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규모의 의학 - 루돌프 비르효, 자유주의, 공중보건학
이안 F. 맥니리 지음, 신영전 외 옮김 / 건강미디어협동조합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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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의료 대란이다. 누구는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현장에서 겪어본 사람은 안다. 지금 우리나라 의료는 제대로 돌아가고 있지 않음을. 그것도 생명이 경각에 달린 사람들, 소위 골든타임이라고 하는 시간을 지키기 힘들다는 사실을.


응급실 뺑뺑이! 이런 말이 통용되는 현실이라니. 이렇게 환자를 거부하는 의료진들이 있다니... 거부가 아니라 할 수 없으니, 살리기 위해서는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과연 그들이 지금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 살펴보면 답답한 마음만 든다.


공공의료라는 말은 말로만 존재하나 보다. 의료가 이익과 결부되었을 때 의료의 공공성은 사라진다. 공공의료보다는 민간의료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자신들의 이익이 침해받는다고 단체 행동을 할 때 그들을 제어할 수 있는 수단이 하나도 없다. 오로지 그들의 선의에 맡겨야만 한다.


상대의 선의에 맡겨서는 안 된다고 누가 말했던가. 말만 번지르하게 하고 정작 필요한 분야에 대해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그야말로 부작위의 잘못을 범하고 있다고 보는데...


이때 독일에서 공공의료(사회의료?)에 대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했던 비르효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했다는 이 말.


"의학은 하나의 사회과학이며, 정치는 거대한 규모의 의학과 다르지 않다." (17쪽)


정치가와 의사는, 동일한 사람도, 같은 분야도 아니지만, 적어도 사회적 상처에 대한 정치적 처방을 위해 협력해야 할 책임이 있었다. (18쪽)


이 말을 빌리면 의사들을 비난하기 전에 정치가들을 비난해야 한다. 정치가들의 잘못을 지적해야 한다. 그들은 의료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국민들을 의료 대란 속으로 밀어넣었다. 한마디로 사회적 상처에 대한 정치적 처방을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정치적 처방을 아예 하지 못하고 있다고 봐도 된다.


그러니 그들이 '거대한 규모의 의학'은커녕 작은 의료 행위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 의사들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의사들이 사회적 책임을 지고 일할 수 있는 제도와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정치의 책임이니, 우선 책임을 정치에 물어야 한다.


계속 비르효의 말을 보자.


의료개혁 운동은 언제나 사상과 이상주의의 하나였으며, 단순히 특수 이익을 위한 정치는 아니었다. (61쪽)


의료개혁은 사상과 이상주의의 하나라는 말. 우리 사회의 의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판단에서 의료 개혁을 시도했으나, 개혁이라는 말이 의대 정원 증원이라는 문제로 국한되어 버린 지금. 아니다. 의사 수가 늘든 줄든 의사들은 우선 사람을 중심에 놓고, 그것도 치료를 받기 힘든 사람을 우선으로 자신들의 행위를 결정해야 한다.


그래서 비르효는 '의사들은 빈자들의 천부적 옹호자이며 사회 문제는 상당 부분 그들의 관할권 내에 있다.' (64쪽)고 하고 있으며,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의학적 개입이 진정한 사회의학의 가장 확실하고도 구체적인 적용이며, 따라서 의료정치의 버팀대라고 강조했다. 그는 자선 의료 분야의 부적절한 제도로 인해, 전염병과 일반적인 가난이 증가했다고 하면서, 의료는 가난한 사람들을 '그들의 비정상적 상황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제공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69쪽.)고 한다.


이러면서 비르효는 의사들에 대한 처우가 개선되어야 한다고 한다. 당시 의사들의 수입은 다른 직종에 비해 많이 낮았다고 하는데, 처우를 개선하면서 그들에게 책임을 지게 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상했다.


그렇다면 이미 의사들의 처우가 최상층에 해당하는 우리 사회는 어떤가? 그들의 임금은 최고라고 할 수 있지만 근무 환경은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의사들은 환자들을 더 잘 돌보기 위해서 자신들의 근무 환경을 좋게 바꾸어 달라고 주장해야 한다. 장시간 근무시간이라면 의사 수를 증원해서 교대 근무를 해야 하고, 시설이 열악하다면 시설 개선을 요구해야 한다. 단지 의사 수 증원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나라 의료의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공공의료가 차지하고 있는 부분이 너무도 적은 지금, 공공의료를 확충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당시 비르효는 상수도, 하수도 시설에 대해서 이런 주장도 했다. 즉 공공시설은 민간에 넘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비르효는 시 상수도 시설에 대한 그들의 서투른 관리와 재정을 민간 기업에 넘기려는 열망을 지적하면서, 이 새로운 운하와 연결하도록 하는 권한은 반드시 지역사회 자체에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115쪽.)


