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 편집장의 글을 읽으면서 분류라는 말을 생각했다. 편집장의 말과 더불어 이번호에 실린 글들도 이런 '분류'를 생각하게 했고.


  분류. 나누고 모은다. 간단한 말이다. 그런데 '분=나누다'는 말이 앞에 있다. 모으기 위해서는 먼저 나누어야 한다. 나누기 위해서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무엇을 기준으로 삼을까?


  그렇다. 기준, 우리는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어떤 기준을 작동시킨다. 그 기준에 부합하면 모으고, 기준에 맞지 않으면 모으지 않는다. 그래서 끼리끼리가 되는 경우가 많다. 기준에 부합하는, 비슷한 존재들이 모이게 되니까.


이 분류에 끼지 못하면 배제된다. 분류는 모으다는 말도 있지만, 배제한다는 말도 포함하고 있다. 이에 속하지 않으면 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데 이 분류가 참 무서울 때가 있다. 개인의 특성을 먼저 생각하기보다는 분류, 집단의 속성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집단 속에 개인은 무시당하기 일쑤다. 그리고 개인을 비난하는데, 이 집단을 이용하기도 한다.


또한 집단을 이용해서 비난을 하면 개인이 반박하기 힘들어진다. 편집자의 말에서 어떤 비애를 느꼈는데, 사실 확인을 하지 않고 비난하는 글이 실렸을 때, 그 비난은 집단을 향하고, 집단 속에 있는 개인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반박하는 글을 실어도 이미 버스 지나간 뒤에 손 흔들기가 된다. 사람들은 비난에는 민감하지만, 비난을 반박하는 글에는 무심하다. 대체로 그렇다. 이렇게 분류 속에 이미 자신의 사고틀을 집어넣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류 기준을 바꾸는 일, 참 힘들지만 살면서 시도해야만 하는 일이다. '당신의 첫 번째 분류 기준은 무엇인가요?'라는 글을 보면 왜 그것이 첫 번째 기준이 되었을까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대체로 사람을 판단할 때 학벌, 지역, 성별. 신체조건 등을 첫 번째 기준으로 내세우는 경우가 있다. 과연 그래야 할까? 다양한 기준을 함께 적용할 수는 없을까? 


이런 기준은 사람들 생각과 행동을 규정짓기도 한다. '당신은 말을 못하는 게 아니라 특정 상황에서 얼어붙는 거예요'라는 글에서 이 점을 알게 된다.


중년 남성 앞에서 말을 잘 못하던 사람. 왜? 자라오면서 겪은 일들이 자신의 마음 속에 남아 있었기 때문. 그것을 인식한 순간부터 서서히 중년 남성 앞에서도 말을 잘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의 기준을 바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재활용, 재사용에 관한 일들도 마찬가지다. '당신 곁의 재사용'이라는 글을 보면 우리가 삶의 기준을 바꾸었을 때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는지를 알게 해준다. '나를 이루는 것의 팔 할이 전기다'도 마찬가지다.


별다른 생각없이 쓰는 전기에 대해서 기준을 한번 바꾸어 보는 삶. 그런 삶을 상상하고 실천한다면 어떨까?


[빅이슈]에 대한 생각도 그렇다. 노숙인들 이야기, 또는 집에 관한 아니면 젊은이들 취향의 글들이 실릴 것이라고만 생각하면 이 역시 분류의 함정에 빠져 있는 셈이다. [빅이슈]는 이런 잡지야 하고 규정짓고, 그 규정 안에서 [빅이슈]를 만나려고만 하게 된다.


이번 호에서는 그런 기준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기준을 통한 분류가 모으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나누고 배제하는 역할도 하고 있음을. 그래서 때로는 기준에 대해서 생각하고, 기준을 바꾸는 삶도 살아야 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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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8-07 18: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kinye님 덕분에 빅이슈 들어가봤는데 ˝당신곁의 재사용˝ 페이지 컬러감 넘 좋네요^^
일부러 구매해 읽거나 찾아보진 않겠지만 혹시 이 잡지 접하게 되면, kinye님 언급하신 꼭지는 꼼꼼하게 읽게 될 것 같습니다

kinye91 2022-08-07 19:24   좋아요 0 | URL
이 잡지 읽는 것 즐거워요. 직접 찾아서 읽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꼭 읽기 바랄게요.
 

