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고도 달콤한 성차별
다시 로크먼 지음, 정지호 옮김 / 푸른숲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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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서의 성차별을 다루지 않는다. 가장 친밀한 관계라고 할 수 있는 부부 사이에서 벌어지는 성차별을 이야기한다. 


사회에서의 성차별은 쉽게 구분할 수 있다. 표시도 잘 난다. 따라서 대응하기가 쉽다. 하지만 가정에서 부부간에 일어나는 성차별은 쉽게 구분하기도 힘들고, 표시도 잘 안 난다.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부부 간에 일어나기 때문에 사회가 개입하기도 그렇다.


순전히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되기 쉽지만, 그렇지가 않다. 가정에서의 성차별이 결국은 사회의 성차별로도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정에서의 성차별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책에는 다양한 가정에서의 성차별, 특히 가정에서 얼마나 일을 많이 하게 되는지, 또 양육에 관해서 누가 더 책임을 지는지를 보여주면서, 은밀하게 벌어지는 성차별을 이야기한다.


부부가 둘만 살 때와 아이가 태어났을 때, 누구의 일이 늘어나는가? 이런 질문을 하면 된다. 당연히(이 당연이라는 말이 당연하지 않아야 하는데, 대다수의 사람들은 당연히라는 말을 쓴다) 여자의 일이 늘어난다.


아이에게 쏟는 관심과 아이를 챙기는 일을 여자들이 더 많이 한다. 그렇다면 직장일이 주는가? 아니다. 직장일은 줄지 않는다. 남자들은? 여전하다. 물론 함께 양육에 참여하는 남자들도 많다. 


가정에서의 일을 공평하게 나누려고 노력하는 남자들도 많다. 그럼에도 성차별이 일어난다고 보는 이유는, 사회 전반적으로 육아에 대한 책임을 남자보다는 여자들에게 더 묻는 관행이 있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도와준다는 말을 쉽게 하는 반면에, 그래서 남편들이 집안일을 하면 아내들은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하지만, 여자들은 집안일을 하면서 도와준다는 소리를 전혀 하지 않으며, 여자들이 육아에 힘쓴다고 해서 남편들이 고맙다는 말을 하지는 않는다.


물론 남편들도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한다. 그런데, 이 책을 읽어보면 이 고맙다는 말은 '온화한 성차별'이라고 할 수 있단다. 이런 말을 통해서 아내들이 집안일을 더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기게 한다는 것이고, 성차별을 내면화한다고 한다.


눈에 보이는 차별은 대응하기가 쉽다. 저항도 쉽게 일어난다. 그러나 은밀하게 일어나는 차별은 대응하기가 힘들다. 가정에서 남편들이 집안일을 돕는다고 나서면서, 아내들이 더 많은 일을 하는 현실이 고착될 때 성차별은 공고화된다. 


이 책에 많은 사례들이 나와 있는데, 직장에서 성공한 여성이 가정에서도 평등하게 살지는 않는다는, 더욱 충격적인 사례는 사회에서 성공한 여성들의 이혼율이 높다는 사실, 이는 아직도 여성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편견이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남성보다 돈을 많이 벌어오는 여성이 집안일을 더 많이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도 이러한 편견을 더욱 부추기고 있는데, 이는 직장일로 인해서 가정에 충실하지 않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는 여성들의 노력이 나타는 결과라 할 수 있다.


즉, 여성들은 직장에서 아무리 일을 잘해도 가정에서 맡은 일을 해내야 한다는 관념을 지니고 있으며, 사회적 통념도 그런 식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집안일이 과연 여성만의 일인가? 산술적으로 똑같이 집안일을 나눌 수는 없지만, 서로 의논해서 적절한 일의 분배는 가능하지 않을까?


아이들을 돌보는 일도 그렇다. 아이 돌보는 일에 본성은 없다고 이 책은 주장하고 있으며, 지금 이 시대에 아이 돌보기는 여성의 일이라고 대놓고 주장하는 사람은 드물 텐데도, 여전히 육아의 부담은 여성이 더 많이 지고 있으니, 그 점을 개선하려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


이 책의 끝부분에 나와 있는 말,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말이다. 어떤 형태의 가정이든 이처럼 한다면 (성)차별은 사라지지 않을까 한다.


