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아야 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모든 것
도브 왁스만 지음, 장정문 옮김 / 소우주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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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곧 다가올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AI에 전쟁을 맡기는 시대는 아니겠지만, 그와 비슷한 드론이나 미사일을 이용한 공격은 비일비재하다. 그렇지만 우리가 왜 AI시대를 추구하는가?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아닌가? 서로가 협력하면서 더 큰 꿈을 향해 함께 나아가고자, 이 지구, 태양계를 벗어나 광활한 우주로 나아가고자 AI를 개발하고 그런 시대를 앞당기려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지구라는 좁은 행성에서 한정된 자원을 나눠먹기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도 우주로 보면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한데, 지구에서도 중동의 끄트머리에 있는 작은 나라 이스라엘에서는 여전히 분쟁(전쟁이라고 할 수도 없다. 무력에서 크게 차이가 나 일방적인 공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이 일어나고 있다.


세상에 AI시대에 소아마비 백신을 접종하지 못해 소아마비에 걸리는 아이들이 생기게 된다는 가자지구. 그런 의약품조차 반입이 되지 않도록 막고 있는 이스라엘 정권.


오랜 갈등이다. 인간의 역사로 보면 얼마 되지 않은 근대에 들어와서 발생한 갈등이지만, 여전히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힘의 균형이 맞춰지지 않아 한쪽이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는 현실은 여전하다. (물론 팔레스타인의 테러로 이스라엘도 피해를 입긴 하지만, 그 규모는 비교할 필요가 없다. 인명 피해에 대해서 규모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지만)


이런 분쟁이 어떻게 발생했고, 어떤 과정을 거쳤으며,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살펴본 것이 바로 이 책이다. 


간략간략하게 제목을 달고 그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저자의 의견을 정리하고 있다. 가령 결론을 보면 이렇다. '두 국가 해법, 가능한가?'라고 제목을 달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팔레스타인은 지금의 이스라엘을 유대국가로 인정하고,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그리고 동예루살렘 지역에 팔레스타인 국가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많이 논의되어 왔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왜냐하면 팔레스타인도 통일이 되어 있지 않으며, 늘 안보를 우선시하는 이스라엘이 적대국이 될지도 모르는 국가를 바로 곁에 두고 싶어하지는 않을 거라는 것.


그렇다면 '한 국가 해법은 가능한가?'라고 다음 대안을 검토한다. 지금까지의 갈등, 그리고 종족과 종교가 다른 집단이 한 국가에서 공존할 수 있을까? 서로를 존중하고 민주적 사회가 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또 복잡한 절차를 거칠 필요도 없다. 그냥 같은 국민으로 동등한 권리를 지니고 있으면 되니까. 


하지만 그렇게 되었을 경우 주변에서 너무도 쉽게 발생할 수 있는 테러는? 이런 생각으로 불안감을 떨쳐버리지 못한다면 이런 해법은 불가능하다. 양쪽 모두에게 불가능한 해법일 수 있다.


둘 다 안 되면 '두 가지 해결책이 모두 불가능하다면, 어떻게 해야 갈등을 해결하거나 줄일 수 있을까?'라고 질문하고 답을 찾으려 한다. 연방제를 도입하면 어떨까 한다. 이것도 서로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불가능하겠지만...


이렇게 해서 결론은 좀 암담하다. 저자 역시 '안타깝게도 분쟁과 점령, 폭력은 계속될 것 같고, 평화는 먼 미래의 일처럼 보일 뿐이다'(380쪽)고 한다.


맞다. 지금도 이스라엘에서는 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민간인들이 죽어가고 있다. 주로 가자지구에 있는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이 죽어가고 있지만... 이번엔 레바논에 있는 헤즈볼라와의 분쟁도 점점 심화되고 있다. 이 책은 왜 헤즈볼라와도 갈등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이들의 분쟁 역사. 이 책은 간략하고 명료하게 잘 살피고 있다. 어느 쪽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객관적으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우리에게 알리려고 하고 있다.


