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아름답지 않다는 거짓말 - 페미니즘이 발견한 그림 속 진실
조이한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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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볼 때 나는 어떤 관점에서 그림을 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한 책이다. 나만의 관점이란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내 관점이라고 생각하던 것이 알고 보니 알게모르게 다른 사람들이 말하거나 또는 사회적으로 암묵적인 동의가 있는 것들을 내면화한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세계 명작이라는 작품들을 보면서, 물론 실제로 보지 못하고 책을 통해서 보지만, 그것들을 보면서도 그림 속에서 다른 것을 보지 못하고 기존에 알려진 것만 보지 않았는지, 아니면 내가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본 것은 아닌지.

 

표지 그림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는가 얼핏 보면 여성의 누드에 뱀이 나온다. 누굴까? 모르고 있었는데, 이책을 읽다보면 이 여성이 릴리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최초의 여성이라고 하는데, 주체적인 여성이라고 한다. 어떤 신화에서는 아담의 첫번째 부인인데, 아담이 주도하는 생활에 반기를 들고 자신의 삶을 살겠다고 떠난 사람이라고 한다. 그만큼 당당한 존재. 뱀은 무엇인가? 지금은 사탄의 상징이 되었지만, 태고에는 신성한 존재를 의미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그림을 보면서 우리들은 무엇을 생각하는가? 인간의 원죄를 생각하지 않나? 그만큼 뱀과 여성은 원죄와 연결짓는 일이 많았다. 성경의 영향인지도 모르겠지만, 동양에서도 뱀은 신성하기보다는 인간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존재로 많이 나오니.

 

이런 그림이 그려진다는 것이 여성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이런 그림을 그린 사람이 여성일까? 여성보다는 남성이 더 많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림에서조차도 여성을 남성을 위한 존재로 소비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렇게 이 책은 다양한 시각에서 그림을 보게 해주는데, 특히 여성의 관점에서 그림이나 조각들을 보게 만든다. 남성의 시각에서 아름답다 또는 아름답지 않다는 말이 얼마나 위험한 말인지를 책의 뒷부분에 가면 더 잘 알게 된다.

 

페미니스트들이 어떤 식으로 굴레를 벗어나려 했는지, 미술에서도 남성들의 시각에서 벗어나려 했는지를 특히 5장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

 

미술을 보는데 한 가지 시각만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다양한 시각이 필요한데, 작가가 작품을 창조했을 때도 작가에게 영향을 준 사회-문화-정치-경제적 영향을 무시할 수 없는데, 다시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에게 영향을 준 제반 요소들도 무시할 수 없다.

 

책에 나온 것 가운데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남성으로서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던 점을 반성하게 했던 장면이 있다.

 

베르니니의 작품인 '아폴론과 다프네'

 

에로스 화살의 영향이라고 아폴론은 사랑에 빠지고 다프네는 아폴론에게서 벗어나려 하고, 결국 다프네는 나무로 변했는데, 그 나뭇잎으로 관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주었다는,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사람에게 수여한다는 월계관에 얽힌 신화.

 

아폴론 처지에서야 사랑하는 사람이 나무로 변했으니 그 사랑을 간직하고자 나뭇잎으로 관을 만들겠지만, 죽어도 아폴론에게서 벗어나려 했던 다프네 처지에서는, 죽어서도 아폴론의 손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 얼마나 폭력인가? 단순히 조각의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여성에게 가해진 수많은 폭력을 생각하면서 이 조각을 볼 수도 있다는 것.

 

이렇게 서술하는 책은 남성의 폭력이 미술에서 얼마나 많이 나타났는지를, 그것도 아무렇지도 않게 명작이라는 이름을 걸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림을 보는 새로운 시각 하나를 더해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우리들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현대미술에서 전복적이라고 할 수 있는 행위예술들이 나오는 이유도 바로 이런 사회적 편견, 사회적 억압을 까발리고 뒤집기 위해서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책은 첫부분부터 심상치 않게 전개된다. 사람들에게 명작 중 명작으로 인정받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성모 마리아가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살펴보면서 여성이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렇게 하면서 고대 조각들 중에서 남성들의 조각은 나체로, 그것도 성기를 그대로 드러내 놓고 있는 상태로 만들면서도 여성들은 그렇지 못했음을 생각하라고, 그것이 우리가 지나온 역사라고 말하고 있다.

