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

 

누군가의 손에서

그와 함께 하던 행복한 시절을 뒤로

이제는 다른 사람의 손길을 기다리거나

버려져야 할 책들을, 퇴색해 가는

골목에 허름한 집이지만

품고 있는

 

한 시절 잘 견뎠다고

아직은 쓸모 있다고

세월의 흐름에 맞서

함께 버텨보자고 그렇게

켜켜히 쌓이는 먼지를

함께 맞아주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점점 뜸해지며

책은 안에서 낡아가고

자신은 밖에서 늙어가는,

그러나 늘 그 자리에 있어

주머니 가벼운 나를 반겨줄

오래된 미래, 헌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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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란 분갈이

 

두 해째

군자란이 꽃 피우지 않아

분갈이를 하다 보니

뿌리가 엮이고 얽혀

서로를 감싸고 뭉쳐

제 살찌우기에 바빠

도무지 영양분을 꽃으로

보낼 수 없게 되었다.

꽃도 피우지 못하는 것들이

제자리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 쓰며

잎과 뿌리만 존재한다는 듯이

서로가 서로를 지탱해 주고

흙이 주는 영양을 저희들끼리

생산 없는 소비만 하고 있었다.

이 얽힘을 풀지 않으면

웃자란 뿌리를 잘라내지 않으면

앞으로도 꽃을 보지 못하리라.

서로 얽혀 있는 군자란을

떼어내고 뿌리를 잘라내고

다시 심어 내년을 기약하는

분갈이를 하면서

세상도 이렇게

한 번씩은 갈이를 했으면

난마처럼 얽혀 있는 뿌리들을

잘라내었으면

꽃 피우지도 못하고

제 자리만 지키는 일은 없을텐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서로를 엮고 엮여 있지 않고

꽃을 피울텐데,

군자란처럼,

세상도 가끔은 갈이가 필요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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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도소를 지나며

                                                             - 학교1

 

  집을 향해 바쁜 걸음을 옮기다, 갑자기 눈 앞에 나타난 장애물, 꼼짝없이, 서 있는데, 그 앞으로, 똑 같은 머리, 똑 같은 옷을 사람들이, 곁눈질도 하지 않고, 빳빳하게 고갤 쳐들고, 똑 같은 걸음으로, 똑 같은 거리를 두고, 다른 것이라곤 가슴에 달려 있는 번호표 하나만을 지닌 채, 교도소를 향해 가고 있다.

 

  하나, 하나, 하나,

 

  삼각대 뒤에서, 남 일 바라보듯 보다, 철조망이 있는 높은 담장을 쳐다 보다, 문득 뒤돌아 보니, 방금 내가 지나온 곳, 걸음도 빨리 하여 지나온 학교, 담이 보인다. 거기서 거리낌 없이 놀고 있는 아이들. 교복 입고 있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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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노가 도미노에게


새로운 세상을 꿈꾸나

굳건히 서서는 만들 수 없고,

쓰러져야만 새 세상을 만들 때,

함께 가자, 너무 가까이도

멀리도 있지 말고 너와 나

기꺼이 쓰러져 함께 쓰러져

쓰러지는 몸들을 붙고 붙여

새로운 세상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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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서로를 믿을 때 세상은 변하고


믿음이 있어야 해.


세상을 바꾸려

여린 몸으로

오랫동안 오다보면

이리저리

흩날리기도 하고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대지에

온몸을 떨고

두려움에

한 방울 눈물로

변하고도 싶겠지만


믿어야 해.


함께 온 것들,

뒤에 온 것들이

참고 기다려준

앞서 온 것들과

하나 될 때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는 것을,

여린 것들도

함께 모이면

새 세상을

만든다는 것을.


믿음이 있어야 해,

새 세상을 위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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