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는 희망을 노래하자'라고 하려다가, 희망보다는 행복이라는 말을 쓰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망은 아직 오지 않은 것, 그래서 현재에는 없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인데, 현재에 없는 것을 바라다가 자칫 현재에 있는 것을 놓치는 수도 있지 않을까 하기 때문이다.


  행복은 바로 지금-여기에서 내게 있는 것이다. 오지 않을 것을 기대하는 일이 행복일 수도 있다고 한다면, 그것이 아직 오지 않았을지라도 나는 그것이 오기를 기대하는 지금 행복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새해에는 행복을 노래했으면 좋겠다. 모두들... 빅이슈 새해 첫호를 읽으면서 여성 홈리스들에 관한 이야기. 그들에게 미래의 희망도 중요하지만 현재의 행복이 중요함을 생각하게 됐다.


자립하기 위해서 자격증을 따는 일. 그 일을 하면서 홈리스들도 행복을 느끼지 않을까? 빅이슈 판매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 역시 주거 독립을 위해서(많은 빅판들이) 빅판을 하고 있지만, 빅이슈 판매원 일에 대해서 행복을 느끼고 있다.


무언가를 한다는 것,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사실에서 행복을 느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청소년들도 마찬가지다. 먼 미래의 대학을 위해서 초,중,고등학교를 희생하라고 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초,중,고등학교 생활에서 행복을 느껴야 한다.


빅이슈가 그런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담아주고 있는 것 또한 ('청소년의 사치생활'이라고 하여, 오디세이 학교'를 다닌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러한 행복을 누리는 모습을 우리와 함께 공유하고 싶어서 일지도 모른다.


나의 행복이 남들의 행복으로 퍼져나가게 해야 한다. 그래서 새해에는 우리가 행복을 노래했으면 좋겠다. 행복한 마음에 노래가 마음 속에서부터 절로 나오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러한 희망과 행복, 그것은 이번호에 실린 '슬기로운 문화생활'이란 글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비움과 채움의 미학'인지도 모른다.


희망은 아직 비어있음을 인식하고 그 비움을 채움으로 바꾸려는 기대라면, 행복은 비움이 채움이 되어 있는 상태, 또는 비움 자체를 채우는 과정이나 기대에서 오는 또다른 채움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들의 삶이 이렇게 비움과 채움의 공존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니, [빅이슈]와 관련 있는 사람들을 비롯해, 모든 사람들이 비움과 채움이 적절히 어울리는 삶을 사는 새해였으면 한다.


적어도 내게는 [빅이슈]를 읽는 순간만은 비움이 채움으로 전환되는 행복한 시간이었으니... 누구나 이런 행복을 지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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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해 마무리하는 [빅이슈]다. 마무리 하는 연말이 극심한 추위가 찾아와 많은 사람을 힘들게 하고 있다.


  길거리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분들,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진 날씨에 더욱 힘든 생활을 할테고, 이 [빅이슈]를 판매하는 빅판들도 추운 날씨에 고생을 하겠다.


  겨울이 추워야 한다고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지. 이제는 예측할 수 없는 추위가 다가오고 있다. 여름에는 예측 불가능한 더위와 폭우가, 겨울에는 예상하지 못한 추위와 폭설이... 기후 위기, 기후 재앙, 온몸으로 겪고 있다.


이런 기후 재앙은 없는 사람들을 더 힘들게 하는데... 그나마 [빅이슈]가 온기를 전하고 있다고 해야 하나.


이번 호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호라고 보면 된다. 2023년의 키워드로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그렇다. 다사다산이라는 상투어가 연말에 늘 쓰이는데, 정말로 우리들 삶은 다사다난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많은 일들, 그런 일들이 우리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면 좋겠지만, 더욱 힘들게 만드는 일들이 많았으니...


어디 나가서 밥 한끼를 먹으려 해도 이제는 세종대왕 한 분으로는 부족한 경우가 많다. 생존에 꼭 필요한 음식값이 이렇게 올랐으니, 살기는 더욱 팍팍해졌다고 할 수 있다.


이번 호에서 <올해 내가 주목한 뉴스>라고 해서 '고물가 사회'를 꼽은 것이 이해가 된다. 이것뿐인가? 국제적으로는 일본이 '오염수 방류'를 했는데 우리 정부는 오히려 일본 오염수는 오염수가 아니라 처리수라고 하며, 오염수 문제를 제기하는 말을 '괴담'이라고 했으니, 한 해 키워드로 남길 만하다.


