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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에 관한 이야기들
에릭 홉스봄 지음, 이경일 옮김 / 까치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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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는 이제까지 세계를 해석했을 뿐이다:문제는 세계를 바꾸는 것이다"(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 이 책 354쪽에서 재인용)

 

1980년대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마르크스가 유행했었다. 사회학은 물론이고, 철학에서도, 그리고 경제학에서도... 이런 학문적인 분야말고도 사회운동 분야에서 마르크스는 중심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세상은 마르크스의 말대로 되어가는 듯했고, 그 당시 많은 젊은이들은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곧 마르크시즘이 쇠퇴할 줄을 모른채.

 

그러다 1990년대에 들어서 사회주의권이 몰락했다. 말 그대로 몰락이다. 자본주의에 필적한 만한 사회제도는 존재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마르크시즘은 이제는 한물 간 사상이라고 치부했다. 여기에 사회민주주의라는 개량주의도 한몫했다.

 

이제는 혁명의 시대는 물건너 갔다. 오직 개량만이 살 길이었다. 사회주의에 대해서 언급하는 사람은(공산주의는 말할 것도 없다) 시대에 뒤떨어진, 시대를 읽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급속히 희망을 잃은 사람들은 회한에 젖거나, 아니면 현실에 안주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세계를 바꿀 힘을 잃었다. 아니, 힘이 아니라 의지를 잃었다.

 

이제 마르크스는 도서관의 한 구석으로 물러나 버렸다. 마르크스를 공부하는 사람은 자리를 잡을 수가 없었다. 서울대에 있었던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의 자리도 사라져갔다.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마르크스는 사라지는 이름이었다. 사라지는 학문이었다. 사라지는 실천이었다.

 

하다못해 진보정당에서도 노동계급의 이익을 내세우지 않는다. 노동계급이라는 마르크시즘을 지탱하던 계급이 사라졌다고 판단하는지, 당이름에서 노동을 빼버렸다. 그리고 그들 정당의 주요 구성원들은 노동계급과는 거리가 있는 지식인들, 또는 시민단체 구성원들로 채워졌다.

 

노동은 조직화를 잃고, 힘을 잃고 그냥 파편화된 개인으로, 시민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홉스봄이 안타까워했듯이 이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어갔고, 세상의 조류에 휩쓸리기만 했다.

 

그러나, 노학자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2008년 이후, "다시 한 번 마르크스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때가 왔다(이 책 429쪽)"고 한다. 

 

아직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야만 한다고 홉스봄은 그의 마지막 저서가 된 이 책에서 주장한다.

 

이런 주장을 관철하기 위하여 그는 마르크스주의의 역사를 개관하고 있다. 각자 따로 쓰여진 글들이지만 홉스봄 자신이 그 글들을 마르크스주의의 탄생부터 발전, 쇠퇴를 각 시기별로 정리하여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내고 있다. 아마도 이 책은 50여년에 걸쳐 쓰여진 책이라고 해도 무방하리라.

 

그렇다면 반세기동안 홉스봄은 마르크스주의에 대해서 고민하고, 또한 이 사상에서 희망을 찾았다는 얘기가 된다.  그리고 아직도 우리는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르크스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적어진 지금, 마르크스주의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있는 이 책은 결코 쉽지는 않지만, 한 눈에 마르크스주의를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 여기에 마르크스-엥겔스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그람시도 다루고 있으니...

 

그람시의 헤게모니라는 개념과 지식인에 대한 논의는 지금 이 시대에도 얼마나 필요한지. 게다가 그가 말했더 진지전이라는 개념과 또 수동혁명에 대해서 고민을 한다면, 마르크스주의 정치철학을 확립한 사람으로 왜 홉스봄이 그를 다루고 있는지 알 수 있을테고, 또한 지금 정치현실에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방법론을 배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마르크스주의의 탄생부터 발전, 그리고 쇠퇴... 하지만 다시 마르크스를 생각해야 한다는 끝부분의 말까지.

 

마르크스가 포이어바흐의 테제에서 했던 말, 지금 우리나라 지식인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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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차별 - 영화 속 인권 이야기
구본권 외 지음 / 씨네21북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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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가 한 일 중에 아마도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간 일이 영화를 만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섯개의 시선"이라든지, "별별이야기"라든지 하는 영화들은 어느 정도 재미와 생각할거리 면에서 성공을 거두었다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다른 면에서 국가인권위가 퇴행했다는 소리를 듣고, 비판도 많이 받고 있지만, 위원장과는 관계없이 국가인권위라는 그 이름만으로도 해야할 일이 있고, 한 일이 있다. 없느니만 못한 인권위가 아니라, 없어서는 안될 인권위로 자리매김을 한다면 더욱 좋겠지만.

