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하늘 빨간지구 - 기후변화와 인류세, 지구시스템에 관한 통합적 논의
조천호 지음 / 동아시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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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는 천문학에 관한 책인가 했는데, 천문학이라기보다는 기후변화에 관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환경을 벗어나 살 수 없듯이 기후는 우리들 생존에 중요한 환경이다. 그런데 이 기후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의 신경에서 벗어나 있는 경우가 많다.

 

기후를 우리 삶에 가져올 때는 기껏해야 미세먼지가 나쁜 날이라든가, 지진이 발생했다든가, 또는 태풍이나 폭우, 강풍 등이 몰아쳤을 때, 또는 지나치게 덥거나 춥거나 할 때다.

 

나머지 때에는 기후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고 지낸다. 그냥 당연하다는 듯이, 늘 우리 삶을 지탱해주는 환경으로 지속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니 아니다. 이거 심각하다. 기후는 우리에게 영원히 지금처럼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홀로세(holocene)라고 하여 인류와 자연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기간이 지금까지 지구의 시간이었다면 얼마 전부터는 홀로세가 아니라 인류세가 되었다고 한다.

 

(홀로세는 인류가 자연과 조화로운 '완전한 시대'라는 뜻이다. - 33쪽)

 

인류의 세기다. 인류의 세기라고 하면 가치중립적인 말로 쓰이는 것 같으니, 인류 중심의, 인류만이 군림하는 세기라는 뜻으로 인류세라는 말을 쓴다고 한다.

 

다른 말로 하면 인류세는 다른 종들에게는 재앙이 되는 세기인 것이다. 다른 종들뿐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게도 재앙인 세기가 바로 인류세다. 그 대표적인 것이 기후변화고, 좀더 범위를 좁히면 지구온난화라고 할 수 있다.

 

지구의 온도가 계속 올라간다. 그러면 빙하가 녹고, 이산화탄소를 잡아두지 못하게 되니 또 온도가 올라가고, 해수면이 상승하고, 종잡을 수 없는 날씨가 반복되고 등등... 이 정도 이야기는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인간은 자연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지만, 그로 인한 자연의 반격을 통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인류세는 인류의 운명을 좌우하는 능력이 더는 인류에게 있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이며, 이는 현대의 종말을 뜻한다. - 57쪽)

 

반대로 지구온난화는 지구의 역사에서 늘 반복되던 일이었으니 호들갑 떨 필요없는 일이라고, 온난화가 되었다가 다시 떨어졌다가를 반복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인류의 과학기술로 충분히 극복가능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미국 대통령 트럼프처럼 기후협약에서 탈퇴를 하는 지도자도 있으니...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분명히 말한다. 기후변화, 즉 지구온난화는 기정사실이고, 과학적 사실이며, 이를 반박할 수는 없다고. 지구온난화의 주범은 바로 우리 인간들이며, 인간들이 사용하는 화석연료들이 만들어내는 이산화탄소가 자연이 만들어내는 이산화탄소의 양을 넘어선 지 오래라고.

 

(기후변화는 명백하다. 그러므로 "기후변화가 없어도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라고 질문하기보다는 우리가 기후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물어야 한다.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가 지구온난화를 일으켰고, 이는 최근의 극한 날씨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즉, 지구는 인간이 가하는 온실가스라는 충격을 받아 인간에게 극한 날씨로 되돌려준다. 비정상이라고 간주했던 극한 날씨는 이제 우연이 아니라 정상이 된 것이다. - 82쪽)

 

이것은 머지 않아 큰 재앙이 될 거라고 말한다. 그래서 현재의 생활 모습을 그대로 지닌다면 우리 미래세대들은 암담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말하고 있다. 여러 사례들을 들어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또 우리가 시급히 해야 할 일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올해 세계는 코로나19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코로나19 역시 기후변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생존 환경이 분리되었던 종들이 인류에 의해 생존 환경이 합쳐지게 되니, 그동안 따로따로 존재했던 바이러스들이 상호 침투하여 변이를 이루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코로나19가 우리가 몸소 겪는 날씨처럼 우리에게 다가와 우리들로 하여금 대처하게끔 했다면, 기후변화는 오랜 시간에 걸쳐 나타나기에 즉각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기후와 날씨는 시간 척도로 구분된다. 기후는 장기적 균형 상태이지만, 날씨는 그 균형에서 벗어나는 단기적 일탈을 뜻한다. - 60쪽

