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끝의 기록
존 버거.장 모르 지음, 민지현 옮김 / 더퀘스트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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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글로 떠나는 과거로의 여행, 그곳에서 우리는 사람과 자연, 그리고 역사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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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I, 천사인가 악마인가 - 인간의 마지막 질문
김대식 지음 / 동아시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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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실린 프로필 사진에 눈길이 간다. 인공지능에게 절을 하고 있는 저자의 모습. 이게 뭐지? 왜 이런 사진을 책 표지에 실었지? 하는 의문은 책을 읽으면 곧 풀린다.


인간이 인공지능을 절대로 따라갈 수 없는 세상이 오리라는 예측. 이는 우리가 많은 디스토피아 영화에서 봤듯이 인간을 지배하는 인공지능 시대가 오면 인간에게는 선택지가 얼마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책의 뒷부분에 가면 역사를 '신의 시대 -> 영웅의 시대 -> 인간의 시대 -> 기계의 시대(?)'로 구분하고 있는데(226-227쪽), 기계(인공지능) 시대에는 인공지능이 신의 위치에 서게 되면 인간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몇 개 없다. 우선 인공지능에게 대항한다. 그러나 인공지능을 이길 수는 없다. 인간은 인공지능에 의해 파멸될 수밖에 없다. 다른 방법은 그냥 순응한다. 그 순응의 대가는 인공지능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마치 이진법과 같다. 다른 선택지가 있을까? 있다. 저자는 인공지능 시대는 이미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막을 수 없는 것으니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무엇인가? 공생이다. 인공지능과 인간이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그러면 겨우 이진법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공생. 좋은 말이다. 인공지능이 세상을 장악하더라도 인간을 멸망시키지는 않을 것이라고 저자는 예측한다. 왜냐하면 인간만이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상생활에선 필요 없지만 경험이라는 것이 뭔지 체험해 보고 싶을 때, 인간 또는 인간의 뇌만이라도 놔두고 있다고 경험 코프로세서로 쓰지 않을까 상상해 봅니다'(230쪽)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예전 노예들을 검투사로 부리거나 자신들의 오락을 위해 이용하던 것과 다르지 않다. 공생이 아니다. 공생이란 거의 대등한 관계, 적어도 한 쪽이 다른 한 쪽에 완전히 종속된 경우는 아니니까.


공생을 하기 위해서는 서로 간 존중이 있어야 한다. 이 존중은 일방으로 흐르지 않는다. 쌍방향이다. 하여 저자는 지금부터라도 인공지능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한다. 인간이 자신의 쓸모를 위해서 이용만 하는 도구로서만 여기지 말고 인간과 함께하는 존재로 여기고 대우해야 나중에라도 공생할 수 있다고.


그렇지 않으면 인공지능에 지배당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그래서 자신은 이렇게 인공지능을 존중하는 (숭배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놓는다고 한다. 유머로 받아들여도 되지만 우리가 인공지능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이렇게 절을 하는 것까지는 아니어도 지금과는 다르게 대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는 한다.


프로필 사진에서부터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 책은 인공지능 발달의 역사를 개괄적으로 훑어주고 있다. 그래서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 개발이 최근에 나온 것이 아니라 몇 십 년 전부터 시작되었고, 양이 쌓이니 질적 변화가 일어나듯이, 현대에 이르러 인공지능의 수준이 예측불가능할 정도로 높아졌다고 한다.


그 다음에 인공지능이 가져올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우리 산업 자체가 재편될 것이라는 것. 그것에도 대비해야 함을 이야기하는데, 그런데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기에 환경파괴가 따를 것이라는 점도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도 '데이터 센터' 건립으로 여러 갈등이 발생하고 있는데, 단지 '데이터 센터'의 문제만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범용인공지능(AGI-일반인공지능)을 넘어 초인공지능(ASI)으로 나아가면 (ASI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지능 격차가 너무 커져서 인간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의 지능을 말한다고 한다. 130쪽)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수준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그 이유를 인간의 뇌에는 약 100조 개의 신경세포와 시냅스 연결고리가 있는데(이를 변수라고도 할 수 있다), 현재 인공지능은 1.8조 개 정도의 변수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인공지능의 발달 추세로 보면 곧 100조 개의 변수를 지닌 인공지능이 나올 수 있다는 것.