'양육이 의식적인 협동 작업일 때 남자는 여자와 똑같이 자기의 책임을 점검하고 아이들이 무엇이 필요한지 미리 챙긴다. 아내가 명령이나 지시를 내려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견실한 성 평등주의란 아빠나 엄마에게 더 적합한 활동이 무엇인지, 누가 그 활동을 해야 하는지 미리 정해주지 않는 가정생활을 의미한다.' (368-3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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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기순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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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많은 사람들이 시청했던 드라마에서 남자 인물이 여자 인물에게 한 말이 여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적이 있었다. 


"얼마면 돼? 얼마면 되겠어?"라는 대사.


사랑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소설[위대한 개츠비]에서도 돈이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나. 떠난 사랑을 돈으로 잡을 수 있을까?


돈으로 환산한다면 얼마면 될까? 그렇다면 비싼 가격을 부르는 사람은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을까? 그런 세상이 과연 행복한 세상일까?


아닐테다. [위대한 개츠비] 역시 행복한 결말을 맺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랑은 돈으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한때 사랑을, 아니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지위를 얻을 수 있는 시대가 있었다.


예전 드라마나 영화, 소설에서 흔히 다루어지던 사법고시에 붙은 가난한 사람 이야기. 사법고시에 합격하면 소위 마담뚜들이 달라붙는다고 했다. 돈은 있으나 사회적 지위가 그다지 좋지 않다고 여겼던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사법고시에 합격한 가난한 사람에게 재산을 미끼로 결혼을 하자고 한다.


(농담 식으로 판-검사, 의사와 같은 '사'자들과 결혼을 하려면 열쇠가 세 개는 필요하다는 -집, 사무실, 차- 말들이 있었으니, 이런 사고방식이야말로 돈이면 다 된다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을 돈으로 산다고 할 수 있지만, 이는 사랑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를 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그러한 방법이 많이 있었다고 해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는 돈이 우리 삶에 너무도 깊숙이 들어왔다. 대부분이 금전으로 환산이 된다. 돈이 있으면 편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이러한 편리를 돈으로 사는 세상, '얼마면 돼?'라는 질문에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다고 말하지 않고, '그래 얼마만 줘'가 되는 세상이다.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미국 사회를 뒤쫓아가는 경우가 많은데, 돈이 사회를 잠식하는 모습도 미국을 따라간다고 볼 수 있다. 아주 씁쓸한 현실이지만.


샌델은 이 책에서 돈이 얼마나 많은 분야를 잠식해 들어왔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그런 사회가 결코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없음을 강조한다.


우선 '새치기'라는 제목으로 1장을 시작한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움직일 것 같지만, 아니다. 새치기라는 말에는 도덕적인 비난이 들어 있지만, 우대권이라는 말에는 그런 비난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우대권. 무엇으로 우대를 받는가? 돈이다. 이것이 보통은 새치기인데, 이들은 표나지 않게 움직인다. 이미 보이지 않는 곳에서 대가를 지불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비행기 탑승을 생각해 보라. 이제는 대부분의 항공사에서 실시하고 있는데, 돈을 더 많이 지불하면 대기하는 시간이 줄어든다. 아예 없어지기도 한다. 남들이 서는 줄에 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비행기 탑승만 이러면 문제가 안 되는데... 의료 문제로 가면 심각해진다. 누구가 평등하게 진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비대면진료가 활성화되면, 또 의료민영화가 이루어지면 돈에 따라 진료의 차별이 발생한다.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한 사람이 빠르게, 편리하게 진료를 받게 된다. 이를 샌델은 새치기라고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 '인센티브'라는 장에서는 이 인센티브가 결국 돈으로 사회를 왜곡하는 현상일 뿐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인센티브는 잘못에 대한 벌금을 지불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개념을 돈으로 그것을 덮을 수 있는 요금이라는 생각으로 이끈다고 한다.