  이번 호를 읽으면서 편견에 대해 생각했다. 편견은 곧 가짜뉴스가 판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내 생각과 다른 생각을 들을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선택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43쪽)고 가짜 뉴스에 관한 글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선택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 그리고 이 선택을 강화하는 쪽의 글들을 읽는다. 자기 생각을 더 강하게 만든다. 그래, 그랬지 하면서.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강화하면서, 다른 생각은 아예 듣질 않으려고 한다. 듣고, 잘못을 이야기하지 않고, 또는 비판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귀를 닫고 만다. 


  닫힌 귀... 이런 닫힌 귀들이 많은 세상에선 가짜 뉴스가 판치게 된다. '가짜뉴스는 가짜라서 성공하는 게 아니다. 뉴스 소비자들의 니즈에 맞을 때만 성공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믿고 싶은 것은 그대로 받아들인다.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 혹은 세력에 대한 나쁜 뉴스는 필터링 없이 받아들인다.' (43쪽)


남 이야기 같은가? 아니다. 바로 우리 얘기다. 우리는 우리의 필요에 맞는 이야기는 잘 받아들이면서도 우리의 필요와 거리가 먼 이야기는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귀가 두 개인데, 이상하게도 한 쪽 귀만 있는 듯이 행동한다.


그러니 말과 말이 부딪혀 진실로 향하지 않고, 한쪽 말이 아예 나오지 못하게 막는다. 일방적이다. 그러니 가짜뉴스가 활동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 만들어진다.


[빅이슈]를 읽는 이유는 어쩌면 이러한 편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에서일지도 모른다. 내가 평소에 만나지 못했던 세계를 [빅이슈]를 통해서 만나게 되니까.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연예인처럼 화려한 세계에서 활동하는 사람들과 빅이슈판매원처럼 결코 화려하다고 할 수 없는 삶을 함께 만날 수 있으니까.


고급스러운 음식에 대한 소개도 만날 수 있고, 하루 한끼 먹고 살기 힘든 사람들은 노숙인들을 만날 수도 있으니까. 또 환경을 생각하며 여행을 하는 사람들도 만날 수 있고,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니까.


이렇게 [빅이슈]는 한쪽에 치우치지 않아서 좋다. 다양한 삶들을 만날 수 있고,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좋다. 이렇게 [빅이슈]와 같은 역할을 하는 매체들이 많아진다면 가짜뉴스가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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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데믹이 공식적으로 종료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밖에 나가보면 팬데믹이 끝났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바깥에서는 마스크 착용이 의무가 아니니, 이제는 거리에서도 마스크를 벗고 다니는 사람이 제법 보인다.


  스포츠 경기장에는 관중들이 들어섰고, 학교는 모두 등교수업을 한다. 또한 시위도 일어나고 있다. 


  소위 먹자골목이라는 곳에 가보면 길거리마다 사람들로 넘쳐난다. 음식을 앞에 두고 도란거리는 수많은 사람들.


그러나 과연 팬데믹이 끝났는가? 사람들이 모두 일상으로 돌아왔을까?


빅이슈 이번 호를 읽으면서 팬데믹이 끝난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여전히 팬데믹에 갇혀 있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사회에 처한 위치에 따라서 감염병 시대를 맞이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또 피해도 달라지는데... 아직 팬데믹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도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이번 호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나온다. 이런 다양성, 빅이슈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빅이슈는 사회적 약자만을 다루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사회적 강자들을 다루지도 않는다. 그냥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다루고 있을 뿐이다.


사람들을 나누지 않는다. 그들이 어떤 상황에 있건 사람이라는 공통점을 먼저 본다. 사람으로서 사람을 대한다. 쉽다고 생각하지만 쉽지 않은 일.


우리는 사람을 만날 때 사람보다는 먼저 그가 처해 있는 위치, 또는 그의 특징을 먼저 보는 경향이 있다. 사람이라는 보편성은 그 개별성 속에 숨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빅이슈는 사람이라는 보편성을 먼저 본다. 보편성 속에서 각자 지니고 있는 개별성을 이야기한다. 그러니 빅이슈에서는 차별이 있을 수 없다. 차이는 있을지언정.


차이가 없다면 다양성이 없을테니, 다양성이란 우리 삶을 풍부하게 해주는 요소 아니던가. 그러니 빅이슈에 실린 글들, 또 나오는 사람들이 지닌 다양성은 빅이슈를 만나는 사람들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


이번 호에 표지 인물로 나오는 정은혜 작가부터 서점과 인쇄소를 운영하는 사람, 전직 공무원, 아이를 키우는 워킹 맘, 성우, 또 퇴직하고 제주도를 걷기 여행한 사람, 그리고 칸 영화제를 취재한 기자까지, 참으로 다양하다.


