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나는 이슬람 - 오해와 편견에 갇힌 16억 문명의 진실 주니어 인문과학 캠프 2
하룬 시디퀴 지음, 김수안 옮김 / 행성B(행성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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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 널리 퍼진 종교 가운데 가장 극단적인 평가를 받는 종교가 바로 이슬람 아닌가 한다. 평화를 추구하는 종교라는 말도 있고, 전쟁을 추구하는 잔학한 종교라는 말도 있다.

 

어느 것이 옳을까? 옳고 그름을 떠나 이슬람은 우리에게 과격한 종교로 인식되어 왔다. 9.11테러부터 시작하여 사람을 참수하여 죽이는 장면을 공개하는 행위까지, 테러 또는 폭력, 또 여성에 대한 극단적 차별을 하는 종교라는 인식을 지니고 있다.

 

하긴 얼마 전까지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여성이 운전을 하면 범죄라고 처벌을 받았다고 하니, 여성 인권이 잘 보장되지 않는 나라가 이슬람을 주요 종교로 믿고 있는 나라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리 이슬람을 바로 보고 싶어도 별다른 자료를 만나지 못했다. 그냥 언론에 나오는 것만으로 이슬람에 대한 정보를 얻고 있었는데...

 

이희수 교수나 몇몇 사람들의 노력으로 이슬람을 바로 볼 수 있는 계기가 생기기도 했는데, 이 책은 이슬람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오해가 있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런 오해들에 대해서 하나하나 반박하고 있다.

 

이슬람은 테러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 여성에 대한 차별이 아니라 여성에 대한 인정이 주요 교리인 종교라는 것. 개종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 자신의 이익보다는 남에게 베풂을 더 강조하는 종교라는 것.

 

이들이 테러로 나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니 테러로 인해 가장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바로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이라는 것.

 

서양인의 비뚤어진 시각이 이슬람을 왜곡하고, 또 그들을 차별하기 때문에 그들이 저항할 수밖에 없다는 것. 지금은 그렇게밖에는 저항할 수 없지만, 그런 저항방법에 대해서 이슬람 신자들이 모두 찬성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오히려 극단적인 테러를 반대하는 이슬람 신자들이 많다는 것. 그런 것들에 대해서 알게 되면 이슬람을 이상한 종교로 보는 시각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말해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슬람 역시 종교라는 것, 종교는 본래 인간에게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 생긴 것이라는 것. 기독교도 불교도, 그리고 이슬람도 마찬가지라는 것.

 

이 책에서 이 글귀를 읽고 이래야 한다고, 이렇게만 한다면 세상에 전쟁은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성서를 믿는 사람(유대인과 기독교도)과 논쟁하지 말되, 논쟁해야 한다면 매우 공손하게 말하라.

만일 알라가 뜻하셨다면, 인류를 한 나라로 만드셨을 것이니라. 하지만 인류는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느니라. (178쪽)

 

다양성, 그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임을 인식하고 함께 살아가도록 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이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여전히 이슬람은 차별을 받고 있다. 그만큼 이슬람에 대한 시각이 많이 왜곡되어 있다. 그런 왜곡된 시각에서 벗어나 이슬람을 이슬람 자체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세상에 평화가 오지 않을까 한다.

 

이슬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다. 이 책은 다양한 근거들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읽으면서 다른 종교에 대한 편견을 떨쳐 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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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7 08: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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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7 09: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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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서 만난 역사 창비청소년문고 16
김대현.신지영 지음 / 창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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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역사를 바꾼 재판들이 있다. 그 재판을 통해 구시대에서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게 되는 계기가 된 사건들이 있는데... 반대로 구시대가 너무도 강고해 새로운 시대가 재판이라는 틀을 통해 거꾸러지는 모습을 보이는 사건들도 있고.

 

유명한 재판, 중요한 재판들을 보면 역사를 알 수가 있다. 역사를 공부하는 재미도 있고. 이 책은 이러한 재판을 통하여 역사의 흐름을 짚어주고 있다.

 

중세부터 시작하는데, 중세를 발칵 뒤집어 놓는 사건, 그것은 바로 지동설이다. 한 시대를 다른 시대의 사고로 넘어가게 만드는 전환, 우리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한다.

 

이미 다른 사고가 생겼고, 그것이 대세로 자리를 잡아가는 전환이 되는 것이다. 중세에서 코페르니쿠스에 의해 지동설이 확고하게 자리잡게 되는데, 이런 지동설을 주장하다가 화형을 당한 사람이 있다.

