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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판 스캔들 - 저작권과 해적판의 문화사
야마다 쇼지 지음, 송태욱 옮김 / 사계절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혹시 원피스란 만화를 보았는가?
제목과는 달리 원피스는 해적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는 영화다.
정부에 의해 악당으로 낙인 찍힌, 그러나 사람들에게는- 물론 이들은 정부의 고위 관료들과는 상관이 없는 일반 민중에 해당한다- 좋은 사람으로 인식되는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나름대로의 정의를 외치며, 정의를 위해서 일을 한다. 이 정의에 대해 세계정부와 주인공인 해적집단이 다르게 생각한다는 데서 문제가 발생하지만 말이다.
아직도 여행의 반밖에 안 와서, 앞으로 이 만화가 얼마나 많이 나올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만화에서도 지식의 단절 기간이 있다. 그것을 역사의 공백기라고 하는데, 해적 중에 고고학자가 이 공백기를 추적하고 있다.
아마도 세계 정부는 이 공백기의 역사를 알고 있을테고, 의도적으로 공백기의 역사를 감추고 있을테니 말이다.
여기서 지식의 독점이 문제가 된다. 누구나 알아야 할 역사를 특정한 집단이 소유하고 이를 자신들만의 것으로 만들어 버리니 말이다.
이것과 같을 수는 없지만 저작권법이라는 문제가 우리에게도 현실로 다가온다.
얼마 전에는 자신의 블로그에 음악을 올렸다가 손해배상 청구를 당한 사람도 있지 않았던가? 또 요즘은 불법 다운로드를 근절하자는 캠페인도 벌이고 있고, 저작권에 관해서는 상당히 강하게 나오고 있지 않은가.
과연 저작권이 표현의 자유와 지식의 공유를 더 촉진시키는가, 아니면 억제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논의가 예전부터 있어왔고, 앞으로도 있을텐데, 이 책은 이 저작권법에 대하여 영국에서 벌어진 첫 재판을 다루고 있다. 가장 중요한 재판이고, 이 재판에서 해적판을 출판하는 사람이 이김으로써 저작권에 대한 다툼에서 어느 정도 표현의 자유가 승리했다고 할 수 있다.
"도널드슨 대 베케트 재판"이라고 불리는 영구적 저작권을 옹호하는 서적업자와 일정한 기간만 저작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해적판 서적업자간의 긴 법리 다툼을 법학책이 아니라, 일반인이 흥미롭게 읽을 수 있게 재구성한 책이다.
이들의 법리 공방도 읽을 만하지만, 당시 영국사회의 모습 속에서 저작권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도 잘 나타나 있어, 배경과 사건의 전개를 연결해서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저작권을 계속 연장해온 미국과 일본의 예를 들면서 왜 저작권이 연장되었는지 그 이유를 지은이 자신이 정리해서 설명해 주고 있기에 우리나라의 저작권 문제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하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책이다.
이 책의 지은이는 말한다.
해적판의 효옹은 그것에 의해 시장이 형성된다, 싸기 때문에 젊은 팬이 생겨난다, 그 팬 안에서 새로운 창작이 시작된다 (323쪽)
그렇다면 더 많은 지식의 생산은 저작권을 강하게 보호하는 쪽보다는 저작권을 어느 정도 제한하는 쪽에서 더 잘 될 수 있다는 뜻으로 지은이의 말을 해석할 수 있다.
물론 당연히 자신이 창조한 작품에 대해서는 일정 정도 권한을 지녀야 하고, 그래야만 마땅하지만 영구적으로 너무도 오래, 너무도 많이 가지려는 모습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 다음에 지은이의 말대로 우리는 카피라이트(copyright)와 저작자의 권리(author's right)를 분리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저작자의 권리는 당연히 인정해야 하지만, 그것을 팔 권리인 카피라이트는 좀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도널드슨 대 베케트 재판에서도 해적판 서적업자가 승리하게 된 요인은 저작권자의 권리를 제한한다기 보다는 유통업자의 권한을 제한한다는 쪽에 사람들이 공감했기 때문이리라.
북유럽 어느 나라에서는 해적당이라는 모든 저작권을 거부하는 정당도 있다고 하고, 컴퓨터 운영체계에서 독점을 거부하고 누구나 자신이 만들고 보탤 수 있는 운영체계도 있고, 사람의 생명에 관한 의약품에서는 복제약을 만드는데 제한을 두냐 마느냐 하는 문제도 있으니, 이 저작권에 대한 대립은 우리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 번 생각해 보자.
지식을 독점하고 그 독점으로 이익을 보는 사회가 바람직한가? 지식을 공유하여 그 지식으로 다른 지식을 창조하며 이익을 공유하는 사회가 바람직한가?
이 책은 거기에 대한 답을 마련하는대 도움이 된다.
마지막에 도널드슨의 아들이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고 그가 벌어들인 돈을 어디에 썼는가 보자.
그의 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고 한다.
~ 소년,소녀들을 위한 양육원 건설과 창립에 써 주십시오.(309)
그래서 이 유언에 따라 세운 학교(양육원)가 도널드슨 칼리지(예전에는 도널드슨 하스피탈-병원이 아니라 양육원, 보육원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덧말
아쉬운 점-우리나라 저작권법에 대해 간략하게 옮긴이가 소개해줬으면 했는데.. 그게 없다.
책의 뒷부분에 일본은 저작자 사후 50년, 영화는 공표후 70년이라고 나오고, 미국의 경우는 일반저작물은 사후 70년, 법인 저작물은 공개한 날로부터 95년이라는 지은이의 설명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어떻게 되는지, 이 책을 읽고 따로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