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함의 토끼, 광산의 카나리아' 시인을 일컫는 다른 말이다. 그만큼 시인은 예민한 감수성을 지니고 있다.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존재들을 바라보는 민감성. 그 민감성으로 인해 시인은 세상의 아픔과 함께 한다.


  시인에게는 '시를 쓸 수 없는 시대'는 없다. 시대가 힘들수록 시인은 시를 써야 한다. 세상의 아픔을 함께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연을 적으로 돌리지는 않는다. 자연은 우리가 물리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할 대상이다. 자연은 적이 아니라 동지다. 그러니 자연을 파괴하면서 인간의 행복을 추구한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자연 파괴는 인간 삶의 파괴로 이어진다. 무분별한 개발이 지금에 이르러서 우리에게 어떠한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이제는 인간 공동체만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또 다른 존재들이 모두 함께 살아가야 하는 지구 공동체, 우주 공동체를 만들려고 노력해야 할 때다.


그런데 공동체를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만 잘살겠다고 하면 공동체가 유지될까? 아니, 공동체의 유지에는 조금씩 손해보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나만이 아니라 우리라는 생각으로, 내 것을 양보할 줄 알아야 공동체가 존속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 공동체는 유지되지 않는다. 양보와 타협. 이것이 필요한데... 과연 지금 우리는 그러한가? 이성이 중심이 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하면서도 세계 각처에서는 아직도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자연을 더 이상 파괴했을 때는 인간 생존에도 문제가 있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자연을 파괴하고 있지 않나.


다른 동물들도 마찬가지고... 이럴 때 이 시집, 한편 한편 읽어보면 좋다. 생태를 주제로 한 시들의 모임이다.


모두가 인간 중심주의를 넘어 함께 해야 함을 생각하게 하는 시들이다. 이 중에서 최승호 시를 하나 인용한다. 


과연 우리 공동체는 이런 펭귄 공동체와 다른가 생각해 보게 된다.


     손을 잡지 않는 펭귄 공동체


     공동체의 이기심도 

     있다고 본다


     공동체의 이기심 속에

     뿔뿔이 흩어져 있는 이기심도 

     있다고 본다


     펭귄들의 포옹이 

     어색한 것은

     팔이 짧고

     배가 너무 나왔기 때문이다


     세상도 팔이 짧고

     배가 너무 나왔다

     나도 그렇다


     남극 눈보라 속에

     손을 잡지 않는 펭귄 공동체가 있다


     저마다 홀로 서는

     펭귄 공동체

     뿔뿔이 흩어진 채 모여 사는 펭귄 공동체


이혜원, 우찬제 엮음. #생태 시. 문학과지성사. 2021년. 156-157쪽.


'나도 그렇다'는 표현에 찔렸다. 나 역시 팔이 짧고 배가 나왔다. 남을 안을 팔은 짧아 잘 안지 못하고, 나에게 안기려는 대상을 나온 배가 밀어낸다. 그러니 함께 하기 힘들다.


그러면 안 된다. 배를 집어넣어야 한다. 팔이 짧으면 배를 집어넣어 상대를 안을 수 있게 해야 한다. 그것이 공동체를 이루는 길이다. 


'세상도 팔이 짧고 / 배가 너무 나왔다'는 시인의 표현, 이 시대에 딱 맞는 표현 아닐까 한다. 제발 배를 집어넣자. 너무 나온 배는 다른 존재를 밀어낸다. 그러면 공동체가 유지되기 힘들다.


이 시집에 실린 정희성의 '숲'이란 시에서 '광화문 지하도를 지나며 / 숱한 사람들을 만나지만 / 왜 그들은 숲이 아닌가'라는 절규, '그대와 나는 왜 / 숲이 아닌가'라는 말은 결국 배가 너무 나와 남을 안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최승호의 시와 정희성의 시가 이렇게 지금 우리들의 모습을 비춰주고 있다. 시인이 이래서는 안 된다고 외치고 있는데... 자꾸만 자기 배를 불리는 사람들이 보이니, 지금 우리는 '뿔뿔이 흩어진 채 모여 사는 펭귄 공동체'와 같은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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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빅이슈]를 보면 유튜브에 관한 글이 계속 실리고 있다. 그만큼 유튜브가 생활에 깊게 들어왔다고 할 수 있다.


