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치유학
김하리 지음 / 스타북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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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짧다. 그래서 울림이 있다. 음악회장에 가서 가슴을 팡팡 울리는 음악을 듣는 것만큼이나 시는 마음을 울리게 한다. 시의 울림이 내 마음의 울림과 일치할 때 그 때 그 울림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시는 짧다. 그래서 어렵다. 어렵기 때문에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이런 생각들을 통해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남을 되돌아보며 남과 함께 하는 자신을 찾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시는 짧다. 그래서 쉽다. 어렵기도 쉽기도 한 존재가 시이다. 짧기에 오랜 시간 읽을 필요가 없다. 집중된 순간, 시를 읽고, 마음에 들어오는 시를 받아들이면 된다. 그래서 시는 쉽다. 남이 뭐라하건 상관이 없다. 시는 내 마음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그래서 시는 또 쉽다. 그냥 시는 누가 썼든, 누가 읽었든 내가 읽는 순간, 내 마음에 들어오는 순간, 시는 내 것이 된다. 바로 나 자신이 된다. 

나와 시의 공명(共鳴)! 이 순간 나는 온전한 존재가 된다. 내가 겪어왔던 과거의 모든 것으로부터, 나를 괴롭히는 아직 오지 않은 것들로부터 시는 나를 멀어지게 해주고, 나를 나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준다. 나를 나로 받아들일 때 그 때 치유가 일어난다. 

이 책 "시 치유학"은 치유학 일반에 관한 이론에서부터, 문학치료, 그 중에서 시 치료를 이야기하고 있다. 시 치유학이라는 분야를 개척한 김하리의 책이다. 자신이 쓴 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으며, 때로 법정 스님의 글과 다른 사람의 글들이 나온다. 

자신이 시를 통해 어떻게 어려움을 극복해 왔는지를 이야기하는 부분도 있고, 자신이 생각했던 부분들을 이야기로 풀어가기도 한다. 

내용은 어렵지 않고, 특히 김하리 본인의 시는 어렵지 않고, 절실한 감정이 잘 드러나고 있어, 감정이입을 하기도 쉬워 읽어가면서 공감하는 부분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시와 멀어진 세상이라고 하는데, 아니다. 아직은 시와 멀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시를 아직도 가까이 하고 있다. 물론 마음에 와닿지 않고, 이성, 지성만을 자극하는 시도 있지만, 본연적으로 시는 마음을 자극한다.  

시는 마음에 와 닿는다. 직정적인 표현이든, 상징적인 표현이든 시는 마음에 울림을 주고, 이 울림을 가질 때 우리의 마음은 치유가 된다. 

그 사실을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정리한 책이 바로 이 "시 치유학"이다.  

세상이 힘들더라도, '인생이란 가장 슬픈 날, 가장 행복하게 웃는 용기를 배우는 것(97)'이라는 말 처럼 우리 스스로 행복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우리는 평온함을 얻는데, 이 '평온함은 먹물이 한지에 스며들 듯 서서히 스며들어 가야 한다(106쪽)'고 한다. 

이렇듯 인생을 의미있게 살아가게 해주는 존재, 우리 삶에서 평온함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로 시는 우리 곁에 늘 존재한다.  

시를 가까이 하자. 그리고 우리 마음에 시를 받아들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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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 - 그들은 맥도날드만이 아니라 우울증도 팔았다
에단 와터스 지음, 김한영 옮김 / 아카이브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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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그들은 맥도날드만이 아니라 우울증도 팔았다. 

우리나라에 번역된 제목과 부제이다. 영어로 되어 있는 부제를 보면 미국식 정신질환의 세계화 정도일텐데... 번역된 제목이 더 자극적이다. 

이 책에는 4개의 사례가 나온다. 

