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컨택트 Uncontact - 더 많은 연결을 위한 새로운 시대 진화 코드
김용섭 지음 / 퍼블리온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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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컨택트.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사항이다. 접촉을 줄여라. 5인 이상 모이지 마라. 사람이 사람가 직접 접촉하지 않고 다른 도구를 통해서 접촉해라.

 

코로나19가 이러한 언컨택트 시대를 앞당겼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예전부터 진행되어 오던 언컨택트 시대가 코로나19를 통해 자연스럽게 정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코로나19를 맞이해 비대면이 강조되는 지금 사회에 잘 어울리는 책이기도 하지만, 세계의 변화를 읽고 그에 대응해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사람답게 살 수 있는지를 미리 고민하고 해답을 찾아가야한다고 주장하는 책이다.

 

한때의 유행으로 그칠 책이 아니라 두고두고 곱씹을 책이라는 말이다. 언컨택드... 접촉하지 않음이라고 해석을 할 수 있지만, 아니다. 언컨택트는 몸과 몸이 직접 만나지 않는다는 의미일 뿐 접촉은 더 자주, 많이 일어나는 사회를 가리킨다.

 

비대면 만남이 대면 만남보다 훨씬 늘어나는 사회, 그러한 추세로 가는 사회. 그것이 바로 언컨택트 사회다. 여기에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한몫한다.

 

사람이 직접 만나지 않고도 어떤 일이든 살 수 있는 기술이 이미 개발되어 있다. 사람의 일을 로봇이 대신하는 경우도 많고, 스마트 어쩌고 저쩌고 해서 사람의 욕구를 판단해 미리 제공해 주는 온갖 기계들이 이미 우리 실생활에 들어와 있다.

 

무인 기계, 일명 키오스크라고 하는 것이 점차 확대되어 많은 부분에서 사람들과 대면하지 않고 주문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무인 배달 차량도 개발되어 시운전 중이라고 하니, 또 스마트폰으로 밖에서도 집 안에 있는 가전제품들을 조정하는 사회가 되었으니..

 

이미 우리는 언컨택트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많은 부분에서 언컨택트 사회를 의도적으로 지연시키고 있었는데... 주주총회 전자투표나, 재택근무, 원격수업 등등 아직은 낯설게 받아들이던 부분들이 있기는 하지만 많은 부분에서는 언컨택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다만, 그것을 용어로 정리하지 않았을 뿐인데, 코로나 19로 언컨택트 사회에 우리가 들어섰고, 또 앞으로는 그렇게 살 수밖에 없음을 실감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언컨택트는 연결을 거부하는 사회가 아니다. 접촉을 거부하는 사회도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은 연결을 추구하는 사회다. 이 책에서 그 점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언컨택트라고 해서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살고, 또 나만 잘살면 돼라는 사고, 행동을 유지하면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언컨택트는 단절이 아니라 컨택트 시대의 진화인 것이다. 우리가 더 안전하고, 더 편리하고, 더 효율적으로 연결되기 위해서 사람이 직접 대면하지 않아도 연결과 교류가 되는 언컨택트 기술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결국 언컨택트 사회가 되어도 우리의 공동체는 유효하다. 우리가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도 유효하다. 다만 사회적 관계를 맺고 교류하고 연결되는 방식에서 비대면·비접촉이 늘어나고, 사람 대신 로봇이나 IT 기술이 사람의 자리를 일부 채울 수 있다. (263쪽)

 

기억하고 명심해야 할 말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연결 방식이 시대에 맞게 변화하는 것이 바로 언컨택트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과 사람이 맺던 관계가 어떤 식으로 바뀌어도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전제가 바뀌어서는 안된다. 즉, 언컨택트 시대에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한다.

 

그것이 진정한 언컨택트 사회다. 아주 다양한 분야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과 함께 잘 설명해주고 있다. 여기에 균형잡힌 주장을 한다는 것, 즉 과학기술의 발전에 무조건적인 열광과 찬사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지닌 빛과 그림자를 함께 보여주고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할 지 고민하게 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더욱 의미가 있다.