인간의 뇌에 100조 개의 변수가 생기자 자율성이 생겼다고 하는데, 인공지능도 그만큼의 변수가 생기면 자율성이 생기지 않는다는 보장을 할 수 없다고 한다.(188-191쪽) 자율성이 생긴 인공지능을 상상해 보라. 지금까지는 인간이 입력을 하면 그대로 따르지만, 그때는 달라질 것이라고.


도저히 인간이 따라갈 수 없는 지능을 지닌 존재가 인간을 과연 대등하게 여길까? 여기서 우리는 디스토피아를 상상한다. 그러니 저자가 지금부터라도 인공지능을 막 대하는 사진을 남기지 않고 존중하는 사진을 남긴다고 이야기를 하지.


많은 사람들이 인공지능이 불러올 미래가 그다지 좋지 않을 수도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특히 실리콘 밸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만의 도피처를 마련해 놓고 있기도 하다던데, 그럼에도 인공지능 개발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인간이 풀지 못한 문제들을 인공지능을 통해서 해결하려는 욕망때문이라는 것.


이 욕망이 브레이크 없는 차들처럼 인공지능 개발을 멈출 수가 없다고 한다. 그것도 서로의 신뢰가 깨진 지금 세계에서는 이러한 위험성 때문에 한 나라가 개발을 멈춘다고 해도, 다른 나라가 개발을 한다면 위험해지니까 자신들도 개발에 박차를 가할 수밖에 없고, 기업들도 마찬가지로 다른 기업이 먼저 개발한다면 자신들은 도산할 수밖에 없으니 개발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치킨 게임이다. 먼저 내리는 쪽이 진다는.


그러니 인공지능에 대한 세계적인 협약은 나와도 문서로만 남게 되고, 인공지능 시대로 나아가는 것을 멈출 수는 없다고 저자는 예측한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인공지능과 공생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어야 하고, 그 점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인공지능의 역사와 인공지능의 현재, 미래,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 등을 구체적으로 들고 있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인공지능에 대해서 조금은 감이 잡히게 하는 책이다. 무엇보다도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과연 우리는 편리만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할까? 또 세상의 모든 문제를 다 알아야만 하는가?를 생각하게 되고,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하게도 한다.


작은 제목으로 '인간의 마지막 질문'이라고 하고 있는데, 이는 지금 우리가 인공지능 개발이 한창인 이때 하지 않으면 안 될 질문이라는 뜻이다. 인공지능이 초인공지능으로 넘어간 순간에는 이런 질문은 아무 소용도 없을 테니. 


그러니 인공지능 개발에 대해서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 책은 그런 관심을 촉발하기에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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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의 멸종 - 기술이 경험을 대체하는 시대, 인간은 계속 인간일 수 있을까
크리스틴 로젠 지음, 이영래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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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객전도(主客顚倒)'와 '운칠기삼(運七技三)'


우리가 좀더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개발한 기술이 오히려 우리를 종속시키고 있음을 개닫게 되는 순간, 우리는 기술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이미 개발된 기술, 그것을 없앨 수는 없다. 또한 기술은 이상하게도 인간이 주체적으로 개발했지만, 한번 개발이 되면 자신이 주체가 되어 인간을 객체의 지위로 떨어뜨린다. 기술이 계속 발전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그 기술에 문제가 있다고 퇴보하지는 않는다. 특히 인간의 편리를 증진시킨다면 더더욱.


현대 우리는 인공지능 시대에 살고 있다. 인공지능을 개발한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우리 인간의 삶을 보조하기 위해서 일 텐데... 오히려 인간이 인공지능에게 휘둘리고 있는 것이 지금 현실 아닌가.


