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폐된 원자력 핵의 진실 - 원자력 전문가가 원자력을 반대하는 이유
고이데 히로아키 지음, 김원식.고노 다이스케 옮김 / 녹색평론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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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에 다가가는 길은 많다. 그러나 그 길은 험난하다. 진실로 가는 길에는 이정표가 없거나, 중간 중간 길이 끊겨 있기도 한다. 또 갖가지 위험요소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간에서 포기하고 만다. 이렇게 되면 진실은 밝혀지지 않고, 감춰지게 된다.

 

감춰진 진실이 밝혀지지 않으면, 그 자리를 거짓이 차지하게 된다. 거짓이 진실인양 가장하고서.

 

원자력에 대한 진실은 무엇일까?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여 지구 환경오염을 없애는데, 줄이는데 도움을 주는 청정에너지일까? 인류를 대재앙으로 이끌 핵발전일까?

 

영어로 'nuclear'라고 쓰는 이 말이, 미국 등 선진국에서 쓰면 '원자력'이고 북한이나 이란 등에서 쓰면 '핵'이 되는데, 같은 대상을 놓고도 이렇게 다른 용어로 쓰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원자력에 대한 정확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같은 사물을 다르게 사용할 때 우리는 최악의 경우를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부정적 작용과 긍정적 작용이 있을 때 어느 면을 우선 고려해야 할까를 생각하면 원자력의 진실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가령 의약품의 경우 두 경우가 다 있을 때 과연 우리는 그 약품을 사용하게 될까, 극단적인 경우 아니면 사용하지 않을텐데... 이 경우를 원자력에 적용하면 되지 않을까 한다. 아직 우리 인류는 에너지 자원에서 극단적인 경우에 처하지 않았고, 오히려 에너지 과잉 상황에 처해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의 저자가 말하고 있는 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 시대에 우리는 원자력을 필요로 하지 않을 만큼 에너지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 즉 극단의 경우에 처해 있지 않다. 그런데도 원자력 발전을 하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원자력으로 이득을 얻는 집단이 있기 때문이란다.

 

이 집단은 엄청난 이익을 얻고 있으며, 이 이익을 감추기 위해 여러 통계들을 조작하거나 누락하여 제시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 자료들에 대한 접근이 어렵도록 하는 비민주적 운영방식을 택하고 있으며, 연간 방사능피폭량이 정해져 있기에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자주 바뀔 수밖에 없으며, 이렇게 자주 바뀌다 보니 숙련된 노동력이 원자력 발전소에 투입되기는 힘들고, 따라서 이들 노동력들은 대부분 하청, 재하청업자에 속하게 되고, 사회에서 이중으로 고통을 받게 되기 쉽다고 한다.

 

이산화탄소 발생이 적다는 통계도 역시 원자력 발전에만 한정하고 있는데, 발전을 하기 위해 우라늄을 채취, 이동, 정련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고의로 누락시키고 있으며, 또한 원자력 발전으로 인해 생기는 쓰레기의 처리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양도 계산에 넣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들을 다 계산에 넣으면 오히려 화력발전보다도 이산화탄소의 양이 더 많아질 수도 있다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원자력 발전을 추진하는 이유가 사라지므로 이들은 이런 식으로 은폐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무엇보다 충격적인 사실은 바닷물이 이산화탄소를 많이 머금고 있는데, 바닷물의 온도가 올라가면 바닷물 속에 있던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으로 배출이 된다고 하는데, 원자력 발전소 주변의 바닷물 온도는 다른 곳보다 높아질 수밖에 없으므로 이곳에서도 역시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고 한다. 어마어마한 양이 말이다. 이 얘기는 이 책에서 처음 알았는데... 작가는 이런 예를 사이다로 들고 있다. 사이다에 열을 가하면 탄소가 증발한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바닷물도 같은 현상을 보일 것이라고 한다.