 

언컨택트를 단절로 보면 안 된다는 것. 비대면 접촉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앞으로의 사회겠지만, 모든 관계를 비대면만으로 해서는 안된다고, 우리가 비대면과 대면의 관계를 적절히 조율할 수 있어야만 진정한 언컨택트 사회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

 

특히 조심해야 할 점은 언컨택트 사회에서 빅브라더가 나올 가능성, 내 사생활이 완전히 노출되어 통제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 그런 사회에 살아남기 힘든 사람들도 있다는 것. 하여 기술 발전을 부정하지는 않되, 그 부작용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언컨택트 사회를 살아갈 우리들이 준비해야 할 자세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앞으로 나타날 시대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마냥 그 시대에 맞춰서만 살아가서도 안된다. 과거와 미래를 잘 융화시키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인류가 해온 일 아니던가. 그러니 과거에만 얽매이지 말고 미래를 보되, 현재에 미래를 끌고 들어와야 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트렌드를 공부하는 이유다.

 

이 책에 나온 많은 언컨택트한 관계들, 방법들.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장점과 단점을 모두 잘 살펴서 미래를 현재에서 준비해야 한다. 이것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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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여기 있어요
디담.브장 지음 / 교양인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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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변함에 따라 사고방식도 바뀌어야 하고, 행동 기준도 바뀌어야 한다. 그 전에 당연하게 여겨졌던 일들이 당연하지 않은 일이 되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과거의 기준으로 바뀐 시대를 탓하고, '그대로!'를 외치며 사는 모습이 당당한, 멋있는 모습은 아니다. 그런 행동, 생각을 하는 사람을 일러 일명 꼰대라고 한다.

 

문제는 이런 꼰대들이 사회에서 주류를 이루고, 권력을 행사한다는 데 있다. 여전히 권력을 쥐고 자신들의 기준을 다른 사람에게 들이미는, 들이미는 정도가 아니라 강요하는 꼰대들이 있는 한 피해자는 발생할 수밖에 없다.

 

많은 부분에서 이런 꼰대들이 활약하겠지만, 꼰대들이라는 모습이 확연히 드러나는 부분은 '나이와 성별'이다.

 

 

'나이' 

많은 것이 자랑일 수도 적은 것이 부끄럼일 수도, 반대로 많은 것이 부끄럼이고 적은 것이 자랑일 수도 없는 그냥 살아가면서 자신의 몸이나 정신에 쌓인 시간의 합이 나이다. 많다고 지혜로운 것도, 젊다고 패기있는 것도 아니다. 나이는 어떤 광고의 말처럼 숫자에 불과하다. 그런데 나이를 내세우면서 상대를 공격하는 것은 꼰대다. 그런 꼰대들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나이로 나타나는 꼰대들의 모습은 다양한데, 그보다 더 심한 것은 성별로 인한 일들이다.

 

우리 때는 그보다 더 심했어 라는 말이나, 나는 그런 의도로 한 것이 아니었어, 너 잘 되라고 그런 거야 등등 예전에는 차마 문제제기도 하지 못했던 일들이 이제는 성폭력이라는 죄로 나타나고 있다.

 

권력의 위계가 너무 심해 자신이 피해를 입어도 그냥 참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던, 드러내는 순간 피해자가 더한 피해자가 되는 현실 속에서 감추어야만 했던, 그리고 자신이 떠나거나 그냥 참고 지내거나 해야만 했던 일들이 이제는 속속 폭로가 되고, 그것이 성폭력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아냐, 난 관행대로 했을 뿐이야라는 말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사회 기준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아무렇지도 않게 (이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갔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권력을 쥔 자들의 관점에서 한 이야기다. 그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갔겠지만, 약자,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는 너무도 큰 상처, 돌이킬 수 없는 상처로 남고, 그 상처로 인해 힘든 삶을 살아가야 했을 것이다. 해결하지 못한 채로... 그러니 예전에 아무렇지도 않게라는 말 대신에 권력자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갔던으로 바꾸어야 한다) 넘어갔던 일들이 이제는 사회 문제가 된다.

 

당연한 일이다. 어떤 일을 판단할 때 가장 약한 자리에 있는 사람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어떤 성폭력도 용납될 수 없다. 그러니 관행대로란 말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이 만화는 웹툰계에서 일어났던 성폭력 사건을 다루고 있다. 피해자가 가해를 인식하고 그것을 사회에 드러내기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는지가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위계에 의한 성폭력, 드러내기 힘든 일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하기 때문이고, 권력을 옹호하는 공고한 주변 환경과도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고소를 해도 그 뒤에 이루어지는 지난한 과정, 그리고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드는 이상한 분위기, 피해자의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또다른 분위기와도 맞서야 한다.

