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글쓰기 레시피 - 맛있게 쓸 수 있는 미술 글쓰기 노하우
정민영 지음 / 아트북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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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잘 쓰는 방법이 무엇일까? 예전에는 아주 단순하게 삼다(三多)라고 했다. 참 추상적인 말인데, 일리는 있다. 많이 읽고(다독), 많이 쓰고(다작), 많이 생각하라(다상량).


'삼다'는 단순하다. 특별한 기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글쓰기의 원론을 말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특정한 장르의 글쓰기가 아니라 모든 글쓰기에 통용되는 방법이다.


일반론, 이는 옳은 말이고, 좋은 말이지만, 구체적인 방법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삼다'를 한다고 해도, 과연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고민이 된다. '삼다'는 글쓰기의 기본, 즉 기초를 알려주는 말이라고 보아야 한다.


기초 없이는 무엇을 할 수 없으니, 이 '삼다'는 모든 글쓰기의 기본이다. 많이 읽어야 알고, 많이 써봐야 어떻게 쓸지 감을 잡을 수 있으며, 많이 생각해 봐야 자신의 사고를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글쓰기 방법을 알려주는 책들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


글 종류에 따라서 글쓰기 방법이 달라져야 하니,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는 글쓰기 책들이 필요하다. 이 책은 그런 필요에 의해서 나왔다. 미술에 관한 글쓰기를 알려주는 책.


다른 종류의 글쓰기가 아니라 미술과 관련된 글쓰기를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느냐를 알려주는 책. 미술에 관한 책을 많이 읽고, 전시회나 다른 미술관련 행사에 자주 참여하여 미술 작품들을 많이 감상하고, 그에 대한 글을 써보고, 미술에 관해서 많이 생각해 봐라... '삼다'면 이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다.


이렇게만 하면 스스로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미술에 관한 글을 잘 쓸 수 있는 능력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이 말은 추상적인 말이다. 하나마나한 소리가 될 가능성이 많다.


막상 글을 쓰려면 막막해지기 때문이다. 이때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 필요하다. 음식을 만들 때 재료부터 조리과정까지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는 레시피가 필요하듯이, 미술에 관해서 글을 쓸 때도 이런 식으로 쓸 수 있다고 알려주는 책. 이 책은 바로 그런 역할을 한다.


그래서 이 책은 처음부터 어렵고 추상적인 내용은 빼고 있다. 미술 작품을 관람하는데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모두 자기만의 감상법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데서 시작한다. 전문가의 감상펼이 무조건 맞다는, 내 감상은 그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는 생각부터 버리라고 한다.


미술을 보는 눈에 자신감을 가지라는 말... 그래, 정답이 없는데 굳이 정답이 있다고 믿고 그 정답을 찾으려 하는 모습을 많이 보이지 않았던가.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말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았던가. 그게 아니다. 작가조차도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정답을 말할 수 없다. 그렇게 여겨야 한다.


우리가 알 수 없는 무의식의 세계는 무궁하다. 그러니 작가의 말이 작품을 온존히 드러내준다고 할 수 없다. 전문가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내 감상을 밀고 나가자. 다만 내 감상에 구체적인 이유를 부여해주면 된다. 묻고 답하기... 작품 앞에서 묻고 답하는 과정을 거치면, 자연스레 나만의 감상이 생긴다. 이런 과정이 바로 '다상량'이다. 많이 생각하라!


그리고 그 감상을 글로 쓰면 된다. 쓸 때 전체적인 구성을 생각해야 한다고, 그 방법을 2장에서 알려주고 있다. 전체 틀이 생겼으면 이제 구체적으로 써나가면 된다. 3장에서는 쓰기 위해서 알아야 할 것들(작품 묘사, 작가 정보, 시대, 에피소드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4장에서는 무엇으로 쓸까 해서 '글감에 관해 알아야 할 것들'을 알려준다. 


알아야 할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많이 알면 알수록 고를 수가 있다. 글을 더 흥미롭게 만들 수 있다. 많이 읽어야 한다. '다독'이다!


이제 글을 쓴다면 5장을 참조하면 된다. 이렇게 하자고, '쓰면서 알아야 할 것들'을 알려주고 있다. 이렇듯 미술에 관한 글쓰기로 책 한 권을 채웠다. 자꾸 쓰고 쓰고, 고치고 고치라고 한다. 여러 번 고쳐야 더 좋은 글이 된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뺄 것은 빼고 더할 것은 더하게 된다. 문장들을 다듬어서 연결관계도 좋게 만들 수 있고... '다작'이다! 역시 많이 써봐야 한다.