여기서 의료는 '공공'에 해당하는가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의료가 공공에 해당한다면 민간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지자체가 담당해야 한다. 민간의료보다는 공공의료를 더욱 확충해야 한다.


공공의료 시설을 개선하고, 근무 여건을 좋게 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이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응급실 뺑뺑이라는 말이 사라질 수 있다. 응급 처치를 할 수 있는 시설, 의사들도 확보해야 한다. 그들의 희생에, 선의에 기대지 말고, 그렇게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의료의 공공성이고, 의사뿐만 아니라 환자들도 함께 좋아질 수 있는 길이다. 이러한 논의를 해야 할 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비르효에 관한 이 책을 읽으면서. 물론 지금은 그의 생각이나 또 이 책을 쓴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기 힘든 부분도 있지만, 적어도 의료는 정치라는, 정치 역시 의료라는 말은 아직도 유효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치가 '거대한 규모의 의학'이라면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는 정치가 정신차리게 해야 한다. 예전에 미국에서 나온 말을 비틀자.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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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9-27 16: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정치!
돈!

kinye91 2024-09-28 15:48   좋아요 2 | URL
정말 정치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돈! 이것은 경제가 아니라 정치로 풀어야 할 때가 더 많은 것 같아요.
 
우리가 알아야 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모든 것
도브 왁스만 지음, 장정문 옮김 / 소우주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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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곧 다가올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AI에 전쟁을 맡기는 시대는 아니겠지만, 그와 비슷한 드론이나 미사일을 이용한 공격은 비일비재하다. 그렇지만 우리가 왜 AI시대를 추구하는가?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아닌가? 서로가 협력하면서 더 큰 꿈을 향해 함께 나아가고자, 이 지구, 태양계를 벗어나 광활한 우주로 나아가고자 AI를 개발하고 그런 시대를 앞당기려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지구라는 좁은 행성에서 한정된 자원을 나눠먹기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도 우주로 보면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한데, 지구에서도 중동의 끄트머리에 있는 작은 나라 이스라엘에서는 여전히 분쟁(전쟁이라고 할 수도 없다. 무력에서 크게 차이가 나 일방적인 공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이 일어나고 있다.


세상에 AI시대에 소아마비 백신을 접종하지 못해 소아마비에 걸리는 아이들이 생기게 된다는 가자지구. 그런 의약품조차 반입이 되지 않도록 막고 있는 이스라엘 정권.


오랜 갈등이다. 인간의 역사로 보면 얼마 되지 않은 근대에 들어와서 발생한 갈등이지만, 여전히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힘의 균형이 맞춰지지 않아 한쪽이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는 현실은 여전하다. (물론 팔레스타인의 테러로 이스라엘도 피해를 입긴 하지만, 그 규모는 비교할 필요가 없다. 인명 피해에 대해서 규모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지만)


이런 분쟁이 어떻게 발생했고, 어떤 과정을 거쳤으며,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살펴본 것이 바로 이 책이다. 


간략간략하게 제목을 달고 그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저자의 의견을 정리하고 있다. 가령 결론을 보면 이렇다. '두 국가 해법, 가능한가?'라고 제목을 달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팔레스타인은 지금의 이스라엘을 유대국가로 인정하고,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그리고 동예루살렘 지역에 팔레스타인 국가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많이 논의되어 왔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왜냐하면 팔레스타인도 통일이 되어 있지 않으며, 늘 안보를 우선시하는 이스라엘이 적대국이 될지도 모르는 국가를 바로 곁에 두고 싶어하지는 않을 거라는 것.


그렇다면 '한 국가 해법은 가능한가?'라고 다음 대안을 검토한다. 지금까지의 갈등, 그리고 종족과 종교가 다른 집단이 한 국가에서 공존할 수 있을까? 서로를 존중하고 민주적 사회가 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또 복잡한 절차를 거칠 필요도 없다. 그냥 같은 국민으로 동등한 권리를 지니고 있으면 되니까. 