 

책의 곳곳에서 원자력 발전이 안되는 이유를, 그리고 원자력 발전을 추진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진실을 감추고 있는지를 쉽게 잘 알려주고 있다. 원자력 하면 고도의 과학지식을 알고 있어야만 이 책을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원자력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없어도 우리가 상식적으로만 생각해도 원자력에 대한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는 사실은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원자력에 대한 공방. 아니, 이는 공방할거리도 아니다. 이제는 원자력 발전은 멈춰야만 한다. 그렇다면 원자력에 많은 에너지를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하는 의문이 들면 이 책을 읽어보라.

 

원자력에 우리나라만큼 의존하던 일본도 원자력 발전 없이도 충분히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 책에 나와 있다. 그러나 지금 충분히 에너지를 우리가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고 한다. 우리는 충분히가 아니라 너무 많이 사용하고 있지 않은지, 불필요한 에너지 사용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 보면, 그렇게 불필요하게 에너지를 쓰면서, 후손에까지 엄청난 부담을 주는 원자력을 쓰겠다고 할 수 있는지 저자는 우리에게 되묻고 있다.

 

이제 대답은 우리가 할 차례다. 우리는 원자력을 필요로 하는가, 필요로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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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주의의 기원 2 한길그레이트북스 84
한나 아렌트 지음, 이진우, 박미애 옮김 / 한길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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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묶였으면 상당히 읽기 힘들었으리라. 다행히도 출판사가 두 권으로 분리해서 읽기가 그나마 쉬웠다고 할까?

 

반유대주의와 제국주의가 1권에 실린 내용이었는데, 이는 상당히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읽기였다. 반면에 2권에 실린 전체주의에 대한 내용은 그래도 우리 시대와 가깝다는 점에서 읽기가 앞부분 보다는 조금 수월했다고나 할까.

 

읽어가면서 이런 전체주의가 과연 히틀러와 스탈린에게만 해당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전체주의가 다른 사람들을 하나의 인간으로 묶어버리고(이는 개성이 없는 인간으로 동질화 한다는 말이다), 또한 국가나 민족의 구분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의 국가, 하나의 인종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요즘 다시 나타날 가능성은 없다고 볼 수 있지만 말이다.

 

아렌트가 말하는 전체주의와 동일한 전체주의는 나타날 수가 없다. 이미 최첨단 기기들을 통해 이러한 일들이 불가능해졌다고 해야 한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최첨단 기기들 때문에 이러한 일이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폭력을 통해서, 테러를 통해서, 아니면 강제수용소를 통해서, 커다란 거짓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최첨단 기기들을 통해서 말이다.

 

이미 세상은 국경이 의미없어졌고(그놈의 자유무역협정!으로 관세라는 국경을 철통처럼 지키던 장벽이 사라지고 있으며, 교통수단의 발달로 어디든 갈 수 있는 상황이 되었으니), 언어도 이상하게 하나로 통일되어 가고 있으며(이게 축복일지, 재앙일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사람들은 점점 정치에서 멀어지고 있으며(정치라는 행위를 하는 순간은 투표용지에 기표할 때뿐이라는 자조섞인 말도 있지 않은가), 자신만의 생각을 잃어가고(세상의 미는 표준이 되어 있고, 질병 또한 표준화되어 있으며, 입고 있는 옷들과 신발, 또 먹는 음식까지 이상하게 개성이 있어야 한다면서, 개성을 말살하고 있지 않은가) 있지 않은가. 인종이야 세계는 하나라는 구호로 뭉쳐지고 있으니, 인종차별은 불가능한 시대라고 보아야 하지만, 인종차별이 없는 대신, 하나의 인종으로 통일되어 가고 있지 않은가 하는 우려가 생기기도 한다.

 

그러면 더 쉽게 세계를 하나로 만들려는 운동이 성립하지 않을까? 이거 갑자기 소설 속의 '빅 브라더'가 뛰쳐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빅 브라더'가 존재하는 세상은 이미 전체주의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너무 거창하다.. 그렇담 우리나라는? 아니 바로 우리랑 같은 민족인 저 위쪽에 있는 나라는?

