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짧은 소설이다. 한 권이지만 단편소설에 가깝다. 그럼에도 결말을 통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먼 친척집에 맡겨진 소녀 이야기.


얼핏 단순하다. 집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던 아이가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여주는 사람 사이에서 점차 성장해가는 이야기.


아이를 키우는데 연습이 필요하다는 말을 많이 하지만, 연습을 하기 위해서는 준비를 해야 한다. 준비 없는 연습은 없으니까.


그런데 부모가 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연습을 할 수는 없다. 아이는 연습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늘 아이는 실전이다. 따라서 연습이나 준비가 필요하다고 하는 것은 아이 없이 하는 행위일 뿐이다.


다만, 아이 없이 하지만 아이가 있을 때 어떻게 하겠다는 마음가짐을 지니게 되니, 그런 연습은 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도움이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부모는 연습 없이 부모가 된다. 어느 날 아이가 부모에게 온다. 선물처럼 왔다는 말은 아이와 함께 지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는 뜻이지만, 느닷없이 부모가 된 사람들에게는 아이는 선물이 아니라 짐일 수 있다.


짐이 되는 아이. 그런 아이를 부모는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준비도 연습도 없었지만 마음가짐 또한 아이와 연결되어 있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는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다. 하나의 실수를 하면 부모는 화를 내고, 그러면 아이는 주눅이 들어 또 다른 실수를 하고.


이런 실수가 반복되면 부모는 이 아이는 어쩔 수 없는 아이라고 여기게 되고, 그런 마음으로 아이를 대하게 된다. 부모의 마음은 아이에게 전달이 되고, 이런 가족은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이고 함께 성장해가는 가족이 되지 못한다.


여기저기서 삐걱거리는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아이는 없어졌으면 하는 존재가 된다. 소설 속 아이 역시 마찬가지다. 


많은 아이를 키우기 힘든 부모가 아이를 맡긴다. 아이는 자신이 있는 곳에서 다른 곳으로 보내진다. 보내진다는 말을 내쳐진다는 말로 바꾼다면 이는 아이가 다른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는 말이 된다.


이곳과 저곳. 아이는 어느 곳이 자신이 있을 자리인지 선택할 수가 없다. 그러니 작가가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아빠가 나를 여기 두고 가면 좋겠다는 마음도 들지만 내가 아는 세상으로 다시 데려가면 좋겠다는 마음도 든다. 이제 나는 평소의 나로 있을 수도 없고 또 다른 나로 변할 수도 없는 곤란한 처지다.' (17쪽)


이런 상황. 아이가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실수를 안 할 수가 없다. 당연히 실수한다. 그때 그 실수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이것이 아이에게는 자신이 맞닥뜨린 다른 세상을 판단하는 가늠할 기준이 된다. 맡겨진 집에서 첫날 오줌을 싸는 실수를 한다. 하지만 새로운 가족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인다. 오히려 아이가 민망해하지 않도록 대응을 한다.


그러면서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한다. 아이는 차츰 이 가족에서 자신의 자리를 잡아간다. 가족에서 자신의 자리가 없다고 느끼는 아이는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겉돌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가족에게는 애물단지가 된다.


그러나 가족에서 자신의 자리가 있는 아이는 당당한 가족 구성원이 된다. 함께하는 가족이 된다. 맡겨진 소녀는 이렇게 자신의 자리를 찾아간다. 가족 구성원이 된다. 그러던 어느 때, 다시 원가족이 데리러 온다.


소녀에게 진정한 가족은 어디인가. 다시 다른 세상으로 내쳐지는가? 원가족에서 입양가족으로 갈 때의 소녀와 입양가족에서 원가족으로 갈 때의 소녀는 같은 소녀가 아니다.


이미 소녀는 성장했고, 가족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 있는 소녀가 되었다. 그렇다고 작가가 명확하게 결론을 내고 있지는 않다. 다만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아빠'라는 말 두 번. 이 두 번의 '아빠'가 큰 울림을 준다.


