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기원
토니 모리슨 지음, 이다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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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랑하는 인간이, 배제하는 존재를 만들고, 그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현실. 그것도 힘이 있는 자들이 그 힘을 인정받으려 다른 존재를 상정하는 행위. 이것이 타인이라는 말에 들어 있는 의미다. 그냥 단순히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일컫기보다는.


나와 다른 존재, 타인. 우리와 다른 존재, 이방인. 이는 곧 배제를 해야 한다는 말로도 들리는데, 타인이나 이방인이라는 말에는 단순한 다름이 아닌 다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다르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에게 없는 것을 배울 수 있고, 보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르기 때문에 몰아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강자가 아니라 약자다. 물론 이때 약자는 현실에서의 약자가 아니다. 약자가 강자를 배제한다고 한들 강자에게 어떤 어려움을 줄 수 있겠는가.


강자가 약자를 배제하면 약자는 생존의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는데, 그러므로 이때 쓰는 약자는 스스로 서지 못하고 자신이 홀로 서지 못하고 상대를 통해서 존재 의의를 찾는 존재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백인들이 흑인을 노예로 부릴 때 자신들의 생활에 필요한 많은 것들을 노예에게 의지했음에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상대를 인간 이하의 존재로 취급하는 모습들, 그런 모습들이 바로 백인에 의한 흑인의 타자화라고 할 수 있다.


인종 문제, 현대에서는, 특히 인권이 강조되는, 다른 나라의 인권 문제까지 걸고 넘어가는 미국에서,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문제같지만, 아니다. 미국에서는 여전히 인종 문제가 심각하다. 오죽했으면 몇 년 전에, 불과 몇 년 전이다. 흑인 대통령을 (뭐 이 책에도 나오지만 한 방울의 피가 섞여도 흑인은 흑인이라고 했던 때가 있었으니) 배출했음에도 흑인들은 여전히 경찰에 의해서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는 구호가 지금도 유용하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토니 모리슨이 쓴 이 책은 그러한 인종 차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젠더나 경제적 차별도 있지만 흑인들이 생활에서 겪는 인종 차별. 문학에 나타난 인종 차별을 이야기하면서, 백인들에 의해 흑인이 어떻게 타인이 되었는지를 살피고 있다.


우선 모리슨은 '인간은 우리 부족 사람과 그 밖의 사람을 구분지은 뒤 상대를 적으로, 즉 취약하고 결핍이 있으며 통제가 필요한 대상으로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다(26쪽)'고 한다.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을 결집하기 위해 타인을 설정하고, 그들을 자신들이 통제해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고 행동한다는 것, 이는 '자기 집단의 신념을 강화하기 위해 타자를 만들어 세움으로써 비슷한 방식으로 타 집단을 통렬히 비난해왔다'(29쪽)는 말로 표현된다.


이런 역사가 있으니 타인을 배제하는 마음이나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강자들에게는 더더욱. 이들은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약자들을 타인으로 규정하고 배제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이 살아오면서 자연스레 그러한 모습들을 보고 자랐기 때문이다.


모리슨은 '타자화는 강의나 교육을 통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남이 하는 것을 보고 따라 배우게 된다'(30쪽)고 한다. 이는 생활에서 자연스레 몸에 배게 되는 것이다. 한번 몸에 밴 습관을 바꾸기가 얼마나 힘든지는 우리나라 속담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에 잘 나와 있으니...


이렇게 보고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면 그들이 보고 배울 수 있는 것 하나하나에 신경써야 한다. 이것이 얼마나 힘든지는 단어 하나, 몸짓 하나가 상대에게 얼마나 상처를 주는지를 고려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된다.


'서로 무해하게 접근하기 위해, 고작해야 푸른 공기일 뿐인 우리 사이의 거리를 뛰어넘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자원은 적지만 강력하다. 언어와 이미지, 그리고 경험이다'(71쪽)고 모리슨이 말하고 있는데, 언어와 이미지, 경험을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문학을 비롯한 예술이다. 예술이 간접경험이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고, 토니 모리슨이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허구적 서사는 타자, 즉 이방인이 되거나 혹은 이방인이 되어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통제된 야생 상태를 제공한다. 이곳에서 동정심과 명료한 눈을 가져볼 수 있고 자기 성찰의 위험을 감수할 기회도 얻는다'(143쪽)고 모리슨은 주장하고 있으니... 