기후는 우리가 앞으로 무슨 옷을 살지 알려주고, 날씨는 우리가 지금 무슨 옷을 입을지 정해주는 것이다. -60쪽)

 

그래서 너무도 심각한데도 그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 왜냐하면 자신의 시대에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미래 세대들이 그 시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책임을 지게 되기 때문이다 - 지금의 생활방식을 고수하려고 한다고 한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총력대응을 하면서도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서는 무감각한 것. 이것이 기후변화를 바라보는 지금 우리의 모습이라고 한다. 그러다 문제가 생겼을 때는 지금 코로나19로 세계가 겪는 어려움보다도 더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하는데...

 

이 책을 읽고 기후변화, 지구온난화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는 저자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만 신경 쓰면 그런 점이 보이기 시작하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이제 행동이다.

 

문제는 바로 우리들의 생활을 어떻게 바꾸어나갈까 하는 것이다. 여기에 관심을 가지고 집단지성을 발휘해 대안을 마련해 가야 한다. 그래야만 인류세를 통해 지구를 망가뜨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인류와 다른 종들과 지구가 함께 조화를 이루는 홀로세를 구가할 수 있다.

 

코로나19를 겪은 시대, 이제 우리는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구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우리 미래세대들에게도 이 지구를 물려줄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 이 책은 그 점을 깨닫게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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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20-05-26 15: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작년부터 세계 여러 나라들은 더이상 ‘기후변화‘라 부르지 않고, ‘기후위기‘라고 부르고 있죠.
유래없는 폭염이 전세계를 뒤덮었던 2018년 여름,
인류가 관측한 이래 한번도 녹은 적이 없었던 북극의 영구동토층(최후의 빙하라 부르더라구요.)이 녹기 시작했다는 뉴스가 들렸어요.

저는 지금도 당시 그 소식을 전했던 북극 과학자의 격앙된 말투를 잊을 수 없어요.
그는 아래와 같이 말했어요.

˝인류가 예상하는 것보다 기후변화는 훨씬 더 빠르고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이 예측한 시나리오보다 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이는 인류가 여태까지 겪어보지 못한 상황이므로 도저히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조차 없다.˝
(그가 직접 했던 말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했던 인터뷰 전체를 요약한 말)

2020-05-27 14: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베트남 전쟁 - 잊혀진 전쟁, 반쪽의 기억
박태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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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 기억이 역사가 된다고 하는데, 기억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런 주관적인 기억들이 모여 역사가 된다면, 역사도 왜곡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에게 베트남 전쟁은 그러한 역사일지도 모른다.

 

저자가 제목 속에 '잊혀진 전쟁, 반쪽의 기억'이라는 말을 붙인 것이 이해가 된다. 우리는 베트남 전쟁을 잊어가고 있다. 아니,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들에게 한국군은 잊혀진 존재다. 언급이 잘 되지 않는, 실체는 있으나 그 실체를 지워나가고 있는 그런 존재.

 

무슨 일이 있었는가? 왜 우리나라는 베트남에 전투 부대를 파병했는가? 그 이유와 목적을 알고, 그것을 달성했는지를 파악해야 하는데, 그런 작업을 하는 학자들이 많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도 베트남 전쟁은 잊혀진 전쟁인 것이고, 자기 식으로 기억하는 반쪽의 기억인 것이다.

 

수많은 전투병들이 파병되어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 여기에 민간인 학살이라는 책임도 져야 한다. 그런데 정책을 결정한 사람들 말고 그 정책에 따라 직접 전투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우리는 어떻게 대했던가.

 

그들이 기억하려 하지 않는 일들을 끄집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이 국가 정책의 희생자임을 인식하고 정당한 보상을 해주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반쪽의 기억으로만 머물지 않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베트남 전쟁 하면 공산군의 위협에 맞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월남을 지키려는 전쟁이었다고 단순히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월남의 패망으로 우리나라도 안보 위협을 느끼고, 안보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고. 이것이 독재를 연장하는 수단으로 전락한 것이 문제였지만.

 

이 책의 저자는 질문을 한다. 과연 월남이 지켜줄 만한 나라였는가? 부정부패가 판치는, 민주주의라고는 눈 씻고 찾아보아도 찾을 수가 없는 그 나라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젊은이들이 목숨을 바칠 필요가 있었는가. 아니다라는 답이 나온다.

