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두 문학과지성 시인선 342
오규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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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낯설다. 두두라니. 이게 무슨 뜻? 국어사전을 찾아본다. 표준 국어대사전에는 이런 감탄사라고, 돼지 등을 쫓을 때 내는 소리라고 되어 있다. 이건 아니겠지. 시집을 펼쳐 본다. 시집 속에 뜻이 나와 있겠지.

 

그런데 시집 어디에서 '두두'는 없다. 제목인데, 제목에 관한 내용이고, 제목이고 없다. 이런 2부는 '물물'이다. 뭐야 이거...

 

오규원 하면 날이미지시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데...제목에서 막히다니.

 

아니다. 답은 오히려 간단한데 있다. 늘 그렇듯이.

 

책의 뒷표지에 뜻이 나와 있다. 이런 이런...

 

두두시도(頭頭是道) 물물전진(物物全眞):모든 존재 하나하나가 도이고, 사물 하나하나가 모두 진리다. 이렇게 되어 있다.

 

그래서 1부는 두두, 2부는 물물이다.

 

결국 이 시에 나오는 모든 사물들, 이미지들은 도이고, 진리이다. 아니 우리 삶에서 도이고, 진리 아닌 것이 없다는 얘기다. 그 얘기를 하고 싶었나 보다. 시인은.

 

그런데, 우리는 굳이 이런 글자에 매일 필요가 없다. 시는 우리가 읽기 나름 아니던가. 시는 이렇게만 읽어야 한다고 누가 그러겠는가. 그러니 그냥 읽으면 된다.

 

처음 시집을 펼치니 시인의 말이 눈에 확 들어온다. 아니 마음에 확 꽃힌다. 시인이 수목장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러한가. 아니면 이 구절이 그냥 마음에 다가오는가. 시들을 읽기 전에 시인의 말을 시처럼 받아들이다니...

 

시인의 말

 

한적한 오후다

불타는 오후다

더 잃을 것이 없는 오후다

 

나는 나무 속에서 자본다

 

시인은 지금 나무 속에서 자고 있다. 그 점이 이 시인의 말을 더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하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이 시집의 시들은 거의 다 짧다. 짧아서 이게 진짜 시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마음 깊은 곳을 울리기보다는 한 번 읽었을 때 장면이 눈에 그려지면서 그냥 따스해진다. 마치 봄날의 햇살처럼, 그리고 봄날의 바람처럼.

 

1부 '두두'에 실린 시들의 제목 대다수가 '~와/과~'로 되어 있다. 하나가 단독으로 나오지 않고, 무엇인가를 대동하고 나온다. 마치 혼자서는 세상을 살 수 없다는 듯이. 세상은 이렇게 여럿이 함께 묶여 구성되어 있다는 듯이.

 

그리고 시 내용은 해설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동사로 구성되어 있다. 제목은 명사, 내용은 동사. 제목을 내용을 통해 드러내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고, 그런 보여줌을 통해 우리는 작은 소품들을 보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마치 이철수의 판화그림을 시로 만나는 느낌이랄까. 이 두두에 실린 시편들이 참 따스하다. 그냥 한 편 한 편 넘기면서 마음이 봄햇살을 받는 것처럼 따스해진다. 그냥 읽으면 된다. 오규원 자신이 말했듯이 어떤 의미를 찾으려 하지 말고, 시를 시로 읽어가면 우리는 존재와 마주하게 된다.

 

그 존재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의미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나를 그 존재들 사이에 갖다 놓는다. 그러면 된다.

 

시를 읽으며 나를 세상의 존재들과 병치시키는 행위, 그 병치를 통해, 도에 이르는, 참에 이르는 그런 경지를 꿈꾸게 된다.

 

아니, 시를 읽는 순간만큼은 그런 경지에 도달한다. 그것이 이 시집이 우리에게 주고 있는 의미다.

 

4월이 가고 있는 지금. 오규원의 이 시를 본다.

 

나무에서 생년월일이 같은 잎들이

와르르 태어나

잠시 서로 어리둥절해하네

4월 하고도 맑은 햇빛 쏟아지는 아침

- 4월과 아침 전문

 

밖을 보니 이 시처럼 생년월일이 같은 잎들이 와르르 태어나 있다. 바람에 이들이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들은 햇빛에도 그리고 달빛에도 서로 서로 빛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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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역사를 만나다 - 세계사에서 포착한 철학의 명장면
안광복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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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무슨 시대일까?