문학(예술)이 왜 우리에게 필요한지, 그리고 문학(예술)에 왜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를 이보다 명료하게 표현할 수는 없다고 본다.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서 타인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적어도 이런 노력을 해야 만물의 영장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토니 모리슨이 주장하듯이 '언어와 이미지, 경험'이 중요한 자원이라고 하면 이것들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것이 문학(예술)이니, 문학(예술)에 대한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 글에서 토니 모리슨은 문학에 나타난 인종차별에 대해서 따끔하게 지적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타인을 만들어내고 있으니까, 이런 작품은 비판을 받아야 하고, 그러한 작품을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는 눈을 길러야 함을 생각하게 한다.


더불어 이 책을 읽으면서 토니 모리슨이 쓴 작품 중에 아직 읽지 못한 작품을 읽고 싶단 생각도 했다. 자신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이 책에 나와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자고로 좋은 책은 다른 책으로 독자를 인도하는 책이기도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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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전쟁 - 가장 사적이면서도 공적인 공간에서 펼쳐진 특권, 계급, 젠더, 불평등의 정치
알렉산더 K. 데이비스 지음, 조고은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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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인간 생활에서 필수적인 요소다. 식사와 배출은 우리 인간이 생존하는데 하지 않을 수 없는 행위 아닌가. 


이런 화장실을 두고 갈등이 있었다. 지금도 있다. 어떤 화장실이냐에 따른 갈등인데, 우리나라에서도 최근에 성중립 화장실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이를 두고 갈등이 일기도 했다. 트랜스젠더들을 위한 공간 아니냐고, 아직도 케케묵은 윤리 운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성중립 화장실에 대해서 찬성하고 있다.


누구도 눈치보지 않고 화장실을 이용할 권리가 있지 않을까? 화장실을 놓고 다양한 갈등들이 있지만, 여기서는 젠더 갈등으로만 국한시켜 보자.


예전의 화장실은 남녀 구분이 없었다. 누가 힘들었을까? 여성이다. (논의의 편의를 위해 법적으로 인정하는 단 두 성만을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화장실 문제 또한 제기할 수밖에 없다.


남녀 분리 화장실이 만들어진 이유는 여기에 있다. 여성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의미에서 남녀 분리 화장실이 만들어졌다. 거의 같은 크기로?


다시 문제가 된다. 화장실을 이용하는 시간이나 행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도 심심찮게 보는 모습이 남녀 화장실 앞에 줄이 길다면 이는 십중팔구 여성화장실 앞이다. 


그래서 화장실 비율이 대두되었다. 남자 변기보다 1,5배 이상 많은 변기를 배치해야 한다는 주장. 그것이 받아들여져 여성의 화장실이 더 확장되어 편리를 증진시키고 있다. 이게 평등일까?


또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트랜스젠더와 같은 사람들은 어느 화장실을 이용해야 할까다. 그러니 이제는 성중립 화장실을 만들자는 주장이 나온다. 그렇게 만든다. 성중립 화장실을 만드는 과정이 이 책에 잘 나와 있다. 이러한 화장실을 두고 겪어온 갈등들도 잘 나와 있고.


성중립 화장실을 만드는 문제가 미국의 진보적인 대학에서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들의 진보성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였으니... 또한 그러한 대학들은 지명도만큼이나 재원을 쉽게 확보할 수 있었기에 빠르고 쉽게 성중립 화장실을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다른 계급, 계층의 문제가 발생한다.


화장실을 두고 단지 성별 갈등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특권층은 이상하게도 진보적인 문제에 쉽게 접근한다. 그리고 수용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자신들의 특권을 뒷받침하는데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고 싶어도 하기 힘든 곳이 있다. 법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남녀 분리 화장실이 있는 곳에 성중립 화장실을 만들려고 하면 배관의 문제, 즉 건축의 문제가 발생한다.


쉽게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장소에 만들고 싶은데, 기존 건물이 지니고 있는 환경이 이를 용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화장실에는 역사가 개입한다. 문화와 건축이 개입한다. 또 재력, 돈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점을 각 장에 걸쳐서 잘 보여주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중립 화장실은 확산되어 나갔다. 지금도 확산 중이다. 왜냐하면 성소수자만이 아니라 가족들, 장애인들,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 모두에게 이로운 화장실이기 때문이다.