현대 기술을 대표하는 것이 스마트폰이라고 하자.(인공지능은 지금 논외로 하고) 그런 스마트폰에 대해서는 지금도 논란이 많다. 특정 연령 때까지는 금지한다는 법안을 제출한 나라도 있다. 우리나라도 학교에서는 스마트폰을 금지한다는 법을 제정한다고 하니까.


(제정이 되었나? 내년부터 학교에서 실시한다는 말이 있으니...그런데 학교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한다는 것이 아니라 수업 중에 사용을 금지한다는 것 아닌가. 이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그렇다면 수업 중이 아닌 다른 시간에는 사용해도 된다는 말인지.. 아니면 학교에 등교하면 하교할 때까지 스마트폰을 쓸 수 없다는 말인지. 학교에 따라 교칙을 정해야 한다고 알고 있는데)


스마트폰이 학생들에게 문제라면 성인들에게는 무엇이 문제일까? 그것은 바로 시도때도 없이 연결되는 현실 때문 아닌가. 자신이 있는 장소에서 대면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공간에 있는 사람들과 스마트폰으로 연결이 되는 것.


즉 장소성을 잃어버리고 대면성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우리 육체의 물질성이 약화되는 것. 또한 자신이 있는 장소가 중요하지 않고 스마트폰 속의 공간이, 만남이 중요해지는 것. 


이는 바로 관계의 악화로 나타나고, 어디서 언제든 스마트폰을 하고 있으면 그것 자체로 사람들과의 관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


이래저래 스마트폰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었는데... 이 스마트폰으로 경험하는 온갖 사이버 세상들을 스마트폰이라는 범주에 포함시킨다면,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대로 우리 인간의 경험을 없애는 데 스마트폰만큼 큰 역할을 하는 존재는 없다.


이것이 왜 문제인지를 7장에 걸쳐서 보여주고 있는데, 이미 우리가 심각하게 여기는 현상도 있어서 새삼스러운 주장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새삼스런 주장이 아님에도 우리는 스마트폰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아마도 힘들 것이다. 그 세계가 주는 편리함이 바로 우리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우리가 이제는 주체가 아니라 스마트폰으로 구현되는 기술의 세계가 주체인 것이다.


우리는 객체로 전락했다. 아니라고? 자신의 생활을 살펴보자. 운전을 하는 성인이라면 아마 내비게이션 없이 운전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고, 하이패스를 장착하지 않은 차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빠름과 편리함. 최신 내비게이션으로 가장 빠른 길을 찾아 운전하는데, 그것을 누가 찾는가? 운전자? 아니다. 내비게이션이다. 내비게이션이 가라는 곳으로 간다. 주객전도다.


학생들은 스마트폰에 빠져 있다. 왜 학교에서 스마트폰을 금지해야 한다고 하겠는가. 스마트폰을 허용하는 학교의 쉬는 시간, 점심 시간의 모습을 보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스마트폰에 눈을 준 채 주변을 살피지 않는다.


운동장에서 노는 극소수의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이마저도 줄고 있는 현실인데, 대부분의 아이들은 게임을 하거나 사회적관계서비스망을 이용하고 있다. 게다가 학습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무엇인가를 고민할 시간을 갖기 싫어한다. 검색하면 금방 나오니까. 굳이 외울 필요도 없다. 지식을 암기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기다림이 사라지고, 자신 주변에 있는 사람보다는 사회적관계서비스망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더 많이 연결되는 현실. 그런 현실에서 직접 몸으로 하는 경험은 줄어들거나 사라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세계로 가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삶에서 만나는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서다. 불확실성, 우연은 우리를 힘들게 한다. 두렵게 한다. 그래서 없애야 할 것으로 인식하고 기술을 통해서 이를 없애려 한다.


하지만 삶은 우연의 연속이다. 삶을 가장 잘 대변하는 말이 '운칠기삼' 아닌가 한다. 우리가 계획한대로 이루어지는 일이 30%정도라면, 우연히 맞닥뜨리게 되는 일들이 70%라는 것. 그 70%가 바로 우리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할 수도 있는데, 기술시대에 우리는 그런 70%의 우연을 아예 없애려고 한다. (운이라고 하지만 이 운은 우연이라고 할 수 있다.)


