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 헤아리는 마음의 이름 이름앤솔러지 1
오준호 지음 / 생각과느낌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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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나라에는 '자유'라는 말이 넘쳐나고 있다. 오죽하면 대통령 연설에 자유가 몇 번이나 나왔는지를 세어 발표하기도 하겠는가? 


자유는 중요하다. 인간이 자유로운 존재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속박당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자유가 남을 착취할 자유, 또는 굶어죽을 자유여서는 안 된다. 자유는 평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강자의 논리로 흐를 가능성이 농후하다.


평등이 자유와 대립되는 개념이라는 생각을 지닌 사람도 있지만, 평등과 자유는 같은 차원에서 논의될 문제가 아니다. 평등과 자유는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라 함께 가는 개념이다.


자유 없는 평등 없고, 평등 없는 자유 없다고 해야 한다. 그러니 자유란 말이 넘치는 이 사회에서 우리 평등이란 말도 그만큼 넘쳐나도록 하자.


어떻게 해야 하나? 이 작은 책에서는 평등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있다. 1장에서 6장으로 나아가는데 동심원을 그리듯이 점점 더 평등의 개념과 내용을 확장해가고 있다.


1장은 불행 배틀 시대, 평등의 의미를 묻다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불행 배틀은 경쟁으로 바꾸어도 된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오히려 삶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데, 경쟁도 마찬가지다. 경쟁이 아예 없을 수는 없다. 사람은 누구나 다르기 때문에 남과 비교를 할 수밖에 없다.


다만, 경쟁에서 진 사람들의 삶이 힘들어져서는 안 된다. 경쟁은 서로가 발전하기 위해서, 서로가 행복하기 위해서 할 때 의미가 있다. 그런데 경쟁이 서로를 불행하게 만든다면, 그런 경쟁사회는 지양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그렇지 않은가? 치열한 경쟁, 승자독식주의로 흘러가고 있으니, 경쟁에 대해서 다시 물어야 한다. 경쟁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면서, 경쟁을 공정하게 하자고 하는데, 공정에 대한 개념이 또 문제가 된다.


무엇이 공정한가에 대한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2장으로 넘어가면 평등은 어떻게 '상식'이 되었을까? 라는 질문을 한다. 평등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어떤 평등이냐다. 형식적 평등이냐, 실질적 평등이냐를 묻는다.


우리는 실질적 평등이 이루어지는 사회를 추구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3장, 평등한 시민들, 공정한 분배를 말하다로 넘어간다.


공정한 분배,,, 이것, 산수처럼 딱 1/N하는 것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다르게 분배할 수 있는 것, 그것이 공정한 분배다.


지체 장애가 있는 사람과 육상 선수가 100미터 달리기를 할 때 똑같은 선에서 출발한다고 하면 그것이 공정일까? 아닐 것이다. 신체적 특성에 따른 출발선의 차이. 그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공정한 분배란 환상일 수 있다. 누구나 자신의 관점에 따라서 다르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기에 공정한 분배를 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자연스레 4장으로 넘어간다. 공정한 사회를 어떻게 만들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 여러가지 제도들이 마련이 되고, 차별을 없애려는 노력들이 이루어져 왔다.


이 장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바로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전제되어야 하는 것. '평등한 시민들의 공정한 분배는 '차등의 원칙'을 포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정의로운 사회라면 차등의 원칙을 단순히 호소하는 정도를 넘어 제도로 만들어야 합니다.'(104쪽) 


이 차등의 원칙을 지킨다면 당연하게 5장에서 이야기하는 능력주의는 공정한가?라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답하게 된다.