 

또 미군 철수를 막기 위해서 파병을 했다고 하는데, 주한 미군은 베트남 전쟁 중에도 감축이 되어 한 개 사단 정도가 철수를 했다고 하니, 한미동맹을 굳건히 한다는 목적에도 맞지 않았다고 하고... 경제 특수. 이 말을 많이 한다.

 

일본이 한국전쟁으로 경제 부흥을 이뤄 아시아 제일의 국가가 되었듯이 우리도 베트남 전쟁으로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얻었다는 것. 그런데 이 책을 읽어보면 경제가 부흥한 것은 사실이지만, 참전 군인들이나 노동자들에게 이 과실이 간 것은 아니라는 것.

 

많은 자료를 중심으로 베트남 전쟁의 본질에 접근하려고 한 책이다. 특히 미군이 월남에서 철수한 이후에도 우리나라 군대는 철수를 하지 않고 있다가 더 큰 희생을 당한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결국 미국이라는 나라는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데, 동맹이라는 이름 하에서 외교 실패를 한 것이 얼마나 우리 국민들에게 피해를 주었는지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이런 전쟁을 독재권력을 유지하는데 이용한 것도 기억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러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2000년대에 들어와서 파병을 한 경우가 있다. 또 파병을 요구받고 있기도 하다.

 

자국의 군인을 외국에 내보낼 때 이유와 목적이 명확하고 정당해야 한다. 정당하지 않은 파병은 성공할 수가 없다. 그러니 베트남 전쟁을 통해 파병 문제도 고민해야 한다. 이미 우리는 여러 번 이런 경험을 했으니,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을 배워야 한다.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것도 바로 이것일 것이다. 베트남 전쟁을 통해서 우리가 나아갈 길을 찾는 것. 참전 군인들의 수기, 신문자료, 해제된 기밀 문서, 기타 회고록 등을 통해서 베트남 전쟁 전반에 대해서 쓴 책이다.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역사이기도 하고. 읽어 볼 만하다. 아니 꼭 읽어야 한다. 이런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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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페미니스트 - 식민지 일상에 맞선 여성들의 이야기
이임하 지음 / 철수와영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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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아서는 조선시대 여성들 이야기인 줄 알겠다. 조선의 페미니스트라는 제목을 붙였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조선이라는 이름이 언제까지 불렸나? 일제강점기가 되고 사라진 이름인가 하면 아니다. 일본인은 조선인을 조센징이라고 불렀으니까. 

 

남북이 분단되고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조선이었을 것이다. 조선공산당. 그러다가 조선공산당이 남조선노동당과 북조선노동당으로 갈라서니까, 해방 정국까지도 우리는 조선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조선은 바로 여기까지다. 해방 정국까지. 그 이후의 일은 없다. 없는 것이 아니라 알려지지 않았다. 또 이들 중에 역사에서 지워진 인물들도 많다. 그들이 빛을 발한 것은 해방 정국까지다. 

 

그렇다면 해방 정국에서 빛을 발했던 사람들은 누구일까? 어떤 인물이기에 여성으로서 해방이 된 뒤 이름을 내세울 수 있게 된 것일까 이런 생각을 지닐 수 있다. 당연한 질문이다. 식민지에서 해방이 된 나라에서 나름대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일 수밖에 없다.

 

독립운동가들... 여기에 여성 독립운동가들... 여성이라는 말을 앞에 붙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지만 여성이라는 말을 꼭 붙일 수밖에 없는 것은, 그들이 활동에 비해서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시적으로 여성이라는 말을 앞에 붙이기로 하자. 그렇게 붙일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세상이 아직은 오지 않았다는 씁쓸한 마음을 되새길 수 있게.

 

솔직하게 말하면 여성 독립운동가를 대라고 하면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유관순밖에 없다. 최근에 영화로도 알려졌고 또 여러 책에서 언급한 사람들도 있지만, 퍼뜩 머리에 떠오르지는 않는다. 그만큼 그들은 해방이 된 이후 많이 가려져 있었다고 해야 한다.

 

이 책에서는 일곱 명의 여성을 들고 있다. 일곱 명의 이름을 적어본다. 몇 사람이나 알고 있는지?

 

유영준, 정종명, 정칠성, 고명자, 허균, 박진홍, 이순금

 

각자 자신이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던 사람들... 이들은 모두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 해방 이후에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들이 말하는 민주주의는 여성들이 독립된 존재로 인정받고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사회 구조다. 즉 남성과 여성이 또는 다른 성이 서로 대립하는 사회, 또는 어느 성이 다른 성에게 종속되어 사는 사회가 아니다. 