왜 아직도 이들은 이렇게 분쟁 중일까를 궁금해 한다면 이 책을 읽으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대치 중인 우리나라의 경우에 어떻게 해야할지, 갈등, 분쟁이 얼마나 소모적이고 국민들을 힘겹게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저자가 책의 뒷부분에서 한 말, 우리에게도 적용이 되는 말이다. 명심하자.


어떤 해법이든 양측 모두 수용할 수 있고 실제로 평화가 이루어지려면 대중의 태도와 인식이 변해야 하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긍정적인 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374쪽)


이스라엘 국민의 약 21%는 아랍인이다.(총 180만 명) - 생각하지 않았던 인구 분포! - P36

오늘날에도 이스라엘의 유대인과 아랍인은 다른 지역에 거주하고, 다른 학교에 다니며, 서로 거의 교류하지 않는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유대인과 아랍인 사이의 분열은 이스라엘 내에서 가장 골이 깊은 사회적 분열이다. - P38

이스라엘에서는 유대인이 비유대인과 법적으로 결혼할 수 없다. - P41

팔레스타인은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로 구성된 아랍 공동체 아에 있는 별개의 민족이다. - P50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이 땅, 또는 적어도 이 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민족적 열망을 실현하고 나아가 민족의 생존을 보장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믿는다. - P53

팔레스타인의 자유에 대한 욕구와 이스라엘의 안보에 대한 욕구를 조화시키는 것이 이 장기적인 분쟁을 해결하는 열쇠일 것이다. - P55

이스라엘 자체가 경상북도보다 약간 큰 정도의 작은 나라라면, 서안지구는 경기도의 절반 크기이고 가자지구는 강화도와 거의 같은 크기다. 따라서 이 땅조차 모두 가지려는 이스라엘의 욕심에서 비롯된 영토 요구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들이 보기에는 서안지구에 건설되는 이스라엘 정착촌이 가뜩이나 빈약한 영토를 계속 잠식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 P64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대부부느이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은 유전자가 상당 부분 겹치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는 두 민족이 유전적으로 서로 관련이 있음을 시사한다. ... 침략과 점령, 정착과 이주의 오랜 역사와 그에 수반된 인구 혼합을 고려할 때 누가 진짜 원주민이고 이 따이 누구의 소유인지 말하기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양측 모두 이 땅에 대한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는 점이다. - P68

1882년부터 시작된 유대인 이민자들의 팔레스타인 유입이 바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씨앗이 되었다. ... 1946년이 되자 이 지역에 거주하는 유대인은 전체 인구의 30%를 차지했다. - P75

시온주의는 19세기 유럽에서 당시 유럽 유대인이 직면한 두 가지 문제, 즉 반유대주의와 동화에 대한 대응으로 등장했다. 전자는 유대인의 물리적 생존을 위협했고, 후자는 문화적 생존을 위협했다. ... 시온주의의 부상은 반유대주의, 민족주의, 세속주의라는 세 가지 주요 사상이 합쳐진 결과다. 그중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반유대주의였다. - P86

아랍인의 눈에 유대인 정착민은 역사에 기록된 수많은 외부 침략자 중 가장 최근에 등장한 존재이자, 19세기와 20세기 초에 걸쳐 중동에서 벌어진 유럽 제국주의의 일부일 뿐이었다. - P97

홀로코스트는 이스라엘 유대인에게 일종의 집단적 트라우마로 작용했고, 이는 이스라엘의 위협에 대한 인식, 외교 및 안보 정책, 심지어 이스라엘 방위군의 행동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 결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홀로코스트가 있기 훨씬 전에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홀로코스트의 영향을 크게 받았고, 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 P119

아랍 국가는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고자 연합을 이루었으나 비조직적으로 행동했다. - P132

전쟁이 끝나자 이 분쟁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와, 국가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운 상태에서 여기저기 흩어진 무국적 민족과의 갈등이 되었다. - P137

팔레스타인인 추방에 대한 정치적 지지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공식적인 종족 청소 정책은 아니었다는 의미다. - P143

1948년 6월부터 이스라엘 정부는 난민 귀환을 공식적으로 금지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돌아오는 것을 막기 위해 버려진 마을 수백 곳을 완전히 파괴하고 그들의 집과 땅을 빼앗았다. - P144

1967년 전쟁이 끝나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 더욱 악화된 데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팔레스타인의 테러와 이스라엘의 팽창주의도 그 중 하나다. - P163

이스라엘의 영토 점령(동예루살렘과 서안지구, 가자지구)과 정착촌 확장은 1967년 이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주요 쟁점이 되었다. - P165

오슬로 평화 프로세스가 붕괴된 이유는 극단주의자들의 폭력과 대중의 불신, 그리고 정치권의 관리 부실과 악행이 모두 작용한 탓이었다. - P230

포괄적인 평화 협정에 도달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이 되는 네 가지 주요 이슈는...