능력주의는 결코 평등이 아니다. 능력에 따라서 대우를 받자는 것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기회가 제공되고, 과정이 공정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나 기회가 공정하게 주어진다는 말은 형식적으로 누구나 똑같은 기회라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이런 해석이 가능하면 '지역균형주의'라든가, '소수자 우대'는 불평등하다고, 능력주의에 반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아니다. 자신이 발휘하는 능력이 오로지 자신만의 고유한 능력이라는 것은 환상이다. 자신이 처한 환경에 따라서 능력은 다르게 발현된다. 기회가 똑같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런 점을 무시하고 능력주의를 숭상하게 되면, 그 사회는 차별이 공고화되는 사회가 된다. 자, 능력주의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마지막 6장이다. 한 걸음 더,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로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이 장에서는 기본 소득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적어도 생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기본 소득이 주어지는 사회. 그래서 저자는 '먼저 능력에 따라 소득을 분배하고 꼭 필요한 사람에게 추가 소득을 준다'(174쪽)는 분배 정의에 관한 통념을 '기본 소득으로 삶을 보장하고 더 일한다면 추가 소득을 올리게 한다'(175쪽)로 바꾸어야 한다고 한다.


여기서 기본 소득을 포퓰리즘이라고 공격하는 사람도 있는데, 기본 소득이란 말을 기본 배당이라는 말로 바꾸자. 공유 자원은 누군가가 독점하고, 거기서 나오는 소득을 자신만이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공유 자원에서 나오는 소득은 모두가 나누어 가져야 한다는 생각.


그러니 이는 소득이 아니라 배당이라고 해야 한다. 공유 자원의 정당한 배당. 우리는 이 지구에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지구에서 나오는 이익을 공유할 권리가 있다. 그러니 배당받을 권리가 있고, 그런 배당이 공정하게 이루어진다면, 좀더 평등한 사회가 될 것이다.


이 책의 제목에서 평등을 이야기하면서 '헤아리는 마음의 이름'이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평등은 나만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평등은 나와 남을 우리라는 관점에서 함께 생각해야 한다. 결국 다른 존재를 헤아리는 마음이 평등인 것이다.


이렇게 평등이 실현되면 개인의 자유는 더 커진다. 평등한 사회일수록 자유가 더 크게 보장되고,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자유가 제약을 받는다.


'자유, 자유'하는 이 시대, 그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도 우리는 '평등'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이 책의 제목처럼 '헤아리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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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 우리가 놓치는 민주주의 위기 신호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지음, 박세연 옮김 / 어크로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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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미국 민주주의가 트럼프로 인해 위기에 처했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민주주의 국가의 전범으로 불리는 미국에 전제주의 국가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는 인식. 그것은 곧 민주주의의 붕괴고, 대다수 사람들에게 재앙이 된다.


민주주의 붕괴는 제도를 무시하는 개인의 등장에서 비롯된다. 갑자기 튀어나온 개인... 갑자기라고 하지만 사실,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할 때 그 위기를 구원할 수 있는 인물로 제도권에 있는 사람이 아닌 사람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제도권에 대한 기대를 접고, 그 밖에 있던 사람에게서 지금의 난관을 타개할 능력을 기대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에게 많은 권한을 넘겨주게 된다. 그는 그 권한으로 위기를 넘기기도 하지만, 권한을 내려놓지 않고 기존 제도들을 무시하고 자신의 정책을 펼치기도 한다.


한 개인에게 지나치게 권력이 집중되면, 견제가 이루어지지 않고 민주주의는 붕괴되고 만다. 전제주의 또는 전체주의로 나아가게 된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그럴 가능성이 있을까? 미국을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이상적인 나라로 여기는 사람에게는 미국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일은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아니다.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이 된 이후 얼마나 많은 민주주의 후퇴가 있었던가? 이 책은 민주주의 후퇴를 세 가지 측면에서 살피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충분히 적용이 가능하다.


첫째는 심판을 매수하는 일이다. 심판이라 함은 삼권 분립이 이루어진 나라에서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입법부, 사법부를 자신의 의도대로 행하도록 하는 일이다.


이렇게 되면 견제할 수 없게 된다. 입법부를 장악하기는 힘들다. 대신 사법부를 장악하기는 쉽다. 미국에서 어떻게 연방 대법관 자리를 놓고 대통령과 입법부 사이에 견제와 투쟁이 일어났는지 이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대법관뿐만 아니라 헌법재판관 임명을 놓고 벌어지는 일들을 보라. 그래도 우리는 임명이 안 되는 경우는 없었는데, 또한 재판관 수가 정해져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는데, 미국은 대법관의 수가 정해져 있지 않아 법적으로는 권력의 입맛에 따라서 조정이 가능하다고 하니...


