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 통권 129호 - 2013년 3월-4월
녹색평론 편집부 엮음 / 녹색평론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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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에서 이야기하는 것들이.

 

우리가 타이타닉 자본주의에서 벗어나는 길을 보여주고 있는 이 책이.

 

가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앞을 보여주고 내 자신의 생각이 짧음을 보여주고 있는 이 책이 늘 한곳에 머무르지 않게 한다.

 

고인 물은 썩는다. 그래서 썩지 않기 위해서도 이 책을 읽는다. 두 달에 한 번 무언가 내 사고에 정체되어 있는 점이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도.

 

이번에는 "힐링"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한 해 동안 엄청나게 "힐링" 열풍 속에 살았다. 어디를 보아도 힐링, 힐링이었다. 치유다. 치유라는 얘기는 병들어 있다는 얘기다.

 

유마거사는 세상이 병들어서 자신도 병들었다고 했는데, 이 힐링에서는 소위 "멘토"들은 병들지 않고 치료법을 알고 있는데, 다수의 사람들이 병들어 있다는 느낌을 준다. 함께 앓지 않는다. 아니 앓을 필요가 없다고 얘기한다.

 

그런 힐링 열풍이 휩쓸고 지나갔고, 또 아직도 그 잔재가 남아있다. 그런데, 그 때 힐링이 되었을지라도 진정한 치유가 이루어졌는가 하고 되묻는다면 답은 아니다다. 그 때는 치유됐다고 생각했는데, 치유된 것이 아니라 잠시 진정이 된 것일 뿐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진정한 치유는 뿌리부터 바꾸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작 바뀔 것은 바뀌지 않았는데, 내 생각이 바뀌었다고 해서 해결이 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힐링에서 내 생각을 바꾸면, 내 태도를 바꾸면 된다는 처방을 받지 않았던가. 그렇게 문제제기를 한다.

 

뿌리부터 바꾸기 위해서는 위로부터의 위안이 아니라, 내 자신의 변화, 함께 하고자 하는 사람들과함께 하는 모습을 지니는 것. 그것이 필요하다.

 

즉, 내 탓이요, 내 탓이요도 좋지만, 내 마음을 힐링하는 것도 좋지만, 뿌리가 바뀌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늘 힐링이 필요하리라는 사실을 깨우쳐주고 있다. 이번 호에서.

 

이와 더불어 이번 호에서 관심있게 읽은 부분은 "도시 농업"이다.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일본에서도 러시아에서도 도시농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또한 이런 도시농업은 자본을 떠나서 존재할 수 있다는, 즉 성장과는 무관하게 존재할 수 있는 경제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번 호에서는 앞으로 도시 농업이 어쩌면 우리의 살 길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폭발적으로 도시 농업, 간단하게 말해서 텃밭 농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늘고 있는 현실에서, 그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도시농업협동조합도 생기고 있다고 하니, 삭막한 우리나라 도시가 농업과 함께 하는 도시가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기본적으로 환경, 생태에 대해서는 글이 계속 나오고 있으니, 생태적인 삶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꼭 읽어봐야 할 책이고, 최근 몇 년 동안은 꾸준히 핵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많은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여기에 원자력 발전으로 인해 우리나라 한 마을이 어떻게 파괴되어 가고 있는지도 보여주고 있으니, 원자력은 단지 환경만이 아니라, 우리에게서 이웃을 앗아가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도 깨닫게 해주고 있다.

 

결국 "녹색평론"은 언제나 정체되어 있던 사고를 새롭게 자극하고 있다. 어떤 방식의 삶이 바람직한 삶인가? 어떻게 살아야 우리가 잘(그야말로 돈을 떠나서)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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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100년 - 오연호가 묻고 법륜 스님이 답하다
법륜.오연호 지음 / 오마이북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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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라는 속담이 있다. 아무런 쓸모가 없는 일을 할 때 쓰는 말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 혹시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했다. 그것이 기우였음은 책을 펼치고 얼마 안돼 깨달았지만.