하지만 그렇게 되었을 경우 주변에서 너무도 쉽게 발생할 수 있는 테러는? 이런 생각으로 불안감을 떨쳐버리지 못한다면 이런 해법은 불가능하다. 양쪽 모두에게 불가능한 해법일 수 있다.


둘 다 안 되면 '두 가지 해결책이 모두 불가능하다면, 어떻게 해야 갈등을 해결하거나 줄일 수 있을까?'라고 질문하고 답을 찾으려 한다. 연방제를 도입하면 어떨까 한다. 이것도 서로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불가능하겠지만...


이렇게 해서 결론은 좀 암담하다. 저자 역시 '안타깝게도 분쟁과 점령, 폭력은 계속될 것 같고, 평화는 먼 미래의 일처럼 보일 뿐이다'(380쪽)고 한다.


맞다. 지금도 이스라엘에서는 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민간인들이 죽어가고 있다. 주로 가자지구에 있는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이 죽어가고 있지만... 이번엔 레바논에 있는 헤즈볼라와의 분쟁도 점점 심화되고 있다. 이 책은 왜 헤즈볼라와도 갈등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이들의 분쟁 역사. 이 책은 간략하고 명료하게 잘 살피고 있다. 어느 쪽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객관적으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우리에게 알리려고 하고 있다.


왜 아직도 이들은 이렇게 분쟁 중일까를 궁금해 한다면 이 책을 읽으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대치 중인 우리나라의 경우에 어떻게 해야할지, 갈등, 분쟁이 얼마나 소모적이고 국민들을 힘겹게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저자가 책의 뒷부분에서 한 말, 우리에게도 적용이 되는 말이다. 명심하자.


어떤 해법이든 양측 모두 수용할 수 있고 실제로 평화가 이루어지려면 대중의 태도와 인식이 변해야 하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긍정적인 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374쪽)


이스라엘 국민의 약 21%는 아랍인이다.(총 180만 명) - 생각하지 않았던 인구 분포! - P36

오늘날에도 이스라엘의 유대인과 아랍인은 다른 지역에 거주하고, 다른 학교에 다니며, 서로 거의 교류하지 않는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유대인과 아랍인 사이의 분열은 이스라엘 내에서 가장 골이 깊은 사회적 분열이다. - P38

이스라엘에서는 유대인이 비유대인과 법적으로 결혼할 수 없다. - P41

팔레스타인은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로 구성된 아랍 공동체 아에 있는 별개의 민족이다. - P50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이 땅, 또는 적어도 이 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민족적 열망을 실현하고 나아가 민족의 생존을 보장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믿는다. - P53

팔레스타인의 자유에 대한 욕구와 이스라엘의 안보에 대한 욕구를 조화시키는 것이 이 장기적인 분쟁을 해결하는 열쇠일 것이다. - P55

이스라엘 자체가 경상북도보다 약간 큰 정도의 작은 나라라면, 서안지구는 경기도의 절반 크기이고 가자지구는 강화도와 거의 같은 크기다. 따라서 이 땅조차 모두 가지려는 이스라엘의 욕심에서 비롯된 영토 요구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들이 보기에는 서안지구에 건설되는 이스라엘 정착촌이 가뜩이나 빈약한 영토를 계속 잠식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 P64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대부부느이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은 유전자가 상당 부분 겹치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는 두 민족이 유전적으로 서로 관련이 있음을 시사한다. ... 침략과 점령, 정착과 이주의 오랜 역사와 그에 수반된 인구 혼합을 고려할 때 누가 진짜 원주민이고 이 따이 누구의 소유인지 말하기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양측 모두 이 땅에 대한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는 점이다. - P68

1882년부터 시작된 유대인 이민자들의 팔레스타인 유입이 바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씨앗이 되었다. ... 1946년이 되자 이 지역에 거주하는 유대인은 전체 인구의 30%를 차지했다. - P75

시온주의는 19세기 유럽에서 당시 유럽 유대인이 직면한 두 가지 문제, 즉 반유대주의와 동화에 대한 대응으로 등장했다. 전자는 유대인의 물리적 생존을 위협했고, 후자는 문화적 생존을 위협했다. ... 시온주의의 부상은 반유대주의, 민족주의, 세속주의라는 세 가지 주요 사상이 합쳐진 결과다. 그중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반유대주의였다. - P86

