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시선 - 역사학자 전우용의 시대 논설
전우용 지음 / 삼인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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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선으로 인식하면, 한번 지나온 시간은 다시 경험할 수 없다. 일직선인 선, 앞으로만 나아가는 선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겠지만, 역사라는 시간은 하나의 선이 아니다. 직선이 아니다. 곧장 앞으로만 나아가는 선이 아니다.


역사라는 선은 앞으로 뒤로 옆으로 위로 아래로 중첩되어 있는 선이다.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시간이 직선 위의 한 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 그리고 주변의 여러 시간들이 함께 있는 점이다.


이 점들에는 다양한 삶들이 함께 들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어디로 나아갈 것인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을 자주 하지만, 그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또 역사를 현재로 불러와 미래를 대비하지 못한다면 역사를 잊지 않는 의미가 없다.


제대로 된 역사 인식이 중요한데, 자기 이익을 중심으로 과거를 불러오는 것은 역사를 잊은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고, 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그것을 자꾸 불러오는 것은 오히려 현재를 붙잡아두고 있을 뿐이라는 말도 역사를 잊었다고 할 수 있다.


역사는 결코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현재에도 끊임없이 살아서 움직인다. 누가 '정치는 생물이다'라고 했는데, 역사 역시 생물이다. 과거의 유물로만 남아 있지 않다. 현재에 끊임없이 들어와 현재의 삶을 이끌어간다. 어디로? 바로 미래로.


그래서 역사에는 미래-현재-과거가 모두 담겨 있다. 시간의 선에서 역사라고 할 때, 우리가 있는 현재의 점에는 미래-현재-과거가 함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를 잊은'이라는 말에는 현재의 자기가 처한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며, 미래에 대한 전망 역시 갖고 있지 못하다는 말과 통한다.


전우용이 쓴 이 책은 여러 매체에 기고했던 글이라고 한다. 시일이 조금 흐른 글들도 있고, 최근의 일을 다룬 글들도 있지만, 역사라는 선에서 시일이 지났다, 최근이다는 그리 큰 차이가 없다고 본다.


'지금-여기'에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인데... 지금 벌어지는 일들과 비슷한 일들이 역사 속에서 얼마나 반복되고 있었는지, 그렇게 반복되도록 과거를 묻어두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한다.


우리 역사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통해서 현재를 파악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생각하게 하는 글들을 모았는데... 이 글을 읽으면서 어째 이리 반복된 일들이 많을까 하는 생각... 이렇게 반복했는데 왜 더 나아가지 않았을까? 정말 역사를 잊고 살았던가? 아니면 억지로 역사를 생각하지 않게 했던가.


이 책에서 '시키는 대로만'이라는 글과 '가만히 있으라'는 글을 읽으면 참... 어쩌면 우리는 이런 일들에 익숙해져 있는지도 모른다고... 어린 시절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대다수의 한국 사람들이... 요즘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늘고 있지만) 학교 교육을 생각해 보면, 이 말이 딱 맞는다.


'시키는 대로만'하고 '가만히 있으라'고... 서울의 모 학교에서 학생들이 발간한 신문을 압수했다는 기사가 지금도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무려 9년의 의무교육, 게다가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에 가까우니 12년의 학창 생활 동안 몸에 익히는 것이 바로 '시키는 대로만'과 '가만히 있으라'라면, 미래는 암담하다. 


(이제 학생들은 '시키는 대로만'하지 않고, 또 '가만히 있지'도 않는다. 그들은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응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행동을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비상계엄' 사태 때 만나게 되었다. 이들은 과거를 통해 현재를 미래로 이끌어갔다.) 


창의성이 우선시 된다고, 이제는 인간과 기계(아, 그냥 기계가 아니다. 인공지능이다)가 함께해야 하는 사회에서 '시키는 대로만' 잘하는 '기계'를 어떻게 인간이 능가하겠는가. 그러니 이 말들이 통용되었던 과거를 생각하면, 현재-미래에서는 이 말들이 더 이상 쓰이지 않게 해야 한다.


