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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 러셀을 말하다 - 세계를 해석하는 것에 대하여, 세계를 변혁하는 것에 대하여
노엄 촘스키 지음, 장영준 옮김, 김한조 삽화 / 시대의창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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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란드 러셀. 

그는 내게 그냥 철학자이자 수학자일 뿐이었다. 

자유주의 사상가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반면에 촘스키는 아나키즘에 가까운 언어학자이자 사상가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이 둘이 서로 어울린다는 생각을 해 보지 않았는데... 

러셀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 우리에게도 러셀은 헬렌 켈러만큼이나 일면만 알려지고 있지는 않은지... 

헬렌 켈러가 사회적인 문제에 발언을 하고 참여를 한 사회개혁가의 모습을 더 많이 지녔다고 하면 사람들은 무슨? 이러고는 하는데... 러셀도 마찬가지다. 

그는 단순한 학자가 아니었다. 사회의 문제에 대해 자신의 모두를 걸고 참여하였던 지식인이었다. 그가 쓴 게으름에 대한 찬양 정도만 읽고 있던 나에게... 러셀은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빠지지 않았던 실천적 지식인, 그람시의 용어를 빌면 유기적 지식인이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그런 러셀을 촘스키가 말하고 있다. 어쩌면 촘스키가 따라고자 한 인물이 러셀이라고도 할 수 있으리라. 

촘스키는 언어학자로서도 유명하지만, 사회문제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그의 발언들은 검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도. 

이 책은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세계를 해석하는 것에 대하여란 제목으로 인간의 언어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어렵다. 그의 변형생성문법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있어야 아, 그렇구나 하게 되니 말이다. 그래서 이 부분은 생략해도 된다. 촘스키에게 중요한 문제는 세계의 해석이 아니라, 세계의 변혁이니 말이다. 

2부는 세계를 변혁하는 것에 대하여란 제목으로 러셀의 행위를 이야기하면서, 촘스키가 처해 있는 현실의 문제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 있다. 

검열로 인해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 말해지지 못하고 있는 사실들을 촘스키는 이야기함으로써 세계를 변혁하는 길로 한 걸음 나아간다. 이것이 어쩌면 1부와 통하는 지점일지도 모른다. 인문학적 정신으로 세계를 해석한다면 이는 반드시 실천적 행동으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40년 전에 나온 이 책이 아직도 시대성을 띠고 있는 이유는, 단지 어느 한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를 이야기하지 않고, 보편적인 판단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 때의 일들은 세계를 해석하고, 변혁하는데 아직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많기 때문이다. 바르게 해석하고 바르게 실천하는 일... 그 실천을 남에게 미루지 않는 모습. 

그것이 러셀의 모습이고, 촘스키의 모습이다. 

꼭 러셀이나 촘스키와 같은 저명인사일 필요는 없다. 이 책의 마지막에서도 언급되듯이 세상은 보통사람들의 힘으로 충분히 변혁될 수 있으니 말이다. 

우리가 뚜벅뚜벅 그 길을 걸어간다면. 

촘스키에 대해서 잘 모르면 책의 뒷부분에 있는 옮긴이의 해제를 읽으면 좋다. 절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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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시민교육 - 인간과 사회의 진보를 위한
심성보 지음 / 살림터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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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인권, 참여의 학습을 통한 민주적 시민 되기의 길잡이라는 말을 달고 있는 책. 

민주시민은 주어지는 그 무엇이 아니라, 어릴 적부터 훈련을 통하여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민주시민이 되어야 이 사회에서 자율적인 인간으로 지낼 수가 있다. 

하지만, 과연 우리의 현실은 민주시민을 양성하고 있는가? 말로만 민주시민 교육 민주시민 교육 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 현실은 민주시민 교육을 하기에는 아직도 많이 부족하고, 따라서 우리들 중 대부분은 선거 때가 되어야만 민주시민 의식 운운하는 말을 듣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사회를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민주시민 교육을 할 수 있는가? 

이 책에서는 많은 방법론이 제시되어 있다. 