 

하지만 누군가의 싸움으로 사회는 변한다. 이 만화에서도 문하생으로 들어가 온갖 노동 착취에, 신체적 폭력, 성적인 희롱을 당하던 주인공이 그것이 범죄임을 깨닫고 가해자를 고소하면서 겪는 일을 하나의 물방울이 바위에 부딪히는 일처럼 표현이 된다.

 

정말로 힘든 과정이다. 너무도 힘들어서 그냥 포기하고 싶어질 때도 많다. 내 잘못이 아닌데, 내 잘못인 것처럼 생각될 때도 많다. 그러나 잘못은 가해자가 한 것이다. 벌을 받아야 할 사람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다. 이는 명백한 진실이다.

 

주인공이 포기하지 않고 결국 재판에서 이기는 과정... 통쾌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고, 그 과정 속에서 주인공이 얼마나 힘들어했는지가 잘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피해자는 이겨도 힘들다.

 

재판에서 이기고도 가해자가 나타나 보복하면 어떡하지 하는 그러한 두려움이 이 만화에 너무도 잘 나와 있다.

 

그럼에도 이것을 이겨내고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와 다른 사람을 돕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하나의 물방울이 바위에 부딪혀 떨어져 내렸지만 계속 되는 물방울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것,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것을 알려주었다는 점에서 이 만화는 의미가 있다.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만화다. 그리고 이 만화의 끝장면이 진한 감동으로 밀려온다. 피해자가 피해다니면 안 된다는 것. 피해자가 그 자리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 아니 그렇게 되도록 우리 사회가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마지막에 주인공은 말한다. "저, 여기 있어요."

 

그렇다. 이제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주인공은 이제 더이상 피해자가 아니다. 자신과 비슷한 일을 겪는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도와주는 조력자다. 사회 변화의 촉발자이자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당당한 주인공이다.

 

아직도 많은 분야에서 진행 중이기도 하겠지만, 만화의 마지막 장면이 진한 감동으로 여운을 준다.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저, 여기 있어요."라고, 그 자리에서 잘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회였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 속에 꼭 박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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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쓰레기가 아니라고요 - 플라스틱부터 음식물까지 한국형 분리배출 안내서
홍수열 지음 / 슬로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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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매립장 문제로 인천이 시끄럽다. 수도권 쓰레기 매립장이라고 해야 하는데, 현재 인천에 있는 매립장이 2025년이면 포화 상태가 된다고 한다. 예전에 난지도가 그런 역할을 했는데, 지금은 생태공원으로 거듭나서 사람들이 쉴 수 있는 장소가 되었는데...


인천에 있는 매립장도 이제는 쓰레기 매립장으로서의 역할을 끝내고 다른 장소로 거듭나야 하는데, 문제는 이러한 쓰레기 매립장이 아예 사라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장소만 바꿔가면서 계속 존재해야 한다.


우리 마을만 아니면 돼! 이래서는 안된다. 쓰레기가 나오는 한, 매립장은 필요하다. 매립장과 더불어 소각장도 필요한데, 우리 마을은 안돼! 하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으면 된다는, 꼭 필요하기는 하지만 내 눈에 보이는 곳, 또는 내 이권이 걸려 있는 곳에는 안 된다는 주장. 하여 쓰레기 문제는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문제가 되는데... 마음이 답답한데,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쓰레기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위생 처리를 한답시고 일회용품 규제를 한시적으로 풀었고, 물휴지나 손소독제 또 배달음식 등등 엄청나게 많은 한번 쓰고 다시 쓰지 않는 물품들이 넘쳐나게 되었다. 감염병을 막을지는 몰라도 환경을 해치는 일은 더 강화되고 있는 중.


이런 와중에 재활용 문제도 불거졌다. 재활용 하는 비용이 늘고, 수익은 줄어 재활용을 포기하는 사례도 많다고 하니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인류의 풍요가 지구에게는 쓰레기 양산이 된 셈.


그러니 재사용, 재활용이 중요해졌는데, 자원의 순환은 오래 전 말이 되었지만, 그나마 환경에 대한 인식이 생기면서 재활용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대부분은 재활용에 동참하는데...


