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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 - 미군정기 윤박 교수 살해 사건에 얽힌 세 명의 여성 용의자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1
한정현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6월
평점 :
'마고(麻姑) 미군정기 윤박 교수 살해 사건에 얽힌 세 명의 여성 용의자'
범인이 밝혀진 추리소설. 범인을 알려주는데, 소설에서는 범인을 만들려고 한다. 왜냐? 그 존재가 범인이 되면 안 되니까. 이것은 바로 힘에 관한 이야기다.
힘있는 존재는 범죄를 저질러도 범죄인이 되면 안 된다. 범죄인은 힘이 없는 자가 되어야만 한다. 그렇게 범인을 만들어 내려 한다.
일제라는 절대권력이 물러간 다음의 일이다. 일제는 물러갔지만 또다른 절대권력이 왔다. 바로 미군정이다. 그래서 소설 제목에 '미군정기'라는 말이 들어간다. 또 제목을 계속 살피자. 진범이 왜 밝혀지면 안 되는지를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으니까.
'윤박 교수 살해 사건'이라는 말이 나온다. 살해당한 사람이 교수다. 윤박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는데, 실제 이름이라기보다는 박사를 줄여서 썼다고 볼 수도 있다. 윤씨 성을 가진 박사. 미군정 당시 박사는 어느 나라에서 학위를 따야 인정을 받을까? 당연히 미국이다. 미군정이니까.
그렇다면 어느 대학의 학위를 지니고 있어야 하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국 대학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대학은?
물러볼 것도 없이 하버드 대학이다. 그렇다. 윤박은 하버드 대학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패터슨 윤이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32쪽) 여기에 소설은 이승만과 같은 동문이라고 한다. (33쪽) 어라? 이승만은 프린스턴 대학 박사 아니었어? 찾아보니, 하버드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단다. 동문 맞네. 그렇다면 그는 미군정기에서 힘을 지닌 존재다. 자신의 말로 다른 사람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세 명의 여성 용의자' 자, 거물급 남자가 살해당했다. 미군이어선 안 된다. 그렇다면 범인은 약자에게서 나와야 한다. 미군정 시기 누가 약자인가? 우선 사상적으로는 좌익이다. 좌익을 검거하고 처벌할 때니까. 그렇다면 좌익과 내통하고 있는 여성이라면?
살해당한 사람이 남성이고, 미군정과 관련이 있다면 좌익이 사주해서 정보를 빼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윤박에게 접근하는 사람은 여성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들 중에는 좌익과 어떻게든 관련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즉, 윤박과 관련이 있고, 좌익과도 관련이 있는 여성이 범인이 되어야만 한다.
소설은 이렇게 제목에서 사건의 내용을 암시해준다. 여기에 '마고'라는 말. 여성신. 한때 인류에게 추앙받았지만 남성신들에게 밀려난 존재. 그런 존재를 제목으로 삼았다. 여성성이 패퇴하고 남성성이 우세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힘이 없어진 존재들을 의미한다. 굳이 여성으로만 국한할 필요는 없다. 여성만큼 또는 여성보다 더 약한 존재는 바로 성소수자니까.
이렇게 소설에는 여성과 성소수자가 나오고, 권력을 휘두르는 남성성을 상징하는 존재들이 나온다. 그들에 의해서 진실은 가려지고 왜곡되려 한다. 이들을 태양이라고 한다면, 그 강한 빛으로 다른 주변의 존재들을 가려버리는 역할을 하는데... 소설에서 미군정과 양준수라고 하는 형사, 그리고 이든으로 나오는 미군도 여기에 포함이 된다.
자, 범인은 밝혀졌다. 그럼에도 진실은 가려졌다. 왜 이들을 용의자로 지목했을까? 이것이 소설을 전개하는 핵심이고, 이를 중심으로 소설을 읽어야 한다.
세 명의 용의자. 셋이다. 그럼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들은? 소설을 읽으면 둘이라고 하겠지만, 셋이다. 연가성, 권운서, 그리고 송화.
소설에서 연가성이 사설 탐정으로 활약하는데, 이는 권력을 가진 자들은 힘이 없는 사람들의 사건을 조사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연가성의 이름이 '세 개의 달'이다. 세 개의 달. 달은 하나로 멈춰있지 않는다. 변한다. 변하는 모두가 다 달이다. 다른 존재들이지만 함께 하는 존재, 바로 이것이 달이다. 이런 달을 탐정 이름으로 택한 것은 선물받은 들고 다니는 회중시계에서 딴 것이겠지만, 태양과 달리 은은하게 어둠을 밝히는, 그렇다고 다른 빛을 없애는 태양이 아닌 달처럼 살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여성 용의자들도 서로가 서로를 돕는 관계가 되고 (그것이 명시적으로 드러나든 드러나지 않든), 사건을 파헤치려는 연가성, 권운서도 서로 돕는 관계가 된다. 여기에 송화라는 사람은 나중에 등장해 왜 이 인물이 빠지면 안 되는지를 알게 해준다.
사건을 해결해가면서 연가성에게서 자꾸 한정현의 다른 소설들 인물이 소환된다. 그 인물들에 대해 알고 있다면 더 이 소설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소설은 [소녀 연예인 이보나]에 실린 '우리의 소원은 과학소년'이다. 여기서도 세 명이 등장한다. 서안나, 윤경준, 수성. 이 셋의 관계는 조금은 다른 설정이지만 연가성-권운서-송화의 관계가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들에게서 '낙관하자'란 말이 나오고, 이 말은 이번 소설에서도 반복된다. 비록 현실에서는 비극으로 생을 마감할지라도 또다른 시간이 그들에게 펼쳐질 수 있음을. 그래서 그러한 시간은 당대의 시간만이 아니고, 다른 시간에 또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로 전해질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하나 더 다른 소설과 연결점을 찾으면 [나를 마릴린 먼로라고 하자]와도 연결이 된다. 복수를 하려 하지만 폭력으로 해결하지 않는 모습. 폭력은 남성성을 인정하고, 그와 같은 방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면, 한정현은 소설을 통해서 그러한 방법은 궁극적인 해결방법이 될 수 없음을 여러 작중 인물을 통해서 보여준다.
그들의 삶이 현실에서는 비극일지라도, 그 비극은 비극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들이 속했던 어둠은 달이 빛을 내어주듯이 다른 존재들에게 빛을 내어준다. 홀로가 아니라 함께. 그래서 그 빛들이 모여 어둠 속에서도 길을 찾을 수 있게 해준다.
그러니 우리도 낙관하자. 어둠 속에서도 함께 빛을 내는 존재들이 있음을. 자신만이 빛나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비추고, 서로가 서로의 빛을 더욱 빛나게 하는 존재들이 있음을.
이 소설에서 연가성과 권운서처럼, 그리고 이들에게 묵묵히 배경이 되어주는 송화처럼. 그렇게, 우리도 낙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