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 - 우리는 왜 검열이 아닌 표현의 자유로 맞서야 하는가? Philos 시리즈 23
네이딘 스트로슨 지음, 홍성수.유민석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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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 책을 읽은 사람은 저자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저자의 주장을 단순하게 정리하면 '혐오표현금지법'은 제정되어어서는 안 된다이니까.


혐오표현이 좋지 않은 표현을 넘어 폭력이 되는 현실에서, 그러한 혐오표현을 금지하는 법들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고, 또 혐오표현금지법을 제정한 나라도 꽤 있다.


법을 통해 국가가 직접 혐오표현은 범죄라고 명시하는 것, 이것이 혐오표현금지법인데, 이 법이 과연 혐오표현을 줄이거나 없애는데 기여를 했는가 하면 긍정적인 대답을 하기는 좀 힘들다.


우리나라에서 명예훼손죄가 있는데, 이것이 혐오표현금지법이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혐오표현을 막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법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법을 생각해 보자. 이 법이 약자에게, 진정으로 인격을 존중받아야 할 사람들에게 적용이 되는가? 이 생각을 하면 오히려 명예훼손죄는 약자를 옭아매는 역할을 더 많이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이라고 해서, 약자가 강자에게 당한 것을 폭로해도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걸어버린다. 그러면 돈과 시간, 권력이 없는 약자는 법망에 걸려 여러가지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된다. 강자에 의해서 또는 고의적으로 상대를 비하하는 표현을 하지 못하게 하려는 법의 취지와는 다르게 약자에게 족쇄를 채우는 역할을 한 경우가 꽤 있으니...


이렇게 명예훼손죄를 생각하면, 저자가 혐오표현금지법에 대해서 반대하는 것도 이해가 되긴 한다. 이 혐오표현금지법이 소수자에게 더 가혹하게 다가온 경우가 있고, 또 차별을 하는 사람들을 누르기는 커녕, 그들이 지하로 들어가 자신들을 드러내지 않고 행동하게 만듦으로써 혐오표현을 하는 사람들을 가리기 힘들게 하기도 했다는 것.


또한 혐오표현금지법이 있는 나라에서 극단적인 정당이 계속 활동하고 있으며, 그들에 대한 지지도가 만만치 않음도, 혐오표현 금지법이 혐오표현을 막는데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부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이 책에서 혐오표현금지법을 반대하는 주요 논거 중의 하나다.


여기에 혐오표현금지법이 없어도 현행법으로도 충분히 처벌이 가능한데도 혐오표현금지법을 제정한다면 그것은 '자유, 평등 및 민주주의의 보편 원칙을 훼손한다'(57쪽)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집단 간 갈등을 줄이거나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법전쟁lawfare이 아니라 협력적이고 화해적인 접근'(235쪽)라고 하고 있다. 즉 더 많은 대화를 통해서, 대항 표현을 통해서 혐오표현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개인과 사회에 해악을 끼칠 수 있는 표현의 잠재적 힘보다 더 나쁜 것은 혐오표현금지법을 시행함으로써 똑같이 해악을 끼칠 수 있는 정부의 잠재적 힘이다. 예상대로, 이 탄력적 힘은 반대 의견, 대중적이지 않은 발화자, 그리고 권력이 없는 집단을 침묵시키는 데 사용될 것이다'(45쪽)는 주장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명예훼손죄에 대한 법도 그 법의 취지와는 다르게 약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혐오표현금지법 역시 그러한 전철을 밟고 있거나 밟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저자는 차별금지법이 먼저 제정이 되어야 하고, 여기에 대해서는 반대를 하지 않는다.


아직 차별금지법이 없는 우리나라인데... 이 법이 먼저 제정이 되고 시행이 된 다음에, 현재 있는 법으로도 혐오표현을 처벌할 수 있으면 강력하게 처벌하되, 대항 표현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하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되 그것이 토론으로 나아가 서로의 생각을 수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분명히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저자는 혐오표현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반대한다. 또한 처벌받아야 할 혐오표현은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한다. 이것을 잊으면 안 된다. 저자가 혐오표현금지법을 반대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지, 상대에게 해를 끼치는 표현을 그냥 놔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 역시 혐오표현이 일어나지 않도록 환경과 또한 대항 표현을 더 활발하고 강하게 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이것을 법의 영역으로 보내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저자의 이 말을 곱씹어 보자. 