아랍인의 눈에 유대인 정착민은 역사에 기록된 수많은 외부 침략자 중 가장 최근에 등장한 존재이자, 19세기와 20세기 초에 걸쳐 중동에서 벌어진 유럽 제국주의의 일부일 뿐이었다. - P97

홀로코스트는 이스라엘 유대인에게 일종의 집단적 트라우마로 작용했고, 이는 이스라엘의 위협에 대한 인식, 외교 및 안보 정책, 심지어 이스라엘 방위군의 행동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 결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홀로코스트가 있기 훨씬 전에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홀로코스트의 영향을 크게 받았고, 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 P119

아랍 국가는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고자 연합을 이루었으나 비조직적으로 행동했다. - P132

전쟁이 끝나자 이 분쟁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와, 국가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운 상태에서 여기저기 흩어진 무국적 민족과의 갈등이 되었다. - P137

팔레스타인인 추방에 대한 정치적 지지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공식적인 종족 청소 정책은 아니었다는 의미다. - P143

1948년 6월부터 이스라엘 정부는 난민 귀환을 공식적으로 금지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돌아오는 것을 막기 위해 버려진 마을 수백 곳을 완전히 파괴하고 그들의 집과 땅을 빼앗았다. - P144

1967년 전쟁이 끝나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 더욱 악화된 데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팔레스타인의 테러와 이스라엘의 팽창주의도 그 중 하나다. - P163

이스라엘의 영토 점령(동예루살렘과 서안지구, 가자지구)과 정착촌 확장은 1967년 이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주요 쟁점이 되었다. - P165

오슬로 평화 프로세스가 붕괴된 이유는 극단주의자들의 폭력과 대중의 불신, 그리고 정치권의 관리 부실과 악행이 모두 작용한 탓이었다. - P230

포괄적인 평화 협정에 도달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이 되는 네 가지 주요 이슈는...

(1) 분쟁 도시인 예루살렘의 미래 (2) 팔레스타인 난민의 운명 (3) 미래 팔레스타인 국가의 국경 (4)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국가 간의 안보 협정 ... 그리고 물 공유... - P231

2013년 유엔 인권이사회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정착촌의 존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권리에 큰 타격을 입혔다.

자결의 자유, 차별 금지, 이동의 자유, 평등, 정당한 법적 절차, 공정한 재판, 자의적 구금 금지, 신체의 자유와 안전, 표현의 자유, 예배 장소에 대한 접근권, 교육, 물, 주거, 적절한 생활 수준, 재산권, 천연자원 접근 및 문제 사항 개선에 대한 이들의 권리는 지속적으로, 그리고 일상적으로 참해당하고 있다. - P301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을 유대 국가로 인정하거나, 이스라엘이 나크바 및 팔레스타인 난민의 고통을 인정하고 이에 대한 보상을 제공한다면 평화 협정을 지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지도자들이 어떻게든 평화 협정을 체결한다면 대중이 이를 지지할 가능성은 높다 하겠다. 그러나 양측 모두 영토 타협과 관련된 모든 합의를 절대적으로 거부하는 소수(약 3분의 1)가 있다. - P356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이미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는 팔레스타인을 위한 또 하나의 국가를 만들어 기존의 ‘한 국가 현실‘을 바꾸려 하는 대신, 사실상 이스라엘의 통치하에 살고 있는 모든 팔레스타인인(특히 서안지구, 동예루살렘, 가자지구 거주자)에게 이스라엘 국민과 동일한 권리(특히 이스라엘 총선 투표권)를 부여하는 것이 훨씬 더 간단하다는 생각에 근거한다. 이스라엘 주권하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시민권, 동등한 권리, 민주적 대표성을 부여하면 평화적으로 한 국가 해법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 시나리오에서는 평화협정도 필요하지 않다. - P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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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즈만이 희망이다 - 디스토피아 시대, 우리에게 던지는 어떤 위로
신영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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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즈만이 희망이다. 왜 퓨즈인가? 전기에 과부하가 걸리면 끊어져 전기가 통하지 않게 하는 장치가 퓨즈다. 즉 무엇인가 힘든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당하는 존재, 그래서 위험을 알려주는 존재가 퓨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퓨즈에 해당하는 존재들은 누구인가? 사회적 약자들이다. 감염병이 돌아도, 자연 재해가 나도 가장 먼저, 또 가장 심각하게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사회적 약자들이다. 이렇게 사회적 약자들이 힘든 지경에 처하면 그 사회 역시 위험하게 된다.


