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희망 - 절망의 시대에 변화를 꿈꾸는 법, 개정판
리베카 솔닛 지음, 설준규 옮김 / 창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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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주로 부시(아들)가 당선되었을 때를 배경으로 한다. 미국에서 9.11테러 사건이 일어난 때이기도 하고... 그럴 때 절망에 빠진다. 사람들은 부시의 정책에 동조하지 않더라도 공개적으로 반대하기 힘들어졌다.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이유로 이라크를 공습하겠다고 했을 때 어둠은 더 짙어졌다. 그렇게 솔닛은 그 어둠의 시대에 희망을 이야기한다.


희망은 어둠이라고 했다. 어둠, 앞이 캄캄하다는 의미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로 쓰고 있다. 즉, 명확하게 보이지 않기에 조금씩 나아가야 한다. 또 희망은 어둠 속에 있는 문이라고 했다. 어둠이라는 벽을 손으로 짚어가면서 문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물론 문을 열었다고 해서 어둠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는다. 또다른 어둠이 있을 수 있고, 또다시 벽을 짚으며 나아가야 한다. 희망이라는 문을 향해서.


그렇기 때문에 희망은 어둠이다. 어둠은 포기가 아니다. 나아가게 한다. 어둠 속에 주저앉는 일. 그것이 바로 절망이다. 때문에 솔닛은 희망은 어둠이라고 한다. 우리가 벗어나야 할 동기를 주는.


그러므로 한번에 모든 일을 해결하려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 세상에 '헤라클레스'처럼 강물을 끌어와 마굿간을 한번에 청소할 수는 없다. 희망은 그런 마굿간을 치우는 일과 같다. 지난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다.


지금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조금씩 치워야 한다. 혼자서만이 아니라 함께 치워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깨끗해진 부분이 나온다. 그곳을 발판으로 삼아 더 깨끗하게 청소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희망이 하는 역할이다.


솔닛은 이런 점에서 명확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런 해결책은 없다고 한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그들의 연대를 통해서 해야 한다고 한다.


연대가 잘 이루어질 때도 있지만, 잘 이루어지지 않을 때도 있다. 우리가 어둠 속에서 벽을 짚으며 나아가지만, 문을 찾지 못할 때도 있지 않은가. 또 서로 부딪칠 때도 있고. 


이때 포기하면 안 된다. 자신의 방식을 지키면서도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일. 그렇다. 차이보다는 공통점을 찾아내고, 그 차이를 행동을 통해서 메워나가는 일. 그것이 바로 '어둠 속의 희망'이다.


이 책은 2001년 9.11사건의 어둠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음을, 아니 희망을 보았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개정판을 내면서 그 뒤의 이야기들을 몇 편 실어서 아주 오래 전 이야기만은 아니다. 또 미국이 과연 2001년보다 많이 좋아졌는지, 그들이 희망의 문을 찾았는지 의문이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는 희망을 찾았는가. 어쩌면 우리도 솔닛의 이 책이 쓰여질 때와 비슷하게 어둠 속에 있지 않을까.


어둠 속에 있다면 이제 희망을 이야기해야 한다. 희망으로 함께 행동해야 한다. 저건 아니야에서 멈추지 않고 이렇게 하자고 해야 한다. 자신부터 그렇게 해야 한다. 행동하는 일, 어둠 속의 희망은 바로 이런 행동에서 나온다.


좀 지난 책 같지만, 아니다. 지금 우리 현실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는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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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 감정 오작동 사회에서 나를 지키는 실천 인문학
오찬호 지음 / 블랙피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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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사회가 지닌 문제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회학자로서 우리나라가 지닌 문제점을 잘 지적하고 있는데, 가끔 이런 책을 읽으면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 책의 저자도 이런 말을 한다. 문제는 명확히 지적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방법을 이야기해 달라는 사람이 많다고. 방법? 있다. 그런데 구체적이지 않다. 사회의 문제다. 개인에게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 이 정도? 


이러면 안 된다. 이 책 전반을 관통하는 내용은 우리 사회는 집단을 중시하면서도 책임은 개인에게 묻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라고 할 수 있다.