 

이 세상이 과연 철학의 시대였던 적이 있었던가? 이런 질문을 던지면, 제자백가 시대가 있지 않았냐, 서양에서도 칸트, 헤겔 등이 살았던 시대를 철학의 시대라고, 아니 그리스 시대를 철학의 시대라고 할 수 있지 않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철학의 시대가 있었음은 그 시대가 격변의 시대였음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격변의 시대에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추구하는 학문이 나타날 수밖에 없고, 이런 학문이 사람들에게 길을 인도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학문을 우리는 철학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 책의 제목처럼 철학과 역사의 만남은 당연한 일이다. 오히려 역사와 만나지 않는 철학은 철학이 아니라 공허한 상상, 환상에 불과하리라.

 

그래서 철학은 현실에 대한 응전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응전이 시대성을 획득하면 역사성까지도 획득해서 지금까지 살아남게 된다.

 

그러면 과연 지금은 무슨 시대일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철학은 무엇일까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되묻지 않는다면 철학에 대한 공부, 또는 철학 공부는 필요없게 된다.

 

오로지 자본이 판치는 사회, 그 자본으로 인해 사람들이 불행해지는 시대, 승자독식의 시대, 실명 신자유주의 시대에 우리는 어떤 철학을 지녀야 할까. 아니 우리에게 앞길을 제시해 주는 철학이 무엇일까 고민을 해야 한다.

 

그러한 고민을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는 과거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말도 있듯이, 과거를 되돌아보는 일은 현재를 파악하는 일이고 미래를 인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과거에는 역사만이 아니다. 바로 그 시대의 철학도 담겨 있다. 철학이 시대 정신이라면, 철학에는 그 시대의 모습과 그 시대를 헤쳐나가려는 노력이 온전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러한 시도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 그 순간을 함께 했던 철학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즉 철학은 역사와 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역사적인 고찰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부제도 세계사에서 포착한 철학의 명장면이니 말이다.

 

총 16개의 철학 장면이 나온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던 아테네부터.

 

사실, 이 책은 이런 아테네를 다루지 않고 스파르타를 다룬다. 지금의 개발독재와 비슷하다고, 그리고 그것은 오래가지 못한다고. 이렇게 이 책은 과거 철학을 이야기하지만 끊임없이 현재를 이야기하고 있다.

 

격동의 세계사 장면 장면에서 철학이 한 역할을, 그리고 그 철학의 의미를 쉽게 정리해서 전달해 주고 있다. 아마도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또는 책을 읽으면서 들어보았음직한 철학자들, 아리스토텔레스, 아퀴나스, 데카르트, 공자, 노자, 헤겔, 마르크스, 니체, 비트겐슈타인 등에 대해, 그들의 철학 세계에 대한 자세한 주석보다는, 그 시대의 모습, 그 시대에서 요구하였던 사상, 철학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어서 그리 어렵지 않게 철학을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그 장점이 철학자와 역사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식을 할 수 있지만, 정작 그 철학 자체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지 못하고 있다는 단점이 있다. 장점이 단점이 될 수도 있지만, 처음 철학을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단점이 오히려 장점이 될테니 철학에 처음 입문하는 사람이나, 청소년들에게 유익할 수 있다.

 

덧글

 

147쪽 로크를 이야기하고 있는 장면에서 '빈 서판' 이론을 이야기할 때, 사소하지만 중요한 용어 실수(사실은 조판 실수겠지만), 빈 서판(tabla rosa)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빈 서판(tabla rasa)라고 해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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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 이후 오퍼스 10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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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진실을 말한다?

 

과연 그런가? 아니라고 하기엔, 사진은 사물이나 사람, 풍경을 있는 그대로 재현해 낸다는 사실이 맘에 걸린다. 그런데, 조작이라면. 무언가를 인위적으로 조성하고 사진을 찍는다면? 그건 진실일까?

 

달에 착륙한 사람들이 미국의 성조기를 들고 있는 사진. 조작이다, 아니다 말이 많았었다. 왜 달에는 바람이 불지 않는데, 깃발이 펄럭일 수가 없는데, 펄럭이는 사진이니 말이다. 자신을 잘 찍기 위해서 깃발이 펴지게 하고 찍었다는 해명이 있었는데, 이 사진으로 인해, 달에 착륙한 사실이 거짓이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자아내기도 했었다.

 

브레히트의 시집 중에 사진도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의 사진과 글이 실린 시집이 있었고, 우리가 사진을 통해 왜곡된 사실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를 생각하게 하기도 했었다.

 

손택의 이 책 역시 사진을 다루고 있다. 어쩌면 타인의 고통이라는 제목보다는 사진 속에 나타난 인간의 고통이라고 하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인간이 겪는 고통스런 장면들을 담은 사진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극적인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 연출된 사진부터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실을 직접 촬영한 사진까지 다양하게 제시하고 있는데, 문제는 이 사진들에 나타난 고통의 모습에 있다.

 

사진을 보고 우리는 과연 타인의 고통을 느낄 수 있는가? 그 고통을 없애려는 노력을 할 수 있는가?

