놋그릇을 닦으며


풍물시장 놋그릇

무관심에 멍이 들어

푸르고 검은 딱지들로

제 몸을 덕지덕지 감싸고 있었다

수세미로 

박박 쓱쓱

닦고 닦으니

황금빛이 난다

관심 갖고 사랑 주면

이렇게 빛날 수 있는 것이

한 번 쓰고 또다시 방치하면

푸른 멍이

놋그릇 곳곳에 생기고

또 닦으면 황금빛으로

반짝이고

한번만으로

황금빛이 유지되지 않고

계속 닦아야만

관심을 주어야만

황금빛을 띤다고

조금 힘들다고

귀찮다고 내버려두면

금세 빛이 바래는

놋그릇


우리네 삶이 바로

이 놋그릇과 같지 않을까

힘들게 놋그릇을 닦는데

문득 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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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8 09: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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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8 13: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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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없는 동물


집 화분에 감자를 심었다

비록 작은 화분이지만

흙과 물이 있으니

감자가 열릴 것이라

감자 씨눈에서

시간이 지나 줄기가 올라와

감자가 열었으려니

아, 구슬만큼 작은

감자 세 알


이르쿠츠크와 몽고 여행을 하는데

차창 밖으로 자유롭게 노니는

말, 소, 양, 염소가 보인다

이들에게 경계는 없다

우리가 없다

자유롭게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는 동물들


순간 

떠오른

반도라면서 섬이 되어버린

곳에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보이지 않는 우리에 갇혀 사는

우리들

화분 속

감자 세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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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싸움이라니

   - 톨스토이를 빌려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아무리 욕심내어도 제가 나중에 지닐 땅은

결국 단 한 평에 불과할 테고

그나마도 저는 알지도 못할 것을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자신의 것인 양

자신의 것이 아니면 안 되는 양

죽을 둥 말 둥 그 땅에 집착하는 민족들.

다시금 질문을 하게 한다


민족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톨스토이가 쓴 소설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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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8 18: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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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9 09: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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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높은 계단


전세버스를 타는데

왜 이리 발판이 높은지

도저히 힘 없는 내 다리로는

오르지 못해

양 팔에 힘을 주고

끙 오를 수밖에 없다

짧은 다리를 원망하랴

편하게 가기 위한 길이

쉽지 않음을 생각하랴


절에 갔더니

계단들이 왜 이리 높은지

스님들은 모두 다리가 길었는지

스님들 다리는 모두 이렇게 튼튼했는지

편하게 오르내릴 수가 없다

부처를 만나는 길이

해탈에 이르는 길이

이리도 높을 줄이야



 

편한 세상살이든

해탈이든

어려움 없인 안 된다는 듯이

그렇게 

버스 발판, 절 계단들이

높게 높게

버티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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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었던 시간

 


 

이제는 멈춘

 

능내역에서

 

한 잔의 막걸리를 마시다

 

문득 왜 능내지

 

능 안이라니, 이런,

 

하며 양수역까지 걸어가

 

전철을 타고 오는 길

 

서빙고

 

얼음역에 도달하기 전

 

차가 얼어붙었다

 

사고가 났다고

 

60년을 살았던 시간이 얼며

 

수많은 사람들의 시간을 얼려

 

전철 안에서

 

기다리던 시간

 

남은 시간을 다른 사람

 

시간으로 가려 하는가

 

얼음역에서 능 안으로 가려 하는가

 

내 시간을 능 안에서부터 얼리려 하지 말라고

 

누군가가

 

대신 자신의 시간을 얼려버렸던가

 

꽁꽁 언

 

이제는 녹일 수 없는 시간을

 

경험하라고

 

우리들 시간도 잠시 얼려두었던가

 

언 시간이 얼마나 힘든지,

 

그 시간을 잘 녹여 쓰라고

 

그렇게 온몸으로 알려주려 했던가.

 

능내에서 서빙고역으로 오던 길

 

순간 멈췄던 시간

 

순간 얼었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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