즉 개인주의를 이기주의와 혼동하며 집단주의를 공동체의식과 혼동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왔다는 점. 그래서 집단의 문제점을 지적하면 집단의 안녕을 해치는 행위를 한 사람으로 낙인찍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


또 이 상황에서는 남들도 다 그렇게 하니까 괜찮아 하면서 집단의 힘 속에 옳고 그름을 묻어버리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남들 이야기가 아니다. 내 이야기이기도 하다. 좋은 게 좋은 거다. 공연히 튈 필요없다. 이런 생각을 지니고 살아오지 않았던가.


집단의 움직임을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바꿔 내 행동을 합리화하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세상은 원래 그래 하면서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았으니, 문제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으나 해결책은 찾지 않은 상태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계속 들었으니, 저자는 그 점에서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적어도 문제가 무엇인지를 다시 인식하게 해줬으니 말이다.


해결책은 단순하다. 문제라고 생각하면, 그런 문제 행동을 하는 집단, 사람들과는 반대로, 내가 원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활동할 수 있게 도와주면 된다고... 


자본주의 사회니까, 그들이 그런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후원을 하면 된다고... 다른 생각,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주목하고, 그들을 후원하는 행위 자체로도 세상을 조금씩 바꿀 수 있다고. 그냥 손 놓고 있기보다는 그런 행동을 해야 한다고.


물론 집단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함은 당연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으니,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하자고 한다. 그것이 바로 후원이다. 지출의 방향을 바꾸면 되니.


'웃자고 하는 말처럼 들리지만 사회를 튼튼하게 하는 데 지출하지 않고 사회가 좋아지길 희망하는 건 모순이다. 구체적인 정책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그 정치인들을 감시할 사람들의 생활을 안정적으로 유지시켜 주면 결국 사회는 한 단계 성장한다. 내가 발 뻗고 잘 지름길이다' (272-273쪽).


이런 일부터 시작한다면 저자가 말한 '고통의 평준화 정신'(252쪽)으로부터 벋어날 수 있다. 나만 힘든 게 아니야라고 주저앉아서는 안된다. 나도 힘든데, 다른 사람들도 힘들테니, 그 힘듦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실천해야지로 나아가야 한다.


자신의 삶을 꾸준히 성찰하는 태도를 지녀야 하고. 고통이 평준화 된다고 해서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 고통을 없애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다들 힘드니까 견뎌야 한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게 된다는데 문제점이 있다.


그러니 '고통의 평준화 정신'은 사라져야 한다. 고통은 평준화된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고통을 일상으로 만든다. 고통의 일상화는 사람들을 집단 속에 가두게 된다. 나만 힘든 게 아니니 라는 말로.


하야 이 책은 이러한 '고통의 평준화 정신'을 버리는 일부터 해야 한다고, 그것이 바로 고통을 줄이는 방향으로 노력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일부터 시작하면 된다고,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든든한 후원자가 되는 일부터 시작하자고 한다.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이 말부터 해야겠다. 그건 아닙니다라는 말부터. 이렇게 하면 좋겠습니다라는 말도 할 수 있는 그런. 집단주의와 공동체주의를 혼동하지 않고,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뭉뚱그리지 않고 그렇게... 하나도 괜찮지 않은 세상에서 괜찮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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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8-15 09: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런 생각 자주 하는데...^^;;
읽고 보니 좀 더 생각해보아야 할 순간이 많았네요.

kinye91 2022-08-15 10:43   좋아요 0 | URL
여러모로 생각할 것이 많은 책이에요.
 
짱깨주의의 탄생 - 누구나 함부로 말하는 중국, 아무도 말하지 않는 중국 보리 인문학 3
김희교 지음 / 보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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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도발적이다. [짱깨주의의 탄생]이라니. 짱깨라는 말이 긍정적이 아니라 부정적으로 쓰이는 말, 비하하는 말로 쓰이는데, 책 제목에 짱개라는 말과 이념을 뜻하는 주의가 합쳐졌다. 그런데 이 말이 과연 긍정적으로 쓰일까?


