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 2023년 여름호 - 통권 182호
녹색평론 편집부 지음 / 녹색평론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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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이 재발간 되었다.  


오랫동안 구독을 하면서 두 달에 한 번 만나는 녹색평론을 내 정신을 깨우는 죽비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한 해 남짓 휴간한 기간 동안 환경에 대한 감수성이 좀 무뎌진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재발간하고, 다시 받아서 읽어보니 역시 녹색평론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 해의 공백을 이번 호가 메워주고 있다고 해도 좋겠단 생각. 기후재앙과 전쟁과 평화와 민주주의가 따로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민주주의는 전쟁을 막고 평화를 정착시키면서, 기후재앙을 막는 여러 정책들을 실시할 수 있다는 생각에 우리 삶에서 정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우치게 하는 이번 호이기도 했다.


보통 잡지가 휴간을 하면 그 휴간이 종간이 되는 수가 많다고 하는데, 격월간지에서 계간지로 바뀌기는 했지만, 녹색평론이 계속 발행된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이기도 한다.


녹색평론을 통해서나마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에 대해서 알게 되고, 고민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행동을 변화시키고, 실천을 해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거기까지 가지 못해서 마음이 편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는 노력을 한다고 마음의 위안을 삼는다.


오랜만에 나온 녹색평론, 이번 호에서는 기후재앙과 전쟁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전쟁이 이리도 많은 탄소배출을 하는지 몰랐다. 단지 인명 살상만이 아니라 지구에게도 전쟁은 재앙임을, 그래서 전쟁은 기후재앙을 더욱 부추기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이번 호를 통해서 확실히 알게 되었고.


추정을 할 수밖에 없지만 그 통계에 따르면 온실가스 배출로만 따지면 '그 양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5.5%를 차지하는데, 하나의 국가라고 치면 중국, 미국, 인도 다음으로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나라에 위치하게 된다'(94쪽)고 하니, 기후재앙에 전쟁도 큰 몫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후재앙으로 인해서 세계는 갈수록 힘들어지는데, 우리나라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번 호에는 정부의 대책이 너무도 미흡함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것도 이번 정부 내에서 해결하려 하지 않고, 다음 정부에 해결을 미루고 있다고 하니, 다른 나라들에게 우리나라는 기후악당으로 비춰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니 기후재앙은 단순히 남의 일이 아니다. 올해 꽃들이 피는 시기를 보라. 평년보다도 한두 주 더 빨라지지 않았던가. 또한 기후가 어떻게 될지 아직도 잘 모르고 있는데, 그럼에도 기후재앙이 다른 나라 이야기인 듯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다.


기후재앙을 막기 위해서는 평화가 필수적이고 (전쟁이 온실가스를 그렇게 많이 배출하니), 또한 농업에 대한 (기계식 농업이 아니라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농업) 관심이 높아지고, 그에 대한 정책이 적절하게 마련되어야 하는데, 아직 기후재앙을 극복할 대책을 제대로 내놓지 못하고 있으니...


기후재앙과 전쟁, 평화, 농업, 그리고 무엇보다도 민주주의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이번 호를 통해서 알 수 있게 된다.


하승수와의 대담에서 이런 문제를 만나게 된다. 이 대담에서는 지방자치의 단위를 읍,면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 시골이라고 하는 데서는 읍이나 면이 지방자치의 기본 단위가 되어야 실질적 민주주의가 이루어지고, 그래야 그 장소에 사는 사람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다는 하승수의 주장을 곱씹어보게 된다.


여기에 더해서 웬델 베리의 삶을 소개하면서 농업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글. 농업이 우리 생명을 살리는 기본임에도 우리는 농업을 천시하고 있다는 사실. 특히 학교에서는 농업을 도외시하고 있으니 더 큰 문제라고 주장한다.


산업주의와 농본주의를 대조하면서 농본주의가 미래를 이끌어갈 사상이 되어야 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 더 많은 논의가 있어야 한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나라 교육에서 농업은 너무도 적게 다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적게가 아니라 아예 안 다뤄지고 있다고 봐도 좋다. 특성화고등학교라고 하면 상업계와 공업계를 생각하지 농업계를 생각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현실을 봐도 그렇다.