즉 사회적 약자층이 쉽게 이용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은 더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건축, 시설의 기준을 약자에게 두어야 한다. 가장 접근하기 힘든 사람이 쉽게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 그것도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하여 이렇게 만들어진 화장실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사회적 편리가 증대한다. 여기에 많은 젠더 갈등들이 있었지만, 조금 더 어려운 사람들을 배려하는 쪽으로 화장실이 개선되어 왔음은 자명하다.


왜 화장실인가 했더니, 이 화장실에 젠더 갈등을 볼 수 있는 요소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관습과 문화 또 갈등들을 볼 수 있고, 특권층이 오히려 더 쉽게 화장실을 개선하고 있었다는 다소 의외의 모습 (그것이 바로 자본의 힘이기도 하고, 그들이 계속 특권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이것은 약자들에겐 도움이 되는 방향이기도 했다)도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화장실은 단지 젠더 차원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장애-비장애, 부유층-빈곤층, 명문대-비명문대, 보수-진보, 관습-개혁 등등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그래서 지금 화장실을 보면 어떻게 사회의 관습이 변해왔는지를 파악할 수가 있으니... 성중립 화장실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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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교육 - 덜 너그러운 세대와 편협한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조너선 하이트.그레그 루키아노프 지음, 왕수민 옮김 / 프시케의숲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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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의도와 나쁜 생각이 만나 어떻게 한 세대를 망치고 있는가'라는 문장이 원래 부제라고 한다. 지금 미국 사회를 분석하고 있는 책인데, 2018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지금도 다시 트럼프 시대니, 지금이라고 해도 된다.


이때 저자들은 미국 대학에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강연을 취소하게끔 강제하는 일들이 빈번해지는 것을 보면서 어째서 이렇게 극단적인 배타적 사회가 되었는지 생각을 한다. 나와 다른 생각을 지닌 사람을 용납하지 못하는 사회. 그런 사회가 행복할 수는 없다.


다양성이 사회를 더 풍요롭게 한다는 것에는 대부분 동의하지만 실제 사회에서는 다양성을 억압하고 자신들의 관점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 문화, 관습, 제도라는 이름으로 그 속에 속하고 따르기를 바라는 경우, 그러한 것에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을 배제시키는 모습들을 흔히 발견하곤 한다.


사회에서 이익 공동체에서는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있겠지만 진리 탐구의 장이라고 하는 대학에서는 다르다는 이유로 배제하면 안 되는데, 현재 미국 사회에서는 그러한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어째서 그럴까?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서로를 용인하고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내 편, 네 편을 확연하게 가르고 내 편이 아니면 배제해야 할 존재로 취급하는 문화를 지닌 나라가 과연 좋은 나라라고 할 수 있는가?


이런 관점을 번역자들은 '나쁜 교육'이라는 제목으로 달았다. 사람은 교육을 통해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존재하게 되니까. 이때 쓴 '교육'이라는 말은 학교 교육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가정에서부터 사회까지 존재하는 사고방식, 행동방식들을 통해 의식적으로 또 무의식적으로 습득하게 되는 과정을 '교육'이라고 한 것이고, 그것이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나쁜 교육'이라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미국 사회를 분석한 책이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도 적용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 역시 미국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양극화가 심하며 - 완전한 양당 체제라고 할 수 없지만, 미국도 민주당-공화당이 양당 체제를 구축하고 있지만 군소 정당들도 있으니- 다른 의견을 배척하는 경우도 무척 많다.


특히 대학에서 학문적 다양성은 말할 것도 없고 사상적 다양성도 잘 인정이 되지 않고 있는 현실이지 않은가. 미국 대학의 교수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진보라고 생각한다는데, 우리나라 교수들은 어떤지?


보수든 진보든 대학은 다양한 사상들이 논쟁을 통하여 진리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데, 어느 한쪽의 사상만을 가르치는 대학이라면 그 대학은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지금 미국 사회는 세 가지 잘못된 신념으로 인해 위기에 빠졌다고 한다. 그 잘못된 신념은 


. 유약함의 비진실 : 죽지 않을 만큼 고된 일은 우리를 더 약해지게 한다.

. 감정적 추론의 비진실 : 늘 너의 느낌을 믿어라.

