승리하는 장면으로 끝맺지 않는다. 그런 행복한 결말을 내기에 지금 세상은 불확실하다. 우리는 이 소설에 나오는 기계들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앞으로 앞으로 달려나가고 있으니.<br>그것들이 일으킬 부작용을 생각하기보다 그것들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이로움만을 생각하고 있으니... 그러한 이로움만을 추구하다가 어떤 결말에 이르게 될지 생각하지 않으면서. 어쩌면 기계를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킬수록 인간이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변해갈지도 모르는데...<br>그러면서 이러한 기계 시대에 소외되는 존재들의 문제에 대해서 눈 감게 되는데... 이 소설에서 말하듯이 끝까지 저항하는 존재들은 소수자들이다. 기존 사회에서 특권을 누리던 존재들이 아니다. 특권을 누리던 존재들은 기계 시대에도 자신들의 특권을 잃지 않기 위해 기계에 협조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던 존재들, 사회에서 배제되었던 존재들은 그러한 기계 시대에도 역시 배제될 수밖에 없다.&nbsp;<br>그들은 계속 이름 없는 것들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이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가지려고 할 수록 탄압은 거세질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이미 '밤'에 살던 사람들... '밤'에 묻혀 영원히 이름 없는 것들로 살아갈 수는 없다.<br>이들은 이름을 가져야 한다. 당당한 삶의 주체로서 살아가기 위해서. 그래서 '밤'이 아닌 '낮'으로 나와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기존 사회에서 그들은 '악마'로 분류되어도 된다.<br>이 소설의 끝에서 "우리는 모두 악마에게서 왔다'(286쪽)는 말이 이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br>뭐, 이런 저런 생각을 해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이 소설집이 좋은 이유는 재미있다. 한번 잡으면 끝까지 읽고 싶어진다. 흥미진진한 소설. 그러면 됐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27/79/cover150/k38213071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277981</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여러이야기</category><title>한글, 창제 이후 거쳐온 과정 - [한글, 불편한 진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486051</link><pubDate>Tue, 01 Sep 2026 10: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48605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52139942&TPaperId=1748605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47/34/coveroff/k05213994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52139942&TPaperId=1748605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한글, 불편한 진실</a><br/>강명관 지음 / 푸른역사 / 2026년 06월<br/></td></tr></table><br/>제목이 자극적이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사실에 대한 반론이라고 여기는 제목이다. 불편한 진실이라니...<br>그렇다면 한글에 대해서, 세종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들이 진실이 아니었던 말인가? 이런 주장이 과연 설득력이 있을까?<br>설득력을 지니기 위해서는 꼼꼼하게 자료를 살펴야 한다. 한글의 창제과정부터, 창제된 이후에 한글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주로 누가 사용했고, 남아 있는 기록은 무엇인지 등을 살펴야 한다. 그런 다음에 한글에 대한 진실을 주장할 수 있다.<br>그런데, 한글이 창제된 지 600년이 되어 간다. 1443년에 창제했고, 1446년에 반포했다고 기록에 남아 있으니 반포한 년도로 따져도 한글은 580년이라는 세월을 우리 곁에 있었다. 그동안 한글에 대한 연구도 많았고...<br>하지만 한글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는 않다. 두 가지 요인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하나는 당시에 인쇄술과 종이의 문제다. 금속활자가 있었다고는 인쇄를 나라에서 관리를 했기에, 누구나 인쇄할 수는 없었다. 여기에 그것을 찍어낼 종이는 많지 않았던 시대 아니던가.<br>그래서 옛날 이야기를 읽다보면 종이가 없어서 이면지를 사용하는 것은 기본이고, 그러한 이면지조차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개울가에서 모래에 쓰던지, 아니면 바위에 글씨를 썼다고 하지 않던가. 정보를 장악한 국가가 정보를 취사선택해서 인쇄해서 유포하느냐, 인쇄하지 않느냐를 결정했으니, 한글로 인쇄된 종이가 많이 남아 있을 수가 없다.<br>또한 신분제 사회에서 문자를 쓰고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은 소수였다. 근대에 들어서도 문맹이 문제가 되지 않았던가. 조선시대에는 문자를 읽고 쓰지 못하는 사람이 대다수였을 것이고, 그것이 그들의 삶에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처럼 수시로 문서를 주고받는 사회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인쇄 역시 대량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br>또 하나는 우리나라가 겪었던 전쟁이다. 한글 창제 이후에 겪은 큰 전쟁만 해도 임진왜란, 병자호란, 그리고 일제강점기와 해방이 되고나서 벌어졌던 전쟁까지.<br>대체로 전쟁은 많은 기록을 없앤다. 살기 위해 몸부림쳐야 할 때에 기록물까지 챙기기는 힘들다. 따라서 조선시대에 벌어졌던 많은 전란으로 기록들이 사라졌을 가능성도 있다. 몇 안 되는 한글 기록들이 사라진 것.