 

그만큼 일상에서의 평등을 이루기 위해 이들은 사회 개혁을 추진하고자 했다. 조선이라는 사회, 일제강점기라는 시대는 여성들에게 억압과 착취, 불평등한 사회였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구조를 그냥 놓아두고 여성들도 남성들과 동등한 존재라고 주장하는 것은 힘을 지니지 못한 헛된 구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 지금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유야 여러 가지겠지만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월북을 했기 때문이다. 또 죽음을 당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말년이 어떻게 되었는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 이유가 바로 분단에 있다는 것, 분단으로 인한 갈등이 같은 이념을 지닌다는 북쪽에서도 사상투쟁을 거쳐 숙청이라는 형태로 나타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렇게 지금은 많이 잊혀졌지만 이들이 한 노력이 물거품이 된 것은 아니다. 어디 역사가 한방에 변했던가. 이런 활동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어느 순간에 폭발적으로 변하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우리는 이들을 기억해야 한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나름대로 씨를 뿌렸던 이들의 활동을.

 

이 책이 소중한 이유가 그것이다. 페미니즘에 대해서 논란이 많지만, 그런 논란 자체도 바로 페미니즘의 일부라는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면 느낄 수가 있다. 같이 활동을 해서 검거가 되어도 언론은 남성들에게는 절대로 쓰지 않았을 기사를 여성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게가 아니라 악의적으로 오도하는 기사를 쓴다.

 

독자들의 흥미를 끌려는 목적도 있지만 여성들의 활동을 폄훼하려는 의도도 다분히 있는 것이다. 지금도 이런 기사들이 종종 나는데... 일부 언론은 일제시대 언론의 관행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않았다는 생각을 한다. 언론의 그런 태도는 이 책 '박진홍, 이순금' 편에 너무도 잘 나와 있다.

 

'식민지 일상에 맞선 여성들의 이야기'라는 작은 제목을 달고 있는데, 식민지 일상은 바로 여성들에게는 이중 억압이다. 식민지로서의 억압과 가부장제가 일상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것에서의 억압. 이런 이중의 억압을 끊는 길은 눈에 띠는 사회적인 억압에 대항하면서 얼핏 가려진 것처럼 보이는 일상에서의 억압을 함께 끊으려고 해야 한다. 이중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니 식민지 시대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더 힘든 활동을 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대중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을 테니 더더욱 힘들었을 거고.

 

그것을 이겨내려 했던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다. 이들의 활동을 각 편 제목에서 간결하고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유영준(1890-?) : 여남평등 이룩하여 평등조선 건설하자!

정종명(1896-?) " 여성들이여! 분노하라 그리고 경제적 독립을 쟁취하라!

정칠성(1897-1958?) : 사람이 있고 운동이 있다

고명자(1904-1950?) : 우리 자신의 해방은 우리 힘으로

허균(1904-?) : 부인 노동자에게 해방의 혜택이 무엇인가

박진홍(1914-?) : 십 년 감옥살이를 빼면 이제 겨우 스물세 살이라니까요

이순금(1912-?) 여성 대중은 민족해방운동을 위해 열심히 싸웠다

 

이들의 이름 뒤에 출생년도와 사망년도를 쓴 이유는 바로 물음표(?)에 있다. 일곱 명 모두 물음표(?)가 있다. 이 중에 사망한 년도가 그나마 추측 가능한 사람이 두 명. 나머지 다섯 명은 잘 모른다. 왜? 바로 이 글 제목에 그 이유가 있다.

 

조선부녀총동맹...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조선의 페미니스트](1권)은 조선부녀총동맹에서 활동했던 여성들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 해방공간의 식민지 일상을 바꾸고자 했던 여성들의 삶을 알고 싶었다.'(13쪽)고.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상을 지닌 사람들. 남과 북 어디에서도 제대로 자기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들.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발전하도록 한 발 앞서 나선 사람들. 그들이 이렇게 영원히 물음표(?)로 남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우리 역사에 있는 수많은 물음표(?)들을 이제는 사라지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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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김누리 지음 / 해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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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정상이라는 개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정상이라는 개념보다는 언어다. 바로 그 사회에 통용되고 있는 언어가 그 사회를 지배하는 사람들의 언어라는 것. 그래서 공자도 정명(正名)이라고 해서 올바른 이름을 써야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경쟁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 경쟁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불행에 빠짐에도 불구하고, 경쟁이 없는 사회를 상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에는 독일은 열번(텐샷10 Shot)의 기회가 있는 사회인데 우리나라는 한번(원샷 1Shot)의 기회만 있는 사회라는 말이 나온다.