(1) 분쟁 도시인 예루살렘의 미래 (2) 팔레스타인 난민의 운명 (3) 미래 팔레스타인 국가의 국경 (4)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국가 간의 안보 협정 ... 그리고 물 공유... - P231

2013년 유엔 인권이사회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정착촌의 존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권리에 큰 타격을 입혔다.

자결의 자유, 차별 금지, 이동의 자유, 평등, 정당한 법적 절차, 공정한 재판, 자의적 구금 금지, 신체의 자유와 안전, 표현의 자유, 예배 장소에 대한 접근권, 교육, 물, 주거, 적절한 생활 수준, 재산권, 천연자원 접근 및 문제 사항 개선에 대한 이들의 권리는 지속적으로, 그리고 일상적으로 참해당하고 있다. - P301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을 유대 국가로 인정하거나, 이스라엘이 나크바 및 팔레스타인 난민의 고통을 인정하고 이에 대한 보상을 제공한다면 평화 협정을 지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지도자들이 어떻게든 평화 협정을 체결한다면 대중이 이를 지지할 가능성은 높다 하겠다. 그러나 양측 모두 영토 타협과 관련된 모든 합의를 절대적으로 거부하는 소수(약 3분의 1)가 있다. - P356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이미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는 팔레스타인을 위한 또 하나의 국가를 만들어 기존의 ‘한 국가 현실‘을 바꾸려 하는 대신, 사실상 이스라엘의 통치하에 살고 있는 모든 팔레스타인인(특히 서안지구, 동예루살렘, 가자지구 거주자)에게 이스라엘 국민과 동일한 권리(특히 이스라엘 총선 투표권)를 부여하는 것이 훨씬 더 간단하다는 생각에 근거한다. 이스라엘 주권하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시민권, 동등한 권리, 민주적 대표성을 부여하면 평화적으로 한 국가 해법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 시나리오에서는 평화협정도 필요하지 않다. - P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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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즈만이 희망이다 - 디스토피아 시대, 우리에게 던지는 어떤 위로
신영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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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즈만이 희망이다. 왜 퓨즈인가? 전기에 과부하가 걸리면 끊어져 전기가 통하지 않게 하는 장치가 퓨즈다. 즉 무엇인가 힘든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당하는 존재, 그래서 위험을 알려주는 존재가 퓨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퓨즈에 해당하는 존재들은 누구인가? 사회적 약자들이다. 감염병이 돌아도, 자연 재해가 나도 가장 먼저, 또 가장 심각하게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사회적 약자들이다. 이렇게 사회적 약자들이 힘든 지경에 처하면 그 사회 역시 위험하게 된다.


그러니 퓨즈에 해당하는 사회적 약자들이 끊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 그래야 전기가 계속 통할 것 아닌가? 사회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약자들에 대한 관심, 배려, 정책이 있어야 한다. 


그런 퓨즈들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퓨즈, 사회적 약자라는 말이 거슬린다면 이웃이라고 하자. 사람은 홀로 살기 힘드니, 이웃과 함께 살아야 한다. 그리고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이 있으니, 이웃 사랑은 곧 자신에 대한 사랑이다. 이렇게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랑을 실천한다면 퓨즈가 끊길 일이 없을 것이다.


퓨즈가 끊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책은 사회비평 에세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주로 의료 분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저자가 예방의학자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회-경제-환경적으로 힘들어지면 사회적 약자들의 건강에 문제가 먼저 생기기 때문이다.