 

사진은 고통스러운 장면을 우리에게 시각적으로, 충격적으로 제공해주고 있고, 그러한 장면을 통해 우리의 사회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하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그러한 타인의 고통을 대상화하고, 우리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로 만드는 단점이 있다고 한다.

 

여기에 사진에 나오는 고통스러운 장면들을 잘 파악해보라고 한다. 사진에 등장하는 장면은 유럽인이 아닌(유럽인일 경우에는 얼굴이 드러나지 않게 교묘하게 각도를 조정하여 찍고), 자신들과는 상관없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장면이다.

 

아시아, 아프리카 등 유럽인이나 미국인이 보기에 미개하다고 여겨지는 나라들의 잔혹한 장면이 사진에 담기며, 자신들 대륙에서 일어난 잔혹한 장면들을 사진으로 남기지 않으려고 한다고 한다.

 

즉, 사진 속에 등장하는 고통스러운 장면은 타인의 고통을 해결해야 한다는 의지를, 행동으로 나아가게 하기보다는, 저 멀리에서 일어나는, 나와는 상관없는, 아직도 미개한 대륙과 미개한 집단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고 한다.

 

이런 사진을 보는 것은 자기만족에 불과하게 되고, 이런 자기 만족 속에서 타인에 대한 연민은 가질지언정, 그 연민이 이러한 고통을 해소하게 하는 행동으로는 나아가지 못하게 된다는 주장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손택은 사진 너머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사진에 드러나 있지 않은, 정말로 그 자리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우리가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을 때, 타인의 고통을 없애려는 우리의 노력이 시작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가는 나와 있지 않다. 다만, 우리에게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 관점을 가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사진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하는, 사진 그 너머의 것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너머, 진실을 향해 갈 수 있는 사고력을 갖추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 그 사회는 좀더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가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래,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지는 말자. 보이지 않는 것에서 진실이 드러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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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 이후 오퍼스 10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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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면의 문제가 타인의 고통에 눈을 돌리는 것이라면, 더 이상 '우리'라는 말을 당연시해서는 안된다.-23쪽

사진은 별 손해를 보지 않는 사람들이나 특권층이 무시하고 싶어하는 문제들을 '생생하게' 만들어주는 수단이다.-24쪽

정보 과잉의 이 시대에는 사진이야말로 뭔가를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자 그것을 간결하게 기억할 수 있는 형태이다. 사진은 인용문, 그도 아니면 격언이나 속담 같은 것이다.-44쪽

실제로 발생한 죽음을 포착해 그 죽음을 영원히 잊혀지지 않게 만드는 일은 오직 카메라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93쪽

전쟁을 가장 솔직하게 재현해 놓은 것, 어떤 재앙으로 부상을 입은 신체를 가장 솔직하게 재현해 놓은 것은 우리에게 지극히 낯선 존재들, 그래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의 모습이다. 피사체가 우리에게 더욱 더 친숙할수록, 사진작가는 훨씬 더 신중해지는 법이다.-98쪽

사진 배경이 되는 장소가 될 수 있는 한 멀리 떨어져 있고 이국적이면 이국적일수록, 우리는 죽은 자들이나 죽어가는 자들의 정면 모습을 훨씬 더 완전하게 볼 수 있다.-109쪽

곳곳에 존재하는 이런 사진들, 이처럼 끔찍하기 짝이 없는 사진들은 이 세상의 미개한 곳과 뒤떨어진 곳에서야 이런 비극이 빚어진다는 믿음을 조장할 수밖에 없다.-110쪽

대중에게 공개된 사진들 가운데 심하게 손상된 육체가 담긴 사진들은 흔히 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 찍힌 사진들이다.-112쪽

어떤 고통을 전세계적인 것으로 다룸으로써 실제보다 과장되게 만들 경우, 사람들은 자신들이 훨씬 더 많이 '보호'받아야 한다고 느끼게 된다. 게다가 사람들로 하여금 그런 고통이나 불행은 너무나 엄청날 뿐만 아니라 도저히 되돌릴 수도 없고 대단히 광범위한 까닭에 아무리 특정 지역에 개입을 하고 정치적으로 개입을 하더라도 그다지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고 느끼게 만들어 버린다. 어떤 문제가 이 정도의 규모로 인식되어 버리면, 고작 연민의 늪에 빠져 허우적댈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해당 문제를 추상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122쪽

사진의 예시 기능은 의견, 편견, 환상, 잘못된 정보 등을 그냥 놔두게 만든다.-129쪽

모든 기억은 개인적이며 재현될 수 없다. ... 우리가 집단적 기억이라고 부르는 것은 상기하기가 아니라 일종의 약정이다. 즉, 우리는 사진을 통해서 이것을 중요한 일이며 이것이야말로 어떤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알려주는 이야기이다, 라고 우리의 정신 속에 꼭꼭 챙겨두는 것이다.-131쪽

