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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 신장판 5 - 듄의 이단자들
프랭크 허버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월
평점 :
5권이다. 이상하게 5권까지 읽으면서 홀수 권들은 사건의 전개가 빠르게 느껴져 읽는데 속도가 붙으나, 짝수 권들은 내면 세계에 더 집중하고 있어서 읽는 속도가 느리다고 느껴졌다. 홀수 권이든 짝수 권이든 사건이 일어나고, 다양한 갈등들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사건이 종결되고, 그 종결된 사건으로부터 다음 사건으로 넘어가는 역할을 짝수 권들이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홀수 권들에서는 사건과 사건 사이의 긴장이 읽는 속도를 높이고, 짝수 권에서는 전에 벌어졌던 사건이 종결되면서 다른 사건으로 넘어가야 하기 때문에 읽는 속도가 느려진다고 할 수 있다.
이번 권은 홀수 권이니, 다양한 사건들과 갈등들을 통해 읽는 속도에 박차가 가해진다.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인물들도 많다.
사실 이단자라는 말에는 정통에서 벗어났다는 뜻이 있으니, 무엇이 정통인지 소설 [듄]을 읽으면서 그것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무엇이 정통인지 명확하지 않다. 폴이나 레토가 신으로 받들여지는 종교가 정통인 것인지, 이들을 메시아로, 신의 예언자로 정리한다면, 그들을 통해 섬기는 신이 정통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레토가 죽은 뒤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은 그들을 메시아나 예언자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의 뜻에 따르는 것이 정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단이란, 이 생각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즉, 폴과 레토와 비슷하지만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듄의 이단자가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소설에서는 레토가 말한 '황금의 길'이 명확하지 않고, (비록 이번 권에서 '저 멀리로 대이동을 나선 인간들은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해서 무한한 우주를 가득 채웠다. 폭군의 황금의 길이 마침내 확실하게 확보된 것이다-376쪽'라는 표현으로 황금의 길에 대해서 짐작하게 해주고 있지만, 그것이 명확히 무엇인지는 알기 어렵다) 이번 권에서 누구를 중심으로 읽어야 하는지도 헷갈린다.
소설의 시작에서는 골라인 던컨을 중심으로 읽어야 하나 했다가, 시오나의 후손이라 할 수 있는 시이나를 중심으로 읽어야 하나, 드디어 여성이 중심에 나서는가 했더니, 시이나는 여전히 가르침을 받는 미숙한 존재로 나올 뿐이니, 아니고, 골라인 던컨 역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이번 권에서 핵심은 아니다. 그는 각성을 했지만 여전히 수단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앞에서 레토에게 위협당하고 축소당한 베네 게세리트들을 이단자로 보아야 하나? 그럴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폴이나 레토에게 맞선 존재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교배를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존재를 만들어내기를(낳는다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다. 이들은 만들어내려 한다) 바란다.
결코 종교적이라고 할 수 없지만, 이들에게는 과거의 존재들로부터 기인한 기억들을 서로 전수하고 보존하는 능력이 있으니, 이 또한 종교로 손색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이 권에서 나오는 베네 게세리트인 오드레이드인가?
아니다. 소설을 5권까지 읽어보면 작가는 베네 게세리트에게 호감을 갖고 있지 않다. 유전자를 교배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존재를 만들어내는 집단을 좋아할 작가가 있겠는가? 과학기술의 위험성을 익스 인들을 경계하는 내용을 통해 보여주고 있고, 또 복제인간의 위험성을 틀레이랙스 인들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면, 베네 게세리트에게서는 유전자 조작의 위험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시도가 결코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소설을 통해 보여주고 있으니, 이단자들에 베네 게세리트가 포함되더라도 주인공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들을 제외하면 한 인물이 남는다. 멘타트이자 베네 게세리트 교육을 받은 지휘관인 마일즈 테그! 그에게서 폴의 잔향을 느낀다면 그것은 억측일까?
그는 베네 게세리트를 엄마로 두고 있고, 그들에게 훈련을 받았으며, 그들을 위해 복무한다. 베네 게세리트가 부여한 임무를 수여하는 과정에서 그는 각성을 한다. 소설의 후반부로 갈수록 그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데...
그럼에도 그를 이단자라 하기엔 좀 그렇다는 생각이 들고... 결국 듄의 이단자란 레토가 보여준 황금의 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집단들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아직도
듄은 거의 파괴되고, 레토의 분신이던 모래 벌레들도 거의 다 죽었다고 볼 수 있는데, 듄에는 모래 벌레가 이제는 없다고, 시이나와 함께 온 모래 벌레 한 마리만이 있을 뿐이라고, 이 모래 벌레는 베네 게세리트의 손에 들고 소설이 끝나는데... 듄이 이렇게 파괴되고 말 것인지...
마지막 권에서 듄의 새로운 모습, 새로운 갈등이 펼쳐질 것인데... 이번 권에서는 인간을 복제하거나 유전자 조작을 하거나 해서 인간을 완전히 통제하려는 일들이 성공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예측은 예측으로 인해 다른 행동들을 유발한다는 점을 생각하게 한다.
틀레이랙스 인들이나 베네 게세리트들을 보면서 과거의 기억들을 보존하면서 사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야 한다.
이 소설의 여러 인물들을 보면서 불교의 부처를 생각했다. 물론 기독교나 이슬람을 연상시키는 부분도 많다. 그 부분들은 명확하게 나타나니까, 더 말할 필요가 없지만, 불교에 대해 말하면...
부처는 과거의 모든 기억을 안고 살았다. 그러나 그 기억에 잠식되지는 않았다. 과거의 지혜가 필요하지만 과거에 매여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잊을 수 있는 것의 장점... 3권에서 레토나 가니마는 그러한 과거의 기억들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어쩌면 여기서 부처나 레토와 다른 틀레이랙스 인과 베네 게세리트들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참조해야 할 기억이란, 과거란 어떤 것인지를...
이렇게 다양한 종교가 융합되어 이 소설에 나타난다. 여러가지로 생각할 거리가 많다.
이제 마지막 6권이다.
작가가 '[듄]을 쓰고 있을 때'라는 글이 이 권의 맨 앞에 실려 있다. 아마도 [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은 메시아의 신화를 탐구하는 이야기가 되어야 했다.
이 책은 인간이 점령한 행성을 에너지 생산 기계로 보는 것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만들어내야 했다.
이 책은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정치와 경제의 작용을 꿰뚫어 보아야 했다.
이 책은 절대적인 예언과 그런 예언의 함정을 조사하는 것이 되어야 했다.
이 책은 의식 확장제를 등장시켜 그런 물질에 의존하면 무슨 일이 생길 수 있는지 얘기해 주 어야 했다.
식수는 석유와, 날이 갈수록 양이 줄어들고 있는 물 그 자체에 대한 비유가 되어야 했다.
그렇다면 이 책은 인간적 가치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사와 사람들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여러 가지 함축적 의미를 지닌 생태 소설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쓰면서 항상 이 각각의 층들을 주의 깊게 감시해야 했다. (7-8쪽)
충족되지 않은 호기심은 스스로 대답을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다. 추측은 사실보다 더 위험한 경우가 있다.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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