. '우리 대 그들'의 비진실 : 삶은 선한 사람들과 악한 사람들 사이의 투쟁이다. (17쪽)


이게 미국만의 일일까? 이런 사고 방식을 지닌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도 많지 않은가. 아이들에게 안전을 제공해야 한다는 말, 맞다. 아이들은 안전하게 자랄 권리가 있다. 하지만 안전과 모험을 구분하지 못하고, 아이들에게 모험할 기회조차도 주지 않으면, 아이들은 더 약해진다.


즉 헬리콥터 양육으로 인해 미국 아이들은 더더 불안감과 우울감에 휩싸이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어렸을 때 경험을 통해서 그러한 어려움들을 해결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대신 해결해주는 습관, 그것은 아이들을 더욱 나약하게 한다. 그러니 고된 일이 우리를 더 나약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는 고된 일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느낌을 믿으라는 것, 자신의 감정이 자신을 속일 때가 많다는 것을 우리는 알지 않은가. 오히려  아이들에게는 감정대로 행동하기보다는 이성으로 그 상황을 한번 더 생각하도록 해야 하지 않은가.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줘야지, 자신의 감정이 이건 아냐 하면 그냥 아닌 것으로 취급하도록 해서는 안 되지 않는가. 그러니 이성을 통해서 상황을 파악하는 태도를 지니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고 감정을 무시하자는 말은 아니다. 자신의 감정을 소중히 여기도록 해야 한다는 것은 기본 전제로 깔고 하는 것이니.


사람들을 내 편과 네 편으로 가르고 네 편은 내 편이 될 수 없다고 하면 끊임없는 갈등만이 일어날 뿐이다. 물론 당연히 내 편과 네 편이 있다. 그것마저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내 편과 네 편 사이에 공통으로 할 수 있는, 해야만 하는 것들이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둘 다를 포함하는 더 큰 가치가 있음도 잊어서는 안 되고. 그래서 더 큰 가치를 실현하는데 나와 너가 다른 방법을 지니고 있다면 토론을 통해서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냥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하여 이런 비진실이 지금 우리를 감싸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것에 휩쓸리지 않는 선택을 할 수가 있다. 따라서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이것이 내가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인가, 내 감정에 치우쳐 판단하고 있지 않은가. 나와 함께할 사람을 내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먼저 한다면 지금과 같은 극단적인 갈등 상황 속으로 빠져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밖에도 다양한 극복 방법이 나와 있지만, 관점의 전환이 먼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적과 동지로 확연히 구분되지 않는다. 또한 무균실에서만 지낼 수 없듯이 편안함만을 추구해서도 안 된다. 그러니 이 점을 명심하자.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 가지 비진실이 있음을, 어쩌면 그 비진실 중 하나에 나도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는 습관을 지니자. 그러면 적어도 극단주의에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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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공화국 - 주권자 국민이 만든다
박승옥 지음 / 기적의마을책방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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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3일은 우리나라 사람들을 놀라게 했지만, 또한 기회를 주기도 했다. 위기가 기회라고 했던가, 쿠테타 세력을 뿌리뽑지 않으면 어떤 일이 생기게 되는지를 잘 보여주었으니.


이제 우리나라에는 비상계엄은 없을 거라고 안이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잠재되어 있었던 것이 터진 것. 한 사람에게 지나치게 많은 권력을 주고 그것을 적절하게 통제하지 못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2024년 12월 3일을 통해 우리나라의 앞날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 헌법으로 충분한가? 지금 헌법으로 부족하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꽤 오래 전부터 개헌 논의가 있었지만, 개헌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논의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논의가 제대로 되지 않고 개헌이라는 말만 나오다 사라졌다는 것은 정치권에서는 의지가 없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된다.


즉, 정치권에 개헌을 맡길 수 없다는 말이다. 최근 이 대통령이 개헌 논의를 국회로 넘겼다고 하는데, 국회가 제 기능을 하고 있는지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개헌은 여야가 자신들의 이익을 중심으로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중심에 놓고, 이 나라가 어떻게 해야 국민을 잘살게 할지를 논의해야 하는데... 지금도 서로 비난(분명 비판이 아니다)만 하고 있는 상태니.