문제가 되는 것은 사진만을 기억한다는 데에 있다. 이렇듯 사진만을 통해서 기억하게 되면 다른 형태의 이해와 기억이 퇴색된다.-135쪽

문학은 우리 아닌 다른 사람들이나 우리의 문제 아닌 다른 문제들을 위해서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능력을 길러주고, 발휘하도록 해줄 수 있습니다.-208쪽

문학, 그것도 세계 문학에 다가간다는 것은 국가적 허영심, 속물 근성, 강제적인 편협성, 어리석은 교육, 불완전한 운명, 불운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난다는 것이었습니다. 문학은 광활한 현실로, 즉, 자유의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여권이었습니다. 문학은 자유였습니다.-2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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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로서의 질병 이후 오퍼스 9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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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는 한 대상을 다른 대상에 빗대는 표현법이다.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해 남들에게 알려줄 때, 그 대상을 명확히 인식시키는데 은유가 사용된다. 왜냐하면 지금 내가 설명하고자 하는 대상은 모르는 대상이고, 그 대상을 은유로 이야기하는 순간, 아는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즉 은유는 알고 있는 대상으로 모르는 대상을 설명하는 방식이 된다.

 

그렇다면 은유를 사용한다는 자체가 이미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이 새로운 것이라는 의미가 된다. 새로운 것이 아니라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고 해도 무방하리라.

 

은유로서의 질병도 마찬가지다. 질병을 질병으로 보지 않고, 이 질병을 우리가 아는 다른 대상에 빗대어 표현함으로써 질병에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질병에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이미 우리는 질병을 사실로 보지 않고, 우리의 관점으로 파악하게 된다. 우리의 관점이란 우리가 지니고 있는 편견, 선입견, 아니면 독단일 수도 있다. 이 관점에서 질병을 보는데, 단지 나만의 관점이 아니라, 우리의 관점으로 보기 시작하면 이 때 질병은 단지 몸의 이상을 넘어 다른 사회적 폭력의 대상이 된다.

 

질병에 다른 이름을 부여하는 순간, 그 질병은 또 다른 존재로 자리매김하게 되고, 질병에 걸린 사람은 사회에서 배제되기 때문이다.

 

은유로서의 질병, 은유로서의 에이즈가 1부와 2부로 묶여 있는 이 책에서 이러한 은유로서의 질병을 다루고 있다. 우리가 질병을 다른 이름으로, 즉 은유로 부르는 순간, 우리는 질병을 질병으로서 인식하지 않게 되고, 어떤 사회적 관점에서 판단하데 된다는 것.

 

이런 질병, 사회로부터 사람들을 밀어내는 은유로서의 질병으로 1부에서는 결핵과 암이 나온다. 다만 결핵은 정신적인 성숙으로, 암은 정신적인 미숙으로 나오는데, 이는 결핵은 한 때 선망의 대상으로 자리를 잡기도 하지만, 암은 개인의 무절제, 방탕으로 자리를 잡는다는 얘기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암에 대한 표현들을 곳곳에서 사용하고 있는데, 특히 군사적인 용어들을 암과 연관지어 많이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은유의 사용이 암환자들을 그냥 환자로 보지 않고, 개인의 생활을 제대로 절제하지 못한 무책임한 사람들로 몰아가며, 사회에서 배제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암은 절개되고, 없애버려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런 군사적 은유를 없앴으면 좋겠다고 손택은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에이즈에도 마찬가지로 적용이 된다.

 

암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이제는 에이즈가 자리잡고 있는데, 에이즈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이 결국은 환자들을 단순한 환자로 보지 못하게 한다는 이야기.

 

언어에 이데올로기가 담겨 있다고 하지만, 이것이 강력하게 작동하는 경우는 바로 질병에 관해서일 거라는 생각이 손택의 책을 읽으면서 들었다.

 

얼마 전 유행했던 신종플루 사태를 보아도 우리가 얼마나 많은 은유로서의 질병 관념에 빠져 있는지 알 수 있다.

 

여기서 벗어나는 길은 질병을 사실로 보는 눈을 갖는 것이다. 원인을 모를 때 두려움에 휩싸여 우리가 알고 있는 다른 대상으로 빗대어 표현하는 순간, 그 원인의 규명보다는 사회적 낙인이 먼저 찍힐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질병은 질병일 뿐이라는 사실. 질병을 하나의 사실로 보고 원인규명을 하려는 노력을 한다면 질병으로 인한 사회적 낙인을 찍을 일은 없을테고, 쓸데없는 낙인이 찍히는 일도 없을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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