그냥 나는 재활용했다에서 그치면 안 된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또 내가 얼마나 재활용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었나 하는 반성도 하게 되고. 이 책을 읽고 이 사이트를 참고해도 좋겠다. 도와줘요 쓰레기 박사라는 방송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8DsY_Yt_RV8&list=PLlZ5M5w5sAwug-b4Tgyg-G-WBmgsIAI3V (도와줘요, 쓰레기 박사)


이 책에서는 재활용과 재사용에 대한 용어 구분부터 해주고 있고, 어떤 물건이 재활용 가능하고, 가능하지 않은지 우리 실생활에서 나오는 물건들을 통해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 여기에 음식물 쓰레기까지 우리가 생활하면서 배출하는 모든 것들을 잘 알려주고 있어서 매우 유용한데, 읽으면서 딱히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문제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럼에도 재사용, 재활용은 꼭 필요하다는 것, 그렇지 않으면 이 지구가 견뎌내지 못하리라는 것을 깨달았는데...


흡연이 쓰레기 문제와 관련되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큰 수확. 담배꽁초가 플라스틱 재질이라는 것. 그래서 이 꽁초들을 하수구에 버리면 미세 플라스틱 알갱이들이 결국 바다로 흘러들어가게 되고, 이것이 우리에게 농축되어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 이 책에 있는 이 부분, 흡연자들이 꼭 읽고 명심했으면 좋겠다.


많은 분들이 종이로 잘못 알고 있는데 담배 필터는 셀룰로스 아세테이트라는 재질의 플라스틱입니다. ... 실내 흡연이 금지되면서 거리로 나온 흡연자들은 타고 남은 꽁초를 길바닥이나 빗물관에 아무렇게나 버립니다. 꽁초들은 빗물관을 통해 강으로 가죠. 도심에서 나온 플라스틱 쓰레기 중 바다로 갈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이 담배꽁초라고 봅니다. (86쪽)


이거 너무나 무서운 일이다. 담배가 간접 흡연의 위험을 넘어 전 인류의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단지 흡연을 연기만의 문제로 취급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꽁초 문제도 심각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 책에서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할 내용은 바로 모든 물건이 재활용되지는 않는다는 것. 우리가 분리배출을 아무리 많이 해도 재활용센터에서는 재활용하는 물품에 한계가 있다는 것. 재활용센터에서 분류할 때 손바닥 크기보다 커야 제대로 분류를 하고, 그것보다 작은 것은 분류하기 힘들어 쓰레기로 처리된다는 사실.


차라리 이들의 일손을 줄여주기 위해서 손바닥보다 작은 빨대와 같은 것들은 종량제 봉투에 넣어 버리는 것이 낫다고 이야기한다. 여러 문제가 있다. 이 작은 것들을 한데 모아 보낼 수 있으면 될텐데, 여전히 자본의 논리가 작동하는 사회에서는 그것이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읽으면서 부끄럽기도 하고, 내 분리 배출 모습을 반성하기도 하고, 이 책을 늘 볼 수 있는 곳에 놓고 수시로 보아야겠다는 생각. 그리고 무엇보다도 덜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무리 분리배출을 하고 재활용을 한다고 해도 덜 써서 물건들의 양을 줄이는 일보다는 못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 내 풍요가 지구를 더 힘들게 한다면 내가 조금 덜 풍요롭더라도 지구가, 우리 모두가 덜 힘들 수 있다면 그런 생활이 더 만족스러운 생활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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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북사랑 2021-01-04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배꽁초!!!충격이네요. 스크럽세안제나 치약의.그 까끌까끌한 성분이.플라스틱이라는 걸 처음 알았을 때만큼

kinye91 2021-01-04 14:42   좋아요 0 | URL
저도 꽤 놀랐어요. 담배가 해롭다고 하는데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호프 자런 지음, 김은령 옮김 / 김영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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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겪는 많은 일들에 대한 책임이 결국 우리에게 있음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나는 풍요로웠고라는 말에서 이때 나는 지구상에 사는 모든 사람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적어도 선진국이라고 하는, 또는 그에 준하는 나라에 사는 사람들 중에 먹고 살 만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 이야기다.

 

지구 상에 인류가 나타난 이래 지금처럼 풍요로운 시대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런 풍요를 지구 상 모든 존재들이 함께 누리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인류는 다른 종들, 다른 존재들 위에 군림하면서 그런 풍요의 혜택을 누려왔다. 이것만이라면 인간이라는 이유로 평등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인간 중에서도 어느 나라에 사느냐, 어느 정도의 경제력을 지니고 있느냐에 따라 풍요의 정도는 엄청나게 달라진다.

