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따스해지는 시다. 어떤 시를 읽어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냥 우리들 생활이 시로 표현되었다고 할 수도 있다. '생활시'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어진다. 아니면 '삶시'라고 하던지.


  서정홍 시인의 시들도 이렇게 생활이 잘 드러나 있는데, 이번 김용만 시집도 마찬가지다.


  시골에 살고 있는 시인의 삶이 눈 앞에 보이는 듯하다. 따스하고 또 따스하다.


  요즘같이 척박한 시절에 이런 따스한 시들은 우리 마음을 한결 너그럽게 만들어준다.


  각박한 시절, 시가 왜 필요한지, 또 시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시집이다.


이러한 시들은 땅에 발을 디디고 있어야 한다. 발이 허공에 떠 있으면 이런 시가 나올 수가 없다. 시인들이 하늘의 별을 따듯이, 소위 구름 따 먹는 소리를 하는 시들이 많은 시대에, 흙냄새가 물씬 나는, 또 흙에 발이 닿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 시집은 참 소중하다.


머언 우주를 바라보게 하는 역할을 시인들이 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을 바라보게 하는 역할도 시인은 해야 한다.


그런 시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는데, 이 시집에서 시인은 이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시인


      아름다운 것들은

      땅에 있다


      시인들이여


      호박순 하나

      걸 수 없는


      허공을 파지 말라


      땅을 파라


김용만, 새들은 날기 위해 울음마저 버린다. 삶창시선. 2021년 초판 2쇄. 70쪽.


그래, 현실과 동떨어진 말들이 난무하는 요즈음, 이렇게 땅을 파라는 시인의 외침. 단지 시인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땅을 파는 일을 우선 해야 하는 사람들은 정치인들이다. 그들은 허공을 파는 일을 많이 한다. 자신들은 땅을 판다고 하지만, 가만 보면 그들은 전혀 땅을 파지 않는다. 땅에 발을 디디지 않고 있다. 그냥 땅을 판다면서 허공만 들입다 파고 있다.


발이 땅에 닿지 않고 있으니, 그런 일이 생긴다. 그러니 이 시에서 시인을 정치가로 바꿔도 무방하다. 우리에게는 우리 땅을 딛고 서서, 우리 땅을 파는 정치가가 필요하니까. 하여 시인의 말은 누구에게나 통하는 말이 된다.


우리 생활을 풍성하게 하는 일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게 한다. 허공을 파는 일이 아니라 땅을 파는 일이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고, 그것이 바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해야 할 일임을 깨닫게 한다.


참 마음이 따스해지고 편해지는 시집이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 한 번씩 꺼내 읽으면 좋을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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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lgial 2023-09-27 13: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kinye91 님 덕분에 알게 되어 흠뻑 젖어 들었네요. 멋진 시인의 훌륭한 시집이에요. 감사합니다!

kinye91 2023-09-27 13:31   좋아요 1 | URL
저도 아는 분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는데요. 읽으면서 마음이 편해지고 따스해졌어요. 좋은 시들이 우리 마음을 어떻게 어루만지는지 체험할 수 있는 시집이라고 생각해요.

dalgial 2023-09-27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Kbs 다큐 자연의 철학자들 중에 시인 편이 있어요. 시집 읽고 다큐 보니 화면에 시가 가득합니다.
 

  광복절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보통 광복절이 되면 대통령들이 축하하는 연설을 한다.


  과거를 딛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그렇다고 과거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주로 일본에게는 사과를, 우리는 그 사과를 바탕으로 용서를 이야기하는데...


  이번 경축사는 도대체, 누구를 겨냥하고 한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아니 누구를 겨냥했는지가 너무도 명확하다.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


광복절임에도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삼았던 일본에 대해야 역사를 바르게 인식하고, 제대로 된 사과를 하라는 말은 없다. 오로지 일본은 우리의 협력 대상자라는 말밖에는 없다.