또한 각종 '흉기 난동'들, 여기에 더해 교사들의 죽음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죽음. 대처 미흡으로 벌어진 많은 참사들... 법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데, 그런 법을 비웃듯 많은 비법(非法), 불법 행위들이 벌어졌고, 그에 대한 대처는 참 미약하기 그지없던 그런 한 해. 그래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배려는 여전히 부족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들에서 벌인 시위들...


가장 어려운 사람이 편하게 지내는 사회는 가장 좋은 사회라는 상식을 거부하는 것인지 아직도 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니, 이 역시 한 해를 마무리하는 키워드가 될 수 있고...


역사 문제에서 홍범도 장군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시작해 (이미 많은 역사학자들은 역사적 검증이 끝났다고 말하고 있음에도) 독립운동가들의 흉상을 육군사관학교에서 철거하는 문제 역시 키워드가 될 수 있다. 단지 동상을 철거하는 것으로 끝난 줄 알았더니'독립전쟁 영웅실'도 철거되었다고 하니, 대한민국은 광복이 아니라 건국이니, 그 전의 역사는 지금의 대한민국과 관련이 없다는 말인지...


이렇게 다양한 키워드에 대한 글들을 읽으니 다시 올 한 해 역시 다사다난(多事多難)했다는 말이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사다난이라는 말보다는 많은 좋은 일들이 일어난 해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다가오는 새해는 좋은 일이 많은, 행복한 일들이 많아 사람들이 웃음을 머금고 지내는 날들이 많아지는 그런 해였으면 하는 마음이다.


[빅이슈]도 한 해 많은 일들을 했을테고, 이들이 하는 일들이 누군가에게 따뜻한 빛으로 다가갔을 거라 생각을 한다.


내년에도 [빅이슈]가 우리 사회를 조금이나마 따뜻하게 할 거라 믿으며, 한 해 [빅이슈]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게 박수와 감사한 마음을 보낸다.


덧글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종료된다는 '정문정의 말빨글빨'에 이런 구절이 있다. 정말, 이 구절 우리나라 정치인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위로는 어떻게 조언하느냐보다 얼마나 집중해서 들어주느냐에 있고요. 그것만 된다면, 뻔해도 충분히 괜찮습니다.'(55쪽)


들어주기나 하나? 귀가 둘이고 입은 하나라는 사실을 망각한 정치인, 관료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들에게는 들어줄 귀가 없는지, 그러니 위로는커녕 오히려 질책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해 끝을 이렇게 우울하게 해서는 안 된다. 들을 귀가 없다면 들을 귀를 만들어주어야겠지. 듣게끔 해야겠지. 그것이 바로 우리나라 헌법 제1조 제2항이겠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것이 지켜지는 나라, 그런 나라가 바로 민주공화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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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성'을 생각한다.


  [빅이슈]를 읽으면서 느끼는 점이 바로 이 다양성이다. 한 달에 두 번 나오는데, 그때마다 다양한 글들을 만나게 된다. 글들을 만난다는 표현을 바꾸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런 다양함이 편협함을 이겨낼 수 있게 된다. 노숙인들과 디저트가 한 책에 나오는 경우라니... 이제는 스러져 가는 도시와 화려한 장소들이 함께 나오기도 하고...


  이번 호에서는 '공정'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하는 <공정감각>이라는 책을 낸 사람들 이야기가 있다.


한 대학에서 학생들이 청소노동자들이 시위를 하자, 수업에 방해가 된다고 소송을 건 일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수업권을 방해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했다. 수업을 받아야 하는 권리를 지키는 일, 그것이 공정이었다.


하지만 청소노동자들에게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자신들의 생계를 위해 목소리를 냈는데, 그들을 고용한 업주도 아니고, 자신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한 덕분에 쾌적한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된 학생들이 수업에 방해가 된다고 고소를 했으니...


모든 학생들이 그랬을까? 아니다. 대학과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는 나에게 '에브리타임'이라는 커뮤니티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도 [빅이슈] 이번 호다.


참고로 '에브리타임'은 전국 총 400개 대학교에 서비스를 지원하는 대학교 익명 커뮤니티로 대다수 대학생이 이용한다(47쪽)고 한다.


이 커뮤니티에서 청소노동자들을 성토하는 글들이 만연했다고 하는데, 그런 상황에서 소수의 목소리를 내려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


그 중 한 사람이 말한 '타인의 삶을 상상할 수 있는 감각을 기반으로 한 공정이 진정한 공정이지 않을까 해요'(49쪽)라는 말은 마음에 새겨둘 필요가 있다.


청소노동자들을 고소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만든 고용주들을, 또는 학교 측을 문제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공감이 가고...