 

한번의 경쟁에서 이긴 사람은 우월감을, 한번의 경쟁에서 진 사람은 좌절감을... 세상에 어렸을 때 한번 본 시험으로 일생이 결정되는 그런 승자독식사회라니... 경쟁을 내면화 하고 소비중심사회로 가면서 인권 감수성은 부재하고, 권위주의가 판치는 사회가 되었다고 우리 사회를 진단하고 있는데...

 

진단은 명쾌하다. 우리가 봐야 할 거울도 제시하고 있다. 바로 독일이다. 독일에도 단점이 많지만, 그래서 고쳐야 할 점도 많지만 적어도 지금 우리 처지에서는 배워야 할 점이 더 많다. 우리와 비슷한 역사를 거쳤다는 점에서도.

 

우리는 우리를 약소국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김누리 교수가 우리는 큰나라라고 하는 것에 놀랐다. 이렇게 우리나라를 모르고 있었나 싶기도 하고.

 

'30-50클럽'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이 말도 처음 들어봤는데... 1인당 국민소득 3만 불 이상, 인구가 5천만 명 이상인 나라들을 '30-50 클럽' 국가라고 부른다고 한다. (25쪽 참조) 세계에 단 일곱 나라만이 있다고 하는데,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우리나라라고 한다.

 

우리나라가 2019년에 이 그룹에 들어갔다고 하니, 큰나라라고 할 수 있음에 틀림없다. 그런데도 자꾸만 약한 나라, 작은 나라라고 해서 과감한 정책을 펼치려고 하지 않는다. 이상하게 움츠리기만 한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인 김누리는 이를 비판하고 있다. 우리는 충분히 독일과 같은 정책을 펼칠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면 역사적으로는 우리는 68혁명을 겪지 못했고, 정치인들은 보수와 수구의 양대 구조로만 독식되어 있으며 분단으로 인한 냉전체제를 들 수 있다고 한다.

 

독일 총리인 메르켈이 독일정치 지형에서 보수에 해당하는데 메르켈의 정책을 우리나라 정치에 대입해 보면 우리나라에서 진보를 자처하는 민주당보다도 훨씬 앞서가고 있다는 말, 민주당은 메르켈 정책에서 보면 보수에서도 심한 보수에 해당한다는 말.

 

우리나라 국회는 이러한 수구와 보수가 90%를 넘는다는, 한마디로 독식되어 있다는, 그래서 복지정책이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한다. 또한 이러한 국회의 모습과 더불어 이 말이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국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문성이 아니라 대표성입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세대 대표성입니다. ...그런데 국회에서는 불과 0.6퍼센트가 대의되고 있다고 (97쪽), 또 세대 대표성 못지 않게 왜곡되어 있는 것이 직능 대표성입니다라고 (97쪽) 하고 있다.

 

결국 국회는 전문성이라는 이름만 앞세우고 정작 대의해야 할 국민들을 대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럼에도 이것이 정상적인 모습인 양 착각하고 지내왔다는 것. 독일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는데, 우리는 준연동형, 그것도 심하게 왜곡된 선거 형태를 아직도 유지하고 있으니. 

 

읽으면서 명쾌한 진단에 놀랄 때가 많다. 그리고 이렇게 현실을 직시해야지만 고칠 수 있음을, 내가 정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정상이 아니었음을, 우리는 불행 속에 빠져 그 불행이 당연하다고 여기지만 사실 그 불행은 당연하지 않다는 것.

 

불행이 당연하지 않고 우리 역시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 그런 거울이 바로 앞에 있지 않냐고, 거울을 보라고. 그리고 자신을 보라고. 행동하라고. 우리를 대표할 수 있는 국회의원, 또 경쟁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라고.

 

하여 저자 김누리는 진보란 정치적 좌우 개념을 넘어서 보다 넓은 의미에서 '고통과 억압에 대한 민감성'이라고 정의(137쪽)한다. 그렇다. 바로 이것이 진보다. 고통과 억압받는 사람이 없는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 그런 정책들. 그들을 보듬어 주고 함께 할 수 있는 정당들. 그런 정당이 바로 진보다. 말만 앞세우는 사람, 정당들이 아니라.