후쿠시마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겠다고 선언한 일본, 1급 전범들이 합사되어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봉물을 바치는 일본 수상. 그들에게 대동아공영권을 주장하면서 동양의 나라들을 식민지로 삼았던 과거는 전혀 반성할 역사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쉬울 뿐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그럼에도 식민지였던 나라의 대통령이란 사람이 과거를 모르쇠한다. 과거는 중요하지 않단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과거는 없다. 자신이 생각하는 미래만 있다. 


남북 분단의 원인 제공이 바로 식민지였음을. 일본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분단의 제공자임을 생각하지 않고 광복절 축사를 말하다니... 오로지 분단은, 분열은 소수의 극렬분자들 때문이라고 생각하다니...


이제하 시집에 노래로 불린 시들이 많다고 해서 마음이 동했었는데... 그러다 이 시집에 실린 '오는 봄'이라는 시를 보면서, 이런 정말 '조선인들만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고...


               오는 봄


      각설탕처럼 토막난

      하늘을


      부지런한 새들이

      하나로 

      얽어매고 있다


      조선사람들만 불쌍하다


      사다린 양 올라가는

      아지랑이를 두고도


      통일, 통일이라고만

      떠들고 있다


이제하, 빈 들판, 나무생각. 1998년 초판 4쇄. 113쪽.


경축사를 읽어보니, 무섭다. 국내에 이런 반국가세력이 많단다.  민주주의 외피를 쓰고활동하는 반국가세력들. 민주화 운동에 전념했던 이들에게 이념의 그물을 뒤집어 씌운다. 참, 편하다. 종북좌파라는 말 한마디면, 그들이 설 자리가 없고, 그 자리에 자신들이 서면 되니까.


이렇게 그냥, 떠들고만 있다. 아니, 광복절 경축사에서 통일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고 봐야 한다. 북한의 위협만을 이야기하고, 그래서 한미일 공조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광복절 축사인데?


몇 구절을 인용하면 참...


전체주의 세력은 자유사회가 보장하는 법적 권리를 충분히 활용하여 자유사회를 교란시키고, 공격해 왔습니다. 이것이 전체주의 세력의 생존 방식입니다.

 

공산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습니다.

 

일본은 이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파트너입니다.

 

한일 양국은 안보와 경제의 협력 파트너로서 미래지향적으로 협력하고 교류해 나가면서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함께 기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윤석열대통령 2023년 광복절 경축사 중에서)


우리는 통일과 화합을 이루어야 하고, 일본에게는 반성과 사과를 요구해야 하는 광복절 경축사여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분열과 갈등. 그리고 일본에 대해서는 과거는 묻고 함께 갑시다라고 요청하고 있는 연설이라니...


아, 정말 ''한국인들만 불쌍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졌다. 이 시에 나온 조선인을 한국인으로 바꿔도 무방하다는 생각이 드니.


봄은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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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한 날은 가고.


  즐거워 했던 날들도 가고.


  무엇으로 충만했던 날들도 가고.


  이제는 남탓을 하면서 자기 잘못을 덮는 날들이 오고.


  나는 옳다는 신념으로 남들을 거짓으로 몰아붙이는 날들이 오고.


  행복이란 그냥 그렇게 순응하며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날들이 오니.


  진정 행복한가?


최영미 시인이 쓴 첫 번째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젊은 시절을 끝내고 이제 기성세대가 된 사람들, 시대의 변화를 감지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면 이 두 번째 시집은 거기에서 더 절망쪽으로, 외로움 쪽으로 나아갔다는 느낌을 준다.


무언가 쓸쓸하고 외롭고, 절망적인, 함께 하지 못하고 홀로인 듯한 느낌을 주는 시들이 많다. 제목이 된 시만 해도 그렇다.


'꿈의 페달을 밟고' 얼핏 보면 긍정적으로 보이는 이 구절이 '네가 쌓은 돌담을 넘지 못하고'(11쪽)라는 표현을 통해 부정을 나타내는쪽으로 간다. 잔치가 끝난 것을 넘어 어쩌면 환멸의 시대에 도달했다는 표현이 아닐까 싶기도 한데.


