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와 함께 빵을 에프 그래픽 컬렉션
톰 골드 지음, 전하림 옮김 / F(에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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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카프카와 함께 빵을]이라는 제목을 붙이지 않아도 되는 책이다. 그런데도 카프카라는 이름을 빌린 것은 이 책에 나오는 한 카툰의 제목이기도 하겠지만, 우리가 흔히 상식이라고 하는 것을 뒤집는 발상이 카툰에 많이 나오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카프카, 체코 말로 검은 까마귀라고도 한다는데, 이상의 오감도를 보면 도무지 논리로는 해결되지 않는 모습을 시로 표현했듯이, 카프카의 작품 역시 단순한 논리로는 해석이 되지 않는다. 그야말로 난해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난해하다고 하는 것은 카프카 작품이 뚜렷한 결말을 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한데, 그것은 그가 작품에 집착이 강해서 완성한 작품이 몇 안 된다는 것에 기인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카프카와 함께 빵을] 이라는 제목은 우리가 보통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것, 상식이라고 하는 것을 뒤집는다는 의미로 다가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만큼 이 작품집은 단순한 논리로 볼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비논리적이지도 않다. 한장 한장 읽다, 보다보면 재미있기도 하지만, 와, 정말 그렇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하는 카툰들도 많다.

 

재미있고, 기존의 논리를 뒤집고, 우리가 생각하고 있던 것을 카툰으로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어서 더 좋기도 한 그런 작품.

 

이 카툰을 보라.

 

집에 혹 책장이 있다면, 그 책장을 한번 살펴보고 이 카툰을 보면, 하하 하는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말로 수많은 책을 소장하고 있는 사람들의 책장에 있는 책들은 아마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것은 조금 과장한 것이긴 하지만, 참 현실적이다.

 

이 책장과 더불어 스마트 시대라고 하는 요즘을 풍자하고 있는 카툰.

 

정말이지 스마트 시대에 바로 곁에 책을 두고도 이북 리더기를 찾는 이런 모습이 재현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야, 이게 우리 미래 모습이라면, 이렇게 종이책을 만지며 종이책의 감촉을 느끼며 활자들을 따라가면 천천히 내 손으로 책장을 넘기는 그런 여유를 이북 리더기에 넘겨주어야 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그런 세상에 독서는 어떤 의미일까? 아니 관계는 어떻게 될까를 생각하게 해준다.

 

부조리, 모순?

 

이런 카툰들이 많다. 한컷 한컷 다양한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순간, 보는 순간은 행복해진다. 카프카라는 인물을 끌어들이지 않아도, 굳이 그의 작품을 읽지 않아도 이 카툰집 자체만으로도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코로나19로 지치고, 최장 장마 기간에 물폭탄에 지치고, 다가오는 무더위에 지칠 때 이 책을 읽는다면 시원한 마음을 지니게 될 것이다.

 

이 참에 한번 꼭 읽어보길, 보기를 (이 책은 읽는다는 표현과 본다는 표현이 모두 어울리는 책이다) 권한다. 특히 책을 좋아하는 사람, 많은 책을 읽었다고 자부하는 사람은 이 카툰을 통해서 얻는 것이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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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1 1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8-21 1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8-21 1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보나 광장에서 베르니니와 만나다 - 로마가 사랑한 다섯 미술가
나윤덕 지음 / 을유문화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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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사람들은 조상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그리스 사람들도 마찬가지고. 이들은 조상 덕분에 수많은 관광객을 전세계로부터 불러 모은다. 엄청난 문화유산이다. 그리스가 고대 문화유산으로 지금도 득을 보고 있다면, 이탈리아는 르네상스 시대까지도 수많은 문화예술품들이 남아 있어서 더 많은 득을 보고 있다.