이것이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지(知)와 식(識)'을 구분하고 있는데(지(知)와 식(識) 사이의 거리'), 학교는 지(知)가 아니라 식(識)을 익히는 장소이니, 이러한 '식'을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 학교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말이 '시키는 대로'와 '가만히 있으라'가 아닌가 한다.


'지(知)란 사람이 나면서 저절로 아는 것, 곧 오성(悟性)으로 얻는 '앎'이요, 경험으로 깨닫는 '앎'이다. 반면 '말씀 언(言)', 소리 음(音)', 창 과(戈)'로 구성된 '식(識)'은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들어 얻는 '앎'이다. '학이습지(學而習之)', 즉 배우고 익혀야 하는 앎이다.'(304쪽) 


지식이라는 말에도 이런 뜻이 있음을 알게 된다면, 현재를 바꾸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관성대로 지내지 않고 미래를 위해 현재를 과거와 다르게 해야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역사의 쓸모'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그래서 '식'에 해당하고, 학교에서는 이러한 '식'에 힘쓰는 것이다.


이런 '식'에 어떻게 '시키는 대로만'과 '가만히 있으라'가 통용될 수 있단 말인가. 전우용의 이 책을 읽으면서 역사를 통해 과거가 우리의 미래를 현재에 들여와 현재의 삶을 바꿀 수 있음을 더 인식하게 되었는데...


마지막에 실린 글에 언어를 통한 통찰. 지금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여전히 세계는 전쟁 중인데... 그 점을 생각해 본다. 마음에 새겨둘 말이다.


'사실 평화의 반대말은 전쟁이 아니다. 평(平)은 높낮이가 없는 상태를 뜻하는 글자로 반대되는 글자는 '차(差)'이다. 화(和)는 서로 다른 것들이 따로 놀지 않고 잘 어울려 있음을 뜻하는 글자로 반대되는 글자는 '별(別)'이다. 평화의 반대말은 차별이다. 

  총성이 울리든 아니든, 대량 살상 무기가 사용되든 아니든, 지금도 온 세상이 매일매일 전쟁 중이다. 힘으로는 결코 항구적 평화를 이룰 수 없다. 평화로운 세계는 차별 없는 세계와 같은 뜻이기 때문이다.'(330쪽)


이렇게 이 책에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인식할 수 있는, 그래서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글들이 많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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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이후 - 혐오, 양극화, 세대론을 넘어
신진욱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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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경험했다.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서로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는 자세를 지니기도 했다. 그렇게 광장에서 연대를 통한 존중으로 혐오를 이겨낼 수 있었다.


그때의 '광장'에는 각기 다른 목표들이 있었겠지만 윤석열 탄핵이라는 한 가지 목표는 서로 공유했다. 그리고 이루었다. 그렇다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할까? 


'광장'에서 보여줬던 모습들이 '광장'에서 끝나지 않고 정치로, 우리 삶으로 다시 이어져야 한다. 즉 그때의 '광장'은 지금 우리 삶의 '광장'으로 다시 펼쳐져야 한다. 그 '광장'에서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고 연대해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광장'을 분석하면서 '광장'의 연대에서도 분열을 찾고, 그것을 확대하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았는가? '광장'에는 특정 성별, 특정 연령 대의 사람들이 많았다고, 어떤 집단은 잘 보이지 않았다고...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것이 무슨 의미일까? '광장'은 특정 성별, 특정 연령 대의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광장'은 모두의 것이었다. 이때 '모두'에는 '다름'이 포함되고, '다름'에는 '이해와 포용'이 들어가게 된다.


'광장'의 기본 조건은 '다름'이다. '다름들'이 모여 함께하는 곳이 바로 '광장'이다. 이런 '광장'은 바로 정치가 이어받아야 한다. 정치 역시 같은 존재들이 모여 자기들 뜻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들이 모여 무언가를 합의하고 실행해가는 행위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광장'은 한때의 '광장'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광장'은 우리 삶 속에서 펼쳐져야 한다. 우리는 계속 그러한 '광장'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이 '광장'에서 서로 연대하며 살아가야 한다.