 

이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북한 사회를 분석하는 틀로서 아렌트의 이 전체주의 논의가 유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가고 들었다. 물론 차이점도 있지만, 유사점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들었고, 우리나라도 국민들을 숫자로 통제하고 있는 면에서는, 그것도 대다수 국민들이 별다른 저항도 없이 그 속에서 안주하고 있으니, 이제는 주민번호라는 숫자뿐만이 아니라, 전자주민증이라는 칩으로 국민을 통제하려고 하니, 도처에 까려 있는 폐쇄회로 테레비전을 보아도,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개성을 잃지 않았으니, 또한 우리의 언어를 잃지 않았으니 전체주의에 빠져들지 않았다고 위안을 삼는다. 우리는 아직도 시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 말이다. 아렌트가 말했듯이 "정치적으로 시작은 인간의 자유와 동일한 것(284쪽)"이니 말이다. 우리는 아직도 시작할 능력이 있으니 전체주의의 위험을 벗어날 수 있으리라. 

 

법적으로, 도덕적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간의 개성을 없애려고 하는 운동이 전체주의라면 우리는 법적으로, 도덕적으로 우리의 인격을 확보해야 하며, 어떤 순간에도 나라는 개성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즉 우리는 전체 인간으로 존재하되, 개별적으로도 존재하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 개별적 인간, 이는 나와 남을 함께 볼 수 있는 인간이고, 남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인간이고,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는 인간이다. 

 

그렇지 않고 나를 남에게 맡기는 순간, 전체주의는 한걸음 다가오게 된다. 이를 명심하자.

 

내 멋대로 읽은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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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주의의 기원 2 한길그레이트북스 84
한나 아렌트 지음, 이진우, 박미애 옮김 / 한길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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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주의 운동은 대중의 조직을 목표로 하며, 그것에 성공한다. ... 전체주의 운동은 순전히 수의 힘에 의존...-20쪽

대중은 잠재적으로 어느 국가에나 존재하며, 정당에 참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투표하러 가지도 않는 중립적이고 정치적으로 무관심한 사람들이 다수를 형성한다. -25쪽

대중 사이에서 전체주의 운동이 성공한 것은 일반적으로는 민주적으로 통치되는 국가, 특수하게는 유럽 국가 정당 체제가 가진 두 가지 환상의 종말을 의미했다. 첫번째 환상은 대다수 국민은 공공업무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며 또 모든 개인은 특정한 정당에 동조한다는 것이었다. 반면 운동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이고 무관심한 대중이 민주적으로 통치되는 국가에서 쉽게 다수가 될 수 있고, 따라서 민주주의는 소수에 의해서만 적극적으로 인정되는 규칙에 따라 작용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전체주의 운동이 파괴한 민주주의의 두번째 환상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이고 무관심한 이 대중이 별로 중요하지 않으며 또 그들은 정말 중립적이어서 국가의 정치저 삶에서 불분명한 배경을 이룰 뿐이라는 것이었다.-26쪽

민주주의의 자유는, 시민들이 어떤 집단에 속해있고 또 그 집단에 의해 대변되거나 특정한 사회적, 정치적 위계질서를 형성하는 곳에서만 의미가 있고, 기능을 제대로 발휘한다.-27쪽

대중사회가 가진 철저하게 이질적인 균등성은 전체주의의 일차적 조건 중 하나이다. ... 전체주의 운동은 원자화되고, 고립된 개인들의 대중조직이다. ... 전체주의 운동의 ... 외적 특징은, 개인 성원에게 총체적이고 무제한적이며 무조건적이고 변치 않는 충성을 요구하는 것이다.-42,43쪽

전체주의는 절대 통제권을 소유하면 항상 선전을 교화로 대체한다. ... 이데올로기 교의와 실천적 거짓말을 끊임없이 실현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한다.-72쪽

운동이 작을수록 더 많은 에너지를 단순한 선전에 소비한다. 전체주의 정권에 가해지는 외부 세계의 압력이 크면 클수록 전체주의 독재자들은 더욱 활발하게 선전에 관여하고자 한다. ... 반대로 테러와 불가피하게 결합된 주입식 교화는 운동의 힘이 커지고 전체주의 정부가 외부 세계로부터 더욱 고립되어 안전하다고 느끼면서 증가한다. ... 선전은 비전체주의 세계를 다루기 위해 전체주의가 사용하는 하나의, 어쩌면 가장 중요한 도구이다. ... 그 반대로 테러는 전체주의 통치형식의 본질이다.-75,76쪽