그러니 퓨즈에 해당하는 사회적 약자들이 끊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 그래야 전기가 계속 통할 것 아닌가? 사회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약자들에 대한 관심, 배려, 정책이 있어야 한다. 


그런 퓨즈들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퓨즈, 사회적 약자라는 말이 거슬린다면 이웃이라고 하자. 사람은 홀로 살기 힘드니, 이웃과 함께 살아야 한다. 그리고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이 있으니, 이웃 사랑은 곧 자신에 대한 사랑이다. 이렇게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랑을 실천한다면 퓨즈가 끊길 일이 없을 것이다.


퓨즈가 끊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책은 사회비평 에세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주로 의료 분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저자가 예방의학자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회-경제-환경적으로 힘들어지면 사회적 약자들의 건강에 문제가 먼저 생기기 때문이다.


어떤 의료가 필요한가? 지금 의대 정원 증원을 가지고 의사가 되겠다는 의대생들은 휴학을 하고 있기도 하고, 전공의들은 사직서를 내고 나간 상황이고, 교수들 역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고 있는 상황. 응급실에 가지 못하고 소위 뺑뺑이를 돌다가 치료를 제 때 받지 못해 사망에 이르는 경우까지 있는 지금, 이런 위급 상황에서 누가 먼저, 심각하게 피해를 보는가?


말할 것도 없이 사회적 약자들이다. 그들의 퓨즈가 먼저 끊어진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공공의료다. 공공의료를 살리기 위한 정책이 나와야 한다. 의료 민영화가 아니라(민영화라는 말보다는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사유화라고 하는 편이 좋겠다) 공공의료기관을 확충해야 한다.


이 책에 나와 있는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공공의료 기관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다. 코로나-19 때 공공의료기관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으면서 여전히 공공의료기관을 확충하지 못했다.


또한 건강보험으로 모든 치료를 받을 수가 없다. 자기 부담이 상당한 경우도 있고, 그래서 전국민이 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고, 그 때문에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기도 하지만, 아직은 부족하다고 한다. 


한 해 치료비를 100만 원으로 한정하자는 공약도 나왔었다고 하는데, 지켜지지 않은 상황. 저자는 그런 상황을 답답해 하고 있다. 공공의료기관을 확충해도 모자랄 판국에 의료 민영화를 하고, 민간의료보험이 확대되도록 하는 정책을 펴는 것에 대해 쓴소리를 하고 있다.


조금 오래된 내용도 있지만, 그 내용들이 현재도 진행 중이니 그의 말을 그냥 넘겨서는 안 된다. 특히 지금처럼 의료 대란을 겪고 있을 때, 의료개혁에 대해 근본에서부터 다시 접근해야 한다.


공공의료기관의 확충, 건강보험으로 치료받을 수 있게, 무상의료까지는 아니더라도 의료비가 없어 치료를 못 받는 사람이 나오게 해서는 안 된다.


다른 매체에 기고했던 글들이라 대체로 짧다. 그렇지만 공공의료에 관한 생각은 결코 짧지 않다. 아직도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긴 시간 계속 제자리 걸음을 하거나 뒤로 간 의료 정책들을 비판하고, 우리가 이웃들과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의료 개혁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저자의 마음이 강하게 느껴지는 책이다.


그래, 저자의 말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퓨즈만이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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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으로 간 성폭력
김보화 지음 / 휴머니스트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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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하게도 이 책을 읽으면서 '문해력'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내용을 이해하는 능력이라고 해야 하나? 어쩌면 이 책은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문해력 부족을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도 문해력이 꼭 필요한 상황에서.


문해력을 떠올리면서 동시에 '듣기'를 떠올렸다. 듣기가 문해력과 연결이 된다는 사실. 잘 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요즘 처절하게 깨닫고 있는 중인데, 듣기를 못하면 제 말만 한다. 제 말만 한다는 것은 제 이익만 챙긴다는 말이다.