 

이 책에 나오는 질문을 하자. 한국 남성으로 권위적인 학교 교육을 받고, 3년이라는 기간을 군대에 다녀온 김누리의 질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12년 동안 교육을 받고, 3년 동안 군대를 갔다 온 저 같은 남성이 '정상적인 인간'이 되는 게 가능한가? 제 경험으로는 불가능합니다.(139쪽)

 

이 말을 부정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무슨 소리냐고? 교육은 민주시민을 양성하기 위해 실시하는 것이고, 군대는 국가를 지키기 위한 의무 활동인데 그런 과정을 거친 사람이 어떻게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냐고?

 

여기서 정상적인 인간이 되는 게 불가능하다는 답은, 학교에서 몸에 익힌 권위주의, 경쟁,승자독식 등과 군대에서 익힌 병영문화 -상명하복이라는 절대 복종, 일사분란을 강조하는 전체주의 등-가 몸에 밴 사람이 인권감수성을 지니고 강한 자아를 지니면서 사회의 부조리에 맞서기에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로 해석을 할 수 있다.

 

자연스레 몸에 배어야 할 인권감수성,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의식 등을 의식적으로 다시 익혀야 한다는 것, 그것이 어떻게 정상적인 인간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왜곡되어 있다는 말인데, 단지 비판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하는 비판이다.

 

불행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행복해지기 위한 노력으로 교육개혁을 해야 하고, 남북간에 평화로운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 여기에 생활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이것들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또 그런 사례를 우리는 독일에서 볼 수 있다는 것. 그 사례를 참조해서 우리 현실에 맞게 적용해서 우리 후손들은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이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 그것을 다음 세대에게 미룰 수 없다. 그러기엔 우리가 져야 할 책임이 너무 크다.

 

이 책은 그 점을 깨우쳐 주고 있다. 제목을 반복하자.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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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10 09: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4-10 09: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혐한의 계보
노윤선 지음 / 글항아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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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갈등이 심하다. 일본과 우리나라는. 단지 정치 · 경제 문제만이 아니라 문화에서도 많은 갈등이 있다. 경제나 정치만큼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이제는 일본에 오고가는 것도 힘들어지고 있는 정도니.

 

[혐한의 계보]를 읽으면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혐한이 최근에 발생한 일이 아님을 알게 된다. 혐한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 1990년대라고 하는데, 벌써 30년이 되어 가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한류라는 이름으로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대해서 좋은 인식을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했고, 혐한이라고 해봤자 극우에 해당하는 소수에 불과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 그것이 아니다. 일본 사회에 깊숙히 혐한 감정이 숨어 있다는 것을. 그것이 자신들이 살기 힘들어질 때 노골적으로 드러날 뿐이지, 일본 사람들 내면에는 혐한 감정이 자리잡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혐한이라는 단어가 없었을 뿐이지, 조선인들에 대한 악감정, 또 탄압들이 있었음을 역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으니.

 

그러니 요즘 혐한 시위에서 말하는 '좋은 한국인, 나쁜 한국인 모두 몰아내자'는 구호가 나오는 것이겠지. 한국이라는 범주만이 중요하지 개인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다양한 활동들을 통해 혐한 감정이 내면화되지 않았나 싶다.

 

특히 영화와 문학 작품을 통해서. 이 책에서 분석하는 문학 작품이나 영화를 보면 이들의 혐한 감정이 쉽게 해소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든다. 혐한을 표방하는 작품들이 몇백 만부씩 팔리고 있다고 하는데... 문학은 알게 모르게 의식 속에 스며들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 이성으로 제어하기 보다는 감정이 먼저 움직이게 하는 것이 문학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문학을 다루고 있는 것은 그래서 더 타당하고, 혐한 감정에 대해서 우리가 직시하는데 도움을 준다. 단지 미워하는 것이 혐한은 아니다. 우리도 일본을 미워하지만 일본사람들 죽이자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반일과 혐일을 구분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데...

 

살기 힘들어지면 비이성적인 면이 부각되고, 상대적으로 적대할 존재를 만들려고 하는데, 일본에게는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인 우리나라가 아닌가 싶다. 두 가지 면에서 사사건건 부딪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니...