그렇다고 마냥 그렇게만 보아서는 안 된다. 시인은 포기하지 않는다. 같은 시에서 '꿈의 페달을 밟고 갈 수 있다면 / 시시한 별들의 유혹은 뿌리쳐도 좋았다'(11쪽)고 하고 있으니.


그러나 여전히 시대는 과거의 시대가 아니다. 이 시집이 나온 때가 1998년이니, 우리나라가 아이엠에프로 자본주의가 성숙한 단계를 지나서 자본주의로 인해 고통을 겪는 시기에 접어든 때다. 그러니 이미 자본이 잠식한 이 사회에서 시인은 현실의 페달이 아닌 '꿈의 페달'을 노래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성장을 구가하던 우리나라가 어떤 상황에 처했다고 시인은 판단했을까? '달팽이'란 시를 보면 시인이 그 시대를 어떻게 판단했는지 알 수 있다.


         달팽이


그 찬란했던 시간의 알맹이들은 사라지고


껍데기뿐인 추억만 남았나


최영미, 꿈의 페달을 밟고. 창작과비평사. 1998년. 54쪽.


하하, 참 이렇게... 알맹이들은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은 달팽이와 같은 시대. 그런 시대를 바라보는 시인이 밝은 시를 쓰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희망이 있어야 하지 않나. 시인은 절망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나. 너무 가혹한 기대인가? 시인마저 포기한 사회는, 그런 사회는 암흑사회에 불과할텐데...


왜냐하면 후기에서 시인은 '시가 나를 부렸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가 이렇게 나올 수밖에 없다는 말인데...


이 시대를 풍자한 시인데, 과연 그 시대에만 해당하는지, 다시 읽으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늘 어느 시대든 이런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들이 있다는 사실을 시인이 우리에게 환기시켜 주고 있으니까.


        행복론


사랑이 올 때는 두 팔 벌려 안고

갈 때는 노래 하나 가슴속에 묻어놓을 것

추우면 몸을 최대한 웅크릴 것

남이 닦아논 길로만 다니되

수상한 곳엔 그림자도 비추지 말며

자신을 너무 오래 들여다보지 말 것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은 아예 하지도 말며

확실한 쓸모가 없는 건 배우지 말고

특히 시는 절대로 읽지도 쓰지도 말 것

지나간 일은 모두 잊어버리되

엎질러진 물도 잘 추스려 훔치고

네 자신을 용서하듯 다른 이를 기꺼이 용서할 것

내일은 또 다른 시시한 해가 떠오르리라 믿으며

잘 보낸 하루가 그저 그렇게 보낸 십년 세월을

보상할 수도 있다고, 정말로 그렇게 믿을 것

그러나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고

인생은 짧고 하루는 길더라


최영미, 꿈의 페달을 밟고. 창작과비평사. 1998년. 51쪽.


이 시대에 말하는 행복이 과연 행복일까? 시인이 왜 '그러나'라고 했을까? 아직도 시인에게는 포기하지 못한 무엇이 있다는 말 아닐까. 우리 역시 포기하지 말아야 할 행복이 있지 않을까. 무조건 수용하는 것이 아닌, 또는 무한한 긍정이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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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이 대체로 쉬운 언어로 쓰였는데, 그럼에도 무슨 말인지 쉽게 와 닿지 않는 시가 있다. 자꾸 읽어보게 되는데, 그래도 모르겠다.


  그 중 한 시가 바로 '옷 벗는 나무'다. 나무가 옷을 벗는다? 긍정적일까, 부정적일까? 


  이 시집에 실린 다른 시들을 찾아보니 어느 쪽으로도 가능하다. 뭐지 이게?