어떤 의료가 필요한가? 지금 의대 정원 증원을 가지고 의사가 되겠다는 의대생들은 휴학을 하고 있기도 하고, 전공의들은 사직서를 내고 나간 상황이고, 교수들 역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고 있는 상황. 응급실에 가지 못하고 소위 뺑뺑이를 돌다가 치료를 제 때 받지 못해 사망에 이르는 경우까지 있는 지금, 이런 위급 상황에서 누가 먼저, 심각하게 피해를 보는가?


말할 것도 없이 사회적 약자들이다. 그들의 퓨즈가 먼저 끊어진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공공의료다. 공공의료를 살리기 위한 정책이 나와야 한다. 의료 민영화가 아니라(민영화라는 말보다는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사유화라고 하는 편이 좋겠다) 공공의료기관을 확충해야 한다.


이 책에 나와 있는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공공의료 기관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다. 코로나-19 때 공공의료기관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으면서 여전히 공공의료기관을 확충하지 못했다.


또한 건강보험으로 모든 치료를 받을 수가 없다. 자기 부담이 상당한 경우도 있고, 그래서 전국민이 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고, 그 때문에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기도 하지만, 아직은 부족하다고 한다. 


한 해 치료비를 100만 원으로 한정하자는 공약도 나왔었다고 하는데, 지켜지지 않은 상황. 저자는 그런 상황을 답답해 하고 있다. 공공의료기관을 확충해도 모자랄 판국에 의료 민영화를 하고, 민간의료보험이 확대되도록 하는 정책을 펴는 것에 대해 쓴소리를 하고 있다.


조금 오래된 내용도 있지만, 그 내용들이 현재도 진행 중이니 그의 말을 그냥 넘겨서는 안 된다. 특히 지금처럼 의료 대란을 겪고 있을 때, 의료개혁에 대해 근본에서부터 다시 접근해야 한다.


공공의료기관의 확충, 건강보험으로 치료받을 수 있게, 무상의료까지는 아니더라도 의료비가 없어 치료를 못 받는 사람이 나오게 해서는 안 된다.


다른 매체에 기고했던 글들이라 대체로 짧다. 그렇지만 공공의료에 관한 생각은 결코 짧지 않다. 아직도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긴 시간 계속 제자리 걸음을 하거나 뒤로 간 의료 정책들을 비판하고, 우리가 이웃들과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의료 개혁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저자의 마음이 강하게 느껴지는 책이다.


그래, 저자의 말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퓨즈만이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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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으로 간 성폭력
김보화 지음 / 휴머니스트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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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하게도 이 책을 읽으면서 '문해력'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내용을 이해하는 능력이라고 해야 하나? 어쩌면 이 책은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문해력 부족을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도 문해력이 꼭 필요한 상황에서.


문해력을 떠올리면서 동시에 '듣기'를 떠올렸다. 듣기가 문해력과 연결이 된다는 사실. 잘 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요즘 처절하게 깨닫고 있는 중인데, 듣기를 못하면 제 말만 한다. 제 말만 한다는 것은 제 이익만 챙긴다는 말이다.


왜 성폭력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문해력과 듣기를 떠올렸을까? 우리는 과연 성폭력 피해자들의 말에 얼마나 귀를 기울이고, 또 그들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나 생각해 보면, 내 관점에서 그들의 말을 듣고, 그들의 말을 판단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러는 것도 문제가 되는데, 중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잘못 들으면, 문해력과 듣기 능력이 떨어지면 어떻게 되나? 그러면 엉뚱한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성폭력 사건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이라고 한다. 성폭력으로 고소를 당하면 가해자는 명예훼손죄나 무고죄로 역고소를 한다고 한다. 그러면 재판과정에서 성폭력은 묻히고 다른 쟁점들이 떠오르고, 피해자의 태도 등을 문제삼기도 하고, 권력과 자본이 부족한 피해자에게 이중 부담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러한 이중부담으로 소송을 하기 힘든 피해자들이 발생하면 그들은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가해자들이 (억울하게 죄를 덮어쓰는 사람은 없어야 하겠지만) 자신의 죄를 벗어나거나 경감하기 위해서 돈을 들여 변호사를 사고, 각종 고소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 이것이 시장으로 간 성폭력이다.