읽을거리도 다양하고... 이런 다양성, 보편성을 잃지 않은 다양성 때문에 팬데믹 이후에 빅이슈를 판매하는 빅판들도 팬데믹이 종식되었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들이 길거리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빅이슈를 매개로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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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장이 쓴 글 제목이 '질문'이다. 질문? 좋은 말이다. 질문이 있어야 한다. 이번 호 표지 인물은 배우 김지원이다. 김지원과 인터뷰한 내용을 읽으면서 '질문'에 대해 생각했다.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김지원 배우가 빅이슈에 먼저 연락해서 표지 인물 사진을 찍었다는 점. '질문'이라는 주제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배우는 질문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대해서 끊임없이 질문하고, 대답을 찾아 그 인물을 연기해야 하는 사람.


  자신의 역할에 대해서만 질문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의 역할에 대해서도 질문해야 한다. 연기가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 또 다른 사람들과는 어떻게 호흡을 맞추어야 할지 질문하고, 연기해야 한다. 그래야만 좋은 연기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연기자만이 아니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질문을 해야 한다. 질문을 할 수 있으려면 주의 깊게 살펴여 한다. 자기 관점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질문할 수 있다.


가령 이번 호에 실린 대학에 가기를 거부한 사람의 글...그는 인터뷰한 글(한연화 씨의 대학 거부 그 후라는 작은 제목을 달고 있는 '여정은 시작됐다'는 글)에서 자신이 살고자 하는 삶은 굳이 대학을 나올 필요가 없기 때문에,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대학 거부를 고민하는 분들에게 해주실 수 있는 말이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일단 첫째, 웬만하면 하지 마세요.(웃음)"(57쪽)이라고 말한다. 이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여도 좋지만, 이 말 속에는 우리 사회의 대학, 대학 하는 행태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


내게 대학이 꼭 필요한가? 이런 질문을 하지 않고 부모가 가라고 하니까, 또 남들이 다 가니까, 그냥 가야 할 것 같아서 등등의 이유로 대학 진학을 한다면 이는 질문이 없는 삶이다.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지 못하고, 시류에 휩싸여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웬만하면 대학 거부하지 말라는 말은 질문을 먼저 하라는 말로 들어야 한다. 대학은 내게 무슨 의미인가? 대학을 가지 않고 받을 수 있는 사회적 편견에 대해서 나는 버티거나 이겨낼 수 있는가 하는 질문들... 더 많은 질문들... 그 뒤에 결정하고 행동하라는 말이 '웬만하면'이란 말에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질문을 이번 호에서 몇 가지 더 찾아보면, 장애인들이 자활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를 질문해야 하고, (강남역 김영덕 빅판의 인터뷰 글, 영화 속에 산다와 발달장애 여성들의 일자리를 만드는 프란치스꼬 빵집을 소개한 글인 빵으로 연결되는 곳을 읽으면 된다), 사회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자신을 지키면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진냥이 쓴 투자 교육이 아니라 경제 시민 교육을!이라는 글과 오후가 쓴 '가짜' 뉴스가 아닌 가짜 '뉴스'를 읽으면 좋다)도 해야 한다.


어쩌면 질문하는 법을 잊고 또 잃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그냥 주어진 대로만 살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배우가 연기를 할 때 질문을 하듯이,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역시 사회 속 배우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사회라는 무대에 서서 살아가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서 질문을 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무대에 서고 싶은지도 질문을 해야 하고.


빅이슈는 그러한 질문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질문을 하게 하는 잡지 빅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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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가자, 전시회로'라는 제목이 있다. 코로나가 우리 생활을 완전히 제약하던 때를 지나 이제는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는 때가 되었다. 실외에서는 마스크를 벗어도 된다고 했고, 학교는 모두 등교 수업을 하게 됐다.


  학생들도 체육시간에 마스크를 벗어도 되고, 교실에서는 드디어 짝도 생겼다고 한다. 짝!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눌 사람. 코로나로 학생들은 짝도 잃었고, 대화도 잃었고, 몸을 움직일 시간도 잃었었다. 게다가 함께 잠을 자는, 학창시절 가장 큰 즐거움인 수학여행도 잃고 지냈으니...