왜 성폭력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문해력과 듣기를 떠올렸을까? 우리는 과연 성폭력 피해자들의 말에 얼마나 귀를 기울이고, 또 그들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나 생각해 보면, 내 관점에서 그들의 말을 듣고, 그들의 말을 판단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러는 것도 문제가 되는데, 중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잘못 들으면, 문해력과 듣기 능력이 떨어지면 어떻게 되나? 그러면 엉뚱한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성폭력 사건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이라고 한다. 성폭력으로 고소를 당하면 가해자는 명예훼손죄나 무고죄로 역고소를 한다고 한다. 그러면 재판과정에서 성폭력은 묻히고 다른 쟁점들이 떠오르고, 피해자의 태도 등을 문제삼기도 하고, 권력과 자본이 부족한 피해자에게 이중 부담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러한 이중부담으로 소송을 하기 힘든 피해자들이 발생하면 그들은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가해자들이 (억울하게 죄를 덮어쓰는 사람은 없어야 하겠지만) 자신의 죄를 벗어나거나 경감하기 위해서 돈을 들여 변호사를 사고, 각종 고소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 이것이 시장으로 간 성폭력이다.


이 책에 나와 있는 시장으로 간 성폭력에 관한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최근 성폭력 역고소는 과거에 비해 더 많은 법을 활용하면서 더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피해자뿐 아니라 피해자를 지원하거나 지지하는 가족, 주변인에게까지 확장되고 있다. 37


명예훼손은 이제 약간 산업이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피해자의 말) 43


성폭력 역고소가 강화되는 이유 중 하나는 성폭력 피해를 더는 참지 않고 법의 안팎에서 고소나 공론화 등으로 실천하는 피해자들의 문제제기가 많아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한 공적제도들은 실효성이 부족한 반면, 역고소와 관련된 법의 구성은 이미 가해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었다. 45


성폭력상담소를 찾는 피해자들은 가해자보다 자원이 적거나 법적으로 유리하지 않은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경우가 많다. 67

가해자의 방어와 피해자의 권리는 불안감을 강조하는 성범죄 전담법인의 홍보와 고객유치의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성폭력의 법적 해결 과정은 자원의 경쟁으로 내몰리고 있다. 74


성폭력은 법적 해결 과정에서 현실과 괴리된 최협의설과 관행화된 감형, 수사과정에서 피해자를 신뢰하지 않는 통념, 무고에 대한 의심, 재판부에 따라 결과에 큰 차이가 나타나는 특징 등을 보인다. 75


민주적 정치의 공공 영역이 약화되는 맥락에서 사법적 수위는 점점 더 높아진다. 78


가해자들을 조력함으로써 금전적 이윤을 얻는 법인, 그러한 법인들을 조력하는 (전직) 경찰-검찰-판사 및 학자들, 심지어 심리상담소, 범죄심리학 전문가들이 운영하는 진술분석센터와의 연계, 이들의 전략을 승인하는 법원은 전문가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성촉력 가해자 지원산업을 확장하고 있다 137


성폭력은 경제적인 것으로 재구성되고 있다(138) ... 탈범죄화된 가해자 남성성을 만들어내고 있다(139) ... 재판부는 법시장화를 촉진하고 있다(139)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의심, 가해자를 중심으로 한 억울함의 서사, 미투운동에 대한 거부감 등이 확산된 것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140)


이런 내용들을 보면 성폭력 사건에 이윤을 추구하는 법인들이 개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법인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사회적 지위나 권력을 쥐고 있는 가해자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피해자는 이중으로 힘든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


또한 재판과정에서 피해자의 피해자성을 강조하는 경우도 있고, 또 가해자에게 여러 가지로 감형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그 점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한다.


피해자들은 스스로를 법적 주체로 인식하고 그에 걸맞은 언행을 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재판부는 피해 상황에서 피해자가 처할 수밖에 없었던 무력함과 법적 공간의 주체로서 피해자의 모습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 181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해자는 그에 합당한 처벌을, 피해자는 그것을 이겨내고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회에 그런 문화가 확립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듣기와 문해력 아닐까 한다.


이런 듣기와 문해력이 가장 필요한 사람들, 이 책에서는 그것을 성인지감수성이라고 하는데, 재판부가 아닐까 한다. 판사를 비롯한 경찰, 검찰들. 이들에게는 피해자의 말을 잘 들을 듣기 능력과 그들이 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문해력이 필요하다. 이것들의 바탕이 바로 성인지감수성이고.


마찬가지로 억울한 가해자가 나오지 않게 해야겠지만 법인도 이윤만을 위해서 활동을 하면 안 된다. 그들이 이윤을 위해서 일을 하는 순간, 성폭력은 시장으로 가게 된다. 그러니 억울한 사람을 위해서 일을 한다는 기본 원칙을 지키면서 활동을 했으면 한다.