지각자에게 벌금을 부과하면 지각이 줄까?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돈으로 지각을 대체했기 때문에, 미안한 마음조차도 없어진다고 한다. 성적이 좋은 학생에게 인센티브를 돈으로 지급하는 방법 역시 마찬가지라고 한다.


이렇게 우리가 쉽게 만날 수 있는 문제에서 시작해서 우리들 삶 곳곳에 침투하고 있는 돈으로 바뀌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선물을 주는 문제... 선물을 현금으로 주면 쉽게 해결될 듯한데, 왜 사람들은 굳이 선물을 주려고 할까? 이것은 바로 돈으로만 환산되지 않는 '선물의 경제'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함께 사는 사회에서는 돈으로만 계량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이 점을 깨닫지 않으면 사람과 사람 사이는 점점 멀어진다. 과학문명의 발달로 사람과 사람이 접촉하는 시간과 빈도가 점점 줄고 있는데, 기껏 만나더라도 돈이 개입을 한다면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는 벽이 존재하게 된다.


심하게는 죽음(보험)까지도 돈으로 생각하는 사업이 생겨났다고 하니, 이거야 원, 마지막 장에 '명명권'이라는 이름으로 광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광고야말로 돈으로 모든 것을 환산하는 (공익광고는 예외다)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아주 많은 사례들을 들어 돈으로 환산되는 사회가 왜 위험한지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것은 경제학으로만 설명해서는 안 된다는 샌델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샌델은 경제학이야말로 도덕, 철학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고, 돈으로 환산되는 눈에 보이는 수치화된 이익만이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요소들이 오히려 사람들의 삶에 더 필요함을 이 책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자, 한번 생각해 보자. 내 삶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는 무엇이 있는가? 나는 그런 것들을 얼마큼 지니고 있는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많이 지니고 있으면 있을수록 내 삶이 더 행복한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을 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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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1-29 09: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중학생, 초등학생 아이들하고 토론했어요.^^

kinye91 2024-01-29 11:35   좋아요 1 | URL
토론이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이었을 것 같아요. 그런 토론하는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단 생각을 해요.
 
오른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
카렐 차페크 지음, 정찬형 옮김 / 모비딕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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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페크의 단편소설집인데, 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와 짝을 이룬다. 그냥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라고 해도 되겠는데... 이 작품집에는 사건이 많이 나온다. 주로 형사(경찰)와 범인의 이야기인데...


'푸른 국화'라는 소설은 반전이 재미있다. 합리적인 추리로 푸른 국화를 찾으려 하지만, 찾지 못하게 되는데, 이 합리적인 추리를 막는 것이 바로 '보행 금지' 표지판이다.


교육받은 사람들은 이 표지판을 보고 더 이상 가지 않는다. 글자를 읽을 줄 모르는 소녀만이 자유롭게 통행했던 것. 우연히 푸른 국화가 있는 관사를 발견한 주인공이 깨달은 것은 바로 이것이다.


그들이 그렇게도 찾았던, 온갖 합리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찾았던 푸른 국화를 찾을 수 없던 이유가 바로 그들을 합리적으로 교육했던 것에 있었음을... 자신이 지닌 관점을 벗어던졌을 때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음을 이 소설에서 알 수 있게 되는데...


우리는 얼마나 많은 자신만의 관점을 고수하면서 살아가는지... 그것이 사회에서 받은 교육으로 더 얼마나 많이 강화되는지, 이렇게 자신은 합리적이라고 믿고 살지만, 그것 때문에 놓치는 것이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집에서 요즘 우리 사회와 관련지어서 생각할거리를 제공해주는 소설이 '살인 미수'라는 소설이다.


조용히 앉아 음악을 듣고 있는데 갑자기 총성이 울리고 유리창이 깨진다. 누군가 자신을 향해 총을 쏘았다. 다행히 빗나갔지만, 생명에 위협을 느꼈다. 그 다음에 할 일은 경찰을 부르는 일. 경찰과 대화를 하는 도중, 당연한 말들이 오간다. 누군가에게 원한을 산 일이 있는가? 당연히 없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게 죽임을 당할 만큼의 원한을 사는 일이 거의 없으니... 경찰이 간 다음 곰곰 생각해 본다. 과연 나는 누군가에게 잘못을 하지 않았을까?