 

이유인즉슨, 오연호가 대담한 책이 두 권인데, 지금까지 내가 읽은 것은, 그것들은 다 2012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조국과 대담한 책 "진보집권플랜"은 2012년 선거에서 진보가 어떻게 하면 집권할 수 있는가를 이야기하고 있었고, 이번 법륜 스님과 대담한 책도 2012년 선거의 중요성을 계속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국회의원과 대통령 두 선거 모두 진보(?) 쪽의 패배로 귀결되고 말았으니, 이런 책을 지금에서 읽는다는 것 자체가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두 책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과연 이 두 책이 몇 번의 선거를 목표로 쓰여졌을까 하는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다. 단지 바로 앞에 닥친 선거에서 어떻게 해야 한다는 목적을 지니고 쓴 책들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좀더 장기적으로 사회의 발전을 이끌고자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을까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진보집권플랜"도 선거가 끝났으니 용도폐기해야 한다가 아니라, 선거가 패배로 끝났으니 더 이 책을 꼼꼼하게 읽고 무엇인 문제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계기로 삼아야 하고, 법륜 스님과의 이 책도,2012년 선거결과가 스님이 원하는 방향과는 맞지 않는 쪽으로 나왔지만, 그렇기에 더 길게 보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을 잡는 참고자료로 삼아야 한다.

 

사람의 일생을 길게 보면 100년인데, 그래서 사람들이 앞을 내다보는데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하지만, 적어도 이성적인 동물인 사람은 최소한 자신의 당대뿐만이 아니라, 후손들이 살아갈 세상을 바라보면서 일을 해야 한다고 하면 최소한 100년 앞은 내다보는 정치를 하겠다는 정치가를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런 정치가를 선택할 수 있는 판단력을 키우는 일, 그것이 시급한데, 그러기에 스님은 바쁘게도 강연이다 뭐다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100년 앞을 내다보고 정치를 한다면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통일"이라고 한다. 남과 북으로 갈려서 얼마나 많은 손해를 입고 있는가? 하여 스님은 통일은 자식을 키우는 일이라고 한다. 우리가 부모를 봉야한다는 고민으로 통일비용, 또는 통일 노력에 비유하지 말고, 새로운 자식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 그것이 바로 통일에 대한 고민이라고 한다.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 갖춰야 할 조건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우선 역사의식. 역사의식이 없고서는 통일을 이룰 수 없다고. 단지 통일만이 아니라 역사의식이 없다면 정치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지금 정치인들의 역사의식의 빈곤을 꼬집고 있다.

 

그렇다 현재는 과거로부터 진행되어 왔고, 이 현재에는 과거와 미래가 함께 공존하고 있다. 역사는 단지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가 아니라 왜 자식이 죽게 되었는지, 자식을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지침서다.

 

그래서 스님은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고, 역사기행을 해야 한다고 한다. 특히 만주지역으로... 그리고 우리나라 고대사와 근현대사에 대해서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주고 있다. 많은 도움이 된다.

 

두번째는 시대를 읽는 힘, 즉 국제정세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다. 각 시대에는 국제정세를 제대로 파악하느냐 파악 못하느냐에 따라 일의 성패가 좌우되곤 했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가 처한 국제정세를 정확히 판단하고 행동을 해야 우리나라가 성공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상태 속에서 다름을 인정하는, 우선 상대를 인정해주고, 그 다음 서로 평화적으로 합의를 하면서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을 한다면 통일은 먼 이야기가 아니라고 한다. 바로 우리가 이룰 수 있는 일이라고 하고, 우리가 통일을 이룬다면 그 자신감으로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고 동북아 공동체의 주역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한다.

 

이런 논의를 따라가면 향후 100년 우리나라의 살 길은 통일에 있음을 알 수 있다. 통일은 할 수 있는 가능태이자 우리가 해야만 하는 당위이기도 하다.

 

통일에 대한 인식, 그리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정치가. 하지만 정치가는 우리가 마냥 기다리기만 해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들이 통일의병이 되어서 활동할 때 우리와 함께 할 정치가도 나올 수 있다고 한다.

 

우리 모두 통일의병이 되자고 하는 법륜 스님. 그렇다고 해서 무슨 열사와 같은 죽을 각오로 통일의병이 되라고는 하지 않는다. 개인의 행복과 사회의 행복이 일치될 수 있게 자신의 마음도 다스리면서 자신의 행복도 추구하면서, 아니 자신의 행복추구가 결국 사회의 행복추구가 되고, 사회의 행복 추구가 개인의 행복추구가 될 수 있도록 하라는 말이다. 누구의 희생을 요구하는 운동이 아니라다.

 

그렇기에 강행군을 하면서도 스님의 표정이 밝은 것이리라. 마지못해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꼭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하기 때문에... 내 일이 내 행복만이 아니라 사회의 행복도 추구한다고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이미 지난 일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100년, 아니, 스님의 스승께선 1000년 앞을 바라보라고 하셨다고 한다. 그런 시간에 비하면 5년은 아무 것도 아니다. 이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간일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시작해야 한다.