 

이 책은 인권위가 주관하여 만든 영화에 나온 인권 상황에 대한 글이다. 영화로 보고 생각했던 것들을 책을 통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고 보면 된다.

 

서문에서 이야기했듯이 이 책의 효용성이 10년이면 좋겠다. 나도. 10년이면 이 책에 나와 있는 차별의 모습이 사라지고, 더욱 정치한 인권 감수성을 지닌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소수자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 것도, 장애인이라고 차별을 받는 것도,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 것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 것도,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 것도 모두 과거엔 그랬었지 했으면 좋겠다. 다 과거의 일로 박물관으로 보냈으면 좋겠다.

 

그런데... 슬프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렇기에 이런 책이 아직도 나오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여전하며, 장애인들은 지금도 거리로 나서고 있으며, 여성은 여러 면에서 알게 모르게 차별을 받고, 이주민들은 불법체류자다, 위험한 인물이다라는 식으로 또, 우리나라보다 못 하는 나라에서 온, 우리가 구제해 준 사람들이라는 인식으로 차별을 받고 있으니...

 

여기에 인권사각지대 청소년들은 아직도 건재하다(?). 이런 표현을 쓰는 자체가 한심하다. 청소년들은 온전한 인간으로 아직도 대접을 받지 못하고, 보호받아야 할, 자기 결정권이 없는 존재로 인식되고 그렇게 대우를 받고 있으니... 인권 감수성이 사회 전반에 흘러넘치는 세상은 아직 우리에게는 요원하다.

 

그래서 이런 책을 읽으면 불편하다. 나는 인권 감수성을 지니고 있는가 질문을 던져보면 글쎄라는 대답을 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되니 말이다.

 

인권이 위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는 것이라고 하지만, 인권을 찾기 위해서는 반인권이 얼마나 우리에게 불편한가, 우리를 힘들게 하는가를 먼저 느껴야 한다. 그러한 불편함을 일상에서 느껴야 우리는 인권에 관심을 가지고 고치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인권 감수성을 지닐 수 있겠는가? 결국 인권이란 어느 순간 나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끊임없이 찾아나서야 하는 존재, 끊임없이 교육되어야 하는 존재라는 생각을 지니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인권위에서 주관한 영화들은 더 많은 사람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인권에 대한 영화들을 학교를 통해서, 또 다른 사회기관들을 통해서 상시 상영하는 방법도 고려해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선 영화는 그래도 덜 부담을 갖고 접근할 수 있으며, 또한 영화 매체라는 특성에 의해 더 높은 감염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영화를 본 다음, 이러한 책을 본다면 인권에 대한 자신의 감수성을 한층 더 높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정말로 몇 년 뒤에는 이런 책들, 이런 영화들, 박물관에서나, 도서관에서나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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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 김미화의 대선 독해 매뉴얼 - 전문가 12인과 함께하는 대통령 디자인 프로젝트
박래군.김미화 외 지음 / 클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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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수험서 같다. 독해 매뉴얼이라니...

 

하지만, 그간 대통령 선거를 보면 후보들에 대해서 철저하게 분석하지 못하고, 그냥 친분이나 또는 이미지에 끌려서 투표를 한 경향이 있었으니...

 

학생 때 몇 번의 시험이 인생을 좌우하듯이(그러면 안되지만, 이게 참... 이러한 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후보가 대통령감으로 적절하다는 말도 이 책에 나온다), 대통령 선거 때 어떤 후보를 뽑느냐에 따라 우리나라 국민들의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대통령을 뽑는 일은 정말로 중요하다. 학생 때 시험만큼이나.

 

그럼에도 정말 고민 안하고, 공부 안하고 투표에 임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하긴, 그동안 후보자들에 대해 정보가 부족한 면도 있었고, 또 그냥 감으로, 또는 자신의 선입견으로 후보들을 판단하고 투표한 경우도 많았지만, 어떤 후보가 이 시대에 맞는 후보인가를 파악하는 방법에 대해 공부하지 않았다는 점도 그러한 경향에 더하기를 했으리라. 