전체주의 운동은 사회주의와 인종주의를 사용하면서 거기서 공리주의적 내용, 즉 계급이나 국가의 이해 관계를 지워버렸다.-82쪽

전체주의 선전의 진정한 목표는 설득이 아니라 조직이다.-103쪽

엘리트 교육은 진리와 거짓, 현실과 허구를 구분하는 이론가적 능력을 없애는 데 맞추어져 있다. 그들의 우수성은 모든 사실적 진술을 목적의 선언으로 즉각 해체할 수 있는 능력에 있다.-138쪽

히틀러나 스탈린은 영구적으로 불안정한 국가를 만들겠다는 의도를 감추기 위해 안정을 약속했다는 것이다. ... 그(전체주의 통치자)는 운동의 허구세계를 구체적인 일상생활의 현실로 확립해야만 했고, 다른 한 편으로 이 새로운 세계가 새로운 안정을 구축하는 것을 막아야만 했다.-148쪽

전체주의 국가에서 누구나 다 확실하게 아는 단 하나의 규칙은 어떤 통치기구가 더 많이 알려진 통치기구일수록 권력이 적고 그 존재가 공개되지 않으면 않을수록 더 큰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 비밀이 시작되는 곳에서 실질적인 권력이 존재하기 시작했다.-167쪽

어떤 전체주의 독재자도 왕조를 세워 자신의 아들을 후계자로 지명하는 옛방식을 시도하지 않았다는 것이 특징적이다.-173쪽

전체주의 운동과 전체주의 국가의 중요한 차이점 중 하나는 전체주의 독재자가 운동의 지도자보다 더 큰 스케일로 더 일관성있게 거짓말을 할 수 있으며 해야 한다는 것이다.-180쪽

전체주의 정권의 문제점은...전혀 새로운 미증유의 권력개념이 그들의 정치 배후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 직접적인 결과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이 더 문제가 되며, 민족주의보다 민족 이익을 무시하는 태도와 어느 한 곳에 뿌리를 내리지 않고 있다는 점이 더 문제가 된다. ... 실용주의 동기를 경멸하는 태도가, 또 권력욕보다 '이상주의', 다시 말하면 이데올로기 허구세계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더 문제점이 많다. ... 전체주의가 생각하는 권력은 오로지 조직을 통해 산출되는 힘에 놓여 있다. -187,188쪽

전체주의 경찰의 과제는 범죄의 적발이 아니라 정부가 특정한 범주의 주민들을 체포하기로 결정할 때를 위해 항상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 흥미로운 현상은 전체주의가 위반 혐의를 가능한 범죄로 대체한 것이다.-200,201쪽

용의자라는 범주는 전체주의 조건에서는 전 주민을 포함한다. 공식적으로 정해졌지만 수시로 변하는 노선에서 일탈한 사상은, 어떤 활동 영역에서 일어나든 모두 이미 혐의의 대상이 된다. 인간은 생각할 능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용의자가 되며...생각할 수 있는 능력은 동시에 마음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이다.-207쪽

총체적 지배로 향한 최초의 중요한 행보는 사람에게서 법적 인격을 죽이는 것이다.-233쪽

산송장을 마련하는 일에서 그 다음 결정적인 단계는 인간 내면의 도덕적 인격의 실종이다.-239쪽

양심이 부적절해지는 조건, 선을 행하는 것이 전적으로 불가능한 조건을 만듦으로써 전체주의 정권의 범죄에 모든 사람이 의식적으로 조직적인 가담을 하게 되고, 이 공모관계는 희생자에게까지 확대되며 그렇게 하여 진정한 의미에서 전체주의적이 된다.-241쪽

도덕적 인격과 법적 인격을 살해한 후에 개성의 파괴는 항상 성공적이었다. ... 개성을 파괴하는 것은 자발성을 파괴하는 것이며 스스로 새로운 일, 즉 환경과 사건에 대한 단순한 반응의 토대 위에서는 설명될 수 없는 어떤 것을 시작할 수 있는 힘을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45쪽