"아빠." 내가 그에게 경고한다. 그를 부른다. "아빠." (98쪽)


경고하고 부르는 아빠가 누구인가? 소녀는 누구를 아빠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짧은 소설이지만 맡겨진 소녀를 서술자로 해서 이 아이에게 어떤 가족이 필요한지, 아이가 성장하기 위해서 가족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단지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가 가족일까? 혈연이 아닌 다른 형태의 가족이 더 가족다운 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 때가 있다는 사실. [빨강머리 앤]에 나오는 그런 가족의 모습을 이 소설에서 만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경찰관속으로 - 언니에게 부치는 편지
원도 지음 / 이후진프레스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은 띄어쓰기가 되어 있지 않다. '경찰관속으로' 경찰관들이 겪었던 일들을 풀어낸 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두꺼운 겉표지를 넘기면 속표지에 제목에 쉼표가 들어가 있다. 이 쉼표의 위치가 슬프다. 아니 무섭다. 이것이 현실인가 싶은 마음이 들고, 이 책의 내용이 결코 가볍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결찰, 관 속으로'라고 되어 있다. 경찰이 '관' 속으로 들어간다? 이게 무슨 말인가? 경찰과 죽음이 연결되는 제목이다. 물론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수많은 죽음을 본다. 그래서 그런 죽음들을 보면서 죽음의 사연, 억울한 죽음의 해원을 담당하기도 한다. 


이렇게 해석을 하면 고마운 경찰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기대고 살아갈 수 있으니까. 그런데 다르게 경찰이 관 '속'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경찰의 죽음을 떠올리게 된다. 경찰의 생명이 사그라지는 죽음도 의미하고, 경찰이 사회에서 죽은 듯하게 지낼 수밖에 없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게 많은 경찰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줄은 몰랐다. 몰랐다고 책임이 면해지지는 않겠지만, 경찰이 권력을 휘두른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경찰이 얼마나 힘든 상황에 있는지, 그들의 생활을 가까이서 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일들이 이 책에 실려 있다.


현직 경찰관이 자신이 겪은 일을 글로 풀어내었다. 글로 풀어내어 다시 경찰로 살아갈 힘, 동기를 얻었다고 하면 좋겠다.


이들이 얼마나 힘이 없는지, 외부에서 단순하게 보면 경찰이 많은 권력을 쥐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 현장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얼마나 적은지를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온갖 제도들이 그들이 시민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행동을 제약하고 있다는 사실. 공권력을 행사해도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는 것.


이는 악성 민원만이 아니다. 그들이 왜 난동을 부리는 사람들에게 강하게 대응하지 못하는지를 이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강한 대응이 자칫하면 엄청난 소송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 이 책에 실제 사례를 통해 잘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날개를 잘라버리고 날지 못한다고 욕하는 꼴이다. 경찰들 몇몇이 비리를 저지르고, 또 권력을 추구하는 몇몇들이 경찰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기도 하지만, 그들로 인해서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경찰들을 싸잡아 비난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일선에서 일하고 있는 경찰들이 소신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결국 피해는 무고한 시민들에게 돌아간다. 


'민중의 지팡이'라는 말이 현실에서 적용이 되게 하기 위해서 그들이 제대로 지팡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직은 그 점이 일선에 있는 현장 경찰들에게 얼마나 부족한지 이 책이 보여주고 있으니, 사기가 떨어진 경찰은 시민을 위해서 소신껏 행동하기 힘들다. 그 결과가 일반 시민들에게 피해로 다가올 수가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정당한 공무 집행에 힘을 실어주어야 하고, 그것을 개인의 용기에, 결단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제도로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렇게 제도가 정비가 되고, 경찰들에게 책임과 권한을 준다면 더 많은 경찰들이 진정 '민중의 지팡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경찰들이 겪는 일들, 그들이 하는 마음 고생, 몸 고생 등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역시 당사자들이 말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이야기들이 퍼져나가고 고칠 수 있는 기반을 형성할 수 있다.


마음이 짠해지면서 경찰들의 고충을 들여다 볼 수 있어서 그간 경찰에 대해 지니고 있던 편견들을 깰 수 있도록 해주는 이 책, 이 책을 쓴 경찰 고맙다. 이 책을 읽은 지금, 경찰을 다른 눈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경찰이 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경찰관 속으로 들어가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힘을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 마음으로 - 이슬아의 이웃 어른 인터뷰
이슬아 지음 / 헤엄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뉴스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다. 남의 앞에 서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없으면 사회가 돌아가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우린 어른이라고 부른다.


굳이 남 앞에서 큰소리를 치는 사람을 어른이라고 하지 않는다. 높은 자리에 올라, 소위 출세했다고 하는 사람을, 다른 사람들을 이끄는 사람을, 꼭 자기 일을 드러내는 사람을 어른이라고 하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 어른이 없는 사회가 되었다고 비판하는 말들이 있었지만, 아니, 어른은 있다. 어른 없는 사회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 어른들을 우리가 보지 않으려 했을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더 굳어졌다.


