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 2024년 여름호 - 통권 186호
녹색평론 편집부 지음 / 녹색평론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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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생태를 중심으로, 지구에서 인간이 지속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살피는 책이다. 


삶에서 꼭 지녀야 할 태도를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기도 한데, 생태위기라는 말은 많이 한다. 지금 기후만 봐도 그렇다. 인간이 예상할 수 있는 기후 변화가 아니라, 예측불능의 기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더욱 걱정이 되는데, 기후는 생태, 환경과 잘 연결이 되지만 의료는 생태, 환경과 잘 연결이 안 된다. 그러다 이번 호를 읽으면서 아, 의료도 바로 생태, 환경 문제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하긴 인간의 삶에서 생태, 환경과 관련 없는 분야가 어디 있겠는가. 정치나 경제도 생태,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니, 의료 또한 마찬가지다.


의사들이 진료거부를 하고 나서는 지금, 단순히 그들의 진료거부를 비난하기에 앞서 우리가 원하는 의료는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우리나라 의료 문제가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데, 이를 단순히 의사 수 부족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그렇다고 의사 수를 늘리는데 반대할 필요는 없다. 의사 수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의사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단순하게 수요와 공급 법칙을 생각하면 공급이 늘면 수요에 여유가 생겨 가격이 내려간다. 의사 수가 많으면 사람들이 진료를 더 쉽게 받을 수 있고, 의료비용도 줄어들 수 있다. 이건 참 단순한 발상이다. 오히려 의료 수가는 올라갈 수 있다. 자신들의 손익비용을 맞추기 위해 비급여 진료를 많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의사 수를 이대로 두자는 말은 아니다. 녹색평론에서도 언급하고 있듯이 우리나라 의사 수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 적다고 한다. 이건 객관적인 지표라고 하니 의사 수를 늘려야 하는 방향은 맞다)


그러니 지금의 의료 문제를 단지 의사 수로 국한시켜서는 안 된다. 공공의료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도 의사 수에 있지 않다.


공공의료가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의사가 사람들의 생활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야 한다. 병원이 거대한 성채처럼 사람들의 삶에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 의사가 있어야 한다. 굳이 병원이 아니어도 된다.


진료와 치료가 이루어질 수 있는 장소면 된다. 이런 장소가 있으면 치료가 중심이 아닌 예방이 중심이 된다. 즉 환경과 생태 파괴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질병들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이것이 의료가 생태, 환경과 연결이 되는 지점이다.


그러니 의료는 환경을 생각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의 삶에서 무엇이 필요하고, 어떻게 그들과 어울리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여기서 의료 개혁이 시작되어야 한다.


지금 지방은 의사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멀리 도시로 나가야 한다. 이것이 문제다. 또한 의료 활동이 주로 사적인 병원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공공의료 자체가 이미 부족하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의사 수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특정 과에 몰리는 현상, 공공의료 현장으로 가지 않는 현상 등등을 염두에 두고 의료개혁을 해야 하는데, 무엇보다도 의료 공백이 큰 지역부터 의료를 살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환경, 생태를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지역 의료를 살리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제시하는 글이 있다. 이런 활동이 이루어진다면 도시로 사람들이 몰리는 일을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고, 그렇다면 자연스레 생태,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양창모가 쓴 '농촌 돌봄의 기발한 대안 두 가지'다. 사실 기발하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아직 잘 실행이 되지 않아서지 충분히 실행 가능한 일이다. 이미 하고 있기도 하고.


하나는 '마을 진료소'를 설치하는 것이란다. 마을 진료소가 설치되면 시골 사람들이 멀리 도시까지 갈 필요가 없다. 또한 오랜 시간 방치될 일도 없다. 그런데 의료법에 문제가 있단다. 아니 의료법의 기타 사항을 잘 활용하면 될 텐데, 복지부동이라고 먼저 나서지 않으려 하는 것이 문제다.