 

과거를 묻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 일, 그것이 이 책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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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 -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여행
신은미 지음 / 네잎클로바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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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텔레비전에서 "똘이장군"이라는 영화를 자주 방영했었다. 북한의 지도자는 탐욕스러운 돼지로, 북한을 유지하는 관료들은 늑대로 그려진 영화.

 

그 전에 저학년 때 배웠던 교과서에서는 북한 사람들은 늑대로 표현이 되기도 했지.

 

어린 시절, 정말, 그들은 우리와 다르다는 생각을 했고,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빠져 있기도 했다.

 

여기에 일명 삐라라고 하는 것들이 도처에 떨어져 있었고, 이것을 경찰서에 갖다 주면 공책을 주곤 했었는데... 정말로 다른 존재들, 함께 해서는 안될 존재들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대학에 들어가서 루이제 린저의 "또하나의 조국"이라는 책을 읽고, 북한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우리의 또하나의 조국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여기에 북한에 갔다가 온 황석영이 쓴 "사람이 살고 있었네"에서 그 땅에도 역시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여기에 코리아기를 들고 단일팀이 만들어지기도 했고, 남북교류가 일어나기도 했는데...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오영진이 그린 만화 "남쪽 손님", "빗장열기", "평양프로젝트"가 나왔다. 정말 이웃집 사람같은 그들. 경계는 허물어졌다.

 

하지만, 이제 또다시 긴장이다. 남북교류는 최소한으로 줄었으며, 군사적 긴장은 한층 고조되어 있다. 과거로 돌아가고 있는 걸까?

 

이 때 북한에 갔다온 재미교포의 북한 여행기가 나왔다. 대한민국 국적으로는 갈 수 없는 나라지만, 미국 국적으로는 갈 수 있는 나라. 오직 세계에서 유일하게 대한민국 국민만이 갈 수 없는 나라가 바로 북한이 되어 있다.

 

북한의 주적은 우리가 아닌 미국일진대, 그런 미국인도 북한에 갈 수 있는데, 우리는 한민족임에도 갈 수가 없다니...

 

그렇기에 재미교포의 북한 여행기는 의미가 있다. 재미교포라고 하지만, 우리의 감정과 비슷한 감정으로 북한에 갔다왔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특히 이 책이 더 의미있게 다가온 것은, 정통 기독교 신자에다가 보수주의자, 그리고 반공교육을 철저히 받은 사람이 직접 북한에 가서 보고, 듣고, 겪은 일을 이야기 해주어서이다.

 

그것도 한 번이라는 일회성 방문이 아니라 세 번에 걸쳐서 북한 곳곳을 여행하고 왔다는 점이다. 아직 힘들게 지내고 있는 북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 지나치게 나타난다는 점이 좀 걸리긴 하지만, 어렵게 지내는 동포에게 연민을 지니는 것은 사람이면 당연히 갖게 되는 마음 아닐까 하고, 더 마음쓰는 그 모습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아직 늦지 않았다. 북한과 우리가 교류하기에는. 아니, 우리는 교류를 해야만 한다. 한민족이 함께 하지 못하는 이런 비효율을 없애야 한다.

 

서로의 오해는 자주 만나야 풀린다. 체육이든 경제든, 문화든 서로 교류를 해야 한다. 그렇게 되어야지만 우리도 북한도 함께 살 수가 있다.

 

이 책은 그런 점을 더욱 느끼게 해준다.

 

갈 수 없는 나라. 그에 대한 그리움을 이 책이 대신 풀어주고 있다. 하루빨리 이런 책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우리가 그곳을 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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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간 줄이고 농촌을 살려라 - 변산농부 윤구병과의 대화 이슈북 4
윤구병.손석춘 지음 / 알마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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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구병은 특이한 경력을 지닌 사람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보면.

 

그는 철학교수였다가 그만두고 농부가 되었다. 변산공동체에서 농사를 짓고 살았고, 지금은 보리 출판사에서 출판일을 한다고 한다.

 

출판일은 그에게 낯설지는 않을터. 젊은 시절에도 출판사에 몸담은 적이 있었으니 말이다.

 

직접 농사를 지었던 농사꾼으로서, 또 한 때는 철학자였던 사람으로서, 지금은 세상에 도움이 될 책을 펴내는 사람으로서 그에게 지금 이 시대에 대해서 묻고 답을 듣는 일은 의미가 있는 일이다.