 

그래서 이 책이 반갑다. 물론 조금 오래 전에 나와 유력 후보가 정해지기 전이긴 하지만, 그래도 어떤 후보를 선택해야 할지, 그 선택의 기준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가장 큰 틀은 인권이다. 그리고 이 인권을 실현하는 구체적인 분야로 경제, 복지, 소수자, 통일.평화를 들고 있다. 이러한 분야에 대해 그래도 잘 알고 있는 사람들과 대담을 하고, 그 대담을 토대로 어떤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으면 좋겠는지 정리를 하고 있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유력한 인물들에 대한 분석을 하고 있는데, 아마 이 마지막 부분을 유력 후보가 정해진 지금 이 시점에서 다시 한 번 하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분야들이 따로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인권으로 묶일 수 있다는 점, 결국 인권에 대한 감수성, 실천성이 부족한 후보는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우리가 인식하게 한다는데 이 책의 장점이 있다고 하겠다.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우리나라에서 이제는 정치 면에서도 지연, 학연, 혈연을 떠나 구체적인 정강을 가지고, 그 정강의 인권성, 실현성, 그리고 후보들의 실천의지 등을 종합해서 선출해야 하는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자고,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이 책은 얘기하고 있다. 물론 이 책에서 제시한 내용들을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이 책은 경제, 복지, 소수자, 통일, 평화 등에 대해서 지금 우리 시대에 맞는, 그리고 미래지향적인 정책이 어떤 것인지 우리 모두가 고민하고, 이러한 고민들을 현실에서 실현시켜줄 대통령이 누구일까를 생각하고 선거에 임하라는 목적으로 쓰여졌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공화국의 시민이 지녀야 할 태도가 아니겠는가.

 

이 책을 읽으며 몇 가지 고사성어들이 생각났는데, 우선 오십보 백보(五十步 百步)

 

맹자는 그 놈이 그 놈이라고 했지만, 아니다. 그 놈이 그 놈이 아니다. 그 오십 보 차이가 백성들에게는 커다랗게 다가올 수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사실 우리나라에 진보와 보수로 명확히 나눌 수 있는 정당이 몇 개나 되는가? 게다가 절대 다수를 점하고 있는 두 정당은 정말로 오십보 백보라 할 만하다. 그럼에도 이들은 다르다. 많이 다르다. 그리고 어느 정당이 집권하느냐에 따라 많이 차이가 난다. 우리는 그 놈이 그 놈이다 하지 말고, 그 놈과 그 놈 사이에 있는 그 차이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그 차이를 우리 현실에서 큰 차이로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한 대통령 후보감에게 투표해야 한다.

 

다음은 타산지석, 반면교사(他山之石, 反面敎師)

 

이번 정권을 보고 그냥 넘어가면 안된다. 적어도 이번 정권에서 했던 정책들을 다시 비춰보고 고치려고 하는 후보, 그에게 투표해야 한다. 과거를 과거로만 묻어두는 사람, 또는 과거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는 사람에게서는 기대할 것이 별로 없다. 보통 사람도 다른 사람에게서, 또는 과거에서 많은 것을 배우는데, 하물며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에서랴. 그러므로 우리는 이들이 과거의 정권에서 무엇을 계승하고, 무엇을 수정하고, 무엇을 폐기하려고 하는지를 잘 살펴야 한다.

 

그 다음은 경어인(鏡於人)

 

사람이 자신을 판단할 때는 물에 비춰보지 말고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비춰보라고 했다. 즉 주변의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것을 각 후보들에게 적용하면 된다. 후보들은 워낙 자신을 미화할 가능성이 있다. 적어도 대선에 나온 사람이라면 자신의 장점은 부각시키고, 약점은 감추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 그 후보들의 주변 사람들을 살펴보면 된다.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는가. 후보와 후보 주변의 사람들, 이게 내가 대선 대 후보를 선택하는 하나의 기준이 될 것이다. 최소한 측근 비리는 없는 후보라야 하지 않겠는가.

 

마지막으로 화씨의 옥(和氏之璧)

 

화씨라는 사람, 세상에서 가장 진귀한 옥을 구해 왕에게 바쳤음에도 옥을 알아보지 못한 왕들에 의해 두 다리를 잘리고 말았다. 두 다리를 잘리고도 자신이 옳다고, 이것은 세상에서 진귀한 옥이라고 말했던 사람, 결국 인정을 받았던 사람...