이 책에 나와 있는 시장으로 간 성폭력에 관한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최근 성폭력 역고소는 과거에 비해 더 많은 법을 활용하면서 더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피해자뿐 아니라 피해자를 지원하거나 지지하는 가족, 주변인에게까지 확장되고 있다. 37


명예훼손은 이제 약간 산업이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피해자의 말) 43


성폭력 역고소가 강화되는 이유 중 하나는 성폭력 피해를 더는 참지 않고 법의 안팎에서 고소나 공론화 등으로 실천하는 피해자들의 문제제기가 많아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한 공적제도들은 실효성이 부족한 반면, 역고소와 관련된 법의 구성은 이미 가해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었다. 45


성폭력상담소를 찾는 피해자들은 가해자보다 자원이 적거나 법적으로 유리하지 않은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경우가 많다. 67

가해자의 방어와 피해자의 권리는 불안감을 강조하는 성범죄 전담법인의 홍보와 고객유치의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성폭력의 법적 해결 과정은 자원의 경쟁으로 내몰리고 있다. 74


성폭력은 법적 해결 과정에서 현실과 괴리된 최협의설과 관행화된 감형, 수사과정에서 피해자를 신뢰하지 않는 통념, 무고에 대한 의심, 재판부에 따라 결과에 큰 차이가 나타나는 특징 등을 보인다. 75


민주적 정치의 공공 영역이 약화되는 맥락에서 사법적 수위는 점점 더 높아진다. 78


가해자들을 조력함으로써 금전적 이윤을 얻는 법인, 그러한 법인들을 조력하는 (전직) 경찰-검찰-판사 및 학자들, 심지어 심리상담소, 범죄심리학 전문가들이 운영하는 진술분석센터와의 연계, 이들의 전략을 승인하는 법원은 전문가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성촉력 가해자 지원산업을 확장하고 있다 137


성폭력은 경제적인 것으로 재구성되고 있다(138) ... 탈범죄화된 가해자 남성성을 만들어내고 있다(139) ... 재판부는 법시장화를 촉진하고 있다(139)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의심, 가해자를 중심으로 한 억울함의 서사, 미투운동에 대한 거부감 등이 확산된 것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140)


이런 내용들을 보면 성폭력 사건에 이윤을 추구하는 법인들이 개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법인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사회적 지위나 권력을 쥐고 있는 가해자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피해자는 이중으로 힘든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


또한 재판과정에서 피해자의 피해자성을 강조하는 경우도 있고, 또 가해자에게 여러 가지로 감형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그 점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한다.


피해자들은 스스로를 법적 주체로 인식하고 그에 걸맞은 언행을 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재판부는 피해 상황에서 피해자가 처할 수밖에 없었던 무력함과 법적 공간의 주체로서 피해자의 모습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 181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해자는 그에 합당한 처벌을, 피해자는 그것을 이겨내고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회에 그런 문화가 확립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듣기와 문해력 아닐까 한다.


이런 듣기와 문해력이 가장 필요한 사람들, 이 책에서는 그것을 성인지감수성이라고 하는데, 재판부가 아닐까 한다. 판사를 비롯한 경찰, 검찰들. 이들에게는 피해자의 말을 잘 들을 듣기 능력과 그들이 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문해력이 필요하다. 이것들의 바탕이 바로 성인지감수성이고.


마찬가지로 억울한 가해자가 나오지 않게 해야겠지만 법인도 이윤만을 위해서 활동을 하면 안 된다. 그들이 이윤을 위해서 일을 하는 순간, 성폭력은 시장으로 가게 된다. 그러니 억울한 사람을 위해서 일을 한다는 기본 원칙을 지키면서 활동을 했으면 한다.


더 많은 조치들이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를 확립해야 한다. 사람이 사람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는 사회, 그러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서 '이 책은 공감과 지지의 기록이고 앞으로의 연대와 투쟁의 결의문이다.'(355쪽)라고 하고 있다. 공감과 지지, 연대와 투쟁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듣기와 문해력' 아닐까 한다. 