전체주의는 권력을 얻고 지킬 수 있는 곳은 조건반사의 세계, 자발성의 흔적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꼭두각시의 세계뿐이다.-248쪽

이 내적 강요는 논리성의 독재로서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 외에 어떤 것도 그에 대항할 수 없다.-275쪽

통치형태로서 전체주의 지배는 이 고립으로 만족하지 않고 사생활도 파괴한다는 점에서 새롭다. 전체주의 지배는 고독에, 세상에 소속되지 않는다는 경험에 기반을 둔다. 그런데 이 경험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이고 가장 절망적인 경험ㅇ다.-278쪽

역사에서 모든 종말은 반드시 새로운 시작을 포함하고 있다는 진리도 그대로 유효하다. ... 정치적으로 시작은 인간의 자유와 동일한 것이다. ... 실제로 모든 인간이 시작이다.-2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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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기 좋은 날 - 그날, 그 詩가 내 가슴으로 들어왔다
김경민 지음 / 쌤앤파커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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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갈수록 우리에게서 멀어지고 있다.

 

정보화 시대, 갈수록 짧아지는 말 속에서 어쩌면 시는 더 자기 자리를 잡을 수 있어야 하는데도.

 

말이 짧다고 생각도 짧지는 않으니, 긴 생각을 거부하는 시대에 시는 더 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

 

서점에 가끔 가곤 한다.

 

인터넷으로 책을 사는 편이 편하고, 더 쌀 수도 있지만...그래도...

 

가끔은 손으로 직접 책을 만져보고, 책에서 나는 냄새도 맡아보고 싶고, 책 속 글자들의 모습도 보고 싶어서 간다.

 

특히 이런 즐거움은 시집이 꽂혀 있는 곳에서 더욱 커진다.

 

시집이란, 그냥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어루만지고, 살피고, 또 살피고, 그러다가 마음이 움직이면 손에 든다.

 

하지만...

 

갈수록 서점에서는 시집이 꽂혀있는 책장의 크기가 준다.

 

시집이 점점 구석으로 밀려가더니, 이제는 유명시인들의 시집들만...가끔은 무슨무슨 문학상을 탄 시집들만...또 한 시인의 시집이 아닌 여러 시인의 시를 묶어놓은 시집들만... 보인다.

 

여기에 시를 해설해 놓은 책들과, 자기 나름대로 시를 감상한 책들이 놓여있기도 한다.

 

짧은 말과 글을 요구하는 시대, 어쩌면 시가 제 시대를 만났다고 좋아해야 하는데...

 

시는 점점 서점에서조차도 밀려가고 있다.

 

그만큼 시는 우리에게서 멀어지고 있다.

 

이 멀어지는 시를, 우리 곁으로 돌려보내려는 노력이 시를 읽고 난 감상을 쓴 책들이다.

 

시는 어렵지 않다. 시는 즐겁다. 시는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시는 우리 자신이다.

 

이렇게 말한다.

 

평론가나 학자들이 어렵게 말한다면, 이들은 마치 일기를 쓰듯,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게 시를 통해, 시와의 만남을 통해 드러낸다.

 

우리는 이 책들을 남의 일기를 보듯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읽으며 자신의 마음과, 자신의 생각과 비교를 하기도 하고, 미처 생각하지 못햇던 부분, 미처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되살리기도 한다.

 

시 읽기 좋은 날.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그냥 손에 잡고, 읽으면 된다.

 

깊은 의미를 생각하지 말고, 눈으로, 입으로, 그리고 마음으로.

 

이렇게 시에 다가가면, 시는 어느 순간 내게 다가온다.

 

시가 다가오는 순간, 마음은 행복으로 가득찬다.

 

그 때부터 시는 즐거움이 된다.

 

학교에서 배웠던 시, 시험보기 위해서 외웠던 시들, 이 책에 있다.

 

그러나 그 지긋지긋했던, 어려웠던 시들이 아니다.

 

다르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시 읽기 좋은 날.

 

다시 읽을수록 시는 더욱 맛이 난다. 더욱 마음에 파고든다.

 

어른이 되었다고, 시는 젊은이들의 몫이라고 단정짓지 말자.