또한 이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내려놓을 생각이 없다. 그러니 국회에 개헌 논의를 맡겨서는 아마도 논의만 되다가 끝나거나 또는 대통령 선출이라는 점만 손대고 끝날 수도 있다. 이것이 국민이 바라는 점인가.


광장에 나갔던 사람들이 원했던 개헌이 대통령 선출 방식을 바꾸는 데만 있는가? 아니다. 지금까지 40년 넘게 유지되어 왔던 헌법이 시대를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에 맞게 개헌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중에 대통령 선출에 관한 것도 포함되겠지만.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하지만, 국민이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날은 투표하는 날밖에 없다. 투표가 끝나면 다시 권력은 대리인들에게로 넘어간다. 그들은 자신들이 국민들을 대의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자신들이 권력을 쥐고 있다고 생각한다.


국회의원이든 지방자치단체장이든 선출직들이 그러한 모습을 지니는 것은 한번 선출되면 그 자리에서 쫓겨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이라는 최고 권력자를(사실 최고 권력자는 국민이다. 헌법에도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되어 있으니) 두 번이나 탄핵시켰으니, 권력을 견제할 수 있다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이건 워낙 예외적인 사안이다.


지방자치단체장이나 국회의원을 소환할 방법이 없다. 주민투표? 법에 없다고 한다. 그냥 참조 사항일 뿐이다. 이마저도 몇 번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러니 헌법 개정으로 7공화국을 수립하자는 말이 나오는 이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사실 탄핵 이후 헌법 개정 논의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졌으면 좋았겠지만, 이 책에서 우려한 대로 대통령 선거로 모든 관심이 쏠려 버렸으니, 때를 놓치기는 했지만, 개헌에 대한 필요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새로운 정부 출범에 맞춰 개헌에 대한 논의를 하면 된다. 그래서 지금 시대에 맞는, 국민들의 염원에 맞는 헌법을 갖추면 된다.


이 책은 그렇게 6공화국을 극복하고 7공화국을 이루자는 주장을 담고 있는데, 많은 논의가 담겨 있지만 핵심은 두 가지다. 권력을 실질적으로 국민에게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두 가지, 국민 발의제와 국민 소환제를 헌법에 명시해야 한다고.


정책이나 법률을 당연히 국민이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 발의는 꼭 필요하다. 자신의 의견도 내지 못하는 권력자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리고 권력자는 자신이 위임한 권력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사람을 소환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두 가지가 헌법에 명시되도록 개헌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덧붙이면 실질적인 지역자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하고.


이렇게 이 책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것의 핵심은 국민 발의와 국민 소환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되어야 제대로 된 7공화국으로 갈 수 있다고...


간혹 인정하기 힘든 주장도 있기는 하지만, 이 두 가지 주장에 대해서는 동감할 수 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했으면, 실질적으로 국민이 권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지. 투표날 한 표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차분히 헌법 개정에 대해서 논의를 해야 할 때다. 이 책도 그런 논의에 보탬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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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사랑 권하는 사회 - 진짜 사랑을 잊은 한국 사회, 더 나은 미래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김태형 지음 / 갈매나무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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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진짜 가짜가 있을까마는 굳이 제목을 '가짜 사랑 권하는 사회'라고 붙인 이유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파괴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해서~" 한다는 말을 참 많이도 하는데, 그 사랑이 상대를 위하기보다는 오히려 자기 만족을 위해서 발현되는 경우가 더 많지 않나 싶다.


저자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그러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학대 또는 파괴 행위를 멈추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그러한 문제를 개인에게서만 찾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서 이 책을 썼다.


가짜 사랑 권하는 사회에서 문제는 개인보다는 사회에 있는데, 그렇다고 사회 문제를 사회가 해결할 수는 없는 법. 사회는 개인들이 모여 이루는 공동체이니, 사회 문제 또한 개인이 풀 수밖에 없는데, 이 때 개인은 홀로가 아니라 함께여야 하고, 이 함께 풀 수 있는 문제를 파악하고 실천하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이다.


물론 답은 없다. 답이 있다고 해도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런 효과가 없기 때문이기도 한데, 적어도 문제만이라도 잘 파악한다면,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는 있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저자가 뽑고 있는 것은 '생존 불안과 존중 불안'(31쪽)이다. 이 둘은 서로 떨어져 있지 않고 함께 작동하는데, 생존 불안은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으로, 그래서 돈을 잘 벌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도록 준비시키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만든다. 존중 불안 역시 돈과 연결이 되어 있다. 