 

그것도 미술 분야에서 이탈리아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가 없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미술가들을 대보라고 하면 먼저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를 든다. 이들이 모두 이탈리아에서, 그것도 로마에서 활약한 작가들이다. 이들 말고도 더 많은 이름을 댈 수도 있지만,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카라바조, 베르니니, 보로미니 등도 빼놓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잘난 조상을 둔 덕분에 로마는 지금도 전세계인들이 한번씩은 들러보고 싶은 도시가 되어 있다. 로마뿐이 아니라 이탈리아 곳곳이 그러한 조상들로 인해 지금도 명성을 누리고 있다. 그럼에도 관광객들이 이러한 문화유산을 꼼꼼하게 보고 지나가는가 하면 아니다.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으로 휙 스쳐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훌륭한 문화유산이라도 짧은 시간에, 그것도 많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감상하게 되면 제대로 감상할 수가 없다. 그런 점을 아쉬워한 작가가 로마의 '나보나 광장'을 중심으로 다섯 명의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에 대해서 들려주고 있다.

 

많은 사진들과 그들의 일생이 흥미롭게 펼쳐져 있어서 좋다. 읽으면서 재미와 지식을 모두 얻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많은 작가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다섯 명의 작가들을 뽑아 그들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이야기해주고 있어서 더 좋다.

 

미켈란젤로로부터 시작하여 라파엘로, 그리고 카라바조, 베르니니, 보로미니를 다루고 있다. 미켈란젤로야 더 말할 것도 없이 세계적으로 너무도 알려진 사람. 예술에 대한 그의 고집,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심지어는 교황에게도 굽히지 않는 성정들에 대해 이 책은 잘 말해주고 있다.

 

여기에 미켈란젤로와 다른 성정의 라파엘로. '아테네 학당'으로도 유명한 그가 그 그림에서 자신이 아는 사람들의 얼굴과 자신도 등장시키고 있다는 것.

 

빛을 너무도 잘 살린 카라바조. 성당 건축부터 조각까지 능력을 발휘한 베르니니와 보로미니. 하지만 사이가 너무도 나빴다는 협조자에서 경쟁자로 변한 그 두 사람의 관계까지 이 책에서는 많은 것들을 알 수 있게 된다.

 

중간중간에 나오는 작품 사진들, 성당 사진들을 통해 이들이 만들어낸 예술 세계를 만날 수가 있다는 장점도 지니고 있는 책.

 

로마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가고 싶은 마음을 늘 지니고 있었는데, 이렇게라도 그 마음을 위로해주고 있는 책이다. 아마도 로마에 가게 된다면 가기 전에 꼭 다시 읽고 또 지니고 가고 싶은 책이다.

 

자, 이 책에서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던 것이 왜곡되었다는 것. 시스티나 성당에 천장화를 그리는 미켈란젤로. 누워서 천장화를 그렸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디서 그런 글을 보았더라? 생각은 안 나지만. 이 책에서는 이 부분을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이 어느 것일까?

 

'흔히 추측하는 것처럼 미켈란젤로는 비계 위에 누워서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다. 그가 설계한 구름다리 형태의 비계 위로는 일하는 사람들이 서서 걸어 다닐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작업에 필요한 도구들을 늘어놓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비계 위에 올라선 미켈란젤로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팔을 위로 쭉 뻗은 자세로 천장에 그림을 그렸다.' (77-79쪽)

 

아마도 오랜 세월에 걸쳐 그림을 그리려면 누워서 그리기는 힘들었으리라. 그렇다 해도 이렇게 그림을 그리면 눈과 몸이 망가지는 것은 시간 문제일 것. 대단한 작가임에 틀림없다. 이런 글들이 이 책 곳곳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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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들은 왜 비너스를 눕혔을까? - 우리가 ‘여신’ 칭송을 멈춰야 하는 이유
이충열 지음 / 한뼘책방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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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등장하는 그림이 많다. 특히 누드화는 남자보다는 여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리고 누드화에서 여성들은 서 있기보다는 (물론 서 있는 그림도 있지만 많은 그림에서 여성들은 옷을 벗은 상태에서 누워 있다) 누워 있는 그림이 많다.

 

왜 그럴까? 여성의 몸을 객관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의 시선으로 남성의 성적인 욕망을 극대화 하는 쪽으로 몸을 이리저리 뒤틀기 때문이다. 오로지 남성의 시선에 만족감을 주기 위한 구도.