생명이 직결된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농업에 대해서 과연 어떤 교육을 하고 있는지, 도시뿐만이 아니라 시골에서도 농업은 교육과정에 속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 웬델 베리의 말을 이에 적용하면 우리는 미래를 위한 교육을 하고 있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IT교육, 코딩교육, 전자교과서 등등을 말하기 전에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먹을거리를 만들어내는 일에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농본주의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기후재앙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레 생기고, 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려고 하게 될테니 말이다.


오랜만에 만난 녹색평론, 다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생각하게 한다. 앞으로 한 해에 네 번은 만날 수 있을테니, 녹색평론이 우리에게 길을 안내해주는 역할을 해줄 것이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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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2 13: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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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2 14: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후 1.5℃ 미룰 수 없는 오늘 - 생존과 번영을 위한 글로벌 탄소중립 레이스가 시작됐다!
박상욱 지음 / 초사흘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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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어렸을 때 읽었던 우화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왜 그 우화가 떠나지 않았는지, 실현되지 않을 대책을 세워놓고, 그에 만족하려는 모습이 생각나서 그랬는지, 참.


온난화에서 기후변화로, 기후변화에서 기후위기로, 다시 기후위기에서 기후재앙으로 용어가 바뀌어가고 있다고 한다. 지구의 평균 온도가 1.5℃를 넘어 상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대책.


탄소중립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정책들이 제안되고, 이미 실천하고 있는 나라들이 많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역시 기후재앙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역대 최고라는 말을 단 기후들이 최근에 많이 발생하고 있는 현실만 봐도 그렇다.


그렇다면 기후재앙을 막을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2030년까지 탄소중립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하는데, 아무 대책 없이 지냈나 했더니, 기후재앙에 대한 문제의식과 그에 대한 대책이 이미 2000년대가 되기 전부터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그 대책이 실천되지 않고 있는 동안 유럽에서는 탄소중립을 비롯한 기후재앙에 대한 대책들이 많이 진전되었다고 한다.


단지 지구를 살리자는 윤리적 차원이 아니라, 지금대로 나가다가는, 자신들이 살기 힘들어질 것이라는 현실적인 이유로 그들은 기후재앙에 대응하는 여러 정책들을 마련하고 실천하였다고 하는데...


기후재앙이 단지 북금곰이나 극지방의 빙하가 녹는다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삶을 위협하는, 경제적인 이유도 심각함을 이미 유럽은 깨달았다는 것이다.


즉, 기후재앙에 대비하는 정책은 윤리적인 면을 넘어서 경제, 안보적인 의미에서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한다. 모든 정책에서 0순위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2030년은 이미 코 앞에 다가왔고, 목표로 삼고 있는 2050년도 머지 않았으므로, 지금 이대로 문자에 갇힌 정책이 아니라 현실에서 실천이 되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한다.


다른 쟁점으로 여야가 싸울 여력이 없다고, 여야를 막론하고, 또한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기업가와 노동자를 막론하고 지금 우리에게 닥친 가장 시급한 과제는 기후재앙을 막는 정책이라는 점.


여러 정책들이 이미 제시되었기에 그런 정책들을 실현해야 한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탄소중립은 말 그대로 '걸음마 단계'다.'(359쪽)라고 하니, 산업, 건설, 수송 분야 등 모든 분야에서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


특히 화석연료 산업에 대한 투자를 멈춰야 하고, 내연기관차에 대한 연구, 생산도 줄이고 없애야 하며, 건축에서도 재생가능한 에너지를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한다.