 

여기에 손석춘이라는 언론인이 질문을 하고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다. 웬지 믿음이 가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있는 모양이 되는데... 에둘러 이야기하지 않고 똑바로 이야기해서 읽으면서도 이게 무슨 뜻이지 머리를 쓸 필요가 없다.

 

그래, 그런가? 아니지, 아닐 수도 있지. 이런 생각을 바로바로 하게 된다.

 

어쩌면 이야기의 시작이 '바르게 말하기(부르기)'에서 시작하는 것이 당연하다 싶을 정도다. 우리말을 잃어가고 있는 현재 상태는 이미 옳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라고 질타하고 있다. 처음부터.

 

쉬운 우리말을 버리고 외국말을 버젓이 쓰고 있는 사람들에게 경고하는 의미도 있지만, 제대로 된 말을 잃으면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을 공자를 들어서 알려주고 있다. 공자도 역시 바르게 이름하기(正名)를 우선으로 했다고 하니...

 

이런 말의 문제에서 노동의 문제로 넘어가면, 우리나라는 지금 명목상으로는 8시간 노동을 한다고 한다. 주5일 8시간이면 일주일에 40시간을 일하게 된다. 그러나 지금 주당 40시간을 일하는 직장은 많지 않다. 8시간 노동도 잘 이루어지고 있지 않는 나라에서 윤구병은 6시간 노동을 주장한다.

 

어라? 6시간이라고? 이거...마음에 와닿는데...  경제학자 가운데 강수돌이 주장하는 일중독에서 벗어나기와 관련이 된다는 생각이 든다.

 

6시간 노동을 하는 곳이 있냐고? 있다. 바로 윤구병이 대표로 있는 보리출판사. 이들은 이미 6시간 노동을 하고 있다.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한다.

 

모두들 6시간 노동을 하면 그만큼 일자리가 늘어날 수 있다. 또한 여유 시간이 생긴다. 그 여유 시간에 사람들은 여러가지 일들을 하게 된다. 사회가 풍요로와진다. 일을 많이 한다고 풍요로와 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인식의 전환.

 

이것은 게으른 삶을 찬양하는, 러셀이나 라파르그를 들 필요도 없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삶 자체가 여유로운 삶 아니었던가? 그러니 말을 '게으른' 삶이라고 하지 말고 '느린' 삶이라고, '여유로운' 삶이라고 하자. 그러면 6시간 노동은 우리에게 할 수 있다가 아니라 해야만 하는 노동시간으로 다가오게 된다.

 

여기에 농촌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사람이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먹을거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럼에도 먹을거리를 기르는 일에는 관심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더 무시한다. 이것은 사람들의 삶을 유지해 나가는데 걸림돌로 작용을 할 것이다.

 

그래서 윤구병은 젊은이들은 적어도 농촌생활을 경험해봐야 한다고 한다. 시대에 뒤떨어진 소리 같지만, 삶과 동떨어진 도시의 생활로는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정치인들, 먹물같은 소리만 하지 말고, 현실을 바르게 보고, 정말로 우리네 삶에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을 한다면 농촌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귀농을 하겠다는 사람이 많지만, 아직도 시골에는 빈집이 많고, 노는 땅이 많고, 황폐해져 가는 땅이 많다. 이런 땅들을 살려야 한다고, 그래야 우리가 산다고 그는 호소하고 있다.

 

요즘 가장 급진적인 주장은 우리네 삶은 우리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하고, 그런 태도를 지녀야 한다는 윤구병 같은 농사꾼의 말이다.

 

그런 농사꾼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단지 귀담아 듣는 데서 끝내지 말고 실천을 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산다.

 

돌려말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사람. 윤구병. 그의 말이 절절히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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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을 포개다 - 배제된 자들의 민주주의를 향하여
김소연 외 3인 지음 / 꾸리에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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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누가 할까?

정치를 하는 사람이 정해져 있을까?

고대 사회나 중세 사회에서는 정치를 하는 사람은 정해져 있었다. 하다못해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했다고 하는 아테네에서도 민주주의의 주체들은 시민계급이었으며, 나머지 계급들은 정치에 참여하지 못하는 인간이 되지 못하는 존재에 불과했다.