'폭력적 차별적 행동은 즉시 처벌해야 한다. 그리고 차별적, 혐오적 생각을 전파하는 표현은 강력하게 논박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혐오적이거나 차별적이라고 여기는 생각을 처벌하는 것은 위에서 소개했던 표현의 자유 근본 원칙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집단 내의 불신와 차별을 줄이는 게 아니라 증가시킬 수도 있다.' (35-36쪽)


그래서 저자는 '우리는 자신을 위해서는 두꺼운 피부를 발달시키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는 더 얇은 피부를 발달시켜야 한다'(268쪽)고 한다.


즉 남의 말에 휘둘리지 말고 이성적으로 논박할 수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는 더 민감한 감수성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혐오표현이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은 점점 더 없어질 테고...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모든 것을 법의 영역으로 넘기면 해결은 더욱 멀어진다는 점은 명심해야 한다. 자신의 문제를 남에게 넘기고 방관하게 되기 때문인데, 그러면 대항 표현은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혐오표현금지법에 제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법 이전에 사회가 그러한 표현을 할 수 없도록 대항 표현을 비롯한 자유로운 토론 문화가 만들어지게 하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을 했다.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한 문제다. 이것은. 하지만 무엇보다도 먼저 차별금지법이 제정되고 시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세상에 차별을 금지하자는데 반대하는 사람도 있나 싶지만, 이 법이 왜 제정이 안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각자의 생각이 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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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날 세계에서 - 내란 사태에 맞서고 사유하는 여성들
강유정 외 지음 / 안온북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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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만날'이라는 미래형이 아닌 '만나는'이라는 현재형이 되어야 한다. 이 책은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탄핵소추를 당해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심판을 받는 동안에 쓰여진 책이기 때문이다.


참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섰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나서는 안 될 비상계엄이 선포되었기 때문이다. 과거 독재를 떠올리는 사람들, 그리고 비상계엄을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무시무시한 포고령 내용을 보고 놀라 거리로 나온 사람들. 비상계엄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 나온 사람들 등등.


이들이 탄핵을 찬성하는 이유는 다시는 이런 일이 우리나라에서 벌어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고, 또한 그것은 민주주의에 반하는 행위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기 때문에, 그것을 지키지 못하는 정치인은 이 나라에서 정치를 할 자격이 없다는 것. 그럼에도 버티고 있는 사람에게는 국민의 힘으로 끌어내리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엄동설한에...


'키세스'라고 불릴 정도로 은박 담요를 둘러싸고 추위에도 포기하지 않고 거리로 나온 이유는 민주주의는 우리가 지켜야 하고, 우리가 사는 세상 또 우리 후대들이 사는 세상이 민주주의 세상이어야 하기 때문.


그런 민주주의는 미래형일 수 없다. 민주주의라는 미래의 때를 맞이하기 위해 지금 독재를 용인할 수 없다. 민주주의는 바로 지금-여기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만날 세계이다.


따라서 광장에서는 민주주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고 해야 한다. 누구나 자신의 말을 할 권리. 자신을 존재 자체로 인정받을 권리가 지켜지는 장소, 그것이 광장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고 보듬고 도와주려는 마음. 상대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려는 마음. 물론 처음에는 자신과 다른 존재들을 밀어내려는 모습도 보였지만, 광장에 모이면서, 탄핵을 함께 외치며 우리가 만날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를 고민하면서 차이를 차별로 보지 않고 차이로 보는, 그러한 다양성이 민주주의를 더욱 풍요롭게 함을 깨닫는 모습이 잘 나타나고 있다.


글서 그들은 이미 광장에서 다시 만날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한번 경험한 세계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남아 지속시키려는 노력을 하게 한다.


광장에서 외쳤던 수많은 외침들이 이제는 실현되어야 할 단계로 접어들었다. 지금은 탄핵이 완료되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서 새로운 정치가 시작되고 있으니...


이 새로움이 그 전에 있었던 탄핵 이후를 반복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다시 만나는 세계일 테고. 한번 경험한 것을 다시 반복하지는 않을 테니, 광장에서 터져나온 다양한 목소리들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 지켜봐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며 그때의 기억을 다시 떠올렸다. 추운 날씨에도 광장에 모인 사람들, 서로가 서로를 보듬던 사람들. 네것 내것 할 것 없이 상대에게 필요한 것을 주던 사람들. 지방에서 올라오던 농민들이 남태령에서 막혔을 때 지체없이 남태령으로 달려갔던 사람들. 자신과 다른 생각, 다른 정체성을 지닌 사람이 말을 할 때 그것을 받아들여주던 사람들의 모습.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하는 모습을 이미 보여준 그 광장의 모습. 그것을 잊지 않게 이 책은 그 당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해주고 있다. 기억은 강하다. 기억은 미래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준다. 이 책은 그래서 우리가 다시 만나는 세상이 어떤 세상이어야 할지를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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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된 믿음 - 무속은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생존해 왔는가?
이성원.손영하.이서현 지음 / 바다출판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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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처럼 무속이 우리 사회에서 큰 관심을 끈 적이 있었을까? 물론 무속은 우리 사회 전반에 존재해 왔다. 지금도 거리에 나가 보면 많은 곳에 점집 표시가 있다. 또 현수막에도 신내림을 받았다고 광고하는 것들도 있고.