각 장의 앞에서는 이론을 탐구하고, 그 다음에 현실을, 그리고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데, 각 장의 제목들만 보아도 민주시민 교육에 얼마나 많은 요소들이 필요한지 알 수가 있다. 

이들이 하나하나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시민이라는 큰 틀에 포함되어 부분집합으로 존재한다고 보아야 한다. 

인권교육, 평화교육, 도덕교육, 교양교육, 진정한 애국심에 대한 교육, 봉사학습 등등, 그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요소들이다. 

이들을 갖춘 민주시민을 양성한다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고 가능하다는 사실을 핀란드와 우리나라 간디학교의 예를 들어서 설명을 하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학교 교육을 통해서 민주시민을 양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 교육을 하기에 앞서 한 번 생각해 보자. 

과연 우리들은 학생들로 하여금 민주시민이 되게 하는 교육을 하고 있는가? 

우리는 학생들을 통제의 대상으로, 훈육의 대상으로만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학교에서 과연 학생들은 어떤 선택권을 지니며, 자신의 선택에 대해 어떤 책임을 지고 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부정적이다. 

자신이 배우고자 하는 과목부터 학교까지 선택할 수 있는 폭은 매우 좁으며, 또한 학생회는 유명무실해진 지 오래되었고, 교사와 동등한 자격으로 회의를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교사들도, 학생들에게 민주시민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교사들도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할 기회가 거의 없으며, 정치적인 발언권조차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을 타파하고 민주시민을 길러내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그렇다고 멀다고만 포기할 수도 없는 일. 

이 책은 그러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길을 보여준다. 

민주시민 교육의 길은 우리가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라, 가야만 하는 길이기 때문에... 차분히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일부터 고민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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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첨 민주주의 - 선거를 넘어 추첨으로 일구는 직접 정치
어니스트 칼렌바크 & 마이클 필립스 지음, 손우정.이지문 옮김 / 이매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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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민주주의. 직접 민주주의. 

지금은 너무도 거대한 사회가 되어서 직접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대의제 민주주의가 최선이라고 말들을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추첨으로 대표를 뽑을 수 있다고, 대통령도 추첨으로, 즉 제비뽑기로 뽑을 수 있다고, 아니 뽑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엄청난 선거비용과 상호비방과 그리고 여기에 따르는 국민적 낭비, 이것들을 한 번에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제비뽑기라는 주장이다. 

제비뽑기가 마치 어린아이들의 장난처럼 느껴진다면 추첨이라고 바꾸자. 

한 때 대안학교에서도 학생들이 탈락하는 아픔이 좌절로 가지 않도록 추첨으로 신입생을 뽑기도 했다고 하지 않나. 

대통령을 제비뽑기로 뽑으면 장난 같은가? 이것이 장난이 아님을 여러 학자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최소한 1차 투표를 하되, 어느 정도 지지율을 얻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제비뽑기를 하자고. 그렇다면 그 이후에 들어가는 엄청난 비용들이 절감이 될 것이고, 여기에 로비들이 일어날 가능성이 현저히 줄게 되리라고...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요원한 일. 

대통령이나 시장 등을 제비뽑기로 뽑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지만(이 책과는 반대로) 국회의원을 추첨으로 뽑겠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이는 너무도 먼 생각이었고, 다른 사람들이 망상이라고 할만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정말로 국회의원들이 우리 국민들을 대변하고 있는가? 이들의 결정이 국민의 의사와 일치하는가? 이들은 참여율이 높고, 책임감있게 입법활동을 하고 있는가? 

여기에 우리는 그렇다고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쉽게 하지 못한다. 국회 본회의에 거의 참석 안한 국회의원들부터, 국민적 관심사보다는 자신의 지역구를 더 챙기는 국회의원들, 그리고 연이어 터지는 비리들... 이런데서 자유롭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국회 아니던가? 

하여 이 책은 국회를 추첨으로 뽑자고 한다. 

국민들을 각 집단으로 나누어 그 집단에서 무작위로 추첨하여 뽑고, 이들이 국회에서, 또는 지방의회에서 입법활동을 하게 하자는 주장이다. 