<br>여기에 그러한 기록물들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은 근대 이후의 삶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먹고살기 바빠서 불쏘시개로 쓴 경우도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br>국가에서 편찬한 기록물들이야 철저하게 관리를 했겠지만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같은 경우), 또 권세가들에서, 나름 전통있다고 자랑하는 집안에서는 자신들의 문집을 보관했겠지만, 대다수를 차지하는 민중들은 그러한 기록물을 보존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자신들이 쓴 글들이라야 주로 계약에 관한 사항이거나 개인의 생활을 이야기하는 편지글들이었을 테니.<br>이런 기록물의 제약을 염두에 두고 한글에 대한 논쟁을 살펴야 한다. 당연히 지금 우리가 살필 수 있는 자료들은 국가의 공인을 받은 기록물들이 많고, 명문가라고 할 수 있는 집안들에 전해져 내려온 기록물들인 경우가 많다.<br>저자가 살피고 있는 기록물도 그렇다. 그런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저자의 주장은 제목에서 제시한 것처럼 그렇게 불편하지는 않다.<br>훈민정음에 세종의 서문이 있기 때문이다. 이 서문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큰 차이는 발생하지 않는다.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서문을 읽으면 세종은 백성을 가엾게 여긴 것이 맞다. 그들이 편리하게 쓰도록 한글을 만들 생각을 한 것도 맞다. 이 점은 '불편한 진실'이라고 제목을 단 저자도 인정한다.<br>다만, 창제 이후의 과정에서 백성들을 위한 문자가 그들에게 다가갔느냐, 또한 그들이 편리하게 썼느냐에 대해서는 여러 자료들을 살피면서 그렇게 되지 않았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br>그 중 대표적인 것이 '부민고소법(部民告訴法)'이라고 한다. 지방 수령이 잘못했을 때 그 고을의 사람들이 수령을 고발하는 제도. 조선 초기에 이 제도가 살아있었다고 하는데, 이 법이 폐지된 때가 바로 세종 때라고 하는 것.<br>백성들이 자신들의 뜻을 펼치게 하려면 수령들의 잘못을 한글로 적어 호소하는 법을 시행해야 하는데, 오히려 그 법을 폐지했으니, 어떻게 백성들이 자신들의 뜻을 쉽게 펼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br>이 점을 들어 '불편한 진실'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한글을 사용한 사람들이 과연 일반 민중이었을까? 오히려 사대부라고 하는 양반들이 더 많이 사용했다고 하는 여러 자료들을 인용하면서 이 역시 '불편한 진실'이라고 한다. 저자는 이 두 가지를 구체적인 사료(史料)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br>그렇다. 불편한 진실일 수 있다. 한글이 창제된 이후 그것을 사용한 사람들은 당연히 양반층이 많았을 것이다. 왜냐? 이들에게는 시간이 많았으니까. 또한 이들은 읽고 쓰는 일이 생활이었으니까.<br>반면 민중들은 먹고살기 바빴다. 글을 배워 읽고 쓸 시간이 거의 없었다. 하루하루 노동하면서 사는 사람들, 그들이 한글을 익힐 여유가 있었을까? 결국 한글에 얽힌 불편한 진실은 세종의 의도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아니다.<br>그동안 우리 사회가 민중들이 문화생활을 할 수 있게 노력해왔는가를 살피는 일이다. 소수의 집권층이 자신들은 경제적 부와 정치 권력, 그리고 문화 생활을 하면서도 자신들의 삶을 받치고 있는 민중들의 삶을 개선시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음을 문제삼아야 하는 것이다.<br>한글이라는 훌륭한 문자로 누구나 문화 생활을 할 수 있는 조건은 갖추어졌으나, 사회제도로써 그것을 뒷받침하지 못했다는 것, 이것을 세종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을까?<br>세종이 살았던 조선 초기, 왕권이 막 강화되기 시작한 때, 세종은 한글이라는 누구나 익히고 쓸 수 있는 문자를 선물로 남겨둔 것이 아닌가. 그 한글을 통해 어떤 사회를 만들어갈 것인가는 후대의 몫이지 세종의 몫은 아닌 것이다. 물론 후대 왕들이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적어도 우리는 조선은 왕조 사회였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br>왕-사대부-양인-천민으로 구성된 신분제 사회에서 문자를 익힐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집단은 사대부 이상이었다. 그것이 경제가 발전하면서 양인들도 여유가 생기게 되니, 여항문학이 생겨나게 되고, 이들에게도 문자의 필요성이 대두했을 것이다.&nbsp;<br>마찬가지로 천민들도 삶에 여유가 생기면 문자를 익히려고 한다. 자신의 생각을 펼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때문이다. 이때 한글은 그들에게 배우기 쉬운 문자로 다가갈 수 있다. 아니, 다가갔을 것이다. 그러니 1894년에 한글을 나라의 공식 문자로 선포할 수 있었던 것 아니었을까?<br>즉, 한글은 처음에는 양반층을 중심으로 사용되었지만 점차 백성들에게로 다가갔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세종 당대에 일어난 일이 아니더라도, 한글이 있었기에 민중들이 점차 문자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br>그러므로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주로 사대부(양반)층에서 한글을 사용했다고 하는 것은 불편한 진실이라고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br>하지만 이 책은 한글이 창제된 이후 그 쓰임이 어떠했는가를 살피고 있어서, 한글 창제 이후 한글의 쓰임을 살피는데 도움이 된다. 한글이 꾸준히 살아남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배우기 쉽고, 우리 말을 문자로 표기하는데 좋은 문자였기 때문이라는 것을 오히려 '불편한 진실'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저자의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다.