의료법 제33조 1항에는 의료기관으로 허가되지 않은 공간, 예를 들면 마을회관 같은 곳에서는 진료행위를 하지 못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 예외 규정 3호에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공익상 필요하다고 인정하여 요청하는 경우'에는 의료기관을 개설하지 않고도 진료행위를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76쪽)


이 법조항을 살리면 마을회관에 진료소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이 공공의료가 아니고 무엇인가. 굳이 병원을 새로 짓지 않아도 된다. 있는 공간을 활용하면 되니. 그러면 환경파괴를 할 필요도 없다. 


병원이 먼 사람들에게는 가까운 곳에서 진료 받을 수 있어서 좋고, 또다른 건설로 환경을 침해하지 않아도 좋으니 일석이조인데... 참...


둘째는 '이웃복지사'란다. 그렇다. 바로 이웃들이 서로를 돕는 것이다. 이웃복지사는 함께 사는 이웃이다. 그러니 누구보다 이웃들의 사정을 잘 안다. 이들이 의사가 진료를 왔을 때 그간의 일을 이야기해주면 진료는 훨씬 수월하다. 


그런 점을 정부가 활용해야 한다. 그래야 의료개혁이라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마을 진료소를 개설하기 위해서는 공공의료 확충이 필요하다. 공공의료 확충에 필요한 의사 수도 증원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마을 사람들과 함께하겠다는 의사들이 많아져야 한다.


수익보다는 사람들의 건강을 먼저 생각하는 의사들. 그들이 많아지면 이윤보다는 환경, 생태를 먼저 생각하는 사회로 이미 진입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런 점에서도 환경, 생태와 의료는 연결이 된다.


물론 인간이 지금까지 겪어보지 않았던 많은 질병들이 환경, 생태 파괴로 인해서 발생하고 있기도 하지만, 그래서 치료보다는 예방 쪽에 중점을 두는 의료 활동이 더욱 필요하기도 하고.


의료 개혁에 관한 글들이 이번 호에는 많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뜻이기도 하겠다. 이번 호를 읽으면서 의료 개혁과 환경, 생태 문제에 대해서 함께 고민해야 함을 생각하게 됐으니, 녹색평론은 나에게 무척 의미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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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허버트 단편 걸작선 1952-1961 - 오래된 방랑하는 집 프랭크 허버트 단편 걸작선
프랭크 허버트 지음, 박미영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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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소설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관심을 가진 때가 달라진다. 어릴 적 웰즈의 소설들을 SF라고 한다면 그때부터 이런 종류의 소설에 관심이 있었다고 할 수도 있다. 물론 소설을 장르로 구분하고, 그런 장르들이 고정불변인양 이야기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하지만 르 귄의 소설이나 버틀러의 소설, 클라크나 아시모프, 하인라인 등의 소설을 읽으면서 이런 종류를 SF소설이라고 한다면 최근에 관심을 가졌다고 이야기해야 한다.


이들의 소설에 관심을 가지니 우리나라 작가 중에 김초엽이나 천선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SF소설을 공상과학소설이라고 하기보다는 우리 삶을 다른 세계로 옮겨갔다고 볼 수 있겠단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간접 경험을 하게 하는 데 이런 소설보다 더 좋은 소설이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는 적당히 거리를 두고, 감정이입을 최대한 미루면서 한 발 떨어져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프랭크 허버트라는 작가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사실 영화도 보지 않았고, [듄]이라는 소설도 읽지 않았기 때문에 알 수가 없는 작가였는데, 이 작가에 대한 평이 좋고 [듄]에 대한 평도 [반지의 제왕]에 비긴다는 말도 있으니,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는데...


이 작가가 쓴 단편 소설 모음집이다. 1952년부터 1961년 사이에 쓴 단편들을 모아놓았는데, 읽으면서도 이게 그 때에 쓰인 소설이라고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지금 쓰인 SF소설에 견주어도 부족하지 않은 소설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여러 상황이 교차되고, 우주인들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인간이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중에 짤막한 소설인 '무능자'를 보면 인간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인류가 특이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로 분화된 세상이다. 어떤 이는 이동의 능력을, 어떤 이는 불을 피우는 능력을, 어떤 이는 미래를 보는 능력을 등등 각자 자신만의 능력을 지니고 태어나고, 그 능력을 발휘하면서 사는 세상이 된다.