주인공은 많은 인물들을 떠올린다.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사소한 일들이지만, 그것이 상대에게는 심각한 모욕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음을,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한 행동들이 상대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도 있음을 주인공은 깨닫는다. 그가 마지막으로 한 일은 경찰에게 가서 없던 일로 해달라는 것.


이 소설을 읽으며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알게 모르게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데, 좀더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


권력자들은 평범한 사람들보다 더 많은 잘못을 하고 더 많은 상처를 주고, 더 많은 피해를 입히는데, 그들은 이 소설에 나온 사람처럼 자신을 되돌아볼까?


많은 사람들이 억울함을 호소할 때, 저 사람들 왜 저래 하고 넘어가는 권력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또 권력자들을 향해 누군가가 폭력을 행사하려고 할 때, 그 사람을 응징하는 것을 넘어서 자기 성찰을 하는 권력자들이 얼마나 될까?


오히려 다른 말들을 듣지 않으려고 첩첩이 담을 쌓지 않는가. 하다못해 누군가는 차벽을 쌓기도 했으니... 차벽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람벽이고, 그런 사람벽보다 더 위험한 것이 바로 자신이 쌓는 마음의 벽 아닌가.


나는 옳다. 남들은 잘못됐다. 나에게 도전하는 사람은 처벌받아야만 한다. 도대체 왜 내 진심을 몰라줄까? 이렇게 자신의 마음에 쌓는 벽. 그 벽을 부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조금만 자신에게 안 좋은 말, 행동이 보이면 더욱 벽을 쌓는다. 접근조차 하지 못하게 한다.


이 소설에 나오는 사람처럼 곰곰이 자신을 되돌아보지 않는다. 그래서 이 소설은 귀하다. 성찰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푸른 국화'에서 사람들을 가리는 사회적 통념이 개인에게로 오면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지 못하게 막는 벽으로 작동할 수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벽들은 자신 너머를 볼 수 없게 만든다. 자신을 틀에 가두게 된다.


이 틀을 부수는 것, 통념을 벗어나는 것. 그리고 자신을 되돌아 보는 것. 짧은 소설들이 실려 있고, 반전이 있는 소설이 많지만 이렇게 우리들 삶을 성찰하게 하는 소설들도 있으니 차페크의 소설, 여러모로 읽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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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독다독 2024-01-27 23: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책을 엄청 좋아하시는 분인가봐요. 독서량이 엄청 나시네요ㅎ

kinye91 2024-01-28 07:34   좋아요 0 | URL
책읽기를 좋아해서 틈나는 대로 읽고 있어요.
 
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
카렐 차페크 지음, 정찬형 옮김 / 모비딕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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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짤막한 소설들이다. 소설이라고 생각하면서 읽으니 소설이라고 생각하지, 그냥 읽으면 수필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엽편소설이라고 해야 하나? 아주 짧은 소설. 그러나 이 짧은 분량에 반전이 들어 있다. 이런 반전으로 인해서 글을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주로 범죄에 관한 소설들이 많은데, 추리소설이라고 생각하면서 읽어도 좋고, 짤막한 내용을 통해서 우리들의 인생이 이러한 일들이 엮이고 엮어서 이루어지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도 된다.


삶은 필연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 필연을 만드는 것이 우연들이 아닐까? 우연이 겹치고 겹쳐 우리들의 삶을 필연으로 이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 [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에는 유독 도덕적인 도둑(살인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부정하지 않는다. 인정한다. 그리고 그에 합당한 벌을 받으려고 한다. 이게 정의다.


적어도 자신들이 어떤 행위를 했는지를 알고, 그 행위가 지닌 의미도 인식하고 있으므로.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 그것이 바로 삶임을 생각하게 하는데...


짧은 소설이기 때문에, 이들은 그냥 책임을 진다. 어떤 이유도 제시되지 않는다.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책임을 지고, 자신이 저지른 일이기 때문에 책임을 진다.