 

'페미니즘' 하면 경기나 광기를 일으키는 사람이 있다. 마치 '페미니스트'들이 자신을 잡아먹기라고 하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페미니즘은 남성을 적대시 하기만 하는 주장이 아니다. 오히려 페미니즘은 남성과 여성이 또 다른 성이 함께 서로를 인정하고 살아가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특정 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 사회, 다름이 그냥 다름인 사회, 그 다름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꿈꾸는 것, 그래서 탈코르셋이든 코르셋이든 별다른 갈등없이 선택할 수 있는, 남성도, 여성도 또다른 성도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사회를 꿈꾸는 것이다.

 

참고로 이 책에서 새로운 사실, 그렇게 표면에 보이는 것에 갇혀 있었음을 알게 해주는 글이 있었는데, 그 글은 마릴린 먼로(나는 마릴린 먼로라는 이름이 친숙한데, 이 책에서는 메릴린 먼로라고 표기한다)에 대한 것.

 

남성의 시선에 자신을 맞춘 사람으로만 기억하고 있는 나에게, 백치미의 원조로만 알고 있던 나에게 먼로가 얼마나 주체적으로 살려고 했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남성 시선에 갇힌 것이 아니라 '대본을 먼저 보고 그 역할을 할지 말지를 결정하겠다'는 요구를 관철시킨 담대한 배우였다(245-246쪽)고 한다.

 

최근에 살았던 배우에게서도 남성들이 알려고 한 것들만 많이 알려져 있었던 것이 현실이라면 이보다 더 먼 과거의 일들은 더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니 어떤 작품을 볼 때 다양한 관점을 동원할 필요가 있다는 것, 또 우리 삶에도 하나가 아니라 다양성이 있음을, 내가 알고 있는 것만이 진실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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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자화상 - 화가의 가슴에서 꺼내온 가장 내밀한 고백
박홍순 지음 / 서해문집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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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감정을 차분히 들여다 볼 시간이 별로 없다. 바쁘게 산다는 핑계로, 또는 온갖 스마트 기기들의 도움(?)으로 심심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심심할 시간이 없다는 말을 다른 말로 하면 차분하게 관조할 시간을 마련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바꿀 수 있다.

 

그냥 엄청난 속도로 시간을 보내고, 자신의 감정도 그렇게 흘려보내고 만다. 감정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중요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이성보다는 더 소홀하게 여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이성이 하던 역할을 인공지능이 많이 하게 되었다. 인공지능이 인간 지능을 넘어선 지는 오래 되었지만, 아직까지 인간이 지닌 감정에는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감정은 아직 인간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감정을 더 소중히 다뤄야 하지 않겠는가. 이 책은 화가들이 그린 자화상을 통해 감정을 들여다보게 해주고 있다. 자화상을 통해 화가들의 감정만이 아니라 우리가 느끼는 감정들에 대해 생각하게 헤주고 있다.

 

책을 시작하기 전에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감정을 깊이 있게 이해하려면 무엇보다 회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감정의 속살과 대면하고 정당한 자리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감정과의 은밀한 만남을 위한 가장 적절한 안내자는 자화상과 소설이다. 자화상은 감정을 표현하는 풍부한 표정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화가가 직접 겪은 삶의 내력까지 스며들어 있기에 친밀한 만남을 주선한다. 소설은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등장하고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생겨나는 다양한 고뇌와 갈등이 펼쳐져 넓고 깊은 감정의 수원지 역할을 한다. 자화상과 소설에는 살아 움직이는 숨결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으로 생생한 간접경험을 제공한다. (6쪽)

 

그래서 이 책에서는 자화상과 그와 관련된 소설이 또는 시가 등장한다. 우리들의 감정을 이해하는 작품들인 것이다. 자기 감정을 언어로 표현 못할 때가 많다. 언어로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감정을 차분히 들여다보지 못했다는 말이다.

 

자기 감정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대략 이렇다고만 표현하고 만 것. 또는 표현도 못하고 지나쳤던 것. 어떤 감정들이 있을까? 저자는 이 책에서 많은 감정들을 제시하고 있다.