한 그루 나무를 그린다. 이롭겠지만 / 마침내 혼자 살기로 결심한 나무./ ... / 요즈음에는 내 나이 또래의 나무에게/ 관심이 많이 간다. / 큰 가지가 잘려도 / 오랫동안 느끼지 못하고 / 잠시 눈을 주는 산간의 바람도 / 지나간 후에야 가슴이 서늘해온다. / 인연의 나뭇잎 모두 날리고 난 후 / 반백색 그 높은 가지 끝으로 / 소리치며 소리치며 가리키는 것은 무엇인가('그림 그리기4'에서. 12쪽)

                                            

그리던 나무를 아무래도 지워야겠다. // 혼자서 멀리 떠나야만 / 길고 편한 잠 이룰 수 있는 것 알면서 / 땅에 떨어지기 싫어하는 / 낙엽이 있다면 어쩌겠냐. ('그림 그리기 5'에서. 44쪽)


벌판에서 혼자 떨던 나무도 / 저 멀리 다음해까지 / 옷 벗어던지고 혼절해버렸구나. / 내가 아는 하느님은 편안하구나. ('겨울 기도 2'에서.62-63쪽)    


눈을 뜨고 꿈꾸는 나무가 되고 싶었다. /열매를 거두는 일은 어차피 내 몫이 아닌 다음에야 / 여름이 가기 전에 꽃잎을 눈부시게 다 뿌리고 / 세상의 자초지종에 태연하고 싶었다.('영희네 집'에서 97쪽.)


그러나 서울 가로수는 냉혈 식물인가, / 해마다 눈부신 장식으로 봄을 빛내다가 / 때가 되면 주저없이 입던 옷도 벗는다. / 두 눈 부릅뜨고 우리를 보는 / 늙고 지혜로운 선각자처럼.('서울 가로수'에서. 98쪽)                             


그럼 그냥 감으로 시를 읽어야 한다. 나무가 옷을 벗는다? 이는 계절적으로 보면 가을이란 말이고,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지점이란 성숙의 과정을 거쳐 결실을 맺은 때라는 말이다.


또 나무가 옷을 벗는다는 말은 가리지 않고 모두 보여준다는 말일 수도 있다. 나무가 숲을 이루는 경우를 긍정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 숲 속에 들어가면 너무도 울창한 나무로 인해 하늘을 볼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니 한쪽으로 해석하자. 이번에는 나무가 옷을 벗는다는 말을 가리는 것을 치운다로 보자. 그래도 이 시가 잘 이해 안 되기는 마찬가지지만.  


옷 벗는 나무


왕이여,

당신의 슬픔은 遺傳이다.

사방에서 눈치보며 숨죽이는

당신의 아까운 겨레들,

숨죽이고 몸 흔드는 겨레의 눈들,

아무리 타일러도 옷 벗고 나서는 나무들.


왕이여,

높은 산 주위에는

낮은 나무들 허리 굽혀 살고

낮은 산 둔덕에서

크고 곧은 나무가 허리 펴고 산다.

당신의 슬픔은 유전이다.

천천히 넘어지는 무리의 나무들.

아무리 가지쳐서 불태워도

한세월의 어두운 王道의 하늘.


마종기, 그 나라 하늘빛, 문학과지성사.1996년 재판 2쇄. 16쪽.     


'왕이여 당신의 슬픔은 유전이다'가 1연과 2연에 반복되고 있다. 슬픔이 유전이라는 말과 '어두운 왕도의 하늘'이라는 말을 생각하면 하늘이 맑지 않다.


즉 왕도가 실현되지 않고 있다. 왕도를 정치로 바꾸면 제대로 된 정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사방에서 숨죽이며 눈치볼 수밖에 없다. 왕도가 아닌 패도(覇道)의 시대는 그렇다. 그러니 나무들이 옷을 벗을 수밖에 없다. 보라고, 하늘을 보라고, 지금 이 하늘이 과연 왕도의 하늘이냐고?


정치가 잘 될 때는 굳이 옷을 벗을 필요가 없다. 하늘이 잘 보이므로. 하지만 패도 정치가 이루어질 때는 옷을 벗어야 한다. 누가? 바로 주변에서 나름대로 힘을 지니고 있는 존재들이. 충언을 할 수 있는 존재들이.