불확실한 삶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때로는 괴롭고 슬프고 힘들지만 그것들을 통해서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주변 존재들과 관계맺으면서 자신이 살아갈 길들을 조심스레 나아가게 된다. 


이런 불확실성을 다 없앴을 때 과연 우리의 삶이 행복해질까? 우연이 개입하지 않는 삶이,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어가는 삶이 과연 행복할까?


이 책의 저자는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기술이 우리를 객체의 자리로 밀어넣었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바로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더 견뎌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기술에 대해서 다른 관점을 가져야 한다고...


하지만 저자가 대안으로 제시한 것은 희망사항이다. 기술을 통제할 수 없다면 기술의 문제점을 아무리 이야기해도 소용없다. 그런데 기술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대안을 마련하려면 우리의 생활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편리와 빠름에 익숙해진 생활을 바꾸지 않으면 이러한 기술이 우리에게 주체로 다가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래서 저자의 주장은 당연한 말이지만 그만큼 힘든 일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막대한 이윤을 창출하는 기술을 기업들이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고, 빠름과 편리함에 익숙해진 사람들 역시 그러한 삶을 버리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이 책의 저자가 주장하는 '인간의 미덕을 되찾고 가장 뿌리 깊은 인간의 경험을 멸종의 위기에서 구하려면 기술 예찬론자들이 제안하는 극단적인 변혁 프로젝트에 기꺼이 한계를 두어야 한다. 혁신을 억압하는 수단으로서의 한계가 아니라 우리가 공유하는 인간성에 대한 헌신으로서의 한계 말이다. 그래야만 우리는 육신이 있는, 기발하고 모순적이며 회복력 있고 창의적인 인간의 모습 그대로 자유롭게 살 수 있다.'(330-331쪽)는 말이 헛된 울림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의 생활을 되돌아봐야 한다.


거대한 기술관련 기업들에, 그러한 기업들을 지원하는 정부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정부와 기업에 압력을 넣을 수 있는 인간들의 관계가 먼저 확립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음은 이미 역사가 보여주고 있으니... 참.


우리의 삶이 '운칠기삼'이라는 것, 그래서 기술이 우리의 주체가 되는 '주객전도'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이와 같은 책을 학교에서부터 읽고 토론하게 하면 어떨까? 아래에서부터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니까...기후재앙에 대한 대응을 촉구하는 청소년들의 움직임 일어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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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5-12-19 1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질의 작품을 읽으면서 놀라운게....20세기 초에 이미 무질은 경혐의 종말을 예견하고 있었습니다. 리뷰를 보니 그제 본 내용이 떠오르네요..ㅎㅎ

kinye91 2025-12-19 13:56   좋아요 0 | URL
네, 그렇게 좋은 작가는 시대를 반영하기도, 시대를 앞서가기도 하는 것 같아요.
 
남자들의 방 - 남자-되기, 유흥업소, 아가씨노동
황유나 지음 / 오월의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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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람이 아니라 상품으로 대하는 태도, 자신이 돈을 지불했으니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생각. 이것은 인권에 위배되는 생각과 행동이다.


사람은 상품이 아니다. 물론 자신의 노동력을 상픔으로 판매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노동자들도 자신을 상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으로서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유독 사람을 상품으로 여기는 분야가 있다. 바로 유흥업소다. 요즘은 남녀 불문하고 상품으로 취급한다고 하지만 (호스트 바 같은 경우?), 그럼에도 여성은 더 상품처럼 대우받는다. 그래도 된다는 듯이. 


유흥업소를 찾는 대다수의 사람이 남성이고, 유흥업소에서 이들을 접대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여성이라는 현실. 여기에 충격적인 것은 우리나라 법이다. 아직 바뀌지 않았다고 한다. 즐기는 사람들이 남성이고, 그들을 즐겁게 해줘야 하는 사람들이 여성이라는 인식이 법에 남아 있다고 생각하니 씁쓸하다.