"돈을 못 벌면 굶어 죽는다."라는 생존 불안과 "돈 많이 못 벌면 무시당한다."는 존중 불안에 시달려서 정신이 황폐해져 있다(31쪽)고 저자는 말하고 있는데, 우리 사회에서 인기 있는 직업을 생각해 보라. 다 돈과 관련이 있다. 


큰소리 치는 직업, 부모가 밖에 나가 다른 사람에게 어깨 펴고 자식들 이야기할 수 있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자식들 성적이 좋아 소위 명문대라는 곳에 진학했을 때, 또 돈을 잘 버는 직업이나 권력을 지닌 직업(권력도 결국은 돈과 연결이 된다)을 가졌을 때 아닌가. 그렇지 않으면 부모 역시 밖에서 큰소리를 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자식들에게 공부해라 공부해라라는 강요로 이어지게 된다. 다 자식을 사랑해서 한다고 하지만 이는 결국 자신의 존중 불안을 메우려는 행위에 불과할 때가 많다.


이런 일들을 저자는 '사랑받기'라고 하는데, 이는 이미 아동기에 졸업했어야 할 마음이다. 어른은 사랑받기에서 '사랑하기(주기)'로 넘어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는 가짜 사랑이 판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사랑하기, 이는 대상을 중심에 두고 마음을 주는 행위다. 나를 중심에 놓는 것이 아니라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대상을 중심에 놓는 것. 그 대상의 행복과 발전을 우선하는 것. 그리고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는 것. 주는 행위에서 행복을 지니는 것. 이것이 사랑하기다.


'자기 자신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 너무나 귀중하여 그 대상을 우선시하고 앞세우는 것이 진짜 사랑'(166쪽)이라고 하니, 이런 사랑을 하면 사회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왜냐? 사랑하는 대상이 살아갈 세상이 변하지 않고는 그 대상이 행복해질 수 없으니까. 그 대상이 행복해질 수 있는 세상, 그리고 그 대상이 만나는 사람들이 행복한 세상이 되지 않으면 안 되니까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사회 변화를 위해서 행동을 하게 된다.


따라서 '인간을 사랑하는 사람은 당연히 평등한 세상을 원하게 된다.'(173쪽)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차별 받는 세상을 원하지 않을 테니. 또한 사랑하는 사람이 남들을 차별하는 등의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도 원하지 않을 테니.


사랑은 그 대상을 향한 맹목적인 추종과는 다르다. 맹목적인 추종은 사랑하기가 아니라 사랑받기다. 그 대상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 즉 존중 불안이 작동한 것이다. 그러나 사랑하기는 그 대상이 잘못 행동을 했을 때 바로잡으려는 충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가 바르게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만이 잘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잘살아야 서로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하기는 평등을 추구하고, 평등한 사회를 이루려 노력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즉, 사랑하기는 이기적인 사랑이 아니다. 한 사람에게 국한된 사랑이 아니다. 한 사람에서 모든 사람에게로 뻗어가는 사랑이 바로 사랑하기다. 그러므로 진짜 사랑은 '사랑하기'이고 가짜 사랑은 '사랑받기'다. 물론 사랑받기 시절을 거쳤다는 것을 전제로. 


저자가 제시하는 해결책에 대해서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들이 어쩌면 사랑하기가 아니라 사랑받기였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한다. 그것을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하여 이제는 사랑받기를 넘어서 사랑하기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그런 사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런 사회는 생존 불안을 우선 해소시켜야 한다. 적어도 생존에 대한 불안에 떨지 않도록 하는 것, 생존에 대한 불안을 떨쳐내면 존중 불안을 극복할 수 있다. 이런 사회는 어떤 사회여야 할까. 저자는 우선 기본사회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이 기본사회는 기본적으로 '국가가 국민의 생존을 책임지며 보장하는 사회'(235쪽)라고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기본소득, 무상교육, 무상의료 등을 실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다양한 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방안들은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나라가 국민이 생존을 걱정하지 않게 한다면,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사회로 좀더 수월하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랑의 문제를 개인에 국한시키지 않고 사회로 확장한 점이 좋았다. 그렇지만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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