그렇다면 미래를 보는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의 미래가 보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미래는 이미 고정되어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야만 한다. 그것이 다다. 이것이 인간의 삶일까?


이미 정해진 대로 사는, 마치 성경의 '예정 조화설'대로 이미 신께서 예비하셨더라는 식으로 되면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 세상에서도 아무것도 아닌, 어떤 능력도 지니지 않고 태어난 무능자가 있다. 그리고 유능자들이 결합을 해도 무능자들은 계속 태어난다. 그렇게 무능자들만으로 이루어진 세상이 될 수도 있다. 


소설에서는 그런 사회를 끔찍하게 여기지만, 현실은 어떠할까? 자신의 삶이 그대로 정해져 있다면? 자신은 그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것이 행복한 삶일까?


인간은 태어나서 죽는다는 피하지 못할 운명을 지니고 있지만, 태어남에서 죽음까지의 과정에는 예측하지 못할 수많은 변수들이 있고, 그러한 선택으로 자신의 삶을, 운명을 만들어가지 않는가, 그것이 바로 인간의 삶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무능자들이 태어난다는 사실은, 기계적으로 정해져 있는 틀을 벗어나는 자율적인 인간의 삶이 탄생한다는 뜻이다. 그것이 꼭 저주가 아니라 축복일 수도 있음을. 그래서 소설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우리가 알아서 해 나가야 한다면,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 나간단 뜻이다. 고정되지 않은 미래. 그리고 참견쟁이 예지자들도 우리를 귀찮게 할 수 없다. 여자로서 그게 좀 마음에들었다. 특히 결혼 첫날밤에는.' (213쪽. '무능자' 끝부분)


짧은 이 소설이 현대에 쓰였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만큼 최근에 나오는 SF소설과 구별할 수 없다. 그래서 시대를 넘어서 SF란 미래를 선취해서 우리들의 삶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고도 할 수 있다.


아니 꼭 SF라고 하지 않아도 소설이나 다른 문학 작품들, 예술 작품들이 이런 역할을 해왔기에 인간의 역사와 함께 예술이 존재하지 않았을까 한다.


이 '무능자'말고도 '사격 중지'와 같은 소설은 압도적인 무기가 과연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무기로 평화를 얻을 수 있는가? 그것에 대한 답을 이 소설을 통해서 고민할 수가 있다. 그만큼 좋은 소설은 지금 우리에게 질문을 하게 한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바로 사고의 과정이고 성숙으로 가는 길이 된다.


이 소설집 역시 SF라는 이름에 걸맞게 외계와 접촉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다루고 있는 소설들이 많다. 그렇지만 외계를 정복의 대상이거나 침략의 주체로만 보지는 않는다. 물론 그런 소설들이 있기도 하다. 없을 수가 없다. 미지에 대한 두려움, 그것은 인간이 지닌 원초적인 본능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미지에 대한 두려움과 더불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이질적인 존재와 함께하는 모습을 꿈꾸는 것도 인간이다. 이 소설집에는 그러한 것들이 함께하고 있다.


한편 한편 음미하면서 읽을 수 있는 소설들이고, 이제 이 시기 이후의 단편집으로 넘어가야 한다. 그 소설들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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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산이 현대사 3 : 정치·경제 - 전우용의 근현대 한국 박물지 잡동산이 현대사 3
전우용 지음 / 돌베개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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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3권이다. 근대에 다양한 물건(존재)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우리들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꾸기 시작했는데, 정치, 경제와 관련된 것들을 이번 권에서 다루고 있다.