 

시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문학이고,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문학이다.

 

한 살 한 살 나이 먹어가면 세상을 살아온 사람에게 시는 말을 건넨다.

 

그 말은 내가 먼저 다가가야 내게 다가온다.

 

벽을 쌓고 있는 사람에게 누가 말을 걸겠는가.

 

말과 글이 짧아지는 시대. 짧은 글로 말을 거는 시를 읽자. 그리고 그 시에 대답을 하자.

 

시와 대화를 하자.

 

시 읽기 좋은 날... 이 날은 매일매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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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주의의 기원 1 한길그레이트북스 83
한나 아렌트 지음, 이진우, 박미애 옮김 / 한길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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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란 현실에, 그것이 무엇이든, 미리 계획하지는 않았지만 주의 깊게 맞서는 것이며 현실을 견뎌내는 것이다.-34-35쪽

총체적인 지배는 공존이 불가능한 유일한 통치 형태-64쪽

테러는 모든 조직적 반대파가 제거되고 전체주의 지배자가 더이상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촉발되었다는 것이다.-66쪽

전체주의 정부의 경우 경찰의 우세는 국내 주민을 진압해야 할 필요성에 대한 대응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 통치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권리 주장에 적합한 것이다.-74쪽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어떤 기능을 수반하지 못한 부는, 그것을 묵인해주어야 할 이유를 어느 누구도 납득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우 참기 힘든 것이었다. 반유대주의 역시 유대인들이 공적기능과 영향력을 잃고 재산 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을 때 절정에 달했다.-85쪽

인간은 권력이 모종의 기능을 하며 일반적으로 유용하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아는 까닭에 실질적 권력에 복종하거나 견디는 한편, 권력없이 부만 가진 사람들을 증오한다.-86쪽

전체주의 정권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테러가 특정 이데올로기의 실행 수단으로 반드시 존재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테러를 안전하게 자행할 수 있으려면 이 이데올로기는 반드시 다수를, 심지어 대다수를 지지자로 확보해야만 한다.-88-89쪽

근대적 반유대주의의 발생과 성장은 유대인이 동화, 즉 유대교의 종교적이고 영적인 옛가치들이 세속화되어 쇠퇴한 이후에 일어났으며, 이와 내적 연관성을 갖고 있다.-90쪽

근대의 반유대주의는 국민국가의 발전이라는 보다 일반적인 틀 속에서 고찰되어야 하며, 동시에 반유대주의의 원천은 유대인 역사의 몇 가지 측면에서 특히 지난 세기 동안 유대인이 수행했던 역할에서 찾아야만 한다. -93쪽

동일한 나라에서 해방이란 평등인 동시에 특권이며, 옛 유대인 공동체의 자율성 파괴인 동시에 사회 내에서 분리된 집단으로서 유대인의 의식적 보존을 의미한다. -97쪽

유대인은 평등권의 관점이 아니라 특권과 특별한 자유의 관점에서 사고했다는 것이다.-105쪽

권력에 대한 지식도 관심도 없던 유대인들으 자기 방어라는 사소한 목적을 위해 가벼운 압력을 가하는 외에 권력을 사용한다는 생각은 결코 해본 적이 없었다.-114쪽

국가를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유일한 사회집단은 바로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국가 자체와 갈등에 빠지게 된 사회 계급은 반유대적이 된다.-116쪽

"빛나는 권력"은 사회적으로 의탁할 곳이 없는 사람들이 가정을 이룰 수 있는 진정한 사회적 힘이었던 것이다.-158쪽

반유대주의가 공개적인 정치 무대에서 거의 완전히 사라지는 동안, 유대인은 그 자체 사교계의 상징이 되었고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모든 사람에게는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159쪽

정치적 반유대주의는 유대인이 하나의 분리된 집단이었기 때문에 발전했던 반면, 사회적 차별은 다른 모든 집단과 더불어 유대인의 평등이 신장되었기 때문에 발생했다.-161쪽