<br>한글 창제 이후, 한글의 쓰임을 알고 싶으면 꼼꼼하게 읽어볼 만한 책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47/34/cover150/k05213994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5473463</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이야기</category><title>점점 유령화 되는 시대, 관계맺기에 대하여 - [고스팅 - 유령화 시대의 사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482456</link><pubDate>Mon, 31 Aug 2026 09: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48245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972142&TPaperId=1748245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17/25/coveroff/897297214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972142&TPaperId=1748245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고스팅 - 유령화 시대의 사랑</a><br/>도미닉 페트먼 지음, 최리외 옮김 / 동녘 / 2026년 06월<br/></td></tr></table><br/>'유령화 시대의 사랑'이라는 작은 제목을 달고 있다. 실체를 만나지 않고 관계를 맺어가는 사회를 유령화 사회라고 할 수 있다면, 현대처럼 기술이 발전한 시대는 분명 유령화 시대가 맞다.<br>우리는 수많은 관계를 사회적관계서비스망(SNS)을 통해서 맺고 있다. 어떤 이는 엄청나게 많은 이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데,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사회학자 로빈 던바의 연구에 의하면 '150명이 넘어가면 진정한 추동력을 가진 우정이나 지인 관계를 유지할 수 없으며, 관계는 공허한 유사-사회적 제스처로 허물어진다'(16쪽)고 하니, 이런 관계를 중심으로 유지되는 사회를 유령화 시대라고 할 수 있겠다.<br>이런 유령화 시대에 너무도 쉽게 관계를 끊는 일이 발생한다. 끊기도 하고 끊김을 당하기도 하고... 이를 '고스팅'이라고 한다.<br>'2012년에 나온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고스팅은 누군가를 무시하거나 모르는 척하는 행동, 특히 SNS나 문자 메시지 등에서 갑작스럽게 응답을 중단하는 행동. 모든 의사소통을 중단함으로써 관계나 연결을 끝내는 행위'(26쪽)라고 정의된다.<br>이 정의만 봐도 지금 시대는 유령화 시대가 맞다. 너무도 쉽게 고스팅을 하고 또 고스팅을 당한다. 많은 관계를 맺고 있지만 그 관계가 계속 유지될지 모르는 상황인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누구나 불안할 수밖에 없다. 자신이 끊든, 끊김을 당하든.<br>하여 '고스팅은 우리 자신의 내면과 영혼에 빈 공간을 만든다'(12쪽)고 하는데, 저자는 이러한 고스팅을 연인 관계, 가족이나 친구 관계, 그리고 사회 관계로 나누어 살피고 있다.<br>가장 친밀한 관계라고 할 수 있는 가족 간에도 고스팅이 빈발하고 있음을 문학, 영화, 그리고 실제 사례들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이 사람의 삶에 큰 상처를 남긴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br>같은 공간에서 지내는 가족 간에도 이런 고스팅이 일어난다면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 연인 관계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어느 순간 연락을 끊어버리는 일들이 자주 일어나는 것. 상대에게 이별을 통보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무런 암시도 없이 연락을 끊는 경우도 많다고.<br>영화나 소설을 보면 이러한 일들을 만나볼 수 있으니 이러한 고스팅이 낯선 일은 아니다. 다만, 고스팅으로 인해 상처를 받게 된다는 점. 그러한 고스팅이 빈번하다면 그 사회는 실체들이 관계를 만들어가는 곳이 아니라 유령들과 같이 실체가 없는 관계들만 난무하게 된다는 점을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br>이런 고스팅이 빈발하게 된 데는 사회-문화적 요인이 크다고...특히 이윤을 앞세우는 기업들이 자신들이 의도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사회적으로 고스팅을 유발하고 있다고...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정치-경제적 권력자들도 사람들을 한 순간에 고스팅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br>이러한 고스팅 중 대표적인 것을 들라면 우리가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하는 것들과 '재개발'을 들 수 있겠다. 자신이 살던 곳에서 한 순간에 쫓겨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는 것. 이것은 정치권이 시민들을 고스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br>이렇게 사회적 약자들을 쉽게 고스팅 하는 사회라면 다른 분야에서도 고스팅이 빈번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다. 고스팅은 전염성이 강하니까.<br>그렇다면 대책은 무엇인가? 가상현실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관계들.&nbsp;SNS를 통해 이루어지는 관계들. 이런 관계들을 모두 끊어야 할까? 아니, 그런 관계들을 모두 끊으라는 주장을 하지는 않는다.<br>이미 우리는 그런 세상을 되돌릴 수는 없으니까. 되돌릴 수는 없더라도 우리가 잊어서는, 잃어서는 안 될 것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은 직접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br>즉 특정한 공간에서 서로 부딪히며 살아가는 존재, 지금처럼&nbsp;SNS 속 관계가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그 관계는 우리 몸과 몸이 만나는 관계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는 것.<br>하여 '가까운 이들과의 싸움, 갈등 그리고 좌절은 그저 진솔한 대인관계의 연결감으로부터 형성되는 질감, 역사, 궁극적으로는 보상의 일부'(178쪽)라고 한다. 