새로운 것이 들어왔을 때 생활이 어떻게 바뀌는지, 과거를 통해서 배우면 미래의 삶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가 있고, 우리가 과학기술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도 알게 된다.


다른 물건들도 언급할 필요가 있지만 이번 권에서 국기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태극기가 언제부터 우리나라를 대표했는지, 또 성조기는 어떤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일장기와 욱일기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등을 그것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과정을 살피면서 알려주고 있다.


성조기는, 미국에서 국기에 대한 경의를, 나라에 대한 경의와 등치하면서 신성시되었다는 점. 그것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태극기도(사실 태극기는 독립운동을 하면서 더욱 신성시 되었다) 신성한 존재가 되었는데... 이러한 국기에 대한 태도는 미국인이 성조기를 대하는 태도에서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다고 하니, 기호가 사람들의 정신에 영향을 끼치는 경우라 하겠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이 많지만, 일장기와 욱일기의 차이를 별로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 책을 보면서 그 차이를 확연히 알게 되었다. 일장기를 올림픽에서 흔들며 응원하는 것은 용인할 수 있지만, 욱일기를 올림픽에서 사용하면 왜 안되는지를...


일장기는 국기고, 욱일기는 군기란다. 군기는 군대의 깃발이니, 올림픽은 평화의 제전이라고 하는데 군대의 군기를 흔드는 것은 올림픽 정신에도 어긋난다. 게다가 제국주의를 대표하는 깃발이 욱일기니  이는 더욱 사용해서는 안 된다.


일본이 욱일기를 사용하는 것은 그들의 제국주의적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의지 표현이라고 할 수 있으니, 반성을 결여한 행위고, 주변 국가들에게 위협이 되는 행위라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국기들에 대한 이야기 말고도 지금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많은 물건(존재)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앞으로도 계속 사용되고 우리들의 삶을 바꿀 '스마트폰과 자율주행자동차'는 현재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다.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하는 물건들. 그리고 이런 물건들이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꿔왔나를 살펴보면 앞으로 우리 삶이 어떠해야 할지를 생각하게 된다.


3권에 이르는 방대한 내용이다. 다 기억할 수도 없다. 하지만 이러한 존재들이 우리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앞으로 더 많은 물건(존재)들이 우리 삶에 끼어들테고, 우리는 그들과 함께 우리 삶을 바꿔갈테니, 과거의 물건(존재)들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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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 빈곤과 청소년, 10년의 기록
강지나 지음 / 돌베개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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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이런 질문은 좋다. '어떻게'라는 말에는 그들이 성장하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이 포함되어 있다. 그냥 시간이 지나 나이를 먹는 것을 '어떻게'라는 부사어를 써서 표현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라는 말에는 이들이 어른이 되는 과정이 결코 간단하지 않음을 말해준다. 그냥 시간이 지나 나이를 먹어,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이 어떻게라는 말에는 '어떤'이라는 관형어도 포함되어 있다.


즉,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떤 어른이 되는가다. 물론 이 책에서는 청소년기에 만난 가난했던(과거형으로 쓰고 싶지만, 이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가난하다)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추적해서 보여주고 있다.


정말 많은 일들을 한다. 어떤 아이는 학교를 벗어나고, 어떤 아이는 공부를 열심히 하고, 대학을 간 아이든, 대학을 가지 않은 아이든 그들은 성장과정에서 가난이라는 굴레를 벗어던질 수가 없다.


이 가난이라는 굴레는 너무도 튼튼해서 여간해서는 끊어버릴 수가 없다. 질긴 가난의 질곡. 이 질곡은 대학에 들어간 아이나 들어가지 않은 아이나 똑같이 겪게 된다.


대학에 들어가도 공부에 전념할 수 없는 환경. 졸업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도약할 수 있는 받침대가 없다. 자신이 받침대를 만들어야 하는데, 기껏 받침대를 만들기 위해 토대를 마련해 놓으면, 주변의 누군가가(그 주변의 누군가가 가족인 경우가 태반이다) 파놓고 만다.