이 책은 그러한 '광장 이후'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다. 네 사람이 각기 자신들의 '광장 경험'을 토대로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제목이 '광장 이후'다.


우리의 '광장 이후'는 대통령 한 사람을 바꾼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정치의 영역, 삶의 영역에서 '광장'이 계속 살아 숨쉬게 하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광장'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과연 '광장'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던가. 광장을 이야기하면서 특정 집단을 배제하지 않았던가. 왜 너희들은 그래 하면서 그들을 우리와는 다른 존재로 밀어내지 않았던가.


이 책에서는 특히 2030 남성들을 대상으로 한 주장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한다. 2030 남성들이 극우화 되었다고, 보수화 되었다고 하는 말들이 많은데, 2030 남성들을 그렇게 한 집단으로 묶을 수 있는지부터 의문이고, 보수화된 남성, 극우화된 남성이 있다고, 그 세대 전체가 그렇게 변했다고 주장하는 것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통계를 보면 2030 남성들의 반이 넘는 사람들이 탄핵에 찬성했으며, 그때까지 잘못된 정책에 대해서 비판적이었음을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는데, 그럼에도 왜 그들을 싸잡아서 보수, 극우화 했다고 하는지, 그런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자료들을 통해 반박하고 있다.


또한 그렇게 하나로 묶어 비판하기는 쉽지만, 그들을 끌어들여 '광장'이 계속되도록 하는 노력을 과연 하고 있는지를 이 책을 통해서 의문을 제기한다. 그들이 처한 지금의 현실이 매우 불안정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불안정한 삶이 안정된 삶으로 바뀔 수 있도록 그들의 의견을 듣고, 정책을 마련해서 실행하는 노력을 해야 함에도 과연 그렇게 하고 있는지...


'광장 이후'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지만 과연 우리는 '광장 이후'의 삶을 살고 있는지, 어쩌면 다시 '광장 이전'의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사람들이 '광장'에 나온 지 이제 거의 한 해가 다 되어 가는데, 우리는 '광장 이후'를 맞이하지 못하고 지금도 '광장 이전'처럼 혼란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지는 않은지...


그래서 2030 남성들을 비판함으로써 자신들은 다르다는 안도감 속으로 도피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야 한다.


결코 다른 존재를 배제해서는 안 된다. '광장'이 보여준 모습은 배제가 아니라 포용 아니던가. "같아지자"가 아니라 "다르지만 함께할 수 있다" 아니었던가. 그런 '광장'을 우리의 삶에서 펼친다면, '광장 이전'을 주장하고 있는 존재들의 목소리는 지워질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중 이승윤의 글에 이런 말이 나온다.


'사회구조에 대한 불신이 심화되고 이슈 중심 정치참여가 확대되는 상황에서는 '누가 더 손해를 보고 있는가'를 둘러싼 경쟁, 대립, 갈등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려는 정치세력이 활성화되기 쉽다'(214쪽)


지금도 그러하지 않은가. '갈라치기'란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으니... 이 '갈라치기'는 '광장'과 가장 어울리지 않는 말 아니던가. '광장'이 더하기의 정치라면 '갈라치기'는 빼기의 정치다.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빼기가 아니라 더하기'다. 


우리가 바라는 '광장 이후'는 '갈라치기'를 하는 '빼기'를 자신들의 정책으로 삼는 이런 정치세력에서 휘둘리지 않는 사람들이 정치의 주체로 등장할 때 이루어진다. '광장과 더하기의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주체가 되는 사회.


그런 점에서 아직은 '광장 이후'가 오지 않았다고 할 수 있는데, '광장'을 경험한 우리들은 다시 '광장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러니 이제는 치열하고 세밀하게 '광장 이후'를 설계하고 실행해야 한다.


이제 '광장'을 정치와 우리의 삶으로 가져와야 한다. 그것이 바로 '광장 이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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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본색 박순찬의 장도리 카툰집
박순찬 지음 / 비아북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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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본색'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홍콩 영화가 한창 인기가 있을 때, 홍콩 느와르라고 할까, 이쑤시개를 입에 물고 악당을 물리치는 주윤발의 모습, 거기에 의로운 경찰 역할을 하는 장국영의 모습은 우리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하여 '본색'이라는 말의 뜻도 모르면서 그냥 영웅의 모습은 저러겠거니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니 '본색'이라는 말은 좋은 의미로 내게 다가왔는데...