 

많은 그림에서 누워 있는 누드화가 많다. 그것도 종교가 유럽을 지배하던 시대에는 여성의 나체를 그리기 힘들었지만 성서에 나오는 인물이나(유디트, 수산나) 신화에 나오는 인물(비너스,다나에 등)의 누드화는 가능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들을 남성 작가가 표현했을 때는 남성의 시선에 알맞게 표현했다는 것, 적장을 죽이는 유디트가 지나치게 연약하고 아름답게 표현이 되어 있다든지, 하녀는 있으나마나 한 존재로 표현이 되었다는 것. 수산나 역시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그 점이 잘 느껴지지 않게 표현되어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아르테미스라는 여성 화가에서는 주류 남성 화가들과는 다른 면을 볼 수 있기에 그 그림을 예로 들어서 왜곡된 시선으로 표현된 여성들을 설명하고 있다.

 

(한 가지를 더 덧붙이면 저자는 단지 남성의 시각에서 왜곡된 여성의 몸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는 다양한 그림이나 조각을 통해 주류의 시각이 어떻게 관철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남성-백인-귀족'을 중심으로 하는 관점이 미술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음을)

 

신화에서 미의 여신이라는 비너스를 많이 그리는데, 어느 순간 누워 있는 비너스를 그리기 시작하고 그런 유형의 그림이 대세를 차지하게 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여기에는 성적 환상을 갈구하는 남성들의 시선에 부응하고자 하는 화가의 의도가 담겨 있다고 한다.

 

'성적 대상화를 위해 곡선을 강조하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균형 잡으며 서 있도록 그리는 것은 기술적으로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럴 때 문제를 쉽게 해결하는 방법이 있었으니, 바로 비너스를 눕히는 것입니다.' (112쪽)

 

바로 이것이다. 비너스가 누운 이유는, 비정상적인 몸을 그릴 수 있는 방법, 그것이 바로 눕히는 것이다. 세계 명화라고 별 생각없이 보는 그림에도 이처럼 주류 시각이 담겨 있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비판적인 관점을 지니지 않으면 그런 관점을 자신의 관점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의 뒷부분에서 저자가 만든 '충열 테스트'를 제시한다. 같은 나체 그림이라고 해도 남자의 시선에 복무하는 누드와 자연스럽게 그런 표현을 할 수밖에 없는 네이키드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충열 테스트'는 세 가지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① 필연적인 노출인가?

② 표정과 동작의 의도가 명확한가?

③ 직업, 나이, 성격, 등 개인적 특성을 알 수 있는가?

 

이 중에 아니오가 두 개 이상이면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한 '누드'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이 문제라고 하는 것이다. 필연적이지 않고 의도도 명확하지 않고 개인적 특성을 알 수 없는 그림은 남성의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목적으로 그린 그림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그림을 세계 명화라는 이름으로 어릴 적부터 보아 왔다.

 

그렇다면 이런 누드화에 상대되는 개념으로 제시된 네이키드는 무엇인가. 말 그대로 벌거벗음인데, 그것은 자연스레 옷을 입지 않은 상태라고 생각하면 된다.

 

'네이키드는 단지 옷을 입지 않은 몸의 상태입니다. 우리가 태어났을 때 옷을 입지 않은 것처럼, 옷이라는 껍데기를 걸치지 않은 상태. 어떤 꾸밈 장치도 없는, 누군가에게 어떻게 보일지가 중요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몸을 바로 네이키드라고 정의하고자 합니다. 네이키드는 숨기거나 가리거나 치장하지 않기 때문에 삶의 흔적과 현재가 드러납니다.' (157쪽)

 

우리에게 필요한 그림은 바로 이런 성을 왜곡한 누드화가 아니라, 네이키드화 아닐까 한다. 그리고 그것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적어도 알아야 대응을 할 수 있다. 모르고 왜곡한 시선과 관점을 계속 지니고 있다고 면죄부가 발행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잘못이다.

 

알아야 한다. 그래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어느 한 쪽 성이 다른 성들을 지배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특정한 성의 관점에서 다른 성들을 해석하고, 그들의 눈에 비치도록 미술 활동이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특정 성의 관점을 포함하여 주류의 사고가 우리 세상을 왜곡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이 책은 미술 작품을 통하여 말하고 있다.