더 많은 조치들이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를 확립해야 한다. 사람이 사람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는 사회, 그러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서 '이 책은 공감과 지지의 기록이고 앞으로의 연대와 투쟁의 결의문이다.'(355쪽)라고 하고 있다. 공감과 지지, 연대와 투쟁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듣기와 문해력' 아닐까 한다. 

성폭력의 법적 해결 과정은 피해자의 치유를 산업화하고 가해자의 보복성 역고소를 용인하면서 법인들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탈정치화되고 있음을 주의깊게 살펴봐야 한다. - P221

성폭력 사건의 ‘해결‘이란 가해자가 합당한 징계/처벌을 받고 반성/성찰하고, 피해자는 피해의 경험을 재구성하는 가운데 일상으로 회복하고, 그로 인해 공동체/사회의 인식과 문화, 때로는 구조적 틀과 내용이 피해자에게 공감할 수 있도록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 P223

성폭력은 페미니즘 이론과 실천에서 급진적이고 정치적인 분야 중 하나로서, ‘성적인 폭력을 둘러싸고 사람의 몸과 인격, 기억과 정체성, 감정과 합리성, 자율성과 관계성, 제도와 문화에 대한 총체적 접근 속에서구조화되는 개인적 경험이자 한 시대의 담론적 형성물이며, 집단적으로 이해되고 구성되는 정치적 구성물로 재정의하고자 한다. - P332

성폭력 정치란 성폭력을 탈정치화하는 담론적 질서에 저항하는 정치적인 페미니즘 투쟁으로서 성폭력 사건 해결의 공공성을 확장하기 위한 사회적 조건과 역동적 실천의 양식들로 개념화하고자 한다. - P333

실천적 제안

첫째, 변호사 시장의 무분별한 홍보와 고소 남용에 대한 변호사 업계 차원의 규제와 노력이 필요하다. 337
둘째, 성폭력 사건 해결의 법시장화에 저항하기 위한 제도의 도입을 고려해볼 수 있다. 339
셋째, 법조인들의 성인지감수성 훈련이 필요하다. 339
넷째, 성폭력 역고소 수사와 판단의 과정에서 ‘적극적 조치‘가 필요하다. 340
다섯째, 성폭력 피해자가 수사-재판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341
여섯째, 조직 및 공동체 내 성폭력 사건 해결을 공유된 책임으로 인식하면서 사건 해결 과정을 조직문화의 변화를 위한 과정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342
마지막으로, 여성운동에 대한 국가의 통치 질서에 강력한 저항이 필요하다. 343-344 - P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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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 2024년 여름호 - 통권 186호
녹색평론 편집부 지음 / 녹색평론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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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생태를 중심으로, 지구에서 인간이 지속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살피는 책이다. 


삶에서 꼭 지녀야 할 태도를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기도 한데, 생태위기라는 말은 많이 한다. 지금 기후만 봐도 그렇다. 인간이 예상할 수 있는 기후 변화가 아니라, 예측불능의 기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더욱 걱정이 되는데, 기후는 생태, 환경과 잘 연결이 되지만 의료는 생태, 환경과 잘 연결이 안 된다. 그러다 이번 호를 읽으면서 아, 의료도 바로 생태, 환경 문제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하긴 인간의 삶에서 생태, 환경과 관련 없는 분야가 어디 있겠는가. 정치나 경제도 생태,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니, 의료 또한 마찬가지다.


의사들이 진료거부를 하고 나서는 지금, 단순히 그들의 진료거부를 비난하기에 앞서 우리가 원하는 의료는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우리나라 의료 문제가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데, 이를 단순히 의사 수 부족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그렇다고 의사 수를 늘리는데 반대할 필요는 없다. 의사 수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의사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단순하게 수요와 공급 법칙을 생각하면 공급이 늘면 수요에 여유가 생겨 가격이 내려간다. 의사 수가 많으면 사람들이 진료를 더 쉽게 받을 수 있고, 의료비용도 줄어들 수 있다. 이건 참 단순한 발상이다. 오히려 의료 수가는 올라갈 수 있다. 자신들의 손익비용을 맞추기 위해 비급여 진료를 많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의사 수를 이대로 두자는 말은 아니다. 녹색평론에서도 언급하고 있듯이 우리나라 의사 수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 적다고 한다. 이건 객관적인 지표라고 하니 의사 수를 늘려야 하는 방향은 맞다)


그러니 지금의 의료 문제를 단지 의사 수로 국한시켜서는 안 된다. 공공의료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도 의사 수에 있지 않다.


