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가 싶더니 어느덧 여름인가 싶은 날씨다. 춘하추동(春夏秋冬) 중에서 춘추는 점점 짧아지고, 하동은 점점 길어지고 심각해지고 있으니, 사계절이 뚜렷하다는 우리나라의 날씨가 두 계절은 뚜렷하고, 나머지 두 계절은 온듯 가버리는 현상이 만들어졌나 보다.
이번호 편집자의 말 주제가 '인연'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말이 있는데, 한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우연들이 겹쳐 그러한 인연이 만들어졌을까.
사람과 사람의 관계만이 아니다. 자연과 사람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곳에 있는 만물들이 다 나하고 인연이 있어서 함께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 어느 하나도 소중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가끔 목이 잘린듯이 뎅강뎅강 잘라져 나간 나무들을 볼 때가 많다. 요즘은 두꺼운 가지 몇 만 남기고 다 잘라버려, 저 나무들에 언제 무성한 가지와 잎이 나올까 싶은 나무들도 있다.
나무들이 아니라 전봇대가 서 있는 듯한 느낌을 주게 잘라버린 나무들. 집 근처 공원 산책길에 자목련 나무가 있었다. 색깔이 특이해서 이 맘때면 예쁜 색깔을 자랑하던 자목련. 사람들이 자목련 나무 곁에서 한참을 구경하다 사진을 찍다 하곤 했었는데...
올해 그 나무가 사라졌다. 분명 자목련 꽃을 피웠어야 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다. 어, 왜 없어졌지? 자목련 나무를 봤던 자리를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없어졌다. 뿌리째 뽑아 다른 곳으로 옮겼으면 그나마 나았으련만, 그럴 수고를 했을지 의문이다. 그냥 베어버렸다면, 왜?
나무와 맺었던 인연이 다른 사람에 의해서 한 순간에 끊기고 말았다. 해마다 그 자리에서 예쁜 꽃을 피웠던 자목련이 이렇게 나와의 인연이 끊기다니...
서운하면서 화가 났는데, 이번 호에서 이와 비슷한 글을 읽으면서 이렇게 자연과의 관계를, 인연을 함부로 대하는 존재들이 많다는 것에, 그런 존재들이 대부분 정책을 만들고 실행하는 자리에 있다는 씁쓸한 현실에 마음이 상했다.
한창 화사한 봄꽃들이 제 자태를 뽐내고, 그러한 봄꽃들로 인해서 우리들 마음도 함께 환해지려는 이 때, 마음의 등불을 꺼버리는 행동들을 하다니...
전주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나 보다. 윤은성 시인의 글 '쓰지 못하는 사람'에 전주천에 있던 버드나무들을 베어버린 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버드나무는 시민사회와의 소통 절차가 필요했음에도 새벽에 불시에 잘려나간 것으로, 이 일은 전주 시민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의 공분을 산 바 있다. 홍수 피해 예방을 목적으로 베어냈다고 하지만 버드나무가 홍수 피해에 영향을 준다는 근거를 전주시는 제시하지 못했다.' (63쪽)
시에서 이런 행위를 한 이유를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그들의 행위는 자연과 시민들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고 할 수 있다.
시민사회와 소통하지도 않았다면, 자연과 교감하려는 노력은 더더욱 하지 않았으리라. 그러니 인연을 소중히 여길 수가 없지. 인연을 소중히 여긴다면, 그와 관계 있는 일을 하기 전에 여러모로 따져보았으리라.
길을 걷다가 흔히 보게 되는 다 잘린 나무들.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고 함부로 뽑힌 식물들, 그런 존재들을 더는 보지 않게 되었으면 한다. 그들도 우리와 함께 이 자리를 누리고 있는, 인연을 맺은 존재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소중하게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이렇게 이번 호를 읽으면서 자연과 사람의 인연을 생각했다. 나는 과연 나와 인연을 맺은 존재들을 소중히 여겼는지, 그 존재들에 내 마음을 주기는 했는지를...
봄이 가고 있다. [빅이슈]를 읽으면서 빅이슈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나와 인연을 맺은 많은 존재들이 있음을 생각한다. 그 존재들이 내게는 소중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