일이 잘 안 풀리면 점을 보러 가야 하나 하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고, 타로점이 유행하기도 했다. 그만큼 무속은 우리 곁에 있는데... 


점집에 깃발이 달려 있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백기는 점을, 적기는 굿을, 둘 다 걸려 있으면 점과 굿을 모두 한다는 의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평소에 점에 관심이 없었으니, 점집의 표시에 대해서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


이렇게 표시를 하는 점집도 있지만 서울 논현동에 있는 점집들은 대부분 점집 표시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임대인이 꺼리기도 하고, 또 지역 특성도 있다고... 여기에 요즘은 유튜브와 같은 방송으로도 무속에 관해 홍보를 하고 있다고 하니...


사회적 관심을 끌기 전에도 무속은 늘 우리 곁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사회적 관심을 끈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합리성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기존 상식에 반하는 것을 했을 때 사회적으로 관심을 끌게 된다.


특히 무속이나 특정 종교와 관련이 없어야 할 사람이 관계를 맺었음이, 그것도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음이 드러날 때는 사회적 관심은 증폭된다. 이때 사회적 관심이 긍정적인 쪽이 아니라 부정적인 쪽으로 폭발하고.


이것은 결국 무속인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무속인 개개인이 벌였던 범죄 행위나 또 다른 행위들을 넘어서 이는 무속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무속에 대해서, 사실은 무속인에 대해서 심층 취재를 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기자 셋이 우리 사회에서 무속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어떠한 문제가 있는지 등을 살펴보고 있는데, 먼저 무속인들의 일탈 행위(범죄라고 하고 싶지만,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경우도 꽤 있으니)를 취재하고, 무속인들을 인터뷰해서 그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무속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논의의 마무리로 삼고 있다.


무속인들이 범죄를 저지르면 당연히 처벌해야 한다. 그것은 어떤 종교인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범죄라고 판결을 할 수 있는 기준이 무속의 경우엔 명확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 무속인들에 의해서 일탈행위가 자주 일어나고 있는 것인데...


'법원은 피해자가 위안을 받았다면 사기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53쪽)라고 하는데, 이는 피해자를 중심에 놓은 것이 아니라 가해자를 중심에 놓은 판결이 아닌가 한다. 이런 판결을 하는 기저에는 무속을 종교로 보는 관점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데...


종교로 본다면 종교가 지녀야 할 기본적인 윤리를 지키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데도 마음의 위안을 주었다는 이유로 처벌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까.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진정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자 하는 무속인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 그런 일을 막기 위해서도 명확한 판결이 있어야 하겠는데...


무속에 사람들이 빠져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완전히 빠지지 않고 재미 삼아 보는 사람도 있지만, 자신의 상태에 따라 무속에 심취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은 대개 '공통적으로 낮은 자존감과 높은 의존성, 수동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174쪽)다고 하는데, 이는 기존의 종교에 대한 믿음이 줄어들고, 또 사회가 안정적이지 않을 때 더 강하게 나타난다.


이렇게 나약해졌을 때 강하게 끌어주는 무속인들에게 넘어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무속을 개인의 문제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무속을 공론화하고 어디까지 사회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지, 또 무속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공통의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 점에 대해서 무속이 사회적 관심사가 된 지금 다양한 방면으로 공론화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냥 개인의 문제로 남겨두지 말고.


무속에 대하여 다방면으로 취재했는데, 이들이 말하고 있듯이 무속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의 수나 그들의 수입 등등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것들이 명확해져야 무속이 '방치된 믿음'으로 남겨지지 않을까 한다.


또한 적어도 공적인 자리에 무속을 끌어들이는 일은 하지 않게 될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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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기원
토니 모리슨 지음, 이다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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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랑하는 인간이, 배제하는 존재를 만들고, 그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현실. 그것도 힘이 있는 자들이 그 힘을 인정받으려 다른 존재를 상정하는 행위. 이것이 타인이라는 말에 들어 있는 의미다. 그냥 단순히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일컫기보다는.