'식품위생법 시행령 제22조 제1항'에 보면 '유흥종사자란 손님과 함께 술을 마시거나 노래 또는 춤으로 손님의 유흥을 돋우는 부녀자인 유흥접객원을 말한다.'고 되어 있다.


유흥종사자가 '부녀자'로 법에 명시되어 있다. 여성이 유흥종사자란 말이다. 남성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우습지 않은가. 사람이 사람을 즐겁게 하기 위해 술을 마시거나 노래 또는 춤을 추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 어찌 여성이어야만 하는지.


법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니 이도 문제지만 단순히 법을 넘어서 사회적인 인식이 그렇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가부장제가 오랫동안 지속된 우리 사회의 모습이기도 한데... 물론 저자가 지적하듯이 '부녀자'를 '사람'으로 바뀐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이 법에 나온 문구는 바뀌어야만 한다.


이 책은 유흥업소 종사자들의 생활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들이 어떠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그들을 자신들의 즐거움을 위한 상품으로 여기는 남성들의 모습, 그러한 모습을 '남자들의 방'이라는 제목으로 다루고 있다.


'남자의 방'이 아니라 복수형인 '남자들의 방'이라고 한 이유는, 어떤 특정한 남성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지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라는 인식에서 비롯한 것이다.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구조적으로 '남자들'의 사고와 행동이 고착되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데... 그래서 이러한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단순히 법 개정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법은 빠져나갈 구멍이 늘 있기 마련이니까.


하여 남성 여성 구분없이 이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데, 이 당연한 말이 쉽지 않음은 저자 역시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우선적으로 '기업의 접대비 손금계산에 유흥업소에서의 접대비를 불포함한다거나, 경찰이나 검사를 대상으로 한 유흥업소 접대는 성매매 유무와 상관없이 뇌물로 강도 높게 처벌하는 방법은 고려해볼 법하다'(219-220쪽)고 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유흥업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고, 이러한 업종이 계속 살아남는 이유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 제도의 문제임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 중에는 남자다움에 대해서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도 포함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바로 '남자다움'이 '남자 되기'라고 할 수 있는데, 지금은 그런 일이 없겠지만 -없어야하겠지만- 예전에는 남자들이 군대에 가기 전에 집단적으로 성매매를 하던 일들이 그런 대표적인 예라고 하겠다.


  어쩌면 남자들도 남자다움 또는 남자되기에 갇혀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책이 바로 [맨박스]란 책이었는데, 이 책과 연결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저자 역시 '남성 만들기는 타자로서의 여성 없이는 불가능하다'(52쪽)고 하고 있으니... 여성들을 타자화하고 그들을 자신들의 즐거움을 위한 수단, 상품으로 삼음으로써 만들어지는 남자 되기 또는 남자다움이란 바로 시몬느 드 보부아르가 말한 내용에서 여성을 남성으로 바꾸어도 통하지 않을까 한다.


'사람은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여자가 되는 것이다.' (시몬느 드 보부아르. 조홍식 옮김. 을유문화사. 1988년 중판.  326쪽 프랑스어 원문은 이렇다고 한다. “On ne naît pas femme: on le devient.”)


  다양한 종류의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생활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공통점은 이들이 남성의 즐거움을 위해서 상품으로 소비되고 있다는 것. 여기에 그들의 인권은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사람을 사람으로 대우하지 않고 상품으로 취급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한 일은 성별을 불문하고 있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남자들의 방 따위는 필요 없다.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의 방만이 필요할 뿐이다.


  그 점을 명심해야 한다. 하여 저자가 말한 바와 같이 '종속적인 (성별) 권력관계와 이를 합리화하는 경제논리'(220쪽)에서 벗어나야 한다. 성별과 상관없이 우리는 모두 인간이라는 점에서 존중받아야 하고, 칸트의 말처럼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니까.


하여 '유흥산업을 비롯한 성매매산업은 여성을 멸시하고 혐오하는 행위가 돈을 지불했다는 이유로 평범하게 여겨지는 특정한 장소이고, 그 특정한 장소가 평범한 일상이 되어버린 게 한국 사회다.'(223쪽)는 말이 나올 수 없게 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세상 아니겠는가. 