즉 이러한 갈등은 피할 것이 아니라 관계를 맺어가는 데 필수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보상이라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으니...<br>기술이 발전하고, 인공지능 시대가 온다고 해도 인간들이 인간들과 만나 관계를 맺는 일은 사라져서는 안 된다. 우리가 가상 현실 속으로 들어간다면, 그야말로 유령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유령이 될 것이다. 그러니 만나야 한다.<br>만날 수 있는 장소들, 그런 장소들의 소중함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그 장소에서 만나는 사람들, 그들이 나와 다르다고, 나를 귀찮게 한다고 관계를 끊는 것이 아니라 나를 조금 내어주고 그들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nbsp;<br>이것이 '고스팅'이 우리를 지배하지 않게 하기 위한 방법이 아닐까, 결국 이 책은 비대면 사회를 지향하는 우리에게 '대면 사회'의 중요성을 알리고, 사람들이 서로 만나 함께하는 것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br>* 고스팅을 우리말로 '손절'이라고 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는데, 무언가 다른 느낌을 주고 있으니, 손절, 배제, 따돌림 또는 자발적 고립 등이 모두 포함된 말이 고스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상태, 그것이 바로 고스팅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17/25/cover150/897297214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5172569</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이야기</category><title>실리콘밸리에서 죽음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고! - [불멸의 설계자들 - 트랜스휴머니즘에서 바이오해킹까지, 실리콘밸리 영생 프로젝트를 추적하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476712</link><pubDate>Fri, 28 Aug 2026 09: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47671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82138634&TPaperId=1747671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56/90/coveroff/k18213863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82138634&TPaperId=1747671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불멸의 설계자들 - 트랜스휴머니즘에서 바이오해킹까지, 실리콘밸리 영생 프로젝트를 추적하다</a><br/>알렉스 크로토스키 지음, 최정숙 옮김 / 미래의창 / 2026년 06월<br/></td></tr></table><br/>이 질문에 대답을 해 보자.<br>불멸주의자 중 한 사람인 존슨이 한 말이라고 한다.<br>"인생 최고의 신체적-정신적-영적 건강을 주는 알고리즘에 접근할 수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그 상태에 닿는 대가로 여러분은 알고리즘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됩니다. 알고리즘이 먹으라고 할 때 알고리즘이 짚어준 것을 먹는 겁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하겠습니까?" (337쪽)<br>죽음을 늦추는 방법. 그 대가는 자율성을 잃는 것이다. 알고리즘, 인공지능이 시키는 대로만 해야 한다. 과연 그런 삶을 인간의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니... 이에 대한 대답은 사람마다 다를 수도 있겠지만...<br>두려운 죽음. 삶과 늘 함께하지만 그 존재를 의식하고 싶지 않은 죽음. 어떻게든 멀리 떨쳐버리고 싶은 죽음,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죽음. 하지만 아직까지는 피할 수 없는 죽음. 필멸의 존재, 인간.<br>필멸의 존재이기에 불멸을 꿈꾼다. 인간이 애초부터 불멸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만약 신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러한 신이 불멸의 존재를 창조한다면 과연 그에게 생식 능력을 부여할까?<br>아마, 생식 능력을 부여하지 않을 것이다. 불멸의 존재이기 때문에... 생식 능력이 있다면 불멸의 존재들이 한 없이 늘어날 텐데, 그것을 감당할 장소가 없게 될 것이기 때문에...&nbsp;<br>또한 신을 믿지 않고 진화론을 믿는다면, 과연 불멸의 존재에게도 생식의 능력이 나타날 수 있을까? 신의 창조와 마찬가지로 진화의 관점에서도 불멸의 존재에게는 생식 능력은 없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진화란 적응과 생존인데, 불멸의 존재가 계속 생식을 한다면 적응과 생존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br>이렇게 창조론과 진화론을 보아도 인간은 또 생물은 불멸의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필멸, 언젠가는 죽음에 이르는 것이 바로 이 지구에서 인간이나 생물들이 살아가는 온당한 방식이다. 그것이 그들의 생존을 유지하는 비결이기도 할 것이고.<br>그런데 불멸을 추구하는 존재들이 있다. 바로 인간이다. 인간이 의식을 통해 죽음을 생각하면서, 또 주위 존재들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죽음에 대해서 두려움을 지니게 되었다.&nbsp;<br>알지 못함이 두려움을 낳고, 두려움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다는 욕망을 낳는다. 그러한 욕망이 죽음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한다. 인류가 기록을 남긴 때부터 죽음을 피하고자 하는 욕망들이 얼마나 많은 기록으로 남아 있는가?<br>하지만 성공한 사례가 있던가? 없다. 없으니 지구에서 인류가 계속 생식을 통해 지구 상에 존재했으리라. 이것이 지금까지의 과정이다. 그런데 다른 변수가 생겼다. 인간이 신의 자리에 오르려 하고, 오를 수 있다고 여기는 존재들이 나타났다.