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닝 - 꽃게잡이 선원에서 돼지농장 똥꾼까지, 잊힐게 뻔한 사소한 삶들의 기록 한승태 노동에세이 1
한승태 지음 / 시대의창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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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닝(Queening)'


처음 들어보는 낱말이다. 책을 읽으면 좋은 점이 새로운 말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기도 한데... 퀴닝이라? 그냥 낱말을 들여다보면 여왕이 있다. 그렇다. 이 낱말은 체스에서 졸이 상대편의 마지막까지 도달했을 때 하나의 말을 선택할 수 있는데, 이때 여왕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서 퀴닝이라는 말을 쓴다고 한다.


즉 신분의 상승이다. 이는 자신의 처지를 극적으로 변화시킨다는 의미로 쓸 수 있는데... 이 책은 원래 '퀴닝'으로 나오지 않고 '인간의 조건'이라는 제목으로 나왔다고 한다. 개정판을 내면서 저자가 의도했던 대로 '퀴닝'이라는 제목을 달았다고 하는데...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과연 '퀴닝'이 있을까? 예전에 가난했던 집안의 아이가 고시에 합격해서 신분을 바꾼 사례를 들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법학전문대학원이 되어버렸으니,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의 처지를 상승시키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힘든 일을 한 사람들이 그 일의 대가로 좋은 생활을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 사회도 이러한 '퀴닝'이 가능한 사회가 되겠지만, 저자가 마지막에서 '인간이 남의 돈을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 이 세상에선, 졸이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일생 졸로 머무르는 게 아닐까 생각하는 나는 조금 두려워진다'(440쪽) 했듯이, 가난한 사람들은 계속 가난하게 사는 삶이 유지되는 사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나 역시 마음이 좋지 않다.


이 책의 저자가 나중에 쓴 책부터 읽었다. 그 책을 읽고 자신이 직접 체험한 노동에 대한 이야기기에 더 생생하게 다가오기도 했는데, 결코 노동을 미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또 자신을 좋게만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저자가 먼저 쓴 노동에 대한 책을 읽고 싶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떤 동사의 멸종]보다 더 생생한 노동의 현장, 저자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는데, 이것이 꼭 저자만이 겪는 일이 아닐 거라는 생각에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최저임금이 간신히 보장되는 노동 현장에서도 계급이 있다는 사실. 그것도 외국인 노동자, 특히 동남아나 중국에서 온 노동자들은 가장 밑바닥에 처해 있다는 사실. 한국인인 저자가, 그것도 젊은 한국인인 남성 노동자인 저자가 겪는 일도 만만치 않지만 외국인 노동자들은 그보다도 더한 환경에 처해 있다는 사실.


그것을 알고 있는 저자도 어떨 때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멸시하는 말을 하고, 그들을 막 대하고 있다는 사실. 머리로 차별하면 안 된다는, 다 같은 노동자라는 사실이 막상 현장에서는 작동되지 않고 그들 위에 군림하려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모습이 이 책에 적나라하게 나와 있으니...


또한 힘든 노동을 경시하는 그 노동으로 편리하게 생활하는 사람들의 모습. 그런 사람들에게 질리다 못해 결국 그들을 막 대하는 저자의 모습이 "뭐 저런 노동자가 다 있어?"라고만 할 수 없음을 생각하게 된다.


막바지에 처한 사람들의 몸부림일 수밖에 없다는 것. 그래서 저자가 한 말에 동의한다. 정치인들, 한번 이런 노동현장에 화서 일해보라고... 돼지 농장에서 돼지분뇨를 날라보라고... 또 꽃게잡이 어선에 타서 꽃게잡이를 해보라고, 요즘은 셀프 주유소가 많이 생겼지만 이 책에서 이야기한 손님들로 늘 북적이는 주유소에서 일해보라고, 아니 지금도 우리나라에 만연하는 기계공장에서 일해보라고...