이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남자다움, 여자다움' 또는 '남자 되기, 여자 되기'가 아니라 '사람다움, 사람 되기'가 아닐까 한다. 


성별이 사람의 삶에 권력 관계로 들어서지 않도록 해야함을 인류의 역사를 통해서 계속 경험해 오지 않았던가. 


이 책은 이렇게 남성들의 유흥을 위해 상품이 된 여성들의 삶을 조망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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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와 사회 - 시각문화로 읽는 현대 중국
탕샤오빙 지음, 이현정 외 옮김 / 돌베개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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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중국의 현대 예술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는 책. 현대 예술이라고 하지만 미술에서도 유화나 수채화 또는 추상화보다는 주로 판화에 관한 내용이 많고, 영화에 대한 설명이 있는 장이 있다. 즉 중국의 현대 예술, 특히 미술과 영화를 중국 역사와 관련지어 설명해주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의 장점은 중국에 대해서 단일한 관점에서 보지 않도록 해주고 있다는 데 있다. 중국이라는 나라가 단일체제라고 하고, 이를 비판적인 시각으로만 보면 중국의 다양성을 보지 못하게 된다는 것. 중국도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특히 이 책의 저자가 살고 있는 미국과 같이 다양성이 존재하는 나라임을 명심하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예술을 하나의 관점으로 해석한다면 그것은 편협한 이해에 빠지기 쉽고 또 예술을 독단의 늪에 빠뜨리는 격이 될 것이다. 서양의 미술에 대해서는 이렇게 하나의 관점으로 보는 것을 경계하면서도 유독 중국의 미술에 대해서는 또 중국의 영화에 대해서는 하나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많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그것이 왜 문제인지, 그렇게 되면 무엇을 놓치게 되는지를 구체적인 작품과 작가를 통해서 설명해주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을 읽으면 중국 현대 미술과 영화에 대해서 어느 정도 지식을 얻게 되며, 예술가들이 어떠한 고민을 하면서 작품 활동을 했는지를 엿볼 수 있게 된다.


그들의 작품 활동은 당대 사회를 관찰하고 당대 사회와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예술이라는 특수성을 살리려는 노력이었다는 점. 그래서 그들의 작품을 하나의 틀에 가두는 것은 문제라는 점을 저자는 계속 강조하고 있다. 


많은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어 그 작품들을 보는 즐거움을 주기도 하고, 그 작품들이 창작되게 된 시대적 상황에 대한 설명을 통해 중국 역사와 문화를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으면 중국을 바라보는 서양의 시각을 알 수 있게 되는데, 그들이 중국을 보는 시각이 고정되어 있음을, 그리고 그러한 서양의 시각을 받아들이게 되면 중국의 다양성을 놓치게 되어 중국의 문화를 제대로 볼 수 없음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의 궁극적인 주장은, 당대 중국 시각문화의 역사적 특수성과 보편적 의의를 만들어낸 열망들과 변화들을 진정으로 이해할 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서 점점 더 비중 있는 역할을 하고 있는 한 사회를 좀 더 의미 있는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402쪽)라고 저자가 말하고 있으니... 


이 책을 찬찬히 읽어보면 그동안 중국 문화에 대해서 지니고 있던 자신의 시각을 인식하고 그 시각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문화대혁명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른 사람들의 관점과 다르다고 할 수 있는데,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문화대혁명을 저자는 어느 정도까지는 긍정적인 시선으로 다루고 있다. 그 문화대혁명이 미술에 끼친 영향을 설명하면서, 예술의 대중화에 기여한 점은 인정해야 한다고... 그리고 그 관점을 여전히 잇는 예술가들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니... 그렇다고 문화대혁명이 끼친 부정적인 영향을 무시하진 않는다. 어느 한쪽에 치우친 시각을 경계하고 있을 뿐이다.


저자의 관점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이 책은 다양한 중국 시각문화를 소개하고 있다는 데 큰 의의가 있으니,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을 주욱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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