 

분열, 기만, 연민, 절망, 욕구, 상상, 열망, 투영, 허무, 수용, 우월, 울분, 상실, 고독, 공포, 인내, 결벽, 일탈

 

이런 감정들을 표현한 자화상과 작품을 들고 있다. 이 책을 통해서 그런 감정들을 만나고, 그것들을 통해서 자신을 더 넓고 깊이 있게 알아가는 기회를 마련하면 된다. 책을 읽기 전에 어떤 화가와 또 어떤 작품(소설이든 시든)을 연결시킬 수 있는지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처음에 나오는 감정이 '분열'인데, 이 감정에 대해서 에곤 실레의 자화상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에곤 실레의 자화상에는 하나의 인물만 나오지 않는다. 둘 또는 셋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자화상인데 한 화면에 둘이나 셋이 나온다. 그 인물들이 모두 화가인 것이다. 그러니 분열일 수밖에.

 

그러나 우리를 하나로 규정할 수 있을까? 사람이 하나의 감정만 지니고 사는가? 그 사람을 단 하나의 언어로만 표현할 수 있는가. 적어도 사람에게는 둘 이상의 모습이 함께 있지 않은가. 어떨 때 저 사람이 내가 아는 사람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을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이 만나지 않나.

 

자신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지 않나. 그러므로 이런 감정의 자화상을 통해서 다양한 감정들을 만나면서, 나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감정들에 대해 생각해야 하지 않나. 에곤 실레의 자화상을 들면서 이렇게 시작한다. 그렇다면 문학작품은?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들고 있다. 내가 어릴 적에는 '지와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읽은 작품. 다양한 나를 성찰하게 하는 작품.

 

이렇게 감정과 자화상과 문학을 연결짓고 있는데, 꼭 저자의 의견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 이런 감정에 해당하는 자화상과 문학을 찾아보는 것도 좋다. 그런 찾기를 통해서 자기 감정을 더 잘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게 될 테니까 말이다. 

 

이 책에서 계속 남아 있는 자화상은 아르테미시아의 자화상이다. 여성이다. 그렇다면 어떤 감정과 연결이 될까? '울분'이다. 여성으로서 당할 수밖에 없었던 고난, 사회의 비난, 그럼에도 당당하게 살아간 사람. 유딧(또는 유디트)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을 그린 화가. 그가 겪었던 일이 아직도 진행 중이라면? 이 화가의 자화상과 어울리는 문학 작품은? 토마스 하디가 쓴 '테스'다.

 

21세기에 들어서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 자화상을 통해서 사람의 내면으로만 침잠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사회로 확산시킬 수도 있음을 이 장을 통해서 알게 된다. 자화상은 사람의 내면만이 아니라 사회 문제까지 성찰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 책은 그 점을 잘 드러내 주고 있고, 그래서 감정과 사회 문제를 함께 생각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많은 자화상들을 감상할 수 있고, 여기에 따른 문학작품까지 소개 받고 있으니 일석이조인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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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미술과 분단미술 - 작품으로 본 북한과 우리 안의 분단 트라우마
박계리 지음 / 아트북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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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사실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없다. 방송에서 연일 북한과 미국의 갈등을 다루고 있고, 그들이 말폭탄을 주고받고, 또 유엔 안보리에 미국이 북한 문제를 상정했다고 하는 기사를 읽고 듣지만, 북한에 대해서는 여전히 잘 모른다.

 

그만큼 우리는 한 민족이라고 하지만, 다른 나라보다도 더 심하게 떨어져 지냈다. 떨어져 지낸 정도가 아니라 서로 교류를 하면 간첩으로 몰려 처벌을 받는 사회였으니, 알고도 모른 척, 아니 아는 기회가 생겨도 알려고 하면 안 되는 나라가 바로 북한이었다.

 

남북 긴장관계가 조금 풀어져 교류가 이루어지면서 금강산 관광이 있었고, 개성 공단이 가동되기도 했지만, 그것도 한때... 지금은 둘 다 막혀 있는 상태. 여기에 남북 정상이 회담을 하고 손을 잡고 공동경비구역에 있는 선을 넘었다 왔다 갔다 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다시 예전과 비슷한 상태로 돌아간 상태.

 

아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지금의 현상을 잘 분석할 수 있는 틀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북한도 미국도, 그리고 우리나라도 모두가 잘 되기를, 일이 잘 해결되기를 바라는데, 그 접점을 찾기 위해서 지금 서로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추측을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북한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모르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생각은 학창시절에 배운 것으로 끝나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분단 트라우마 속에서 살고 있지만, 이 책에서 가끔 지적하듯이 의도적인 망각 속에서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외국에서 보면 곧 전쟁이 날 것 같은 험악한 상황인데도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아간다. 사재기가 없는 나라다. 외국인들이 신기하게 생각하는데, 우리는 절대로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믿음이 아니라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당위로 그렇게 지내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저자는 의도적 집단 망각이라는 의미의 말을 하고 있는데...