인터뷰를 하려는 사람은 무언가를 이룬 사람, 남들과 다른 특별한 일을 한 사람이라고, 대단한 성과를 거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고, 또 그런 책들이 많이 나왔지만, 이 책은 그렇지 않다. 주변에 있는 어른을 인터뷰했다.


은유가 쓴 [크게 그린 사람]과 통한다고 할 수 있다. 은유 작가의 인터뷰는 우리 사회를 바꾸어 가려는 사람들을 크게 그려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했다면, 이 이슬아의 인터뷰 책은 우리 사회를 바꾸려는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드러내지 않지만 꼭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 가령 첫 인터뷰 대상자는 응급실 청소노동자다. 응급실 의사는 조명을 받지만, 높은 보수도 받지만, 그 응급실이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 온갖 것들을 치워야 하는 청소노동자들은 주목을 받지 못한다.


그런 사람을 주목했다. 그래, 병원에서 의사는 겉으로 드러나는 성과를 이루고 칭송을 받는 존재지만, 병원에서 정말 필요한 사람들은 청소노동자들이다. 온갖 의료쓰레기들을 처리하지 않으면 병원은 치료하는 공간이 아니라 병에 걸리는 공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맡은 일을 묵묵히 수행한 청소노동자 이순덕 씨, 그리고 작가 이슬아의 할머니 할아버지인 아파트 청소노동자 이존자, 장병찬 씨는 소중한 존재다. 이런 소중한 존재를 우리에게 소개해준 작가가 고마울 따름이다.


여기에 농사를 짓는 윤인숙 씨. 그렇다. 농사는 바로 사랑이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이 된 '새 마음으로'도 윤인숙 씨의 말에서 왔다. 늘 새 마음을 먹으면 원망하는 마음이나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고.


과거의 마음에 사로잡히지 말고 새 마음으로 살아가라고. 그러면 삶이 더욱 소중하고, 더 잘살 수 있게 된다고. 그것이 바로 농사하는 마음이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일 것이다.


여기에 책이 나오기까지 뒤에서 일하는 인쇄소 기장과 회계 일을 맡은 김경연, 김혜옥 씨. 책이 나오기까지 인쇄소를 거친다는 생각은 했지만, 출판사가 더 중요하지 않나 했는데, 이들이 한 말을 보니 한 권의 책을 만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수고가 있었는지를 알겠다.


가끔 오타가 나온 책이나, 파본, 낙장이 있는 책을 보면 쯧쯧 혀를 차곤 했었는데 책 만드는 일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실수가 있기 마련이고, 그들은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 최선을 다해서 꼼꼼히 살펴본다는 사실. 그럼에도 간혹 실수가 나오면 그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더 노력한다는 사실. 


그런 인쇄소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어디에서도 들을 수가 없었는데, 이슬아의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음에, 그런 사람들이 바로 우리 사회의 어른임을 생각하게 된다.


마지막 인터뷰이는 수선소에서 일하는 이영애 씨다. 수선하는 일, 다른 사람에게 맞지 않는 옷을 맞게 만들어주는 일.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대단한 일이다. 옷을 다시 태어나게 하는 일이기도 하니까.


한번 입고 버리는 옷이 아니라 계속해서 수선하면서 입는 옷은 환경에도 좋고, 사람에게도 좋다. 그런 일을 하는 수선소 이름이 '미래로'다. 겉으로 드러나는 삶들 속에 그 삶들을 받쳐주고 있는 다른 삶들이 있음을 아는 것, 그것이 바로 미래로 가는 우리 삶일 것이다.


이 책에 실린 사람들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온 사람들. 그런 어른들이다. 바로 우리 이웃 어른이다. 이런 이웃 어른에게 관심을 가지고 우리에게 그들의 삶을 들려준 작가가 고맙다.


어른이 있음을, 특별하지 않다고 하는 그들의 삶이 실은 특별한 삶이었음을, 그들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어른이었음을 알려주고 있으니까.


우리 사회에 어른이 없다고 개탄하는 사람들. 이 책을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어른은 밖으로 드러내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렇게 자기 자리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사람임을. 그런 어른이 우리 주변에 너무도 많이 있음을. 우리가 보려고만 하면, 찾으려고만 하면 그런 어른들을 만나게 됨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크게 그린 사람 - 세상에 지지 않고 크게 살아가는 18인의 이야기
은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은유의 인터뷰집이다. 다른 말로 하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전달해주는 책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을 인터뷰할까?