 

재판에서 사형을 집행하는 여러 방법이 있는데, 중세에는 주로 거열형이나 화형이 주된 사형방법이었다니, 사형 방법 변천사도 인권의 발전과 더불어 함께 한다는 것도 알게 된다. 주장이 다르다고 화형에 처하는 시대. 야만의 시대라고 해야 한다. 그것도 신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인간 중심이 아닌 신 중심, 그런 신에게 도전하는 인간은 용납되지 못하던 시대에 감히 지구가 중심이 아니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던 사람, 조르다노 부르노. 이 사람으로부터 이 책은 시작한다. 지금은 지동설을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처음에 지동설을 주장했던 사람들은 이단으로 몰려 종교 재판을 받아야 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말로 유명해진 갈릴레이도 종교 재판에서는 자기 주장을 부인하지 않았던가. 죽음에 맞서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았던 브루노는 그래서 더 중요하다. 비록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에 가려 잊혀져 가고 있는 사람이지만 그는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이렇게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넘어갈 때 권력을 쥔 자들이 나오는데 이들이 바로 절대군주다. 유럽에 나타나는 절대군주들. 이들 역시 재판을 통해 역사의 흐름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신의 몰락, 그리고 절대군주의 몰락은 민권이 신장됨을 보여준다. 소수 권력자들이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국민들이 중심이 되는 사회로 전환되는 것을 왕에 대한 재판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찰스1세, 루이16세, 니콜라이2세 등의 몰락은 절대왕정의 몰락을 의미하고, 주권에 대한 개념이 변해가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이 사이에 여성이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인정받게 하는 재판이 하나 있다. '올랭프 드 주구'라는 여성. 프랑스 혁명 당시 여자도 남자와 같은 권리를 인정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여인. 결국 단두대에서 처형당한 여인.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여성에게 있다면 자유 발언을 할 권리 또한 있다는 이 여성에 대한 재판은 여성의 권리가 한참을 지나야만 획득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국민국가 시대, 민족 개념이 형성되고 각 국가끼리 경쟁을 하던 시대로 접어들면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 전쟁은 내부를 단결시키는 역할을 하지만 반대로 내부 경쟁자를 제거하는 역할도 하게 된다.

 

프랑스에서 '드레퓌스 사건'이 일어나고, 2차 대전때는 숄 남매의 저항이, 그리고 전쟁이 끝나고 나서 냉전체제에서는 찰리 채플린이 탄압을 받는 그런 상황.

 

여기에 체 게바라와 아히히만 재판까지 현대사를 아우르는 재판들이 나온다. 때로는 공개 재판으로 때로는 비밀 재판으로 이루어진 이런 법정의 역사를 통해서 세계사의 흐름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 재판을 통해서 우리 현대사를 읽어갈 수 있지 않나? 찰리 채플린 이야기에서 극단적인 반공주의 매카시즘을 읽어낸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조봉암 재판, 통혁당 재판, 인혁당 재건위 사건 재판' 등을 통해서 극단적 반공주의를 읽어낼 수가 있다.

 

여기에 '박근혜 탄핵'이라는 재판을 통해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어떻게 성숙되어 가는지를 살펴볼 수도 있으니, 법정은 단지 재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역할도 한다.

 

역사를 학자들만이 공부하는 것으로 치부하지 않고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바로 역사임을 깨닫게 해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법정에서 만난 역사], 그런 재판 기록들을 보면서 구시대에서 새로운 시대로 넘어갈 때 재판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 힘과 힘의 관계를 살펴보면서 앞을 보는 능력을 키워야 함을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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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살의 용기 - 클로뎃 콜빈, 정의 없는 세상에 맞서다 생각하는 돌 1
필립 후즈 지음, 김민석 옮김, 엄기호 해제 / 돌베개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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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 파크스'만 알고 있었다. 로자 파크스와 마르틴 루터 킹 목사. 이들이 버스에서 백인과 흑인의 좌석이 구분되어 있고, 심지어 백인이 타면 흑인이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는 법을 폐기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만 알고 있었다.

 

큰일(?)이 터지기 전에 작은일(?)들이 여러 번 있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로자 파크스의 거부가 어느 날 갑자기 터져 나온 일이 아니라는 사실. 킹 목사가 버스 보이콧 운동을 하는 것이 즉흥적으로 떠오른 저항 운동이 아니라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로자 파크스 이전에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 그것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로자 파크스에 이르러 흑백차별을 거부하는 운동으로 발전하게 될 수 있었다는 것.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된 사실이다.