 

어쩌면 망각이 아니라 전쟁이 일어나면 안 된다는 우리들의 믿음이 그런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지도 모른다. 사재기가 일어나면 불안감에 휩싸이게 되고, 그렇게 되면 전쟁이 눈 앞으로 다가오게 된 것처럼 느끼고 실제로 그 불안은 어떤 돌발상황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우리 모두가 지니고 있기 때문에, 망각이 아니라 의연함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북한에 대한 깜깜함 속에 이 책은 북한 미술을 다루고 있다. 제목에 분단미술이라는 말이 들어갔지만, 후반부에 다루고 있는 내용은 우리나라로 탈북해온 미술가들의 작품이나 또는 외국에서 볼 수 있는 북한의 작품, 그리고 우리 분단을 다루고 있는 미술가들의 작품들이니... 제목에 분단미술이라는 말보다는 통일미술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것이 더 좋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 중에 로저 세퍼드라는 작가가 찍었다는 백두대간의 사진 중 '돌강'이라는 사진이 이 책의 방향을 잘 보여주고 있단 생각이 든다.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요." (356쪽)

 

아무리 둘러봐도 물은 보이지 않고 돌만 보이는데, 물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딱딱한 돌들이 쌓여 물길을 막고 있는 것이 분단이라면 이 분단 속에서도 물은 계속 흐르고 있다는 것, 통일에 대한 우리의 노력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이 장면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지금은 황량한 돌들만 보이는 강일지라도 그 밑에서는 물이 흐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 분단 현실 속에서 통일에 대한 발걸음은 결코 멈춰지지 않았다는 것.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것일 것이다.

 

이렇게 북한 미술을 다루고 있는 것은 분단에 대한 인식은 곧 통일에 대한 걸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이 책은 앞부분에서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학교 교육에서는 배우지 못했던 북한 미술을 다루고 있다. 다양한 작품들을 보여주고 있어서 그 자체만으로도 좋다.

 

물론 북한은 우상화 작업도, 공산주의 사상을 강조하는 작품들도 많이 창작했지만, 그것 또한 그들이 지나온 역사이니, 우리가 굳이 부정하거나 감출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예술은 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그 무엇이 있다.

 

예술의 공통점에 민족이 지니는 어떤 공통된 감정들이 작품에 나타난다고 보면 되는데, 북한 미술을 보면서 우리 미술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작품들도 많이 만나게 된다.

 

정현웅의 이 그림을 이름을 가리고 보면 어디 북한 미술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냥 우리나라 50-70년대 아이들 모습이라고 해도 믿지 않겠는가.

 

이 책이 주는 장점이 바로 이것이다. 미술을 통해서 북한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 또 단지 북한이 아니라 분단된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게 하고, 분단에서 통일로 나아갈 수 있게 디딤돌을 놓는 것이다.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이질감보다는 동질감을 더 많이 느낄 수 있을 것이고, 앞으로 교류가 더 활발히 이루어진다면 이질감들이 상당히 극복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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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문학의 만남
이가림 지음 / 월간미술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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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문학의 만남이라는 제목보다는 미술가와 문학가의 만남이라고 하는 편이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미술가 한 사람과 문학가 한 사람을 짝이어서 서로가 어떤 관계를 맺었고,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살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림과 작품의 관련성도 이야기하기 때문에 제목이 꼭 내용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우리말에 '시(詩).서(書).화(畵)'란 말이 있듯이 시와 글과 그림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예전 사람들은 이 셋을 다 할 줄 알아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선비라고 말할 수 없었으니까.

 

전체적인 인간, 융합과 통합을 이룬 전인적 인간을 추구하던 사회에서 분업이 주를 이루고 각자의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면 큰소리치며 살 수 있는 세상이 된 이후에 예술도 서로의 분야로 갈라져 교류가 별로 없어지기 시작했다.

 

그냥 자기 분야에만 전념하면 되는 풍토가 생겼다가 최근에는 예술 여러 분야들이 함께 하는 쪽으로 변해가고 있는데. 이런 사회 분위기와는 별도로 예전부터 미술과 문학은 매우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고, 서로 영향을 주고 받기도 하였다.