거식증,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정신분열, 우울증 

거식증은 홍콩에서, 홍콩식의 독특한 거식증에서 미국식의 거식증으로 정리되어 가는 과정을, 

외상후 스트레스 장에는 스리랑카에서 지진해일로 인한 사람들의 모습을, 스리랑카만의 독특한 문화적 관습으로 대처해나가는 모습에서, 하나의 표준화된 모습으로 정리되어 가는 과정을, 

정신분열은 잔지바르에서의 정신분열에 대해 대하는 태도와 미국식 태도의 다름을 이야기하면서, 이 또한 미국식 정신분열로 정리되어 가는 과정을, 

우울증은 일본에서 일본인들이 생각했던 우울증을 미국식의 우울증으로 바꾸어가는 과정과 결과가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자극적인 제목과는 달리, 미국식의 정신질환으로 세계가 표준화되는 것만을 비판하지는 않는다. 저자는 세계가 하나의 표준으로 정리되는 현상은 문제가 있다고 보지만, 이러한 표준화가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된다고도 한다. 

다만, 표준화가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각 문화의 독자성, 특성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끔 이러한 예를 들 때 돋보기와 프리즘을 거론하는데... 

외부에 햇빛이 있고, 나와 햇빛 중간에 돋보기와 프리즘을 각각 놓아보자. 그러면 돋보기는 다양한 빛깔을 보여주지 못하고, 또 빛을 퍼뜨리지 않고, 하나로 모아, 단일한, 집중된, 다른 모습을 생각할 수 없게 보여준다. 햇빛은 오직 하나의 점으로 수렴될 뿐이다. 

이와는 다르게 프리즘은 햇빛을 다양한 빛깔로, 여러 개로 분산시키고, 한 점이 아닌 면으로 분산시킨다. 그래서 단일한 모습으로 보이는 햇빛에 아주 다양한 모습이 있음을 상기시켜준다. 

의학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빛을 질병이라고 보면, 돋보기는 미국식으로 통일되고 표준화된 질병치료의 잣대라고 할 수 있고, 프리즘은 표준화되지 않은, 각 문화, 각 사람의 특성에 맞게 시행되는 질병치료의 잣대로 할 수 있다. 

공통점은 분명 있다. 이 공통점을 인정하고, 표준화된 의학기술을 적용하되, 각자가 지니고 있는 특성을 잊어선 안된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리라. 

지금은 세계화가 되어서, 오히려 각자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의학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세계적으로 공유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은 의심없이 받아들였던 사실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한다. 의학도뿐만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저자가 의사가 아니라, 저널리스트라는 점에서 저널리스트의 관점에서 쓴 이 책은 전문서적이라기 보다는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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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치료학의 정립을 위한 시론적 연구 - 문학과 역사에 치유의 길을 묻다 인문치료총서 4
김호연.유강하 지음,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 강원대학교출판부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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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인문치료학을 정립하기 위한 시론적 성격을 띤 책이다. 한 번에 죽 책을 쓰기 위해 글을 쓰지 않고, 이곳 저곳에 발표했던 글들을 책의 성격에 맞게 다시 편집한 책이다. 

인문치료학은 말 그대로 인문학으로 치료를 하는 학문을 뜻한다. 인문치료학, 생소한 개념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나라나 서양이나 예전부터 몸이 안 좋을 때는 약물치료와 더불어 함께 시행한 방법이다.  

이 중에 대표적인 것이 명상이라고 할 수 있고, 글을 통해서, 책을 통해서, 말을 통해서, 음악을 통해서 치료를 한 경우도 많다. 이들이 다 인문치료에 들어간다. 

이 책은 그래서 서론 부분에서 의술의 신이라고 불리는 아스클레피오스부터 시작한다. 이를 추종한 아스클레페이온에서는 약물치료와 인문치료가 병행했다는 사실에서 인문치료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1부에서는 역사와 문학의 관계를 세 작품을 통해서 논증하고 있다. 역사가 사실을 천착한다면 문학은 사실에서 발생하는 의미를 추구한다는, 그래서 문학과 역사는 상호보조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을 구체적인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는데, 측천무후와 이민자의 문제를 다룬 여인무사, 그리고 수용소의 생존을 다룬 이것이 인간인가를 대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읽는 재미도 있고, 그래,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장이다. 

