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맑은 소리가

하나 둘 떨어진다.


푸른 잎,

굳은 땅,

그리고 메마른 가슴 위에.


촉촉히 젖는

저 하늘의 울림.


후두둑, 똑 또르.


한 줄기 시원한

바람과

물줄기가 떨어진다.


내 대지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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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만이의 삶


옛사람들은 사람을 평가할 때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고 했는데

몸도 말도 글도 판단도 고만 고만한

고만이는

옴니암니 삶을 따져보니

애면글면 살며

곰비임비 쌓으려 했으나

올망졸망 그저그런 삶에 머물러

자신은 사회에

그냥저냥 살아가고 있는데

가멸찬 삶을 사는

거만이들이 이런

고만이를 무시하나

교만하지도 거만하지도

그렇다고 그만두지도 않는

고만이의 삶이

존중받는 사회,

그런 사회가 바로

중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고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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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은


가르치는 건

배우는 것이다


눈에 띄지 않는

빛을 띠는 별들

앞에 서서

빛들을 모으고 내비쳐

보이게 만드는 것


빛들이 모이고 모여

하나로 묶여 장엄한

우주를 이루게 하는 것

저 모습 저 대로가

별이라는 걸, 우주라는 걸


배우는 것은,

가르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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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포에서

- 단종의 말


1456년 6월 22일

한양에서 몇 천 리

인적없는 이 곳에

애오라지 자연만이 벗

캄캄한 밤

흐르는 물소리는

충신들의 피눈물,

피울음 소리

넘치는 물에 내 삶터

잠기기도 했으나

한양은

저 먼 곳, 이 곳엔

없었으니.


2010년 6월 18일

홍수 대비라는

허갈의 공사판

흘러야 하는, 넘치기도

해야 하는 물을

가두기 위한

트럭들의 무정한 소리,

소나무보다 커가는 큰크리트들

물 맑고 숲 푸른

내 집

잠기지 말라고 만드는

회색 물터들

과거와 현재, 자연과 인공의

어정쩡한 조합

자연에 있는데

인공이 보이는 기분

이 곳에 있어도

눈 앞엔 한양이 펼쳐지니

4대강,

영월 저류지 공사

날 두 번 울리는

저 회색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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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지 않을 편지

-길


  길이 사람들을 이어주고 있단 말을 보고 혈관을 떠올렸습니다. 목숨을 이어주고 있는. 그러다 ‘들’이란 말에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들’이란 여럿이고, 둘만이 아닌 불특정 다수를 의미하기에 함께 걸었던 길이 당신과 나만의 길이 아니라는 것, 당신 발자욱 위에 얹혀진 수많은 발자국들에 당신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는 것, 하여 사람들을 이어주고 있다는 것이 당신이 떠나가고 내가 떠나올 수 있고 그 사이에 섬을 만들어 우리만이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길을 걸으며 함께 걷던 당신을 떠올립니다. 사람들이 지나간 그 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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