그만큼 할 이야기가 많다는 뜻이겠다. '삼다'라면 몇 줄로 끝날 글쓰기 방법이 책 한 권이 되었다. 자, '삼다'에 관한 내용을 차곡차곡 채워서 책 한 권이 된 것. 그만큼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이렇게 글쓰기에 관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하지만, 읽으면서 미술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니, 자연스레 작품에 대한 이해, 작가에 대한 이해도 할 수 있는 책이다. 역시 큰틀은 '삼다'다. 


'삼다'는 모든 글쓰기의 토대다. 토대를 탄탄하게 다져야 한다. 그래야 그 위에 건물을 세울 수 있다. 무너지지 않는 건물. 아름다운 건물.


저자는 이 '삼다'를 기반으로 튼튼하고 아름답고 실용적인 건물을 지을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미술에 관한 글을 쓰려는 사람에게... 


하지만 이 책은 미술에 관한 글쓰기를 알려주는 책으로 미술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가 실려 있기 때문에, 미술에 관한 글을 쓰려는 사람만이 아니라 미술에 흥미가 있는 사람도 읽으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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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 영혼의 거울 다빈치 art 18
프란시스코 데 고야 지음, 이은희 옮김 / 다빈치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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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이 끝나자 고야 그림이 생각났다. 제목은 어떻게 번역하느냐에 따라 달라지지만, 의미는 비슷한.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태어난다는 그런... 우리들 이성이 깨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먹고 살기 힘들 때일수록 이성이 깨어 있어야 하는데... 누가 우리를 이렇게 먹고 살기에도 힘들게 만드는지, 감정이 아니라 이성으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하는데...


선거는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서는 행위라는 생각이 드는데... 이성에 호소하는 차분한 공약보다는, 감정을 자극하는 과격한 소리들이 먼저 나오고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그 과격한 말들, 감정을 건드리는 말들이 사람들을 움직여 표를 행사하게 하고... 그 다음엔?


이성이 제대로 작동하든지, 아니면 괴물이 만들어지든지 하겠지... 이성이 작동해서 좀더 이성적인 사회로 나아갔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지니고 있지만.


그래서 고야의 이 그림이 생각났다. 카프리초스라는 판화집에 있는, 많이 알려진 그림. 이 책에서는 제목을 '이성의 꿈은 괴물을 낳는다'고 되어 있다. 어떤 책에서는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깨어난다'고 되어 있는. 


그래 우리의 이성은 아직 이렇게 잠들지 않았겠지. 그래서 우리가 형식적 민주주의나마 이룩한 것이겠지 그런 생각을 한다. 우리 이성이 잠들면 이렇게 괴물이 깨어날테니.. 우리는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우리 이성이 잠들지 않게 해야 한다. 



여기에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 21세기에 이런 야만적인 전쟁이 벌어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졌던 전쟁이나 또는 국경분쟁들과는 다른 의미로 러시아의 침공이 다가왔는데...


1차세계대전이 끝나고 결성되었던 국제연맹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자 2차세계대전이 일어났는데, 그 후에 만들어진 국제연합이 과연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제 역할을 하고 있다면 러시아 푸틴이 어떻게 전쟁을 일으킬 수 있었을지...


전쟁이 일어나면 군인들만 죽어가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간다. 전쟁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 그때 그 장소에 있었단 이유로... 그것은 영문도 모르고 죽어가는 사람들이라고 해야겠다. 



21세기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내게 고야의 책을 집어들게 만든 두 번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고야는 '전쟁의 참화'라는 판화집을 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전쟁으로 인한 온갖 참상들이 잘 표현되어 있는데... 힘 없는 사람이 힘 있는 자들에게 어떻게 죽임을 당하는지... 제목이 '왜?'인, 이 판화를 보면 알 수 있다.


전쟁은 어떻게든 일어나서는 안 된다. 이렇게 다시 고야에 관한 책을 읽다보니 우리나라 상황과 우크라이나 상황이 겹친다. 


고야가 그린 그림이 지금 이 세상에도 통용되니 고야의 통찰력에 감탄해야 할까, 아니면 아직도 이런 고야 시대의 야만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의 모습을 비판해야 할까.


다양한 고야의 그림을 감상할 수 있고, 또 고야 판화집인 '카르피초스'가 전편 실려 있어서, 판화집을 감상하는 재미도 있고, 또한 고야가 쓴 편지도 들어있어서 고야의 내면을 알아볼 수도 있는 책이다.