예전에 '삶의 체험 현장'이라는 방송이 있었는데, 유명인이 가서 하루 체험을 하고 일당을 받아오는 방송이었다. 이들은 방송에 나온다는 점을 감안했는지 일당도 꽤 받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 책을 보면 그것은 방송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저임금도 못 되는 돈을 주는 경우가 많고, 노동 현장은 가혹할 정도로 열악하다는 것. 여기에 사회구조를 비판하기보다는 바로 옆에 있는, 그것도 나보다 조금이라도 힘이 없다면 그들을 무시하고 막 대하는 쪽으로 변해가는 그런 모습은 절대로 방송에 나오지 않는다.


이런 책에서나 만날 수 있는 현장이다. 그러니 이런 책은 우리 사회의 노동현장을 가감없이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 삶을 지탱하는 그런 노동들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졸이 아니라 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적어도 졸이 졸로만 존재하는 사회는 아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게 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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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비즈니스의 시대 - 우리는 어쩌다 아픈 몸을 시장에 맡기게 되었나
김현아 지음 / 돌베개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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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의료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았다. 의대 학생수 증원을 놓고 벌어진 갈등이, 전공의들의 사퇴로, 또 의대생들의 휴학으로, 그리고 의사국가고시의 거부로 이어지고 있다. 갈등은 지속되고 있는데, 어떻게 해결될지는 아직도 미지수다.


이런 때 의사가 쓴 책을 읽는다. 의사이기 때문에 의료 현실을 직접 경험하고 있으니 문제점을 파악하고 있으리라 믿고, 또한 그러한 문제점을 어떤 식으로 해결하면 좋을지를 어느 정도는 이야기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의료 정책을 담당하는 사람과 현장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의 관점을 다를 수 있음은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의료 정책에 현장의 목소리가 담기지 않는다면 문제는 더 발생할 소지가 있다.


이 책을 쓴 김현아 교수는 류마티스 내과 교수라고 한다. 오랫동안 의사로 활동해 왔고, 자신의 경험을 통해 느꼈던 문제들을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구체적인 사항들은 이 책을 읽으면 되는데, 가장 큰 문제의식은 시장이 우리나라 의료를 잠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의료 민영화를 거부하는 나라인데, 의료가 시장에 잠식당하고 있다고?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병원에 속하는 삼성의료원과 현대아산병원이 어디 소속인가? 거대 재벌 소속 아닌가. 이들 재벌이 자신들의 이익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의미에서 그 병원을 운영하는가?


아니다. 이들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려면 많은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첨단 장비를 이용한 검사비와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않는 약을 처방받는 경우가 꽤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야 환자 입장에서는 정확한 검사를 받고, 효과적인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지출해야 할 비용이라고 하겠지만, 이런 검사와 치료를 공공의료가 담당할 수도 있지 않을까.


오히려 중증을 치료하는 병원은 사적인 기업이 운영하는 병원이 아니라 공공의료병원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나라 공공의료 비중은 10%정도라고 한다. 다른 선진국들이 약 30%정도라고 하니, 공공의료는 터무니 없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의대 정원 문제는 단지 의사수의 문제가 아니다. 공공의료를 확충하느냐 아니면 의료를 시장에 넘기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시장에 넘기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대형병원 의사들이 하루에 만나는 환자가 얼마나 많은지 아는가? 정확한 숫자는 몰라도 대형병원에 가면 예약을 하고 가도 근 1시간 가까이 기다렸다가 달랑 3분도 안 되는 시간에 진료받고 처방받고 나온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의료의 시장화다. 의사들이 이렇게 많은 환자들을 진료해야 병원이 이익을 낼 수 있다고 하니... 건강보험에서 진료수가가 낮은 것에도 원인이 있다고 하는데, 아마 지금 제도에서는 진료수가를 올려도 환자를 진찰하는 시간이 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병원이 이익을 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책의 저자가 말한대로 의료는 우선 인간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사람은 누구나 병에 걸릴 수 있다는 것과 죽음을 거부할 수는 없다는 것. 완벽한 정상 몸은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어떤 질병에 걸릴지는 본인도 의사도 모른다. 하지만 첨단 기계를 이용해 검사를 하면 병에 걸릴 인자들이 나오게 된다. 그런 인자가 자신의 몸에 있다면 그때부터 마치 병에 걸린 듯 치료를 받으려 한다.