  너무도 많은 유튜브 채널들. 그 중에서 그래도 볼 만한 채널을 소개해 주고 있어서 좋다고나 할까.


  이번 호에서는 표지에 웹툰 '가비지 타임'이 실렸다. 애니메이션 영화 '슬램덩크'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농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도 했는데...


  영화 '슬램덩크'보다 먼저 연재되기 시작한 웹툰이다. 단행본으로도 나올 것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가비지 타임'이라는 말에 주목하고 싶다. 경기를 포기할 때, 더이상 뒤집기 힘들다고 생각할 때를 가리키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는데, 농구 경기를 많이 치르다보면 어쩔 수 없이 포기하는 경기가 생길 수 있고, 이 '가비지 타임'이라는 말이 적절할 수도 있지만...


인생은 단 한 번이다. 어떤 인생에도 '가비지 타임'은 없다. 비록 지금 포기하고 싶은 상황이라도, 인생은 포기하면 안 된다. 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한발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는 일. 그래서 인생에서 '가비지 타임'은 없다. [빅이슈]가 어쩌면 삶에서 '가비지 타임'은 없다는 것을 잘 알려주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여기가 끝이라고 느껴질 때 거기서 주저앉지 않고 다시 일어나 걸을 수 있게 해주는 역할, [빅이슈]가 하고 있다. 


잡지 판매뿐이 아니라 잡지의 내용을 통해서 '가비지 타임'은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빅이슈]를 읽을 때 편안함과 행복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가비지 타임'을 없애는 역할을 사회가 해야 하지 않을까? 누구도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하지 않을까?


패자부활전이 없는 나라라는 말이 사라진, 인생에서 '가비지 타임'이 없는 사회를 꿈꿔본다. 이것이 그냥 백일몽이 아닌, 장차 실현가능한 꿈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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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에는 인물과 인물이 등장해서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그들이 보여주는 삶은 우리네 삶이다.


  시에는 인물과 인물이 등장하더라도 소설과 다르다. 이야기가 압축되어 있다.


  많은 부분이 생략되어 있다. 그러나 소설이든 시든 삶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박남준의 이번 시집 2부에서 4부까지는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삶들이 들어 있다.


  시인 자신의 삶이기도 하지만, 그 삶은 바로 우리의 삶이기도 하다. 그래서 시는 내밀한 자기 고백이기도 하지만, 사회 속 우리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시집에 실린 지리산에 관한 시들을 보면, 참 짠하다. 환경영향평가라는 항목이 유명무실해진 지금, 환경부가 환경파괴부라고 할 수 있는 모습을 이 시들을 통해서 만날 수 있다.


비록 최근에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문제로 환경영향평가가 무용지물임을 알게 되었지만, 설악산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이미 지리산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지리산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무심할 수 없었던 시인. 이 시집에서 '지리산이 당신에게, 지리산은 지리산의 자리에서 노래하네'라는 시를 통해 시인의 마음을 만날 수 있다.


그만큼 우리는 어쩌면 높고 크고 강한 것들을 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낮은, 작은, 약한 것들에 관심을 두지 않을지 모른다.


낮은 곳으로 임하소서라는 말, 안빈낙도라는 말이 멀리 존재하는 이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이럴 때 낮은 곳으로, 작은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 역시 시인이다. 아니 우리들이어야 한다. 큰 산보다는 작은 산, 큰 나무보다는 작은 나무가 되고 싶다는 시인처럼.(시 '작은 나무' 84쪽)


사람이 가장 낮은 곳을 볼 수 있는 자세... 바로 '절'이다. 자신을 한 없이 낮추는 일. 이는 다른 존재를 높이는 일이기도 하다. 자신을 낯춤으로써 오히려 세상을 더 좋게 만들 수 있는 자세.. 절.


빳빳하게 고개를 들고 남을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낮추고 남과 함께 하는 일. 시인의 시는 지금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아니 우리가 지녀야 할 삶의 자세는 무엇일지 생각하게 한다.