뭐야? 무슨 헛소리야 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이 책에서는 이것이 현실성이 있는 이유를 여론조사에 비견하여 설명하고 있다. 여론조사는 겨우 몇 천 명으로 이루어지지만 그 정확도는 오차가 2%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렇담 이렇게 다양한 계층이 모여서 입법활동을 하면 국민적 의사에서 벗어날 확률이 지금처럼 선거로 뽑힌 국회에서 하는 활동보다 더 적다는 얘기가 된다.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이런 추첨민주주의의 장점은 또 모든 사람들의 책임있는 정치의식을 활성화할 수 있다는데 있다. 누구나 의원이 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자신이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 또한 국회에 정치 대학 비슷한 교육기관을 만들어 뽑힌 사람들을 일정기간 교육을 한다면 지금의 선거제도보다 훨씬 더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국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주장은, 말 그대로 따라가면 타당성이 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실현가능성이 있느냐를 따져야 한다. 물론 보통선거도 처음에는 꿈같은 소리였고, 이게 과연 가능한가 했다지만, 지금 보편적으로 확립이 되었듯이 추첨민주주의도 지금은 꿈같지만 앞으로는 우리의 현실이 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아니 현실이 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1980년대에 나왔다는 책을 다시 번역했다는데, 아직도 우리에게는 요원한 일이니... 

이 책의 본문도 좋지만, 보론이 더 읽을 만하다.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과연 가능한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중심으로 논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추첨민주주의가 처음에는 기발한 생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기존 선거를 통한 민주주의의 단점을 알아가고 고치려고 한다면 추첨민주주의는 우리가 실현해야 할 목표가 되고, 또 우리가 누리는 현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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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라, 우리가 이곳에 있음을 - 칠레, 또 다른 9.11
살바도르 아옌데.파블로 네루다 외 지음, 정인환 옮김 / 서해문집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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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먹먹한 책이다.  

미국에서 일어난 9.11 사태 10주년이라고, 또 다른 9.11이 예고되었다고 세계가 호들갑을 떤 지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 

"기억하라, 우리가 이곳에 있음을"이라는 책이 나왔다. 이런, 칠레에서 아옌데 정권이 피노체트의 군부 구테타로 붕괴된 날짜도 9.11이었다니.. 

9.11 또다른 사건은 없을까? 고종석이 엮은 히스토리아란 책에서는 9월 11일을 어떤 사건으로 기억하고 있을까 하고 찾아보았더니, 이런 이 책에서 9월 11일은 칠레에서 아옌데 정권이 무너진 날을 기억할 만한 사건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이 몇 년도에 나왔더라 2003년인데... 미국의 9.11이 2001년에 일어났는데, 이 책의 저자는 그 때까지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건으로 칠레의 9.11쿠테타를, 그리고 그 중심에 서 있었던 아옌데라는 사람을 꼽고 있었다. 

그런데 미국의 9.11을 기억하는 현대인들에게 칠레의 9.11은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 버린 과거의 사건일 뿐이다. 아니, 과거의 사건이어야 한다. 과거의 사건이게 한다. 선거로 정권을 잡은 아옌데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자칭 민주주의 국가라는 미국이 어떤 일을 했는지 드러내기가 싫기 때문이다.  

미국의 9.11은 적을 선명히 규명하며, 미국의 가치를 수호하고, 미국을 정당화하기 위한 계기가 될 수는 있어도, 그래서 자꾸 9.11을 기억하게 해야 미국의 가치에 반하는 집단을 악의 축으로, 테러집단으로 규정할 수 있을테지만, 칠레의 9.11은 기억할수록 미국의 치부를 드러내기 때문에 기억하지 않게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 책의 영어 제목이 칠레, 또다른 9.11이듯이 우리가 기억 속으로 불러내야 할 9.11은 칠레의 9.11이다. 