2부는 리-텔링이라고, 신화를, 설화를 새롭게 말하기다. 이 새롭게 말하기를 통해서 자신과 사회의 의미를 깨달아가게 된다고 한다. 역시 맹강녀곡장성이라는 이야기를 "눈물"이라는 작품으로 바꿔 쓴 이야기와 여인무사 중에서 우리에게 친숙한 뮬란을 대상으로 논증하고 있다. 그다지 어렵지 않게 읽히고, 인문학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해주는 부분이다. 

결론에서는 고전이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오는지 자신이 한 수업내용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여기서는 저널치료의 기법을 도입하는데, 저널치료 중에서 인물 묘사, 보내지 않는 편지, 자유로운 글쓰기를 선보이고, 이것들은 자신에 대한 성찰을 기르고 역지사지의 사고를 확장시켜주며, 긍정적인 자아상을 확립하는데 도움을 준다(199쪽)고 한다. 

인문학에 대한 경시부터 시작하여 인문학이 우리 삶에 필수적이라는 주장으로 넘어온 지는 좀 되었다. 희망의 인문학, 행복한 인문학 등 많은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책으로 출판되기도 하였고, 희망을 잃은 사람들이 인문학을 공부함으로써 희망을 찾게 된 과정이 책에 나타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인문학을 하기 위해서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즉 시간이 있어야 한다. 인문학 치료를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인문학을 접할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농담식으로 때론 자랑스럽게 말하던 월,화,수,목,금,금,금 

이 말이 부끄러운 말로, 해서는 안될 말로 바뀌어야 한다. 그런 사회가 되었을 때 인문학을 이야기 할 수 있다. 세계 최장 노동시간, 세계 최장 학습 시간, 빨리빨리의 나라, 철야작업이 예사인 나라에서 인문학은 먼 나라의 이야기일뿐이다. 

그래서 인문학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사회구조를 이야기해야 한다. 적어도 책을 읽고 그 책을 되새김질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이런 점이 이 책에는 나타나 있지 않아 좀 아쉽다.

희망의 인문학, 행복한 인문학에서 인문학을 공부한 사람들을 보라. 재소자, 노숙자 등 이 사회의 그늘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그늘에 있는 사람들도 인문학을 공부하고 삶의 의미를 깨달았다고 생각하기 전에, 그들이 처한 환경을 보아야 한다. 그들은 시간이 있다. 적어도 책을 읽고 생각할 시간이 있다는 말이다. 

이 책에서도 인문학 치료의 방법을 연구하기 위해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고전 학습을 하고 있다. 대학생들도 역시 시간이 있다. 혹, 몸이 아파서, 마음이 아파서 병원에 오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라. 이들에게도 역시 시간이 있다. 무언가 생각할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말이다.  

그런 여유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생계를 위하여 바쁘게 살아가는 일반 노동자들이 얼마나 시간이 있을지... 채플린의 '모던타임즈'를 보라.  

그에게 과연 인문학, 아니, 자신의 삶에 대해서 성찰할 시간이 있을까. 그냥 기계처럼 그 자리에서 정신없이, 무의식적으로 같은 행동을 반복할 뿐이다. 

그들에게 인문학을 할 시간을 확보해주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인문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나, 인문학치료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노력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빨리빨리에서 벗어나 좀 게을러져야겠다. 

게으르다는 말이 무엇하면 느림이라고 하자. 느림이 문화가 되면 무언가 생각하게 되고, 이 때부터 삶에 대해 고민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런 고민들이 인문학과 만나면 많은 사람들의 삶이 풍요로와질 수 있게 된다. 

인문치료를 주장하는 이 책들은 인문학이 어떻게 사람의 정신, 또는 몸까지도 치유할 수 있는가를이야기하고 있다. 좋은 말이고, 필요한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여유가 있는 사회를 먼저 주장해야 한다.  