  어떤 활동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두 해가 지나고, 이제는 많은 활동들을 할 수 있는 때가 되었다. 이때를 맞이하여 빅이슈에서 다룬 주제가 바로 '전시회'다.


나하고는 다른 존재를 만날 수 있는 장소. 전시회. 다양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고, 사람들은 이제 자신이 보고 싶었던 전시회를 찾아갈 수 있게 됐다. 그런 때를 맞아 빅이슈가 소개하고 있는 전시회에 가보아도 좋을 듯 싶다.


전시회와 더불어 저번 호에 이어서 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출근 투쟁을 다루고 있다. 이번에는 그들이 주장하는 바보다는, 그들의 투쟁에 응원을 보내는 글들을 실었다. 그래. 언론에서는 중립을 표방한답시고, 비판하는 사람들과 응원하는 사람들을 함께 내보냈지만, 과연 그것이 중립일까?


중립이 어려운 처지에 있는 약자들에게는 폭력으로 다가올 수 있음을 언론은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같은 말이라도 어느 상황에 놓이느냐에 따라 엄청난 차이를 보임을 생각해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불편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생존이 걸린 문제일 수 있음을...


그것을 같은 비중으로 놓고 이야기를 하면서 이것이 중립이라고 하면 그 중립은 강자 편을 드는 일일 수밖에 없음을 생각해야 한다.


'전시회'가 '장미'라면 '지하철 타기'는 '빵'이다. 장애인들이 전시회에 가려고 해도 지하철(버스)을 제대로 타고 갈 수 없다면, 전시회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빵과 장미'로 대표되는 인간의 권리인데, 이들은 '장미'를 향유하기 위해서 '빵'이 확보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빵'조차도 확보되지 않은 현실에서 장애인들이 거리로 나와 자신들의 주장을 펼칠 수밖에 없다.


이번 호에서 전시회와 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글이 실렸는데, 묘한 등치를 이룬다는 생각이 든다. 전시회를 즐기기 위해서 우리가 함께 노력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고나 할까. 그런 의미에서 두 주제가 함께 실린 이번 호는 꽤 의미 있게 다가온다.


여기에 탱고에 관한 글이 이 두 주제를 묶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탱고를 둘이 함께 추는데, 혼자만 잘한다고 상대 생각없이 제 멋대로만 춘다면, 그 춤은 볼썽사납게 되어버리고 만다고.


'나는 팀의 목표를 서로 잘 연결되어 기분 좋은 순간을 창조하고, 더 나아가 아름다움을 완성하는 것으로 보는데, 이를 위해 리더는 상대방이 움직일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고 상대가 움직이는 것을 확인한 뒤 본인도 움직여야 한다. 분명히 리드하지 않거나, 팔로워의 움직임을 확인하거나 기다려주지 않은 채 혼자만 급히 움직인다면 역할을 정성껏 하지 않은 것이다. 그 결과는 불쾌한 순간과 보기 싫은 몸짓이다. 나는 대부분의 팔로워가 자신을 '추하게' 만드는 리더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68쪽) 


리드와 팔로워를 정치인과 시민으로 바꾸고, '추하게'를 '힘들게'로 바꾸면 우리나라 정치에도 적용이 될 수 있다.


이때 팔로워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장애인도 팔로워에 해당한다. 그들도 한 팀이다. 그들이 자신들의 춤을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출 수 있게 리드해야 한다. 리드하기 위해서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 지하철 출근 투쟁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데,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정치인들은 자기만의 속도로 춤을 추는 리더에 해당한다. 그러면 이 팀은 제대로 춤을 출 수가 없다.


중립이란 바로 이렇게 리더가 제 역할을 해서 팔로워가 민망해하지 않도록, 힘들어하지 않도록 할 수 있도록 하는 비판하는 데 있다. 그것이 바로 중립이다. 양쪽 다 문제가 있다 또는 양쪽 다 이해가 간다고 말하는 데 있지 않고.


그래서 '전시회와 장애인차별철폐연대'를 함께 다룬 이번 호는 '빵과 장미'처럼 함께 이야기될 수 있는 그런 주제였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이렇게 '빵과 장미'를 함께 생각할 수 있도록 한 [빅이슈] 275호가 중립이라고 할 수 있다. 


고맙다. 이렇게 중립을 지켜주는 잡지가 있어서... 더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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