자고로 성인들이 어떤 자세로 사람들을 대했는지, 이 시에 나오는 다른 시편들을 읽어보면 이 시에 담긴 시인의 마음을 더 잘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푸른 바다가 들어와 머물기도 했지

발목을 빠져나간 늙은 양말이 눈에 밟히며

애써 이룬 수평을 흔들었다

젊고 뻔뻔한 후회가 스치며 혀를 깨물게도 했네

여기까지는 얼마나 흘러왔는가

지문을 찍듯 엎드려

낮고 겸손한 바닥을 몸에 새기는 것만이

절은 아닐 것이다

절은 할수록 절로 늘어

뼈마디마다 불꽃을 피우고

육탈 같은 다비가 일어나기도 한다


꽃잎의 주소를 따라가면 환해지고는 했지

강가에 나가 꽃배를 띄웠다

일상이 간절해야지

점점 작고 가벼워져

꽃배를 타고 건너가야지


박남준, 어린왕자로부터 새드 무비. 걷는 사람. 2022년 1판 6쇄.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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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지 사진과 빅이슈 그리고 홈리스


  '홈리스 월드컵' 처음 들어봤다. 빅이슈 덕이다. 이런 경기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니... 그만큼 내세계에 갇혀 있었다는 얘기다.


  올림픽이 끝난 다음에 열리는 패럴림픽은 알고 있었는데, 홈리스 월드컵이라니... 그것도 매해 열린다니.


  영화 '드림'을 소개하는 글이 빅이슈 여기저기에 실렸는데, 왜 그랬나 했더니, 영화 '드림'이 홈리스 월드컵에 바탕을 두었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참가한 2010년 대회.


대회 참가 목적이 우승이 아니다. 참여하면서 자신들이 할 수 있음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음을 온몸으로, 온마음으로 느낄 수 있고, 또 삶에 대해서 다시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거창한 목적을 달지 않아도 좋겠다. 그냥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월드컵을 홈리스들도 즐길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됐다. 그들이 축구를 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이고, 또 그들만의 세계 대회를 갖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니 홈리스 월드컵이란 대회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가 있다. 여기에 우리나라 홈리스들도 참여하고 있다는 점도 의미가 있고.


여기서 생각해 본다.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고 했다. 인종, 성별, 경제적 차이, 신체 등에 의해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고. 이 당연한 명제가 당연하지 않게 여겨지는 사회는 문제가 있다. 아직도 장애인들이 지하철 역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라고 시위를 하고 있는 현실이 생각났다. 


요즘은 언론에서도 잘 다뤄주지 않지만, 이들은 한 해가 넘도록 자신들도 안전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이들의 요청에 답을 하지 않고 있는 관련기관이 답답하기만 한데...


홈리스 월드컵도 마찬가지다. 홈리스들은 경제적으로 참가비를 마련하기 힘들다. 참가비만이 문제가 아니다. 외국에서 대회가 열리니, 교통비도 마련해야 한다. 많은 돈이 들어가는 대회, 홈리스 월드컵이지만 현실적으로 경비는 무시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들이 경비 문제로 고민하지 않고 참가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래야 홈리스 월드컵에 더 많은 사람들이 참가할 수 있다. 


홈리스 월드컵은 한 해에 한 번 열리는 특별한 행사다. 이런 행사가 아니라 장애인들이 출퇴근을 하고 직장에 다니는 일은 늘상 해야 하는 일이다. 보통의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보통이 특별이 되지 않는가.


보통이 보통이게 하기 위해서는 제도가, 시설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뒷받침은 사회가 책임을 져야 한다. 사회의 의무다. 이 의무를 방기하고 있는 기관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휠체어를 탄 사람이 연극을 보러 대학로에 간다고 하자. 수많은 소극장들이 있는 서울 대학로. 하지만 소극장들은 3층 이상에 있거나 지하에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있는 소극장이 별로 없다는 것.


즉, 휠체어를 탄 사람은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고 싶어도 (대형 공연장이 아닌 소극장들에서 하는, 우리가 그다지 비싸지 않은 가격에 자주 접할 수 있는) 볼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홈리스 월드컵처럼 참가비용 때문에 참가하기 힘들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과 비슷하다. 개인에게 책임을 묻기보다는 제도, 시설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보통이 특별이 되지 않게.


영화는 보지 못했다. 그렇지만 빅이슈를 통해서 홈리스들이 꽤 오랫동안 대회에 참여해왔음을 알게 되었다. 좀더 관심이 생겼다고나 할까.