여기에 언론에 대한 통제까지 곁들이면 심판 매수는 끝나게 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언론에 출입을 금지한다든지, 보도를 가짜뉴스라고 몰아붙인다든지 해서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일을 한다.


트럼프는 이 일을 극단적으로 한 인물이지만, 과연 지금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있는가? 우리나라 정치는 심판을 매수했다는 말에서 자유로운가 생각해 볼 일이다.


둘째는 정적을 적으로 돌리는 일이다. 이는 상대편에서 유력한 정치인이 제대로 정치 활동을 하지 못하게 막는 일이다. 그에게 여러가지 죄를 뒤집어씌운다든지 또 그를 사회에서 용인하지 않는 주의에 동조하는 사람으로 만든다든지 하는 일이다.


트럼프가 힐러리를 범죄자로 몰아붙였듯이, 또는 오래 전 미국에서 매카시 상원의원에 의해 정적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붙였듯이 그렇게 정적이 자신과 같은 정치판에서 활동할 수 없게 만든다.


성공하기 힘든 전략이라고 하겠지만, 의외로 이 전략은 잘 먹힐 때가 있다. 바로 사회가 혼란스러울 때다. 경제가 침체되어 있거나 이념적으로 양분되어 있을 때 이런 전략은 잘 통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종북좌파'라는 말이 가장 잘 통했다. 여기에 요즘은 부패한 사람이라는 낙인까지 동원되고 있으니... 이는 상대 진영의 사람이 정치 활동을 하는 일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전략이기도 하다.


자기만 선수로 뛰겠다는 발상, 이것은 민주주의 원칙에 위배된다. 민주주의란 상대를 나와 같은 존재로 인정하는 일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상대의 이념을 박멸하기보다는 토론을 통해서 더 나은 길로 나아가려고 하는 데 민주주의가 실현된다고 할 수 있다.


셋째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드는 일이다. 기울어진 운동장, 대표적인 예가 선거구 조정이다. 미국은 게리맨더링이라고 해서 선거구 조정을 하는데, 인종과 경제적 차이를 반영하여 선거구 조정을 하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판을 짤 수 있다.


또 선거에 참여하는 일을 어렵게 만들어 소수가 자신들을 대변하는 사람을 선출할 수 없도록 하는 일도 가능하다. 


미국보다는 우리나라가 이런 일을 하기에는 좀더 어렵다고 할 수 있지만, 지금의 선거제도에서는 소수 정당이 원내에 진입하기는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미국은 확실히 양당체제라고 할 수 있지만, 우리 역시 양당체제라고 해야 한다. 다른 정당들은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기도 힘들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민주주의를 위기에 처하게 하는 사람이 어떻게 등장할까?


이 책은 그 점에서부터 시작한다. 어떻게 트럼프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아니 그런 사람이 어떻게 한 정당의 대표로 출마할 수 있을까?


트럼프를 극단주의자라고 한다면 예전에는 극단주의자를 걸러낼 능력을 정당이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극단주의자가 등장하면 서로 힘을 합쳐 그가 선출되지 못하게 하는 능력. 그것을 저자들은 민주주의라고 했다. (여기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극단주의자들이 등장하고 많은 표를 얻어 정당의 후보자로 추천된다. 그 이유는 바로 정당이 제 기능을 못하게 된 데 이유가 있다고 한다.


정치를 정당이 해야 한다는, 특별한 개인이 해서는 안 된다는 말에 여러 의견이 나올 수 있는데, 정당에 대한 불신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정당 밖에 있는 인물이 선출될 가능성이 많다는 사실. 그리고 그 인물은 자신의 인기를 바탕으로 권력을 휘두르기 쉽다는 것. 그가 권력을 휘두를 때 기존 제도는 무력화된다는 것. 이런 무력화는 다음 정권에서도 독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이 책의 저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일을 막기 위해서는 상대에 대한 관용과 제도적 자제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상대를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는 일, 지금 우리나라에서 과연 이 상대에 대한 관용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트럼프 시대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씁쓸하다.