성폭력의 법적 해결 과정은 피해자의 치유를 산업화하고 가해자의 보복성 역고소를 용인하면서 법인들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탈정치화되고 있음을 주의깊게 살펴봐야 한다. - P221

성폭력 사건의 ‘해결‘이란 가해자가 합당한 징계/처벌을 받고 반성/성찰하고, 피해자는 피해의 경험을 재구성하는 가운데 일상으로 회복하고, 그로 인해 공동체/사회의 인식과 문화, 때로는 구조적 틀과 내용이 피해자에게 공감할 수 있도록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 P223

성폭력은 페미니즘 이론과 실천에서 급진적이고 정치적인 분야 중 하나로서, ‘성적인 폭력을 둘러싸고 사람의 몸과 인격, 기억과 정체성, 감정과 합리성, 자율성과 관계성, 제도와 문화에 대한 총체적 접근 속에서구조화되는 개인적 경험이자 한 시대의 담론적 형성물이며, 집단적으로 이해되고 구성되는 정치적 구성물로 재정의하고자 한다. - P332

성폭력 정치란 성폭력을 탈정치화하는 담론적 질서에 저항하는 정치적인 페미니즘 투쟁으로서 성폭력 사건 해결의 공공성을 확장하기 위한 사회적 조건과 역동적 실천의 양식들로 개념화하고자 한다. - P333

실천적 제안

첫째, 변호사 시장의 무분별한 홍보와 고소 남용에 대한 변호사 업계 차원의 규제와 노력이 필요하다. 337
둘째, 성폭력 사건 해결의 법시장화에 저항하기 위한 제도의 도입을 고려해볼 수 있다. 339
셋째, 법조인들의 성인지감수성 훈련이 필요하다. 339
넷째, 성폭력 역고소 수사와 판단의 과정에서 ‘적극적 조치‘가 필요하다. 340
다섯째, 성폭력 피해자가 수사-재판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341
여섯째, 조직 및 공동체 내 성폭력 사건 해결을 공유된 책임으로 인식하면서 사건 해결 과정을 조직문화의 변화를 위한 과정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342
마지막으로, 여성운동에 대한 국가의 통치 질서에 강력한 저항이 필요하다. 343-344 - P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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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 2024년 여름호 - 통권 186호
녹색평론 편집부 지음 / 녹색평론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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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생태를 중심으로, 지구에서 인간이 지속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살피는 책이다. 


삶에서 꼭 지녀야 할 태도를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기도 한데, 생태위기라는 말은 많이 한다. 지금 기후만 봐도 그렇다. 인간이 예상할 수 있는 기후 변화가 아니라, 예측불능의 기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더욱 걱정이 되는데, 기후는 생태, 환경과 잘 연결이 되지만 의료는 생태, 환경과 잘 연결이 안 된다. 그러다 이번 호를 읽으면서 아, 의료도 바로 생태, 환경 문제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하긴 인간의 삶에서 생태, 환경과 관련 없는 분야가 어디 있겠는가. 정치나 경제도 생태,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니, 의료 또한 마찬가지다.


의사들이 진료거부를 하고 나서는 지금, 단순히 그들의 진료거부를 비난하기에 앞서 우리가 원하는 의료는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우리나라 의료 문제가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데, 이를 단순히 의사 수 부족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그렇다고 의사 수를 늘리는데 반대할 필요는 없다. 의사 수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의사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단순하게 수요와 공급 법칙을 생각하면 공급이 늘면 수요에 여유가 생겨 가격이 내려간다. 의사 수가 많으면 사람들이 진료를 더 쉽게 받을 수 있고, 의료비용도 줄어들 수 있다. 이건 참 단순한 발상이다. 오히려 의료 수가는 올라갈 수 있다. 자신들의 손익비용을 맞추기 위해 비급여 진료를 많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의사 수를 이대로 두자는 말은 아니다. 녹색평론에서도 언급하고 있듯이 우리나라 의사 수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 적다고 한다. 이건 객관적인 지표라고 하니 의사 수를 늘려야 하는 방향은 맞다)


그러니 지금의 의료 문제를 단지 의사 수로 국한시켜서는 안 된다. 공공의료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도 의사 수에 있지 않다.