미국의 9.11은 우리가 불러내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불러내지고 있으며, 또 계속 불러낼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미국의 가치를 선전하는 매개체로 작동할 테지만, 칠레의 9.11은 우리의 5.18과 같이 자꾸 기억의 저편 속으로 밀어넣으려 할 가능성이 많다. 이를 드러내면 배후의 일들을 파헤쳐야 하는데, 이 배후가 파악되면 될수록 우리가 알고 있는 '자유', '민주'란 개념이 우리와는 다르게 사용되고 있었음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자유. 민주'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자유와 민주'가 파괴되었는지, 억압되었는지 우리가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압력, 일명 저강도 전쟁이라는 그러한 압력으로 민주적으로 구성된 정부가 지속되지 못하는 상황, 지속하려고 하면 군부를 통한 쿠테타로 붕괴시키는 외부의 힘. 이런 것들이 칠레의 9.11을 기억 속으로 불러올수록 우리에게 선명히 드러나고, 그런 위험이 우리의 뇌리 속에 각인 될테니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미국의 9.11을 떠올리기 보다는(물론 이 둘은 미국의 비호를 받던 사람이 물리력을 이용해 반인권적인 행위를 했고, 많은 사람들에게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나라의 5.18이 생각났다. 

압도적인 물리력의 차이를 자신들의 신념으로 끝까지 버텨냈던 사람들. 그 사람들로 인해 사회가 조금씩이라도 진보했음을. 

마지막날 아옌데의 마지막 연설 마지막 부분. 

인민 여러분, 스스로를 보호해야 합니다. 하지만 절대 희생되지는 말아주십시오. 저들에게 뿌리째 뽑혀선 안 됩니다. 대신 저들의 모욕을 참지도 말아주십시오. ... 머지않은 장래에 자유로운 인간이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당당히나아갈 드넓은 거리가 열리게 될 것임을 ... 저는 제 죽음이 헛되지 않을 것임을 확신합니다. 최소한 제 죽음이 범죄자와 비겁자, 반역자는 처벌받아야 한다는 도덕적 교휸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40-41쪽) 

마치 1980년 5월의 외침인듯이 들리는 이 목소리... 

우리는 얼마나 5.18의 빚을 갚았나 생각해 봐야 한다. 그래서 이 책은 미국의 9.11과 겹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5.18과 자꾸 겹친다.  과거 먼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바로 얼마 전에 우리에게 일어났던 일로 생생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우리가 '자유, 민주' 이 말을 이 말의 쓰임에 맞게 사용하는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한다. 

9.11과 관계 있던 사람들의 직접적인 증언이 있는 이 책... 우리가 이런 일들을 기억할수록 이런 일들은 반복되지 않는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고 했지만, 반복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지 않게 하는 사람들의 노력이 반복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기억하자, 그들이 그 곳에 있었음을.  

또 기억하자. 그들만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이들이 있었음을. 

우리는 이들에게 빚지고 있음을. 

그래서 우리는 이들에게 갚을 빚을 '자유, 민주'의 이름이 제대로 쓰이는 사회를 만들어 갚아야 함을. 

우리에게 이 책의 다른 이름은 칠레, 또다른 5.18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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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충좌돌 - 중도의 재발견
김진석 지음 / 개마고원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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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적 포퓰리즘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수구적 발상이다, 현실성이 없다, 이상적이다, 너무 현실에 안주하고 있다 등등. 말들이 난무하는 시대. 

아니, 사상들이 난무하는 시대. 가히 백가쟁명의 시대라 할 만하다. 

여기에 좌파는 좌파대로, 우파는 우파대로 자신들의 선명성을 내세우며, 상대방을 벼랑으로 몰아가고 있다. 

좌파에 대한 규정도, 우파에 대한 규정도 제대로 하지 않은채, 상대방을 좌파다, 우파다, 다른 말로 하면 빨갱이다, 수구꼴통이다 하고 비난을 일삼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볼 일이다. 

이럴 때 이 책을 한 번 읽어보자. 

도대체 좌파는 우파는 어떻게 다른지, 우리가 지향해야 할 점은 어디에 있는지. 