짱깨주의라는 말은 중국을 대할 때 흔히 지니는 선입견을 말한다. 편견이라고 할 수 있는 사고의 틀인데, 이는 역사적으로 또는 정치적으로 왜곡되어 전해졌다고 할 수 있다. 이미 한 나라를, 또는 그 나라 사람을 비하하는 말을 쓴다는 것 자체가 유사인종주의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일본을 쪽바리라고 하고, 중국을 짱깨 또는 짱꼴라라고 하는 말을 흔히 하는데, 같은 동아시아에 속한 나라들인데 이상하게도 좋은 감정으로 말을 하지 않게 된다.


일본이야 우리나라를 식민지배 했던 나라이고, 또 제대로 된 사과도 변상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정적인 인식을 지니고 있다치더라도, (그렇더라도 제국주의 일본과 일본국민은 구분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제국주의 일본과 지금 일본도 구분해야 하고. 다만, 일본이 과거 제국주의 유산을 제대로 청산했느냐 하지 않았느냐는 것은 반드시 따져보아야 한다)


중국은 왜 그럴까? 예전에 사대를 했기 때문에, 또는 한국전쟁 당시 적대국으로 참전했기 때문에...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등등 다양한 요소가 많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중국은 우리보다 못하다는 깔보는 마음이 그런 말을 만들어냈을지도 모른다.


여기에 중국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에 대한 마음까지 더해져 그런 관점을 강화하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러한 짱깨주의에 대해서 왜 그런 말을 하는지, 그런 관점이 무엇이 문제인지를 분석하고, 앞으로 우리가 지녀야 할 자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짱깨주의 프레임을 네 가지로 이야기하는데, 유사인종주의, 신식민주의체제 옹호, 자본의 문제를 중국의 문제로, 신냉전체제 구축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담론을 유통시키는 매체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고, 우리 언론에 나타난 중국의 모습을 분석하고 있다.


긍정보다는 부정이 많은 보도들, 이런 관점에는 우리나라에서 진보냐 보수냐가 중요하지 않다고, 다들 비슷한 관점을 지니고 있다고, 그런 의미에서 '짱깨주의'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중국과 교류를 단절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고, 중국과 미국이 경쟁을 하는 시대에, 중간 지대에 있는 우리나라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최근에 중국에 대한 인식이 나빠졌고, 중국과 교류하기보다는 미국 쪽에 확실히 서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고 하는데, 이 책은 왜 그런 태도가 문제인지를 지적하고 있다.


이미 세상은 한 나라가 세계를 지배할 수 없게 되었다. 다극체제, 또는 다자주의로 나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전세계와 무역을 하는 나라로 어느 나라와만 단절할 수 없다. 게다가 중국은 우리나라 최대 교역국이지 않은가.


그러니 현명한 대처를 해야 한다. 현명한 대처를 하기 위해서는 우리 처지에서 중국과 미국을 바라봐야 한다고 한다. 미국의 관점에서, 또는 서구의 관점에서 중국을 바라보지 말고, 우리의 현재 처지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결국 외교와 무역이란 우리가 손해보려고 하는 활동이 아니라,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관계를 맺는 활동 아닌가.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중국을 제대로 바라봐야 한다고 한다. 짱깨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짱깨주의가 이미 왜곡된 틀이기 때문에 그 틀을 벗어나서 사고하고 행동해야 한다.


두터운 이 책은 중국에 관해서 너무 긍정적으로 이야기한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다. 중국에 대해서 그간 지녀왔던 부정적인 인식에 대해서 그것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를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중국에 대한 편향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서 중국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중국도 문제는 있다는 식으로 넘어가고 있는데, 우로 한참 굽은 것을 중간으로 돌리기 위해서는 좌로 더 굽혀야 한다는 말이 생각나는 서술이기도 하다.


양비론을 이 책에서 비판하고 있으니,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짱깨주의'에서 벗어나려면 지금 중국이 지니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사례들을 들어 이야기해주고, 그런 점을 포함한 중국과 우리가 어떻게 관계를 맺어가야 할지에 대한 주장이 있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우리는 미국과 중국의 경쟁 사이에 놓여 있다. 그들만의 경쟁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우리는 그들의 경쟁에 어떻게든 관련이 되어 있으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때 '짱깨주의'로 표방되는 중국 무시 또는 중국 배제 정책이 우리에게 실효성이 있을까를 생각하게 하는데는 이 책이 도움이 된다.