지속되는 가난의 굴레.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아이들은 청소년시기처럼 살아가려 하지 않는다. 힘든 청소년시기를 거쳐왔다. 그들은 그 시기를 극복했다고 할 수 있다. 하긴 이 책에 나올 정도면 그 시기를 극복해야만 한다.


10년 동안 인터뷰를 할 수 있다는 말은 아이들이 피하지 않았다는 말이니, 이는 10년 후에는 부자가 되어 있지는 않아도 적어도 과거와는 결별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나 토대를 마련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슬프다. 이 책에 실린 내용은. 이 아이들이 그런 토대를 마련한 것은 전적으로 그들의 힘이다. 그들의 노력이다. 주변의 누군가가 도움을 주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노력으로 토대를 마련하게 됐다.


사회적 기반이 마련되었더라면 좀더 쉽게 마련했을 그 토대를 힘들게 힘들게 마련하고, 이제 받침대를 놓으려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저자는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어떻게 바꿔나갈 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일'(278쪽)이라고 하면서, 청소년기에 방황하는 아이들을 과거의 잘못으로 단죄할 것이 아니라 '과거의 잘못이나 과오, 실수에 대해 다시 한 번 도전할 수 있는 기회, 다시 힘을 내볼 수 있는 용기를 제공하는 것이 우리 사회가 할 역할'(256쪽)이라고 한다.


그래야만 우리 사회가 좀더 좋은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여덟 명 청소년의 삶이 이 책에 실려 있다. 결코 가볍지 않은 그들의 삶. 앞으로도 가볍지 않을 그들의 삶. 하지만 그들은 고통스런 과거를 지나 현재에 이르렀다. 과거와 결별하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려고 하고 있다.


이런 청소년들이 어찌 이들 여덟 명뿐이랴. 이 책에 나온 청소년들보다 더 힘든 상황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최소한의 발판도 마련하지 못하고 구덩이에 빠져 허우적 대고 있는 사람들도 많으리라.


그런 사람들을 개인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개인 탓을 하기 전에 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아는지 먼저 살펴야 한다. 그것이 이 책이 말하는 점이기도 하리라.


가난은 결코 개인의 책임이 아니다. 또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하지 못한다는 말은 잘못되었다. 가난 구제를 못하는 나라님이라면 쫓아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사회는 충분히 가난을 쫓아낼 수 있는 사회다. 


하지만 그것은 바로 우리 손에 달려 있다. 그 점을 명심해야 한다. 가난한 아이들의 삶을 10년동안 추적해서 보여준 이 책. 가난에 대한 기존의 생각을 바꿀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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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교육은 야만이다 - 김누리 교수의 대한민국 교육혁명
김누리 지음 / 해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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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교육=능력주의=공정' 세 축이 함께 돌아가고 있다고 했다. 야만을 향해. 야만인지도 모르고, 그것만이 미래로 가는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하는 듯이, 경쟁 교육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권이 바뀌면서 더 심해졌다.


김누리 교수는 우리 교육이 이렇게 황폐화된 데에는 경쟁 교육이 주요한 축으로 작동한다고 본다. 경쟁은 곧 능력주의와 연결이 되고, 이는 승자에게는 우월감을, 패자에게는 열등감을 넘어 모멸감을 심어준다고 한다. 그러니 이러한 능력주의가 곧 공정이라는 말과 연결이 되어, 자신이 누리는 결과를 당연하게 여기게 된다. 


오찬호의 책처럼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가 되는 사회다. 이런 말을 공공연히 할 수 있는 사회가 과연 바람직한 사회라고 할 수 있는가.


중고등학교 교육만이 아니다. 지금 경쟁 교육은 초등학교부터 빠르면 유치원 단계에서부터 시작된다. 아주 어려서부터 경쟁을 내면화시키는 것이 현재 우리나라 교육의 모습이다.