무엇보다 여기에 지금 우리 시대를 생각할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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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4-05 09: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야, 전쟁 관련 그림 많이 그렸죠.
1808년 5월3일이란 작품이 제 기억에 오래남아 있어요.
곧 총살 당할 인물의 공포가 그대로 전해져서...!
판화들이 전하는 메시지도 무겁네요.

kinye91 2022-04-05 09:02   좋아요 1 | URL
네, 그레이스님의 말씀처럼 고야의 1808년 5월 3일이란 그림도 전쟁의 비참함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잊지 못할 그림이기도 하고요. 이번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전쟁의 참상을 고야의 판화에서 느낄 수 있는데, 정말 이런 전쟁은 없어져야 하겠지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리즈 1
아서 C. 클라크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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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광활한 우주를 다루고 있다. 우주라는 공간만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까지도 다루고 있다고 해야 한다. 선사시대 인간들의 모습이 이 소설의 첫부분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상상이 작용한다. 역사를 들먹이면서 이건 사실이 아냐라고 하면 안 된다. 소설을 소설로 읽으면 된다. 상상 속에서 재구성해낸 세계. 우리들의 선사시대. 


원숭이인간이 어떻게 다른 동물들을 정복하면서 살아남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완전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진화의 관점에서 다양한 증거들이 나왔고, 어느 정도는 합의를 봤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정도지 인간의 선사시대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이 틈에 소설이 들어갈 수 있다. 아니 역사에서 완전히 밝혀지지 않는 사건들을 소설이 재구성해낼 수 있다고 해야 한다. 선사시대에 지구에 온 특이한 바위, 이 바위로 인해 인간은 자신들의 지능을 발전시키고, 도구를 사용하게 된다. 이때부터 인간은 지구에서 최상위 존재에 속하게 된다. 자신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고.


이 다음에 소설은 몇백만 년을 건너뛴다. 이제 바야흐로 우주시대에 돌입했다. 그것도 이 소설이 1960년대에 나왔는데, 소설 속에서는 이미 달에 우주기지가 있다. 그곳에서 인간들이 살아가고 있다. 미래 예측이라고 하겠지만, 소설은 여기서 더 나아간다. 겨우 달에 머무르는 상상이라면 굳이 오디세이라고 제목을 붙이지도 않았으리라.


더 멀리, 예측할 수 없는 곳으로 모험을 떠나야 한다. 오디세이처럼... 그러나 여기서 제목에 들어있는 오디세이란 인물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오디세이는 모험을 하지만, 결국은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결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소설에서 달에서 선사시대에 지구에 있었던 것과 같은 물체를 발견한다.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체. 이 물체에 대한 답을 주지 않고 소설은 곧장 토성을 향해 날아가는 우주선에 탑승한 사람들로 건너뛴다. 지구에서 달로, 달에서 토성으로다. 물론 토성에 가기 전에 목성을 거치게 되지만, 목적지는 토성이다. 왜 하필 토성일까?


여기에 대한 답은 우주선에 있던 로봇 HAL이 이상반응을 보이고 다른 우주선 탑승자들이 죽고난 뒤 홀로 살아남은 보먼을 통해 밝혀진다.


소설 초반에 나왔던 물체와 연관이 된다. 토성의 위성에 이와 같은 물체 또는 이런 물체를 만든 존재가 있을 것이라는 예측에 따라 이들을 토성으로 보내게 된 것.


우주선 이름은 디스커버리 호다. 발견이다. 탐사다. 이렇게 인류는 먼 우주를 탐사한다. 또다른 지적인 생명체를 찾아서. 아니 달에 있던 물체를 보면 우주에 다른 지성체가 있다면 인류보다 한참 발전한 생명체이리라는 추측을 하고서.


홀로 살아남은 보먼은 토성에 다다르고, 목적했던 위성에 이르러 탐사에 나선다. 그러나 그가 탐사를 나선 사실까지도 모두 알고 있는 외계 존재들. 보먼은 아득한 우주 공간으로 나아가고 어느 우주에서 다시 태어나 지구로 돌아온다.