이번 호에는 그때 직접 선수로 참여했던 빅판의 이야기와, 감독으로 참여했던 사람, 그리고 영화를 만든 감독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영화를 본 사람이 이번 호를 읽는다면 영화와는 또다른 무엇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같이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도 글을 통해서 무언가를 느낄 수 있으니.


그래서 영화 '드림'은 영화로 끝나서는 안 된다. 빅이슈가 홈리스의 자립만을 위한 잡지가 아니라 우리 보통 사람들을 위한 잡지이듯이...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낮은 시선에서 살펴볼 줄 알아야 하겠다. 높은 곳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낮은 곳을 볼 수 있는 눈, 그런 눈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영화 '드림'이었으면 좋겠다. 잡지 [빅이슈]가 그런 눈을 지니게 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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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man 2023-05-12 15: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제 영화를 봤는데, 감동적 실화와 별개로 정작 영화는 별로였어요..
 

  좋았다. 박남준 시인의 첫시집이란다. 다시 펴낸 첫시집. 아마 시인도 감회가 새로웠겠지만, 나처럼 박남준 시인의 시집을 몇 권 읽은 사람에게도 반가운 일이 된다.


  첫시부터 마음에 들었다. 개인이 느낄 수 있는 사랑, 서정을 잘 담아내고 있는 시인데, 꼭 개인의 서정이 아니라, 사람들 모두에게 해당하는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무언가를 간절히 그리워하면, 그 그리운 대상에게로 가려고 하지만, 가도 가도 닿지 못할 때 그냥 포기할까? 아니다. 포기하지 않는다. 가지 못하지만, 그 대상을 잊지 못할 때 기다린다. 


  그가 지나갔던 자리에 서서, 기다리는 자세.. 이는 포기가 아니라 다시 돌아올, 다시 만날 때까지 잊지 않고 기다리겠다는 마음의 표시다.


이런 마음이 그 자리에 서서 나무가 될 수도 있지만, 다른 쪽으로 마음이 갈 수도 있다. 그리워 하는 대상이 잘 살 수 있는 곳을 만드는 일. 또는 그리워 하는 대상이 바라던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일.


그와 함께 가지는 못하지만, 그가 바라던 세상을 향해 가면, 이미 그는 그 걸음 속에 함께 한다. 박남준 첫시집은 그래서 개인의 마음에서 사회로 나아간다. 


시인이 태어난 전라도, 특히 법성포 이야기에서부터 광주민주화 운동이나 민주화 운동을 상기시키는 시까지, 이 시집에는 다양한 마음이 담겨 있다.


다양한 마음이라지만, 그 마음은 그리움이다. 아직 우리가 도달하지 못한 무엇에 대한 그리움. 그 그리움을 향해 나아가는 마음.


첫시부터 마지막시까지 주욱 읽어가면서 마음이 포근해지기도 하다가도 주먹을 불끈 쥐기도 하다가, 슬픔에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한다.


시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시집이다. 여기에 이야기가 있는 시도 있으니, 한 사람의 인생이 녹아 있는 시 '할매는 꽃신 신고 사랑 노래 부르다가'라는 시도 있으니. 시를 통해서 우리 현대사의 비극을 만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시인은 포기하지 않는다. 시는 포기를 모른다. 시는 그 자리에 서 있더라도 누군가에게 이정표가 되기도 한다. 또한 언젠가 올 사람을 환대해 주기 위해 기다리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시는 계속 우리에게 남아 았다. 박남준 첫시집을 읽으면서 '세상의 길가에 나무가 되어'라는 제목이 된 시에서, 시가 하는 역할이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어쩌면 시는 시를 쓸 수 없는 시대에도 그 자리에 남아 시는 쓰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 첫시를 보자. 그냥 마음에 받아들이면 좋다.


       세상의 길가에 나무가 되어


     먼 길을 걸어서도 당신을 볼 수 없어요

     새들은 돌아갈 길을 찾아 갈숲 새로 떠나는데

     가고 오는 그 모두에 눈시울 붉혀 가며

     어둔 밤까지 비어 가는 길이란 길을 서성거렷습니다

     이 길도 아닙니까 당신께로 가는 걸음

     차라리 세상의 길가에 나무가 되어 섰습니다


박남준, 세상의 길가에 나무가 되어, 걷는사람. 2022년.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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