그 다음 제도적 자제는 법에 있더라도 자제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불법이 아니면, 또 법에 명시되어 있으면 그 법을 활용해 자신의 권력을 집행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음에도 타협해서 하지 않을 수 있을 때 제도적 자제가 작동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제도적 자제는 한쪽이 법의 이름으로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일을 막을 수 있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정권이 교체되어도 이 관행은 지속될 수 있으므로, 일방이 아닌 대화와 타협이 가능한 정치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이 민주주의이기도 하고.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이지만 어쩌면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적용이 되는 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 나와 있는 지표를 적용하면 트럼프 시대와 지금 우리 시대가 너무나도 비슷하기 때문에... 그렇기에 더 민주주의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는 저항을 해야 한다고 한다.


'가능하다면 의회와 법원, 그리고 선거를 통해 저항을 해야 한다. ... 모든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중의 저항은 기본적인 권리이자 중요한 책임이다. 하지만 저항의 목표는 권리와 제도를 뒤엎는 것이 아니라 지키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274쪽)


'극단적인 양극화 상황에서 정치 지도자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첫째, 사회적 분열을 인정하면서 엘리트 집단 간의 협력과 타협을 도모하는 것이다. (277쪽) ... 미국의 양극화를 고착화하는 두 가지 요인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 가지 요인이란 인종적, 종교적 재편, 그리고 점점 더 심각해지는 경제 불평등을 말한다.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정당이 대변하는 대상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279-280쪽)'


미국의 상황에서 저자들이 제시한 대책이지만 이를 우리나라에 변용해서 적용할 수 있다. 국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들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는 일. 그리고 정당들이 국민들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도록 정당 개혁을 하는 일... 그렇게 하도록 정치에 참여하는 일이 그것일지도 모른다.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트럼프가 물러났다고 해결되었을까? 여전히 지속적이지 않나? 우리 역시 민주주의의 위기를 겪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책을 읽으며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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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 - 진실보다 강한 탈진실의 힘
제임스 볼 지음, 김선영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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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이 신발을 신을 때, 거짓말은 이미 지구 반 바퀴를 돌았다.'(312쪽)


요즘은 많은 언론사에서 팩트체크를 하지만, 팩트체크를 하더라도, 진실의 힘보다는 거짓의 힘이 더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번 터진 가짜뉴스는 계속해서 퍼져나가는데, 가짜뉴스를 가짜라고 알리는 기사는 널리 퍼지지 않는다. 게다가 자신들이 가짜뉴스를 보도했다고 정정하는 정정보도 역시 잘 안 보이는 곳에 아주 적은 분량으로 나올 뿐이다. 눈에 띄지 않게.


그러니 거짓은 엄청난 파급력을 지니고 퍼져나가지만, 진실은 거짓에 가려 드러나지 않는다. 앞에 인용한 말이 어느 정도 진실을 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은 크게 두 사건을 다룬다. 가짜뉴스라고 하기에도 뭣한 거짓, 아니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할 수 있는 개소리(bullshit)가 어떻게 정치에 영향을 주었는가를 보여준다.


하나는 미국에서 벌어진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일. 그는 거짓을 일삼았는데도 오히려 더 큰 영향력을 발휘에 대통령이 되었다. 그가 한 말들은 단순명쾌하다. 길지 않다. 그리고 강하다. 즉, 사실에 기반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그냥 몰아갈 뿐이다. 사실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전혀 고려 대상도 아니다. 자신에게 유리하게 날조된 말들을 날릴 뿐이다.


'아님 말고'가 아니다. 아님은 없다. 그의 말은 '대안적 진실'이라는 말로 없는 사실도 자신들이 원하는 사실이 되도록 하게 한다. 그러니 트럼프에게는 아님 말고는 없다. 그냥 그렇다다. 사실이냐고? 아니다. 내가 원하는 사실이다. 그것은 '대안적 진실'(203쪽)이다.