다시 태어난 존재로. 그러니 이는 육체를 지닌 인간의 형상을 한 보먼이 아니라 빛과 같은 존재인 보먼으로 돌아왔다고 보면 된다. 지구에 재앙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광활한 우주를 배경으로, 또다른 지성체에 대한 탐구로 소설은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그러면서 과연 우리가 우주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끝없는 우주(우주에 끝이 있다는 주장이 있고,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지만)라는 표현을 많이 하듯이, 빛의 속도로 가도 인간의 수명으로는 가볼 수 없는 곳이 많은 우주를 우리는 탐험하고 싶어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직선으로만 나아가서는 안 된다. 빛의 속도보다 더 빠르다고 해도 우주는 인간의 수명에 비해서는 너무 넓다. 그러니 다른 방도가 있어야 한다. 그것에 대해서도 탐구하게 하지만, 소설에서는 이를 상상으로 채워놓고 있다.


바로 이동의 통로이자 관문이 되는 것이 처음 지구에 있었고, 달에도 있었던 물체다. 우주 어디로도 통할 수 있는 관문. 과연 그런 관문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21세기. 여전히 우리는 화성에 발을 딛지도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런 소설이 1960년대에 쓰여졌다. 이는 우리의 상상력이 현실 과학을 앞서갔다는 이야기도 되지만, 상상이 현실을 이끌어 가고 있다는 말도 된다.


이런 상상덕분에 우리는 지구를 벗어나 우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지 않았는가. 그러니 이 소설은 오래 전부터 인간을 지구를 벗어나 우주를 생각하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상상 지평을 넓혀준 소설. 우리가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도록 해준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 이후로 세 편이 더 있다고 하는데,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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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아트 - 예술을 영원히 뒤바꾼 여성들
발렌티나 그란데 지음, 에바 로세티 그림, 아이오와 편집부 옮김 / 아이오와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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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다. 누구의 말이냐가 중요하다.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존재들이 있다. 이들은 소리를 내더라도 철저하게 묻힌다. 다른 소리들에 의해. 또 소리를 낼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상황으로 내몰린다.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가만히 있으라. 아무 소리도 내지 마라. 


하지만 사람이 어떻게 소리를 내지 않고 살 수 있나? 침묵은 금이라고... 웅변은 은이라고. 이는 평소에 자기말을 할 수 있는, 또는 자기 목소리를 지나치게 많이 내고 있는 사람들에게나 해당하는 말이다.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침묵은 굴종이고, 웅변은 저항이다. 그런 저항도 할 수 없는 상태로 놓아두려고, 그들의 목소리를 억누르려고 하는 움직임이 많다. 그동안 지녀왔던 자신들의 이익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집단들도 많다.


이는 불평등이다. 사람은 지위, 성별, 국가, 연령, 인종 등등에 의해서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고 한다. 당연한 일이다. 사람이 사람이라고 인식되는 이유는, 많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통점이 더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람과 동물을 너무도 쉽게 구분한다. 그만큼 우리는 사람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사람이기때문에 사람으로 인정받고 대우받아야 한다. 당연한 이 말이 당연하지 않으면 문제가 된다. 지금까지는 이런 문제가 많았다.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 그래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로 인해 세상은 점점 더 평등한 쪽으로 변화해 왔다. 


아직 평등이 완전히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것은 되돌릴 수 없는 시대적 요청이다. 어떤 형태로든 다시 과거로 되돌릴 수 없다. 지금까지 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는데...


예술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한때 여성들에게는 '여류'라는 말을 붙였다. 남성들은 그냥 화가나 작가라고 하고, 여성에게는 '여류'화가, '여류'작가라고 했다. 차별인지도 모르고 쓰던 말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예술계에서도 이런 '여류'란 말은 이제 잘 쓰지 않는다. 


그러나 아직도... 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다. 시대의 흐름을 되돌리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되돌려서는 안 되고, 되돌릴 수도 없는데, 자꾸만 되돌리려고 해서 갈등을 일으킨다. 지금까지 이뤄왔던 성과들을 뒤로 돌리려고 하고 있다. 그건 아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이 책은 예술계에서, 특히 미술계에서 성평등을 지향했던 화가들 이야기다. 네 사람(?)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 게릴라 걸스는 한 사람이 아니다. 단체라고 해야 한다- 주디 시카고, 페이스 링골드, 아나 멘디에타, 게릴라 걸스다.


사실, 게릴라 걸스에 대한 이야기는 책으로 읽은 적이 있지만 부끄럽게도 나머지 세 사람에 대해서는 이 책에서 처음 만나게 되었다. 이들이 여성이 예술계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노력했음에도 소수의 사람에게만 알려져 있지 않나 하는 생각에 씁쓸한 마음이 된다.


자꾸 찾아봐야 한다. 알아야 한다. 자기 목소리를 낸 사람들을. 그 사람들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전달해야 한다. 그래야 이들이 한때에 머물지 않고 계속 우리들의 삶으로 들어오게 된다.