<br>범용인공지능, 그것을 통해서 인간은 불멸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기대를 한다. 지금까지 인간이 몰랐던 사실을 인공지능을 통해서 알 수 있을 것이고, 늙지 않는 법을 발견하고, 그를 실현할 수 있는 시대가 곧 올 것이라고 믿는 존재들... 이 책에서는 그들을 불멸주의자들이라고 부른다.<br>불멸주의자들(IMMORTALISTS). 최첨단 과학기술을 자랑하는 실리콘밸리에서 불멸을 추구하는 집단들이 나타났고, 이들은 그 가능성을 이야기하면서 사람들에게 접근하고 있다.<br>이런 이들의 사고를 지탱하는 것은 우선 인간은 기계라는 관념과 객관적이고 측정가능한 정보이론, 그리고 시스템 이론이라고 한다.<br>인간도 디지털처럼 0과 1로 나눌 수 있다는 것, 고도로 복잡한 기계가 바로 인간이라는 것, 인간의 신체를 이렇게 해체하고, 부분들로 나누어 그 부분들의 역할을 파악한다면 죽음을 극복할 수도 있다는 것.<br>그래서 다양한 관점을 지닌 불멸주의자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이론과 지금까지 해왔던 실험들을 살피고 있다.<br>지금까지는 인간의 능력을 동원해 실험과 연구를 했다면, 이제는 인공지능을 통해 그것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다고...<br>하여 '실리콘밸리의 독실한 불멸주의자들은 ... 죽음을 정복하는 데 필요한 것은 그저 기계에 문제를 맡긴 후 답을 찾아내게 만드는 일 뿐이라고'(157쪽) 한다. 즉 '끊임없이 전진하는 기술이, 인간존재 자체를 포함해 우리가 직면한 모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리란 신념'(173쪽)을 지닌 이들이 바로 실리콘밸리의 불멸주의자들이라고 한다.<br>엄청난 규모의 자본을 투자하고, 네트워크 국가를 창설한다고 한다. 단지 네크워크 상에만 존재하는 국가가 아니라 국가로부터 땅을 사들여 그 나라의 법에서 자유로운 자신들의 이념을 자유롭게 실행할 수 있는 국가를 마련하고 있다고... 좀 섬뜩하기도 하다. 이들이 국가로부터 땅을 구입해 자신들의 네트워크 국가를 만들 때, 이미 그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쫒겨나고 말 뿐이니...<br>또한 이들이 불멸을 추구하는 사업을 하는데, 여기에 가난한 사람, 사회적 약자,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특히 무슬림)은 그들의 네트워크 국가에 들어갈 수도 없다. 또한 그들이 수명 연장을 위해서 하는 갖가지 방법들도 돈이 없는 사람들은 시도조차 해볼 수도 없다.<br>즉, 이들이 추구하는 네트워크 국가, 이 앞에 '불멸'을 붙이고 싶겠지만 이들 역시 아직 범용인공지능이 나오지 않았기에 '불멸'이란 말 대신 '장수'라는 말을 붙여 '장수 네트워크 국가'라고 하기도 한다는데... 그런 국가에는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이 자리할 수 있는 장소는 없다.<br>이 책의 저자는 많은 불멸주의자들을 인터뷰한 결과 그들이 추구하는 것이 과연 현재의 삶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되기보다는, 가진 자들의 미래를 더욱 있게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br>그런 사회가 과연 바람직한가? 저자는 아니라고 한다. 저자는 '죽음은 결국 우리 모두에게 찾아온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그것을 맞이하는 우리의 태도뿐이다.'(333쪽)라고 하고 있다.<br>이렇게 죽음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죽음과 함께하는 삶을 인식하고, 어떤 삶을 살 것인가? 현재의 내가 만족스러운 삶,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한다.<br>죽음, 그것을 피하는 불멸. 하지만 인간에게 불멸은 생물학적으로 몸이 죽지 않음을 넘어서는 그 무엇일 수도 있음을, 그래서 인간과 다른 생물들에게 생식 능력이 존재함을, 나라는 개체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라는 집단으로 존재하는 것이 바로 불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br>실리콘밸리에서 추구하는 인간의 몸을 기계로 대하면서 고치려고 하는 모습과 더불어 먼 미래 기술을 바라면서 냉동하는 기술도 지금 쓰이고 있다고 하니, 인간에게 죽음이란 여전히 피하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 물론 내게도.<br>그래서 더 많이 죽음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존재임을 알기에.]]></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56/90/cover150/k18213863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3569008</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이야기</category><title>샘 올트먼과 오픈 AI로 보는 AI개발의 문제 - [AI 제국: 권력, 자본, 노동 - 샘 올트먼과 오픈AI의 빛과 그림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474640</link><pubDate>Thu, 27 Aug 2026 09:5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47464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02135153&TPaperId=1747464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79/5/coveroff/k90213515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02135153&TPaperId=1747464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AI 제국: 권력, 자본, 노동 - 샘 올트먼과 오픈AI의 빛과 그림자</a><br/>카렌 하오 지음, 임보영 옮김 / 생각의힘 / 2026년 02월<br/></td></tr></table><br/>오픈&nbsp;AI. 아마 이 회사는 이제 이름을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자신들의 이름에 있는 '오픈'이라는 말을 부정하기 시작했으니까.<br>인류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기술을 함께 공유하자는 의미로 '오픈'이라는 말을 썼을 테고, 이 '오픈'이라는 말은 독점이 아니라 공유를 의미하는데, 그 동안 오픈AI가 걸어온 길을 보면 이들은 '오픈'과는 거리가 먼 행보를 보였다.