공공의료가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의사가 사람들의 생활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야 한다. 병원이 거대한 성채처럼 사람들의 삶에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 의사가 있어야 한다. 굳이 병원이 아니어도 된다.


진료와 치료가 이루어질 수 있는 장소면 된다. 이런 장소가 있으면 치료가 중심이 아닌 예방이 중심이 된다. 즉 환경과 생태 파괴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질병들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이것이 의료가 생태, 환경과 연결이 되는 지점이다.


그러니 의료는 환경을 생각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의 삶에서 무엇이 필요하고, 어떻게 그들과 어울리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여기서 의료 개혁이 시작되어야 한다.


지금 지방은 의사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멀리 도시로 나가야 한다. 이것이 문제다. 또한 의료 활동이 주로 사적인 병원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공공의료 자체가 이미 부족하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의사 수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특정 과에 몰리는 현상, 공공의료 현장으로 가지 않는 현상 등등을 염두에 두고 의료개혁을 해야 하는데, 무엇보다도 의료 공백이 큰 지역부터 의료를 살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환경, 생태를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지역 의료를 살리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제시하는 글이 있다. 이런 활동이 이루어진다면 도시로 사람들이 몰리는 일을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고, 그렇다면 자연스레 생태,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양창모가 쓴 '농촌 돌봄의 기발한 대안 두 가지'다. 사실 기발하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아직 잘 실행이 되지 않아서지 충분히 실행 가능한 일이다. 이미 하고 있기도 하고.


하나는 '마을 진료소'를 설치하는 것이란다. 마을 진료소가 설치되면 시골 사람들이 멀리 도시까지 갈 필요가 없다. 또한 오랜 시간 방치될 일도 없다. 그런데 의료법에 문제가 있단다. 아니 의료법의 기타 사항을 잘 활용하면 될 텐데, 복지부동이라고 먼저 나서지 않으려 하는 것이 문제다.


의료법 제33조 1항에는 의료기관으로 허가되지 않은 공간, 예를 들면 마을회관 같은 곳에서는 진료행위를 하지 못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 예외 규정 3호에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공익상 필요하다고 인정하여 요청하는 경우'에는 의료기관을 개설하지 않고도 진료행위를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76쪽)


이 법조항을 살리면 마을회관에 진료소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이 공공의료가 아니고 무엇인가. 굳이 병원을 새로 짓지 않아도 된다. 있는 공간을 활용하면 되니. 그러면 환경파괴를 할 필요도 없다. 


병원이 먼 사람들에게는 가까운 곳에서 진료 받을 수 있어서 좋고, 또다른 건설로 환경을 침해하지 않아도 좋으니 일석이조인데... 참...


둘째는 '이웃복지사'란다. 그렇다. 바로 이웃들이 서로를 돕는 것이다. 이웃복지사는 함께 사는 이웃이다. 그러니 누구보다 이웃들의 사정을 잘 안다. 이들이 의사가 진료를 왔을 때 그간의 일을 이야기해주면 진료는 훨씬 수월하다. 


그런 점을 정부가 활용해야 한다. 그래야 의료개혁이라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마을 진료소를 개설하기 위해서는 공공의료 확충이 필요하다. 공공의료 확충에 필요한 의사 수도 증원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마을 사람들과 함께하겠다는 의사들이 많아져야 한다.


수익보다는 사람들의 건강을 먼저 생각하는 의사들. 그들이 많아지면 이윤보다는 환경, 생태를 먼저 생각하는 사회로 이미 진입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런 점에서도 환경, 생태와 의료는 연결이 된다.


물론 인간이 지금까지 겪어보지 않았던 많은 질병들이 환경, 생태 파괴로 인해서 발생하고 있기도 하지만, 그래서 치료보다는 예방 쪽에 중점을 두는 의료 활동이 더욱 필요하기도 하고.


의료 개혁에 관한 글들이 이번 호에는 많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뜻이기도 하겠다. 이번 호를 읽으면서 의료 개혁과 환경, 생태 문제에 대해서 함께 고민해야 함을 생각하게 됐으니, 녹색평론은 나에게 무척 의미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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