또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미래를 살아갈 사람들이 이들에 대해서 알게 된다. 자꾸 목소리를 내야. 또 그 목소리를 전달해야.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소중하다. 


자기 목소리를 낸 사람들을 알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래픽 평전이라고 그림을 곁들여서 이들에 대해서 알려주기 때문에 더 쉽게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있다. 어떻게 그들이 자기 소리를 냈는지... 


소중한 목소리들...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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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시각과 미디어 동문선 문예신서 12
존 버거 지음 / 동문선 / 199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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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고 책을 사면 가끔 실패할 때가 있는데, 존 버거는 믿고 읽을 수 있는 작가라는 생각. 몇 편 읽지 않았지만, 그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 중고서점에 이 책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곧장 구입.


읽기를 좀 미뤄두다 최근에 읽기 시작했는데, 어라, 많이 본 내용인데, 하다가 영어 제목을 보니, 이런 열화당에서 최민 번역으로 [다른 방식으로 보기]란 책으로 나왔고, 내가 이 책을 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기억의 짧음이여. 이제는 책을 읽어도 내용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시기에 도달했는가. 어린 적 읽었던 책들은 그래도 장기기억에 남아 있는데, 요즘 읽은 책들은 장기기억까지 가기가 힘들었는지, 아니면 이 책 저 책이 혼재되어 읽었는지 아닌지 헷갈리고 있는지...


책 안쪽에 영어 제목을 봤다면 그래도 읽었다는 기억은 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는데, 그럼에도 책 두께가 다르다. 무언가 다른 내용이 있다는 뜻. 살펴보니 열화당 책은 7장인데, 이 책은 8장이다. 한 장이 더 있다. 그럼 됐다. 그 한 장의 내용으로 만족하자. 어차피 헌책으로 사지 않았던가라는 여우의 신포도같은 자기 합리화도 하고.


앞 내용에서는 이름에서 예전 번역이 느껴진다.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이름과는 다른 이름을 쓰고 있으니... 그야 뭐. 당시 번역 용어라고 생각하고 넘어간다. 나도 한때는 손흥민이 뛰고 있는 영국 축구팀 토트넘을 토튼햄이라고 생각하고 쓴 적도 있으니...


앞 내용은 열화당 책과 중복이 되니, 생략하고, 이 책에 실려 있는 8장을 보면 '본다는 것의 위상기하학'이라는 제목이 달려 있다. 그러면서 '시각 메카니즘, 사진의 발생과 그 배경, 부즈즈와의 시각, 수집가 역할을 담당하는 미술관, 자연으로부터의 이탈, 복제환경의 확산, 전람회에서 광고로, 새로운 관점의 위상'이라는 8개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이 8장이 '보기'에 대해서 역사적인 고찰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존 버거가 썼다고 하기보다는 존 버거의 '보기'에 대해서 정리해주고 있다고 보면 좋은 글이다. 이 글을 먼저 읽고 앞의 내용을 읽으면 훨씬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결국 보기는 개인적인 보기일수도 있지만, 사회적으로 규정된 보기임을 생각하게 하고, 이 책을 읽으면서 요즘 '악마의 편집'이라는 말로 사고를 확장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사실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이 아니라 보여지기를 원하는 방향으로 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생각한다.


그렇다면 드라마야 그렇다쳐도 예능 다큐멘터리라고 하는 영상에서도 보여지길 원하는 장면으로 편집됨을, 또 다큐멘터리라고 해서 사실이라고만 믿을 수 있는 영상에서도 보여지길 원하는 장면으로 편집됨을 생각해야 한다.


이 점을 정치판으로 옮겨보면, 정치판이야말로 교묘한 보여지기 아닐까 한다. 보여지기 원하지 않는 부분은 삭제하고 보여줄 부분만 보여주는... 그런 편집기술, 보여주기 기술이 놀라울 정도로 발전한 지금이니...


보이는 것을 보이는 대로 믿는 시대는 지나갔다. 우리는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보여지는 것 이면에 숨어 있는 보여지길 원하지 않는 것을 찾을 수 있는 눈도 지녀야 하고.


존 버거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한다. 그가 그림(미술-예술)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바로 이것일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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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1-19 18: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ways of seeing의 옛날 버전인가요?
저는 계속 구입 중입니다^^

kinye91 2022-01-19 21:02   좋아요 1 | URL
네. 예전 번역인데.. 최근 열화당에서 나온 책보다 한 챕터가 더 있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