이 책 제목은 '내란본색'이다. 어허, 이렇게 본색이라는 말을 내란에 갖다 붙여도 되나. 기분이 좋지 않다. 하지만 내란의 본질이라고 보면 '내란본색'이라고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게다가 '영웅본색'에서 주인공들이 멋있게 나와서 그랬지만, 사실 장국영을 제외하고 주윤발이나 추룡(적룡)은 갱단에 속하는 인물 아닌가.


그들이 배신을 용납하지 못하고, 의리를 지키는 모습을 영화로 보여줘서 멋있지, 현실에서는 갱단의 세력 싸움 정도라고 할 수 있을 테니, 피 튀기는 살벌한 장면이 결코 좋게 다가오지 않으리라.


그렇다. 내란본색은 바로 그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내란이라는 것이 어찌 좋을 수가 있겠는가. 계엄을 선포하는 조건이 비정상적인 상태일 때니까, 우리가 살고 있던 때를 비정상적인 때, 위기의 때라고 판단한 자들이니, 자신을 반대하는 상황을 그런 때라고 판단한 것이다.


비정상을 정상이라고 생각하고, 헌법을 위반한 행위를 헌법에 따라 정당한 권리를 행사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인간이 어떻게 그 지경까지 가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다.


카툰이니 부담없이 볼 수 있다. 그림도 보고, 글도 있으니... 다시 그 시대를 반추한다. 윤석열이 집권하고부터 계엄을 선포해 체포되기까지의 기간을.


떠올리고 싶지는 않지만 잊어서는 안 된다.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 이 책에 나온 카툰 중에 '부활'(207쪽)이라는 만화가 있다.



그들이 우리에게 어떤 고통을 주었는지를 기억하려 하지 않는 자들이 있었기에, 이들을 추앙하는 자들이 있었기에 다시 그러한 일이 반복되었던 것인데... 그런데 세상이 변해서, 이제는 그러한 계엄이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되어서 큰 희생 없이 계엄이 끝나고 그를 대통령의 자리에서 끌어내렸지만, 그간 우리가 겪은 마음 고생을 포함해서 많은 것들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했으니...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조짐을 보이는 인간을 알아보는 안목을 지녀야 한다. 이 카툰집을 보다보면 계엄이 어느 한 순간 충동적으로 나온 것이 아니구나 하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미 집권한 몇 년 동안 계엄과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었으니...


'영웅본색'은 재미있게 보기라도 했지, '내란본색'은 사후에 읽으니 그렇군 그래, 하면서 읽을 수 있지, 만약 진행 중이었다면 제대로 읽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내란본색'이라는 책이 나오지 않게 정치인들을 잘 선택해야겠지.


촌철살인. 이 말이 생각난다. 한 컷의 만화로 많은 것을 표현하고 있으니... 물론 이 책의 1부에는 이야기가 있는 만화가 실려 있다. 시리즈로 주욱 읽으면 짧은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인물과 사건이 있어서 이야기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으니... 내란이 끝났을까> 내란이 끝나는 시점은 내란 종사자들에게 책임을 물었을 때가 아닌가. 아직 책임을 묻지 못하고 있으니, 내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하여 이 책도 영화처럼 '내란본색2'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악당들을 철저하게 물리치는... 내란 종사들에게 제대로 된 책임을 지우는 결론이 나는 그러한 '내란본색2'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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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일기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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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의 시간은 2024년 12월 비상계엄이 선포된 때부터 시작된다. 물론 작가는 꾸준히 일기를 썼으리라. 하지만 이 책은 계엄과 탄핵의 과정을 보여주는 일기로 채워졌다. 탄핵 결정 직후까지...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기억해야만 하는 일이 비상계엄이고, 비상계엄부터 시작해 탄핵에 이르는 과정이다. 여기서 우리는 분노를 경험했고, 좌절도 경험했고, 이 땅의 엘리트라는 자들의 본질적인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지만, 바로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힘을 얻기도 했다.