 

많은 사람들은 넘쳐나는 풍요로 자신들의 삶을 영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하루 먹을거리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다. 풍요로워진 만큼 불평등 또한 심해졌다고 할 수 있는데..

 

이 풍요가 지구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는 것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다. 기후위기에 동의하지 않는 정치가, 과학자들도 있지만, 이 책에서 제시된 통계를 보면 기후위기는 명백하다. 거기에 대해서 더 이상 논의할 가치가 없다고 한다. 문제는 이 기후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이냐로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런 호프는 많은 사례들을 자신의 경험과 연관지어 이야기하고 있다. 과학자가 쓴 책이라기보다는 이웃 사람이 차분하게 기후위기에 대해서 들려준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다. 그래서 더 설득력이 있다.

 

또 단정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몇 년 내로 지구는 위기에 처하고 인류에게는 커다란 재앙이 닥칠 것이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람들을 두려움에 빠지게 하면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과학을 하는 여성이지만, 대중이 두려움을 느끼도록 만들려면 대중에게 두려움을 주어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두렵게 만든다.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두려움이 좋은 결정을 내리게 해주지는 않으며 적어도 가끔은,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191쪽)

 

이렇게 자런 호프는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기보다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더 좋다고 이야기한다. 막연한 두려움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참 멀게 느껴지는 변화겠지만 개개인의 변화는 결국 집단의 변화를 일으키게 됨을 명심하라고 한다.

 

무엇보다도 풍요롭게 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생활을 되돌아봐야 한다고 한다. 자신에게 꼭 필요하지도 않는 것들을 얼마나 많이 소비하고 있는지 알게 되는 순간부터 행동은 변화한다. 그렇게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해야 한다고 한다.

 

물론 사회정책의 변화도 함께 가야 하지만, 자신의 변화와 더불어 가야 한다. 사회정책이 변하기만을 기다리면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우리가 지나치게 풍요로워졌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미니멀 라이프라는 말이 유행한 적도 있는데, 적게 갖고 적게 쓰는 것. 자신의 삶을 부풀리려고만 하지 말고 줄일 수 있는 것은 줄여야 하는 것.

 

당장 손쉽게 할 수 있는 일들이 책의 말미에 제시되어 있다. 그래서 이 책은 거대한 이야기를 넘어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방안도 제시하고 있다. 읽어야 한다. 이런 책을. 그리고 변해야 한다. 우선 나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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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겁니다 - 괄호 안의 불의와 싸우는 법
위근우 지음 / 시대의창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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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틀린 게 아니라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고.. 옳은 말이다.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아서 소수자 문제가 생기고, 차별이 생긴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해 보면 틀림을 인정하지 않아서 소수자 문제가 생기고, 차별이 생기기도 한다. 아니, 차별은 다름을 인정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틀림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생기는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틀림을 다름으로 치환하며 살지 않았나 하는 반성, 다름으로 치환하면 다양성이라는 명목으로 틀린 견해도 다른 견해로 여기며 수용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한다.

 

물론 내 견해가 틀렸을 수도 있다. 틀린 내 견해를 다른 견해로 받아들여 달라고 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도 하게 만든 책이다. 뜨끔하다고 해야 할까... 그만큼 이 책은 신랄하다. 신랄한 만큼 반발도 많을 수 있다.

 

그게 이 책이 의도한 바이기도 할 것이다. 반발이 있어야 재반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런 반발도 없이 넘어가는 것, 토론이 되지 않는다. 토론이 되지 않으면 그게 문제인지 제기가 되지 않는 것이다.

 

문제인데, 문제로 제기되지 않고 얼렁뚱땅 넘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틀림을 다름으로 치환하는 잘못을 저지르는 일일 것이다.