 

이번 대선에는 누가 진정한 옥이고, 돌인지 우리는 구별을 해야 한다. 화씨의 옥처럼 세상에서 진귀한 보물이라도 사람들에게 보물로도, 또는 쓸모없는 돌로도 인식될 수 있다. 그만큼 진귀한 보물을 발견하기는 힘들다. 보석은 제자리에 있는데, 사람들이 돌로만 여긴다면 이는 돌에 불과하다. 이를 보석으로 인정하고 다듬을 때 진짜 보석이 된다.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정치인들이 돌인지, 옥인지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정치인이 옥이라면 정말로 좋은 옥이 될 수 있도록 국민인 우리가 다듬어야 한다.

 

그러한 다듬질, 첫번째가 바로 옥인 후보에 투표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옥을 구분하는가? 그 방법이 이 책에 나와 있다. 후보들이 모두 결정이 안 되어 있어도 어떤 후보를 지지할 것인지 결정하는 기준은 이 책에 나와 있다.

 

이제 정치는 정치인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 공부도 학생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공부를 하여 바른 정치인을 선택할 때, 아니 선택하려 할 때 우리는 이미 정치에 관여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그 점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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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 2024 노벨경제학상 수상작가
대런 애쓰모글루 외 지음, 최완규 옮김, 장경덕 감수 / 시공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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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제목이 자극적이다. 뭐야, 국가는 실패하는 거야? 하는 생각이 드는 제목이다. 국가가 실패한다는 이야기는 자칫하면 국가가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로 비약하기 쉬운데.. 이 책의 제목은 국가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이 제목을 좀더 세분화해서 말하면 "왜 어떤 국가는 성공하고, 어떤 국가는 실패했는가"이다. 즉 국가들에 관한 얘기이고, 실패한 국가가 왜 실패하게 되었는지, 성공한 국가는 왜 성공했는지 그 이유를 찾아 설명해주고 있는 책이다.

 

그렇다면 성공한 나라와 실패한 나라의 기준이 무엇인가부터 따져야 한다. 그 기준은 바로 "풍요"다. 풍요는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을 합친 것이고, 특정 집단만의 풍요가 아니라 국가 구성원 모두의 풍요를 말한다.

 

이 기준에 의하면 성공한 나라는 서유럽의 나라들, 미국, 일본, 한국, 보츠와나 등이고, 실패한 나라는 동유럽의 나라들, 서남아프리카 국가들, 멕시코, 남아메리카 국가들 등이다. 우리가 지금 잘사는 북반부와 못사는 남반부로 쉽게 나누는 그 선이(다소의 변동은 있더라도) 대체로 들어맞는다.

 

이 원인이 무엇일까? 도대체 왜 국가는 실패하는가? 왜 국가들에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가?

 

이런 흥미로운 질문에서 이 책은 시작한다. 시작도 흥미롭다. 오랫동안 한 도시였지만 인위적으로 갈린 도시 노갈레스에서 시작한다. 한 쪽은 미국 땅, 한 쪽은 멕시코 땅이고 한 쪽은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지만, 한 쪽은 다른 쪽에 비해서는 한참 모자란 삶을 유지하고 있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

 

여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남한과 북한을 예로 들기도 한다. 오랫동안 한 민족으로써 한 국가로써 동질적인 삶을 살아왔던 사람들이 38선이 생긴 이후 엄청나게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질문도 던진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어떤 국가는 실패하고 어떤 국가는 성공하는가이다. 답은 명료하다. 포용적인 경제제도, 정치제도를 지니고 있는 국가는 성공하고, 착취적인 경제제도, 정치제도를 지니고 있는 국가는 실패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지리적, 문화적, 무지를 이러한 차이를 유발하는 요소로 들었지만 이 책의 2부에서 이 이론들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구체적인 예를 들어 반박하고 있다. 이러한 반박을 토대로 지금 국가들의 차이는 바로 정치와 경제에서 포용적인 제도를 택했느냐, 착취적인 제도를 택했느냐에 따라 결정되었다고 길고 긴 장들을 통해 증명해가고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지은이의 주장에 수긍을 할 수밖에 없다. 세계의 역사를 통틀어 많은 국가들을 통시적으로 그리고 공시적으로 꿰뚫어 자신의 주장에 근거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 이 책 지은이의 주장이 옳다 그르다를 따지는 일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그의 이론과 지금 현재 국가들의 모습은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그의 이론이 무척 단순 명료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 단순함은 다양한 포용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표용적인 정치, 경제 제도가 어떠한 것인지를 알고 그를 추구하는 자세를 지니는 것이 중요하다. 포용적인 정치는 특정 집단에 권력이 독점되지 않고, 다원화된 집단들이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며, 또는 함께 하는 정치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다당제라고 해서 이루어진다고 할 수는 없고, 정당들이 또는 정치인들이 대표하는 집단이 다양해야 하고, 그리고 그러한 정당, 정치인이 배타적인 권한을 지니고 있지 않고 언제든지 소환될 수 있는 제도가 확립되어 있어야 한다. 즉 다양한 집단이 모두 동등한 권리를 지닐 수 있는 제도가 확립된 국가, 그 국가가 포용적인 정치제도를 지닌 국가이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어느 특정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집단들의 이익이 모두 고려되는, 그리고 창조적인 활동이 가능해, 발전을 위한 창조적 파괴가 용인되는 그러한 경제 제도를 택하고 있는 국가가 포용적인 경제제도를 택하고 있는 국가이다.