<br>오픈AI의 최고경영자라 할 수 있는 샘 올트먼이 권력을 독점하고, 자신의 이윤을 위해서는 앞뒤 안 가리고 기술 개발을 해 온 결과, 또 그러한 기술 개발로 이윤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독점하기 위해서 '오픈'이라는 말을 부정하고 비밀로 하는 모습이 이 책 전반에 걸쳐서 나타나고 있다.<br>이 책을 쓴 저자는 기자다.&nbsp;AI 열풍이 불 때, 그것을 심층 취재한 사람이다. 특히 오픈AI에 대해서 직접 방문해서도, 또 관계자들을 만나고 다양한 학자들을 통해서, 여기에 오픈AI의 기술을 위해 일하는 세계 각국의 노동자들을 만나서 오픈AI라는 회사가 지금까지 해온 일들을 재구성하고 있다.<br>처음부터 박진감 있게 시작한다.&nbsp;<br>'2023년 1월 17일 금요일 ... 올트먼은 해고되었'다고.&nbsp;<br>어라? 샘 올트먼이 우리나라에 온다고 하면 정치인들부터 기업인들까지 열광을 하는데, 그가 해고된 적이 있었다고? 무슨 스티브 잡스야?<br>모르던 사실, 관심이 없었으니... 미국의 한 회사 최고경영자가 해고되었든 말든 그것이 내 삶과는 거리가 멀었으니... 하지만 아니다. 지금은 샘 올트먼이라는 사람이 해고되느냐 되지 않느냐는 내 삶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br>그가 오픈AI를 통해서 독점적 권력을 행사하고 있으니까. 초창기에 그의 비전에 동의하고 함께했던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가고 이제 남은 것은 이윤을 선점하기 위한 기술개발밖에 남지 않았으니까.<br>그에게는 인류의 행복이라는 것은 이윤을 넘어서는 것이 아니니까. 그러니 그(또는 그와 같은 신념을 지닌 사람)가 오픈AI에서 계속 권한을 행사하면 우리 삶이 어떤 쪽으로 가게 될지 예측할 수가 없다.<br>바로 이 책의 제목에서 말한 것처럼 '빛과 그림자'인데, 이것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지 않으면 인류를 유토피아로 이끌지 않고 디스토피아로 몰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br>이 책에서 오픈AI라는 회사가 발전할 때 자신들의 기술이 초래할 위험을 인지하고, 그것을 막을 방법이 구체화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제품을 출시하자는 쪽과 다른 기업이 제품을 내기 전에 먼저 내야 한다는 쪽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br>아무리 좋은 기술이라고 여러 측면에서 검토를 해야 한다는 쪽이 오픈AI에 있었을 때, 샘 올트먼이 자신의 이윤을 위해서 그들을 기만하는 말을 하는 모습을 여러 취재를 통해서 마치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도록 서술해주고 있다.<br>그러한 서술이 상상이 아니라 사실에 기반하고 있음을, 따라서 소설처럼 인물들의 갈등이 잘 드러나고 있지만 독자에게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한 표현기법이지 결코 허구가 아님을 주장하고 있다.<br>수차례 자신의 서술이 잘못되었을지도 모르니 검토해 달라고 오픈AI쪽에도 글을 보냈다고 하니, 저자 역시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오픈AI 쪽에서 답변읋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br>자신들에게 불리한 내용은 침묵으로 무시하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내용은 부풀려서 홍보하는 거대 기업의 모습이라고 보면 된다.<br>샘 올트먼이 해고되었다는 내용으로 시작해서 그러한 결론을 이사회가 결정하기까지의 과정이 방대한 분량으로 펼쳐지고 있는데, 결국 올트먼의 해고는 해프닝으로 끝나고, 그가 다시 복귀하고, 그에 반대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오픈AI를 떠나는 것으로 이 책은 끝나게 된다.<br>아니, 그들이 떠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기술이 사회적 책임, 인류의 행복에 대한 공헌을 목표로 한다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다른 방향에서 다시 시작하고 있음을, 또한 오픈AI와 정반대의 길을 걷는 사람들도 있음을 보여주면서 끝내고 있다.<br>그러니 이 책은 무조건&nbsp;AI기술을 반대하는 책이 아니다.&nbsp;AI를 인류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고민하자는 책이다.<br>인류의 행복을 위해서 또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nbsp;AI를 활용할 수 있다면 누가 반대하겠는가? 그렇지 않고 기술이 독점되고 권력이 집중되어 통제하기 힘들어졌을 때 어떤 일이 생길지 고민해야 한다.<br>또&nbsp;AI의 뒤에 가려져 있는 최소한의 임금으로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이 있음을, 또한 자원을 수탈하는 거대 기업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거대 기술은 독점으로 나아가기 쉽다. 왜냐하면 그것은 엄청난 규모의 자본이 필요하고, 그러한 자본을 조달할 수 있으려면 거대 기업이 되어야 하고, 그 투자 기금을 회수하기 위해서는 기술을 독점하려고 하기 때문이다.<br>그 점을 샘 올트먼과 오픈AI라는 기업을 통해서 저자가 잘 보여주고 있다.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는 책인데,&nbsp;AI라는 기술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을 이용한 기업의 행태를 보여주고, 인류를 위해서 과연 그러한 기술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다.