결국, 역사와 문학이 별개가 아니듯이, 사회와 문학은 별개일 수 없고, 인문치료는 이런 사회와는 동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인문학자와 사회학자, 시민운동가. 정치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야 한다는 당위성이 생기게 된다. 

우리 모두 인문학이 우리 삶에 가까이 오는 사회를 꿈꾸고 행동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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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학생들은 학교를 좋아하지 않을까? - 학교수업이 즐거워지는 9가지 인지과학 처방
대니얼 T. 윌링햄 지음, 문희경 옮김 / 부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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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 다가오면 학생들은 너무나 기대하는 마음을 지닌다. 반대로 개학이 다가오면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인다.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처럼 마음에 안정을 찾지 못한다. 

그만큼 학교는 학생들에게 즐겁고 행복한 공간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안 갈 수 있을까 하는 공간이 된 지 오래다. 학생들은 할 수 없이, 부모님이 가라고 하니까, 아니면 학교 안 다니면 이상한 눈으로 보니까, 대학에 가려고, 사실 대학도 학교인데, 그렇다면 취직 잘하려고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는 한 단계로 학교를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학교에서 배움의 즐거움은 있을 수가 없다. 도대체 왜 배우는지, 내가 배운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오직 시간만 보낼 뿐이다. 

글쓴이는 여기에서 출발한다. 왜 학생들은 학교를 좋아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는 이에 대하여 학교 수업이 즐거워지는 9가지 인지과학 처방을 내리고 있다. 

그는 9가지 처방이라고 하지만, 마지막이 교사에 대한 처방이니, 학생들과 관계 있는 처방은 8가지이다. 그런데 자세히 읽어보면 이건 학생들이 읽고 대책을 세워야 하는 책이 아니다. 교사들이나 부모가 읽어야 하는 책이다.  

8가지 처방도 학생들 스스로 이렇게 하면 학교가 좋아진다가 아니라, 학교에서, 또는 교사가, 수업이 이렇게 되면 학생들이 학교를 좋아하게 된다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말이다. 

그가 던진 앞의 8가지 질문만 우선 보자.  

1. 왜 학생들은 학교를 좋아하지 않을까? 

2. 시험에 꼭 필요한 기술, 학생들에게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 

3. 왜 학생들은 텔레비전에서 본 건 다 기억하면서 교사가 한 말은 다 잊어버릴까? 

4. 왜 학생들은 추상적 개념을 어려워할까? 

5. 반복훈련과 연습은 유용한 학습인가? 

6. 학생들이 과학자, 수학자, 역사가처럼 생각하도록 가르치는 비법은 무엇일까? 

7. 학생들 각각에 따라 교수법을 어떻게 조절해야 할까? 

8. 학습부진아는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이 질문들을 보면 답은 교사가 찾아야 한다. 교사가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고 수업에 적용하면(이 책은 인지과학적 처방을 내리고 '학교 수업에 주는 함의'라고 각 장의 마무리 부분에서 다시 정리해주고 있어서 수업에 적용하기가 편하다) 학생들의 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쪽으로 내용이 전개되고 있다. 

그리고 이 질문들에 대한 정리는 279쪽에 표로써 아주 잘 정리해주고 있다. 이 표를 참조하면 수업방식의 개선에 대한 도움을 얻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이를 총 정리한 질문이 마지막 질문이다. 

9. 학교 수업을 맡아하는 교사는 어떠해야 할까? 

결국 이 책은 학교에서 교사가 수업을 어떻게 진행해야 학생들이 학교를 좋아하게 되나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이 질문은 우리가 꼭 해야 하고, 이에 대한 답은 반드시 찾아야 하는 질문이다. 