 

이 두 요소는 따로따로 가는가? 아니다. 함께 간다. 무엇이 먼저이든 상관없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데, 좋은 쪽으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 선순환이 되어 풍요로운 국가로 가는 길이 열리고, 나쁜 쪽으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 악순환이 되어 빈곤과 독재에 시달리는 국가로 가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선순환인지 악순환인지는 우발적인 요소도 있지만, 결정적인 분기점에 그 국가의 구성원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런 두 요소를 우리나라에 대입해보자. 우리나라는 이 책에 의하면 상당히 발전해온 국가에 해당당한다. 포용적인 경제제도를 지니고 있었으며, 독재정권이 집권하기도 했지만 민주화가 된 이후 포용적인 정치제도도 어느 정도 확립해가고 있는 국가이다.

 

그러나 지금 선진국인 북유럽에 비하면 우리는 과연 얼마나 포용적인 정치,경제 제도를 지니고 있는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에 답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우리나라가 더 발전하고, 국민들이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는지, 아니면 여기서 멈추고 지지부진한 상태로 계속 제자리 걸음을 하게 될 것인지에 대한 답을 구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때마침 대선을 앞두고 있기에 정치적인 면에 대입을 해 볼 수도 있고, 경제 쪽에서는 경제민주화가 화두가 되고 있는데, 이를 이 책의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발전적인 방향으로 생각을 정리해가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국가들의 부, 그것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 물론 우발적인 요소도 있지만, 그 나라의 제도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것, 그것을 명심한다면 이 책을 읽은 보람이 있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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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2-10-12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용적인 국가가 성공한다는 점에서는 동의하지만 세부적인 사항들은 논란의 여지가 있겟네요. 착취하는 제도가 있는 나라는 실패한다고 하는데 여기에 대해서 의문이 듭니다.
 
의자놀이 - 공지영의 첫 르포르타주, 쌍용자동차 이야기
공지영 지음 / 휴머니스트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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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두 가지 장면이 떠올랐다.

 

하나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전태일 재단을 방문하려다 무산되고, 전태일 동상에 헌화하려다 무산된 일. 그 때 막은 사람들이 쌍용차와 관련이 있다고 알고 있는데...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일을 놓아두고 어떻게 전태일을 방문할 수 있느냐는 논리.

 

1970년대에는 전태일이 있다면, 그 전태일이 전태일로 끝나지 않고, 수많은 전태일들이 나왔는데... 2000년대 말에 들어와서 쌍용차가 바로 그 전태일이 되었다.

 

40년이 넘었는데도 전태일이 원하는 세상은 아직도 멀었으니... 전태일 재단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겠는지.

 

국민통합의 우선은 소외된 사람들, 이미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사회적 약자들을 보듬어 안을 때에 가능하지 않은가. 그런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명망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국민통합과는 좀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든다.

 

2000년대의 전태일, 이미 22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의 잘못이 아니라, 먹튀자본들의 잘못으로 그 피해를 온전히 노동자들이 감내하고 있는 지금의 현실을 해결하지 않고는 국민통합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쌍용차 문제에 대해서 힘있는 사람의 답을 듣고 싶어한다. 그 답이 어떠냐에 따라 국민통합인지 아니면 소외된 사람들은 계속 소외될 수밖에 없는지 알 수 있기에...

 

또다른 하나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고양원더스 야구단을 찾아간 소식. 여기에서 패자부활전이 필요하다고, 패자들도 다른 삶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한 소식.

 

패자부활전! 그렇다면 쌍용차 노동자들은 패자들이 아닌가. 이들에게 한 약속, 기업이 정상화되면 우선 채용한다는 그 약속만 지켜도 이들이 이렇게 좌절하고, 목숨까지 버리지는 않았을텐데...