제목이 특이하다. 우리말에 있는 좌충우돌을 뒤집었다. 우충좌돌이다. 말 그대로 오른쪽에 부딪치고, 다음에 왼쪽에 부딪친단 말이다. 

오른쪽에 먼저 부딪친다는 말은 작가가 왼쪽의 입장에 더 많이 서 있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된다. 즉 비판받을 사항은 우파 쪽에 더 많이 있다는 말인데, 우파에 대한 비판은 많이 있으니, 우파를 딛고 일어서야 하는 좌파 쪽에 쓴소리를 하겠다는 말이다. 

쓴소리를 무서워하면 발전이 없으니... 옛말에도 있지 않은가.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고, 내게 도움이 되는 말은 듣기에 괴롭다고. 

우리는 비판을 비난으로 치환하고, 감정에서부터 거부하는 태도를 지니고 있지 않았는지 반성부터 하고 본다. 

처음 시작이 좋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만 날지 않고, 몸통도 있어야 난다고.. 몸통이 있어야 중심이 잡힌다고. 

즉 잘 나는 새는 좌우 날개가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이 균형을 바로 몸통이 잡아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몸통. 사상적 경향으로 글쓴이는 중도를 이야기한다. 이 중도라는 개념은 명확하지 않다. 아니 고정되어 있지 않다. 중도는 때와 장소에 따라서 변화하는 개념이다. 그래서 중도라는 개념에는 생명력과 역동성, 불확정성이 있다. 

이 중도의 개념을 좀더 세분하면 중도우파, 중도, 중도좌파로 나눌 수 있다. 우파에 가깝게 가는 사람들을 중도우파라고 하면, 좌파 쪽에 더 가까이 있는 사람을 중도좌파라 할 수 있다. 이도 저도 아닌 자신의 입장을 지닌 사람을 중도라 하겠지만, 이 중도는 명확하지 않다. 

그렇다고 중도 좌,우파가 명확히 갈리냐면 그도 아니다. 이들 역시 생성, 변화하는 집단이다. 딱히 이거다라고 얘기할 수 있는 집단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실체가 있다. 즉 명확한 경계를 이야기 하기 힘들지만, 이들도 하나의 집단으로 실체를 형성하고 있으면, 나름대로 힘을 발휘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구름을 생각하면 구름은 분명히 하나의 실체로 존재하고 또 힘을 발휘한다. 하지만 가까이 가며 갈수록 구름의 경계를 확인할 수 없다. 내가 읽은 바로는 중도는 바로 이 정도로 이해하면 되는 집단이다. 

따라서 좌파나 우파는 선명성을 내세워서 자신들의 정체를 잘 드러내지만 중도는 이렇다할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내지 않지만 자신들의 힘을 발휘한다. 그게 바로 우리나라 선거에서 투표결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중도의 힘을 인식하고, 또 중도를 자신 쪽으로 끌어들일 수 있어야 좌파는 집권을 할 수 있다고 글쓴이는 주장한다. 사실, 중도의 지지를 받지 않는 좌파는 결코 집권을 할 수 없지 않겠는가?  

글쓴이는 좌파가 이러한 점을 인식하고, 현실에서 실현가능한 정책들을 제시하고, 운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면에서 좌파의 여러 정책들을 하나하나 분석하며, 이런 문제점들이 있다고 이야기해주고 있다. 좌파 쪽에서는 감정은 상할지 모르겠으나, 분명 비난이 아닌 비판에는 애정이 담겨 있기에 그 비판을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우파 역시 이 책이 좌파를 비판한다고 자신들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절대로 안된다. 이 책은 우파는 좌파보다 훨씬 더 문제가 많기에 더 얘기할 필요를 못 느끼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비판을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우파 쪽에서 오히려 이 책을 자신들이 참조해서 정책방향을 정하면 진정한 보수로 거듭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문제는 여러가지다. 지금 우리사회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사안들이기도 하다.  