공공의료가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의사가 사람들의 생활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야 한다. 병원이 거대한 성채처럼 사람들의 삶에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 의사가 있어야 한다. 굳이 병원이 아니어도 된다.


진료와 치료가 이루어질 수 있는 장소면 된다. 이런 장소가 있으면 치료가 중심이 아닌 예방이 중심이 된다. 즉 환경과 생태 파괴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질병들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이것이 의료가 생태, 환경과 연결이 되는 지점이다.


그러니 의료는 환경을 생각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의 삶에서 무엇이 필요하고, 어떻게 그들과 어울리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여기서 의료 개혁이 시작되어야 한다.


지금 지방은 의사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멀리 도시로 나가야 한다. 이것이 문제다. 또한 의료 활동이 주로 사적인 병원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공공의료 자체가 이미 부족하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의사 수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특정 과에 몰리는 현상, 공공의료 현장으로 가지 않는 현상 등등을 염두에 두고 의료개혁을 해야 하는데, 무엇보다도 의료 공백이 큰 지역부터 의료를 살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환경, 생태를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지역 의료를 살리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제시하는 글이 있다. 이런 활동이 이루어진다면 도시로 사람들이 몰리는 일을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고, 그렇다면 자연스레 생태,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양창모가 쓴 '농촌 돌봄의 기발한 대안 두 가지'다. 사실 기발하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아직 잘 실행이 되지 않아서지 충분히 실행 가능한 일이다. 이미 하고 있기도 하고.


하나는 '마을 진료소'를 설치하는 것이란다. 마을 진료소가 설치되면 시골 사람들이 멀리 도시까지 갈 필요가 없다. 또한 오랜 시간 방치될 일도 없다. 그런데 의료법에 문제가 있단다. 아니 의료법의 기타 사항을 잘 활용하면 될 텐데, 복지부동이라고 먼저 나서지 않으려 하는 것이 문제다.


의료법 제33조 1항에는 의료기관으로 허가되지 않은 공간, 예를 들면 마을회관 같은 곳에서는 진료행위를 하지 못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 예외 규정 3호에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공익상 필요하다고 인정하여 요청하는 경우'에는 의료기관을 개설하지 않고도 진료행위를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76쪽)


이 법조항을 살리면 마을회관에 진료소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이 공공의료가 아니고 무엇인가. 굳이 병원을 새로 짓지 않아도 된다. 있는 공간을 활용하면 되니. 그러면 환경파괴를 할 필요도 없다. 


병원이 먼 사람들에게는 가까운 곳에서 진료 받을 수 있어서 좋고, 또다른 건설로 환경을 침해하지 않아도 좋으니 일석이조인데... 참...


둘째는 '이웃복지사'란다. 그렇다. 바로 이웃들이 서로를 돕는 것이다. 이웃복지사는 함께 사는 이웃이다. 그러니 누구보다 이웃들의 사정을 잘 안다. 이들이 의사가 진료를 왔을 때 그간의 일을 이야기해주면 진료는 훨씬 수월하다. 


그런 점을 정부가 활용해야 한다. 그래야 의료개혁이라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마을 진료소를 개설하기 위해서는 공공의료 확충이 필요하다. 공공의료 확충에 필요한 의사 수도 증원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마을 사람들과 함께하겠다는 의사들이 많아져야 한다.


수익보다는 사람들의 건강을 먼저 생각하는 의사들. 그들이 많아지면 이윤보다는 환경, 생태를 먼저 생각하는 사회로 이미 진입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런 점에서도 환경, 생태와 의료는 연결이 된다.


물론 인간이 지금까지 겪어보지 않았던 많은 질병들이 환경, 생태 파괴로 인해서 발생하고 있기도 하지만, 그래서 치료보다는 예방 쪽에 중점을 두는 의료 활동이 더욱 필요하기도 하고.