 

이 책은 그러한 점을 명확히 드러낸다. 실전문제까지 제시하면서...

 

이 책을 읽기 전에 진단 테스트가 있는데 많이 알려진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그림에서 아담의 탄생이라는 부분이다. 이 그림을 제시하면서 저자는 이런 질문을 한다.

 

진단 테스트 1

 

  이 그림은 르네상스 '3대 천재' 중 하나로 불리는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그린 <천지창조> 중 일부입니다.

 

1. 그림에서 하나님의 성별과 피부색, 연령대는 어떠한가요?

2. 성경에 하나님이 백인 노년 남성으로 정의되거나 묘사된 부분이 있나요?

3. 성경에 2번과 같은 묘사가 없다면, 미켈란젤로는 왜 하나님을 백인 노년 남성으로 그렸을까요?

(14-15쪽)

 

이렇게 그림을 다른 시각에서 보도록 알려주고 있다. 읽어보면서 여러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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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아름답지 않다는 거짓말 - 페미니즘이 발견한 그림 속 진실
조이한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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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볼 때 나는 어떤 관점에서 그림을 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한 책이다. 나만의 관점이란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내 관점이라고 생각하던 것이 알고 보니 알게모르게 다른 사람들이 말하거나 또는 사회적으로 암묵적인 동의가 있는 것들을 내면화한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세계 명작이라는 작품들을 보면서, 물론 실제로 보지 못하고 책을 통해서 보지만, 그것들을 보면서도 그림 속에서 다른 것을 보지 못하고 기존에 알려진 것만 보지 않았는지, 아니면 내가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본 것은 아닌지.

 

표지 그림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는가 얼핏 보면 여성의 누드에 뱀이 나온다. 누굴까? 모르고 있었는데, 이책을 읽다보면 이 여성이 릴리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최초의 여성이라고 하는데, 주체적인 여성이라고 한다. 어떤 신화에서는 아담의 첫번째 부인인데, 아담이 주도하는 생활에 반기를 들고 자신의 삶을 살겠다고 떠난 사람이라고 한다. 그만큼 당당한 존재. 뱀은 무엇인가? 지금은 사탄의 상징이 되었지만, 태고에는 신성한 존재를 의미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그림을 보면서 우리들은 무엇을 생각하는가? 인간의 원죄를 생각하지 않나? 그만큼 뱀과 여성은 원죄와 연결짓는 일이 많았다. 성경의 영향인지도 모르겠지만, 동양에서도 뱀은 신성하기보다는 인간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존재로 많이 나오니.

 

이런 그림이 그려진다는 것이 여성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이런 그림을 그린 사람이 여성일까? 여성보다는 남성이 더 많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림에서조차도 여성을 남성을 위한 존재로 소비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렇게 이 책은 다양한 시각에서 그림을 보게 해주는데, 특히 여성의 관점에서 그림이나 조각들을 보게 만든다. 남성의 시각에서 아름답다 또는 아름답지 않다는 말이 얼마나 위험한 말인지를 책의 뒷부분에 가면 더 잘 알게 된다.

 

페미니스트들이 어떤 식으로 굴레를 벗어나려 했는지, 미술에서도 남성들의 시각에서 벗어나려 했는지를 특히 5장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

 

미술을 보는데 한 가지 시각만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다양한 시각이 필요한데, 작가가 작품을 창조했을 때도 작가에게 영향을 준 사회-문화-정치-경제적 영향을 무시할 수 없는데, 다시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에게 영향을 준 제반 요소들도 무시할 수 없다.

 

책에 나온 것 가운데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남성으로서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던 점을 반성하게 했던 장면이 있다.

 

베르니니의 작품인 '아폴론과 다프네'

 

에로스 화살의 영향이라고 아폴론은 사랑에 빠지고 다프네는 아폴론에게서 벗어나려 하고, 결국 다프네는 나무로 변했는데, 그 나뭇잎으로 관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주었다는,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사람에게 수여한다는 월계관에 얽힌 신화.