 

저자인 위근우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무언가에 대한 공통의 합의에 이르기 위해선 더 가차 없이 나의 '옳음'의 근거를 확보하고 상대의 '틀림'을 논박하는 논의 과정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소통적 태도란 나도 옳고 너도 옳다는 식의 태도가 아니다. 서로의 의견 차를 '다름'이라는 말로 쉽게 인정한다면 우리는 서로 옳고 그름을 합의할 최소한의 근거를 아예 잃어버린다. 이것은 절대적이거나 초월적인 관점이다. 관대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교조적이다. 우리는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오히려 격렬한 논의 안에 뛰어들어 수많은 목소리와 경쟁해야 한다. 그 불편한 과정을 회피한 채 서둘러 절충안을 찾고 합의하려는 것, 그것이 강요된 화해다. 그리고 이러한 화해는 매우 높은 확률로 사회적 통념의 편에 선다. (7쪽)

 

어쩌면 학교 다닐 때 배웠던 황희의 일화를 우리의 삶에 주욱 실천하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네 말도 맞다. 네 말도 맞다. 허허... 이런... 그러니 모두 맞다고. 판단을 하지 말라고. 그건 아니다. 분명 옳고 그름은 있다.

 

자신의 옳음을 주장하는 것, 상대의 옳음을 듣는 것. 그래서 옳고 그름을 따져보는 것. 절충이 아니라 옳음을 향해 나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토론이다. 그리고 이런 토론을 통해서 사회는 발전할 수 있다. 여기서 다름은 옳고 그름의 다름이 아니라 상대와 내가 같지 않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가 다름이고, 그것은 상대의 견해가 옳고 그른지와는 관계가 없다. 우리는 상대를 다른 존재로, 상대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하지만, 견해가 틀렸을 때도 다르다고 해서는 안된다.

 

이 책에 나오는 것 중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과격하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말. 왜 과격해졌을까? 권력을 쥔 자들이 할 수 있는 절차나 방법을 통해서는 자신들의 주장을 알릴 길이 없기 때문에,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알리는 것조차도 할 수 없기 때문에 택할 수밖에 없는 방법이 과격함인데 그것을 가지고 반대한다? 그건 결국 그들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

 

약자들의 주장하는 방식이 과격하다고 해서 그 방식이 틀린 것이 아니라, 바로 그들의 그 과격한 방식을 다르다고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반대로 생각한다. 그들의 주장이 옳을지라도 과격한 방법은 틀린 거라고. 그건 강자의 논리일 뿐이다. 그리고 그 논리는 다름이 아니라 틀림이라고 한다.

 

격쟁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자신의 억울함을 직접 호소하는 일. 그러나 격쟁에도 처벌이 따랐다고 한다. 격쟁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그 행위 자체에 벌을 준 것. 과격함을 잘못됨으로 판단하는 것이지만, 적어도 그 내용의 옳고 그름을 판단했다고 한다. 그때도 그랬는데, 현대에 와서 과격함만으로 주장의 옳고 그름을 묻어버리려 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위근우는 꾸준히 자신이 그르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서 글을 쓴다. 다른 사람에게 알린다. 토론하자고 한다. 자, 나는 이렇게 불편하다. 이 불편한 상황을 견딜 수가 없다. 불편한 것은 그것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그릇된 것이기 때문에 고쳐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에게 반박하라고, 그래서 토론을 하자고. 공론의 장을 만들자고.

 

글쓰기의 실천적 힘은 독립적으로 발휘되는 것이 아니라 공적 논의의 맥락 위에서만 발휘될 수 있다는 것이다. 논의가 질적으로 풍부해지고 치열해질수록, 세계에 대한 유의미한 쟁점들이 가시화되며 합의를 위한 공통의 토대가 조금씩 만들어진다. 세계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이 공론장 안에서 충분히 성숙해가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획기적인 발상 역시 등장할 수 있다. 그 배경에는 천재적이진 않지만 성실한 글쓰기로 논의를 멈추지 않는 이들이 있다. 나는 그곳의 일원이고 싶다. (9쪽)

 

그의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아직은 그의 바람대로 되지 않고 있기에. 권력 있는 자들은 그름을 다름으로 포장하야 논쟁을 하지 않고 그냥 인정하라고 한다. 그렇게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유야무야 논쟁을 없앤다.

 

이제는 다름이라는 이름으로,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적어도 옳고 그름을 가려야 하는 일에는 모두가 자신의 주장을 명확하게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발전할 수 있다.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

 

이 책에 참 많은 사례들이 나와 있는데, 그 사례들에 대한 위근우의 주장을 읽고 그 근거들의 타당성을 판단하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나가는 것이 좋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은 자신의 주장을 공론장으로 끌어내려고 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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