 

흑인 소녀, 클로뎃 콜빈. 학교에 다니면서 흑백차별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이 미국 헌법에도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소녀. 어른들이 집에서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직접 행동으로 나서지 않는 것을 의아하게 여기던 소녀.

 

어느 날,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하라는 백인 운전사의 명령(?)을 거부하고 경찰에게 끌려간 소녀. 소년원이 아닌 성인 감옥으로 끌려가고, 끌려가는 도중에 수갑까지 채워진 소녀.

 

이 소녀에게 주어진 죄명에 굴복하지 않고 싸워나가는 소녀. 그러나 당시 판사는 - 당연히 판사는 백인이다 - 소녀가 자리를 양보하지 않은 것은 헌법에 견주어 불법이 아니라고 판결을 하지만 끌려가면서 경찰에게 상해를 입혔다고, 폭행죄로 유죄를 선고한다.

 

유죄. 고등학교 3학년인 학생에게 죄인 낙인을 찍어버리는 백인 판사. 여기에 흑인 어른들 역시 이 사건을 공론화 해서 흑백차별 운동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는다.

 

아직 어린아이.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기 힘든 클로뎃이라는 생각으로 어른들 역시 소극적이다. 다만, 이 일로 클로뎃은 로자 파크스를 만나 함께 일을 하기도 한다.

 

로자 파크스가 어느 날 갑자기 자리 양보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그녀는 흑인 인권, 흑인 권리를 위해 일을 하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클로뎃은 처음에 영웅에서 점차 문제아로 낙인찍히게 된다. 머리를 백인처럼 펴지 않고 다닌다든지, 또 실수로 임신을 하게 되니, 이런 개인적인 행동으로 클로뎃은 흑인 민권 운동에서 멀어지게 된다.

 

뜻하지 않은 임신과 출산, 학교에서 제적... 버스에서 자리 양보를 하지 않은 행동으로 인해 클로뎃의 인생은 엄청난 시련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클로뎃.

 

버스 좌석 구분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소송을 할 때 클로뎃은 소송인 중 한명으로 그 재판에 참여하게 된다. 목숨을 걸고 참여하는 재판. 미국 백인우월주의자들, 일명 KKK단들은 폭력으로 흑인들을 위협하니 말이다.

 

이 재판에서 흑인들은 역사적인 승리를 하게 된다. 차별이 심했던 남부 앨라바마 주에서도 드디어 흑백 차별이 법적으로 잘못되었음을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지만, 클로뎃은 곧 잊혀지고 많다. 사생활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때나 지금이나 청소년들이 한 실수를 받아들이는 어른 사회는 드무니, 클로뎃 역시 이제는 생계를 걱정해야 할 때가 된 것.

 

여러 일을 겪으며 잊혀져 가던 클로뎃을 한 기자가 찾아낸다. 그리고 한 작가에 의해 클로뎃은 우리에게 다가오게 된다.

 

로자 파크스가 한 일이 클로뎃을 부각시킴으로써 낮아지지는 않는다. 로자 파크스는 사회에 충분히 파급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므로. 하지만 클로뎃이 한 일이 묻혀서는 안 된다. 클로뎃이 한 행동은 다음 사람으로 하여금 이런 거부를 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어떤 일에서 특정한 사람만 기억해서는 안 된다. 그 일이 이루어지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음을 생각하게 한다.

 

특히 사회 변화를 이끌어내는 시발점은 어른들에게서가 아니라 청소년들에게 있었음을, 우리나라 4.19도 역시 고등학생들의 시위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이런 청소년들, 사회 문제에 무지한 것이 아니라 이들도 어른들 만큼 어쩌면 어른들보다 더 민감하게 사회 문제를 느끼고 생각하고 있음을, 이 책 클로뎃 콜빈을 통해서 깨닫게 된다.