그러나 과연 몸에 있는 인자들이 모두 질병으로 발현되는가? 아니다. 수많은 인자들이 특정한 상황에서 질병으로 발현된다. 발현되는 경우보다 안 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니 1차 병원에서 진료받고 꾸준히 상담하면서 자신의 몸 상태를 지켜보는 의사가 있다면 상급종합병원에 가는 것보다 더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의사들을 마냥 비난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 역시 자본주의의 한 구성원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의사들과 시민들이 대립할 이유가 없다. 의사들 역시 당연하게 자신들의 처우 개선을 요청해야 한다.


하루에 진료하는 환자수가 너무 많으면 적정한 진료 환자수를 정하자고 해야 한다. 스스로 과잉 검사를 지양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살인적인 업무 환경을 고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니만큼 환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라고 주장해야 한다.


공공의료를 확충해야 하고, 충분한 진료 시간을 확보해야 하며, 진료나 치료가 아닌 다른 일로 시간을 빼앗기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의료가 시장에게 잠식당하지 않는다. 이는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는 사람들도 명심해야 하지만 당사자인 의사와 국민들이 협심해야 한다. 그래야 건강한 사회에서 건강하게 살 수가 있게 된다.


아직도 진행 중인 의료 문제... 그런 중에 읽은 이 책. 이 의료의 문제가 의사들의 이기심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 제도와 환경이 함께 마련되어야 의료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의사들이 이러한 문제들을 주도적으로 제시하고, 해결책을 함께 모색하자고 하면 국민들도 납득하고, 서로에게 더 나은 의료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한 책이다.


덧글


얼마 전에 읽고 써놓은 글인데...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전국민을 놀라움과 두려움, 당혹감에 빠뜨린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다가 6시간만에 해제되었다. 절차를 지키지도 않았다는 문제, 지금이 과연 계엄령을 선포할 시기인가 하는 문제가 심각하지만... 이렇게 무시무시한 언어로 협박이라고 느낄 수 있는 표현을 했으니, 과연 의사들이 이 포고령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5. 전공의를 비롯하여 파업 중이거나 의료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하여 충실히 근무하고 위반시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합니다.


과연 해결할 의지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 절차를 밟기 힘들 때 대통령이 긴급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는 헌법 조항을, 세상에 대통령이 스스로 나라를 위기에 빠뜨려 비상 시국으로 만들다니... 이것이 과연 한 나라의 대통령이 할 일인지.


누가 국가를 위험에 빠뜨리는지 12월 3일 밤... 그날, 일을 겪은 국민들은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정작 당사자가 전혀 모른다는 것이 문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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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해자들에게 - 학교 폭력의 기억을 안고 어른이 된 그들과의 인터뷰
씨리얼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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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였던 어른들'이라는 제목으로 유튜브에 올렸던 영상이 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봤다고 하는데, 이 책은 그 영상의 원본이라고 할 수 있다. (아래 링크 참조)


https://www.youtube.com/watch?v=CDtu1skdHIs (왕따였던 어른들 여자반)


https://www.youtube.com/watch?v=Kqv9BymmRuY (왕따였던 어른들 남자반)


'유튜브에 공개한 영상은 고작 20여 분이지만 우리가 인터뷰하고 서로 이야기 나눈 시간은 장장 5시간 4분이었다. 사전 인터뷰까지 합치면 8시간도 넘는다.'(7쪽)고... 그런 많은 이야기를 영상으로 내보낼 때는 영상 매체의 특성에 맞게 편집이 될 수밖에 없다.


영상에서 보지 못하는 더 많은 말들, 감정들이 있었을텐데, 이 책은 그렇게 영상에 담지 못했던 것들을 문자라는 매개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전달하려고 한다.


자신들의 경험, 왕따, 학교폭력. 그것은 한때로 끝나지 않는다. 피해자들의 몸에 생긴 상처들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수도 있지만, 마음에 새겨진 상처는 오래도록 남는다. 아니, 평생 동안 남는다.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 치유가 되더라도.