나와 다른 존재, 타인. 우리와 다른 존재, 이방인. 이는 곧 배제를 해야 한다는 말로도 들리는데, 타인이나 이방인이라는 말에는 단순한 다름이 아닌 다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다르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에게 없는 것을 배울 수 있고, 보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르기 때문에 몰아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강자가 아니라 약자다. 물론 이때 약자는 현실에서의 약자가 아니다. 약자가 강자를 배제한다고 한들 강자에게 어떤 어려움을 줄 수 있겠는가.


강자가 약자를 배제하면 약자는 생존의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는데, 그러므로 이때 쓰는 약자는 스스로 서지 못하고 자신이 홀로 서지 못하고 상대를 통해서 존재 의의를 찾는 존재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백인들이 흑인을 노예로 부릴 때 자신들의 생활에 필요한 많은 것들을 노예에게 의지했음에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상대를 인간 이하의 존재로 취급하는 모습들, 그런 모습들이 바로 백인에 의한 흑인의 타자화라고 할 수 있다.


인종 문제, 현대에서는, 특히 인권이 강조되는, 다른 나라의 인권 문제까지 걸고 넘어가는 미국에서,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문제같지만, 아니다. 미국에서는 여전히 인종 문제가 심각하다. 오죽했으면 몇 년 전에, 불과 몇 년 전이다. 흑인 대통령을 (뭐 이 책에도 나오지만 한 방울의 피가 섞여도 흑인은 흑인이라고 했던 때가 있었으니) 배출했음에도 흑인들은 여전히 경찰에 의해서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는 구호가 지금도 유용하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토니 모리슨이 쓴 이 책은 그러한 인종 차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젠더나 경제적 차별도 있지만 흑인들이 생활에서 겪는 인종 차별. 문학에 나타난 인종 차별을 이야기하면서, 백인들에 의해 흑인이 어떻게 타인이 되었는지를 살피고 있다.


우선 모리슨은 '인간은 우리 부족 사람과 그 밖의 사람을 구분지은 뒤 상대를 적으로, 즉 취약하고 결핍이 있으며 통제가 필요한 대상으로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다(26쪽)'고 한다.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을 결집하기 위해 타인을 설정하고, 그들을 자신들이 통제해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고 행동한다는 것, 이는 '자기 집단의 신념을 강화하기 위해 타자를 만들어 세움으로써 비슷한 방식으로 타 집단을 통렬히 비난해왔다'(29쪽)는 말로 표현된다.


이런 역사가 있으니 타인을 배제하는 마음이나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강자들에게는 더더욱. 이들은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약자들을 타인으로 규정하고 배제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이 살아오면서 자연스레 그러한 모습들을 보고 자랐기 때문이다.


모리슨은 '타자화는 강의나 교육을 통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남이 하는 것을 보고 따라 배우게 된다'(30쪽)고 한다. 이는 생활에서 자연스레 몸에 배게 되는 것이다. 한번 몸에 밴 습관을 바꾸기가 얼마나 힘든지는 우리나라 속담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에 잘 나와 있으니...


이렇게 보고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면 그들이 보고 배울 수 있는 것 하나하나에 신경써야 한다. 이것이 얼마나 힘든지는 단어 하나, 몸짓 하나가 상대에게 얼마나 상처를 주는지를 고려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된다.


'서로 무해하게 접근하기 위해, 고작해야 푸른 공기일 뿐인 우리 사이의 거리를 뛰어넘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자원은 적지만 강력하다. 언어와 이미지, 그리고 경험이다'(71쪽)고 모리슨이 말하고 있는데, 언어와 이미지, 경험을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문학을 비롯한 예술이다. 예술이 간접경험이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고, 토니 모리슨이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허구적 서사는 타자, 즉 이방인이 되거나 혹은 이방인이 되어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통제된 야생 상태를 제공한다. 이곳에서 동정심과 명료한 눈을 가져볼 수 있고 자기 성찰의 위험을 감수할 기회도 얻는다'(143쪽)고 모리슨은 주장하고 있으니... 


문학(예술)이 왜 우리에게 필요한지, 그리고 문학(예술)에 왜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를 이보다 명료하게 표현할 수는 없다고 본다.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서 타인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적어도 이런 노력을 해야 만물의 영장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토니 모리슨이 주장하듯이 '언어와 이미지, 경험'이 중요한 자원이라고 하면 이것들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것이 문학(예술)이니, 문학(예술)에 대한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 글에서 토니 모리슨은 문학에 나타난 인종차별에 대해서 따끔하게 지적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타인을 만들어내고 있으니까, 이런 작품은 비판을 받아야 하고, 그러한 작품을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는 눈을 길러야 함을 생각하게 한다.