그 대상에서 인터뷰 하는 사람의 관점이 드러난다. 그래서 은유는 '인터뷰는 삶과 삶의 합작품이(299쪽)'다고 말한다.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지만, 그 사람의 이야기를 다시 이야기한다. 또다른 듣는 사람에게. 그렇다면 어떻게 들려주어야 할까? 어떻게 들어야 할까?


조지아 오키프의 말을 인용한다. '내 눈에 보이는 걸 그리련다. 그 꽃이 나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그리련다. 엄청나게 크게 그려 그 꽃 한 송이를 보는 데만 오랜 시간이 걸리면 모두가 놀랄 것이다.'(7쪽) 


이 말에 이어 자신의 인터뷰가 어찌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나는 인터뷰가 사람의 크기를 바꾸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시간이 없어서, 혹은 너무 멀거나 너무 가까워서 사람을 보지 못한다. 세상이 축소해서 못 보고 지나치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좋은 인터뷰는 안 보이던 사람을 보이게 하고 잘 보이던 사람을 낯설게 하는 것 같다.' (7쪽)


이렇게 이 책에서는 은유가 만난 18명이 크게 그려져 있다. 우리가 못 보고 지나칠 수 없을 정도로. 비록 분량은 몇 쪽씩밖에 차지하고 있지 않지만, 이들의 인터뷰 내용이 그 몇 쪽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적은 분량이긴 하지만 인터뷰 내용은 엄청 크다. 커서 안 볼 수가 없다. 자연스레 은유가 들은 말에 우리 역시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다양한 분야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 그렇게 특별하다고 할 수 없지만, 그 특별하지 않음이 오히려 더 특별함으로 다가오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말을 듣는 사람, 인터뷰어. 인터뷰이는 말하는 사람이지만, 사실 그들을 크게 그릴 수 있는 이유는 이미 그들이 듣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회에서 들여오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다. 듣고 그것을 자신 안에 가두지 않고 남들에게 전달하는 사람이다. 은유가 인터뷰한 사람들은 이렇게 먼저 듣는 사람이다. 인터뷰어보다 먼저 듣는 사람이 되었던 사람들. 그들이 말을 한다.


그 말을 인터뷰어가 듣고 우리에게 전달한다. 자신이 잘 듣고, 자신의 말과 함께 전달하면 우리는 다시 듣는다. 우리는 이중의 목소리를 듣는다. 인터뷰어의 목소리와 인터뷰이의 목소리를. 그들이 하는 말을 동시에 듣는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인터뷰어가 인터뷰이를 크게 그렸기 때문이다. 작은 것도 놓치지 않을 정도로 크게 그렸기에 인터뷰집에서 인터뷰이와 인터뷰어의 이야기를 함께 들을 수 있다.


이렇게 그 소리들을 들으면서 자신의 소리를 덧붙인다. 자신도 듣는 사람이 된다. 듣고 말을 한다. 결국 인터뷰집을 읽는다는 말은 세 목소리가 합쳐진, 은유의 말대로 하면 삶과 삶의 합작품을 만들어가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인터뷰집을 읽은 다음에는 읽기 전과 같을 수가 없다. 이미 그동안 듣지 못했던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없던 일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과는 다른 사람, 행동이 확 변하지는 않더라도 바뀌어 있는 자신을 만나게 된다.


18명의 인터뷰이들도 듣는 사람이었고, 이들은 말하는 사람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듣고 말하는 사람인 은유의 책을 읽은 우리도 듣는 사람이 된다. 이렇게 인터뷰집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결국 연결이다. 사람과 사람, 삶과 삶이 연결되어 사는 사회임을 명심하게 한다.


이 책에 나온 사람들 기존에 책을 읽었거나 해서 한번쯤은 들어본 적도 있지만 생소한 사람들도 있다. 이 책 덕분에 더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었다. 더 많은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고마운 일이다.


크게 그린 사람, 그래, 안 보이던 것을 보이게 했으니 안 들리던 것이 들리는 경험을 하게 만든 책이다.


이 책에 나온 사람들을 언급하면서 글을 맺는다. 누군가는 또 그들과 연결이 될 것이므로.