치유가 되었다고 마음의 상처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이것이 왕따, 학교 폭력의 무서움이다. 그런데도 가해자들은 그것을 알지 못한다.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너무도 쉽게 이야기한다. 그것은 철 모르던 때에 저질렀던 실수였어. 한때의 잘못이었어. 이런 말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해자였다는 사실도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자신에게는 어떠한 상처도 남기지 않은 일이었기에.


이것이 왕따와 학교 폭력의 무서움이다. 가해자들은 잘 느끼지 못하지만 피해자들은 평생 안고 가야 하는 상처를 받으니까. 이것이 지나친 말이라고? 아니다. 이 책에 나오는 대담에 참여한 사람 중에 42살이 된 분이 있다.


나이 마흔둘이면 동양에서 흔히 말하듯 불혹의 나이다. 미혹함이 없는 나이. 사회에서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나이다. 어린 시절, 또는 학창시절의 폭력 피해는 다 잊고 살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아니다. 


이 책에 나오는 그 분은 42살까지도 그 상처를 지니고 있다. 더 나이를 먹어도 상처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행히 그분은, 또 이 대담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살아남았기에 자신들의 상처를 드러내는 일을 할 수 있었지만, 살아남지 못한 분들도 있다. 그분들의 상처는 드러나지 않고, 그분들이 무덤으로 가져갔는데... 그래서 더욱 왕따나 학교 폭력의 무서움이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왕따였던 어른들'을 보면 어른이 되어서도 겪게 되는 그러한 상처들을 알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왕따나 학교 폭력이 얼마나 나쁜 짓인지를 알게 된다.


하지만 이런 말들이 가해자들에게 가 닿을까? 그들은 이런 말들을 들을 귀를 지니고 있을까? 그들은 귀를 막고 자신들의 입만 열고 살고 있지 않을까? 정말로 그들에게 학교 폭력 피해자들의 말이 가 닿아야 하는데...


그것이 기본인데... 하지만 그들에게 가 닿지 않더라도 이런 일은 의미가 있다. 우선 피해자들이 모여 이야기를 함으로써 자신들의 상처를 겉으로 드러낼 수 있게 된다. 겉으로 드러내기. 말하기. 이를 통해 상처를 보듬어 안기. 상처를 보듬어 안는다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좀더 강하게 만드는 일이다.


이들은 이 대담을 통해서 자신들의 잘못이 아님을, 그리고 자신들이 살아남아서 또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한다. 상처는 없애지 못하지만 이제 자신의 상처 속에 묻히지 않고, 그 상처를 통해 다른 삶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그렇게 나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자신의 상처를 밖으로 드러낸 사람들. 이들을 통해 왕따와 학교 폭력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는 것이 바로 이 책일 것이다.


다만, 이 책이 폭력의 가해자들에게 가 닿기를 바랄 뿐이다. 그들에게 가 닿을 때, 그들이 자신들의 행위를 살필 태도를 지니게 될 때, 미래 사회는 왕따, 학교 폭력이 없는 사회로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말이 가해자들에게 가 닿기를... 가해자 중에 한 명이라고 이 책을 읽었기를. 아니 책 읽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영상이라고 봤기를... 봐서 자신을 살폈을 것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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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의 위대한 법정 - 지구공동생활자를 위한 짧은 우화, 동물의 존재 이유를 묻는 우아한 공방
장 뤽 포르케 지음, 야체크 워즈니악 그림, 장한라 옮김 / 서해문집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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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도 동물이 소송을 건 경우가 있었다. 물론 동물이 직접 소송을 걸고 재판에 임한 것은 아니다. 동물을 대신해서 인간이 나서주었다. 왜? 동물은 한국어를 하지 못하니까. 자신들끼리는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인간과는 소통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하지만 소송 결과는 동물들에게 그다지 이롭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각되었다고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동물에게 잠시 인간의 언어를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재판을 한다면? 아니면 동물의 말을 알아듣고 동물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둘리틀 박사(휴 로프팅이 쓴 동화. 동물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둘리틀 박사다)와 같은 사람이 있어서 소송을 한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도 있다. 이 책은 그렇게 동물들에게 언어를 부여한다. 언어를 부여받은 동물들이 재판정에 출석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재판에 출석할 동물을 인간이 임의로 정했다. 자신들의 판단만으로.