더불어 이 책을 읽으면서 토니 모리슨이 쓴 작품 중에 아직 읽지 못한 작품을 읽고 싶단 생각도 했다. 자신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이 책에 나와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자고로 좋은 책은 다른 책으로 독자를 인도하는 책이기도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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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전쟁 - 가장 사적이면서도 공적인 공간에서 펼쳐진 특권, 계급, 젠더, 불평등의 정치
알렉산더 K. 데이비스 지음, 조고은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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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인간 생활에서 필수적인 요소다. 식사와 배출은 우리 인간이 생존하는데 하지 않을 수 없는 행위 아닌가. 


이런 화장실을 두고 갈등이 있었다. 지금도 있다. 어떤 화장실이냐에 따른 갈등인데, 우리나라에서도 최근에 성중립 화장실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이를 두고 갈등이 일기도 했다. 트랜스젠더들을 위한 공간 아니냐고, 아직도 케케묵은 윤리 운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성중립 화장실에 대해서 찬성하고 있다.


누구도 눈치보지 않고 화장실을 이용할 권리가 있지 않을까? 화장실을 놓고 다양한 갈등들이 있지만, 여기서는 젠더 갈등으로만 국한시켜 보자.


예전의 화장실은 남녀 구분이 없었다. 누가 힘들었을까? 여성이다. (논의의 편의를 위해 법적으로 인정하는 단 두 성만을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화장실 문제 또한 제기할 수밖에 없다.


남녀 분리 화장실이 만들어진 이유는 여기에 있다. 여성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의미에서 남녀 분리 화장실이 만들어졌다. 거의 같은 크기로?


다시 문제가 된다. 화장실을 이용하는 시간이나 행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도 심심찮게 보는 모습이 남녀 화장실 앞에 줄이 길다면 이는 십중팔구 여성화장실 앞이다. 


그래서 화장실 비율이 대두되었다. 남자 변기보다 1,5배 이상 많은 변기를 배치해야 한다는 주장. 그것이 받아들여져 여성의 화장실이 더 확장되어 편리를 증진시키고 있다. 이게 평등일까?


또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트랜스젠더와 같은 사람들은 어느 화장실을 이용해야 할까다. 그러니 이제는 성중립 화장실을 만들자는 주장이 나온다. 그렇게 만든다. 성중립 화장실을 만드는 과정이 이 책에 잘 나와 있다. 이러한 화장실을 두고 겪어온 갈등들도 잘 나와 있고.


성중립 화장실을 만드는 문제가 미국의 진보적인 대학에서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들의 진보성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였으니... 또한 그러한 대학들은 지명도만큼이나 재원을 쉽게 확보할 수 있었기에 빠르고 쉽게 성중립 화장실을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다른 계급, 계층의 문제가 발생한다.


화장실을 두고 단지 성별 갈등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특권층은 이상하게도 진보적인 문제에 쉽게 접근한다. 그리고 수용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자신들의 특권을 뒷받침하는데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고 싶어도 하기 힘든 곳이 있다. 법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남녀 분리 화장실이 있는 곳에 성중립 화장실을 만들려고 하면 배관의 문제, 즉 건축의 문제가 발생한다.


쉽게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장소에 만들고 싶은데, 기존 건물이 지니고 있는 환경이 이를 용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화장실에는 역사가 개입한다. 문화와 건축이 개입한다. 또 재력, 돈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점을 각 장에 걸쳐서 잘 보여주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중립 화장실은 확산되어 나갔다. 지금도 확산 중이다. 왜냐하면 성소수자만이 아니라 가족들, 장애인들,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 모두에게 이로운 화장실이기 때문이다.


즉 사회적 약자층이 쉽게 이용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은 더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건축, 시설의 기준을 약자에게 두어야 한다. 가장 접근하기 힘든 사람이 쉽게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 그것도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하여 이렇게 만들어진 화장실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사회적 편리가 증대한다. 여기에 많은 젠더 갈등들이 있었지만, 조금 더 어려운 사람들을 배려하는 쪽으로 화장실이 개선되어 왔음은 자명하다.


왜 화장실인가 했더니, 이 화장실에 젠더 갈등을 볼 수 있는 요소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관습과 문화 또 갈등들을 볼 수 있고, 특권층이 오히려 더 쉽게 화장실을 개선하고 있었다는 다소 의외의 모습 (그것이 바로 자본의 힘이기도 하고, 그들이 계속 특권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이것은 약자들에겐 도움이 되는 방향이기도 했다)도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화장실은 단지 젠더 차원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장애-비장애, 부유층-빈곤층, 명문대-비명문대, 보수-진보, 관습-개혁 등등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그래서 지금 화장실을 보면 어떻게 사회의 관습이 변해왔는지를 파악할 수가 있으니... 성중립 화장실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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