등록금 인하 문제, 대졸자 대량 양산 사회 문제, 무상급식으로 사회 이슈가 된 복지 문제, 비정규직 문제, 부동산 문제, 신자유주의 문제, 그리고 경쟁에 관한 문제 

좌파와 우파가 명확히 갈리는 지점이기도 하고, 서로 선명성 경쟁을 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문제들은 말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구체적인 실천방안이 있어야 한다. 이런 문제들에서 실현가능성에 대해서는 서로 가능하다고만 하지, 구체적인 방안이 없다고 글쓴이는 말하고 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어가면 안된다는 얘기다. 좋은 게 좋은 게 되려면 좋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제시되어야 한다. 그 방법은 당연히 실천가능한, 지금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어야 하고 말이다. 

글쓴이는 이 책에서 좌파는 그러한 세부적인, 구체적인 정책들을 제시하는데 실패하고 있지 않나 하는 비판을 하고 있다. 한 번에 세상을 바꾸면 좋지만, 과연 가능하냐를 생각해야 하고, 가능하지 않다면 점진적으로 다수의 행복을 위해서 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글쓴이는 그 방법은 좌파만으로 되지 않고, 좌파와 중도, 중도좌파가 연합해서 만들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각 문제에 대한 자신의 실천방안도 이야기하고 있어 좋은 참고거리가 된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우파와 좌파의 주장이 모두 우리의 현실에서 멀어질 수도 있단 생각에 동의한다. 구체적인 방법, 그리고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중도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한다.  

다만, 중도를 끌어들일 때 좌파는 좌파의 이념을 잊으면 안된다. 좌파가 중도에 끌려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중도를 좌파 쪽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자신의 이념을 견지하되, 현실에 맞게 이념을 조정해야 한다. 

새는 좌우의 날개만이 아니라, 몸통으로도 난다고 할 수 있지만, 몸통이 너무 비대해지면 날지 못한다. 몸통에 있는 살들을 날개를 움직이는 근육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좌파가 좌파의 이념에 갇혀서는 안되지만, 또 좌파의 이념을 잃어서도 안된다. 참 어려운 일이다. 

그렇게 어렵기 때문에 여러 사상이 등장하고, 이 사상들이 서로 부딪치며 현실성을 획득해나가는 것이리라. 

자신의 틀에 갇히면 안된다. 현실에서 조금이라도 날고 싶다면 현실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알아야 한다. 그래야 날 수 있다. 글쓴이가 하는 말이 이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며 여러 생각이 났다. 글쓴이가 좋은 게 좋은 게 아니라고 주장하니, 읽기에 불편하다. 정말로 어떤 방법이 최선일까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점이 이 책의 미덕이기도 하리라. 

또 이 책을 쓴 글쓴이를 바둑이나 장기의 훈수꾼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바둑이나 장기는 자신이 둘 때는 수가 잘 안 보인다. 그러나 옆에서 보는 사람은 직접 두는 사람보다 수가 잘 보인다. 판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람이 바둑이나 장기를 두는 사람에게 수를 가르쳐주는 순간, 그는 훈수꾼 소리를 듣고, 곱지 않은 시선을 마주하게 된다. 

이 책이 좌파에게 이런 대접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 이런 기우도 참... 

오히려 이 책을 바둑이나 장기에서 해설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훈수꾼은 곱지 않은 시선을 맞닥뜨리지만, 해설자는 더 좋은 바둑, 장기를 위해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라는 대접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해설자의 해설을 잘 들으면 그 때보다는 더 좋은 수를 둘 수 있게 되니 말이다. 그렇다. 좌파는 이 책을 해설자의 말로 읽어야 한다. 물론 우파도 마찬가지다. 그래야만 발전이 있다. 그렇다고 해설자의 말이 모두 옳다고만 해서는 안된다. 해설자의 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되, 자신의 상황에 맞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발전이 있다. 

건강한 새는 글쓴이의 말처럼, 좌우의 날개, 그리고 몸통이 조화를 이룬다.  

우리가 명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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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05 17: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kinye91 2011-10-06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괜찮습니다.

우마왕 2011-10-07 10:18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책 읽기 정말 좋은 날씨네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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