 

아폴론 처지에서야 사랑하는 사람이 나무로 변했으니 그 사랑을 간직하고자 나뭇잎으로 관을 만들겠지만, 죽어도 아폴론에게서 벗어나려 했던 다프네 처지에서는, 죽어서도 아폴론의 손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 얼마나 폭력인가? 단순히 조각의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여성에게 가해진 수많은 폭력을 생각하면서 이 조각을 볼 수도 있다는 것.

 

이렇게 서술하는 책은 남성의 폭력이 미술에서 얼마나 많이 나타났는지를, 그것도 아무렇지도 않게 명작이라는 이름을 걸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림을 보는 새로운 시각 하나를 더해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우리들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현대미술에서 전복적이라고 할 수 있는 행위예술들이 나오는 이유도 바로 이런 사회적 편견, 사회적 억압을 까발리고 뒤집기 위해서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책은 첫부분부터 심상치 않게 전개된다. 사람들에게 명작 중 명작으로 인정받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성모 마리아가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살펴보면서 여성이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렇게 하면서 고대 조각들 중에서 남성들의 조각은 나체로, 그것도 성기를 그대로 드러내 놓고 있는 상태로 만들면서도 여성들은 그렇지 못했음을 생각하라고, 그것이 우리가 지나온 역사라고 말하고 있다.

 

'페미니즘' 하면 경기나 광기를 일으키는 사람이 있다. 마치 '페미니스트'들이 자신을 잡아먹기라고 하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페미니즘은 남성을 적대시 하기만 하는 주장이 아니다. 오히려 페미니즘은 남성과 여성이 또 다른 성이 함께 서로를 인정하고 살아가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특정 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 사회, 다름이 그냥 다름인 사회, 그 다름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꿈꾸는 것, 그래서 탈코르셋이든 코르셋이든 별다른 갈등없이 선택할 수 있는, 남성도, 여성도 또다른 성도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사회를 꿈꾸는 것이다.

 

참고로 이 책에서 새로운 사실, 그렇게 표면에 보이는 것에 갇혀 있었음을 알게 해주는 글이 있었는데, 그 글은 마릴린 먼로(나는 마릴린 먼로라는 이름이 친숙한데, 이 책에서는 메릴린 먼로라고 표기한다)에 대한 것.

 

남성의 시선에 자신을 맞춘 사람으로만 기억하고 있는 나에게, 백치미의 원조로만 알고 있던 나에게 먼로가 얼마나 주체적으로 살려고 했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남성 시선에 갇힌 것이 아니라 '대본을 먼저 보고 그 역할을 할지 말지를 결정하겠다'는 요구를 관철시킨 담대한 배우였다(245-246쪽)고 한다.

 

최근에 살았던 배우에게서도 남성들이 알려고 한 것들만 많이 알려져 있었던 것이 현실이라면 이보다 더 먼 과거의 일들은 더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니 어떤 작품을 볼 때 다양한 관점을 동원할 필요가 있다는 것, 또 우리 삶에도 하나가 아니라 다양성이 있음을, 내가 알고 있는 것만이 진실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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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자화상 - 화가의 가슴에서 꺼내온 가장 내밀한 고백
박홍순 지음 / 서해문집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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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감정을 차분히 들여다 볼 시간이 별로 없다. 바쁘게 산다는 핑계로, 또는 온갖 스마트 기기들의 도움(?)으로 심심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심심할 시간이 없다는 말을 다른 말로 하면 차분하게 관조할 시간을 마련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바꿀 수 있다.

 

그냥 엄청난 속도로 시간을 보내고, 자신의 감정도 그렇게 흘려보내고 만다. 감정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중요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이성보다는 더 소홀하게 여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이성이 하던 역할을 인공지능이 많이 하게 되었다. 인공지능이 인간 지능을 넘어선 지는 오래 되었지만, 아직까지 인간이 지닌 감정에는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감정은 아직 인간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감정을 더 소중히 다뤄야 하지 않겠는가. 이 책은 화가들이 그린 자화상을 통해 감정을 들여다보게 해주고 있다. 자화상을 통해 화가들의 감정만이 아니라 우리가 느끼는 감정들에 대해 생각하게 헤주고 있다.