허무맹랑한 말이라고? 그 말을 누가 믿냐고? 믿는다. 너무도 많은 매체와 정보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자신이 원하는 말들을 전달해주는 기사는 너무도 구미에 맞는다. 구미에 맞는 말, 받아들이고 자신의 생각을 더 강화한다. 이건 진영논리라고 하기에도 뭣하다. 진영논리에는 최소한 논리라는 말이 들어있는데...


두번째는 영국에서 벌어진 브렉시트 문제다. 유럽연합에서 영국이 탈퇴하는 문제를 가지고 국민투표를 했을 때, 소위 개소리라고 하는 말들이 어떻게 국민들에게 먹혀들어갔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자신들의 삶을 결정하는 투표에서조차도 사람들은 사실을 하나하나 확인하지 않는다. 어쩜 확인할 시간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정보의 진실 여부를 판단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내가 두려워하고 있던 일을 콕 집어 말하면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지지를 하게 된다. 믿게 된다. 믿고 행동하게 된다. 그 결과 자신의 삶을 오히려 안 좋은 쪽으로 몰아가지만,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한다. 이게 바로 개소리의 힘이다. 개소리의 힘으로 예상과는 반대 결과를 이끌어낸 것이 바로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관한 국민투표였다.


이런 개소리를 팩트체크를 통해서 없앨 수 있다고 여기면 그건 오산이다. 이 책에서 누차 강조하고 있다. 팩트체크만으로는 안 된다. 이윤이 우선시 되는 사회에서, 돈이 안 되는 일은 언론에서도 잘 하지 못한다.


돈때문에 많은 기자들을 고용하지 못하고, 적은 기자들로 운영해야 하기에 사실이 아닌 기사들을 내보내는 경우가 많다. 또한 자극적인 기사들은 사실 여부를 떠나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니 그것이 돈으로 연결되기 쉽다. 개소리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지점에서 경제와 정치가 만난다. 이 사회에서 돈(이윤)과 무관한 일은 없음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트럼프의 당선과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이 이런 개소리들이 사회를 바꾼 예라고 하는데... 


책의 끝부분에서 이러한 개소리를 없애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정치인, 미디어, 독자와 유권자로 나누어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 제시된 대안들이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속도는 아마도 신발 끈을 매는 정도, 이미 가짜뉴스, 또는 개소리는 지구를 반 바퀴 이상 돌고 있을지도 모른다. 저만치 앞서가는 개소리.


하지만 개소리를 따라가려고만 하면 개소리를 이길 수 없다. 개소리가 만든 경기장에서 싸우지 말고, 자신의 경기장에 개소리가 들어오게 해야 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대안들이 아마도 이런 맥락에서 제시된 것이리라.


간략하게 살펴보자. 


우선 정치인에게는 이렇게 말한다.


'설명하지 마라, 불평하지 마라, 가짜뉴스에만 주목하지 마라, 학교에서 미디어 문해력을 길러주자, 내가 속한 체계를 무너뜨리지 말자, 표적 광고를 대중의 감시 아래 두자, 굳이 기성 권력의 일부처럼 보일 필요는 없다'


미디어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한다.


'제목에 유의하자, 복잡함은 미덕이 아니다, '허공의 관점'을 다시 고민해보자, 기자들의 내부 사정을 설명하자, 독자가 필터 버블에서 빠져나오도록 돕자, 사실 검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 신뢰받고 싶다면 신뢰를 주는 매체가 되자, 오보만큼 정정 기사를 널리 알릴 방법을 찾자, 내가 얻은 콘텐츠의 출처를 떠올려보자, 가짜뉴스 매체에 자금을 대지 말자, 과학 전문 기자에게 조언을 얻자, 새로운 공공매체를 만들자, 일부 독자가 떠나는 이유를 살펴보자'


독자와 유권자는


'나의 필터 버블을 터뜨리자, 시스템2(신중한 반응)를 가동시키자, 통계를 어느 정도 알아두자, 내가 믿는 담론을 믿지 않는 담론만큼 의심해보자, 음모론에 굴복하지 말자'


이런 대안들을 제시하면서 이렇게 당부한다.