지금도 늦었지만, 그래도 더 늦추었다가는 그 부담을 후대들에게 전가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고양이에게 잡아먹히지 않고 싶은 쥐들이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를 대책으로 세웠지만, 그 다음에 어떻게 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이야기처럼 되지 않아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나온 대책들이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와 같은 결과로 끝나지 않기를... 대책은 너무도 좋으나 실현하기는 너무도 어려운, 또는 누구도 나서서 하지 않으려는 대책은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당장 눈 앞에 기후재앙에 닥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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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부당합니다 - Z세대 공정의 기준에 대한 탐구
임홍택 지음 / 와이즈베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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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이라는 말이 사회의 중심이 되었다. 이건 지금 시대뿐만이 아니라 어느 시대라도 공정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특히 '공정'이라는 말이 젊은 세대의 주장인 듯이 나오는 이유가 무엇일까?


어느 사회든 공정하지 않다고 느끼면 항의를 하고 개선을 하려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공정하지 않음을 공정함으로 바꿔가는 변화를 이루었는데...


이 책의 저자는 '공정'을 정의하려고 하지 않는다. 철학, 윤리적 정의가 이 책에서 필요하지도 않다. 저자는 우리 사회에서 왜 '공정'이 강하게 대두되었는지를 살피고, 그것을 청년세대들의 특징으로 이야기하는데, 그건 문제가 있다고 한다.


공정하지 않음이라는 말보다는 부당함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데, 부당이라는 말에는 적당으로 고쳐야 한다는 개선의 욕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들이 말하는 공정하지 않다는 말은 부당하는 말이고, 이는 사회에서 고쳐야 할 문제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렇게 공정이라는 말 대신에 부당함이라는 말로 바꾸니, 어느 특정한 세대에게만 해당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말이 된다. 부당한 것은 누구에게도 부당하기 때문이다. 즉, 부당함은 고쳐야만 할 문제이다. 그것도 한 세대만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이 점에서 이 책의 장점이 나타난다. 젊은 세대가 느끼는 부당함이 과연 그들만의 불만인가라는 질문을 하고, 아니라고, 그 부당함은 누구에게나 부당함이라고 한다. 즉 부당함을 고치려는 쪽으로 행동을 해야 한다.


사회가 변했기 때문에 전에 부당했음에도 아무 말 하지 못하고 넘어갔던 일들을 공론화할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는 부당하지 않았던 문제가 지금 부당해진 것이 아니라, 그전에도 부당했던 문제이기 때문에, 요즘 젊은 세대는 왜 그래?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왜?나 무엇을?보다는 어떻게?에 중점을 두자고 한다. 어떻게 그 부당함을 고칠 것인가에 중점을 두면 세대 갈등이나 젠더 갈등이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부당함은 세대를 막론하고, 젠더를 막론하고 부당하기 때문이다. 함께 고쳐나가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육아 문제로 아이를 낳지 않는 경향이 심화되고 있는데, 이것이 어찌 여성들에게만 해당하는 문제겠는가? 육아 문제는 모든 성들에게 해당하는 문제고, 성만이 아니라 모든 세대에게도 해당하는 문제다. 그러니 경제적 지원으로만 해결하려고 하면 출생률이 낮아지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육아 문제에서 여성들에게 부당한 것은 남성들을 비롯한 다른 성들에게도 부당한 것이고, 그 부담은 모두가 지게 된다. 이는 결국 사회의 부담으로까지 전가되니, 이런 육아 문제들처럼 함께 고쳐나가야 하는 문제들이 많다. 저자는 그런 문제들을 부당함으로 이야기해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적 평등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절대적 평등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부당하다고, 공정하지 않다고 하지 않는다. 그럴 수는 없다. 어느 사회도 절대적 평등을 이룰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떤 사회를 원하는가? 맺음말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스포츠 경기의 공정한 규칙은 간단하다. 첫 번째, '평등한 출발'이 보장돼야 한다. 두 번째, '반칙 없는 경쟁 과정'이 진행돼야 한다. ... 나는 스포츠에 경기에 적용되는 기본적인 수준의 공정을 우리 사회에 접목시키려 노력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본다. 여기서 핵심은 두 가지다. 첫 번째, '반칙이 없는 경쟁 과정'을 만들어야 한다. 두 번째, 계속 변화해나가야 한다.'(351쪽)


젊은 세대만이 지닌 특징이 '공정 추구'라고 해서는 안 된다. 부당함을 부당하다고 소리내는 목소리가 있음을, 그들은 이미 변한 사회에서 그것이 부당함을 온몸으로 겪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고쳐야 한다고 외치는 것이다.