우리의 처지에서 중국을, 미국을, 또는 세계 정세를 바라보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는 주장,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혹 중국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든다면 혹시 나에게도 짱깨주의가 작동하는 것은 아닌지 한번 생각해 보고, 다양한 관점에서 중국을 바라보려는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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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온 2022-08-09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맘에 안든다. ˝글로벌 오랑캐의 탄생˝이라고 해야지!
 
21세기 자본 (양장)
토마 피케티 지음, 장경덕 외 옮김, 이강국 감수 / 글항아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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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대한 양이다. 두꺼운 책. 손이 선뜻 가지 않는다. 하루에 300쪽씩을 읽어도 (사실 하루에 300쪽씩 읽기에는 벅차다) 이틀하고도 하루가 더 걸린다. 총 700쪽이다. 감사의 말까지 하면.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인용했고, 또 다루고 있는 책이라도 읽기에는 쉽지가 않다. 그것도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더더구나. 나같은 사람 말이다. 


경제쪽하고는 담을 쌓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경제쪽과 담을 쌓고 살았다는 말은 경제학이라는 학문을 공부하지 않았다는 말과도 통하는데, 특히 숫자가 많이 나오는 거의 수학 수준의 경제학 책은 멀리하고 살았다.) 그럼에도 경제는 우리 삶에서 꼭 필요하다. 내가 살아가는 일들이 모두 경제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도 그러하리라 생각했다. 얼핏 책장을 넘기면 수많은 도표가 나오니 말이다. 그런데 그 도표들이 비슷한 모습을 띠고 있다. 어라? 거의 백 년에 걸친 자료들을 분석한 이 책에서 비슷한 형태의 도표들이라니. 읽어보자는 마음이 인다. 비슷한 패턴을 보이는 도표들을 보며, 숫자보다는 좀 쉽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도표들은 세계 경제가 비슷한 경로를 밟아왔다는 뜻이니 우리나라에도 적용이 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고, 한때 왜 사람들이 피케티, 피케티 했는지 알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기에 읽기 시작. 여기에 피케티 자신도 '이 책은 경제학 못지 않게 역사에 관한 책이다'(47쪽. 서장)라고 말하고 있으니, 세계 경제의 역사를 한번 살펴본다는 마음으로 펼쳤다.


이 책을 보면 개별 국가들이 다 다들게 발전해 왔고, 자본소득과 노동소득이 다 다르다고 생각하겠지만, 이 책에 나온 표를 보면 액수에서는 차이가 날지라도 변해온 추이는 거의 비슷하다. 그렇다면 공통점이 있다는 뜻인데, 피케티 주장은 세계는 불평등한 쪽으로 발전해 왔다고 요약할 수 있다.


그런가? 많은 자료들을 도표로 보여주고 있는데 이 도표들이 이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세계는 평등을 향해 왔다고 생각했고, 유례없는 평등의 시기가 요즘 아닌가 했는데, 아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피케티는 이를 몇 가지 등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 중 불평등을 유발하는 등식은 자본 수익률(r)이 경제 성장률(g) 크다는 등식이다.(r>g) 이런 등식은 거의 깨지지 않았다고 한다. 즉 지금까지 100년이 넘는 역사에서 이 등식은 지속되어 왔으니, 양극화가 일어나고 점점 심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한다.


많은 경제학 용어들을 댈 필요가 없다. 자본이 수익을 얻는 비율이 경제가 성장하는 비율보다 높으면 자연스레 자본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즉 부익부 현상이 지속된다. 부익부가 되면 자연스레 상대적으로 빈익빈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불평등이 심화된다. 그렇다면 문제는 불평등을 줄이는 방향으로 경제가 나아가야 한다. 피케티 주장도 이것이다. 불평등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많은 방법이 있겠지만, 피케티 방법은 두 방향에서 나온다. 하나는 정치, 즉 국가의 사회화다. 사회적 국가라고 하는데, 경제를 시장에 맡겨두는 방식으로는 불평등이 해소될 수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미 앞선 등식에 답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이 등식에서 평등을 지향하려면 자본소득자의 선의에 기댈 수밖에 없는데, 선의에 기대는 방식으로는 불평등을 해소할 수 없다.