그런 사회에서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을까? 성적이 좋은 아이는 좋은 아이대로, 안 좋은 아이는 안 좋은 아이대로 불행의 늪에서 허우적 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종 목표는 대학입시. 아니다. 요즘은 대학에 들어가도 눈코 뜰 새 없이 공부하고, 아르바이트 해야 한다고 하니, 대학에 들어가서도 경쟁이 몸에 밴 행동들은 고쳐지지 않는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또다른 경쟁을 해야 한다.


평생토록 경쟁을 해야 하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 행복은 저 멀리에 있다. 그리고 이렇게 행복을 쫓아버리는 역할을 학교 교육이 담당하고 있다는 씁쓸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우리 교육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너무도 당연한 말. 당연해서 상식이라고 해야 할 말들인데, 이 상식이 우리에게는 왜 유토피아로 여겨질까.


갈 수 없는 곳,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는 의미를 지닌 말 그대로의 유토피아. 다른 나라에서는 상식으로 이미 실현되고 있음에도, 우리에겐 그냥 남의 나라 일인 교육 혁명. 교육 개혁으로는 부족하다고 교육 혁명을 이루어야 한다고 김누리 교수는 주장하고 있는데...


교육 혁명의 주체는 교사-학부모-학생이어야 하는데, 그런데, 정치적 능력을 거세당해버린 교사들은 집단 행동을 할 수조차 없고, 학생들은 경쟁 교육을 내면화해서 함께하기보다는 나만 아니면 돼, 또는 나만 잘하면 돼라는 인식을 지니고, 학부모는 우리 아이들이 아니라 내 아이가 잘 돼야 한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으니...


이 나라는 소위 교육의 3주체라고 하는 집단이 모두 교육 혁명과는 거리가 먼 상태에 빠져 있으니, 김누리 교수의 이 책이 아무리 좋은 제안을 하고 있어도 '유토피아'에 불과하게 될 거라는 비관적 전망이 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희망은 절망 속에서 보이지 않는가. 이런 경쟁 교육의 야만성을 깨뜨릴 존재도 교사-학부모-학생일 수밖에 없다. 결국 교육 혁명의 희망은 이들에게서 찾아야 한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김누리 교수는 자신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교육 원리를 '능력주의에서 존엄주의로' 바꾸어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 능력주의의 문제는 많은 학자들이 이미 이야기했다. 그러니 교육은 능력주의가 아닌 존엄주의로 바뀌어야 한다. 그런 교육을 해야 한다. 교권이니 학생인권이니 하는 말이 이러한 존엄주의 교육에 녹아들어가기 때문에, 교권과 학생인권이 분리될 수가 없다. 인간의 존엄은 누구에게나 해당되기 때문이다.


다음은 교육 목표를 '인적 자원에서 민주시민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한다. 당연한 말이다. 사람을 자원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교육을 상품으로 여긴다는 말이다. 상품에는 존엄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교육이 상품이 되는 순간 학생과 학부모와 교사는 분리될 수밖에 없다. 소비자와 서비스 제공자로. 자신을 가르치는 사람, 자기 자식을 가르치는 사람을 단순히 서비스 제공자로 본다면, 이 관계에서는 교육의 '주체'라는 말을 쓸 수가 없게 된다.


대립하는 관계로 정립이 된다. 학부모-학생은 요구하고, 교사는 제공해야 한다. 소비자가 만족할 만한 서비스를. 그렇지 않으면 온갖 민원에 시달리게 된다. 환불해달라고 난리다.


이런 극단적인 경우가 최근에 있었던, 교사들은 체험학습을 가지 않기로 하고, 학부모들은 그런 교사들을 아동학대로 신고하겠다고 한 사건에서 볼 수 있다.


체험학습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모든 책임을 (그것도 민형사상 책임을) 교사에게 지우는 현실에서 교사들은 체험학습을 기피하고, 학생들이 좋아하는 체험학습을 가지 않으려 하는 교사들은 아동을 학대하는 것이라고 판단하는 학부모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 소비자와 서비스 제공자로 자리매김한 학교 현실의 모습인 것이다.