'결혼 사기꾼'이라는 소설을 봐도 그렇다. 결혼을 빌미로 사기를 치지만, 그는 자신이 정직한 사람이라고 한다. 자신에게 필요한 비용을 제하고 순순히 경찰에게 잡혀간다. 그것도 경찰이 다른 경찰에게 넘기려고 하니, 꼭 그 경찰이 자신을 체포하라고 하면서 기다리기도 한다.


자신의 행위를 변명하거나 부인하지 않는다. 첫 소설인 '늙은 죄수의 이야기'도 그렇고, '도둑맞은 선인장'도 그렇다. 이들은 행위를 부인하지 않는다. 인정한 다음 그에 걸맞는 처벌을 받으려고 한다.


이렇게 다양한 소설들이 실려 있는데, 대부분의 소설들은 무겁다기보다는 가볍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풍자보다는 해학이라고 해야 하나. 슬며시 웃음을 머금게 되는 소설들이 많다. 


소설 속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역겨운 피냄새가 아니라 우리들 삶에서 겪지 않았으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불쾌한 일들 정도로 여기면서 읽게 만들고 있다.


그렇다고 그냥 웃음으로만 넘길 수는 없다. 해학이 그렇지 않은가. 웃음 속에 들어 있는 삶의 진실들. 그 점을 찾을 수 있게 하고 있으니...


이것저것 다 떠나서 가볍게 읽기 시작해도 좋다. 읽을수록 매력을 느끼게 되는 차페크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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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이 나에게 건넨 말
한상희 지음 / 다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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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에 대해서 이제는 어느 정도 자유롭게 말하는 세상이 되었다. 적어도 4.3에 대해 말한다고 끌려가 고문을 받지는 않으니까.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4.3에 관한 소설을 썼다고 체포되어 온갖 고문을 받았던 현기영 작가도 있으니, 지금은 그때와는 다른 세상이라고 해도 좋겠다.


하지만 과연 4.3이 완전히 우리들 마음에 자리잡았는가? 4.3은 4.19를, 5.18을, 6.10을 이끌어내지 않았던가.


한때의 사건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이루는 토대로 늘 작용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지만 과연 완성되었는가? 아니다. 그래서 4.3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4.3을 통해 인류의 자유와 평등과 연대를 추구할 수 있어야 하고, 4.3을 통해 회복적 정의를 구현해야 하는데, 자꾸만 뒷걸음질 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4.3을 통해서 또는 다른 수많은 민주화투쟁을 비롯한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다름을 인정하고, 다름과 함께 공존하는 방법을 배워왔다고 생각했는데, 다르다는 이유로 아예 배척해 버려야 한다는 생각, 또는 그러한 행동들이 여전히 나오고 있으니... 4.3으로 인해 확립해야 할 회복적 정의는 아직도 우리에게 오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가족들이 4.3을 겪은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가 왜 4.3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관심을 지니게 된 고1 때부터 이야기는 시작한다.





그리고 4.3의 역사적 사실과 예술(영화 '지슬', 소설 '순이 삼촌, 돌담에 속삭이는')을 통해서 4.3을 좀더 구체적으로 보여주며, 그런 학살의 과정에서도 용기를 발휘한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다.


지옥 속에서도 천국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음을, 그런 사람들이 모여 '선의 시민성'을 발휘한다면 '악의 평범성'이 자리잡지 못하게 됨을 이야기해준다.


그렇다. 4.3은 단지 과거의 사건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4.3은 우리의 현재이고 미래여야 한다. 4.3을 통해서 우리가 어떤 자세를 지니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다. 특히 청소년들이 읽기 쉽게 쓴 책이니, 교과서 밖에서 이렇게 4.3을 만나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이렇게 책을 읽으면 제주도에 갔을 때 눈에 보이는 풍광과 더불어 그동안 관심을 두지 않고 지나쳤던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풍광 속에 가려져 있던 제주도의 역사까지... 그 역사를 통해 민주주의의 미래로 나아가야 함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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