개인의 선의가 아니라 제도로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국가가 되어야 한다. 즉 법과 정치가 함께 해야 한다. 경제학이 정치경제학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피케티 역시 이 말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는 결말 부분에서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경제학을 위해'(692쪽)라고 하고 있으며, 직접적으로 '나는 정치경제학이라는 표현을 좋아한다'(592쪽)고 하고 있다.


왜냐하면 경제를 법과 정치에서 분리하려는 강단 경제학자들이 많은데, 그런 식의 경제학으로는 불평등을 해소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경제학자들도 사회학자들처럼 치열한 논쟁의 장에 참여해야 한다고 한다.


이런 논쟁의 일환으로 그가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는 사회적 국가론. 이는 민영화로 나아가는 현대의 흐름과는 배치된다. 민영화는 공공부분을 사유화하는 것으로, 이는 자본 소득을 더 늘리는 쪽으로 가게 될 뿐, 결코 공공의 부를 평등한 쪽으로 나누지는 못한다고 주장한다.


교육, 의료 분야 등 사회에서 꼭 필요한 부분을 국가가 관장하는 사회적 국가. 사회적 불평들을 줄일 수 있는 기본적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사회적 국가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재정이 확보되어야 한다. 국가의 재정이 무엇으로 확보되는가? 세금이다. 그렇다면 세금을 어떻게 걷어야 하는가? 누진세율이 이야기되는 이유가 이것이다. 누진세는 국가의 재정 확보뿐만이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세금을 더 줄이겠다고 하는 지금 새겨보아야 할 주장이다.


다른 한 방법은 경제학적인 방법이다. 세금을 걷는 일. 누구에게? 자본소득을 얻는 사람들에게. 그래서 그는 자본소득세를 도입하자고 한다. 그것도 한 국가 내에서가 아니라 전 세계를 통합하여.


그래야 명확한 소득이 밝혀지고, 그에 따라 소득세를 걷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 소득세를 누진적 방법으로 걷는다면, 그것도 일회성이 아니라 해마다 걷는다면 소득 불평들이 더 심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가장 단순한 방법이지만 그만큼 가장 어려운 방법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조세 저항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세계가 통합해서 재산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다면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서 다른 곳으로 재산을 은닉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런 경우에는 누진 자본소득세로 사회적 불평등을 줄이려는 노력이 효과가 없어진다.


하여 참 단순한 방법인데도 실현하기가 힘들다. 한 국가 내에서뿐만 아니라 세계가 여기에 동의해야 하기 때문이다.그렇기 때문에 피케티는 경제학만으로는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가 이 방대한 책을 통해 주장하는 일은 바로 사회학, 정치학 등과 결합한 경제학이다. 전세계 사람들이 이런 방법에 대해서 토론을 하자고 한다. 좀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학자들만이 아니라 시민들이 토론을 하고 방법을 강구하자고 주장한다.


피케티가 이 방대한 책을 쓴 이유는 그런 토론에 기초적인 자료를 제공해주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사실에 기반한 토론을 해야 하니 말이다. 지난 100년 동안 지구에서 자본주의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 왔는지를 그는 통계 자료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고, 이 통계자료에 의하면 세계는 불평등이 해소되는 방향이 아니라 심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하니...


이렇듯 그의 책은 경제학 책이라고 하기보다는 정치경제학 책이라고 해야 한다. 사회를 좀더 평등한 쪽으로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을 하자고 주장하는 책. 그가 제시한 방법에 대해서 과연 얼마나 토론이 되고 있는지... 그의 제안이 진행 중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는 건, 너무 비관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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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AI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기술의 혁신, 모방에서 주도로 세계를 앞지르다
제임스 팔로우스 지음, 이우현 옮김 / 서런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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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관심을 끌었는데, 중국에 대해서 이야기한 책으로는 좀 시일이 지나지 않났나 싶다. 2018년에 쓴 책이고, 2019년에 번역이 되었는데, 지금은 2022년... 이미 이 책에서 이야기한 부분들이 실행이 되었거나 또는 진행 중인 경우가 많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책에서 한 예측이 빗나갔다고 할 수는 없다. 2018년까지 세계 2대 강국으로 떠오른 중국. 다른 나라를 따라잡기 바빴던 중국이 이제는 세계를 선도하는 나라로 떠오르게 되었으니... 게다가 우리는 중국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많은 부분에서 이미 중국에게 따라잡히고, 이제는 중국을 따라해야 하는 분야도 많아졌다고 하니...