재판에 참여한 동물 중에서 인간이 보호해야 할 동물을 선정하겠다는 의도로 재판을 연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재판에서 중요하다고 판단된 동물을 제외한 다른 동물들은 보호에서 제외된다는 뜻이다. 보호라는 말이 인간 중심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지금 지구에서 최고 포식자는 인간이니, 인간의 뜻에 의해서 동물들의 운명이 결정되는 현실을 감안하자.


이런 재판 역시 인간다운, 인간을 위한 재판일 뿐이다. 겉으로는 동물을 위한다는 외피를 쓰고 있지만, 결국 인간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요식 행위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한 재판에 동물들은 참여한다. 비록 요식 행위라 할지라도 자신들의 의견을 인간에게 드러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수리부엉이, 담비, 갯지렁이, 유럽칼새, 멧돼지, 들북살모사, 붉은제독나비, 여우가 나온다. 각자 자신들의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자신들의 이익만을 주장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살아온 터전이 인간에 의해 어떻게 침해당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자신들 역시 지구에서 귀한 생명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인간은 어떤가? 이들 중에서 또 경중을 나누려 한다. 자신들이 보호해야 할 종과 멸종시켜도 될 종을... 얼마나 인간중심적인가? 지구에서 늦게 출현한 인간이 그 전부터 지구에 살고 있던 종들을 없애려 하고 있다. 없애지 않으면 마치 백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인디언들을 쫓아내 인디언보호구역에 가두었듯이 그들을 보호라는 울타리로 가두려고 한다.


하지만 동물들은 인간의 놀음에 놀아나지 않는다. 재판정에 다른 동물들이 우르르 몰려와 자신들의 이야기를 한다. 이것이 핵심이다. 재판에 참여할 동물을 인간이 선정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이 우화의 마지막 부분이 잘 보여준다.


동물들은 각자 자신들의 이야기를 한다. 그 이야기는 인간에 대한 성토도 있지만, 결국 함께 살아가야 함을 역설한다.


어느 한 종이 멸종하면 그것은 다른 종에게도 큰 영향을 미침을 말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다. 그래서 동물들은 재판정에 서야 할 동물은 바로 인간이라고 말한다. 재판정에 들어온 개구리가 제일 먼저 한 이 말이 아프게 다가온다.


"이 재판을 받아야 하는 건 바로 인간이라는 겁니다. 인간이야말로, 오로지 인간이야말로 지구의 생활 환경을 맹목적으로 파괴하고 있으니까요." (173쪽)


인간이 어떤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깨닫고, 고쳐야 한다고... 그래야 지구에서 생물종들이 다양성을 유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고. 그것이 인간에게도 유리하다고.


이 작품의 마지막에 거북이가 한 말. 지금 우리가 명심해야 할 말이다.


"우리는 새로운 동맹을 맺고, 새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새로운 조약을 체결해야 합니다. 우리에겐 계약이 필요합니다. 이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어쩌면 아예 새롭게 배워야 합니다. 생명이라는 이 기적을 공유하는 법을 말이죠.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이를 끊임없이 쇄신하며,조율하고 또다시 조율하는 법을요." (191쪽)


그렇게 하기 위해선 인간들끼리 먼저 공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울새가 말하듯이 인간 사이에 다툼이 끊이지 않는데 어떻게 협정을 맺을 수 있냐는 반문에 우리는 무어라고 답을 할 수 있을까? 같은 종끼리도 서로 죽이고 있는 현실에서 다른 종들을 어떻게 대하는지는 더 말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그러니 인간들끼리라도 먼저 공존하는, 함께 살아가는 조약, 협정을 맺었으면 좋겠다. 명목상의 협정이 아니라 진실로 우리가 지구에서 살아가려면 반드시 맺어야 할 협정이라는 생각으로. 인간이 인간을 존중하는 데에서 시작해 다른 종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간다면 지구가 점점 살기 힘든 곳으로 변해가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의 말을 빌린 동물들의 말을 통해서 지금 우리에게 닥친 문제가 무엇인지를 인식하고, 생물다양성이 곧 인류의 생존임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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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이후의 세계 - 챗GPT는 시작일 뿐이다, 세계질서 대전환에 대비하라
헨리 A. 키신저 외 지음, 김고명 옮김 / 윌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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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부정할 수 없는 인공지능 시대. 이 책은 작년에 출간이 되었다. 작년. 겨우 한 해가 지났을 뿐인데,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에서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만큼 인공지능 부분은 급속도로 발전해 왔다는 얘기다.