다름을 받아들이는 모습도 보았고, 각자 자신이 하고 싶은 말들을 통해서 함께하는 모습도 보았다. 추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봄이 오리라는 희망, 아니 봄을 오게 하겠다는 의지로 견뎌낸 시간들.


그 시간들.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계엄과 탄핵의 과정이 끝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주범이 제대로 처벌받고 있지 않고 있으니까. '윤 어게인'이라는 말이 나돌고 있으니까. 비상계엄을 계몽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정말 이 나라 몇몇 사람들은 언어의 자의성을 너무 확신하고 있나 보다. 


'자의성'에 매달리면 결국 소통에 실패하고 마는데...그들의 말은 자의성에 기댈 것이 아니라 사회성에 기대야 하는데... 이들이 페터 빅셀의 [책상은 책상이다]를 읽어봤으면, 그랬으면 언어의 자의성에 매달리는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잘 알게 될 텐데.


자신의 행위를 여전히 정당하다고 우기는 자가, 교도소에 있으면서도 그것을 견디지 못하겠다고 보석 신청을 하는 짓을 하고 있는 현실.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으며, 엄동설한에 차가운 바닥에 앉아 있어야 했는지... 그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까? 자신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았는지를... 지금도 우울한 마음을 지니고 있는지를...


자신이 있는 독방은 그에 비하면 너무도 편안한 곳일 텐데, 도대체 남의 고통, 남의 슬픔을 헤아일 줄 모르고 자기만을 생각하는 그런 아집을 지닌 자를 다시 오게 하겠다고, '윤 어게인'이라고... 나 참.


이 책을 읽어보자. 계엄에 놀라 지체없이 여의도로 향한 작가. 거기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 처음에 다름에 낯설어 하면서 밀어내는 모습을 보이던 사람들이 다름을 다름으로 받아들이는 변화의 과정.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고 챙겨주는 모습.


이런 광장의 모습. 또한 다른 광장의 모습. 혐오와 멸시의 눈초리로 쏘아보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으니... 그렇다. 지금도 우리는 몇몇의 성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큰소리 치는 현실을 보아야만 한다. 그들이 언젠가 성찰하겠지 하는 가능성을 생각하기는 하지만.


작가는 '가능성만을 바랄 수 있을 뿐인 세계는 얼마나 울적한가. 희망을 가지고 그것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기가 너무 어려운 세계, 그 어려움이 기본인 세계는 얼마나 낡아빠진 세계인가. 너무 낡아서, 자기 경험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세계.'(171쪽)라는 표현을 하고 있는데, 이런 낡은 세계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비참한지... 그들에게는 배움이 없다. 그냥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만 생각하고 행동할 뿐이다.


이 책에 나온 일들에 놀랄 만한 일, 아니 이들에게는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는데, 혐오와 차별로 점철된 말들, 행동들...


열차에서 내려 출구를 향해 올라가는데 우리와 같은 객차를 타고 온 젊은 남성 둘이 갑자기 의기양양한 기색으로 외쳤다. "자, 이제 중공 것들 잡으러 가는 거야."(82쪽)


이들이 지금 명동에서 대림동에서 혐중 시위를 하고 있다. 이들만이 아니라 혐중 시위를 부추기는 사람들도 있으니... 도대체 왜? 차별과 혐오를 버리지 못하고 있으니, 이들에게 보이는 것은 차별과 혐오뿐인가. 아니 특정한 사람, 특정한 나라에 대한 맹목적인 지지도 있으니, 맹신에 제대로 볼 수 없는 눈을 가졌다고 해야 한다. 이들이 살고 있는 세계가 바로 낡아빠진 세계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낡아빠진 세계를 거부했다. 성찰의 힘으로, 함께함의 힘으로, 새로운 희망의 세계를 만들어가려 하고 있다. 그런 세계, 작가는 '내가 이 세계를 깊이 사랑한다'(172쪽)고 했는데, 나 역시 이런 희망이 있는 세계를 사랑한다. 가능성만 있는 것이 아니라 희망이 있고, 그 희망으로 나를 채울 수 있는 세계를.