그렇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중국은 2033년을 목표로 계획을 세우고 강력하게 정책을 추진했다고 한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세계에서는 교육이 중요함을 깨닫고, 미래 인재 양성에 힘쓰고 있다고 한다.


그 점을 배워야 한다.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미래를 살아가는 준비를 할 수 있게 해주는 일.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노력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는 일.


정책은 그렇게 개인들에게 희망을 주고, 도전할 수 있게 하고, 실패했을 경우 다시 시도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쪽으로 가야 한다.


그래서 정책의 중심에는 교육이 있을 수밖에 없다. 어린아이부터 청소년, 중장년, 노년에 이르기까지 교육은 지속되어야 한다. 쉬운 말로 평생교육이라는 말이 있는데, 지금 세상은 한 번 배운 교육으로 평생을 써먹을 수 있지 않다.


지속적으로 배우고 변화해야 한다. 미래를 두려운 대상으로 여기지 말고 도전하는 대상으로, 자신에게 활력을 주는 대상으로 여겨야 한다.


이 책 내용은 단순하다. 구체적으로 중국 경제가 어떻게 운용되는지 이야기하지 않는다. 다만, 중국 경제가 또는 중국이 미래를 어떻게 여기고 어떤 방식으로 대응하려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구체적인 내용은 우리가 찾아야 한다. 그러니 2018년까지 중국 경제, 정치의 구체적인 내용이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세상은 한 해만 지나도 확 변해버리지 않는가.


급변하는 사회, 예측불가능한 사회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미래를 대하는 태도, 미래를 준비하는 모습일 것이다.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구체적인 교육의 내용이야 상황에 맞게 채워가야하겠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큰틀은 꼭 지켜야 한다.


무엇보다도 미래 세계가 개인의 성과를 중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개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공동체가 중시되어야 한다는 사실.


'바람직한 인재라면 적어도 공생관계, 나보다는 타인을 배려하고 주변의 사람을 스타로 만들겠다는 협력 의지가 필요하다. 가능하다면 지금부터라도 공적인 의사 결정시 상대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주는분위기를 연출하길 바란다. 그러면 상대방도 내 노력을 인정하고 도돠줄 것이다.'(104쪽)


인공지능 시대, 인터넷 시대라고 해서 개인이 혼자 활동할 수는 없다. 성과는 함께 할 때 배가된다. 그러므로 함께 할 수 있는 능력, 즉 공감능력을 키워야 한다. 


여기에 더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초연결, 초지능, 융·복합 등 기술의 변화들이지만, 여기에 걸맞은 미래인재조건은 협업 능력, 창의력, 윤리이다.' (330쪽)고 한다.


교육이 어디에 중점을 두어야 할지 생각해 볼만한 말이다. 이러한 교육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한 줄 세우기 교육은 안 된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목표는 오로지 대학에 있다. 그래서 대학에 가까워질수록 미래를 보는 시야는 점점 좁아진다. 한해 한해 좁아지다가 대학 입시에서 멈춘다.


여기에 무슨 협업 능력, 창의력, 윤리가 작동할 수 있겠는가. 대학이 목표가 아니라 자신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목표를 찾을 수 있는 교육을 해야 한다. 찾고 시도하고 또 찾고 시도하고... 교육은 그러한 찾기가 가능해지도록 해야 한다.


그런 교육이 가능해질 때 미래를 선도하는 인재들이 나올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4차산업혁명의 기술에 대한 책이 아니라 미래 사회를 살아가는 기본적인 소양이 무엇인지, 그것들이 왜 필요한지를 알려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쓴 책이지만, 이 책을 무엇보다도 먼저 읽고 이해하고 실행하는 사람들은 교육 정책, 경제 정책을 입안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바로 옆나라 중국에게서 우리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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