 

이것이 클로뎃 콜빈을 기억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청소년들을 어리다고 또 그들의 행동을 어른의 잣대로만 바라보면 안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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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의 함정 - 금태섭 변호사의 딜레마에 빠진 법과 정의 이야기
금태섭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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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언젠가 누군가로부터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네 개의 보기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을 강요하는 시험을 치르면서, 교칙을 위반하는 학생을 쉽게 적발하기 위해서는 머리카락 길이를 규제해야 한다는 신문 사설을 읽으면서, "다 너희 잘 되라고 때리는 거란다"라는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느꼈던 모순에 대해서 언젠가는 납득할 만한 설명을 들었으면 했다.' (263쪽. 후기에서)

 

절대적으로 객관적이라고 생각하는 객관식, 4지선다 문제를 신봉하던 사회, 요즘은 5지선다 문제가 나오니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좀더 넓어졌다고 위안을 해야 할까? 교칙을 위반하는 학생에게 벌점을 주는 학교... 잘못을 지적하면 벌점 주세요 하면 끝나는 학교 규칙.  머리카락 길이 제한은 없어졌지만 머리카락 색깔은 여전히 규제하는 학교... "다 너희 잘 되라고 공부하라는 거야"를 강요하는 학교...

 

누가 미안하다고 말하지?  저자가 다녔던 학창시절과 지금 청소년들이 다니는 학창시절이 얼마나 다르지?  세부적인 면에서는 다를지 몰라도 큰틀은 같지 않나.

 

여전히 규제를 하고, 옳은 것은 교사나 학교에 있고, 학생들은 오로지 따르기만 해야 하는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게 옳다고 확신한다.

 

교육에서 확신범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이런 확신범들이 아직도 우리나라 교육계를 장악하고 있으니 도대체 누가 미안하다고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아무도 미안해하지 않는다. 왜? 잘못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으니까.

 

이게 교육 분야에서만 그럴까? 여전히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정치 분야, 경제 분야, 예술 분야 등도 마찬가지 아닌가. 이상하게 확신범들만 넘치는 사회가 우리 사회 아닌가.

 

이런 것도 같고, 저런 것도 같고 하면 줏대가 없다느니 네 생각을 가져라느니 하면서 비난을 하는 사회에서, 권력을 쥔 사람들 의견을 따르면서 그것이 마치 자기 생각인 양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목소리 큰 것이 자랑인 이 사회를 다시 생각하면서 이 책을 읽었다.

 

"확신의 함정" 세상에 확실한 것이 있을까? 있겠지... 그렇지만 내 생각이, 내 주장이 확실하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가장 객관적이어야 할 과학자들도 자신의 관점에 따라서 관찰결과가 달라진다고 하는데...

 

복잡미묘한 사회 현상에 대해서 확실하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확신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다양한 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내 생각만이 옳다는 관점을 버리고 다르게 볼 수도 있겠단 생각을 지니고, 또 자신과 다른 생각을 지닌 사람 말을 들을 줄 아는 귀를 가져야 한다. 적어도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에 대해서 한번쯤은 의심을 해봐야 한다.

 

이 책에서는 그런 다양한 사례들을 제시해주고 있다. 그런 사례들을 통해서 확신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깨달을 수 있다. 여기에 소설들을 소개해 주고 있다. 소설들과 법을 함께 언급하면서 읽는 사람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좋은 책은 다른 책을 읽게끔 만드는 책이라고 했는데, 이 책에서는 많은 책들이 소개되고 있어서 다른 책을 읽어 봐야겠단 생각을 하게 만든다. 다른 책을 읽게 만드는 것, 다양한 생각을 접하게 하는 것이니...

 

적어도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확신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을 하겠단 생각을 한다. 나만이 옳을 수는 없다. 내가 직접 눈으로 본 것도 확실하지 않은 때가 있는데... 그렇다면 좀더 다양한 관점에서 다른 사람들 말에도 귀를 기울이며 어떤 문제를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확신의 함정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이 많을수록 세상은 좀더 살 만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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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6 08: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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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6 16: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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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의 눈
금태섭 지음 / 궁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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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 농단에 관한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세상에 삼권분립이 민주주의 기초라더니, 삼권분립은 커녕, 약자를 보호해야 할 사법부가 정권과 결탁해서 부정한 정권을 오히려 도와주었다니...

 

(학교 교육과 사회의 괴리가 이 정도로 심하다. 그러니 학생들이 교과서에 있는 내용은 오로지 시험용이라고 생각하고 실제 생활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지)

 

많은 정황증거들이 나오고 있는데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사법부 수장 출신들... 그리고 법원에 관한 수사를 구속영장 기각이라는 법 도구를 이용해 엄정한 수사를 방해하는 법원들.