 

책을 시작하기 전에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감정을 깊이 있게 이해하려면 무엇보다 회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감정의 속살과 대면하고 정당한 자리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감정과의 은밀한 만남을 위한 가장 적절한 안내자는 자화상과 소설이다. 자화상은 감정을 표현하는 풍부한 표정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화가가 직접 겪은 삶의 내력까지 스며들어 있기에 친밀한 만남을 주선한다. 소설은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등장하고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생겨나는 다양한 고뇌와 갈등이 펼쳐져 넓고 깊은 감정의 수원지 역할을 한다. 자화상과 소설에는 살아 움직이는 숨결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으로 생생한 간접경험을 제공한다. (6쪽)

 

그래서 이 책에서는 자화상과 그와 관련된 소설이 또는 시가 등장한다. 우리들의 감정을 이해하는 작품들인 것이다. 자기 감정을 언어로 표현 못할 때가 많다. 언어로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감정을 차분히 들여다보지 못했다는 말이다.

 

자기 감정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대략 이렇다고만 표현하고 만 것. 또는 표현도 못하고 지나쳤던 것. 어떤 감정들이 있을까? 저자는 이 책에서 많은 감정들을 제시하고 있다.

 

분열, 기만, 연민, 절망, 욕구, 상상, 열망, 투영, 허무, 수용, 우월, 울분, 상실, 고독, 공포, 인내, 결벽, 일탈

 

이런 감정들을 표현한 자화상과 작품을 들고 있다. 이 책을 통해서 그런 감정들을 만나고, 그것들을 통해서 자신을 더 넓고 깊이 있게 알아가는 기회를 마련하면 된다. 책을 읽기 전에 어떤 화가와 또 어떤 작품(소설이든 시든)을 연결시킬 수 있는지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처음에 나오는 감정이 '분열'인데, 이 감정에 대해서 에곤 실레의 자화상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에곤 실레의 자화상에는 하나의 인물만 나오지 않는다. 둘 또는 셋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자화상인데 한 화면에 둘이나 셋이 나온다. 그 인물들이 모두 화가인 것이다. 그러니 분열일 수밖에.

 

그러나 우리를 하나로 규정할 수 있을까? 사람이 하나의 감정만 지니고 사는가? 그 사람을 단 하나의 언어로만 표현할 수 있는가. 적어도 사람에게는 둘 이상의 모습이 함께 있지 않은가. 어떨 때 저 사람이 내가 아는 사람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을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이 만나지 않나.

 

자신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지 않나. 그러므로 이런 감정의 자화상을 통해서 다양한 감정들을 만나면서, 나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감정들에 대해 생각해야 하지 않나. 에곤 실레의 자화상을 들면서 이렇게 시작한다. 그렇다면 문학작품은?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들고 있다. 내가 어릴 적에는 '지와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읽은 작품. 다양한 나를 성찰하게 하는 작품.

 

이렇게 감정과 자화상과 문학을 연결짓고 있는데, 꼭 저자의 의견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 이런 감정에 해당하는 자화상과 문학을 찾아보는 것도 좋다. 그런 찾기를 통해서 자기 감정을 더 잘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게 될 테니까 말이다. 

 

이 책에서 계속 남아 있는 자화상은 아르테미시아의 자화상이다. 여성이다. 그렇다면 어떤 감정과 연결이 될까? '울분'이다. 여성으로서 당할 수밖에 없었던 고난, 사회의 비난, 그럼에도 당당하게 살아간 사람. 유딧(또는 유디트)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을 그린 화가. 그가 겪었던 일이 아직도 진행 중이라면? 이 화가의 자화상과 어울리는 문학 작품은? 토마스 하디가 쓴 '테스'다.

 

21세기에 들어서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 자화상을 통해서 사람의 내면으로만 침잠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사회로 확산시킬 수도 있음을 이 장을 통해서 알게 된다. 자화상은 사람의 내면만이 아니라 사회 문제까지 성찰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 책은 그 점을 잘 드러내 주고 있고, 그래서 감정과 사회 문제를 함께 생각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많은 자화상들을 감상할 수 있고, 여기에 따른 문학작품까지 소개 받고 있으니 일석이조인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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