 

그런 점을 서양의 작가들을 통해서 알려주고 있는 것이 이 책이다. 세잔과 에밀 졸라처럼 그동안 잘 알려진 관계에 있던 사람도 있고, 자코메티와 사르트르처럼 읽으면 아, 그렇구나! 이들은 이렇게 관계를 맺었겠구나 하는 사람도 있고, 그 관계에 대해서 전혀 생각해 보지 않다가 이 책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도 있다. 내게는 대부분이 그런 관계를 처음 알게 된 사람들이라고 하겠다.

 

문학 쪽은 조금 알아도 미술 쪽은 문외한에 가깝기 때문인데, 이런 문외한에게도 잘 이해가 되게 작가들의 약력, 경향과 작품을 소개하고,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또는 한쪽이 일방적으로 영향을 받았는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특히 미술의 경우에는 작품을 보여주고, 문학의 경우에는 거기에 해당하는 구절들을 인용해 주고 있기 때문에 더 이해하기 쉽다.

 

이 책에 나온 샤르댕과 프루스트의 경우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화가의 모델을 샤르댕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하는데...이들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제목을 '하찮은 사물에의 깊은 인식과 사랑'이라고 붙였다.

 

우리가 흔히 주목하지 않고 넘어가는 사물에도 깊은 관심을 보인 화가와 작가. 그들의 관련성. 마찬가지로 '물'에 대한 성찰을 한 바슐라르와 '수련' 연작을 그린 모네를 연결지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으니...

 

단순히 지식을 쌓는다는 목적이 아니라도 글과 그림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책이고, 문학 작품을 읽으면서 미술 작품 또는 음악을 떠올릴 수도 있고, 또 우리나라 작가들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미술과 문학이 만남. 늘 이루어져 왔고, 또 계속 그 만남은 이루어질 것이다. 그 만남이 일방이든 양방향이든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예술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계속 존재할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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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 만난 전쟁사 - 승자와 패자의 운명을 가른 역사의 한 장면
이현우 지음 / 어바웃어북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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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도 싸움을 한다. 목숨을 건 싸움을 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동물들은 우열을 가리기 위한 싸움을 한다. 승자가 결정되면 패자는 승자에게 굴종하거나 다른 곳으로 떠나게 된다.

 

그런데 인간은 싸움을 하더라도 더 큰 싸움을 한다. 종족 자체를 몰살시키는, 소위 홀로코스트라고 하는 학살을 하기도 한다.

 

종 전체를 적으로 돌리고, 종을 없애기 위한 활동도 한다. 그렇게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이라고 자처하는 인간은, 자신과 같은 종인 인간을 공존할 수 없는 존재로 여기고 제거하려는 비이성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전쟁이다. 전쟁으로 인해 승자도 패자도 피해를 보게 되지만,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전쟁이 없는 시기는 너무도 짧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온갖 무기들이 개발되고, 그것이 지구를 멸망으로 이끌 정도로까지 위력이 강해진 현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런 전쟁과 가장 무관할 것 같은 예술, 그 중에 미술에서 전쟁을 만날 수 있다. 전쟁과 관련된 그림도 많아서 미술관에서 전쟁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이렇게 그림을 통해 만날 수 있는 전쟁의 여러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무기들의 발달사에서부터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옷 (코르셋, 카디건), 먹을거리 (초콜릿) 들도 전쟁과 관련이 있음을 그림(미술)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전쟁이 꼭 역사책으로만 기록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림 속에서도 전쟁이 기록으로 남는다. 그런 그림을 보면서 우리는 전쟁에 대한 여러 생각들을 하게 되는 것이다.

 

적어도 전쟁이 인류에게서 사라지는 것을 꿈꾸지만, 그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미술을 통해서 생각하게 된다.

 

미술의 역사만큼이나 미술 속에 전쟁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이런 미술 작품들을 통해 우리는 미래를, 전쟁이 없는 미래를 만들어 나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미술 속에 나타나는 전쟁 영웅들의 모습에 감탄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으로 인해 고통 받는 많은 사람들이 있음을 발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발견, 너무도 생생하게 다가오는 전쟁의 참상, 또는 전쟁의 역사를 미술을 통해서 발견하고,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할 일, 그것이 바로 우리 몫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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