 

모두가, 사람이라면 직업, 신분, 종교, 나이, 인종, 장애, 성별 등에 차별받지 않고 누구나 정치에 참여해야 할 수 있다고 하는 세상이 근대에 들어와서 이루어졌다. 이제는 나이를 제외하고는 어떤 차이 때문에 정치에 차별을 받으면 안된다는 이야기는 하나마나한 얘기와 다름이 없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민주주의가 실현된다고 하는 지금, 과연 우리 모두는 정치에 참여하고 있을까? 오히려 정치에는 정치인이라는 특정 집단만이 참여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런 생각이 든다.

 

아렌트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아리스토텔레스가 했다고 하는 말을 사실은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라고 한다. 그렇게 해석이 되고 그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라고 한다.

 

정치적인 동물이 바로 사람인데, 근대의 제도는 대의민주주의라고 하여 직접민주주의에서 멀어졌고, 사람들을 정치에 이끄는 것이 아니라 정치에서 멀어지게 하고 오로지 생존을 위한 삶에 매몰되게 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런 정치에의 무관심을 깨고 모든 사람이 정치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한 단계 도약이 필요하고, 이런 도약을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한다. 자신의 전 존재를 내걸 수 있는 용기.

 

사람들이 그런 용기를 지니지 않을 때 특정한 집단이 사람들을 대변한다고 나서서 직업인으로서의 정치인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직업인으로서의 정치인은 자신이 대변한다는 사람들로부터 이미 한 걸음 물러나 있게 된다. 그리고 정치인이 아닌 사람들 역시 정치에서 물러나게 되어, 결국 자신의 삶을 스스로 대변하지 못하게 된다.

 

이런 정치의 관행을 깨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치인이라는 직업에 별 기대를 걸지 않고, 자신이 정말로 정치적 인간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 그들이 독자적으로 대통령 후보를 내었고, 선거운동도 했다. 물론 결과야 그다지 좋았다고 할 수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들이 그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을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결과를 예상했음에도 해야만 했고, 할 수 있었기에 그들은 척박한 땅에 발자국을 남기려고 했고, 또 발자국을 남겼다. 그 발자국 위에 또다른 발자국들이 포개진다면 땅에 없던 길이 나게 된다. 마치 루쉰이 했던 말처럼.

 

길이란 무엇이던가? 없던 곳을 밟고 지나감으로써 생기는 것이 아니던가. 가시덤불을 개척함이 아니던가. 길은 이전에도 있었고, 앞 으 로 도 영 원 히 있 다.

(루쉰아포리즘, 희망은 길이다. 이욱연 편역, 예문출판사 20쪽)

 

 

세상에 분투 없이 열리는 길은 없다.     (앞의 책 22쪽)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땅 위의 길과 같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앞의책 22쪽)

 

그래, 이제 길이 나기 시작했다. 이 길이 지금은 아주 작은 가시덤불로 뒤덮여 있는 길일지라도 한 사람, 한 사람 발자국을 포갠다면 더욱 큰 길이 될 것이다. 멀리서도 잘 보이는, 누구나 갈 수 있는, 또 가고 싶어하는.

 

이들이 왜 이런 길을 내려고 했을까?

 

그것은 총선이든, 대선이든 사회에서 배제되고 소외된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정치를 하는 정당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 정당은 말로는 민중을 위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표 때문이었음이 얼마 뒤 밝혀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정치는 특정한 사람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해야 함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만약 다른 정치인들이, 다른 정당들이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을 만들어, 배제된 사람, 소외된 사람들이 없게 또는 잠시 노동에서 떨어져 나왔더라도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더라면 이들이 우리도 우리의 권리를 위해, 아니 인간의 권리를 위해 정치를 하겠다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노동자가 대통령이 될 수 있나 하는 의문에는 녹색평론을 읽어보라고 하고 싶다. 브라질의 룰라라는 사람의 경우를 예로 든다면 그런 질문은 쏙 들어갈 것이다.

(녹색평론 125-126호 비서구 민주주의-브라질편(1)-(2) 참조)

 

정치는 하는 사람이 정해져 있지 않다. 우리 모두가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 제대로 된 정치가 이루어진다.

 

이 책 약간 늦게 읽었다.

 

대선 전에 읽었더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대선이 끝났다고 노동자(이 책에서는 노동자라는 말 앞에 수식어를 붙인다. 투쟁하는 노동자라고)들의 정치세력화가 끝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남이 내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내 문제는 내가 해결해야 한다. 이 책은 그걸 너무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말한다.

자, 내가 먼저 갈게.

내 발자국을 보고 따라와.

그러면 길이 보여.

아니, 길이 있어.

그 길은 우리가 만들어 가는 거야.

힘내자고!!!

함께 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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