 

(꼭 법원만 그럴까? 판사뿐만이 아니라 검사들 역시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 현실이다. 검사 출신 중에 지금 비리로 또 권력 유착으로 감옥에 가 있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그럼 변호사는? 에고... 참)

 

사법부가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그냥 자신들 출세를 위해서? 아니면 정권 보호를 위해서? 이러니 사법부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지...오죽하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재벌들은 아무리 많은 액수를 뇌물로 줘도 강압에 의해 어쩔 수 없었다는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받거나 무죄 선고를 받는데, 일반 힘없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엄정한 처벌을 받는 현실에서 누가 사법부를 믿겠는가?

 

대법원장이라는 사람이 - 아직 법원에서 판결은 받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 재판에 압력을 행사하기도 했다고 하는데... 법관 한 명 한 명이 살아 있는 법원, 즉 독립적인 판결을 한다고 믿고 있었던 내가 바보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금태섭 - 검사 출신이자 변호사 - 이 쓴 "디케의 눈"을 읽으면서 '법'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법은 정의다. 정의의 여신 이름이 디케가 아닌가. 한 손에는 저울을,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있는. 이 디케 여신은 눈을 가리고 있다고 하는데...

 

왜 눈을 가릴까? 금태섭은 책을 시작하면서 디케 여신이 눈을 가린 이유에 대해서 고민하는 말을 한다.

 

얼핏 생각하면 간단하다. 객관적인 평가를 하기 위해서, 눈에 보이는 것에 현혹되지 않기 위해서 눈을 가렸다고 생각하면 된다. 법관은 자신의 편견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든 것을 원점에서 시작하기 위해 눈을 가린다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눈을 가리면 보이지 않는다. 간혹 진실은 깊게 깊게 숨어 있기도 하지만 우리 눈으로 확인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디케 여신이 눈을 가린 이유는 무얼까? 쉽게 볼 수 있는 진실을 놓칠 수 있음에도 눈을 가린 이유는 자신에 대해서 성찰하기 위해서 아닐까.

 

외부만 보는 것이 아니라 내부를 보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신을 들여다보기 위해서 눈을 가렸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눈을 감는 순간 외부에 현혹되기보다는 내부로 침잠해 들어가 조용히 성찰할 수 있게 되는데... 내가 하는 판결이 과연 정의로운지 고민하는 모습, 그것이 바로 눈을 가린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되는데...

 

그렇다면 우리나라 사법부는 눈을 뜨고 외부에 너무도 신경을 쓴 것은 아닌지... 눈에 보이는 진실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권력을 애쓰고 찾기 위해서 눈을 부릅뜬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한다.

 

"디케의 눈"은 법에 친숙하게 다가가게 하기 위해 쓴 글이다. 과연 정의란 무엇인가? 법은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사례를 들어 이야기해주고 있다.

 

법은 정의를 실현하는 도구고, 법관은 법이라는 도구를 이용해서 사회에 정의를 실현하려는 사람이다. 그들은 자신의 관점만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관점을 고집하더라도 논리적이고 타당성 있는 근거를 들어서 주장해야 한다. 그냥 권력을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건 사례와 판결 사례가 나와 있는데, 우리 흥미를 끄는 사건들, 판결들도 많다. 특히 '미란다 경고'에 대해서는 이 책을 통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 성폭행범인 미란다가 변호사 입회 없이 자백을 했는데, 그 자백이 증거로 채택이 되지 않은 사건.

 

그래서 다음부터는 경찰들이 반드시 피의자의 권리를 이야기해 준 다음에 수사를 진행하도록 되었다는... 비록 죄인이지만 그 죄인도 자기 권리를 지킬 필요가 있다는 수사 사례. 그래서 이제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정착된 '미란다 경고'

 

이렇게 다양한 법 적용 사례를 이야기해주고 있어서 너무도 멀고 높게만, 그래서 접근하기 힘든 법이라는 것에 대해서 친숙하게 느끼게 해주고 있다.

 

법을 아주 모르고도 잘 살 수 있는 사회라면 참 좋은 사회겠지만, 오늘날처럼 복잡한 세상에서, 또 소송만능주의로 빠져든 이 사회에서 법은 삶에 필수적인 요소다. 어렵다고 멀리하지 말고 좀 알아야 한다. 적어도 내가 어떤 권리를 지니고 있는지는 알아야 눈 뜨고 법이라는 놈에게, 아니, 법을 좀 안다는 법관련 사람들에게 당하지 않을 수 있다.

 

이 책은 법에 한발 다가서는 디딤돌 역할을 해준다고 할 수 있다. 사법 농단과 관련해 읽을 만한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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