 

하나는 영토 문제다. 독도. 그리고 위안부나 징용공들에 대한 보상. 일본은 독도를 자기네 영토라고 이제는 교과서에까지 명시를 한다고 한다. 한국이 불법 점유하고 있다고. 교과서가 어떤 책인가.

 

전국민이 한번씩은 거의 암기하다시피 읽어야 하는 책 아닌가. 그런 책에 버젓이 독도를 일본영토라고 하고, 한국이 불법 점유하고 있다고 명시하면 대다수 일본 청소년들은 한국에 대해 반감을 가지게 된다. 이런 반감들이 쌓이고 쌓이면 혐한으로 흐르게 된다.

 

여기에 위안부나 징용공 문제, 자신들은 충분히 사과했다고, 그런데도 한국이 계속 떼쓴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해왔다고 한다. 정치인들부터 시작해서 몇몇 언론, 일본인들이 많이 보는 만화에서까지. 자연스레 사람들 의식 속으로 한국은 떼장이, 일본은 그에 시달리는 나라라는 생각이 스며든다고 한다.

 

반성 없는 역사 속에서 일본인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역사를 정당한 역사로 받아들이고 주변 국가들을 이해하려는 마음을 잃어가게 된다. 게다가 먹고 살기 힘들어지니 자연스레 원망은 밖으로 향하게 된다. 정치권이 바라는 방향이기도 하고.

 

혐오는 다섯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정말 무서운 일이지만 실제로 간토대지진(관동대지진) 때는 5단계까지 갔었고,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에도 거의 4단계까지 가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레빈의 증오의 피라미드라고 한다는데...

 

이 증오의 피라미드는 첫 번째 단계를 선입견에 의한 행위 prejudiced attitudes(농담, 적대감 표명, 배려 없는 발언, 배제적 언어), 두 번째 단계는 편견에 의한 행위 acts of prejudice  (비인간화, 비웃음, 사회적 회피, 비방 중상, 의도적 차별 표현), 세 번째 단계는 차별행위 discrimination (주거·교육·취업 차별, 사회적 배제, 괴롭힘), 네 번째 단계는 폭력 행위 violence (폭행, 협박, 방화, 테러, 기물파손, 모독죄, 강간, 살인), 마지막 단계는 제노사이드 genocide (의도적 · 제도적 민족 말살)로 이루어진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단계인 선입견과 편견에 의한 행위는 비형사적 행위이며, 세 번째 단계인 차별행위는 민사적 행위로, 네 번째와 다섯 번째 단계인 폭력과 제노사이드 행위는 형사적 행위로 분류하고 있다. (117쪽)

 

지금 혐한은 네 번째 단계까지 와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이 최근에만 일어난 일은 아니다. 끊임없이 재일한국인들에 대한 차별이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인데...

 

무서운 것은 일본인들이 보는 신문에서, 잡지에서 이런 혐한이 걸러지지 않고 나온다는 것. 특히 대중매체를 통해서 알게 모르게 일본인들 의식에 침투하고 있다는 것. 여기에 특정 정치인들이 불을 지펴서 혐한 감정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혐오표현 방지법을 만들기도 했다지만 처벌 조항이 미미해서 별 실효성이 없으며, 카운터스라고 해서 혐오표현 반대 시위자들도 있기는 하지만, 이들 역시 대세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한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일본과 교류가 끊어지고 서로 장벽을 쌓고 있으니 더욱 혐한 감정이 심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이 책은 혐한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님을, 꽤나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음을, 그리고 이러한 혐한 감정을 이용하는 정치인들이 있음을, 또 이것을 이용해 대중적인 인지도를 높이는 사람들이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러한 혐한의 계보를 추적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다음 어떻게 해야 하는지까지 나아갔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긴 일본이 해야 할 일이지 우리가 혐한 감정까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니... 역사 자료만이 아니라 문학 작품을 통해서도 일본인들이 지금 지닌 혐한 감정이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를 알게 해 준 것만으로도 이 책은 가치 있다고 할 수 있다.

 

원인을 알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고, 문제를 제기했다는 것은 해결책을 찾겠다는 것이니, 혐한을 우리가 인식하고 그 심각성을 느끼는 것은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이야기니까.

 

그 혐한 감정이 하루이틀에 쌓인 것이 아님을 이 책이 잘 보여주고 있으니, 해결과정은 더 지난하겠지만 그래도 그 길이 우리가 가야 할 길임을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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