일년 전에 책이 나오기 위해서는 그 전부터 준비를 했을테니, 인공지능에 대한 책을 쓰면서 출판은 인공지능 이전 식으로 한다면 시대에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미 지난 이야기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 예로 이 책에는 챗지피티-3이 나온다. 지금은 3이 아니라 4, 그리고 그 이상의 버전이 나왔다고 한다. 예상할 수 없는 분야로, 대답으로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는 것이 인공지능이라면 인공지능의 발달 역시 우리의 예측을 훨씬 뛰어넘는다.


그럼에도 이 책은 생각할거리를 제공한다. 바로 우리 인간에게 인공지능은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질문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과도 통하는데, 여기에는 사유가 필요하고 인류의 삶을 이끌어내는 철학이 필요하다는 저자들의 주장에 동감한다.


세계의 관계자들 또 지식인들, 정치인들이 모여서 인공지능에 어떤 한계를 정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문제제기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윤을 최우선으로 하는 자본주의 시대에 그러한 제안은 낭만적으로(제안은 좋지만 실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의미로) 들린다.


인공지능을 군사력에 도입하면 앞으로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다는 말에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세계의 정치가들이 모여 인공지능의 쓰임에 한계를 정하는, 과거 핵무기 사용에 관한 협정과 같은 협정을 맺으리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다.


아직까지 인공지능은 군사 분야보다는 다른 분야에서 쓰이고 있으며, 그러한 인공지능의 사용이 인간에게 편리함과 자본가들에게는 이윤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지금도 아마 알게 모르게 인공지능을 군사력과 결부시키는 나라들이 있을테지만, 대놓고는 하지 않고 있다고 보는데, 이제 곧 대부분의 나라 군사력에 인공지능은 결합이 될 것이다. 결합이 된 다음에 대책이 나오면 인류를 파멸로 이끌 무기를 만들어놓고 사용하지 말자는 것과 같은 말이 되는데, 이미 만들어진 것에 한계를 두자고 하면, 그 협정을 누가 깨는 순간 인류는 되돌아올 수 없는 선을 넘어서게 되니... 이것도 어찌될지 알 수 없는 일이고.


그런 만큼 이 책에서는 인공지능의 발달을 살피고, 그것이 우리 인간에게 주는 의미를 알아보고 있으며, 앞으로의 세계에서 인공지능을 어떻게 대해야 또는 이용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다.


중요한 문제고, 인류의 생존에도 인공지능에 대한 논의는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어떻게 토론의 장을 만들고, 인공지능에 대한 한계를 정할 수 있을까? 아직 인공지능이 어떻게 발달할지 알 수도 없는 상황에서. 세계적으로 인공지능의 사용에 대한 협정이 맺어질 가능성이 있을까?


이 책의 저자들은 그래야 한다고 하지만, 지금 세계에서 인공지능의 개발을 몇 달(6개월이던가?) 늦추고 논의를 하자는 말도 있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한 편에서는 계속 인공지능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 않은가. 