좋은, 훌륭한 교사는 학생과 인간적으로 교감할 줄도 알고, 수업을 흥미롭고 이해하기 쉽게 이끌어 갈 수도 있어야(98쪽)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사들이 이 책을 읽고 자신의 수업을 되돌아보면 그 되돌아봄이라는 행위 자체로도 학생들에게 좋은 교사로 한 발 다가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은 현직교사들과 예비교사들, 그리고 교육에 관심이 있는 부모들에게 학생들의 인지적 특성을 이해하고 조금 더 학생들이 행복한 학교생활을 하게 하는데 도움을 주는 책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이제는 개학을 기다리는 학생이 나오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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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켜야 했던 평화의 언어 - 병역거부가 말했던 것, 말하지 못했던 것
임재성 지음 / 그린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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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20대 초반, 병무청에서 나온 신체검사 통지서를 받고 있는 나. 군대 누구나 간다고 하지만 누구나는 가지 않는 그 곳. 가고 싶지 않고, 될 수 있으면 가지 않았으면 하는 곳. 어떻게 하면 가지 않을 수 있나? 눈이 나쁘면, 간이 안 좋으면, 혈압이 높으면, 평발이면, 몸무게가 너무 안 나가면, 몸무게가 너무 나가면, 키가 아주 작으면, 손가락이 없으면....등등 

온갖 군대 가지 않을 방법이 난무한다. 이 많은 방법이 대부분 자신의 신체에 관한 것이다. 양심이라는 신념에 대한 것은 없다. 아니 없었다. 그 때는 생각을 못했다. 기껏 생각해 낸 것이 감옥에 갔다오는 것, 양심수로 말이다. 

결국 '빽'없는 소시민의 자식들은 신체검사를 통해 현역병으로 입영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존경하는 인물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물은? 이런 질문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사람들... 장군들이다. 이순신, 강감찬, 을지문덕, 하다못해 요즘 드라마에서 다루고 있는 계백, 김유신, 연개소문, 왜 광개토대왕이 광개토태왕이 되고, 영웅이 되겠는가? 세계적으로도 나폴레옹, 한니발, 아이젠하워, 게다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맥아더... 

이들이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 이들 밑에서 얼마나 많은 군인, 백성들이 죽어갔겠는가? 이들의 이름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상대편 사람들이 죽어갔는가를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 사람을 죽이면 살인자지만, 수 천, 수 만 명을 죽이면 영웅이 된다고 하는 말도 있지 않은가. 결국 전쟁영웅이란, 장군이란 남의 생명을 수없이 없앤 사람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  

루쉰이 쓴 '나폴레옹과 제너'란 글이 생각난다. 왜 사람들은 수많은 사람을 살린 제너보다는 수많은 사람을 죽인 나폴레옹을 더 기억할까 하는 글.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람은 나폴레옹이 아니라, 제너와 같이 수많은 사람을 살린 사람들이 아닐까.

 

양심적 병역 거부,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용어야 많지만, 이 책은 양심적 병역 거부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이 때 양심은 우리가 말하는 착한 마음이라는 의미보다는 자신의 신념을 이야기 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병역 거부를 하고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 처음에는 병역 거부는 살상 무기를 잡지 않을 권리, 남을 해치지 않겠다는 자신의 신념을 유지하게 해주는 차원에서 대체 복무제를 이야기 하고 있다. 노무현 정권 말기에 실시한다고 했다가, 이명박 정권에 들어와서 백지화시켜 버린 대체복무제. 점점 평화에서 멀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병역거부의 역사가  짧은 것도 있고, 여호와의 증인을 중심으로 종교적인 신념에서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그래서 이들이 감옥에 가게 되었고, 이들을 감옥에 가게 하지 말자는 운동으로 대체복무제를 주장했지만, 아직도 이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대체복무제가 양심적 병역 거부 운동의 끝이냐고? 아니다. 이 책은 그것이 아님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 쓰여졌다고 보아도 된다. 그것이 삼켜야 했던 평화의 언어다. 

양심적 병역 거부는 대체 복무제만을 주장하지 않고, 군사주의를 반대한다. 군사주의로 표방되는 획일화, 생명경시의 사회를 반대한다. 이들은 평화주의를 제창한다. 그리고 세계 평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 그런 차원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 위에 군대 거부까지 나아가려고 한다.  