의료 개혁에 관한 글들이 이번 호에는 많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뜻이기도 하겠다. 이번 호를 읽으면서 의료 개혁과 환경, 생태 문제에 대해서 함께 고민해야 함을 생각하게 됐으니, 녹색평론은 나에게 무척 의미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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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 빈곤과 청소년, 10년의 기록
강지나 지음 / 돌베개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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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이런 질문은 좋다. '어떻게'라는 말에는 그들이 성장하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이 포함되어 있다. 그냥 시간이 지나 나이를 먹는 것을 '어떻게'라는 부사어를 써서 표현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라는 말에는 이들이 어른이 되는 과정이 결코 간단하지 않음을 말해준다. 그냥 시간이 지나 나이를 먹어,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이 어떻게라는 말에는 '어떤'이라는 관형어도 포함되어 있다.


즉,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떤 어른이 되는가다. 물론 이 책에서는 청소년기에 만난 가난했던(과거형으로 쓰고 싶지만, 이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가난하다)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추적해서 보여주고 있다.


정말 많은 일들을 한다. 어떤 아이는 학교를 벗어나고, 어떤 아이는 공부를 열심히 하고, 대학을 간 아이든, 대학을 가지 않은 아이든 그들은 성장과정에서 가난이라는 굴레를 벗어던질 수가 없다.


이 가난이라는 굴레는 너무도 튼튼해서 여간해서는 끊어버릴 수가 없다. 질긴 가난의 질곡. 이 질곡은 대학에 들어간 아이나 들어가지 않은 아이나 똑같이 겪게 된다.


대학에 들어가도 공부에 전념할 수 없는 환경. 졸업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도약할 수 있는 받침대가 없다. 자신이 받침대를 만들어야 하는데, 기껏 받침대를 만들기 위해 토대를 마련해 놓으면, 주변의 누군가가(그 주변의 누군가가 가족인 경우가 태반이다) 파놓고 만다.


지속되는 가난의 굴레.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아이들은 청소년시기처럼 살아가려 하지 않는다. 힘든 청소년시기를 거쳐왔다. 그들은 그 시기를 극복했다고 할 수 있다. 하긴 이 책에 나올 정도면 그 시기를 극복해야만 한다.


10년 동안 인터뷰를 할 수 있다는 말은 아이들이 피하지 않았다는 말이니, 이는 10년 후에는 부자가 되어 있지는 않아도 적어도 과거와는 결별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나 토대를 마련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슬프다. 이 책에 실린 내용은. 이 아이들이 그런 토대를 마련한 것은 전적으로 그들의 힘이다. 그들의 노력이다. 주변의 누군가가 도움을 주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노력으로 토대를 마련하게 됐다.


사회적 기반이 마련되었더라면 좀더 쉽게 마련했을 그 토대를 힘들게 힘들게 마련하고, 이제 받침대를 놓으려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저자는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어떻게 바꿔나갈 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일'(278쪽)이라고 하면서, 청소년기에 방황하는 아이들을 과거의 잘못으로 단죄할 것이 아니라 '과거의 잘못이나 과오, 실수에 대해 다시 한 번 도전할 수 있는 기회, 다시 힘을 내볼 수 있는 용기를 제공하는 것이 우리 사회가 할 역할'(256쪽)이라고 한다.


그래야만 우리 사회가 좀더 좋은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여덟 명 청소년의 삶이 이 책에 실려 있다. 결코 가볍지 않은 그들의 삶. 앞으로도 가볍지 않을 그들의 삶. 하지만 그들은 고통스런 과거를 지나 현재에 이르렀다. 과거와 결별하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려고 하고 있다.


이런 청소년들이 어찌 이들 여덟 명뿐이랴. 이 책에 나온 청소년들보다 더 힘든 상황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최소한의 발판도 마련하지 못하고 구덩이에 빠져 허우적 대고 있는 사람들도 많으리라.


그런 사람들을 개인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개인 탓을 하기 전에 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아는지 먼저 살펴야 한다. 그것이 이 책이 말하는 점이기도 하리라.


가난은 결코 개인의 책임이 아니다. 또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하지 못한다는 말은 잘못되었다. 가난 구제를 못하는 나라님이라면 쫓아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사회는 충분히 가난을 쫓아낼 수 있는 사회다. 


하지만 그것은 바로 우리 손에 달려 있다. 그 점을 명심해야 한다. 가난한 아이들의 삶을 10년동안 추적해서 보여준 이 책. 가난에 대한 기존의 생각을 바꿀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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