'현실 감각을 유지하고 음모론에 맞서면서 서로 기본적 합의를 도출하는 일은 건전한 민주주의를 만드는 데 필수적이다. 진실이 무의미해진 세상은 그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360쪽)고.


명심해야 할 말이다. 우리는 가짜뉴스란 말을 많이 쓰고 있지만, 가짜뉴스라기보다는 이 책의 저자가 이야기하는 '개소리'를 남발하는 사람들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요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으니... 이 책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이야기도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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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4-24 17: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 소리가 흥한 시대에 산다는 것이 불행한 일입니다.ㅠㅠ

kinye91 2023-04-24 17:55   좋아요 0 | URL
개소리를 개소리로 인식한다면 개소리가 흥하지 않겠지요... 아무튼 이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개소리가 주류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레이스 2023-04-24 20: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소개하는 방송 보고 재밌겠다 싶었어요^^

kinye91 2023-04-24 20:11   좋아요 1 | URL
이젠 최근이라 할 수 없지만 영국의 브랙시트와 미국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소위 개소리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있어서 좋아요. 꼭 남 나라 얘기만도 아닌 것 같고요.
 
한 번은 불러보았다 - 짱깨부터 똥남아까지, 근현대 한국인의 인종차별과 멸칭의 역사
정회옥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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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웠다. 읽으면서. 의식하지 않고 쓰는 말 중에 혐오 표현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연하게 여기던 일이 당연하지 않음도, 또 아무런 비판 의식 없이 읽었던 작품들에서도 인종차별이 나타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알려고 하지 않음, 의식하지 않음. 우리나라 인종차별에 대해서는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겠다. 인종차별을 우리가 한다고? 이런 반문을 하는 경우가 많으니.


백인이 흑인을 차별하는 일을 인종차별로만 인식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는데... 알게 모르게 우리는 인종차별을 하고 있음을, 그리고 그 인종차별의 역사는 1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함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인종차별... 피부색만이 아니다. 우선은 피부색에 따라서 차별을 하지만, 경제적 차이가 나는 나라에 따라서 차별을 하고, 또한 종교로 차별을 하는 것도 인종차별이라 할 수 있다.


개화기 때 신문이 처음 우리나라에서 발간될 때, 그 신문 내용에는 인종차별적인 내용이 많았다고 한다. 백인을 우위에 두고, 흑인을 미개한 종족으로, 인디언 역시 미개한 종족으로 이야기한 내용들.


근대화라고 해서 그런 신문을 통해 얻은 지식으로 무장한 개화기 지식인들의 머리에는 은연중에 인종차별이 박혔으리라.


김옥균도 흑인들을 보고 멸시하는 발언을 했다고 하니, 근대화가 곧 백인화를 뜻하는 것이었는지, 식민지 시대에 들어서서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일본이 그렇게 따라가고자 했던 서구화는 곧 백인화였을 테고, 자신들은 백인에 버금가는 종족이라고 주장하고, 이에 따라 사람들을 서열화했던 시기.


유사과학이라고 해야 하나? 혈액형을 가지고 인종계수라는 용어를 사용해 인종차별을 합리화했다고 하니, 참... 


'1919년 독일인 학자 루드비크 히르슈펠트와 한카 히르슈펠트는 혈액형 B형보다 A형이 진화한 형태이므로, 백인일수록 A형의 출현 빈도가 높아지고, 유색인일수록 B형의 출현 빈도가 높아질 것으로 예측했다. 그들은 A형인 사람의 수를 B형인 사람의 수로 나눈 '인종계수'라는 수치를 개발했는데, 분석 결과 그들이 세운 가설대로 백인이 비백인보다 인종계수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 경성의과전문학교 외과교실 교수 기리하라 신이치와 그의 연구팀은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의 인종계수는 1.78인 반면, 한국인은 1.07로 나타났다. ...열등한 한국인은 우월한 일본인에게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는 식민사관으로 이어졌다.' (56쪽)


어처구니 없는 연구지만, 인종차별을 합리화 하는 데는 이런 과학 아닌 과학이 유용하게 쓰였으리라. 게다가 이런 연구들이 우생학을 뒷받침하고 있었을 테니...