차별은 집단이 시민적,정치적, 경제적 평등의 영역 바깥에 속하는 존재임을 알게 하는 일종의 보편법칙이다.-163쪽

정치적 반유대주의가 아니라 사회적 차별이 '유대인이라는 것'이라는 유령을 발견했다.-172쪽

모든 사회 게임에는 반쯤 의식적인 이해와 근본적으로 목적없는 음모를 명확한 정책으로 전환하려는 확고한 정치적 의지만이 필요했다.-198쪽

범죄와 악덕을 같다고 생각하는, 도량이 넓어보이는 그 태도가 그 자체의 법 규약을 세우도록 허용될 경우, 반드시 법보다 더 잔혹하고 더 비인간적이 될 것이다. 법은 아무리 가혹하더라도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인간의 독립적인 책임성을 존중하고 인정한다.-203-204쪽

모든 사회는 구성원에게 일정 정도의 연기, 즉 자신의 실제 모습을 표현하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한다. 파당으로 분열된 사회라면, 그런 요구를 내세우는 것은 사회가 아니라 파당의 구성원이다. 행동은 무언의 요구에 의해 통제되지 개인의 능력에 의해 통제되는 것은 아니다.-209쪽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 지위를 잃은 모든 계급은 결국 그들 자신의 폭민 조직을 통합하고 확립한다. 폭민 조직의 선전과 매력은 다음의 가정을 기초로 한다. 즉 악덕의 형태를 띤 범죄를 기꺼이 자신의 구조 안에 편입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사회는 이제 공개적으로 범죄자를 허용하고 공적으로 범죄를 자행하면서 악덕을 청소할 차비를 갖출 것이라는 가정 말이다.-214쪽

폭민은 일차적으로 각 계급의 낙오자들을 대표하는 집단이다. ... 국민이 모든 혁명에서 진정한 대의제를 위해 투쟁했다면, 폭민은 항상 '강한 자','위대한 지도자'를 소리 높여 외친다. 폭민은 자신을 소외시킨 사회를 증오하며, 자신을 대변해주지 않는 의회 역시 증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폭민의 지도자들이 훌륭한 결과를 얻을 수 있던 수단인 국민 투표제는 폭민에 의존하는 정치가들의 낡은 개념이다.-242쪽

제국주의는 새로운 사회, 정치 세력으로부터 위협받던 정치, 사호 구조에게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유예기간을 주었던 것이다.-302쪽

제국주의 시대에 나타난 새로운 사실은 남아도는 이 세력, 잉여자본과 잉여 인력이 손을 잡고 함께 나라를 떠났다는 것이다. 통치권력을 수출하고 또 국가가 재산과 노동을 투자한 지역을 합병하는 팽창은 부와 인구의 측면에서 증가하는 손실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처럼 보였다.-307쪽

인종은, 정치적으로 말해서, 인류의 시작이 아니라 종말이고 민족의 기원이 아니라 쇠퇴이며, 인간의 자연적 탄생이 아니라 그의 부자연스러운 죽음이기 때문이다.-317쪽

인종사상의 기원이 18세기에 있지만 19세기에 모든 서구 국가에서 도시에 출현했다는 것이다. 인종주의는 세기 전환기에 제국주의 정책의 강력한 이데올로기였다.-320쪽

인종주의는 처음부터 지리적, 언어적, 전통적 기준을 비롯한 모든 기준에 의해 규정되는 국가의 경계를 모두 의도적으로 뛰어넘었으며, 국가와 정치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324쪽

이민족을 정치적으로 조직하고 통치하기 위해 두 가지 새로운 정책이 제국주의의 처음 10년 동안 발전되었다.. 하나는 정치 통일체의 원칙으로서 인종이었고 다른 하나는 외국을 지배하는 원칙으로서 관료정치였다.-361쪽

자신과 같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과 같아서는 안되는 어떤 것에 대한 공포가 노예 제도의 바탕에 남아 있었고, 그것이 인종차별 사회의 토대가 되었다.-372쪽

뿌리가 없다는 것은 모든 인종 조직의 특징이다.
... 그것(인종주의)은 항상 노동에 대한 경멸, 지역적 제한에 대한 증오, 일반적인 뿌리 상실과 신이 자신들을 선택했음을 믿는 행동주의적 신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379-380쪽