그러니 이 일기는 작가의 희망을 보여준다. 


'지난 겨울과 봄은

나름으로 삶을 가꾸며 살아도 권한을 가진 몇 사람이 작정한다면 도리 없이 휩쓸리고 뒤흔들릴 수밖에 없는 작은 존재,

내가 그것이라는 걸 실감한 국면이자 계절이었습니다.

또한 나는 작아서 자주 무력했지만

다른 작음들 곁에서 작음의 위대함을 넘치게 경험한 날들이기도 했습니다.

......

훗날 이날들을 돌아보는 데 작음 보탬이 되기를 바랍니다. (189-190쪽)'라고 작가는 후기에서 말하고 있다.


그렇다. 이 일기들은 훗날, 그땐 그랬었지, 그런 야만의 행위들을 우리 시민들이 막아냈지... 그런 일은 용납할 수 없다고... 권력을 쥔 자들이 우리들 삶을 멋대로 조종할 수 없다고. 


비록 우리들의 작은 삶들이지만 그것은 우리에게는 가장 큰 삶이고, 이러한 작은 삶들이 모여 우리들의 삶을 제멋대로 빼앗아갈 수 없다고 외친 계엄과 탄핵이 이루어지는 기간에 겪고 느낀 기록. 기억해야만 하는 그런 기록.


마음에 잔잔하게 스며드는 위로. 이 일기는 위로다. 기억이다. 그래서 지금 국회에 있는, 또는 다름 국회에 입성하려고 하는 '국민의 힘'에 소속된 의원, 정당원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그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마음이 이 일기에 들어 있으니까. 


자신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마음을 이 책을 통해서라도 알게 된다면, 그렇게 된다면, '국민의 힘'이라는 정당에 속한 사람들도 진정 '국민의 힘'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하면서...


그리고 현재 국회의원인 사람들, 국회의원이 또는 정치인이 되려고 꿈꾸는 사람들, 아니 우리 모두가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작은 일기'가 아니라 '기억 일기'이고,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 될 수 없음을 깨닫게 만드는 일기니까. 그렇게 된다면 앞으로 '계엄'같은 짓을 벌일 정치가가 나올 수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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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하마스를 모른다 - 금기와 편견 너머, 하마스를 이해하기
헬레나 코번.라미 G. 쿠리 지음, 이준태 옮김, 팔레스타인평화연대 감수 / 동녘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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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한 동정. 나라를 잃고 쫓겨난 사람들. 또는 기껏 살고 있는 곳도 온갖 검문소를 통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는 사람들. 그 정도. 자살폭탄 테러. 이 정도. 


예전에 조 사코의 [팔레스타인]을 읽은 적이 있고, 몇 권의 책을 읽었지만 여전히 피상적이다. 잘 알지 못한다. 그만큼 팔레스타인에 대한 정보는 적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정보가 적은데, 하물며 하마스에 대해서랴.


하마스 하면 테러집단 또는 무장폭력단체라는 말이 먼저 떠오르는데, 더 알려고 하지 않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하마스에 대한 정보를 쉽게 만날 수 없어서 그랬는지, 가자지구에서 선거로 하마스가 집권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어? 무장단체가 선거에서 승리해 집권을 했다고? 하면서 놀랐던 적이 있다.


그리고 지금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초토화 하고 있다. 아예 사람이 살지 않는 공간으로 만들려고 한다. 수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을 봉쇄한 것도 모자라 여기저기 폭격을 한다. 하마스가 공격을 했다는 것을 빌미로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완전히 쫓아내려 한다.


그러면서 이건 전쟁이라고 한다. 전쟁? 전쟁이라 하면 조금이라도 대등하다는 느낌을 주어야 하지 않나. 하마스가 아니 가자지구에 이스라엘에 대항할 무기가 있나? 그런 군사력이 있나? 도대체 어떻게 전쟁이 되지? 이건 학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다.