그러니 교육 목표가 절대로 '인적 자원'이어서는 안 된다. 민주시민 교육을 목표로 한다면, '민주'라는 말에는 대화, 타협, 존중 등의 개념이 들어있기에, 소비자-서비스 제공자 개념이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된다. 지금까지 교육 혁명을 가로막는 교육의 3주체를 분열시키는 장벽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과 더불어 교육 방식을 '경쟁 교육에서 연대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한다. 당연한 말이다. 민주시민 교육은 이미 연대 교육이 될 수밖에 없다. 함께하는 교육. 이것이 앞으로 살아갈 세대에게기성 세대가 줄 수 있는 선물일 수 있다. 희망은 홀로가 아니라 함께에서 더 강해질 수 있다.


  독일 교육을 이야기하면서 독일 68혁명의 걸출한 지도자였던 루디 두치케는 학생들에게 "제도를 통한 행진"이라는 말로 대학에서 선취한 유토피아의 체험을 현실에 확산시킬 것을 요구했습니다.

  68혁명을 주도했던 대학생들은 실제로 독일의 다양한 제도들 속으로 행진에 들어갔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민주주의, 가장 이상적인 사회정의, 가장 이상적인 권력비판의 체험은 이제 현실의 제도 속에서도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들이 가장 중시했던 제도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언론과 교육기관이었습니다. 이것이 인간을 변화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기관이라고 본 것이지요. (279쪽)


이렇게 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민주시민 교육이고, 연대 교육인데, 과연 형식적 민주주의를 이루어냈던 우리의 86세대들은 어떠했는지, 김누리 교수는 이를 비판적으로 보고 있으니, 이 책을 읽으면서 그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러면서 마지막으로 세 가지를 폐지하자고 한다. 그것은 대학 입학시험, 대학 서열, 대학 등록금이다. 아직까지는 우리나라 교육이 대학을 목표로 하고 있으니 대학 교육을 우선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한 듯하다.


입시제도 개혁과 대학 서열, 대학 등록금 폐지는 예전부터 나왔던 주장이다. 어쩌면 당연할 수 있는 이 주장이 아직까지도 제기되고 있는 이유는, 경쟁 교육을 통한 능력주의가 공고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주장들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강력한 정치력이 필요하다. 뚝심 있는, 교육에 대해 전망을 지니고 있는 정치가 필요하다. 결국 정치다. 제도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개혁은 공염불에 불과하기에, 정치에 참여하는 학생, 교사들이 많아질 수 있게 또다른 축에서 운동을 해야 한다고 한다.


이렇게 교육을 바꾸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없다고 한다. 의사 증원에 반대하는 의사들이 우리나라 의료에는 미래가 없다고 하던데, 그것보다 지금처럼 교육이 지속된다면 의료의 미래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미래가 없어진다. 정말 심각한 문제인데... 사람의 생명을 살린다는 의사들이 이런 교육에 대해서 생각을 해본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하고.


여담으로 우리나라 경쟁 교육이 얼마나 야만적인지 단적으로 알려주는 일이 있다. 어느 고등학교에서 중간고사를 보았는데, 문제가 쉬워서 백 점을 맞은 학생들이 많이 나왔다고 한다. 보통 그러면 학생들이 공부를 열심히 했구나 좋아해야 하는데, 백 점이 많으면 1등급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백 점을 맞아도 2등급이 되니, 시험 문제를 낸 교사에게 원망의 화살이 돌아갈 수밖에.


이것이 바로 경쟁 교육이 야만일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것 아닌가. 내가 성취한 결과가 중요하지 않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어느 위치에 있느냐가 중요하다. 그러니 이런 사회에서 어떻게 행복할 수가 있겠는가.


김누리 교수는 이러한 교육을 비판하면서, 자신이 제시한 것들을 실천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교육 효과는 '불행감에서 행복감으로' 바뀔 수 있다고. 그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교육의 모습 아닌가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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