홍은전(인권기록활동가), 조기현(청년 예술가), 원도(과학수사대 경찰), 김용현(자연주의자), 임현주(아나운서), 김미숙(청년 노동자 고 김용균의 엄마), 시와(가수), 김중미(소설가), 이영문(국립정신건강센터장), 김혜진(소설가), 민금채(지구인컴퍼니 대표), 신영전(한양대 의대 교수), 김진숙(민주노총 부신지역본부 지도위원), 수신지(만화가), 김혜정(한국성폭력상담소장), 박선민(국회의원 보좌관), 김도현(청년 노동자 고 김태규의 누나), 김현(시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 - 세월호 생존학생, 청년이 되어 쓰는 다짐, 개정판
유가영 지음 / 다른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담담하게 세월호 이후의 삶을 기록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삶의 굴곡을 거쳤을까? 읽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직접 겪은 당사자가 아닌데도 세월호를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 한켠에 구멍이 뚫린 듯한 느낌을 받는데, 직접 그 배에 타고 있던 사람이라면, 거기에 학생이었고, 친구들이 살아돌아오지 못했다면 어떤 마음일까?


외면하고 싶겠지. 그냥 잊고 싶겠지. 너무도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은 그 충격으로 그때의 기억을 잃기도 한다는데, 그렇게 잊고 싶은 마음도 있었겠지. 그런데 안 잊혀지지. 계속 기억에 마음에 남아 울컥울컥 솟아올랐겠지. 그 아픈 일들이.


그런데도 이렇게 책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지난한 과정을 거쳐 이제는 더이상 피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겠지. 이제는 마주보고 나아가야 한다고, 그래야만 한다고.


이 책을 읽으면 그런 마음이 느껴진다. 9년이 지난 다음에 쓴 책이고, 다시 한 해가 지나 이제는 10년이 지났다. 10년,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 하지만 우리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세월호 이후에도 얼마나 많은 재난사고들이 일어났는지...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있는데, 그렇게 외양간이라도 고쳤으면 좋겠다. 우리는 왜 소를 잃어버렸는지에 대해서만 왈가왈부하고, 외양간을 고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니.


저자가 다른 곳에서 생활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더이상 도망갈 수 없다고 여겼을 때 뉴질랜드로 떠났다고 했다. 거기서 새로운 낯선 사람을 만나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을 추스리고 치유하고,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그때 이야기 중에 뉴질랜드에서 지진이 일어났다는 말, 지진 이후에 내진설계를 강화에서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려는 노력을 했다는 글을 읽으면서, 우리는 그 많은 사고를 겪었으면서도 과연 외양간을 고쳤는가 하는 생각에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외양간을 고칠 생각을 하지 않고 잊으라고, 잊으라고만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희석되기는 하겠지만, 그때와 같은 감정은 들지 않겠지만, 그래도 기억해야 한다.


기억은 반복을 방지하기 때문이다. 더이상 이런 사고가 나지 않도록 기억해야 하고, 외양간을 고쳐야 한다.


저자의 말이 아프게 다가온다. 세월호 이야기를 10년이 지나서 읽어도 마음을 추스리기 힘든데, 직접 겪은 사람의 마음은 어떻겠는가?


'그토록 잔인했던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무뎌져 그때만큼의 감정이 들지는 않으니까요. ... 하지만 기억이, 감정이 무뎌졌다고 해서 저를 괴롭히는 게 없어진 건 아니에요. 지금도 때때로 불쑥 찾아오는 형용하지 못할 감정들과 두려움, 불안이 저에게 '절대로 잊지 말라'고 일깨우고 있으니까요. 아마 평생 저를 괴롭힐 거예요.

그렇지만 지금의 저에게는 비록 그 괴로움을 극복하지 못하더라도 딛고 일어날 힘이 있습니다. ... 이 힘을 만든 건 제가 여태까지 살기 위해 쳐온 발버둥, 그리고 그걸 알아보고 저를 끌어 올려 준 사람들이 그 마음이에요.' (146쪽)


이런 마음이, 이런 사람들이 저자를 지금까지 이끌었다. 그리고 저자는 앞으로 세월호를 잊지 않고, 또한 그러한 재난 상황에 대한 사람들과 함께 할 것이다.


자신에게 손을 내밀었던 사람들과 같이 자신도 그러한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 것이다. 바로 이런 사람들로 인해 세상은, 괴로움으로 가득찬 것 같은 세상에도 행복이, 희망이 있음을 알게 된다.


저자가 겪어왔던 삶들. 이 삶들이 이 책 속에 오롯이 들어 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다짐과, 고통받는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줄 마음을 지니고 행동을 해야 함을 저자의 글을 통해 다시금 깨닫는다.


먹먹하지만 꼭 읽어야 할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