<br>AI에 열광하는 사람, 또 비판적인 사람 모두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79/5/cover150/k90213515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5790556</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여러이야기</category><title>의료인류학으로 보는 몸 - [몸, - 살아내고 말하고 저항하는 몸들의 인류학]</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472582</link><pubDate>Wed, 26 Aug 2026 09: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47258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323852&TPaperId=1747258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816/85/coveroff/893232385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323852&TPaperId=1747258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몸, - 살아내고 말하고 저항하는 몸들의 인류학</a><br/>김관욱 지음 / 현암사 / 2024년 09월<br/></td></tr></table><br/>'몸'에 관한 책이다. 생물학이 아니다. 몸이 무슨 기능을 하느냐를 알려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질병에 관해서, 그 질병의 치유에 관해서 알려주는 책도 아니다.<br>처음부터 몸에 대한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들어가며'에서 세 개의 몸을 이야기하는데, 그 몸들은 '지하철 속 무거운 몸, 멈출 수 없는 택배기사의 몸, 빨간 조끼 속 몸'이다.<br>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몸'에 관한 책이 아닌 것이다. 의료인류학이라고 하는데, 몸을 인류학적 관점에서 살피고 있다고 보면 된다.<br>즉, 생물학적인 몸에 국한하지 않고, 생물학적인 몸에 영향을 주는 사회-문화를 살피고 있다고 보면 된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 몸이 사회-문화적으로 규정되고 있음을, 그래서 몸에 대한 이해나 반응이 상황에 따라 달라짐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br>'몸'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고 지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말한 '몸의 가장 큰 특징은 보인다라는 사실'(193쪽)에 그렇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 우리 몸은 내 몸이지만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한다. 몸은 보이는 것이다.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br>따라서 몸에는 수동성과 능동성이 모두 들어가 있다. 남을 의식해서 자신의 몸을 그들의 시선에 맞추려는 노력을 하기도 하고, 그런 시선을 의식해서 오히려 반대로 자신의 몸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이것이 바로 몸이다.<br>이런 몸을 저자는 '문화가 사람들의 몸을 통제하는 머리 위 양동이 속 물과 같다'(195쪽)고 사유하기 시작했다고 한다.<br>몸이 생물학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몸은 보이기-보여주기 때문에 오히려 문화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러한 문화에 자신의 몸을 맞추려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는 것. 그 문화에 맞지 않는 몸은 위축될 수밖에 없음을 여러 사례를 통해서 보여주기도 하고.<br>하지만 몸은 이렇게 보여지기에 문화라는 통제에 어느 정도 따르기도 하지만, 보여주기에 문화를 바꾸려는 능동성을 발휘하기도 한다.&nbsp;<br>이런 경우는 개인의 몸이 다른 개인의 몸과 만나 함께하는 순간, 변화의 지점으로 나아가게 된다. 즉 기존에 몸을 규정짓던 틀을 벗어날 수 있고, 새로운 틀을 만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br>저자는 이를 '나의 몸이 타인의 몸과 마주칠 때 새로운 시공간의 궤도가 형성될 수 있다'(242쪽)고 표현하고 있다. 몸은 이렇게 규정당하기도 하지만 규정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몸이고, 몸을 생물학적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br>하여 저자는 사람의 변화가 의식(이성)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몸에도 많이 의존하고 있음을 3부에서 다르고 있다. 바로 몸이 변해야 하는 것이다. 몸이 기억한다는 말이 있듯이, 몸은 기억을 통해서 경계를 넘어설 수 있다.<br>'몸'이 경계를 넘어설 수 있도록 한다는 것. 이러한 몸에는 사회-문화가 담겨 있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 이러한 관계는 추상적 관계가 아니라 직접 몸을 맞대는 관계일 때 더 좋다는 것을 '포옹'의 예를 들어 보여주고 있다.<br>이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우리 사회는 '보여지는 몸'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나, 그런 사회-문화적 분위기를 만들어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과 그럼에도 '보여주는 몸'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회-문화적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 그렇게 우리는 몸을 통해서 우리 사회의 경계를 인식할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br>'몸'에 관해서 다양한 방향에서 설명하고 있어서 새로운 관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저자는 끝부분에서 문화적 시공간을 넘어선 세 몸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장애, 퀴어, 애도'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br>'들어가며'에서 만난 몸과 연결이 될 수 있는데, 이러한 몸들을 통해서 경계에 대해 생각하고, 그 경계를 넘어설 수 있는 몸에 대해서, 꼭 자신이 그러한 몸이 아니더라도 그 몸들에 대한 편견을 걷어내고 함께할 수 있어야 함을 생각하게 된다.