에브리타임이라는 말은 '늘, 항상'이라는 말이다. 다른 말로 하면 다양성이 아니라 단일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커뮤니티에 거의 비슷한 반응들이 올라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목소리를 내면서 자기 위안을 삼는 일. 여기에 균열을 내는 소수자들이 있고, 이들은 '공정'이 무엇인지 묻는다.


단일성이 아니라 다양성이 공정으로 가는 길일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이번 호에서 다른 '딩동댕 유치원'에 대한 글도 여러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빅이슈]를 읽는 독자가 유치원생들은 아닐테지만, 유치원생들과 함께 지내는 사람들일 수는 있다. 그렇다면 유치원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방송은 어떠해야 하는가? 바로 다양성을 바탕으로 해야 하지 않나.


자폐스펙트럼이 있는 아이, 휠체어를 탄 아이들이 <딩동댕 유치원>에 등장하고, 그것도 이들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음을 자연스레 보여주고 있다고 하니, 우리나라 어린이 방송도 다양성을 살리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구나 하는 점을 느끼게 해준 글이었으니... 이 글은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만난 세계, <딩동댕 유치원>'


다양성의 대표적인 예가 생태계일텐데...생태 다양성이 보존되어야 하는데, 지금 새만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어떠한지... 갯벌 '수라'에 대한 글도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한 달에 두 번 [빅이슈]를 통해 만나는 다양성. 그 다양성이 나를 단일성의 늪에, 편협의 늪에 빠지지 않게 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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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칭찬에는 이유가 필요 없지만 비난에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이 문장 하나면 된다. 우리는 얼마나 쉽게 남들을 비난하는가? 비난이라는 말이 그렇다면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는가로 바꿔도 좋겠다.


  나는 그렇지 않은데 남 때문에... 남이 하는 일은 다 문제가 있다고 쉽게 말하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없다. 그냥이다. 저들이 하면 그냥 싫다.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근거 찾을 필요 없다. 그냥, 그들이 잘못했으니까. 그들은 그들의 욕심만 채우려고 할 뿐이니까. 나를 이해하지 못하니까.


과연 그럴까? 가만히 들여다보면 남보다는 나에게 문제가 있을 때가 있다. 그러니 비난을 할 때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근거가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 횡행하는 비난들... 그 많은 비난의 화살들이 비 쏟아지듯 하고 있는데, 비난의 화살들이 난무하는 데도 이유를 대지 않는다. 근거를 찾지 않는다. 그냥 비난만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근거 없는 비난, 그러니 반성은 없다. 반성이 없으니 발전도 없다. 고쳐지지 않는다. 자신이 잘못한 것이 분명한데도 고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상대가 자신을 비난했으니, 그 비난을 반박하기에 급급하다.


비난을 반박하는데 동원되는 것이 또 비난이다. 비난들의 악순환. 그러면 개선은 없다. 치킨 게임만 할 뿐이다.


무모한, 생산적이지 않은 싸움. 그냥 자존심만 지키려는 싸움일 뿐이지 않은가. 비난이 난무하는 세상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해진다.


[빅이슈]를 읽으면 이유 없는 비난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래서 좋다. 또한 비난보다는 상대를 이해하는 마음이 앞서기 때문에, [빅이슈]는 비난보다는 칭찬이 앞선다는 생각을 한다. 비난으로 느껴지는 글들도 비난이 아니다. 비판이다. 좋은 쪽으로 바꿔가려는 비판.


가령 이번 호 기획이라고 살 수 있는 '테크 기기들'에 대한 글들은 비난이 아니라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이유가 있는, 근거가 있는 비난을 비판이라고 한다면 그렇다.


'생활을 옭아매는, 생활에 얽힌 테크 기기들'이라는 글을 보면 잘 알 수 있게 된다. 테크 기기들이 우리 삶을 많이 잠식하고 있지만, 그것들을 잘 활용한다면 우리 삶이 좀더 풍요로워질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니.


비난을 아예 안 할 수는 없을 테다. 그럴 때마다 첫문장을 떠올려보면 어떨까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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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폐청산이라는 말이 있다. 그동안 쌓였던 폐단들을 없애는 일. 하지만 적폐청산이 쉽지는 않다. 한방에 해결할 수는 없다. 현대에는 그리스 신화의 헤라클레스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헤라클레스처럼 물줄기를 바꿔 오물덩어리를 한번에 쓸어버리면 좋겠지만, 적폐들을 누군가의 어퍼컷 몸짓처럼 한 방에 날려버리면 좋겠지만, 세상 적폐들은 어퍼컷 한 방으로 나가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크게 휘두른 어퍼컷은 빗나갈 확률이 높다. 어퍼컷 한 방보다는 꾸준히 날리는 잽이 더 유효하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말처럼, 잽을 맞다보면 충격이 누적되어 결국 나중에는 쓰러지고 만다.