해방이 되고 나서 미국의 문화가 들어오면서 인종차별은 더 강화된다. 경제개발이 되면서도 마찬가지고. 이렇게 우리나라의 인종차별 역사는 오래 되었음을 보여준다.


여기에 구체적인 인종차별의 사례로 흑인, 화교, 혼혈인, 동남아시아 사람들, 무슬림에 대한 이야기를 2부에서 하고 있다.


이래도 인종차별이 없다고 할테냐라는 듯이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서 보여준다.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인종차별을 자행하고 있었는지를...


나는 그런 적 없다고? 과연 그럴까? 이 책 제목을 생각해 보자. '한 번은 불러보았다'는 말. 우리는 인종차별적인 언어를 한번쯤은 해봤을 테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자신이 인종차별을 한다는 의식도 없이.


그 점을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감추는 게 많은 나라, 우리가 타자화한 집단들의 역사를 진심으로 반성하지 않는 나라, 이것이 한국을 인종차별 국가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다.'(216쪽)


여전히 반성하지 않는다. 이 책에도 언급되고 있지만 대구에서 무슬림 사원을 건축을 반대하는 시위가 지금도 진행 중이다. 2년이 넘게... 반대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그들이 내세우는 주장은 증명되지 않았다. 전형적인 혐오, 인종차별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요즘은 아예 돼지고기 파티를 하고 있다고 하니... 차별금지법이 없는 나라에서. 그들은 내가 내 집 앞에서 돼지고기를 먹는데 뭐가 문제냐고 하고 있으니...


무슬림들만이 아니라 이주노동자들, 또 결혼한 동남아시아 사람들, 여기에 여전히 흑인에 대한 차별이 있으니.


그래 '한 번은 불러보았'을 그런 차별을 하는 말들을 두 번, 세 번 부르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인식하고 반성하고, 고치려고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오랜 세월 몸 속에 박힌 인식하지 못하는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는 나를 객관적으로 살필 필요가 있다.


남을 살피듯이 나를 살펴야 한다. 외국인들이 우리를 차별하면 분노하듯이, 우리가 외국인을 차별하지 않나 성찰해야 한다. 더불어 한국 국적을 갖고 있음에도 한국인으로 대우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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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한 선진국 - 대한민국의 불평등을 통계로 보다
박재용 지음 / 북루덴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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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우리도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고 한다. 한강의 기적을 넘어서, 세계를 선도하는 나라가 되었다고 자랑스레 말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역사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고 하지만, 한순간에 선진국에서 떨어질 수는 있다.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말만 난무하고 있으니까. 실천도 하지 않으면서, 그냥 좋은 말은 다 뱉어내고 있으니까. 정책으로 실현해야 하는데, 정책은 실종되고, 말만 나부끼고 있으니...


불평등한 선진국이란다. 당연하다. 선진국이라고 해서 평등하지는 않다. 불평등하다. 그러나 그들은 불평등을 인지하고 있다. 불평등하기 때문에 정책으로 평등을 지향하려 한다.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파악하고, 그 상황을 타개하려 하고 있다. 그래야 선진국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통계지표를 활용해서 선진국이라고 하는데, 평균치로 잡힌 통계에서는 불평등이 보이지 않는다. 그냥 화려한 숫자만 보일 뿐이다.


이 평균 숫자를 보지 않고, 평균을 이루게 된 숫자들을 보면 불평등이 보인다. 불평등이 보여야 평등을 지향할 수가 있다.