일방적인 공격, 이것은 학살이다. 그런데 학살이라고 하지 않고, 세계 강대국이라고 하는 나라들도, 유엔도 관여를 하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의 힘이 너무 막강한가? 아니면 이들 역시 하마스를 축출해야 할 무장테러단체로만 인식하고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던 차에 이 책을 만났다. 다른 나라에서도 정보의 부족을 많이 느꼈나 보다. 또한 일방적인 정보 전달에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고.


이 책은 다섯 명의 전문가(? - 어쩌면 이스라엘이나 미국에서는 이들을 전문가로 인정 안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하마스에 대해서 비난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판은 할지언정. 그래서 하마스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지니게 하고 있는데... 이것을 이스라엘과 미국을 비롯한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나라들, 또는 유대인 학살에 죄책감을 느끼고 유대인들이 하는 일에 최대한 말을 아끼는 독일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에서는 이들은 지나치게 하마스 편이라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하마스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 일방적으로 이스라엘과 미국에 대한 정보는 들어오는데도... 그러니 이 책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 균형을 잡을 필요는 있다. 적어도 비판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자료들을 만나야 하지 않겠는가)들과 한 대담을 엮었다.


이들의 이야기에서 새로운 점이 몇 가지 있다. 아니 새롭다기보다는 관점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나 할까?


하마스를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독립운동 단체 중 무장독립 운동을 주장했던 단체로 본다면, 우리는 과연 하마스를 테러집단이라고, 불법을 자행하는 집단이라고 매도할 수 있을까?


일제강점기, 광복군은 당연히 무장 투쟁을 했다. 우리가 자랑스레 여기는 봉오동 전투, 청산리 대첩 등도 역시 무장 투쟁이다. 여기에 안중근 의사는 어떤가? 윤봉길 의사는? 일본은 테러리스트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의사'로 독립운동가로 그들을 기리고 있다.


하마스 역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을까? 이렇게만 생각하면 하마스를 그냥 테러단체라고 도외시 할 수는 없다. 


대대로 살던 땅에서 쫓겨난 사람들이니까. 지금도 기껏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만 남아 있지만, 그마저도 이스라엘리 정착촌을 건설한다고 야금야금 점령하고 있지 않은가. 2023년 이후에 가자지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생지옥과 다름 없는 곳이 되었고.


그러니 적어도 하마스가 왜 무장 투쟁을 주장하는지는 알아야 한다. 그들게는 우리의 독립운동과 같은 역할이라고 할 수 있으니...


하여 이 책을 읽으면 하마스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어느 정도 알게 된다. 또한 부록에 실린 하마스 강령을 읽으면서 처음 설립되었을 때 강령과 2000년대 들어와서 수정된 강령에 차이가 있음도 알게 된다.


그들은 유대인을 무조건 쫓아내겠다는 것이 아니다. 종교 전쟁이 아니라는 거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시온주의에 반대한다고 한다.


'이슬람 저항 운동 '하마스'는 팔레스타인의 이슬람 민족 해방 및 저항 운동이다. 우리의 목표는 팔레스타인을 해방하는 것이고 시온주의 기획에 맞서는 것이다.'(256쪽. 부록3, '2017년 하마스 일반 원칙 및 정책 문서'에서)


그렇다면 이스라엘에 시온주의 원칙을 포기하고 팔레스타인들과 공존하기를 선택한다면 하마스 역시 이스라엘과 공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즉 하마스는 자신들의 조상들이 살아왔던 땅에서 평화롭게 살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전쟁이 아니라 평화 공존, 그들도 그것을 바라고 있다. 다만 국제 관계에서 평화란 한 쪽에서 일방적으로 오지 않으니...


올해 유엔 총회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고 한다. 성토가 이어졌다? 이게 끝이다. 유엔이 전쟁을, 학살을 멈추게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유엔에서 가장 큰 결정권을 지닌 미국이나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이 이스라엘을 멈추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하마스 역시 멈출 수가 없을 것이다. 다만 지금 하마스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궤멸되었는지, 지하로 민간인들 속으로 숨어들어 다음 기회를 기다리고 있는지...