<br>'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어서 좋았던 책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4816/85/cover150/893232385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48168557</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세상이야기</category><title>멸칭 문화로 보는 연령차별주의 - [나이 묻는 사회 - 한국형 연령차별주의와 멸칭 문화]</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470497</link><pubDate>Tue, 25 Aug 2026 11: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47049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92138162&TPaperId=1747049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69/84/coveroff/k69213816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92138162&TPaperId=1747049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나이 묻는 사회 - 한국형 연령차별주의와 멸칭 문화</a><br/>정회옥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05월<br/></td></tr></table><br/>'나이 묻는 사회'<br>우리 사회에 딱 맞는 말이다. "너 몇 살이야?"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이!" 이런 말을 많이 쓰는 사회 아니던가.<br>이 책에서도 언급하지만 쌍둥이에게도 위아래를 정하는 나라가 이 나라니, 한 해, 두 해 이상 차이가 나면 어떻겠는가.<br>나이에 따라 철저한 위계를 따지던 나라에서 이제는 그것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최근에 듣기로는 대학가에서도 학번에 따라서 너나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이를 따져서 형-누나 한다고 하던데... 적어도 예전에는 너무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으면 같은 학번은 그냥 친구였는데...<br>이렇게 같은 학년에서도 나이를 따지는 사회이고, 학년이 다르면 철저하게 위-아래를 구분하는 사회가 바로 우리 사회니, 나이를 묻지 않을 수 없다.<br>초중고등학교에서 학년은 넘을 수 없는 벽이 되는 사회, 고작 한 해 먼저 학교에 입학했다고 마치 윗사람이 된 양 행세하게 하는 학교라니... 학교의 이런 위계질서를 12년 받고 나면 자연스레 나이에 따른 위계가 고착되지 않겠는가.<br>단지 나이가 많은 사람을 존중하면 그것은 좋다. 그런데 존중을 넘어서 위-아래를 구분지으려 하니 문제다. 또 그 나이 대가 누려야 할 권리라고 생각하면 다른 나이 대의 사람들이 그것을 침해할 수 없다고도 여기기도 하고.<br>대표적인 예가 저자도 언급하고 있지만 교통약자석 아닌가. 말 그대로 교통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좌석인데, 예전에 '노약자석'이라고 노인들의 전용 좌석이라고 착각해 다른 사람들이 앉으면 무슨 큰일이 나는 것처럼 얘기한 때가 있었다.<br>노약자라는 말에도 노인이라는 말과 약자라는 말이 합쳐져 있는데, 몸이 불편한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자리인데, 노인만의 자리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어서 이제는 '교통약자'라는 말로 바꾸었는데도 여전히 편견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br>이러한 편견이 언어에 반영이 되면 멸칭이 된다. 특정 세대를 비하하는 말이 쓰이게 되는데, 이것은 의식하지 않더라도 세대 간에 담을 쌓는 결과는 낳는다. 저자는 이 책에서 각 세대를 비하하는 멸칭을 보여주고 있는데, 어떤 세대도 이러한 멸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이런 멸칭들이 버젓이 쓰인다면 세대 갈등이 내면화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하게 된다.<br>그래서 저자는 이러한 멸칭을 쓰지 않아야 한다고, 이 멸칭이 특정 세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세대에 쓰이고 있다고 하니, 이것 참 문제다.<br>세대가 무엇인가? 누구나 한번은 거쳐야 하는 시기 아닌가. 사람이라면 모두가 겪어야 할 그런 시기들을 비하하면 결국 자신을 비하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니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br>세대라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고 함께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를 만날 수 있어야 한다. 함께 무언가를 해야 한다. 관계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서로 부대끼면서 만들어 갈 수밖에 없다.<br>만나야 이해든 뭐든 할 수 있으니, 세대를 가르거나 또는 특정 세대를 배제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 하여 저자는 '노 키즈 존'이나 '노 시니어 존'은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당연한 말이다. 어떤 공간에서 특정 세대를 배제하는 것은 연령 차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인권을 무시하는 행위고, 이런 행위가 일어나면 다른 차별도 우리 삶에 들어오게 된다.<br>따라서 이렇게 특정 세대를 배제하는 행위는 해서는 안 된다. 다양함이 사회를 풍요롭게 하듯이 각기 다른 세대가 어울리면서 살아가는 사회가 좋은 사회다.&nbsp;<br>이렇게 서로가 어울리는 사회라면 늙지 않으려는, 젊음을 유지하지 않으면 사회에서 도태될 것 같은 느낌은 사라질 것이다. 오히려 자신들의 나이를 받아들이고, 그 지점에서 다른 세대들과 어울리는 삶을 살아가려 할 것이다.<br>연령차별주의가 낳은 멸칭 문화. 이것은 하루바삐 사라져야 한다. 지금은 많이 순화가 되고 있지만, 여전히 특정 세대를 겨냥해 쓰고 있는 멸칭들, 쓰지 않도록 해야 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69/84/cover150/k69213816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698413</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