단지 젊은 세대만이 아니라 이는 모두에게 해당하는 일이다. 공정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어떻게 하면 부당함이 없는 사회를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그 '어떻게'에 해당하는 내용을 채워나가야 한다. 


저자가 두 번째로 주장한 '계속 변화해나가야 한다'는 말, 그 말이 정답이다. 시대는 고정되지 않는다. 그리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규칙도 달라져야 한다. 참고할 만한 내용이 많은 글이었다.


덧글


이 글을 읽다가 국가 예산이 이렇게 쓰여도 되나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통일을 대비한다고 할 수도 있고,(그런데 저자의 말대로 통일부가 있는데, 굳이?) 또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영토를 관할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아무래도 이건 예산 낭비라는 생각이 든다. 바로 이북5도 도지사라는 직책이 있다는 사실.(황해도, 평안남북도, 함경남북도) 이렇게 쓰여 있다. 


현재 분단 상황인 만큼 우리나라는 이북5도를 실효 지배하지 않는다. 하지만 통일이 될 경우 헌법에 따라 이북5도를 관리하는 것으로 정해져 있다. 게다가 이북5도지사와 같은 미래의 관리자로는 평양지사를 추가하고, 도 이하 군/시/읍/면 동/리를 포함하게 되므로 군수,시장, 읍,면,동장까지 포함해(2020년 기준) 총 1,013명의 북한 관리자가 존재한다. ... 대부분의 업무가 통일부에서 진행하고 있는 업무와 겹친다. ...지난 10년간 이북5도 관지라 인건비로 들어간 비용이 834억 원에 달한다(191-192쪽)


이런 비경제적인 부처부터 정리해야 하지 않나? 한 해에 약 83억 원이 들어간다는 얘긴데... 이건 부당함이지 않을까? 예술원 회원제도의 부당함을 이야기하면서 이북5도 도지사 이야기도 언급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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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김원영 지음 / 사계절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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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우리를 실격시키지 못한다.'(313쪽)


이 책 마지막 문장이다. 사람이 사람을 실격시킬 순 없다. 이 당연한 말이 당연하지 않으니, 현실은 실격당한(실격시킬 권리가 없음에도 이상하게도 실격시키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자신들이 실격당하지 않기 위해서 두 배, 세 배의 노력을 한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아니라, 그런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더 강하게, 그들보다도 더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이려 한다. 그들과 비슷해지려 하기도 한다. 비슷해질 수 없음에도.


그러다 어느 순간, 이건 아니다. 나는 나대로 살아야 한다는 자각을 한다. 내가 왜 남과 비슷해지려 노력해야 하는가? 남과 다르다고 해서 남을 따라가기만 해서는 안 된다.


남을 따라가려 하다가 내가 잘하는 것을 놓치고 또 나를 사랑할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그렇게 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이 나만이 책임져야 할 문제일까?


나만의 책임이라는 말은 실격과 관련이 된다. 장애를 지니고 태어났다고 해서 내가 관여하지도 않은, 내가 어떻게 할 수도 없었던 장애에 왜 나만이 책임을 져야 한단 말인가?


오히려 사회가 책임을 져야 하지 않을까? 내가 남들과 비슷하게가 아니라 나로 살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사회 아닐까?


사람은 누구나 인권을 지니고 태어나니까, 그 인권은 장애가 있고 없고 상관없이 모두에게 지켜져야 하니까. 그러니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는 문제가 있는 사회다. 그런 사회를 바꾸려고 해야 한다.


지금까지 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 해온 일이 이런 일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들의 목소리를 과격하다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줄까? 물론 귀 기울여 주는 사람도 있다.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사회를 바꾸려고 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사회는 누구나 자신의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하니까. 그런 사회에서는 누구도 실격당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누구도 실격시켜서는 안 된다.