적폐 역시 마찬가지다. 꾸준히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치우려고 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큰 거 한방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부터 해야 한다.


우리나라 경제가 어렵다. 물가는 계속 올라가고, 월급은 제 자리이다 보니, 실질소득은 감소한 상태다. 여기에 금리는 올라 빚을 얻은 사람들은 이자에 허덕이게 된다. 


사업장에서는 노동자들이 재해로 죽어가는데도 그들이 정당하게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제도도 별로 없다. 파업권이 보장되어 있다고? 아니다. 파업을 하는 순간 노동자들은 사용자들이 제기한 온갖 손해보상 소송을 감당해야 한다.


학생들이 입시 부담으로 죽어나가도, 교사들이 각종 스트레스로 죽어나가도 교육현장은 바뀌지 않는다. 한방에 바꾸려고 하기 때문에 아예 바뀌기 않는다. 헛손질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놈의 어퍼컷. 어째서 이렇게 큰 것 한방만을 노리는지.


그렇다면 이에 대응하는 사람들은 어떠해야 할까? 역시 큰 것 한방을 노리고 있는 것 아닌가? 상태의 어퍼컷을 어퍼컷으로 응수하려고 하고 있지 않나 반성해 보아야 한다.


서로가 큰 것만을 노릴 때 정작 바뀌어야 할 것들은 바뀌지 않는다. 큰 몸짓들만 보일 뿐. 그 몸짓들에 가려 바꿀 수 있는 것들이 바뀌지 않고 그대로 지속된다. 지금 상태가 그렇다. 


어떻게 해야 어퍼컷에서 벗어날까? 이번 [빅이슈] 310호를 읽다가 배우 장서희의 인터뷰에 나온 말이 이번 호 다른 사람들이 한 말과 통한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을 바꾸는 일도 이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


"그냥 본인이 생각했을 때 이 길이다 싶고 끝까지 해낼 수 있을 것 같으면 밀어붙여서 끌을 보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언젠가는 빛을 봐요." (27쪽. 배우 장서희의 말)


적폐를 청산하는 일도 그렇다. 적폐는 반드시 청산되어야 한다. 그래서 끝까지 해내야 한다. 하지만 성과는 바로 나타나지 않는다. 눈 앞에 "자, 이렇게 이루었어!" 하고 나타나지 않는다. 이런 성과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어라, 이렇게 되었네." 하고 깨닫게 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김현 시인이 말한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해야 한다. 내가 큰 것 한방을 날리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저 혼자 뭔가를 다하려는 큰 덩어리의 마음이라기보단 여러 마음에 보탠다, 한 부분을 채운다는 조각 마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러 조각이 모여 이루는 큰마음을 생각하면 어딘가에 마음을 쓰는 일이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일처럼 여겨집니다." (51쪽, 김현 시인의 말 중에서)


이런 생활을 하는 사람은 남에게 빛이 될 수 있다.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우리는 누군가에게 빛이 된다. 또한 누군가의 빛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것이 바로 사람의 삶이다. 


"우리는 먼 곳일지라도, 심지어 모르는 누군가에게일지라도 조명을 비춰줄 수 있다. 혹 자신이 죽어 있는 상태와 같을지라도 빛을 비추는 게 가능하다. 뜻하지 않은 그 빛이 누군가에게 구명조끼가 될 수도 있다." (56쪽. 윤은성의 글에서)


[빅이슈] 이번 호에서는 지난 호에서 다룬 청년들을 다루고 있다. 청년들, 앞이 안 보인다고 절망할 필요가 없다. 그들이 지금 어떤 일을 하지 않고 있더라도, 그들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작은 조각들을 만들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이번 호에서 청년들이 일자리를 갖지 않은 것을 '실업'이 아니라 '무업'이라고 한 것이 마음에 와닿는다.


무업, 이건 일자리를 잃은 것이 아니다. 일이 없는 상태에 불과한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작은 조각들을 모으고 있는 중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 이들에게 [빅이슈] 역시 한 줄기 빛이 되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마찬가지다. 어퍼컷을 날릴 생각은 하지도 않았지만, 그런 어퍼컷을 날리려고 하는 사람을 부러워할 필요도 없다. 어퍼컷은 적중할 확률이 많이 떨어지니까.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남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하나씩 해나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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