왜냐하면 늦으면 이윤을 확보할 수 없으니까. 따라갈 수 없으니까. 그러니 인류의 생존 또는 생활이라는 목표를 놓고 토의를 하자는 제안은 공염불로 그칠 공산이 크다. 오히려 예전 핵무기 협정과 비슷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자들도 이러한 협정을 맺어야 한다고 하고 있지만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이미 대세가 된 인공지능 시대라는 생각. 이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아직 오지도 않은 세상을 미리 걱정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때가 오면 늦었을테니, 미리미리 걱정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적어도 인류의 삶에 대한 철학을 정립하고, 그 철학에 의해서 인공지능 시대의 방향을 정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아무튼 인공지능은 이제 거불할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을 받아들이고 거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정보에 맥락이 더해질 때 지식이 된다. 그리고 지식에 소신이 더해지면 지혜가 된다. 역자적으로 볼 때 소신이 생기려면 홀로 성찰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인터넷은 이용자에게 수천, 수만, 수억 명의 의견을 쏟아부으며 혼자 있을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홀로 생각할 시간이 줄어들면 용기가 위축된다. 용기는 소신을 기르고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하며 특히 새로운 길, 그래서 대체로 외로운 길을 걸을 때 중요하다. 인간은 소신과 지혜를 갖출 때만 새로운 지평을 탐색할 수 있다. - P89

AI는 비정밀하고, 역동적이고, 창발적이며, ‘학습‘이 가능하다. AI는 데이터를 소비하여 ‘학습‘하고, 데이터를 토대로 관찰하며 결론을 도출한다.

- P95

AI가 결과물을 생성하면 연구자가 됐든 평가자가 됐든 인간이 그 결과물을 당초 목표에 부합하는지 검사해야 한다. - P115

AI는 자신의 발견을 반추하지 못한다. - P116

AI는 반추하지 못하므로 그 행동의 의의를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따라서 인간이 AI를 규제하고 관리해야 한다.

- P116

이 글을 쓰는 현재 AI는 세 가지 차원에서 코드의 통제를 받는다. 첫째,코드에 AI가 수행할 수 있는 행동의 매개변수가 지정된다. 둘째, AI는 최적화 대상을 정의하고 지정하는 목적함수로 통제된다. 셋째, 당연한 말이지만 AI는 원래 인식하고 분석하도록 지정된 입력만 처리할 수 있다. - P122

심각한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 정부, 네트워크 플랫폼 운영자, 이용자가 자신들이 추구하는 목표가 본질적으로 무엇이고, 어떤 전제와 한계 내에서 상호작용할 것이며, 어떠한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지 따져야 한다. - P135

AI 무기를 설계할 때와 배치할 때 그것이 수행할 수 있는 행동의 범위를 잘 설정해서, 인간이 시스템을 관리하고 시스템이 본래 목적에서 이탈할 시 가동을 중단하거나 교정하게 해야 한다.

- P205

AI의 ‘학습‘ 능력과 ‘목표물 설정‘ 능력을 중심으로 새로운 제한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

- P212

개인과 사회가 삶의 어떤 측면을 인간지능의 몫으로 남기고 어떤 측면을 AI에게, 혹은 인간과 AI의 협업체계에 맡길지 결정해야 한다. - P225

설명이 가능할 때 의미와 목적이 생기고, 대중이 도덕원리를 인정하고 실천할 때 정의가 구현된다. 하지만 알고리즘은 제 결론을 인간의 경험에 근거하여 대중에게 설명하지 않는다.

- P227

AI 기반의 맞춤형 교육이 도입되면 인간의 평균적 능력이 향상될 가능성과 손상될 위험성이 공존한다. - P234

우리 시대의 모순은 디지털화로 인간이 이용하는 정보가 계속 늘어나지만 진중한 사색에 필요한 공간은 점점 줄어든다는 사실이다. 끊임없이 범람하는 콘텐츠 때문에 사유의 비용이 증가함에 따라 사유의 빈도는 감소한다. 자극을 원하는 인간의 욕구에 맞춰 알고리즘이 우리에게 추천하는 콘텐츠나 경험은 대체로 극적이고, 충격적이고, 감정적이다. 이런 환경에서 진지하게 생각할 공간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현재 지배적인 커뮤니케이션 방식도 진득한 사유에 그리 도움이 안 된다. - P235

특히 AGI가 신과 같은 지능으로 세계를 이해하고 그 구조와 안에 내포된 가능성을 직감하는 초인적 존재로 여겨질 수 있다. ... AI 시대의 특성을 잘 반영하고 시대의 지침이 될 윤리체계를 확립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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