그러니 '인간적 상호작용(1,2,3장), 개인의 윤리적 결단(4,5장), 법과 제도의 관행(6,7장), 사랑과 예술이라는 특수한 맥락(8,9장)으로 구성하여 '잘못된 삶'이라는 관념과 태도에 맞서려 했다(16쪽)'고 구성한 저자의 글은 사람이 실격당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펼치고 있다.


읽으면서 생각하지 못했던 점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 중에 법에 치우친, 형식을 중시한 관계를 유지하는 자세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쓸 수 있는 품격주의라는 말과, '오줌권'(이런 권리를 공식적으로 주장하지는 않지만, 이동권이라는 말도 처음에는 없던 말이라고 했으니)이라는 말이 대표적이다.


'오줌권'이라? 인간의 생리적인 현상을 해결하는 권리인데,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장애인들이 갈 수 있는 화장실이 지금도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


소위 먹자골목이라고 하는 음식점이 주욱 늘어선 곳에 가면, 각 음식점들 안에 화장실이 있는 경우도 있고, 건물에 공동 화장실이 있는 경우도 있는데, 대부분 계단으로 갈 수밖에 없거나 또는 턱이 있어서 휠체어가 갈 수 없는 곳이 많다.


그렇다면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은 회식을 하더라도 화장실이 어떠한가를 미리 고려하고 음식점을 선택해야 한단 말인가? 비장애인들은 그런 고민을 하지 않을텐데...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그런 고민을 하지 않고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음식점을 갈 수 있도록 하는 일, 그것이 장애인의 책임일까?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의 책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


이렇게 되면 누구도 실격당하지 않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한다. 이 책의 끝부분에는 킹 목사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를 연상하게 하는 말이 있다. 그 말이 실현되는 사회, 그것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으면 하는 말로 끝맺으려 한다.


'예의 바른 무관심, 섬세한 도움의 손길 무시와 냉대 속에 혼자 있는 사람을 발견하고 고개 숙여 말을 거는 순간, 조금 더 긴 시간을 들여 상대방의 '초상화'를 그려보려는 미적 · 정치적 실천. 그런 것들이 모여 자기 삶의 조건을 수용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하고 탁월한 자아를 구축하게 한다. 그러한 자아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자신들의 구체적인 삶을 언어화 하고, 법적인 권리로 만들고, 품위와 겉모양만 중시하는 품격주의자들의 세계에 구멍을 낸다. 모든 사람에 대한 진심 어린 존중은 이제 법률이 되고, 헌법이 되어 우리 공동체의 최고 규범이 된다.'(3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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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런 말은 쓰지 않습니다 -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새로고침이 필요한 말들
유달리 지음 / 포레스트북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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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끝부분 나가는 말에 이런 말이 나온다. 

'모를 수 있다는 건 곧 특권이다. 그리고 대부분은 그 사실조차도 모른다.'(250쪽)


그렇다. 모를 수 있다는 것, 즉 자신의 삶에 불편함으로 다가오지 않았기에 알지 못하고 지냈다는 사실 자체가 힘이다. 권력이다.


이런 힘이 있는 자들은 약자들의 고통을 모른다. 자신은 겪어보지 않았기에... 겪어보려 하지도 않았기에, 약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결코 자신의 이야기가 되지 않는. 그러니 그들은 모른다. 모를 수밖에 없다. 힘이 있는 자들에게는 그런 모름이 권력이 된다. 힘이 된다.


하지만 약자들은 모를 수가 없다. 생활에서 늘 겪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점을 강자가 아닌 약자에게 두어야 한다. 약자가 행복한 세상은 강자도 행복한 세상이다.


마찬가지로 강자들은 의식적으로 불편해지려 해야 한다. 자신이 겪지 않는 일에 무관심하기보다는, 그런 일에 관심을 두는 불편함을 생활화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회가 바뀐다. 