일인당 국민소득을 4만 달러라고 하자. 선진국이다. 일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도 안 되던 나라에서 4만 달러라니...(이 책은 세계은행 자료를 인용해(2019년 기준인지, 2017년 기준인지는 조금 모호한데...2019년 기준으로 하면 1인당 평균소득은 3,528만원이라고 한다-이러면 환율을 1달러당 1300원으로 계산하면 약 27,138달러가 나온다 ) 43,430달러로 전세계 27위라고 한다.14쪽)


하지만 평균값은 상위 수준이 아주 높으면 상위 20%의 소득으로 나머지 80%의 소득과 같을 수가 있다. 평균은 올라가지만, 실질적으로 소득은 그리 높지 않은 사람들이 많을 수가 있다. 통계의 함정이다.


이 책은 이렇게 통계 수치를 평균으로 보지 않고, 구간별로 나누어서 제시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나라 평등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게 된다.


많은 자료들을 인용하고 있는데, 결론은 불평등이다. 그것도 이 불평등이 점점 심화되어 가고 있다고 한다.


문제다.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오히려 평균소득은 높아지지만 불평등은 심해지고 있다고 하니...


특히 노동에서 격차가 벌어지고 있으며, 청년들 사이에서도 경제적 차이에 따른 차이가 더 벌어지고, 기존에 어렵게 살던 사람들은 갈수록 더 어려워지고 있는 현실을 4부에서 가족 해체, 노인 자살, 지방 소멸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소수자들이 얼마나 힘들게 지내는지를 이주노동자, 이주여성, 장애인 여성, 모자 가구, 주거 취약계층을 다룬 5부에서 보여준다. 


이들이 계속 더 힘들어지는 생활을 한다면, 우리나라는 무늬만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다. 무늬만 선진국이 아닌 실질적인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불평등을 인정해야 한다.


인정해야 고치려고 한다. 그것도 정책과 제도를 통해서.


책의 결론 부분에서 대책을 제시한다. 그런데 이 대책이 당연하다고 하는 사람과 얼토당토 않다고 하는 사람으로 나뉜다. 이런 갈등으로, 정책은 길을 잃고 불평등은 더 심화된다. 저자의 대책을 보자.


'먼저 소득에서의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최저임금을 올리고, 비정규직의 노동권을 확실하게 보호하고, 노동 시간을 줄여야 합니다. 정부의 소득 재분배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소득세 등 직접세 세율을 더 올리고 공공복지 예산을 늘려야죠. 부의 세습을 막기 위해 상속세와 증여세의 세율을 올리고 면제 범위를 축소하면 됩니다.

  불평등이 줄어들면 교육 문제의 기본이 해결됩니다. 소득 격차가 적어지면 기를 쓰고 명문대를 갈 이유가 줄어들고 자연스레 사교육도 감소합니다. 부모의 소득 중 교육비로 빠져나가는 비용이 주니 그 또한 좋은 일입니다. 소득 격차가 줄고 국가의 소득 재분배가 더 활발해지면 중산층이 넓어지고 여유가 생깁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출산율로 높아지고, 지방 소멸도 더뎌지겠지요. 

  이렇게 결론은 쉽습니다.' (458쪽)


아니, 결론이 쉽지 않다. 우선 최저임금 문제부터 갈등이 일어나니 말이다. 노동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말, 지금은 거꾸로 가고 있지 않은가. 직접세 세율, 깎으면 깎았지, 높이지 않으려 하고, 교육, 사교육이 심화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은가.


불평등이 심해지고 있는데, 그동안 불평등을 일으키고 그 간격을 더 크게 벌리는 제도들을 없애기는커녕 더 밀어붙이고 있는 형국 아닌가.


그러면 불평등한 선진국이란 말이 없어지지 않는다. 어디에서 불평등이 더 심해지고 있는지를 통계를 통해서 살펴야 한다. 평균만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그 점에서 이 책은 불평들이 나타나는 숫자들을 우리들이 보게 한다. 그 숫자들을 통해 평균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저자가 제시한 해결 방법,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많은 토론이 필요하다. 감정이 아니라 구체적인 자료를 통한 토론이.


결코 어렵지 않게 우리나라 현실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 책이다. 숫자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도 생각하게 해준 책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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