전설은 그를 그가 행하지 않은 것의 주인으로 만들고 그가 원상태로 돌릴 수 없는 것을 처리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런 의미에서 전설은 인류의 가장 먼 기억이 아니라 바로 인간 역사의 실질적인 시작인 것이다.-397쪽

종족주의는 국가 해방에 참여하지 않고 하나의 국민국가의 주권을 얻지 못한 민족들의 민족주의로서 나타났다.-427쪽

민족주의는 본질적으로 국가가 민족의 도구로 전도되고 시민이 민족의 구성원과 동일시되는 현상을 표현한다. -433쪽

인간의 공통 기원을 부정하고 인류를 세운 공동의 목적을 부인하는 인종주의는 다른 민족들과 뚜렷이 구분되는 한 민족의 신적인 기원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그로 인해 일시적이고 변화할 수 있는 인간 노력의 산물을 신적 영원과 무한성의 구름으로 가려버린다.-438쪽

"정당을 초월하여"라는 슬로건이나 "모드 정당의 사람들에게" 호소한다고 하든가. 자신들이 "정당의 투쟁과 멀리 떨어져 오로지 국가 이익을 대변한다"고 자랑하는 일은 모든 제국주의 집단의 특징이다.-463쪽

"정당을 초월한 정당"의 진정한 목표는 자신들의 특수한 이해관계를 관철하여 다른 이해관계들을 모두 파괴하는 것이며, 하나의 특별한 집단이 국가 기구의 지배자가 되게 하는 것이었다.-472쪽

수십만 명의 무국적자들이 출현함으로써 국민국가가 입은 최초의 커다란 손상은 망명의 권리, 국제 관계의 영역에서 인권의 상징으로 항상 여겨졌던 유일한 권리가 폐지되었다는 것이다
... 피난민의 출현으로 유럽 세상이 받은 두 번째 커다란 충격은 이들을 제거할 수도 없고 망명국가 국민으로 전환시킬 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이다.-508-510쪽

어떤 사람이 법의 외곽지대에서 살기를 강요당했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최고의 척도는 그가 범죄를 저지름으로써 이익을 얻는지를 물어보는 것이다.
...인정받지 못하는 예외에서 인정받는 예외의 지위로 올라갈 수 있는 방법 중 훨씬 믿음이 덜 가는 동시에 훨씬 더 어려운 것은 천재가 되는 방법일 것이다.-517-518쪽

권리를 잃은 자들이 제일 먼저 겪는 것은 고향의 상실이다. ... 새로운 고향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 권리를 잃은 사람들이 두번째로 겪는 것은 정부 차원의 보호의 상실이었고, 이는 자국 내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에서 법적 지위를 잃는 것을 의미한다. -528-529쪽

권리를 상실한 사람들의 재난은 그들이 생명, 자유와 행복 추구 또는 법 앞에서의 평등과 의견의 자유를 빼앗겼다는 것이 아니라 어느 공동체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그들을 위한 어떤 법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고...아무도 그들을 탄압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단지 긴 과정의 마지막 단계에 가서 비로소 그들의 생명권이 위협을 받는다.-531쪽

인권의 근본적인 박탈은 무엇보다 세상에서 거주할 수 있는 장소, 자신의 견해를 의미 있는 견해로, 행위를 효과적 행위로 만드는 그런 장소의 박탈로 표현되고 있다.-532쪽

어떤 공동체 안에서 자기 자리를, 시대의 투쟁 속에서 자신의 정치 지위를 잃어버린 인간, 또 그의 행위와 운명의 일부를 서로 연관시키는 법적 인격을 잃은 인간은 사생활의 영역에서만 명확하게 표현되는 특성만 가지게 되고, 공적인 모든 사안에서는 아무런 자격이 없는, 단순한 존재로 남을 수밖에 없다.-539쪽

평등은 우리에게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니다. 평등은 인간 조직이 정의의 원칙에 의해 지배를 받는 한,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는 평등하게 태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상호간에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우리의 결정에 따라 한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평등하게 되는 것이다. 정치 생활은 우리가 조직을 통해 평등을 산출할 수 있다는 가정에 근거한다.-5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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