출퇴근 시간에 권력자들이 꼭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불편함을 겪어보기를.. 몸에 손상이 없는 사람도 고통을 겪는 그런 대중교통. 몸에 손상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지옥임을... 그 지옥도 잘 이용할 수 없음을...


특히 언어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가스라이팅이라는 말이 있듯이, 지속적으로 듣게 되는 언어는 우리의 사고뿐이 아니라 행동까지도 규정할 수가 있다.


차별 언어가 만연하면, 그 사회는 차별을 당연시하게 된다. 차별 언어를 의식하지 않고 쓰는 무지의 권력을 휘두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차별 언어들을 다루고 있다. 무의식적으로 쓰는 말들도 있지만, 일부러 쓰는 말들도 있다. 그런 말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왜 쓰면 안 되는지, 그 말이 왜 문제가 되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내용 중에 김도현의 글을 인용한 부분이 있다. 장애에 관해서.


'손상은 손상일 뿐이다. 특정한 관계 속에서만 손상은 장애가 된다.' (234쪽) 


그렇다. 선천적 장애도 있지만 후천적 장애가 많다. 그런데 장애와 손상을 구분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이 문장을 보면서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손상은 손상일 뿐이라는 말. 이 말은 풀어서 이렇게 설명해주고 있다.


'다리의 '손상'은 휠체어를 이용한다면 평지에서는 장애가 아니다. 웬만하면 어디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단을 마주하였을 때 다리의 '손상'은 장애가 된다.' (234쪽)


손상이 장애가 되지 않게 하는 일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 일을 하기 위해서는 불편해져야 한다. 불편함을 몸으로 느껴야 한다. 불편함을 모르고 그냥 지내다보면 손상이 장애가 되어도 모르고 지나가기 쉽다.


최근 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 벌이는 지하철 출근 투쟁에 관한 글이 있다. 왜 이들이 그런 투쟁을 하는지, 그것은 이들의 손상이 장애가 되는 구조 때문이다. 구조만 바꾸면 이들의 손상은 손상으로 그칠 수 있다. 장애가 되지 않을 수 있다. 통계의 문제가 이 부분에서도 작동한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2022년 4월 기준으로 공사가 관리하는 지하철 역사 275개 중 254개 역에선 교통 약자가 타인의 도움 없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지상 출구부터 승강장까지 하나의 동선으로 이동할 수 있다. 이른바 '1역사 1동선'이 확보된 역들이다. 수치만 보면 92.3%로 높다. 그러나 문제는 환승역이다. 환승역 69개 중 50.7%(35개 역)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서 환승할 수 없다. 환승하려면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거나 휠체어 리프트를 사용해야 한다.'(230-231쪽)


환승하는 곳에서 꼭 필요한 엘리베이터가 절반도 설치되어 있지 않아, 빙 돌아서 환승해야 한다고 하니,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다고 불편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어떻게 설치되어 있는지도 알아야 한다. 그냥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잖아 하면 그것은 바로 무지의 힘이다. 권력이 작동하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이런 시설말고도 더 문제가 되는 것은 한 번 발화되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 말이다. 차별의 말들... 상처주는 말들. 그런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들은 정말 모르는 힘을 구사하는 것이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 그들에게는 모르는 게 힘일 수 있지만, 이는 약자들에게는 독이 되고 칼이 된다. 그들의 마음에 몸에 상처를 낸다. 그러니 알아야 한다. 불편해져야 한다. 알아서 불편해지면, 고치게 된다. 고치도록 한다.


손상이 장애가 되지 않도록, 또 말로 인해 상처를 받지 않도록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회가 더 행복해진다.


이 책 제목대로 '이제 그런 말은 쓰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겠다. 먼저 '그런 말'이 어떤 말인지 알아야겠다. '그런 말'이 무엇인지 모르는 힘을 알게 모르게 발휘하지 않도록 해야겠다.


이 책에 나와 있는 '그런 말들' 모르고 넘어가서는 안 되겠단 생각을 한다. 알아서 고치는 불편함을 받아들여야 한다. 무지가 힘이 되지 않게... 아는 것이 힘이 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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