이런 내용이 2부에 자세히 실려 있다. 군대, 그리고 군인, 이는 살인집단이고 살인기계일 뿐이라는 말이 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제나 예비되어 있는 살인 집단이라는 인식을 지니고, 이에 대한 반대를 한다면 평화는 한걸음 더 우리 앞에 다가오게 된다.

 

1부는 일제시대부터 지금까지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역사적인 연구를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여호와의 증인과 재세례파들로 이루어진 종교적이 신념에서 한 거부부터, 2000년대 들어 자신의 평화에 대한 신념으로 거부한 사례까지 다루고 있다. 종교 자체가 이미 평화이거늘, 어떤 종교 단체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를 극렬하게 비난하는 모습은 이해하기 힘들다. 대부분의 종교 단체들은 이제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인정하고 있는데... 아직도 군복에 대한 향수를 잊지 못하고, 군대만이 나라를 살릴 길이라는 인식을 지닌 사람들이 있듯이, 종교가 정치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세속의 이익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이는 종교집단이 있다. 

교회가 늘어나고, 절이 늘어나고, 성당이 늘어나고, 모스크가 늘어나고, 또... 어떤.. 어떤 종교의 예배장소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세상은 평화로 넘쳐야 하는데...왜 아직 안 될까? 왜 이들은 군대를 문제삼지 않을까? 임재성의 이 책은 이제는 우리가 병역 거부를 정면에서 문제 삼아야 한다고 한다. 학교에서도, 종교 현장에서도 군대를 정면에서 다룰 줄 알아야 한다고... 

 

다시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그래도 전쟁은 안된다는 생각을 국민 대다수가 지니고 있고, 평화통일이 되어야 한다고 대부분이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전쟁은 안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평화의 모습을 만들어갈까? 

이 책의 마지막에 보론이라고 인터뷰가 실렸는데.. 이 중 마케도니아 사람의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마케도나아와 알바니아가 전쟁상황 비슷한 갈등에 처했을 때 이들 마케도나아 병역 거부자들이 한 일은 조국을 지키자가 아니라, 알바니아 병역 거부자들과 함께 전쟁을 반대했다는 이야기.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결국 우리는 우리만을 보지 말고, 저 편에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와 같이 숨쉬고, 먹고, 울고, 웃으며 행복한 삶을 꿈꾸는 사람이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전쟁은 어떤 형태로도 정당화될 수 없음을 이 책을 읽으면서 더 강화했다고 할까. 

양심적 병역 거부자, 이들은 우리가 보호해 주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해야 할 사람들이다. 이들이 거부하는 병역, 그것은 지금 우리 삶에도 깊숙히 들어와 있으니 말이다. 

 

군대 갔다와야 사람된다. 쉽게 하는 말이다. 사람된다에서 사람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이제 제 주제를 알고 조용히 지내는 사람을 의미하면 사람된다는 말이 맞다. 그러나 사람이란 남에 의해 자신의 삶을 저당잡히지 않고, 자신 스스로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는 존재라면 이 말은 바뀌어야 한다. 군대 갔다오면 사람 없어진다로. 생각하면 안 되는 존재, 바로 그들이 군인 아니던가. 그래서 이 책은 양심적 병역 거부는 대체 복무로 끝나지 않고, 군대 폐지 이전의 단계로 군대의 인권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고 한다.  

최근에 기수열외 등 참 안 좋은, 군대내 비인권적인 모습이 많이 불거졌는데... 군대를 인권이 살아있는 조직으로 만드는 운동 역시 양심적 병역 거부 운동이 해야 할 일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인권은 어떤 때, 어떤 장소에서도 양보할 수 없는 천부의 권리니까.  

 

군대. 많은 사람을 소외시킨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등등 

이런 군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과연 군대는 필요한가. 톨스토이는 국가는 폭력이라고 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군대를 잘 생각해 보라고 했다. 외국군 보다도 자국민을 더 많이 죽인 집단이 군대라고...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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