이 나무들이 옷을 벗는 이유는 하늘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현실을 직시하게 하기 위해서. 그런데 하늘을 보지 않고 나무를 베어낸다. 나무를 쓰러뜨린다. 잘 자란 아름드리 나무들을. 


보이지 않게 한다고, 막는다고 어두운 하늘임을 모를까? 


옷 벗는 나무들, 하늘을 보여주려 하는 나무들. 그 나무들을 찍어내기만 하면 결국 슬픔은 유전될 수밖에 없다. 지속될 수밖에 없다.


나름대로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읽는데, 여전히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많다. 이 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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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이 각박해지고 있다. 치안 만큼은 그다지 걱정하지 않고 있었는데... 미국에서 수없이 벌어지고 있는 총기난사 사건을 보면서, 우리는 아직 저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우리 사회는 그래도 무차별 살인이 많이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믿고 있었는데...


  대낮에 거리에서 백화점에서 학교에서 상해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죽거나 다치거나. 불특정 다수를 향한 분노의 표출일 수도 있고, 특정한 개인에 대한 앙심 때문에 벌인 일일 수도 있지만...


  이런 사건이 일어나면 일어날수록 사람과 사람 사이는 멀어진다. 그 멀어진 사이로 법이 강화되어 들어온다.


  관계 맺기의 어려움을 법이라는 틀로 강제하게 된다. 그냥 법, 법 하는 사회로 변해가는데... 


어지러운 시대일수록 법이 각광을 받는다. 어지러운 사회일수록 제자백가 중 법가(法家)들이 판을 장악하게 된다. 법은 점점 강화되고, 그만큼 사람과 사람 사이는 멀어진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한 개인이 한 개인을 어떻게 할 권리는 없다. 내가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도 소중하다. 내가 소중한 만큼 다른 존재도 소중하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인데... 그런 마음을 지녀야 하는데... 법을 작동시키기 전에. 법으로 사람 관계를 만들어 가기 전에.


조태일 시집을 읽었다. 작은 것들에 대한 사랑이 시에서 잔뜩 묻어난다. 그 중에 산 속에 홀로 피어 있는 꽃. 개복숭아꽃. 우리가 먹는 탐스러운 복숭아보다는 못하다고, 야생 상태의, 질이 떨어지는 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접두사 '개-'가 붙은 꽃. 이 시집 제목이 된 구절이 바로 이 개복숭아꽃이 '혼자 타오르고 있었네('연등' 1연에서)다.


'연등'이라는 시다. 연등이 무엇인가? 희망을 담은 등 아닌가, 희망을 함께 느끼는 등 아닌가? 절에 가면 많이 걸려 있는 소망들. 그런 바람들.                                                     


하지만 이 시에서는 '저 혼자 타오르고 있었네'라고 한다. 홀로, 마치 김소월이 쓴 '산유화'에서 '저만치'를 연상시키듯이.


하지만 혼자 타오르고 있었다고 해서 희망이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오히려 희망을 잃은 시대에 희망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희망을 피어올리고 있다고 해야 한다.


마지막까지 지니고 있어야 할 것이 바로 희망 아니던가. 조태일의 시 '연등'은 그런 생각을 하게 한다.


    연 등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산 속

개복숭아꽃 저 혼자 타오르고 있었네.


연분홍꽃

점, 점, 점, 점점이 불 밝혀

화르르 화르르 몸 섞고 있었네.


사월 초파일날 켠 연등보다

더 환했네. 더 고왔네.


오래도록 내 숨결

내 스스로 가빴네

내 스스로 황홀했네.


조태일, 혼자 타오르고 있었네. 창작과비평사. 1999년 2쇄. 32쪽.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또 저만치 있더라도, 홀로 있더라도 희망은 희망이다. 희망을 잃지 않는 삶, 사람과 사람 사이를 법으로 메꾸기보다는 배려와 존중, 서로 인정하고 도와주는 마음으로 채우는 그런 시대에 대한 희망,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전히 희망은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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