다만 역사를 보면 베트남 전쟁을 비롯해 많은 전쟁에서 그 나라를 지키려는 사람들을 완전히 없앤 경우는 없다. 대를 이어서라도 자신의 나라를 찾겠다는 사람들이 계속 나오게 되니까. 이스라엘도 그 점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자신들도 수천 년에 걸친 디아스포라 생활을 했지 않은가. 역지사지가 아니라, 자신들이 겪은 역사적 상처들만 생각해도 다른 민족에게 자신들이 당한 것과 같은 일을 저질러서는 안 되지 않는가. 이것이 이스라엘 지성인들이, 정치인들이, 무엇보다도 이스라엘 국민들이 자각하고 정치적 압력을 행사해야 하지 않을까.


참 많은 생각이 들게 한 책이다. 이 책을 읽고 신문을 보다가 우연히 [팔레스타인 시선집]이라는 책이 '접촉면'이란 출판사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보게 되었다. 어라? 팔레스타인, 하마스에 대한 책을 읽었는데, 다시 [팔레스타인 시선집]이라니... 읽어봐야지 하고 알라딘에서 검색을 하니, 이런 책을 찾을 수가 없다. 하아... 참... 이 책을 구입하면 팔레스타인을 돕는 기금으로 전액이 사용된다고 하던데... 작지만 그거라도 할 수 있을 텐데... 하면서 검색을 해보니... 책을 구입할 방법이 있다. (구입할 방법은 여기에 적지 않는다. 책을 홍보한다는 공연한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서...ㅎ)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기억해야 할 몇 구절을 적는다.

이스라엘과 서구는 팔레스타인 민족 해방 운동을 ‘하마스‘로 축소시키고, 하마스를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세력으로 둔갑시켰다. 그리고 가자 민간인들이 겪는 고통은 ‘비극적‘이지만 하마스를 지지해서 이 사태를 자초했다고, 즉 피해자에게도 집단학살당하는 책임이 있다는 프로파간다를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 P13

하마스는 정당이기도 하고, 자선 조직이기도 하면서, 군사 조직이기도 하다. - P78

저(칼레트 후룹 박사)는 이전 연구에서 이스라엘이 살해하는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하마스와 모든 팔레스타인 정파가 살해하는 이스라엘 민간인의 약 15배에서 20배에 이른다고 정리한 바 있습니다. 살해된 이스라엘 민간인 1명 당 15명의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죽는다는 거죠. 하지만 모든 언론의 논의와 논란은 이스라엘 민간인을 살해하는 팔레스타인인들만을 다룹니다. - P95

하마스에는 해방과 민족자결이라는 방향과 목표가 있다고요. 그러니 이런 것들이 달성되면 당연히 무장 투쟁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 P102

이스라엘이 집단학살로 대응한다고 해도 대다수 팔레스타인인들은 하마스를 지지할 것이며, 따라서 하마스를 완전히 제거하려면 전면적인 집단학살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것이 하마스를 이해하는 게 중요한 이유입니다 - P113

전체 시온주의의 기획, 최소한 지금 가장 지배적인 버전의 시온주의는 유대인 중심 국가를 위해 해당 영토를 완전히 비우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관점이 네타냐후나 현정부에만 국한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은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 하는 것 같아요. - P125

‘그날 이후‘를 위한 이스라엘의 계획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자지구 내에서 주민들이 모두 떠나도록 만들 혼란과 무정부상태를 초래해서 가자지구에 인간이 거주할 수 없도록 하는 것입니다. - P163

하마스는 이슬람 운동입니다. 이슬람교의 영향을 받죠. 이슬람에서는 누군가가 계약을 맺으면, 그 사람은 종교적 의무로서 계약 사항을 이행해야 해요. - P205

현상태는 물론 이스라엘이 우리의 조국에 존재하는 것을 의미하죠. 그걸 받아들이진 않지만 팔레스타인 국가가 그 옆에 존재할 수 있다면 이스라엘과 함께 살 수 있다는 거예요. - P213

현재 하마스가 공식적으로 채택한 서사는, 이건 시온주의와의 싸움이지 유대인들과의 싸움이 아니라는 거예요. - 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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