 

단지 말뿐이 아니라 현실에서 가능한 패자부활의 모습을 보여주려면 지금,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헤매고 있는 진짜 패자들, 이 땅에서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경영자들의 잘못으로, 죽도록 일만하고도 일자리를 잃고 다른 일자리도 얻지 못하고 있는, 게다가 사회적으로도 배제되고 있는 그 사람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세상에서 쉬운 것이 말하는 것이지만, 이 말을 실천으로 바꾸는 일,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사는 일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려면 패자부활전이 있는 사회를 만들려면, 진정 패자들이 누구인가? 지금 부활전이 필요한 패자들이 누구인가 찾아야 한다. 알아야 한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패자들도 아니다. 그들은 패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패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과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은 누구도 처벌받지 않는다. 약속을 파기하고 처벌받지 않으니 패자가 아닌 사람들이 패자가 되어 버린다. 그 패자들은 어떠한 부활전도 가지지 못한다.

 

그냥 사회에서 누락된 사람으로, 잊혀진 사람으로, 아니 사회 위험인물로 낙인 찍힌다. 어떻게 살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그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명확하고 그 경계를 넘지 않으려는 보통사람들과는 달리 삶과 죽음의 경계가 불분명하다. 그들에게는 바로 한 걸음이 곧 죽음이 된다. 아니 죽음을 늘 안고 산다.

 

읽기 싫은 책이다. 너무도 슬퍼서, 너무도 화가 나서, 너무도 나 자신이 무력하다고 생각해서.

 

하지만, 무력하다고 손을 놓고 있기에는 쌍용차 일은 너무도 가슴이 아프다. 지금은 이렇게 겨우 책 한 권 사서 읽어주고 있지만, 여기서 더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아마도 작가인 공지영 씨는 바로 여기서 가슴 아파함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기에 이를 르포라는 형식으로 글을 써서 우리들에게 알려주고 있으리라. 출판 수익금 전액을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기부하겠다고 하면서...

 

전태일이 역사 책에서만 나왔으면 좋겠다. "그 땐 그랬지." 했으면 좋겠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으면서 이게 뭔 내용이야. 이게 현실적인 소설이야 하는 소리를 했으면 좋겠다.

 

그 많은 민주투사들이, 전태일의 친구들이, 전태일 정신을 따르려는 사람들이 이제 사회 지도층으로 올라서고 있는데, 왜 아직도 전태일은 현재형인가? 어째서 우리에게 과거는 과거로 머물지 않고 현재로 계속 남아 있는가?

 

읽으면서도 "전태일 평전"을 읽을 때처럼 마음이 아프고, 더 읽고 싶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읽는다.

이게 현실이야.

이게 바로 지금 현실이고, 우리 아이들이 자랐을 때도 겪을 현실이야.

우리가 바꾸지 않는다면...

 

정신 똑바로 차려!

 

이 책은 이를 말해주고 있다.

 

덧말

 

어처구니 없게도 이 책에서 부분적으로 교육의 중요성이 나온다. 노동자 교육이 아니라, 제도권 교육... 생존을 위해서 파업을 하는 노동자들을 빨갱이로 모는 말을 하는 교사가 존재하는 제도권 학교 말이다. 이게 말이 되나? 노동은 신성하다고 말을 해도 시원찮을 판에, 헌법에 보장된 파업권을 행사하는 노동자들을 정당한 권리 행사라고 이야기는 못해줄망정, 빨갱이라고 하는 교사 앞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노동 교육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학교에서만이라도 교사가 그런 소리, 파업하는 노동자 = 빨갱이라는 말을 할 수 없게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교사는 노동자가 아니란 말인가?

그 교사는 자신의 말로 인해 아이들이, 노동자의 아이들이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지 생각해 보았을까?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데... 이 부분, 참 마음이 아팠다. 아직도 그런 교사들이 있다는 사실에.

교육이 변하지 않으면, 교사가 바뀌지 않으면 노동자들은 계속 자신들의 권리를 행사할 때 눈치를 볼 수밖에 없겠단 생각이 든다.

아무리 교사의 권위가 떨어졌다고 해도 학교에서는 아직도 절대적인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교사니까 말이다.

 

의자놀이에 대해서는 설명을 안해도 알 거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도 나와 있으니.. 그 잔인한 게임이 우리가 즐겨 하던 게임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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